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의 서설
1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신과 고독을 누리며 열 해 동안 싫증을 몰랐다. 그러나 마침내 그의 마음이 변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아침노을과 함께 일어나 해 앞으로 나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비추어 줄 자들이 없다면 그대의 행복이 다 무엇이겠는가!"
"열 해 동안 그대는 이곳 내 동굴까지 올라왔으나, 내가 없었다면, 나의 독수리와 나의 뱀이 없었다면, 그대는 그대의 빛에도 이 길에도 진작 물렸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마다 그대를 기다렸다가 그대가 넘치도록 지닌 것을 받아 주었고, 그 보답으로 그대를 축복했다."
"보라! 나는 내 지혜에 물렸다. 꿀을 너무 많이 모은 벌처럼. 이제 내게는 받으려고 내미는 손들이 필요하다."
"인간들 가운데 지혜로운 자들이 다시 한번 제 어리석음을 기뻐하고 가난한 자들이 한번쯤은 제 풍요를 기뻐하게 될 때까지, 나는 베풀고 나누어 주고 싶다."
"그러려면 나도, 저녁마다 바다 너머로 넘어가 지하 세계에까지 빛을 가져다주는 그대처럼,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대 넘치도록 풍요로운 별이여!"
"내가 내려가려는 저 인간들의 말로 하자면, 나도 그대처럼 몰락해야 한다."1
"그러니 나를 축복하라, 너무나 큰 행복마저 시샘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그대 고요한 눈이여!"
"넘쳐흐르려 하는 이 잔을 축복하라. 잔에서 금빛 물이 흘러나와, 그대 환희를 되비추는 빛을 온 누리로 실어 나르도록!"
"보라! 이 잔은 다시 비워지려 하고,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인간이 되려 한다."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2
차라투스트라는 홀로 산을 내려왔고, 도중에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자, 숲에서 풀뿌리를 캐려고 자신의 거룩한 오두막을 나선 한 노인이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나더니 차라투스트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방랑자는 내게 낯설지 않다. 여러 해 전에 그는 이곳을 지나갔다. 그의 이름은 차라투스트라였다. 그러나 그는 변했다. 그때 그대는 그대의 재를 산으로 날랐다. 오늘은 그대의 불을 골짜기로 나르려는가? 불 지른 자가 받을 벌이 두렵지 않은가?
그래, 차라투스트라를 알아보겠다. 그의 눈은 맑고, 그의 입가에는 역겨움이 숨어 있지 않다. 그는 춤추는 자처럼 걸어오지 않는가?
변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아이가 되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깨어난 자로구나, 차라투스트라는. 그런데 이제 잠든 자들 곁에서 무엇을 하려는가?
그대는 바닷속에서 살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바다가 그대를 떠받쳐 주었다. 슬프다,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슬프다, 그대는 다시 제 몸을 제 힘으로 끌고 다니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나는 인간을 사랑한다."
성자가 말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숲으로, 황야로 들어갔겠는가? 인간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한다.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다. 인간은 내게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을 사랑하다가는 나는 죽고 말 것이다.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내가 사랑 이야기는 왜 꺼냈던가! 나는 인간들에게 선물을 가져가는 길이다."
성자가 말했다.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마라. 차라리 그들의 짐을 조금 덜어 함께 져 주어라. 그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이로울 것이다. 그것이 그대에게도 이롭기만 하다면!
그리고 굳이 주고 싶거든 적선 이상은 주지 마라. 그것도 그들이 구걸하게 한 다음에 주어라!
"아니다."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나는 적선하지 않는다. 적선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
성자는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이도록 애써 보아라! 그들은 은자들을 의심하며, 우리가 베풀려고 온다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의 발소리는 그들에게 너무 외롭게 골목길을 울린다. 한밤중, 해 뜨기 한참 전에 잠자리에서 한 사내가 걸어가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그들은 아마 저 도둑이 어디로 가려는가 하고 속으로 물을 것이다.
인간들에게 가지 말고 숲에 머물러라! 차라리 짐승들에게 가거라! 어찌하여 그대는 나처럼, 곰들 가운데 한 마리 곰으로, 새들 가운데 한 마리 새로 살려 하지 않는가?
"그러면 성자는 숲에서 무엇을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성자가 대답했다. 나는 노래를 지어 부른다. 노래를 지을 때면 웃고, 울고, 웅얼거린다. 그렇게 나는 신을 찬양한다.
노래하고, 울고, 웃고, 웅얼거리며, 나는 나의 신인 그 신을 찬양한다. 그런데 그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가져왔는가?
이 말을 듣자 차라투스트라는 성자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내가 그대들에게 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보다 어서 떠나게 해 다오. 내가 그대들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도록!" 그렇게 노인과 사내는 두 소년이 웃듯이 웃으며 서로 헤어졌다.
그러나 홀로 남자 차라투스트라는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늙은 성자는 제 숲에 있느라 신은 죽었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구나!"
3
차라투스트라가 숲에 잇닿은 가장 가까운 도시에 이르렀을 때, 그곳 시장에는 줄타기 광대의 재주를 보여 주겠다는 약속이 있었던 터라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2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모든 존재는 자기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창조해 왔는데, 그대들은 이 거대한 밀물의 썰물이 되어 인간을 극복하느니 차라리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인간에게 원숭이란 무엇인가? 웃음거리이거나 쓰라린 부끄러움이다. 위버멘쉬에게 인간 또한 바로 그러해야 한다. 웃음거리이거나 쓰라린 부끄러움.
그대들은 벌레에서 인간에 이르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그대들 안의 많은 것이 아직 벌레다. 한때 그대들은 원숭이였고, 지금도 인간은 어떤 원숭이보다 더 원숭이다.
그대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도 식물과 유령 사이의 불화요, 식물과 유령이 뒤섞인 잡종일 뿐이나, 그렇다고 내가 그대들에게 유령이나 식물이 되라고 하는가?
보라, 나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는 대지의 뜻이다. 그대들의 의지가 이렇게 말하게 하라. 위버멘쉬가 대지의 뜻이어라!
내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간청하노라. 대지에 충실하라. 그리고 대지 너머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그들은 알든 모르든 독을 타는 자들이다.
그들은 삶을 경멸하는 자들이요, 죽어 가는 자들, 스스로 독에 물든 자들이다. 대지도 이제 그들에게 지쳤다. 그러니 떠나가게 두라!
한때는 신을 모독하는 것이 가장 큰 모독이었다. 그러나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그 모독자들도 죽었으니, 이제는 대지를 모독하는 것,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것의 내장을 대지의 뜻보다 더 높이 받드는 것이 가장 끔찍한 일이다!
한때 영혼은 몸을 경멸하는 눈으로 내려다보았고, 그때는 그런 경멸이야말로 가장 높은 것이었으니, 영혼은 몸이 여위고 흉측하고 굶주려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면 몸에서도 대지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여겼다.
오, 그 영혼이야말로 여전히 여위고 흉측하고 굶주려 있었다. 잔인함이 그 영혼의 쾌락이었다!
그러나 내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내게 말해 보라. 그대들의 몸은 그대들의 영혼에 대해 무엇을 일러 주는가? 그대들의 영혼이야말로 가난이요 더러움이요 비루한 안락이 아닌가?
진실로, 인간은 더러운 강물이다.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고도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바다는 되어야 한다.
보라, 나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그가 바로 그 바다다. 그 바다에서라면 그대들의 크나큰 경멸도 가라앉을(untergehen) 수 있다.
그대들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크나큰 경멸의 시간이다. 그대들의 행복마저 역겨워지고, 그대들의 이성과 덕도 똑같이 역겨워지는 시간이다.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는 시간이다. "내 행복이 다 무엇이냐! 그것은 가난이요 더러움이요 비루한 안락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이라면 존재 그 자체를 정당화해야 마땅하다!"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는 시간이다. "내 이성이 다 무엇이냐! 내 이성은 사자가 먹이를 탐하듯 앎을 탐하느냐? 그것은 가난이요 더러움이요 비루한 안락이다!"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는 시간이다. "내 덕이 다 무엇이냐! 덕은 아직 한 번도 나를 미쳐 날뛰게 한 적이 없다. 나는 나의 선과 나의 악에 얼마나 지쳤는가! 그 모든 것이 가난이요 더러움이요 비루한 안락이다!"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는 시간이다. "내 정의가 다 무엇이냐! 내가 잉걸불이요 숯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자는 잉걸불이요 숯이다!"
그대들이 이렇게 말하는 시간이다. "내 동정이 다 무엇이냐! 동정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자가 못 박히는 십자가가 아니냐? 그러나 나의 동정은 십자가형이 아니다."
그대들은 벌써 그렇게 말해 보았는가? 벌써 그렇게 외쳐 보았는가? 아, 그대들이 그렇게 외치는 소리를 내가 벌써 들었더라면!
그대들의 죄가 아니다. 그대들의 자족이 하늘에 사무친다. 죄를 지을 때조차 그대들이 부리는 인색함이 하늘에 사무친다!
그 혀로 그대들을 핥아 줄 번개는 대체 어디 있는가? 그대들에게 접종해야 할 광기는 어디 있는가?
보라, 나 그대들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그가 바로 그 번개요, 그가 바로 그 광기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줄타기 광대 이야기는 이제 들을 만큼 들었다. 이제 그 광대를 직접 보게 해 다오!" 그러자 군중이 모두 차라투스트라를 비웃었다. 줄타기 광대는 그 말이 자기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4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에 묶인 밧줄, 심연 위에 걸린 밧줄이다.
건너가기도 위험하고, 길 위에 있기도 위험하고, 뒤돌아보기도 위험하고, 몸서리치며 멈춰 서기도 위험하다.
인간에게서 위대한 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데 있고, 인간에게서 사랑할 만한 것은 그가 건너가는 것(Übergang)이며 몰락하는 것(Untergang)이라는 데 있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면 살 줄 모르는 자들을. 그들이야말로 건너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크게 경멸하는 자들을. 그들은 크게 우러르는 자들이요, 저편 기슭을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고 제물이 될 까닭을 굳이 별들 너머에서 찾지 않고, 대지가 언젠가 위버멘쉬들의 것이 되도록 대지에 제 몸을 제물로 바치는 자들을.
나는 사랑하노라, 인식하기 위해 살고, 언젠가 위버멘쉬가 살게 하려고 인식하려는 자를.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한다.
나는 사랑하노라, 위버멘쉬에게 집을 지어 주고 그를 위해 대지와 짐승과 식물을 마련해 두려고 일하고 발명하는 자를. 그렇게 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자신의 덕을 사랑하는 자를. 덕이란 몰락에의 의지요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정신 한 방울조차 자신을 위해 남겨 두지 않고 온전히 제 덕의 정신이 되려는 자를. 그렇게 그는 정신으로서 다리를 건너간다.
나는 사랑하노라, 제 덕을 자신의 성향이자 숙명으로 삼는 자를. 그렇게 그는 제 덕을 위해 더 살려 하고, 또한 더는 살지 않으려 한다.
나는 사랑하노라, 덕을 너무 많이 지니려 하지 않는 자를. 덕 하나가 덕 둘보다 더 덕답다. 숙명이 매달리는 매듭으로서 더 매듭답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제 영혼을 아낌없이 탕진하고, 감사를 바라지도 되갚지도 않는 자를. 그는 언제나 베풀 뿐 자신을 아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주사위가 제게 유리하게 떨어지면 부끄러워하며, 내가 속임수 쓰는 노름꾼이란 말인가 하고 묻는 자를. 그는 파멸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행동에 앞서 황금의 말을 던지고, 언제나 약속한 것보다 더 많이 지키는 자를. 그는 자신의 몰락을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앞으로 올 자들을 정당화하고 지나간 자들을 구원하는 자를. 그는 지금 있는 자들로 말미암아 파멸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제 신을 사랑하기에 제 신을 징계하는 자를. 그는 제 신의 진노로 파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상처 입었을 때에도 영혼이 깊고, 작은 체험 하나로도 파멸할 수 있는 자를. 그렇게 그는 기꺼이 다리를 건너간다.
나는 사랑하노라, 영혼이 넘치도록 가득하여 자기 자신을 잊고, 모든 것을 제 안에 품은 자를. 그렇게 모든 것이 그의 몰락이 된다.
나는 사랑하노라, 정신이 자유롭고 마음이 자유로운 자를. 그렇게 그의 머리는 마음의 내장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를 몰락으로 몰아간다.
나는 사랑하노라, 인간 위에 드리운 먹구름에서 하나씩 떨어지는 무거운 빗방울인 그 모든 자들을. 그들은 번개가 오리라 예고하며, 예고자로서 파멸한다.
보라, 나는 번개의 예고자요, 구름에서 떨어진 무거운 빗방울이다. 그 번개의 이름은 위버멘쉬다.
5
이 말을 마치고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군중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저기 서 있구나." 그는 제 마음에 대고 말했다. "저기서 웃고 있구나. 저들은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이 귀에 맞는 입이 아니다."
"눈으로 듣는 법을 배우게 하려면 먼저 저들의 귀를 부숴 버려야 하는가? 북처럼, 회개를 외치는 설교자처럼 요란하게 울려 대야 하는가? 아니면 저들은 말 더듬는 자만 믿는가?"
"저들에게도 긍지로 삼는 것이 있다. 저들을 우쭐하게 만드는 그것을 무어라 부르던가? 교양이라 부른다. 그것이 저들을 염소치기들보다 돋보이게 해 준다."
"그래서 저들은 자기네를 두고 '경멸'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 그렇다면 저들의 긍지에 대고 말하리라."
"그러니 저들에게 가장 경멸스러운 자에 대해 말하리라. 그것이 바로 마지막 인간이다."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스스로 제 목표를 세울 때가 되었다. 인간이 제 가장 높은 희망의 씨앗을 심을 때가 되었다.
아직은 인간의 땅이 그러기에 넉넉히 기름지지만, 이 땅도 언젠가는 메마르고 길들여져서 더는 어떤 높은 나무 한 그루도 거기서 자라날 수 없으리라.
슬프다! 때가 이르리라. 인간이 더는 제 동경의 화살을 인간 너머로 쏘아 보내지 않고, 제 활시위가 윙윙 우는 법을 잊어버릴 때가!
나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춤추는 별 하나를 낳으려면 아직 제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나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그대들은 아직 제 안에 혼돈을 품고 있다.
슬프다! 인간이 더는 별을 낳지 못할 때가 이르리라. 슬프다! 가장 경멸스러운 인간의 때가 이르리라. 더는 제 자신을 경멸할 줄도 모르는 인간의 때가.
보라! 나 그대들에게 마지막 인간을 보여 주노라.
"사랑이 뭐냐? 창조가 뭐냐? 동경이 뭐냐? 별이 뭐냐?" 마지막 인간은 그렇게 묻고 눈을 끔뻑인다.
그때 대지는 작아졌고, 그 위에서는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마지막 인간이 폴짝거린다. 그 족속은 땅벼룩처럼 박멸할 수 없다. 마지막 인간이 가장 오래 산다.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 마지막 인간들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끔뻑인다.
그들은 살기 힘든 고장을 떠났다.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몸을 비빈다. 온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병드는 것과 의심을 품는 것을 그들은 죄로 여긴다. 다들 조심조심 걸어 다닌다. 아직도 돌부리에,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는 자는 어리석은 자로다!
이따금 독을 조금. 그러면 편안한 꿈을 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독을 듬뿍. 편안하게 죽기 위해서.
아직 일은 한다. 일도 하나의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일거리가 몸을 축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이제 아무도 가난해지지도 부유해지지도 않는다. 둘 다 너무 성가시다. 누가 아직 다스리려 하겠는가? 누가 아직 복종하려 하겠는가? 둘 다 너무 성가시다.
목자는 없고 무리는 하나!3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하고, 모두가 똑같다. 다르게 느끼는 자는 제 발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예전에는 온 세상이 미쳐 있었다." 가장 세련된 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끔뻑인다.
다들 영리해서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모두 안다. 그러니 비웃을 거리가 끝이 없다. 아직 말다툼은 하지만 금세 화해한다. 그러지 않으면 속을 버리기 때문이다.
낮에는 낮대로 자잘한 쾌락이 있고 밤에는 밤대로 자잘한 쾌락이 있다. 그러나 건강만은 떠받든다.
"우리는 행복을 발명했다." 마지막 인간들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끔뻑인다……
사람들이 '서설'이라고도 부르는 차라투스트라의 첫 번째 말은 여기서 끝났으니, 바로 이 대목에서 군중의 아우성과 들뜬 흥이 그의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우리에게 그 마지막 인간을 다오." 그들은 외쳤다. "우리를 그 마지막 인간들로 만들어 다오! 그러면 위버멘쉬는 그대에게 선물로 주마!" 군중은 모두 환호하며 입맛을 다셨으나, 차라투스트라는 슬퍼져서 제 마음에 대고 말했다.
저들은 나를 알아듣지 못한다. 나는 이 귀에 맞는 입이 아니다.
아마도 나는 너무 오래 산에서 살며 시냇물과 나무에 너무 많이 귀를 기울였던가 보다, 이제 나는 염소치기들에게 이야기하듯 저들에게 말하고 있으니.
내 영혼은 흔들림이 없고, 오전의 산처럼 밝다. 그러나 저들은 내가 차갑고, 끔찍한 농담이나 일삼는 조롱꾼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이제 저들은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웃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미워한다. 저들의 웃음 속에는 얼음이 있다.
6
그런데 그때, 모든 입을 다물게 하고 모든 눈을 얼어붙게 만든 일이 일어났다. 그사이 줄타기 광대는 이미 재주를 시작하여, 작은 문에서 걸어 나와 두 탑 사이에 팽팽히 걸린 밧줄, 시장과 군중 위에 드리운 그 밧줄을 건너가고 있었다. 그가 막 길의 한가운데에 이르렀을 때 작은 문이 다시 열리더니, 어릿광대처럼 알록달록한 차림의 사내 하나가 뛰쳐나와 잰걸음으로 앞사람을 뒤쫓았다. "앞으로 가라, 절름발이야!"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외쳤다. "앞으로 가라, 굼벵이야, 밀수꾼아, 허연 낯짝아! 내 발뒤꿈치로 간질여 줄까 보다! 탑과 탑 사이에서 무슨 수작이냐? 네가 있을 곳은 탑 안의 감옥이다. 너 같은 놈은 가둬 버려야 한다. 너보다 나은 자의 앞길을 네가 막고 있지 않느냐!" 한마디 할 때마다 그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고, 마침내 앞사람과 겨우 한 걸음 거리가 되었을 때, 모든 입을 다물게 하고 모든 눈을 얼어붙게 만든 그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악마처럼 괴성을 지르더니 제 앞길을 막고 있던 자를 훌쩍 뛰어넘었다. 앞사람은 맞수가 그렇게 이기는 것을 보자 넋도 놓고 밧줄도 놓쳤고, 장대를 내던지고는 장대보다 더 빨리, 팔다리가 어지럽게 휘도는 소용돌이가 되어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시장과 군중은 폭풍이 들이닥친 바다처럼 들끓어,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서로 엉켜 넘어지며 달아났는데, 몸뚱이가 떨어져 내릴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심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고, 처참하게 망가지고 부서졌으나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몸뚱이가 바로 그의 곁에 털썩 떨어졌다. 얼마 뒤 산산이 부서진 사내는 정신이 돌아왔고, 차라투스트라가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무얼 하는가?" 마침내 그가 말했다. "언젠가 악마가 내게 발을 걸 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제 악마가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그대가 막아 주겠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벗이여, 내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그대가 말하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 악마도 없고 지옥도 없다. 그대의 영혼은 그대의 몸보다도 먼저 죽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라!"
사내는 미심쩍은 눈으로 올려다보더니 이윽고 말했다. "그대 말이 참이라면 목숨을 잃어도 나는 잃을 것이 없으니, 나란 매를 맞고 먹이 몇 조각을 얻어먹으며 춤추는 법을 익힌 짐승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몸이다."
"그렇지 않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그대는 위험을 천직으로 삼았으니, 그것은 조금도 경멸할 일이 아니다. 이제 그대는 그 천직으로 말미암아 파멸하니, 그 보답으로 내가 이 손으로 그대를 묻어 주마."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하자 죽어 가는 사내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손을 움직였고, 그 모습은 고맙다는 뜻으로 차라투스트라의 손을 더듬어 찾는 것 같았다.
7
그러는 사이 저녁이 왔고, 시장은 어둠에 묻혔다. 호기심도 공포도 결국은 지치기 마련이어서 군중은 흩어졌다. 차라투스트라는 죽은 자 곁 땅바닥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렇게 시간 가는 것도 잊었다. 마침내 밤이 되었고, 홀로 남은 그의 위로 찬 바람이 불었다. 그제야 차라투스트라는 몸을 일으켜 제 마음에 대고 말했다.
진실로, 오늘 차라투스트라는 고기잡이를 멋지게도 했구나! 사람은 하나도 낚지 못하고 주검 하나를 건졌으니.
인간의 존재는 섬뜩하고, 여전히 아무 뜻이 없다. 어릿광대 하나가 인간의 숙명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인간들에게 그들 존재의 뜻을 가르치려 한다. 그 뜻은 위버멘쉬, 곧 인간이라는 먹구름에서 치는 번개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들에게서 멀리 있고, 나의 뜻은 그들의 감각에 말을 건네지 못한다. 인간들에게 나는 아직 바보와 주검의 중간쯤이다.
밤은 어둡고, 차라투스트라의 길도 어둡다. 가자, 차갑고 뻣뻣한 길동무여! 내 손으로 그대를 묻을 곳까지 그대를 메고 가마.
8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말한 뒤 차라투스트라는 주검을 등에 들쳐 메고 길을 나섰는데, 채 백 걸음도 가지 않았을 때 누군가 살그머니 다가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보라! 말을 건넨 자는 탑에서 나왔던 그 어릿광대였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이 도시를 떠나라." 그가 말했다. "여기에는 그대를 미워하는 자가 너무 많다. 그대를 미워하는 자는 선하고 의로운 자들이니 그들은 그대를 자기네의 적이요 경멸자라 부르고, 그대를 미워하는 자는 바른 믿음을 믿는 자들이니 그들은 그대를 군중의 위험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그대를 비웃은 것은 그대에게 행운이었으니, 진실로 그대는 어릿광대처럼 지껄였다. 그대가 죽은 개와 짝이 된 것도 그대에게 행운이었으니, 그렇게 자신을 낮추었기에 그대는 오늘 하루 제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도시를 떠나라, 그러지 않으면 내일은 산 자가 죽은 자를 뛰어넘듯 내가 그대를 뛰어넘겠다." 이렇게 말하고 그 사람은 사라졌으나, 차라투스트라는 어두운 골목길을 계속 걸어갔다.
성문에서 그는 무덤 파는 자들과 마주쳤는데, 그들은 횃불을 그의 얼굴에 들이대어 비추더니 차라투스트라를 알아보고는 한참 동안 그를 마구 조롱했다. "차라투스트라가 죽은 개를 메고 가는구나. 차라투스트라가 무덤 파는 자가 되었다니 장하기도 하다! 우리 손은 이런 고깃덩이를 만지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차라투스트라가 악마의 먹이를 가로채려는가? 좋다, 해 보아라! 부디 맛있게 먹어라! 악마가 차라투스트라보다 솜씨 좋은 도둑만 아니라면 좋으련만! 악마는 둘 다 훔쳐 가서 둘 다 먹어 치운다!" 그러고는 저희끼리 웃어 대며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 말에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제 길을 갔다. 숲과 늪을 지나 두 시간을 걷는 동안 굶주린 늑대들의 울부짖음을 너무 많이 들은 탓에 그 자신도 허기가 졌으므로, 그는 불빛이 새어 나오는 외딴집 앞에 멈춰 섰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허기가 강도처럼 나를 덮치는구나. 숲에서도, 늪에서도, 깊은 밤에도 내 허기는 나를 덮친다.
내 허기는 변덕이 별나다. 곧잘 밥을 먹고 난 뒤에야 찾아오더니, 오늘은 온종일 찾아오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머물러 있었던가?
그러고서 차라투스트라가 그 집 대문을 두드리자, 노인 하나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물었다. "나를, 내 뒤숭숭한 잠을 찾아온 자가 누구냐?"
"산 자 하나와 죽은 자 하나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달라. 낮에 먹는 것을 잊었다. 굶주린 자를 먹이는 자는 제 영혼을 소생시키느니라. 지혜는 그렇게 말한다."
노인은 안으로 들어갔다가 곧 돌아와 차라투스트라에게 빵과 포도주를 내밀었다. "여기는 굶주린 자에게 모진 고장이다." 노인이 말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산다. 짐승도 사람도 은자인 나를 찾아온다. 그런데 그대의 길동무에게도 먹고 마시라 하라. 그는 그대보다 더 지쳐 있다."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내 길동무는 죽었다. 그를 달래서 먹이기는 어렵겠다."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집 문을 두드린 자는 내가 내주는 것을 받아야 한다. 먹어라, 그리고 잘들 가라!"
그 뒤로 차라투스트라는 길과 별빛에 몸을 맡기고 다시 두 시간을 걸었는데, 밤길에 이골이 난 그는 잠든 모든 것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이 틀 무렵 깊은 숲속에 들어와 있던 차라투스트라는 어디에도 더는 길이 보이지 않자, 늑대들에게서 지켜 주려고 죽은 자를 제 머리맡의 속 빈 나무 안에 뉘고 자신은 이끼 덮인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몸은 지쳤으나 영혼은 흔들림이 없었다.
9
차라투스트라는 오래 잤고, 아침노을뿐 아니라 오전 한나절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마침내 눈을 뜬 차라투스트라는 놀란 눈으로 숲과 고요를 바라보았고 놀란 눈으로 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문득 뭍을 발견한 뱃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으니, 새로운 진리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빛 하나가 내게 떠올랐다. 내게는 길동무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길동무가. 내가 가려는 곳마다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죽은 길동무나 주검이 아니라.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살아 있는 길동무다. 자기 자신을 따르고자 하기에 나를 따르는, 그것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따라오는 길동무다.
빛 하나가 내게 떠올랐다.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말하지 말고 길동무들에게 말하라! 차라투스트라는 무리를 치는 목자도, 무리를 지키는 개도 되지 말라!
내가 온 것은 무리에게서 많은 자를 꾀어내려 함이다. 군중도 무리도 내게 노할 테면 노하라. 차라투스트라는 목자들에게 강도라 불리려 한다.
나는 목자라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선하고 의로운 자들이라 부른다. 나는 목자라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바른 믿음을 믿는 자들이라 부른다.
보라, 선하고 의로운 자들을!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가치를 새긴 그들의 서판을 깨뜨리는 자, 파괴자, 파계자다. 그러나 그가 바로 창조하는 자다.
보라, 온갖 믿음을 믿는 자들을! 그들이 가장 미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가치를 새긴 그들의 서판을 깨뜨리는 자, 파괴자, 파계자다. 그러나 그가 바로 창조하는 자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찾는다. 주검을 찾지 않으며, 무리나 신자를 찾지도 않는다. 창조하는 자는 함께 창조할 자들을 찾는다. 새로운 서판에 새로운 가치를 새길 자들을.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함께 추수할 자들을 찾는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추수할 만큼 무르익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백 자루의 낫이 없다. 그래서 맨손으로 이삭을 뜯으며 속을 끓인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제 낫을 벼릴 줄 아는 자들을 찾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허무는 자요 선과 악을 경멸하는 자라 부르리라. 그러나 그들은 추수하는 자요 잔치하는 자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함께 창조할 자들을 찾는다. 함께 추수하고 함께 잔치할 자들을 찾는다. 무리와 목자와 주검을 데리고 그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리고 그대, 나의 첫 길동무여, 잘 있거라! 나는 그대를 속 빈 나무 안에 잘 묻었고, 늑대들에게서 잘 숨겨 두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대와 헤어진다. 때가 다 되었다. 아침노을과 아침노을 사이에 내게 새로운 진리가 찾아왔다.
나는 목자가 되어서도, 무덤 파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된다. 다시는 군중과 말조차 섞지 않으리라. 죽은 자에게 말한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나는 창조하는 자, 추수하는 자, 잔치하는 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무지개를, 위버멘쉬에 이르는 모든 계단을 보여 주리라.
은자들에게, 그리고 둘이서 은거하는 자들에게 나는 내 노래를 불러 주겠고, 아직 들어 보지 못한 것을 들을 귀가 있는 자라면 그의 가슴을 나는 내 행복으로 무겁게 해 주리라.
나는 나의 목표로 가련다. 나는 나의 걸음을 걷는다. 머뭇거리는 자들과 꾸물대는 자들을 나는 뛰어넘어 가리라. 그러니 나의 걸음이 그들의 몰락이 되어라!
10
차라투스트라가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말했을 때는 해가 정오에 이르러 있었는데, 그때 머리 위에서 날카롭게 우는 새소리가 들려와 그는 의아한 눈으로 높은 곳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보라! 독수리 한 마리가 하늘에 커다란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고, 그 독수리에게 뱀 한 마리가 먹이로서가 아니라 벗으로서 매달려 있었으니, 뱀이 독수리의 목에 몸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짐승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며 마음 깊이 기뻐했다.
"해 아래 가장 긍지 높은 짐승과 해 아래 가장 슬기로운 짐승이 정탐을 나섰구나."
"저들은 차라투스트라가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진실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가?"
"인간들 사이는 짐승들 사이보다 더 위험하더라. 차라투스트라는 더 위험한 길들을 간다. 나의 짐승들이 나를 이끌어 주기를!"
이렇게 말하고 나서 차라투스트라는 숲에서 만난 성자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며 제 마음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좀 더 슬기로웠으면! 내 뱀처럼 속속들이 슬기로웠으면!
그러나 나는 지금 불가능한 것을 비는구나. 그러니 나는 내 긍지에게 빈다. 언제나 내 슬기와 함께 가 달라고!
그리고 언젠가 내 슬기가, 아, 훌쩍 날아가 버리기를 좋아하는 그 슬기가 나를 떠난다면, 그때에는 내 긍지가 내 어리석음과 함께라도 날아가 주기를!
이렇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주
1. 원어 untergehen(명사 Untergang)은 '해가 지다, 저물다'라는 뜻과 '가라앉다, 몰락하다'라는 뜻을 함께 지닌다. 해가 바다 너머로 저물듯 차라투스트라가 인간들에게로 내려가는 일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몰락'으로 옮긴다.
2. 원어 Übermensch는 über(넘어)와 Mensch(인간)를 합친 말로, 흔히 '초인(超人)'으로 옮겨 왔다. 인간을 넘어서 가는 인간을 가리킨다. 이 책에서는 원어의 소리대로 '위버멘쉬'라 적는다.
3. 요한복음 10장 16절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개역한글)를 뒤집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