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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20장 (제VI권 제XX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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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제VI권 제XX장) 전쟁 제17년과 제18년 · 아테네군의 무위 · 스파르타의 알키비아데스 · 시라쿠사 포위

시칠리아에 남은 아테네 장군들은 이제 원정군을 둘로 나누어 제비로 하나씩 맡고 전군을 이끌고 셀리누스와 에게스타로 항해했으니, 에게스타인이 돈을 내놓을지 알아보고 셀리누스 문제를 살펴 그 도시와 에게스타 사이의 다툼이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시칠리아 해안을 왼쪽에 두고 티레니아만 쪽으로 나아가다가 그들은 섬의 그 지역에서 유일한 그리스 도시인 히메라에 들렀으나 들여보내 주기를 거절당하자 항해를 이어 갔다. 가는 길에 그들은 시카니아인의 작은 항구 도시이면서도 에게스타와 전쟁 중이던 히카라를 빼앗아 주민을 노예로 삼고 도시는 에게스타인에게 넘겨주었는데, 에게스타의 기병 얼마가 그들에게 합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군대는 시켈인의 땅을 지나 카타나에 이르렀고, 함대는 노예를 싣고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그러는 동안 니키아스는 히카라에서 곧장 해안을 따라 에게스타로 가 다른 용무를 처리하고 30탈란톤1을 받은 뒤 본대에 다시 합류했다. 이제 그들은 노예를 팔아 120탈란톤을 얻었고, 시켈인 동맹들에게 배를 돌려 병력을 보내라고 재촉했으며, 그러는 동안 제 병력의 절반을 이끌고 겔라 땅에 있는 적대적인 도시 히블라로 갔으나 그곳을 빼앗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여름이 끝났다. 이어진 겨울에 아테네인은 곧바로 시라쿠사로 옮겨 갈 준비를 시작했고 시라쿠사인은 그들대로 아테네인을 치러 나아갈 준비를 했다. 처음에 두려워하며 예상했던 대로 아테네인이 곧바로 치고 들어오지 않은 그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시라쿠사인의 용기는 조금씩 되살아났고, 적이 시칠리아 저편 멀리로 항해해 가고 히블라로 갔다가 그곳을 들이치는 데 실패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을 낮추어 보았으며, 자신감에 찬 순간의 군중이 으레 그러하듯 적이 우리에게 오지 않으니 우리를 카타나로 이끌어 달라고 장군들에게 요구했다. 정찰을 맡은 시라쿠사 기병 부대들도 끊임없이 아테네 원정군 가까이 말을 몰고 와서는 여러 모욕을 퍼붓는 가운데, 너희가 레온티노이인을 그들의 땅에 되앉히러 온 것이 아니라 남의 땅에서 시라쿠사인과 함께 눌러앉으러 온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것을 알아챈 아테네 장군들은 시라쿠사인을 온 병력째 도시에서 되도록 멀리 끌어내고 그동안 저희는 밤에 해안을 따라 배를 몰아 느긋하게 편리한 자리를 차지하기로 정했다. 저희를 맞을 채비를 갖춘 병력 앞에서 배를 대고 내려야 하거나 드러내 놓고 육로로 가야 한다면 그 일을 그만큼 잘해 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럴 경우 시라쿠사의 많은 기병은(저희에게는 없는 병종이었다) 저희의 경보병과 뒤따르는 무리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힐 수 있을 터였으나, 이 계획을 따르면 기병이 이렇다 할 해를 끼칠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 군대에 딸려 온 시라쿠사 망명자 몇이 올림피에이온2 가까이의 그 자리를 그들에게 일러 주었고 그들은 나중에 그곳을 차지했다. 이 생각을 밀고 나가려고 장군들은 다음과 같은 계책을 꾸며 냈다. 그들은 저희에게 충실하면서도 시라쿠사 장군들에게는 못지않게 그들 편으로 여겨지던 사람 하나를 시라쿠사로 보냈으니, 그는 카타나 태생이었고 시라쿠사 장군들이 이름을 알고 있으며 아직 그 도시에 남아 있는 저희 당파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던 자들이 자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인이 무기에서 얼마쯤 떨어진 채 도시 안에서 밤을 보내니, 시라쿠사인이 날을 정해 온 백성을 이끌고 동틀 녘에 와 원정군을 친다면 자기들, 곧 그들의 벗들이 도시 안에 있는 병사들을 가두어 성문을 닫아걸고 배에 불을 지를 것이며, 그동안 시라쿠사인은 방책을 치는 것만으로 진영을 쉽게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이 일에서 그들은 카타나 사람 여럿의 도움을 받을 터인데, 그들은 이미 움직일 채비를 갖추었고 자기도 바로 그들에게서 왔다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모자라지 않았고 이 일이 없었더라도 카타나로 진군할 뜻을 품고 있던 시라쿠사 장군들은 충분히 캐묻지도 않고 그 사람을 믿어 저희가 그곳에 이를 날을 곧바로 정하고 그를 돌려보냈으며, 이제 셀리누스인과 그 밖의 동맹들이 와 있었으므로 시라쿠사인 전부에게 온 병력으로 출진하라는 명을 내렸다. 준비를 마치고 도착하기로 정한 때가 가까워지자 그들은 카타나로 떠나 레온티노이 땅의 시마이토스 강가에서 밤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은 그들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자마자 제 온 병력과 저희에게 합류한 시켈인이며 그 밖의 사람들을 데려다 배와 거룻배에 태우고 밤에 시라쿠사로 항해했다. 그리하여 날이 밝을 무렵 아테네인은 올림피에이온 맞은편에 배를 대고 진 칠 자리를 차지할 채비를 하고 있었으며, 먼저 카타나로 달려갔던 시라쿠사 기병은 원정군이 모두 바다로 나갔음을 알고 돌아와 보병에게 알렸고, 그러자 모두가 함께 발길을 돌려 도시를 구하러 갔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인이 걸어야 할 길이 멀었으므로 아테네인은 조용히 편리한 자리에 군대를 앉혔으니, 저희가 원할 때 싸움을 열 수 있고 싸움에 앞서서도 싸우는 동안에도 시라쿠사 기병이 저희를 괴롭힐 틈이 가장 적은 곳이었다. 한쪽은 담과 집과 나무와 늪이 막아 주고 다른 쪽은 벼랑이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가까운 나무를 베어 바다로 날라 배 곁에 방책을 세웠고, 주워 모은 돌과 서둘러 마련한 목재로 제 자리에서 가장 허술한 지점인 다스콘에 보루를 쌓았으며, 아나포스강에 걸린 다리를 끊었다. 이 준비는 도시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진행되었고, 처음 나타난 적의 병력은 시라쿠사 기병이었으며 그 뒤로 보병 전부가 한꺼번에 따라왔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테네군 가까이까지 다가왔으나 아테네인이 싸움에 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헬로리네 길을 건너 그날 밤 진을 쳤다.

이튿날 아테네인과 그 동맹은 싸울 채비를 했는데 배치는 다음과 같았다. 오른쪽 날개는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이 차지했고, 중앙은 아테네인이, 나머지 자리는 다른 동맹들이 맡았다. 군대의 절반은 여덟 겹으로 앞에 세우고, 절반은 천막 가까이에 역시 여덟 겹으로 속이 빈 네모꼴을 이루어 세워 두어 가장 심하게 밀리는 쪽을 살펴 도우러 갈 채비를 하라는 명을 주었다. 종군하는 잡역꾼들은 이 예비대 안에 두었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인은 중장보병을 열여섯 겹으로 세웠으니, 제 백성의 총동원 병력과 저희에게 합류한 동맹들로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가장 강한 부대는 셀리누스인의 것이었다. 그다음은 겔라인의 기병으로 모두 200명이었으며, 카마리나에서 온 기병 20명가량과 궁수 50명이 있었다. 기병은 오른쪽에 두었는데 1,200명을 넉넉히 채웠고 그 곁에 투창병이 섰다. 아테네인이 막 공격을 열려 할 때 니키아스는 대열을 따라 걸으며 군대와 그것을 이룬 여러 종족에게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을 했다.

병사 여러분, 같은 싸움에 함께 나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긴 권고가 별로 필요하지 않으니, 제 생각에는 약한 군대를 앞에 둔 훌륭한 연설보다 이 병력 자체가 자신감을 불어넣기에 더 알맞습니다.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과 아테네인과 섬사람 가운데 으뜸가는 이들이 한 대열에 나란히 서 있는 마당에, 이토록 많고 이토록 용감한 전우를 곁에 두고도 우리가 승리를 자신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정예에 맞선 것은 총동원한 무리이고, 게다가 시칠리아 그리스인이니, 그들은 우리를 업신여길지언정 우리 앞에 버티고 서지는 못할 것이며 그 솜씨가 그 무모함에 조금도 걸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여러분의 칼이 얻어 낼 땅 말고는 가까이에 우호적인 땅이 없다는 것도 여러분은 기억하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적이 내세우는 것과 정반대되는 동기를 여러분 앞에 놓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제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지만 저의 외침은 우리 것이 아닌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니, 그곳에서 우리는 이기지 못하면 빠져나가기조차 어렵고 그들의 기병이 큰 무리로 우리를 덮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명성을 기억하고 담대히 적에게 나아가되, 지금의 이 궁지와 달리 어찌할 수 없음이 저들보다 더 무섭다고 여기십시오.

이 말을 마치고 니키아스는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나아갔다. 그때 시라쿠사인은 당장 싸움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더러는 가까이 있는 도시로 돌아가 있기까지 했는데, 이들은 이제 있는 힘껏 달려와 늦기는 했어도 합류하는 대로 본대의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싸움에서도 다른 싸움들에서도 시라쿠사인에게 열의나 담대함이 모자랐던 것은 결코 아니었으나, 용기에서 뒤지지 않았어도 그것은 군사의 기술이 데려다주는 데까지였고 그 기술이 저희를 저버리는 자리에서는 결심마저 놓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아테네인이 먼저 공격을 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촉박한 통고에 방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음에도, 곧바로 무기를 들고 맞서러 나아갔다. 먼저 양쪽 군대의 돌 던지는 자와 투석병과 궁수가 앞서 부딪쳐, 경보병끼리 으레 그러하듯 서로를 쫓거나 서로에게 쫓겼다. 다음으로 점술가들이 늘 바치던 제물을 앞으로 내왔고 나팔수들이 중장보병에게 돌격을 재촉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아갔으니, 시라쿠사인은 제 나라를 위해, 또 저마다 그날의 제 목숨과 앞으로의 자유를 위해 나아갔고, 적의 군대에서는 아테네인이 남의 나라를 제 것으로 삼고 패배로 제 나라가 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나아갔으며, 아르고스인과 독립한 동맹들은 저희가 여기 온 목적을 아테네인이 이루도록 돕고 승리로써 두고 온 제 나라를 다시 볼 자격을 얻으려고 나아갔고, 예속된 동맹들은 그 열의의 대부분을 제 목숨을 지키려는 마음에 빚지고 있었으니 이기지 못하면 그것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다음의 부차적인 동기로는 아테네인이 새로 정복하는 것을 도운 뒤에 더 가벼운 조건으로 복무하게 될 가망이 있었다.

이제 양군이 가까이 붙어 오랫동안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고 싸웠다. 그러는 사이 천둥과 번개가 치고 큰비가 쏟아졌으니, 이것은 처음 싸움에 나서 전쟁을 거의 겪어 보지 못한 쪽의 두려움을 키우지 않을 수 없었던 반면, 더 노련한 적에게는 이런 현상이 철에 따른 것으로 보였고 그들에게는 적이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 훨씬 더 큰 두려움이었다. 마침내 아르고스인이 시라쿠사의 왼쪽을 밀어붙였고 그 뒤에 아테네인이 제 앞의 병력을 쫓아 버리니, 시라쿠사군은 이렇게 둘로 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테네인은 멀리까지 쫓지 않았으니, 수가 많고 꺾이지 않은 시라쿠사 기병이 저희를 붙잡아 두어 대열보다 앞서 쫓는 중장보병이 보이면 달려들어 밀어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긴 쪽은 무리를 지어 안전한 데까지 뒤를 쫓다가 돌아와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인은 헬로리네 길에서 다시 모여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대열을 추슬렀고, 아테네인이 그곳의 보물에 손을 댈까 두려워 저희 시민으로 이루어진 수비대까지 올림피에이온으로 보냈다. 나머지는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신전으로 가지 않고 제 전사자를 모아 화장 더미 위에 얹은 뒤 그 벌판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 그들은 휴전 아래 적에게 그 전사자를 돌려주었으니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을 합쳐 260명가량이었고, 저희 쪽의 유골도 아테네인과 동맹을 합쳐 50구가량을 거두었으며, 적에게서 빼앗은 것들을 챙겨 카타나로 배를 몰아 돌아갔다. 이제 겨울이었고 당장은 시라쿠사 앞에서 전쟁을 이어 가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으니, 기병에서 크게 뒤지는 것을 없애려면 아테네에서 기병을 불러오고 시칠리아의 동맹들에게서도 거두어야 했고, 돈도 그 고장에서 모으고 아테네에서 받아야 했으며, 또 싸움을 치른 뒤라 이제는 저희 말에 더 기울리라고 바라던 몇몇 도시를 끌어들이고, 봄에 시라쿠사를 칠 원정에 쓸 곡식과 그 밖의 온갖 필수품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뜻을 품고 그들은 겨울을 나려고 낙소스와 카타나로 배를 몰았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인은 제 전사자를 태우고 나서 민회를 열었는데, 그 자리에서 헤르몬의 아들 헤르모크라테스가 앞으로 나와 그들을 북돋웠으니, 그는 으뜸가는 일반적 재능에 더해 이 전쟁에서 군사의 역량과 빛나는 용기를 이미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는 일어난 일 때문에 주저앉지 말라고, 정복당한 것은 그들의 기개가 아니며 규율이 모자랐던 것이 해를 끼쳤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도 그들은 예상할 수 있었던 것만큼 크게 지지는 않았으니, 말하자면 전쟁 기술에서는 풋내기였고 그리스에서 가장 단련된 병사들에 맞선 장인들의 군대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또 크게 해를 끼친 것은 장군의 수(그들은 15명이었다)와 내려진 명령의 많음이었고 거기에 병사들의 무질서와 불복종이 겹쳤다고 했다. 그러나 솜씨 있는 장군을 몇 사람만 두고 이번 겨울을 중장보병을 갖추는 데 써서 무기가 없는 자에게 무기를 마련해 주어 수를 되도록 늘리고 두루 훈련에 힘쓰도록 몰아붙인다면 적을 이길 가망이 얼마든지 있으니, 용기는 이미 그들의 것이고 거기에 싸움터의 규율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로 이 두 가지가 모두 나아질 터인데, 위험이 그들에게 규율을 익히게 하고 솜씨가 불어넣는 자신감이 그들의 용기를 저 자신을 넘어서도록 이끌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군은 수가 적어야 하고 전권을 주어 뽑아야 하며 그 지휘에 온전한 재량을 맡긴다는 맹세를 해야 한다고, 이 방안을 받아들이면 비밀이 더 잘 지켜지고 모든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며 변명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지리라고 했다.

시라쿠사인은 그의 말을 듣고 그가 권한 대로 모두 표결했으며, 장군 셋을 뽑았으니 헤르모크라테스 자신과 리시마코스의 아들 헤라클레이데스와 엑세케스테스의 아들 시카노스였다. 그들은 또 코린트와 스파르타에 사절을 보내어 저희에게 합류할 동맹의 병력을 얻고, 스파르타인이 저희를 위해 아테네인과의 전쟁에 드러내 놓고 진심으로 나서게 하여, 아테네인이 시칠리아를 떠나게 되거나 그곳의 제 군대에 원군을 보내기 어렵게 만들려 했다.

카타나에 있던 아테네 병력은 이제 곧바로 메시나로 배를 몰았으니 그 도시가 저희에게 넘어오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통은 끝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 그 일을 알고 있던 알키비아데스가 본국의 소환을 받아 지휘권을 놓을 때 저가 추방당하리라는 것을 내다보고 메시나에 있는 시라쿠사의 벗들에게 그 음모를 알렸고, 그들은 곧바로 주모자들을 죽였으며 이제 뜻을 같이하는 자들과 함께 반대 당파에 맞서 무기를 들고 일어나 아테네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인은 13일을 기다렸으나 비바람에 드러난 채 먹을 것도 없고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하자 낙소스로 돌아가, 배를 댈 자리를 마련하고 진영 둘레에 방책을 세운 뒤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봄에 저희와 합류할 돈과 기병을 청하러 아테네로 갤리선 한 척을 보냈다. 겨울 동안 시라쿠사인은 아폴론 테메니테스 상을 안에 넣도록 도시에 잇대어 성벽을 쌓았으니, 에피폴라이를 바라보는 쪽 전체를 따라 쌓아 저희가 패할 경우 포위벽을 두르는 일을 더 길고 더 어렵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메가라에 요새 하나를 세우고 올림피에이온에 또 하나를 세웠으며, 배를 댈 만한 자리가 있는 바닷가마다 방책을 박아 두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이 낙소스에서 겨울을 나고 있음을 알고 그들은 온 백성을 이끌고 카타나로 나아가 그 땅을 짓밟고 아테네인의 천막과 진영에 불을 지른 뒤 집으로 돌아갔다. 또 아테네인이 라케스 시절에 맺은 동맹을 내세워 할 수 있다면 카마리나를 얻으려고 그곳에 사절을 보내고 있음을 알고, 그에 맞서도록 시라쿠사에서 다른 사절을 보냈다. 그들은 카마리나인이 첫 싸움에 보낸 얼마 안 되는 것조차 그리 기꺼이 보낸 것이 아니라고 예리하게 의심하고 있었고, 이제 아테네인이 그 싸움에서 거둔 성공을 본 뒤로는 앞으로 저희를 전혀 돕지 않으려 하고 옛 우의를 내세워 아테네인 쪽에 붙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헤르모크라테스가 몇 사람과 함께 시라쿠사에서 카마리나에 이르렀고 에우페모스와 다른 이들이 아테네인 쪽에서 이르렀으며, 카마리나인의 민회가 소집되자 헤르모크라테스는 그들이 아테네인에게 나쁜 마음을 품게 하려는 뜻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카마리나 여러분, 우리가 이 사절로 온 것은 여러분이 아테네인의 실제 병력에 겁먹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아무것도 듣기 전에 그들이 여러분에게 할 말에 여러분이 넘어갈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아시는 그 구실과 우리 모두가 의심하는 그 속셈을 품고 시칠리아에 왔으니, 제 생각으로는 레온티노이인을 그 집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라기보다 우리를 우리 집에서 내쫓으려는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짓밟아 없앤 도시를 시칠리아에서는 되세운다는 것이, 또 레온티노이의 칼키스인은 이오니아의 피를 나누었다 하여 아끼면서 레온티노이가 그 식민시로 나온 에우보이아의 칼키스인은 예속 아래 붙들어 둔다는 것이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리스에서 그토록 잘 통한 바로 그 방책을 이제 시칠리아에서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디아인을 벌하려고 이오니아인과 아테네에서 나온 다른 동맹들의 지도자로 뽑힌 뒤에, 아테네인은 더러는 군역을 다하지 않았다고 걸고 더러는 저희끼리 싸웠다고 걸고 또 다른 이들은 그때그때 찾아낼 수 있는 그럴듯한 구실이라면 무엇으로든 걸어 마침내 그들 모두를 굴복시켰습니다. 요컨대 메디아인과 겨룰 때 아테네인은 그리스인의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고 그리스인도 제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니, 앞의 사람들은 제 동포가 그 왕 대신 저희를 섬기게 하려고 싸웠고 뒤의 사람들은 한 주인을 다른 주인으로 바꾸려고 싸웠을 뿐인데, 새 주인이 먼젓번 주인보다 더 영리하기는 했으나 악한 일에 더 영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온 것은 아테네처럼 탓할 거리가 훤히 드러난 나라의 악행을 그것을 이미 잘 아는 청중 앞에서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탓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받쳐 주지 않은 탓에 노예가 된 저쪽 지역의 그리스인들에게서 경고를 얻어 가지고 있고 이제 그와 똑같은 궤변이 우리 자신에게 시험되는 것을 보면서도(레온티노이의 친족을 되세운다느니 에게스타의 동맹을 돕는다느니 하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데 뭉쳐 이곳에는 끊임없이 바꾸어 대면서도 언제나 주인을, 때로는 메디아인을 때로는 다른 누군가를 섬기는 이오니아인도 헬레스폰토스인도 섬사람도 없고 독립한 펠로폰네소스에서 나와 시칠리아에 사는 자유로운 도리스인이 있을 뿐임을 단호히 보여 주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한 도시씩 차례로 따로 잡아먹힐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가 정복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이 바로 이 방안으로 돌아서서 어떤 이들은 말로 갈라놓고 어떤 이들은 동맹이라는 미끼로 꾀어 서로 드러내 놓고 싸우게 만들며 또 어떤 이들은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먹힐 만한 아첨으로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보면서도 말입니다. 그리고 멸망이 멀리 있는 동포를 먼저 덮칠 때, 그 위험이 우리 각자에게는 오지 않으리라고, 또는 우리보다 먼저 겪는 자가 저 혼자만 겪고 말리라고 우리는 여기는 것입니까?

아테네의 적은 저가 아니라 시라쿠사라고 말하면서 제 나라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가혹하다고 여기는 카마리나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에게 이것을 새겨 두라고 하겠습니다. 그가 제 나라에서 싸운다 해도 그것은 제 나라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그 자신의 나라를 위해서라는 것, 게다가 제가 무너져 길이 열린 뒤에 혼자 싸움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저를 동맹으로 두고 들어서는 것이니 그만큼 더 안전하다는 것, 그리고 아테네인의 목적은 시라쿠사의 적의를 벌하는 데 있다기보다 저를 가림막 삼아 카마리나의 우의를 붙드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시새우거나 심지어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큰 세력은 언제나 시샘과 두려움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본때를 보이려고 시라쿠사가 꺾이기를 바라면서도 제 안전을 생각해 시라쿠사가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그가 마음껏 품는 그 바람은 사람으로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제 바람은 다스릴 수 있어도 형편까지 그렇게 다스릴 수는 없으니, 그 셈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면 그는 제 불운을 한탄하며 살아가게 되고 다시 저의 번영을 시새울 수 있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 이름은 다르되 실상은 그에게나 우리에게나 똑같은 그 위험의 몫을 지금 나누어 지기를 마다하고 우리를 내버린다면 그것은 헛된 바람일 뿐이니, 이름으로는 우리 세력을 지키는 일이 실상은 그 자신을 건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보다 여러분이, 카마리나 여러분이 우리의 바로 이웃이고 그다음으로 위태로운 처지이니 이것을 내다보았으리라고, 그래서 지금처럼 미지근하게 우리를 돕는 대신 오히려 제 발로 우리에게 와서, 만약 아테네인이 카마리나에 먼저 왔더라면 여러분이 카마리나에서 청했을 바로 그 도움을 이제 시라쿠사에서 내놓으며 침략자에게 맞서라고 우리를 북돋우리라고 마땅히 기대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나머지 사람들도 아직 이쪽으로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두려움 탓에 여러분은 우리에게도 침략자에게도 옳게 처신하려고 애쓰면서 아테네인과 동맹을 맺고 있다고 내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 동맹을 맺은 것은 여러분의 벗에 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을 칠지도 모를 적에 맞서기 위해서였고, 아테네인이 남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서였지 지금처럼 그들이 이웃에게 부당한 일을 하고 있을 때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레기온인조차 칼키스 혈통이면서 칼키스계인 레온티노이인을 되세우는 일을 돕기를 마다합니다. 그들은 이 그럴듯한 구실의 속내를 의심하여 까닭도 없이 지혜롭게 구는데, 온갖 까닭이 여러분 편에 있는 여러분이 도리어 타고난 적을 돕겠다고 나서고, 자연이 여러분의 친족으로 만들어 준 이들을 그 가장 모진 원수들과 손잡고 망치려 든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이것은 옳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원정군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버티면 그 군대는 조금도 무섭지 않고,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그들의 시도가 성공하도록 내버려 둘 때에만 무서운 것이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들은 우리만을 쳐서 싸움에 이기고도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물러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뭉치기만 하면 우리에게는 낙담할 까닭이 없고 오히려 함께 손잡을 새로운 힘이 있습니다. 더구나 군사의 일에서 아테네인보다 뛰어남이 의심할 바 없는 펠로폰네소스인에게서 도움이 우리에게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양쪽 모두의 동맹이니 어느 쪽에도 서지 않겠다는 여러분의 신중한 방책이 여러분에게 안전하다거나 우리에게 공정하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제로 그것은 스스로 내세우는 만큼 공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합류하기를 거부한 탓에 질 쪽이 지고 이길 쪽이 이긴다면, 여러분이 물러서 있는 것의 결과가 앞의 쪽을 도움 없이 죽게 내버려 두고 뒤의 쪽이 아무 거리낌 없이 죄를 짓도록 놓아두는 것 말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도 해를 입은 쪽일 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친족이기도 한 이들과 손잡아 시칠리아의 공동 이익을 지키고 여러분의 벗인 아테네인이 그릇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건져 주는 편이 더 명예로운 일일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 시라쿠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나 다른 이들이 우리만큼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일은 우리에게 부질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간청하며, 그 간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한 적인 이오니아인에게 위협받으면서 같은 도리스인인 여러분에게 배신당하고 있다고 항의하는 바입니다. 아테네인이 우리를 굴복시킨다면 그 승리는 여러분의 결정에 빚진 것이겠으나 명예는 제 이름으로 거두어들일 것이고, 그 승리를 얻게 해 준 바로 그 사람들을 승전의 상으로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이긴다면 여러분은 우리를 위태롭게 한 장본인이 된 값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헤아려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당장의 굴종이 주는 안전과, 우리와 함께 이겨서 아테네인 주인에게 수치스럽게 머리 숙이는 일을 면하고 시라쿠사의 오래가는 적의를 피할 가망 사이에서 선택하십시오.

헤르모크라테스의 말은 이러했다. 그 뒤를 이어 아테네 사절 에우페모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 온 것은 다만 앞서 맺은 동맹을 새로이 하기 위해서였으나, 시라쿠사인이 걸어 온 공격 탓에 우리 제국과 그에 대해 우리가 지닌 정당한 권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가장 좋은 증거는 앞서 말한 사람 자신이 이오니아인을 도리스인의 영원한 적이라 불렀을 때 스스로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펠로폰네소스의 도리스인이 수에서 우리보다 앞서고 바로 이웃이었으므로 우리 이오니아인은 그 지배를 벗어날 가장 좋은 길을 찾았습니다. 페르시아 전쟁 뒤에 우리에게 함대가 생겼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의 제국과 패권을 벗어 버렸으니, 그들이 우리에게 명령할 권리란 그때 가장 강했다는 것 말고는 우리가 그들에게 명령할 권리보다 나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왕의 옛 신민들의 지도자로 세워진 뒤로 우리는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 우리를 지킬 힘을 가지고 있으면 펠로폰네소스인의 지배 아래 떨어질 가망이 가장 적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엄밀히 말해 시라쿠사인이 우리가 노예로 삼았다고 말하는 그 친족, 곧 이오니아인과 섬사람을 복종 아래 둔 데서 우리는 부당한 일을 조금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친족인 그들은 메디아인과 함께 제 모국을, 곧 우리를 치러 왔고, 우리가 우리 도시를 버렸을 때처럼 들고일어나 제 재산을 내던질 용기를 내는 대신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택했고 우리마저 그렇게 만들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스릴 자격이 있는 것은 우리가 가장 큰 함대와 물러서지 않는 애국심을 그리스인에게 바쳤기 때문이고, 우리의 신민인 이들이 메디아인에게 선뜻 굽힘으로써 우리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이며, 그런 자격을 떠나서도 우리는 펠로폰네소스인에 맞서 우리 자신을 튼튼히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민족을 우리 손만으로 무너뜨렸다고 해서, 또는 문제가 된 그 신민들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무릅쓴 위험을 무릅썼다고 해서 다스릴 권리가 있다는 그럴듯한 주장을 내세우지 않으니, 그 위험은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것이자 우리 자신의 자유를 위한 것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 안전을 제대로 돌보았다고 해서 시비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시칠리아에 와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 안전을 위해서인데, 우리가 보기에 여러분의 이익도 그것과 맞아떨어집니다. 우리는 시라쿠사인이 우리에게 들씌우고 여러분이 다소 지나치게 겁먹은 채 의심하는 그 행실에서 바로 이것을 증명하니, 두려움 탓에 의심을 품게 된 사람은 한동안 말솜씨의 매력에 휩쓸릴 수는 있어도 막상 행동할 때가 되면 제 이익을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가 그리스에서 제국을 붙들고 있는 것도 두려움 탓이고, 벗들의 도움을 받아 시칠리아의 일을 안전하게 정돈하려고 이제 온 것도 두려움 탓이니, 누구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도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우리가 여러분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보전되어 시라쿠사인에게 맞설 수 있다면 그들이 펠로폰네소스인에게 병력을 보내어 우리를 해칠 가망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리와 온통 상관이 있으며, 그런 까닭에 우리가 레온티노이인을 되세우되 그들을 에우보이아의 친족처럼 신민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강하게 만들어 제 국경에서 시라쿠사인을 괴롭힘으로써 우리를 돕게 하는 것은 더없이 이치에 닿는 일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우리 혼자서도 적들과 맞설 만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칠리아 사람은 자유롭게 하면서 칼키스 사람은 노예로 삼는다는 것이 도무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주장을 두고 말하자면, 뒤의 사람들은 무기를 갖지 않고 돈만 내놓음으로써 우리에게 쓸모가 있는 반면, 앞의 사람들 곧 레온티노이인과 우리의 다른 벗들은 아무리 독립해 있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참주와 제국을 거느린 도시에게는 이롭기만 하다면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이 없고, 확실하지 않은 한 친족인 자도 없으며, 우의든 적의든 어디서나 때와 형편에 달린 일입니다. 여기 시칠리아에서 우리의 이익은 벗들을 약하게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그들의 힘으로 적들을 꺾는 데 있습니다. 어찌 이것을 의심하십니까? 그리스에서도 우리는 동맹들이 저마다 쓸모 있는 만큼 그에 맞추어 대합니다. 키오스인과 메팀나인은 스스로를 다스리며 배를 내놓고, 나머지 대부분은 더 무거운 조건 아래 돈으로 공물을 바치며, 또 어떤 이들은 섬사람이라 우리가 빼앗기 쉬운데도 아주 자유로우니 펠로폰네소스 둘레의 편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시칠리아의 나라들을 어떻게 할지 정할 때에도 우리가 우리의 이익에 이끌리고, 우리가 말한 대로 시라쿠사인에 대한 두려움에 이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야심은 여러분을 다스리는 것이고, 그들의 목적은 우리가 불러일으키는 의심을 이용해 여러분을 한데 묶었다가 우리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간 뒤에 힘으로든 여러분이 홀로 남은 틈을 타서든 시칠리아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들과 한편이 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주인이 되고 말 것이니, 그만한 크기의 병력이 하나로 뭉치면 우리로서도 더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물러가자마자 그들은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달리 보는 어떤 견해도 사실 앞에서 무너집니다. 여러분이 처음 우리를 불렀을 때 여러분이 내세운 두려움은 우리가 여러분을 시라쿠사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내버려 두면 아테네가 위태로워지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우리를 설득한다며 내세운 바로 그 논거를 이제 와서 믿지 않는 것도, 우리가 그 도시의 힘에 맞서 더 큰 병력을 이끌고 왔다고 해서 의심에 굴복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믿지 말아야 할 자들은 시라쿠사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없이는 여기 머무를 수 없고, 설령 여러분을 복종 아래 둘 만큼 우리가 신의를 저버린다 해도 항해가 멀고 크면서 군사로 보아 대륙에 속하는 도시들을 지키기가 어려우므로 여러분을 묶어 둘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 시라쿠사인은 여러분 가까이에 살되 진영이 아니라 우리가 데려온 병력보다 큰 도시에 살며, 언제나 여러분을 노려 음모를 꾸미고 한번 찾아온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니 레온티노이인과 다른 이들의 경우에서 그것을 이미 보여 주었고, 이제는 여러분이 바보라도 되는 양 뻔뻔스럽게도 그 일을 막고 여태껏 시칠리아를 독립되게 지켜 온 그 힘에 맞서 저희를 도와 달라고 여러분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에 맞서 우리는 훨씬 더 실질적인 안전으로 여러분을 부르니, 서로가 서로에게 지니고 있는 그 공동의 안전을 저버리지 말라고, 또 그들은 동맹이 없어도 그 수만으로 여러분에게 이르는 길을 언제나 열어 두고 있는 반면 여러분은 이토록 많은 원군을 데리고 스스로를 지킬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헤아려 달라고 청하는 바입니다. 의심 때문에 여러분이 이 원군을 한 번 성과 없이, 또는 패한 채로 떠나보낸다면, 그들이 곁에 있어 여러분에게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었던 그날이 지나간 뒤에 여러분은 그 가운데 한 줌만이라도 다시 보았으면 하고 바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카마리나 여러분, 우리는 시라쿠사인의 중상이 여러분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의심받고 있는 일들을 두고 우리는 온전한 진실을 여러분에게 말했으니, 이제 여러분을 납득시키기를 바라며 짧게 되짚겠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그리스에서 다스리는 자인 것은 신민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고, 시칠리아에서 해방자인 것은 시칠리아인에게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이며, 우리가 많은 일에 끼어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고, 전에도 그랬듯 지금도 우리가 이 섬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는 분들에게 동맹으로 온 것은 부름 없이 온 것이 아니라 부름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우리 행실의 재판관이나 감찰관을 자처하며 이제 와서는 하기도 어려울 일, 곧 우리를 돌려세우려 애쓰는 대신, 우리의 간섭하는 방책이나 우리 기질 가운데 여러분의 이익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취해 쓰십시오. 그리고 그 방책이 모두에게 똑같이 해롭기는커녕 그리스인 대부분에게는 이롭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오. 그 덕분에, 우리가 있지 않은 곳에서까지 어디서나 침략을 두려워하거나 침략을 꾀하는 모든 사람은, 앞의 경우에는 우리가 저희 편으로 끼어들어 주리라는 눈앞의 전망 때문에 제 수고 없이 보전되고, 뒤의 경우에는 우리가 나타나면 그 모험이 위태로워지리라는 눈앞의 전망 때문에 제 뜻과 달리 삼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원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고 이제 여러분에게 내밀어진 이 안전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다른 이들이 하는 대로 하십시오. 늘 시라쿠사인에 맞서 방어만 하고 있는 대신 우리와 손잡고, 이제는 여러분이 그들을 위협할 차례로 나아가십시오.

에우페모스의 말은 이러했다. 카마리나인이 느낀 바는 이러했다. 그들은 아테네인이 시칠리아를 굴복시킬까 두려운 한에서만 아니라면 아테네인에게 마음이 기울었고 이웃한 시라쿠사와는 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웃이라는 그 사실 때문에 그들은 둘 가운데 시라쿠사인을 더 두려워했고 저희가 없어도 시라쿠사인이 이기지 않을까 걱정했으므로, 먼저는 앞서 말한 얼마 안 되는 기병을 그들에게 보냈고 앞으로도 실제로는 그들을 가장 많이 돕되 되도록 아끼며 돕기로 정했다. 다만 당장은 아테네인을, 더구나 싸움에서 이긴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양쪽에 똑같이 답하기로 했다. 이 결의에 따라 그들은 싸우는 두 편이 다 저희 동맹이니 지금으로서는 어느 쪽에도 서지 않는 것이 저희 맹세에 가장 맞는다고 여긴다고 답했으며, 이 답을 받고 양쪽 사절은 떠났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가 전쟁 준비를 이어 가는 사이에 아테네인은 낙소스에 진을 치고 교섭으로 되도록 많은 시켈인을 얻으려 애썼다. 저지대에 가까이 살며 시라쿠사에 예속된 자들은 대개 발을 들이지 않았으나, 내륙의 주민들은 여태 독립되지 않은 적이 없었으므로 몇을 빼고는 곧바로 아테네인 편에 섰고 군대에 곡식을 날라 왔으며 더러는 돈까지 가져왔다. 아테네인은 합류하기를 거부한 자들을 치러 나아가 더러는 그렇게 하도록 억지로 시켰으나, 또 다른 자들의 경우에는 시라쿠사인이 수비대와 원군을 보내는 바람에 막혔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은 겨울 숙영지를 낙소스에서 카타나로 옮기고 시라쿠사인이 태운 진영을 다시 세워 남은 겨울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들은 또 도움을 얻을 가망을 보고 우의를 내밀며 카르타고로 갤리선 한 척을 보냈고 티레니아로도 한 척을 보냈으니, 그곳의 몇몇 도시가 스스로 나서서 이 전쟁에 함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시켈인과 에게스타에도 사람을 돌려 되도록 많은 말을 보내 달라고 청했으며, 그러는 동안 벽돌과 쇠를 비롯해 포위벽을 쌓는 일에 필요한 온갖 것을 갖추어 봄에는 싸움을 열 작정이었다.

그러는 동안 코린트와 스파르타로 보내진 시라쿠사 사절들은 해안을 따라가며 아테네인이 벌이는 일이 시라쿠사 못지않게 이탈리아도 위협한다는 것을 들어 그 일을 막아 달라고 이탈리아 그리스인을 설득하려 애썼고, 코린트에 이르러서는 같은 혈통임을 내세워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코린트인에게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코린트인은 곧바로 저희가 마음과 힘을 다해 그들을 돕기로 표결했고, 그다음에는 스파르타에도 사절을 함께 보내어 스파르타 역시 본국에서 더 드러내 놓고 아테네인과의 전쟁을 밀고 나가고 시칠리아에 원군을 보내도록 설득하는 일을 거들게 했다. 코린트에서 온 사절들이 스파르타에 이르러 보니 알키비아데스가 함께 망명한 자들과 더불어 그곳에 있었는데, 그는 투리이에서 장삿배를 타고 곧바로 건너가 먼저 엘리스의 킬레네에 이르렀고 그다음에 그곳에서 스파르타로 왔으니, 스파르타인 자신의 초청을 받되 먼저 안전을 보장받은 뒤에 온 것으로 만티네이아의 일에서 저가 맡았던 몫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코린트인과 시라쿠사인과 알키비아데스가 스파르타인의 민회에서 모두 같은 청을 밀어붙여 그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감독관(에포로스)3과 당국자들은 시라쿠사가 아테네인에게 항복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곳에 사절을 보내기로 결심하면서도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보낼 뜻은 보이지 않았으므로, 이제 알키비아데스가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말하여 스파르타인을 달구고 들쑤셨다.

저는 먼저 저를 향한 편견을 두고 여러분께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의심 때문에 여러분이 공적인 일에 관한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집안의 조상들이 어떤 불만 때문에 내던진 그 인연, 곧 여러분의 프로크세노스4로서 여러분과 맺고 있던 인연을 저 자신은 여러분을 위해 힘씀으로써 되살리려 했으니 특히 필로스의 재난 때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런 우호적인 태도를 지켰음에도 여러분은 제 적들을 통해 아테네인과 화약을 맺는 길을 택하여 그들의 힘을 키우고 저의 신망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만티네이아인과 아르고스인 쪽으로 돌아서고 여러분을 가로막고 해칠 다른 기회들을 붙잡았다 해도 여러분에게는 불평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순간의 쓰라림에 저에게 부당하게 화를 냈을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이 이 일을 참된 빛 아래에서 보고 달리 여기실 때가 이제 왔습니다. 또 제가 민중 쪽으로 더 기울었다 하여 저를 나쁘게 판단한 분들도 그 싫어함에 더 나은 근거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집안은 언제나 참주에게 적대적이었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권력에 맞서는 자는 모두 민중이라 불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다중의 지도자로 행동했으며, 게다가 민주정이 그 도시의 정체였으므로 대개의 일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시대의 방종한 기질보다는 더 절제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도 지금도 다중을 그릇된 길로 이끌려 한 다른 자들이 있었지만(저를 추방한 바로 그자들입니다), 우리 당파는 온 백성의 당파였으니, 도시가 더없는 위대함과 자유를 누리게 해 주었고 우리가 이미 있는 그대로 물려받은 그 정체를 지키는 데 우리 몫을 다한다는 것이 우리의 신조였기 때문입니다. 민주정으로 말하자면 우리 가운데 분별 있는 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저도 누구 못지않게 알고 있었으니 제게는 그것을 탓할 까닭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뻔히 드러난 어리석음을 두고 새로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여러분의 적의에 눌린 채 그것을 바꾸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향한 편견에 관해서는 이쯤 해 두겠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이 헤아리셔야 할 문제들로, 또 아마도 남보다 나은 앎이 있어 제가 말할 수 있는 문제들로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겠습니다. 우리가 시칠리아로 배를 몬 것은 먼저 할 수만 있다면 시칠리아 그리스인을 정복하고 그다음에는 이탈리아 그리스인까지 정복하며 마지막으로 카르타고의 제국과 도시를 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계획이 모두, 또는 대부분 성공할 경우에 우리는 펠로폰네소스를 칠 작정이었으니, 그 지역에서 새로 얻은 그리스인의 온 병력을 데려오고, 이베리아인을 비롯해 그 나라들에 있는 자들로서 알려진 가운데 가장 호전적임을 누구나 인정하는 이민족 여럿을 삯을 주고 데려오며, 이탈리아에 목재가 넉넉하므로 이미 가진 것에 더해 갤리선을 많이 지어, 이 함대로 바다에서 펠로폰네소스를 봉쇄하고 뭍에서는 우리 군대로 들이쳐 어떤 도시는 힘으로 빼앗고 어떤 도시는 둘레에 포위벽을 둘러 어렵지 않게 그것을 굴복시키기를, 그런 뒤에는 그리스라는 이름 전체를 다스리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는 동안 이 계획을 더 잘 이루는 데 필요한 돈과 곡식은 본국의 세입과는 따로 그 나라들에서 새로 얻은 곳들이 넉넉히 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은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에게서 이번 원정의 내력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장군들도 할 수만 있다면 그 목적을 똑같이 밀고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돕지 않으면 시칠리아의 나라들이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는 것을 이제 보여 드리겠습니다. 시칠리아 그리스인은 그 온갖 미숙함에도 병력을 하나로 모으기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건져질 수 있겠으나, 온 백성을 이끌고 싸운 한 번의 싸움에서 이미 지고 바다에서 봉쇄당한 시라쿠사인만으로는 지금 그곳에 있는 아테네 원정군을 버텨 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라쿠사가 무너지면 시칠리아 전체가 함께 무너지고 곧바로 이탈리아가 뒤따르니, 제가 방금 말씀드린 그쪽에서 오는 위험이 머지않아 여러분에게 닥칠 것입니다. 그러니 시칠리아만이 문제라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제가 말씀드리는 대로 서둘러 하지 않는다면 펠로폰네소스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니, 제 배의 노를 제 손으로 저을 수 있고 뭍에 내리는 순간 중장보병으로 싸울 수 있는 병력을 배에 태워 시라쿠사로 보내야 하며, 제가 그 병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이미 서 있는 병력에 규율을 세우고 복무를 마다하는 자들을 억지로 나서게 할 지휘관으로 스파르타 시민5 한 사람을 보내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이 이미 가진 벗들은 더 자신을 얻을 것이고 망설이는 자들은 여러분 편에 설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여러분은 이곳에서 전쟁을 더 드러내 놓고 밀고 나가야 하니, 그래야 시라쿠사인이 여러분이 저희를 잊지 않았음을 보고 저항에 힘을 낼 것이며 아테네인은 제 원정군을 보강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티카의 데켈레이아를 요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아테네인이 언제나 가장 두려워하는 타격이며 이번 전쟁에서 저희가 아직 겪지 않았다고 여기는 단 하나의 타격이기 때문입니다. 적을 해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알아내어 그것으로 치는 길을 고르는 것이니, 누구나 제 약한 데를 가장 잘 알고 그에 따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그 요새는 여러분에게 이로운 한편 여러분의 맞수에게는 어려움을 안길 터인데, 그 어려움 가운데 많은 것은 지나치고 으뜸가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고장에 있는 재산은 무엇이든 그 대부분이 빼앗기든 넘겨지든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테네인은 라우리온 은광에서 나오는 세입과 제 땅과 법정에서 지금 얻고 있는 이익을, 무엇보다 동맹들에게서 오는 세입을 곧바로 잃게 되니, 동맹들은 아테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풀리고 여러분이 힘차게 전쟁에 나서는 것을 보게 되면 그 돈을 전처럼 꼬박꼬박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 여러분, 이 모든 일이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빨리 이루어질지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될 수 있는 일인지로 말하자면 저는 아주 자신하며 제가 틀렸을까 하는 걱정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제가 여태 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통하다가 이제 그 나라의 가장 모진 적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그 나라를 치는 일에 나섰다 하여 저를 더 나쁘게 여기지 않기를, 또 제 말을 추방당한 자의 열기에서 나온 열매라고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추방자가 된 것은 저를 내몬 자들의 불의 탓이지, 여러분이 제 말을 따라 주신다면 여러분을 섬기는 일에서 쫓겨난 것이 아닙니다. 저의 가장 모진 적은 제 원수를 해쳤을 뿐인 여러분이 아니라 제 벗들을 원수가 되도록 몰아붙인 자들입니다.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제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시민으로서 제 권리를 안전하게 누리던 때에 제가 느꼈던 것입니다. 실로 저는 제가 지금 여전히 제 것인 나라를 치고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더는 제 것이 아닌 나라를 되찾으려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나라를 참으로 사랑하는 자는 그 나라를 치느니 차라리 부당하게 잃는 데 동의하는 자가 아니라, 그 나라를 너무도 그리워한 나머지 그것을 되찾으려고 어디까지든 가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스파르타 여러분, 저를 두고 말씀드리자면 온갖 위험과 수고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저를 쓰시기를 청하며, 누구나 입에 올리는 그 논거를, 곧 제가 적으로서 여러분에게 큰 해를 끼쳤다면 벗으로서도 그만큼 여러분에게 좋은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를 청하니, 저는 아테네인의 계획은 알고 있으면서 여러분의 계획은 짐작만 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두고는 지금 여러분의 가장 중대한 이익이 논의되고 있음을 믿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그리고 시칠리아와 아티카로 보낼 원정을 망설이지 말고 내보내시기를 촉구합니다. 여러분 병력의 작은 일부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여러분은 그 섬의 중요한 도시들을 건질 것이고 아테네의 힘을 지금의 것도 앞으로의 것도 무너뜨릴 것이며, 그런 뒤에는 안전하게 살면서 온 그리스에 대한 패권을, 힘이 아니라 동의와 애정 위에 선 패권을 누릴 것입니다.

알키비아데스의 말은 이러했다. 스파르타인은 저희도 전부터 아테네로 진군할 뜻을 품고 있었으나 여전히 기다리며 주위를 살피던 참이었는데, 알키비아데스에게서 바로 이 소식을 듣자 곧바로 훨씬 더 진지해졌으니 이 일의 진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서 들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데켈레이아를 요새로 만드는 일과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곧바로 도움을 보내는 일로 눈을 돌렸고, 클레안드리다스의 아들 길리포스를 시라쿠사인의 지휘관으로 지명하여 그 백성과, 또 코린트인과 의논해 형편이 허락하는 가장 좋고 가장 빠른 길로 원군이 그 섬에 이르도록 준비하라고 일렀다. 길리포스는 코린트인에게 배 2척을 곧바로 아시네로 보내고 나머지 보내려던 배들을 갖추어 때가 되면 떠날 수 있게 해 두라고 청했다. 이 일을 정한 뒤 사절들은 스파르타를 떠났다.

그러는 동안 시칠리아에서 장군들이 돈과 기병을 청하러 보낸 아테네 갤리선이 이르렀고, 아테네인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듣고 나서 원정군에 보낼 보급품과 기병을 보내기로 표결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났으며, 그와 함께 투키디데스가 그 역사를 쓴 이번 전쟁의 제17년도 끝났다.

이듬해 여름, 철이 시작되자마자 시칠리아의 아테네인은 카타나에서 배를 내어 해안을 따라 시칠리아의 메가라로 갔으니, 앞서 말한 대로 시라쿠사인이 참주 겔론 시절에 그 주민을 내쫓고 그 땅을 차지한 곳이었다. 아테네인은 이곳에 내려 그 땅을 짓밟았으며, 시라쿠사인의 요새 하나를 쳤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함대와 군대를 이끌고 테리아스 강으로 나아가 내륙으로 들어가 평야를 짓밟고 곡식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마주친 얼마 안 되는 시라쿠사 부대에서 몇을 죽이고 전승 기념물을 세운 뒤 배로 돌아갔다. 이제 그들은 카타나로 배를 몰아 그곳에서 식량을 실었고, 온 병력을 이끌고 시켈인의 도시 켄토리파로 가 항복을 받아 그곳을 얻었으며, 이네사인과 히블라인의 곡식도 태운 뒤 떠났다. 카타나로 돌아와 보니 아테네에서 기병 250명이 와 있었는데(장비는 갖추었으나 말은 현지에서 구하기로 되어 있어 말은 없었다), 말 탄 궁수 30명과 은 300탈란톤도 함께였다.

같은 봄에 스파르타인은 아르고스를 치러 나아가 클레오나이까지 갔으나 지진이 일어나 돌아갔다. 그 뒤 아르고스인은 제 경계에 있는 티레아 땅을 침공해 스파르타인에게서 많은 노획물을 얻었는데 그것을 판 값이 25탈란톤에 못지않았다. 같은 여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테스피아이의 민중이 공직에 있는 당파를 쳤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테베에서 원군이 이르러 더러는 붙잡혔으며 다른 자들은 아테네로 달아나 몸을 맡겼다.

같은 여름에 시라쿠사인은 아테네인에게 기병이 합류했고 이제 곧 저희를 치러 나아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도시 바로 위에 자리 잡은 가파른 곳인 에피폴라이의 주인이 되지 않고서는 아테네인이 싸움에 이긴다 해도 저희를 쉽게 에워쌀 수 없음을 알고 그 오르는 길을 지키기로 정했으니, 적이 눈에 띄지 않게 이 길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곳이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고 나머지는 높은 땅으로 도시까지 곧바로 떨어져 내려 안에서 전부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며, 나머지 땅보다 위에 놓여 있어 시라쿠사인은 그곳을 에피폴라이, 곧 윗마을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그들은 동틀 녘에 온 병력으로 아나포스강가의 풀밭으로 나아갔으니, 새 장군인 헤르모크라테스와 그 동료들이 갓 자리에 오른 참이었고, 그들은 중장보병을 사열하여 그 가운데 먼저 600명을 정예로 뽑아 안드로스에서 망명한 디오밀로스의 지휘 아래 두고 에피폴라이를 지키면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로든 부르는 즉시 달려갈 채비를 하게 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은 바로 그날 아침 사열을 하고 있었으니, 이미 카타나에서 온 원정군 전부가 눈에 띄지 않게 뭍에 닿아 레온이라 불리는 곳 맞은편, 에피폴라이에서 0.5마일6이 조금 넘는 곳에 군대를 내려놓았고, 함대는 탑소스에 닻을 내려 두었는데 그곳은 좁은 지협으로 이어진 채 바다로 뻗어 나간 반도로 뭍으로도 물로도 시라쿠사 도시에서 멀지 않았다. 아테네 해군이 그 지협을 가로질러 방책을 치고 탑소스에 조용히 머무는 동안 육군은 곧바로 달음질로 에피폴라이로 나아가, 시라쿠사인이 저희를 알아채거나 풀밭과 사열에서 올라오기 전에 에우리엘로스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디오밀로스는 제 600명과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되도록 빨리 나아갔으나 풀밭에서 그들에게 이르기까지 거의 3마일을 가야 했다. 이런 식으로 자못 어지러운 채 부딪친 시라쿠사인은 에피폴라이의 싸움에서 패해 300명가량이 죽고 그 가운데 디오밀로스도 있는 채로 도시로 물러났다. 그 뒤 아테네인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휴전 아래 시라쿠사인에게 그 전사자를 돌려주었으며, 이튿날 시라쿠사 도시 자체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무도 맞으러 나오지 않자 다시 올라가 에피폴라이의 벼랑 끝, 메가라를 바라보는 자리에 라브달론 요새를 쌓아, 싸우러 나아가거나 공사에 나갈 때마다 짐과 돈을 두는 창고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게스타에서 기병 300명이 그들에게 왔고 시켈인과 낙소스인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서 100명가량이 왔다. 그리하여 아테네에서 온 250명까지 합쳐(그들에게는 에게스타인과 카타나인에게서 얻은 말과 그 밖에 사들인 말을 마련해 주었다) 이제 그들이 모은 기병은 모두 650명이었다. 라브달론에 수비대를 둔 뒤 그들은 시카로 나아가 그곳에 자리 잡고 포위벽의 중심이 될 원형 보루를 빠르게 쌓았다. 공사가 나아가는 속도에 질린 시라쿠사인은 나가서 그들과 맞붙어 싸움을 걸고 그 일을 끊기로 정했다. 그리하여 두 군대가 이미 싸움 대형을 갖추었으나, 시라쿠사 장군들은 제 병사들이 대열을 이루는 데 그토록 애를 먹고 그토록 어지러운 것을 보고 기병 일부만 남기고 그들을 도시 안으로 도로 이끌고 들어갔다. 남은 기병은 아테네인이 돌을 나르거나 멀리까지 흩어지지 못하게 막았는데, 마침내 아테네 중장보병의 한 부족이 기병 전부와 함께 달려들어 시라쿠사 기병을 얼마쯤 잃게 하며 쫓아 버렸고, 그 뒤에 아테네인은 이 기병 싸움을 두고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이튿날 아테네인은 원형 보루의 북쪽으로 성벽을 쌓기 시작했고, 그와 함께 돌과 목재를 모아 큰 항구에서 바다에 이르는 제 공사의 가장 짧은 선을 따라 트로길로스 쪽으로 계속 내려놓았다. 한편 시라쿠사인은 장군들의, 무엇보다 헤르모크라테스의 이끎에 따라 더는 전면전의 위험을 무릅쓰는 대신 아테네인이 성벽을 끌고 갈 방향으로 맞선 공사를 쌓기로 정했다. 이것을 제때 끝낼 수 있다면 적의 공사선은 끊길 터였고, 그러는 동안 적이 공격으로 그 일을 방해하려 든다면 저희는 병력 일부를 내보내 맞서고 미리 방책으로 오는 길을 막아 둘 것이며, 그러면 아테네인은 그들을 상대하느라 온 병력을 들인 공사를 멈추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아가 공사를 시작했으니, 제 도시에서 출발해 아테네인의 원형 보루 아래로 가로지르는 벽을 내고 올리브나무를 베어 내며 나무 탑을 세웠다. 아테네 함대가 아직 큰 항구로 돌아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시라쿠사인은 여전히 바닷가를 쥐고 있었고, 아테네인은 탑소스에서 뭍으로 식량을 날라 왔다.

이제 시라쿠사인은 제 맞선 성벽의 방책과 돌 쌓기가 충분히 나아갔다고 여겼고, 아테네인이 병력이 갈려 불리하게 싸우게 될까 두려워하고 제 성벽에 매달려 있느라 나와서 방해하지 않았으므로, 한 부족을 남겨 새 공사를 지키게 하고 도시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인은 땅 밑으로 도시까지 들어가는 그들의 식수 관을 부수었다. 그리고 한낮에 나머지 시라쿠사인이 제 천막에 들고 더러는 도시로 돌아가기까지 하며 방책에 있는 자들이 경계를 소홀히 하기를 지켜보다가, 제 병력에서 뽑은 300명과 경보병에서 뽑아 이 일을 위해 무장시킨 얼마를 정해 느닷없이 있는 힘껏 달려 맞선 공사로 가게 했고, 그동안 나머지 군대는 두 부대로 나뉘어 하나는 장군 한 사람과 함께 적이 뛰쳐나올 경우에 대비해 도시 쪽으로 나아가고 다른 하나는 다른 장군과 함께 뒷문 곁의 방책으로 나아갔다. 300명은 공격해 방책을 빼앗았는데, 그 수비대는 방책을 버리고 아폴론 테메니테스 상 둘레의 외곽 공사 안으로 달아나 몸을 숨겼다. 쫓던 자들이 그들과 함께 그 안으로 밀고 들어갔으나 들어간 뒤에 시라쿠사인에게 밀려 쫓겨났고 아르고스인과 아테네인 몇이 죽었다. 그 뒤 온 군대가 물러났고, 맞선 공사를 헐고 방책을 뽑아 그 말뚝을 제 공사선으로 날라 간 다음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이튿날 아테네인은 원형 보루에서 나아가 에피폴라이의 이쪽에서 큰 항구를 바라보는 늪 위의 벼랑을 요새로 만들었으니, 그곳이 그들의 공사가 평야와 늪을 가로질러 항구까지 내려가는 가장 짧은 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시라쿠사인은 나아가 두 번째 방책을 치기 시작했으니, 도시에서 출발해 늪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그 곁에 호를 파서 아테네인이 성벽을 바다까지 끌고 내려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테네인은 벼랑의 공사를 끝내자마자 시라쿠사인의 방책과 호를 다시 쳤다. 그들은 함대에 탑소스에서 돌아 시라쿠사의 큰 항구로 들어오라고 명하고, 동틀 무렵에 에피폴라이에서 평야로 내려가 늪 가운데 진흙이 많고 가장 단단한 곳에 문짝과 널빤지를 깔아 그 위로 건너갔으며, 날이 밝을 무렵에는 호와 방책을 빼앗았고 다만 작은 한 부분만 남겨 나중에 차지했다. 이제 싸움이 벌어져 아테네인이 이겼으니, 시라쿠사인의 오른쪽 날개는 도시로 달아나고 왼쪽 날개는 강으로 달아났다. 뽑힌 아테네인 300명이 그 길을 끊으려고 달음질로 다리를 향해 밀고 나갔을 때, 기병 대부분을 곁에 두고 있던 시라쿠사인이 놀라 맞붙어 그들을 쫓아 버리고 아테네의 오른쪽 날개 위로 밀어냈는데, 그 충격에 오른쪽 날개의 첫 부족이 공황에 빠졌다. 이것을 보고 라마코스가 아테네의 왼쪽에서 궁수 몇과 아르고스인을 데리고 도우러 왔는데, 호 하나를 건너다가 함께 건넌 몇 사람과 더불어 홀로 남겨져 제 부하 대여섯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시라쿠사인은 이들의 주검을 곧바로 서둘러 낚아채 강 건너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고, 나머지 아테네군이 이제 올라오자 저희는 물러났다.

그러는 동안 처음에 도시로 달아나 몸을 숨겼던 자들은 일이 돌아가는 형편을 보고 이제 도시에서 다시 모여 제 앞의 아테네인에 맞서 대열을 이루었고, 그 가운데 일부는 에피폴라이의 원형 보루로도 보냈으니 지키는 자들이 빠져나간 사이에 그것을 빼앗을 수 있으리라 바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1,000피트에 이르는 아테네인의 외곽 공사를 빼앗아 무너뜨렸으나 원형 보루 자체는 니키아스가 건졌으니, 그는 마침 병 때문에 그 안에 남아 있었고 이제 종들에게 명해 성벽 앞에 내려놓은 공성 기계와 목재에 불을 지르게 했다. 그가 알고 있던 대로 사람이 모자라 그 밖의 다른 방도로는 벗어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결과로 옳았음이 드러났으니, 시라쿠사인이 불 때문에 더는 나아오지 못하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아래쪽에서는 제 앞의 병력을 쫓아 버린 아테네인들에게서 원군이 올라오고 있었고, 함대도 명령대로 탑소스에서 큰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높은 곳의 병력은 서둘러 물러났으며, 시라쿠사군 전체가 도시로 되돌아갔으니 지금의 저희 병력으로는 성벽이 바다에 이르는 것을 더는 막을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뒤 아테네인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휴전 아래 시라쿠사인에게 그 전사자를 돌려주었으며, 그 대가로 라마코스와 그와 함께 쓰러진 자들을 받았다. 이제 바다와 뭍의 병력 전부가 저희와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은 에피폴라이와 벼랑에서 시작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겹으로 된 성벽으로 시라쿠사인을 에워쌌다. 이제 이탈리아 곳곳에서 원정군에 식량이 들어왔고, 여태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켜보고 있던 시켈인 다수가 동맹으로 아테네인에게 왔으며, 티레니아에서도 노가 50개인 배 3척이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다른 모든 일도 그들의 바람에 맞게 나아갔다. 시라쿠사인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아무 구원도 이르지 않자 무기로 안전을 찾는 일에 절망하기 시작했고, 이제 저희끼리, 또 라마코스가 죽은 뒤 홀로 지휘를 맡게 된 니키아스에게 항복 조건을 내놓고 있었다. 아무 결정에도 이르지 못했으나, 곤경에 빠져 전보다 더 바짝 포위당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듯 니키아스와 주고받는 논의가 많았고 도시 안에서는 더 많았다. 지금의 불운은 또 그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재난의 탓은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지휘를 맡고 있던 장군들의 불운이나 배신으로 돌려졌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리에서 쫓겨났고 그 대신 헤라클레이데스와 에우클레스와 텔리아스가 뽑혔다.

그러는 동안 스파르타 사람 길리포스와 코린트에서 온 배들은 이제 레우카스 앞바다에 있었으니 서둘러 시칠리아를 구하러 가려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른 소식이 불안한 것이었고 시라쿠사가 이미 완전히 에워싸였다는 거짓된 말에서 하나같이 일치했으므로, 길리포스는 시칠리아에 대한 희망을 모두 버리고 이탈리아만이라도 건지려는 마음으로 코린트 사람 피텐과 함께 라코니아 배 2척과 코린트 배 2척을 이끌고 이오니아해를 빠르게 건너 타렌툼으로 갔으며, 코린트인에게는 제 배 10척에 더해 레우카스 배 2척과 암브라키아 배 2척에 사람을 채운 뒤 뒤따라오라고 남겨 두었다. 타렌툼에서 길리포스는 먼저 투리이에 사절로 가서 제 아버지가 누렸던 시민권을 새로 달라고 요구했으나 그 도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못하자 닻을 올려 이탈리아 해안을 따라 나아갔다. 테리나 만 맞은편에서 그는 그쪽에서 사납고 끊임없이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붙들려 바다로 밀려 나갔고, 몹시 거친 날씨를 겪은 뒤에 타렌툼으로 되돌아가 폭풍에 가장 많이 상한 배들을 뭍으로 끌어 올려 손보았다. 니키아스는 그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투리이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배들의 적은 수를 업신여겼고, 그 항해의 목적은 해적질뿐이리라 여겨 당장은 아무 대비도 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 같은 무렵에 스파르타인은 동맹들과 함께 아르고스를 침공해 그 땅의 대부분을 짓밟았다. 아테네인은 함선 30척을 이끌고 아르고스인을 구하러 갔으니, 그리하여 스파르타인과 맺은 조약을 더없이 드러내 놓고 깨뜨린 셈이었다. 그때까지 아르고스인 및 만티네이아인과 함께한 일이라고는 필로스에서 나가 치는 것과 라코니아가 아닌 펠로폰네소스의 나머지 해안에 내리는 것이 전부였고, 아르고스인이 잠깐만이라도 중장보병과 함께 라코니아에 내려 저희와 함께 그 땅을 아주 조금이라도 짓밟고 떠나 달라고 여러 번 청했음에도 그들은 늘 거절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피토도로스와 라이스포디오스와 데마라토스의 지휘 아래 에피다우로스 리메라와 프라시아이와 그 밖의 여러 곳에 내려 그 땅을 노략했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에게 아테네에 맞설 더 나은 구실을 안겨 주었다. 아테네인이 함대와 함께 아르고스에서 물러나고 스파르타인도 물러난 뒤에 아르고스인은 플리우스 땅으로 쳐들어가, 그 땅을 짓밟고 주민 얼마를 죽인 뒤 집으로 돌아갔다.

주

  1. 1.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2. 2. 올림피에이온 — 시라쿠사 성 밖 아나포스강 가까이에 있던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봉헌된 보물이 모여 있었으므로 양쪽 모두 이곳을 지키는 일에 마음을 썼다.

  3. 3. 에포로스 — 스파르타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5명을 뽑았고 왕까지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이 번역에서는 '감독관'으로 옮기고 첫 등장에만 원어를 함께 밝혔다.

  4. 4. 프로크세노스 — 제 나라에 살면서 다른 나라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 나라에서 온 사람을 맞아 돌보던 사람. 나라가 그 자리를 맡겼고 대개 집안 대대로 이어졌으며 명예로 여겨졌다. 알키비아데스의 집안은 스파르타의 프로크세노스였다.

  5. 5.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6. 6. 0.5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뒤에 나오는 3마일과 1,000피트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