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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5부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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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3장

「표트르 페트로비치.」 그녀가 외쳤다. 「저를 지켜 주세요…… 당신만이라도! 저 어리석은 여자에게 일러 주세요, 불행에 빠진 귀부인에게 이렇게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런 일에는 법이 있다는 것을……. 총독 각하께 직접 가겠어요……. 저 여자는 그 책임을 지게 될 거예요……. 제 아버지께서 베푸신 환대를 생각하셔서 이 고아들을 지켜 주세요.」

「잠깐 실례합니다, 부인……. 실례합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손을 내저어 그녀를 물리쳤다. 「부인의 아버님은, 부인께서도 익히 아시다시피, 본인이 뵈올 영광을 갖지 못한 분입니다.」(누군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본인은 아말리아 이바노브나와 벌이시는 그 끝없는 말다툼에 끼어들 생각이 없습니다……. 본인은 본인의 용무를 말하러 온 것이고…… 부인의 의붓따님과 한마디 나누고자 합니다, 소피야…… 이바노브나, 본인 생각에는 그렇지요? 좀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그녀를 비켜 지나 소냐가 있는 맞은편 구석으로 갔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제자리에 선 채로 있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제 아버지의 환대를 받은 일이 없다고 잡아뗄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환대라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 지어낸 것이었건만 이제 와서는 그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사무적이고 메마르며 경멸이 섞인, 위협하는 듯한 표트르 페트로비치의 말투 또한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가 들어서자 그 모든 소란이 차츰 잦아들었다. 이 「진지한 사업가」가 나머지 사람들과 눈에 띄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가 무언가 중대한 일로 왔다는 것,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 그를 데려왔으며 따라서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 또한 분명했다. 소냐 곁에 서 있던 라스콜니코프는 그가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 듯했다. 잠시 뒤 레베쟈트니코프 또한 문간에 나타났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선 채로,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며, 거의 경이에 가까운 낯빛으로 귀를 기울였고,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혹 말씀을 끊었다면 용서하십시오, 그러나 이것은 얼마간 중요한 일입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좌중을 향해 말했다. 「다른 분들이 자리해 계신 것이 본인으로서는 참으로 다행입니다. 아말리아 이바노브나, 이 집의 주인으로서 본인이 소피야 이바노브나에게 드릴 말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삼가 청합니다. 소피야 이바노브나.」 그는 몹시 놀라 벌써 겁을 집어먹은 소냐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당신이 다녀간 직후, 본인의 벗인 레베쟈트니코프 씨의 방에서 본인의 탁자 위에 있던 백 루블짜리 지폐 한 장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일 어떤 식으로든 당신이 그것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또 우리에게 말해 준다면, 본인은 명예를 걸고 단언하며 여기 계신 모든 분을 증인으로 세우거니와, 이 일은 거기서 끝날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본인은 대단히 엄중한 수단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될 터이니, 그때는…… 당신 스스로를 탓해야 할 것입니다.」

방 안에 완전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울던 아이들까지 조용해졌다. 소냐는 죽은 사람처럼 새하얘진 얼굴로 서서 루쥔을 빤히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몇 초가 지났다.

「자,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루쥔이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마침내 소냐가 가냘프게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루쥔이 되풀이하고는 다시 몇 초 동안 말을 멈추었다. 「잠깐 생각해 보시지요, mademoiselle1.」 그는 엄하게, 그러면서도 타이르는 듯한 투로 말을 꺼냈다. 「곰곰이 헤아려 보십시오, 본인은 생각할 시간을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이 점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이토록 완전히 확신하고 있지 않다면, 본인의 경험으로 보아 이렇게 대놓고 당신을 고발하는 모험은 결코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증인들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고발하는 일이 거짓이거나 설령 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본인 자신이 어떤 의미에서 책임을 지게 되리라는 것을, 본인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본인은 본인의 용도에 맞추어 5푼 이자가 붙는 증권 몇 장을 삼천 루블 남짓한 금액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셈은 본인의 지갑에 적혀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본인은 돈을 세기 시작했고 ― 이것은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증언해 줄 것입니다 ― 이천삼백 루블을 세어 낸 다음 나머지를 외투 주머니에 든 지갑에 넣었습니다. 탁자 위에는 오백 루블가량이 남아 있었고 그 가운데 백 루블짜리 지폐가 석 장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당신이 (본인의 청을 받고) 들어왔고 ― 그리고 당신은 그 자리에 있던 내내 몹시 거북해했으며, 그리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에 세 번이나 벌떡 일어나 나가려 했습니다. 이것 역시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 mademoiselle, 본인이 레베쟈트니코프 씨를 통해 당신을 부른 것이 오로지 당신의 친척인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앞이 막막하고 궁핍한 처지에 관하여(본인은 그 부인의 추도연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과 의논하고, 또 그분을 위하여 모금이나 복권 따위의 것을 마련하는 편이 좋을지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는 본인의 진술을, 당신 자신도 아마 부인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본인에게 고마워하며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본인이 이 모든 것을 일어난 그대로 늘어놓는 것은, 첫째로 그것을 당신의 기억에 되살려 드리기 위함이고, 둘째로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본인의 기억에서 빠져나가지 않았음을 당신에게 보여 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런 다음 본인은 탁자에서 십 루블짜리 지폐 한 장을 집어 당신의 친척을 위한 본인 몫의 첫 출연금으로 당신에게 건넸습니다.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이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본인은 당신을 문까지 바래다주었고 ― 당신은 여전히 같은 거북한 상태였습니다 ― 그 뒤에 레베쟈트니코프 씨와 단둘이 남아 십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 그런 다음 레베쟈트니코프 씨가 나갔고 본인은 돈이 놓인 탁자로 돌아가, 앞서 작정한 대로 그것을 세어 따로 치워 두려 했습니다. 놀랍게도 백 루블짜리 지폐 한 장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사정을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레베쟈트니코프 씨를 본인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억측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입니다. 본인이 셈을 잘못했을 리도 없으니, 당신이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 본인은 계산을 끝내고 합계가 맞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거북해하던 모습, 어서 나가고 싶어 하던 그 조급함, 그리고 한동안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나아가 당신의 사회적 처지와 그에 따르는 습속을 고려에 넣는다면, 본인이 말하자면 공포와 더불어, 참으로 본인의 뜻과는 반대로, 하나의 의심을 ― 잔인하지만 정당한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당신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덧붙여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본인은 이렇게 확신하고 있음에도 이 고발로 얼마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보시다시피 본인은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조처를 취한 것은, 그 까닭을 말씀드리자면 오로지, 부인, 오로지 당신의 그 시커먼 배은망덕 때문입니다! 아니, 궁핍한 당신의 친척을 위하여 본인이 당신을 부르고, 십 루블의 기부를 당신에게 건네는데, 당신은 그 자리에서 그 모든 것을 이런 짓으로 갚는단 말입니까. 너무합니다! 당신에게는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십시오! 더구나 본인은 참된 벗으로서 당신에게 청하는 바이니 ―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본인보다 나은 벗은 있을 수 없습니다 ―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본인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자,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어요.」 소냐가 겁에 질려 속삭였다. 「십 루블을 주셨지요, 여기 있어요, 가져가세요.」

소냐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 한 귀퉁이의 매듭을 풀고 십 루블짜리 지폐를 꺼내 루쥔에게 내밀었다.

「그러면 백 루블은 가져갔다고 자백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가 지폐를 받지 않은 채 나무라듯 다그쳤다.

소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그토록 무섭고 준엄하고 비아냥거리는, 적의에 찬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라스콜니코프를 보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서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하느님 맙소사!」 소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아말리아 이바노브나, 경찰에 알려야 하겠으니 그동안 수위를 불러 주시기를 삼가 청합니다.」 루쥔이 부드럽게, 친절하다 싶게까지 말했다.

「Gott der Barmherzige2! 저 여자가 도둑인 줄 내가 알았어요.」 아말리아 이바노브나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알고 계셨다고요?」 루쥔이 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 전부터 그렇게 여길 만한 까닭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훌륭하신 아말리아 이바노브나, 증인들 앞에서 나온 그 말씀을 기억해 두시기를 청합니다.」

사방에서 왁자한 말소리가 일었다. 모두가 술렁였다.

「뭐라고요!」 사태를 문득 깨달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외치며 루쥔에게 달려들었다. 「뭐라고요! 저 애를 도둑으로 몬다고요? 소냐를? 아아, 악당들, 악당들!」

그러고는 소냐에게 달려가 여윈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고 죔쇠처럼 붙들었다.

「소냐! 어떻게 감히 저 사람한테서 십 루블을 받았니? 어리석은 것! 이리 다오! 그 십 루블 당장 이리 내 ― 자!」

그러고는 소냐에게서 지폐를 낚아채어 구겨 쥐고 루쥔의 얼굴에 정통으로 던졌다. 그것은 그의 눈에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말리아 이바노브나가 얼른 그것을 주웠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화를 참지 못했다.

「저 미친 여자를 붙드십시오!」 그가 소리쳤다.

그때 레베쟈트니코프 말고도 몇 사람이 더 문간에 나타났는데, 그 가운데에는 그 두 부인도 있었다.

「뭐라고요! 미쳤다고요? 내가 미쳤다고요? 이 바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바보는 당신이에요, 이 잔꾀나 부리는 법률쟁이, 비열한 인간! 소냐가, 소냐가 당신 돈을 가져갔다고요! 소냐가 도둑이라고요! 저 애는 제 마지막 한 푼까지 내주고도 남을 아이예요!」 그러고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발작하듯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바보를 본 적 있어요?」 그녀는 이쪽저쪽으로 몸을 돌렸다. 「당신도요?」 문득 집주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까지도, 이 소시지나 먹는 것이, 저 애가 도둑이라고 단언하다니, 크리놀린을 두른 이 볼품없는 프로이센 닭다리야! 저 애는 이 방에서 나간 적이 없어요. 저 애는 당신한테서 곧장 와서, 이 몹쓸 사람아, 내 곁에 앉았고, 다들 그 애를 보았어요. 여기, 로지온 로마노비치 곁에 앉아 있었다고요. 뒤져 보세요! 저 애가 방을 나가지 않았으니 돈이 있다면 그 몸에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뒤져 봐요, 뒤져 보라고요! 하지만 못 찾거든 그때는 미안하지만, 이보세요, 당신이 책임을 지게 될 거예요! 나는 우리 폐하께, 우리 폐하께, 우리 자애로우신 차르께 직접 가서 그 발치에 엎드리겠어요, 오늘, 이 순간에라도! 나는 세상에 혼자예요! 들여보내 줄 거예요! 들여보내 주지 않을 것 같아요? 잘못 생각하셨어요, 나는 들어갈 거예요! 들어가고야 말 거예요! 당신은 저 애가 순하다는 것을 계산에 넣었지요! 그걸 믿었지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두겠어요! 당신이야말로 너무 지나쳤어요. 뒤져 봐요, 뒤져 보라고요!」

그러고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미친 듯이 루쥔을 흔들어 대며 소냐 쪽으로 끌고 갔다.

「본인은 그럴 각오가 되어 있고 책임도 지겠습니다…… 그러나 진정하십시오, 부인, 진정하십시오. 부인이 그렇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자, 자, 그건 그렇다 치고……」 루쥔이 중얼거렸다. 「그런 일은 경찰 앞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만…… 하기야 증인이라면 이미 이만큼 있으니 말이지요……. 본인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모로 보나 남자로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성별로 보아……. 그렇지만 아말리아 이바노브나의 도움을 받는다면…… 물론 일을 이런 식으로 하는 법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뒤져 보라고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외쳤다. 「소냐,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라! 봐요! 보라고요, 이 괴물아, 주머니가 비었잖아요, 여기에는 손수건이 들어 있었고! 여기 또 한쪽 주머니, 봐요! 보이지요, 보이지요?」

그러고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두 주머니를 ― 뒤집었다기보다 잡아챘다 ― 뒤집어 안팎을 드러냈다. 그런데 오른쪽 주머니에서 종이쪽 하나가 튀어나와 공중에 포물선을 그리며 루쥔의 발치에 떨어졌다. 모두가 그것을 보았고 몇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허리를 굽혀 두 손가락으로 그 종이를 집어 올려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들고 펼쳤다. 여덟 겹으로 접힌 백 루블짜리 지폐였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그 지폐를 들어 모두에게 보였다.

「도둑이야! 내 집에서 나가. 경찰, 경찰!」 아말리아 이바노브나가 악을 썼다. 「저런 것들은 시베리아를 보내야 해요! 썩 나가!」

사방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라스콜니코프는 말없이 소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고, 이따금 루쥔에게 재빠른 눈길을 던질 뿐이었다. 소냐는 의식을 잃은 사람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놀랄 기운조차 거의 없었다. 별안간 두 뺨에 피가 몰렸다. 그녀는 외마디 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에요, 제가 아니에요! 저는 가져가지 않았어요!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녀가 가슴을 찢는 울음소리로 외치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달려갔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온 세상으로부터 그녀를 감싸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소냐! 소냐! 나는 믿지 않아! 봐라, 나는 믿지 않아!」 그녀는 뻔히 드러난 사실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외치며, 갓난아이라도 되는 양 소냐를 팔에 안고 앞뒤로 흔들었고, 그 얼굴에 연신 입을 맞추었으며, 그러다 두 손을 붙들어 거기에도 입을 맞추었다. 「네가 가져갔다니! 이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까! 아아, 맙소사! 당신들은 바보예요, 바보들이라고요.」 그녀가 방 안 전체를 향해 외쳤다. 「당신들은 몰라요, 저 애가 어떤 마음을 지녔는지, 어떤 아이인지 당신들은 몰라요! 저 애가 그걸 가져갔다고요, 저 애가? 저 애는 당신들이 아쉬우면 제 마지막 누더기까지 팔아 주고 맨발로 나설 아이예요, 그런 아이라고요! 내 아이들이 굶고 있었기 때문에 노란 딱지를 받은 거예요, 우리를 위해 제 몸을 판 거예요! 아아, 여보, 여보! 이게 보여? 이게 보이냐고? 당신 추도연이 이 꼴이야! 자비로우신 하느님! 저 애를 지켜 주세요, 다들 왜 그렇게 서 있기만 해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어째서 저 애 편을 들어 주지 않나요? 당신도 믿는 건가요? 당신들 모두를 합해도 저 애의 새끼손가락만도 못해요! 하느님 맙소사! 이제라도 저 애를 지켜 주세요!」

가엾고 폐병 들고 의지가지없는 그 여자의 울부짖음은 좌중에게 큰 효과를 내는 듯했다. 고통에 짓눌려 여위고 폐병에 시달리는 얼굴, 피가 말라붙은 바싹 튼 입술, 쉰 목소리, 아이처럼 거침없이 쏟아지는 눈물, 남을 믿는,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절망에 찬 도움의 간구, 그 모든 것이 어찌나 가련한지 모두가 그녀를 딱하게 여기는 듯했다. 적어도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이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부인, 부인, 이 일은 부인께 누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무게를 실어 외쳤다. 「아무도 부인을 이 일의 교사자라거나 하다못해 공범이라고 몰아세우려 들지는 않을 것이니, 더욱이 부인께서 주머니를 뒤집어 그 죄를 밝혀내심으로써 미리 알고 계시지 않았음을 스스로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인은 얼마든지, 얼마든지 동정을 베풀 뜻이 있습니다, 만일 말하자면 가난이 소피야 세묘노브나를 그리로 몰아간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자백을 마다했습니까, mademoiselle? 치욕이 두려웠습니까? 첫걸음이라서? 아마 정신이 아득해졌던 것이겠지요? 그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런 짓에까지 스스로를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 그가 좌중 전체를 향해 말했다. 「여러분! 본인은 이 사람들을 가엾이 여기고 말하자면 딱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본인에게 퍼부어진 개인적인 모욕에도 불구하고 지금이라도 이 일을 덮을 용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치욕이 앞날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소냐를 향해 말했다. 「본인은 이 일을 더 끌고 가지 않겠습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라스콜니코프를 슬쩍 훔쳐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라스콜니코프의 눈에 이는 불길은 당장이라도 그를 재로 만들어 버릴 듯했다. 그러는 동안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미친 여자처럼 소냐에게 입을 맞추며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사방에서 소냐를 껴안았고, 폴레치카는 ―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다 알지도 못하면서 ― 눈물에 잠겨 흐느낌으로 몸을 떨며 울어서 퉁퉁 부은 예쁘장한 작은 얼굴을 소냐의 어깨에 파묻었다.

「비열하다!」 별안간 문간에서 큰 목소리가 외쳤다.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재빨리 돌아보았다.

「이 무슨 비열한 짓이오!」 레베쟈트니코프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쏘아보며 되풀이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눈에 띄게 흠칫했다 ― 모두가 그것을 알아보았고 나중에 그것을 떠올렸다. 레베쟈트니코프가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도 감히 나를 증인으로 부르셨소?」 그가 표트르 페트로비치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루쥔이 중얼거렸다.

「내 말은 당신이…… 중상모략가라는 뜻이오, 내 말은 바로 그 뜻이오!」 레베쟈트니코프가 근시의 눈으로 그를 준엄하게 바라보며 열을 올려 말했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한마디 한마디를 붙들어 무게를 달아 보기라도 하듯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처음 한순간 정말이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 말이 본인을 두고 하는 것이라면,……」 그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정신이 나간 것 아닙니까?」

「나는 멀쩡하오, 당신이야말로 비열한 자요! 아아, 이 무슨 파렴치한 짓인가! 나는 다 들었소. 나는 일부러 기다렸소, 그것을 알아보려고 말이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논리가 썩 들어맞지는 않으니까…….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 모든 일을 벌였는지 나는 알 수가 없소.」

「아니, 본인이 대체 무엇을 했다는 겁니까? 그 터무니없는 수수께끼 같은 소리는 그만두시지요! 아니면 술에 취한 것 아닙니까!」

「술꾼은 당신이겠지, 이 비열한 인간아, 나는 아니오! 나는 보드카에 손도 대지 않소, 그것이 내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이오. 여러분, 믿어지십니까, 그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 제 손으로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그 백 루블짜리 지폐를 주었단 말입니다 ― 내가 보았고, 내가 증인이며, 맹세라도 하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 사람이!」 레베쟈트니코프가 좌중을 향해 되풀이했다.

「미쳤습니까, 이 애송이가?」 루쥔이 새된 소리를 질렀다. 「저 여자가 당신 앞에 있지 않습니까 ― 저 여자 자신이 방금 여기서 모두 앞에 본인이 십 루블만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본인이 어떻게 그것을 주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보았소, 나는 보았단 말이오.」 레베쟈트니코프가 되풀이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기는 하나,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법정에서 당신이 원하는 어떤 맹세든 할 용의가 있소, 당신이 그것을 그 사람 주머니에 슬쩍 넣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까. 다만 나는 바보같이 당신이 선의로 그러는 줄 알았던 거요! 문간에서 그 사람과 작별 인사를 하며 한 손으로는 그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왼손으로 지폐를 그 주머니에 밀어 넣었소. 나는 보았소, 나는 보았단 말이오!」

루쥔의 얼굴이 하얘졌다.

「무슨 거짓말입니까!」 그가 뻔뻔스럽게 외쳤다. 「아니, 창가에 서 있던 당신이 어떻게 그 지폐를 볼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 근시 눈으로 헛것을 본 것이지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 나는 헛것을 본 것이 아니오. 얼마쯤 떨어져 서 있기는 했으나 나는 다 보았소. 창가에서 지폐를 알아보기가 어려운 것은 틀림없이 그렇소 ― 그건 사실이오 ― 그런데도 나는 그것이 백 루블짜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소, 당신이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십 루블을 주려 할 때 탁자에서 백 루블짜리 지폐를 집어 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오(그때 나는 가까이 서 있었기에 그것을 보았고, 곧바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던 까닭에 당신이 그것을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소). 당신은 그것을 접어 내내 손에 쥐고 있었소. 나는 그 뒤로 그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일어설 때 그것을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기다가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소! 나는 그것을 알아챘소, 같은 생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오, 곧 당신이 내가 보지 않는 데서 그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려 한다는 생각 말이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보았을지 짐작이 가겠지요. 그리고 나는 당신이 그것을 그 사람 주머니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하는 것을 보았소. 나는 보았소, 나는 보았고, 맹세라도 하겠소.」

레베쟈트니코프는 숨이 턱에 닿아 있었다. 사방에서 외침이 일었는데 대개는 놀라움을 드러내는 것이었으나 더러는 위협하는 투였다. 모두가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둘러쌌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레베쟈트니코프에게 날아가듯 달려갔다.

「내가 당신을 잘못 보았어요! 저 애를 지켜 주세요! 저 애 편을 들어 주는 사람은 당신뿐이에요! 저 애는 고아예요. 하느님이 당신을 보내신 거예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제가 무엇을 하는지도 거의 알지 못한 채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죄다 헛소리입니다!」 루쥔이 분노에 휩싸여 악을 썼다. 「당신이 지껄인 것은 모두 헛소리예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다시 생각하지 않았고, 알아챘다』 ― 그게 대체 무엇이 된단 말입니까? 그래서 본인이 일부러 몰래 그것을 주었다고요? 무엇 때문에? 무슨 속셈으로? 본인이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이냐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만은 확실하오! 내가 잘못 보기는커녕, 이 파렴치한 범죄자 같으니, 나는 바로 그 일로 그때 당장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던 것을 기억하고 있소, 당신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그 손을 잡고 있던 바로 그때 말이오. 무엇 때문에 그것을 몰래 그 사람 주머니에 넣었을까? 어째서 몰래 그랬을까, 내 말은 그 뜻이오. 그저 나에게 감추려던 것일까, 내 신념이 당신의 것과 맞서고 내가 뿌리를 고치지 못하는 사사로운 자선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내 앞에서 그렇게 큰 돈을 주기가 정말로 부끄러웠던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소. 어쩌면 저 사람은 그 여자를 놀라게 해 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지, 주머니에서 백 루블짜리 지폐가 통째로 나오면 말이야, 하고도 생각했소.(자선을 베푸는 사람들 가운데 제 선행을 그런 식으로 꾸미기를 몹시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아니까 말이오.) 그다음에는 당신이 그 사람을 시험해 보려는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소, 그것을 발견하고 나서 당신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오는지 보려고 말이오. 그다음에는 또 당신이 감사를 피하려는 것이고, 속담에 있듯이 당신의 오른손이 알지 못하게…… 뭐 그런 것이라는 생각도 했소. 하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 보니 나는 그것을 따져 보기를 미루어 두었소만, 그래도 당신의 비밀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여겼소.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으니,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그것을 알아채기도 전에 그 돈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여기로 와서 그 사람을 방 밖으로 불러내어 당신이 그 주머니에 백 루블을 넣어 두었다고 일러 주기로 마음먹었던 것이오. 그러나 오는 길에 나는 먼저 코빌라트니코바 부인 댁에 들러 『실증적 방법 총론』을 가져다주고, 특히 피데리트의 논문을(그리고 바그너의 것도) 추천하고 왔소. 그러고 나서 여기로 왔더니 이 꼴이 벌어져 있지 않소! 자, 내가 당신이 그 백 루블짜리 지폐를 그 사람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내가 이 모든 생각과 궁리를 할 수 있었겠소, 할 수 있었겠느냔 말이오?」

레베쟈트니코프가 끝에 논리적 귀결까지 붙인 그 장광설을 마쳤을 때 그는 몹시 지쳐 있었고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딱하게도 그는 다른 언어라고는 하나도 모르면서 러시아어조차 제대로 말할 줄 몰랐고, 그리하여 이 영웅적인 위업을 치르고 나자 기진맥진하여 거의 수척해진 꼴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강력한 효과를 냈다. 그가 어찌나 격렬하게, 어찌나 확신에 차서 말했던지 모두가 그를 믿는 것이 분명했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제 형편이 나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당신에게 어리석은 생각이 떠올랐다 한들 그것이 본인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가 소리쳤다. 「그런 것은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꿈이라도 꾼 것이겠지요, 그뿐입니다! 그리고 본인은 말하거니와,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 당신은 본인에 대한 무슨 앙심에서, 그저 분풀이로 거짓말을 하고 중상을 하는 것이니, 본인이 당신의 그 자유사상적이고 신을 모르는 사회주의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응수는 표트르 페트로비치에게 득이 되지 않았다. 사방에서 못마땅해하는 웅성거림이 들렸다.

「아, 이제는 그쪽으로 나오시겠다!」 레베쟈트니코프가 외쳤다. 「헛소리요! 경찰을 부르시오, 나는 맹세를 하겠소!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소. 무엇이 저자로 하여금 저토록 야비한 짓을 무릅쓰게 했는가 하는 것이오. 아아, 가련하고 비열한 인간!」

「그가 어째서 그런 짓을 무릅썼는지는 내가 설명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나 역시 그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마침내 라스콜니코프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단단하고 침착해 보였다. 그 모습만 보고도 그가 정말로 이 일을 알고 있으며 수수께끼가 풀리리라는 것을 모두가 똑똑히 느꼈다.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을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레베쟈트니코프를 향해 말했다. 「이 일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그 밑바닥에 어떤 파렴치한 음모가 있다고 짐작했습니다. 나만이 아는 몇 가지 특별한 사정 때문에 그렇게 짐작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것을 여러분 모두에게 곧바로 설명하겠습니다. 그 사정이 모든 것을 밝혀 줍니다. 당신의 값진 증언이 마침내 나에게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해 주었습니다. 모두, 모두 들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신사분은」 그는 루쥔을 가리켰다. 「얼마 전까지 한 처녀와 ― 내 누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라스콜니코바와 ―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페테르부르크에 와서 그는 그저께 첫 대면 자리에서 나와 다투었고 나는 그를 내 방에서 쫓아냈습니다 ― 그것을 증명해 줄 증인이 둘 있습니다. 그는 대단히 앙심이 깊은 사람입니다……. 그저께 나는 그가 여기, 당신의 방에 묵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따라서 우리가 다툰 바로 그날 ― 그저께 ― 그가, 고인이 된 마르멜라도프 씨의 벗으로서 내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장례에 쓸 돈을 건네는 것을 보았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쪽지를 써 보내어, 내가 가진 돈을 모조리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아니라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주어 버렸다고 알렸고, 더없이 야비한 투로 소피야 세묘노브나의…… 품행을 들먹였으니, 곧 소피야 세묘노브나를 향한 내 태도의 성격을 넌지시 비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를 어머니와 누이에게서 갈라놓으려는 속셈이었으니, 그들이 보내 준 돈, 그들이 가진 전부인 그 돈을 내가 합당치 못한 데에 쏟아붓고 있다고 넌지시 일러바친 것입니다. 어제저녁 나는 어머니와 누이 앞에서, 그리고 그가 있는 자리에서, 그 돈은 장례를 위하여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준 것이지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준 것이 아니며, 나는 소피야 세묘노브나와 아는 사이도 아니고 그 전에는 본 적조차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그 사람, 곧 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쥔이 제가 지닌 온갖 미덕을 다 갖추었다 한들 그토록 헐뜯는 소피야 세묘노브나의 새끼손가락만도 못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를 내 누이 곁에 앉게 하겠느냐는 그의 물음에는, 나는 그날 이미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와 누이가 그의 이간질에도 나와 다투려 하지 않는 데에 약이 올라, 그는 차츰 그들에게 용서할 수 없을 만큼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끝내 사이가 갈라졌고 그는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이 모든 일이 어제저녁에 있었습니다. 이제 각별히 주의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헤아려 보십시오. 만일 그가 지금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도둑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면, 그는 어머니와 누이에게 제 의심이 거의 옳았음을, 내가 누이를 소피야 세묘노브나와 같은 자리에 놓은 데 대하여 성낼 만한 까닭이 있었음을, 나를 몰아세운 것이 곧 제 약혼자인 내 누이의 명예를 지키고 보전하는 일이었음을 보여 준 셈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나를 내 가족에게서 떼어 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다시 그들의 환심을 사기를 바랐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 개인에게 복수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니, 소피야 세묘노브나의 명예와 행복이 나에게 대단히 소중하다고 여길 만한 근거가 그에게는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노린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이유는 그것이 전부이고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제 말을 맺은 것은 이러한, 또는 대개 이러한 투였으니, 그 말은 듣는 이들의 외침에 자주 끊기면서도 대단히 주의 깊게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끊기는 와중에도 그는 또렷하게, 차분하게, 정확하게, 단단하게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와 확신에 찬 어조와 준엄한 얼굴은 모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렇소, 그렇소, 바로 그것이오.」 레베쟈트니코프가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오,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우리 방에 들어오자마자 저 사람이 나에게 당신이 여기 있는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손님들 가운데서 당신을 보았는지 물었으니 말이오. 나를 창가로 따로 불러내어 몰래 물었소. 당신이 여기 있어야만 하는 것이 저 사람에게는 꼭 필요했던 것이오! 바로 그것이오, 바로 그것이오!」

루쥔은 경멸하듯 웃을 뿐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몹시 창백했다. 그는 빠져나갈 어떤 수를 궁리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물러가는 편을 반겼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은 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곧 제게 씌워진 고발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이미 술기운에 들떠 있던 좌중은 이제 너무 흥분하여 그것을 가만두지 않을 참이었다. 병참부 서기는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지도 못한 주제에 누구보다도 큰 소리로 외쳐 대며 루쥔에게 대단히 언짢은 제안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취한 것은 아니었다. 방마다에서 세든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폴란드 사람 셋은 엄청나게 흥분하여 그에게 연신 「저 pan은 lajdak이다!」3 하고 소리치며 폴란드 말로 위협을 중얼거렸다. 소냐는 바짝 긴장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그녀 역시 그 모든 것을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듯했다. 그녀는 이제 막 정신이 돌아온 사람 같았다. 그녀는 라스콜니코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으니, 제 안전이 모두 그에게 달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숨을 무겁고 힘겹게 쉬었고 몹시 지쳐 보였다. 아말리아 이바노브나는 누구보다도 얼빠진 낯으로 입을 딱 벌린 채 서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녀 눈에 보이는 것은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어쩌다 낭패를 보았다는 것뿐이었다.

라스콜니코프가 다시 말을 하려 했으나 사람들이 그러도록 두지 않았다. 모두가 위협과 욕설을 퍼부으며 루쥔을 둘러쌌다. 그러나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겁먹지 않았다. 소냐를 향한 제 고발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알아차리고 그는 뻔뻔함에 호소했다.

「실례합니다, 여러분, 실례합니다! 밀지 마십시오, 좀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며 말했다. 「그리고 위협은 삼가시기 바랍니다! 단언하건대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며 그로써 여러분이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도리어 여러분이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법이 가는 길을 폭력으로 가로막은 데 대하여 말입니다. 도둑의 정체는 밝혀지고도 남았으며 본인은 이 일을 고소하겠습니다. 우리 재판관들은 그렇게 눈이 멀지도 않았고…… 그렇게 취해 있지도 않으니, 이름난 불신자이자 선동자이며 무신론자인 두 사람이, 그것도 개인적인 복수의 동기에서 고발하는 것임을 제 입으로 실토할 만큼 어리석은 두 사람이 하는 증언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자,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내 방에서 당신 흔적이 눈에 띄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즉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이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어떻게 풀어 설명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이 보름 내내 말입니다!」

「오늘 본인이 나가겠다고 당신에게 직접 말했을 때 당신은 붙들려고 했지요. 이제 본인은 다만 당신이 바보라는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그 머리와 그 근시를 두고 의사를 찾아가 보시기를 권합니다.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그는 사람들을 밀치며 빠져나갔다. 그러나 병참부 서기는 그를 그렇게 쉽게 놓아줄 마음이 없었다. 그는 탁자에서 유리잔을 집어 공중에 휘두르다가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향해 던졌는데, 잔은 곧장 아말리아 이바노브나에게 날아갔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고, 서기는 몸의 중심을 잃고 탁자 밑으로 무겁게 나동그라졌다.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제 방으로 건너갔고 반 시간 뒤에는 그 집을 떠났다. 본디 겁이 많은 소냐는 그날 전부터, 제가 누구보다도 쉽게 학대받을 수 있으며 누구든 벌을 받지 않고 제게 못할 짓을 할 수 있다고 느껴 왔다. 그러면서도 그 순간까지 그녀는 조심하고 순하게 굴고 누구에게나 고분고분하기만 하면 불행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 왔다. 그 실망은 너무나 컸다. 그녀야 물론 무엇이든, 이런 일까지도 참을성 있게, 거의 군소리 없이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한동안은 그것이 너무나 쓰라렸다. 승리를 거두고 결백이 밝혀졌음에도 ― 처음의 공포와 얼떨떨함이 지나가고 모든 것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게 되자 ― 제가 아무 힘도 없다는 느낌과 제가 당한 부당함이 그녀의 가슴을 괴로움으로 두근거리게 했고, 그녀는 발작하듯 터져 나오는 울음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녀는 방에서 뛰쳐나가 집으로 달려갔으니, 루쥔이 떠난 바로 뒤의 일이었다. 왁자한 웃음소리 가운데 유리잔이 아말리아 이바노브나에게 날아왔을 때, 그것은 집주인 여자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모든 일의 탓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있다고 여기고 복수의 여신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내 집에서 나가요! 당장! 앞으로 갓!」

그러고는 그 말과 함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것으로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낚아채어 바닥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창백해져 거의 까무러칠 듯 숨을 헐떡이면서도, 지쳐 쓰러져 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말리아 이바노브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싸움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집주인 여자는 깃털을 털어 내듯 그녀를 밀쳐 버렸다.

「뭐라고요! 그 신을 모르는 모함만으로는 모자랐다는 듯이 ― 이 비열한 것이 나에게 덤벼들다니! 뭐라고요! 남편의 장례를 치른 날에 내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다니! 내 빵과 소금을 얻어먹고도 나를, 내 고아들과 함께 길바닥으로 내몰다니! 나더러 어디로 가란 말이에요?」 가엾은 여자가 흐느끼고 헐떡이며 울부짖었다. 「하느님 맙소사!」 그녀가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이 땅에는 정의가 없단 말인가요? 우리 고아들이 아니면 누구를 지켜 주어야 한단 말이에요? 어디 두고 봅시다! 이 땅에는 법과 정의가 있어요, 있고말고요, 내가 그것을 찾아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라, 이 신을 모르는 것아! 폴레치카, 아이들과 함께 있어라, 나는 돌아올 테니. 나를 기다려라, 길에서 기다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에 정의가 있는지 없는지 어디 두고 봅시다!」

그러고는 마르멜라도프가 라스콜니코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 그 초록빛 숄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아직도 방을 메우고 있는 어수선하고 술 취한 세입자들의 무리를 비집고 나가,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 당장 어디로든 가서 정의를 찾겠다는 막연한 작정을 품고서. 폴레치카는 어린 두 아이를 팔에 안은 채 겁에 질려 방구석 궤짝 위에 웅크리고 앉아, 떨면서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아말리아 이바노브나는 새된 소리를 지르고 넋두리를 늘어놓으며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이든 바닥에 내던지면서 방 안을 날뛰고 다녔다. 세입자들은 두서없이 떠들어 댔다. 더러는 벌어진 일을 저마다 아는 만큼 품평했고, 더러는 서로 다투며 욕설을 퍼부었으며, 또 더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갈 때다.」 라스콜니코프는 생각했다. 「자, 소피야 세묘노브나, 이제 당신이 무슨 말을 할지 봅시다!」

그리고 그는 소냐의 셋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

  1. 1. mademoiselle ― 프랑스어로 미혼 여성을 부르는 말. 루쥔은 소냐를 고발하는 동안에만 이 프랑스어 호칭을 쓰고, 뒤에 「동정」을 베푸는 대목에서도 한 번 더 쓴다. 저본이 프랑스어 철자 그대로 두었으므로 한국어판도 음차하지 않고 원철자를 유지한다.

  2. 2. Gott der Barmherzige ― 독일어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말리아 이바노브나는 놀라거나 위급할 때면 독일어로 외친다.

  3. 3. pan은 lajdak이다 ― 폴란드어. pan은 「나리·선생」에 해당하는 높임 호칭이고, lajdak은 「파렴치한·건달」이라는 욕이다. 저본이 영어 문장 안에 폴란드어 두 낱말을 그대로 박아 두었으므로 한국어판도 같은 방식으로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