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5장
레베쟈트니코프는 당황한 기색이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여기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는 별안간 라스콜니코프에게로 말을 돌렸다. 「그러니까, 제 말은 그런…… 그런 뜻이 아니라…… 그저 생각하기를……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실성했습니다.」 그는 라스콜니코프에게서 소냐 쪽으로 몸을 돌리며 불쑥 내뱉었다.
소냐가 비명을 질렀다.
「적어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요! 그 사람이 돌아왔는데 ― 어디선가 쫓겨난 듯하고, 어쩌면 맞았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입니다,…… 당신 아버지의 옛 상관에게 달려갔다가 집에 없어 만나지 못했답니다, 그자는 다른 장군 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는군요……. 글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거기로, 그 다른 장군 집으로 달려가서는, 상상해 보십시오, 어찌나 끈덕졌던지 기어이 그 상관을 만나 내고야 말았답니다, 식사 자리에서 불러내게 했다는 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물론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제 입으로 하는 말로는 그자에게 욕을 퍼붓고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는 겁니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지요……. 어떻게 붙들려 가지 않았는지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아말리아 이바노브나까지 붙들고 아무에게나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쳐서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아 그렇지, 모두가 자기를 버렸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손풍금을 들고 거리로 나가겠다고, 아이들이 노래하고 춤추고 자기도 그러겠다고, 그렇게 돈을 모으겠다고, 그리고 날마다 그 장군의 창 밑으로 가겠다고 소리칩니다…… 『아비가 관리였던 좋은 집안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꼴을 모두가 똑똑히 보게 하겠다』는 겁니다. 아이들을 계속 때려서 다들 울고 있습니다. 리다에게는 『내 마을』을 부르라 가르치고, 사내아이에게는 춤을, 폴레치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옷이란 옷은 죄다 찢어서 배우들처럼 조그만 모자를 만들고 있고, 음악 대신 양철 대야를 들고 다니며 땡땡 울리겠답니다…….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건 정말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레베쟈트니코프는 더 말을 이으려 했으나,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듣고 있던 소냐가 망토와 모자를 낚아채더니 가면서 걸치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라스콜니코프가 그 뒤를 따랐고 레베쟈트니코프가 그를 뒤따랐다.
「저 사람은 틀림없이 미쳤습니다!」 그들이 거리로 나섰을 때 그가 라스콜니코프에게 말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만,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폐병에서는 결절이 더러 뇌에 생기기도 한다더군요. 제가 의학을 하나도 모르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설득해 보려 했는데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절 이야기를 했습니까?」
「꼭 결절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알아듣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제 말은 이겁니다, 어떤 사람에게 울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면 그 사람은 울음을 그친다는 것이지요. 그건 분명합니다. 그치지 않으리라는 것이 당신의 확신입니까?」
「그렇다면 인생이 너무 쉬울 겁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대답했다.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물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로서는 이해하기가 꽤 어렵겠지요. 그런데 파리에서는 순전히 논리적 논증만으로 미친 사람을 고칠 수 있는지를 두고 진지한 실험을 해 왔다는 것을 아십니까? 얼마 전에 죽은 거기 어느 교수, 이름난 학자가 그런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생각은, 미친 사람의 신체 기관에는 실상 아무 이상이 없고 광기란 말하자면 논리적 오류, 판단의 착오, 사물에 대한 그릇된 견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차츰 그 미친 사람에게 그의 오류를 보여 주었고, 믿어지십니까, 성공했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물요법도 함께 썼으므로 그 성공이 얼마나 그 치료 덕분인지는 불확실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보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진작부터 듣고 있지 않았다. 자기가 사는 집에 이르자 그는 레베쟈트니코프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레베쟈트니코프는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둘레를 둘러보더니 서둘러 가던 길을 갔다.
라스콜니코프는 제 작은 방으로 들어가 한가운데 우뚝 섰다. 무엇하러 여기 돌아왔는가? 그는 누렇고 너덜너덜한 벽지를, 먼지를, 제 소파를 바라보았다……. 마당에서 요란하고 끊임없는 두드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누군가 망치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창가로 가서 발끝으로 서서는 골똘한 낯으로 오래도록 마당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마당은 비어 있었고 망치질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왼편 집에는 열린 창문 몇이 보였고 창턱에는 병들어 보이는 제라늄 화분이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빨래가 널려 있었다…… 그는 그 모두를 외고 있었다. 그는 돌아서서 소파에 앉았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는 이토록 무섭게 혼자라고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그는 다시 한번 느꼈다, 이제 소냐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어쩌면 그녀를 미워하게 되리라고.
「무엇하러 그 여자에게 가서 눈물을 구걸했던가? 무엇하러 그 여자의 삶에 독을 풀어야 했던가? 아, 이 비열함!」
「나는 혼자 남겠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여자는 감옥에 오지 못한다!」
오 분 뒤 그는 야릇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들었다. 야릇한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시베리아가 나을지도 모른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얼마나 오래 그렇게 앉아 막연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밀려다녔는지 그는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별안간 문이 열리고 두냐가 들어왔다. 처음에 그녀는 가만히 서서 문간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소냐에게 그랬던 것과 꼭 같이. 그러고는 들어와 어제와 같은 자리, 그를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았다. 그는 말없이, 거의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내지 마세요, 오라버니. 잠깐만 있다 갈 거예요.」 두냐가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생각에 잠겨 있었으나 엄하지 않았다. 눈은 맑고 부드러웠다. 그는 그녀 또한 사랑을 품고 자기에게 왔음을 알았다.
「오라버니, 이제 다 알아요, 다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가 죄다 설명하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어리석고 경멸스러운 혐의를 걸고 사람들이 오라버니를 들볶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말로는 위험은 없고, 그 일을 그렇게 끔찍하게 여기는 건 잘못이라고 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라버니가 얼마나 분할지 저는 충분히 알겠고, 그 분함이 영영 자국을 남길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제가 두려운 건 그거예요. 우리와 인연을 끊은 일에 대해서는 저는 오라버니를 탓하지 않아요, 감히 탓하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그 일로 나무랐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저라도 그만큼 큰 괴로움이 있었다면 모두에게서 멀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머니께는 이 일을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오라버니 이야기는 끊임없이 할 거고, 오라버니가 곧 오시겠다고 하시더라고 전하겠어요. 어머니 걱정은 마세요, 제가 마음을 놓아 드릴게요. 하지만 오라버니도 어머니를 너무 애태우지는 마세요 ― 적어도 한 번은 와 주세요, 그분이 오라버니의 어머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지금은 그저 이 말을 하려고 왔어요.」 (두냐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필요하시거나, 필요해지시면…… 제 한평생이나 무엇이든…… 부르세요, 그러면 가겠어요.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홱 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두냐!」 라스콜니코프가 그녀를 멈춰 세우고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 라주미힌, 드미트리 프로코피치는 아주 좋은 사람이다.」
두냐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래서요?」 그녀가 잠시 기다렸다가 물었다.
「유능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참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잘 있거라, 두냐.」
두냐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가 별안간 겁을 집어먹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라버니? 정말로 우리가 영영 헤어지는 건가요, 저에게 그런…… 그런 작별의 말을 주시다니?」
「신경 쓸 것 없다……. 잘 가거라.」
그는 돌아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는 잠시 서서 불안하게 그를 바라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진 채 나갔다.
아니, 그는 그녀에게 차갑지 않았다. 그녀를 품에 안고 작별하고 싶은, 심지어 말해 버리고 싶은 한순간이 (바로 그 마지막 순간이) 있었으나 그는 그녀의 손을 만지는 것조차 감히 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 애는 내가 저를 껴안았던 것을 떠올리며 몸서리칠 테고, 내가 제 입맞춤을 훔쳤다고 여기겠지.」
「그리고 그 애가 그 시험을 견뎌 내겠는가?」 그는 몇 분 뒤 혼잣말로 이어 갔다. 「아니, 견디지 못한다. 그런 처녀들은 견디지 못한다! 결코 견디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는 소냐를 생각했다.
창에서 신선한 공기 한 줄기가 들어왔다. 햇빛이 스러지고 있었다. 그는 모자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물론 그는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 헤아릴 수 없었고 헤아리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끊임없는 불안과 마음의 고통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고열로 드러눕지 않았다면 그것은 어쩌면 바로 이 끊임없는 내적 긴장이 그를 제 발로 서 있게 하고 정신을 지니고 있게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인위적인 흥분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그는 정처 없이 헤맸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근래 들어 어떤 특별한 종류의 비참함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사무치는 것도 날카로운 것도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영속의 느낌, 영원의 느낌이 있었다. 그것은 이 차갑고 납덩이 같은 비참함으로 채워질 가망 없는 세월의 맛을, 「사방 한 야드의 자리」에서의 영원의 맛을 미리 보여 주었다. 저녁 무렵이면 이 감각이 대개 더 무겁게 그를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이 얼빠진, 순전히 육체적인 허약함, 해 지는 것 따위에 매인 허약함 때문에 어리석은 짓을 아니 할 수가 없구나! 소냐에게만이 아니라 두냐에게도 가게 되겠지.」 그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레베쟈트니코프가 달려왔다.
「글쎄, 당신을 찾아 방까지 갔었습니다. 글쎄, 그 사람이 제 계획을 실행에 옮겨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와 제가 그들을 찾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아이들을 춤추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울고 있고요. 네거리마다 가게 앞마다 멈춰 서는데, 바보들이 떼를 지어 뒤를 따라다닙니다. 어서 갑시다!」
「그러면 소냐는요?」 라스콜니코프가 레베쟈트니코프를 뒤따라 서두르며 불안하게 물었다.
「그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그렇다는 겁니다, 하기야 소피야 세묘노브나도 제정신이 아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아주 제정신이 아닙니다. 정말이지 완전히 미쳤습니다. 경찰서로 끌려갈 겁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이 가시겠지요……. 지금은 운하 기슭 다리 근처에 있습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 집에서 멀지 않은,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운하 기슭 다리 근처, 소냐가 세 들어 사는 집에서 두 집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는데 주로 거리의 아이들이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쉬고 갈라진 목소리가 다리에서도 들려왔고, 그것은 과연 거리의 구경꾼을 끌어모을 만한 기이한 광경이었다. 초록 숄을 두른 낡은 옷차림에 한쪽이 흉하게 짜부라진 찢어진 밀짚모자를 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정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쳐 숨을 헐떡였다. 여위고 폐병 든 얼굴은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워 보였고, 실제로 볕 아래 바깥에 나오면 폐병 든 사람은 집 안에 있을 때보다 언제나 더 나빠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그녀의 흥분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짜증은 시시각각 더 격해졌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달려들어 소리치고 달래고, 구경꾼 앞에서 어떻게 춤추고 무엇을 불러야 하는지 일러 주고,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데 절망하여 때렸다……. 그러다가는 구경꾼에게 달려들곤 했다. 점잖게 차려입은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보는 것이 눈에 띄면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에게 호소했다, 「점잖은, 가히 귀족이라 할 집안」의 이 아이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라고. 구경꾼 속에서 웃음이나 비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당장 그 비웃는 자들에게 달려들어 다투기 시작했다. 더러는 웃고 더러는 고개를 저었으나, 겁에 질린 아이들을 데리고 선 미친 여자의 모습에 누구나 호기심을 느꼈다. 레베쟈트니코프가 말한 프라이팬은 거기 없었다, 적어도 라스콜니코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팬을 두드리는 대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리다와 콜랴를 춤추게 하고 폴레치카에게 노래를 시키면서 여윈 두 손으로 박자를 쳤다. 그녀 자신도 노래를 거들었으나 두 번째 음에서 무서운 기침에 무너져, 절망 속에 욕설을 뱉고 눈물까지 흘렸다. 그녀를 가장 미치게 한 것은 콜랴와 리다의 울음과 공포였다. 아이들을 거리의 노래꾼처럼 차려입히려 애쓴 흔적이 있었다. 사내아이는 튀르크 사람처럼 보이라고 붉고 흰 무언가로 만든 두건을 쓰고 있었다. 리다에게는 입힐 것이 없어 그저 붉은 뜨개 모자를, 아니 마르멜라도프의 것이었던 잠자리 모자를 썼는데, 거기에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할머니 것이었다가 집안의 재산으로 간직되어 온 부러진 흰 타조 깃 한 조각이 달려 있었다. 폴레치카는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 아이는 겁먹은 당혹 속에 어머니를 바라보며 곁에 붙어 서서 눈물을 감추고 있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상태를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불안하게 둘레를 둘러보았다. 거리와 사람들이 몹시 무서웠던 것이다. 소냐는 울며 집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하면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따라다녔으나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설득될 사람이 아니었다.
「그만해라, 소냐, 그만해.」 그녀가 빠르게 말하며 헐떡이고 기침하며 외쳤다. 「네가 무엇을 청하는지 너는 모른다, 너는 어린애 같구나! 내가 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그 술 취한 독일 여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모두가, 온 페테르부르크가 보라지, 아비가 평생을 진실과 충성으로 봉직하다 가히 직무 중에 죽었다 할 명예로운 사람이었던 아이들이 거리에서 구걸하는 것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이제 이 허황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 몹쓸 장군이 그걸 보게 하자! 그리고 너는 어리석다, 소냐.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 그것부터 말해 봐라. 우리는 너를 충분히 괴롭혔다, 나는 더 그러지 않겠다! 아, 로지온 로마노비치, 당신이군요!」 그녀는 라스콜니코프를 보고 그에게 달려가며 외쳤다. 「이 어리석은 애한테 좀 설명해 주세요, 이보다 나은 수는 없다고요! 손풍금쟁이도 벌어먹고 사는데,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거지 꼴이 된 명예롭고 상을 당한 집안이라는 것을 누구나 대번에 알아볼 거예요. 그리고 그 장군은 자리를 잃을 거예요, 두고 보세요! 우리는 날마다 그 사람 창 밑에서 공연을 할 거고, 황제께서 지나가시면 저는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앞에 세워 그분께 보여 드리며 말하겠어요, 『아버지시여, 저희를 지켜 주소서.』 그분은 고아의 아버지시고 자비로우시니 우리를 보호하실 거예요, 두고 보세요, 그리고 그 몹쓸 장군은……. 리다, tenez vous droite!(똑바로 서 있거라!) 콜랴, 너는 다시 춤을 출 거다. 왜 훌쩍이느냐? 또 훌쩍이는구나! 무엇이 무섭다는 거냐, 바보야? 맙소사, 얘들을 어쩌면 좋습니까, 로지온 로마노비치? 얘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신다면!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그녀는, 저도 거의 울면서 ― 그렇다고 끊임없이 빠르게 흐르는 말이 멎지는 않았다 ― 울고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라스콜니코프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녀를 설득해 보았고, 심지어 그녀의 허영을 건드릴 요량으로, 기숙학교의 교장이 되려는 사람이 손풍금쟁이처럼 거리를 떠도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까지 말했다.
「기숙학교라니, 하하하! 뜬구름 잡는 소리지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외쳤고 그 웃음은 기침으로 끝났다. 「아니에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그 꿈은 끝났어요! 다들 우리를 버렸어요!…… 그리고 그 장군은……. 아시겠어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제가 그자에게 잉크병을 던졌답니다 ― 마침 대기실에 이름을 적는 종이 옆에 놓여 있었거든요. 제 이름을 적고 그것을 던지고 달아났지요. 아, 악당들, 악당들! 하지만 그자들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 제가 손수 아이들을 먹여 살리겠어요,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겠어요! 저 애는 우리 때문에 견딜 만큼 견뎠어요!」 그녀가 소냐를 가리켰다. 「폴레치카, 얼마나 모았느냐? 보여 다오! 뭐라고, 겨우 두 파딩1이라고? 아, 인색한 것들! 아무것도 주지 않고 뒤만 따라다니며 혀를 내미는구나. 저기, 저 멍청이는 무엇이 우스워서 웃는 거야?」 (그녀는 구경꾼 속의 한 사내를 가리켰다.) 「이게 다 여기 이 콜랴가 어리석어서야. 이 아이 때문에 이렇게 성가시구나. 무엇을 갖고 싶으냐, 폴레치카? 프랑스어로 말해 보아라, parlez-moi français. 아니, 내가 가르쳐 주었잖느냐, 너는 몇 마디를 알지 않느냐. 그러지 않고서야 너희가 좋은 집안의 잘 자란 아이들이지 여느 손풍금쟁이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보이겠느냐? 우리는 거리에서 인형극2 따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점잖은 노래를 부르려는 거다……. 아, 그래,…… 우리가 무엇을 부르지? 너희가 자꾸 내 정신을 흩뜨리는구나, 하지만 우리는…… 보세요, 로지온 로마노비치, 우리는 여기 서서 부를 것을 찾아 돈을 모으고, 콜랴가 거기 맞춰 춤출 것을 찾고 있는 거예요……. 아시다시피 우리 공연은 죄다 즉흥이니까요……. 우리는 그것을 의논하고 낱낱이 익혀 두어야 해요, 그런 다음 넵스키로 갈 거예요, 거기엔 상류 사회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 우리는 대번에 눈에 띌 거예요. 리다는 『내 마을』밖에 몰라요, 『내 마을』 하나뿐인데 그건 누구나 부르지요. 우리는 훨씬 더 점잖은 것을 불러야 해요……. 자, 무엇을 생각해 냈느냐, 폴레치카? 네가 어미를 도와주기만 한다면! 내 기억이 아주 가 버렸구나, 그러지 않았다면 무엇이든 생각해 냈을 텐데. 『경기병』은 정말 부를 수 없고. 아, 프랑스어로 부르자, 『Cinq sous』3 말이다, 내가 가르쳐 주었지, 가르쳐 주었어. 그리고 프랑스어니까 사람들이 대번에 너희가 좋은 집안 아이들인 줄 알아볼 테고, 그러면 훨씬 더 가슴에 와닿을 거야……. 『Marlborough s’en va-t-en guerre』4를 불러도 좋겠구나, 그건 아주 어린애 노래이고 귀족 집안이면 어디서나 자장가로 부르는 것이니까.」
「Marlborough s’en va-t-en guerre Ne sait quand reviendra……」 그녀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니다, 『Cinq sous』를 부르는 편이 낫겠어. 자, 콜랴, 두 손을 허리에 얹어라, 어서. 그리고 리다, 너는 반대쪽으로 계속 돌아라, 폴레치카와 나는 노래하며 손뼉을 치겠다!」
「Cinq sous, cinq sous Pour monter notre menage.」5
(기침, 기침, 기침!) 「옷매무새를 바로 해라, 폴레치카, 어깨에서 흘러내렸구나.」 그녀가 기침으로 헐떡이며 일렀다. 「지금은 특히 얌전하고 점잖게 굴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좋은 집안 아이인 줄 다들 알아본다. 내가 그때 말했지, 몸판을 더 길게, 두 폭으로 마르라고. 네 탓이다, 소냐, 더 짧게 하라고 훈수를 두더니, 이제 보아라, 애 꼴이 아주 흉해지지 않았느냐……. 아니, 너희 또 우는구나! 무슨 일이냐, 바보들아? 자, 콜랴, 시작해라. 어서, 어서! 아, 견딜 수 없는 아이로구나!」
「Cinq sous, cinq sous.」
「또 순경이야! 뭘 원하는 거야?」
과연 순경 하나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복 제복에 외투를 걸친 신사 하나가 ― 목에 훈장을 단 쉰 줄의 점잖아 보이는 관리로, 그것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기쁘게 했고 순경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 다가와 말없이 초록빛 3루블 지폐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의 얼굴에는 진정한 동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그것을 받고 정중한, 심지어 의례적이라 할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존경하는 선생.」 그녀가 도도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사유로 말씀드리면 (돈을 받아라, 폴레치카. 곤경에 빠진 가난한 양갓집 부인을 기꺼이 도우려는 너그럽고 명예로운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보아라). 보시다시피, 존경하는 선생, 이 아이들은 좋은 집안의 ― 가히 귀족의 연줄이 닿는다 하여도 좋을 ― 고아들입니다. 그런데 그 몹쓸 장군은 앉아서 멧닭 고기를 먹으면서…… 제가 성가시게 군다고 발을 굴렀습니다. 『각하.』 제가 말했습니다. 『고아들을 지켜 주십시오, 각하께서는 제 죽은 남편 세묜 자하로비치를 아셨고, 그가 죽은 바로 그날 가장 비열한 악당이 그의 하나뿐인 딸을 중상했습니다.』…… 또 저 순경이! 저를 보호해 주세요.」 그녀가 관리에게 외쳤다. 「어째서 저 순경이 저에게 다가오는 거예요? 우리는 방금 다른 순경 하나한테서 달아나 온 참입니다. 뭘 원하는 거야, 이 멍청아?」
「거리에서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소란을 피우시면 안 됩니다.」
「소란을 피우는 건 당신이잖아. 내가 손풍금을 돌리는 것과 똑같은 일인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손풍금은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부인은 허가가 없고,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계십니다. 어디 사십니까?」
「뭐라고, 허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울부짖었다. 「나는 오늘 남편을 묻었어. 무슨 허가가 필요하다는 거야?」
「진정하십시오, 부인, 진정하십시오.」 관리가 입을 열었다. 「가시지요,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런 사람들 틈은 부인께서 계실 곳이 아닙니다. 편찮으시지 않습니까.」
「존경하는 선생, 존경하는 선생, 모르셔서 그럽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넵스키로 갈 겁니다……. 소냐, 소냐! 그 애는 어디 있지? 저 애도 울고 있구나! 다들 왜들 그러느냐? 콜랴, 리다, 어디로 가는 거냐?」 그녀가 별안간 질겁하여 외쳤다. 「아, 어리석은 것들! 콜랴, 리다, 저것들이 어디로 가는 거야?……」
콜랴와 리다는 사람들과 어머니의 미친 짓에 넋이 나가 있다가, 자기들을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순경을 보자 별안간 서로 손을 맞잡고 달아나 버렸다. 가엾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울부짖으며 그 뒤를 쫓았다. 울면서 숨을 헐떡이며 달리는 그녀는 가엾고 볼썽사나운 꼴이었다. 소냐와 폴레치카가 그 뒤를 따라 달려갔다.
「데려와라, 데려오너라, 소냐! 아, 어리석고 은혜 모르는 것들!…… 폴레치카! 저것들을 붙잡아라……. 다 너희를 위해서 내가……」
그녀는 달리다 발이 걸려 넘어졌다.
「다치셨어요, 피가 나요! 아이고!」 소냐가 그녀 위로 몸을 굽히며 외쳤다.
모두 달려와 둘레에 몰려들었다. 라스콜니코프와 레베쟈트니코프가 제일 먼저 그녀 곁에 이르렀고 관리도 서둘러 왔으며, 그 뒤로 순경이 성가신 일이 되겠구나 싶어 못 견디겠다는 몸짓으로 「아이고, 귀찮아!」 하고 중얼거리며 따라왔다.
「비키시오! 비켜요!」 그가 밀려드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죽어 가네.」 누군가 외쳤다.
「실성했다니까.」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 여자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계집아이와 사내아이는 붙잡았나? 데려오고 있구먼, 큰애가 붙들었어……. 아이고, 저 말썽꾸러기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찬찬히 살펴보고서야 사람들은 소냐가 생각한 것처럼 그녀가 돌에 부딪혀 다친 것이 아니라, 포도를 붉게 물들인 그 피가 그녀의 가슴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전에도 저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관리가 라스콜니코프와 레베쟈트니코프에게 중얼거렸다. 「저건 폐병입니다. 피가 쏟아져 환자를 질식시키지요. 얼마 전에 제 친척에게서도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거의 1파인트나 되는 피가 순식간에……. 그렇지만 어쩌면 좋습니까? 저분은 죽어 갑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제 방으로요!」 소냐가 애원했다. 「제가 여기 살아요!…… 보세요, 저 집이에요, 여기서 두 번째……. 저에게 와 주세요, 어서요.」 그녀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몸을 돌렸다. 「의사를 불러 주세요! 아이고!」
관리가 애쓴 덕에 이 안이 받아들여졌고 순경까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를 옮기는 것을 거들었다. 그녀는 거의 의식이 없는 채로 소냐의 방으로 옮겨져 침대에 뉘어졌다. 피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으나 그녀는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라스콜니코프와 레베쟈트니코프와 관리가 소냐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고, 문 앞까지 따라온 사람들을 먼저 몰아낸 순경이 그들을 뒤따랐다. 폴레치카가 떨며 울고 있는 콜랴와 리다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카페르나우모프네 방에서도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 집주인은 수염이 나고 머리칼이 솔처럼 뻗친, 다리를 절고 한쪽 눈이 먼 기이한 생김새의 사내였고, 그 아내는 언제나 겁에 질린 표정을 한 여자였으며, 입을 헤벌린 채 놀란 얼굴을 한 아이 몇도 있었다. 그들 가운데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별안간 모습을 드러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었고 사람들 속에서 그를 보지 못했던 터라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의사와 사제 이야기가 나왔다. 관리는 이제 의사를 부르기에는 늦은 것 같다고 라스콜니코프에게 속삭였으나 그래도 부르러 보내라고 일렀다. 카페르나우모프가 손수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숨을 돌렸다. 피가 한동안 멎었다. 그녀는 병들었으나 골똘하고 꿰뚫어 보는 눈으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소냐는 창백하게 떨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일으켜 달라고 청했다. 사람들이 양쪽에서 받쳐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
「아이들은 어디 있느냐?」 그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데려왔구나, 폴레치카? 아, 어리석은 것들! 왜 달아났더냐……. 윽!」
또다시 그녀의 마른 입술이 피로 덮였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둘레를 둘러보았다.
「이런 데서 살고 있었구나, 소냐! 네 방에 내가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었지.」
그녀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너를 망쳐 놓았다, 소냐. 폴레치카, 리다, 콜랴, 이리 오너라! 자, 여기 있다, 소냐, 다 데려가라! 내가 너에게 넘긴다, 나는 할 만큼 했다! 무도회는 끝났다.」 (기침!) 「눕혀 다오, 편히 죽게 해 다오.」
사람들이 그녀를 베개 위에 도로 뉘었다.
「뭐, 사제? 나는 싫다. 너희에게는 남는 1루블이 없지 않으냐. 나에게는 죄가 없다. 하느님은 그런 것 없이도 나를 용서하셔야 한다.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분은 아신다……. 그리고 그분이 나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나는 상관없다!」
그녀는 점점 더 불안한 섬망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따금 몸을 떨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잠시 사람들을 알아보았으나 이내 다시 섬망에 빠져들었다. 숨소리는 거칠고 힘겨웠으며 목에서 가르랑거리는 소리 같은 것이 났다.
「제가 그자에게 말했습니다, 각하.」 그녀가 한 마디 한 마디 뒤에 숨을 몰아쉬며 내뱉었다. 「그 아말리아 루드비고브나가, 아! 리다, 콜랴, 두 손을 허리에, 어서! Glissez, glissez! pas de basque!(미끄러지듯, 미끄러지듯! 바스크 스텝으로!) 뒤꿈치로 박자를 쳐라, 우아한 아이가 되어야지!」
「Du hast Diamanten und Perlen」6
「다음은 무엇이더라? 그게 부를 만한 것이다.」
「Du hast die schönsten Augen Mädchen, was willst du mehr?」7
「무슨 생각이람! Was willst du mehr? 저 바보가 별것을 다 지어내는구나! 아, 그래!」
「한낮의 뙤약볕 속, 다게스탄의 골짜기에서.」
「아, 내가 그것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나는 그 노래를 미치도록 좋아했다, 폴레치카! 네 아버지가, 알겠느냐, 우리가 약혼했을 때 그것을 부르곤 했지……. 아, 그 시절! 아, 우리가 부를 것은 바로 그거다! 어떻게 되더라? 잊어버렸구나. 좀 일깨워 다오! 어떻게 되더라?」
그녀는 몹시 흥분하여 몸을 일으키려 했다. 마침내 끔찍하게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한 마디마다 비명을 지르고 숨을 몰아쉬며, 점점 커지는 공포의 낯빛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낮의 뙤약볕 속!…… 골짜기에서!…… 다게스탄의!…… 가슴에 납을 박은 채!……」
「각하!」 그녀가 가슴을 찢는 비명과 쏟아지는 눈물로 별안간 울부짖었다. 「고아들을 지켜 주십시오! 각하께서는 저 아이들 아비의 손님이셨습니다…… 가히 귀족이라 할…….」 그녀는 흠칫하며 정신을 차리고 일종의 공포에 질려 모두를 둘러보았으나 이내 소냐를 알아보았다.
「소냐, 소냐!」 그녀가 거기 그 애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라도 한 듯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말했다. 「소냐, 얘야, 너도 여기 있구나?」
사람들이 그녀를 다시 일으켰다.
「그만! 끝났다! 잘 있거라, 가엾은 것! 나는 끝장이다! 나는 부서졌다!」 그녀가 원한에 찬 절망으로 외쳤고, 그 머리가 베개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
그녀는 다시 의식을 잃었으나 이번에는 오래가지 않았다. 창백하고 누렇게 여윈 얼굴이 뒤로 떨어지고 입이 벌어졌으며 다리가 경련하듯 움직이더니, 깊고 깊은 한숨을 쉬고 숨을 거두었다.
소냐가 그녀 위로 엎어져 두 팔로 껴안고는, 죽은 여자의 여윈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폴레치카는 어머니의 발치에 몸을 던져 그 발에 입 맞추며 격렬하게 울었다. 콜랴와 리다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으나 무언가 무서운 일이라는 느낌은 있었다. 둘은 서로의 작은 어깨에 손을 얹고 마주 바라보다가, 동시에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둘 다 아직 그 차림새 그대로였다. 하나는 두건을, 하나는 타조 깃 달린 모자를 쓴 채였다.
그런데 「표창장」이 어떻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곁 침대 위에 놓여 있게 되었을까? 그것은 베개 옆에 놓여 있었고 라스콜니코프가 그것을 보았다.
그는 창가로 걸어갔다. 레베쟈트니코프가 그에게 깡충 다가왔다.
「죽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로지온 로마노비치, 두어 마디 나눌 일이 있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레베쟈트니코프는 즉시 자리를 내주고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를 더 멀찍이 데려갔다.
「제가 모든 절차를, 장례며 그런 것을 맡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건 돈 문제인데, 제가 말씀드렸듯이 저에게는 남아도는 돈이 있습니다. 저 어린것 둘과 폴레치카를 좋은 고아원에 넣고, 성년이 될 때 각자에게 1500루블씩 돌아가도록 정해 놓겠습니다. 그러면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그 아이들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리고 그 여자도 진창에서 끌어내겠습니다, 착한 처녀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전해 주십시오, 제가 그분의 만 루블을 그렇게 쓰고 있다고.」
「그런 자선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라스콜니코프가 물었다.
「아! 의심 많은 분이시군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웃었다. 「그 돈은 저에게 필요 없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저 인정에서 하는 일이라고 인정해 주시지 못하겠습니까? 저 여자는 『이 한 마리』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는 죽은 여자가 누워 있는 구석을 가리켰다.) 「어느 늙은 전당포 노파처럼 말입니다. 자, 당신도 동의하실 겁니다, 루쥔이 계속 살아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입니까, 아니면 저 여자가 죽는 것입니까? 그리고 제가 돕지 않는다면 폴레치카도 같은 길을 갈 겁니다.」
그는 어딘가 유쾌하게 눈을 찡긋하는 듯한 능청으로 이 말을 하면서 눈을 라스콜니코프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했던 제 말을 듣고 하얗게 질려 얼어붙었다. 그는 얼른 물러서며 사납게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속삭였다.
「아니, 저는 여기 벽 너머 레슬리히 부인 집에 묵고 있습니다. 여기가 카페르나우모프네이고 저기가 레슬리히 부인 집인데, 그분은 저의 오래고 각별한 벗이지요. 저는 이웃입니다.」
「당신이?」
「그렇습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웃음으로 몸을 떨며 말을 이었다. 「명예를 걸고 장담합니다, 친애하는 로지온 로마노비치, 당신은 저에게 어마어마한 흥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벗이 될 거라고, 제가 그렇게 예언했다고. 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얼마나 무던한 사람인지 보시게 될 겁니다. 저와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거예요!」
주
1. 파딩(farthing) ― 4분의 1페니에 해당하는 영국의 최저액 동전. 저본은 러시아 화폐 코페이카가 놓일 자리에 영국 동전을 넣어 옮겼고, 그래서 이 책에는 루블·코페이카와 파딩이 뒤섞여 나온다.
2. 인형극 ― 저본은 영국 인형극 『펀치와 주디』의 이름을 썼다. 러시아의 페트루시카 인형극을 영국 것으로 바꾸어 놓은 자리다.
3. Cinq sous ― 「5수(五銖)」. 수(sou)는 프랑스의 잔돈 단위다. 당시 프랑스 통속 가극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제목으로, 이어지는 대목에 그 첫 두 행이 나온다.
4. Marlborough s’en va-t-en guerre ― 「말버러가 전쟁터로 떠나네」. 이어 부르는 둘째 행 Ne sait quand reviendra는 「언제 돌아올지 알지 못하네」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오래된 동요이자 자장가다.
5. Cinq sous, cinq sous / Pour monter notre menage ― 「5수, 5수 / 우리 살림을 차리기 위해」라는 뜻.
6. Du hast Diamanten und Perlen ― 「그대에게는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있고」.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독일 가곡의 첫 행이다.
7. Du hast die schönsten Augen / Mädchen, was willst du mehr? ― 「그대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눈이 있으니 / 아가씨여, 무엇을 더 바라는가?」라는 뜻. 바로 다음 문단에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방금 자기가 부른 이 독일어 구절을 그대로 되받아 비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