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저본에 관하여
이 책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1866)을 한국어로 옮긴 것입니다. 다만 러시아어 원전이 아니라 콘스탄스 가넷(Constance Garnett)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은 중역(重譯)입니다. 이 사실을 감추지 않고 첫 장에 밝혀 둡니다.
도스토옙스키는 1881년에, 가넷은 194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의 저작권은 모두 소멸했습니다.
가넷은 1912년에 이 소설을 영어로 옮겼고, 영어권 독자에게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알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번역에는 뚜렷한 성향이 있습니다. 러시아 화폐를 영국 동전으로 바꾸고, 러시아 속담을 영국 속담으로 갈아 끼우고, 인형극의 이름까지 영국 것으로 옮겼습니다. 정교회 기도를 가톨릭 라틴어 이름으로 부른 자리도 있습니다.
옮기면서 지킨 세 가지 원칙
하나, 없는 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가넷이 지운 것을 러시아어 원전 지식으로 되살리지 않았습니다. 예심판사 포르피리는 3부에서 라스콜니코프를 단 한 번도 이름으로 부르지 않습니다. 열 쪽에 걸친 심문이 통째로 호칭 없이 진행됩니다. 한국어는 그 빈자리에 「선생」이나 「○○ 씨」를 넣고 싶어 하는 언어입니다만,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4부에서 그가 같은 이름을 열여섯 번 부르며 들어올 때의 낙차가 살아납니다.
둘, 있는 것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줄임표는 전권에 1,767개입니다. 한 장에만 아흔 개가 몰리는 곳도 있습니다. 줄이면 페이지는 깨끗해지지만 그 문체는 사라집니다. 세 점과 네 점의 구분까지 그대로 옮겼습니다. 어긋난 자리도 어긋난 채로 두었습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어머니의 편지를 열여덟 번 인용하는데 대부분 원문과 다릅니다. 조건절을 떼어내고, 뜻을 부풀리고, 아예 없는 문장을 지어냅니다. 그 어긋남이 곧 인물 묘사이므로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셋, 번역이 저본보다 매끄러워지지 않게 했습니다. 막히는 문장을 뚫어 주고 싶은 자리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막힌 것이 저본의 상태입니다.
한 군데, 저본을 거스른 곳
가넷은 러시아어 여성형 성(姓) 어미를 전부 지웠습니다. 그대로 따르면 소냐가 「소피야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프」가 되어 한국 독자에게는 남자 이름으로 읽힙니다. 그래서 슬라브계 성에 한해 여성형을 되살렸습니다 — 마르멜라도바, 라스콜니코바. 독일계 성(리페베흐젤, 레슬리히)은 러시아어에도 여성형이 없으므로 그대로 두었습니다.
말투에 관하여
영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옮기는 사람은 대사마다 새로 판단하게 되고, 그 판단은 반드시 흔들립니다. 이 번역은 인물 관계마다 말의 등급을 미리 정해 두고 시작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어머니 풀헤리야입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굽힙니다. 그렇다고 존댓말을 쓰면 원문에 없는 계급 전도가 생기고, 평범한 반말을 쓰면 그 굽힘의 공포가 증발합니다. 그래서 반말을 유지하되 명령형을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같은 어머니가 딸 두냐에게는 즉시 명령합니다. 그 낙차가 이 인물의 전부입니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를 한 번도 부르지 않습니다. 사백 쪽에 걸쳐 호칭이 없습니다. 그 공백이 말의 등급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당신은」을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 밖에
- 각주는 옮긴이가 붙인 것입니다. 관등·화폐·도량형, 정교회 용어와 절기, 러시아 법제도, 그리고 가넷이 영국 것으로 바꿔 놓은 자리가 원래 무엇이었는지를 밝혔습니다. 인물의 심리나 상징을 해설하는 주는 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독자의 몫입니다. - 저본에 실린 가넷 자신의 주는 「영역자 가넷의 주」로 구분해 두었습니다. - 프랑스어와 독일어는 원철자를 살렸습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프랑스어를 쓰는 것은 교양의 표지가 아니라 파산의 표지이고, 뜻을 몰라야 하는 자리와 알아야 하는 자리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