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저본에 관하여
이 책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다만 독일어 원전이 아니라 A. A. 브릴(Abraham Arden Brill)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은 중역(重譯)입니다. 이 사실을 감추지 않고 첫 장에 밝혀 둡니다.
『꿈의 해석』은 1899년 11월에 나왔지만 속표지에는 1900년이 찍혔습니다. 프로이트는 그 뒤로 판을 거듭하며 이 책을 고치고 늘렸습니다. 브릴은 1911년에 나온 독일어 제3판을 옮겨 1913년에 내놓았고, 이것이 이 책의 첫 영역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국어판은 1911년 무렵의 『꿈의 해석』입니다. 제4판(1914) 이후에 더해진 대목 ― 이를테면 따로 떨어져 나와 크게 불어난 상징의 절, 한동안 실렸던 오토 랑크의 글 두 편 ― 은 여기에 없습니다.
프로이트는 1939년에, 브릴은 194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의 저작권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브릴은 프로이트를 처음으로 영어로 옮긴 사람이고, 영어권은 그의 번역으로 정신분석을 처음 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번역에는 뚜렷한 버릇이 있습니다. 독일어의 한 개념을 여러 영어 낱말로 옮기고, 앞에서 보고한 꿈을 뒤에서 다시 인용할 때 문구를 바꾸며, 몇 군데에서는 뜻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이 번역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그 버릇을 다루는 일이었습니다.
영어 낱말이 아니라 가리키는 것을 따라
프로이트의 Affekt를 브릴은 affect로도, emotion으로도, feeling으로도 옮깁니다. 꿈속의 정동을 다루는 6장 (사)에서 emotion이라는 말은 마흔 번 넘게 나오는데, 대부분 바로 옆의 affect와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영어 낱말을 따라 옮기면 한국어 독자는 서로 다른 개념이 셋 있는 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번역은 역어를 영어 낱말이 아니라 가리키는 대상에 묶었습니다. 꿈과 신경증의 이론에서 표상과 짝을 이루는 것은 영어가 무엇이든 「정동」이고, 일상의 감정은 「감정」입니다.
거꾸로 브릴이 고집스럽게 지킨 말도 있습니다. 그는 cathexis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고 독일어 Besetzung을 occupation으로 옮깁니다. 이것을 「점령」으로 읽으면 7장이 무너집니다. 이 번역은 「집중」으로 옮겼습니다.
자주 나오는 말은 다음과 같이 옮겼습니다.
| 브릴의 영어 | 독일어 | 이 번역 |
|---|---|---|
| dream-work, dream activity | Traumarbeit | 꿈 작업 |
| dream thoughts | Traumgedanken | 꿈 사고 |
| manifest / latent dream content | manifester / latenter Trauminhalt | 외현적 / 잠재적 꿈 내용 |
| wish-fulfilment | Wunscherfüllung | 소원 성취 |
| condensation · displacement | Verdichtung · Verschiebung | 압축 · 전치 |
| regard for presentability | Rücksicht auf Darstellbarkeit | 표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 |
| secondary elaboration | sekundäre Bearbeitung | 이차 가공 |
| censor, censorship | Zensur | 검열 |
| presentation · affect | Vorstellung · Affekt | 표상 · 정동 |
| instance | Instanz | 심급 |
| occupation | Besetzung | 집중 |
| the system Unc. · the system Forec. | System Ubw · System Vbw | 무의식계 · 전의식계 |
| repression · suppression | Verdrängung · Unterdrückung | 억압 · 억제 |
| regression | Regression | 퇴행 |
옮기면서 지킨 세 가지 원칙
하나, 없는 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브릴의 영역본에 없는 것, 곧 1911년 뒤에 프로이트가 보탠 문장과 각주를 독일어판에서 가져와 채우지 않았습니다. 꿈속의 말장난도 한국어 말장난으로 갈아 끼우지 않았습니다. 꿈은 그 말이 아니면 그렇게 꾸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어를 그대로 두고 〔 〕 안에 뜻을 적었습니다.
둘, 있는 것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는 꿈이 백팔십 편 넘게 나오고, 그 가운데 여러 편이 뒤에서 몇 번이고 다시 불립니다. 브릴은 그때마다 문구를 조금씩 다르게 옮겼습니다. 이 번역은 영어가 같으면 한국어도 글자 그대로 같게, 영어가 다르면 다른 만큼만 다르게 옮겼습니다. 이를테면 홀투른 꿈의 마지막 말은 6장에서 「그가 맞게 말했어.」이고, 7장에서 다시 불릴 때는 「정말이지, 그가 맞게 말했어.」입니다. 7장의 영어에 「Indeed」가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다시 이야기할 때 말이 바뀌는 일은 프로이트 자신이 7장 첫머리에서 따져 묻는 문제이기도 하므로, 그 흔들림을 고르게 펴지 않았습니다.
셋, 번역이 저본보다 매끄러워지지 않게 했습니다. 막히는 문장을 뚫어 주고 싶은 자리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막힌 것이 저본의 상태입니다.
저본을 거스른 곳
브릴의 전달 오류가 내용을 뒤바꾸는 곳만 바로잡았고, 그때마다 옮긴이 주로 밝혔습니다. 본문과 각주 열다섯 곳, 표제 세 곳입니다. 이를테면 이르마 꿈의 「귀의 안」은 「구강」으로, 꿈 보고의 변형을 두고 「결정성을 과대평가한다」고 한 문장은 「과소평가한다」로, 7장 (마)의 표제 끝 말 「퇴행」은 그 절이 실제로 다루는 「억압」으로 옮겼습니다.
단순한 오식(books를 hooks로, emission을 omission으로 찍은 것 따위)은 주 없이 뜻대로 옮겼습니다. 문헌 번호가 문헌 목록과 어긋난 여섯 곳(분트, 페히너 두 곳, 라데슈토크, 슈트륌펠, 델뵈프)은 바로잡았습니다.
쪽 참조와 찾아보기
영역본에는 「(p. 218 참조)」처럼 이 책 자신의 쪽을 가리키는 말이 일흔 곳 넘게 나옵니다. 판이 바뀌면 이 쪽수는 뜻을 잃으므로, 가리키는 곳을 찾아 「5장 (라)」처럼 장과 절로 바꾸어 적었습니다. 영역본이 쪽을 잘못 가리킨 몇 곳은 바른 자리로 고쳤습니다. 다른 저자의 책을 가리키는 쪽수는 그대로 두었습니다. 영역본 끝의 찾아보기는 그 쪽수에 기대는 것이어서 싣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 각주 끝에 「― 영역자 브릴의 주.」가 붙은 것은 브릴이 단 주(열일곱 개)이고, 「― 옮긴이.」가 붙은 것은 이 번역에서 단 주(스물여섯 개)입니다. 나머지 백예순여덟 개는 모두 프로이트의 주입니다.
- 옮긴이 주는 해설이 아닙니다. 오역을 바로잡은 자리, 영역본의 표기가 흔들리는 자리, 독일어 말장난이 영어로 건너오며 가려진 자리, 그리고 읽는 데 꼭 필요한 몇몇 사정만 밝혔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의 후대 전개는 적지 않았습니다.
- 영역본이 이탤릭으로 표시한 꿈 본문과 강조는 글꼴을 달리해 구분했습니다.
- 라틴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 인용은 원문을 살리고 〔 〕 안에 뜻을 적었습니다.
- 사람을 가리키는 머리글자(M. 박사, R., P. 등)는 원문 그대로 두었습니다. 같은 머리글자가 서로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일이 잦습니다. 오토라는 이름만 해도 다섯 사람입니다.
- 이름 뒤의 번호(분트[76] 따위)는 제8장 문헌 목록의 번호입니다. 문헌 목록은 서지를 영역본 그대로 두었습니다.
- 7장 (나)의 도식 세 개는 영역본의 그림을 본떠 한국어 이름표로 다시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