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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15장 (제V권 제XV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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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 (제V권 제XV장) 전쟁 제10년 · 클레온과 브라시다스의 죽음 · 니키아스 화약

이듬해 여름에 1년 휴전이 피티아 제전1까지 이어진 끝에 만료되었다. 휴전이 이어지는 동안 아테네인은 델로스인을 델로스에서 내쫓았는데, 그들이 봉헌되던 때에 지은 어떤 오래된 죄로 부정을 탔음이 틀림없으며 내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죽은 자들의 무덤을 옮김으로써 온전히 이루어졌다고 여겨졌던 앞서의 섬 정화에서 빠뜨린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델로스인은 파르나케스에게서 아시아의 아트라미티온을 받아, 델로스에서 옮겨 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는 동안 클레온은 휴전이 만료되면 아테네에서 낸 중장보병 1,200명과 기병 300명, 동맹의 큰 병력, 함선 30척을 이끌고 트라키아 방면의 도시들로 배를 몰고 가게 해 달라고 아테네인을 설득해 냈다. 먼저 아직 포위되어 있던 스키오네에 들러 그곳 군대에서 중장보병 얼마를 데려간 뒤, 그는 이어서 토로네의 영역에 있으며 그 도시에서 멀지 않은 항구 코포스로 배를 몰고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브라시다스가 토로네에 없으며 그곳 수비대가 자기와 싸움을 벌일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탈주병들에게서 알아내고, 함선 10척을 돌려 항구로 들어가게 하면서 군대를 이끌고 그 도시로 나아갔다. 그가 처음 이른 곳은 브라시다스가 교외를 성 안에 넣으려고 얼마 전에 도시 앞에 세워 둔 방벽이었는데, 그렇게 하려고 그는 본래 성벽의 일부를 헐어 전체를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 놓았다. 스파르타 지휘관 파시텔리다스는 그곳에 있던 만큼의 수비대를 거느리고 아테네의 공격을 물리치려 이 지점으로 서둘러 왔다. 그러나 심하게 몰리는 데다 돌아가도록 보낸 함선들이 항구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자, 파시텔리다스는 지키는 자들이 이르기 전에 그 배들이 도시에 닿을지 모르고 방벽마저 넘어가면 자기가 사로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어 외곽 방어물을 버리고 도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러나 함선에서 내린 아테네인은 이미 토로네를 차지한 뒤였고, 바짝 뒤를 쫓은 육군은 헐려 있던 옛 성벽 자리를 넘어 그와 함께 단숨에 밀고 들어가 어지러운 싸움 속에서 펠로폰네소스인과 토로네인 얼마를 죽이고 나머지를 사로잡았으니 그들의 지휘관 파시텔리다스도 그 가운데 있었다. 그동안 브라시다스는 토로네를 구원하러 나아가 이제 약 4마일2만 더 가면 되는 자리에 있었는데, 길에서 그 도시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섰다. 클레온과 아테네인은 전승 기념물 둘을 세웠으니 하나는 항구 옆에, 다른 하나는 방벽 옆에 세웠고, 토로네인의 아내와 아이들을 노예로 삼은 뒤 남자들은 펠로폰네소스인과 그곳에 있던 칼키디케인을 아울러 모두 700명을 아테네로 보냈다. 그러나 이들은 뒤에 모두 제 집으로 돌아갔으니, 펠로폰네소스인은 화약이 맺어지면서 돌아갔고 나머지는 올린토스인이 쥐고 있던 다른 포로들과 맞바꾸어 돌아갔다. 같은 무렵에 아테네 국경의 요새인 파낙톤이 보이오티아인에게 내응으로 함락되었다. 그러는 동안 클레온은 토로네에 수비대를 둔 뒤 닻을 올리고 암피폴리스로 가는 길에 아토스를 돌아 배를 몰았다.

같은 무렵에 에라시스트라토스의 아들 파이악스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아테네의 사절로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를 향해 배를 몰았다. 레온티노이인은 화의가 이루어진 뒤 아테네인이 시칠리아를 떠나자 많은 수의 새 시민을 명부에 올렸고 민중은 땅을 다시 나눌 계획을 품고 있었으나, 상층 계급이 그 뜻을 알아채고 시라쿠사인을 불러들여 민중을 내쫓았다. 쫓겨난 자들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상층 계급은 시라쿠사인과 합의를 맺고 제 도시를 버려 황폐하게 만든 뒤 시라쿠사로 가서 살았고 그곳에서 시민이 되었다. 뒤에 그들 가운데 얼마가 이에 만족하지 못해 시라쿠사를 떠나 레온티노이 도시의 한 구역인 포카이아이와 레온티노이 땅의 요충지인 브리킨니아이를 차지했고, 쫓겨난 민중의 대부분이 그곳에서 합류하자 그 방벽들을 거점으로 삼아 전쟁을 이어 갔다. 아테네인은 이 소식을 듣고 파이악스를 보냈는데, 그곳의 동맹들과 나머지 시칠리아인에게 시라쿠사의 야심 찬 계획을 어떻게든 납득시켜 시라쿠사에 맞서는 전반적 연합을 이루도록 이끌 수 있는지, 그리하여 레온티노이의 민중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칠리아에 이른 파이악스는 카마리나와 아크라가스에서는 뜻을 이루었으나 겔라에서 거절을 당하자 나머지에게는 가지 않았으니, 그들에게서도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켈인의 땅을 지나 카타나로 돌아갔고, 지나는 길에 브리킨니아이에 들러 그 주민들을 북돋운 뒤 아테네로 배를 몰아 돌아갔다.

시칠리아를 오가며 해안을 따라 항해하는 동안 그는 이탈리아의 몇몇 도시와 아테네와의 우호를 주제로 교섭했고, 메시나에서 쫓겨난 로크리스 이주민 몇을 만나기도 했으니 이들은 시칠리아의 화의가 이루어진 뒤 메시나를 갈라놓은 파당 가운데 하나가 로크리스인을 불러들여 메시나가 한동안 로크리스인의 손에 들어갔을 때 그곳으로 보내졌던 자들이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던 이들은 파이악스를 만났으나 그에게서 아무 해도 입지 않았는데, 로크리스인이 아테네와의 조약을 그와 합의해 두었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인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을 때 아테네와 화약을 맺지 않은 것은 동맹 가운데 이들뿐이었고, 자기들의 국경에 살며 자기들이 내보낸 식민단이기도 한 히포니온인 및 메드마인과의 전쟁에 몰리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 파이악스는 항해를 이어 갔고 마침내 아테네에 이르렀다.

토로네에서 암피폴리스로 가는 항해 중에 우리가 두고 온 클레온은 에이온을 근거지로 삼았고, 안드로스의 식민시 스타기로스를 쳤으나 이루지 못한 뒤 타소스의 식민시 갈렙소스를 들이쳐 빼앗았다. 그는 이제 페르디카스에게 사절을 보내 동맹의 조항에 정해진 대로 군대를 이끌고 오라고 명했고, 다른 사절을 트라키아의 오도만티인 왕 폴레스에게 보내 트라키아 용병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데려오게 했으며, 자신은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에이온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브라시다스는 제 쪽에서 케르딜리온에 감시할 자리를 잡았는데, 강 건너 아르길로스 땅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암피폴리스에서 멀지 않으며 사방을 내려다보는 곳이었으므로 클레온의 군대는 그의 눈에 띄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클레온이 적의 수가 적은 것을 얕보고 제가 데리고 있는 병력으로 암피폴리스를 치러 진군해 오리라고 굳게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브라시다스는 준비를 갖추어 트라키아 용병 1,500명과 에도니인 전부, 곧 기병과 경방패병3을 제 깃발 아래 불러 모았다. 또 암피폴리스에 있던 자들 말고도 미르키노스와 칼키디케의 경방패병 1,000명과 모두 합쳐 약 2,000명에 이르는 중장보병 병력과 그리스 기병 300명을 두고 있었다. 이 가운데 1,500명을 그는 케르딜리온에 데리고 있었고 나머지는 클레아리다스와 함께 암피폴리스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있던 클레온은 마침내 브라시다스가 내다본 대로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의 병사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에 지쳐 제 지휘관의 나약함과 무능함이며 그에게 맞설 상대의 솜씨와 용맹이며 애초에 자기들이 그를 따라나서기를 꺼렸던 일을 진지하게 곱씹기 시작했다. 이 불평이 클레온의 귀에 들어가자 그는 군대를 같은 자리에 붙들어 두어 넌더리를 내게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진영을 걷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장군의 기질은 필로스에서 그러했던 것과 같았으니, 그때의 성공이 제 능력에 자신을 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 나와서 자기와 싸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자리를 둘러보러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그가 지원군을 기다린 것도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될 경우에 승리를 확실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도시를 에워싸고 들이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와서 암피폴리스 앞의 견고한 언덕 위에 군대를 세우고, 스트리몬이 이룬 호수와 그 도시가 트라키아 쪽으로 어떻게 놓여 있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싸우지 않고 제 마음대로 물러날 수 있으리라 여겼으니, 성벽 위에 보이는 자도 없고 성문에서 나오는 자도 없었으며 문은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성 기계를 가지고 내려오지 않은 것이 잘못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지키는 자가 없었으니 그것만 있었으면 그 도시를 빼앗을 수 있었을 것이다.

브라시다스는 아테네인이 움직이는 것을 보자마자 제가 직접 케르딜리온에서 내려와 암피폴리스로 들어갔다. 그는 정규 대형을 갖추어 아테네인에게 맞서 나가는 모험을 하지 않았으니, 제 힘을 믿지 못했고 그런 시도에는 모자란다고 여겼기 때문인데 수에서 모자란 것이 아니라(수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질에서 모자랐고, 아테네 군대의 정예가 렘노스인과 임브로스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들과 함께 싸움터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계략으로 그들을 치려고 준비했다. 적에게 제 병력의 수와 그들을 무장시키느라 쓸 수밖에 없었던 임시변통을 보여 준다면, 그것을 보지 못하게 하여 자기들을 얕보는 것이 얼마나 근거 있는 일인지 적이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경우보다 적을 이길 가망이 적어지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중장보병 150명을 골라내고 나머지를 클레아리다스에게 맡긴 뒤 아테네인이 물러나기 전에 갑작스레 치기로 마음을 정했으니, 그들의 지원군이 한번 올라오도록 두고 나면 그들만을 붙잡을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병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북돋우고 제 뜻을 밝히고자 이렇게 말했다.

펠로폰네소스인 여러분, 우리가 떠나온 나라의 기질, 곧 언제나 용맹에 제 자유를 빚져 온 나라라는 것, 그리고 여러분은 도리스인이고 여러분이 맞서 싸우려는 적은 여러분이 늘 이겨 온 이오니아인이라는 사실은 더 말을 보탤 것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밀고 나가려는 공격의 계책은 밝혀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병력 전부가 아니라 그 일부로 모험에 나선다는 사실이 여러분을 겉보기에 불리한 자리에 세워 그 용기를 꺾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적이 저렇게 이 자리까지 진군해 와서 우리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무심하게 둘러보고 있는 것은, 그가 우리를 낮추어 보고 있고 누군가 나와서 제게 맞서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가장 크게 성공하는 군인은 언제나 이런 실책을 가장 잘 알아채는 사람, 제 수단을 꼼꼼히 헤아려 드러내 놓고 정규로 다가가기보다 그 순간의 기회를 붙잡아 치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적을 가장 완전하게 속임으로써 우리 편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이런 계략이야말로 전쟁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무심한 자신감이 이어지는 동안, 그리고 제가 판단하기에 지금 그러하듯 그들이 제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물러나는 것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기세가 느슨하고 기대에 팽팽히 당겨져 있지 않은 동안에, 저는 제 지휘 아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될 수 있으면 그들의 허를 찔러 그 중앙으로 달려들겠습니다. 그리고 클레아리다스, 그대는 그 뒤에 제가 이미 그들에게 달려들어 짐작건대 그들 사이에 공포를 뿌리고 있는 것을 보거든, 암피폴리스인과 나머지 동맹을 데리고 갑작스레 성문을 열어 그들에게 돌진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싸움에 뛰어드십시오. 그것이 그들 사이에 공황을 일으킬 우리의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새로 덤벼드는 자는 언제나 지금 맞붙고 있는 자보다 적에게 더 큰 두려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 시민4답게 용감한 사람임을 보이십시오. 그리고 동맹 여러분, 사내답게 그를 따르십시오. 열의와 명예와 복종이 좋은 군인의 표지임을, 그리고 오늘 이 날이 여러분을 자유인이자 스파르타의 동맹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아테네의 노예로 만들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설령 여러분 자신이 자유나 목숨을 잃지 않고 벗어난다 해도 여러분의 예속은 전보다 더 가혹한 조건이 될 것이며, 또한 여러분은 나머지 그리스인의 해방을 가로막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걸려 있는 것이 이토록 큰 줄을 알았으면 여러분 쪽에서 비겁함은 없어야 합니다. 저는 제가 남에게 설교하는 것을 스스로 행할 수 있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짧은 연설을 마치고 브라시다스는 제가 직접 출격할 준비를 했고, 합의한 대로 자기를 지원하도록 나머지를 클레아리다스와 함께 트라키아 문에 세웠다. 그러는 동안 그가 케르딜리온에서 내려오는 것이, 이어 밖에서 안이 내려다보이는 그 도시 안에서 아테나 신전 가까이에서 제물을 바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요컨대 그의 움직임은 모두 관찰되고 있었으며, 그때 마침 둘러보러 나가 있던 클레온에게 적의 병력 전부가 도시 안에 보이고 성문 아래로 말과 사람의 발이 아주 많이 보이는 것이 출격을 꾀하는 듯하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보러 올라갔고, 보고 난 뒤에는 지원군이 올라오기 전에 싸움이라는 결정적인 걸음을 내딛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고 물러날 시간이 있으리라 짐작했으므로, 퇴각 신호를 울리게 하고 좌익을 에이온 방향으로 움직여 퇴각을 수행하라는 명을 병사들에게 보냈으니 실제로 그것이 유일하게 쓸 만한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그에게는 충분히 빠르지 않았으므로 그는 제가 직접 퇴각에 끼어들어 우익을 돌게 했고, 그리하여 무장하지 않은 쪽을 적에게 내주었다. 바로 그때 브라시다스는 아테네 병력이 움직이는 것과 제 기회가 온 것을 보고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나머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자들은 결코 우리 앞에 버티고 서지 못할 것입니다. 저들의 창과 머리가 움직이는 모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저렇게 하는 군대가 돌격을 받아 내는 일은 드뭅니다. 누구든 서둘러 내가 말한 저 성문을 여십시오. 결과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서 저들을 칩시다." 그리하여 그는 목책 문과 그때 있던 긴 성벽의 첫째 문으로 나가, 언덕에서 가장 가파른 곳을 지나갈 때 지금 전승 기념물이 서 있는 그 곧은 길을 따라 온 힘을 다해 달려서, 제 쪽의 어지러움에 공황이 일고 그의 대담함에 얼이 빠진 아테네인의 중앙을 덮쳐 무너뜨렸다. 바로 그 순간에 클레아리다스는 받은 명을 수행해 그를 지원하러 트라키아 문에서 나와 그 역시 적을 쳤다. 그 결과 아테네인은 양쪽에서 갑작스레 뜻하지 않게 공격을 받아 어지러움에 빠졌고, 이미 얼마쯤 나아가 있던 에이온 쪽 좌익은 곧바로 무너져 달아났다. 좌익이 한창 물러나고 브라시다스가 우익을 치러 옮겨 가던 바로 그때에 그는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가 쓰러진 것을 아테네인은 알아채지 못했으니, 가까이 있던 자들이 그를 들어 올려 싸움터 밖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우익은 더 잘 버텼다. 처음부터 싸울 생각이 없던 클레온은 곧바로 달아나다가 미르키노스의 경방패병에게 따라잡혀 죽었으나, 그의 보병은 언덕 위에서 밀집 대형을 이루어 클레아리다스의 공격을 두세 번 물리쳤고 미르키노스와 칼키디케의 기병 및 경방패병이 던지는 무기에 에워싸여 무너지기 전까지는 끝내 물러서지 않았다. 이리하여 아테네 군대는 이제 모두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고, 싸움에서, 또는 칼키디케 기병과 경방패병의 손에 죽기를 면한 자들은 언덕들 사이로 흩어졌다가 어렵사리 에이온으로 길을 잡아 갔다. 브라시다스를 들어 올려 구해 낸 사람들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그를 도시 안으로 데려갔다. 그는 제 병사들이 이겼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살아 있었고 오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추격에서 클레아리다스와 함께 돌아온 나머지 군대는 죽은 자들의 무구를 벗겨 내고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이 뒤에 동맹 전부가 무장한 채 참례해 브라시다스를 나랏돈으로 도시 안, 지금 장터가 있는 자리 앞에 묻었고, 암피폴리스인은 그의 무덤을 울타리로 두른 뒤 그때부터 줄곧 그를 영웅으로 섬겨 제물을 바치고 경기와 해마다의 봉헌이라는 영예를 그에게 바쳐 왔다. 그들은 그를 자기네 식민시의 창건자로 세웠고, 하그논이 세운 건조물들을 헐어 내고 그가 그곳을 세웠다는 기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워 버렸다. 브라시다스가 자기들을 지켜 준 자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또 아테네가 두려워 스파르타의 동맹을 구하고 있던 터라 아테네와 지금처럼 적대하는 관계에서는 하그논에게 그의 영예를 바치는 일이 전과 같은 이로움도 만족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테네인에게 그들의 전사자도 돌려주었다. 아테네 쪽은 약 600명이 쓰러졌고 적 쪽은 겨우 7명이었는데, 정규 교전이 아니라 내가 이야기한 대로 우연과 공황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사자를 거둔 뒤 아테네인은 배를 몰아 본국으로 떠났고, 클레아리다스와 그의 병사들은 암피폴리스의 일을 정리하려고 남았다.

같은 무렵에 스파르타인 세 사람, 곧 람피아스와 아우토카리다스와 에피키디다스가 중장보병 900명의 지원군을 이끌고 트라키아 방면의 도시들로 갔고, 트라키스의 헤라클레이아에 이르러 그곳의 일을 자기들 보기에 좋은 대로 고쳤다. 그들이 그곳에서 지체하는 동안 이 싸움이 벌어졌고 그렇게 여름이 끝났다.

뒤이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 람피아스와 그 동료들은 테살리아의 피에리온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테살리아인이 그들이 더 나아가는 것을 막았고 그들이 지원하러 온 브라시다스는 죽은 뒤였으므로, 아테네인은 패해 떠났고 자기들은 브라시다스의 계획을 수행할 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보아 때가 지나갔다고 여기고는 본국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간 주된 이유는 자기들이 떠날 때 스파르타의 여론이 실은 화약 쪽으로 기울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암피폴리스 전투와 람피아스가 테살리아에서 물러난 일 바로 뒤에 양쪽 다 전쟁을 밀고 나가기를 그치고 화약에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아테네는 델리온에서 심하게 당했고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암피폴리스에서 다시 당했으므로, 그때그때의 성공이 불어넣은 최후의 승리에 대한 믿음으로 전에는 교섭을 거부하게 했던 제 힘에 대한 자신감을 더는 갖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아테네는 제 패배에 마음이 동한 동맹들이 더 널리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웠고, 필로스의 일이 내준 화약의 훌륭한 기회를 놓아 버린 것을 뉘우치고 있었다. 한편 스파르타는 그 땅을 짓밟음으로써 몇 해면 아테네인의 세력을 무너뜨리기에 넉넉하리라던 제 생각이 전쟁의 결과로 틀렸음이 드러났음을 알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그 섬에서 여태 스파르타에 알려진 적 없는 재앙을 겪었고, 필로스와 키테라에서 나온 자들에게 제 나라가 약탈당하는 것을 보았으며, 헬롯5들은 달아나고 있었고, 펠로폰네소스에 남은 자들이 바깥에 있는 자들을 믿고 형세를 이용해 옛 봉기의 시도를 되풀이할까 늘 근심에 잠겨 있었다. 이뿐 아니라 마침 아르고스인과 맺은 30년 휴전이 만료될 참이었는데 아르고스인은 키누리아를 자기들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그것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했으므로, 아르고스와 아테네를 한꺼번에 상대해 싸우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또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의 몇몇 도시가 적 쪽으로 넘어갈 뜻을 품고 있다고 의심했는데 실제로 그러했다.

이런 사정들이 양쪽으로 하여금 타협할 마음을 먹게 했으며, 그 가운데 스파르타인이 아마 가장 간절했을 것이니 섬에서 사로잡힌 사람들을 되찾기를 애타게 바랐기 때문인데 그들 가운데 스파르타 시민들은 으뜸가는 가문에 속했고 따라서 스파르타의 통치 기구와 친족 관계에 있었다. 교섭은 그들이 사로잡힌 직후에 시작되었으나 승리의 때를 맞은 아테네인은 온당한 조건이면 무엇에도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델리온에서 그들이 패한 뒤에 스파르타는 그들이 이제 더 귀를 기울이리라는 것을 알고 곧바로 1년 휴전을 맺었으며, 그동안 양쪽이 함께 의논해 더 긴 기간을 합의할 수 있는지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제 아테네가 암피폴리스에서 패하고, 양쪽에서 화약에 맞선 주된 두 사람이었던 클레온과 브라시다스가 죽은 뒤로 두 도시에서 권력의 으뜸가는 후보였던 두 사람, 곧 스파르타 왕 파우사니아스의 아들 플레이스토아낙스와 당대에 가장 운이 좋은 장군이던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는 저마다 어느 때보다 화약을 간절히 바랐다. 브라시다스가 화약에 맞선 것은 전쟁이 그에게 준 성공과 명예 때문이었고, 클레온이 맞선 것은 평온이 돌아오면 제 죄가 더 쉽게 드러나고 제 중상이 덜 믿길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니키아스는 아직 행복하고 존경받는 동안에 제 행운을 굳혀 두고, 자신과 제 나라 사람들이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후세에 늘 성공한 정치가라는 이름을 물려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길은 위험에서 벗어나 있으면서 운에 제 몸을 되도록 적게 맡기는 것이며 그렇게 위험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화약뿐이라고 여겼다. 한편 플레이스토아낙스는 제 복권 때문에 적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제 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패배가 닥칠 때마다 그 부당한 복권이 그 원인이라는 듯이 적들이 그를 번번이 사람들 앞에 내세워 헐뜯었다. 그 고발은 그와 그의 아우 아리스토클레스가 델포이의 여사제에게 뇌물을 주어, 그 신전에 잇따라 이른 스파르타 사절단에게 제우스의 반신 아들의 씨를 이국에서 본국으로 데려오라고, 그러지 않으면 은으로 만든 보습으로 밭을 갈게 되리라고 말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가 때가 되자 스파르타인을 움직여, 리카이온으로 쫓겨난 지 열아홉째 해에(그는 아티카에서 물러나는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추방되었을 때 그곳으로 갔고, 스파르타인이 두려워 제 집의 절반을 제우스의 신성한 구역 안에 지어 두었다) 스파르타를 처음 세울 때 왕들을 앉히면서 치른 것과 똑같은 춤과 제물로 자기를 복권시키게 했다고 사람들은 우겼다. 이 고발이 주는 쓰라림, 그리고 화약이 이루어지면 어떤 재앙도 일어날 수 없고 스파르타가 제 사람들을 되찾고 나면 적들이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전쟁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가장 높은 자리가 언제나 잘못된 모든 일의 추문을 짊어져야 했으므로) 그로 하여금 타결을 간절히 바라게 했다. 그리하여 이해 겨울은 회담에 쓰였다. 그리고 봄이 빠르게 다가오자 스파르타인은 아티카에 요새를 세워 점령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여러 도시에 돌렸고, 아테네인이 제 제안에 귀를 기울이게 하려고 이것을 그들의 머리 위에 칼처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회담에서 양쪽이 여러 요구를 내세운 끝에 다음과 같은 바탕 위에서 화약이 합의되었다. 양쪽은 저마다 정복한 것을 돌려주되 아테네는 니사이아를 갖기로 했으니, 아테네가 플라타이아를 요구하자 테베인은 자기들이 그곳을 힘이나 내응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그 시민들이 합의에 따라 자발적으로 붙어 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맞섰고 아테네 쪽 설명으로도 니사이아를 얻은 내력이 바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리되자 스파르타인은 동맹들을 소집했고, 이 절차에 찬성하지 않은 보이오티아인과 코린트인과 엘리스인과 메가라인을 뺀 모두가 화약에 찬성표를 던지자 조약을 맺고 화약을 이루었으니, 계약을 맺는 양쪽이 저마다 다음 조항에 맹세했다.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들은 조약을 맺고 도시마다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

1. 그리스인이 함께 받드는 신전에 관하여는, 제물을 바치고 여행하고 신탁을 묻고 신탁소나 경기에 참석하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저마다 제 나라의 관습에 따라 육로와 해로로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한다.

2.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과 성소, 그리고 델포이인은 그 땅과 그 사람을 아울러 제 나라의 관습에 따라 자기들의 법으로 다스리고, 자기들의 나라가 세금을 매기며, 자기들의 재판관이 재판한다.

3. 이 조약은 아테네인과 아테네인의 동맹에게, 그리고 스파르타인과 스파르타인의 동맹에게 50년 동안 구속력을 가지며,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속임도 해침도 없어야 한다.

4.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아테네인과 그 동맹에게, 또는 아테네인과 그 동맹이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에게 해를 입힐 뜻으로 무기를 드는 일은 어떤 방식이나 수단으로도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양쪽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양쪽이 합의하는 바에 따라 법과 맹세에 호소한다.

5.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은 암피폴리스를 아테네인에게 돌려준다. 다만 스파르타인이 아테네인에게 넘기는 도시들의 경우에는 그 주민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과 제 재산을 가지고 가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그 도시들은 독립을 유지하며 아리스테이데스의 공납6만을 낸다. 또 조약이 맺어진 뒤에는 그 공납을 내는 한 아테네인이나 그 동맹이 그 도시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는 아르길로스, 스타기로스, 아칸토스, 스콜로스, 올린토스, 스파르톨로스다. 이 도시들은 중립을 지키며 스파르타인의 동맹도 아테네인의 동맹도 아니다. 다만 그 도시들이 동의한다면 아테네인이 그들을 제 동맹으로 삼는 것은 허용되나, 언제나 그 도시들이 그것을 원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메키베르나인과 사네인과 싱고스인은 올린토스인 및 아칸토스인과 마찬가지로 제 도시에 그대로 산다. 그리고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은 파낙톤을 아테네인에게 돌려준다.

6. 아테네인은 코리파시온과 키테라와 메타나를, 그리고 아테네의 감옥이나 아테네가 다스리는 그 밖의 곳에 있는 스파르타인을 돌려주며, 스키오네에 포위되어 있는 펠로폰네소스인과 스키오네에 있는 그 밖의 스파르타 동맹 전부와 브라시다스가 그곳에 들여보낸 자 전부, 그리고 아테네의 감옥이나 아테네가 다스리는 그 밖의 곳에 있을지 모르는 스파르타 동맹의 다른 누구든 풀어 준다.

7.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도 같은 방식으로 자기들 손안에 있는 아테네인이나 그 동맹의 사람을 누구든 돌려준다.

8. 스키오네와 토로네와 세르밀리온, 그리고 아테네인이 보유한 그 밖의 어떤 도시에 대해서는 아테네인이 원하는 대로 조치할 수 있다.

9. 아테네인은 도시마다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에게 맹세한다. 저마다 제 나라에서 가장 구속력이 큰 맹세로 맹세하되 도시마다 17명이 한다. 맹세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 합의와 조약을 정직하게 속임 없이 지키겠다." 같은 방식으로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이 아테네인에게 맹세한다. 그리고 이 맹세는 양쪽이 해마다 갱신한다. 비석은 올림피아와 피티아와 이스트모스에,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에, 스파르타에서는 아미클라이의 신전에 세운다.

10. 무엇이든 빠뜨린 것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에 관한 어떤 점이든,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 양쪽이 각자의 재량에 따라 그것을 고치는 일은 그 맹세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 조약은 스파르타에서 플레이스톨라스의 감독관(에포로스)7 재임 중 아르테미시온 달8 27일부터, 아테네에서 알카이오스의 아르콘9 재임 중 엘라페볼리온 달 25일부터 시작된다. 스파르타인 쪽에서 맹세하고 헌주를 부은 사람은 플레이스토아낙스, 아기스, 플레이스톨라스, 다마게토스, 키오니스, 메타게네스, 아칸토스, 다이토스, 이스카고라스, 필로카리다스, 제욱시다스, 안티포스, 텔리스, 알키나다스, 엠페디아스, 메나스, 라필로스였다. 아테네인 쪽에서는 람폰, 이스트미오니코스, 니키아스, 라케스, 에우티데모스, 프로클레스, 피토도로스, 하그논, 미르틸로스, 트라시클레스, 테아게네스, 아리스토크라테스, 이올키오스, 티모크라테스, 레온, 라마코스, 데모스테네스였다.

이 조약은 겨울이 막 끝나는 봄에, 디오니소스의 도시 축제 바로 뒤에 맺어졌으니 아티카에 대한 첫 침입과 이 전쟁이 시작된 때로부터 며칠의 차이를 빼면 꼭 10년이 되는 때였다. 이것은 지나간 일을 표시하는 데 쓰이는 여러 정무관이나 명예직의 이름을 열거하는 데 기대기보다 계절로 헤아려야 한다. 어떤 일이 그 재임 기간의 처음에 일어났을 수도 있고 중간에 일어났을 수도 있으며 어느 시점에든 일어났을 수 있는 곳에서는 정확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역사에서 채택한 방법인 여름과 겨울로 셈해 보면, 그 하나하나가 반 년에 해당하므로 이 첫 전쟁 안에 여름이 열 번, 겨울도 그만큼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반환의 일을 먼저 시작하는 몫이 돌아간 스파르타인은 제 손안에 있던 전쟁 포로를 모두 곧바로 풀어 주었고, 이스카고라스와 메나스와 필로카리다스를 사절로 트라키아 방면의 도시들에 보내어 클레아리다스에게는 암피폴리스를 아테네인에게 넘기라고 명하고 나머지 동맹들에게는 저마다 제게 해당하는 대로 조약을 받아들이라고 명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클레아리다스도 칼키디케인의 뜻을 맞춰 주고 싶어 그 도시를 넘기지 않았으니, 그들의 뜻을 거슬러 그렇게 할 힘이 자기에게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에서 온 사절들과 함께 제가 직접 서둘러 스파르타로 갔는데, 이스카고라스와 그 동료들이 제기할지 모르는 고발에 맞서 제 불복을 변호하고 또 그 합의를 고치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이 이미 매여 있음을 알게 되자, 될 수 있으면 그곳을 넘기고 그것이 안 되면 어떻게든 그 안에 있는 펠로폰네소스인을 데리고 나오라는 지시를 그들에게서 받아 서둘러 다시 길을 떠났다.

마침 동맹들이 스파르타에 직접 와 있었으므로,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게 스파르타인이 이제 그것을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은 앞서와 같은 이유로, 지금 것보다 더 공정한 조약이 합의되지 않는 한 그렇게 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제 결심을 굳게 지키자 스파르타인은 그들을 돌려보냈고, 이제 아테네인과 동맹을 맺기로 결정했다. 조약을 갱신해 달라는 암펠리다스와 리카스의 요청을 거절한 아르고스는 아테네가 없으면 더는 두려울 것이 없고, 탐나는 아테네의 동맹이 나머지 펠로폰네소스에게 닫혀 버린다면 그들이 조용히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테네 사절들과 회담한 뒤 다음 조건으로 동맹이 합의되고 맹세가 교환되었다.

1. 스파르타인은 50년 동안 아테네인의 동맹이 된다.

2. 어떤 적이든 스파르타의 영토를 침입해 스파르타인에게 해를 입히면, 아테네인은 제 힘에 따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는다. 다만 침입자가 그 땅을 약탈한 뒤에 떠나 버린 경우에는, 그 도시를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적으로 삼아 양쪽이 함께 응징하며 한쪽이 다른 쪽 없이 화약을 맺지 않는다. 이는 정직하게, 신의를 지켜, 속임 없이 한다.

3. 어떤 적이든 아테네의 영토를 침입해 아테네인에게 해를 입히면, 스파르타인은 제 힘에 따라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돕는다. 다만 침입자가 그 땅을 약탈한 뒤에 떠나 버린 경우에는, 그 도시를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적으로 삼아 양쪽이 함께 응징하며 한쪽이 다른 쪽 없이 화약을 맺지 않는다. 이는 정직하게, 신의를 지켜, 속임 없이 한다.

4. 노예 인구가 봉기하면 아테네인은 제 힘에 따라 온 힘을 다해 스파르타인을 돕는다.

5. 이 조약은 앞의 조약에 맹세한 것과 같은 사람들이 양쪽에서 맹세한다. 갱신은 해마다 하되 스파르타인이 디오니시아를 맞아 아테네로 가고 아테네인이 히아킨티아10를 맞아 스파르타로 가서 한다. 그리고 양쪽이 저마다 비석을 세우되 스파르타에서는 아미클라이의 아폴론 상 가까이에,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나 상 가까이에 세운다.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이 이 동맹에 어떤 점을 더하거나 거기서 빼는 것이 좋겠다고 보면, 양쪽이 각자의 재량에 따라 그렇게 하는 일은 그 맹세에 어긋나지 않는다.

스파르타인 쪽에서 맹세한 사람은 플레이스토아낙스, 아기스, 플레이스톨라스, 다마게토스, 키오니스, 메타게네스, 아칸토스, 다이토스, 이스카고라스, 필로카리다스, 제욱시다스, 안티포스, 알키나다스, 텔리스, 엠페디아스, 메나스, 라필로스였다. 아테네인 쪽에서는 람폰, 이스트미오니코스, 라케스, 니키아스, 에우티데모스, 프로클레스, 피토도로스, 하그논, 미르틸로스, 트라시클레스, 테아게네스, 아리스토크라테스, 이올키오스, 티모크라테스, 레온, 라마코스, 데모스테네스였다.

이 동맹은 조약이 맺어진 지 오래지 않아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테네인은 섬에서 잡은 사람들을 스파르타인에게 돌려주었고 제11년의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로써 앞선 10년 전체를 차지한 첫 전쟁의 역사가 마무리된다.

주

  1. 1. 피티아 제전 —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서 4년마다 열린 범그리스 경기. 올림피아 제전 다음가는 규모였고, 이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성스러운 휴전이 지켜졌다. 뒤에 나오는 조약의 '피티아'도 이 신역, 곧 델포이를 가리킨다.

  2. 2. 약 4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3. 3. 경방패병 — 작은 방패와 투창으로 무장한 경보병. 중장보병처럼 밀집 대형으로 싸우지 않고, 흩어져 던지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싸웠다.

  4. 4.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5. 5.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수가 많아 스파르타인은 늘 그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6. 6. 아리스테이데스의 공납 — 페르시아 전쟁 뒤 델로스 동맹을 꾸릴 때 아테네의 아리스테이데스가 가입 도시마다 매긴 최초의 분담금이다. 조약은 이 도시들이 그 뒤에 올라간 액수가 아니라 처음의 액수만 내도록 정한 것이다.

  7. 7. 에포로스 — 스파르타의 최고 정무관. 해마다 5명을 뽑았고 왕까지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이 번역에서는 '감독관'으로 옮기고 첫 등장에만 원어를 함께 밝혔다. 그해의 으뜸 감독관의 이름으로 그해를 불렀다.

  8. 8. 아르테미시온 달·엘라페볼리온 달 — 앞은 스파르타의 달 이름이고 뒤는 아테네의 달 이름이다. 그리스의 도시들은 저마다 다른 달력을 썼으므로 조약은 양쪽의 날짜를 나란히 적었다. 둘 다 봄에 드는 달이다.

  9. 9. 아르콘 — 아테네의 정무관직. 해마다 뽑았고 그 가운데 수석 아르콘의 이름으로 그해를 불렀다.

  10. 10. 히아킨티아 — 아미클라이에서 아폴론과 히아킨토스를 기려 해마다 사흘 동안 치른 스파르타의 큰 축제. 함께 나오는 디오니시아는 아테네가 디오니소스를 기려 봄에 치른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