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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6부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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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1장

라스콜니코프에게 이상한 시기가 시작되었으니, 마치 안개가 내려앉아 그를 감싸서는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는 음울한 고독 속에 가두어 버린 것만 같았다. 한참 뒤에 그 시기를 돌이켜 보며 그는 제 정신이 때때로 흐려져 있었고 마지막 파국에 이르기까지 사이사이 끊기면서도 그 상태가 이어졌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그때 여러 가지를 잘못 알고 있었다고, 이를테면 어떤 일들이 언제 일어났는지조차 틀리게 알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어쨌든 뒷날 제 기억을 짜 맞추어 보려 했을 때 그는 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는 여러 사건을 뒤섞어 놓았고 제 상상 속에만 있던 사정을 들어 어떤 일들을 설명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때에는 병적인 불안의 고통에 사로잡혀 그것이 공포에까지 이르곤 했다. 그러나 그는 완전한 무감각의 순간들과 시간들을, 어쩌면 며칠씩을 기억하기도 했으니, 그것은 앞서의 공포에 대한 반동으로 찾아온 것이었고 죽어 가는 이에게서 이따금 보이는 비정상적인 무감각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그 뒤쪽의 상태에서 그는 제 처지를 온전하고 또렷하게 이해하는 일에서 달아나려 애쓰고 있는 듯했는데, 당장 생각해 두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그에게는 유난히 성가셨다. 소홀히 했다가는 완전하고 피할 수 없는 파멸이 닥칠 몇몇 근심거리에서 놓여날 수만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기뻤겠는가.

그가 유난히 마음을 쓴 것은 스비드리가일로프였으니, 그는 줄곧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았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죽던 순간 소냐의 방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내뱉은, 지나치게 위협적이고 오해할 여지 없는 그 말이 있은 뒤로 그의 정신은 제대로 돌아가기를 그친 듯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실이 그를 극도로 불안하게 했는데도 라스콜니코프는 그것을 밝히려 서두르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도시의 외지고 한적한 곳 어느 허름한 밥집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겨서는, 자기가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도 거의 모르는 채로 있다가 문득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떠올렸다. 그러면 그는 저 사내와 당장 담판을 짓고 할 수 있는 한 조건을 맞추어 두어야 한다는 것을 불쑥, 또렷이, 그리고 소스라치는 마음으로 깨닫곤 했다. 어느 날 성문 밖을 걷다가 그는 저들이 바로 거기서 만나기로 해 두었다고, 자기가 스비드리가일로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정말로 여기기까지 했다. 또 한번은 동트기 전에 덤불 밑 땅바닥에 누운 채로 깨어나 처음에는 어떻게 거기 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죽고 난 이삼 일 동안 그는 아무 목적도 없이 잠깐씩 들르곤 하던 소냐의 하숙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두세 번 만났다. 둘은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뿐 가장 중요한 문제에는 손끝도 대지 않았는데, 마치 당분간은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기로 서로 말없이 합의라도 해 둔 듯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주검은 아직 관 속에 누워 있었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장례 채비로 바빴다. 소냐도 몹시 바빴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에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아이들 일을 아주 만족스럽게 처리해 두었다고 알렸다. 어떤 연줄을 통해 몇몇 인사를 붙들 수 있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고아 셋을 당장 아주 알맞은 시설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앞으로 떼어 준 돈이 큰 도움이 되었으니, 빈털터리 고아보다는 재산이 조금이라도 있는 고아를 맡기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소냐에 대해서도 무언가 말했고, 하루 이틀 안에 직접 라스콜니코프를 찾아가겠다고 하면서 「그와 의논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야기해 두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이야기는 층계참에서 오갔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잠깐 뜸을 들인 뒤 불쑥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입니까, 로지온 로마노비치.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보고 듣기는 하는데 알아듣지는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기운을 내십시오! 우리 이야기를 좀 나눕시다. 다만 제 일에 남의 일까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안타깝군요. 아, 로지온 로마노비치.」 그가 별안간 덧붙였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신선한 공기입니다, 신선한 공기…… 무엇보다도요!」

그는 층계를 올라오는 사제와 복사에게 길을 내주려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은 추도 예배1를 드리러 온 것이었는데,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분부로 그 예배는 하루에 두 번씩 어김없이 올려지고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제 갈 길을 갔고, 라스콜니코프는 잠시 선 채로 생각하다가 사제를 따라 소냐의 방으로 들어가 문가에 섰다. 사람들이 조용하고 느리고 구슬프게 예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과 죽음이 곁에 있다는 것에는 짓누르는, 그리고 알 수 없이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추도 예배를 들어 본 지도 오래였다. 게다가 여기에는 다른 무언가가, 너무나 무섭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무언가가 함께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모두 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폴레치카는 울고 있었으며, 그 뒤에서는 소냐가 기도를 올리며 나직이, 말하자면 겁먹은 듯이 울고 있었다.

「저 사람은 이 이틀 동안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문득 생각했다. 햇빛이 방 안에 환했고 향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으며, 사제는 「주여, 안식을 주소서…….」 하고 읽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예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사제는 축복을 내리고 물러가면서 이상한 눈으로 둘레를 돌아보았다. 예배가 끝난 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다가갔고, 그녀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제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었는데, 이 작고 다정한 몸짓이 라스콜니코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혐오의 기미도, 역겨움의 기미도, 손의 떨림도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졌으니, 그것은 자기를 버리는 일의 마지막 끝이었고 적어도 그는 그렇게 풀이했다.

소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나왔다. 그는 몹시 비참했다. 어딘가 외딴곳으로 달아날 수만 있었다면 평생을 거기서 보내야 한대도 제가 운이 좋다고 여겼을 것이나, 요즈음 거의 언제나 혼자 지냈으면서도 그는 한 번도 혼자라고 느낄 수가 없었다. 어떤 때에는 도시를 벗어나 한길로 걸어 나갔고 한번은 작은 숲에까지 이르기도 했으나,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그는 가까이에 불안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더 뚜렷이 느끼는 듯했다. 그것이 그를 두렵게 하지는 않았으나 몹시 성가시게 했으므로 그는 서둘러 도시로 돌아와 사람들 틈에 섞이고 음식점과 술집에 들어가고 번잡한 큰길을 걸었다. 거기서 그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고 오히려 더 홀로였으며, 어느 날 해질 무렵에는 한 시간이나 술집에 앉아 노랫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정말로 즐거웠다고 뒷날 기억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양심이 제 마음을 찌르기라도 한 듯 그 똑같은 불안을 다시 느꼈다. 「나는 여기 앉아 노래나 듣고 있는데,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인가?」 그는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만이 제 불안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느꼈으니, 당장 결정을 내려야 할 무언가가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또렷이 이해할 수도 말로 옮길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찌해 볼 수 없는 엉킴이었다. 「아니, 차라리 다시 싸움을! 차라리 다시 포르피리를…… 아니면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차라리 다시 도전을…… 공격을. 그래, 그래!」 그는 생각했다. 그는 술집을 나와 거의 뛰다시피 달아났고, 두냐와 어머니 생각에 별안간 공포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 그날 밤 그는 아침이 오기도 전에 크레스톱스키 섬의 어느 덤불 속에서 열로 온몸을 떨며 깨어났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 이른 아침에야 겨우 다다랐다. 몇 시간 자고 나자 열은 내렸으나 그는 늦게, 오후 두 시에 깨어났다.

그는 그날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장례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고, 자기가 거기 가 있지 않다는 것이 기뻤다. 나스타시야가 먹을 것을 가져다주자 그는 입맛을 느끼며, 거의 게걸스럽게 먹고 마셨다. 머리가 한결 맑았고 지난 사흘 동안보다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으며, 그는 앞서 저를 덮쳤던 공포의 발작에 잠시 놀라워하기까지 했다.

문이 열리고 라주미힌이 들어왔다.

「아, 먹고 있구나. 그럼 아픈 건 아니지.」 라주미힌은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끌어다 라스콜니코프 맞은편 탁자에 앉았다.

그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그것을 숨기려 들지도 않았으며, 뚜렷이 짜증을 내며 말했으나 서두르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았다. 무언가 특별히 굳은 결심을 해 둔 사람처럼 보였다.

「들어 봐.」 그가 단호하게 말을 꺼냈다. 「나로 말하면 너희 다 지옥에나 가라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 분명한 건, 내가 이 일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거야. 내가 캐물으러 왔다고는 생각하지 마. 알고 싶지 않아, 젠장! 네가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대도 나는 아마 끝까지 듣고 있지 않고 욕을 하며 나가 버릴 거다. 내가 온 건 오직 한 가지, 네가 정말로 미쳤는가를 단번에 확인하려는 거야. 네가 미쳤거나 그에 가깝다는 생각이 공기 중에 떠돌고 있어. 솔직히 나도 그 생각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네 어리석고 역겹고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행동들로 보나 요새 어머니와 누이를 대한 태도로 보나 말이야. 그분들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건 괴물이나 미치광이뿐이야. 그러니 너는 미친 게 틀림없지.」

「그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방금. 그 뒤로 너는 못 봤지? 그동안 대체 뭘 하고 다닌 거야? 말 좀 해 봐. 나는 벌써 세 번이나 너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어제부터 몹시 편찮으신데, 너한테 오겠다고 마음을 굳히셨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말렸지만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으셨지. 『그 애가 아프다면, 그 애 정신이 놓여 가고 있다면, 어미만큼 그 애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고 말씀하셨어. 우리는 다 같이 여기 왔다. 그 먼 길을 혼자 오시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우리는 계속 진정하시라고 빌었지만, 들어와 보니 너는 없었어. 어머니는 앉으셨고 십 분을 그대로 계셨고 우리는 말없이 서서 기다렸는데, 어머니는 일어나서 말씀하셨어. 『그 애가 나갔다면, 다시 말해 몸이 성해서 제 어미를 잊었다면, 어미가 제 아들 문간에 서서 다정함을 구걸하는 것은 욕되고 꼴사나운 일이다.』 그러고는 집에 돌아가 자리에 누우셨고 지금은 열이 있으셔. 『알겠다. 그 애한테는 제 계집을 만날 틈은 있는 게로구나.』 하고 말씀하시더군. 네 계집이란 소피야 세묘노브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야. 네 약혼자인지 정부인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 곧장 소피야 세묘노브나한테 갔고, 둘러보니 관이 있고 아이들이 울고 있고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아이들에게 상복을 입혀 보고 있더군. 네 그림자도 없었어. 나는 사과하고 물러 나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알렸다. 그러니 그건 다 헛소리이고 너한테 계집 같은 건 없으니, 가장 그럴듯한 건 네가 미쳤다는 거지. 그런데 너는 여기 앉아서 사흘은 굶은 사람처럼 삶은 쇠고기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구나, 하기야 그 점으로 말하면 미치광이도 먹기는 하지만. 하지만 너는 아직 나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너는 미치지 않았어! 그건 내가 맹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너는 미치지 않았어! 그러니 너희 다 지옥에나 가라지. 거기엔 무슨 수수께끼가, 무슨 비밀이 있는 거고 나는 네 비밀 때문에 머리를 썩일 생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저 너한테 욕이나 한바탕 하러 온 거다.」 그는 일어서며 말을 맺었다. 「속이 좀 풀리라고. 그리고 이제 내가 뭘 해야 할지는 알겠어.」

「이제 뭘 할 셈인데?」

「내가 뭘 하려는지가 너랑 무슨 상관이야?」

「한바탕 마실 셈이군.」

「어떻게…… 어떻게 알았어?」

「뻔하잖아.」

라주미힌은 잠깐 말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었고 한 번도 미친 적이 없었어, 한 번도.」 그가 문득 따뜻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다. 나는 마실 거야. 잘 있어!」

그러고는 나가려고 몸을 돌렸다.

「누이하고 ― 그저께였던 것 같은데 ― 네 이야기를 했다, 라주미힌.」

「나하고! 그런데…… 그저께 어디서 누이를 볼 수 있었다는 거야?」 라주미힌은 우뚝 멈춰 섰고 얼굴빛이 조금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그의 심장이 느리고 세차게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이가 혼자 여기 와서 저기 앉아 나하고 이야기했어.」

「누이가 그랬다고!」

「그래.」

「누이한테 뭐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내 이야기 말이야.」

「너는 아주 착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했지. 네가 누이를 사랑한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그건 누이가 스스로 아니까.」

「누이가 스스로 안다고?」

「뻔하잖아. 내가 어디로 가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너는 남아서 그들을 돌볼 테니까. 나는, 말하자면, 그들을 네 손에 맡긴다, 라주미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네가 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고 있고 또 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야. 누이도 너를 사랑할 수 있고 어쩌면 이미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 이제 네가 스스로 정해, 네가 제일 잘 아니까, 한바탕 마시러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로쟈! 이봐…… 그래……. 아, 젠장! 그런데 너는 어디로 갈 셈인데? 물론 그게 다 비밀이라면 됐어……. 하지만 나는…… 나는 그 비밀을 알아낼 거야…… 그리고 그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헛소리이고 네가 다 지어낸 거라고 확신한다. 아무튼 너는 훌륭한 녀석이야, 훌륭한 녀석이고말고!……」

「내가 덧붙이고 싶었던 게 바로 그거야. 네가 끼어드는 바람에 못 했지만, 그 비밀을 알아내지 않겠다는 건 아주 좋은 결정이라고. 시간에 맡겨 두고 걱정하지 마.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어제 어떤 사람이 나한테 말하기를,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신선한 공기, 신선한 공기, 신선한 공기라더군.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아보러 지금 바로 그 사람한테 갈 참이야.」

라주미힌은 생각에 잠긴 채, 흥분한 채 서서 말없이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거다! 틀림없어. 그리고 무슨 절박한 일을 저지르기 직전이야, 그건 확실해. 그것밖에 없어! 그리고…… 그리고 두냐가 알고 있구나.」 그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너를 보러 온다.」 그는 한 음절 한 음절 무게를 달듯 말했다. 「그리고 너는 공기가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내를 만나러 간다. 그러면 물론 그 편지도…… 그것도 이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게 틀림없다.」 그는 혼잣말로 결론을 내렸다.

「무슨 편지?」

「누이가 오늘 편지를 받았어. 그게 누이를 몹시 흔들어 놓았지 ― 정말 몹시. 너무 심하게. 내가 네 이야기를 꺼내니까 누이는 그만두라고 하더군. 그러더니…… 그러더니 어쩌면 우리가 아주 곧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 그러고는 무엇 때문인지 나한테 따뜻하게 고맙다고 하기 시작하더니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누이가 편지를 받았다고?」 라스콜니코프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그래, 너는 몰랐어? 흠……」

둘 다 말이 없었다.

「잘 있어, 로지온. 이 사람아, 한때 나는……. 됐다, 잘 있어. 알다시피, 한때는……. 자, 잘 있어! 나도 가 봐야겠다. 나는 마시지 않을 거야. 이제 그럴 필요 없어……. 다 부질없는 소리지!」

그는 서둘러 나갔으나, 문을 거의 닫았다가 별안간 다시 열고는 눈길을 돌린 채 말했다.

「아 참, 그 살인 사건 기억나? 알잖아, 포르피리가 맡은 그 노파 말이야. 살인자가 잡혔대. 자백했고 증거도 내놓았다는군. 바로 그 직공들 가운데 하나야, 그 도장공 말이다, 생각 좀 해 봐! 내가 여기서 그들을 변호했던 거 기억나? 믿어지나? 문지기와 증인 둘이 층계를 올라오는 동안 거기서 동료들과 드잡이하며 웃고 떠들던 그 장면 전부가, 의심을 돌리려고 일부러 꾸민 짓이었다는 거야. 그 어린 개자식의 그 교활함, 그 침착함이라니! 좀처럼 믿기 어렵지만 제 입으로 그렇게 밝혔고 다 자백했어. 그리고 나는 그 일로 얼마나 바보짓을 했는지! 하긴, 그자는 예심판사들의 의심을 돌리는 데서는 위선과 임기응변의 천재니까 ― 그러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 물론 그런 사람들이야 언제든 있을 수 있는 법이고, 그자가 끝까지 그 노릇을 해내지 못하고 자백해 버렸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를 믿기 쉽게 만들지. 그런데 나는 얼마나 바보였던지! 나는 그들 편에서 펄펄 뛰었으니!」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말해 줘. 그리고 그게 왜 너한테 그렇게 흥미로운 거지?」 라스콜니코프가 누가 보아도 알 만큼 동요하며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게 왜 나한테 흥미롭냐고 나한테 묻다니!…… 그야 여러 사람한테 들었지만 그중에 포르피리도 있었지…… 거의 다 그 친구한테서 들었어.」

「포르피리한테서?」

「포르피리한테서.」

「그가…… 그가 뭐라고 했어?」 라스콜니코프가 소스라치며 물었다.

「아주 훌륭하게 설명해 주더군. 심리학적으로, 제 방식대로.」

「그가 설명했다고? 자기가 직접 설명했어?」

「그래, 그래. 잘 있어. 다음에 다 이야기해 줄게. 지금은 바빠서. 한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아니, 됐다, 다음에!…… 이제 내가 마실 일이 뭐가 있겠어? 너는 술도 없이 나를 취하게 만들었어. 나는 취했다, 로쟈! 잘 있어, 나는 간다. 아주 곧 다시 올게.」

그는 나갔다.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거다, 의심할 여지가 없어.」 라주미힌은 천천히 층계를 내려가며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제 누이를 끌어들였어. 그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성격에 아주, 아주 어울리는 일이지. 둘이 만나고 있었던 거야!…… 누이도 그런 낌새를 비쳤고……. 누이가 한 그 많은 말들이…… 그 암시들이…… 다 그런 뜻이었어! 그러지 않고서야 이 엉킴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흠! 그런데 나는 하마터면…… 맙소사,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래,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고 저 친구한테 못할 짓을 했어! 그날 복도의 램프 밑에서 저 친구가 그랬던 거지. 푸! 내 쪽에서 무슨 그런 거칠고 더럽고 비열한 생각을 했단 말인가! 니콜라이는 훌륭한 사람이야, 자백을 했으니까……. 그리고 이제 다 얼마나 분명해졌는가! 그때의 그 병, 그 이상한 행동들…… 그전에도, 대학에서, 얼마나 시무룩했던가, 얼마나 침울했던가……. 그런데 그 편지는 이제 무슨 뜻이지? 거기에도 무언가 있을지 모른다. 누구한테서 온 거지? 내 짐작으로는……! 아니, 알아내야겠다!」

그는 두냐를 떠올렸고 제가 들은 모든 것을 깨달았고 심장이 뛰었으며, 그러고는 별안간 달리기 시작했다.

라주미힌이 나가자마자 라스콜니코프는 일어나 창문 쪽으로 돌아섰다가 한쪽 구석으로 갔다가 다시 다른 구석으로 갔는데, 제 방이 얼마나 작은지도 잊은 듯했고, 그러다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는, 말하자면, 새로워진 느낌이었다. 다시 싸움이다, 그러니 빠져나갈 길이 온 것이다.

「그렇다, 빠져나갈 길이 왔다! 너무 숨 막혔고 너무 비좁았고 짐이 너무 괴로웠으며, 어떤 때에는 무기력이 그를 덮쳤다. 포르피리의 집에서 니콜라이와 벌어진 그 장면 이후로 그는 숨이 막혔고 빠져나갈 희망도 없이 갇혀 있었는데, 니콜라이가 자백한 바로 그날 소냐와의 장면이 있었다. 그때 제가 한 행동과 제 마지막 말들은 미리 상상할 수 있었던 어떤 것과도 전혀 달랐다. 그는 순식간에, 뿌리까지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소냐의 말에 동의했고, 이런 것을 마음에 담은 채 혼자서는 더 살아갈 수 없다는 데 마음속으로 동의했다!」

「그리고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수수께끼였다…… 그가 그를 괴롭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어쩐지 같은 점에서는 아니었고, 스비드리가일로프와는 아직 싸움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스비드리가일로프 또한 빠져나갈 길일 수 있었으나, 포르피리는 다른 문제였다.」

「그러니까 포르피리가 직접 라주미힌에게 설명했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했다. 그가 또 그 빌어먹을 심리학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포르피리가? 그러나 니콜라이가 나타나기 전에 둘 사이에 오간 일이 있은 뒤에, 오직 한 가지로만 설명될 수 있는 그 단둘의 면담이 있은 뒤에, 포르피리가 단 한순간이라도 니콜라이가 범인이라고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 무렵 라스콜니코프는 포르피리와의 그 장면의 대목들을 자주 떠올렸으나 거기에 생각을 붙들어 두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둘 사이에 그런 말들이, 그런 몸짓들이 오갔고, 그런 눈길을 주고받았고, 그런 어조로 이야기되었고, 일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첫마디에 첫 몸짓에 포르피리가 꿰뚫어 본 니콜라이가 그의 확신을 흔들어 놓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라주미힌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니! 그날 복도의 램프 밑 장면이 그때 효력을 낸 것이고, 그리하여 그는 포르피리에게 달려갔다……. 그런데 무엇이 저 사내로 하여금 그를 그렇게 맞이하게 했을까? 라주미힌을 니콜라이로 따돌린 목적이 무엇이었을까? 무슨 계획이 있는 게 틀림없었고 무슨 속셈이 있었는데, 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그날 아침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사실이었다 ― 너무 오랜 시간이. 그런데도 포르피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 그것은 나쁜 징조였다…….」

라스콜니코프는 모자를 집어 들고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방을 나섰는데, 적어도 머리가 맑다고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정리해야 한다.」 그는 생각했다. 「되도록 빨리. 저자도 내가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지친 가슴에 어찌나 증오가 치밀었는지 그는 그 둘 가운데 누구라도 ― 포르피리든 스비드리가일로프든 ―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느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그는 혼잣말로 되뇌었다.

그러나 문을 열자마자 그는 복도에서 바로 그 포르피리와 맞닥뜨렸으니, 그가 그를 보러 오는 길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잠깐 어안이 벙벙했으나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포르피리를 보고 그리 놀라지 않았고 그가 거의 두렵지도 않았으며, 그저 흠칫했을 뿐 곧바로, 그 자리에서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어쩌면 이것이 끝을 뜻하는 걸까? 그런데 포르피리가 어떻게 고양이처럼 조용히 다가와서 내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을까? 문에서 엿듣고 있었던 걸까?」

「손님이 올 줄은 모르셨겠지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포르피리가 웃으며 설명했다. 「오래전부터 들러 볼 생각이었습니다. 지나가던 길에 오 분쯤 들르지 못할 것도 없겠다 싶었지요. 나가시는 길입니까? 오래 붙들지는 않겠습니다. 담배나 한 대 피우게 해 주십시오.」

「앉으십시오, 포르피리 페트로비치, 앉으십시오.」 라스콜니코프는 손님에게 자리를 내주었는데, 그때 그 표정이 어찌나 반갑고 다정했던지 만일 제 눈으로 그것을 볼 수 있었다면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왔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 비워야 했다! 그렇게 사람은 때로 강도와 함께 반 시간 동안 죽을 듯한 공포를 겪다가도, 마침내 칼이 제 목에 닿는 순간에 이르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 법이다.

라스콜니코프는 포르피리를 똑바로 마주 보고 앉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고, 포르피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말해라, 말해라.」 라스콜니코프의 가슴에서 이런 말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자, 왜 말하지 않는가?」

주

  1. 1. 추도 예배 ― 정교회에서 죽은 이를 위해 드리는 기도 예식(파니히다). 장례를 치르기까지 주검 곁에서 되풀이해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