(나) 꿈의 원천으로서의 유년기 체험
꿈 내용의 셋째 특성으로 우리는, 깨어 있을 때의 기억으로는 마음대로 불러낼 수 없는 듯한 우리 삶의 가장 이른 시기의 인상이 꿈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로베르트를 뺀) 모든 저자에게서 인용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또 얼마나 드물게 일어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깨어난 뒤에는 꿈의 해당 요소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루는 것이 어린 시절의 인상이라는 증명은 객관적으로 얻어 내야 하는데, 그러는 데 필요한 조건이 마침 한데 맞아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A. 모리[48]는 특히 결정적인 예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남자는 스무 해 만에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 밤 그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전혀 낯선 고장에 있고, 거기서 낯선 남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 고향에 돌아간 그는 그 낯선 고장이 고향 마을 근처에 실제로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꿈속의 낯선 남자는 그곳에 사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로 밝혀졌다. 이는 그가 어린 시절에 그 남자와 그 고장을 둘 다 보았다는 결정적인 증거임에 틀림없다. 덧붙이자면 이 꿈은 조바심 꿈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녁 음악회 표를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처녀의 꿈(4장)이나, 아버지에게서 아모 소풍 약속을 받은 아이의 꿈 따위와 마찬가지다. 왜 하필 어린 시절의 이 인상이 꿈꾼 사람에게 재생되는지, 그 동기는 물론 분석 없이는 밝혀낼 수 없다.
내 강의를 듣는 사람 가운데 하나는 자기 꿈은 왜곡되는 일이 아주 드물다고 자랑하곤 했는데, 얼마 전 꿈에서 예전 가정교사가 자기 유모와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유모는 그가 열한 살이 될 때까지 그 집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 장면이 어디였는지는 꿈속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몹시 궁금해져서 형에게 이 꿈 이야기를 했고, 형은 웃으면서 그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형은 그때 여섯 살이었으므로 그 일을 아주 잘 기억한다고 했다. 두 연인은 밤에 관계를 맺을 형편이 되면 으레 큰아이인 형에게 맥주를 먹여 취하게 만들곤 했다. 유모와 같은 방에서 자던 작은아이, 그러니까 당시 세 살이던 우리의 꿈꾼 사람은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꿈 해석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꿈에 어린 시절의 요소가 들어 있다고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경우가 또 하나 있다. 그 꿈이 이른바 평생 되풀이되는 꿈, 곧 어린 시절에 처음 꾸고 나서 어른이 된 뒤에도 거듭거듭 다시 나타나는 꿈일 때다. 나 자신은 그런 평생 되풀이되는 꿈을 겪어 본 적이 없지만, 이미 알려진 예들에 이런 종류의 예를 몇 가지 덧붙여도 좋겠다. 서른 줄의 한 의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노란 사자 한 마리가 자기 꿈 생활에 자주 나타났다고 내게 이야기한다. 그는 이 사자에 관해 아주 자세한 것까지 일러 줄 수 있다. 꿈으로만 알던 이 사자의 실물이 어느 날 오래 잊혔던 도자기 물건으로 발견되었고, 그때 이 젊은이는 그것이 아주 어렸을 때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장난감이었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 그 자신은 더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이제 외현적 꿈 내용에서 눈을 돌려 분석을 거쳐야만 드러나는 꿈 사고로 가 보면, 내용만 보아서는 그런 것을 짐작조차 못 했을 꿈에서도 어린 시절 체험이 함께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꿈의 특히 재미있고 교훈적인 예를 나는 저 「노란 사자」의 주인공인 존경하는 동료에게서 얻었다. 그는 난센의 극지 탐험기를 읽은 뒤, 얼음 벌판에서 그 대담한 탐험가가 호소하는 허혈을 전기로 치료해 주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분석하다가 그는 어린 시절의 일화 하나를 떠올렸는데, 그 일화가 없으면 이 꿈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채로 남는다. 서너 살 난 아이였을 때 그는 어른들이 탐험 여행에 관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이윽고 아빠에게 탐험이란 게 중병이냐고 물었다. 그는 분명히 「trips」〔여행〕를 「rips」〔찢어짐〕와 혼동했던 것이다. 형제자매들이 놀려 대는 바람에 그는 이 창피한 경험을 끝내 잊을 수 없었다.
시클라멘속(屬)에 관한 연구서 꿈을 분석하다가, 내가 다섯 살 난 꼬마였을 때 아버지가 채색 도판으로 꾸민 책 한 권을 내가 망가뜨리게 해 주었다는,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 온 기억에 부딪힐 때도 사정은 아주 비슷하다. 이 기억이 정말로 꿈 내용을 짜는 데 한몫했는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분석 과정이 나중에야 그 연관을 만들어 냈다고 넌지시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풍부하고 복잡하게 얽힌 연상의 끈이 내 설명이 옳음을 보증한다. 시클라멘 ― 가장 좋아하는 꽃 ― 가장 좋아하는 음식 ― 아티초크. 아티초크처럼 한 잎 한 잎 뜯어 나누다(그 무렵 중국 제국의 분할을 두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던 말이다) ― 식물 표본집의 책벌레, 그것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책이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여기서 밝히지 않은 이 꿈의 궁극적인 의미는 이 어린 시절 장면의 내용과 더없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또 다른 일련의 꿈에서는, 꿈을 불러일으켰고 꿈이 곧 그 성취로 밝혀지는 소원 자체가 어린 시절에 생겨났다는 것을 분석을 통해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마침내 우리는 아이가 그 모든 충동을 지닌 채 꿈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된다.
이제 이미 교훈을 준 바 있는 꿈 하나의 해석을 이어 가겠다. 친구 R.이 나의 삼촌인 꿈(4장) 말이다. 우리는 이 꿈의 해석을, 교수로 임명되고 싶다는 소원 동기가 손에 잡힐 듯 드러날 만큼은 밀고 나갔고, 꿈속에서 친구 R.에게 보인 애정은 꿈 사고 속에서 두 동료를 헐뜯은 것에 맞서 반대와 반항으로 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나 자신의 꿈이었으므로, 그때 얻은 해답에 내 감정이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분석을 이어 가도 좋을 것이다. 꿈 사고 속에서 그토록 푸대접받는 이 동료들에 대해, 깨어 있을 때라면 내가 전혀 다른 말로 의견을 밝혔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임명 문제에서 그들과 같은 운명을 겪고 싶지 않다는 소원의 힘은, 꿈속의 평가와 깨어 있을 때의 평가 사이의 어긋남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다. 새 직함으로 불리고 싶은 내 욕망이 그렇게까지 강하다면, 그것은 병적인 야심의 증거가 된다. 나는 내게 그런 야심이 있는 줄 몰랐고, 그런 것은 내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는다.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정말로 야심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내 야심은 벌써 오래전에 원외 교수(조교수)라는 직함과 지위가 아닌 다른 대상으로 옮겨 갔다.
그렇다면 꿈이 내게 덮어씌운 이 야심은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서 나는 어린 시절에 자주 들은 이야기 하나를 떠올린다. 내가 태어났을 때 늙은 농사꾼 아낙 하나가 행복에 겨운 어머니에게(나는 어머니의 첫아이였다) 위대한 인물을 세상에 내놓았다고 예언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예언은 아주 흔할 것이 틀림없다. 기대에 부푼 행복한 어머니는 그토록 많고, 이 세상에서 힘을 잃은 탓에 미래로 눈을 돌린 늙은 농사꾼 아낙도 그토록 많으니 말이다. 그렇게 예언한다고 예언자가 손해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위대함을 향한 내 갈망이 이런 데서 비롯한 것일까? 그러나 여기서 어린 시절 후반의 인상 하나가 떠오르는데, 이것이 설명으로는 더 나을 것이다. 내가 열한 살인가 열두 살 때 부모님이 나를 자주 데려가던 프라터1의 한 음식점에서 있었던 어느 저녁의 일이다. 우리는, 이 탁자 저 탁자를 돌아다니며 누가 무슨 주제를 주든 즉석에서 시구를 지어 읊는 사내 하나를 눈여겨보았다. 나는 이 시인을 우리 탁자로 모셔 오라는 심부름을 갔고, 그는 이 전갈을 고마워했다. 그는 주제를 묻기도 전에 나에 관한 운문 몇 줄을 뚝딱 지어 읊더니, 자기 영감을 믿어도 된다면 나는 아마 언젠가 「장관」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두 번째 예언이 남긴 인상을 나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는 시민 내각2을 뽑던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얼마 전에 내각에 뽑힌 사람들, 곧 헤르프스트, 기스크라, 웅거, 베르거 등의 초상을 집에 가져왔고, 우리는 이 신사들을 기려 그 초상에 불을 밝혀 두었다. 그 가운데는 유대인도 몇 사람 있었다. 그러니 부지런한 유대인 학생이라면 누구나 장관감이었던 셈이다.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내가 법학을 공부하려다가 마지막 순간에야 계획을 바꾼 일조차 그 시절의 인상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 의사에게는 장관이 되는 길이 어떤 경우에도 열려 있지 않다. 그럼 내 꿈으로 돌아가자!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꿈은 나를 음울한 현재에서 시민 내각을 뽑던 그 희망찬 시절로 옮겨 놓고, 그 시절의 내 소원을 한껏 이루어 준다. 존경할 만하고 학식 높은 두 동료를,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은 얼간이로, 다른 한 사람은 범죄자로 그토록 푸대접하면서 ― 그렇게 하면서 나는 마치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도 된 듯이 행동한다. 나는 그의 자리에 나 자신을 앉히는 것이다. 나는 각하에게 얼마나 철저하게 복수하고 있는가! 그는 나를 원외 교수로 임명하기를 거부하고, 나는 그 앙갚음으로 꿈속에서 그의 자리에 나 자신을 앉힌다.
또 다른 사례는, 꿈을 움직이는 소원이 현재의 것이라 해도 그 소원이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큰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로마에 가고 싶은 동경에 바탕을 둔 일련의 꿈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이 동경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꿈으로나 채워야 할 것 같다. 내가 여행에 쓸 수 있는 철에는 건강을 생각해서 로마에 머무는 것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3 이를테면 나는 한번은 기차 칸 창문으로 테베레강과 산탄젤로 다리를 바라보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 기차가 떠나고, 나는 그 도시에 아예 들어가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서 본 그 경치는 전날 어느 환자의 응접실에서 지나가며 흘깃 본 판화를 본뜬 것이었다. 또 한번은 누군가 나를 언덕 위로 데리고 가서 안개에 반쯤 싸인 로마를 보여 주는데, 로마가 워낙 멀리 있어서 나는 그 광경이 그토록 또렷한 데 놀란다. 이 꿈의 내용은 너무 풍부해서 여기서 다 전할 수는 없다. 「약속의 땅을 멀리서 바라보다」라는 모티프는 그 속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그 도시는 내가 처음에 안개 속에서 본 뤼베크이고, 언덕의 원형은 글라이헨베르크다. 세 번째 꿈에서 나는, 꿈이 일러 주는 바로는, 마침내 로마에 와 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도시다운 데라고는 전혀 없다. 검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강, 그 한쪽에는 검은 바위들, 다른 쪽에는 커다란 흰 꽃들. 어떤 추커 씨가 눈에 띄고(나와는 그저 안면만 있는 사이다), 나는 그에게 도시로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기로 마음먹는다. 깨어 있을 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도시를 내가 꿈속에서 보려고 헛되이 애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풍경을 요소별로 풀어 보면, 흰 꽃들은 내가 아는 라벤나를 가리킨다. 라벤나는 적어도 한동안은 이탈리아의 수도라는 으뜸 자리를 로마에게서 빼앗았던 도시다. 라벤나 주변의 늪지에서 우리는 검은 웅덩이 한가운데 핀 더없이 아름다운 수련을 보았다. 꿈은 그 수련을 우리 아우스제의 수선화처럼 풀밭에서 자라게 한다. 라벤나에서는 수련을 물에서 건져 내기가 그토록 성가신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가에 바짝 붙은 그 검은 바위는 카를스바트의 테플 계곡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제 「카를스바트」 덕분에, 내가 추커 씨에게 길을 묻는다는 기묘한 사정이 설명된다. 이 꿈을 짜 맞춘 재료 속에는, 깊고 때로는 쓰디쓴 세상살이의 지혜를 그토록 많이 감추고 있어서 우리가 대화에서나 편지에서나 즐겨 인용하는 저 재미있는 유대인 일화도 두 편 나타난다. 하나는 「체질」 이야기다. 가난한 유대인 하나가 표도 없이 카를스바트행 급행열차에 몰래 올라탔다가 붙잡히고, 차장이 표 검사를 할 때마다 점점 더 험한 꼴을 당하는데, 그 비참한 여정 중에 어느 역에서 만난 친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는 이야기다. 「카를스바트까지 가지. 내 체질이 버텨 준다면 말이야.」 기억 속에서 이것과 이어져 있는 또 다른 이야기는, 프랑스어를 모르는 유대인 하나가 파리에 가거든 리슐리외 거리로 가는 길을 물어보라는 분명한 지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파리는 여러 해 동안 나 자신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처음으로 파리의 포석을 밟았을 때 나는 크나큰 만족을 느꼈고, 그 만족을 다른 소원들의 성취에도 이르리라는 보증으로 여겼다. 길을 묻는 것 역시 로마를 곧바로 가리키는 암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니까. 게다가 추커(Zucker, 「설탕」이라는 뜻)라는 이름은 다시 카를스바트를 가리킨다. 체질성 질환인 당뇨병(Zuckerkrankheit, 「설탕병」)을 앓는 사람이면 누구나 우리가 그리로 보내니 말이다. 이 꿈의 계기는 부활절에 프라하에서 만나자는 베를린 친구의 제안이었다. 내가 그와 의논해야 했던 일들 속에도 설탕과 당뇨병에 대한 암시가 더 있었다.
방금 말한 꿈 바로 뒤에 꾼 네 번째 꿈은 나를 다시 로마로 데려간다. 나는 눈앞에 길모퉁이 하나를 보는데, 거기 독일어 벽보가 그토록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전날 나는 친구에게, 앞일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 프라하는 독일인 여행자에게 그리 편안한 곳이 못 될 것 같다고 편지에 썼다. 그러니 이 꿈은 그를 보헤미아의 도시가 아니라 로마에서 만나고 싶다는 소원과, 아마 학생 시절에 생겨났을, 프라하에서 독일어가 좀 더 너그럽게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욕망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린 시절 처음 세 해 동안은 체코어를 알아들었을 것이 틀림없다. 슬라브인이 사는 모라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 때 들은 체코어 동요 하나는 애써 외우지도 않았는데 기억에 깊이 새겨져서,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면서도 오늘날까지 그대로 욀 수 있다. 그러니 이 꿈들에도 내 생애 첫 몇 해의 인상과 맺은 갖가지 관계가 모자라지 않는 셈이다.
트라시메노 호를 비롯해 여러 곳을 거친 지난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는 마침내 영원의 도시를 향한 내 동경이 젊은 날의 인상에서 어떤 힘을 얻었는지 알아냈다. 테베레강을 보고 나서, 로마를 80킬로미터 앞둔 곳에서 쓰라린 감정을 안고 발길을 돌린 뒤의 일이었다. 이듬해에는 로마를 거쳐 나폴리로 가 보자는 계획을 막 꺼내던 참이었는데, 우리 고전 작가 가운데 누군가의 글에서 읽었음이 틀림없는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운 뒤 둘 가운데 누가 더 조바심치며 방 안을 서성였는지는 의문이다 ― 교감 빙켈만인가, 위대한 장군 한니발인가.」 나 자신이 한니발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것이다. 그처럼 나도 로마를 보지 못할 운명이었고, 한니발 역시 온 세상이 그가 로마로 오리라 기대하던 때에 캄파니아로 가 버렸다. 이렇게까지 나와 닮은 데가 생긴 한니발은 김나지움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영웅이었다. 또래의 많은 소년들처럼 나도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인이 아니라 카르타고인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민족에 속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닫고, 급우들 사이의 반유대주의 정서 때문에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셈족 장군의 모습은 내 눈에 한층 더 커 보였다. 젊은 나에게 한니발과 로마는 유대인의 끈질김과 가톨릭교회의 조직 사이의 대립을 상징했다. 그 뒤로 반유대주의 운동이 우리의 감정 생활에서 지니게 된 의미는 그 이전 시절의 생각과 인상을 붙박아 두는 데 한몫했다. 그리하여 로마에 가고 싶다는 소원은 내 꿈 생활에서, 뜨겁게 품어 온 여러 소원을 덮어 가리는 덮개이자 상징이 되었다. 그 소원들은 실현하려면 저 포에니의 장군처럼 끈기 있게 한눈팔지 않고 매달릴 만한 것들이며, 그 성취는 로마에 들어가겠다던 한니발 필생의 소원만큼이나 때로 운이 따르지 않는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나는, 오늘날까지도 이 모든 감정과 꿈속에서 여전히 힘을 떨치는 소년 시절의 체험 하나에 부딪힌다. 아버지가 산책길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세상일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은 내가 열 살이나 열두 살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번은, 내가 당신보다 얼마나 더 좋은 시절에 태어났는지 보여 주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젊었을 때 어느 토요일에 네가 태어난 마을의 거리를 걷고 있었단다. 옷을 잘 차려입고 새 털모자를 쓰고 있었지. 그런데 그리스도교인 하나가 다가오더니 내 모자를 한 방에 쳐서 진창에 떨어뜨리고는 『유대인, 인도에서 내려가!』 하고 소리치는 거야.」 「그래서 아버지는 어떻게 했어?」 「차도로 내려가서 모자를 주웠지.」 태연한 대답이었다. 꼬마인 내 손을 잡고 가던 그 크고 건장한 남자가 한 일치고는 영웅답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장면을, 내 감정에 더 잘 맞는 다른 장면과 맞세워 보았다.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4 바르카가 집 안 제단 앞에서, 로마인에게 원수를 갚겠다는 맹세를 어린 아들에게 시킨 장면이다. 그때부터 한니발은 내 공상 속에 자리를 잡았다.
카르타고 장군을 향한 내 열광은 어린 시절 속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추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보는 것은 아마 이미 형성된 감정 관계가 새로운 매개체로 전이된 것이리라. 글을 깨친 뒤 어린 내 손에 들어온 첫 책 가운데 하나가 티에르의 『통령정부와 제정(Konsulat und Kaiserreich)』이었다. 나는 나무 병정들의 납작한 등에 제국 원수들의 이름을 적은 작은 딱지를 붙였던 것, 그리고 그때 이미 마세나(유대인 이름으로는 메나세)가 내가 드러내 놓고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폴레옹 자신도 알프스를 넘는 일에서 한니발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군인다운 이상이 자라난 내력은 어린 시절 속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 생애 첫 세 해 동안 나보다 한 살 많은 사내아이와 때로는 사이좋게, 때로는 적대적으로 어울렸던 일이 두 놀이 친구 가운데 약한 쪽에게 틀림없이 불러일으켰을 소원에까지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의 분석에 깊이 들어갈수록, 잠재적 꿈 내용에서 꿈의 원천 노릇을 하는 어린 시절 체험의 자취를 그만큼 더 자주 밟게 된다.
우리는 꿈이 체험을 재생해서, 그 체험이 줄어들지도 바뀌지도 않은 채 그것만으로 외현적 꿈 내용을 이루는 일은 아주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장 (나)). 그래도 이 과정을 보여 주는 확실한 예가 몇 가지 보고되어 있고, 나도 새로운 예를 몇 가지 덧붙일 수 있는데, 이것들 역시 유년기 장면과 관련된다. 내 환자 가운데 한 사람의 경우, 한번은 꿈이 어떤 성적인 사건을 거의 왜곡하지 않고 재생했는데, 그것이 정확한 회상이라는 것은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사실 그 기억은 깨어 있는 생활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지만 몹시 흐려져 있었고, 그것이 되살아난 것은 그에 앞선 분석 작업의 결과였다. 꿈꾼 사람은 열두 살 때 병으로 누워 있는 급우를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그 급우가 침대에서 몸을 움직이다가, 아마 그저 우연이었겠지만, 몸을 드러냈다. 그 성기를 보자 그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잡혀 자기도 몸을 드러내고 상대 소년의 음경을 붙잡았다. 그러나 상대 소년이 놀라고 분개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당황해서 손을 놓았다. 스물세 해 뒤에 한 꿈이 그 장면에서 일어난 감정의 세부까지 빠짐없이 갖추어 이 장면을 되풀이했다. 다만 꿈꾼 사람이 능동적인 역할 대신 수동적인 역할을 맡았고, 급우라는 인물이 현재에 속하는 인물로 바뀌었다는 점만은 달랐다.
물론 대개는 어린 시절의 장면이 외현적 꿈 내용 속에 암시로만 표현되어 있어서, 해석을 거쳐 꿈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예는 들어 보아야 그다지 설득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어린 시절의 체험이라는 보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 체험들이 삶의 더 이른 시기에 속한다면, 우리 기억은 그것들을 더는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어린 시절의 체험이 대체로 꿈속에 들어 있다는 결론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정신분석 작업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요인에 있으며, 그 요인들은 전체로 놓고 보면 충분히 믿을 만해 보인다. 그러나 꿈 해석을 위해, 꿈이 어린 시절의 체험을 가리키는 이런 대목들을 그 맥락에서 떼어 내면 아마 별다른 인상을 주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나는 해석의 근거가 되는 재료를 결코 다 내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때문에 몇 가지 예를 드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겠다.
I. 다음 꿈은 또 다른 여성 환자의 것이다. 그녀는 온갖 기계가 있는 큰 방에 있는데, 짐작하기로는 아마 정형외과 시설인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시간이 없다는 말, 그리고 자기가 다른 다섯 사람과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그녀는 저항하며, 자기 몫으로 정해진 침대에 ― 아니면 그게 무엇이든 ― 눕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구석에 서서 내가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를 기다린다. 그사이 다른 사람들은 그게 다 그녀가 어리석은 탓이라며 비웃는다. 그와 동시에 작은 네모를 많이 만들라는 요구를 받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꿈 내용의 앞부분은 치료에 대한 암시이자 나에 대한 전이(transference)다. 뒷부분에는 어린 시절 장면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다. 두 부분은 침대라는 언급으로 이어진다. 정형외과 시설은, 치료를 그 기간과 성격에서 정형외과 치료에 견주었던 내 이야기 하나를 가리킨다. 치료를 시작할 때 나는 이 환자에게 당분간은 쓸 시간이 별로 없지만 나중에는 날마다 꼬박 한 시간을 바치겠다고 말해야 했다. 이 말이 환자 안에서 해묵은 예민함을 일깨웠는데, 이 예민함은 장차 히스테리 환자가 될 아이들의 주된 특징이다. 그런 아이들은 사랑을 바라는 욕망이 채워질 줄 모른다. 내 환자는 여섯 남매의 막내였고(그래서 「다른 다섯 사람과 함께」다), 막내인 만큼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시간과 관심을 너무 적게 쏟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를 그녀가 기다린다는 세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재단사 집 견습 소년이 옷을 가져오자 그녀는 그에게 옷값을 치렀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남편에게, 그 소년이 돈을 잃어버리면 자기가 돈을 또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아내를 놀리려고 「그렇다」고 대답했고(꿈속의 놀림), 그녀는 묻고 또 물으며 남편이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이제 잠재적 꿈 내용의 생각은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내가 그녀에게 두 배의 시간을 쏟으면, 그녀는 내게 두 배의 돈을 치러야 할까? 이것은 stingy or filthy〔인색하거나 더러운〕 생각이다. (어린 시절의 불결함은 꿈에서 흔히 돈 욕심으로 대체된다. 여기서는 filthy라는 낱말이 다리 노릇을 한다.) 내가 말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 운운하는 대목이 모두 「filthy」라는 낱말을 꿈이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면, 구석에 서 있기와 침대에 눕지 않기도 이와 들어맞는다. 이 두 특징은 어린 시절 한 장면을 이루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잠자리를 더럽혔고, 벌로 구석에 세워져 아빠가 이제 더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는 경고를 들었으며, 형제자매들은 그녀를 비웃었다, 등등. 조그만 네모들은 환자의 어린 조카딸과 관련된다. 조카딸은 그녀에게, 내 기억이 맞다면 아홉 칸이었을 텐데, 네모 칸들에 숫자를 써넣어 어느 방향으로 더해도 열다섯이 되게 하는 셈 재주를 보여 주었다.
II. 다음은 한 남자의 꿈이다. 그는 두 소년이 서로 맞붙어 싸우는 것을 보는데, 주위에 널린 연장으로 미루어 통장이 집 아이들이라고 결론짓는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넘어뜨렸는데, 쓰러진 아이는 푸른 보석이 박힌 귀고리를 하고 있다. 그는 잘못한 녀석을 혼내 주려고 지팡이를 치켜들고 급히 뒤쫓는다. 녀석은 나무 울타리에 기대 서 있는 한 여자에게로, 마치 그 여자가 제 어머니라도 되는 듯이 피신한다. 여자는 날품팔이의 아내인데, 꿈을 꾸고 있는 남자에게 등을 돌린다. 마침내 여자가 돌아서서 끔찍한 눈길로 그를 노려보자, 그는 겁에 질려 달아난다. 여자의 눈에서는 아래 눈꺼풀의 붉은 살이 도드라져 보이는 듯하다.
이 꿈은 전날의 사소한 일들을 넉넉히 이용했다. 전날 그는 실제로 거리에서 두 소년을 보았는데,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넘어뜨렸다. 싸움을 말리려고 그가 서둘러 다가가자 두 아이는 모두 달아났다. 통장이 집 아이들: 이것은 나중에 꾼 꿈으로만 설명되는데, 그 꿈을 분석하면서 그는 「통 밑바닥을 쳐서 빼 버리다」라는 표현을 썼다. 푸른 보석이 박힌 귀고리는 그가 관찰한 바로는 주로 매춘부들이 한다. 또 두 소년에 관한 흔한 속요 한 구절이 떠오른다. 「다른 한 녀석, 그 이름은 메리였다네」(곧 그 소년은 여자아이였다는 것이다). 서 있는 여자: 두 소년의 장면이 있은 뒤 그는 도나우강 둑을 산책했는데, 혼자인 틈을 타서 나무 울타리에 대고 소변을 보았다. 조금 더 걸어가는데, 점잖게 차려입은 나이 지긋한 부인이 그에게 아주 상냥하게 미소를 짓더니 자기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네주려 했다.
꿈속에서 여자는 그가 소변을 볼 때처럼 서 있었으므로,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소변을 보는 여자이며, 이로써 「끔찍한 눈길」과 붉은 살이 도드라진 것이 설명된다. 이 붉은 살은 쪼그려 앉을 때 벌어지는 성기를 가리킬 수밖에 없다. 그는 어린 시절에 성기를 본 적이 있었고, 그것은 나중의 회상 속에서 「궂은살」로, 그리고 「상처」로 나타났다. 이 꿈은 꿈꾼 사람이 어린 소년이었을 때 어린 여자아이들의 성기를 볼 기회가 있었던 두 경우, 곧 한 아이를 넘어뜨렸을 때와 다른 아이가 소변을 보고 있을 때를 하나로 합친다. 그리고 또 다른 연상이 보여 주듯이, 그는 이런 기회에 소년이던 그가 드러낸 성적 호기심 때문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벌이나 위협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다.
III. 다음에 드는 한 젊은 여성의 꿈 뒤에는, 공상 하나로 서둘러 뭉쳐 놓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 무더기 숨어 있다.
그녀는 장을 보려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그라벤5에서 주저앉은 듯이 무릎을 꿇는다. 많은 사람이, 특히 삯마차 마부들이 그녀 주위로 모여든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가 일어나도록 돕지 않는다. 여러 번 애써 보지만 헛일이다. 마침내 성공한 게 틀림없다. 집으로 데려다줄 삯마차에 태워지니 말이다. 크고 짐이 잔뜩 든 바구니 하나(장바구니 같은 것)가 창문으로 그녀 뒤를 따라 던져진다.
이 여성은 어린 시절에 시달렸던 것처럼 꿈속에서도 늘 시달리는 바로 그 사람이다. 꿈의 첫 장면은 분명 쓰러진 말을 본 데서 따온 것이며, 「주저앉은」이 경마를 가리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말을 탔고,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아마 자신이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문지기의 열일곱 살 난 아들이 거리에서 간질 발작을 일으켜 마차에 실려 집에 왔다는 그녀의 첫 어린 시절 기억은 쓰러짐이라는 표상과 이어져 있다. 물론 이 일은 들어서 알 뿐이지만, 간질 발작과 쓰러짐의 표상은 그녀의 공상에 큰 힘을 떨치게 되었고, 나중에는 그녀 자신의 히스테리 발작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 떨어지는 꿈을 꾸면 이는 거의 어김없이 성적인 뜻을 지닌다. 그녀는 「타락한 여자」〔fallen woman〕가 되는 것이다. 지금 살펴보는 꿈에서는 이 해석이 아마 가장 의심할 여지가 적을 것이다. 그녀가 쓰러지는 곳이 그라벤, 곧 매춘부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알려진 빈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장바구니는 한 가지 이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절이라는 뜻으로 보면(독일어 Korb는 바구니이자 퇴짜, 곧 거절이다), 그녀는 처음에 구혼자들에게 숱하게 먹였던 퇴짜와, 나중에는 그녀 생각에 거꾸로 자기가 먹게 된 퇴짜를 떠올린다. 아무도 그녀를 일으켜 주려 하지 않는다는 세부도 여기에 속하는데, 그녀 스스로 이것을 업신여김을 받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 장바구니는 분석 과정에서 이미 나타난 공상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 공상 속에서 그녀는 자기 신분보다 한참 낮은 사람과 결혼해서 이제는 몸소 장을 보러 다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장바구니는 하인의 표지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 불러낸다. 도둑질을 해서 쫓겨난 요리사의 기억인데, 그 요리사도 무릎을 꿇고 자비를 빌었다. 꿈꾼 사람은 그때 열두 살이었다. 그리고 그 집 마부와 정분이 나서 해고된 하녀에 대한 기억도 있다. 덧붙이자면 그 마부는 나중에 하녀와 결혼했다. 그러니 이 기억은 꿈속의 마부들(그들은 실제와는 반대로 타락한 여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을 푸는 실마리를 준다. 그러나 바구니를 던지는 것, 그것도 창문으로 던지는 것은 아직 설명해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그녀를 철도로 짐을 부치는 일로, 시골의 Fensterln6으로, 그리고 어느 시골 휴양지에서 받은 사소한 인상들로 이끈다. 한 신사가 어떤 부인에게 창문으로 푸른 자두 몇 알을 던져 준 일, 그리고 지나가던 크레틴병 환자가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 바람에 꿈꾼 사람의 어린 여동생이 겁에 질린 일이다. 그리고 이제 그 뒤에서 열 살 때의 흐릿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시골 휴양지에서 그 집 하인과 정분이 난 유모의 기억인데, 아이는 그 일을 얼마간 엿볼 기회가 있었고, 유모는 「fired」〔해고〕 당했다(밖으로 내던져졌다)(꿈에서는 그 반대로 「안으로 던져졌다」). 우리가 다른 여러 길로도 다가간 적이 있는 이야기다. 게다가 빈에서는 짐, 곧 하인의 트렁크를 낮잡아 「자두 일곱 알」이라고 부른다. 「네 자두 일곱 알 챙겨서 나가!」
물론 내가 모은 자료에는 이런 환자들의 꿈이 넉넉히 들어 있다. 그 꿈들을 분석하면, 흐릿하게만 기억되거나 전혀 기억되지 않으며 흔히 생애 첫 세 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어린 시절의 인상에 이른다. 그러나 이 꿈들에서 꿈 일반에 적용될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다루는 것은 어느 경우에나 신경증 환자, 특히 히스테리 환자이며, 이런 꿈에서 어린 시절 장면이 맡는 역할은 꿈의 본성이 아니라 신경증의 본성에 따라 정해진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뚜렷한 병의 증상이 있어서 하는 것도 아닌 내 꿈의 해석에서도, 나는 그에 못지않게 자주 놀라게 된다. 잠재적 꿈 내용 속에서 뜻밖에 어린 시절의 한 장면에 부딪히고, 한 무리의 꿈 전체가 갑자기 어린 시절 체험에서 끌어낸 결론과 나란히 줄을 맞추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는 이미 들었고, 앞으로도 여러 기회에 더 들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일과 오래 잊혔던 어린 시절의 체험이 함께 꿈의 원천으로 나타나는 내 꿈 몇 가지를 드는 것보다 이 절 전체를 더 알맞게 마무리하는 길은 아마 없을 것이다.
I. 여행을 하고 나서 배고프고 지친 채로 잠자리에 들자 삶의 크나큰 욕구들이 잠 속에서 제 권리를 내세우기 시작하고, 나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꾼다. 나는 밀가루 음식을 주문하러 부엌에 들어간다. 거기에는 세 여자가 서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안주인으로, 경단을 빚기라도 하는 듯 손에 든 무언가를 돌리고 있다. 그녀는 자기가 다 마칠 때까지 내가 기다려야 한다고 대답한다(말로 또렷이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모욕을 느끼며 나가 버린다. 나는 외투를 입는다. 그런데 처음 걸쳐 본 외투는 너무 길다. 나는 그것을 벗고는, 거기에 모피 장식이 달려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란다. 두 번째 외투에는 터키풍 무늬가 든 기다란 천 띠가 꿰매어 붙어 있다. 긴 얼굴에 짧고 뾰족한 턱수염을 기른 낯선 남자가 다가와, 그 외투는 자기 것이라고 단언하며 내가 입지 못하게 막는다. 이제 나는 그에게 외투 전체에 터키식으로 수가 놓여 있는 것을 보여 준다. 그가 묻는다. 「터키 것(무늬, 천 띠……)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오?」 그러나 우리는 곧 서로 꽤 친해진다.
이 꿈을 분석하다 보니 아주 뜻밖에도 소설 한 편이 떠오른다. 내가 열세 살쯤에 읽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1권 끝부분부터 읽기 시작한 소설이다. 그 소설의 제목도 작가의 이름도 끝내 알지 못했지만, 결말만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주인공은 광기에 사로잡혀, 살아오는 동안 그에게 가장 큰 행운과 불운을 뜻했던 세 여자의 이름을 쉴 새 없이 부른다. 펠라지가 그 이름 가운데 하나다. 이 이름을 분석에서 어떻게 보아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세 여자와 관련해서는 이제 인간의 운명을 잣는 세 파르카이가 떠오르고, 나는 세 여자 가운데 한 사람, 곧 꿈속의 안주인이 생명을 주는 어머니이며, 게다가 내 경우가 그랬듯이 살아 있는 존재에게 첫 양식을 주는 어머니임을 안다. 사랑과 굶주림은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만난다. 어떤 일화가 전하기로, 여성의 아름다움을 열렬히 찬미하게 된 한 젊은이는 어릴 적 자기에게 젖을 먹여 키운 아름다운 유모 이야기가 나오자, 그때 기회를 더 잘 이용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나는 정신신경증의 기제에서 사후성이라는 요인을 설명할 때 이 일화를 즐겨 든다……. 그러니까 파르카이 가운데 하나는 경단을 빚기라도 하는 듯 두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고 있다. 운명의 여신이 하기에는 참으로 기이한 일이니, 설명이 꼭 필요하다! 그 설명은 이제 또 다른, 더 이른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섯 살 때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받던 무렵, 나는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믿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나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의심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두 손바닥을 맞대고 비볐고 ― 경단을 빚을 때와 똑같았지만 손바닥 사이에 반죽이 없었을 뿐이다 ― 그렇게 비벼서 떨어져 나온 거무스름한 표피 부스러기를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증거로 내게 보여 주었다. 눈앞에서 보여 준 이 증명에 나는 한없이 놀랐고, 훗날 「그대는 자연에 죽음 하나를 빚지고 있다」라는 말로 듣게 될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였다.7 그러니 그 여자들은 정말로 파르카이이고, 나는 어린 시절 배가 고플 때면 그토록 자주 그랬듯이 부엌으로 그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점심이 다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이르곤 했다. 그러면 이제 경단 차례다! 적어도 대학 시절 내 스승 가운데 한 분, 내가 조직학 지식(표피)을 빚지고 있는 바로 그분이라면 크뇌들(독일어 Knoedel은 경단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에서, 자기 저술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고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표절을 저지르는 것, 곧 남의 것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제 것으로 삼는 것은 분명히 꿈의 둘째 부분으로 이어진다. 거기서 나는 한동안 강의실을 무대로 솜씨를 부리던 어떤 외투 도둑 취급을 받는다. 나는 표절이라는 표현을 ― 아무 까닭 없이 ― 그저 떠올랐기에 적어 두었는데, 이제 보니 그것은 잠재적 꿈 내용에 속하는 것이 틀림없다. 외현적 꿈 내용의 여러 부분 사이에 다리 노릇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펠라지〔Pélagie〕 ― 표절〔plagiarism〕 ― plagiostomi8(상어) ― 부레로 이어지는 연상의 사슬은 옛 소설을 크뇌들 사건과, 또 외투들(독일어 Überzieher는 위에 덧씌우는 것, 곧 외투 또는 콘돔이라는 뜻)과 이어 주는데, 이 외투들은 분명히 성생활의 기술에 속하는 물건을 가리킨다.9 물론 이것은 몹시 억지스럽고 비합리적인 연결이다. 그러나 꿈 작업이 이미 이어 놓지 않았더라면 깨어 있는 생활에서 내가 결코 이어 낼 수 없었을 연결이기도 하다. 실로 연결을 억지로 지어내려는 이 충동에는 신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 이제 그리운 이름 브뤼케(낱말의 다리, 위를 보라)는 내가 학생 시절 아무 근심 없이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연구소를 떠올리게 하는데(「그러면 그대는 앎의 젖가슴에서 날마다 한없이 더 큰 기쁨을 얻으리라」), 이것은 꿈꾸는 동안 나를 괴롭히는 절박한 욕망과 더없이 완벽한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이름이 역시 먹을 것처럼 들리는 또 한 분의 소중한 스승(플라이슐 ― 독일어 Fleisch는 고기라는 뜻 ― 크뇌들처럼)에 대한 기억, 그리고 표피 부스러기(어머니 ― 안주인)와 광기(소설)와, 배고픔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라틴 부엌의 약, 곧 코카인이 한몫을 하는 애처로운 장면에 대한 기억이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얽히고설킨 생각의 흐름을 더 멀리 따라가, 분석에서 빠져 있는 꿈 부분까지 남김없이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자면 치러야 할 개인적 희생이 너무 크니 그만두어야겠다. 실마리 가운데 한 가닥만 집어 들겠다. 그 한 가닥이 이 혼란의 밑바닥에 놓인 꿈 사고로 우리를 곧장 이끌어 줄 것이다. 내가 외투를 입지 못하게 막으려는, 긴 얼굴에 뾰족한 턱수염을 기른 그 낯선 남자는 스팔라토에 있던 한 상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내는 그 상인에게서 터키 천을 넉넉히 사들였다. 그의 이름은 포포비치였는데, 수상쩍은 이름이다. 덧붙이자면 유머 작가 슈테텐하임은 이 이름 덕분에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내게 이름을 대더니 얼굴을 붉히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10 게다가 여기에도 앞에서 펠라지, 크뇌들, 브뤼케, 플라이슐에게 한 것과 똑같은 이름 남용이 있다. 이런 이름 놀이가 유치하고 무의미한 짓이라는 것은 반박당할 걱정 없이 단언할 수 있다. 내가 거기에 빠져든다면 그것은 일종의 보복 행위에 해당한다. 내 이름이야말로 이런 얼빠진 익살의 제물이 된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괴테는 언젠가, 사람은 자기 이름을 피부처럼 자기와 함께 자라난 것으로 느끼기에 이름에 몹시 예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헤르더는 괴테의 이름을 두고 다음과 같은 시구를 지었다.
「gods〔신들〕에게서, Goths〔고트족〕에게서, 아니면 Kot(진흙)에게서 태어난 그대여 ―」
「그대의 godlike〔신 같은〕 형상들 또한 먼지로다.」
이름 남용을 두고 이렇게 곁길로 샌 것은 이 하소연을 준비하려는 것이었을 뿐임을 나는 깨닫는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자……. 스팔라토에서 물건을 산 일은 카타로에서 있었던 또 한 번의 장보기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나는 너무 조심스러웠던 탓에 탐나는 물건을 손에 넣을 기회를 놓쳤다. (유모의 젖가슴에서 기회를 놓친 일, 위를 보라.) 배고픔의 감각 때문에 꿈꾼 사람에게 생겨난 또 하나의 꿈 사고는 이렇다.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빠져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 조금 잘못을 저지르게 되더라도. 어떤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된다, 인생은 그토록 짧고 죽음은 피할 수 없으니. 이 생각에는 성적인 의미도 있고 욕망은 잘못 앞에서 멈추려 하지 않으므로, 이 carpe diem〔오늘을 붙잡아라〕의 철학은 검열을 두려워해 꿈 뒤에 숨을 수밖에 없다. 이제 이것은 온갖 반대 사고를, 곧 꿈꾼 사람에게 정신의 양식만으로 충분했던 시절의 기억을 말로 드러내게 하고, 온갖 억압을 암시하며, 역겨운 성적 처벌의 위협까지 내비친다.
II. 두 번째 꿈은 좀 더 긴 예비 설명이 필요하다.
아우스제로 휴가 여행을 떠나려고 나는 차를 타고 서부역으로 가는데, 먼저 출발하는 이슐행 열차 시간에 늦지 않게 역에 닿는다. 거기서 나는 툰 백작을 보는데, 그는 또다시 이슐로 황제를 알현하러 가는 길이다. 비가 오는데도 그는 지붕 없는 마차를 타고 와서는 곧장 근교 열차용 출입구로 빠져나갔고,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표를 받으려는 개찰원을 손을 살짝 저어 물리쳤다. 이슐행 열차가 떠나자 나는 승강장에서 나가 더운 대합실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지만, 간신히 그대로 남아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 낸다. 나는 뇌물을 써서 객실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내 권리를 주장하기로, 곧 나도 같은 특권을 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는 동안 나는 혼자 무언가를 흥얼거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아리아다.
「백작 나리께서 춤을 한번 춰 보시겠다면,」
「춤을 한번,」
「말씀만 하시라지,」
「내가 한 곡 연주해 드리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노래를 알아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후 내내 나는 건방지고 시비를 걸고 싶은 기분이었다. 웨이터와 삯마차 마부에게도 거칠게 말했는데,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기를 바란다. 이제 온갖 대담하고 혁명적인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르는데, 피가로의 대사와, 내가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본 보마르셰의 희극에 어울리는 생각들이다. 태어나는 수고를 한 위인들에 관한 대사. 알마비바 백작이 수전에게 행사하려 드는 귀족의 특권. 우리의 짓궂은 야당 기자들이 툰 백작(독일어 thun은 「하다」라는 뜻)의 이름을 두고 그를 Count Do-Nothing〔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작〕이라고 부르며 하는 농담. 나는 그가 조금도 부럽지 않다. 그는 이제 황제 앞에서 어려운 임무를 치러야 하지만, 나는 휴가를 떠나는 참이니 진짜 Count Do-Nothing은 바로 나다. 이와 함께 휴가를 위한 온갖 즐거운 계획들. 이제 한 신사가 도착하는데, 내가 알기로 그는 의사 시험에 정부 대표로 나오는 사람이며, 그 자격으로 벌인 활동 덕분에 「정부의 동침자」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는 관직을 내세워 일등 객실 반 칸을 얻어 내고, 나는 승무원 하나가 다른 승무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일등 반 칸짜리 양반은 어디다 모시지?」 참 기막힌 특혜다. 나는 일등 객실 한 칸 값을 고스란히 내고 있는데. 이제 나는 객실 한 칸을 통째로 얻지만, 통로가 있는 객차가 아니어서 밤새 쓸 수 있는 화장실이 없다. 승무원에게 불평해 보지만 소용이 없다. 나는 분풀이 삼아, 승객들이 혹시 급할 때를 위해 이 객실 바닥에 구멍이라도 하나 뚫어 두라고 제안한다. 나는 새벽 3시 15분 전에 요의를 느끼며 실제로 깨어나는데, 그 전에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사람들의 무리, 학생 집회……. 어떤 백작(툰 아니면 타페)이 연설을 하고 있다. 독일인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그는 경멸 어린 표정으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관동화라고 단언하고는, 찢어진 잎사귀 같은 것, 실은 구겨진 채 잎맥만 남은 잎을 단춧구멍에 꽂는다. 나는 벌떡 일어선다, 그러니까 나는 벌떡 일어선다,11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에 놀란다. 이어서 더 흐릿하게: 현관 홀(Aula)인 것 같고, 출구들이 꽉 막혀 있어 마치 도망쳐야 할 것만 같다. 나는 호화롭게 꾸며진, 줄지어 이어진 방들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관청의 방들인 듯하고, 가구는 갈색과 보라색 사이의 빛깔이다. 마침내 나는 한 통로에 이르는데, 거기에 가정부 하나, 나이 들고 뚱뚱한 여자(Frauenzimmer)가 앉아 있다. 나는 그녀와 말을 섞지 않으려 하지만, 그녀는 내게 통과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등불을 들고 나를 따라가 줄지 묻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계단에 그대로 서 있으라고 알리는 신호를 보내는데, 이렇게 해서 마침내 감시를 피했으니 나 자신이 무척 영리해 보인다. 이제 나는 아래층에 있고, 좁고 가파른 길을 찾아내 그 길을 따라간다.
다시 흐릿하게……. 마치 앞서 할 일이 집에서 빠져나가는 것이었듯이, 두 번째 할 일은 도시를 벗어나는 것인 듯하다. 나는 말 한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며, 마부에게 기차역으로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 내가 자기를 지치게 했다며 마부가 이의를 달자, 나는 「선로 위로는 자네와 함께 타고 갈 수 없네」 하고 말한다. 이때 나는 보통은 철도로 다니는 길을 이미 그와 함께 달려온 것 같다. 역들이 붐빈다. 나는 크렘스로 갈지 츠나임으로 갈지 궁리하지만, 거기에는 궁정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라츠나 그 비슷한 곳으로 가기로 한다. 이제 나는 전차 같은 객차에 앉아 있고, 단춧구멍에는 길게 땋은 것을 꽂고 있는데, 거기에 뻣뻣한 천으로 된 보랏빛 갈색 제비꽃들이 달려 있어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 여기서 장면이 끊긴다.
나는 다시 기차역 앞에 있는데, 이번에는 나이 든 신사와 함께다. 나는 남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할 계책을 궁리해 내는데, 이 계획이 이미 실행된 것도 본다. 생각하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여기서 말하자면 같은 것이다. 그는 눈이 먼 척을 한다, 적어도 한쪽 눈이. 그리고 나는 그의 앞에 남자용 소변기를 받쳐 든다(우리가 시내에서 사야 했거나 샀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간병인이고, 그가 눈이 멀었으니 그에게 소변기를 건네야 한다. 차장이 이런 모습의 우리를 본다면, 티 내지 않고 우리를 지나쳐 가야 한다. 그와 동시에 앞서 말한 사람의 자세가 시각적으로 관찰된다. 그러고 나서 나는 요의를 느끼며 깨어난다.
꿈 전체가 일종의 공상처럼 보인다. 이 공상은 꿈꾼 사람을 혁명의 해 1848년으로 데려간다. 그해의 기억은 50주년을 맞은 1898년에 새로워졌고, 바하우로 짧은 나들이를 가서 엠머스도르프라는 소도시를 알게 된 일로도 새로워졌다. 나는 그곳을 학생 지도자 피슈호프가 잠든 곳으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꿈 내용의 몇몇 특징은 그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어서 생각의 연상은 나를 영국으로, 형의 집으로 이끈다. 형은 테니슨 경의 시 제목을 따서 형수에게 「50년 전」 이야기를 농담 삼아 하곤 했고, 그러면 아이들은 「15년 전」 하고 바로잡곤 했다. 그러나 툰 백작을 본 일이 불러일으킨 생각들에 교묘하게 달라붙은 이 공상은, 뒤에 있는 건물과 유기적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덧붙여 세운 이탈리아 교회의 전면(파사드)과 같을 뿐이다. 다만 그런 전면과 달리 이 공상은 빈틈투성이에 뒤죽박죽이어서, 안쪽의 부분들이 여러 군데에서 뚫고 나온다. 꿈의 첫 상황은 여러 장면을 버무려 지어낸 것이어서, 나는 그것을 그 장면들로 갈라낼 수 있다. 꿈속 백작의 오만한 태도는 내가 열다섯 살 때 김나지움에서 있었던 한 장면을 베낀 것이다. 우리는 인기 없고 무식한 교사 하나를 겨냥해 음모를 꾸몄는데, 그 주동자는 영국의 헨리 8세를 본보기로 삼은 듯한 동급생이었다. 쿠데타를 실행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고, 도나우강(독일어로는 Donau)이 오스트리아에 얼마나 중요한가(바하우!)를 두고 벌어진 토론이 일을 공공연한 분노로 번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공모자 하나는 우리에게 단 하나뿐이던 귀족 출신 동급생이었는데 ― 유난히 길쭉하게 자란 몸 때문에 「기린」이라고 불렸다 ― 학교의 폭군인 독일어 교수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그는 꼭 꿈속의 백작처럼 서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꽃에 대한 설명, 그리고 역시 꽃이었음이 틀림없는 무언가를 단춧구멍에 꽂는 일은(이것은 내가 같은 날 한 여자 친구에게 가져다준 난초와, 그 밖에 여리고의 장미를 생각나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에서 붉은 장미와 흰 장미의 내전을 여는 장면을 두드러지게 떠올리게 한다. 헨리 8세를 언급한 것이 이 회상으로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이제 장미에서 붉은 카네이션과 흰 카네이션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그러는 사이 짧은 노래 두 편이 분석 속으로 슬며시 끼어드는데, 하나는 독일어, 다른 하나는 스페인어로 된 노래다. 「장미, 튤립, 카네이션, 꽃은 모두 시든다」와 「Isabelita, no llores que se marchitan las flores」〔이사벨리타, 울지 마라, 꽃이 시드니〕. 스페인어 노래는 『피가로의 결혼』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 빈에서는 흰 카네이션이 반유대주의자들의 표지가 되었고, 붉은 카네이션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표지가 되었다. 그 뒤에는 아름다운 작센(앵글로색슨)을 기차로 여행하다가 반유대주의적인 도발을 당한 기억이 있다. 꿈의 첫 상황이 만들어지는 데 한몫한 셋째 장면은 내 대학 초년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독일 학생 모임에서 철학과 일반 과학의 관계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유물론 학설에 한껏 물든 풋내기였던 나는 앞으로 나서서 몹시 일방적인 견해를 옹호했다. 그러자 명민한 선배 하나가 일어나 우리를 호되게 꾸짖었다. 그는 그 뒤로 사람들을 이끌고 대중을 조직하는 능력을 보여 주었고, 게다가 동물계에 속하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그의 말인즉, 자기도 젊었을 때 돼지를 쳤지만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꿈에서처럼) 벌떡 일어섰고, 몹시 무례해져서는, 그가 돼지를 쳤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의 말투가 놀랍지 않다고 대꾸했다. (꿈에서 나는 나의 독일 민족 감정에 놀란다.) 큰 소동이 벌어졌고 사방에서 내 말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쏟아졌지만, 나는 꿋꿋이 버텼다. 모욕당한 사람은 결투를 신청하라는 주위의 권고를 따르기에는 너무 분별 있는 사람이어서, 일을 그냥 덮어 두었다.
꿈에서 이 장면의 나머지 요소들은 더 먼 데서 왔다. 백작이 관동화를 내세우는 것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나는 내 연상의 흐름에 물어보아야 한다. 관동화(독일어로는 Huflattich) ― lattice〔격자〕 ― lettuce〔상추〕 ― 샐러드 개(자기가 먹지 못하는 것을 남도 먹지 못하게 하는 개). 여기에는 욕설이 잔뜩 숨어 있다. Gir-affe〔기린〕(독일어 Affe는 원숭이, 유인원이라는 뜻), 돼지, 암퇘지, 개. 어떤 이름을 거쳐 에둘러 가면 당나귀에 이를 방도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다시 한 대학 교사에 대한 경멸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나는 관동화(Huflattich)를 ―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 「pisse-en-lit」〔잠자리에 오줌 싸기. 민들레를 가리키는 프랑스어〕로 옮긴다. 이 생각은 졸라의 『제르미날(Germinal)』에서 얻었는데, 거기서 아이들은 이런 샐러드를 가져오라는 분부를 받는다. 개, 곧 chien은 그 이름이 큰일을 가리키는 말과 소리가 비슷하다(chier〔똥 누다〕. pisser〔오줌 누다〕가 작은일을 가리키듯이). 이제 곧 우리는 점잖지 못한 것을 그 세 범주 모두 눈앞에 두게 될 것이다. 앞으로 올 혁명과 깊은 관계가 있는 바로 그 『제르미날』에는 기체 배설물, 곧 flatus〔방귀〕를 내뿜는 데 달린 아주 기이한 시합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12 그리고 이제 나는 이 flatus로 가는 길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닦이고 있었는지를 짚어 두어야겠다. 길은 꽃에서 시작해 이사벨리타의 스페인 노래를 지나 페르난도와 이사벨에 이르고, 헨리 8세를 거쳐 무적함대가 영국을 치러 원정하던 시대의 영국 역사에 이른다. 그 원정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자 영국인들은 「Afflavit et dissipati sunt」〔그분이 바람을 부시니 그들이 흩어졌다〕라는 글귀를 새긴 메달을 만들었다. 폭풍이 스페인 함대를 흩어 버렸기 때문이다. 언젠가 히스테리에 대한 나의 견해와 치료를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이 문구를 ― 반쯤은 농담으로 ― 「치료법」 장의 제목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꿈의 둘째 장면은 검열을 생각해 이처럼 자세히 풀어 보일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저 혁명기의 어느 저명한 신사의 자리에 나 자신을 놓기 때문이다. 그 신사 역시 독수리와 얽힌 모험을 겪었고, 변실금을 앓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인물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들의 대부분을 내게 들려준 사람이 궁정 고문관(aula〔궁정, 넓은 홀〕, consilarius aulicus〔궁정 고문관〕)이기는 했지만, 나는 검열을 이 대목에서 통과할 정당한 권리가 없으리라고 믿는다. 꿈에 나오는 줄지어 이어진 방들은 각하의 전용 객차를 가리키는데, 나는 그 안을 잠깐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방들은 꿈에서 흔히 그렇듯 여자를 뜻한다(Frauenzimmer. 독일어에서는 약간의 경멸을 담으려고 Frauen, 곧 여자에 Zimmer, 곧 방을 덧붙인다).13 가정부라는 인물로써 나는, 그 집에서 누린 환대와 숱한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해 어느 총명한 노부인에게 박한 보답을 하고 있다……. 등불이라는 특징은 그릴파르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와 비슷한 성격의 매력적인 체험을 적어 두었다가 나중에 『헤로와 레안더〔Hero and Leander〕』(바다의 물결과 사랑의 물결 ― 무적함대와 폭풍)에 활용했다.14
꿈의 남은 두 부분도 자세히 분석하는 일은 단념해야겠다. 두 개의 어린 시절 장면으로 이어지는 요소들만 골라내겠다. 내가 이 꿈을 다룬 것은 오로지 그 장면들 때문이다. 독자는 내가 이렇게 덮어 둘 수밖에 없는 것이 성적인 재료 때문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에 만족할 필요는 없다. 남들 앞에서는 비밀로 다루어야 하는 많은 것도 자기 자신에게는 비밀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해답을 숨기도록 만드는 배려가 아니라, 꿈의 진짜 내용을 나 자신에게 감추는, 내면의 검열이 품은 동기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되겠다. 분석해 보면 꿈의 이 세 부분은 주제넘은 허풍이다. 깨어 있는 생활에서는 오래전에 억제된 부조리한 과대 관념이 넘쳐흐른 것인데, 이 관념은 한두 군데 삐져나온 곳(나 자신이 영리하게 여겨진다)을 통해 외현적 꿈 내용에 감히 모습을 드러내며, 꿈 전날 저녁의 오만한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실로 모든 방면에 걸친 허풍이다. 이를테면 그라츠가 언급된 것은 돈이 남아돈다고 느낄 때 우리가 즐겨 쓰는 말, 그라츠는 값이 얼마냐는 말을 가리킨다. 라블레 선생이 『가르강튀아와 그 아들 팡타그뤼엘의 생애와 업적』을 비길 데 없이 그려 낸 것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꿈의 첫 부분에 암시된 허풍의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약속한 두 어린 시절 장면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새 트렁크를 샀는데, 그 빛깔인 갈색을 띤 보라가 꿈에 여러 번 나온다. (「아가씨 잡이」라고 불리는 물건 옆의, 뻣뻣한 천으로 만든 보랏빛 갈색 제비꽃 ― 관청의 방들에 있던 가구.) 새것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는 것은 아이들이 흔히 믿는 바다. 그런데 나는 내 어린 시절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일 자체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을 기억한다. 듣자니 나는 두 살 때에도 이따금 잠자리에 오줌을 쌌고, 그 일로 자주 꾸지람을 들었는데, 그럴 때면 N.(가장 가까운 큰 도시)에서 아름다운 빨간 새 침대를 사 드리겠다고 약속하며 아버지를 달랬다고 한다. (그래서 꿈에 우리가 소변기를 시내에서 샀거나 사야 했다는 세부가 끼어든 것이다. 약속은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나아가 남자용 소변기와 여성적인 트렁크, 곧 상자〔box〕가 같다는 점에도 주의를 돌려 둔다.) 아이의 과대망상이 이 약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에게서 배뇨 곤란 꿈이 지니는 의미는 앞서 어떤 꿈을 해석하면서 이미 살펴보았다(원서 145쪽의 꿈 참조).15
그런데 일곱 살인가 여덟 살 때 집에서 또 한 가지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 일을 아주 잘 기억한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부모님 침실에서 그것도 부모님이 보는 앞에서 볼일을 보지 말라는, 조심성이 명하는 바를 무시했고, 이 비행을 꾸짖으며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저 녀석은 절대 아무것도 못 될 거야.」 이 말은 내 공명심에 지독한 굴욕을 안겼음이 틀림없다. 이 장면에 대한 암시가 내 꿈에 거듭거듭 되돌아오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내 업적과 성공을 늘어놓는 일과 짝을 이루기 때문이다. 마치 「보세요, 저도 결국 뭔가가 되었잖아요」 하고 말하고 싶다는 듯이. 그런데 이 어린 시절 장면이 꿈의 마지막 이미지에 요소들을 대 준다. 물론 거기서는 앙갚음을 위해 역할이 뒤바뀌어 있다. 나이 든 남자는 분명히 내 아버지인데 ― 한쪽 눈이 먼 것은 아버지의 한쪽 눈 녹내장16을 뜻하기 때문이다 ― 이제 그가 내 앞에서 소변을 본다. 예전에 내가 그 앞에서 소변을 보았듯이. 녹내장으로 나는 코카인을 가리킨다. 코카인은 아버지가 수술을 받을 때 톡톡히 도움이 되었으니, 마치 내가 그로써 약속을 지킨 것 같다. 그 밖에도 나는 아버지를 놀려 댄다. 그가 눈이 멀었으니 나는 그의 앞에 소변기를 받쳐 들어야 하고, 내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히스테리 이론의 발견들을 넌지시 내비치며 고소해한다.17
소변을 보는 두 어린 시절 장면은 그렇지 않아도 위대해지려는 욕망과 긴밀하게 이어져 있지만, 아우스제로 가는 여행길에서 그 장면들이 되살아나는 데에는 우연한 사정이 더 거들었다. 내 객실에는 변소가 없었고, 그래서 가는 동안 곤란한 일을 겪으리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실제로 아침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나는 몸의 욕구를 느끼며 깨어났다. 이 감각들이 꿈의 실제 자극이었다고 여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견해를 택하고 싶다. 곧, 요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꿈 사고였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욕구 때문에 잠을 방해받는 일이 무척 드물다. 적어도 이번에 깬 시각인 새벽 4시 15분 전에는 그렇다. 더 편안한 조건에서 한 다른 여행에서는 일찍 깬 뒤에 요의를 느낀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해 두면, 반론 하나를 더 미리 막을 수 있겠다. 게다가 이 점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남겨 두어도 내 논증에 해가 되지 않는다.
나아가 나는 꿈 분석의 경험에서, 처음에는 해석이 완결된 듯 보이는 꿈에서도(꿈의 원천과 소원의 발동을 쉽게 입증할 수 있으므로) 가장 이른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중요한 생각의 흐름이 언제나 남아 있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이런 특징이 꿈꾸기의 본질적인 조건을 이루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 명제를 일반화한다면, 모든 꿈의 외현 내용에는 최근에 체험한 것과의 연결이, 그 잠재 내용에는 가장 먼 옛날에 체험한 것과의 연결이 한 부분을 이룰 것이다. 그리고 나는 히스테리 분석에서 이 먼 체험들이 참된 의미에서 오늘날까지 최근의 것으로 남아 있음을 실제로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추측은 아직 증명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가장 이른 어린 시절의 체험이 하는 역할에 대해서는 아마 다른 맥락에서(7장) 다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처음에 살펴본 꿈 기억의 세 가지 특성 가운데 하나, 곧 꿈 내용이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는 특성은 꿈 왜곡으로 거슬러 올라가 만족스럽게 설명되었다. 나머지 두 특성, 곧 최근의 재료와 유년기의 재료를 고른다는 특성은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꿈의 동기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직 설명하거나 평가해야 할 이 두 특징을 기억해 두자. 이것들이 들어설 자리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수면 상태의 심리학에서든, 아니면 나중에 착수할 심리 장치의 구조에 관한 논의에서든 말이다. 그 논의는 꿈 해석으로 마치 창문을 들여다보듯 이 장치의 내부 본성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 하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최근 몇 개의 꿈 분석이 낳은 또 하나의 결과를 강조해 두고 싶다. 꿈은 흔히 여러 뜻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예들이 보여 주듯 여러 소원 성취가 한 꿈에 합쳐질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의미나 한 소원 성취가 다른 의미나 소원 성취를 감출 수도 있어서, 마침내 맨 밑바닥에 이르면 가장 이른 어린 시절의 소원 성취와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도 이 문장의 「흔히」를 「어김없이」로 바꾸는 편이 더 정확하지 않은지 물어볼 수 있다.
주
1. 프라터는 빈의 으뜸가는 마차 산책로다. ― 영역자 브릴의 주.
2. 영역본은 municipal ministry(시 행정부)라 했으나, 여기 이름이 나오는 이들은 1867~1870년 오스트리아의 이른바 시민 내각(Bürgerministerium) 각료였다. ― 옮긴이.
3. 그처럼 이룰 수 없어 보이는 소원도 이루는 데는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4. 초판에는 여기에 하스드루발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당혹스러운 오류인데, 그에 대한 설명은 나의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에서 했다.
5. 빈의 한 거리. ― 영역자 브릴의 주.
6. Fensterln은 독일 슈바르츠발트의 시골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이제는 사라져 가는 풍습이다. 구애하는 젊은이들이 사다리를 들고 와서 애인의 창가에서 사랑을 구하는데, 사실상 일종의 시험 결혼 제도를 누린다고 할 만큼 가까워진다. 젊은 여자의 평판은 fensterln 때문에 손상되는 일이 결코 없다. 너무 많은 구혼자와 가까워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영역자 브릴의 주.
7. 이 어린 시절 장면들에 속하는 두 정동, 곧 놀라움과 피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은 얼마 전에 꾼 꿈에 나타났는데, 이 어린 시절 체험의 기억을 처음으로 되살려 낸 것이 바로 그 꿈이었다.
8. plagiostomi는 일부러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그 스승 앞에서 분하게 망신당한 일을 떠올리게 한다.
9. 1장 (마)에 나온 모리의 킬로-로토 꿈 참조.
10. Popo는 독일어 유아어로 엉덩이를 뜻한다. ― 영역자 브릴의 주.
11. 이 되풀이는 아마 내가 방심한 탓에 꿈 본문에 슬며시 끼어든 것 같은데, 분석해 보니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므로 그대로 둔다.
12. 『제르미날』이 아니라 『대지(La Terre)』다. 분석하는 중에야 알아차린 착오다. Huflattich와 Flatus의 글자가 같다는 점에도 주의를 돌려 두고 싶다.
13. 앞의 괄호 풀이는 영역자가 넣은 것이다. ― 영역자 브릴의 주.
14. H. 질베러는 의미 있는 논문(「환상과 신화(Phantasie und Mythos)」, 『연보』 제2권, 1910)에서 꿈의 이 부분을 근거로, 꿈 작업이 잠재적 꿈 사고뿐 아니라 꿈 형성의 심리적 과정까지 재현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했다(「기능적 현상(Das functionale Phänomen)」).
15. 영역본의 이 쪽에는 이 설명에 맞는 꿈이 없어, 가리키는 꿈을 확인하지 못했다. ― 옮긴이.
16. 또 다른 해석. 그는 신들의 아버지 오딘처럼 외눈이다…… 오딘의 위안. 새 침대를 사 드리겠다는 어린 시절 장면의 위안.
17. 여기에 해석을 위한 재료를 조금 덧붙인다. 소변기를 받쳐 드는 일은 안경점에서 안경 유리를 하나하나 대어 보지만 여전히 글을 읽지 못하는 농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농부 잡이. 꿈의 한 부분에 나오는 아가씨 잡이처럼). 졸라의 『대지』에서 노망든 아버지가 농부들 사이에서 받는 대우. 아버지가 말년에 아이처럼 잠자리를 더럽힌다는 애처로운 속죄. 꿈에서 내가 그의 간병인인 것도 그래서다. 생각하는 것과 체험하는 것이 여기서는 말하자면 같은 것이라는 대목은, 오스카어 파니차가 쓴 몹시 혁명적인 레제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하느님은 마치 중풍 든 노인이라도 되는 듯 몹시 경멸스럽게 다루어진다. 이런 대목이 있다. 「그에게는 의지와 행위가 같은 것이어서, 일종의 가니메데스인 그의 대천사가 그가 꾸짖고 욕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 저주가 곧바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비난인데, 내 비판 능력이 발달하던 좀 더 나중 시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높은 권위를 비웃는, 반역적이고 군주를 모독하는 이 꿈 전체가 아버지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하듯이 말이다. 군주는 나라의 아버지(Landesvater)라고 불리며, 아버지는 아이에게 가장 오래되고 첫째가는 유일한 권위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다른 사회적 권위들은 이 권위의 절대 권력에서 발전해 나왔다(「모권」이 이 명제에 단서를 달게 만들지 않는 한에서). 꿈속의 생각 「생각하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는 히스테리 증상의 설명을 가리키며, 남자용 소변기(유리)도 거기에 관계가 있다. 빈 사람에게 「Gschnas」의 원리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하찮은 것, 되도록이면 우스꽝스럽고 쓸모없는 재료로 진귀하고 값비싸 보이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데 있다. 이를테면 우리 예술가들이 흥겨운 파티에서 즐겨 하듯, 부엌 살림살이와 막대기와 「salzstangeln」(길쭉한 롤빵)으로 갑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히스테리 환자들도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실제로 겪은 일 말고도, 자기가 체험한 더없이 무해하고 평범한 것들로 무시무시하거나 터무니없는 공상적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지어낸다. 증상은 오로지 이 공상에 달려 있지, 심각한 것이든 무해한 것이든 실제 체험의 기억에 달려 있지 않다. 이 설명은 내가 많은 어려움을 이겨 내도록 도와주었고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내가 꿈 요소 「남자용 소변기」(유리)로 그것을 암시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번 「Gschnas」 저녁 모임에 루크레치아 보르자의 독배가 전시되었는데 그 주된 재료가 병원에서 쓰는 것 같은 남자용 유리 소변기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