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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차라투스트라가 마술사에게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가 가던 길가에 또 누군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으니, 검은 옷차림에 여위고 창백한 얼굴을 한 키 큰 사내였다. 이자가 그의 비위를 몹시 거슬렀다. "슬프다." 그는 제 마음에 대고 말했다. "저기 두건을 뒤집어쓴 비탄이 앉아 있구나, 내 보기에 성직자 부류다. 그런 자들이 내 나라에서 무엇을 하려는가?"

"이게 무슨 일인가! 저 마술사에게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또 다른 흑마술사와 길에서 마주쳐야 한단 말인가……"

"……손을 얹어 병을 고친다는 어느 요술사, 신의 은총으로 기적을 행한다는 음침한 자, 악마나 물어 갔으면 싶은, 기름 부음을 받은 세상의 비방자 말이다!"

"그러나 악마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법이 없으니, 이 빌어먹을 난쟁이 절름발이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조바심치며 속으로 저주를 퍼붓고는 눈길을 돌린 채 검은 사내 곁을 슬그머니 빠져나갈 궁리를 했으나, 보라, 일은 딴판으로 흘러갔다. 바로 그 순간 앉아 있던 자가 벌써 그를 알아보았고, 뜻밖의 행운을 만난 자처럼 벌떡 일어나 차라투스트라에게로 곧장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대가 누구이든, 나그네여." 그가 말했다. "길 잃은 자를, 찾아 헤매는 자를, 여기서 자칫 해를 입기 쉬운 늙은이를 도와 다오!"

"이곳 세상은 내게 낯설고 멀며 사나운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는데, 나를 지켜 줄 수 있었을 자, 그 자신이 이제는 없다."

"나는 제 숲에 홀로 있느라 오늘날 온 세상이 아는 일을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한 성자이자 은자, 곧 마지막 경건한 인간을 찾고 있었다."

"오늘날 온 세상이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혹시 온 세상이 한때 믿었던 옛 신이 이제 더는 살아 있지 않다는 것 말인가?"

"그대가 말하였도다." 노인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이 옛 신을 그의 마지막 시간까지 섬겼다."

"그러나 이제 나는 퇴직한 몸이니, 섬길 주인은 없는데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않고, 추억에 잠길 때가 아니면 한시도 즐겁지 않다."

"그래서 나는 늙은 교황이자 교부에게 걸맞은 축제를 마침내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베풀어 보려고 이 산에 올라왔으니, 알아 두라, 나는 마지막 교황이다! 경건한 추억과 예배로 드리는 축제 말이다."

"그런데 이제 가장 경건한 인간, 노래하고 웅얼거리며 제 신을 쉼 없이 찬양하던 숲속의 그 성자마저 죽고 없다."

"그의 오두막을 찾아냈을 때 그는 이미 없었고, 대신 늑대 두 마리가 그 안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부짖고 있었으니, 모든 짐승이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도망쳐 나왔다."

"그렇다면 나는 헛되이 이 숲과 산에 왔단 말인가? 그때 내 마음은 다른 한 사람을, 신을 믿지 않는 모든 자 가운데 가장 경건한 자를 찾기로, 차라투스트라를 찾기로 결심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 제 앞에 선 자를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는데, 차라투스트라는 늙은 교황의 손을 붙잡더니 감탄하며 오랫동안 그 손을 들여다보았다.

"이것 보라, 그대 존귀한 자여." 그가 이윽고 말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긴 손인가! 언제나 축복을 나누어 주던 자의 손이로구나. 그런데 이제 이 손이 그대가 찾는 자를, 곧 나 차라투스트라를 붙들고 있다."

"내가 바로 그 신 없는 차라투스트라다. '누가 나보다 더 신이 없는가? 그런 자가 있다면 나는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기뻐하리라.' 하고 말하는 자 말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 늙은 교황의 생각과 그 생각 뒤에 숨은 생각까지 눈빛으로 꿰뚫었다. 마침내 교황이 입을 열었다.

"그를 가장 사랑하고 가장 온전히 소유했던 자가, 이제는 그를 가장 크게 잃기도 했다……"

"……보라, 우리 둘 가운데 이제는 아마 나 자신이 더 신 없는 자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누가 그것을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마지막까지 그를 섬겼으니," 깊은 침묵 끝에 차라투스트라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않는가? 사람들 말처럼, 동정이 그의 목을 졸랐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가 인간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인간을 향한 사랑이 그의 지옥이 되고 마침내 그의 죽음이 된 것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

그러나 늙은 교황은 대답하지 않고, 아프고 어두운 얼굴로 겁먹은 듯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를 떠나보내라." 한참 생각에 잠겼던 차라투스트라가 여전히 노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를 떠나보내라, 그는 가 버렸다. 그대가 이 죽은 자를 두고 좋은 말만 하는 것이 그대에게 영예가 되기는 하나, 그대도 나 못지않게 그가 누구였는지 알고, 그가 기이한 길을 걸었다는 것도 안다."

"우리 세 눈끼리만 하는 말인데." 늙은 교황이 흥이 나서 말했다(그는 한쪽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차라투스트라 자신보다 더 깨어 있고, 또 그래도 된다."

"나의 사랑은 오랜 세월 그를 섬겼고, 나의 의지는 그의 모든 의지를 좇아갔다. 그런데 좋은 종은 모든 것을 알며, 제 주인이 스스로에게조차 숨기는 것도 여러 가지 안다."

"그는 스스로 숨는 신, 은밀함으로 가득한 신이었다. 진실로, 그는 아들 하나를 얻는 데조차 샛길로 몰래 숨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신앙의 문간에는 간음이 서 있다."

"그를 사랑의 신이라 찬양하는 자는 사랑 그 자체를 넉넉히 높이 여기지 않는다. 이 신은 심판자도 되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보상과 보응의 저편에서 사랑한다."

"동방에서 온 이 신은 젊었을 때 모질고 복수심에 불탔으며, 제가 총애하는 자들을 즐겁게 하려고 지옥을 지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늙고 물러지고 푸석푸석해지고 동정심이 많아져서,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를 더 닮았고, 무엇보다도 비틀거리는 늙은 할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

"그렇게 그는 시든 채 난롯가 구석에 앉아 약한 다리를 한탄하며 세상에 지치고 의지에 지쳐 지내다가, 어느 날 너무나 큰 제 동정에 숨이 막혀 죽었다."

"그대 늙은 교황이여." 이때 차라투스트라가 끼어들었다. "그대는 그것을 제 눈으로 보았는가? 일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도, 그리고 달리도. 신들이 죽을 때는 언제나 여러 가지 죽음을 죽는다."

"그러나 좋다! 이렇든 저렇든,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든, 그는 가 버렸다! 그는 내 귀와 내 눈의 취향에 거슬렸다. 그보다 더 나쁜 말은 그를 두고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랑하노라, 밝게 바라보고 정직하게 말하는 모든 것을. 그러나 그는……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 늙은 성직자여, 그에게는 그대 같은 부류의 무언가가, 성직자 부류의 무언가가 있었으니…… 그는 뜻이 여러 갈래였다."

"그는 뜻이 흐릿하기도 했다. 우리가 자기를 잘못 알아들었다고, 이 씩씩대는 분노꾼은 우리에게 얼마나 노여워했던가! 그런데 그는 왜 좀 더 깔끔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탓이 우리 귀에 있었다면, 왜 그는 자기 말을 잘못 알아듣는 귀를 우리에게 주었는가? 우리 귀에 진흙이 들어 있었다면, 좋다! 누가 그것을 넣었는가?"

"이 토기장이는 배움을 다 마치지 못해서 너무 많은 것을 망쳤다! 그런데 자기가 빚은 그릇과 자기가 지은 피조물이 제 손에서 잘못 빚어져 나왔다고 해서 그것들에게 복수했다는 것, 그것은 좋은 취향을 거스르는 죄였다."

"경건에도 좋은 취향이 있으니, 그 취향이 마침내 말했다. '그런 신은 치워 버려라! 차라리 신이 없는 편이 낫다, 차라리 제 손으로 운명을 짓는 편이, 차라리 바보가 되는 편이, 차라리 스스로 신이 되는 편이 낫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때 늙은 교황이 귀를 쫑긋 세우고 말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런 불신앙을 품고 있다니, 그대는 그대가 믿는 것보다 더 경건하구나! 그대 안의 어떤 신이 그대를 그대의 신 없음으로 개종시켰다."

"그대가 더는 어떤 신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대의 경건함 그 자체가 아닌가? 그리고 그대의 지나치게 큰 정직은 그대를 선과 악의 저편으로까지 데려가 버리리라!"

"그런데 보라, 그대 몫으로 무엇이 아껴 남겨져 있었는가? 그대에게는 영원 전부터 축복하도록 예정된 눈과 손과 입이 있다. 사람은 손만으로 축복하지 않는다."

"그대가 가장 신 없는 자가 되려 한다 해도, 그대 곁에서 나는 오랜 축복에서 풍겨 나는 은밀한 분향 내음과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니, 그 냄새에 내 마음은 좋기도 하고 쓰리기도 하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단 하룻밤만 그대의 손님이 되게 해 다오! 이제 이 땅 어디에서도 그대 곁보다 더 편안한 곳은 없다!"

"아멘! 그리될지어다!" 차라투스트라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저 위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에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이 있다."

"진실로, 그대 존귀한 자여, 나는 경건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니 내가 직접 그대를 그리로 기꺼이 데려다주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절박한 외침 하나가 나를 급히 그대에게서 불러낸다."

"내 영역 안에서는 누구도 해를 입어서는 안 되니, 내 동굴은 좋은 항구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슬퍼하는 자를 누구든 다시 든든한 땅 위에, 든든한 두 다리로 세워 주고 싶다."

"그러나 그대의 우울을 누가 그대의 어깨에서 내려 줄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는 나는 너무 약하다. 진실로, 누군가 그대의 신을 다시 깨워 일으켜 줄 때까지 우리는 오래도록 기다려야 하리라."

"이 옛 신은 더는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속속들이 죽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