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제I권 제V장) 스파르타 제2차 회의 · 전쟁 준비와 외교적 공방 · 킬론 · 파우사니아스 · 테미스토클레스
그 뒤로 그리 여러 해 지나지 않아, 우리는 마침내 이미 이야기한 일들, 곧 코르키라와 포티다이아의 사건과 이번 전쟁의 구실이 된 사태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인이 서로에게, 또 이방인에게 행한 이 모든 일은 크세르크세스가 물러간 때부터 이번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의 50년 사이에 일어났다. 그 기간에 아테네인은 자기들의 제국을 더 단단한 기반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고, 본국의 힘 또한 대단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스파르타인은 그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으나 잠깐 동안만 맞섰을 뿐, 예로부터 어쩔 수 없는 사정에 몰리지 않는 한 전쟁에 나서기를 더디게 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번에는 국내의 전쟁에 발이 묶여 있었던 까닭에 그 기간의 대부분을 손 놓고 있었다. 그러다 아테네의 세력이 자라는 것을 더는 못 본 척할 수 없게 되었고, 자기들의 동맹이 그 침식의 대상이 되었다. 그제야 그들은 더 견딜 수 없다고 느꼈고, 이제는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그 적대 세력에 몸을 던져 할 수 있다면 이번 전쟁을 일으켜 그것을 꺾어야 할 때가 왔다고 여겼다. 스파르타인은 조약이 깨졌다는 것과 그 죄가 아테네인에게 있다는 것을 이미 마음속으로 굳혔으나, 그래도 델포이에 사람을 보내 전쟁에 나서면 일이 잘되겠는지 신에게 물었다. 전하는 바로는, 전쟁에 온 힘을 쏟는다면 승리가 그들의 것이 될 것이며 신 자신이 부름을 받든 받지 않든 그들과 함께하겠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고도 그들은 동맹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전쟁을 벌이는 것이 옳은지 표를 받기를 원했다. 동맹들의 사절이 도착하고 회의가 열리자 모두가 제 생각을 말했는데, 대다수가 아테네인을 규탄하며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린트인이 특히 그러했다. 그들은 이전에도 제 나름으로 도시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전쟁에 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는데, 포티다이아를 구하기에는 때가 너무 늦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도 그들은 참석했고, 맨 마지막에 나서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동맹 여러분, 이제 우리는 스파르타인이 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탓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전쟁에 표를 던졌을 뿐 아니라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이곳에 모았습니다. 의무라고 말하는 까닭은, 패권에는 패권의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사로운 이해를 공평하게 다스리는 일 말고도, 앞장서는 자에게는 남들이 다른 여러 면에서 바치는 특별한 예우에 대한 보답으로 공동의 복리를 특별히 돌볼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 자신을 두고 말하면, 이미 아테네인과 상대해 본 이라면 누구도 그들을 경계하라는 경고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륙에 더 깊이 들어앉아 교통의 큰길에서 벗어나 있는 나라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해안의 세력들을 떠받치는 일을 빠뜨린다면 그 결과로 제 산물을 내보내는 길과 그 대가로 바다에서 들여오는 물건을 받는 길이 다 함께 상하게 됩니다. 또 그들은 지금 하는 이 말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무심한 판관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해안 세력들이 희생되고 나면 언젠가 그 위험이 내륙까지 뻗어 오리라고 예상해야 하며, 자기들의 이해 또한 이 논의에 깊이 걸려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평화를 전쟁과 맞바꾸기를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해를 입지 않는 동안 잠잠히 있지만, 용감한 자는 해를 입으면 평화를 버리고 전쟁으로 나아가며 좋은 기회가 오면 다시 화해로 돌아갑니다. 곧 그들은 전쟁에서 거둔 성공에 취하지도 않고, 평화가 주는 달콤한 고요를 위해 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습니다. 실로 그런 달콤함을 위해 주저하는 것은, 그대로 손 놓고 있는다면, 여러분이 붙들고 있는 안식의 단맛을 가장 빠르게 잃는 길입니다. 반면 전쟁의 성공에서 터무니없는 야심을 품는 것은 여러분을 들뜨게 한 그 자신감이 얼마나 텅 빈 것인지를 잊는 일입니다. 잘못 세운 계획이 적의 더 큰 아둔함 덕에 성공한 일이 많다면, 잘 세운 듯 보였던 계획이 오히려 수치로 끝난 일은 그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세울 때의 자신감이 그것을 실행할 때 온전히 정당함을 얻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궁리는 안전한 자리에서 이루어지지만, 막상 행동에 이르면 두려움이 실패를 낳습니다.
이 원칙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 우리가 지금 전쟁에 불을 붙인다면 그것은 해를 입은 데 몰려서 하는 일이며 불평할 근거도 넉넉합니다. 그리고 아테네인을 징벌한 뒤에는 때를 보아 손을 거둘 것입니다. 성공을 기대할 이유는 여럿입니다. 첫째로 수와 군사 경험에서 앞선다는 점이고, 둘째로 명령을 수행할 때 우리 모두가 한결같이 복종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가진 해군력에 맞먹는 것은 우리가 각자 이전부터 지닌 재원과 올림피아와 델포이에 있는 재물로 갖출 것입니다. 거기서 빌린 돈이 있으면 더 높은 품값을 내밀어 그들의 외국인 수부들을 꾀어낼 수 있습니다. 아테네의 힘은 나라의 것이라기보다 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은 같은 위험에 놓이지 않습니다. 우리 힘은 돈보다 사람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한 번 패하면 그것이 그들의 파멸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이 버텨 낸다면, 그만큼 우리가 해상의 일을 익힐 시간이 더 생기는 셈입니다. 그리고 기술에서 대등한 자리에 이르는 즉시, 용기에서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지는 굳이 물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타고나 가진 이점은 그들이 교육으로 얻을 수 없지만, 그들이 기술에서 앞선 것은 우리가 익히면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드는 돈은 우리가 내는 분담금으로 마련할 것입니다. 저들의 동맹들은 제 예속을 위해 돈을 내면서도 지치지 않는데 우리는 복수와 자기 보존을 위해 재물을 쓰기를 마다해야 한다는 말, 게다가 그렇게 마다함으로써 그 재물을 아테네의 탐욕에 빼앗기고 그것이 우리 자신의 파멸에 쓰이는 꼴을 보게 된다는 말보다 더 괴이한 말은 실로 없을 것입니다.
전쟁을 이어 갈 다른 방법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저들의 동맹을 반란으로 이끄는 것이 그 하나인데, 이는 저들의 힘의 원천인 수입을 끊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저들의 땅에 요새 거점을 세우는 것도 있고, 지금은 미리 헤아릴 수 없는 여러 작전도 있습니다. 무릇 전쟁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진행되는 일이 가장 적고 급한 사태에 맞설 방책을 주로 그 자신에게서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싸움에 맞서면서 마음을 가장 잘 다스리는 쪽이 가장 큰 안전을 얻고, 그 일로 마음을 잃는 쪽은 그만큼의 재앙을 얻습니다. 이것도 생각해 봅시다. 맞선 이웃 사이의 땅다툼이 몇 건 있는 것뿐이라면 견딜 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아테네라는 적은 우리 연합 전체와 맞먹고, 그 구성원 어느 하나보다는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몸으로서, 또 각 종족과 각 도시로서 한마음으로 맞서지 않는다면 아테네는 갈라진 우리를 하나하나 손쉽게 정복할 것입니다. 그 정복이 무섭게 들릴지라도 그 끝에 있는 것은 순전한 노예 상태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펠로폰네소스는 그 말을 귓속말로 듣는 것조차 수치 없이는 할 수 없고, 그토록 많은 나라가 한 나라에 짓밟히는 것을 수치 없이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상의 평은 이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대접을 받아도 마땅하다거나, 우리가 비겁해서 그것을 참고 있다거나, 우리 아버지들이 그리스에 준 자유를 우리 자신에게조차 지켜 내지 못하는 못난 자식임이 드러났다거나, 개별 나라에서는 단독 지배자를 끌어내리는 것이 우리 의무라고 여기면서도 그리스 안에 폭군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내버려 둔다는 평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처신이 가장 무거운 세 가지 허물, 곧 분별의 결핍과 용기의 결핍과 경계의 결핍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많은 경우에 치명적임이 드러난 저 적을 업신여기는 마음에 몸을 숨겼다고는 우리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망가뜨린 사람의 수가 하도 많아서, 이제 그것은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업신여김을 받을 마음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일을 돌아보는 것은 지금 일에 도움이 되는 데까지만 이로울 뿐입니다. 앞날을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지키고 힘을 배로 쏟아 대비해야 합니다. 수고의 열매로 훌륭함을 얻는 것은 우리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재물과 재원에서 조금 앞선다 해도 그 습속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궁핍 속에서 얻은 것을 넉넉함 속에서 잃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담대하게 전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신이 그것을 명하고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나머지 그리스도 한편은 두려움에서 한편은 이익에서 모두 이 싸움에 함께 들어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이 전쟁에 나서라 권하면서 이미 깨졌다고 판정한 그 조약을 먼저 깨뜨리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짓밟힌 조약을 떠받치는 쪽이 될 것입니다. 실로 조약을 깨뜨리는 것은 맞서는 쪽이 아니라 먼저 침해하는 쪽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처지는 어느 쪽에서 보더라도 전쟁에 나서는 것을 넉넉히 정당하게 해 줍니다. 우리가 이 걸음을 권하는 것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이며, 나라들 사이든 사람들 사이든 이해가 하나인 것이 가장 든든한 끈임을 잊지 않고서입니다. 그러니 포티다이아를 돕는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도리스의 도시가 이오니아인에게 포위당해 있으니, 이는 사물의 순서가 뒤집힌 일입니다. 나머지 도시들의 자유를 세우는 일도 미루지 마십시오. 더 기다리는 것은 우리에게 불가능합니다. 기다림이 뜻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일부에게는 당장의 재앙이요, 우리가 모여 의논만 하고 스스로를 지키러 나설 엄두는 내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나머지에게도 머지않아 같은 재앙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동맹 여러분. 이 위기가 어쩔 수 없는 것임과 이 권고가 지혜롭다는 것을 확신하고, 당장의 두려움에 물러서지 말고 그 뒤에 올 오래가는 평화를 멀리 바라보면서 전쟁에 표를 던지십시오. 평화는 전쟁에서 새로운 안정을 얻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위해 안식을 버리기를 마다하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그만큼 확실한 방법이 못 됩니다. 그리스 안에 세워진 저 폭군의 도시가 모두를 똑같이 겨누어 세워졌으며, 일부는 이미 이루었고 일부는 아직 꾀하는 중인 보편 제국의 계획을 품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 그것을 쳐서 꺾고, 우리 자신에게는 앞날의 안전을, 지금 예속된 그리스인에게는 자유를 얻어 줍시다.”
코린트인의 말은 이러했다. 스파르타인은 이제 모두의 말을 다 듣고 제 의견을 밝힌 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동맹 나라의 표를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차례로 받았다. 다수가 전쟁에 표를 던졌다. 그렇게 정해졌으나 준비가 모자라 곧바로 시작하는 것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다만 필요한 수단을 각 나라가 마련하기로, 그리고 미루는 일이 없도록 하기로 결의했다. 실제로 필요한 준비에 시간이 들었음에도 한 해가 채 지나기 전에 아티카가 침공을 받고 전쟁이 공개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사이의 기간은 아테네에 불평을 담은 사절을 보내는 데 쓰였다. 아테네가 그것을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경우에 전쟁의 구실을 될 수 있는 대로 좋게 얻어 두려는 것이었다. 스파르타의 첫 사절은 아테네인에게 여신의 저주를 쫓아내라고 요구하는 일을 맡았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여러 세대 전에 킬론이라는 이름의 아테네인이 있었다. 올림피아 경기의 우승자로 좋은 가문에 세력 있는 자리에 있었고, 그때 메가라의 참주였던 메가라인 테아게네스의 딸과 혼인했다. 이 킬론이 델포이에 물었을 때, 제우스의 큰 축제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하라는 답을 신에게서 받았다. 그리하여 테아게네스에게서 병력을 얻고 자기 벗들을 설득해 끌어들인 뒤, 펠로폰네소스의 올림피아 축제가 오자 스스로 참주가 될 뜻으로 아크로폴리스를 차지했다. 그것이 제우스의 큰 축제이며 올림피아 경기의 우승자에게 어울리는 때이기도 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 큰 축제가 가리키는 것이 아티카의 것인지 다른 곳의 것인지는 그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고, 신탁도 그것을 풀어 주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아테네인에게도 자비로운 제우스, 곧 제우스 메일리키오스의 큰 축제라 불리는 축제가 있는데 디아시아1가 그것이다. 이 축제는 도시 밖에서 치러지며, 온 백성이 실제 희생 짐승이 아니라 그 나라에 고유한 피 없는 제물 여러 가지를 바친다. 그러나 킬론은 제가 옳은 때를 골랐다고 여기고 일을 벌였다. 아테네인은 그것을 알아차리자마자 시골에서 하나같이 몰려들어 와 자리를 잡고 성채를 포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봉쇄의 고역에 지쳐 대부분이 떠나갔고, 지키는 책임은 모든 것을 제 판단에 따라 처리할 전권과 함께 아홉 아르콘2에게 맡겨졌다. 그때는 정치의 기능 대부분을 이 아홉 아르콘이 맡아 보았음을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포위된 킬론과 그 동료들은 먹을 것과 물이 없어 곤경에 빠졌다. 그리하여 킬론과 그 아우는 빠져나갔다. 그러나 나머지는 심하게 몰리고 더러는 굶어 죽기까지 하여 아크로폴리스의 제단에 탄원자로 앉았다. 지키는 임무를 맡은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신전 안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고, 아무 해도 입히지 않겠다는 약속 아래 그들을 일으켜 밖으로 데려간 뒤 죽였다. 지나가는 길에 존엄한 여신들의 제단으로 몸을 피한 몇 사람은 그 자리에서 처리되었다. 이 일로 그들을 죽인 자들은 저주받은 자, 여신에게 죄를 지은 자라 불렸고 그 자손들도 그러했다. 그리하여 이 저주받은 자들은 아테네인에게 쫓겨났고, 뒤에 스파르타의 클레오메네스와 아테네의 한 당파에게 다시 쫓겨났다. 산 자는 내쫓기고 죽은 자의 뼈는 파내어졌으니, 그렇게 그들은 내버려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뒤에 돌아왔고, 그 자손들은 아직도 그 도시에 있다.
스파르타인이 쫓아내라고 요구한 저주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바로는 그 일을 움직인 첫째 동기가 신들의 명예를 돌보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크산티포스의 아들 페리클레스가 어머니 쪽으로 그 저주에 얽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를 추방하면 아테네를 겨눈 자기들의 계획이 크게 진척될 것이라 여겼다. 그것을 실제로 이루어 내기를 참으로 바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이 부분적으로는 그의 불운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을 심어 같은 나라 사람들의 눈에 그를 향한 반감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었다. 당대에 가장 힘 있는 사람이요 아테네를 이끄는 정치가였던 그는 무슨 일에서나 스파르타인에게 맞섰고 어떤 양보도 하려 하지 않았으며, 늘 아테네인을 전쟁으로 밀어붙였다.
아테네인은 스파르타인에게 타이나론의 저주를 쫓아내라고 요구하며 맞받았다. 스파르타인은 언젠가 타이나론의 포세이돈 신전에서 헬롯3 탄원자 몇 사람을 일으켜 끌고 나가 죽인 적이 있었다. 스파르타에 일어난 큰 지진이 그 일의 응보라고 그들은 믿는다. 아테네인은 청동의 집 여신의 저주도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스파르타인 파우사니아스는 헬레스폰토스의 지휘직에서 스파르타 시민4들에게 소환되었고(이것이 그의 첫 소환이다) 그들에게 재판을 받아 무죄가 되었으나 다시 공적인 자격으로 파견되지는 않았다. 그러자 그는 스파르타의 허가 없이 제 책임으로 헤르미오네의 배 한 척을 얻어 사인의 신분으로 헬레스폰토스에 갔다. 겉으로는 그리스인의 전쟁을 위해 온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왕과의 밀통을 이어 가기 위해서였다. 그 밀통은 소환되기 전에 이미 시작한 것이었으며, 그는 그리스 전체를 다스리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왕에게 처음으로 신세를 지우고 그 계획 전체의 첫걸음을 떼게 해 준 사정은 이러했다. 그가 키프로스에서 돌아온 뒤 처음 비잔티움에 있을 때 그 도시를 메디아인에게서 빼앗았는데, 그때 왕의 인척과 친족 몇 사람이 붙잡혔다. 그는 이 포로들을 다른 동맹들이 모르게 왕에게 보내면서, 그들이 제게서 도망쳤다고 말을 맞추었다. 이 일은 비잔티움과 포로들을 맡겨 둔 에레트리아인 곤길로스의 도움으로 해냈다. 그는 곤길로스에게 왕에게 전할 편지도 주었는데, 뒤에 밝혀진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가 당신께 호의를 베풀고자 이 전쟁 포로들을 보냅니다. 또한 당신의 허락을 얻어 당신의 딸과 혼인하고, 스파르타와 나머지 그리스를 당신께 복속시킬 것을 제안합니다. 당신이 힘을 합해 주신다면 제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가운데 무엇이든 마음에 드시면, 앞으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믿을 만한 사람을 바다로 보내 주십시오.”
그 글에서 드러난 것은 이것이 전부였고, 크세르크세스는 그 편지를 기뻐했다. 그는 파르나케스의 아들 아르타바조스를 바다로 보내면서, 다스킬리온 태수령의 이전 총독 메가바테스를 대신하고, 자기가 맡기는 편지를 되도록 빨리 비잔티움의 파우사니아스에게 건너보내며, 그에게 왕의 인장을 보이고, 왕의 일에 관해 파우사니아스에게서 받는 어떤 지시든 온 정성과 충실로 수행하라고 명했다. 아르타바조스는 도착하자 왕의 명을 그대로 실행하고 편지를 건너보냈다. 그 편지에 담긴 답은 다음과 같았다. “크세르크세스 왕이 파우사니아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바다 건너 비잔티움에서 나를 위해 구해 준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 집안에 너를 향한 은의가 영원히 기록되어 쌓였다. 그리고 너의 제안에 나는 매우 만족한다. 나에게 한 약속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부지런히 이루는 일을 밤도 낮도 막지 못하게 하라. 금이 들든 은이 들든 그 일이 가로막히지 않게 하고, 어디든 병력이 필요한 곳에서 그 수가 문제 되지 않게 하라. 내가 너에게 보내는 존경할 만한 사람 아르타바조스와 더불어, 우리 둘의 명예와 이익에 가장 크게 이바지하도록 나의 일과 너의 일을 담대하게 진척시켜라.”
전부터 플라타이아의 영웅으로 그리스인에게 큰 존경을 받아 온 파우사니아스는 이 편지를 받은 뒤 어느 때보다 거만해져서 더는 여느 때의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다. 메디아 옷을 입고 비잔티움을 나섰고, 트라키아를 지나는 행군에서는 메디아인과 이집트인 호위대를 거느렸으며, 페르시아식 식탁을 차렸고, 제 속뜻을 도무지 감추지 못해 언젠가 더 큰 규모로 펼치려던 야심을 사소한 처신으로 드러내 버렸다. 또 그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 되었고, 예외 없이 모든 이에게 어찌나 거센 성미를 보였는지 아무도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실로 동맹이 아테네인 쪽으로 넘어간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위에서 말한 처신이 스파르타인의 귀에 들어간 것이 그의 첫 소환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들의 명 없이 헤르미오네의 배로 두 번째로 나간 뒤에도 그는 비슷한 행태의 증거를 내놓았다. 아테네인에게 비잔티움에서 포위되어 쫓겨난 그는 스파르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트로아스의 콜로나이에 자리를 잡고 이방인들과 밀통하며 그곳에 머무는 것이 좋은 목적에서가 아니라는 소식이 들어왔고, 감독관(에포로스)5들은 이제 더 망설이지 않고 전령과 스키탈레6를 보내어 전령을 따라오지 않으면 공적인 적으로 선포하겠다고 명했다. 무엇보다 의심을 피하고 싶었고 돈으로 그 혐의를 눌러 없앨 수 있다고 자신한 그는 두 번째로 스파르타에 돌아왔다. 처음에는 감독관들에게 감옥에 갇혔으나(그들의 권한은 왕에게도 이렇게 할 수 있게 한다) 곧 일을 타협해 다시 나왔고, 자기에 관해 조사를 열고자 하는 누구에게든 재판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스파르타 시민들에게는, 그의 적들에게도 나라 전체에도, 왕가의 사람이며 그 순간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를 벌하는 데 필요한 저 의심할 수 없는 종류의 손에 잡히는 증거가 없었다. 그는 아직 미성년인 사촌 레오니다스의 아들 플레이스타르코스 왕의 섭정이었다. 그러나 법을 업신여기고 이방인을 본뜬 그 태도는 그가 세워진 질서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심의 근거를 크게 만들어 주었다. 그가 어떤 식으로든 통상의 관습에서 벗어난 모든 경우가 다시 들추어졌고, 그리스인이 메디아인에게서 얻은 전리품의 첫 몫으로 델포이에 바친 삼각대에 그가 제 마음대로 다음 2행시를 새겨 넣게 했던 일이 떠올려졌다.
메디아를 꺾고서 위대한 파우사니아스가 이 기념물을 세웠으니, 포이보스를 기리기 위함이라.
그때 스파르타인은 곧바로 그 2행시를 지우고, 이방인을 무너뜨리는 데 힘을 보태고 그 봉헌물을 바친 도시들의 이름을 새겼다. 그럼에도 파우사니아스가 여기서 무거운 죄를 지었다고 여겨졌으며, 그 죄는 그 뒤 그가 취한 태도의 빛으로 해석되면서 새로운 뜻을 얻어 지금 그의 계획과 아주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가 헬롯들과도 밀통하고 있다는 정보가 그들에게 들어왔다.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었으니, 그는 그들이 함께 봉기하고 자기 계획을 끝까지 이루도록 도와준다면 자유와 시민권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도 감독관들은 헬롯 자신들의 증언조차 믿지 못해 그를 상대로 어떤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자기들끼리의 일에 지켜 온 통상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곧 다툴 수 없는 증거 없이는 스파르타 시민에 관한 일에서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리기를 더디게 한다는 관습이었다. 마침내, 전하는 바로는, 왕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아르타바조스에게 전하러 가려던 사람이 밀고자가 되었다. 아르길로스 사람으로, 한때 파우사니아스가 가장 아끼고 가장 믿던 종이었다. 앞서 간 심부름꾼 가운데 누구도 돌아온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겁이 난 그는, 제 짐작이 틀렸을 경우나 파우사니아스가 무언가 고치자고 할 경우에 들키지 않도록 봉인을 위조해 두고서 편지를 풀어 보았다. 그리하여 자기가 의심했던 추신, 곧 자기를 죽이라는 명을 찾아냈다.
그 편지를 보게 된 감독관들은 이제 한결 확신을 얻었다. 그래도 그들은 파우사니아스가 제 입으로 증거가 될 말을 하는 것을 자기들 귀로 듣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약속대로 탄원자로서 타이나론에 가서 칸막이로 둘로 나눈 움막을 짓고, 그 안에 감독관 몇 사람을 숨겨 모든 일을 또렷이 듣게 했다. 파우사니아스가 그를 찾아와 탄원자로 앉은 이유를 물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자기에 관해 파우사니아스가 써 놓은 그 명을 두고 그를 꾸짖었고, 나머지 사정을 하나하나 다 말했다. 자기가 파우사니아스와 왕 사이의 심부름꾼으로 쓰이는 동안 한 번도 그를 어떤 위험에도 빠뜨리지 않았는데도 그의 여느 종들 무리와 똑같이 죽음으로 보답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파우사니아스는 이 모두를 인정하고 그 일로 노여워하지 말라 이르면서, 신전에서 그를 일으켜 주겠다는 약속을 주고 되도록 빨리 길을 떠나 지금 하는 일을 막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감독관들은 주의 깊게 듣고 나서 물러났으며, 그 순간에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확신에 이른 만큼 도시에서 그를 체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하는 바로는, 그가 길에서 체포되려던 때에 감독관 한 사람의 얼굴에서 그가 무엇 때문에 오는지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사람은 그에게 몰래 신호를 보내 호의에서 그 일을 알려 주었다. 그는 바로 가까이에 그 구역이 있는 청동의 집 여신의 신전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붙잡히기 전에 성역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날씨에 몸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려고 신전의 일부인 작은 방에 들어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추격에서 한동안 뒤처졌던 감독관들은 뒤에 그 방의 지붕을 벗겨 내고, 그가 안에 있음을 확인한 다음 그를 그 안에 가두고 문을 막아 버렸으며, 그 앞에 머물러 굶겨서 그를 무너뜨렸다. 그가 그 방에서 그대로 숨이 끊어지려 하는 것을 알고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동안에 그를 신전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는 죽었다. 그들은 죄인을 던져 넣는 곳인 카이아다스7에 그를 던지려 했으나 마침내 근처 어딘가에 묻기로 정했다. 그러나 뒤에 델포이의 신은 스파르타인에게 그 무덤을 그가 죽은 자리로 옮기라고 명했으며(기념물에 새긴 글이 밝히는 대로 그는 지금 그 신성한 땅에 누워 있다), 또 저지른 일이 그들에게 저주가 되었으므로 청동의 집 여신에게 하나가 아니라 둘의 몸을 돌려 드리라고 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청동 상 두 개를 만들게 하여 파우사니아스를 대신하는 것으로 바쳤다. 아테네인은 신 자신이 저주라고 선언한 것을 쫓아내라고 스파르타인에게 말하며 맞받았다.
파우사니아스가 메디아에 붙은 일로 돌아가자. 그 조사 과정에서 테미스토클레스를 얽어 넣을 자료가 나왔고,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은 아테네인에게 사절을 보내 파우사니아스를 벌한 것과 같이 그를 벌하라고 요구했다. 아테네인은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 그런데 마침 그는 도편추방8을 당한 상태여서 아르고스에 거처를 두고 펠로폰네소스의 다른 지역들을 두루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추격에 함께 나설 준비가 되어 있던 스파르타인과 더불어, 그를 찾아내는 곳이 어디든 잡아 오라는 지시를 받은 사람들을 보냈다. 그러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들의 뜻을 눈치채고 펠로폰네소스를 벗어나 자기에게 신세를 진 코르키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코르키라인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노여움을 사는 값을 치르면서까지 그를 숨겨 줄 엄두를 낼 수 없다고 말하고, 그를 건너편 대륙으로 옮겨 보냈다. 그의 행적에 관한 소문에 매달려 쫓아오는 관리들에게 추격을 받으며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막막해진 그는,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몰로소이인의 왕 아드메토스의 집에 멈추어야만 했다. 아드메토스는 마침 집에 없었으나, 그가 탄원자로 몸을 낮춘 그 아내가 자기들의 아이를 품에 안고 화로 옆에 앉으라고 알려 주었다. 얼마 뒤 아드메토스가 들어왔고, 테미스토클레스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한 뒤, 아테네에 있던 테미스토클레스에게서 그의 청이 받았을지 모를 어떤 반대든 망명 중인 테미스토클레스에게 갚으려 하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실로 그는 이제 그의 복수를 받기에는 너무나 낮은 처지였으며, 보복은 대등한 자들 사이에서만 명예로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가 왕에게 맞선 일은 청이 이루어지는지에만 영향을 주었을 뿐 그 신변의 안전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왕이 그가 말한 추격자들과 그들이 그에게 정해 둔 운명에 자기를 넘긴다면, 그것은 그를 확실한 죽음에 내주는 일이 될 뿐이었다.
왕은 그의 말을 듣고, 가장 효험 있는 탄원의 방식대로 아이를 품에 안고 앉아 있던 그를 제 아들과 함께 일으켰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스파르타인이 도착했을 때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그를 내주기를 거절했으며, 그가 페르시아 왕에게 가기를 원했으므로 그를 육로로 다른 쪽 바다에 있는 알렉산드로스의 영토 안 피드나로 보냈다. 거기서 그는 막 이오니아로 떠나려는 상선 한 척을 만났다. 배에 오른 그는 폭풍에 밀려 낙소스를 봉쇄하고 있던 아테네 함대에 이르렀다. 겁이 난 그는(다행히 배 안의 사람들은 그를 몰랐다) 선장에게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달아나는지를 말하고, 자기를 구해 주기를 거절한다면 선장이 뇌물을 받고 자기를 태웠다고 밝히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안전은 항해에 좋은 때가 올 때까지 아무도 배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데 있었다. 자기 뜻을 따라 준다면 마땅한 보답을 하겠다고 그는 약속했다. 선장은 그가 원하는 대로 했고, 함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하루 낮 하루 밤을 배를 세워 둔 뒤 마침내 에페소스에 이르렀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의 벗들과 아르고스에 숨겨 둔 자기 재물에서 돈이 들어오는 대로 선장에게 돈을 선물로 주어 보답한 뒤, 해안 지방의 페르시아인 한 사람과 함께 내륙으로 떠났고, 막 왕위에 오른 크세르크세스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저 테미스토클레스가 당신께 왔습니다. 저는 당신 아버지의 침공에 맞서 저 자신을 지켜야만 했을 때 그리스인 가운데 누구보다도 당신 집안에 큰 해를 입힌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해는 그가 물러갈 때 제가 그에게 베푼 이로움에 크게 못 미칩니다. 그 일은 저에게는 아무 위험도 가져오지 않았으나 그에게는 많은 위험을 가져왔습니다. 지난 일로 보면 당신은 저에게 호의를 빚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살라미스에서 크세르크세스에게 물러나라고 보낸 경고를 언급했고, 왕이 다리가 끊기지 않은 것을 발견한 일도 함께 들면서 그것이 자기 덕이라고 거짓으로 내세웠다.) “지금으로 말하면, 저는 당신께 큰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을 향한 우의 때문에 그리스인에게 쫓기며 이곳에 와 있습니다. 다만 한 해의 여유를 바랍니다. 그때가 되면 제가 온 목적을 직접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왕이 그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가 말한 대로 하라고 일렀다고 한다. 그는 그 사이의 기간을 페르시아 말과 그 나라의 관습을 익히는 데 될 수 있는 대로 나아가는 것으로 썼다. 한 해가 끝날 무렵 궁정에 이른 그는 거기서 그전에도 그 뒤에도 어떤 그리스인도 가져 본 적 없는 매우 높은 대우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그의 빛나는 전력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왕을 위해 그리스를 복속시켜 주겠다고 내건 희망 때문이었으나, 주로는 그의 능력을 경험이 날마다 증명해 준 덕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천재의 가장 의심할 수 없는 표징을 보여 준 사람이었다. 실로 이 점에서 그는 아주 남다르고 견줄 데 없는 감탄을 우리에게 요구할 자격이 있다. 배움으로 다듬어지지도 보태지지도 않은 타고난 능력만으로 그는 숙고할 틈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저 갑작스러운 위기에서 가장 뛰어난 판단자였고, 가장 먼 가능성에까지 이르는 앞날의 가장 뛰어난 예언자였다. 자기 실무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이론으로 훌륭히 풀어낼 수 있었던 그는, 경험이 없는 일에서도 적절한 판단을 내릴 힘이 없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앞날에 숨어 있는 좋은 것과 나쁜 것도 그는 뛰어나게 알아맞혔다. 요컨대 그의 타고난 힘의 크기를 보든 그가 들인 공부의 적음을 보든, 이 남다른 사람이 급한 사태를 직관으로 맞서는 능력에서 다른 모든 이를 뛰어넘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그의 죽음의 참된 원인은 병이었다. 다만 왕에게 한 약속을 이룰 수 없음을 알고 독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시아의 마그네시아 광장에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있다. 그는 그 지구의 총독이었다. 왕이 그에게 빵을 위해 한 해 50탈란톤9이 들어오는 마그네시아를, 포도주를 위해 가장 풍요로운 포도주 산지로 여겨지던 람프사코스를, 그 밖의 양식을 위해 미우스를 주었기 때문이다. 전하는 바로는 그의 뼈는 그의 뜻에 따라 친족들이 고향으로 옮겨 아티카 땅에 묻었다고 한다. 이 일은 아테네인이 모르게 이루어졌다. 반역으로 법 밖에 놓인 자를 아티카에 묻는 것은 법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스파르타인 파우사니아스와 아테네인 테미스토클레스, 당대 그리스에서 가장 이름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다.
스파르타인에게로 돌아가자. 저주받은 자들을 추방하는 문제를 두고 그들의 첫 사절이 어떠했는지, 그것이 전한 요구가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불러온 반박이 무엇이었는지는 이미 이야기했다. 그 뒤로 두 번째 사절이 와서 아테네에 포티다이아의 포위를 풀고 아이기나의 독립을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무엇보다 그 사절은 메가라인을 아테네의 항구와 아테네의 시장에서 쓰지 못하게 배제한 메가라 포고를 철회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아테네에 아주 또렷이 알렸다. 그러나 아테네는 그 포고를 철회할 뜻도 그들의 다른 제안을 받아들일 뜻도 없었다. 아테네는 메가라인이 신성한 땅과 국경의 울 없는 땅까지 경작을 밀어 넣었다고, 그리고 자기들의 도망 노예를 숨겨 주었다고 탓했다. 마침내 스파르타의 최종 통고를 들고 한 사절이 도착했다. 사절은 람피아스와 멜레시포스와 아게산드로스였다. 예전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었고 다만 이것뿐이었다. “스파르타는 평화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그리스인을 독립된 채로 두려 한다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에 아테네인은 민회를 열어 그 문제를 심의에 올렸다. 그들의 모든 요구를 한꺼번에 논의하고 답을 주기로 결의했다. 많은 사람이 나서서 어느 한쪽을 편들었는데, 전쟁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고 포고를 철회해야 하며 그것이 평화를 가로막게 두는 것은 어리석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 가운데 크산티포스의 아들 페리클레스가 나섰다. 당대 아테네의 첫째 인물로 의논에서나 행동에서나 똑같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그는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아테네인 여러분, 제가 무슨 일에서나 지켜 온 한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인에게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전쟁을 하도록 설득당하는 동안 사람들을 북돋우는 기개가 막상 행동에서는 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사정이 바뀌면 결의도 바뀐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전과 같이, 거의 글자 그대로 같은 권고가 저에게 요구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설득을 받아들이려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일이 뒤집히는 경우에도 나라의 결의를 떠받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성공하는 경우에도 그 결의가 지혜로웠다는 공을 모두 잃게 됩니다. 일의 흐름은 때로 사람의 계획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우리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은 일이면 무엇이든 흔히 운수를 탓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스파르타가 우리를 겨눈 계획을 품고 있다는 것은 전에도 분명했고 지금은 한층 더 분명합니다. 조약은 우리가 서로의 다툼을 법에 따른 해결에 맡기고 그동안 각자 가진 것을 그대로 지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스파르타인은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고, 우리에게서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려 한 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불평이 협상이 아니라 전쟁으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그들이 이 자리에서 따지는 어조를 버리고 명령하는 어조를 취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포티다이아의 포위를 풀라고, 아이기나를 독립하게 두라고, 메가라 포고를 철회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리스인을 독립된 채로 두라고 경고하는 최종 통고로 말을 맺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들의 불평 앞머리에 놓여 있고 그것을 철회하면 전쟁을 면한다고 하는 저 메가라 포고를 우리가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찮은 일로 전쟁에 나서는 것이 된다고 말입니다. 또 가벼운 이유로 전쟁에 나섰다는 듯한 자책의 감정이 여러분 마음에 남아 있게 하지도 마십시오. 이 하찮은 일이야말로 여러분의 결의를 봉인하고 시험하는 전부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물러선다면, 처음부터 겁을 먹고 복종한 것이 되므로 곧바로 더 큰 요구를 맞아야 할 것입니다. 반면 단호히 거절하면 그들은 여러분을 더 대등한 상대로 대해야 한다는 것을 똑똑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곧 결정하십시오. 해를 입기 전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저 한 사람의 생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 하겠으나 전쟁에 나서기로 한다면, 겉으로 내세워진 이유가 큰지 작은지는 마음에 두지 말고 양보하지도 않고 우리 소유를 불안한 조건으로 붙들고 있기에 동의하지도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서 그렇게 하십시오. 대등한 자에게서 오는 요구가 법에 따른 해결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명령으로 이웃에게 들이밀어진다면, 그것이 크든 작든 뜻하는 바는 하나뿐이며 그것은 곧 노예 상태입니다.
전쟁과 양편의 재원을 두고 말하면, 자세히 견주어 보아도 아테네가 뒤진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펠로폰네소스인은 제 손으로 제 땅을 갈며 사사로운 재산도 공적인 재원도 없고, 가난이 서로에 대한 공격에 엄한 한계를 두는 까닭에 바다를 건너 오래 싸우는 전쟁의 경험도 없습니다. 이런 부류의 세력은 함대에 사람을 자주 채우거나 군대를 자주 내보내는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습니다. 집을 오래 떠나 있는 것도 제 재산에서 비용을 내는 것도 그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며, 게다가 그들은 바다를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쟁을 버티게 하는 것은 억지로 걷은 분담금보다 쌓아 둔 재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부란 돈주머니로 봉사하기보다 언제나 제 몸으로 봉사하기를 더 마다하지 않는 부류입니다. 몸은 그 위험을 넘기고 살아남으리라 자신하면서도 돈주머니가 때 이르게 바닥나지 않으리라고는 결코 그만큼 자신하지 못합니다. 전쟁이 그들의 예상보다 길어진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한 번의 전투에서라면 펠로폰네소스인과 그 동맹들이 그리스 전체에 맞설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들과 성격이 다른 세력을 상대로 전쟁을 이어 가는 일에는 그들이 무능합니다. 신속하고 힘찬 행동에 반드시 필요한 단일한 평의회실이 없고 그 자리를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회의체가 대신하는데, 거기서는 모든 나라가 똑같은 한 표를 가지고 각자 제 목적을 밀어붙이므로 결국 아무 행동도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의 큰 소망은 특정한 적에게 복수하는 것이고, 다른 이들의 큰 소망은 제 주머니를 지키는 것입니다. 모이는 것도 더뎌서, 공동의 목적을 헤아리는 데는 시간의 아주 작은 몫만 들이고 대부분은 제 목적을 밀고 나가는 데 씁니다. 그러는 동안 각자는 제가 소홀히 한 데서 아무 해도 오지 않으리라고, 이 일이든 저 일이든 자기 몫을 돌보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저마다 같은 생각을 품음으로써 공동의 대의는 눈에 띄지 않게 썩어 갑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돈이 없어 겪게 될 장애입니다. 돈이 더디게 들어오는 탓에 지체가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기회는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아티카에 요새를 세울 가능성도 그들의 해군도 우리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어떤 요새 체계로도 맞겨루는 도시를 세우기는 평화로운 때에도 어려운 일이며, 적의 땅에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테네가 그 요새를 겨누어 방비를 갖춘 것이 그 요새가 아테네를 겨누어 갖춘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한편 한낱 초소라면 침입으로, 또 도망을 쉽게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이 땅에 얼마간 해를 입힐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땅으로 배를 몰고 들어가 거기에 요새를 세우고 우리의 강력한 함대로 보복하는 것을 막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의 해상 기술이 육지의 일에 우리에게 쓸 데가 있는 것이, 그들의 육상 기술이 바다의 일에 그들에게 쓸 데가 있는 것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익숙해지는 일은 그들에게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메디아의 침공 때부터 줄곧 그것을 익혀 온 여러분도 아직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면, 농사를 짓고 바다를 모르는 사람들이, 게다가 아테네에서 보낸 강력한 감시 함대가 늘 그 앞에 있어 연습조차 못 하게 될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것을 이루어 낼 가망이 있겠습니까? 작은 함대를 상대로라면 수로 제 무지에 용기를 더하며 한번 싸움을 걸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강한 병력에 억눌리면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연습이 모자라 더 서툴러지고 따라서 더 겁이 많아질 것입니다. 뱃일도 다른 무엇과 똑같이 기술의 문제여서 한가한 때의 소일거리로 이따금 손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다른 어떤 일에 쓸 한가한 틈도 남기지 않을 만큼 까다로운 일입니다.
그들이 올림피아나 델포이의 재물에 손을 대어 더 높은 품값의 유혹으로 우리의 외국인 수부들을 꾀어내려 한다 해도, 그것이 심각한 위험이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시민과 우리 사이에 사는 외국 거류민을 배에 태워도 여전히 그들과 맞먹을 수 없는 경우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그들과 맞먹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우리 시민 가운데 있는 토착 조타수와 수부의 층이 나머지 그리스 전체보다 더 넓고 더 높다는 점입니다. 그런 걸음에 따르는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외국인 수부 가운데 누구도 며칠분의 높은 품값 때문에 제 나라에서 법 밖에 놓인 자가 되어 그들과 그들의 희망 편에 들어가 복무하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펠로폰네소스인의 처지를 꽤 공정하게 밝힌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테네의 처지는 제가 그들에게서 비판한 결함이 없고, 그들이 맞설 만한 것을 아무것도 내놓을 수 없는 그 자체의 다른 이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 땅으로 진군하면 우리는 그들의 땅으로 배를 몰고 갈 것이며, 그때 아티카 전체가 황폐해지는 것이 펠로폰네소스의 한 조각이 황폐해지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들은 전투 말고는 그 모자람을 메울 방도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섬에도 대륙에도 땅이 넉넉하기 때문입니다. 바다를 지배한다는 것은 실로 큰 일입니다.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섬사람이라고 해 봅시다. 이보다 더 뚫을 수 없는 처지를 여러분이 떠올릴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 처지를 되도록 이렇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 땅과 집에 대한 생각을 모두 버리고 바다와 도시를 빈틈없이 지켜야 합니다. 앞의 것을 두고 우리가 느낄 어떤 분함도 우리를 수에서 앞서는 펠로폰네소스인과의 전투로 몰아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승리한다 해도 그 뒤에 오는 것은 같은 우세를 상대로 하는 또 한 번의 전투일 뿐입니다. 패배는 우리 힘의 원천인 동맹들을 잃는 일을 뜻하며, 우리가 그들을 향해 진군할 수 없게 된 다음이면 그들은 하루도 잠잠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울어야 할 것은 집과 땅을 잃은 일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잃은 일입니다. 집과 땅이 사람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집과 땅을 얻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저는 여러분에게 나가서 제 손으로 그것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적어도 그런 일로는 여러분이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펠로폰네소스인에게 보이라고 명했을 것입니다.
좋은 결말을 바랄 다른 이유도 저에게는 많습니다. 여러분이 전쟁을 수행하는 일에 새로운 정복의 계획을 겹쳐 놓지 않기로 동의하고, 스스로 나서서 다른 위험에 몸을 얽어 넣기를 삼가 주신다면 말입니다. 실로 저는 적의 계략보다 우리 자신의 실책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태가 요구할 때 다른 연설에서 설명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저 사람들을 다음과 같은 답과 함께 돌려보내십시오. 스파르타인이 우리와 우리 동맹에게 이롭도록 자기들의 외국인 배제 조치를 거둔다면 우리도 메가라에게 우리 시장과 항구를 쓰도록 허락하겠다고, 조약에는 어느 쪽도 막는 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또 우리가 조약을 맺었을 때 독립된 상태로 보았던 도시들이라면 우리는 그 도시들을 독립된 채로 둘 것이며, 스파르타인 또한 자기들의 도시에 스파르타의 이익에 종속되지 않고 각자가 저마다 바라는 그런 독립을 허락할 때 그러하겠다고 하십시오. 또 우리 합의가 명시한 법에 따른 만족을 우리는 줄 뜻이 있으며, 우리가 먼저 적대 행위를 시작하지는 않겠으나 먼저 시작하는 자들에게는 맞서겠다고 하십시오. 이것이 아테네의 권리와 아테네의 품위에 동시에 맞는 답입니다. 전쟁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더 선선히 받아들일수록 맞선 자들의 열기는 더 식을 것임을, 그리고 가장 큰 위험에서 공동체와 개인이 가장 큰 영광을 얻는다는 것을 철저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와는 사뭇 다른 재원으로, 게다가 그 재원마저 버려야 했을 때에도 메디아인에게 맞서지 않았습니까? 행운보다는 지혜로, 힘보다는 담대함으로 이방인을 물리치고 자기들의 일을 지금의 이 높이까지 올려놓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뒤처져서는 안 되고, 무슨 수를 써서든 또 쓸 수 있는 모든 수로 우리 적들에게 맞서야 하며, 우리 힘을 손상 없이 후손에게 물려주려 힘써야 합니다.”
페리클레스의 말은 이러했다. 아테네인은 그의 권고가 지혜롭다고 납득하여 그가 원한 대로 표를 던졌고, 개별 항목에서나 전체에서나 그가 권한 대로 스파르타인에게 답했다. 명령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으나 휴전 조항이 정한 법적 절차에 따라 그 불평들이 공정하고 치우침 없이 해결되는 것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절들은 고향으로 떠났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들이 전쟁 전에 맞선 두 세력 사이에 있던 고발과 다툼이었으며, 에피담노스와 코르키라의 사건에서 곧바로 생겨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왕래는 그대로 이어졌고 서로 오가는 연락도 이어졌다. 그 왕래는 전령 없이 이루어졌으나 의심 없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조약을 깨뜨린 것에 맞먹고 전쟁의 사유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
1. 디아시아 — 아테네인이 자비로운 제우스(제우스 메일리키오스)를 위해 도시 밖에서 치른 큰 축제.
2. 아르콘 — 아테네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아홉 명을 뽑았고, 킬론의 때에는 정치의 기능 대부분을 이들이 맡아 보았다.
3.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토지를 갈던 계층. 시민권이 없었고 수가 많아 스파르타는 늘 이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4.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5. 에포로스 — 스파르타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5명을 뽑았고 왕까지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이 번역에서는 '감독관'으로 옮기고 첫 등장에만 원어를 함께 밝혔다.
6. 스키탈레 — 스파르타가 공문을 보낼 때 쓴 막대. 같은 굵기의 막대 두 개를 한 쌍으로 만들어, 한쪽에 가죽띠를 감아 글을 쓰고 풀어서 보내면 같은 막대에 다시 감아야 글이 읽혔다. 전령이 이것을 들고 온다는 것은 국가의 정식 소환을 뜻했다.
7. 카이아다스 — 스파르타에서 죄인의 주검을 던져 넣던 깊은 구렁.
8. 도편추방 — 아테네의 제도. 민회에서 도자기 조각에 이름을 적어 투표해 한 사람을 10년간 나라 밖으로 내보냈다. 시민권과 재산은 그대로 남았으므로 반역자에 대한 처벌과는 달랐다.
9.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및 화폐 단위. 은의 무게로 셈했고 큰 액수를 헤아릴 때 썼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