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제VI권 제XIX장) 전쟁 제17년 · 시라쿠사의 당파 ·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이야기 · 알키비아데스의 실각
그동안 시라쿠사에는 원정에 관한 소식이 사방에서 들어왔으나 오랫동안 조금도 믿음을 얻지 못했다. 실제로 민회가 열렸고, 아래에 보이는 대로 여러 연설자가 나와 아테네 원정에 관한 보고를 믿거나 반박하는 말을 했는데, 그 가운데 헤르몬의 아들 헤르모크라테스가 이 일의 진상을 자기가 안다고 확신하고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제가 이 원정이 실재한다는 것을 두고 말한다 해도 앞서 말한 다른 이들보다 더 믿음을 얻지는 못할 것이고, 믿을 만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말을 처음 꺼내거나 옮기는 자가 아무도 돌려세우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수고의 대가로 어리석은 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도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나라가 위태롭고 이 일을 두고 제가 다른 누구보다 근거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마당에 겁을 먹고 입을 다물지는 결코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놀라워하셔도, 아테네인은 바다와 뭍의 큰 병력을 이끌고 우리를 치러 나섰으며, 겉으로 내세우는 것은 에게스타인을 돕고 레온티노이를 되세운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시칠리아를, 무엇보다 우리 도시를 정복하려는 것이니, 우리 도시만 손에 넣으면 나머지는 쉽게 따라오리라고 그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머지않아 이곳에 나타나리라고 마음을 정하시고, 손안에 있는 수단으로 그들을 어떻게 가장 잘 물리칠 수 있을지 살피십시오. 소식을 업신여겨 방심하거나 믿지 않아 공공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한편 제 말을 믿는 분들은 적의 병력이나 대담함에 낙담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입히는 해가 우리가 그들에게 입히는 해보다 클 수 없으며, 그들의 군세가 크다는 것도 우리에게 이로운 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시칠리아의 나머지 그리스인을 생각하면 군세가 클수록 좋으니, 두려움이 그들을 더 기꺼이 우리 편에 서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이기거나 그들이 품은 야심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쫓아 보낸다면(그들이 바라는 것을 얻으리라고는 저는 한순간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더없이 영광스러운 위업이 될 것이며, 제 판단으로는 결코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아닙니다. 실로 그리스의 것이든 이민족의 것이든, 제 나라에서 멀리 나아가 성공을 거둔 큰 군세는 몇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 땅의 주민과 그 이웃들보다 수가 많을 수는 없으니, 두려움이 이들 모두를 한데 묶기 때문입니다. 또 그들이 남의 땅에서 보급이 모자라 일을 그르친다면, 그들이 겪는 곤경의 주된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하더라도 그 계획의 표적이 되었던 쪽에는 그에 못지않은 명성이 남습니다. 바로 그 아테네인이 메디아인의 패배로 일어선 것이 그러했으니, 그 패배는 대체로 우연한 원인들에서 비롯했고 아테네가 그 공격의 표적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에게 명성이 돌아갔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자신 있게 준비를 시작합시다. 시켈인 가운데 일부에게는 사람을 보내어 마음을 굳히게 하고 다른 일부와는 우의와 동맹을 맺으며, 시칠리아의 나머지에는 사절을 보내어 이 위험이 모두에게 공동의 것임을 보이고, 이탈리아에도 사절을 보내어 그들을 우리 동맹으로 삼거나 적어도 아테네인을 받아들이지 않게 합시다. 저는 카르타고에도 사람을 보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봅니다. 그곳 사람들도 결코 마음을 놓고 있지 않으니, 아테네인이 언젠가 제 도시를 치지 않을까 늘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시칠리아가 희생되도록 내버려 두면 저희도 해를 입으리라고 여겨, 드러내 놓고는 아니더라도 은밀히, 이 길이 아니면 저 길로 우리를 돕고자 할지 모릅니다. 그럴 뜻만 있다면 오늘날 그 일을 해낼 힘이 가장 큰 것이 그들이니, 금과 은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전쟁도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그 힘으로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스파르타와 코린트에도 사람을 보내어 되도록 빨리 이곳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또 그리스에서 전쟁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라고 청합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무엇보다 참으로 해야 할 일은, 타고난 조용함을 사랑하는 여러분으로서는 좀처럼 알아보지 못할 것이면서도 제가 기어이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칠리아 그리스인이 모두 함께, 적어도 우리 말고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이가 함께, 지금 가진 함대 전부를 두 달치 양식과 함께 물에 내려 타렌툼과 이아피기아곶에서 아테네인을 맞이하고, 시칠리아를 두고 싸우기 전에 먼저 이오니아해를 건널 길을 두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군대에 두려움을 심어 놓고 우리에게는 방어의 근거지가 있다는 생각을 그들의 머릿속에 심어 줄 것이며(타렌툼이 우리를 맞아들일 채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들은 온 군세를 이끌고 넓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그토록 긴 항해 내내 대열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이고 느리게 몇 척씩 나뉘어 다가오는 동안 우리가 치기에 쉬운 상대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배를 가볍게 하고 빠른 배들을 모아 그것으로 우리를 친다면, 우리는 그들이 노를 저어 지쳤을 때 덮치거나, 그러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타렌툼으로 물러설 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들은 싸움을 걸겠다는 생각만으로 얼마 안 되는 양식을 싣고 건너온 터라 황량한 곳에서 궁지에 몰려, 그대로 머물러 봉쇄를 당하든지 나머지 군세를 버리고 해안을 따라 항해해 보든지 해야 할 것이며, 도시들이 자기들을 받아 줄지 확실히 알지 못하는 탓에 더욱 기가 꺾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한 가지 고려만으로도 그들이 코르키라에서 배를 내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또 의논하고 우리의 수와 소재를 정찰하는 사이에 그들은 겨울이 닥칠 때까지 철을 흘려보내거나, 그토록 뜻밖의 사정에 당황해 원정을 걷어치울 것입니다. 더구나 제가 듣기로 그들의 가장 노련한 장군이 제 뜻에 거스르며 지휘를 맡았으니, 우리 쪽에서 본때 있게 움직여 구실을 하나라도 내어 주면 그는 그것을 덥석 붙잡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수가 실제보다 많다고 전해지리라고 저는 확신하며, 사람의 마음은 제가 듣는 것에 움직이는 법입니다. 게다가 먼저 치는 쪽, 또는 공격을 받으면 스스로를 지킬 뜻이 있음을 보이는 쪽이 더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니, 그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가 되어 있음을 사람들이 보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테네인에게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맞서지 않으리라 믿고 우리를 치고 있으며, 우리가 스파르타인을 도와 그들을 짓밟지 않았으므로 우리를 호되게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이 대비하지 못한 용기를 우리가 보이는 것을 본다면, 그들은 우리의 실제 힘보다 그 뜻밖의 일에 더 크게 낙담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설득해 이 용기를 보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전쟁을 위한 전반적인 준비에 한순간도 지체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모두 기억하십시오. 치러 오는 자를 업신여기는 마음은 싸움에 나서는 용맹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좋지만, 지금으로서는 두려움이 시키는 준비를 가장 확실한 안전의 약속으로 받아들이고 위험이 실재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아테네인이 우리를 치러 오고 있다는 것, 이미 바다에 나섰다는 것, 여기에 거의 다 와 있다는 것, 이것이 제가 확신하는 바입니다.
헤르모크라테스는 여기까지 말했다. 한편 시라쿠사 사람들은 저희끼리 크게 다투고 있었으니, 어떤 이들은 아테네인이 올 생각이 전혀 없고 그의 말에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들은 설령 그들이 온다 한들 열 배로 되갚아 줄 수 없을 만한 해를 무슨 수로 입히겠느냐고 물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이 일 전체를 가볍게 여겨 웃음거리로 삼았다. 요컨대 헤르모크라테스를 믿고 앞날을 두려워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때 민중의 지도자이자 그 무렵 대중에게 큰 힘을 가지고 있던 아테나고라스가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테네인으로 말하자면, 그들이 남들이 짐작하는 만큼 판단을 그르쳐 이곳에 와서 우리의 신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자는 겁쟁이이거나 제 나라를 파는 자입니다. 한편 그런 소식을 실어 나르며 여러분을 그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자들로 말하면, 우리가 저희 속을 꿰뚫어 보지 못한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면 나는 그 뻔뻔함보다 그 어리석음에 더 놀랄 것입니다. 사실인즉 그들에게는 두려워할 사사로운 까닭이 있고, 도시를 경악에 빠뜨려 제 공포를 공공의 불안 뒤에 감추려는 것입니다. 요컨대 이 소문들의 값어치가 그 정도입니다. 그것들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시칠리아에서 늘 소동을 일으키는 자들이 꾸며 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제대로 조언을 받는다면, 무엇이 있을 법한지 헤아릴 때 이 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빈틈없고 경험 많은 사람이, 내가 아테네인을 그런 사람으로 보거니와, 함직한 일을 길잡이로 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펠로폰네소스인을 등 뒤에 남겨 둔 채, 그리스에서 벌이던 전쟁을 제대로 끝내지도 않고 시칠리아에서 그에 못지않게 고된 새 전쟁을 일부러 찾아 나선다는 것은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실로 내 판단으로는, 이토록 수가 많고 이토록 큰 도시를 가진 우리가 가서 저희를 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더없이 다행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대로 그들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시칠리아가 모든 점에서 더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펠로폰네소스보다 이 전쟁을 감당할 힘이 크다고 보며, 우리 도시 하나만으로도 침입군이라 하는 이 병력이, 설령 지금의 두 배가 된다 해도, 맞설 상대가 못 된다고 봅니다. 나는 그들이 말을 데려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에게스타인에게서 얼마쯤 얻을지 모르는 것 말고는 이곳에서도 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또 우리와 수가 맞먹는 중장보병 병력을 배에 싣고 오지도 못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아무리 가볍게 실었다 해도 그 배들이 이 먼 길을 오는 것만으로 벅찰 터이고, 이만한 크기의 도시를 치는 데 드는 다른 물자를 실어 나르는 일은 말할 것도 없으며 그 양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에 관한 내 생각이 어찌나 굳은지, 그들이 시라쿠사만 한 도시를 통째로 끌고 와 우리 국경에 자리 잡고 거기서 전쟁을 벌인다 해도 어떻게 몰살을 면할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시칠리아 전체가, 실제로 그렇게 되겠지만, 그들에게 적대하는 마당에 배에서 내려 천막과 최소한의 살림만으로 친 진영 하나를 가지고, 그나마 우리 기병이 두려워 거기서 멀리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성공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 대로 이것을 보고 있으며, 내가 알 만한 근거가 있거니와 제 나라의 소유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곳의 어떤 자들은 사실도 아니고 앞으로도 결코 사실이 되지 않을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습니다. 이 자들이 행동으로 나설 수 없을 때 이런 이야기로, 또 이보다 더 고약한 이야기로 여러분 민중을 겁주어 정권을 제 손에 넣으려 드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니, 나는 늘 그것을 봅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그토록 자주 꾀하다가 언젠가 성공하지 않을까, 또 우리가 아픔을 느끼지 않는 동안에는 그것을 미리 막는 일에도, 범인이 드러난 뒤에 뒤쫓는 일에도 너무 무력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탓에 우리 도시는 좀처럼 편안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분란에 시달리며, 적을 상대로 하는 싸움만큼이나 제 몸을 상대로 하는 싸움을 자주 겪으니, 이따금 들어서는 참주정과 더러운 음모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를 받쳐 준다면 나는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겠습니다. 다수인 여러분을 내 편으로 얻고, 그런 음모를 꾸미는 자들을 벌함으로써 그리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붙잡혔을 때만이 아니라(그것은 해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할 힘은 없으되 하려는 뜻을 품은 것만으로도 벌하겠습니다. 적을 벌할 때는 그가 한 일만이 아니라 그가 하려는 일을 두고 미리 벌해야 하는 법이니, 먼저 경계를 늦춘 자가 먼저 화를 입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한 소수의 무리를 꾸짖고 지켜보며 때로는 경고할 것이니, 내 생각에는 그것이 그들을 나쁜 길에서 돌려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 번 물었듯이, 젊은이들이여, 도대체 무엇을 바라십니까? 당장 관직을 쥐고 싶습니까? 법이 그것을 금합니다. 그 법은 여러분이 자격을 갖추었을 때 여러분을 욕보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아직 자격이 없기에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다수와 법 앞에 나란히 서기는 싫다는 것입니까? 그러나 같은 나라의 시민이 같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이 어떻게 옳을 수 있습니까?
아마 누군가는 민주정이 지혜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재산을 가진 자가 다스리기에도 가장 알맞다고 말할 것입니다. 나는 그와 반대로 말합니다. 첫째, 데모스1 곧 민중이라는 말은 나라 전체를 아우르지만 과두정은 그 한 부분만을 가리킵니다. 둘째, 재산을 가장 잘 지키는 자가 부자이고 가장 잘 조언하는 자가 지혜로운 이라 하더라도, 듣고 판단하는 일에서는 다수만 한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재능은 저마다 따로도 다 함께도 민주정 안에서 제자리를 얻습니다. 그러나 과두정은 다수에게 위험의 몫은 나누어 주면서, 가장 큰 몫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익은 통째로 가져가 제 것으로 삼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힘 있고 젊은 자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지만, 큰 도시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어리석은 자들이여, 여러분이 제 계획의 악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아는 그리스인 가운데 가장 분별없는 자들이요 그것을 깨닫고도 감히 밀고 나간다면 가장 죄 많은 자들이거니와, 지금이라도 뉘우칠 일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아직 지혜를 배워 나라의 이익을, 우리 모두의 공동의 이익을 키울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가 번영하면 여러분 가운데 뛰어난 이들도 몫을 얻되 동포 대중보다 더 큰 몫을 얻을 것이지만, 여러분이 다른 것을 꾀한다면 모든 것을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소문은 그만두십시오. 민중은 여러분의 목적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참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아테네인이 온다면 이 도시는 제 이름에 걸맞게 그들을 물리칠 것이며, 더구나 우리에게는 이 일을 맡아볼 장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는 쪽으로 기울듯이 이 가운데 아무것도 사실이 아니라면, 도시는 여러분이 가져오는 소식에 공황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고 여러분을 통치자로 골라 스스로 택한 예속을 제게 씌우지도 않을 것입니다. 도시가 스스로 이 일을 살펴 여러분의 말을 행동인 양 판단할 것이며, 여러분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제 자유를 빼앗기는 대신, 남에게 존중받게 할 수단을 늘 손안에 갖추어 둠으로써 그 자유를 지키려 힘쓸 것입니다.
아테나고라스의 말은 이러했다. 이제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나 다른 연설자가 더 나오는 것을 막고, 눈앞의 문제를 두고 제 말을 이렇게 덧붙였다. "연설하는 이들이 서로 헐뜯는 말을 내놓는 것도, 듣는 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받은 소식을 살피고, 저마다 제 힘으로 또 도시 전체가 침입자를 물리칠 채비를 어떻게 가장 잘 갖출 수 있을지 보아야 합니다. 설령 그럴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나라가 말과 무기와 그 밖의 온갖 전쟁 장비를 갖추어 두어서 해로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맡아 살피고 명령하겠으며, 여러 도시에 사람을 보내어 정찰하게 하고 그 밖에 바람직해 보이는 일도 모두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얼마는 이미 살펴 두었고, 무엇을 알아내든 여러분 앞에 내놓겠습니다." 장군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뒤 시라쿠사인들은 민회에서 흩어졌다.
그동안 아테네인들은 모든 동맹과 함께 코르키라에 이르러 있었다. 이곳에서 장군들은 먼저 군세를 다시 사열하고 어떤 차례로 닻을 내리고 진을 칠지 정했으며, 함대 전체를 세 부대로 나누어 저마다 하나씩 맡았으니, 한꺼번에 항해하다가 들르는 곳마다 물과 정박지와 양식에 쪼들리는 일을 피하고 아울러 부대마다 제 지휘관을 두어 전체가 더 질서 있고 다루기 쉽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그들은 함선 3척을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먼저 보내어 어느 도시가 자기들을 받아들일지 알아보게 하면서, 도중에 자기들을 맞아 뭍에 닿기 전에 알려 주라고 일렀다.
그 뒤 아테네인들은 코르키라에서 닻을 올리고 시칠리아로 건너가기 시작했으니, 이때 군세는 갤리선 모두 134척(그 밖에 로도스의 오십노선 2척이 있었다)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가운데 100척이 아테네 배로 군선 60척과 병력 수송선 40척이었으며 나머지는 키오스와 다른 동맹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중장보병은 모두 5,100명이었으니, 곧 아테네의 명부에 오른 아테네 시민 1,500명과 해병으로 배에 태운 테테스2 700명, 그리고 나머지는 동맹군으로 그 가운데 일부는 아테네에 복속한 자들이었으며, 이들 말고도 아르고스인 500명과 삯을 받고 복무하는 만티네이아인 250명이 있었다. 궁수는 모두 480명이었고 그 가운데 80명이 크레타인이었으며, 로도스에서 온 투석병 700명과 메가라에서 온 경무장 망명자 120명, 그리고 말 30필을 실은 기병 수송선 1척이 있었다.
전쟁을 위해 바다를 건넌 첫 군세의 힘이 이러했다. 이 병력의 보급은 곡식을 실은 화물선 30척이 맡았는데, 이 배들은 빵 굽는 이와 석공과 목수, 그리고 요새를 쌓는 데 쓸 연장을 함께 실어 날랐고, 그와 마찬가지로 징발된 작은 배 100척이 뒤따랐으며, 그 밖에도 장사를 하려고 제 발로 군세를 따라온 작은 배와 화물선이 많았다. 이 모두가 이제 코르키라를 떠나 다 함께 이오니아해를 가로질렀다. 온 병력은 저마다 운이 좋기도 하고 덜 좋기도 한 채로 이아피기아곶과 타렌툼에 닿은 뒤 이탈리아 해안을 따라 나아갔는데, 도시들은 시장과 성문을 닫아걸고 물과 닻을 내릴 자유 말고는 아무것도 내주지 않았으며 타렌툼과 로크리는 그것마저 내주지 않았으니, 그렇게 그들은 이탈리아의 끝인 레기온에 이르렀다. 마침내 이곳에서 그들은 다시 하나로 모였고,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하자 도시 바깥 아르테미스 신역에 진을 쳤으며 그곳에는 시장도 열어 주었으므로 배를 뭍으로 끌어 올리고 조용히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레기온인과 교섭을 열어, 같은 칼키디케인으로서 레온티노이의 겨레붙이를 도우라고 청했다. 레기온인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고 이탈리아의 나머지 그리스인이 내리는 결정을 기다렸다가 그들이 하는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아테네인들은 시칠리아의 일에서 어떤 행동이 가장 나을지 헤아리기 시작했고, 그러는 사이에 먼저 보낸 배들이 에게스타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니, 아테네에 온 사자들이 말한 돈이 정말로 그곳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시라쿠사인들에게는 사방에서, 또 정찰하러 보낸 제 장교들에게서 함대가 레기온에 있다는 확실한 소식이 들어왔다. 그러자 그들은 믿지 않던 마음을 버리고 온 힘을 다해 준비에 들어갔다. 시켈인에게는 경우에 따라 수비대나 사절을 두루 보냈고, 시골에 있는 페리폴로이3의 초소에는 수비대를 넣었으며, 도시에서는 말과 무기를 사열해 모자란 것이 없는지 살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그 밖의 온갖 조치도 취했다.
그러는 동안 먼저 보냈던 배 3척이 에게스타에서 레기온의 아테네인들에게 돌아와, 약속한 액수는커녕 내놓을 수 있는 것이 30탈란톤4뿐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장군들은 시작부터 이렇게 기대가 어긋난 데다, 레온티노이와 겨레붙이인 데다 아테네와 늘 우의를 지켜 온 까닭에 가장 먼저 끌어들이려 했고 가장 믿을 만한 근거가 있던 레기온인이 원정에 함께하기를 거절한 일까지 겹쳐 적잖이 낙담했다. 니키아스는 에게스타에서 온 소식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도 그의 두 동료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 에게스타인들은 아테네에서 온 첫 사절이 제 재력을 살피러 왔을 때 다음과 같은 술책을 썼다. 그들은 문제의 사절을 에릭스의 아프로디테 신전으로 데려가 그곳에 바쳐 둔 보물을 보여 주었으니, 대접과 포도주 국자와 향로를 비롯해 수많은 그릇붙이였는데, 그것들이 은으로 되어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 값어치에 견주어 터무니없이 큰 부의 인상을 주었다. 또한 그들은 배의 선원들을 따로 대접하면서, 에게스타 안에서 찾아낼 수 있거나 이웃한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고을에서 빌릴 수 있는 금잔과 은잔을 죄다 그러모아 저마다 제 것인 양 잔치에 들고 나왔다. 모두가 거의 같은 잔을 돌려썼고 어느 자리에서나 그릇붙이가 잔뜩 나왔으므로 아테네 수병들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아테네로 돌아가서는 제가 본 재물을 두고 큰소리로 떠벌렸다. 이렇게 속아 넘어간 자들은 다시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했던 터라, 에게스타에 짐작하던 돈이 없다는 소식이 퍼지자 병사들에게 크게 비난받았다.
그러는 동안 장군들은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니키아스의 생각은 군세 전부를 이끌고 원정의 본래 목표인 셀리누스로 가서, 에게스타인이 전군에 쓸 돈을 댈 수 있으면 그에 맞추어 방책을 정하고, 댈 수 없으면 그들이 청했던 함선 60척에 쓸 양식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다음, 그곳에 머물러 그들과 셀리누스인 사이의 일을 힘으로든 합의로든 매듭짓고, 그런 뒤에 다른 도시들을 해안을 따라 지나가며 아테네의 힘을 보이고 벗과 동맹을 위하는 열의를 증명한 뒤에 본국으로 돌아가되(레온티노이를 돕거나 다른 도시 몇을 끌어들일 갑작스럽고 뜻밖의 기회가 생긴다면 모르지만), 본국의 재원을 축내어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는 말자는 것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지금과 같은 큰 원정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물러가 스스로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셀리누스와 시라쿠사를 뺀 모든 도시에 전령을 보내야 하고, 시켈인 가운데 일부는 시라쿠사에서 떼어 내어 반란하게 하고 다른 일부와는 우의를 맺어 곡식과 병력을 얻도록 힘써야 하며, 무엇보다 먼저 메시나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그들이 시칠리아로 드는 길목과 입구에 바로 자리 잡고 있어 군대에 더없이 좋은 항구와 근거지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고을을 끌어들이고 전쟁에서 누가 제 동맹이 될지 안 다음에야 마침내 시라쿠사와 셀리누스를 칠 수 있으며, 다만 셀리누스가 에게스타와 합의에 이르고 시라쿠사가 레온티노이를 되세우는 일에 반대하기를 그만둔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반면에 라마코스는 곧장 시라쿠사로 가서, 사람들이 아직 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공황이 한창일 때 그 도시의 성벽 아래에서 당장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군세든 처음이 가장 무서운 법이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시간을 흘려보내면 사람들의 용기가 되살아나 마침내 그것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도 거의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이었다. 시라쿠사가 아직 자기들이 온다는 것에 떨고 있는 동안 갑작스레 친다면, 지금보다 더 대단해 보일 때가 없을 제 수의 위세로, 닥쳐올 재앙을 미리 그려 보게 함으로써, 무엇보다 싸움이 눈앞에 닥쳤다는 위기로 스스로 승리를 거두고 적을 완전한 공황에 빠뜨릴 가장 좋은 기회를 얻으리라고 그는 보았다. 또 그들이 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성 밖 들판에 있는 많은 사람을 기습할 수 있을 것이며, 적이 제 재산을 안으로 들여 나르는 동안 군대가 병력을 다해 도시 앞에 자리 잡는다면 노획물이 모자라지도 않으리라고 했다. 그리하면 시칠리아의 나머지 그리스인도 곧바로 시라쿠사와 동맹을 맺을 마음이 줄어들 것이고, 어느 쪽이 가장 강한지 지켜보기를 기다리지 않고 아테네인 편에 설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메가라를 함대의 기지로 삼아 물러설 곳이자 치고 나갈 근거지로 삼아야 하니, 그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데다 뭍으로도 바다로도 시라쿠사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었다.
라마코스는 이런 뜻으로 말한 뒤에도 알키비아데스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 뒤 알키비아데스는 제 배를 타고 메시나로 건너가 동맹을 제안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주민들은 성벽 밖에 시장을 열어 줄 수는 있어도 그를 성 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그는 레기온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장군들은 함대 전체에서 60척을 골라 사람을 채우고 양식을 실은 뒤 해안을 따라 낙소스로 갔으며, 나머지 군세는 자기들 가운데 한 사람과 함께 레기온에 남겨 두었다. 낙소스인의 맞이를 받은 그들은 이어 해안을 따라 카타나로 갔는데, 그 고을에 시라쿠사 편을 드는 당파가 있어 주민들이 들이기를 거절하자 테리아스 강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이곳에서 한뎃잠을 자고 이튿날 배를 한 줄로 세워 시라쿠사로 갔으니, 앞서 보낸 10척만 빼고 모든 배가 함께였다. 그 10척은 큰 항구 안으로 들어가 물에 내린 함대가 있는지 살피고, 배 위에서 전령을 시켜 아테네인은 동맹이자 겨레붙이로서 레온티노이인을 제 나라에 되세우러 온 것이니 그들 가운데 시라쿠사에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말고 그곳을 떠나 제 벗이자 은인인 아테네인에게 오라고 알리게 했다. 이렇게 알린 뒤 도시와 항구들, 그리고 전쟁에서 작전의 근거지로 삼아야 할 그 땅의 생김새를 정찰하고 나서 그들은 카타나로 되돌아갔다.
이곳에서 민회가 열렸는데, 주민들은 군세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면서도 장군들에게는 들어와 바라는 바를 말하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알키비아데스가 말하고 시민들이 민회에 마음을 쏟고 있는 동안, 병사들은 눈에 띄지 않게 허술하게 막아 둔 뒷문을 부수고 고을 안으로 들어가 장터로 몰려들었다. 고을 안의 시라쿠사 편 당파는 군대가 들어온 것을 보자마자 겁을 먹고 물러났으니 수가 도무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아테네인과 동맹을 맺기로 표결하고 레기온에 있는 나머지 병력을 데려오라고 청했다. 그 뒤 아테네인들은 레기온으로 갔다가 이번에는 군세 전부를 이끌고 카타나로 떠났으며, 닿자마자 진영을 꾸리는 일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카마리나에서 그들에게 전갈이 왔으니, 그들이 그곳으로 가면 고을이 그들 편으로 넘어오리라는 것과 시라쿠사인이 함대에 사람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아테네인들은 군세 전부를 이끌고 해안을 따라 먼저 시라쿠사로 갔으나 그곳에서 사람을 채우는 함대를 보지 못했고, 그대로 해안을 따라 카마리나까지 가서 바닷가에 배를 대고 주민들에게 전령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면서, 자기들이 더 청하지 않는 한 아테네인을 배 한 척으로만 맞이하도록 맹세에 매여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아테네인들은 다시 배를 돌렸고, 시라쿠사 땅에 올라 약탈하다가 시라쿠사 기병이 달려드는 바람에 경보병 가운데 낙오한 자 몇을 잃은 뒤 그렇게 카타나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알키비아데스를 데리러 아테네에서 온 살라미니아호5를 보았다. 그 배는 나라가 그에게 건 혐의에 답하러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가지고 왔으며, 그와 함께 비의6와 헤르메스상7을 두고 신성모독으로 고발된 다른 병사 몇에게도 같은 명령이 내려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원정이 떠난 뒤에도 비의와 헤르메스상에 관한 사실을 캐는 일에 여전히 열심이었으니, 밀고자를 따져 보는 대신 의심에 찬 마음으로 누구의 말이든 가리지 않고 반겼으며, 무뢰배의 증언을 근거로 가장 훌륭한 시민들을 붙잡아 가두었고, 밀고자가 무뢰한이라는 이유로 평판 좋은 피고인을 캐묻지 않고 지나가느니 차라리 이 일을 밑바닥까지 헤집기를 택했다. 민중은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그 아들들의 참주정이 끝나기 전에 얼마나 가혹해졌는지, 또 그것을 마침내 무너뜨린 것이 저희와 하르모디오스가 아니라 스파르타인이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늘 두려움에 싸여 무엇이든 의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실로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의 그 대담한 거사는 연애 사건에서 비롯한 것인데, 나는 이를 얼마간 자세히 이야기하여 아테네인이 제 참주들을 두고, 또 제 역사의 사실을 두고 이야기할 때 세상의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확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이려 한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참주 자리를 쥔 채 나이 들어 죽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세간에서 흔히 믿는 대로 히파르코스가 아니라 맏아들 히피아스였다. 그때 하르모디오스는 젊음의 아름다움이 한창이었고, 중간 형편의 시민인 아리스토게이톤이 그의 연인으로 그를 차지하고 있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아들 히파르코스가 구애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하르모디오스가 이를 아리스토게이톤에게 알렸고, 분노한 연인은 힘 있는 히파르코스가 하르모디오스를 강제로 빼앗을까 두려워 제 처지가 허락하는 만큼의 계획을 곧바로 세워 참주정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러는 사이 히파르코스는 하르모디오스에게 두 번째로 구애했다가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힘을 쓰기는 꺼려, 드러나지 않게 그를 모욕할 방도를 마련했다. 실로 그들의 통치는 대체로 백성에게 가혹하지 않았고 실제로 미움을 살 만한 데도 없었다. 이 참주들은 누구 못지않게 지혜와 덕을 닦았고, 아테네인에게서 수입의 20분의 1을 넘겨 거두지 않으면서도 도시를 훌륭하게 꾸미고 전쟁을 치렀으며 신전에 바칠 제물을 마련했다. 그 밖에는 도시가 기왕의 법을 온전히 누리도록 내버려 두었고, 다만 관직 하나는 늘 집안사람 누군가의 손에 두도록 마음을 썼다. 아테네에서 해마다 뽑는 아르콘8 자리에 오른 집안사람 가운데에는 참주 히피아스의 아들이자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른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있었으니, 그는 재임하는 동안 장터에 열두 신의 제단을, 피티아 신역에 아폴론의 제단을 바쳤다. 아테네 백성은 뒷날 장터의 제단에 덧대어 길이를 늘이면서 그 새김글을 지웠으나, 피티아 신역의 것은 글자가 바랬을망정 지금도 볼 수 있으며 그 내용은 이러하다.
히피아스의 아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제 아르콘 재임의 이 기록을 피티아 아폴론의 신역에 바쳐 올렸노라.
히피아스가 맏아들이었고 통치를 이어받았다는 것, 이것은 내가 남들보다 더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서 아는 사실로 단언하는 바이며 다음과 같은 정황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적자인 형제들 가운데 자식을 둔 것으로 보이는 이는 그뿐이니, 그 제단이 이를 보여 주고 아크로폴리스에 세워 참주들의 죄를 기록한 기둥도 이를 보여 주는데, 그 기둥은 테살로스나 히파르코스의 자식은 하나도 적지 않으면서 히페레키데스의 아들 칼리아스의 딸 미리네에게서 얻은 히피아스의 자식 다섯을 적고 있다. 그리고 맏이가 먼저 혼인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그 기둥에서 그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 다음에 첫머리로 오는데, 그가 아버지 다음의 맏이이자 그때 다스리던 참주였으므로 이 또한 아주 자연스럽다. 또 나는 히파르코스가 살해될 때 권력을 쥐고 있었고 히피아스가 바로 그날 스스로 자리를 굳혀야 했다면 히피아스가 그토록 쉽게 참주 자리를 얻었으리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오래전부터 시민들을 위압하고 용병들에게 복종을 받는 데 익숙해 있었으므로, 권력을 부려 본 적 없는 아우가 겪었을 곤란은 조금도 겪지 않고 이겼을 뿐 아니라 손쉽게 이긴 것이다. 히파르코스를 이름나게 한 그 슬픈 운명이 후세에게서 그가 참주였다는 평판까지 그에게 안겨 주었다.
하르모디오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구애를 물리침당한 히파르코스는 마음먹은 대로 그를 모욕했으니, 먼저 그의 누이인 어린 소녀를 어느 행렬에 나와 바구니를 이고 가라고 부른 다음 그 아이가 자격이 없어 애초에 부른 적이 없다는 구실로 돌려보낸 것이다. 하르모디오스가 이 일에 분개했다면, 아리스토게이톤은 그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격분했다. 그리하여 거사에 함께할 이들과 모든 것을 정해 둔 다음 두 사람은 파나테나이아9 대축제만을 기다렸으니, 행렬에 끼는 시민들이 의심을 사지 않고 무장한 채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은 그날뿐이었다. 아리스토게이톤과 하르모디오스가 먼저 나서고 공모자들이 곧바로 호위대를 맡아 그들을 거들기로 했다. 음모에 든 이는 더 안전하도록 많지 않았고, 게다가 그들은 음모를 모르는 이들도 몇몇 대담한 이의 본보기에 휩쓸려 손에 쥔 무기로 제 자유를 되찾으리라고 기대했다.
마침내 축제 날이 왔고, 히피아스는 호위대와 함께 도시 바깥 케라메이코스에 나가 행렬의 여러 부분이 어떻게 나아갈지 정하고 있었다.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은 이미 단검을 지니고 거사를 채비하고 있었는데, 공모자 가운데 하나가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던 히피아스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겁을 먹어 자기들이 발각되어 곧 붙잡히리라고 단정했다. 그리하여 될 수 있으면 자기들에게 잘못을 저지른 자, 그를 두고 이 모든 위험을 무릅쓴 바로 그자에게 먼저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그들은 그 차림 그대로 성문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레오코리온 곁에서 히파르코스와 마주치자 앞뒤 가리지 않고 단숨에 그에게 덤벼들었으니, 아리스토게이톤은 사랑에, 하르모디오스는 모욕에 미쳐 있었으며, 그들은 그를 쳐서 죽였다. 아리스토게이톤은 사람들이 몰려든 덕에 그 자리에서는 호위대를 벗어났으나 나중에 붙잡혀 조금도 자비롭지 않게 처형되었고, 하르모디오스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케라메이코스에 있던 히피아스에게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곧바로 사건이 일어난 곳이 아니라 행렬 안의 무장한 사람들에게로 갔으니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아직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을 때였고, 제 속을 드러내지 않도록 그 자리에 맞게 표정을 꾸미고는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무기를 두고 그리로 가라고 일렀다. 그들은 그가 할 말이 있는 줄로 여겨 그대로 물러났고, 그러자 그는 용병들에게 무기를 치우라고 이른 다음 그 자리에서 죄가 있다고 여긴 자들과 단검을 지닌 자를 모두 가려냈으니, 행렬에서 쓰는 무기는 으레 방패와 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상처 입은 사랑이 먼저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을 음모로 이끌었고, 그 순간의 놀람이 앞서 이야기한 무모한 거사로 그들을 몰아갔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참주정은 아테네인을 더 무겁게 짓눌렀고, 더욱 겁이 많아진 히피아스는 시민을 많이 죽이는 한편 정변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바깥에서 피신처를 찾으려고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그는 아테네 사람이면서도 딸 아르케디케를 람프사코스 사람 아이안티데스에게, 곧 람프사코스 참주의 아들에게 주었으니, 그 집안이 다레이오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무덤은 람프사코스에 있고 거기에는 이런 새김글이 있다.
이 땅에 아르케디케가 묻혀 있다. 히피아스가 그 아비요 아테네가 그를 낳았으니, 참주의 딸이요 아내요 누이였으되 그 가슴에 교만은 깃든 적이 없었노라.
히피아스는 그 뒤로 3년을 더 아테네인 위에 군림하다가 4년째에 스파르타인과 추방당한 알크마이온 가문 사람들의 손에 쫓겨났고, 안전을 보장받아 시게이온으로, 다시 람프사코스의 아이안티데스에게로 갔으며, 거기서 다레이오스 왕에게로 갔다. 그는 20년 뒤 늙은 몸으로 그 궁정을 떠나 메디아인과 함께 마라톤에 왔다.
이런 일들을 마음에 두고 그 문제를 두고 들어서 아는 것을 모두 떠올리면서, 아테네 백성은 성미가 까다로워져 비의 사건으로 고발된 자들을 의심하게 되었고 일어난 일 전부가 과두정과 왕정을 노린 음모의 한 부분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생긴 노여움 속에서 이미 이름 있는 사람이 여럿 옥에 갇혔고, 민심은 누그러질 낌새를 보이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사나워져 붙잡히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갇혀 있던 자 가운데 누구보다 죄가 크다고 여겨지던 한 사람이 같이 갇힌 자의 권유로 사실을 털어놓았는데,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두고는 두 가지 의견이 있으니 그때도 그 뒤로도 누가 그 일을 저질렀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그 다른 자는 이렇게 설득할 논거를 찾아냈다. 설령 그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 제 몸을 건지고 나라를 지금의 의심에서 풀어 주어야 하며, 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자백하는 편이 부인하다가 재판에 넘겨지는 것보다 안전이 더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헤르메스상 사건에 자기와 다른 이들이 관련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아테네 백성은 민중을 겨냥해 음모를 꾸민 자들을 찾아내지 못해 그때까지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마침내 진상에 이르렀다고 여겨 기뻐하며, 곧바로 밀고자와 그가 지목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을 모두 풀어 주었고, 고발된 자들을 재판에 넘겨 붙잡힌 만큼을 처형했으며 달아난 자들에게는 사형을 선고하고 그 목에 상금을 걸었다. 결국 이 일에서 벌을 받은 자들이 부당하게 벌받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도시의 나머지 사람들은 당장 눈에 띄게 마음을 놓았다.
알키비아데스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가 떠나기 전에 그를 공격하던 바로 그 적들이 부추긴 탓에 여론은 그에게 몹시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아테네인들은 헤르메스상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여기게 되자, 그가 연루된 비의 사건 역시 같은 의도로 그가 꾸민 것이며 민주정을 노린 음모와 이어져 있다고 그 어느 때보다 굳게 믿었다. 그런데 마침 이 소동이 한창일 때 스파르타의 적은 병력이 보이오티아인과 꾸민 어떤 계획에 따라 이스트모스까지 진출한 일이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것이 보이오티아인 때문이 아니라 그의 사주로 미리 짜 둔 대로 온 것이며, 시민들이 들어온 정보에 따라 움직여 저들보다 앞서 그 죄인들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도시가 배신당했으리라고 여겼다. 시민들은 하룻밤을 성벽 안 테세우스 신전에서 무장한 채 자기까지 했다. 아르고스에 있던 알키비아데스의 벗들도 바로 이때 민중을 치려는 계획을 꾸민다는 의심을 받았고, 아테네인들은 그 때문에 섬들에 맡겨 두었던 아르고스 인질들을 아르고스 민중에게 넘겨 죽이게 했다. 요컨대 알키비아데스를 의심할 거리가 어디에서나 나왔다. 그리하여 그를 재판에 넘겨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그와 밀고에서 이름이 나온 다른 이들을 데려오라고 살라미니아호를 시칠리아로 보내면서, 그에게 와서 제게 걸린 혐의에 답하라고 명하되 그를 붙잡지는 말라고 일렀으니, 시칠리아에 있는 제 군대에도 적에게도 소동을 일으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그의 영향으로 함께하게 되었다고 여겨지던 만티네이아인과 아르고스인의 복무를 붙들어 두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알키비아데스는 제 배를 타고 함께 고발된 이들과 더불어 아테네로 돌아가는 것처럼 살라미니아호와 함께 시칠리아를 떠나 투리이까지 동행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배를 버리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토록 큰 편견이 자기들을 겨누고 있는 마당에 재판을 받으러 본국으로 가기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살라미니아호의 선원들은 한동안 머물며 알키비아데스와 그 일행을 찾았으나 마침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자 돛을 올리고 떠났다. 이제 법 밖의 몸이 된 알키비아데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배를 타고 투리이에서 펠로폰네소스로 건너갔고, 아테네인들은 그와 그 일행에게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주
1. 데모스 — 아테네와 여러 그리스 도시에서 '민중'이자 '시민 전체'를 함께 뜻하던 말. 민주정(데모크라티아)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2. 테테스 — 아테네의 재산 등급 가운데 가장 낮은 계층. 중장보병의 무구를 스스로 갖출 형편이 못 되어 주로 함대의 노를 저었고, 이 원정에서는 나라가 무구를 내주어 해병으로 태웠다.
3. 페리폴로이 — 국경 수비 부대. 변경의 초소와 요새를 지켰다.
4.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5. 살라미니아호 — 아테네가 공적인 사명에 쓴 전용 함선. 사절을 보내고 국가의 명령을 전하는 일을 맡았다. 살라미스섬과는 다른 것이다.
6. 비의 — 엘레우시스에서 데메테르 여신에게 바치던 비밀 의식. 입문자만 볼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밖에서 흉내 내거나 발설하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다루어졌다.
7. 헤르메스상 — 아테네의 거리와 집 앞과 신전 어귀에 세운 헤르메스 신의 네모진 석상. 기원전 415년 원정 직전에 이 상들이 하룻밤 사이에 훼손된 사건을 말한다.
8. 아르콘 — 아테네의 정무관직. 해마다 뽑았고 그 가운데 수석 아르콘의 이름으로 그해를 불렀다.
9. 파나테나이아 —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에게 바치던 도시 최대의 축제. 큰 행렬이 아크로폴리스까지 올라갔고, 4년마다 특히 성대하게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