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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2장 (제I권 제II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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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제I권 제II장) 전쟁의 원인 · 에피담노스 사건 · 포티다이아 사건

에피담노스는 이오니아만 입구의 오른쪽에 자리한 도시다. 그 일대에는 일리리아계 종족인 타울란티아인이 산다. 이 도시는 코르키라가 세운 식민시이며, 창건자는 에라토클레이데스의 아들 팔리오스였다. 헤라클레스의 후손 가문 사람으로, 옛 관례에 따라 모국 코린트에서 그 일을 맡도록 불려 온 인물이었다. 식민단에는 코린트인 몇 사람과 그 밖의 도리스족 사람들이 함께 들어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에피담노스는 크고 인구 많은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웃 이방인들과의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하는 내분에 휘말려 크게 약해졌고, 세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전쟁 직전의 마지막 사건은 민중이 귀족들을 내쫓은 일이었다. 쫓겨난 쪽은 이방인들과 손을 잡고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도시에 남은 자들을 약탈했다. 사정이 다급해진 에피담노스인들은 코르키라에 사절을 보내, 모국이 자기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 말고 추방자들과의 일을 중재해 주기를, 이방인들과의 전쟁에서 자기들을 건져 주기를 간청했다. 사절들은 헤라 신전에 탄원자로 앉아 코르키라인들에게 그렇게 청했다. 그러나 코르키라인들은 그 탄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절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물러났다.

코르키라에서는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에피담노스인들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델포이에 사람을 보내, 도시를 코린트인들에게 넘기고 창건자들에게서 얼마간의 도움을 얻어 보아야 할지 신에게 물었다. 신은 도시를 넘기고 코린트의 보호 아래 들어가라고 답했다. 에피담노스인들은 신탁의 명에 따라 코린트로 가서 식민시를 넘겼다. 자기들의 창건자가 코린트에서 왔음을 밝히고 신이 내린 답을 알린 뒤, 자기들을 죽게 두지 말고 도와 달라고 청했다. 코린트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 식민시가 코르키라인들의 것인 만큼 자기들의 것이기도 하다고 믿었으므로, 그 보호를 맡는 일이 일종의 의무라고 느꼈다. 게다가 그들은 모국을 업신여긴 코르키라인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다른 식민시라면 모두 공적인 집회에서 모국에 통상의 예우를 바치고 제사에서 우선권을 내주었으나, 코린트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재산으로 치면 그리스에서 가장 부유한 공동체와도 견줄 만하고 군사력 또한 막강하며 이따금 제 섬의 해군력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못하는 세력에게 멸시를 당하는 처지였다. 그 해상의 명성은 섬의 옛 주민이던 파이아케스인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코린트가 함대에 그토록 공을 들인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었고, 그 함대는 매우 강력해졌다. 실제로 코린트는 함선 120척을 갖고 전쟁을 시작했다.

이런 원한이 겹치면서 코린트는 에피담노스에 약속한 원군을 보내는 데 더욱 열을 올렸다. 정착민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붙고, 암브라키아인과 레우카스인과 코린트인으로 이루어진 병력이 파견되었다. 이들은 코린트의 식민시인 아폴로니아까지 육로로 행군했다. 바닷길은 코르키라인에게 가로막힐 것이 두려워 피했다. 정착민과 군대가 에피담노스에 들어갔다는 것, 그리고 식민시가 코린트에 넘어갔다는 것을 코르키라인들이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들은 곧바로 함선 25척을 이끌고 바다로 나갔고 뒤이어 다른 배들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쫓겨난 귀족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코린트 수비대와 정착민을 내보내라고 에피담노스인들에게 오만하게 요구했다. (여기서 미리 말해 둘 것이 있다. 에피담노스의 추방자들은 코르키라로 건너가 조상들의 무덤을 가리키며 같은 핏줄에게 자기들을 되돌려 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그러나 에피담노스인들은 이 모두를 못 들은 척했다. 이에 코르키라인들은 함선 40척의 함대로 그들을 치기 시작했다. 추방자들을 복귀시킬 작정으로 데려갔고, 일리리아인의 병력도 끌어들였다. 도시 앞에 진을 치고는, 원주민 가운데 원하는 자와 외지인은 해를 입지 않고 떠나도 좋으며 그러지 않으면 적으로 다루겠다고 알렸다. 그들이 거절하자 코르키라인들은 지협 위에 선 그 도시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한편 에피담노스가 봉쇄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코린트인들은 군비를 갖추고,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완전한 정치적 평등을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에피담노스 식민단을 공고했다. 당장 배를 탈 수 없는 사람은 코린트 드라크메1 50을 내면 코린트를 떠나지 않고도 식민단에 지분을 가질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 공고에 응했는데, 곧바로 떠날 준비를 한 자들도 있었고 정해진 돈을 낸 자들도 있었다. 코르키라인들이 항로를 막을 경우에 대비해 여러 도시에 호송을 부탁했다. 메가라가 8척으로 함께 가기로 했고, 케팔레니아의 팔레가 4척, 에피다우로스가 5척, 헤르미오네가 1척, 트로이젠이 2척, 레우카스가 10척, 암브라키아가 8척을 냈다. 테베인과 플리우스인에게는 돈을, 엘리스인에게는 돈과 함께 선체까지 청했다. 코린트 자신은 함선 30척과 중장보병 3,000명을 냈다.

코린트가 그렇게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은 코르키라인들은 스파르타와 시키온의 사절을 설득해 함께 데리고 코린트로 갔다. 그리고 코린트는 에피담노스와 아무 상관이 없으니 수비대와 정착민을 거두어 가라고 요구했다. 다만 코린트에 주장할 것이 있다면, 서로 합의해서 고른 펠로폰네소스의 도시들에 중재를 맡기고 중재자들이 어느 쪽에 귀속시키든 그 판정에 따라 식민시의 주인을 정하는 데 동의할 뜻이 있다고 했다. 델포이의 신탁에 맡기는 것도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기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전쟁에 호소한다면, 그 폭력에 밀려 자기들도 굳이 찾고 싶지 않은 곳에서 벗을 구하게 될 것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정 앞에서 오래된 인연마저 뒤로 밀릴 것이라고 했다. 코린트에서 돌아온 답은 이러했다. 함대와 이방인들을 에피담노스에서 물린다면 교섭의 여지가 있겠지만, 도시가 여전히 포위되어 있는 동안에는 중재자 앞에 나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코르키라인들은 코린트가 에피담노스에서 군대를 물리면 자기들도 물리겠다고, 아니면 판정이 나올 때까지 휴전을 맺고 양쪽 모두 현 상태를 유지해도 좋다고 되받았다.

이 제안들을 모두 못 들은 척한 코린트인들은 배에 인원을 채우고 동맹들이 모여들자 전령을 먼저 보내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함선 75척과 중장보병 2,000명을 거느리고 코르키라인들과 싸우러 에피담노스로 떠났다. 함대는 펠리카스의 아들 아리스테우스, 칼리아스의 아들 칼리크라테스, 티만테스의 아들 티마노르가 지휘했고, 육군은 에우리티모스의 아들 아르케티모스와 이사르코스의 아들 이사르키다스가 지휘했다. 아폴론 신전이 서 있는 암브라키아만 입구, 아낙토리온 땅의 악티움에 이르렀을 때 코르키라인들은 가벼운 배에 전령을 태워 보내 자기들을 치러 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배에 인원을 채우고 있었다. 모든 배가 전투에 맞게 정비되어 있었고, 낡은 배들은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선체를 띠로 둘러 묶어 두었다. 전령이 코린트인들로부터 아무런 평화의 답도 얻지 못한 채 돌아오자, 이미 인원을 채운 배들로 그들은 바다에 나가 적을 맞았다. 함선 80척이었다. 나머지 40척은 에피담노스 포위에 매여 있었다. 그들은 전열을 짜고 싸움에 들어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코린트 배 15척을 부쉈다. 같은 날 에피담노스도 포위한 자들에게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조건은 외지인은 팔아 넘기고 코린트인은 처분이 달리 정해질 때까지 전쟁 포로로 붙잡아 둔다는 것이었다.

싸움이 끝난 뒤 코르키라인들은 코르키라의 곶 레우킴메에 전승 기념물을 세웠고, 사로잡은 자들을 모두 죽였다. 다만 코린트인은 전쟁 포로로 남겨 두었다. 해전에서 패한 코린트인과 그 동맹들은 본국으로 돌아갔고, 그 일대의 바다는 모두 코르키라인의 것이 되었다. 코르키라인들은 코린트의 식민시인 레우카스로 배를 몰아 그 땅을 짓밟았고, 엘리스인의 항구 킬레네를 불태웠다. 엘리스인이 코린트에 배와 돈을 대 주었기 때문이다. 해전 뒤로 이어진 기간의 거의 전부에 걸쳐 그들은 바다의 주인이었고, 코린트의 동맹들은 코르키라 순찰선에 시달렸다. 마침내 동맹들의 고통에 움직인 코린트는 여름이 저물 무렵 배와 군대를 내보냈고, 이들은 레우카스와 그 밖의 우호 도시들을 지키려고 악티움과 테스프로티아의 키메리온 일대에 진영을 세웠다. 코르키라인들도 그에 맞서 레우킴메에 진영을 두었다.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름이 끝날 때까지 서로 마주 본 채 버티고 있었고, 어느 쪽이든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겨울이 닥쳐 있었다.

코르키라인들과의 전쟁에 격분한 코린트는 해전 뒤의 그해와 그다음 해를 온통 배를 짓는 일에, 그리고 쓸 만한 함대를 만드는 데 온 힘을 쏟는 일에 바쳤다. 노잡이는 후한 보수를 미끼로 펠로폰네소스와 그 밖의 그리스 전역에서 끌어모았다. 코린트가 그렇게 준비한다는 소식에 놀란 코르키라인들은 그리스에 단 하나의 동맹도 없는 처지였다. 아테네 동맹에도 스파르타 동맹에도 자기들을 등록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테네로 가서 동맹을 맺고 지원을 얻어 보기로 했다. 코린트 역시 그들의 뜻을 듣고는 아테네에 사절을 보냈다. 코르키라 해군에 아테네 해군이 합세하여 전쟁을 제 뜻대로 끌고 갈 전망이 막히는 것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민회가 소집되었고 맞선 두 편의 변론자가 나섰다. 코르키라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인 여러분! 지난날 이웃에게 이렇다 할 도움이나 지원을 준 일이 없어 갚아 달라 할 것도 없는 자들이, 지금 저희가 여러분 앞에 선 것처럼 도움을 청하러 나선다면, 먼저 몇 가지 조건을 채워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첫째로 그 청을 들어주는 것이 이로운 일이거나 적어도 위태롭지 않은 일임을 보여야 하고, 둘째로 그 호의를 오래 기억할 것임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분명히 세우지 못한다면, 퇴짜를 맞더라도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코르키라인은 도움을 청하는 이 자리에서 그 조건들에 대해서도 여러분을 만족시킬 답을 드릴 수 있다고 믿었기에 저희를 이리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청에 관한 저희의 정책은 여러분을 대하는 면에서는 앞뒤가 맞지 않고, 저희 이익을 놓고 보면 지금 이 위기에서 이롭지 못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다고 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지나온 역사 전체를 통틀어 이웃 누구와도 동맹을 맺으려 한 적이 없는 나라가 이제 와서 자기와 동맹을 맺어 달라고 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롭지 못하다고 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코린트와 벌이는 이번 전쟁에서 그 정책은 저희를 완전한 고립에 남겨 두었고, 남들이 고른 위험에 끌려들지 않으려고 다른 세력과의 동맹에 얽히기를 마다한 것이 한때는 지혜로운 조심으로 보였으나 이제는 어리석음이요 약함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해전에서 저희가 단독으로 코린트인을 저희 해안에서 몰아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펠로폰네소스와 그 밖의 그리스에서 더 큰 군비를 모아 두었습니다. 저희는 바깥의 도움 없이는 그들을 당해 낼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굴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뜻하는지를 보고서, 여러분과 그 밖의 모든 세력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완전한 정치적 고립이라는 오래된 원칙을 저희가 스스로 버리는 것을 너그러이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원칙은 무슨 흉한 뜻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판단을 잘못한 결과였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이 청을 받아들이신다면, 이런 청을 받은 것이 잘된 일이라고 여러분 스스로 축하하게 될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의 도움이 남을 해친 적 없이 남의 불의에 희생된 나라에게 베풀어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저희가 가장 아끼는 모든 것이 이번 싸움에 걸려 있으니, 이런 처지의 저희를 맞아 주시는 일은 호의의 증거가 되어 여러분이 저희 가슴에 쌓아 둘 감사를 언제까지나 살아 있게 할 것입니다. 셋째로, 여러분을 빼면 저희가 그리스에서 가장 큰 해군 세력입니다. 게다가 이보다 더 드물고 여러분의 적에게 이보다 더 낙담을 안기는 행운을 여러분은 떠올릴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많은 물질적·정신적 힘보다 더 값있게 여겼을 그 세력이 스스로 청하지도 않은 걸음으로 찾아와, 위험도 비용도 없이 여러분 손에 자기를 내어 놓고, 나아가 세상의 눈에 높은 평판을 얻는 길과 여러분이 돕게 될 자들의 감사와 여러분 자신의 큰 힘의 보탬까지 얻는 길을 열어 주는 일 말입니다. 온 역사를 뒤져 보아도 한 나라가 이 모든 이익을 한꺼번에 얻은 예는 많지 않고, 도움을 구하러 온 세력이 동맹을 청하는 상대에게 자기가 받을 만큼의 안전과 명예를 줄 수 있었던 예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도움이 되는 것은 전쟁이 벌어졌을 때뿐이라고 누가 말할 것입니다. 이에 저희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 전쟁이 아직 멀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크게 잘못 짚은 것이며, 스파르타가 여러분을 시샘의 눈으로 보고 전쟁을 바란다는 사실, 그리고 코린트가 그곳에서 힘을 쓴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코린트는 바로 여러분의 적이며, 여러분을 치기 전의 준비로 지금 저희를 굴복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코린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저희와 여러분이 같은 적을 두고 하나가 되어 자기가 둘을 함께 상대하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고, 또 저희 힘을 꺾거나 저희 힘을 제 것으로 삼는 두 길 가운데 하나로 여러분보다 먼저 손을 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옳습니다. 코르키라가 동맹을 제안하고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말입니다. 코린트가 저희를 겨누어 세우는 계획을 깨뜨리려 기다리지 말고, 저희 쪽에서 코린트를 겨누는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이 코린트의 식민시를 동맹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코린트가 주장한다면, 이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잘 대접받은 식민시는 모두 모국을 받들지만, 불의를 당하면 모국에서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식민단은 뒤에 남은 자들의 종이 되라고 내보낸 것이 아니라 그들과 동등한 자가 되라고 내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코린트가 저희를 해쳐 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에피담노스를 둘러싼 분쟁을 중재에 맡기자는 제안을 받고도, 그들은 공정한 심판이 아니라 전쟁으로 제 불만을 밀어붙이는 길을 골랐습니다. 같은 핏줄인 저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경고로 삼으십시오.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도, 그들의 노골적인 요구에 물러서지도 마십시오. 맞선 자에게 내주는 양보는 결국 자기를 책망하는 일로 끝납니다. 그런 양보를 더 엄격히 피할수록 안전을 얻을 가능성은 더 커집니다.

저희를 받아들이는 것이 여러분과 스파르타 사이의 조약을 깨는 일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면, 답은 이렇습니다. 저희는 중립국이며, 그 조약의 명문 조항 하나가 중립인 그리스 국가는 어느 편에든 마음대로 가담할 수 있다고 정해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코린트는 제 동맹들뿐 아니라 그 밖의 그리스에서까지 해군의 인원을 얻을 수 있고 그 가운데 적지 않은 수를 여러분의 속국이 대 주는데, 저희는 조약이 열어 둔 동맹에서도 다른 데서 얻을 수 있을 도움에서도 밀려나고, 여러분은 저희 청을 들어주면 정치적으로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받는다니, 이는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저희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저희가 여러분을 원망할 이유가 훨씬 큽니다. 위험에 놓인 데다 여러분의 적도 아닌 저희가 여러분에게 퇴짜를 맞는데, 먼저 공격한 자이며 여러분의 적인 코린트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오히려 여러분에게 딸린 땅에서 전쟁 물자를 끌어가도록 허락받는다면 말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의 영토에서 코린트가 사람을 모으는 일을 막든가, 아니면 저희에게도 옳다고 여기시는 만큼의 도움을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로 취해야 할 길은 저희를 드러내어 지지하고 돕는 것입니다. 이 길의 이로움은 저희가 연설의 처음에 밝힌 대로 여럿입니다. 그 가운데 아마도 으뜸일 하나를 말하겠습니다. 여러분과 원수인 그 세력이 저희와도 원수라는 사실, 그리고 그 세력이 배신을 벌할 힘을 충분히 갖고 있다는 사실보다 저희의 신의를 더 분명히 보증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또한 내륙 세력의 동맹을 마다하는 것과 해상 세력의 동맹을 마다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힘써야 할 일은 될 수 있다면 여러분 것 말고는 어떤 해군 세력도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안 된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가장 강한 해군의 우호를 붙잡아 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저희 말이 이롭다고 믿으면서도 조약을 깨는 일이 될까 두려워 그 믿음대로 움직이기를 꺼리는 분이 있다면, 이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한편으로 여러분이 무엇을 두려워하든 여러분의 힘은 상대에게 무섭게 보일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저희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서 어떤 안심을 얻든 여러분의 약함은 강한 적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주지 못합니다. 또 이 결정이 코르키라만의 일이 아니라 아테네의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당장 닥친 전쟁이 터질 때를 대비하려고 애타게 지평선을 살피는 이 시기에, 가담하든 멀어지든 가장 중대한 결과를 품고 있는 한 곳을 제 편으로 붙이기를 망설인다면, 여러분은 아테네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방면의 연안 항로에 편리하게 자리 잡고 있어, 그쪽에서 펠로폰네소스로 가는 해군 증원과 펠로폰네소스에서 그쪽으로 가는 증원을 함께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도 더없이 바람직한 기지입니다. 일반적인 고려와 개별적인 고려를 모두 아울러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말하겠습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이것으로 알아주십시오. 그리스에 이렇다 할 해군 세력은 셋뿐임을 기억하십시오. 아테네와 코르키라와 코린트입니다. 이 셋 가운데 둘이 하나가 되도록 내버려 두어 코린트가 저희를 제 것으로 붙잡는다면, 여러분은 코르키라와 펠로폰네소스의 연합 함대를 상대로 바다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를 받아들이신다면, 그 싸움에서 여러분을 도울 저희 배를 갖게 될 것입니다.

코르키라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들이 말을 마치자 코린트인들이 이렇게 말했다.

방금 들으신 연설에서 코르키라인들은 여러분 동맹에 받아들여지는 문제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불의를 저질렀다고, 자기들은 정당하지 못한 전쟁의 희생자라고도 말했습니다. 저희가 할 말의 나머지로 넘어가기 전에 이 두 가지를 짚어야 하겠습니다. 저희 주장의 근거를 여러분이 더 바르게 알고, 그들의 청을 물리칠 좋은 이유를 갖게 되도록 말입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어떤 동맹 제안도 마다해 온 저들의 오래된 정책은 절제의 정책이었습니다. 실은 좋은 목적이 아니라 나쁜 목적으로 택한 것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보면, 동맹이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동의를 구하는 것도 결코 바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지리적 위치는 그들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남을 해쳤을 때 그 판정은 서로 합의해 세운 재판관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내립니다. 그들은 이웃에게 배를 보내는 일이 드문데, 코르키라에 들르지 않을 수 없는 외국 배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완전한 고립이라는 그럴듯한 정책으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남의 죄에 함께 물들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저들만의 것으로 독차지하려는 것입니다. 힘으로 누를 수 있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짓밟고, 빠져나갈 수 있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속이며, 그렇게 얻은 것을 부끄러움 없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자처하는 대로 정직한 사람들이라면, 남이 자기를 붙잡을 끈이 적을수록 옳은 것을 주고 옳은 것을 받음으로써 자기 정직을 더 밝은 빛 아래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에게 한 일도 저희에게 한 일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희 식민시가 저희에게 보인 태도는 늘 멀어지는 태도였고 이제는 적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학대받으라고 내보내진 것이 아니다.’ 저희는 이렇게 되받습니다. 저희는 그들에게 모욕당하려고 식민시를 세운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가 되고 마땅한 존중을 받으려고 세웠습니다. 어쨌든 저희의 다른 식민시들은 저희를 받들고, 저희는 식민시 사람들에게 크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대다수가 저희에게 만족한다면 이들만 홀로 불만을 품을 좋은 이유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희가 그들과 싸우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니며, 뚜렷한 도발을 받지 않고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저희가 잘못한 쪽이라면, 저희 뜻에 물러서 주는 것이 그들에게 명예로운 일이고 그들의 절제를 짓밟는 것이 저희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물이 주는 교만과 방종에 취해 저희에게 거듭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에게 딸린 에피담노스가 곤경에 빠졌을 때 그들은 그 도시에 아무런 권리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구하러 나서자 그들이 그 도시를 빼앗았고, 이제 무력으로 붙들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지은 죄 가운데 이보다 깊은 것은 없었습니다.

문제를 먼저 중재에 맡기고 싶었다는 그들의 주장을 보면 이런 것이 뻔히 드러납니다. 안전하게 우세한 자리를 차지한 쪽에서 나오는 그런 제안은, 무기에 호소하기 전에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자기를 상대와 같은 자리에 놓는 자에게만 돌아가야 할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도시를 포위하기 전에 중재를 떠올린 것이 아닙니다. 저희가 그것을 순순히 참지 않으리라는 것을 마침내 깨닫고서야 중재라는 그럴듯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지른 잘못으로도 모자라, 이제 이 자리에 나타나 동맹이 아니라 죄에 함께하자고, 저희와 원수진 자들을 그럼에도 받아들이라고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던 때는 가장 굳건히 서 있을 때였습니다. 저희가 부당한 일을 당하고 그들이 위험에 놓인 이때가 아닙니다. 자기 힘을 여러분과 나눈 적이 없는 자들을 여러분의 보호에 끌어들이고, 여러분이 손댄 적 없는 죄를 지은 자들과 똑같은 만큼의 비난을 저희에게서 받게 되는 이때도 아닙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운명을 자기들과 나누자고 청하기 전에 자기들의 힘을 여러분과 나누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저희가 호소하러 온 불만이 실재한다는 것, 그리고 저희 상대가 폭력적이고 탐욕스럽다는 것은 둘 다 증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들을 공정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아직 들으셔야 합니다. 조약의 조항 하나가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않은 어떤 국가든 원하는 편에 가담할 수 있다고 정해 둔 것은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가담의 목적이 다른 세력을 해치는 데 있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지원이 필요한 사정이 이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자들, 그리고 그 가담이 자기들을 받아들일 만큼 미친 세력에게 평화 대신 전쟁을 가져다주지 않을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희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바로 그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조력자가 되면서 저희의 벗으로 남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공격에 가담한다면, 지키는 쪽이 그들에게 내리는 벌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에게는 중립을 지킬 가장 온당한 권리가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오히려 저희와 함께 그들에게 맞서야 합니다. 코린트는 적어도 여러분과 조약을 맺은 사이입니다. 코르키라와는 휴전조차 맺은 적이 없습니다. 이탈을 후원해도 된다는 원칙을 세우지 마십시오. 사모스인이 이탈했을 때 저희가 여러분에게 맞서는 표를 던졌습니까? 그들을 도울지를 두고 나머지 펠로폰네소스 세력이 반으로 갈렸던 그때에 말입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말했습니다. 어느 세력이나 제 동맹을 벌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죄를 지은 자를 모두 받아들여 돕는 것을 정책으로 삼는다면, 여러분에게 딸린 땅들도 그만큼 저희에게 넘어올 것이고, 여러분이 세운 그 원칙은 저희보다 여러분 자신을 더 무겁게 누를 것입니다.

그리스인 사이의 법이 저희에게 권리로서 요구할 자격을 주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드릴 조언도 있고 여러분의 감사에 걸 청구도 있습니다. 저희는 적이 아니어서 여러분을 해칠 위험이 없고 저희 우호는 그리 자주 오가는 사이에 이르지도 못했으니, 그 청구는 바로 이 시점에 갚아야 할 것이라고 저희는 말합니다. 페르시아 침공 전에 여러분이 아이기나인과 싸울 군선이 모자랐을 때 코린트는 배 20척을 대 주었습니다. 그 은혜와 사모스 문제에서 저희가 취한 태도, 곧 펠로폰네소스인들이 그들을 돕지 않게 만든 것이 저희였다는 사실 덕분에 여러분은 아이기나를 정복하고 사모스를 벌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한 것은, 사람이 적과 싸울 때 승리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잊기 마련인 그런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은 자기를 돕는 자를 그가 여태 원수였더라도 벗으로 여기고, 자기를 막는 자를 그가 여태 벗이었더라도 원수로 여깁니다. 실로 싸움에 온 마음을 빼앗겨 제 진짜 이익이 상하는 것도 내버려 둡니다.

이 점들을 잘 헤아리십시오. 젊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른들에게서 배우게 하시고, 저희가 여러분에게 한 대로 저희에게 하겠다고 마음먹게 하십시오. 저희 말이 옳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전쟁이 닥칠 경우에는 그것이 지혜롭지 못하다고 다투게 하지는 마십시오. 대체로 가장 곧은 길이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게다가 코르키라인들이 여러분에게 옳지 않은 일을 하도록 설득하려고 겁주는 데 써먹은 그 전쟁은 아직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끌려가 코린트의 즉각적이고 공개적인 적의를 얻을 값어치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메가라를 대한 여러분의 처사가 남긴 좋지 않은 인상을 지우려 애쓰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때맞추어 보인 친절은 사실관계가 허락하는 것보다 더 큰 힘으로 오래된 원한을 걷어 냅니다. 그리고 큰 해군 동맹이라는 전망에 홀리지 마십시오. 다른 일급 세력에게 어떤 불의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잠시의 이익처럼 보이는 것을 위해 오래 지킬 평온을 내던져 얻는 그 무엇보다 더 튼튼한 성탑입니다. 저희가 스파르타에서 세운 원칙, 곧 어느 세력이나 제 동맹을 벌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으로 이제는 저희가 이로움을 볼 차례입니다. 저희는 이제 여러분에게서 같은 것을 받기를 청하며, 저희가 표로 여러분을 이롭게 한 것을 여러분이 표로 저희를 해치는 것으로 갚는 데 항의합니다. 오히려 받은 만큼 돌려주십시오. 지금이야말로 도움을 주는 자가 가장 벗이고 맞서는 자가 가장 원수인 바로 그 위기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이 코르키라인들을 두고는, 저희를 업신여기며 동맹으로 받아들이지도 마시고 그들의 죄에 부추기는 자가 되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저희가 여러분에게 기대할 권리가 있는 대로 행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여러분 자신의 이익에도 가장 잘 맞는 길을 고르시는 것입니다.

코린트인들은 그렇게 말했다.

아테네인들은 양쪽 말을 모두 듣고 두 차례 민회를 열었다. 첫 번째 민회에서는 코린트 쪽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기색이 뚜렷했다. 두 번째 민회에서는 여론이 바뀌어 몇 가지 조건을 달아 코르키라와 동맹을 맺기로 정했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의 동맹이어야 했다. 펠로폰네소스와 맺은 조약을 깨는 일도 아니었다. 아테네가 코린트를 치는 데 코르키라와 함께 나서도록 요구받을 수는 없었다. 다만 계약을 맺은 양쪽은 자기 영토든 동맹의 영토든 침공을 당할 때 서로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닥치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느끼기 시작했고, 코르키라만 한 규모의 해군 세력이 코린트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둘이 서로 싸워 힘을 깎게 놓아둘 수 있다면, 아테네가 언젠가 코린트와 그 밖의 해군 세력들과 겨루게 될 싸움을 위한 준비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동시에 그 섬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로 가는 연안 항로에 편리하게 놓여 있는 듯했다. 이런 판단으로 아테네는 코르키라를 동맹으로 받아들였고, 코린트인들이 떠난 뒤 오래지 않아 배 10척을 도우러 보냈다. 지휘는 키몬의 아들 라케다이모니오스, 스트롬비코스의 아들 디오티모스, 에피클레스의 아들 프로테아스가 맡았다. 그들에게 내린 지시는 특정한 경우가 아니면 코린트 함대와 충돌을 피하라는 것이었다. 코린트 함대가 코르키라로 항해해 그 해안이나 그에 딸린 어느 곳에 상륙하려 한다면 힘을 다해 막으라는 것이었다. 이 지시는 조약을 깨지 않으려는 염려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코린트인들은 준비를 마치고 배 150척으로 코르키라로 향했다. 그 가운데 엘리스가 10척, 메가라가 12척, 레우카스가 10척, 암브라키아가 27척, 아낙토리온이 1척, 코린트 자신이 90척을 냈다. 파견대마다 제 사령관이 있었고, 코린트 파견대는 에우티클레스의 아들 크세노클레이데스가 동료 네 사람과 함께 지휘했다. 레우카스에서 출항한 그들은 코르키라 건너편 대륙에 닿았다. 테스프로티아 땅 키메리온 항구에 배를 세웠는데, 그 위쪽으로 바다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엘리스 지구2의 도시 에피레가 있다. 아케루시아 호는 이 도시 옆에서 바다로 물을 쏟아 낸다. 호수의 이름은 테스프로티아를 지나 호수로 떨어지는 아케론 강에서 왔다. 그곳에는 티아미스 강도 흘러 테스프로티아와 케스트리네의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이 두 강 사이에서 키메리온 곶이 솟는다. 코린트인들은 대륙의 이 자리에 배를 세우고 진영을 차렸다. 코르키라인들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배 110척에 인원을 채웠고, 메이키아데스와 아이시미데스와 에우리바토스가 지휘를 맡았으며, 시보타 섬들 가운데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아테네 배 10척도 함께 있었다. 레우킴메 곶에는 육군과 자킨토스에서 도우러 온 중장보병 1,000명을 배치했다. 본토의 코린트인들에게도 동맹이 없지 않았다. 이방인들이 큰 무리로 도우러 몰려들었는데, 대륙의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동맹이었다.

코린트인들은 준비를 마치고 사흘 분 식량을 챙겨 밤에 키메리온을 떠났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새벽에 항해하던 그들은 바다로 나와 자기들 쪽으로 오는 코르키라 함대를 보았다. 서로를 알아보자 양쪽 모두 전투 대형을 짰다. 코르키라의 오른쪽 날개에는 아테네 배들이 섰고, 나머지 전열은 코르키라 배들이 세 개 분대로 나뉘어 채웠으며 분대마다 세 사령관 가운데 한 사람이 지휘했다. 코르키라의 대형은 그러했다. 코린트의 대형은 이러했다. 오른쪽 날개에 메가라와 암브라키아의 배들이 서고 가운데에 나머지 동맹들이 차례로 섰다. 그러나 왼쪽은 코린트 해군에서 가장 잘 달리는 배들로 채워, 아테네 배들과 코르키라의 오른쪽 날개를 맞게 했다. 양쪽에서 신호가 오르자 곧 싸움이 붙었다. 양쪽 모두 갑판에 중장보병을 많이 태우고 있었고 궁수와 투창병도 많았다. 아직 옛날식의 덜 갖춰진 무장이 널리 쓰이던 때였다. 해전은 완강했으나 기술이 돋보이지는 않았다. 실은 육지의 싸움에 더 가까웠다. 서로 돌진할 때마다 배가 많고 뒤엉켜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승리의 희망은 주로 갑판의 중장보병에게 걸려 있었으니, 배가 멈춰 선 채 그들이 서서 대형을 지키며 싸웠다. 전열을 뚫는 기동은 시도되지 않았다. 요컨대 이 싸움에서는 기술보다 힘과 배짱이 더 큰 몫을 했다. 어디서나 아우성이 넘쳤고 싸움은 온통 혼란의 장면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테네 배들은 코르키라인들이 밀릴 때마다 다가와 적을 겁주는 구실을 했으나, 지휘관들은 받은 지시가 두려워 싸움에 끼어들지 못했다. 코린트의 오른쪽 날개가 가장 크게 상했다. 코르키라인들이 그것을 무너뜨리고 배 20척으로 흩어진 적을 대륙까지 쫓았으며, 적 진영까지 올라가 비어 있는 천막을 태우고 물자를 약탈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는 코린트인과 그 동맹들이 패하고 코르키라인들이 이겼다. 그러나 코린트인들 자신이 있던 왼쪽에서는 그들이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넉넉하지 못한 코르키라 병력은 추격에 나간 배 20척이 빠져 더욱 약해져 있었다. 코르키라인들이 심하게 밀리는 것을 보고 아테네인들은 마침내 더 드러내어 그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느 배에도 돌진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너지는 것이 눈에 뻔해지고 코린트인들이 밀어붙이자 결국 누구나 달려드는 때가 왔고 모든 구분이 사라졌으며, 끝내는 코린트인과 아테네인이 서로에게 손을 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패주가 시작된 뒤 코린트인들은 부수어 놓은 배의 선체를 붙들어 매어 끌고 가는 데 힘을 쓰지 않고 사람에게 눈을 돌렸다. 지나가며 사람을 베었고 포로로 잡는 데는 그리 마음을 두지 않았다. 오른쪽 날개가 패한 것을 알지 못해 제 편 사람까지 잘못 알고 죽인 일도 있었다. 양쪽 배가 많고 바다를 덮은 범위가 넓어, 한번 뒤엉킨 뒤에는 이긴 쪽과 진 쪽을 가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싸움에 나선 배의 수로 보면 이 해전은 그전의 어떤 것보다, 적어도 그리스인들 사이의 어떤 것보다 훨씬 컸다. 코린트인들은 코르키라인들을 육지까지 쫓은 뒤 난파선과 자기들 주검으로 돌아갔고, 그 대부분을 거두어 시보타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시보타는 이방인 동맹이 낸 육군의 집결지였다. 시보타는 알아 둘 것이 있는데, 테스프로티아의 인적 없는 항구다. 이 일을 마친 그들은 다시 모여 코르키라인들에게로 배를 몰았다. 코르키라인들도 쓸 만하게 남은 배를 모두 이끌고 아테네 배들과 함께 그들을 맞으러 나아갔다. 자기들 땅에 상륙을 시도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느새 시간이 늦어 공격을 알리는 파이안3까지 불렀는데, 그때 코린트인들이 갑자기 노를 거꾸로 저어 물러나기 시작했다. 아테네 배 20척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아테네인들은 코르키라인들이 패하고 자기들의 몇 척 안 되는 배로는 그들을 지킬 수 없을까 걱정해, 뒤이어 그 10척을 보강하려고 그 배들을 내보낸 것이었다. 그 걱정은 결과로 보아 옳았다. 이 배들을 코린트인들이 먼저 보았다. 아테네에서 온 배라고, 그리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뒤에 더 있을 것이라고 의심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코르키라인들은 그 배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잘 보이지 않는 방향에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린트인들이 왜 노를 거꾸로 젓는지 의아해하던 중에 몇 사람이 그 배들을 알아보고 앞쪽에 배가 보인다고 외쳤다. 그러자 코르키라인들도 물러났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코린트인들이 물러나면서 싸움은 멈춘 상태였다. 그렇게 양쪽은 서로 떨어졌고 싸움은 밤과 함께 끝났다. 코르키라인들이 레우킴메의 진영에 있을 때, 레아그로스의 아들 글라우콘과 레오고라스의 아들 안도키데스가 지휘하는 아테네의 그 배 20척이 주검과 난파선을 헤치고 들어와 진영으로 올라왔다. 그들이 눈에 들어온 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이미 밤이었으므로 코르키라인들은 적의 배일까 두려워했으나 곧 알아보았고, 배들은 닻을 내렸다.

이튿날 아테네 배 30척이 바다로 나갔고, 항해할 수 있는 코르키라 배들이 모두 따랐다. 그들은 코린트인들이 있는 시보타 항으로 가서 상대가 싸움에 응할지 보았다. 코린트인들은 육지에서 나와 넓은 바다에 전열을 짰으나 그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먼저 치고 나갈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에서 온 새 증원이 도착한 것을 보았고, 자기들은 여러 어려움에 둘러싸여 있었다. 배에 실은 포로를 지켜야 했고, 인적 없는 곳이라 배를 손볼 방도가 전혀 없었다. 그들이 더 생각한 것은 어떻게 본국으로 돌아갈 것인가였다. 벌어진 충돌로 조약이 깨졌다고 아테네인들이 여겨 자기들의 출항을 막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배 한 척에 사람을 태워 전령의 지팡이4도 없이 아테네인들에게 보내 시험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인들이여, 전쟁을 시작하고 조약을 깨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적을 벌하는 일에 나섰을 뿐인데, 당신들이 무기를 들고 우리를 막아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코르키라로, 또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어디로든 항해하는 것을 막으려는 뜻이고 조약을 깨겠다는 뜻이라면, 먼저 여기 있는 우리를 잡아 적으로 다루십시오." 그들이 한 말은 그러했다. 그 말이 들리는 거리에 있던 코르키라 군대는 모두 곧바로 저들을 잡아 죽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이렇게 답했다. "펠로폰네소스인들이여, 우리는 전쟁을 시작하는 것도 조약을 깨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 코르키라인들이 우리 동맹이고 우리는 그들을 도우러 왔습니다. 그러니 다른 어디로 항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당신들의 길을 막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코르키라나 그에 딸린 어느 곳을 치러 항해한다면, 우리는 힘을 다해 막을 것입니다."

아테네인들에게서 이 답을 받은 코린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고, 대륙 쪽 시보타에 전승 기념물을 세웠다. 한편 코르키라인들은 물살에, 그리고 밤에 일어나 사방으로 흩어 놓은 바람에 밀려 자기들 쪽으로 온 난파선과 주검을 거두었고, 승자로서 섬 쪽 시보타에 자기들의 기념물을 세웠다. 양쪽이 승리를 주장한 근거는 이러했다. 코린트인들은 밤이 오기까지 해전에서 이기고 있었다. 그래서 난파선과 주검 대부분을 거둘 수 있었고, 전쟁 포로를 1,000명 넘게 붙잡았으며 배를 70척 가까이 가라앉혔다. 코르키라인들은 배 30척쯤을 부수었고, 아테네인들이 도착한 뒤 자기들 쪽의 난파선과 주검을 거두었다. 게다가 코린트인들이 아테네 배들을 보자 노를 거꾸로 저으며 자기들 앞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았고, 아테네인들이 도착한 뒤에는 시보타에서 자기들을 치러 나오기를 거절하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양쪽 모두 승리를 주장했다.

코린트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암브라키아만 입구에 있는 아낙토리온을 손에 넣었다. 그곳은 코르키라인과 코린트인의 공동 소유였는데 내부의 배신으로 넘어갔다. 코린트인 정착민을 거기 들여놓은 뒤 그들은 본국으로 물러갔다. 코르키라인 포로 가운데 800명은 노예였으므로 팔아 넘겼고, 250명은 붙잡아 두고 크게 마음을 써서 대접했다. 그들이 돌아가면 제 나라를 코린트 쪽으로 끌어와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마침 그 대부분이 코르키라에서 지위가 매우 높은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코르키라는 코린트와의 전쟁에서 국가로서의 존립을 지켰고, 아테네 배들은 섬을 떠났다. 이것이 코린트가 아테네인들에게 품은 전쟁의 첫 원인이었다. 곧 조약이 살아 있는 동안 아테네인들이 코르키라인들과 함께 자기들에게 맞서 싸웠다는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바로 뒤에 아테네인과 펠로폰네소스인 사이에 새로운 갈등이 생겨 전쟁에 제 몫을 보탰다. 코린트는 보복할 계획을 짜고 있었고 아테네는 그 적의를 의심했다. 팔레네 지협에 사는 포티다이아인은 코린트의 식민시였으나 아테네에 조공을 바치는 동맹이었는데, 팔레네를 바라보는 성벽을 허물고 인질을 내놓고 코린트의 정무관들을 내보내며 앞으로는 매년 그들을 잇도록 코린트에서 보내는 사람들을 받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들이 페르디카스와 코린트인들의 설득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트라키아 방면의 나머지 동맹들까지 함께 반란으로 끌어들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포티다이아인에 대한 이 예방 조치는 코르키라 해전 직후에 아테네인들이 취한 것이었다. 코린트가 마침내 드러내어 적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마케도니아인의 왕이며 알렉산드로스의 아들인 페르디카스도 오래된 벗이자 동맹에서 적으로 돌아섰다. 아테네인들이 그와 맞서 한편이 된 그의 형제 필리포스와 데르다스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적이 된 것이었다. 놀란 그는 스파르타에 사람을 보내 아테네인을 펠로폰네소스인과의 전쟁에 끌어들이려 했고, 포티다이아의 반란을 일으키려고 코린트를 제 편으로 얻으려 애썼다. 또 트라키아 방면의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에게도 손을 내밀어 반란에 함께하자고 설득했다. 국경의 이 지역들을 제 동맹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들의 협력을 얻어 전쟁을 치르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알아챈 아테네인들은 도시들의 반란을 앞질러 막고자 이렇게 했다. 마침 그때 그들은 배 30척과 중장보병 1,000명을 리코메데스의 아들 아르케스트라토스와 동료 네 사람의 지휘 아래 그의 나라로 보내려던 중이었다. 함장들에게는 포티다이아인에게서 인질을 받고 성벽을 허물며 이웃 도시들의 반란을 경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는 동안 포티다이아인은 자기들 문제에서 새로운 조치를 취하지 말도록 설득해 볼 셈으로 아테네에 사절을 보냈다. 또 필요할 때 지원을 확보하려고 코린트인들과 함께 스파르타에도 갔다. 오랜 교섭에도 아테네인들에게서 만족스러운 것을 얻지 못했고, 무슨 말을 해도 마케도니아로 가게 되어 있던 배들이 자기들에게도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으며, 아테네인들이 포티다이아를 공격하면 아티카를 침공하겠다는 약속을 스파르타 정부로부터 받아 냈다. 이렇게 때가 자기들에게 유리해진 포티다이아인은 마침내 칼키디케인과 보티아이아인과 손을 잡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페르디카스는 칼키디케인을 꾀어 바닷가의 도시들을 버리고 허물게 하고, 내륙의 올린토스에 모여 살면서 그 한 도시를 튼튼한 곳으로 만들게 했다. 아울러 제 말을 따른 자들에게는 아테네인들과의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살 곳으로 볼베 호 주변 미그도니아의 자기 영토 일부를 주었다. 그들은 그에 따라 도시들을 허물고 내륙으로 옮겨 가 전쟁을 준비했다. 트라키아 지역에 이른 아테네 배 30척은 포티다이아와 나머지 도시들이 반란 중임을 알게 되었다. 지휘관들은 지금의 병력으로 페르디카스와 싸우면서 연합한 도시들까지 상대하기는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보고 본래의 목적지였던 마케도니아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에 자리를 잡고서, 내륙에서 그 나라로 들어온 필리포스와 데르다스의 형제들과 함께 전쟁을 이어 갔다.

그러는 동안 코린트인들은 포티다이아가 반란을 일으키고 아테네 배들이 마케도니아 해안에 있다는 소식에 그곳의 안전을 걱정했고, 그곳의 위험이 곧 자기들의 위험이라고 여겨 코린트에서 지원자를, 그 밖의 펠로폰네소스에서 용병을 보냈다. 모두 중장보병 1,600명과 경장병 400명이었다. 원정의 지휘는 늘 포티다이아인의 든든한 벗이었던 아데이만토스의 아들 아리스테우스가 맡았고, 코린트에서 온 사람 대부분이 지원한 것은 주로 그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들은 포티다이아가 반란을 일으킨 지 40일 만에 트라키아에 도착했다.

아테네인들도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곧 받았다. 아리스테우스와 그 증원이 오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는, 자기 시민 가운데 중장보병 2,000명과 배 40척을 칼리아데스의 아들 칼리아스와 동료 네 사람의 지휘 아래 반란한 곳들로 보냈다. 그들은 먼저 마케도니아에 이르러, 앞서 보낸 1,000명의 병력이 막 테르메를 손에 넣고 피드나를 포위한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도 포위에 합세해 한동안 피드나를 쳤다. 그 뒤 포티다이아에서 오는 요청과 아리스테우스가 그곳에 도착한 일에 떠밀려, 페르디카스와 조건을 정하고 마지못한 동맹을 맺었다. 그들은 마케도니아에서 물러나 베로이아로 갔고 거기서 스트렙사로 갔다. 스트렙사를 치려던 시도가 헛되게 끝난 뒤, 자기 시민 가운데 중장보병 3,000명과 그 밖에 여러 동맹 병력, 그리고 필리포스와 파우사니아스를 따르는 마케도니아 기병 600명을 이끌고 육로로 포티다이아를 향해 행군했다. 이들과 함께 배 70척이 해안을 따라 항해했다. 짧은 행군을 이어 사흘째에 기고노스에 이르러 진을 쳤다.

그러는 동안 포티다이아인과 아리스테우스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인은 지협에서 올린토스를 바라보는 쪽에 진을 치고 아테네인들을 기다리며, 시장은 도시 밖에 두었다. 동맹들은 아리스테우스를 보병 전체의 장군으로 뽑았고, 기병의 지휘는 페르디카스에게 주었다. 페르디카스는 아테네인의 동맹을 곧바로 버리고 포티다이아인 쪽으로 되돌아왔으며, 이올라오스를 제 장군으로 대신 세웠다. 아리스테우스의 계획은 자기 병력을 지협에 두고 아테네인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칼키디케인과 동맹들은 지협 밖에 남겨 두고, 페르디카스에게서 온 기병 200명은 올린토스에 두어 아테네인들이 자기를 치러 나아올 때 그 뒤를 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적을 두 불 사이에 놓으려 했다. 아테네 장군 칼리아스와 그 동료들은 그쪽에서 아무 움직임도 나오지 못하도록 마케도니아 기병과 동맹 몇을 올린토스로 보냈고, 아테네인들 자신은 진영을 걷고 포티다이아로 행군했다. 지협에 이르러 적이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그들도 맞서 대형을 짰고, 오래지 않아 싸움이 붙었다. 아리스테우스의 날개는 코린트인들과 그 주변의 뽑힌 병력과 함께 맞선 날개를 무너뜨리고 한참을 쫓아갔다. 그러나 포티다이아인과 펠로폰네소스인의 나머지 병력은 아테네인들에게 패해 성벽 안으로 도망쳤다. 추격에서 돌아온 아리스테우스는 나머지 병력이 패한 것을 알아보았다. 올린토스로 갈 것인가 포티다이아로 갈 것인가, 두 위험 가운데 어느 쪽을 고를지 몰라 망설이다가, 끝내 병력을 될 수 있는 대로 좁은 공간으로 모아 달려서 포티다이아로 뚫고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빗발치는 화살과 창 속을 지나 방파제를 따라 바다를 건너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그는 병력 대부분을 무사히 데리고 들어갔다. 잃은 수는 적었다. 그러는 동안 올린토스에 있던 포티다이아인의 지원 병력은 싸움이 시작되고 신호가 오르자 도우려고 조금 나아갔다. 올린토스는 약 7마일5 떨어져 있어 포티다이아가 보이는 곳이었다. 마케도니아 기병이 그것을 막으려 그들 앞에 대형을 짰다. 그러나 승리가 빠르게 아테네인들에게 돌아가고 신호가 내려지자 그들은 성벽 안으로 물러났고, 마케도니아 기병은 아테네인들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어느 쪽에도 기병이 남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뒤 아테네인들은 전승 기념물을 세우고, 휴전 아래 포티다이아인에게 그들의 주검을 돌려주었다. 포티다이아인과 그 동맹은 300명 가까이 죽었고, 아테네인은 자기 시민 150명과 장군 칼리아스를 잃었다.

지협 쪽 성벽에는 곧 공성 시설이 세워지고 아테네인들이 배치되었다. 팔레네 쪽 성벽에는 공성 시설이 세워지지 않았다. 지협에 수비대를 두면서 동시에 팔레네로 건너가 거기에도 시설을 세울 만큼 자기들이 강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병력이 갈린 것을 틈타 포티다이아인과 그 동맹이 자기들을 칠까 두려웠다. 그러는 동안 본국의 아테네인들은 팔레네에 공성 시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마 뒤 자기 시민 가운데 중장보병 1,600명을 아소피오스의 아들 포르미온의 지휘 아래 내보냈다. 팔레네에 이른 그는 아피티스에 본진을 두고, 나아가면서 그 땅을 짓밟으며 짧은 행군으로 군대를 포티다이아로 이끌었다. 들에서 그를 맞으려 나서는 자가 없었으므로 그는 팔레네 쪽 성벽에도 공성 시설을 세웠다. 그렇게 해서 포티다이아는 마침내 양쪽에서 단단히 포위되었고, 바다에서도 봉쇄에 힘을 합친 배들에 둘러싸였다. 포위가 완성된 것을 보고 아리스테우스는 펠로폰네소스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거나 그 밖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도시가 구원받을 희망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식량이 더 오래 가도록 500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바람을 기다려 배로 빠져나가라고 권했다. 남는 쪽에 자기가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 그는, 다음 방책을 취해 밖의 사정을 될 수 있는 대로 좋게 해 두려고 아테네의 경비선을 피해 빠져나갔다. 칼키디케인 사이에 머물며 그는 전쟁을 이어 갔다. 특히 세르밀리아인의 도시 근처에 매복을 두어 그들 다수를 베었고, 펠로폰네소스와 연락하며 도움을 가져올 방법을 꾸미려 애썼다. 그러는 동안 포티다이아 포위를 마친 포르미온은 그 1,600명을 칼키디케와 보티케를 짓밟는 데 썼다. 도시 몇 곳도 그의 손에 넘어갔다.

주

  1. 1. 드라크메 — 그리스의 은화 단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숙련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 대략 1드라크메였다고 전한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2. 2. 엘리스 지구 — 펠로폰네소스의 도시국가 엘리스와는 다른 곳으로, 테스프로티아 안의 한 지구를 가리킨다.

  3. 3. 파이안 — 신에게 바치는 노래. 그리스인은 싸움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4. 4. 전령의 지팡이 — 전령임을 알리는 표지. 이것을 든 사람은 해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지팡이 없이 보냈다는 것은 정식 사절이 아니라는 뜻이며, 따라서 신변 보장을 요구할 수 없었다.

  5. 5. 약 7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60스타디온을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