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제IV권 제XII장) 전쟁 제7년 · 필로스 점령 · 스팍테리아의 스파르타군 항복
이듬해 여름 곡식이 이삭을 맺을 무렵 시라쿠사 함선 10척과 같은 수의 로크리스 함선이 시칠리아의 메시나로 가서 그곳 주민들의 초청을 받아 도시를 차지했고, 메시나는 아테네에 반기를 들었다. 시라쿠사인들이 이 일을 꾸민 주된 까닭은 그곳이 시칠리아로 들어오는 길목이 되는 것을 보고 아테네인들이 뒷날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더 큰 군세로 자기들을 치지 않을까 두려워한 데 있었고, 로크리스인들의 까닭은 해협 양쪽에서 싸움을 이어 가며 제 원수인 레기온 사람들을 굴복시키려 한 데 있었다. 한편 로크리스인들은 레기온이 메시나를 돕지 못하게 하려고, 또 자기들 쪽에 와 있던 레기온 망명자 몇이 권하기도 하여 온 병력을 들어 레기온 땅으로 쳐들어갔다. 그 도시는 오랜 내분으로 갈가리 찢겨 당장은 맞설 힘이 없었으므로 침입자들에게는 그만큼 더 구미가 당기는 먹잇감이었다. 로크리스의 지상군은 그 땅을 짓밟은 뒤 물러갔고, 함선들은 메시나를 지키려 그대로 남았으며, 그곳을 근거지로 전쟁을 이어 가려고 같은 곳으로 보낼 다른 배들에도 사람을 태우고 있었다.
같은 무렵 봄에, 곡식이 여물기 전에 펠로폰네소스인과 그 동맹들은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모스의 아들 아기스의 지휘 아래 아티카를 침공하여 진을 치고 그 땅을 짓밟았다. 그사이 아테네인들은 시칠리아로 보내려고 준비해 두었던 함선 40척을 남은 장군인 에우리메돈과 소포클레스1와 함께 떠나보냈다. 그들의 동료인 피토도로스는 이미 먼저 그리로 가 있었다. 이들은 항해 길에 들러 도시 안의 코르키라인들을 살피라는 지시도 함께 받았는데, 그들이 산속의 망명자들에게 약탈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망명자들을 돕고자 얼마 전 펠로폰네소스 함선 60척이 떠났으니, 도시에 번지는 굶주림 때문에 그곳을 굴복시키기가 쉬우리라고 여긴 것이었다. 아카르나니아에서 돌아온 뒤 맡은 일 없이 지내던 데모스테네스도 청을 넣어, 원한다면 펠로폰네소스 해안에서 이 함대를 쓸 수 있도록 허락을 얻었다.
라코니아 앞바다에서 그들은 펠로폰네소스 함선들이 이미 코르키라에 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이에 에우리메돈과 소포클레스는 그 섬으로 서둘러 가려 했으나 데모스테네스는 항해를 이어 가기 전에 먼저 필로스에 들러 거기서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이 이의를 내놓는 사이 마침 돌풍이 일어 함대를 필로스로 몰아넣었다. 데모스테네스는 곧바로 그곳에 요새를 쌓자고 재촉했는데, 바로 이 일 때문에 항해에 따라나섰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돌과 재목이 넉넉하고 지형 자체가 험해 지키기 좋으며 둘레의 넓은 땅과 더불어 비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짚어 보였다. 필로스, 곧 스파르타인들이 부르는 이름으로는 코리파시온은 스파르타에서 약 45마일2 떨어져 있었고 메세니아인의 옛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휘관들은 그에게, 그런 곳을 차지하여 나라에 비용을 지우고 싶다면 펠로폰네소스에 인적 없는 곶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이 바로 곁에 항구를 두었다는 점에서 그런 종류의 다른 곳들과 다르다고 보았고, 그 땅의 옛 주민으로 스파르타인과 같은 말을 쓰는 메세니아인들이 이곳에서 나가 침입하면 스파르타인에게 더없이 큰 해를 끼칠 수 있을 뿐 아니라 동시에 믿음직한 수비대가 되어 주리라고 보았다.
그는 이 일을 부대장들에게 말했으나 장군들도 병사들도 설득하지 못했고, 날씨가 사나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사들 자신이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진 끝에 문득 둘러 가며 그곳에 요새를 쌓자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본격적으로 일에 매달렸는데, 쇠 연장이 없었으므로 돌을 주워 모아 서로 맞는 대로 쌓아 올렸고, 반죽이 필요한 곳에서는 나를 통이 없어 등에 지고 날랐으니, 몸을 굽혀 반죽이 흘러내리지 않게 하고 두 손을 등 뒤로 맞잡아 떨어지지 않게 붙들었다. 스파르타인들이 닿기 전에 가장 허술한 곳만이라도 마무리하려고 그들은 온 힘을 다했는데, 그곳 대부분은 더 쌓지 않아도 지형만으로 충분히 험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파르타인들은 축제를 지내고 있었고, 처음에는 이 소식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 자기들이 마음먹고 나서기만 하면 적이 곧바로 그곳을 비우거나 힘으로 쉽게 빼앗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들의 군대가 아테네 앞에 나가 있었던 것도 이 지체에 얼마간 몫을 했다. 아테네인들은 엿새 만에 뭍 쪽과 가장 손질이 필요한 곳에 요새를 쌓았고, 데모스테네스에게 함선 5척을 남겨 그곳을 지키게 한 뒤 함대의 주력은 코르키라와 시칠리아를 향한 항해를 서둘렀다.
아티카에 있던 펠로폰네소스인들은 필로스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서둘러 본국으로 돌아갔으니, 스파르타인들과 그들의 왕 아기스는 이 일이 자기들에게 절실하게 닿는 문제라고 여겼다. 게다가 철 이르게, 곡식이 아직 푸를 때 침공한 터라 병력 대부분이 양식이 모자랐고, 날씨도 그 계절치고는 유난히 사나워 군대를 몹시 괴롭혔다. 이렇게 여러 까닭이 겹쳐 그들의 철수를 재촉했고 이번 침공을 매우 짧게 만들었으니, 실제로 그들은 아티카에 15일밖에 머무르지 않았다.
같은 무렵 아테네 장군 시모니데스는 수비대들에서 아테네인 약간과 그 지방 동맹군 여럿을 끌어모아 트라키아의 에이온을 내응으로 빼앗았는데, 그곳은 멘데의 식민시로 아테네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손에 넣기가 무섭게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이 올라와 그를 거기서 몰아냈고 그는 병사를 많이 잃었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아티카에서 돌아오자 스파르타 시민3들과 가장 가까운 페리오이코이4가 곧바로 필로스로 떠났고, 나머지 스파르타인들은 막 다른 전역에서 돌아온 참이라 더 느리게 뒤따랐다. 펠로폰네소스 전역에 되도록 빨리 필로스로 오라는 전갈도 돌렸다. 한편 코르키라에 가 있던 펠로폰네소스 함선 60척을 불러들였는데, 승무원들이 레우카스의 지협 너머로 배를 끌어 옮긴 덕분에 자킨토스에 있던 아테네 함대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 필로스에 닿았고, 그곳에는 지상군이 먼저 와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함대가 들어오기 전에 데모스테네스는 틈을 내어 함선 2척을 몰래 내보내, 자킨토스의 함대에 타고 있던 에우리메돈과 아테네인들에게 필로스가 위태롭다는 것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다. 그 배들이 데모스테네스의 명을 좇아 서둘러 떠나는 동안 스파르타인들은 뭍과 바다 양쪽에서 요새를 들이칠 채비를 했는데, 급히 지은 데다 변변찮은 수비대가 지키는 진지쯤은 쉽게 빼앗으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아테네 함선들이 자킨토스에서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그전에 그곳을 빼앗지 못할 경우에는 항구의 입구를 막아 그 안에 닻을 내리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스팍테리아섬이 항구 바로 앞에 길게 늘어서 있어 항구를 안전하게 해 주는 동시에 그 입구를 좁혀 놓았으니, 필로스와 아테네인의 요새에 가까운 쪽에는 함선 2척이 지날 만한 물길이, 나머지 본토에 가까운 쪽에는 8척이나 9척이 지날 만한 물길이 남았다. 그 밖에 이 섬은 온통 숲으로 덮여 있었고 사람이 살지 않아 가로지르는 길이 없었으며, 길이는 1마일 5펄롱쯤 되었다. 스파르타인들은 이 물목들을 함선을 다닥다닥 붙여 세우고 뱃머리를 바다 쪽으로 돌린 줄로 막을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적이 이 섬을 발판으로 삼아 자기들을 칠까 두려워하여 중장보병 얼마를 그리로 건네 보내고 다른 병력은 해안을 따라 배치했다. 이렇게 하면 섬도 대륙도 아테네인에게는 똑같이 적지가 되어 어느 쪽에도 내릴 수 없을 것이었고, 물목 바깥쪽으로 트인 바다를 향한 필로스 자체의 해안에는 항구가 없어 제 동포를 구원할 근거지로 삼을 만한 지점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자기들 곧 스파르타인들은 해전도 위험도 없이 십중팔구 그곳의 주인이 되리라고 보았으니, 그곳은 갑작스레 점령된 데다 양식도 갖추지 못한 터였다. 이렇게 정한 뒤 그들은 모든 부대에서 제비를 뽑아 중장보병을 섬으로 건네 보냈다. 그전에도 교대 부대로 건너간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마지막으로 그곳에 남은 이들은 420명이었고 헬롯5 시종들을 데리고 있었으며 몰로브로스의 아들 에피타다스가 지휘했다.
한편 데모스테네스는 스파르타인들이 바다와 뭍에서 한꺼번에 자기를 치려는 것을 보고 그 자신도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남겨진 배들 가운데 아직 남아 있던 갤리선들을 요새 아래로 끌어 올려 목책으로 둘러쳤고, 거기서 내린 수병들을 변변찮은 방패로 무장시켰는데 대부분 버들가지로 엮은 것이었다. 그런 황량한 곳에서는 무구를 구할 길이 없었고, 그나마 이것들도 마침 그들에게 와 있던 메세니아의 30노 사략선 한 척과 메세니아 사람들의 배 한 척에서 얻은 것이었다. 이 메세니아인들 가운데는 중장보병 40명이 있었는데 그는 이들도 나머지와 함께 썼다. 무장한 자와 무장하지 않은 자 대부분을 안쪽으로 향한 곳 가운데 가장 튼튼하고 험한 자리에 세워 지상군의 어떠한 공격도 물리치라고 명한 다음, 그는 전 병력에서 중장보병 60명과 궁수 약간을 골라 이들을 데리고 성벽 밖으로 나가 바다까지 내려갔으니, 적이 상륙을 꾀할 만한 곳이 바로 거기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곳은 땅이 험하고 바위투성이인 데다 트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바로 그곳이 성벽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라는 사실이 적의 기세를 돋우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은 제 해군의 우세를 믿고 이곳의 방비에는 거의 마음을 쓰지 않았으므로, 적이 힘으로 상륙만 해낸다면 그곳을 빼앗는 것은 틀림없다고 여길 만했다. 그리하여 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물가까지 내려가 중장보병을 세워 될 수 있는 대로 상륙을 막게 하고 다음과 같은 말로 그들을 북돋았다.
병사들이여, 이 모험을 함께하는 동지들이여, 지금 이 궁지에서 여러분 가운데 누구도 우리를 둘러싼 온갖 위험을 낱낱이 헤아려 보임으로써 제 영리함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보다는 승산을 따지느라 머뭇거리지 말고 서둘러 적에게 달려들기를 바랍니다. 살아남을 가장 좋은 길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처한 것과 같은 다급한 자리에서 셈은 제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위험은 일찍 마주할수록 좋습니다. 내가 보기에도 우리가 버티고 서서 적의 수에 질려 우리가 가진 이점을 내버리지만 않는다면 승산의 대부분은 우리 쪽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유리한 점 하나는 이곳이 상륙하기에 고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제자리를 지킬 때에만 우리를 돕습니다. 우리가 물러서면 지형이 아무리 험해도 막는 자가 없는 이상 상륙은 충분히 해낼 만한 일이 되고, 그때에는 물러나기가 어렵다는 바로 그 사정 때문에 적이 당장 더 무서운 상대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물리친다고 할 때, 그 일은 그가 아직 배에 타고 있는 동안이 그가 뭍에 내려 대등한 자리에서 우리와 맞선 뒤보다 쉬울 것입니다. 적의 수에 대해서는 너무 놀라실 것 없습니다. 아무리 많아도 배를 대기가 어려우니 그는 한 번에 작은 무리로밖에 싸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맞서야 할 수의 우세는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은 뭍 위의 군대가 가진 우세가 아니라, 배에 실린 병력이 가진 우세, 그것도 제대로 힘을 쓰려면 여러 가지 운이 따라 주어야 하는 물 위에서 누리는 우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적이 겪는 어려움이 우리가 수에서 모자라는 것과 넉넉히 맞비길 만하다고 봅니다. 그와 함께 나는 여러분에게 명합니다. 적지에 배로 상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제자리를 지키기로 굳게 마음먹고 부서지는 물결과 밀려드는 함선의 위협에도 겁먹어 물러나지 않는 적을 밀어내기가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를 겪어서 아는 아테네인으로서, 지금 이 다급한 자리에서 버티고 서서 물가에서 적을 쳐 물리치고 여러분 자신과 이곳을 지켜 내십시오.
데모스테네스에게 이렇게 북돋아진 아테네인들은 더 담대해져 적을 맞으러 내려가 바닷가를 따라 늘어섰다. 이제 스파르타인들이 움직여 지상군과 함선 43척으로 동시에 요새를 들이쳤으니, 함선은 스파르타 시민인 크라테시클레스의 아들 트라시멜리다스가 제독으로 이끌었고 그는 바로 데모스테네스가 예상한 곳을 쳤다. 그리하여 아테네인들은 뭍과 바다 두 쪽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적은 작은 무리로 나뉘어 노를 저어 올라와 서로 번갈아 들었는데(한꺼번에 많은 배를 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길을 열고 요새를 빼앗으려고 크게 기세를 올리며 서로를 격려했다.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브라시다스였다. 갤리선 한 척의 선장이었던 그는, 선장들과 조타수들이 지형이 험한 데 질려 배를 부술까 두려워 상륙이 될 만해 보이는 곳에서도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재목을 아끼려고 적이 제 나라 땅에 요새를 쌓게 내버려 두어서는 결코 안 되며 배를 부수어서라도 상륙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동맹들에게도, 스파르타에게 받은 많은 은혜에 보답할 이런 때에 배를 바치기를 망설이지 말고 배를 과감하게 뭍에 몰아붙여 어떻게든 내려서 그곳과 그 수비대를 손에 넣으라고 일렀다.
이렇게 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는 제 조타수에게 배를 해안으로 몰아붙이게 하고는 건널판에 올라 내리려 하다가 아테네인들에게 베였고,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정신을 잃었다. 뱃머리로 쓰러질 때 그의 방패가 팔에서 빠져 바다에 떨어졌고, 그것이 해안으로 밀려오자 아테네인들이 주워 두었다가 뒤에 이 싸움을 기려 세운 전승 기념물에 썼다. 나머지도 힘껏 애썼으나 땅이 험하고 아테네인들이 물러섬 없이 버텼으므로 내릴 수 없었다. 아테네인이 뭍에서, 그것도 라코니아의 땅에서 바다로 오는 스파르타인과 싸우고, 스파르타인이 이제 적지가 된 제 나라에서 아테네인을 치려고 배에서 내리려 애쓰는 것은 사물의 순서가 이상하게 뒤집힌 일이었다. 그 무렵 스파르타인은 내륙의 백성이자 뭍에서 뛰어난 것으로, 아테네인은 바다의 백성이자 견줄 데 없는 해군을 가진 것으로 이름이 높았는데도 그러했다.
그날과 이튿날 대부분에 걸쳐 공격을 이어 간 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손을 멈추었고, 그다음 날에는 공성 기계를 만들 재목을 구하려 배 몇 척을 아시네로 보냈으니, 그 힘을 빌려 항구를 마주한 성벽을 그 높이에도 아랑곳없이 빼앗기를 바란 것이며 그곳이 상륙하기에 가장 쉬웠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자킨토스에서 아테네 함대가 닿았는데, 나우팍토스를 지키던 배 몇 척과 키오스 함선 4척이 더해져 이제 50척에 이르렀다. 해안과 섬이 모두 중장보병으로 빼곡하고 항구 안의 적선들이 나올 낌새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닻을 내릴 곳을 찾지 못해 우선 멀지 않은 무인도 프로테로 가서 거기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그들은 적이 맞서러 나오기를 고른다면 트인 바다에서 싸울 채비를 하고 출항했고, 적이 그러지 않는다면 안으로 들어가 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스파르타인들은 바다로 나오지 않았고, 작정했던 대로 물목을 막지도 않은 채 해안에 조용히 머물러 배에 사람을 태우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올 경우 꽤 넓은 이 항구 안에서 싸울 준비를 했다.
이를 알아차린 아테네인들은 물목마다 하나씩 나아가 적 함대를 들이쳤는데, 그때쯤 적선 대부분은 물에 떠 대열을 이루고 있었으나 아테네인들은 곧바로 그것을 쫓아 버렸고, 좁은 거리가 허락하는 데까지 추격하여 여러 척을 못 쓰게 만들고 5척을 빼앗았으니 그중 한 척은 승무원까지 탄 채였다. 그러고는 해안으로 피한 나머지 배들에 달려들어 아직 사람을 태우고 있던 몇 척을 나오기 전에 두들겼고, 승무원이 달아나 빈 배들은 제 배에 붙여 매어 끌고 갔다. 이 광경을 보고 스파르타인들은 섬에 있는 제 사람들을 끊어 놓는 이 재난에 이성을 잃고 구하러 달려들어, 무거운 무구를 걸친 채 바다로 들어가 배를 붙들고 되끌어내려 했으니 저마다 일의 성패가 자기 한 사람의 힘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뒤엉킨 싸움은 대단했고 두 쪽이 여느 때 쓰던 해전의 방식과는 아주 어긋나는 것이었으니, 스파르타인들은 흥분과 낭패 속에서 실제로 뭍 위에서 해전을 벌이고 있었고 이긴 아테네인들은 그 성공을 될 수 있는 데까지 밀어붙이려는 마음에 배에서 지상전을 벌이고 있었다. 두 쪽이 크게 힘을 쓰고 많은 상처를 입은 뒤에 서로 떨어졌고, 스파르타인들은 처음에 빼앗긴 것들만 빼고 빈 배들을 건져 냈다. 두 쪽이 모두 진영으로 돌아가자 아테네인들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시신을 돌려주고 난파선들을 확보한 뒤, 곧바로 섬 둘레를 돌며 그 안에 끊긴 수비대를 샅샅이 감시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제 파견대가 모두 올라온 대륙의 펠로폰네소스인들은 필로스 앞에 그대로 머물렀다.
필로스에서 벌어진 일이 스파르타에 전해지자 그 재난이 어찌나 중대하게 여겨졌던지 스파르타인들은 관헌들이 진영으로 내려가 그 자리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인지 결정하게 하기로 정했다. 그곳에 이르러 그들은 제 사람들을 도울 길이 없음을 보고, 그 사람들이 굶주림에 꺾이거나 수에 눌려 짓밟히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아테네 장군들의 동의를 얻어 필로스에서 휴전을 맺고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협정을 얻어 내며 되도록 빨리 제 사람들을 되찾으려 애쓰기로 결정했다.
장군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여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휴전이 맺어졌다.
스파르타인은 지난 싸움에 나섰던 함선들과 라코니아에 있는 군선 전부를 필로스로 가져와 아테네인에게 인도할 것. 또한 뭍으로든 바다로든 요새를 치지 않을 것.
아테네인은 대륙의 스파르타인이 섬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반죽해 둔 곡물을 정해진 양만큼 보내는 것을 허락할 것. 곧 한 사람마다 보릿가루 2쿼트와 포도주 1파인트와 고기 한 조각이며, 시종 한 사람에게는 그 절반의 양으로 할 것.
이 배급은 아테네인이 보는 앞에서 들여보낼 것. 그리고 드러내 놓고 가는 것이 아니면 어떤 배도 섬으로 가지 않을 것.
아테네인은 섬을 전과 같이 계속 감시하되 그 위에 내리지는 않을 것. 또한 뭍으로든 바다로든 펠로폰네소스 병력을 치지 않을 것.
어느 쪽이든 이 조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아주 사소한 대목에서 어기면 휴전은 곧바로 무효가 될 것.
휴전은 스파르타 사절이 아테네에서 돌아올 때까지 유효할 것이며(아테네인은 갤리선으로 그들을 그리로 보내고 다시 데려온다), 사절이 닿는 즉시 끝나며 아테네인은 함선을 받은 그대로의 상태로 돌려줄 것.
휴전의 조건은 이러했고, 함선은 60척이 인도되었으며 사절도 그에 따라 떠났다. 아테네에 닿아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테네인 여러분, 스파르타는 섬에 있는 우리 사람들의 일을 수습할 길을 찾아보라고 우리를 보냈습니다. 우리의 이익에 맞으면서도 이 불운 속에서 사정이 허락하는 만큼 우리의 체면에 어울리는 길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소 길게 말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 나라의 관습을 벗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서는 말을 아끼지만, 밝혀야 할 중대한 일이 있고 그것을 밝힘으로써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을 때에는 그만큼 말을 줄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말을 적의로 받아들이지 마시고, 여러분이 무지하다고 여겨 가르치려 드는 것으로도 여기지 마시고, 분별 있는 판단자들에게 드리는 최선의 방책에 대한 제안으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만 먹으면 이 성공을 잘 써서 얻은 것을 지키고 그 위에 명예와 명성까지 얻을 수 있으며, 뜻밖의 큰 행운을 만난 사람들이 기대하지도 않았던 성공을 이미 거두었다는 그 이유로 희망에 이끌려 자꾸만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는 잘못을 피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뒤바뀌는 것을 가장 많이 겪어 본 이들이야말로 제 번영을 가장 덜 믿는 법이며 그것이 옳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나라와 우리 나라에 이 교훈을 가르칠 경험은 모자란 적이 없었습니다.
이를 확인하시려면 지금 우리가 겪는 불운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에서 우리보다 높은 자리에 선 세력이 있었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여러분에게 왔습니다. 전에는 지금 우리가 청하러 온 것을 우리 쪽에서 베풀 수 있다고 여겼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 이른 것은 우리 힘이 쇠하였기 때문도 아니고 세력이 커져 우쭐해졌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의 자원은 늘 그대로이며, 우리가 저지른 것은 판단의 잘못, 누구나 똑같이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나라가 지금 누리는 번영과 최근에 더해진 것 때문에 운이 언제까지나 여러분 편이리라고 여기셔서는 안 됩니다. 분별 있는 사람은 역경에서 머리를 맑게 지키듯 제가 얻은 것도 언제든 잃을 수 있는 것으로 여길 만큼 신중하며, 전쟁이란 싸우는 자가 가두어 두고 싶어 하는 한계 안에 머무르기는커녕 그 우연이 정하는 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군사적 성공을 믿고 우쭐대지 않는 까닭에 화를 당할 일이 적고, 운이 남아 있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화평을 맺습니다. 아테네인 여러분, 지금 우리와 더불어 그렇게 할 좋은 기회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리하여 거절했을 때 뒤따를 수 있는 재난을 면하고, 지금 쥔 이점마저 우연에 힘입은 것이라는 말을 듣는 일도 면하며, 그 대신 무엇으로도 흔들 수 없는 힘과 지혜의 명성을 뒤에 남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는 여러분에게 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내자고 청하며, 화평과 동맹을, 그리고 무슨 일에서나 어느 때나 가장 우애롭고 가까운 사이를 우리 두 나라 사이에 맺자고 제안합니다. 그 대가로는 섬에 있는 사람들을 돌려 달라고 청합니다. 어떤 유리한 우연이 그들을 뚫고 나가게 해 주기를, 또는 봉쇄에 눌려 그들이 굴복하기를 바라며 끝까지 버티는 것은 두 쪽 모두에게 좋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큰 원한이 정말로 풀린다면, 그것은 복수와 군사적 성공으로, 또 상대에게 불리한 조약을 억지로 맹세하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운이 좋은 쪽이 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너그러운 마음을 따라 아량으로 상대를 이기며 상대가 기대한 것보다 온건한 조건으로 화평을 허락할 때 그렇게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 순간부터 상대는 폭력이 반드시 남기는 복수의 빚 대신 같은 것으로 갚아야 할 아량의 빚을 지게 되고, 명예심에 이끌려 제가 맺은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사소한 다툼에서보다 가장 큰 원수를 상대할 때 오히려 이렇게 행동하는 일이 많습니다. 또 사람은 본디 먼저 양보해 온 쪽에게는 기꺼이 물러서지만, 오만 앞에서는 제 판단으로도 옳지 않다고 여기는 위험까지 무릅쓰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우리 두 쪽에 적용해 봅시다. 화평이 두 쪽 모두에게 바람직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우리에게 닥쳐 나라로서만이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여러분을 영원히 미워하게 만들고 여러분은 지금 우리가 내놓는 이점을 놓치게 되기 전인 바로 이 순간입니다. 결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여러분 앞에는 명성과 우리의 우의가 놓여 있으며 우리 앞에는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기 전에 불운을 매듭지을 길이 놓여 있는 지금, 서로 화해합시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전쟁 대신 화평을 고르고, 나머지 그리스인에게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허락합시다. 그들이 그 일로 누구보다 여러분에게 고마워하리라는 것을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들이 시달리는 이 전쟁을 어느 쪽이 시작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지만, 전쟁을 끝맺는 화평은 여러분의 결정에 달려 있으므로 그들의 감사는 여러분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 결정으로 여러분은 스파르타가 스스로 청하여 오는 우의 속에서 스파르타와 굳건한 벗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억지로 받아 낸 청이 아니라, 받아들임으로써 도리어 은혜를 베푸는 청입니다. 그리고 이 우의에서 따라 나올 이점을 헤아려 보십시오. 아티카와 스파르타가 하나가 되면 나머지 그리스는 그 우두머리들 앞에서 삼가며 아랫자리에 머물 것입니다.
스파르타인들의 말은 이러했다. 그들의 생각은 아테네인들이 이미 휴전을 바라면서 다만 스파르타 쪽의 반대에 막혀 있었을 뿐이므로 선선히 내놓는 화평을 기꺼이 받아들여 사람들을 돌려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섬에 있는 사람들을 쥐고 있었으므로 조약은 자기들이 맺기로 마음먹는 때에 언제든 마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했다. 이 방침을 누구보다 앞장서 북돋운 사람은 클레아이네토스의 아들 클레온으로, 그 무렵의 민중 지도자이자 군중에게 대단한 힘을 쓰던 자였는데 그가 다음과 같이 답하도록 그들을 설득했다. 먼저 섬에 있는 자들이 스스로와 제 무기를 내놓고 아테네로 끌려와야 한다는 것, 다음으로 스파르타인이 니사이아와 페가이와 트로이젠과 아카이아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땅들은 모두 무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이전의 협정으로 얻은 것이며, 지금보다 휴전이 더 절실했던 재난의 때에 아테네가 스스로 넘겨준 곳이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스파르타인은 제 사람들을 되찾아 가고 두 쪽이 합의하는 기간만큼 휴전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답에 사절들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만 조항마다 함께 의논할 위원을 뽑아 달라고, 그래서 조용히 그 일을 이야기하며 어떤 합의에 이르려 해 보자고 청했다. 이에 클레온은 그들을 거세게 몰아세우며, 그들에게 바른 뜻이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제 민중 앞에서 말하기를 마다하며 두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위원회와 은밀히 의논하려 하는 것으로 충분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정직한 뜻이 있다면 모든 사람 앞에서 그것을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스파르타인들은, 불운 속에서 어떤 양보를 할 마음이 있다 해도 군중 앞에서 그것을 말하여 결국 어그러질지도 모르는 교섭 때문에 동맹들에게 신용을 잃는 일은 할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청하는 것을 온건한 조건으로는 결코 허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아테네에서 돌아갔다.
그들이 닿자 필로스의 휴전은 곧바로 끝났고, 스파르타인들은 협정에 따라 제 함선을 돌려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휴전을 어기고 요새를 쳤다는 것과 그 밖에 입에 올릴 값도 없어 보이는 몇 가지 트집을 내세우며 돌려주기를 마다했고, 아주 사소한 위반으로도 휴전이 무효가 된다는 조항을 들어 우겼다. 스파르타인들은 그 위반을 부인하고 함선 일에서 드러난 아테네인의 불신실을 항의한 뒤 떠나가 전쟁에 열심히 매달렸다. 이제 필로스에서는 두 쪽이 모두 힘을 다해 싸움을 이어 갔다. 아테네인들은 낮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도는 함선 2척으로 섬 둘레를 돌았고, 밤에는 바람이 불 때의 바다 쪽을 빼고 온 함대로 섬을 둘러 닻을 내렸으니, 봉쇄를 도우러 아테네에서 온 함선 20척이 더해져 이제 70척에 이르렀다. 한편 펠로폰네소스인들은 대륙에 진을 친 채 머물러 요새를 치면서 제 사람들을 건져 낼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살폈다.
그사이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앞서 갖추고 있다고 적어 둔 증원 병력을 메시나를 지키던 함대에 올려 보내고 그곳을 근거지로 전쟁을 이어 갔는데, 이를 주로 부추긴 것은 레기온인을 미워하여 온 병력을 들어 그 땅을 침공한 로크리스인들이었다. 시라쿠사인들 또한 바다에서 운을 시험해 보고 싶었으니, 아테네인들이 레기온에 실제로 두고 있는 배가 몇 척뿐임을 보았고 그들과 합칠 예정이던 주력 함대가 그 섬을 봉쇄하는 데 매여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해전에서 이기면 뭍과 바다로 레기온을 봉쇄하여 쉽게 굴복시킬 수 있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했고, 그런 성공을 거두면 그들의 형세는 곧바로 단단한 바탕에 올라설 것이었으니, 이탈리아 쪽의 레기온곶과 시칠리아 쪽의 메시나가 서로 아주 가까워 아테네인들이 그들을 겨누어 배를 돌리며 해협을 장악하기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해협은 레기온과 메시나 사이의 바다로, 시칠리아가 대륙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지점이며,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가 배를 몰고 지나갔다고 하는 카립디스가 바로 이곳이다. 물길이 좁고 드넓은 티레니아 바다와 시칠리아 바다에서 밀려드는 물살이 거센 까닭에 이곳이 험한 곳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이 해협에서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들은 배 한 척이 지나가는 일을 두고 날이 저물 무렵 싸움에 끌려 들어갔으니, 30척 남짓을 내어 아테네 함선 16척과 레기온 함선 8척에 맞섰다. 아테네인들에게 져서 그들은 함선 한 척을 잃고 저마다 제 갈 길로 서둘러 메시나와 레기온에 있는 제 기지로 떠났으니, 싸움이 끝나기 전에 밤이 닥친 것이었다. 그 뒤 로크리스인들은 레기온 땅에서 물러났고, 시라쿠사인과 그 동맹의 함선들은 하나로 모여 메시나 땅의 펠로로스 곶에 닻을 내렸으며 그곳에서 지상군이 그들과 합쳤다. 여기로 아테네인과 레기온인이 배를 몰고 올라와 배에 사람이 타지 않은 것을 보고 공격했으나, 이번에는 그들이 함선 한 척을 잃었으니 쇠갈고리에 걸린 것이었고 승무원은 헤엄쳐 목숨을 건졌다. 그 뒤 시라쿠사인들이 배에 올랐고, 해안을 따라 메시나로 끌려가는 동안 다시 아테네인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나 갑자기 바다로 나가 공격하는 쪽이 되어 아테네인들에게 함선 한 척을 더 잃게 했다. 이렇게 해안을 따라가는 항해에서도 위에 적은 싸움에서도 제 몫을 지켜 낸 뒤 시라쿠사인들은 메시나 항구로 들어갔다.
그사이 아테네인들은 아르키아스와 그 무리가 카마리나를 시라쿠사인에게 넘기려 한다는 경고를 받고 그리로 배를 몰았고, 메시나인들은 이 틈을 타 온 병력을 들어 뭍과 바다에서 칼키디케 쪽 이웃인 낙소스를 쳤다. 첫날 그들은 낙소스인을 성벽 안에 몰아넣고 그 땅을 짓밟았으며, 이튿날에는 배로 돌아가 아케시네스강 쪽의 땅을 짓밟고 지상군은 도시를 위협했다. 그사이 시켈인들이 높은 지대에서 큰 무리로 내려와 메시나인에 맞서는 편을 도왔고, 그 광경에 들뜬 낙소스인들은 레온티노이인과 다른 그리스 동맹들이 자기들을 도우러 오고 있다는 믿음에 힘을 얻어 갑자기 도시에서 뛰쳐나와 메시나인을 쳐서 흩어 놓고 1,000명이 넘는 자를 죽였다. 살아남은 자들도 돌아가는 길에 이민족에게 공격을 받아 크게 시달렸고 대부분이 끊겨 죽었다. 함선들은 메시나로 들어갔고 뒤에는 저마다 제 고향으로 흩어졌다. 이에 레온티노이인과 그 동맹들은 아테네인과 함께 곧바로 이제 약해진 메시나로 무기를 돌려 쳐들어갔으니, 아테네인은 함선으로 항구 쪽을 치고 지상군은 도시 쪽을 쳤다. 그러나 메시나인들은 그 재난 뒤에 도시를 지키도록 남겨 두었던 데모텔레스와 로크리스인 얼마와 함께 뛰쳐나와 갑자기 쳐들어가 레온티노이 군대 대부분을 흩어 놓고 많은 수를 죽였다. 이를 본 아테네인들이 배에서 내려 흩어져 있던 메시나인을 들이쳐 도시 안으로 되몰아넣고 전승 기념물을 세운 뒤 레기온으로 물러갔다. 그 뒤로 시칠리아의 그리스인들은 아테네인 없이 뭍에서 서로 전쟁을 이어 갔다.
그사이 필로스의 아테네인들은 여전히 섬에 있는 스파르타인들을 포위하고 있었고, 대륙의 펠로폰네소스 병력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먹을 것과 물이 모자라 봉쇄는 아테네인들에게 몹시 고된 일이었다. 샘은 필로스 성채 안의 것 하나뿐이었고 그마저 크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은 바닷가의 자갈을 파헤쳐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물을 마셔야 했다. 또 좁은 곳에 진을 쳤으므로 자리가 모자라 시달렸고, 배를 댈 곳이 없었으므로 일부가 번갈아 뭍에서 끼니를 먹는 동안 나머지는 바다에 나가 닻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낙담케 한 것은, 마실 것이라고는 짠물뿐인 황량한 섬에 갇힌 한 무리의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데 뜻밖으로 오랜 시일이 걸린다는 것이었으니, 며칠이면 될 일이라고 여겼던 터였다. 사실은 스파르타인들이, 빻은 곡물과 포도주와 치즈와 그 밖에 포위를 견디는 데 쓸 만한 먹을 것을 섬으로 실어 갈 지원자를 널리 구한다고 알렸던 것이다. 높은 값을 내걸었고 그 일을 해내는 헬롯에게는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하여 헬롯들이 누구보다 앞서 이 위험한 일에 나섰으니, 펠로폰네소스의 이곳저곳에서 배를 띄워 밤에 섬의 바다 쪽으로 몰아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안으로 실어다 줄 바람을 붙잡을 수 있을 때였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면 갤리선들이 섬을 둘러 닻을 내릴 수 없게 되었으므로 그 감시를 벗어나기가 더 쉬웠다. 한편 헬롯들은 제 배의 값을 돈으로 매겨 두었으므로 어떻게 닿든 개의치 않고 배를 뭍으로 몰아붙였으니, 상륙 지점에서 병사들이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이 좋을 때 이 일을 무릅쓴 자들은 모두 붙잡혔다. 잠수하는 자들도 항구 쪽에서 물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는데, 꿀에 갠 양귀비 씨와 빻은 아마 씨를 가죽 부대에 담아 줄에 매어 끌고 갔다. 처음에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으나 뒤에는 이들을 노린 감시가 붙었다. 요컨대 두 쪽은 할 수 있는 온갖 꾀를 다 썼으니, 한쪽은 양식을 들여보내려고, 다른 쪽은 그것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그러했다.
그사이 아테네에서는 군대가 크게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과 곡물이 섬에 있는 자들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소식이 적지 않은 당혹을 일으켰고, 아테네인들은 겨울이 닥쳤을 때에도 자기들이 여전히 봉쇄에 매여 있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되면 펠로폰네소스를 돌아 양식을 호송하기란 불가능할 것임을 그들은 알았다. 그 땅 자체에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여름에도 넉넉한 양을 돌려 보낼 수 없었다. 항구가 없는 곳의 봉쇄를 더는 이어 갈 수 없었고, 그러면 그 사람들은 포위가 풀려 빠져나가거나 사나운 날씨를 노려 곡물을 실어 오던 배를 타고 나가 버릴 것이었다. 더 큰 불안을 일으킨 것은 스파르타인들의 태도였으니,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더 이상 사절을 보내지 않는 것은 제 자리가 든든하다고 여기는 까닭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약을 물리친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협정을 가로막은 일로 자기가 미움을 받고 있음을 알아차린 클레온은 이제 소식을 전한 자들이 참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고, 그 전령들이 제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사람을 보내어 직접 보게 하라고 권하자 아테네인들은 클레온 자신과 테아게네스를 조사관으로 뽑았다. 이제 자기가 헐뜯던 그 사람들이 이미 한 말과 똑같은 말을 하거나, 그 반대로 말했다가는 거짓말쟁이로 드러나거나 둘 중 하나임을 알아차린 클레온은, 아테네인들이 새 원정에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시간과 기회를 허비할 것이 아니라 전하는 말을 믿는다면 그 사람들을 치러 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때 장군이었고 자기가 미워하던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를 가리키며, 장군다운 사람이 장군 자리에 있기만 하다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섬에 있는 자들을 잡아 오기란 쉬운 일이며 자기가 지휘를 맡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비웃듯 쏘아붙였다.
니키아스는 그토록 쉬운 일로 보인다면 지금 왜 배를 내지 않느냐며 아테네인들이 클레온을 두고 수군거리는 것을 보았고, 나아가 자신이 공격의 표적이 된 것을 보고서 그에게, 장군들로서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 원하는 병력을 골라 데려가 해 보라고 말했다. 처음에 클레온은 이 사임이 그저 말뿐이라고 여겨 갈 마음이 있었으나, 진심에서 나온 것임을 알자 물러서서 장군은 자기가 아니라 니키아스라고 둘러댔다. 이제 겁이 난 것이었고, 니키아스가 자기를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데까지 가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키아스는 제안을 되풀이하고 필로스를 겨눈 지휘권을 내놓으며 자기가 그렇게 했음을 아테네인들에게 증언해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군중이 흔히 그러하듯, 클레온이 원정에서 몸을 뺄수록 또 제가 한 말에서 발을 빼려 할수록 그들은 니키아스에게 지휘권을 넘기라고 더 북돋우고 클레온에게 가라고 더 크게 외쳤다. 마침내 제가 한 말에서 벗어날 길을 알지 못해 그는 원정을 떠맡고 나서서, 자기는 스파르타인이 두렵지 않으며 아테네에 와 있는 렘노스인과 임브로스인, 아이노스에서 올라온 경방패병6 얼마, 그리고 다른 데서 온 궁수 400명 말고는 이 도시에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고 배를 내겠다고 말했다. 이들과 필로스에 있는 병사들만으로 20일 안에 스파르타인들을 산 채로 데려오거나 그 자리에서 죽이겠다고 했다. 아테네인들은 그 허황함에 웃음을 참지 못했으나, 분별 있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 되어도 얻는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랬으니, 클레온을 떼어 내게 되거나(그들이 오히려 바란 쪽은 이것이었다) 그 기대가 어긋난다면 스파르타인들을 굴복시키게 될 것이었다.
민회에서 모든 일을 정하고 아테네인들이 원정의 지휘권을 표로 그에게 맡긴 뒤, 그는 필로스에 있는 장군 가운데 한 사람인 데모스테네스를 동료로 골라 항해 준비를 밀고 나갔다. 데모스테네스를 고른 것은 그가 섬에 상륙할 것을 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처지가 어려워 시달리며 포위하는 쪽이라기보다 포위당한 쪽이었으므로 결판을 내고 싶어 했고, 섬에 불이 난 일은 그 장군의 자신을 키워 놓았다. 그는 처음에는 두려워했으니, 그 섬이 사람이 살아 본 적이 없어 거의 온통 숲으로 덮이고 길이 없었으므로 이것이 적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큰 병력을 데리고 내릴 수는 있어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날아드는 공격에 손해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숲은 적의 실수와 병력을 그의 눈에서 거의 가려 줄 것이지만 제 군대의 실책은 곧바로 드러날 것이었고, 그리하여 적은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뜻하지 않은 때에 그를 덮칠 수 있으며 공격의 주도권은 늘 적에게 있을 것이었다. 다른 한편 그가 적을 숲 속에서 싸우게 몰아붙인다면 그 땅을 아는 적은 수가 그 땅을 모르는 많은 수보다 유리하리라고 그는 생각했고, 제 군대는 수가 많아도 서로 어디를 도와야 할지 볼 수 없으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끊겨 나갈 수 있었다.
주로 숲 때문에 빚어진 아이톨리아의 재난이 이런 생각에 적지 않은 몫을 했다. 그러던 중 자리가 모자라 섬의 끝자락에 내려 끼니를 먹어야 했던 병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기습을 막으려 파수를 세워 둔 사이에 뜻하지 않게 숲에 조금 불을 붙였고, 곧 바람이 일어 그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거의 온 숲이 타 버렸다. 데모스테네스는 이제 처음으로 스파르타인들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었으니, 그때까지는 그들이 더 적은 수를 위해 양식을 들여온다고 여기고 있었다. 또 아테네인들이 이 일의 성공을 중대하게 여기며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것과 이제 섬에 내리기가 더 쉬워졌다는 것도 알았으므로, 그는 그 일을 채비하여 이웃 동맹들에게 병력을 청하고 그 밖의 준비도 밀고 나갔다. 바로 이때 클레온이 제가 청한 병력을 데리고, 오고 있다는 전갈을 미리 보낸 뒤 필로스에 닿았다. 두 장군이 만난 뒤 처음으로 한 일은 대륙의 진영으로 전령을 보내는 것이었으니, 모든 위험을 피할 마음이 있다면 섬에 있는 자들에게 스스로와 제 무기를 내놓으라고 명하겠느냐고 묻게 했고, 그러면 전반적인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너그러운 구금 아래 두겠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이 물리쳐지자 장군들은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중장보병 전부를 배 몇 척에 태워 밤에 출항했으며, 동이 트기 조금 전에 트인 바다 쪽과 항구 쪽 양쪽에서 섬에 내렸으니 800명쯤이었고, 달음질로 섬의 첫 초소를 향해 나아갔다.
적은 병력을 다음과 같이 나누어 두었다. 이 첫 초소에는 중장보병이 약 30명 있었고, 물이 있는 가운데의 가장 평평한 곳은 주력과 그들의 지휘관 에피타다스가 지켰다. 한편 작은 무리가 필로스를 향한 섬의 맨 끝을 지켰는데, 그곳은 바다 쪽이 깎아지른 데다 뭍에서 치기가 매우 어려웠고 돌을 거칠게 쌓아 올린 오래된 요새 같은 것도 있었으니 물러설 수밖에 없게 될 경우 자기들에게 쓸모가 있으리라고 여긴 것이었다. 그들의 배치는 이러했다.
아테네인들이 이렇게 들이친 전방 초소는 곧바로 칼에 베였으니, 그 사람들은 자리에서 막 일어나 아직 무장하는 중이었고 상륙에 허를 찔린 것이었다. 배들이 여느 때처럼 밤을 지낼 자리로 가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날이 밝자마자 나머지 군대가 내렸으니, 곧 70척 남짓한 함선의 승무원 전부가 맨 아랫단 노 젓는 자들만 빼고 저마다 지닌 무기를 들고 내렸으며, 궁수 800명과 같은 수의 경방패병, 메세니아의 증원 병력, 그리고 요새의 수비대를 뺀 필로스 둘레의 다른 모든 병력이 내렸다. 데모스테네스의 전술은 이들을 200명쯤씩의 부대로 나누어 가장 높은 지점들을 차지하게 한 것이었으니, 사방에서 적을 둘러싸 손에 잡히는 상대가 없는 채로 두고 제 군세의 십자 사격에 내놓아 적을 마비시키려 했다. 적이 앞을 치면 뒤에 있는 자들이 그에게 퍼붓고, 한쪽 옆에 있는 자들을 치러 움직이면 다른 쪽 옆에 있는 자들이 퍼부을 것이었다. 요컨대 그가 어디로 가든 등 뒤에는 그를 치는 자들이 있을 것이었고, 그것도 무엇보다 다루기 고약한 경무장 병사들이었다. 화살과 투창과 돌과 투석끈이 멀리서도 그들을 만만찮게 만들었고, 그들은 달아나면서도 이길 수 있었으며 쫓던 자가 돌아서는 순간 곧 그에게 달려들었으므로 가까이서 그들을 잡을 길이 없었다. 데모스테네스가 이 상륙을 구상할 때 그를 이끈 생각이 이러했고, 그 실행을 다스린 생각도 이러했다.
그사이 섬에 있던 주력 병력(에피타다스가 이끄는 쪽)은 제 전초가 끊긴 것과 군대가 자기들을 향해 나아오는 것을 보고 대열을 촘촘히 하여 앞에 있는 아테네 중장보병과 맞붙으려 밀고 나갔으니, 경무장 병력은 그들의 옆과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맞붙지도, 제 뛰어난 솜씨를 살리지도 못했으니, 경무장 병력이 양쪽에서 던지는 무기로 그들을 막았고 중장보병은 맞으러 나오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경무장 병력이 달려들어 너무 가까이 다가온 곳에서는 스파르타인들이 그들을 흩어 놓았으나, 그들은 싸우면서 물러났고 가벼운 차림이었으므로 달아나는 데서 쉽게 앞섰으니, 여태 사람이 살지 않던 섬의 땅이 험하고 울퉁불퉁하여 스파르타인들은 무거운 무구를 걸친 채 그들을 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접전이 얼마쯤 이어진 뒤 스파르타인들은 공격받는 지점으로 전처럼 빠르게 뛰쳐나갈 수 없게 되었고, 경무장 병력은 그들이 이제 덜 힘차게 싸우는 것을 알고 더 담대해졌다. 제 수가 적의 몇 배나 된다는 것을 그들은 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이제 적의 모습에 익숙해져 적이 덜 무섭게 느껴졌으니, 스파르타인을 친다는 생각에 노예처럼 질려 처음 내렸을 때 품었던 두려움이 결과로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려움이 업신여김으로 바뀌어 그들은 이제 큰 함성을 지르며 한꺼번에 적에게 달려들어 손에 먼저 잡히는 대로 돌과 투창과 화살을 퍼부었다. 그들의 돌격에 따른 함성은 이런 싸움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스파르타인들을 어지럽혔다. 막 타 버린 숲에서 먼지가 일었고, 수많은 자들의 손에서 날아온 화살과 돌이 먼지 구름을 뚫고 오는 가운데 제 앞을 보기란 불가능했다. 이제 스파르타인들은 거친 싸움을 견뎌야 했다. 그들이 쓴 모자는 화살을 막아 내지 못했고, 투창은 부러진 채 부상자의 무구에 박혀 있었으며, 그들 자신은 공격할 힘이 없었으니 눈으로 제 앞을 보는 것이 막혔고 적이 일으킨 소란 때문에 명령하는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위험이 사방에서 그들을 둘러쌌고 지키거나 살아날 길의 희망은 없었다.
마침내 싸우던 좁은 자리에서 이미 많은 자가 상처를 입은 뒤, 그들은 촘촘한 대열을 짜 멀지 않은 섬 끝의 요새로, 그리고 그곳을 지키던 제 동료들에게로 물러났다. 그들이 물러선 순간 경무장 병력은 더 대담해져 어느 때보다 크게 외치며 그들을 밀어붙였고 물러나는 길에 따라잡은 자들을 모두 죽였다. 그러나 스파르타인 대부분은 요새로 무사히 빠져나갔고, 그 안의 수비대와 함께 요새의 온 길이에 걸쳐 늘어서서 칠 만한 곳마다 적을 물리쳤다. 쫓아온 아테네인들은 지형이 험해 그들을 둘러싸 가둘 수 없었으므로 정면으로 치며 그 자리를 들이치려 했다. 오랫동안, 실로 그날의 대부분에 걸쳐 두 쪽은 싸움과 목마름과 햇볕의 온갖 괴로움을 견뎌 냈으니, 한쪽은 적을 높은 자리에서 몰아내려 애썼고 다른 쪽은 그 자리를 지키려 애썼다. 이제 스파르타인들은 옆에서 둘러싸일 수 없었으므로 전보다 스스로를 지키기가 더 쉬웠다.
싸움이 끝이 없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메세니아인의 지휘관이 클레온과 데모스테네스에게 와서 그들이 헛수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가 찾아내겠다고 나선 길로 적의 뒤로 돌아갈 궁수와 경무장 병력을 얼마 내어 준다면 그 오르는 길을 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청한 것을 받자 그는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섬의 깎아지른 바위가 허락하는 곳마다 또 스파르타인들이 지형이 험한 것을 믿고 파수를 두지 않은 곳마다 기어올랐다. 그리고 더없이 어려운 끝에 그들에게 보이지 않고 돌아 들어가는 데 성공하여 그들의 뒤쪽 높은 자리에 갑자기 나타났으니, 허를 찔린 적은 낭패했고 기다리던 제 동료들은 그보다 더 크게 기뻐했다. 이렇게 두 불길 사이에 놓인 스파르타인들은, 작은 일을 큰 일에 견주자면 테르모필레에서와 같은 궁지에 빠졌으니 그곳에서도 페르시아인들이 산길로 돌아 들어오는 바람에 지키던 이들이 끊겼던 것이다. 이제 앞과 뒤에서 함께 공격을 받아 그들은 밀리기 시작했고, 맞선 수에 눌리고 먹을 것이 없어 기운이 다해 물러났다.
아테네인들이 이미 오르는 길을 손에 넣었을 때, 클레온과 데모스테네스는 적이 한 걸음만 더 물러서면 제 병사들에게 몰살당할 것임을 알아차리고 싸움을 멈추어 부하들을 붙들어 두었다. 스파르타인들을 산 채로 아테네로 데려가고 싶었고, 조건을 내놓는 말을 들으면 그들의 고집이 풀려 항복하고 지금의 압도적인 위험에 굴복할지도 모른다고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와 제 무기를 아테네인에게 내놓고 그 처분에 맡길 뜻이 있는지 알아보려는 포고가 내려졌다.
이 제안을 듣고 스파르타인들 대부분은 방패를 내리고 손을 흔들어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보였다. 이제 싸움이 멎고 클레온과 데모스테네스와, 저쪽의 파락스의 아들 스티폰 사이에 담판이 열렸다. 앞서 지휘한 이들 가운데 첫째인 에피타다스는 죽었고 그다음 지휘자인 히파그레타스는 아직 살아 있었으나 죽은 자들 가운데 시신으로 남겨졌으므로, 상관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정한 법에 따라 지휘권이 스티폰에게 넘어갔던 것이다. 스티폰과 그 동료들은 대륙의 스파르타인들에게 전령을 보내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아테네인들은 그들 가운데 누구도 보내 주지 않고 자기들이 대륙에서 전령을 불러들였으며, 두세 번 물음이 오간 뒤 대륙의 스파르타인들에게서 마지막으로 건너온 사람이 이런 전언을 가져왔다. "스파르타인들은 그대들에게, 부끄러운 일만 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결정하라고 이릅니다." 이에 그들은 함께 의논한 뒤 스스로와 제 무기를 내놓았다. 아테네인들은 그날 낮과 밤에 걸쳐 그들을 지킨 뒤 이튿날 아침에 섬에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떠날 채비를 하며, 포로를 무리별로 나누어 갤리선 선장들에게 맡겨 지키게 했다. 스파르타인들은 전령을 보내어 제 죽은 자들을 거두었다. 섬에서 죽은 자와 포로로 잡힌 자의 수는 다음과 같았다. 중장보병 420명이 건너갔는데, 300명에서 8명이 모자라는 수가 산 채로 아테네로 끌려갔고 나머지는 죽었다. 포로 가운데 약 120명이 스파르타 시민이었다. 싸움이 맞붙어 벌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아테네인의 손실은 적었다.
봉쇄는 해전에서부터 섬에서 벌어진 싸움까지 헤아려 모두 72일 동안 이어졌다. 그 가운데 20일은 화평을 의논하러 간 사절이 떠나 있던 동안으로 그 사람들에게 양식이 주어졌고, 나머지 기간에는 몰래 들여온 자들이 그들을 먹였다. 섬에서는 곡물과 그 밖의 양식이 발견되었으니, 지휘관 에피타다스가 병사들에게 절반의 배급만 주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아테네인과 펠로폰네소스인은 각기 필로스에서 병력을 물려 본국으로 돌아갔고, 클레온의 약속은 터무니없었으나 그는 스스로 다짐한 대로 20일 안에 그 사람들을 아테네로 데려와 그것을 지켰다.
이 전쟁에서 벌어진 어떤 일도 그리스인을 이만큼 놀라게 하지 않았다. 어떤 힘도 어떤 굶주림도 스파르타인에게 무기를 내놓게 할 수 없고 그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싸우다가 무기를 손에 쥔 채 죽으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실로 사람들은 항복한 자들이 쓰러진 자들과 같은 재질로 되어 있다는 것을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얼마 뒤 어떤 아테네 동맹 사람이 섬에서 잡혀 온 포로 하나에게 쓰러진 자들이 훌륭한 사람들이었느냐고 모욕하듯 물었다가 이런 대답을 받았다. 아트락토스7, 곧 화살이 훌륭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낼 줄 안다면 대단한 값어치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으니, 죽은 자들이란 돌과 화살에 우연히 맞은 자들이었음을 빗댄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닿자 아테네인들은 화평이 맺어질 때까지 그들을 옥에 두기로, 그리고 그동안 펠로폰네소스인이 제 나라를 침공하면 그들을 끌어내어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필로스의 방비를 잊지 않았다. 나우팍토스의 메세니아인들은 필로스가 전에 속해 있던 제 옛 고향으로 무리 가운데 가장 알맞은 자들을 보내어 라코니아를 잇달아 침입하기 시작했는데, 말이 같았으므로 그 침입은 더없이 파괴적이었다. 그런 침입이나 그런 종류의 전쟁을 여태 겪어 본 적이 없던 스파르타인들은 헬롯들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제 나라에 변란이 번질 것을 두려워하여 심각하게 불안해하기 시작했고, 이를 아테네인에게 드러내기를 꺼렸음에도 아테네로 사절을 보내기 시작하여 필로스와 포로들을 되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계속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 하며 사절이 올 때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려보냈다. 필로스의 일은 이러했다.
주
1. 소포클레스 — 아테네 장군으로, 같은 이름의 비극 작가와는 다른 사람이다.
2. 약 45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이 장의 다른 거리 표기와 휴전 조항의 쿼트·파인트도 모두 같다.
3. 스파르타 시민 — 스파르타 사회는 완전시민권을 가진 스파르타 시민, 주변 자유민, 헬롯으로 나뉘었다. 원문에서 저자는 이 좁은 뜻의 '스파르타 시민'과 국가 전체를 가리키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를 구분해 쓴다.
4. 페리오이코이 — 스파르타 주변의 자유민. 스파르타에 딸린 도시에 살며 군역을 졌으나 완전시민권은 없었다.
5. 헬롯 — 스파르타에 예속되어 땅을 갈던 신분.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딸린 예속민으로, 수가 많아 스파르타 시민들은 늘 그들의 봉기를 경계했다.
6. 경방패병 — 작은 방패와 투창으로 무장한 경보병. 중장보병처럼 밀집 대형으로 싸우지 않고, 흩어져 던지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싸웠다.
7. 아트락토스 — 라코니아 말로 화살을 가리킨 낱말. 본디 실을 감는 가락을 뜻했으므로, 이 대답에는 활과 화살을 사내답지 못한 무기로 낮추어 보던 스파르타 시민의 시각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