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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제5장 꿈의 재료와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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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꿈의 재료와 원천

이르마의 주사 꿈을 분석하여 꿈은 소원 성취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우리의 관심은 이로써 꿈의 보편적 특성을 찾아낸 것인지 확인하는 쪽으로 옮겨 갔고, 그 해석 과정에서 떠올랐을지 모르는 다른 물음은 모두 당분간 제쳐 두었다. 이제 이 길들 가운데 하나에서 목표에 이르렀으니, 되돌아가서 꿈의 문제들 사이를 누비는 탐사의 새 출발점을 골라도 좋을 것이다. 아직 결코 남김없이 다루었다고 할 수 없는 소원 성취라는 주제를 한동안 시야에서 놓치게 되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해석 절차를 적용하여, 의미로 보면 외현적 꿈 내용을 훨씬 능가하는 잠재적 꿈 내용을 찾아낼 수 있게 된 지금, 우리는 개별적인 꿈 문제들을 새로 붙들어 보고 싶어진다. 외현 내용만 가지고 있을 때는 손이 닿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수수께끼와 모순들이 이제는 만족스럽게 풀리지 않을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꿈과 깨어 있는 생활의 관계에 관한 저자들의 진술과, 꿈 재료의 원천에 관한 진술은 1장에서 자세히 소개했다. 꿈속 기억에는 자주 지적되었지만 한 번도 설명되지 않은 세 가지 특성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1. 꿈은 앞선 며칠 동안의 인상을 뚜렷이 선호한다는 것(로베르트[55], 슈트륌펠[66], 힐데브란트[35], 그리고 위드·핼럼[33]).

2. 꿈은 깨어 있을 때의 기억과는 다른 원칙에 따라 재료를 고른다는 것.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차적이고 눈여겨보지 않은 것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그렇다(1장 (나) 참조).

3. 꿈은 우리 어린 시절의 가장 이른 인상들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이 시기의 세부 가운데 역시 우리에게는 하찮아 보이고 깨어 있을 때는 오래전에 잊혔다고 여겨지던 것까지 끌어낸다는 것.1

꿈 재료를 고르는 데서 보이는 이런 특성들을 저자들은 물론 외현적 꿈 내용에서 관찰했다.

(가) 꿈속의 최근 인상과 사소한 인상

이제 꿈에 나타나는 요소들의 원천에 관해 내 경험에 물어보면, 나는 곧바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꿈에서 가장 최근에 지나간 하루의 체험과 이어지는 무언가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꿈이든 남의 꿈이든 어떤 꿈을 붙들어도 이 경험은 언제나 다시 확인된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대개 꿈을 자극한 전날의 체험부터 알아보는 것으로 해석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사실 많은 경우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2장과 4장에서 자세히 분석한 두 꿈(이르마의 주사 꿈과, 노란 수염을 한 삼촌 꿈)에서는 꿈이 전날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 너무나 뚜렷해서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연관이 규칙적으로 입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내 꿈 일지의 한 대목을 살펴보겠다. 꿈은 문제의 꿈 자극을 찾아내는 데 필요한 만큼만 보고하겠다.

1. 나는 어떤 집을 찾아가는데 간신히 들어가게 되고 운운, 그러는 사이에 한 여자를 기다리게 한다.

원천. ― 저녁에 한 여자 친척과 나눈 대화. 그녀가 청한 어떤 도움은 운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2. 나는 어떤 (불분명한) 식물 종에 관한 연구서를 썼다.

원천. ― 나는 어느 서점 진열창에서 시클라멘속(屬)에 관한 연구서를 보았다.

3. 나는 거리에서 두 여자를 보는데, 어머니와 딸이고, 딸은 내 환자다.

원천. ― 치료 중인 여성 환자 하나가, 자기가 치료를 계속하려는 데 어머니가 얼마나 훼방을 놓는지 내게 이야기했다.

4. 나는 S. & R. 서점에서 한 해에 20플로린 하는 정기 간행물을 구독 신청한다.

원천. ― 낮에 아내가, 내가 자기 한 주 살림돈 가운데 아직 20플로린을 빚지고 있다고 일깨워 주었다.

5. 나는 사회민주당 위원회에서 통지를 받는데, 그 통지는 나를 회원으로 대하고 있다.

원천. ― 나는 자유당 선거위원회와, 내가 실제로 회원으로 있는 박애 협회의 회장에게서 동시에 통지를 받았다.

6. 바다 한가운데의 가파른 바위 위의 한 남자, 뵈클린풍으로.

원천. ― 악마의 섬의 드레퓌스. 동시에 영국에 사는 친척들에게서 온 소식 운운.

꿈은 언제나 전날의 일과 이어져 있는가, 아니면 그 연관이 가까운 과거의 좀 더 긴 기간에서 온 인상에까지 넓혀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아마 이 문제가 으뜸가는 중요성을 내세우지는 못하겠지만, 나는 꿈을 꾸기 바로 전의 하루(꿈 전날)에만 우선권이 있다는 쪽으로 판정하고 싶다. 이삼일 전의 인상이 꿈의 원천이었던 경우를 찾아냈다고 생각할 때마다, 꼼꼼히 조사해 보면 그 인상이 전날 다시 떠올랐다는 것, 곧 사건이 있던 날과 꿈을 꾼 때 사이에 입증할 수 있는 재생이 끼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게다가 옛 인상의 기억이 떠올랐을 법한 최근의 계기까지 짚어 낼 수 있었다. 반면에 꿈을 자극하는 낮의 인상과 그 인상이 꿈에서 되풀이되는 것 사이에 생물학적 의미를 지닌 규칙적인 간격(H. 스보보다는 이런 간격 가운데 첫째 것을 열여덟 시간으로 잡는다)이 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었다.2

그러므로 나는, 모든 꿈의 자극은 아직 하룻밤 「자며 생각해 보지 않은」 체험들 가운데 있다고 본다.

그러니 가까운 과거의 인상들은(꿈을 꾼 밤의 전날은 빼고) 꿈 내용과 맺는 관계에서, 얼마든지 먼 과거의 인상들과 다를 바가 없다. 꿈은 삶의 모든 시기에서 재료를 고를 수 있다. 다만 꿈꾼 날의 체험 가운데 하나(「최근」 인상 가운데 하나)에서 출발한 생각의 사슬이 그 더 이른 인상들까지 거슬러 닿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최근의 인상을 왜 이렇게 선호하는가? 이미 언급한 꿈 가운데 하나를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해 보면 이 점에 관해 몇 가지 추측에 이를 것이다. 연구서 꿈을 골라 보겠다.

꿈 내용. ― 나는 어떤 식물에 관한 연구서를 썼다. 그 책이 내 앞에 놓여 있고, 나는 마침 접힌 채색 도판 한 장을 넘기고 있다. 책마다 그 식물의 말린 표본이 한 점씩 함께 제본되어 있다. 마치 식물 표본집에서 나온 것처럼.

분석. ― 오전에 나는 어느 서점 진열창에서 『시클라멘속(屬)』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았다. 보아하니 이 식물에 관한 연구서였다.

시클라멘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나는 아내가 바라는 대로 꽃을 사다 줄 생각을 좀처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나무란다. 「꽃을 사다 주기」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얼마 전 친구들 모임에서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망각은 아주 흔히 무의식이 의도한 바이며, 어쨌든 잊어버리는 사람의 은밀한 마음가짐을 추론할 근거가 된다는 내 주장을 입증하려고 한 이야기였다. 생일마다 남편에게서 꽃다발을 받아 온 한 젊은 부인이, 그런 축하할 날에 이 애정의 표시를 받지 못하자 울음을 터뜨린다. 남편이 다가오지만, 아내가 「오늘이 내 생일이에요」 하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내가 왜 우는지 알지 못한다. 남편은 이마를 치며 「아니, 까맣게 잊고 있었네」 하고 외치고는 당장 나가서 꽃을 사 오려 한다. 그러나 아내는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다. 남편이 잊었다는 데서, 자기가 남편의 생각 속에서 예전과 같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증거를 보기 때문이다. 이 L. 부인이 이틀 전에 내 아내를 만나, 요즘 잘 지낸다고 말하고 내 안부를 물었다. 그녀는 여러 해 전에 내게 치료를 받았다.

덧붙일 사실들: 나는 실제로 언젠가 식물에 관한 연구서 비슷한 것을 쓴 적이 있다. 코카나무에 관한 논문인데, 이 논문 덕분에 K. 콜러가 코카인의 마취 성질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발표한 글에서 이 알칼로이드를 그렇게 쓸 수 있다고 넌지시 비쳤지만, 그 문제를 더 파고들 만큼 철저하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일이 있다. 꿈을 꾼 다음 날 오전(꿈을 해석할 짬은 저녁이 되어서야 났다)에 나는 일종의 낮의 공상 속에서 코카인을 생각했다. 혹시 내가 녹내장에 걸리기라도 하면 베를린에 가서, 베를린 친구의 집에서 그가 추천해 주는 의사에게 신분을 숨긴 채 수술을 받으리라는 공상이었다. 누구를 수술하는지 모르는 그 외과 의사는, 코카인이 도입된 뒤로 이런 수술이 얼마나 쉬워졌는지 여느 때처럼 자랑할 것이다. 나는 이 발견에 내가 한몫했다는 것을 눈짓 하나로도 내비치지 않으리라. 이 공상에는, 의사가 자기 몸을 위해 동료에게 진료를 청하기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이어져 있었다. 나를 모르는 베를린의 안과 의사에게라면 나도 다른 누구와 마찬가지로 진료비를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백일몽을 떠올리고 나서야 나는 그 뒤에 어떤 구체적인 체험의 기억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콜러의 발견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실제로 녹내장에 걸렸고, 내 친구인 안과 의사 쾨니히슈타인 박사에게 수술을 받았다. 코카인 마취는 콜러 박사가 맡았는데, 그는 그때 코카인 도입에 관여한 세 사람이 이 한 사례에 모두 모였다고 말했다.

이제 이 코카인 일을 마지막으로 떠올린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해 본다. 며칠 전, 기념 논문집 한 권을 받았을 때였다. 고마움을 아는 제자들이 스승이자 실험실 책임자의 기념일을 기려 펴낸 책이었다. 그 실험실과 관계된 사람들의 공적을 꼽는 대목에서, K. 콜러가 그곳에서 코카인의 마취 성질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눈에 띄었다. 이제 문득 이 꿈이 전날 저녁의 한 체험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쾨니히슈타인 박사를 집까지 바래다주면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내 관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문제에 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관에서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게르트너 교수가 젊은 부인과 함께 다가왔다. 나는 두 사람 모두 건강해 보인다고 축하의 말을 건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런데 게르트너 교수는 방금 말한 기념 논문집의 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니, 그 책을 내게 떠올리게 했을 법하다. 마찬가지로, 생일에 실망했다고 앞서 이야기한 L. 부인도 쾨니히슈타인 박사와 나눈 대화에서 언급되었다. 물론 다른 맥락에서이기는 했지만.

이제 꿈 내용의 다른 결정 요인들을 설명해 보겠다. 그 식물의 말린 표본이, 마치 연구서가 식물 표본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구서에 딸려 있다. 식물 표본집에는 김나지움(학교) 시절의 기억 하나가 이어져 있다. 우리 김나지움의 교장이 언젠가 상급반 학생들을 불러 모아 식물 표본집을 살펴보고 손질하게 한 적이 있었다. 작은 벌레들이 나왔던 것이다. 책벌레였다. 교장은 내 도움을 그다지 미덥게 여기지 않았던지 나에게는 겨우 몇 장만 맡겼다. 거기에 십자화과 식물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지금도 안다. 나는 식물학에 큰 흥미를 느낀 적이 없다. 식물학 예비 시험 때 십자화과 식물 하나를 알아맞혀야 했는데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론 지식이 구해 주지 않았다면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십자화과에서 국화과가 떠오른다. 아티초크는 사실 국화과 식물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고 할 만하다. 나보다 마음 씀씀이가 깊은 아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꽃을 시장에서 자주 사 온다.

내가 쓴 연구서가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것도 연관이 없지 않다. 공상 속에 그려 본 그 친구가 어제 베를린에서 편지를 보내왔다. 「자네의 꿈 책 생각을 많이 하네. 그 책이 완성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이 보이고, 나는 그 책장을 넘기고 있네.」 그의 이 예언하는 능력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도 그 책이 이미 완성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만 있다면!

접힌 채색 도판. ― 의과 대학생 시절 나는 오로지 연구서로만 공부하려는 버릇 때문에 꽤 고생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의학 학술지를 여럿 구독했는데, 거기 실린 채색 도판이 큰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이렇게 철저함을 좋아하는 성향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을 때 논문에 실을 도판을 직접 그려야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너무 형편없이 나와서 호의적인 동료 하나에게 놀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여기서, 정확히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언젠가 아버지는 장난삼아 채색 도판이 든 책 한 권(『페르시아 여행기』)을 나와 내 누이동생들 가운데 맏이에게 넘겨주며 마음대로 찢게 했다. 교육적으로는 도무지 정당화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나는 다섯 살, 누이는 세 살이었다. 우리가 더없이 즐겁게 이 책을 갈가리 찢는 광경(덧붙여 두자면, 아티초크처럼 한 잎 한 잎)은 그 나이 때의 일로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그림이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자 나는 책을 모으고 소유하는 데 뚜렷한 애착을 보이게 되었다(연구서로 공부하려는 성향과 닮은 것으로, 꿈 사고에서 시클라멘과 아티초크와 관련해 나타나는 취미다). 나는 책벌레가 되었다(식물 표본집 참조).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김에 말하자면, 나는 내 삶의 이 첫 열정을 언제나 이 어린 시절의 인상으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해 왔다. 아니, 그보다는 이 어린 시절 장면을 훗날 내가 책을 사랑하게 된 데 대한 「은폐 기억」으로 알아보았다.3 물론 나는 우리의 열정이 흔히 우리의 슬픔이 된다는 것도 일찍 깨달았다. 열일곱 살 때 나는 서점에 꽤 큰 외상값을 지고 있었는데 갚을 길이 없었고, 아버지는 내 취향이 그보다 나쁜 데 쏠리지 않았다는 변명을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년 시절의 이 나중 체험을 꺼내고 보니, 곧바로 그날 저녁 친구 쾨니히슈타인 박사와 나눈 대화로 되돌아가게 된다. 꿈 전날 저녁의 그 대화에서, 내가 내 취미에 너무 빠져 있다는 해묵은 비난이 또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할 자리가 아닌 이유로 나는 이 꿈의 해석을 더 이어 가지 않고, 해석으로 가는 길만 가리켜 두겠다. 해석하는 동안 쾨니히슈타인 박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는데, 그것도 한 대목만이 아니었다. 그 대화에서 건드린 주제들을 생각해 보면 꿈의 뜻이 분명해진다. 아내와 나의 취미에 관해, 코카인에 관해, 동료에게 진료를 받기 어렵다는 것에 관해, 연구서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과 식물학 같은 특정 과목을 소홀히 한 것에 관해 떠오른 생각의 연상들, 이 모든 것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그 대화의 어느 한 가지로 이어지고 거기에 맞닿는다. 이 꿈도 처음 분석한 이르마의 주사 꿈처럼 정당화의 성격, 곧 나의 권리를 변호하는 성격을 띤다. 심지어 그 꿈이 꺼낸 주제를 이어 가면서, 두 꿈 사이의 기간에 새로 쌓인 재료를 가지고 그 주제를 논한다. 겉보기에 무덤덤한 꿈의 표현 방식조차 새로운 중요성을 얻는다. 이제 그 뜻은 이렇다. 「나야말로 그 값지고 성공적인 (코카인에 관한) 논문을 쓴 사람이다.」 그때 내가 나를 정당화하려고 「나는 철저하고 부지런한 학생이다」라고 주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두 경우 모두 「나는 그 정도는 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더 해석하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겠다. 내가 이 꿈을 이야기한 목적은 오로지, 꿈 내용이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전날의 체험과 맺는 관계를 살펴보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이 꿈의 외현 내용만 알고 있는 동안에는 낮의 인상과 맺은 관계가 하나만 뚜렷이 드러난다. 해석을 하고 나면 같은 날의 다른 체험에서 꿈의 두 번째 원천이 드러난다. 꿈이 가리키는 이 인상들 가운데 첫째는 사소한 인상, 곧 부차적인 사정이다. 나는 진열창에서 책 한 권을 보는데, 제목이 잠깐 눈길을 붙들 뿐 내용은 내 흥미를 끌 리가 없다. 둘째 체험은 큰 심리적 가치를 지닌다. 나는 친구인 안과 의사와 한 시간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대화에서 우리 두 사람을 모두 깊이 건드렸을 것이 틀림없는 암시를 던졌으며, 그 암시들은 내 속마음의 더없이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기억들을 일깨웠다. 게다가 이 대화는 친구 몇 사람이 끼어드는 바람에 끝을 맺지 못한 채 끊어졌다. 그렇다면 낮의 이 두 인상은 서로 어떤 관계에 있으며, 그다음 밤에 뒤따른 꿈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외현 내용에서 나는 사소한 인상에 대한 암시만을 발견하며, 그러니 꿈은 본질적이지 않은 체험을 즐겨 제 내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반대로 꿈 해석에서는 모든 것이 마땅히 주의를 요구할 만한 중요한 사건 하나로 모여든다. 분석에서 드러난 잠재 내용에 따라, 유일하게 올바른 방식으로 꿈을 판단하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새롭고 중요한 사실 하나에 이르게 된다. 꿈은 일상 체험의 쓸모없는 조각만 다룬다는 견해가 무너지는 것을 나는 본다. 또 깨어 있을 때의 정신생활은 꿈속에서 이어지지 않으며, 꿈은 그 대신 하찮은 재료에 심리적 활동을 낭비한다는 주장에도 반박할 수밖에 없다. 그 반대가 참이다. 낮 동안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우리의 꿈 사고도 지배하며, 우리가 수고를 들여 꿈꾸는 것은 낮 동안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 일들뿐이다.

내가 낮의 어떤 사소한 인상을 꿈꾸는데도 정작 꿈의 계기가 되는 것은 마땅히 마음을 뒤흔들 만한 인상이라는 사실을 가장 손쉽게 설명하는 길은 아마, 이것을 또다시 꿈 왜곡의 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리라. 앞에서 우리는 꿈 왜곡이 검열관 노릇을 하는 심리적 힘에서 비롯한다고 밝혔다. 시클라멘속에 관한 연구서의 기억은, 친구와 나눈 대화에 대한 암시인 것처럼 쓰인다. 미뤄진 저녁 식사 꿈에서 친구에 대한 언급이 「훈제 연어」라는 암시로 표현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문제는 오로지, 연구서의 인상이 어떤 중간 단계들을 거쳐 안과 의사와 나눈 대화를 암시하는 관계에 들어서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런 관계가 곧바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미뤄진 저녁 식사의 예에서는 그 관계가 처음부터 주어져 있다. 「훈제 연어」는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므로, 꿈꾸는 부인에게 친구라는 인물이 불러일으킬 연상 계열에 곧바로 속한다. 우리의 새 예에는 서로 떨어진 두 인상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는 같은 날 일어났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듯하다. 연구서는 오전에 내 눈길을 끌고, 대화는 저녁에 나눈다. 분석이 내놓는 대답은 이렇다. 두 인상 사이의 그런 관계는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상의 표상 내용과 다른 인상의 표상 내용 사이에 나중에야 맺어진다. 분석을 기록하면서 나는 이 관계를 이루는 요소들을 방금 강조해 두었다. 시클라멘에 관한 연구서라는 생각에, 시클라멘이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생각을 결부시키는 것은 아마 무언가 바깥의 영향이 있을 때뿐일 텐데, 그 영향이란 아마 L. 부인이 받지 못한 꽃다발에 대한 기억이 덧붙은 것이리라. 이런 밑바탕의 생각들만으로 꿈을 불러낼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덤에서 유령이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왕자님,」

「그걸 우리에게 일러 주자고」

『햄릿』에 나오는 그대로다. 그러나 보라! 분석하다 보니, 우리 대화를 끊은 사람의 이름이 게르트너(Gärtner = 정원사)였고 그의 부인이 활짝 핀 꽃처럼〔blooming〕 건강해 보였다는 것이 떠오른다.4 이제는 플로라〔꽃의 여신〕라는 예쁜 이름을 지닌 내 여성 환자 하나가 한동안 우리 대화의 주된 화제였다는 것까지 기억난다. 나는 식물학이라는 관념에 속하는 연상 계열에서 나온 이 고리들로, 낮의 두 사건, 곧 사소한 사건과 마음을 뒤흔든 사건 사이의 연결을 완성했음이 틀림없다. 그러고 나서 다른 관계들이 맺어진다. 코카인의 관계가 그것인데, 코카인은 쾨니히슈타인 박사라는 인물과 내가 쓴 식물학 연구서를 잇는 중개자가 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알맞으며, 두 연상 계열이 하나로 녹아드는 것을 굳혀 준다. 그리하여 이제 첫째 체험의 한 부분이 둘째 체험을 암시하는 데 쓰일 수 있게 된다.

이 설명이 자의적이라거나 인위적이라는 공격을 받으리라는 것은 각오하고 있다. 게르트너 교수와 활짝 핀 꽃 같은 그의 부인이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화제에 오른 환자의 이름이 플로라가 아니라 안나였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러나 대답은 쉽다. 이런 생각의 관계들이 없었다면 아마 다른 관계들이 골라졌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관계를 맺기란 아주 쉽다. 우리가 날마다 재미 삼아 주고받는 농담 섞인 질문과 수수께끼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재치가 미치는 범위에는 끝이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낮의 두 인상 사이에 충분히 풍부한 상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면, 꿈은 그저 다르게 나왔을 것이다. 무더기로 우리에게 왔다가 잊히는 낮의 다른 사소한 인상 하나가 꿈속에서 연구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대화의 내용과 연결을 맺어, 꿈속에서 그 내용을 표현했을 것이다. 이런 운명을 맞은 것이 다른 인상이 아니라 연구서의 인상이었으니, 아마 이 인상이 연결을 맺기에 가장 알맞았을 것이다. 레싱의 헨스헨 슐라우처럼 「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진 것은 부자들이다」라는 데 놀랄 필요는 없다.

그래도 우리가 이해한 바대로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체험 대신 사소한 체험이 들어서는 심리학적 과정은, 우리에게 여전히 이상하고 미심쩍어 보인다. 겉보기에 잘못된 이 작업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과제는 뒤의 한 장에서 떠맡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는 것은 이 절차의 결과뿐이며, 이 절차를 가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꿈 분석에서 규칙적으로 되풀이되는 경험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그 중간 단계들을 거치는 동안 전치(displacement), 이를테면 심리적 강조점의 전치가 일어나서, 처음에는 약한 강도로 충전되어 있던 표상들이 처음부터 더 강한 강도를 지닌 표상들에게서 충전을 넘겨받아 의식으로 밀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힘에 이르는 것인 듯하다. 정동을 어디에 쏟느냐나 운동 행위 일반이 문제일 때에는 이런 전치가 조금도 놀랍지 않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남은 여자가 동물에게 애정을 옮기고, 독신 남자가 열정적인 수집가가 되고, 병사가 알록달록한 천 조각, 곧 자기 깃발을 피 흘려 지키고, 연애할 때 한순간 손을 맞잡는 것만으로 더없이 행복해지고, 『오셀로』에서 잃어버린 손수건 한 장이 분노를 폭발시킨다는 것, 이것들은 모두 우리가 보기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심리적 전치의 예다. 그러나 같은 방식으로, 같은 기본 원칙에 따라, 무엇이 우리 의식에 이르고 무엇이 의식에서 차단될지, 말하자면 우리가 무엇을 생각할지가 결정된다면, 이것은 병적이라는 인상을 주며, 깨어 있는 생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그것을 사고의 오류라고 부른다. 뒤에서 할 논의의 결과를 여기서 미리 말해 두어도 좋겠다. 우리가 꿈 전치로 알아본 심리 과정은 병적으로 교란된 과정이 아니라, 좀 더 원시적인 성질을 띤다는 점에서만 정상과 다른 과정임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꿈 내용이 하찮은 체험의 잔재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에서 (전치로 일어나는) 꿈 왜곡이 드러난 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꿈 왜곡을, 두 심리적 심급 사이의 통로를 지배하는 검열이 한 일로 알아보았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꿈 분석이 낮의 생활 속에 있는 꿈의 참되고 의미 있는 원천, 곧 그에 대한 기억이 자기 강조점을 어떤 사소한 기억으로 옮겨 놓은 원천을 규칙적으로 드러내 주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견해는 우리를 로베르트[55]의 이론과 완전히 대립하게 만들며, 이로써 그 이론은 우리에게 아무 가치도 없게 된다. 로베르트가 설명하려던 사실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가정한 것은 오해, 곧 꿈의 외현 내용 대신 꿈의 참된 뜻을 놓지 못한 데서 비롯한다. 로베르트의 학설에는 또 다른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특별한 심리적 활동으로 낮의 기억의 「찌꺼기」를 우리 기억에서 치워 없애는 것이 정말로 꿈의 임무라면, 우리의 잠은 깨어 있는 생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어지럽고, 더 힘겨운 수고에 바쳐져야 할 것이다. 낮 동안 받아들이는 사소한 인상, 우리가 기억을 지키려고 막아 내야 할 그런 인상의 수는 분명 무한히 많으니, 그 일을 다 해내기에는 밤이 모자랄 것이다. 사소한 인상의 망각은 우리의 심리적 힘이 능동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일어난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그럴듯하다.

그러나 무언가가 우리에게, 로베르트의 생각과 더 따져 보지도 않고 작별하지는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낮의 사소한 인상 가운데 하나가, 그것도 바로 전날의 인상이 어김없이 꿈 내용에 한몫 끼어든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남겨 두었다. 이 인상과 꿈의 진짜 원천 사이의 관계가 언제나 처음부터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 관계는 꿈 작업(dream-work)이 진행되는 동안에야, 마치 의도된 전치의 목적에 이바지하려는 듯이 나중에 맺어진다. 그러므로 최근의 인상, 비록 사소하지만 최근의 것인 인상과 바로 이 방향으로 연결을 맺어야 할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최근의 인상은 어떤 성질 때문에 이 목적에 특히 알맞은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꿈 사고가 자기 연상 계열 안의 어떤 본질적이지 않은 고리에 강조점을 옮기는 것도 그만큼 쉬울 것이다.

다음 경험들이 설명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하루 동안 꿈을 자극하기에 알맞은 체험이 둘 이상 있었다면, 꿈은 그 둘에 대한 언급을 하나의 전체로 녹여 붙인다. 꿈은 그것들로 하나의 전체를 빚어내려는 충동을 따른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느 여름 오후 나는 기차의 한 칸에 올랐다가, 서로 모르는 두 친구를 만났다. 한 사람은 영향력 있는 동료였고,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주치의로 있던 명문가의 일원이었다. 나는 두 신사를 서로 인사시켰다. 그러나 긴 여행 동안 대화의 중개자는 나였으므로, 이 사람과는 이 이야기를, 저 사람과는 저 이야기를 번갈아 나누어야 했다. 나는 동료에게, 막 개업한 우리 둘의 공통된 친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동료는 그 젊은이가 철저하다는 것은 믿지만, 외모가 볼품없어서 지체 높은 집안에 드나들기는 어려울 거라고 대답했다. 나는 「바로 그래서 추천이 필요한 거지요」 하고 대답했다. 얼마 뒤 나는 다른 동행에게 그의 숙모의 안부를 물었다. 그 부인은 내 환자 한 사람의 어머니로, 그때 중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다. 이 여행을 한 날 밤, 나는 이런 꿈을 꾸었다. 내가 도움을 청해 주었던 그 젊은 친구가 화려한 살롱에서 엄선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세련된 사교가의 태도로 추도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추도사는 두 번째 동행의 숙모인 그 노부인(꿈을 위해 이제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이 부인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렇게 내 꿈은 낮의 두 인상 사이에 연결을 찾아냈고, 그 연결을 써서 하나로 통일된 상황을 짜 맞추었다.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하고 나니, 나는 꿈 작업에는 일종의 강박이 있어서, 쓸 수 있는 꿈 자극의 원천을 모두 꿈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 모으도록 몰아붙인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5 뒤에 꿈 작업을 다루는 6장 (가)에서 우리는 이렇게 한데 모으려는 충동이, 또 하나의 일차적 심리 과정인 압축(condensation)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논의할 물음은 이것이다. 꿈이 비롯하는 원천, 우리의 분석이 이르는 원천은 언제나 최근의 (그리고 의미 있는) 사건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주관적 체험, 말하자면 심리학적으로 가치 있는 체험의 기억, 곧 생각의 사슬도 꿈 자극 노릇을 할 수 있는가? 수많은 분석에서 더없이 분명하게 나오는 대답은 이렇다. 꿈의 자극은, 낮 동안의 정신 활동으로 말하자면 최근의 것이 된 주관적 사건일 수 있다. 여기서 꿈의 원천으로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조건을 한눈에 정리해 두는 것도 아마 엉뚱한 일은 아닐 것이다.

꿈의 원천은 다음과 같을 수 있다.

(ㄱ) 꿈에 직접 표현되는, 최근의 심리학적으로 의미 있는 체험.6

(ㄴ) 꿈이 하나의 전체로 합치는, 최근의 의미 있는 여러 체험.7

(ㄷ) 같은 때의 사소한 체험을 언급하는 것으로 꿈에 표현되는, 최근의 의미 있는 체험 하나 또는 여럿.8

(ㄹ) 최근의 사소한 인상을 언급하는 것으로 꿈에 언제나 표현되는, 주관적이고 의미 있는 체험(기억, 생각의 흐름).9

보다시피 꿈 해석에서는, 꿈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가 낮의 최근 인상을 되풀이한다는 조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굳게 지켜진다. 꿈에 표현되도록 정해진 요소는 실제 꿈 자극 자체를 둘러싼 표상들에 속할 수도 있고(그것도 그 자극의 본질적 요소로든 비본질적 요소로든), 사소한 인상의 언저리에서 나올 수도 있다. 이 사소한 인상은 많든 적든 풍부한 연상을 거쳐 꿈 자극을 둘러싼 생각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여기서 조건이 여러 가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전치가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느냐에 따른 양자택일 때문이다. 그리고 이 양자택일은, 꿈의 의학적 이론(1장 (사) 참조)에서 부분적으로 깨어 있는 뇌세포부터 완전히 깨어 있는 뇌세포까지 올라가는 계열이 그러하듯이, 꿈의 대조를 손쉽게 설명해 준다는 점에 주목해도 좋겠다.

이 계열에 관해 또 주목할 만한 것은, 심리학적으로 가치가 있지만 최근의 것이 아닌 요소(생각의 흐름, 기억)가 꿈 형성을 위해 최근의 것이지만 심리학적으로 사소한 요소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다음 두 조건은 지켜져야 한다. 1. 꿈은 최근에 체험한 무언가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어야 한다. 2. 꿈 자극은 심리학적으로 가치 있는 생각의 흐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오직 (ㄱ)의 경우에만 같은 인상이 두 조건을 모두 채운다. 여기에, 꿈에 쓰이는 바로 그 사소한 인상들이 최근의 것인 동안에만 쓰일 수 있고 하루(길어야 며칠)만 지나도 이 쓰임새를 잃는다는 사실을 덧붙이면, 인상이 새롭다는 것 자체가 꿈 형성에 대해 어떤 심리학적 가치를 인상에 부여하며, 이 가치는 정동으로 강조된 기억이나 생각의 흐름이 지니는 가치와 얼마쯤 맞먹는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꿈 형성에서 최근 인상이 지니는 이 가치의 근거는, 뒤에 나올 어떤 심리학적 고찰의 도움을 받아야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10

덧붙여, 우리의 표상과 기억이 이루는 재료에 중요한 변화가 무의식적으로, 그것도 밤사이에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눈길이 간다. 어떤 일이든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룻밤 자며 생각해 보라는 권고는 분명 충분히 근거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꿈의 심리학에서 잠의 심리학으로 넘어왔음을 알게 된다. 이런 걸음을 내디딜 기회는 앞으로도 자주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방금 우리가 이른 결론을 무너뜨릴 듯한 반론이 하나 떠오른다. 사소한 인상이 최근의 것일 때에만 꿈에 들어갈 수 있다면, 꿈 내용에서 우리 삶의 더 이른 시기의 요소들, 곧 최근의 것이었을 때에도 슈트륌펠의 표현대로 심리적 가치가 전혀 없었고, 그러니 오래전에 잊혔어야 했으며, 그러니 새롭지도 심리학적으로 의미 있지도 않은 요소들까지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신경증 환자의 정신분석이 내놓은 결과에 기대면 이 반론은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 해답은 이렇다. 심리적 의미를 지닌 재료 대신 사소한 재료를 들여놓는 전치 과정은 (꿈꾸기에서나 생각하기에서나) 이미 삶의 그 이른 시기에 일어났고, 그 뒤로 기억 속에 고정되었다. 원래 사소했던 그 요소들은 심리학적으로 의미 있는 재료의 가치를 얻었으므로 사실은 더 이상 사소하지 않다. 정말로 사소한 채 남아 있는 것은 결코 꿈에서 재생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논의로 보아, 내가 사소한 꿈 자극은 없으며 따라서 무해한 꿈도 없다고 주장한다고 여겨도 옳을 것이다. 아이들의 꿈과, 어쩌면 밤중의 감각에 대한 짧은 꿈 반응을 예외로 둔다면, 나는 전적으로, 그리고 예외 없이 그렇다고 믿는다. 무엇을 꿈꾸든 그것은 심리적으로 의미 있다는 것이 뚜렷이 알아보이거나, 아니면 왜곡되어 있어서 완전히 해석한 뒤에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데, 그러고 나면 역시 심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알아볼 수 있다. 꿈은 결코 하찮은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잠을 방해받게 두지 않는다. 겉보기에 무해한 꿈도 애써 해석해 보면 음흉한 꿈으로 드러난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된다면, 그런 꿈에는 모두 「짐승의 표」가 찍혀 있다. 이것 역시 반대에 부딪히리라고 예상되는 점이고, 또 꿈 왜곡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 줄 기회가 반가우므로, 여기서 내가 모은 꿈 몇 편을 분석해 보겠다.

1. 영리하고 교양 있지만 행실로 보면 속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 곧 우리가 「잔잔한 물」이라고 부르는 부류에 속하는 한 젊은 부인이 다음과 같은 꿈을 이야기한다.

남편이 묻는다. 「피아노를 조율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대답한다. 「그럴 값어치가 없어요. 해머에도 가죽을 새로 입혀야 할 테니까요.」 이 꿈은 전날 실제로 있었던 일을 되풀이한다. 남편은 정말로 그런 질문을 했고, 그녀는 비슷한 대답을 했다. 그러면 그녀가 그것을 꿈꾼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녀는 피아노에 대해, 나쁜 소리를 내는 역겨운 낡은 상자라느니, 남편이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물건 가운데 하나라느니11 운운하며 이야기하지만, 진짜 풀이의 열쇠는 그럴 값어치가 없어요라는 말에 있다. 이 말은 전날 한 여자 친구를 찾아갔을 때 나왔다. 거기서 외투를 벗으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녀는 「그럴 값어치가 없어요. 금방 가야 하거든요」 하고 사양했다. 여기서 나는, 어제 분석하던 중에 그녀가 단추 하나가 풀려 있던 외투를 갑자기 붙잡던 일을 떠올린다. 그러니 그녀는 이렇게 말한 것과 같다. 「이쪽은 보지 마세요. 그럴 값어치가 없어요.」 이렇게 해서 「상자〔box〕」는 「궤짝〔chest〕」으로, 곧 가슴 궤짝〔breast-box〕(「흉부〔bust〕」)로 발전하고, 꿈의 해석은 그녀가 자기 몸매에 불만을 품었던 신체 발달의 한 시기로 곧장 이어진다. 「역겨운」과 「나쁜 소리」를 고려에 넣고, 암시와 꿈에서 여성 몸의 작은 두 반구가 큰 반구들의 자리를 ― 대리물로서, 또 대립물로서 ― 얼마나 자주 차지하는지 떠올려 보면, 해석은 더 이른 시기로도 이어진다.

II. 여기서 이 꿈을 잠시 끊고, 한 젊은 남자의 짧고 무해한 꿈 하나를 끼워 넣어도 좋겠다. 그는 겨울 외투를 다시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끔찍했다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의 계기는 겉으로 보기에 최근 다시 찾아온 추위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꿈의 짧은 두 부분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추울 때 무겁거나 두꺼운 외투를 입는 데 무엇이 「끔찍하다」는 말인가? 이 꿈의 무해함에는 안된 일이지만, 분석에서 처음 떠오른 생각은, 전날 한 부인이 자기 막내는 콘돔이 터지는 바람에 생겼다고 그에게 몰래 털어놓았던 기억이다. 그는 이제 이 실마리를 따라 자기 생각을 다시 짜 맞춘다. 얇은 콘돔은 위험하고, 두꺼운 콘돔은 좋지 않다. 콘돔은 「외투」(Überzieher〔위에 덧씌우는 것〕)다. 무언가 위에 씌우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Ueberzieher는 독일어에서 얇은 외투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 부인이 이야기한 것과 같은 일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에게는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 이제 무해한 꿈을 꾼 다른 한 사람에게로 돌아가자.

III. 그녀는 촛대에 초를 꽂는다. 그런데 초가 부러져 있어서 똑바로 서지 않는다. 학교 여자아이들이 그녀더러 서툴다고 한다. 젊은 부인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여기서도 꿈에는 실제의 계기가 있다. 전날 그녀는 실제로 촛대에 초를 꽂았다. 다만 그 초는 부러져 있지 않았다. 여기에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징 표현이 쓰였다. 초는 여성 성기를 자극하는 물건이다. 초가 부러져 있어서 똑바로 서지 않는다는 것은 남자 쪽의 성 불능을 뜻한다(「자기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자랐고 온갖 외설과는 거리가 먼 이 젊은 여성이 초를 이렇게 쓴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녀는 마침 이 지식을 어떻게 얻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라인강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대학생들을 태운 다른 배 한 척이 지나간다. 학생들은 신이 나서 노래를, 아니 고함을 지르고 있다. 「스웨덴 여왕이 닫힌 덧문과 아폴론의 초로…….」

그녀는 마지막 낱말을 듣지 못했거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필요한 설명을 해 달라고 한다. 꿈 내용에서 이 노랫말은, 그녀가 언젠가 여자 기숙 학교에서 서툴게 해낸 심부름에 대한 무해한 기억으로 대체되는데, 이는 닫힌 덧문이라는 공통 요소를 거쳐 일어난다. 자위라는 주제와 성 불능이라는 주제의 연관은 충분히 분명하다. 잠재적 꿈 내용 속의 「아폴론」은 이 꿈을, 처녀신 팔라스가 등장했던 그 전의 꿈과 이어 준다. 이 모든 것은 분명 무해하지 않다.

IV. 꿈에서 꿈꾼 사람의 실제 사정에 관한 결론을 끌어내는 일이 너무 쉬워 보이지 않도록,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 역시 무해해 보이는 꿈 하나를 덧붙이겠다. 「꿈에서 저는 무언가를 했는데요,」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낮에 실제로 한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작은 트렁크에 책을 너무 가득 채워서 닫기가 힘들었지요. 꿈은 실제로 있었던 일과 꼭 같았어요.」 여기서는 꿈을 이야기하는 당사자가 꿈과 현실이 일치한다는 데 가장 큰 무게를 둔다. 꿈에 대한 이런 비판과 논평은 모두, 깨어 있을 때의 생각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해도, 규칙적으로 잠재적 꿈 내용에 속한다. 뒤의 예들이 이것을 더 보여 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듣는 것은, 꿈이 이야기하는 일이 낮 동안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 꿈을 해석하는 데 영어의 도움을 빌리자는 생각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이야기하자면 너무 멀리 벗어날 것이다. 여기서는, 이번에도 더는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가득 채워진 작은 상자〔box〕(4장의 상자 속 죽은 아이 꿈 참조)가 문제라는 것만 말해 두자. 이번에는 음흉한 것이 조금도 없다.

이 「무해한」 꿈들에서는 모두, 검열을 발동시키는 동기로서 성적 요인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으뜸가는 중요성을 지닌 문제이므로 뒤로 미루어야 한다.

주

  1. 1. 꿈은 우리 기억이 낮 동안 받아들인 쓸모없는 인상들을 기억에서 치워 없애려는 것이라는 로베르트의 견해는,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이 꽤 자주 꿈에 나타난다면 더는 지탱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꿈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대개 매우 불충분하게 수행한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2. 2. 1장 (아)에서 말했듯이, H. 스보보다는 W. 플리스가 발견한 23일과 28일이라는 생물학적 간격을 심리 활동에 폭넓게 적용하며, 특히 이 주기들이 꿈에 꿈 요소가 나타나는 것을 결정한다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것이 증명된다 해도 꿈 해석이 본질적으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꿈 재료가 생겨나는 원천이 하나 새로 생기는 셈일 것이다. 나는 최근 「주기 이론」을 꿈 재료에 적용할 수 있는지 시험하려고 내 꿈을 몇 가지 조사해 보았는데, 이를 위해 꿈 내용 가운데 특히 눈에 띄고 그 기원을 확실히 밝힐 수 있는 요소들을 골랐다.

    I. ― 1910년 10월 1~2일의 꿈

    (단편)……. 이탈리아 어딘가. 세 딸이 골동품 가게에서처럼 값진 작은 물건들을 내게 보여 준다. 그러면서 내 무릎에 앉는다. 그 가운데 한 점을 두고 나는 말한다. 「아니, 이건 나한테서 받은 거잖니.」 사보나롤라의 모난 얼굴을 한 작은 옆얼굴 가면도 또렷이 보인다.

    사보나롤라의 초상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언제였던가? 여행 일기에 따르면 나는 9월 4일과 5일에 피렌체에 있었고, 거기서 이 광신적인 수도사의 얼굴을 새긴 석고 메달을 동행에게 보여 주려고 생각했다. 메달은 그가 화형을 당한 바로 그 자리인 시뇨리아 광장에 있다. 내가 동행에게 그것을 가리켜 보인 것은 새벽 3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인상에서 그것이 꿈에 되돌아오기까지는 27일과 1일, 곧 플리스의 말로는 「여성 주기」의 간격이 있었다. 그러나 이 예의 논증력에는 안된 일이지만, 덧붙여 말해야겠다. 꿈꾼 바로 그날 (돌아온 뒤 처음으로) 유능하지만 우울해 보이는 동료 하나가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벌써 여러 해 전에 그에게 「랍비 사보나롤라」라는 별명을 붙여 두었다. 그는 폰테바 철도에서 사고를 당한 환자 하나를 데려왔다. 나 자신도 여드레 전에 그 철도로 여행했으므로, 내 생각은 지난번 이탈리아 여행으로 향했다. 꿈 내용에 사보나롤라라는 눈에 띄는 요소가 나타난 것은 꿈꾼 날 동료가 찾아온 것으로 설명된다. 28일이라는 간격은 그 기원에서 아무 의미도 없었다.

    II. ― 10월 10~11일의 꿈

    나는 다시 대학 실험실에서 화학을 공부하고 있다. 궁정 고문관 L.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청하고는, 치켜든 손에 램프인지 무슨 다른 기구인지를 들어 자기 앞으로 받쳐 든 채, 머리를 앞으로 쭉 뺀 독특한 자세로 복도에서 내 앞을 걸어간다. 그러다 우리는 탁 트인 곳에 이른다…… (나머지는 잊었다).

    이 꿈 내용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궁정 고문관 L.이 먼 곳에 시선을 둔 채 램프(또는 lupe〔돋보기〕)를 자기 앞에 들고 가는 모습이다. 나는 L.을 여러 해 동안 보지 못했지만, 이제 그가 다른 더 위대한 인물, 곧 시라쿠사의 아레투사 샘 가까이 있는 아르키메데스의 대리일 뿐이라는 것을 안다. 아르키메데스는 거기서 꿈속의 L.과 똑같은 모습으로, 불을 일으키는 거울을 들고 포위해 온 로마군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이 기념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은 언제였던가? 내 메모에 따르면 9월 17일 저녁이었고, 그날부터 꿈까지 정말로 13일과 10일, 합해서 23일이 흘렀다. 플리스에 따르면 「남성 주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꿈의 해석에 들어가 보면 여기서도 이 연관은 그리 필연적이지 않아 보인다. 꿈의 계기는 꿈꾼 날 받은 소식이었다. 내가 강의하도록 초빙받은 병원의 강의실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나는 새 강의실이 몹시 불편한 곳에 있으리라고 지레짐작하고, 강의실을 아예 못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내 생각은, 처음 강사가 되었을 때, 정말로 강의실이 없어서 하나 얻으려고 애썼지만 영향력이 대단한 고문관 나리들과 교수 나리들에게서 별 격려를 받지 못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음이 틀림없다. 그때 곤경에 빠진 나는, 당시 학장 직함을 지녔고 내게 호의적이라고 여겼던 L.에게 호소했다. 그는 돕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뒤로 그에게서 들은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꿈에서 그는 나에게 πήστω〔설 자리〕를 주고 나를 다른 방으로 데려가는 아르키메데스다. 이 꿈에 복수욕도, 자기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의식도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은 꿈 해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아챌 것이다. 그러나 나는, 꿈의 이런 동기가 없었다면 그날 밤 아르키메데스가 꿈에 들어오기는 어려웠으리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시라쿠사의 그 조각상에서 받은, 강하고 아직 생생한 인상이 다른 시간 간격을 두고도 떠오르지 않았을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III. ― 1910년 10월 2~3일의 꿈.

    (단편)…… 오저 교수에 관한 무언가. 그가 몸소 내 식단을 짜 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크게 마음을 놓게 되었다(나머지는 잊었다).

    이 꿈은 그날의 소화 장애에 대한 반응이었다. 소화 장애 때문에 나는 동료 가운데 누군가에게 식이 요법을 짜 달라고 부탁할까 생각했다. 꿈에서 내가 이 일에, 여름에 세상을 떠난 오저 교수를 고른 것은, 내가 크게 존경하던 다른 대학 교수가 최근(10월 1일)에 세상을 떠난 데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면 오저는 언제 죽었고, 나는 그의 죽음을 언제 들었던가? 신문 기사에 따르면 그는 8월 22일에 죽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네덜란드에 있었고 빈의 신문들이 꼬박꼬박 그리로 부쳐져 왔으므로, 부고는 8월 24일이나 25일에 읽었을 것이다. 이 간격은 이제 어떤 주기에도 맞지 않는다. 7일과 30일과 2일, 합해서 39일, 어쩌면 38일이다. 이 기간에 오저 이야기를 하거나 그를 생각한 기억은 없다.

    더 손질하지 않고는 「주기 이론」에 쓸 수 없는 이런 간격이 규칙적인 간격보다 훨씬 더 흔하다는 것이 내 꿈에서 드러났다. 본문에서 주장했듯이, 늘 발견되는 것은 꿈꾼 날 자체의 인상과 맺은 관계뿐이다.

  3. 3. 내 논문 「은폐 기억에 대하여(Ueber Deckerinnerungen)」, 『정신의학·신경학 월보(Monatsschrift für Psychiatrie und Neurologie)』, 1899년 참조.

  4. 4. 독일어로는 blühend〔꽃이 핀〕. ― 영역자 브릴의 주.

  5. 5. 눈앞에 있는 관심거리를 모두 한데 녹여 동시에 다루려는 꿈 작업의 경향은 이미 여러 저자가 주목했다. 이를테면 들라주[15](41쪽), 델뵈프[16](「강제된 접근(Rapprochement Forcé)」, 236쪽).

  6. 6. 이르마의 주사 꿈, 친구가 나의 삼촌인 꿈.

  7. 7. 젊은 의사의 추도사 꿈.

  8. 8. 식물학 연구서 꿈.

  9. 9. 분석 중인 내 환자들의 꿈은 대개 이런 종류다.

  10. 10. 7장의 「전이」에 관한 대목 참조.

  11. 11. 해석해 보면 분명해지겠지만, 정반대의 것으로 대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