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제II권 제VIII장) 전쟁 제3년 · 플라타이아 포위 · 포르미온의 해전 승리 · 시탈케스가 이끈 트라키아군의 마케도니아 침입
이듬해 여름 펠로폰네소스인과 그 동맹들은 아티카를 침공하는 대신 스파르타 왕 제욱시다모스의 아들 아르키다모스의 지휘 아래 플라타이아로 진군했다. 그가 군대를 진영에 들이고 그 땅을 짓밟으려 하던 참에 플라타이아인들은 서둘러 그에게 사절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아르키다모스와 스파르타인 여러분, 플라타이아의 땅을 침공하는 일로 여러분은 그 자체로 옳지 않은 일을, 여러분 자신에게도 여러분을 낳은 아버지들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 사람인 클레옴브로토스의 아들 파우사니아스는, 우리 도시 근처에서 벌어진 전투의 위험을 감당하려 한 그리스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를 메디아인에게서 해방한 뒤, 플라타이아의 장터에서 해방자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모든 동맹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플라타이아인에게 그 도시와 땅을 되돌려주면서, 그것이 독립되어 있으며 침략이나 정복으로부터 침해받지 않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 일이 시도된다면 그 자리에 있던 동맹들이 각자 힘에 따라 돕기로 했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들은 그 위태로운 시절에 우리가 보인 용기와 애국심에 이렇게 보답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와 정반대로, 우리의 가장 지독한 원수인 테베인과 함께 와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 맹세를 바친 신들에게, 여러분 조상의 신들에게, 끝으로 우리 나라의 신들에게 호소하며, 우리 땅을 침해하거나 그 맹세를 어기는 일을 그만두고 파우사니아스가 정한 대로 우리를 독립된 채로 살게 해 달라고 여러분에게 청합니다."
플라타이아인들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아르키다모스가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플라타이아인 여러분, 여러분의 말대로 행한다면 그 말에는 옳음이 있습니다. 파우사니아스가 준 것에 따라 여러분 자신은 계속 독립되어 있으십시오. 그리고 그때의 위험을 함께 겪고 여러분에게 맹세를 함께 바쳤으나 지금은 아테네인에게 예속되어 있는 같은 나라 사람들을 해방하는 일에 함께 나서십시오. 이 모든 준비와 이 전쟁이 이루어진 것은 그들과 나머지를 해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수고를 나누고 여러분 자신이 그 맹세를 지켜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우리가 이미 여러분에게 요구한 것을 하십시오. 중립을 지키고 여러분의 것을 누리십시오. 어느 편에도 들지 말고 양편을 다 벗으로 받아들이되, 전쟁의 동맹으로는 어느 쪽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입니다." 아르키다모스의 말은 이러했다. 플라타이아인들은 그의 말을 듣고 도시로 들어가 벌어진 일을 백성에게 알렸고, 곧 아테네인과 상의하지 않고서는 그가 제안한 것을 할 수 없다는 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자기들의 아이들과 아내가 지금 아테네인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도시를 두고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그가 떠난 뒤에 아테네인이 와서 도시를 자기들 손에서 빼앗는 것을, 또는 그 맹세에 들어오게 될 테베인이 제안된 중립을 이용해 도시를 두 번째로 차지하려 드는 것을 무엇이 막아 주겠는가? 이 점들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해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여러분은 도시와 집을 우리 스파르타인에게 넘기고, 여러분 땅의 경계와 과수의 수와 그 밖에 수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알려 주고, 여러분 자신은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어디로든 바라는 곳으로 물러가 있기만 하면 됩니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받은 것은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되돌려주겠습니다. 그동안은 그것을 맡아 지키고 땅을 계속 갈면서 여러분에게 넉넉한 몫을 지급하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들은 다시 도시로 들어가 백성과 상의한 뒤, 먼저 이 제안을 아테네인에게 알리고 그들이 승인하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휴전을 허락하고 자기들의 땅을 짓밟지 말아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그는 오가는 데 필요한 날수만큼 휴전을 허락하고 그동안 그들의 땅을 짓밟는 일을 삼갔다. 플라타이아 사절들은 아테네로 가서 아테네인과 상의하고, 도시에 있는 이들에게 다음 전언을 가지고 돌아왔다. "플라타이아인 여러분, 아테네인이 말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동맹이 된 뒤로 지금까지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적에게 버려둔 적이 없으며, 이번에도 우리를 저버리지 않고 힘닿는 대로 도울 것이라고 합니다. 또 여러분의 아버지들이 바친 맹세를 걸고, 이 동맹을 고치지 말고 지켜 달라고 여러분에게 간절히 청합니다."
사절들이 이 전언을 전하자 플라타이아인들은 아테네인에게 신의를 지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기로, 어쩔 수 없다면 제 땅이 짓밟히는 것도 그 밖에 자기들에게 닥칠 어떤 시련도 견디기로, 다시 사람을 내보내지 않고 성벽에서 스파르타인이 제안한 대로 할 수 없다고 답하기로 결의했다. 이 답을 받자마자 아르키다모스 왕은 먼저 그 땅의 신들과 영웅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엄숙히 호소했다. "플라타이아 땅의 신들과 영웅들이시여, 저의 증인이 되어 주소서. 우리가 처음부터 침략자로서 이 땅에 들어온 것이 아니며, 이 사람들이 먼저 공동의 맹세를 버리기 전에는 들어오지 않았음을 증언해 주소서. 이 땅에서 우리 아버지들은 메디아인을 꺾기 전에 당신들에게 기도를 바쳤고, 당신들은 이 땅을 그리스의 무기에 상서로운 곳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이제 취하게 될 방책에서도 우리는 침략자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공정한 제안을 여럿 내놓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그 일로 벌을 받도록, 그리고 의롭게 복수를 내릴 자들이 그 복수를 이루도록 어여삐 허락해 주소서."
신들에게 이렇게 호소한 뒤 아르키다모스는 군대를 움직였다. 먼저 그는 베어 낸 과수로 방책을 세워 도시를 둘러싸, 플라타이아에서 더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도시를 향해 흙언덕을 쌓아 올렸는데, 투입한 병력이 큰 만큼 그곳을 빠르게 함락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키타이론에서 재목을 베어 와 양쪽에 격자처럼 엮어 쌓아 올려, 흙언덕이 옆으로 퍼지지 않게 막는 벽으로 삼았고, 나무와 돌과 흙과 그 밖에 그것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재료는 무엇이든 실어 왔다. 그들은 70일 낮과 밤을 쉼 없이 흙언덕 일에 매달렸는데, 교대조로 나뉘어 일부가 나르는 동안 다른 일부는 잠과 먹을 것을 얻게 했고, 각 분견대에 딸린 스파르타 장교가 사람들을 일에서 놓지 않았다. 그러나 플라타이아인들은 흙언덕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나무로 벽을 짜서 흙언덕이 쌓이고 있는 성벽의 그 부분 위에 얹고, 그 안쪽을 이웃한 집들에서 뜯어 온 벽돌로 채워 올렸다. 재목은 구조물을 한데 묶어, 높이가 올라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막는 구실을 했다. 또 거기에는 가죽과 생가죽을 덮어 불붙은 발사물의 공격에서 목재를 지키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했다. 그리하여 성벽은 크게 높아졌고, 그 앞의 흙언덕도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올라갔다. 플라타이아인들은 또 다른 방책도 생각해 냈다. 그들은 흙언덕이 맞닿은 성벽의 한 부분을 뜯어내고 그 흙을 도시 안으로 실어 들였다.
이것을 알아챈 펠로폰네소스인들은 갈대로 엮은 채롱에 진흙을 비벼 넣어 흙언덕에 생긴 구멍에 던져 넣었다. 그렇게 해서 흙언덕을 단단하게 묶어 흙처럼 실려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막히자 플라타이아인들은 방식을 바꾸어, 도시에서 굴을 파 흙언덕 아래로 길을 어림해 들어가 전과 같이 그 재료를 실어 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나 밖에 있는 적은 알아채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위에 아무리 쏟아부어도 흙언덕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았다. 아래에서 실려 나가고 빈 자리로 끊임없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타이아인들은 그렇게 해도 수에서 앞선 적을 끝까지 버텨 내지 못할까 두려워 또 하나를 고안했다. 그들은 흙언덕 앞의 큰 구조물에 손을 멈추고, 그 양 끝에서 안쪽으로, 옛 낮은 성벽에서 시작해 도시 쪽으로 파고드는 초승달 모양의 새 성벽을 쌓았다. 큰 성벽이 함락되더라도 이것이 남아 적이 그것을 향해 흙언덕을 새로 쌓아야 하고, 안으로 나아갈수록 같은 수고를 되풀이해야 할 뿐 아니라 양 옆에서 발사물에 노출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흙언덕을 쌓는 동안 펠로폰네소스인들은 공성 기계도 도시로 끌어 올렸다. 그 가운데 하나는 흙언덕 위로 올려 저 큰 구조물을 때려 그 상당 부분을 무너뜨렸으니, 플라타이아인들은 적지 않게 놀랐다. 다른 기계들은 성벽의 여러 지점으로 나아갔으나 플라타이아인들이 올가미를 걸어 부수었다. 그들은 또 성벽에 걸쳐 밖으로 내민 장대 두 개의 양 끝에서 긴 쇠사슬로 큰 들보를 매달아 두었다가, 어느 지점이 공성 기계에 위협받으면 그 들보를 비스듬히 끌어올리고, 붙든 손을 놓아 사슬이 늘어진 채로 들보를 떨어뜨려, 그것이 세차게 내려와 파성추의 머리를 부러뜨리게 했다.
그 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자기들의 공성 기계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흙언덕이 맞선 공사에 막히는 것을 보고, 지금 가진 공격 수단으로는 도시를 차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도시를 둘러싸는 포위벽을 쌓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그에 앞서 그들은 불의 효과를 시험해, 도시가 크지 않으니 바람의 도움을 받아 태워 버릴 수 있는지 보기로 했다. 실로 그들은 봉쇄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그곳을 함락시킬 수 있을 만한 방책이라면 무엇이든 다 생각해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잔나무 다발을 가져와 흙언덕에서 던져 넣었다. 먼저 흙언덕과 성벽 사이의 공간에 던졌고, 일하는 손이 많아 그곳이 곧 가득 차자 다음에는 흙언덕 위에서 닿는 데까지 도시 안쪽으로 다발을 쌓아 올린 뒤, 유황과 역청으로 불을 붙여 나무를 태웠다. 그 결과는 사람의 손으로 일으킨 것으로는 일찍이 누구도 본 적 없는 큰 불이었다. 물론 산의 숲에서 바람이 가지를 맞비벼 저절로 일어난다고 알려진 큰 불과는 견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불은 그 규모만으로 남을 만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많은 위험을 지나온 끝에 하마터면 플라타이아인들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뻔했다. 도시의 큰 부분이 아예 다가갈 수 없는 곳이 되었고, 적이 바라던 대로 그곳에 바람이 불었다면 아무것도 그들을 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았고, 큰비와 천둥이 몰려와 불이 꺼지고 위험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마지막 시도마저 실패하자 펠로폰네소스인들은 병력의 일부를 그 자리에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낸 뒤, 도시를 둘러싸는 포위벽을 쌓고 그 자리를 참가한 여러 도시에 나누어 맡겼다. 포위선 안쪽과 바깥쪽에 각각 호를 파고 거기서 벽돌 흙을 얻었다. 아르크투루스1가 떠오를 무렵 모든 것이 끝나자 그들은 성벽의 절반을 지킬 만한 인원을 남겼고, 나머지 절반은 보이오티아인이 맡았다. 그리고 군대를 물려 각자의 도시로 흩어졌다. 플라타이아인들은 그전에 아내와 아이들과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싸울 수 없는 이들 대부분을 아테네로 보내 두었다. 그래서 그곳에 남아 포위를 받은 수는 그들 자신의 시민 400명과 아테네인 80명, 그리고 빵을 구울 여자 110명이었다. 포위가 시작될 때의 총수가 이러했고, 성벽 안에는 종이든 자유인이든 그 밖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플라타이아 봉쇄를 위한 조치는 이러했다.
같은 여름, 플라타이아 원정과 때를 같이하여 아테네인들은 곡식이 익어 갈 무렵 중장보병 2,000명과 기병 200명을 거느리고 트라키아 쪽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을 향해 진군했다. 지휘는 에우리피데스의 아들 크세노폰과 두 동료가 맡았다. 보티아이아의 스파르톨로스 앞에 이르자 그들은 곡식을 짓밟았고, 성안 한 당파의 내밀한 움직임을 통해 도시가 넘어오리라는 기대를 얼마간 품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쪽에서 올린토스로 사람을 보냈으므로 중장보병과 그 밖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수비대가 그에 따라 도착했다. 이들이 스파르톨로스에서 쳐 나오자 아테네인들이 도시 앞에서 맞섰다. 칼키디케의 중장보병과 그들과 함께 있던 얼마간의 보조 병력은 패해 스파르톨로스로 물러났으나, 칼키디케의 기병과 경무장 병력은 아테네인의 기병과 경무장 병력을 이겼다. 칼키디케인에게는 이미 크루시스에서 온 경방패병2이 몇 있었고, 전투가 끝난 직후 올린토스에서 다른 몇이 더 와서 합류했다. 이들을 보고 스파르톨로스의 경무장 병력은 이 증원과 앞서 거둔 성공에 힘을 얻어, 칼키디케 기병과 방금 도착한 증원의 도움을 받아 다시 아테네인을 쳤다. 아테네인은 짐과 함께 남겨 두었던 두 부대로 물러났다. 아테네인이 나아가면 상대는 물러났고, 아테네인이 물러서기 시작하는 순간 발사물로 그들을 몰아붙였다. 칼키디케 기병도 마음대로 달려들어 치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그들 사이에 공포를 일으켜 그들을 무너뜨리고 멀리까지 뒤쫓았다. 아테네인들은 포티다이아로 피했고, 그 뒤 휴전을 맺어 자기들의 주검을 되찾았으며, 남은 병력을 거느리고 아테네로 돌아갔다. 430명과 장군 전원이 쓰러졌다.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자기들의 주검을 거두어 각자의 도시로 흩어졌다.
같은 여름,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암브라키아인과 카오니아인은 아카르나니아 전체를 굴복시켜 아테네에서 떼어 놓으려는 마음으로, 스파르타인을 설득해 연합에서 함대를 갖추어 중장보병 1,000명을 아카르나니아로 보내게 했다. 육지와 바다에서 함께 움직이면 해안의 아카르나니아인이 진군할 수 없게 되고, 아카르나니아를 차지하면 자킨토스와 케팔레니아의 정복도 쉽게 뒤따르므로 아테네인이 펠로폰네소스를 돌아 순항하는 일이 더는 그렇게 편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말이었다. 게다가 나우팍토스를 차지할 희망도 있었다. 그리하여 스파르타인은 곧 배 몇 척을 크네모스와 함께 내보냈는데, 그는 여전히 해군 총사령관이었고 중장보병이 그 배에 탔다. 그리고 함대는 되도록 빨리 갖추어 레우카스로 오라는 명을 두루 돌렸다. 이 일에 가장 앞장선 것은 코린트인이었으니, 암브라키아인이 그들의 식민시였기 때문이다. 코린트와 시키온과 그 일대에서 배들이 준비되는 동안, 먼저 도착한 레우카스와 아낙토리온과 암브라키아의 배들은 레우카스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크네모스는 중장보병 1,000명과 함께 나우팍토스 앞에 배치된 아테네 함대의 지휘관 포르미온을 피해 만 안으로 들어가, 곧바로 육상 원정 준비에 들어갔다. 그와 함께한 그리스 병력은 암브라키아인과 레우카스인과 아낙토리온인, 그리고 그가 데려온 펠로폰네소스인 1,000명이었다. 이방인 병력은 카오니아인 1,000명이었는데, 이들은 왕이 없는 종족으로 그해의 수장 자리를 맡은 왕가의 두 사람 포티스와 니카노르가 이끌었다. 카오니아인과 함께, 그들처럼 왕이 없는 테스프로티아인 얼마가 왔고, 아직 미성년인 타립스 왕의 후견인 사뷜린토스가 이끄는 몰로시아인과 아틴타니아인 얼마가 왔으며, 파라바이아인이 그들의 왕 오로이도스 아래 왔고, 안티코스 왕의 신민으로 그가 오로이도스의 지휘 아래 둔 오레스티아인 1,000명이 따라왔다. 페르디카스가 아테네인 모르게 보낸 마케도니아인 1,000명도 있었으나 이들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크네모스는 이 병력을 거느리고 코린트에서 오는 함대를 기다리지 않은 채 떠났다. 암필로키아의 아르고스 땅을 지나며 성벽 없는 마을 림나이아를 약탈한 그들은 아카르나니아의 중심 도시 스트라토스로 나아갔다. 이곳을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 지역도 빠르게 뒤따를 것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아카르나니아인들은 육지에서 큰 군대에 침공을 받고 바다에서 적의 함대에 위협받는 처지가 되자, 힘을 합쳐 맞서려 하지 않고 각자 제 집을 지키려 그 자리에 남았으며, 포르미온에게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포르미온은 코린트에서 함대가 막 출항하려는 때에 나우팍토스를 지키지 않은 채로 둘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러는 동안 펠로폰네소스인과 그 동맹들은 세 부대로 나뉘어 스트라토스로 나아갔다. 그 근처에 진을 치고, 교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면 힘으로 성벽을 쳐 보려는 것이었다. 행군 순서는 이러했다. 중앙은 카오니아인과 나머지 이방인이 맡고, 오른쪽에는 레우카스인과 아낙토리온인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왼쪽에는 크네모스가 펠로폰네소스인과 암브라키아인과 함께 있었다. 각 부대는 서로 멀리 떨어져 때로는 서로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질서를 지켜 나아가며 경계를 놓지 않다가 좋은 자리에 이르러 진을 쳤다. 그러나 카오니아인은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고 그 대륙 그 지역의 종족들 사이에서 용맹으로 가장 높은 이름을 얻고 있었으므로, 진영을 차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나머지 이방인과 함께 달려 나갔다. 도시를 들이쳐 차지하고 이 일의 영예를 홀로 얻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들이 몰려오는 동안 스트라토스인들은 사정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알아채고, 이 부대를 꺾으면 그 뒤에 있는 그리스인들의 기세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여겨 도시 주변에 매복을 두었다. 그리고 그들이 다가오자마자 도시와 매복에서 나와 가까이 붙어 싸웠다. 카오니아인은 공포에 사로잡혀 많은 수가 베였고, 그들이 무너지는 것이 보이자마자 나머지 이방인도 돌아서 달아났다. 동맹들이 앞서 나간 거리가 멀었던 까닭에 그리스 부대 어느 쪽도 이 전투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자기들이 진을 치러 서둘러 가는 중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달아나는 이방인들이 자기들 안으로 밀려들자 그들은 대열을 열어 받아들이고 부대를 한데 모아 그날은 그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렀다. 스트라토스인들은 나머지 아카르나니아인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그들과 맞붙으려 하지 않고 멀리서 돌팔매를 던지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무장을 갖추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었으므로 그것이 그들을 크게 괴롭혔다. 이런 방식의 싸움에서는 아카르나니아인이 뛰어난 듯하다.
밤이 되자마자 크네모스는 서둘러 군대를 스트라토스에서 약 9마일3 떨어진 아나포스강으로 물렸다. 이튿날 휴전을 맺어 자기 주검을 되찾고, 거기서 우호적인 오이니아다이인과 합류한 뒤 적의 증원이 오기 전에 그들의 도시로 후퇴했다. 거기서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갔고, 스트라토스인들은 이방인들과 벌인 전투를 기려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그러는 동안 크리사 만에 있던 코린트와 나머지 연합국의 함대는 크네모스와 함께 움직여 해안의 아카르나니아인이 내륙의 같은 나라 사람들과 합치는 것을 막기로 되어 있었으나, 스트라토스의 전투와 거의 같은 때에 포르미온과 나우팍토스에 배치된 아테네 함선 20척과 싸워야 하는 처지에 몰려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만을 나와 해안을 따라가는 것을 포르미온이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는 열린 바다에서 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코린트인과 동맹들은 해전을 벌일 생각은 조금도 없이, 군사를 나르는 수송선에 더 가까운 배로 아카르나니아를 향해 떠났다. 게다가 그들은 아테네 함선 20척이 자기들의 47척과 감히 맞붙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해안을 따라가는 동안 아테네인들은 그들과 나란히 줄지어 항해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에서 아카르나니아로 가는 길에 건너편 본토로 건너가려 하자, 아테네인들이 칼키스와 에우에노스 강에서 다시 나와 자기들을 맞으러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밤에 닻을 풀고 빠져나갔으나 발각되어, 마침내 건너는 도중 바다 위에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무장에 배를 낸 나라마다 제 장군이 있었고, 코린트의 지휘관은 마카온과 이소크라테스와 아가타르키다스였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틈이 생기지 않는 한도에서 될 수 있는 대로 큰 원으로 배를 늘어세우고 뱃머리를 밖으로 배 뒤를 안으로 두었으며, 함께 온 작은 배는 모두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가장 잘 달리는 배 5척은 언제라도 즉시 튀어나가 적이 위협하는 지점을 떠받칠 수 있게 두었다.
아테네인들은 한 줄로 늘어서서 그들 주위를 돌고 또 돌며, 끊임없이 스칠 듯 지나가고 당장 들이칠 듯이 하여 그들의 원을 좁아들게 만들었다. 포르미온이 신호를 줄 때까지는 실제로 치지 말라고 미리 일러 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기대는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육지의 군대처럼 대형을 지키지 못하고 배들이 서로 부딪치며 작은 배들이 혼란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만에서 바람이 불어오면(그가 계속 그들 주위를 돈 것은 이것을 기다린 것이었고, 그 바람은 흔히 아침이 되면 일었다) 그들이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고 버티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자기 배들이 더 빠르므로 치는 때를 자기가 고를 수 있다고, 그리고 바람이 오는 때에 맞춘 공격이 가장 잘 먹힐 것이라고 여겼다. 바람이 내려왔을 때 적의 배들은 이미 좁은 자리에 몰려 있었고, 바람과 부딪쳐 오는 작은 배들 때문에 곧바로 혼란에 빠졌다. 배가 배에 부딪쳤고, 수부들은 장대로 서로를 밀어냈으며, 소리치고 욕하고 서로 다투는 바람에 선장의 명령도 갑판장의 외침도 다 함께 들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연습이 모자라 거친 물에서 노를 빼내지 못해 배가 조타수의 손에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이 순간에 포르미온이 신호를 주었고 아테네인들이 들이쳤다. 먼저 제독의 배 한 척을 가라앉힌 뒤 그들은 마주치는 배는 모두 못 쓰게 만들었으므로, 아무도 그 혼란 속에서 맞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아카이아의 파트라이와 뒤메로 달아났다. 아테네인들은 뒤를 쫓아 함선 12척을 잡았고, 거기서 사람 대부분을 끌어낸 뒤 몰리크리온으로 항해했다. 리온 곶에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포세이돈에게 배 한 척을 바친 뒤 나우팍토스로 돌아갔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남은 배로 곧 뒤메와 파트라이에서 해안을 따라 엘리스의 병기창인 킬레네로 갔다. 스트라토스의 전투 뒤에 크네모스와, 그들과 합치기로 되어 있던 레우카스의 배들도 거기에 도착했다.
이제 스파르타인은 크네모스에게 위원 세 사람, 곧 티모크라테스와 브라시다스와 뤼코프론을 함대로 보내, 이번에는 운이 더 나아지도록 다시 싸울 준비를 하고 배 몇 척에 바다에서 밀려나지 말라고 명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낭패를 본 일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고, 그것이 자기들의 첫 해상 시도였던 만큼 더욱 그랬다. 그래서 자기들의 해군이 그렇게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잘못된 처사가 있었다고 여겼고, 아테네인의 오랜 경험을 자기들이 쌓은 적은 연습과 견주어 헤아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위원들은 노여움을 품고 보내졌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크네모스와 함께 여러 나라에 배를 요구하고 이미 가진 배를 싸울 수 있게 갖추는 일에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 포르미온은 그들의 준비와 자기가 거둔 승리를 아테네에 알리고, 날마다 전투를 기다리는 처지이니 되도록 많은 배를 빨리 보내 달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20척이 보내졌으나 그 지휘관에게는 먼저 크레타로 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고르티스 사람으로 아테네인의 프록세노스4였던 크레타인 니키아스가, 적대하는 도시 키도니아를 굴복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며 그들을 설득해 그곳을 치러 가게 했던 것이다. 그의 진짜 바람은 키도니아인의 이웃인 폴리크네인의 뜻을 받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 배들과 함께 크레타로 가서 폴리크네인과 함께 키도니아인의 땅을 짓밟았고, 거스르는 바람과 거친 날씨로 적지 않은 시간을 거기서 허비했다.
아테네인들이 이렇게 크레타에 붙들려 있는 동안, 킬레네에 있던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싸울 준비를 마치고 해안을 따라 아카이아의 파노르모스로 갔는데, 거기에는 그들을 떠받치러 온 육군이 있었다. 포르미온도 해안을 따라 몰리크리온의 리온으로 가서, 전에 싸울 때와 같은 함선 20척으로 그 앞에 닻을 내렸다. 이 리온은 아테네인에게 우호적이었다. 펠로폰네소스에 있는 또 하나의 리온이 그 건너편에 놓여 있는데, 둘 사이의 바다는 너비가 약 4분의 3마일로 크리사 만의 입구를 이룬다. 그들의 군대가 있던 파노르모스에서 멀지 않은 이곳 아카이아의 리온에, 아테네인들이 닻을 내리는 것을 보고 펠로폰네소스인들도 함선 77척으로 닻을 내렸다. 엿새나 이레 동안 그들은 서로 마주 본 채 머물며 전투를 위해 연습하고 준비했다. 한쪽은 이미 겪은 재앙이 두려워 두 리온 사이를 나가 열린 바다로 들어서지 않기로 굳혔고, 다른 쪽은 좁은 물에서 싸우는 것이 적에게 이롭다고 여겨 그 해협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로 굳혔다. 마침내 크네모스와 브라시다스와 나머지 펠로폰네소스 지휘관들은 아테네에서 증원이 오기 전에 되도록 빨리 전투를 붙이기를 바랐고, 사람들 대부분이 앞서의 패배에 겁을 먹어 이 일에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 먼저 그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북돋웠다.
펠로폰네소스인 여러분, 지난번 싸움이 여러분 가운데 몇 분에게 지금 앞에 놓인 싸움을 두려워하게 만들었을지 모르나, 그 싸움은 실로 걱정할 만한 정당한 근거를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그 싸움에 대한 준비는 넉넉하지 못했고, 우리가 배를 낸 목적도 해전을 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육상 원정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의 운이 우리에게 크게 거슬렀고, 어쩌면 첫 해전에서 우리가 실패한 데에는 경험 부족도 얼마간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패배를 낳은 것은 비겁함이 아니었으며, 힘으로 꺾이지 않은 결의, 아직 적에게 할 말이 남아 있는 결의가 우연한 일의 결과로 그 날을 잃어서도 안 됩니다. 운의 실패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용감한 마음은 언제나 용감해야 하며 그렇게 있는 동안에는 잘못된 처사의 변명으로 경험 부족을 내세울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이 경험에서 적에게 뒤진 만큼 용기에서는 그들보다 앞섭니다. 그리고 여러분 상대의 기술은 용맹이 함께한다면 배운 것을 위급한 때에 실행할 침착함까지 갖추겠지만, 겁먹은 마음은 위험 앞에서 모든 기술을 쓸모없게 만듭니다. 두려움은 침착함을 앗아 가고, 용맹이 없으면 기술은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앞선 경험에는 여러분의 앞선 담대함을 맞세우고, 패배에서 생긴 두려움에는 그때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맞세우십시오. 또 여러분에게는 언제나 수에서 앞선다는 이점이 있고, 우리 중장보병의 떠받침을 받으며 우리 해안 앞에서 싸운다는 이점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대개 수와 장비가 승리를 줍니다. 그러므로 어느 점에서도 패배는 있을 법하지 않습니다. 앞서 우리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말하면,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앞날을 위해 우리를 더 잘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러니 조타수와 수부들은 마음 놓고 각자의 임무에 힘쓰십시오. 누구도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을 두고 말하면, 우리는 적어도 여러분의 이전 지휘관들만큼은 잘 이 싸움을 준비하겠으며 누구에게도 잘못된 처사의 구실을 주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럼에도 굳이 그렇게 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고, 용감한 자는 용맹에 알맞은 상으로 기려질 것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지휘관들이 자기 사람들을 북돋운 말은 이러했다. 그러는 동안 포르미온도 자기 사람들의 용기를 두고 걱정이 없지 않았고, 그들이 저희끼리 무리를 지어 수의 차이에 놀라고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들을 불러 모아 지금의 위급한 사정에서 자신감과 조언을 주고자 했다. 그는 전부터 그들에게 거듭 말해 왔고 그 생각에 그들의 마음을 익숙하게 만들어 두었으니, 그들이 맞설 수 없는 수의 우세란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 자신도 아테네인이라면 펠로폰네소스 함선이 아무리 많아도 물러날 필요가 없다고 오래전부터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앞의 광경에 기가 죽은 것을 보았으므로, 그는 그들의 자신감을 되살리고자 그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적의 수에 겁을 먹고 있는 것이 저에게 보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불러 모았습니다. 실로 두려워할 것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게 두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펠로폰네소스인은 이미 패한 자들이고 자기들조차 우리와 맞먹는다고 여기지 않으므로, 대등한 조건으로 우리를 맞으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배를 우리에게 맞세웠습니다. 다음으로, 그들이 가장 믿고 있는 것, 곧 자기들에게 타고난 것이라고 여기는 용기를 두고 말하면, 그 자신감은 육상에서 복무하며 쌓은 경험이 흔히 그들에게 안겨 주는 성공에서 나오는 것일 뿐이며, 그들은 그것이 바다에서도 자기들에게 같은 것을 주리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 이점이 그 영역에서 그들의 것이라면, 이 영역에서는 온당하게 우리의 것입니다. 그들이 용기에서 우리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제 분야의 경험에 따라 더 자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파르타인은 동맹에 대한 자기들의 패권을 제 영광을 위해 쓰므로, 그들 대부분은 제 뜻과 어긋나게 위험으로 끌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뚜렷한 패배를 겪은 뒤에 새로운 싸움에 나설 엄두를 결코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세를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반면 여러분은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근거 있는 두려움을 그들에게 불어넣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얼마 전에 승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토록 뚜렷한 승리에 걸맞은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그들을 맞서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이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자들처럼 수에서 앞선 적은 결의보다 힘을 더 믿고 싸움에 들어옵니다. 반면 엄청난 수적 열세를 스스로 나서서 맞서는 자는 끌어낼 내면의 힘이 매우 커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펠로폰네소스인은 우리의 이치에 닿지 않는 담대함을, 그들과 걸맞은 준비를 우리가 갖추었을 때 두려워했을 것보다 더 두려워합니다. 게다가 이제까지 많은 군세가 기술의 부족이나 때로는 용기의 부족으로 자기보다 못한 상대에게 굴복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두 결함 어느 것도 확실히 없습니다. 전투를 두고 말하면, 제가 막을 수 있는 한 그것은 해협 안에서 벌어지지 않을 것이며 저는 아예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서툴게 다루어지는 많은 배와 작고 빠르고 잘 다루어지는 함대 사이의 싸움에서, 바다의 여유가 없는 것은 의심할 것 없는 불리함이기 때문입니다. 적을 한참 먼 데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들이받을 수 없고, 몰리면 필요할 때 물러날 수도 없습니다. 대열을 뚫을 수도 없고 그 뒤로 돌아설 수도 없는데, 그것이야말로 빠른 배에 맞는 전술입니다. 오히려 해전이 어쩔 수 없이 육지의 싸움이 되고, 그렇게 되면 수가 일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저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대비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배 옆의 제자리를 지키고 명령의 말을 재빨리 받으십시오. 우리가 서로를 이토록 짧은 거리에서 살피고 있으니 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싸움에서는 질서와 침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그것은 전쟁 전반에 쓸모 있고 특히 해전에 쓸모 있는 자질입니다. 또 적을 앞에 두고 여러분의 지난 업적에 걸맞게 처신하십시오. 여러분이 싸워 얻을 것은 큽니다. 펠로폰네소스인의 해상의 희망을 부수는 것, 또는 아테네인에게 바다를 두고 품는 두려움을 더 가까이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그들 대부분을 꺾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 드립니다. 한번 꺾인 사람은 같은 결의로 두 번 위험을 맞지 못합니다.”
포르미온의 훈시는 이러했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아테네인들이 만과 좁은 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알고, 그들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그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새벽에 배를 내어 네 줄로 늘어서서, 닻을 내리고 있던 그대로 오른쪽 날개를 앞세우고 만 안쪽 자기들 땅 쪽으로 항해했다. 이 날개에는 가장 잘 달리는 배 20척을 두었다. 포르미온이 그들의 목적이 나우팍토스라고 여겨 그곳을 구하러 해안을 따라 그리로 갈 경우, 아테네인들이 그 날개 밖으로 빠져나가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 배들에게 끊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예상한 대로 포르미온은 그때 수비대가 비어 있던 그곳을 걱정해, 그들이 배를 내는 것을 보자마자 마음에 꺼리면서도 서둘러 배에 올라 해안을 따라 항해했고, 메세니아 육군도 그를 떠받치려 나란히 움직였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그가 배를 한 줄로 늘여 해안을 따라가며 그렇게 만 안쪽 육지에 가까이 붙은 것을 보고, 그것이 그토록 바란 일이었으므로 한 번의 신호에 갑자기 방향을 돌려 한 줄로 늘어서서 가장 빠른 속력으로 아테네인들에게 내리덮쳤다. 함대 전체를 끊어 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선 배 11척은 펠로폰네소스의 날개와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벗어나 더 열린 물에 이르렀다. 나머지는 빠져나가려다 붙잡혀 해안으로 밀려 못 쓰게 되었고, 수부 가운데 배에서 헤엄쳐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은 베였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배 몇 척을 자기 배에 묶어 빈 채로 끌고 갔고, 한 척은 사람들이 탄 채로 잡았다. 다른 몇 척도 막 끌려가려는 참이었으나, 메세니아인들이 무장한 채로 바다에 뛰어들어 올라탄 갑판에서 싸워 그 배들을 건져 냈다.
여기까지는 승리가 펠로폰네소스인의 것이었고 아테네 함대는 무너졌다. 그러는 동안 오른쪽 날개의 배 20척은 그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벗어나 더 열린 물에 이른 아테네 함선 11척을 뒤쫓고 있었다. 이 배들은 한 척만 빼고 모두 그들을 앞질러 무사히 나우팍토스에 들어갔고, 아폴론 신전 앞 해안 가까이에 뱃머리를 적 쪽으로 두어 늘어서서, 펠로폰네소스인들이 해안 쪽으로 자기들을 치러 들어올 경우에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얼마 뒤 펠로폰네소스인들이 다가오며 승리를 기려 파이안5을 불렀다. 남은 아테네 배 한 척은 나머지보다 한참 앞선 레우카스 배 한 척에 쫓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박지에 닻을 내리고 있던 상선 한 척이 있었으므로, 아테네 배는 때맞추어 그 배를 돌아 쫓아오던 레우카스 배의 허리를 들이받아 가라앉혔다. 이토록 갑작스럽고 뜻하지 않은 일은 펠로폰네소스인들 사이에 공포를 일으켰다. 그리고 승리에 들떠 대열이 흐트러져 있던 터라, 일부는 본대가 따라오게 하려고 노를 놓고 배를 세웠는데 적의 뱃머리가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안전하지 못한 짓이었고, 다른 일부는 그 지형을 몰라 얕은 데에 배를 대어 걸렸다.
이 일에 기운을 얻은 아테네인들은 한마디 말에 함성을 지르고 적에게 달려들었다. 적은 제 실수와 스스로 빠진 혼란에 발이 묶여 한순간만 버티다가 배를 내었던 파노르모스로 달아났다. 아테네인들은 뒤를 바짝 쫓아 가장 가까운 배 6척을 잡고, 싸움이 시작될 때 해안 가까이에서 못 쓰게 되어 끌려갔던 자기들의 배를 되찾았다. 그들은 수부 가운데 일부를 죽이고 일부는 사로잡았다. 상선 앞에서 가라앉은 레우카스 배에는 스파르타인 티모크라테스가 타고 있었는데, 그는 배가 가라앉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주검은 나우팍토스 항구로 밀려 올라왔다. 아테네인들은 돌아오면서 자기들이 배를 내어 싸움을 뒤집은 그 자리에 전승 기념물을 세웠고, 자기들 해안에 있던 난파물과 주검을 거두고 휴전을 맺어 적에게 그들의 주검을 돌려주었다. 펠로폰네소스인들도 해안 가까이에서 못 쓰게 만든 배들에 입힌 패배를 두고 승자로서 전승 기념물을 세웠고, 아카이아의 리온에서 잡은 배를 그 기념물과 나란히 바쳤다. 그 뒤 그들은 아테네에서 올 증원을 걱정해, 레우카스인만 빼고 모두 크리사 만을 거쳐 코린트로 항해했다. 그들이 물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투 전에 포르미온과 합치기로 되어 있던 아테네 함선 20척이 나우팍토스에 도착했다.
이렇게 그 여름이 끝났다. 겨울이 가까워졌으나, 코린트와 크리사 만으로 물러났던 함대를 흩은 뒤 크네모스와 브라시다스와 나머지 펠로폰네소스 선장들은 메가라인의 설득에 마음이 기울어 아테네의 항구 피레우스를 쳐 보기로 했다. 아테네가 바다에서 뚜렷하게 앞서 있었던 까닭에 그 항구는 자연히 지키는 이도 없고 열려 있는 채로 남아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이러했다. 사람들이 각자 제 노와 깔개와 노걸이 끈을 들고 코린트에서 아테네 쪽 바다까지 육로로 가서 되도록 빨리 메가라에 이른 뒤, 마침 니사이아의 선거에 있던 배 40척을 물에 내려 곧바로 피레우스로 항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항구에는 지키는 함대가 없었고, 적이 기습을 시도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러내어 치는 일이라면 일부러 감행할 리 없고, 만일 그런 생각이 있다면 아테네에 곧 알려질 것이라고 여겼다. 계획을 세운 다음 걸음은 그것을 실행하는 일이었다. 밤에 도착해 니사이아에서 배를 내린 그들은, 처음에 뜻한 대로 피레우스로 항해하지 않고 메가라를 바라보는 살라미스의 곶으로 갔다. 그 위험이 두려웠기 때문이고, 게다가 바람이 그들을 멈추게 했다는 말도 얼마간 있다. 그곳에는 메가라로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한 요새와 함선 3척의 함대가 있었다. 그들은 이 요새를 들이치고 갤리선들을 빈 채로 끌고 갔으며, 주민들을 기습해 섬의 나머지를 짓밟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에 위급을 알리는 봉화가 올랐고, 전쟁 기간에 일어난 어떤 것에도 못하지 않은 공황이 거기에 일었다. 도시에서는 적이 이미 피레우스로 들어왔다고 여겼고, 피레우스에서는 적이 살라미스를 차지했으며 언제라도 항구에 이를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그들의 마음이 조금만 더 굳었다면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었고, 어떤 바람도 그들을 막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날이 새자마자 아테네인들은 전군을 모아 배를 내리고 서두름과 요란함 속에 올라타 함대와 함께 살라미스로 갔으며, 육군은 피레우스에서 경비를 섰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은 구원이 오고 있음을 알아채고, 살라미스 대부분을 휩쓴 뒤 약탈물과 사로잡은 사람들과 부도론 요새에서 가져온 배 3척을 끌고 서둘러 니사이아로 떠났다. 자기들 배의 상태도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물에 내린 지 오래되어 물이 새지 않을 만큼 온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가라에 이른 그들은 걸어서 코린트로 돌아갔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이 더는 살라미스에 없는 것을 알고 자기들도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뒤로는 항구를 닫고 그 밖에 알맞은 방비를 갖추어, 앞날에 피레우스를 더 부지런히 지킬 조치를 취했다.
이 겨울이 시작될 무렵 거의 같은 때에, 트라키아의 오드리사이인 왕인 테레스의 아들 시탈케스가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의 아들 페르디카스와 트라키아 근처의 칼키디케인을 향해 원정을 벌였다. 그의 목적은 한 약속은 이행하게 하고 다른 한 약속은 자기가 이행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페르디카스는 전쟁이 시작될 때 몰린 처지에서 그에게 약속을 한 바 있었다. 시탈케스가 아테네인을 자기와 화해시키고 자기의 형제이며 적인 왕위 요구자 필리포스를 되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약속을 이행할 뜻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시탈케스 자신은 아테네인과 동맹을 맺으면서 트라키아의 칼키디케 전쟁을 끝내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그가 침공한 두 목적이었다. 그는 마케도니아 왕좌에 앉히려는 필리포스의 아들 아뮌타스와, 이 일로 그의 궁정에 와 있던 아테네 사절 몇 사람과, 장군으로서 하그논을 함께 데려왔다. 아테네인은 함대와 모을 수 있는 만큼의 군사로 그와 함께 칼키디케인을 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오드리사이인에서 시작해, 그는 먼저 하이모스 산과 로도페 산 사이, 그리고 흑해와 헬레스폰토스 사이에서 자기에게 예속된 트라키아 종족들을 불러냈다. 다음으로는 하이모스 너머의 게타이인과, 게타이인처럼 스키타이인과 접하고 그들과 같은 무장을 갖춘, 곧 모두가 말 탄 궁수인, 흑해 가까이 도나우강 남쪽에 자리 잡은 다른 무리들을 불러냈다. 이들 말고도 그는 디이인이라 불리며 대부분 로도페 산에 사는 산악의 독립된 트라키아 검병 다수를 불러 모았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용병으로, 일부는 자원해 왔다. 또 아그리아네스인과 라이아이인, 그리고 그의 제국 안에 있는 나머지 파이오니아 종족들도 불렀다. 이들은 그 제국의 변경에 살며 라이아이의 파이오니아인과 스트리몬 강까지 뻗어 있었는데, 그 강은 스콤브로스 산에서 흘러 아그리아네스인과 라이아이인의 땅을 지난다. 거기서 시탈케스의 제국이 끝나고 독립된 파이오니아인의 땅이 시작된다. 역시 독립된 트리발리인과 접해 트레레스인과 틸라타이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스콤브로스 산 북쪽에 살며 해가 지는 쪽으로 오스키오스 강까지 뻗어 있다. 이 강은 네스토스강과 헤브로스강이 솟는 것과 같은 산맥, 곧 로도페와 이어진 거칠고 넓은 산줄기에서 솟는다.
오드리사이인의 제국은 해안을 따라 압데라에서 흑해로 들어가는 도나우강 입구까지 뻗어 있었다. 이 해안을 가장 짧은 길로 항해하면 상선으로 줄곧 순풍을 받아 나흘 낮과 나흘 밤이 걸린다. 육로로는 발 빠른 사람이 가장 짧은 길로 가면 압데라에서 도나우강까지 열하루에 이를 수 있다. 그 해안선의 길이가 이러했다. 내륙으로는 비잔티움에서 라이아이인과 스트리몬 강까지, 곧 내지로 가장 멀리 뻗은 한계까지 발 빠른 사람이 열사흘을 가는 길이다. 이방인 지구 전체와 그리스 도시들에서 들어온 공납은, 시탈케스의 뒤를 이어 그것을 가장 높이 끌어올린 세우테스 때에 들어온 것으로 셈하면 금과 은으로 약 400탈란톤6에 이르렀다. 그에 못하지 않은 액수의 금과 은 선물도 있었고, 그 밖에 무늬 없는 천과 수놓은 천과 다른 물건들이 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드리사이의 영주들과 귀족들을 위해서도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페르시아 왕국에 퍼져 있던 것과 정반대의 관습이 세워져 있었으니, 곧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관습이었다. 청했다가 거절당하는 것보다 청을 받고 주지 않는 것에 더 큰 수치가 붙었다. 이것이 트라키아의 다른 곳에도 퍼져 있었으나 강력한 오드리사이인 사이에서 가장 널리 행해졌으므로, 선물 없이는 무슨 일도 되게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것은 매우 강력한 왕국이었고, 수입과 전반적인 번영에서 이오니아만과 흑해 사이 유럽의 모든 나라를 앞섰으며, 수와 군사 자원에서는 스키타이인 다음으로 뚜렷하게 둘째였다. 실로 스키타이인과는 유럽의 어떤 민족도 견줄 수 없으며, 그들이 한마음이라면 아시아에서도 홀로 그들과 맞먹을 나라가 없다. 물론 일반적인 지력과 문명 생활의 기술에서는 그들이 다른 종족들과 같은 수준에 있지 않다.
이제 군을 일으킬 준비를 한 것은 이 제국의 주인이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지자 그는 마케도니아를 향해 행군에 나섰는데, 먼저 자기 영토를 지나고 다음으로 신티인과 파이오니아인을 가르는 황량한 케르키네 산줄기를 넘었다. 그가 넘은 길은 앞서 파이오니아인을 치러 갔던 원정에서 나무를 베어 그 자신이 낸 길이었다. 이 산들을 넘어 오른쪽에 파이오니아인을 두고 왼쪽에 신티인과 마이디인을 두고 가서, 그는 마침내 파이오니아의 도베로스에 이르렀다. 행군 중에 병으로 잃은 것 말고는 군대를 잃지 않았고 오히려 얼마간 늘었으니, 독립된 트라키아인 다수가 약탈의 희망을 품고 자원해 그와 합류했다. 그리하여 전체가 통틀어 15만에 이르는 큰 수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보병이었으나 3분의 1쯤은 기병으로, 주로 오드리사이인 자신이, 그다음으로 게타이인이 냈다. 보병 가운데 가장 잘 싸우는 이들은 로도페에서 내려온 독립된 검병들이었고, 그를 따른 나머지 뒤섞인 무리는 주로 수로써 두려움을 주었다.
도베로스에 모인 그들은 산 높은 데서 페르디카스의 영토가 있는 아래 마케도니아로 내려갈 준비를 했다. 륑케스타이인과 엘리미오타이인, 그리고 더 내륙에 있는 다른 종족들은 핏줄로는 마케도니아인이며 같은 핏줄인 이들의 동맹이자 예속민이면서도, 여전히 자기들만의 정부를 따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마케도니아라 불리는 해안 지역은 페르디카스의 아버지 알렉산드로스와 그 조상들이 처음 얻었으며, 그들은 본디 아르고스에서 온 테메노스의 후손이었다. 이 일은 피에리아에서 피에리아인을 몰아내면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그 뒤 스트리몬 너머 팡가이온 산 아래의 파그레스와 다른 곳들에 살았다(실로 팡가이온과 바다 사이의 땅은 지금도 피에리아만이라 불린다). 또 지금 칼키디케인의 이웃인 보티아이아인을 보티아에서 몰아내면서, 그리고 파이오니아에서 악시오스 강을 따라 펠라와 바다까지 뻗은 좁은 띠를 얻으면서 이루어졌다. 악시오스와 스트리몬 사이의 미그도니아 지구도 에도니인을 몰아내면서 덧붙였다. 에오르디아에서도 에오르디아인이 쫓겨나 대부분 죽었고, 다만 그 가운데 몇이 아직 퓌스카 주변에 산다. 알모피아에서는 알모피아인이 쫓겨났다. 이 마케도니아인들은 다른 종족들에게 속한 곳들도 정복했으니, 안테무스와 크레스토니아와 비살티아와 마케도니아 본토의 많은 부분이 지금도 그들의 것이다. 그 전체가 이제 마케도니아라 불리며, 시탈케스가 침공할 때에는 알렉산드로스의 아들 페르디카스가 왕위에 있었다.
이 마케도니아인들은 그토록 수 많은 침공자를 맞아 싸움터에 나설 수 없었으므로, 그 땅에 있는 튼튼한 곳과 요새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런 곳은 수가 많지 않았다. 지금 그 땅에서 볼 수 있는 것 대부분은 그 뒤 페르디카스의 아들 아르켈라오스가 왕위에 올라 세운 것이며, 그는 곧은 길도 내고 말과 중장보병과 그 밖의 군수 물자를 두고도 앞선 여덟 왕이 모두 한 것보다 더 나은 기반 위에 왕국을 올려놓았다. 도베로스에서 나아간 트라키아 군은 먼저 한때 필리포스의 통치 아래 있던 곳을 침공해 이도메네를 들이쳐 차지했고, 고르티니아와 아탈란타와 다른 몇 곳은 교섭으로 얻었다. 이 마지막 곳들은 그때 시탈케스와 함께 있던 필리포스의 아들 아뮌타스를 사랑해 넘어온 것이었다. 에우로포스를 포위했으나 차지하지 못한 그는, 다음으로 펠라와 키로스 왼쪽으로 마케도니아의 나머지로 나아갔으나 이보다 더 들어가 보티아이아와 피에리아까지는 나아가지 않고, 머물러 미그도니아와 크레스토니아와 안테무스를 짓밟았다.
마케도니아인들은 보병으로 그를 맞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트라키아 군은 기회가 나는 대로 그들의 기병 한 줌씩에게 공격을 받았는데, 그 기병은 내륙의 동맹들에게서 증원을 받은 것이었다. 흉갑을 갖추고 뛰어난 말꾼이었던 이들은 달려드는 곳마다 앞에 있는 것을 모두 엎어 놓았으나, 적의 큰 무리에 스스로 얽혀 드는 적지 않은 위험을 감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런 시도를 그만두었으니, 그토록 앞선 수를 상대로 감행할 만큼 자기들이 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시탈케스는 자기 원정의 목적을 두고 페르디카스와 교섭을 열었다. 그리고 아테네인이 그가 오리라고 믿지 않아 선물과 사절은 보냈으나 함대와 함께 나타나지 않는 것을 알고, 자기 군대의 큰 부분을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을 향해 내보내 그들을 성벽 안에 몰아넣고 그 땅을 짓밟았다. 그가 이 지역에 머무는 동안, 더 남쪽에 있는 사람들, 곧 테살리아인과 마그네시아인과 테살리아인에게 예속된 다른 종족들, 그리고 테르모퓔라이까지의 그리스인은 모두 그 군대가 자기들을 향해 나아올까 두려워하며 그에 맞추어 준비했다. 이 두려움은 북쪽으로 스트리몬 너머 평야에 사는 트라키아인들도 함께 품었으니, 파나이아인과 오도만티인과 드로이인과 데르사이인이 그러했고 이들은 모두 독립되어 있었다. 아테네의 적인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그가 자기 동맹의 청을 받아 자기들을 향해서도 나아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말까지 돌았다. 그러는 동안 그는 칼키디케와 보티케와 마케도니아를 손에 쥐고 그 모두를 짓밟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 침공의 어떤 목적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또 자기 군대에 식량이 없고 계절의 혹독함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스파르다코스의 아들이자 자기 조카이며 최고위 장교인 세우테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체 없이 물러나기로 정했다. 이 세우테스는 페르디카스가 제 누이를 많은 혼인 지참금과 함께 주겠다는 약속으로 몰래 끌어들여 놓은 사람이었다. 이 조언에 따라 그는 모두 30일을 머물고 그 가운데 여드레를 칼키디케에서 보낸 뒤 되도록 빨리 본국으로 물러났다. 페르디카스는 그 뒤 약속한 대로 제 누이 스트라토니케를 세우테스에게 주었다. 시탈케스의 원정에 관한 일은 이러했다.
이 겨울이 지나는 동안, 펠로폰네소스 함대가 흩어진 뒤에 나우팍토스에 있던 아테네인들은 포르미온의 지휘 아래 해안을 따라 아스타코스로 가서 배에서 내려, 아테네 중장보병 400명과 메세니아인 400명을 거느리고 아카르나니아 내륙으로 진군했다. 스트라토스와 코론타와 다른 곳들에서 의심스러운 사람 몇을 몰아내고 테올뤼토스의 아들 키네스를 코론타에 되세운 뒤, 그들은 배로 돌아왔다. 겨울철에는 오이니아다이를 향해 진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아카르나니아의 나머지와 달리 언제나 그들에게 적대적이었다. 핀도스 산에서 흘러 돌로피아와 아그라이아인과 암필로키아인의 땅과 아카르나니아의 평야를 지나고 그 상류에서는 스트라토스 도시를 지나는 아켈로오스 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자리에서 오이니아다이 주변에 호수를 이루어 물 때문에 겨울에는 군대가 지나갈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오이니아다이 건너편에는 에키나데스라 불리는 섬들이 대부분 놓여 있는데, 아켈로오스의 하구에 너무 가까워서 그 힘센 물줄기가 끊임없이 그 섬들에 흙을 쌓아 이미 몇 섬을 대륙에 붙였고 머지않아 나머지도 그렇게 할 것으로 보인다. 물살이 세고 깊고 흐리며, 섬들이 서로 빽빽하게 놓여 있어 쌓이는 흙을 붙잡아 두고 흩어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섬들이 한 줄로 놓이지 않고 어긋나 있어 물이 열린 바다로 곧장 빠져나갈 길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문제의 섬들은 사람이 살지 않고 크지도 않다. 또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암피아라오스의 아들 알크마이온이 제 어머니를 죽인 뒤 떠돌던 동안 아폴론에게서 이곳에 살라는 명을 받았는데, 그가 어머니를 죽일 때 해가 보지 못한 땅, 또는 땅으로 있지 않았던 땅을 찾아 거기 살기까지는 그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신탁이었다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곳은 그에게 더럽혀진 땅이었다. 이야기는 이어지기를, 이 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던 그가 마침내 아켈로오스가 쌓아 놓은 이 흙을 보고, 제 어머니의 죽음과 제 떠돌이 생활의 시작 이후로 흘러간 긴 세월 동안 목숨을 부지할 만한 땅이 쌓여 올랐을 수 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이니아다이 주변 지구에 자리 잡고 하나의 지배를 세웠으며, 그 땅에 제 아들 아카르난의 이름을 남겼다. 알크마이온에 관해 우리가 전해 받은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테네인들과 포르미온은 아카르나니아에서 돌아 나와 나우팍토스에 이른 뒤, 봄에 아테네로 배를 몰아 돌아갔다. 잡은 배들과, 지난 싸움들에서 사로잡은 사람들 가운데 자유인인 이들을 함께 데려갔는데, 이들은 한 사람에 한 사람씩 맞바꾸어 풀려났다. 그리고 이렇게 이 겨울이 끝났고, 투키디데스가 그 역사를 쓴 이 전쟁의 제3년이 끝났다.
주
1. 아르크투루스 — 목동자리의 으뜸별. 그리스인은 이 별이 해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때를 여름이 끝나고 거친 날씨가 시작되는 표지로 삼아 계절을 가늠했다.
2. 경방패병 — 작은 방패와 투창으로 무장한 경보병. 중장보병처럼 밀집 대형으로 싸우지 않고, 흩어져 던지고 물러나는 방식으로 싸웠다.
3. 약 9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스타디온을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뒤에 나오는 '약 4분의 3마일'도 같다.
4. 프록세노스 —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 두었던 명예 대표. 제 나라에 살면서 상대 나라 사람들의 편의를 돌보고 그 이익을 대변했다.
5. 파이안 — 신에게 바치는 노래. 그리스인은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이나 승리를 기릴 때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6.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및 화폐 단위. 은의 무게로 셈했고 큰 액수를 헤아릴 때 썼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