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토지의 지대에 대하여 (이어서)
그런데 동인도에서는, 특히 중국과 힌두스탄에서는 유럽인이 그 나라들과 거래를 트기 시작하였을 때 귀금속의 가치가 유럽에서보다 훨씬 높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쌀을 심는 나라는 대개 한 해에 두 번, 더러는 세 번 거두며 그 한 번의 수확이 곡물의 여느 수확보다 넉넉하므로, 먹을 것의 넉넉함이 같은 넓이의 어느 곡물 나라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런 나라에는 그에 걸맞게 사람도 훨씬 많다. 또 그런 나라의 부자들은 제가 먹을 수 있는 양을 넘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먹을 것을 더 많이 쥐고 있으므로, 남의 노동을 훨씬 더 많이 사들일 수단을 가진다. 그래서 중국이나 힌두스탄의 대귀족이 거느리는 시종 무리는 전해 오는 모든 이야기로 보아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신하가 거느리는 무리보다 훨씬 수가 많고 훨씬 화려하다. 그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그 남아도는 먹을 것은, 자연이 아주 적은 양만 내놓는 유별나고 드문 산물, 곧 부자들이 다투어 얻으려 하는 큰 목표인 귀금속과 보석 같은 것을 얻는 데 먹을 것을 더 많이 내줄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인도의 시장에 물건을 대던 광산이 유럽의 시장에 물건을 대던 광산만큼 넉넉하였다 하더라도, 그런 상품은 자연히 유럽에서보다 인도에서 더 많은 양의 먹을 것과 맞바뀌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의 시장에 귀금속을 대던 광산은 유럽의 시장에 대던 광산보다 넉넉함이 훨씬 떨어졌던 듯하고, 보석을 대던 광산은 훨씬 나았던 듯하다. 그러므로 귀금속은 인도에서 자연히 유럽에서보다 얼마쯤 더 많은 양의 보석과, 그리고 훨씬 더 많은 양의 먹을 것과 맞바뀌었을 것이다. 모든 군더더기 가운데 으뜸인 다이아몬드의 화폐 가격은 한쪽 나라에서 다른 쪽 나라보다 얼마쯤 낮고, 모든 필수품 가운데 첫째인 먹을 것의 화폐 가격은 훨씬 더 낮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의 실질 가격, 곧 노동자에게 주어지는 생활 필수품의 실제 양은 이미 살펴본 대로 인도의 두 큰 시장인 중국과 힌두스탄에서 유럽 대부분에서보다 낮다. 그곳에서 노동자의 임금으로는 더 적은 양의 먹을 것밖에 살 수 없으며, 먹을 것의 화폐 가격이 유럽보다 인도에서 훨씬 낮으므로 노동의 화폐 가격은 두 겹으로 낮다. 곧 그것으로 살 수 있는 먹을 것의 양이 적기 때문에 낮고, 그 먹을 것의 값이 싸기 때문에 또 낮다. 그런데 기술과 근면이 서로 비슷한 나라들 사이에서는 제조품 대부분의 화폐 가격이 노동의 화폐 가격에 비례할 것이며, 제조 기술과 근면에서 중국과 힌두스탄은 유럽의 어느 곳보다 못하기는 하나 크게 못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제조품 대부분의 화폐 가격은 그 큰 두 제국에서 자연히 유럽의 어느 곳에서보다 훨씬 낮을 것이다. 또 유럽 대부분에서는 육상 운송에 드는 비용이 제조품 대다수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을 다 크게 끌어올린다. 먼저 재료를, 그다음에는 완성된 제조품을 시장까지 가져오는 데에 노동이 더 들고 따라서 돈이 더 든다. 중국과 힌두스탄에서는 내륙 수운이 넓게 뻗어 있고 갈래가 많아 이 노동의 대부분, 따라서 이 돈의 대부분을 아끼며, 그로써 제조품 대부분의 실질 가격과 명목 가격을 한층 더 낮춘다. 이런 모든 까닭으로 귀금속은 유럽에서 인도로 실어 가기에 예나 이제나 몹시 이로운 상품이다. 그곳에서 그보다 더 나은 값을 받는 상품, 또는 유럽에서 그것을 얻는 데 드는 노동과 상품의 양에 견주어 인도에서 더 많은 양의 노동과 상품을 사들이거나 부릴 수 있는 상품은 거의 없다. 또 그곳으로는 금보다 은을 실어 가는 것이 더 이롭다. 중국과 인도의 다른 시장 대부분에서 순은과 순금의 비율은 열 대 하나, 많아도 열둘 대 하나인데, 유럽에서는 열넷 또는 열다섯 대 하나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인도의 다른 시장 대부분에서는 은 열 온스, 많아도 열두 온스로 금 한 온스를 살 수 있으나, 유럽에서는 열넷에서 열다섯 온스가 든다. 그러므로 인도로 떠나는 유럽 배 대부분의 뱃짐에서 은은 대체로 가장 값나가는 물목 가운데 하나였다. 마닐라로 가는 아카풀코 배에서도 은이 가장 값나가는 물목이다. 이렇게 하여 새 대륙의 은은 옛 대륙의 양 끝 사이에 오가는 거래를 떠받치는 주된 상품 가운데 하나가 된 듯하며, 세상의 그 멀리 떨어진 지역들이 서로 이어지는 것도 얼마쯤은 이 은을 통해서다.
그렇게 아주 널리 뻗은 시장에 대려면, 광산에서 해마다 나오는 은의 양은 번창하는 모든 나라에서 요구되는 주화와 그릇의 꾸준한 증가를 떠받치기에 넉넉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금속을 쓰는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은의 끊임없는 닳음과 소모를 메우기에도 넉넉해야 한다.
주화가 닳아서, 그릇이 닳고 또 닦여서 귀금속이 끊임없이 줄어드는 것은 눈에 뚜렷이 띄는 일이며, 쓰임새가 그렇게 널리 뻗은 상품에서는 이것만으로도 해마다 아주 많은 양을 대야 할 것이다. 몇몇 특정한 제조업에서 그 금속이 없어지는 양은 어쩌면 전체로 보아 이 차츰차츰의 소모보다 많지 않을지 몰라도, 훨씬 빠르게 일어나므로 훨씬 더 눈에 띈다. 버밍엄의 제조업에서만도 도금과 은도금에 해마다 쓰여 그 뒤로는 다시 금속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게 되는 금과 은의 양이 5만 파운드1 스털링을 넘는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버밍엄과 같은 갈래의 제조업이나, 레이스와 자수, 금실 은실 천, 책과 가구의 도금 등에서 세상의 여러 지역이 해마다 없애는 양이 얼마나 클지 얼마쯤 짐작할 수 있다. 또 그 금속을 바다로나 땅으로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해마다 적지 않은 양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시아의 정부 대부분에서는 보물을 땅속에 감추어 두는 관습이 거의 온 나라에 퍼져 있고, 감춘 사람이 죽으면서 그 자리에 대한 지식도 함께 사라지는 일이 잦으므로, 그 때문에 없어지는 양은 한층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카디스와 리스본 두 곳에 들여오는 금과 은의 양은 가장 믿을 만한 기록으로 보아 한 해에 스털링 600만 파운드쯤에 이른다(등록을 거쳐 들어오는 것뿐 아니라 몰래 들여온다고 볼 수 있는 것까지 넣은 셈이다).
메건스 씨에 따르면(《만국 상인》 보유 15~16쪽. 이 보유는 책이 나온 지 세 해 뒤인 1756년에야 인쇄되었고, 그 책은 재판을 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이 보유가 붙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보유는 본문의 잘못 몇 가지를 바로잡고 있다) 스페인으로 해마다 들여온 귀금속의 양은 1748년부터 1753년까지 여섯 해의 평균으로, 포르투갈로 들여온 양은 1747년부터 1753년까지 일곱 해의 평균으로 은이 1,101,107파운드(무게), 금이 49,940파운드(무게)에 이르렀다. 은은 트로이 파운드2당 62실링으로 셈하면 스털링 3,413,431파운드 10실링이 된다. 금은 트로이 파운드당 44기니 반으로 셈하면 스털링 2,333,446파운드 14실링이 된다. 둘을 합하면 스털링 5,746,878파운드 4실링이다. 등록을 거쳐 들어온 것에 대한 셈은 정확하다고 그는 우리에게 다짐한다. 그는 금과 은이 실려 온 곳을 하나하나 밝히고, 등록에 따라 그 각각이 내놓은 금속의 양도 하나하나 밝혀 준다. 또 그는 몰래 들여왔으리라고 보는 금속의 양까지 각각 헤아려 넣는다. 사리를 아는 이 상인의 큰 경험은 그의 견해에 적잖은 무게를 실어 준다.
《두 인도에서 유럽인이 세운 것들에 관한 철학적·정치적 역사》를 쓴, 글이 힘차고 더러는 아는 것도 많은 저자3에 따르면 스페인으로 해마다 들여온 등록된 금과 은은 1754년부터 1764년까지 열한 해의 평균으로 10레알짜리 피아스트르 13,984,185와 5분의 3에 이르렀다. 그러나 몰래 들여온 것을 헤아리면 한 해에 들여온 전체가 1700만 피아스트르에 이르렀으리라고 그는 본다. 이는 피아스트르당 4실링 6펜스로 치면 스털링 3,825,000파운드에 맞먹는다. 그도 금과 은이 실려 온 곳을 하나하나 밝히고, 등록에 따라 그 각각이 내놓은 금속의 양도 하나하나 밝혀 준다. 또 그는 브라질에서 리스본으로 해마다 들여오는 금의 양을 포르투갈 국왕에게 바친 세금의 액수로 미루어 헤아려 본다면, 그 세금은 표준 순도 금속의 5분의 1인 듯하므로 그 금을 1800만 크루자도, 곧 프랑스 리브르 4500만에 해당하는 값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스털링 2000만 파운드쯤이라고 알려 준다.4 그러나 몰래 들여온 것을 헤아려 이 액수에 8분의 1, 곧 스털링 250,000파운드를 더 보태도 안전하다고 그는 말하니, 전체는 스털링 2,250,000파운드에 이른다. 그러므로 이 셈에 따르면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로 해마다 들여오는 귀금속 전체는 스털링 6,075,000파운드쯤에 이른다.
원고로만 남아 있으나 아주 믿을 만한 다른 여러 셈도 이 한 해 수입 전체를 평균하여 스털링 600만 파운드쯤으로, 더러는 조금 더 많게 더러는 조금 더 적게 잡는 데에 서로 맞아떨어진다고 나는 다짐을 받았다.
카디스와 리스본으로 해마다 들여오는 귀금속의 양이 아메리카 광산의 한 해 생산물 전부와 같은 것은 물론 아니다. 얼마는 해마다 아카풀코 배로 마닐라에 실려 가고, 얼마는 스페인 식민지가 다른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와 벌이는 밀무역에 쓰이며, 얼마는 틀림없이 그 나라에 남는다. 게다가 아메리카의 광산이 세상의 금광과 은광 전부인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넉넉한 광산이라는 것은 다툴 여지가 없다. 알려진 다른 모든 광산의 생산물은 그에 견주면 대수롭지 않다는 것이 인정되며, 그 생산물의 훨씬 큰 몫이 해마다 카디스와 리스본으로 들어온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인정된다. 그런데 한 해 5만 파운드라는 비율로 보면 버밍엄 한 곳의 소모만으로도 한 해 600만 파운드라는 비율의 이 한 해 수입의 120분의 1에 맞먹는다. 그러므로 그 금속을 쓰는 세상 여러 나라 전체에서 금과 은이 한 해에 없어지는 양은 어쩌면 한 해 생산물 전체와 거의 같을지도 모른다. 남는 것은 번창하는 모든 나라에서 늘어나는 수요를 채우기에 겨우 넉넉할 정도밖에 안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이 수요에 얼마쯤 못 미쳐 유럽 시장에서 그 금속의 값을 어느 만큼 끌어올렸을 수조차 있다.
놋쇠와 무쇠를 광산에서 시장으로 해마다 가져오는 양은 금과 은의 양과 견줄 수조차 없이 많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거친 금속이 수요를 넘어 불어나거나 차츰차츰 더 싸지리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귀금속은 왜 그리 되리라고 여겨야 하는가. 거친 금속은 더 단단하기는 하나 훨씬 더 험한 데에 쓰이며, 값이 덜하므로 지켜 두는 데에 마음을 덜 쓴다. 그러나 귀금속도 그것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죽지 않는 것이 아니어서, 온갖 길로 잃어버려지고 닳고 없어지기 쉽다.
모든 금속의 값은 천천히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나, 토지의 원생산물 가운데 거의 어느 것보다도 해마다의 흔들림이 적다. 그리고 귀금속의 값은 거친 금속의 값보다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덜 흔들린다. 금속이 오래 남는다는 성질이 이 유별난 값의 한결같음의 바탕이다. 지난해에 시장에 나온 곡물은 올해가 끝나기 오래전에 다, 또는 거의 다 없어진다. 그러나 두세 백 년 전에 광산에서 나온 무쇠의 얼마는 아직도 쓰이고 있을 것이고, 두세 천 년 전에 나온 금의 얼마도 어쩌면 그럴 것이다. 해에 따라 세상의 소비를 채워야 하는 곡물의 덩이는 언제나 그 여러 해의 생산량에 거의 비례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해에 쓰이고 있을 무쇠 덩이 사이의 비율은 그 두 해 철광산 생산량에 우연히 생긴 차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며, 금 덩이 사이의 비율은 금광 생산량에 그런 차이가 생겨도 한층 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금속 광산 대부분의 생산량은 곡물 밭 대부분의 생산량보다 어쩌면 해마다 더 크게 흔들릴지 몰라도, 그 흔들림이 한쪽 상품의 값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쪽 상품의 값에 미치는 영향과 같지 않다.
금과 은이 각기 가지는 가치 사이의 비율에 일어난 변화
아메리카의 광산이 발견되기 전에 순금과 순은의 가치는 유럽의 여러 조폐국5에서 하나 대 열과 하나 대 열둘 사이의 비율로 다스려졌다. 곧 순금 한 온스가 순은 열 온스에서 열두 온스의 값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지난 세기 중엽쯤에 그것은 하나 대 열넷과 하나 대 열다섯 사이의 비율로 다스려지게 되었다. 곧 순금 한 온스가 순은 열네 온스와 열다섯 온스 사이의 값에 해당한다고 보게 되었다. 금은 그 명목 가치에서, 곧 그 대가로 주어지는 은의 양에서 올랐다. 두 금속은 다 그 실질 가치에서, 곧 그것으로 살 수 있는 노동의 양에서 내려갔으나 은이 금보다 더 내려갔다. 아메리카의 금광과 은광은 그전에 알려진 모든 광산보다 넉넉함에서 앞섰으나, 은광의 넉넉함이 금광의 넉넉함보다 비례로 따져 한층 더 컸던 듯하다.
유럽에서 인도로 해마다 실어 가는 많은 양의 은은 영국이 세운 몇몇 정착지에서 금에 견준 그 금속의 가치를 차츰 끌어내렸다. 콜카타의 조폐국에서는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순금 한 온스가 순은 열다섯 온스의 값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것은 벵골 시장에서 지니는 값에 비하면 조폐국에서 어쩌면 너무 높게 매겨진 것일 수 있다. 중국에서 금과 은의 비율은 아직도 하나 대 열, 또는 하나 대 열둘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하나 대 여덟이라고 한다.
메건스 씨의 셈에 따르면 유럽으로 해마다 들여오는 금과 은의 양 사이의 비율은 하나 대 스물둘에 가깝다. 곧 금 한 온스마다 은 스물두 온스 조금 더 많은 양이 들어온다. 해마다 동인도로 보내는 많은 양의 은이 유럽에 남는 그 금속의 양을 하나 대 열넷 또는 열다섯, 곧 그 가치의 비율로 줄인다고 그는 본다. 그는 그 가치 사이의 비율이 그 양 사이의 비율과 반드시 같아야 하며, 따라서 이렇게 은이 많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면 하나 대 스물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상품이 각기 가지는 가치 사이의 예사로운 비율이 시장에 흔히 나와 있는 그 양 사이의 비율과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10기니로 셈한 황소 한 마리의 값은 3실링 6펜스로 셈한 새끼 양 한 마리 값의 예순 배쯤이다. 그렇다고 시장에 황소 한 마리마다 새끼 양 예순 마리가 흔히 나와 있다고 여기서 미루어 내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며, 금 한 온스로 흔히 은 열네 온스나 열다섯 온스를 살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장에 금 한 온스마다 은이 겨우 열네 온스나 열다섯 온스만 흔히 나와 있다고 미루어 내는 것도 똑같이 어이없는 일이다.
시장에 흔히 나와 있는 은의 양이 금의 양에 견주어 얼마나 되는가는, 어떤 양의 금의 가치가 같은 양의 은의 가치에 견주어 얼마나 되는가보다 아마 훨씬 클 것이다. 값싼 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전체 양은 흔히 값비싼 상품의 전체 양보다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도 더 크다. 해마다 시장에 나오는 빵의 전체 양은 푸줏간 고기의 전체 양보다 많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가치도 더 크다. 푸줏간 고기의 전체 양은 가금, 곧 집에서 치는 새의 전체 양에 대하여 그렇고, 가금의 전체 양은 들새의 전체 양에 대하여 그렇다. 값비싼 상품보다 값싼 상품을 살 사람이 훨씬 많으므로, 흔히 그것을 더 많은 양으로 처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큰 가치로도 처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값싼 상품의 전체 양이 값비싼 상품의 전체 양에 견주어 차지하는 비율은, 어떤 양의 값비싼 상품의 가치가 같은 양의 값싼 상품의 가치에 견주어 차지하는 비율보다 흔히 클 수밖에 없다. 귀금속끼리 견주어 보면 은은 값싼 상품이고 금은 값비싼 상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장에 언제나 금보다 은이 양으로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가치로도 더 많이 나와 있으리라고 자연히 기대해야 한다. 둘을 조금씩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 은그릇을 금그릇과 견주어 보라. 그는 아마 앞의 것이 양으로만 아니라 가치로도 뒤의 것을 크게 넘어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금그릇은 없으면서 은은 꽤 가진 사람이 많으며, 금그릇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은 대체로 시계집이나 코담배갑 같은 자잘한 장식물에 그쳐 그 전체 액수가 큰 가치에 이르는 일이 드물다. 영국 주화에서는 참으로 금의 가치가 크게 앞서지만 모든 나라의 주화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나라의 주화에서는 두 금속의 가치가 거의 같다. 잉글랜드와 연합하기 전 스코틀랜드 주화에서는 조폐국 기록으로 보아 금이 아주 조금, 그래도 얼마쯤은 앞섰다(러디먼이 앤더슨의 《스코틀랜드 고문서》에 붙인 서문을 보라). 많은 나라의 주화에서는 은이 앞선다. 프랑스에서는 큰 액수를 흔히 그 금속으로 치르며, 그곳에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만큼 말고는 금을 더 얻기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금그릇보다 은그릇의 가치가 더 나가는 것은, 몇몇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은 주화보다 금 주화가 앞서는 것을 넉넉히 메우고도 남는다.
낱말의 한 뜻으로 보면 은은 언제나 금보다 훨씬 싸 왔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하겠으나, 또 다른 뜻으로 보면 어쩌면 오늘날 스페인 시장의 형편에서는 금이 은보다 얼마쯤 싸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상품이 값비싸다거나 값싸다고 하는 것은 그 예사로운 값의 크고 작음 자체만이 아니라, 그 값이 꽤 오랫동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낮은 값보다 얼마나 더 높은가에 따라서도 말할 수 있다. 이 가장 낮은 값이란 그 상품을 거기까지 가져오는 데에 부려야 하는 자산을 웬만한 이윤과 함께 겨우 메우는 값이다. 그것은 지주에게 아무것도 안겨 주지 않는 값, 곧 지대가 그 값의 어느 부분도 이루지 않고 오로지 임금과 이윤으로만 갈라지는 값이다. 그런데 오늘날 스페인 시장의 형편에서는 금이 틀림없이 은보다 이 가장 낮은 값에 얼마쯤 더 가깝다. 스페인 국왕이 금에 매기는 세금은 표준 순도 금속의 20분의 1, 곧 5퍼센트뿐인데, 은에 매기는 세금은 그 10분의 1, 곧 10퍼센트에 이른다. 또 이미 살펴본 대로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금광과 은광 대부분에서 나오는 지대 전부가 이 세금으로 이루어지며, 금에 매긴 세금은 은에 매긴 세금보다도 제대로 걷히지 않는다. 금광 사업가의 이윤도 그들이 재산을 이루는 일이 더 드문 만큼, 대체로 은광 사업가의 이윤보다 한층 더 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스페인 금의 값은 지대도 이윤도 더 적게 내주므로 스페인 시장에서 스페인 은의 값보다 그곳까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낮은 값에 얼마쯤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모든 비용을 셈에 넣으면 한쪽 금속의 전체 양은 스페인 시장에서 다른 쪽 금속의 전체 양만큼 이롭게 처분될 수 없는 듯하다. 참으로 포르투갈 국왕이 브라질의 금에 매기는 세금은 스페인 국왕이 멕시코와 페루의 은에 매기던 옛 세금과 같아 표준 순도 금속의 5분의 1이다. 그러므로 유럽의 전체 시장에 대하여 아메리카 금의 덩이 전부가 아메리카 은의 덩이 전부보다 그곳까지 가져올 수 있는 가장 낮은 값에 더 가까운 값으로 오는지는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와 그 밖의 보석의 값은 어쩌면 금의 값보다도 그것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낮은 값에 한층 더 가까울지 모른다.
과세하기에 가장 알맞은 대상, 곧 순전한 사치이자 군더더기에 매겨진 것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은에 매긴 세금처럼 아주 중요한 세입을 내주는 세금이라면, 그 가운데 어느 몫이든 치를 수 있는 동안은 결코 놓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736년에 그것을 5분의 1에서 10분의 1로 낮추게 만든, 바로 그 치를 수 없음이 언젠가는 그것을 한층 더 낮추게 만들지도 모른다. 금에 매긴 세금을 20분의 1로 낮추게 만든 것과 같은 일이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은광이 다른 모든 광산과 마찬가지로 일을 벌여야 하는 깊이가 더 깊어지고, 그 깊이에서 물을 빼내고 맑은 바람을 넣어 주는 데에 드는 비용이 더 커지는 까닭으로 파는 일이 차츰 비싸진다는 것은 그 광산의 형편을 캐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한다.
은이 점점 귀해지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 이런 원인들은(어떤 양을 모으는 일이 더 어렵고 더 비싸질 때 그 상품이 더 귀해진다고 말할 수 있으므로) 언젠가 다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낳을 것이다. 첫째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 그 금속 값이 그에 비례하여 오르는 것으로 온전히 메워지거나, 둘째로 은에 매긴 세금이 그에 비례하여 줄어드는 것으로 온전히 메워지거나, 셋째로 얼마는 앞의 것으로 얼마는 뒤의 것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이 셋째 일은 아주 있을 수 있다. 금에 매긴 세금이 크게 줄었는데도 금값이 은에 견주어 올랐던 것처럼, 은에 매긴 세금이 그만큼 줄어도 은값이 노동과 상품에 견주어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세금을 이처럼 잇달아 낮추는 것은 유럽 시장에서 은의 가치가 오르는 것을 아주 막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만큼 늦추기는 틀림없이 할 것이다. 그렇게 낮춘 결과로, 전에는 옛 세금을 치를 수 없어 파낼 수 없던 광산 여럿을 파낼 수 있게 될 것이고, 해마다 시장에 나오는 은의 양은 언제나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얼마쯤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어떤 양의 가치도 얼마쯤 낮아질 수밖에 없다. 1736년에 세금을 낮춘 결과로 유럽 시장에서 은의 가치는 오늘날 그 낮춤 전보다 낮지는 않을지 몰라도, 스페인 궁정이 옛 세금을 그대로 걷었을 경우에 견주면 적어도 10퍼센트는 낮을 것이다. 이렇게 세금을 낮추었음에도 이번 세기가 흐르는 동안 유럽 시장에서 은의 가치가 얼마쯤 오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위에서 들어 놓은 사실과 논거들이 나를 믿게,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심하고 어림잡게 만든다. 이 문제를 두고 내가 세울 수 있는 가장 나은 견해조차 어쩌면 믿음이라는 이름을 받을 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런 오름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제까지 그것이 너무나 작아, 지금까지 말한 것을 다 듣고도 많은 사람에게는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는 것뿐 아니라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또는 유럽 시장에서 은의 가치가 아직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마저 확실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금과 은을 해마다 얼마나 들여온다고 보든, 그 금속을 해마다 없애는 양이 그 한 해 수입과 같아지는 어떤 시점이 반드시 있다는 것은 살펴 두어야 한다. 그 소모는 그 덩이가 커지는 대로, 아니 그보다 훨씬 큰 비율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덩이가 커지면 그 가치는 줄어든다. 그것은 더 많이 쓰이고 덜 아껴지므로, 그 소모는 그 덩이보다 더 큰 비율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 금속을 해마다 없애는 양은 이렇게 하여 그 한 해 수입과 같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수입이 끊임없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인데, 오늘날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해에 없애는 양이 한 해에 들여오는 양과 같아진 뒤에 한 해 수입이 차츰 줄어든다면, 한 해에 없애는 양이 얼마 동안 한 해 수입을 넘어설 수 있다. 그 금속의 덩이는 차츰 눈에 띄지 않게 줄어들고 그 가치는 차츰 눈에 띄지 않게 오를 것이며, 그러다가 한 해 수입이 다시 한자리에 머무르게 되면 한 해에 없애는 양이 차츰 눈에 띄지 않게 그 한 해 수입이 떠받칠 수 있는 만큼에 스스로 맞춰 갈 것이다.
은의 가치가 아직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의심하는 근거
유럽의 부가 늘어난 것과, 귀금속의 양은 부가 늘어남에 따라 저절로 늘어나고 그 가치는 그 양이 늘어남에 따라 줄어든다는 널리 퍼진 생각은 어쩌면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유럽 시장에서 그 가치가 아직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믿게 만들지 모른다. 그리고 토지의 원생산물 가운데 여러 가지의 값이 아직도 차츰 오르고 있는 것은 그들을 이 견해에 한층 더 굳게 붙들어 둘지 모른다.
어떤 나라에서 부가 늘어난 데서 생기는 귀금속의 양의 증가가 그 가치를 줄이는 쪽으로 기울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이미 보이려 애쓴 바다. 금과 은은 온갖 사치품과 값진 물건이 부유한 나라로 모여드는 것과 같은 까닭으로 저절로 그런 나라로 모여든다. 그곳에서 그것이 더 가난한 나라보다 싸기 때문이 아니라 더 비싸기 때문, 곧 그것에 더 나은 값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끌어당기는 것은 값이 더 높다는 것이며, 그 높음이 그치자마자 그것은 반드시 그곳으로 가기를 그친다.
곡물과 그처럼 오로지 사람의 근면으로만 길러 내는 다른 작물을 빼면, 소와 가금과 온갖 사냥감, 땅에서 나오는 쓸모 있는 화석과 광물 따위 다른 모든 갈래의 원생산물은 사회가 부와 개량에서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저절로 더 비싸진다는 것도 내가 이미 보이려 애쓴 바다. 그러므로 그런 상품이 전보다 더 많은 양의 은과 맞바뀌게 되더라도, 거기서 은이 실제로 더 싸졌다거나 전보다 더 적은 노동을 사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품이 실제로 더 비싸졌다, 곧 전보다 더 많은 노동을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오르는 것은 그것의 명목 가격만이 아니라 실질 가격이다. 그 명목 가격이 오르는 것은 은의 가치가 떨어진 결과가 아니라 그 실질 가격이 오른 결과다.
개량의 진전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원생산물에 미치는 서로 다른 영향
이 여러 갈래의 원생산물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류는 사람의 근면으로는 그 양을 도무지 늘릴 수 없는 것들이다. 둘째 부류는 근면이 수요에 비례하여 늘릴 수 있는 것들이다. 셋째 부류는 근면이 미치는 힘이 한계가 있거나 뚜렷하지 않은 것들이다. 부와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첫째 부류의 실질 가격은 얼마든지 터무니없이 높아질 수 있고 어떤 정해진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듯하다. 둘째 부류의 실질 가격은 크게 오를 수 있기는 하나 어떤 정해진 울타리가 있어 꽤 오랫동안 그것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셋째 부류의 실질 가격은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오르는 것이 그 타고난 성향이기는 하나, 같은 정도의 개량 아래에서도 이 갈래의 원생산물을 늘리려는 사람의 근면이 여러 우연에 따라 더 성공하기도 덜 성공하기도 하는 대로 더러는 떨어지는 일조차 있고, 더러는 그대로 머무르며, 더러는 더 많거나 더 적게 오른다.
첫째 부류.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값이 오르는 첫째 갈래의 원생산물은 사람의 근면으로는 그 양을 도무지 늘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정해진 양만 내놓는 것들, 그리고 몹시 썩기 쉬운 성질이라 여러 철의 생산물을 한데 모아 쌓아 둘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드물고 유별난 새와 물고기의 대부분, 여러 갈래의 사냥감, 거의 모든 들새, 특히 모든 철새, 그 밖의 많은 것이 그러하다. 부가 늘고 그에 따르는 사치가 늘면 이런 것에 대한 수요도 그와 함께 늘기 쉬우며, 사람의 근면을 아무리 쏟아도 그 공급을 수요가 늘기 전보다 크게 늘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런 상품의 양은 그대로, 또는 거의 그대로 머무르는데 그것을 사려는 겨룸은 끊임없이 커지므로, 그 값은 얼마든지 터무니없이 높아질 수 있고 어떤 정해진 울타리에 갇히지 않는 듯하다. 멧도요가 한 마리에 20기니에 팔릴 만큼 유행을 타게 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근면을 아무리 쏟아도 시장에 나오는 그 수를 지금보다 크게 늘릴 수는 없을 것이다. 로마인이 가장 큰 영화를 누리던 때에 드문 새와 물고기에 치른 높은 값도 이렇게 하면 쉽게 설명된다. 그 값은 그때 은의 가치가 낮았던 결과가 아니라, 사람의 근면으로는 마음대로 늘릴 수 없는 그런 드물고 값진 것의 가치가 높았던 결과다. 은의 실질 가치는 로마에서, 공화국이 무너지기 앞뒤의 얼마 동안 오늘날 유럽 대부분에서보다 높았다. 공화국이 시칠리아의 십일조 밀 1모디우스, 곧 1펙에 치른 값은 스털링 6펜스쯤에 해당하는 3세스테르티우스6였다. 그러나 이 값은 아마 평균 시장 가격보다 낮았을 것이다. 이 값에 밀을 내놓아야 하는 의무가 시칠리아 농부들에게는 세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마인이 십일조 밀보다 더 많은 곡물을 구할 일이 있으면, 그들은 협약에 따라 그 남는 양에 1펙당 4세스테르티우스, 곧 스털링 8펜스의 비율로 값을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 그때의 웬만하고 무리 없는, 곧 예사로운 또는 평균 계약 가격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는 쿼터7당 21실링쯤에 해당한다. 근래의 모자란 해들 앞에 잉글랜드 밀의 예사로운 계약 가격은 쿼터당 28실링이었는데, 잉글랜드 밀은 품질이 시칠리아 밀에 못 미쳐 유럽 시장에서 대체로 더 낮은 값에 팔린다. 그러므로 은의 가치는 그 옛 시절에 오늘날의 가치에 대하여 거꾸로 셋 대 넷이었을 수밖에 없다. 곧 그때 은 세 온스로 오늘날 네 온스가 살 수 있는 만큼의 노동과 상품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플리니우스에서, 세이우스가 아그리피나 황후에게 바칠 선물로 흰 나이팅게일을 오늘날 우리 돈으로 50파운드쯤에 해당하는 6000세스테르티우스에 샀다는 것(제10권 29장)과, 아시니우스 켈레르가 붉은촉수 한 마리를 오늘날 우리 돈으로 66파운드 13실링 4펜스에 해당하는 8000세스테르티우스에 샀다는 것(제9권 17장)을 읽을 때, 그 값이 터무니없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놀라게 하든 그것은 실제보다 3분의 1쯤 덜한 것으로 우리에게 비치기 쉽다. 그 실질 가격, 곧 그 대가로 내준 노동과 생계의 양은 오늘날 그 명목 가격이 우리에게 알려 주기 쉬운 것보다 3분의 1쯤 더 컸다. 세이우스는 나이팅게일 한 마리에 오늘날 66파운드 13실링 4펜스가 살 수 있는 만큼의 노동과 생계를 부릴 힘을 내주었고, 아시니우스 켈레르는 붉은촉수 한 마리에 88파운드 17실링 9펜스가 살 수 있는 만큼을 부릴 힘을 내주었다. 그런 높은 값이 터무니없게 된 까닭은 은이 넉넉하였던 데에 있다기보다, 그 로마인들이 제가 쓰기에 필요한 것을 넘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과 생계가 넉넉하였던 데에 있다. 그들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던 은의 양은 같은 양의 노동과 생계를 부릴 힘이 오늘날 그들에게 마련해 주었을 양보다 훨씬 적었다.
둘째 부류.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값이 오르는 둘째 갈래의 원생산물은 사람의 근면이 수요에 비례하여 그 양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갈지 않은 나라에서 자연이 넘치도록 넉넉하게 내놓아 값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그래서 갈이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더 이로운 생산물에 자리를 내주도록 밀려나는 쓸모 있는 초목과 짐승으로 이루어진다.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오랜 동안 이것의 양은 끊임없이 줄어드는데 그와 함께 그것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늘어난다. 그러므로 그 실질 가치, 곧 그것으로 사거나 부릴 수 있는 노동의 실제 양은 차츰 올라, 마침내 사람의 근면으로 가장 기름지고 가장 잘 간 땅에서 길러 낼 수 있는 어떤 것에도 못하지 않을 만큼 이로운 생산물이 되게 하는 높이에 이른다. 그 높이에 이르면 그것은 더 올라가기 어렵다. 더 올라간다면 그 양을 늘리려고 더 많은 땅과 더 많은 근면이 곧 그리로 쏠릴 것이다.
예를 들어 소의 값이 사람의 먹을 것을 길러 내려고 땅을 가는 것만큼 소의 먹을 것을 길러 내려고 땅을 가는 것이 이로울 만큼 높이 오르면, 그것은 더 올라가기 어렵다. 더 올라간다면 곡물 밭이 곧 더 많이 목초지로 바뀔 것이다. 갈이가 뻗어 나가는 것은 들목초지의 양을 줄임으로써, 나라가 노동이나 갈이 없이 저절로 내놓는 푸줏간 고기의 양을 줄인다. 또 곡물이나, 아니면 같은 이야기가 되는 곡물의 값을 쥐고 그것과 맞바꾸려는 사람의 수를 늘림으로써 수요를 늘린다. 그러므로 푸줏간 고기의 값, 따라서 소의 값은 가장 기름지고 가장 잘 간 땅을 소의 먹을 것을 길러 내는 데에 쓰는 것이 곡물을 길러 내는 데에 쓰는 것만큼 이로워질 만큼 높이 오를 때까지 차츰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갈이가 소의 값을 이 높이까지 끌어올릴 만큼 뻗어 나가는 것은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언제나 늦은 일일 수밖에 없으며, 그 높이에 이르기까지는 나라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 값은 끊임없이 오를 수밖에 없다. 유럽에는 어쩌면 소의 값이 아직 이 높이에 이르지 못한 곳이 있을 것이다. 연합법8 전에 스코틀랜드의 어느 곳에서도 그것은 이 높이에 이르지 못하였다. 스코틀랜드의 소가 늘 스코틀랜드 시장에만 갇혀 있었다면, 소를 먹이는 일 말고는 다른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땅의 양이 다른 쓰임새에 쓸 수 있는 땅에 견주어 그토록 많은 나라에서, 소를 먹이려고 땅을 가는 것이 이로울 만큼 그 값이 높이 오르는 일은 어쩌면 거의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잉글랜드에서는 이미 살펴본 대로 런던 근처에서 소의 값이 지난 세기 초쯤에 이 높이에 이른 듯하나, 더 멀리 떨어진 여러 주의 대부분에서 그것이 이 높이에 이른 것은 아마 훨씬 뒤의 일이며, 그 가운데 어떤 주에서는 어쩌면 아직도 이르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째 갈래의 원생산물을 이루는 여러 물건 가운데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그 값이 이 높이에 가장 먼저 오르는 것은 어쩌면 소일 것이다.
참으로 소의 값이 이 높이에 이르기까지는, 가장 높은 갈이를 받을 수 있는 땅조차 그 대부분이 온전히 갈릴 수 있으리라고 보기 어렵다. 거름을 실어 올 만한 읍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모든 농장에서, 곧 넓이가 넓은 모든 나라의 농장 가운데 훨씬 큰 몫에서 잘 간 땅의 양은 그 농장이 스스로 내놓는 거름의 양에 비례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다시 그 농장에서 먹이는 소 자산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땅에 거름을 주는 길은 그 위에 소를 풀어 먹이거나, 우리에서 먹이고 그 똥거름을 실어 내어 뿌리는 것이다. 그러나 소의 값이 간 땅의 지대와 이윤을 다 치를 만큼 되지 않는다면 농부는 그 위에 소를 풀어 먹일 형편이 못 되며, 우리에서 먹일 형편은 한층 더 못 된다. 소를 우리에서 먹일 수 있는 것은 개량하여 간 땅의 생산물로써뿐인데, 묵고 개량하지 않은 땅의 빈약하고 흩어진 생산물을 모으려면 노동이 너무 많이 들고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를 땅에 풀어 먹이게 할 때에도 그 값이 개량하여 간 땅의 생산물을 치르기에 넉넉하지 않다면, 적지 않은 노동을 더 들여 그 생산물을 모아 우리로 실어다 주어야 할 때에는 그 값이 그것을 치르기에 한층 더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형편에서는 갈이에 필요한 만큼 말고는 소를 우리에서 이롭게 먹일 수 없다. 그런데 그만큼의 소로는 그것이 갈 수 있는 땅 전부를 늘 좋은 상태로 지킬 만큼의 거름을 결코 내줄 수 없다. 그것이 내주는 거름은 농장 전체에 모자라므로 자연히 가장 이롭게 또는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땅, 곧 가장 기름진 땅이나 어쩌면 헛간 마당 가까운 땅에 남겨 둘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땅은 늘 좋은 상태로 지켜져 갈이에 알맞게 되고, 나머지는 그 대부분이 묵혀 두어 비틀거리며 반쯤 굶은 소 몇 마리를 겨우 살려 두기에 넉넉한 비참한 목초밖에 거의 내놓지 못하게 된다. 그 농장은 온전히 갈려면 필요할 소의 수에 견주어서는 소가 크게 넘치면서도, 실제 생산물에 견주어서는 소가 넘치는 일이 아주 잦다. 그러나 이렇게 비참한 꼴로 여섯 해나 일곱 해를 잇달아 풀밭으로 쓴 뒤에는 이 묵은 땅의 얼마를 갈아엎을 수 있고, 그러면 어쩌면 나쁜 귀리나 그 밖의 거친 곡식을 한두 번 빈약하게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 땅이 온전히 지쳐 버려 전처럼 다시 쉬게 하고 풀밭으로 써야 하며, 또 다른 얼마를 갈아엎어 같은 꼴로 지치게 한 다음 차례가 돌아오면 다시 쉬게 해야 한다. 그래서 연합법 전에 스코틀랜드 저지대 전역에서 다스림의 일반 체계가 이러하였다. 늘 거름을 잘 주어 좋은 상태로 지킨 땅은 농장 전체의 3분의 1이나 4분의 1을 넘는 일이 드물었고, 더러는 5분의 1이나 6분의 1에도 이르지 못하였다. 나머지는 거름을 받은 적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그 가운데 얼마가 차례로 어김없이 갈리고 지쳐 버렸다. 이런 다스림의 체계 아래에서는 좋은 갈이를 받을 수 있는 스코틀랜드 땅조차 그것이 내놓을 수 있는 양에 견주어 아주 적게밖에 내놓을 수 없었음이 뚜렷하다. 그러나 이 체계가 얼마나 불리하게 보이든, 연합법 전에는 소의 값이 낮았던 까닭으로 그것이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었던 듯하다. 값이 크게 올랐음에도 그것이 나라의 적지 않은 곳에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많은 곳에서 틀림없이 무지와 옛 관습에 매달리는 마음 탓이겠으나, 대부분의 곳에서는 더 나은 체계를 곧바로 또는 빠르게 세우는 데에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내놓는 피할 수 없는 걸림돌 탓이다. 첫째로는 차지인이 가난한 탓, 곧 그들이 자기 땅을 더 온전히 갈 만큼의 소 자산을 손에 넣을 시간을 아직 갖지 못한 탓이다. 그 값이 오른 것이 그들에게 더 많은 자산을 갖추는 것을 이롭게 만들면서, 바로 그 오름이 그것을 손에 넣기를 더 어렵게도 만든다. 둘째로는 그들이 그 더 많은 자산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도록 자기 땅을 다듬어 놓을 시간을 아직 갖지 못한 탓이다. 자산이 늘어나는 것과 땅이 개량되는 것은 반드시 손을 맞잡고 함께 가야 하는 두 가지 일이며, 그 하나가 다른 하나를 어디서도 크게 앞질러 갈 수 없다. 자산이 얼마쯤 늘지 않으면 땅의 개량이란 거의 있을 수 없으나, 땅이 크게 개량되지 않고서는 자산이 크게 늘 수도 없다. 그러지 않으면 땅이 그 자산을 먹여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은 체계를 세우는 데 맞선 이런 자연스러운 걸림돌은 오랫동안 절약과 근면을 이어 가는 것 말고는 치울 길이 없다. 그리고 차츰 낡아 가고 있는 옛 체계가 나라의 여러 곳에서 온전히 없어지기까지는 어쩌면 반세기나 한 세기가 더 지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의 연합에서 얻은 모든 상업상의 이로움 가운데 소의 값이 오른 이 일이 어쩌면 가장 큰 것이다. 그것은 하일랜드의 모든 땅의 가치를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어쩌면 저지대가 개량된 주된 원인이었다.
새로 생긴 모든 식민지에서는 여러 해 동안 소를 먹이는 일 말고는 다른 어디에도 쓸 수 없는 묵은 땅이 많으므로 소가 곧 몹시 넉넉해지며, 무엇이든 크게 넉넉하면 크게 싸지는 것이 반드시 따라온다. 아메리카에 있는 유럽 식민지의 소는 다 본래 유럽에서 실어 간 것이었으나, 그곳에서 곧 그토록 많이 불어나고 값이 그토록 떨어져 말조차 숲에서 멋대로 뛰어다니게 내버려 두고 아무도 그것을 제 것이라 주장할 값어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런 식민지가 처음 세워진 뒤로 간 땅의 생산물로 소를 먹이는 것이 이로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같은 원인, 곧 거름이 모자라는 것과 갈이에 부려지는 자산이 그것으로 갈아야 할 땅에 견주어 어울리지 않는 것이 그곳에도 스코틀랜드의 여러 곳에서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농사 체계를 들여놓기 쉽다. 스웨덴 여행가 칼름 씨9는 1749년에 자기가 본 대로 북아메리카의 몇몇 영국 식민지의 농사를 적으면서, 그에 걸맞게 그곳에서는 농업의 여러 갈래에 그토록 솜씨가 좋은 영국 국민의 성격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들은 곡물 밭에 거름을 거의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한 조각의 땅이 잇단 농사로 지쳐 버리면 그들은 다른 새 땅을 개간하여 갈고, 그것이 지치면 세 번째 땅으로 넘어간다. 그들의 소는 숲과 그 밖의 갈지 않은 땅을 떠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두어 그곳에서 반쯤 굶는데, 봄에 한해살이 풀이 꽃을 맺거나 씨를 떨굴 틈을 갖기도 전에 너무 일찍 뜯어 먹혀 그 풀이 오래전에 거의 다 뿌리째 없어졌기 때문이다(칼름의 《여행기》 제1권 343~344쪽). 그 한해살이 풀은 북아메리카의 그 지역에서 가장 좋은 자연 목초였던 듯하며, 유럽인이 처음 그곳에 자리 잡았을 때에는 아주 빽빽하게 자라 서너 피트 높이까지 올라오는 것이 예사였다. 그가 글을 쓸 때에 암소 한 마리도 먹여 살릴 수 없던 땅 한 조각이 옛 시절에는 네 마리를 먹여 살렸을 것이며, 그 네 마리마다 지금 그 한 마리가 낼 수 있는 젖의 네 배를 냈을 것이라고 그는 다짐을 받았다. 그가 보기에 목초가 나빠진 것이 그들의 소가 나빠진 까닭이며, 그 소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눈에 띄게 못해졌다. 그것은 아마 삼사십 년 전에 스코틀랜드 전역에 흔하던 그 비틀어진 품종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인데, 그 품종은 이제 저지대 대부분에서 크게 나아졌다. 이는 품종을 바꾼 덕이 아니라, 그런 방편을 쓴 곳도 더러 있기는 하나 더 넉넉하게 먹이는 길을 찾은 덕이다.
그러므로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소를 먹이려고 땅을 가는 것이 이로울 만한 값을 소가 받게 되는 것은 늦은 일이지만, 이 둘째 갈래의 원생산물을 이루는 여러 부분 가운데 이 값을 가장 먼저 받는 것은 어쩌면 소일 것이다. 소가 그 값을 받기까지는 유럽의 여러 곳에서 개량이 이르러 있는 그 정도의 온전함에조차 가까이 갈 수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소가 이 갈래에서 가장 먼저인 것들에 든다면, 사슴 고기는 어쩌면 이 갈래의 원생산물 가운데 이 값을 가장 늦게 받는 것에 든다. 영국에서 사슴 고기의 값은 얼마나 터무니없게 보이든 사슴 사육장에 드는 비용을 메우기에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사슴을 먹여 본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 잘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슴을 먹이는 일은 옛 로마인 사이에서 투르디라 불리던 그 작은 새를 먹이는 일이 그러하였던 것처럼 곧 흔한 농사의 한 가지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와 콜루멜라10는 그것이 가장 이로운 항목이었다고 우리에게 다짐한다. 그 나라에 마른 몸으로 날아드는 철새인 오르톨랑을 살지게 먹이는 일이 프랑스의 몇몇 곳에서는 그러하다고 한다. 사슴 고기가 계속 유행을 타고 영국의 부와 사치가 얼마 전부터 그래 온 대로 늘어 간다면, 그 값은 아주 그럼직하게 지금보다 한층 더 오를 것이다.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소처럼 그토록 꼭 있어야 할 물건의 값을 그 높이까지 끌어올리는 시점과, 사슴 고기처럼 그토록 군더더기인 물건의 값을 그 높이까지 끌어올리는 시점 사이에는 아주 긴 동안이 있으며, 그동안에 다른 여러 갈래의 원생산물이 저마다 다른 형편에 따라 어떤 것은 더 이르게 어떤 것은 더 늦게 차츰 그 가장 높은 값에 이른다.
이를테면 어느 농장에서나 헛간과 마구간에서 나오는 찌꺼기로 얼마쯤의 가금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이것들은 그러지 않으면 버려질 것으로 먹으므로 그야말로 버릴 것을 거두어 쓰는 셈이며, 농부에게 드는 것이 거의 없으므로 그는 그것을 아주 헐값에 팔 형편이 된다. 그가 얻는 것은 거의 다 고스란히 남는 것이라, 그 값이 이만큼의 수를 먹이는 일을 그만두게 할 만큼 낮아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갈이가 나쁘고 그래서 사람이 드문드문 사는 나라에서는 이렇게 비용 없이 길러 낸 가금이 흔히 온 수요를 채우기에 넉넉하다. 그러므로 이런 형편에서는 그것이 흔히 푸줏간 고기나 그 밖의 어떤 짐승 먹을거리와 마찬가지로 싸다. 그러나 농장이 이렇게 비용 없이 내놓는 가금의 전체 양은 언제나 그 농장에서 길러지는 푸줏간 고기의 전체 양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으며, 부와 사치의 시절에는 그 좋음이 거의 같기만 하다면 흔한 것보다 드문 것을 언제나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개량과 갈이의 결과로 부와 사치가 늘어 감에 따라 가금의 값은 푸줏간 고기의 값 위로 차츰 올라, 마침내 그것을 먹이려고 땅을 가는 것이 이로워질 만큼 높아진다. 그 높이에 이르면 그것은 더 올라가기 어렵다. 더 올라간다면 곧 더 많은 땅이 그 쓰임새로 돌려질 것이다. 프랑스의 여러 지방에서는 가금을 먹이는 일이 시골 살림살이에서 아주 중요한 항목으로 여겨지며, 농부가 그러려고 강냉이11와 메밀을 적지 않게 길러 낼 마음이 생길 만큼 이롭다. 그곳에서 어지간한 농부는 더러 마당에 새 400마리를 두기도 한다. 잉글랜드에서는 가금을 먹이는 일이 그토록 중요한 일로 널리 여겨지는 데까지 아직 이르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잉글랜드가 프랑스에서 적지 않은 양을 받아 오는 만큼, 그것은 프랑스보다 잉글랜드에서 틀림없이 더 비싸다.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갈래의 짐승 먹을거리든 그것이 가장 비싼 시기는 자연히 그것을 길러 내려고 땅을 가는 일이 널리 퍼지기 바로 앞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 이 관행이 널리 퍼지기 앞의 얼마 동안은 모자람이 반드시 그 값을 끌어올린다. 그것이 널리 퍼진 뒤에는 먹이는 새로운 길을 흔히 찾아내게 되어, 농부가 같은 넓이의 땅에서 그 갈래의 짐승 먹을거리를 훨씬 많이 길러 낼 수 있게 된다. 넉넉해지면 그는 더 싸게 팔지 않을 수 없게 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개량 덕에 더 싸게 팔 형편이 된다. 그럴 형편이 못 된다면 그 넉넉함이 오래 이어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클로버와 순무, 당근, 양배추 따위가 들어온 것이 런던 시장에서 푸줏간 고기의 흔한 값을 지난 세기 초쯤보다 얼마쯤 낮추는 데에 이바지한 것도 아마 이런 길을 거쳤을 것이다.
똥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내고 다른 어떤 쓸모 있는 짐승도 마다하는 많은 것을 탐하여 삼키는 돼지도 가금과 마찬가지로 본래 버릴 것을 거두어 쓰려고 기른다. 이처럼 비용이 거의 또는 전혀 들지 않게 기를 수 있는 그런 짐승의 수가 수요를 채우기에 넉넉한 동안은, 이 갈래의 푸줏간 고기가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낮은 값으로 시장에 나온다. 그러나 수요가 이 양으로 채울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오르고, 다른 소를 먹이고 살지게 하려고 그러하듯이 돼지를 먹이고 살지게 하려고 일부러 먹을 것을 길러 내야 하게 되면, 그 값은 반드시 오르며 그 나라의 성질과 농업의 형편이 돼지를 먹이는 일을 다른 소를 먹이는 일보다 더 비싸게 만들거나 덜 비싸게 만드는 대로 다른 푸줏간 고기의 값보다 그에 비례하여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뷔퐁 씨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돼지고기의 값은 쇠고기의 값과 거의 같다. 영국 대부분에서 그것은 오늘날 얼마쯤 더 높다.
영국에서 돼지와 가금의 값이 크게 오른 것은 오막살이 사람들과 그 밖에 땅을 조금 차지한 이들의 수가 줄어든 데에 흔히 돌려져 왔다. 그렇게 줄어든 일은 유럽의 어디에서나 개량과 더 나은 갈이가 오기 바로 앞에 일어난 일이었으나, 그와 함께 그 물건의 값을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얼마쯤 더 이르게 또 얼마쯤 더 빠르게 끌어올리는 데에 이바지하였을 수도 있다. 가장 가난한 집도 고양이나 개 한 마리를 아무 비용 없이 먹여 살리는 일이 잦은 것처럼, 땅을 차지한 가장 가난한 이들도 흔히 아주 적은 비용으로 가금 몇 마리나 어미 돼지 한 마리와 새끼 돼지 몇 마리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자기 밥상에서 나오는 자잘한 찌꺼기와 젖 국물, 걷어 낸 젖, 버터를 짜고 남은 젖이 그 짐승에게 먹을 것의 얼마를 대어 주고, 나머지는 이웃한 밭에서 아무에게도 눈에 띌 만한 해를 입히지 않고 찾아낸다. 그러므로 땅을 조금 차지한 그런 이들의 수가 줄어듦으로써, 이렇게 비용이 거의 또는 전혀 들지 않게 나오던 이 갈래의 식료품의 양이 적잖이 줄어들었을 것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그 값이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이르게 또 더 빠르게 올랐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 값은 이르든 늦든 어차피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곧 다른 간 땅 대부분에서 치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짐승에게 먹을 것을 내주는 땅을 가는 노동과 비용을 치르는 값까지 올랐을 것이다.
젖을 다루는 일, 곧 낙농도 돼지와 가금을 먹이는 일과 마찬가지로 본래 버릴 것을 거두어 쓰려고 벌인다. 농장에 반드시 두어야 하는 소는 제 새끼를 기르는 데에 드는 것이나 농부네 식구가 먹는 데에 드는 것보다 더 많은 젖을 내며, 어느 한 철에 가장 많이 낸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 가운데 젖은 어쩌면 가장 썩기 쉽다. 그것이 가장 넉넉한 더운 철에는 24시간을 채 가지 못한다. 농부는 그것을 생버터로 만들어 한 주 동안 그 얼마를 저장하고, 소금 버터로 만들어 한 해 동안 저장하며, 치즈로 만들어 그보다 훨씬 많은 몫을 여러 해 동안 저장한다. 이 모두에서 얼마는 제 식구가 쓰도록 남겨 두고 나머지는 받을 수 있는 가장 나은 값을 찾아 시장으로 가는데, 그 값이 제 식구가 쓰고 남는 것을 그곳으로 보내기를 그만두게 할 만큼 낮아지기는 어렵다. 그 값이 참으로 아주 낮으면 그는 낙농을 몹시 게으르고 지저분하게 다루기 쉬우며, 어쩌면 그것을 위하여 따로 방이나 건물을 두는 것조차 값어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아 제 부엌의 연기와 더러움과 지저분함 속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삼사십 년 전 스코틀랜드의 거의 모든 농부의 낙농이 그러하였고, 지금도 그 가운데 많은 곳이 그러하다. 푸줏간 고기의 값을 차츰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원인, 곧 수요가 늘어나는 것과 나라가 개량된 결과로 비용이 거의 또는 전혀 들지 않게 먹일 수 있는 양이 줄어드는 것이 낙농 생산물의 값도 같은 꼴로 끌어올리며, 그 값은 저절로 푸줏간 고기의 값 또는 소를 먹이는 비용과 이어진다. 값이 오르면 노동과 돌봄과 깨끗함에 더 많이 치를 수 있게 된다. 낙농이 농부의 마음을 쓸 값어치가 더 있게 되고 그 생산물의 품질도 차츰 좋아진다. 마침내 그 값이 가장 기름지고 가장 잘 간 땅의 얼마를 오로지 낙농을 위하여 소를 먹이는 데에 쓸 값어치가 있을 만큼 높아지며, 그 높이에 이르면 그것은 더 올라가기 어렵다. 더 올라간다면 곧 더 많은 땅이 그 쓰임새로 돌려질 것이다. 그것은 잉글랜드 대부분에서 이 높이에 이른 듯하며, 그곳에서는 좋은 땅이 흔히 그렇게 쓰이고 있다. 웬만큼 큰 읍 몇 곳의 근처를 빼면 스코틀랜드의 어디에서도 그것은 아직 이 높이에 이르지 못한 듯하며, 그곳의 여느 농부는 오로지 낙농을 위하여 소의 먹을 것을 길러 내는 데에 좋은 땅을 많이 쓰는 일이 드물다. 그 생산물의 값은 요 몇 해 사이에 웬만큼 올랐으나 아직 그럴 수 있을 만큼은 아마 낮을 것이다. 참으로 그 품질이 잉글랜드 낙농의 생산물에 견주어 떨어지는 정도는 그 값이 떨어지는 정도와 꼭 맞먹는다. 그러나 이 품질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값이 낮은 것의 원인이라기보다 그 결과다. 품질이 훨씬 좋았다 하더라도 오늘날 그 나라의 형편에서는 시장에 나오는 것의 대부분을 훨씬 나은 값으로 처분할 수 없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하며, 오늘날의 값으로는 훨씬 나은 품질을 내놓는 데에 드는 땅과 노동의 비용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잉글랜드 대부분에서는 값이 더 높음에도 낙농이 곡물을 길러 내는 것이나 소를 살지게 하는 것, 곧 농업의 두 큰 목표보다 땅을 더 이롭게 쓰는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코틀랜드 대부분에서 그것은 아직 그만큼 이로울 수조차 없다.
어느 나라의 땅도 사람의 근면이 그 위에서 길러 내야 하는 모든 생산물의 값이 온전한 개량과 갈이에 드는 비용을 치를 만큼 높아지고 나서야 온전히 갈리고 개량될 수 있음이 뚜렷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생산물의 값이 첫째로 좋은 곡물 밭의 지대를 치르기에 넉넉해야 하는데, 이는 그것이 다른 간 땅 대부분의 지대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좋은 곡물 밭에서 흔히 치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농부의 노동과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해야 하며, 달리 말하면 그가 그 일에 부리는 자산을 예사로운 이윤과 함께 메우기에 넉넉해야 한다. 저마다의 생산물의 값이 이렇게 오르는 것은, 그것을 길러 내도록 정해진 땅이 개량되고 갈리는 일보다 앞서야 함이 뚜렷하다. 벌이가 모든 개량의 목적이며, 손실이 반드시 따라 나오는 일에는 개량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수 없다. 그런데 값이 결코 비용을 되돌려 줄 수 없는 생산물을 위하여 땅을 개량하는 일에는 손실이 반드시 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나라를 온전히 개량하고 가는 것이 모든 공적인 이로움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은 아주 틀림없이 그러한데, 그 여러 갈래의 원생산물의 값이 이렇게 오르는 것은 공적인 재앙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모든 공적인 이로움 가운데 가장 큰 것에 반드시 앞서 오고 함께 오는 일로 보아야 한다.
그 여러 갈래의 원생산물의 명목 가격, 곧 화폐 가격이 이렇게 오른 것도 은의 가치가 떨어진 결과가 아니라 그 실질 가격이 오른 결과다. 그것은 전보다 더 많은 양의 은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양의 노동과 생계의 값어치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을 시장에 가져오는 데에 더 많은 양의 노동과 생계가 드는 만큼, 그것이 그곳에 왔을 때에는 더 많은 양을 나타내거나 그와 맞먹는다.
셋째 부류.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값이 저절로 오르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갈래의 원생산물은 그 양을 늘리는 데에 사람의 근면이 미치는 힘이 한계가 있거나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갈래의 원생산물의 실질 가격은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저절로 오르는 쪽으로 기울기는 하나, 그 양을 늘리려는 사람의 근면이 여러 우연에 따라 더 성공하기도 덜 성공하기도 하는 대로 서로 아주 다른 개량의 시기에 더러는 떨어지는 일조차 있고 더러는 그대로 머무르며, 또 같은 시기 안에서도 더러는 더 많거나 더 적게 오른다.
자연이 다른 갈래에 딸린 것처럼 만들어 놓아, 어느 나라가 내놓을 수 있는 한쪽의 양이 다른 쪽의 양에 반드시 갇히게 되는 갈래의 원생산물이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가 내놓을 수 있는 양모나 생가죽의 양은 그 나라에서 기르는 크고 작은 소의 수에 반드시 갇힌다. 그 수는 다시 그 나라의 개량된 형편과 농업의 성질이 반드시 정한다.
개량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푸줏간 고기의 값을 차츰 끌어올리는 것과 같은 원인이 양모와 생가죽의 값에도 같은 결과를 낳아 그것도 거의 같은 비율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여길 수 있다. 개량이 갓 시작된 거친 때에 뒤의 상품의 시장이 앞의 상품의 시장만큼 좁은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면 아마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각각의 시장이 뻗은 범위는 흔히 몹시 다르다.
푸줏간 고기의 시장은 거의 어디서나 그것을 내놓는 나라 안에 갇혀 있다. 참으로 아일랜드와 영국령 아메리카의 얼마는 소금에 절인 식료품을 적지 않게 거래하고 있으나, 내가 믿기로 그렇게 하는 나라, 곧 자기 푸줏간 고기의 적지 않은 몫을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나라는 상업 세계에서 그들뿐이다.
이와 달리 양모와 생가죽의 시장은 개량이 갓 시작된 거친 때에 그것을 내놓는 나라 안에 갇히는 일이 아주 드물다. 그것은 먼 나라로 쉽게 실어 갈 수 있는데, 양모는 아무 손질 없이 그럴 수 있고 생가죽은 아주 조금만 손질하면 그럴 수 있다. 또 그것은 많은 제조업의 재료이므로, 그것을 내놓는 나라의 근면이 그것에 대한 수요를 일으키지 않을 때에도 다른 나라의 근면이 그것을 일으킬 수 있다.
갈이가 나쁘고 그래서 사람이 드문드문 사는 나라에서는 양모와 가죽의 값이 짐승 전체의 값에서 차지하는 몫이, 개량과 인구가 더 앞으로 나아가 푸줏간 고기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은 나라에서보다 언제나 훨씬 크다. 흄은 색슨 시절에 양털 한 벌이 양 한 마리 전체 가치의 5분의 2로 매겨졌으며 이는 오늘날의 매김에서 차지하는 몫보다 훨씬 높았다고 살펴 둔다. 스페인의 몇몇 지방에서는 오로지 양털과 굳기름을 얻으려고 양을 죽이는 일이 잦다고 나는 다짐을 받았다. 몸통은 흔히 땅에 버려져 썩거나, 먹이를 노리는 짐승과 새에게 먹히도록 내버려진다. 이런 일이 스페인에서조차 더러 일어난다면, 칠레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다른 여러 곳에서는 거의 언제나 일어나며, 그곳에서는 뿔소를 오로지 가죽과 굳기름을 얻으려고 죽이는 일이 거의 언제나 벌어진다. 이런 일은 히스파니올라가 버커니어 해적에게 시달리던 때, 그리고 프랑스인 개척지가 자리를 잡고 개량되고 사람이 늘어나 스페인인의 소에 얼마쯤의 가치를 안겨 주기 전에도 거의 언제나 일어났다. 그 개척지는 이제 섬의 서쪽 절반 거의 전체의 해안을 둘러 뻗어 있으며, 스페인인은 아직도 해안의 동쪽 부분뿐 아니라 그 나라의 내륙 산악 지역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개량과 인구가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짐승 전체의 값은 반드시 오르지만, 이 오름에 몸통 고기의 값이 양모와 가죽의 값보다 훨씬 더 크게 영향을 받기 쉽다. 몸통 고기의 시장은 사회가 거친 상태에 있을 때 언제나 그것을 내놓는 나라 안에 갇히므로, 그 나라의 개량과 인구에 비례하여 반드시 넓어진다. 그러나 야만스러운 나라의 것이라 해도 양모와 가죽의 시장은 상업 세계 전체로 뻗는 일이 잦으므로, 그것이 같은 비율로 넓어지는 일은 아주 드물다. 상업 세계 전체의 형편이 어느 한 나라의 개량으로 크게 영향을 받는 일은 드물며, 그런 상품의 시장은 그런 개량이 있은 뒤에도 그전과 같거나 거의 같은 채로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서는 그 개량의 결과로 전체적으로 보아 그 시장이 얼마쯤 넓어지는 편이 옳다. 특히 그런 상품을 재료로 삼는 제조업이 그 나라에서 번창하게 된다면, 그 시장이 크게 넓어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자라난 곳에 전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올 것이며, 그 재료의 값은 적어도 그것을 먼 나라로 실어 가는 데에 예사로 들던 비용만큼 올라갈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이 푸줏간 고기와 같은 비율로 오르지는 않더라도 얼마쯤은 저절로 오르는 것이 옳고, 떨어지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옳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는 모직물 제조업이 번창하고 있음에도 에드워드 3세 때 뒤로 잉글랜드 양모의 값이 웬만큼 떨어졌다. 그 임금의 치세에(14세기 중엽 무렵, 곧 1339년쯤) 토드, 곧 잉글랜드 양모 28파운드(무게)의 웬만하고 무리 없는 값으로 여겨진 것이 그때 돈으로 10실링보다 적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믿을 만한 기록이 많다(스미스의 《양모 비망록》 제1권 5·6·7장과 제2권도 보라). 이는 온스당 20펜스의 비율로 런던탑 무게12로 은 6온스를 담고 있어 오늘날 우리 돈 30실링쯤에 해당한다. 오늘날에는 토드당 21실링을 아주 좋은 잉글랜드 양모의 좋은 값으로 셈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에드워드 3세 때 양모의 화폐 가격은 오늘날의 화폐 가격에 대하여 열 대 일곱이었다. 그 실질 가격의 높음은 한층 더 컸다. 쿼터당 6실링 8펜스의 비율로 보면 그 옛 시절에 10실링은 밀 12부셸의 값이었다. 쿼터당 28실링의 비율로 보면 오늘날 21실링은 겨우 6부셸의 값이다. 그러므로 옛 시절의 실질 가격과 오늘날의 실질 가격 사이의 비율은 열둘 대 여섯, 곧 둘 대 하나다. 그 옛 시절에 양모 한 토드로는 오늘날 그것으로 살 수 있는 생계의 두 배를 살 수 있었을 것이며, 노동에 돌아가는 실제 보수가 두 시기에 같았다면 따라서 노동도 두 배를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양모의 실질 가치와 명목 가치가 이렇게 떨어진 일은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결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에 걸맞게 힘과 술수의 결과였다.13 첫째로 잉글랜드에서 양모를 내보내는 것을 아예 금한 것의 결과요, 둘째로 스페인에서 그것을 관세 없이 들여오도록 허락한 것의 결과요, 셋째로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 말고 다른 나라로 그것을 내보내는 것을 금한 것의 결과다. 이런 규제의 결과로 잉글랜드 양모의 시장은 잉글랜드가 개량된 결과로 얼마쯤 넓어지는 대신 국내 시장에 갇혔으며, 그 시장에서는 다른 여러 나라의 양모가 그것과 겨루도록 허락되어 있고 아일랜드의 양모는 그것과 겨루도록 떠밀려 들어와 있다. 또 아일랜드의 모직물 제조업도 올바름과 공정한 거래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까지 온전히 억눌려 있으므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제 양모의 더 적은 몫밖에 국내에서 손질할 수 없고 따라서 그 가운데 더 큰 몫을 그들에게 허락된 하나뿐인 시장인 영국으로 보내야 한다.
옛 시절의 생가죽 값에 대해서는 그런 믿을 만한 기록을 나는 찾을 수 없었다. 양모는 흔히 임금에게 바치는 부조금으로 치러졌으므로 그 부조금에 매긴 값이 적어도 어느 만큼은 그 예사로운 값을 알려 준다. 그러나 생가죽은 그렇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도 플리트우드는 1425년에 옥스퍼드 버스터의 수도원장과 그 참사원 한 사람 사이에 있었던 셈에서 적어도 그 특정한 자리에 적힌 대로 그 값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데, 곧 황소 가죽 다섯 장에 12실링, 암소 가죽 다섯 장에 7실링 3펜스, 두 해 자란 양 가죽 서른여섯 장에 9실링, 송아지 가죽 열여섯 장에 2실링이다. 1425년에 12실링은 오늘날 우리 돈 24실링과 거의 같은 양의 은을 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셈에서 황소 가죽 한 장은 오늘날 우리 돈 4와 5분의 4실링과 같은 양의 은으로 매겨졌다. 그 명목 가격은 오늘날보다 적잖이 낮았다. 그러나 쿼터당 6실링 8펜스의 비율로 보면 12실링으로 그때에는 밀 14부셸과 5분의 4부셸을 살 수 있었을 것이며, 이는 부셸당 3실링 6펜스로 치면 오늘날 51실링 4펜스가 들 것이다. 그러므로 황소 가죽 한 장으로 그때에는 오늘날 10실링 3펜스로 살 수 있는 만큼의 곡물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실질 가치는 오늘날 우리 돈 10실링 3펜스와 같았다. 겨울의 대부분 동안 소가 반쯤 굶던 그 옛 시절에 소가 아주 큰 덩치였다고 우리는 볼 수 없다. 애버뒤포이즈 16파운드(무게)짜리 스톤으로 네 스톤 나가는 황소 가죽은 오늘날 나쁜 것으로 셈하지 않으며, 그 옛 시절에는 아마 아주 좋은 것으로 셈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스톤당 반 크라운14으로 보면, 이것이 지금(1773년 2월) 흔한 값이라고 나는 알고 있는데, 그런 가죽은 오늘날 겨우 10실링이 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명목 가격은 오늘날이 그 옛 시절보다 높지만, 그 실질 가격, 곧 그것으로 사거나 부릴 수 있는 생계의 실제 양은 오히려 얼마쯤 낮다. 위의 셈에 적힌 암소 가죽의 값은 황소 가죽의 값에 대하여 거의 흔한 비율을 이룬다. 양 가죽의 값은 그보다 적잖이 높다. 그것은 아마 양모와 함께 팔렸을 것이다. 반대로 송아지 가죽의 값은 그보다 크게 낮다. 소의 값이 아주 낮은 나라에서는 자산을 이어 가려고 기를 작정이 아닌 송아지를 대체로 아주 어릴 때 죽이는데, 이삼십 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그러하였다. 그렇게 하면 젖을 아끼는데, 송아지 값으로는 그 젖값을 치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가죽은 흔히 별 쓸모가 없다.
생가죽의 값은 몇 해 전보다 오늘날 적잖이 낮은데, 이는 아마 바닷물범 가죽에 매긴 관세를 없앤 것과, 1769년에 이루어진 일로서 한정된 기간 동안 아일랜드와 개척지에서 생가죽을 관세 없이 들여오도록 허락한 것 때문일 것이다. 이번 세기 전체를 평균하여 보면 그 실질 가격은 아마 그 옛 시절보다 얼마쯤 높았을 것이다. 이 상품의 성질은 그것을 먼 시장으로 실어 가는 데에 양모만큼 알맞지 않게 만든다. 그것은 두어 두면 더 상한다. 소금에 절인 가죽은 갓 벗긴 가죽보다 못하다고 셈하여 더 낮은 값에 팔린다. 이 사정은 그것을 제조하지 않고 내보내야 하는 나라에서 나온 생가죽의 값을 끌어내리고, 그것을 제조하는 나라에서 나온 생가죽의 값을 그에 견주어 끌어올리는 쪽으로 반드시 얼마쯤 기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야만스러운 나라에서 그 값을 끌어내리고, 개량되고 제조업을 갖춘 나라에서 그 값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얼마쯤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옛 시절에 그 값을 끌어내리고 오늘날 그 값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얼마쯤 기울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 무두질업자는 우리 모직물 업자만큼 나라의 지혜를 설득하여, 공동체의 안전이 자기네 제조업이 잘되는 데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드는 데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훨씬 덜한 은혜를 받아 왔다. 참으로 생가죽을 내보내는 것은 금지되고 공적인 해악으로 선언되었으나, 바깥 나라에서 그것을 들여오는 것에는 관세가 매겨져 왔다. 그리고 이 관세가 아일랜드와 개척지의 생가죽에 대해서는 (다섯 해라는 한정된 기간에 대해서만) 없어졌으나, 아일랜드는 남는 가죽이나 국내에서 제조하지 않는 가죽을 팔 때에 영국 시장에 갇혀 있지는 않다. 여느 소의 가죽은 겨우 요 몇 해 안에 개척지가 본국 말고 어디로도 보낼 수 없는 열거 상품15에 들었으며, 아일랜드의 거래도 이 경우에는 영국의 제조업을 받쳐 주려고 지금까지 짓눌린 적이 없다.
양모나 생가죽의 값을 그것이 저절로 이르렀을 값 아래로 끌어내리는 쪽으로 기우는 어떤 규제든, 개량되고 갈린 나라에서는 푸줏간 고기의 값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얼마쯤 기울 수밖에 없다. 개량하여 간 땅에서 먹이는 크고 작은 소의 값은 지주가 개량하여 간 땅에서 기대할 만한 지대와 농부가 기대할 만한 이윤을 치르기에 넉넉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곧 그것을 먹이기를 그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값 가운데 양모와 가죽으로 치러지지 않는 몫은 몸통 고기로 치러질 수밖에 없다. 한쪽으로 치러지는 것이 적을수록 다른 쪽으로 치러져야 하는 것이 많아진다. 이 값이 짐승의 여러 부분에 어떻게 갈라지느냐는, 그것이 다 자기들에게 치러진다면 지주와 농부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러므로 개량되고 갈린 나라에서 지주와 농부로서의 그들의 이익은 그런 규제로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없으나, 소비자로서의 그들의 이익은 식료품의 값이 오름으로써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개량되지 않고 갈리지 않은 나라, 땅의 대부분을 소를 먹이는 일 말고는 다른 어디에도 쓸 수 없고 양모와 가죽이 그 소의 가치의 주된 몫을 이루는 나라에서는 사정이 아주 다를 것이다. 이 경우에 지주와 농부로서의 그들의 이익은 그런 규제로 아주 깊이 영향을 받고, 소비자로서의 그들의 이익은 아주 조금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 경우에 양모와 가죽의 값이 떨어져도 몸통 고기의 값은 오르지 않는다. 그 나라 땅의 대부분을 소를 먹이는 일 말고는 다른 어디에도 쓸 수 없으므로 여전히 같은 수를 먹일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양의 푸줏간 고기가 여전히 시장에 나온다. 그것에 대한 수요는 전보다 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값도 전과 같다. 소의 값 전체가 떨어질 것이고, 그와 함께 소가 주된 생산물인 모든 땅, 곧 그 나라 땅의 대부분의 지대와 이윤이 다 떨어질 것이다. 흔히 에드워드 3세에게 돌려지지만 아주 잘못 돌려진 양모 수출의 영구 금지는, 그때 그 나라의 형편에서는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규제였을 것이다. 그것은 이 왕국 땅 대부분의 실제 가치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작은 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갈래의 값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뒤의 개량을 아주 크게 늦추었을 것이다.
주
1.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스털링」은 영국의 법정 화폐라는 뜻이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2. 옮긴이 — 트로이 파운드는 귀금속을 다는 무게 단위로 12트로이온스, 곧 약 373그램이다. 무게 단위 파운드와 화폐 단위 파운드가 한 문단에 같이 나오는 자리에서는 앞의 것을 「파운드(무게)」로 적어 갈라 두었다. 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하는 금화다.
3. 옮긴이 — 기욤 토마 레날(1713~1796)을 말한다. 그가 1770년에 낸 이 책은 유럽 여러 나라의 식민지와 그 거래를 다룬 당대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피아스트르는 스페인의 큰 은화이고 레알은 그것을 잘게 나눈 단위다. 크루자도는 포르투갈의 화폐이고 리브르는 프랑스의 화폐다.
4. 옮긴이 — 저본의 셈이 맞지 않는 자리다. 여기에 8분의 1인 25만 파운드를 더하여 225만 파운드가 되려면 앞의 액수가 200만 파운드여야 한다. 저본에는 2000만 파운드로 적혀 있다.
5. 옮긴이 — 저본에는 「유럽의 여러 광산(mines)에서」로 적혀 있으나, 금과 은의 비율을 정하는 것은 조폐국(mints)이므로 그렇게 고쳐 읽었다. 바로 다음 문단이 콜카타의 조폐국을 말하는 자리다.
6. 옮긴이 — 세스테르티우스는 로마의 화폐 단위다. 모디우스는 로마의 곡물 단위로 약 8.7리터이며, 펙은 4분의 1부셸, 곧 약 9리터다. 스미스가 뒤에서 인용하는 책은 플리니우스(23~79)의 《자연사》이고, 아그리피나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아내다.
7.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약 291리터, 밀로 치면 약 8부셸이다. 네 분의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1부셸은 약 36리터다.
8. 옮긴이 — 연합법은 1707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한 왕국으로 합친 법이다. 이로써 두 나라 사이의 거래를 막던 장벽이 없어졌고, 스코틀랜드의 소가 잉글랜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9. 옮긴이 — 페르 칼름(1716~1779)은 스웨덴의 박물학자로, 1748년부터 1751년까지 북아메리카를 돌아보고 그 기록을 냈다.
10. 옮긴이 — 바로(기원전 116~27)와 콜루멜라(1세기)는 농업을 다룬 글을 남긴 로마의 저술가다. 투르디는 지빠귀 무리를 가리키는 라틴어 이름이다. 오르톨랑은 유럽에서 미식거리로 살지게 먹여 기른 작은 멧새다.
11. 옮긴이 — 강냉이는 아메리카가 원산인 마이즈(maize)를 가리킨다. 이 책에서 corn은 곡물 일반, 특히 밀을 뜻하므로, 원문이 Indian corn 인 이 자리만 갈라 적었다.
12. 옮긴이 — 토드는 양모를 다는 단위로 28파운드(무게)다. 런던탑 무게는 런던탑 조폐국에서 쓰던 옛 무게 기준으로, 1파운드가 12온스이며 트로이 무게보다 조금 가볍다. 에드워드 3세는 1327년부터 137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13. 옮긴이 — 양모를 내보내는 것은 중세 이래 여러 법으로 금지되어, 1660년 뒤에는 어기면 무거운 벌을 받았다. 스페인 양모를 관세 없이 들여오게 한 것과 아일랜드 양모를 영국 시장에만 팔게 한 것은 다 잉글랜드 모직물 제조업자를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14. 옮긴이 — 스톤은 무게 단위로 여기서는 16파운드(무게)다. 애버뒤포이즈는 귀금속이 아닌 여느 물건을 다는 무게 기준이다. 반 크라운은 2실링 6펜스, 곧 30펜스다.
15. 옮긴이 — 열거 상품은 항해법에 따라 식민지가 본국 말고 다른 곳으로는 내보낼 수 없도록 법에 이름을 적어 둔 상품이다. 설탕과 담배 따위가 먼저 올랐고 뒤에 품목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