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제VI권 제XVIII장) 전쟁 제17년 · 시칠리아 원정 · 헤르메스상 훼손 사건 · 원정대의 출항
같은 해 겨울 아테네인은 라케스와 에우리메돈이 이끌었던 것보다 큰 군세를 갖추어 다시 시칠리아로 건너가, 될 수 있으면 섬 전체를 정복하기로 결의했다. 그들 대부분은 그 섬이 얼마나 크고 그리스계와 이민족을 합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거기 사는지 몰랐으며, 자기들이 펠로폰네소스인을 상대로 하는 전쟁에 크게 못지않은 전쟁을 떠맡는다는 것도 몰랐다. 상선으로 시칠리아를 한 바퀴 도는 데 여드레가 채 못 되게 걸리는데, 그만큼 큰 섬이면서도 겨우 2마일1의 바다가 가로막아 뭍에 이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 섬에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고, 그곳을 차지한 종족은 이러하다. 이 땅 어느 지역에 대해서든 가장 먼저 살았다고 전해지는 자들은 키클롭스와 라이스트리고네스인데, 나는 그들이 어느 종족이었는지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도 말할 수 없으므로, 시인들이 그들을 두고 한 말과 세상에 두루 알려진 이야기에 독자를 맡겨 둔다. 그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시카니아인으로 보이는데, 그들 자신은 누구보다 먼저 이 땅에 있었던 원주민이라 내세우지만 사실이 보여 주는 바로는 이베리아의 시카노스 강가에서 리구리아인에게 쫓겨난 이베리아인이었다. 전에 트리나크리아라 불리던 이 섬이 시카니아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그들에게서 비롯했고,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시칠리아의 서쪽에 산다. 일리온이 무너졌을 때 트로이인 얼마가 아카이아인의 손을 벗어나 배를 타고 시칠리아로 와서 시카니아인과 이웃해 자리를 잡고 엘리미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 불렸는데, 그들의 도시가 에릭스와 에게스타다.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풍에 밀려 먼저 리비아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시칠리아에 닿은 포키스인 얼마도 그들과 함께 살았다. 시켈인은 본디 살던 이탈리아에서 오피키인을 피해 시칠리아로 건너왔는데, 전해 오는 말로도 그렇고 그럴듯해 보이기로도 뗏목을 타고 해협 아래로 바람이 부는 때를 기다렸다가 건넜다고 하며, 어쩌면 달리 배를 타고 건너왔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에는 여전히 시켈인이 있고, 그 땅이 이탈리아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렇게 불린 시켈인의 왕 이탈로스에게서다. 이들은 큰 무리를 이루어 시칠리아로 건너가 시카니아인을 싸움에서 이기고 섬의 남쪽과 서쪽으로 밀어냈으며, 그리하여 섬은 시카니아 대신 시칠리아라 불리게 되었다. 건너온 뒤로 그들은 그리스인이 시칠리아에 오기까지 300년 가까이 그 땅에서 가장 기름진 곳을 누리고 살았고, 지금도 섬의 가운데와 북쪽을 차지하고 있다. 시칠리아 둘레에는 페니키아인도 살고 있었는데, 시켈인과 장사를 하려고 바닷가의 곶들과 거기 딸린 작은 섬들을 차지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이 바다를 건너 상당한 수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페니키아인은 거점 대부분을 버리고 한데 모여 엘리미인 가까이 있는 모티에와 솔로에이스와 파노르모스에 자리를 잡았으니, 엘리미인과 맺은 동맹을 믿은 까닭도 있고 그곳이 카르타고와 시칠리아를 오가는 뱃길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인 까닭도 있었다.
시칠리아의 이민족은 이러했고, 그들이 자리 잡은 내력은 내가 말한 대로다. 그리스인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것은 에우보이아에서 건너온 칼키스인으로, 투클레스를 건설자로 삼아 왔다. 그들은 낙소스를 세우고 아폴론 아르케게테스2의 제단을 쌓았는데, 그 제단은 지금 성 밖에 서 있고 경기에 나가는 사절들은 시칠리아를 떠나기 전에 거기서 제물을 바친다. 시라쿠사는 그 이듬해에 코린트에서 온 헤라클레이다이3 가운데 한 사람인 아르키아스가 세웠는데, 그는 먼저 시켈인을 섬에서 몰아냈으며 지금 안쪽 도시가 서 있는 그 섬은 이제 물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바깥 시가지도 성벽 안에 들어와 사람이 많아졌다. 그사이 투클레스와 칼키스인은 시라쿠사가 세워진 지 5년째에 낙소스를 떠나 무력으로 시켈인을 몰아내고 레온티노이를 세웠으며 뒤이어 카타나를 세웠는데, 카타나의 건설자는 카타나인 자신들이 에우아르코스로 정했다.
그 무렵 라미스가 메가라에서 온 이주민을 이끌고 시칠리아에 닿아 판타키아스강 너머에 트로틸로스라는 곳을 세웠다가 그곳을 떠나 잠시 레온티노이에서 칼키스인과 어울려 살았으나, 그들에게 쫓겨난 뒤 탑소스를 세웠다. 그가 죽은 뒤 그를 따르던 자들은 탑소스에서 쫓겨나 히블라이아 메가라라는 곳을 세웠는데, 시켈인의 왕 히블론이 그 땅을 내주며 그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245년을 살았고 그 뒤 시라쿠사의 참주 겔론에게 도시와 땅에서 내쫓겼다. 다만 쫓겨나기 전, 그 땅에 자리 잡은 지 100년째 되던 해에 그들은 파밀로스를 내보내 셀리누스를 세웠으니, 파밀로스는 그들의 모국인 메가라에서 건너와 그 건설에 함께한 사람이었다. 겔라는 로도스에서 온 안티페모스와 크레타에서 온 엔티모스가 함께 이주민을 이끌고 가서 시라쿠사가 세워진 지 45년째에 세웠다. 도시의 이름은 겔라스 강에서 왔고, 지금 성채가 서 있는 자리이자 가장 먼저 성벽을 두른 곳은 린디오이라 불렸다. 그들이 받아들인 제도는 도리스식이었다. 겔라가 세워진 지 108년쯤 뒤에 겔라인은 같은 이름의 강에서 이름을 딴 아크라가스(아그리겐툼)를 세우고 아리스토노오스와 피스틸로스를 건설자로 삼았으며, 제 도시의 제도를 그 이주지에 그대로 주었다. 장클레는 본디 오피키인의 땅에 있는 칼키스인의 도시 쿠마이에서 온 해적들이 세웠으나, 뒤에 칼키스와 에우보이아의 다른 곳에서 많은 사람이 건너와 그곳에 사람이 차게 했으며 건설자는 쿠마이 출신의 페리에레스와 칼키스 출신의 크라타이메네스였다. 처음에 장클레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시켈인인데, 그 땅이 낫처럼 생겼고 시켈인은 낫을 장클론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에 메디아인을 피해 시칠리아에 내린 사모스인과 다른 이오니아인이 처음의 정착민을 몰아냈고, 오래지 않아 레기온의 참주 아낙실라스가 이번에는 사모스인을 몰아낸 다음 여러 곳 사람을 섞어 그 도시에 살게 하고는 제 옛 고향을 따 이름을 메시나로 바꾸었다.
히메라는 장클레에서 나간 에우클레이데스와 시모스와 사콘이 세웠고, 그 이주지로 간 사람은 대부분 칼키스인이었으나 내분에서 져 시라쿠사에서 쫓겨난 밀레티다이라 불리는 자들도 합류했다. 말은 칼키스 말과 도리스 말이 섞인 것이었으나 자리 잡은 제도는 칼키스의 것이었다. 아크라이와 카스메나이는 시라쿠사인이 세웠는데, 아크라이는 시라쿠사가 선 지 70년 뒤에, 카스메나이는 아크라이보다 20년쯤 뒤에 세웠다. 카마리나도 처음에는 시라쿠사인이 세웠으니 시라쿠사가 세워진 지 135년이 다 되어 가는 때였고 건설자는 닥손과 메네콜로스였다. 그러나 카마리나인이 반란을 일으킨 탓에 시라쿠사인에게 무력으로 쫓겨난 뒤, 얼마 지나 겔라의 참주 히포크라테스가 시라쿠사인 포로의 몸값으로 그 땅을 받아 카마리나에 다시 사람을 들이고 스스로 건설자가 되었다. 끝으로 카마리나는 겔론에게 다시 비워졌다가 겔라인의 손에 세 번째로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시칠리아에 사는 그리스계와 이민족 종족의 목록은 이러하고, 아테네인이 이제 쳐들어가기로 마음먹은 섬의 크기도 이러했다. 그들은 섬에 있는 동족과 그 밖의 동맹을 돕는다는 그럴듯한 명분도 내세웠지만 실은 섬 전체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을 부추긴 것은 아테네로 와서 어느 때보다 다급하게 도움을 청한 에게스타의 사절이었다. 에게스타인은 혼인 문제와 다툼이 된 땅 때문에 이웃인 셀리누스인과 전쟁에 들어갔는데, 셀리누스인이 시라쿠사인을 동맹으로 끌어들여 물과 뭍 양쪽에서 에게스타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제 에게스타인은 지난번 레온티노이 전쟁 때 라케스가 있던 시절에 맺은 동맹을 아테네인에게 일깨우며 함대를 보내 도와 달라고 청했고, 여러 가지를 들어 말하는 가운데 가장 힘주어 내세운 것은 이런 논리였다. 시라쿠사인이 레온티노이의 사람들을 흩어 버린 일로 벌을 받지 않은 채 시칠리아에 남은 아테네의 동맹들을 무너뜨리고 섬 전체의 힘을 손에 넣게 둔다면, 그들이 언젠가 큰 군세를 이끌고 와서 도리스인으로서 도리스 형제들을 돕고 이주민으로서 자기들을 내보낸 펠로폰네소스인을 도와 아테네의 제국을 허무는 데 힘을 보탤 위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테네인은 아직 남은 동맹과 힘을 합해 시라쿠사인에게 맞서는 편이 좋을 것이며, 더구나 에게스타인 자신들이 전쟁에 넉넉할 만큼 돈을 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아테네인은 에게스타인과 그들을 편드는 자들이 민회에서 이 말을 거듭 되풀이하는 것을 듣고, 먼저 에게스타에 사절을 보내 그들이 말하는 돈이 정말로 국고와 신전에 있는지 보게 하고 아울러 셀리누스인과 벌이는 전쟁이 어떤 형편인지 알아보게 하기로 표결했다.
그리하여 아테네의 사절이 시칠리아로 떠났다. 같은 해 겨울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은 코린트인만 빼고 아르고스 땅으로 쳐들어가 얼마 안 되는 지역을 짓밟고 멍에 진 소 몇 마리와 곡식을 얼마쯤 끌어갔다. 또한 그들은 아르고스에서 쫓겨난 자들을 오르네아이에 자리 잡게 하고 본대에서 병사를 얼마 떼어 남겨 두었으며, 오르네아이인과 아르고스인이 서로의 땅을 해치지 않기로 하는 한동안의 휴전을 맺은 뒤 군대를 이끌고 돌아갔다. 오래지 않아 아테네인이 함선 30척과 중장보병 600명을 데리고 왔고 아르고스인이 전군을 이끌고 합류해 함께 나아가 오르네아이에 있는 자들을 하루 동안 에워쌌으나, 포위한 쪽이 얼마쯤 떨어진 곳에 진을 친 사이에 수비대는 밤을 타 빠져나갔다. 이튿날 그것을 알아챈 아르고스인은 오르네아이를 허물어 땅과 같이 만들고 돌아갔으며, 그 뒤 아테네인도 함선을 타고 본국으로 갔다. 그사이 아테네인은 제 기병 얼마와 아테네에 와 있던 마케도니아 망명자들을 배에 태워 마케도니아 국경의 메토네로 보내 페르디카스의 땅을 노략했다. 이에 스파르타인은 열흘마다 갱신하는 휴전을 아테네와 맺고 있던 트라키아의 칼키디케인에게 사람을 보내 페르디카스 편에 서서 전쟁에 나서라고 재촉했으나 그들은 따르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이 끝났고, 투키디데스가 그 역사를 기록한 이 전쟁의 열여섯째 해도 끝났다.
이듬해 여름철에 드는 이른 봄에 아테네의 사절이 시칠리아에서 돌아왔고 에게스타인도 함께 와서 주조하지 않은 은 60탈란톤4을 가져왔는데, 보내 달라고 청할 함선 60척의 한 달 치 급료였다. 아테네인은 민회를 열어 에게스타인과 제 사절에게서 형편 전반에 대한, 특히 신전과 국고에 넉넉히 있다는 그 돈에 대한 보고를 들었으니, 듣기에 솔깃한 만큼이나 사실과 다른 보고였다. 그러고는 클레이니아스의 아들 알키비아데스와 니케라토스의 아들 니키아스와 크세노파네스의 아들 라마코스를 지휘관으로 삼아 전권을 주고 함선 60척을 시칠리아로 보내기로 표결했으며, 세 사람이 할 일은 셀리누스인에 맞서 에게스타인을 돕고 전쟁에서 유리한 것을 얻으면 레온티노이를 되세우며 시칠리아의 다른 모든 일은 아테네의 이익에 가장 낫다고 여겨지는 대로 처리하는 것이었다. 닷새 뒤에는 두 번째 민회가 열려 함선을 가장 빨리 갖출 방도를 의논하고 원정에 필요하다고 지휘관들이 청하는 그 밖의 것을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그런데 제 뜻과 달리 지휘관으로 뽑힌 니키아스는 나라가 잘못 생각하고 있으며 가볍고 그럴듯한 구실을 붙들고 이루기 어려운 큰일인 시칠리아 전체의 정복을 넘보고 있다고 여겼으므로, 아테네인을 그 일에서 돌려세우기를 바라며 앞으로 나와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이 민회는 시칠리아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의논하려고 소집된 것입니다만, 저는 그래도 우리가 살펴야 할 물음이 하나 남아 있다고 봅니다. 과연 함선을 내보내는 것이 나은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만한 무게의 일을 이토록 가볍게 다루어서도 안 되고,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전쟁을 바깥 사람들의 말에 넘어가 떠맡아서도 안 됩니다. 물론 저 한 사람으로 보면 이 길은 제게 명예를 가져다주며, 저는 제 한 몸을 두고 남들보다 더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제 몸과 재산을 얼마쯤 돌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못한 시민이 된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야말로 제 이익을 위해서라도 남보다 더 나라가 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명예를 얻자고 제 생각과 어긋나게 말한 적이 없으므로 이제 와서 그리하지 않고 가장 옳다고 여기는 바를 말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기질을 놓고 볼 때, 이미 가진 것을 지키고 그 자체로 미덥지 못하며 얻을지 못 얻을지도 모를 이익을 위해 지금 여러분의 것인 바를 걸지 말라고 제가 권해 봐야 그 말은 힘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의 열의가 때에 맞지 않고 그 야심이 이루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이는 데서 그치겠습니다.
그러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곳에 적을 여럿 남겨 둔 채 저 먼 곳으로 가서 적을 더 만들어 데려오려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여러분이 맺은 조약을 믿을 만하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 조약은 여러분이 가만히 있는 동안에만 이름뿐인 것으로 이어질 터인데, 이곳과 스파르타의 몇몇 사람이 한 짓 때문에 이미 이름뿐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 곳에서라도 우리가 크게 무너지는 날이면 그 조약은 적들이 우리를 치는 것을 한순간도 늦추지 못할 것입니다. 첫째로 그 협정은 재앙에 떠밀려 그들이 받아들인 것이라 우리보다 그들에게 덜 명예로웠고, 둘째로 그 협정 자체에 아직 다투고 있는 대목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장 힘센 나라 가운데 더러는 그 합의를 아예 받아들인 적이 없습니다. 그 가운데 더러는 우리와 드러내 놓고 싸우고 있고, 더러는 스파르타인이 아직 움직이지 않는 까닭에 열흘마다 갱신하는 휴전에 매여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서둘러 그리하려는 대로 우리 힘이 갈라진 것을 그들이 보게 된다면, 예로부터 어느 동맹보다 귀하게 여겼을 시칠리아 그리스인과 손잡고 우리를 매섭게 칠 것이 뻔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이런 것들을 헤아려야 하고, 이토록 아슬아슬한 자리에 놓인 나라를 걸고 모험할 생각이나 이미 가진 제국도 굳히지 못한 채 다른 제국을 움켜쥘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실상 트라키아의 칼키디케인은 이 여러 해 동안 우리에게 반란한 채 아직 굴복하지 않았고, 대륙에 있는 다른 자들도 우리에게 미덥지 못한 복종을 바칠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동맹인 에게스타인이 해를 입었다 하여 우리는 달려가 도우려 하면서, 그토록 오래 우리에게 해를 입혀 온 반란자들은 아직 벌을 기다리는 채로 두고 있습니다.
게다가 뒤엣것들은 한번 굴복시키면 눌러 둘 수 있지만, 시칠리아인은 정복한다 해도 너무 멀고 너무 많아 어려움 없이 다스릴 수 없습니다. 정복해도 눌러 둘 수 없는 자들을 치러 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실패하면 우리는 그 일을 벌이기 전과는 아주 다른 처지에 놓일 것입니다. 또 시칠리아 그리스인을 지금 그대로 놓고 보면, 에게스타인이 즐겨 내세우는 겁주기대로 시라쿠사인이 그들을 정복한다 해도 제 생각에는 그들이 지금보다 우리에게 덜 위험해질 것입니다. 지금은 그들이 스파르타를 아끼는 마음에서 저마다 따로 이리로 건너올 수 있겠지만, 그리되고 나면 한 제국이 다른 제국을 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입니다. 펠로폰네소스인과 손잡고 우리 제국을 무너뜨린 다음에는 바로 그 손이 그와 똑같이 제 제국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칠리아의 그리스인이 우리를 가장 두려워할 때는 우리가 아예 그리로 가지 않을 때이고, 그다음은 우리가 힘을 한번 보인 뒤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왔을 때입니다. 가장 멀리 있어 그 이름을 시험해 볼 길이 가장 적은 것이 우러름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아는 바이며, 작은 실패에도 그들은 곧 우리를 낮추어 보기 시작할 것이고 이곳의 우리 적들과 손잡고 우리에게 맞설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스파르타인과 그 동맹을 두고 이것을 겪어 보셨습니다. 처음에 두려워했던 것에 견주어 뜻밖의 성공을 거두자 여러분은 갑자기 그들을 업신여기게 되었고, 그 마음이 여러분을 더 부추겨 시칠리아 정복까지 넘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의 불운에 우쭐할 것이 아니라 마음 놓기 전에 그들의 기를 꺾을 일을 생각해야 하며, 스파르타인이 그 치욕으로 품게 된 단 하나의 생각은 지금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우리를 무너뜨려 제 불명예를 씻자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용의 명성이야말로 그들이 가장 오래, 가장 힘써 닦아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슬기롭다면 우리의 싸움은 시칠리아에 있는 이민족 에게스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파르타의 과두정이 꾸미는 일에 어떻게 하면 가장 든든히 맞설 것인가가 되어야 합니다.
또 우리는 큰 역병과 전쟁에서 이제 겨우 한숨을 돌려 재산과 몸에 적지 않은 이로움을 얻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 힘은 저 망명자들을 위해 쓸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옳습니다. 저들은 그럴듯하게 거짓말하는 것이 제 이익이고, 스스로는 말만 할 뿐 위험은 남에게 떠넘기며, 일이 되면 마땅한 고마움을 보이지 않고 일이 그르치면 제 벗들까지 끌고 넘어질 자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지휘관으로 뽑힌 것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오직 제 잇속을 위해 이 원정을 하라고 여러분을 부추기는 자가 있다면, 더구나 아직 지휘하기에는 너무 젊은 자라면, 제 말 떼로 우러름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그 무거운 비용 탓에 이 자리에서 무엇인가 얻기를 바라는 자라면, 그런 자가 나라를 걸고 제 개인의 화려함을 지탱하도록 두지 마십시오. 그런 자들은 제 것을 탕진하면서 나라의 재산까지 축낸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중대한 일이지 젊은 사람이 결정하거나 서둘러 손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바로 그 사람이 불러 모아 지금 그 곁에 앉아 있는 자들을 보면 저는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나이 든 분들을 부릅니다. 그런 자가 옆에 앉아 있는 분이라면 전쟁에 손을 들지 않으면 겁쟁이로 보일까 두려워 부끄러움에 밀려 주저앉지 마시고, 바라는 마음으로 얻어지는 성공은 드물고 내다보는 눈으로 얻어지는 성공이 훨씬 많다는 것을 기억하시어, 정복의 미친 꿈일랑 저들에게 맡겨 두고 제 나라가 그 역사에서 가장 큰 위험에 놓인 지금 나라를 참으로 아끼는 사람으로서 반대편에 손을 드십시오. 시칠리아 그리스인은 우리와 저들 사이에 지금 있는 경계, 곧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그 경계 안에, 연안을 따라가는 뱃길로는 이오니아 해요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길로는 시칠리아 해인 그 경계 안에 그대로 두어 제 것을 누리고 제 다툼을 제 손으로 풀게 하자는 데에 손을 드십시오. 에게스타인에게는 아테네인과 의논도 없이 저들이 시작한 전쟁이니 셀리누스인과 저들끼리 끝내라고 이르자는 데에, 그리고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곤경에 처하면 우리가 도와야 하면서 정작 우리가 곤경에 처하면 우리를 도울 수 없는 자들과 동맹을 맺지 말자는 데에 손을 드십시오.
그리고 프리타니스5께서는, 나라를 돌보는 것이 제 소임이라 여기시고 스스로 좋은 시민임을 보이고자 하신다면, 이 문제를 표결에 부쳐 아테네인의 뜻을 한 번 더 물으십시오. 같은 문제를 다시 올리기가 두려우시다면,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함께하는 마당에 법을 어겼다는 허물이 붙을 리 없다는 것을, 당신이 길을 잘못 든 나라의 의사가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관직에 있는 사람의 덕이란 한마디로 제 나라에 할 수 있는 만큼 이로움을 주는 것이며 적어도 피할 수 있는 해는 끼치지 않는 것임을 헤아리십시오.
니키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나온 아테네인은 대부분 원정에 찬성하고 이미 표결한 것을 뒤집지 말자고 말했으나 반대편에서 말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원정을 누구보다 뜨겁게 편든 것은 클레이니아스의 아들 알키비아데스였으니, 그는 정적으로서도 그렇고 니키아스가 연설에서 자기를 공격한 일 때문에도 그를 꺾고자 했으며, 그 밖에도 시칠리아와 카르타고를 무릎 꿇리고 그 성공으로 제 재산과 명성을 불리기를 바라며 지휘권을 몹시 탐내고 있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그가 차지한 자리가 그로 하여금 말을 기르는 일에서나 그 밖의 씀씀이에서나 제 살림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제 취향을 좇게 했는데, 이것이 뒷날 아테네라는 나라가 무너지는 데 적지 않게 작용했다. 그의 생활과 버릇이 보이는 방종이 워낙 크고 그가 손대는 일마다 드러내는 야심 또한 워낙 커서 사람들 대다수는 그를 참주 자리를 노리는 자로 보고 그의 적이 되었으며, 나라의 일로 보면 그가 전쟁을 이끈 솜씨는 더 바랄 것이 없었으나 사람됨으로 보면 그의 버릇이 누구에게나 거슬렸으므로 사람들은 일을 다른 자들의 손에 맡겼고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도시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아무튼 그는 이때 앞으로 나와 아테네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테네인 여러분, 저는 남들보다 지휘를 맡을 자격이 있습니다. 니키아스가 저를 공격했으니 이 말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아울러 저는 제가 그 자리에 걸맞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헐뜯는 그 일들은 제 조상과 제게 이름을 가져다주고 더하여 나라에는 이익을 가져다줍니다. 그리스인은 우리 도시가 전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리라 여기고 있다가, 제가 올림피아 경기에서 이 도시를 대표하며 보인 그 화려함 때문에 도시가 실제보다도 더 크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전차 7대를 내보냈으니 여태 어느 개인도 낸 적 없는 수였고, 1등을 차지했으며 2등과 4등도 했고, 그 밖의 모든 것도 제 승리에 걸맞은 격을 갖추도록 했습니다. 관습은 그런 과시를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그런 일을 벌이고 나면 힘이 있다는 인상이 남기 마련입니다. 또 제가 이 나라 안에서 합창대를 대거나 그 밖의 일로 보인 화려함은 같은 시민들에게는 당연히 시샘을 사지만, 바깥 사람들의 눈에는 앞엣것과 마찬가지로 힘의 기색으로 비칩니다. 제 돈을 들여 저 자신만이 아니라 제 도시까지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은 쓸데없는 어리석음이 아니며, 제 자리를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이 남들과 똑같이 취급받기를 마다한다고 해서 그것이 부당한 일도 아닙니다. 형편이 나쁜 사람은 제 불운을 온전히 혼자 짊어지는 법이고, 역경에 처한 이에게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듯이 같은 이치로 사람은 번영이 부리는 오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싫다면 먼저 모두를 똑같이 대접한 다음에 자기도 그렇게 대접받기를 요구할 일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이런 사람들과 무엇으로든 두드러진 자리에 오른 모든 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웃들 사이에서 특히 제 또래들 사이에서 미움을 살지라도, 뒷사람들에게는 아무 근거가 없더라도 저와 이어졌다고 내세우고 싶은 마음을 남기며, 제가 속했던 나라에서 낯선 자나 악한 자가 아니라 동포이자 영웅으로 자랑거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이러하며, 사사로운 자리에서 그 때문에 아무리 헐뜯긴다 한들 물음은 하나입니다. 나라의 일을 저보다 잘 다루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펠로폰네소스에서 가장 힘센 나라들을 하나로 묶어 여러분에게 큰 위험도 큰 비용도 지우지 않고 스파르타인이 만티네이아에서 하루의 승패에 모든 것을 걸게 만들었으며, 그들은 그 싸움에서 이기고도 그 뒤로 자신감을 온전히 되찾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제 젊음과 이른바 터무니없는 어리석음은 펠로폰네소스인의 힘을 다루기에 알맞은 말을 찾아냈고 그 열의로 그들의 믿음을 얻어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제 젊음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제가 아직 그 한창때에 있고 니키아스에게는 운이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의 쓰임을 끝까지 누리십시오. 또 큰 세력을 치러 가는 것이라 하여 시칠리아로 떠나기로 한 결의를 거두지도 마십시오. 시칠리아의 도시들에는 잡다한 무리가 뒤섞여 살고 있어 제도를 쉽게 바꾸고 새것을 들여 갈아 치웁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나라를 아끼는 마음이 없어 제 몸을 지킬 무기도 갖추지 않았고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지도 않았으며, 저마다 듣기 좋은 말로든 파당 싸움으로든 나라의 돈에서 무엇인가 얻어 낼 수 있다고 여기고 일이 그르치면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된다고 여기며 그에 맞추어 채비를 해 둡니다. 이런 무리에게서 의논의 한마음이나 행동의 발맞춤을 기대할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럴듯한 제안을 받으면 하나씩 우리 쪽으로 넘어올 것이며, 들리는 말대로 그들이 내분에 찢겨 있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더구나 시칠리아 그리스인에게는 그들이 뽐내는 만큼 중장보병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인 전체가 저마다 제 나라를 헤아려 잡던 수만큼 많지 않았던 것과 같아서, 그리스는 제 수를 크게 부풀려 잡았고 이 전쟁 내내 넉넉한 중장보병을 가져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들은 모든 것으로 보아 시칠리아의 나라들은 제가 말한 대로일 것이며, 저는 우리에게 있는 이점을 다 들지도 않았습니다. 시라쿠사인을 미워하는 마음에서 우리와 함께 그들을 치러 나설 이민족이 많아 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이 바르게 헤아리신다면 본국 쪽의 세력들도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우리가 배를 타고 떠나면 뒤에 남겨 두게 된다는 바로 그 적들에다 메디아인까지 적으로 두고도 오직 바다에서 앞섰다는 것 하나에 기대어 제국을 얻어 냈습니다. 펠로폰네소스인이 우리를 상대로 품은 희망이 지금처럼 적었던 적은 없으며, 그들이 아무리 자신만만하다 한들, 또 우리가 집에 머물러 있어도 우리 땅에 쳐들어올 만큼은 강하다 한들, 우리가 그들과 맞설 만한 함대를 뒤에 남겨 두는 한 그들의 함대로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형편이 이러한데 우리가 물러서 있을 무슨 까닭을 스스로에게 댈 수 있으며, 시칠리아의 동맹들에게 돕지 않는 무슨 핑계를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우리와 맹약을 맺은 이들이니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하며, 그들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는 말로 발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들을 동맹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들이 그리스에서 우리를 돕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시칠리아에서 우리 적들을 괴롭혀 그 적들이 이리로 건너와 우리를 치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제국은 이렇게 얻어졌습니다. 우리도 그랬고 제국을 가졌던 다른 모든 이도 그랬듯이, 이민족이든 그리스인이든 도움을 청하는 이라면 누구든 늘 나설 준비가 되어 있음으로써 얻어진 것입니다. 모두가 가만히 있거나 도울 상대를 가려 고른다면 우리는 새로 얻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고 이미 얻은 것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보다 강한 자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서 만족하지 않고, 그 공격이 시작되지 못하게 하려고 먼저 치는 일이 많습니다. 또 우리는 우리 제국이 어디서 멈출지 그 지점을 정해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지키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넓힐 길을 꾀해야 하는 자리에 이르렀으니, 남을 다스리기를 그만두면 우리 자신이 다스림을 받을 위험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가만히 있는 것을 남들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버릇을 그들의 것처럼 바꿀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바깥에서 벌이는 이 모험이 안에서 우리 힘을 키우리라는 것을 믿으시고 이 원정에 나섭시다. 그리하여 시칠리아로 배를 띄워 지금 누리는 화약을 우리가 얼마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그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펠로폰네소스인의 자존심을 꺾읍시다. 아울러 우리는 시칠리아의 그리스인이 우리 편에 붙음으로써 아주 쉽게 그리스 전체의 주인이 되거나, 적어도 시라쿠사인을 무너뜨려 우리와 우리 동맹에게 적지 않은 이익을 안기게 될 것입니다. 일이 잘되면 머무르고 그러지 않으면 돌아올 수 있는 여지는 우리 함대가 지켜 줄 것이니, 시칠리아 그리스인을 다 합친 것보다 우리가 바다에서 우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니키아스가 내세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책에도, 그가 젊은 사람을 나이 든 사람과 갈라 세우는 데에도 뜻을 꺾이지 마시고, 우리 아버지들이 늙은이와 젊은이가 함께 의논을 모아 우리 일을 지금의 높이까지 끌어올린 그 좋은 옛 방식대로 그것을 더 밀고 나가도록 애쓰십시오. 젊음도 늙음도 서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가벼움과 신중함과 깊이 헤아리는 판단은 하나로 묶일 때 가장 강하다는 것을, 그리고 도시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로 가라앉으면 스스로 닳아 없어지고 온갖 일에 대한 솜씨도 무디어지는 반면 싸움을 새로 치를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얻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제 몸을 지키는 데 더 익숙해진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한마디로 제 믿음은 이러합니다. 본디 가만히 있지 못하는 도시가 갑자기 그런 방책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빨리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길은 없으며, 살아가는 가장 안전한 법도는 좋든 나쁘든 제 기질과 제 제도를 제 것으로 받아들이고 될 수 있는 대로 그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테네인은 그의 말과, 앞으로 나와 맹세를 일깨우며 도움을 간청한 에게스타인과 레온티노이에서 쫓겨난 자들 얼마의 말을 듣고 전보다 더 원정을 바라게 되었다. 니키아스는 이제 전과 같은 논리로는 그들을 말려 보아야 소용이 없음을 알아차렸으나 군비를 엄청나게 잡아 보이면 그 결의를 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두 번째로 앞에 나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테네인 여러분, 여러분이 이 원정에 단단히 마음을 굳히신 것을 봅니다. 그러니 모든 일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빌며 지금 이 자리에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들은 모든 것으로 보아 우리가 치러 가는 도시들은 크고, 서로에게 매여 있지도 않으며, 억지로 진 종살이에서 더 나은 처지로 옮겨 가기를 반길 만큼 변화를 바라지도 않고, 자유를 내주고 우리의 지배를 받아들일 낌새는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스인의 도시만 치더라도 섬 하나에 있기에는 그 수가 매우 많습니다. 레온티노이와 이어져 있어 우리 편에 서리라 보는 낙소스와 카타나 말고도 우리 나라와 똑같이 모든 면에서 무장을 갖춘 도시가 일곱이 더 있으며, 그 가운데 특히 셀리누스와 시라쿠사가 이번 원정의 주된 목표입니다. 이 도시들에는 중장보병과 궁수와 투창병이 가득하고 갤리선이 넉넉하며 그 배를 채울 사람도 많습니다. 돈도 있어 얼마는 개인의 손에 있고 얼마는 셀리누스의 신전에 있으며, 시라쿠사에는 이민족 일부가 바친 첫 수확물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우리보다 나은 가장 큰 점은 말의 수가 많다는 것과, 곡식을 들여오지 않고 제 땅에서 길러 낸다는 것입니다.
이만한 세력을 상대로는 약한 함대만 가지고는 안 되고, 우리가 품은 뜻에 걸맞은 일을 하려면 또 많은 기병에게 막혀 그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일이 없으려면 큰 육군도 함께 배에 태워 가야 합니다. 더구나 그 도시들이 놀라 서로 뭉치고 에게스타인 말고는 우리가 우리 몸을 지킬 기병을 대 줄 벗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처음에 깊이 헤아리지 못한 탓에 떠밀려 물러나거나 본국에 증원을 청해야 한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넉넉한 군세를 갖추어 이 땅을 떠나야 하니, 우리는 조국에서 멀리 배를 타고 가는 것이며 이 원정은 여러분이 이곳 그리스에서 여러분에게 예속된 나라들 사이에 동맹의 자격으로 나섰던 어떤 원정과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더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우호적인 땅에서 쉽게 끌어올 수 있었으나, 이번에는 우리 스스로 그 줄을 끊고 아주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이며 그 땅에서는 겨울 넉 달 동안 전령 하나가 아테네에 닿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중장보병을 많이 데려가야 한다고 봅니다. 아테네에서도 동맹에게서도 데려가되 우리에게 예속된 나라들에서만이 아니라 펠로폰네소스에서 우정으로든 돈으로든 얻을 수 있는 자들까지 데려가야 하고, 시칠리아의 기병에 맞서려면 궁수와 투석병도 많이 데려가야 합니다. 아울러 바다에서는 압도하는 우세를 지녀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쉽게 실어 들일 수 있습니다. 또 곡식은 우리 것을 상선에 실어 가야 하니 곧 밀과 볶은 보리이며, 방앗간에서 빵 굽는 자들을 알맞은 비율로 뽑아 삯을 주고 복무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날씨에 발이 묶여도 군대가 먹을 것이 모자라지 않을 터인데, 우리만 한 수를 받아 먹일 수 있는 도시가 어디에나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 밖의 모든 것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손으로 갖추어 남에게 기대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무엇보다 본국에서 돈을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가져가야 합니다. 에게스타에 마련되어 있다는 그 돈은,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다른 어디보다 말 속에 넉넉히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실상 우리가 싸움터에 세울 중장보병의 수만 빼고 적과 맞먹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적보다 나은 군세를 갖추어 아테네를 떠난다 하더라도, 시칠리아를 정복하기도 우리 몸을 지키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낯선 자들과 적들 한가운데에 도시 하나를 세우러 가는 것임을 스스로에게 숨겨서는 안 되며,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은 상륙하는 첫날에 그 땅의 주인이 되거나 그러지 못하면 모든 것이 제게 적대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두렵고, 우리에게 좋은 의논이 많이 필요하며 좋은 운은 그보다 더 많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을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라기에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배를 띄우기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운에 매이지 않도록 해 두고 싶고, 막상 떠날 때에는 강한 군세가 줄 수 있는 만큼 안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이 나라 전체로 보아 가장 미더운 길이고 원정에 나설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달리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제 지휘권을 그에게 넘기겠습니다.
니키아스는 이렇게 말을 맺었는데, 일의 규모로 아테네인의 마음을 질리게 하거나 그러지 못해 원정에 나서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 될 수 있는 대로 안전하게 떠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테네인은 준비의 짐스러움 때문에 원정에 대한 마음이 식기는커녕 어느 때보다 더 그것을 바라게 되었고, 니키아스가 생각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져 그가 좋은 조언을 했으며 이 원정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원정이 되리라는 의견이 퍼졌다. 모두가 한결같이 그 일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이 든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가서 칠 곳들을 굴복시키거나 적어도 그만한 군세라면 큰 낭패는 보지 않으리라 여겼고, 한창때의 사람들은 낯선 곳의 볼거리와 구경거리를 그리워하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보통 사람들과 병사들의 생각은 당장 삯을 벌고 앞으로 끝없이 급료가 나올 재원이 되어 줄 땅을 정복하자는 것이었다. 다수가 이렇게 들뜬 터라 그것이 내키지 않는 몇 사람은 반대편에 손을 들었다가 나라를 아끼지 않는 자로 보일까 두려워 잠자코 있었다.
마침내 아테네인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니키아스를 불러 세우고, 변명하거나 미루지 말고 아테네인이 표결로 그에게 주어야 할 군세가 얼마인지 모두 앞에서 당장 말하라고 했다. 이에 그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그 문제는 동료들과 좀 더 여유 있게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 보기에는 적어도 갤리선 100척을 갖추어 떠나야 하고, 수송선은 아테네인이 정하는 만큼 대고 모자라는 것은 동맹에게 청해 얻어야 하며, 아테네인과 동맹을 합해 중장보병이 모두 5,000명을 밑돌아서는 안 되고 될 수 있으면 더 많아야 하며, 나머지 군비도 그에 걸맞은 규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국과 크레타에서 오는 궁수와 투석병, 그 밖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엇이든 지휘관들이 갖추어 데려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말을 듣고 아테네인은 곧바로 군대의 규모와 원정 전반에 관한 일을 지휘관들이 아테네의 이익에 가장 낫다고 판단하는 대로 처리하도록 전권을 주기로 표결했다. 그 뒤로 준비가 시작되어 동맹들에게 전갈이 갔고 본국에서는 명부가 작성되었다. 도시는 역병과 긴 전쟁에서 막 회복한 참이었고 젊은이가 여럿 자라났으며 휴전 덕분에 재물이 쌓여 있었으므로 모든 것이 그만큼 쉽게 갖추어졌다.
이런 준비가 한창일 때 아테네 시내에 있던 돌로 된 헤르메스상6이, 곧 개인의 집과 신전의 문간에 그토록 흔히 서 있던 그 네모난 기둥꼴 상들이 하룻밤 사이에 대부분 얼굴을 훼손당했다. 누가 한 짓인지 아무도 몰랐으므로 그 짓을 한 자들을 찾아내려고 나라에서 큰 상금을 걸었고, 나아가 신을 업신여기는 다른 짓이 저질러진 것을 아는 자가 있으면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노예든 뒤탈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와서 알리라고 표결했다. 이 일이 더욱 무겁게 다루어진 것은 그것이 원정에 흉한 조짐으로 여겨졌고 정변을 일으켜 민주정을 뒤엎으려는 음모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거류민 몇과 하인 몇이 알려 온 것은 헤르메스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에 젊은 자들이 술김에 장난으로 다른 신상들을 훼손한 일과 개인의 집에서 치렀다는 비밀 의식7 흉내 내기에 관한 것이었다. 이 고발에 알키비아데스가 걸려들자, 그가 걸림돌이 되어 민중을 마음 놓고 이끌 자리를 얻지 못하던 자들, 그를 누구보다 견디지 못하며 그만 없어지면 으뜸가는 자리가 제 것이 되리라 여기던 자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일을 부풀려 비밀 의식 사건과 헤르메스상 훼손이 민주정을 뒤엎으려는 계략과 한 덩어리이며 그 가운데 알키비아데스 없이 이루어진 일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 높여 떠들었고, 그 증거로 내세운 것은 그의 생활과 버릇에 두루 배어 있는 민주정답지 않은 방종이었다.
알키비아데스는 그 자리에서 이 고발을 물리쳤고, 이제 준비가 끝난 원정에 나서기에 앞서 자기에게 씌워진 짓을 저질렀는지 가려낼 수 있도록 재판을 받겠다고 나섰으니, 죄가 있다고 밝혀지면 벌을 받되 풀려나면 지휘권을 맡겠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는 자기가 없는 동안 자기를 헐뜯는 말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항의하며 자기에게 죄가 있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죽이라고 청했고, 이토록 무거운 고발이 아직 가려지지 않은 채로 자기를 그만한 대군의 우두머리로 내보내는 것이 얼마나 분별없는 일인지 짚었다. 그러나 그의 적들은 지금 곧 재판이 열리면 군대가 그의 편에 설 것을 두려워했고, 아르고스인과 만티네이아인 얼마가 원정에 함께하게 된 것이 그의 덕이라 하여 이미 그를 떠받들던 민중이 그에게 너그러워질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제안이 물리쳐지도록 온 힘을 다하며 다른 연설가들을 내세웠고, 그 연설가들은 그가 지금은 배를 타고 떠나 군대의 출발을 늦추지 말아야 하며 돌아온 뒤 정해진 날수 안에 재판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들의 속셈은 그가 없는 동안 더 쉽게 꾸며 낼 수 있는 더 무거운 죄목을 걸어 그를 불러들여 재판에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배를 타고 떠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뒤 시칠리아를 향한 출발이 이루어졌으니 때는 한여름 무렵이었다. 동맹의 대부분은 곡식을 싣는 수송선과 작은 배들과 나머지 원정 병력과 함께 코르키라에 모이라는 명을 이미 받아 두었고, 거기서 한 덩어리가 되어 이오니아해를 건너 이아피기아 곶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테네인 자신과 마침 그들과 함께 있던 동맹들은 정해진 날 동틀 녘에 피레우스로 내려가 바다로 나가려고 배에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도시의 온 사람이, 시민이든 외국인이든 내려갔다고 해도 될 만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저마다 제게 딸린 이들, 곧 벗이나 친척이나 아들을 바래다주었는데, 가는 길에 희망과 탄식이 함께했으니 이루고자 하는 정복을 생각하기도 하고 제 나라를 떠나 오를 그 긴 항해를 헤아리며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를 벗들을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실상 이제 막 서로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야 그 위험이 원정을 표결하던 때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다만 군세의 강함과 어느 부문에서나 눈에 띄는 넉넉한 채비는 그들을 달래 주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외국인과 그 밖의 무리로 말하면, 그들은 그저 볼 만하고 믿기 어려운 구경거리를 보러 간 것이었다.
실로 이때 처음 떠난 이 군세는 그때까지 한 도시가 내보낸 그리스인의 군세 가운데 가장 많은 돈이 들고 가장 화려한 것이었다. 함선과 중장보병의 수만 따지면 페리클레스가 이끌고 에피다우로스로 갔던 군세, 그리고 하그논이 이끌고 포티다이아로 갔던 같은 군세도 그에 못지않았으니, 아테네 중장보병 4,000명과 기병 300명과 갤리선 100척으로 이루어지고 레스보스와 키오스의 함선 50척과 그 밖에 많은 동맹이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 군세는 짧은 항해에 오른 것이었고 채비도 변변치 않았다. 이번 원정은 뭍에서나 바다에서나 오래 복무할 것을 내다보고 꾸려졌으며 필요에 따라 어느 쪽이든 감당할 수 있도록 함선과 병력을 갖추었다. 함대는 함장들과 나라에 큰 비용을 지워 가며 공들여 갖추어졌으니, 국고는 뱃사람 한 사람마다 하루에 1드라크메8를 주고 빈 배로 군선 60척과 수송선 40척을 대었으며 구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사람들로 그 배를 채웠다. 한편 함장들은 국고에서 나오는 급료에 더해 트라니타이9와 선원 전체에게 웃돈을 얹어 주었고 뱃머리 장식과 장비에도 아낌없이 돈을 썼으며, 하나같이 제 배가 아름다움과 빠르기에서 남보다 낫도록 온 힘을 기울였다. 한편 육군은 가장 나은 명부에서 뽑혔고 무기와 몸에 갖추는 장구에 크게 마음을 쓰며 서로 앞을 다투었다. 이로부터 저마다 맡은 부문에서 서로 겨루는 일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다른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이것이 적을 치려는 군세라기보다 힘과 재력을 내보이는 과시라는 생각이 퍼졌다. 누군가 나라가 쓴 공공의 비용과 개인이 쓴 사사로운 비용을, 곧 나라가 이미 이 원정에 쓴 돈과 지휘관들의 손에 들려 보내는 돈, 개인이 제 채비에 쓴 돈이나 갤리선의 함장으로서 제 배에 이미 들였고 앞으로 더 들일 돈을 헤아려 보고, 거기에다 그만큼 긴 항해를 위해 국고에서 나오는 급료와는 따로 저마다 마련했을 노자와 병사나 장사꾼이 물건을 바꾸려고 지니고 간 것까지 더해 보았다면, 모두 합해 여러 탈란톤이 도시 밖으로 나가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실로 이 원정이 이름을 얻은 것은 그것이 겨냥한 종족들에 견주어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는 것과 여태껏 본국에서 떠난 항해 가운데 가장 멀었다는 것과 그 일을 벌인 자들의 재력에 견주어 목표가 가장 컸다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그 놀라운 대담함과 겉모습의 화려함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배마다 사람이 차고 싣고 갈 것을 모두 실은 뒤 나팔이 울려 조용히 하라 명했고, 바다로 나가기 전에 늘 올리는 기도를 배마다 따로 올리는 대신 전령의 목소리에 맞추어 모두가 함께 올렸다. 군세 전체에 걸쳐 포도주를 섞은 동이가 마련되었고 병사들과 그 지휘관들은 금잔과 은잔으로 헌주했다. 그 기도에는 물가에 모인 무리, 곧 시민들과 그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모든 이도 함께했다. 찬가를 부르고 헌주를 마친 뒤 그들은 바다로 나아가 처음에는 한 줄로 늘어서 나가다가 아이기나까지는 서로 앞을 다투어 달렸고, 그렇게 서둘러 코르키라로 향했으니 거기에는 나머지 동맹군도 모이고 있었다.
주
1. 2마일 — 크롤리가 원문의 그리스 단위를 영국식 단위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은 크롤리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므로 그 표기를 따랐다.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의 좁은 해협을 가리킨다.
2. 아폴론 아르케게테스 — '길을 열어 준 아폴론'이라는 뜻. 이주민을 이끌어 새 도시를 세우게 하는 신으로 섬겼으므로, 시칠리아의 그리스인은 본토의 경기에 사절을 보낼 때 이 제단에서 제물을 바쳤다.
3. 헤라클레이다이 — 헤라클레스의 후손을 이르는 말. 도리스계의 여러 왕가와 귀족 가문이 스스로 그 후손이라 일컬었고 스파르타 왕가도 그러했다.
4. 탈란톤 — 그리스의 무게 단위이자 화폐 단위. 1탈란톤은 6,000드라크메에 해당했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5. 프리타니스 — 아테네 평의회에서 당번을 맡아 민회를 열고 의사를 진행하던 의장. 이미 표결이 끝난 안건을 다시 표결에 부치는 것은 법에 어긋날 수 있었으므로, 니키아스는 그 위험을 무릅써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6. 헤르메스상 — 네모난 돌기둥 위에 헤르메스의 머리를 얹어 새긴 상. 아테네에서는 집과 신전의 문간, 길목, 광장에 세워 두고 길과 문을 지키는 신으로 섬겼다. 기원전 415년에 일어난 이 훼손 사건이 이 장의 부제에 적힌 '헤르메스상 훼손 사건'이다.
7. 비밀 의식 — 엘레우시스에서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를 기려 치르던 입문 의식. 그 내용을 발설하거나 흉내 내는 것은 신을 업신여기는 무거운 죄였다.
8. 드라크메 — 그리스의 은화 단위.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숙련 노동자의 하루 품값이 대략 1드라크메였다고 전한다. 현대 화폐로 환산하지 않는다.
9. 트라니타이 — 삼단으로 노를 젓는 군선에서 맨 윗단의 노를 젓던 노잡이. 노가 길고 힘이 많이 들어 가장 숙련된 자들이 맡았고 삯도 더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