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국부론머리말
차례
로그인

머리말 머리말과 이 책의 구상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한 해 노동은 그 나라가 한 해 동안 써서 없애는 생활의 온갖 필수품과 편의품을 본래 공급해 주는 기금이며, 그 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그 노동이 곧바로 낸 생산물이거나 그 생산물로 다른 나라에서 사들인 것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이 생산물, 또는 그것으로 사들인 것이 그것을 써서 없앨 사람의 수에 대하여 더 큰 비율을 이루는가 더 작은 비율을 이루는가에 따라, 그 나라는 저마다 필요한 온갖 필수품과 편의품을 더 넉넉히 공급받거나 더 모자라게 공급받는다.

그러나 이 비율은 어느 나라에서나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정에 따라 정해진다. 첫째는 그 나라의 노동이 대체로 어느 만큼의 솜씨와 손재주와 판단력으로 쓰이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 사이의 비율이다. 어떤 나라의 흙이 어떠하든, 기후가 어떠하든, 땅의 넓이가 어떠하든, 그 나라가 한 해에 얻는 공급이 넉넉한가 모자라는가는 그 특정한 처지에서 저 두 가지 사정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공급이 넉넉한가 모자라는가도 저 두 가지 사정 가운데 뒤의 것보다는 앞의 것에 더 많이 달려 있는 듯하다. 사냥과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미개한 민족 사이에서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얼마쯤은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며, 자기 자신과, 또 자기 가족이나 부족 가운데 너무 늙거나 너무 어리거나 너무 병약하여 사냥과 고기잡이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을 될 수 있는 대로 마련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그런 민족은 비참할 만큼 가난하여, 순전히 모자람 탓에 저희 어린아이와 노인과 오래 끄는 병에 걸린 이들을 때로는 곧바로 없애고 때로는 그대로 버려 굶어 죽거나 들짐승에게 먹히도록 내맡기지 않을 수 없는 지경으로 자주 몰리며, 적어도 스스로 그런 지경에 몰렸다고 여긴다. 이와 달리 문명을 이루고 번영하는 나라에서는 아주 많은 사람이 노동을 전혀 하지 않고 그 가운데 다수가 일하는 사람 대부분보다 열 배, 흔히는 백 배나 많은 노동의 생산물을 써서 없애는데도, 사회 전체의 노동이 내는 생산물이 너무나 커서 모두가 넉넉히 공급받는 일이 흔하며, 가장 낮고 가장 가난한 계층의 일꾼이라도 아끼고 부지런히 일한다면 어떤 미개인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몫의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을 누릴 수 있다.

노동의 생산력이 이렇게 나아지는 원인들, 그리고 그 생산물이 사회의 여러 계층과 여러 처지의 사람들 사이에 자연히 나뉘는 순서가 이 연구의 1편이 다루는 주제를 이룬다.

어떤 나라에서 노동이 쓰이는 솜씨와 손재주와 판단력의 실제 상태가 어떠하든, 그 상태가 이어지는 동안 그 나라가 한 해에 얻는 공급이 넉넉한가 모자라는가는 해마다 유용한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수 사이의 비율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자의 수는, 뒤에 드러나겠지만, 어디서나 그들을 일에 붙여 놓는 데 쓰이는 자본1의 양에, 그리고 그 자본이 쓰이는 특정한 길에 비례한다. 그러므로 2편은 자본의 성질, 자본이 차츰 쌓이는 과정, 그리고 자본이 쓰이는 여러 길에 따라 자본이 움직여 내는 노동의 양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다룬다.

노동을 쓰는 솜씨와 손재주와 판단력에서 어지간히 앞서 나간 나라들도 노동을 두루 이끌고 부리는 방침에서는 서로 아주 다른 계획을 따라 왔고, 그 계획들이 노동의 생산물을 크게 만드는 데 다 같이 이로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나라의 정책은 시골의 산업을 남달리 북돋웠고 다른 나라의 정책은 도시의 산업을 북돋웠다. 온갖 종류의 산업을 고르고 치우침 없이 대한 나라는 거의 없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로 유럽의 정책은 농업, 곧 시골의 산업보다 기예와 제조업과 상업, 곧 도시의 산업에 더 이로웠다. 이 정책을 끌어들이고 굳혀 놓은 듯이 보이는 사정들은 3편에서 밝힌다.

이 서로 다른 계획들이 어쩌면 처음에는 특정한 계층 사람들의 사사로운 이해와 편견에서 끌려 나왔고, 그것이 사회의 일반적 복지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랑곳하지도 미리 내다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주 다른 여러 정치경제학 이론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 어떤 것은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의 중요성을 크게 보고 어떤 것은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의 중요성을 크게 본다. 그 이론들은 학식 있는 사람들의 견해에만이 아니라 군주와 주권 국가들의 공적 행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4편에서 그 서로 다른 이론들과, 그것들이 여러 시대와 여러 나라에서 낳은 주요한 결과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하고 또렷하게 밝히려고 애썼다.

백성 대다수의 수입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왔는가, 또는 여러 시대와 여러 나라에서 그들의 한 해 소비를 뒷받침해 온 기금이 어떤 성질의 것이었는가를 밝히는 것이 앞의 네 편이 노리는 바다. 다섯째이자 마지막 편은 주권자, 곧 국가의 세입을 다룬다. 이 편에서 나는 첫째로 주권자 곧 국가가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이 무엇인가, 그 비용 가운데 어느 것을 사회 전체의 일반적 부담으로 물어야 하고 어느 것을 사회의 어느 특정한 부분이나 특정한 구성원만의 부담으로 물어야 하는가, 둘째로 사회 전체에 걸린 비용을 치르는 데 사회 전체가 이바지하도록 만드는 여러 방도가 무엇이며 그 방도마다 주된 이점과 불편이 무엇인가, 그리고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거의 모든 근대 정부가 이 세입의 일부를 담보로 잡히거나 빚을 지게 된 이유와 원인이 무엇이며 그 빚이 사회의 실질적 부, 곧 그 땅과 노동이 한 해에 내는 생산물에 어떤 결과를 미쳤는가를 보이려고 애썼다.

1편 노동의 생산력이 나아지는 원인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 생산물이 백성의 여러 계층 사이에 자연히 나뉘는 순서에 대하여

1장 분업에 대하여

노동의 생산력에서 이루어진 가장 큰 발전, 그리고 노동이 어디서든 이끌리고 쓰일 때 함께 따르는 솜씨와 손재주와 판단력의 대부분은 분업이 낸 결과인 듯하다. 사회의 일 전체에서 분업이 내는 결과는 몇몇 특정한 제조업에서 분업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분업은 아주 시시한 제조업 몇 가지에서 가장 멀리까지 밀고 나간 것으로 흔히 여겨진다. 어쩌면 더 중요한 다른 제조업보다 그런 것들에서 실제로 분업이 더 멀리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자잘한 수요를 채우도록 마련된 그 시시한 제조업에서는 일꾼의 수가 모두 합쳐도 적을 수밖에 없고, 일의 서로 다른 갈래마다 붙은 사람들을 흔히 한 작업장에 모아 보는 이의 눈앞에 한꺼번에 놓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백성 대다수의 큰 수요를 채우도록 마련된 큰 제조업에서는 일의 갈래마다 너무나 많은 일꾼을 쓰는 탓에 그들을 모두 한 작업장에 모으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가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갈래에 붙은 사람들보다 많은 경우가 드물다. 그러므로 그런 제조업에서는 일이 실제로 시시한 제조업보다 훨씬 많은 부분으로 갈라져 있을 수 있는데도, 그 갈림이 그만큼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따라서 훨씬 덜 눈에 띄어 왔다.

그러므로 아주 시시하지만 분업이 매우 자주 눈에 띄어 온 제조업 하나, 곧 핀 만드는 일을 예로 들어 보자. 이 일에 익히지 못한 일꾼(분업이 이 일을 독립된 직업으로 만들었다)이, 거기 쓰이는 기계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그 기계를 만들어 낼 계기도 아마 같은 분업이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부지런히 일한다 해도 하루에 핀 한 개를 만들기가 어쩌면 어려울 것이고 20개는 분명히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오늘날 이루어지는 모양을 보면, 일 전체가 독립된 직업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고 그 갈래 대부분이 또한 독립된 직업이다. 한 사람은 철사를 뽑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바로잡고, 셋째 사람은 자르고, 넷째 사람은 끝을 뾰족하게 갈고, 다섯째 사람은 머리를 붙일 수 있게 위쪽을 문질러 다듬는다. 머리를 만드는 데에는 별개의 공정 두세 가지가 들고, 그것을 붙이는 일이 또 독립된 일이며, 핀을 하얗게 만드는 일이 또 하나이고, 종이에 꽂아 넣는 일까지도 그 자체로 하나의 직업이다. 핀 하나를 만드는 이 중요한 일이 이런 모양으로 18가지쯤의 별개 공정으로 갈라지며, 어떤 공장에서는 그 모두를 서로 다른 손이 맡고 어떤 공장에서는 같은 사람이 그 가운데 두세 가지를 맡기도 한다. 나는 이런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열 사람만 일하였고 따라서 그 가운데 몇몇은 별개 공정 두세 가지를 맡았다. 그들은 매우 가난하였고 그런 만큼 필요한 기계도 어지간히밖에 갖추지 못하였으나, 힘을 내어 일하면 열 사람이 함께 하루에 핀 12파운드(무게)2쯤을 만들 수 있었다. 중간 크기 핀이라면 1파운드에 4,000개가 넘게 든다. 그러므로 그 열 사람은 함께 하루에 4만 8,000개가 넘는 핀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한 사람이 4만 8,000개의 10분의 1을 만든 셈이니 하루에 4,800개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따로따로, 서로 얽히지 않고, 아무도 이 특정한 일을 익히지 않은 채 일했다면 저마다 하루에 20개는 분명히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한 개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곧 서로 다른 공정을 알맞게 갈라 짜 맞춘 덕분에 그들이 지금 해낼 수 있는 양의 240분의 1도, 어쩌면 4,800분의 1도 분명히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기예와 제조업에서도 분업이 내는 결과는 이 아주 시시한 제조업에서와 비슷하다. 다만 그 가운데 많은 것에서는 노동을 그만큼 잘게 쪼갤 수도 없고 공정을 그만큼 단순하게 줄일 수도 없다. 그러나 분업은 끌어들일 수 있는 한 어느 기예에서나 노동의 생산력을 그에 비례하여 키운다. 서로 다른 직업과 생업이 서로에게서 갈라져 나온 것도 이 이점 때문에 일어난 듯하다. 이 갈라짐도 근면과 발전이 가장 높은 정도에 이른 나라에서 대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가며, 사회가 거친 상태에 있을 때 한 사람이 하는 일이 발전한 상태에서는 대개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 된다. 발전한 사회에서는 농부는 대개 농부일 뿐이고 제조업자는 제조업자일 뿐이다. 또한 어떤 완성된 제조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노동도 거의 언제나 아주 많은 손으로 나뉘어 있다. 아마와 양모를 기르는 사람에서 아마포를 바래고 다듬는 사람, 또는 모직물을 물들이고 마무리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아마포와 모직물 제조업의 갈래마다 얼마나 많은 서로 다른 직업이 들어가 있는가! 농업의 성질은 과연 제조업만큼 노동을 잘게 쪼개는 것도, 한 일을 다른 일에서 그만큼 온전히 갈라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목자의 일을 곡물 농부의 일에서 갈라내는 것은 목수의 일을 대장장이의 일에서 흔히 갈라내는 것처럼 온전히 될 수 없다. 실 잣는 사람은 거의 언제나 베 짜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지만, 쟁기질하는 사람과 써레질하는 사람과 씨 뿌리는 사람과 곡물 거두는 사람은 같은 사람인 일이 흔하다. 그런 서로 다른 종류의 노동이 필요해지는 때가 한 해의 철마다 돌아오므로, 한 사람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에만 늘 붙어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농업에 쓰이는 노동의 여러 갈래를 그토록 온전하고 빈틈없이 갈라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 사정이, 어쩌면 이 기예에서 노동의 생산력이 나아지는 걸음이 제조업에서 나아지는 걸음을 늘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과연 가장 넉넉한 나라들은 제조업에서만이 아니라 농업에서도 대개 이웃 나라들보다 낫다. 그러나 그들이 더 두드러지게 앞서는 쪽은 흔히 농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그들의 땅은 대체로 더 잘 갈리고, 더 많은 노동과 비용을 들이는 만큼 땅의 넓이와 타고난 비옥함에 비하여 더 많이 낸다. 그러나 이 생산물의 우위가 노동과 비용의 우위에 비례하는 정도를 크게 넘어서는 일은 드물다. 농업에서는 부유한 나라의 노동이 가난한 나라의 노동보다 언제나 훨씬 더 생산적인 것은 아니며, 적어도 제조업에서 흔히 그러한 만큼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은 결코 없다. 그러므로 부유한 나라의 곡물이 같은 정도로 좋은 것이라 해도 가난한 나라의 곡물보다 늘 더 싸게 시장에 나오지는 않는다. 폴란드의 곡물은 같은 정도로 좋은 것이라면 프랑스의 곡물만큼 싸며, 프랑스가 더 넉넉하고 더 발전했음에도 그렇다. 프랑스의 곡물은 곡물 산지에서는 영국의 곡물에 아주 못하지 않게 좋고 값도 대부분의 해에 거의 같은데, 넉넉함과 발전에서는 프랑스가 어쩌면 영국에 못 미친다. 그러나 영국의 곡물 밭은 프랑스의 곡물 밭보다 더 잘 갈려 있고, 프랑스의 곡물 밭은 폴란드의 곡물 밭보다 훨씬 더 잘 갈려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가 갈이가 못한데도 곡물의 값싸기와 좋기에서는 부유한 나라와 얼마쯤 겨룰 수 있다 하더라도, 제조품에서는 그런 겨룸을 바랄 수 없다. 적어도 그 제조업이 부유한 나라의 흙과 기후와 처지에 맞는 것이라면 그렇다. 프랑스의 비단이 영국의 비단보다 좋고 값도 싼 것은, 적어도 생사를 들여오는 데 지금처럼 높은 관세가 붙어 있는 한 비단 제조업이 프랑스의 기후만큼 영국의 기후에 잘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철물과 거친 모직물은 프랑스의 것보다 견줄 수 없을 만큼 뛰어나고, 같은 정도로 좋은 것이라면 값도 훨씬 싸다. 폴란드에는 어떤 나라도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거친 가내 제조품 몇 가지를 빼면 어떤 종류의 제조업도 거의 없다고 한다.

분업 덕분에 같은 수의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이 이토록 크게 늘어나는 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사정 때문이다. 첫째는 일꾼 하나하나의 손재주가 늘기 때문이고, 둘째는 한 종류의 일에서 다른 종류의 일로 넘어갈 때 흔히 잃는 시간을 아끼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는 노동을 쉽고 짧게 해 주어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일을 하게 만드는 기계를 수없이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첫째, 일꾼의 손재주가 나아지면 그가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이 반드시 늘어난다. 그리고 분업은 사람마다의 일을 어느 한 가지 단순한 공정으로 줄이고 그 공정을 그의 한평생 유일한 생업으로 만들어, 일꾼의 손재주를 반드시 아주 크게 키운다. 망치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나 못을 만드는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대장장이가 어떤 특별한 일로 못 만들기를 해 보아야 한다면, 내가 들은 바로는 하루에 200개나 300개를 넘겨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고 그나마 아주 나쁜 것일 터이다. 못 만들기에 익숙하되 그것이 유일하거나 주된 생업은 아니었던 대장장이는 온 힘을 다해 부지런히 해도 하루에 800개나 1,000개를 넘겨 만드는 일이 드물다. 나는 못 만들기 말고 다른 어떤 직업도 해 본 적이 없는 스무 살 아래의 소년 여럿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은 힘을 내어 일하면 저마다 하루에 2,300개가 넘는 못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못을 만드는 일은 결코 가장 단순한 공정에 드는 것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풀무를 불고, 필요에 따라 불을 쑤시거나 돋우고, 쇠를 달구고, 못의 부분마다를 두들겨 낸다. 게다가 머리를 두들길 때는 도구를 바꾸어야 한다. 핀이나 쇠단추를 만드는 일이 갈라지는 공정들은 그 모두가 훨씬 더 단순하며, 그 일을 해내는 것이 한평생 유일한 생업이었던 사람의 손재주는 흔히 훨씬 더 크다. 그런 제조업의 공정 가운데 어떤 것이 이루어지는 빠르기는, 한 번도 그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손이 익힐 수 있으리라고 짐작조차 못 할 정도를 넘어선다.

둘째, 한 종류의 일에서 다른 종류의 일로 넘어갈 때 흔히 잃는 시간을 아껴 얻는 이점은 우리가 처음 볼 때 짐작하기 쉬운 것보다 훨씬 크다. 다른 곳에서 아주 다른 도구로 하는 일로 아주 빠르게 옮겨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작은 농장을 부치는 시골 베 짜는 사람은 베틀에서 밭으로, 밭에서 베틀로 옮겨 가는 데 적잖은 시간을 잃을 수밖에 없다. 두 직업을 같은 작업장에서 할 수 있을 때에는 잃는 시간이 분명히 훨씬 적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것은 여전히 매우 크다. 사람은 손을 한 종류의 생업에서 다른 종류의 생업으로 돌릴 때 흔히 조금씩 어정거린다. 새 일을 막 시작할 때 그가 아주 열심이고 신이 난 경우는 드물다. 흔히 말하듯 마음이 일에 붙지 않아, 한동안은 제대로 힘을 들이기보다 오히려 빈둥거린다. 30분마다 일과 도구를 바꾸어야 하고 한평생 거의 날마다 손을 스무 가지 다른 데로 놀려야 하는 시골 일꾼이면 누구나 자연히, 아니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얻게 되는 어정거리는 버릇과 게으르고 데면데면하게 일하는 버릇은, 그를 거의 언제나 굼뜨고 게으르게 만들어 가장 다급한 때에도 힘차게 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손재주가 모자란다는 점과는 따로, 이 원인 하나만으로도 그가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은 반드시 적잖게 줄어든다.

셋째이자 마지막으로, 알맞은 기계를 쓰면 노동이 얼마나 쉽고 짧아지는지는 누구나 느낄 것이다.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노동을 그토록 쉽고 짧게 해 주는 그 모든 기계를 만들어 낸 일도 본래 분업에 힘입은 듯하다는 것만 말해 두겠다. 사람은 마음의 온 주의가 어느 한 가지 대상으로 쏠려 있을 때, 그것이 아주 여러 가지 것으로 흩어져 있을 때보다 어떤 목적에 이르는 더 쉽고 빠른 길을 찾아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 분업 덕분에 사람마다의 주의는 모두 자연히 아주 단순한 어느 한 대상으로 쏠리게 된다. 그러므로 노동의 갈래마다 붙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일의 성질이 그런 나아짐을 허락하는 한 자기가 맡은 특정한 일을 해내는 더 쉽고 빠른 길을 이내 찾아내리라고 자연히 기대할 만하다. 노동이 가장 잘게 쪼개진 제조업에서 쓰이는 기계 가운데 큰 몫은 본래 평범한 일꾼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으니, 그들은 저마다 아주 단순한 공정 하나에 붙어 있었으므로 자연히 그것을 해내는 더 쉽고 빠른 길을 찾아내는 데로 생각을 돌렸다. 그런 제조업을 자주 찾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맡은 특정한 부분을 쉽고 빠르게 하려고 그런 일꾼들이 만들어 낸 아주 예쁜 기계를 여러 번 구경했을 것이다. 초기의 화력 기관3에서는 피스톤이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에 따라 보일러와 실린더 사이의 통로를 번갈아 열고 닫는 일에 소년 하나가 늘 붙어 있었다. 동무들과 놀기를 좋아하던 그 소년들 가운데 하나가, 이 통로를 여는 판의 손잡이에서 기계의 다른 부분으로 끈을 매어 두면 자기 손을 빌리지 않고도 판이 열리고 닫혀 놀이 동무들과 마음껏 놀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기계가 처음 만들어진 뒤로 거기에 가해진 가장 큰 개량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제 노동을 덜려 한 소년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기계에서 이루어진 모든 개량이 그 기계를 쓸 일이 있던 사람들의 발명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기계를 만드는 일이 독립된 직업이 된 뒤로는 많은 개량이 기계 만드는 사람들의 재간에서 나왔고, 어떤 것은 이른바 철학자 또는 사변하는 사람4의 재간에서 나왔다. 그들의 직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일이며, 그런 까닭에 그들은 가장 멀고 서로 가장 닮지 않은 대상들의 힘을 하나로 묶어 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나아감에 따라 철학 또는 사변도 다른 모든 생업과 마찬가지로 어느 특정한 계층 시민들의 주된, 또는 유일한 직업과 생업이 된다. 그것도 다른 모든 생업처럼 아주 많은 갈래로 쪼개지며, 그 갈래마다 특정한 무리 또는 계층의 철학자들에게 일거리를 준다. 그리고 철학에서도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생업이 쪼개지면 손재주가 늘고 시간이 아껴진다. 사람마다 자기가 맡은 특정한 갈래에서 더 능숙해지고, 전체로 보아 더 많은 일이 이루어지며, 그로써 학문의 양이 적잖게 늘어난다.

잘 다스려지는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에게까지 미치는 그 두루 퍼진 넉넉함을 일으키는 것은 분업 덕분에 온갖 기예의 생산물이 크게 불어나는 일이다. 일꾼마다 자기가 쓸 데 있는 것을 넘어 처분할 수 있는 자기 일의 생산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다른 일꾼마다 똑같은 처지에 있으므로, 그는 자기 물건을 많이 내어 남의 물건을 많이, 또는 같은 말이 되겠지만 남의 물건 많은 양의 값어치를 바꾸어 얻을 수 있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이 쓸 데 있는 것을 넉넉히 공급하고 그들은 그에게 그가 쓸 데 있는 것을 그만큼 넉넉히 마련해 주며, 두루 넘치는 풍족함이 사회의 온갖 계층으로 퍼져 나간다.

문명을 이루고 번영하는 나라에서 가장 흔한 수공업자나 날품팔이가 누리는 살림살이를 살펴보라. 그러면 그에게 이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는 데 자기 근면의 일부를, 아주 작은 일부일지라도 들인 사람의 수가 셈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예컨대 날품팔이를 덮고 있는 모직 상의는 아무리 거칠고 투박해 보이더라도 아주 많은 일꾼이 힘을 합친 노동의 생산물이다. 양치기, 양모를 가리는 사람, 양모를 빗거나 타는 사람, 물들이는 사람, 양모를 애벌로 긁어 고르는 사람, 실 잣는 사람, 베 짜는 사람, 천을 축융하는 사람, 마무리하는 사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이 소박한 생산물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도 저마다의 기예를 모두 합쳐야 한다. 게다가 그 재료를 어느 일꾼에게서 흔히 나라의 아주 먼 곳에 사는 다른 일꾼에게로 옮기는 데 얼마나 많은 상인과 운반꾼이 들어갔어야 하겠는가? 특히 물들이는 사람이 쓰는 여러 약재는 흔히 세상의 가장 먼 구석에서 오는데, 그것들을 한데 모으는 데 얼마나 많은 상업과 항해가, 얼마나 많은 배 만드는 사람과 뱃사람과 돛 만드는 사람과 줄 만드는 사람이 들어갔어야 하겠는가? 또한 그 일꾼들 가운데 가장 낮은 이의 도구를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갖가지 노동이 필요한가! 뱃사람의 배, 축융하는 사람의 물방아, 또는 베 짜는 사람의 베틀 같은 복잡한 기계는 말할 것도 없이, 양치기가 양털을 깎는 가위라는 아주 단순한 기계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갖가지 노동이 드는지만 헤아려 보자. 광부, 광석을 녹이는 화덕을 짓는 사람, 나무를 베는 사람, 제련장에서 쓸 숯을 굽는 사람, 벽돌 만드는 사람, 벽돌 쌓는 사람, 화덕을 돌보는 일꾼들, 물방아 짜는 사람, 쇠를 두들기는 사람, 대장장이가 그것을 만들어 내려면 저마다의 기예를 모두 합쳐야 한다. 그의 옷과 집안 살림살이의 온갖 부분을 같은 모양으로 살펴본다면, 곧 살에 닿게 입는 거친 아마포 셔츠, 발을 덮는 신, 그가 눕는 침상과 그것을 이루는 온갖 부분, 그가 먹을 것을 마련하는 부엌 화격자, 그러려고 쓰는 석탄, 땅속에서 캐내어 어쩌면 먼 뱃길과 먼 땅길로 그에게 실려 온 그 석탄, 그 밖의 온갖 부엌 그릇, 상에 놓인 온갖 도구, 칼과 포크, 먹을 것을 담아 내고 나누는 흙 접시나 백랍 접시, 그의 빵과 맥주를 마련하는 데 들어간 여러 손, 열과 빛을 들이고 바람과 비를 막는 유리창, 그리고 그 아름답고 고마운 발명품을 만드는 데 드는 온갖 지식과 기예, 그것이 없었다면 이 세상 북쪽 지방이 매우 편안한 거처가 되기 어려웠을 그 발명품, 여기에 그런 여러 편의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온갖 일꾼의 도구까지 살펴본다면, 곧 이 모든 것을 살펴보고 그 하나하나에 얼마나 갖가지 노동이 들어가는지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수천 사람의 도움과 협력이 없이는 문명한 나라에서 가장 낮은 사람조차 흔히 누리는 그 살림살이를, 우리가 아주 잘못 짐작하여 쉽고 단순하다고 여기는 그 정도로조차 갖출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과연 지체 높은 이들의 더 방자한 사치에 견주면 그의 살림살이는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해 보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유럽 군주의 살림살이가 부지런하고 아낄 줄 아는 농민의 살림살이를 넘어서는 정도는, 그 농민의 살림살이가 벌거벗은 미개인 만 명의 목숨과 자유를 마음대로 쥔 많은 아프리카 왕의 살림살이를 넘어서는 정도만큼 늘 크지는 않다는 것이 어쩌면 참일지도 모른다.

2장 분업을 일으키는 원리에 대하여

그토록 많은 이점이 흘러나오는 분업은 본래 어떤 인간의 지혜가 낸 결과가 아니다. 그 지혜가 분업이 일으키는 저 두루 퍼진 넉넉함을 미리 내다보고 뜻했던 것이 아니다. 분업은 그렇게 널리 미치는 쓸모를 조금도 내다보지 않는 인간 본성의 어떤 성향, 곧 한 물건을 다른 물건과 주고받고 바꾸고 맞바꾸려는 성향에서 반드시 따라 나오는, 그러나 아주 느리고 차츰차츰 이루어지는 결과다.

이 성향이 더 캐어 밝힐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본래 원리 가운데 하나인지, 아니면 더 그럴듯해 보이는 대로 이성과 말의 능력에서 반드시 따라 나온 결과인지를 캐묻는 일은 지금 우리의 주제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두루 있으며, 이런 계약도 다른 어떤 종류의 계약도 알지 못하는 듯한 다른 어떤 짐승의 종족에서도 볼 수 없다. 사냥개 두 마리가 같은 산토끼를 쫓아 달릴 때는 더러 어떤 짜임새를 갖추어 움직이는 듯이 보인다. 저마다 토끼를 동무 쪽으로 몰거나, 동무가 토끼를 자기 쪽으로 몰 때는 그것을 가로막으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떤 계약이 낸 결과가 아니라 그때 그 자리에서 두 짐승의 정념이 같은 대상으로 우연히 모인 결과다. 개가 다른 개와 뼈 하나를 다른 뼈와 공정하게 헤아려 맞바꾸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짐승이 몸짓과 타고난 울음소리로 다른 짐승에게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네 것이니 이것을 주고 저것을 받겠다고 알리는 것을 본 사람도 아무도 없다. 짐승이 사람에게서든 다른 짐승에게서든 무엇을 얻으려 할 때, 그에게는 자기가 바라는 도움을 줄 상대의 마음에 드는 것 말고는 달랠 방도가 없다. 강아지는 어미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스패니얼은 밥을 얻어먹고 싶을 때 밥상에 앉은 주인의 눈길을 끌려고 천 가지 재주를 부린다. 사람도 더러 형제들에게 같은 재주를 쓰며, 자기 마음에 맞게 그들을 움직일 다른 방도가 없을 때는 온갖 비굴하고 아첨하는 살핌으로 그들의 호의를 얻으려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매번 그럴 겨를이 없다. 문명 사회에서 그는 언제나 아주 많은 사람의 협력과 도움이 필요한데, 그의 한평생을 다 바쳐도 몇 사람의 우정을 얻기에 넉넉하지 않다. 거의 다른 모든 짐승의 종족에서는 낱낱의 짐승이 다 자라면 온전히 홀로 서며, 타고난 상태에서는 다른 어떤 살아 있는 것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형제들의 도움이 거의 언제나 필요하고, 그것을 그들의 자애로움에만 기대는 것은 헛되다. 그가 뜻을 이루기 쉬운 길은 그들의 자기 사랑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그가 바라는 일을 그를 위하여 해 주는 것이 그들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누구든 남에게 어떤 거래를 내놓는 사람은 바로 이것을 하려 든다. 내가 바라는 저것을 나에게 주면 네가 바라는 이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것, 이것이 그런 모든 제안의 뜻이며, 우리가 필요한 도움 가운데 훨씬 큰 몫을 서로에게서 얻는 길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저녁거리를 바랄 때 기대는 것은 고기 파는 사람이나 술 빚는 사람이나 빵 굽는 사람의 자애로움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에 말을 걸지 않고 그들의 자기 사랑에 말을 걸며, 우리에게 무엇이 모자라는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그들에게 무엇이 이로운지를 이야기한다. 같은 시민들의 자애로움에 주로 매달려 살기로 하는 사람은 거지밖에 없다. 거지조차 그것에 온전히 매달리지는 않는다. 과연 마음씨 좋은 사람들의 자선이 그의 생계를 이루는 기금 전부를 마련해 준다. 그러나 이 원리가 끝내 그가 쓸 데 있는 생활 필수품을 다 마련해 주기는 하여도, 그가 쓸 데 있는 그때그때에 맞추어 마련해 주지는 못하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가 그때그때 바라는 것의 큰 몫은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약속과 맞바꿈과 사들임으로 채워진다. 그는 어떤 사람이 주는 돈으로 먹을 것을 산다. 다른 사람이 건네주는 헌 옷은 자기에게 더 맞는 다른 옷이나 잠자리나 먹을 것과 바꾸고, 또는 돈과 바꾸어 그 돈으로 필요에 따라 먹을 것이나 옷이나 잠자리를 산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필요한 도움의 큰 몫을 얻는 길이 약속과 맞바꿈과 사들임인 것과 마찬가지로, 본래 분업을 일으키는 것도 주고받으려는 이 기질이다. 사냥꾼이나 목자의 부족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누구보다 빠르고 솜씨 좋게 활과 화살을 만든다고 하자. 그는 그것을 동무들과 자주 소나 사슴고기와 바꾸며, 마침내 이런 길로 자기가 직접 들에 나가 잡을 때보다 더 많은 소와 사슴고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이익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활과 화살 만들기가 그의 주된 일이 되고, 그는 일종의 무기장이가 된다. 또 다른 사람은 그들의 작은 움막이나 옮겨 다니는 집의 뼈대와 덮개를 만드는 데 남보다 뛰어나다. 그는 이런 길로 이웃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익숙해지고, 이웃은 그와 마찬가지로 소와 사슴고기로 그에게 갚으며, 마침내 그는 이 생업에 온전히 자신을 바쳐 일종의 집 짓는 목수가 되는 것이 자기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셋째 사람은 대장장이나 놋일하는 사람이 되고, 넷째 사람은 미개인의 옷을 이루는 주된 재료인 가죽을 무르게 하거나 다루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자기 노동의 생산물 가운데 자기 소비를 넘어서는 남은 몫 전부를, 자기가 쓸 데 있는 남의 노동 생산물의 몫과 바꿀 수 있다는 확실함이 사람마다 어느 특정한 일에 자신을 붙이도록, 그리고 그 특정한 종류의 일을 위하여 자기가 지닌 재주나 재능을 갈고 다듬어 완전함에 이르도록 북돋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타고난 재주의 차이는 실제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작다. 그리고 다 자란 뒤에 서로 다른 직업의 사람들을 갈라 놓는 듯이 보이는 그 아주 다른 재능은 많은 경우 분업의 원인이라기보다 그 결과다. 서로 가장 닮지 않은 됨됨이 사이의 차이, 예컨대 철학자와 흔한 거리 짐꾼 사이의 차이도 타고난 바탕에서 오기보다 버릇과 관습과 교육에서 오는 듯하다. 그들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리고 그 뒤 여섯 해나 여덟 해 동안 그들은 어쩌면 서로 매우 비슷하였고, 그들의 부모도 놀이 동무도 이렇다 할 차이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무렵이나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은 아주 다른 일에 붙게 된다. 그때부터 재주의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하고 차츰 벌어져, 마침내 철학자의 허영은 닮은 점이 거의 하나도 없다고 여기려 든다. 그러나 주고받고 바꾸고 맞바꾸려는 기질이 없었다면 사람마다 자기가 바라는 생활의 필수품과 편의품을 스스로 다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구실을 해내야 하고 같은 일을 해야 했을 터이니, 재주에 큰 차이를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인 생업의 차이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직업의 사람들 사이에서 그토록 두드러지는 저 재주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기질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차이를 쓸모 있게 만드는 것도 이 같은 기질이다. 다 같은 종에 든다고 인정되는 여러 짐승 무리는, 관습과 교육에 앞서 사람들 사이에 있다고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두드러진 재능의 차이를 자연에서 받는다. 타고난 바탕으로 보면 철학자와 거리 짐꾼의 재능과 기질 차이는 마스티프와 사냥개, 사냥개와 스패니얼, 또는 스패니얼과 양치기 개 사이의 차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서로 다른 짐승 무리는 다 같은 종에 들면서도 서로에게 거의 아무 쓸모가 없다. 마스티프의 힘은 사냥개의 빠름이나 스패니얼의 영리함이나 양치기 개의 순함에 조금도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 서로 다른 재능과 재주가 내는 결과는, 맞바꾸고 주고받을 힘이나 기질이 없는 탓에 공동의 자산으로 모아질 수 없고 그 종이 더 잘 살고 더 편해지는 데 조금도 이바지하지 못한다. 짐승마다 여전히 따로따로 홀로 제 몸을 먹이고 지켜야 하며, 자연이 제 동족들에게 갈라 준 그 갖가지 재주에서 어떤 이로움도 얻지 못한다. 이와 달리 사람들 사이에서는 서로 가장 닮지 않은 재능이 서로에게 쓸모 있다. 저마다의 재주가 내는 서로 다른 생산물이 주고받고 바꾸고 맞바꾸려는 두루 퍼진 기질에 힘입어 이를테면 공동의 자산으로 모아지며, 거기서 사람마다 남의 재주가 낸 생산물 가운데 자기가 쓸 데 있는 몫은 무엇이든 사들일 수 있다.

3장 분업은 시장의 넓이에 한정된다는 것

맞바꾸는 힘이 분업을 일으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분업이 미치는 범위도 언제나 그 힘이 미치는 범위, 다시 말하면 시장의 넓이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시장이 아주 작을 때에는 누구도 어느 한 생업에 온전히 자신을 바칠 마음이 나지 않는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 가운데 자기 소비를 넘어서는 남은 몫 전부를 자기가 쓸 데 있는 남의 노동 생산물의 몫과 바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산업 가운데 가장 낮은 종류에조차 큰 도시가 아니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것이 더러 있다. 예컨대 짐꾼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와 생계를 찾을 수 없다. 그에게 마을은 훨씬 너무 좁은 자리이고, 보통의 장이 서는 읍조차 그에게 끊임없는 일거리를 줄 만큼 크지 않다. 스코틀랜드 고지처럼 인적 드문 고을에 흩어져 있는 외딴집과 아주 작은 마을에서는 농부마다 자기 식구를 위하여 고기 파는 사람도 되고 빵 굽는 사람도 되고 술 빚는 사람도 되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는 대장장이나 목수나 석공조차 같은 직업의 다른 사람과 20마일 안쪽에 있는 것을 보기 어렵다. 그 가운데 가장 가까운 이와도 8마일이나 10마일 떨어져 사는 흩어진 집안들은, 사람이 더 많은 고을이라면 그런 일꾼들의 도움을 청하였을 자잘한 일을 수없이 스스로 해내는 법을 익혀야 한다. 시골 일꾼은 거의 어디서나 같은 종류의 재료를 다루는 만큼 서로 가까운 산업의 갈래라면 그 모두에 자신을 붙여야 한다. 시골 목수는 나무로 만드는 온갖 일을 다루고 시골 대장장이는 쇠로 만드는 온갖 일을 다룬다. 앞의 사람은 목수일 뿐 아니라 가구 짜는 사람이고 장 만드는 사람이며 나무에 새기는 사람이기까지 하고, 또한 수레바퀴 만드는 사람, 쟁기 만드는 사람, 짐수레와 마차 만드는 사람이다. 뒤의 사람의 생업은 더욱 갖가지다. 스코틀랜드 고지의 멀고 깊은 안쪽 지방에서는 못장이 같은 직업조차 있을 수 없다. 그런 일꾼이 하루에 못 1,000개를 만든다면 한 해에 일하는 날 300일로 한 해에 30만 개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는 1,000개, 곧 한 해 가운데 하루치 일감을 처분하는 것조차 불가능할 터이다. 물길로 실어 나름으로써 온갖 산업에 땅길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더 넓은 시장이 열리므로, 온갖 종류의 산업이 자연히 잘게 갈라지고 나아지기 시작하는 곳은 바닷가와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의 언덕이며, 그 나아짐이 고을의 안쪽 지방으로 퍼지는 것은 흔히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다. 폭이 넓은 바퀴를 단 짐수레 하나는 두 사람이 딸리고 말 여덟 마리가 끌어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를 6주쯤에 4톤에 가까운 무게의 물건을 실어 갔다가 실어 온다. 거의 같은 동안에 여섯이나 여덟 사람이 부리며 런던과 리스5 두 항구 사이를 오가는 배 한 척은 200톤 무게의 물건을 실어 갔다가 실어 오는 일이 흔하다. 그러므로 여섯이나 여덟 사람은 물길로 실어 나름의 도움을 받아, 사람 백 명이 딸리고 말 400마리가 끄는 폭 넓은 바퀴의 짐수레 50대와 같은 양의 물건을 같은 동안에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로 실어 갔다가 실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값싼 땅길로 런던에서 에든버러로 실어 가는 물건 200톤에는 백 사람을 3주 동안 먹이는 비용과, 말 400마리와 큰 짐수레 50대를 먹이는 비용 및 그에 거의 맞먹는 닳고 부서지는 값을 물려야 한다. 반면에 같은 양의 물건을 물길로 실어 갈 때에는 여섯이나 여덟 사람을 먹이는 비용과 200톤을 싣는 배 한 척이 닳고 부서지는 값, 그리고 더 큰 위험의 값어치, 곧 땅길과 물길 사이의 보험료 차이만 물리면 된다. 그러므로 두 곳 사이에 땅길로 실어 나름 말고는 다른 오고 감이 없다면, 무게에 견주어 값이 아주 큰 물건 말고는 어느 쪽에서 다른 쪽으로 옮길 수 없을 터이므로, 두 곳은 지금 그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업의 작은 몫밖에 해내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서로의 산업에 지금 서로 주는 북돋움의 작은 몫밖에 주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멀리 떨어진 곳들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상업도 거의 또는 전혀 없을 것이다. 런던과 콜카타 사이의 땅길 비용을 무슨 물건이 견딜 수 있겠는가? 또는 이 비용을 버틸 만큼 값진 물건이 있다 하더라도 그토록 많은 야만한 나라의 땅을 지나 그것을 어떤 안전으로 옮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두 도시는 지금 서로 매우 큰 상업을 하며, 서로에게 시장을 마련해 주어 서로의 산업에 적잖은 북돋움을 준다.

그러므로 물길로 실어 나름의 이점이 이러하므로, 기예와 산업의 첫 나아짐이 이 편리함이 온갖 종류의 노동 생산물에게 온 세상을 시장으로 열어 주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그것이 고을의 안쪽 지방으로 퍼지는 것은 언제나 훨씬 늦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고을의 안쪽 지방은 그 물건 대부분에 대하여, 자기들을 둘러싸고 바닷가와 배가 다니는 큰 강에서 갈라놓는 고을 말고는 오랫동안 다른 시장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넓이는 오랫동안 그 고을의 부와 사람 많기에 비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들의 나아짐은 언제나 그 고을의 나아짐보다 뒤일 수밖에 없다.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농장이 늘 바닷가나 배가 다니는 강의 언덕을 따라 들어섰고, 그 둘 어느 쪽에서든 이렇다 할 만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뻗어 나간 데는 거의 없다.

가장 잘 입증된 역사에 따르면 가장 먼저 문명을 이룬 듯이 보이는 민족은 지중해 바닷가를 둘러 살던 이들이었다. 이 바다는 세상에 알려진 것 가운데 단연 가장 큰 내해로서 밀물과 썰물이 없고 따라서 바람만으로 일어나는 것 말고는 물결도 없으니, 그 물낯이 잔잔한 데다 섬이 많고 이웃한 뭍이 가까운 까닭에 세상의 갓 태어난 항해에 지극히 이로웠다. 그때는 나침반을 몰라 사람들이 뭍을 눈에서 놓치기를 두려워하였고, 배 만드는 기예가 온전하지 못하여 큰 바다의 거센 물결에 몸을 내맡기기를 두려워하였다.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지나가는 일, 곧 지브롤터 해협을 빠져나가 항해하는 일은 옛 세상에서 오랫동안 가장 놀랍고 위험한 항해의 업으로 여겨졌다. 그 옛 시절에 가장 솜씨 좋은 항해자이자 배 만드는 사람이었던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조차 그것을 해 보기까지는 늦었고, 그들은 오랫동안 그것을 해 본 유일한 민족이었다.

지중해 바닷가의 모든 고을 가운데 농업이든 제조업이든 이렇다 할 정도로 갈고 다듬어 나아진 첫째 고을은 이집트였던 듯하다. 상이집트는 어디서도 나일강에서 몇 마일 넘게 뻗어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하이집트에서는 그 큰 강이 여러 갈래 물길로 갈라져, 얼마간의 기예를 보태면 큰 도시들 사이만이 아니라 이렇다 할 만한 마을 모두 사이, 나아가 시골의 많은 농가에까지 물길로 오고 감을 마련해 준 듯하니, 오늘날 네덜란드에서 라인강과 뫼즈강이 하는 것과 거의 같다. 이 안쪽 물길의 넓이와 편함이 아마 이집트가 일찍 나아진 주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농업과 제조업의 나아짐도 동인도의 벵골 여러 지방과 중국의 동쪽 몇몇 지방에서 매우 오래된 일이었던 듯하나, 그 오램이 얼마나 먼 것인지는 우리가 세상의 이쪽에서 그 권위를 잘 믿을 만한 어떤 역사로도 입증되지 않는다. 벵골에서는 갠지스강과 그 밖의 여러 큰 강이 이집트에서 나일강이 하는 것과 같이 배가 다닐 수 있는 물길을 수없이 이룬다. 중국의 동쪽 지방에서도 여러 큰 강이 그 갈래들로 수많은 물길을 이루고 서로 통하여, 나일강이나 갠지스강 어느 쪽보다도, 어쩌면 그 둘을 합친 것보다도 훨씬 넓은 안쪽 물길을 마련해 준다. 옛 이집트인도 인도인도 중국인도 바깥과의 상업을 북돋우지 않았고 그 큰 넉넉함을 모두 이 안쪽 물길에서 끌어낸 듯이 보이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아프리카의 모든 안쪽 지방, 그리고 흑해와 카스피해에서 북쪽으로 이렇다 할 만큼 떨어진 아시아의 모든 지역, 곧 옛 스키티아이자 오늘날의 타타르 지방과 시베리아는 세상의 모든 시대에 우리가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야만하고 문명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듯하다. 타타르의 바다는 항해를 허락하지 않는 얼어붙은 바다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강 몇 개가 그 고을을 지나 흐르기는 하나,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그 땅 대부분으로 상업과 오고 감을 실어 가지 못한다. 아프리카에는 유럽의 발트해와 아드리아해,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 걸친 지중해와 흑해, 아시아의 아라비아만과 페르시아만과 인도만과 벵골만과 시암만 같은 큰 내해가 하나도 없어 그 큰 대륙의 안쪽으로 바닷길 상업을 실어 갈 수 없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큰 강들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렇다 할 만한 안쪽 물길을 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어떤 나라가 여러 갈래나 물길로 갈라지지 않고 바다에 이르기 전에 다른 나라의 땅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상업은 결코 클 수 없다. 그 다른 땅을 가진 민족이 윗고을과 바다 사이의 오고 감을 막을 힘을 늘 쥐고 있기 때문이다. 도나우강의 항해는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여러 나라에, 그 가운데 어느 하나가 흑해로 떨어지기까지 그 온 흐름을 차지했을 경우에 비하면 거의 쓸모가 없다.

4장 화폐의 기원과 쓰임에 대하여

분업이 한번 온전히 자리를 잡으면 사람이 바라는 것 가운데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 채울 수 있는 몫은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그 훨씬 큰 몫을, 자기 노동의 생산물 가운데 자기 소비를 넘어서는 남은 몫을 자기가 쓸 데 있는 남의 노동 생산물의 몫과 바꾸어 채운다. 이렇게 사람마다 바꿈으로 살아가고 얼마쯤은 상인이 되며, 사회 자체가 제대로 말하여 상업 사회로 자라난다.

그러나 분업이 처음 자리를 잡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 바꾸는 힘이 움직이는 데 자주 크게 막히고 걸렸을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어떤 상품을 자기가 쓸 데 있는 것보다 많이 가졌고 다른 사람은 적게 가졌다고 하자. 그러면 앞의 사람은 이 남는 몫의 일부를 내놓고 싶고 뒤의 사람은 그것을 사들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뒤의 사람이 앞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둘 사이에 바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고기 파는 사람은 가게에 자기가 먹어 없앨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고기를 가지고 있고, 술 빚는 사람과 빵 굽는 사람은 저마다 그 일부를 사들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저마다의 직업이 내는 서로 다른 생산물 말고는 바꾸어 내놓을 것이 없고, 고기 파는 사람은 당장 쓸 데 있는 빵과 맥주를 이미 다 갖추고 있다. 이런 경우에 그들 사이에는 어떤 바꿈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는 그들의 상인이 될 수 없고 그들은 그의 손님이 될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들 모두가 서로에게 덜 쓸모 있는 사이가 된다. 그런 처지의 불편을 피하려고, 분업이 처음 자리를 잡은 뒤로 어느 시대의 사회에서나 조심스러운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히 자기 일을 이렇게 꾸리려고 애썼을 것이다. 곧 자기 근면이 내는 고유한 생산물 말고도, 저마다의 근면이 낸 생산물과 바꾸자 할 때 이것이라면 마다할 사람이 거의 없으리라고 여겨지는 어떤 상품을 얼마쯤 언제나 곁에 두려 했을 것이다. 아마 여러 가지 상품이 차례로 이 목적을 위하여 생각되고 또 쓰였을 것이다. 사회가 거칠던 시대에는 소가 상업의 흔한 도구였다고 하며, 소는 지극히 불편한 도구였을 것이 분명하나 옛 시절에 물건의 값어치를 그것과 바꾸어 준 소의 마릿수로 매기는 일이 흔했음을 우리는 본다. 호메로스는 디오메데스의 갑옷이 소 아홉 마리밖에 들지 않았으나 글라우코스의 갑옷은 소 백 마리가 들었다고 말한다6. 소금이 아비시니아7에서 상업과 바꿈의 흔한 도구라 하고, 인도 바닷가 몇 곳에서는 조개의 한 종류가, 뉴펀들랜드에서는 말린 대구가, 버지니아에서는 담배가, 우리 서인도 식민지 몇 곳에서는 설탕이, 다른 몇몇 고을에서는 생가죽이나 다룬 가죽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에는 일꾼이 돈 대신 못을 들고 빵집이나 술집에 가는 일이 드물지 않은 마을이 있다고 내가 들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사람들은 마침내 거스를 수 없는 이유로 이 쓰임새에는 다른 어떤 상품보다 금속을 앞세우기로 정한 듯하다. 금속은 거의 어떤 것도 그만큼 덜 썩지 않으니 다른 어떤 상품에 못지않게 잃는 것 없이 갈무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아무 잃음 없이 몇 조각으로든 가를 수 있고 녹여서 그 조각들을 쉽게 다시 하나로 붙일 수도 있다. 이 성질은 그만큼 오래가는 다른 어떤 상품도 지니지 못한 것이며, 다른 어떤 성질보다도 금속을 상업과 돌림의 도구로 알맞게 만든다. 예컨대 소금을 사려 하는데 바꾸어 줄 것이 소밖에 없는 사람은 한 번에 소 한 마리나 양 한 마리 값어치의 소금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보다 적게 사는 일은 드물었을 터이니, 그 값으로 내줄 것을 잃음 없이 가를 수 있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사고 싶었다면 같은 이유로 두 곱이나 세 곱의 양, 곧 소 두세 마리나 양 두세 마리의 값어치를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와 달리 양이나 소가 아니라 금속을 바꾸어 줄 것으로 가졌다면, 그는 당장 쓸 데 있는 상품의 딱 그만한 양에 금속의 양을 쉽게 맞출 수 있었다.

이 쓰임새를 위하여 나라마다 서로 다른 금속을 써 왔다. 쇠는 옛 스파르타인 사이에서 상업의 흔한 도구였고, 구리는 옛 로마인 사이에서, 금과 은은 부유하고 상업이 활발한 모든 나라에서 그러하였다.

그 금속들은 본래 도장이나 주조 없이 거친 덩이 그대로 이 쓰임새로 쓰인 듯하다. 그래서 플리니우스8는 옛 역사가 티마이오스의 권위를 빌려,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때까지 로마인에게는 주조한 돈이 없어 도장 없는 구리 덩이를 써서 쓸 데 있는 것을 무엇이든 사들였다고 우리에게 일러 준다(《박물지》 33권 3장). 그러므로 이 거친 덩이가 그때에는 돈의 구실을 하였다.

금속을 이렇게 거친 상태로 쓰는 데에는 매우 큰 불편이 두 가지 따랐다. 첫째는 무게를 다는 수고이고 둘째는 순도를 살피는 수고다. 귀금속에서는 양의 작은 차이가 값어치의 큰 차이를 만들므로, 무게를 알맞게 정확히 다는 일조차 적어도 아주 정밀한 저울과 분동이 필요하다. 특히 금의 무게를 다는 것은 얼마쯤 섬세함이 드는 일이다. 과연 작은 어긋남이 별 대수롭지 않은 거친 금속에서는 정확함이 덜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1파딩9어치 물건을 사거나 팔 때마다 그 파딩의 무게를 달아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지나칠 만큼 수고롭다고 여길 것이다. 순도를 살피는 일은 더욱 어렵고 더욱 지루하며, 금속의 일부를 알맞은 녹임약과 함께 도가니에 제대로 녹여 보지 않는 한 거기서 끌어낼 수 있는 어떤 결론도 지극히 불확실하다. 그러나 주조한 돈의 제도가 서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 지루하고 어려운 일을 거치지 않으면 언제나 가장 심한 속임과 사기에 걸릴 수밖에 없었으니, 순은이나 순동 1파운드(무게) 대신에 겉모양만은 그 금속을 닮게 만든, 가장 거칠고 값싼 재료를 섞은 것을 물건 값으로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 폐단을 막고 바꿈을 쉽게 하여 온갖 산업과 상업을 북돋우려면, 발전을 향하여 이렇다 할 만큼 나아간 모든 나라에서 그 나라에서 물건을 사는 데 흔히 쓰이던 특정한 금속의 일정한 양에 공적인 도장을 찍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서 주조한 돈과 조폐국이라 불리는 공적 기관이 비롯되었으니, 이는 모직물과 아마포의 검척관과 검인관의 기관과 성질이 똑같은 제도다10. 그 모두가 똑같이, 서로 다른 상품이 시장에 나올 때 그 양과 고른 품질을 공적인 도장으로 확실히 밝히려는 것이다.

통용되는 금속에 찍은 이 종류의 첫 공적 도장은, 많은 경우 확실히 밝히기가 가장 어렵고도 가장 중요한 것, 곧 금속의 품질 또는 순도를 확실히 밝히려는 뜻이었던 듯하고, 오늘날 은그릇과 은덩이에 찍는 스털링 표나 때로 금덩이에 찍는 스페인 표와 비슷하였던 듯하다. 이 표들은 조각의 한쪽 면에만 찍혀 온 표면을 덮지 않으므로 금속의 순도는 확실히 밝히지만 무게는 밝히지 못한다. 아브라함은 막벨라 밭값으로 치르기로 한 은 400세겔의 무게를 에프론에게 달아 준다. 그러나 그것은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돈이라 하는데도, 오늘날 금덩이와 은덩이가 그러하듯이 낱낱을 세어서가 아니라 무게로 받아들여진다. 영국의 옛 색슨 왕들의 세입은 돈이 아니라 현물로, 곧 온갖 종류의 먹을 것과 물자로 치러졌다고 한다. 정복왕 윌리엄11이 그것을 돈으로 치르는 관습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이 돈도 오랫동안 재무부에서 낱낱을 세어서가 아니라 무게로 받아들여졌다.

그 금속의 무게를 정확히 다는 일의 불편과 어려움이 주화의 제도를 일으켰으니, 조각의 두 면을 온전히 덮고 때로는 가장자리까지 덮는 그 도장이 금속의 순도만이 아니라 무게까지 확실히 밝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런 주화는 오늘날처럼 무게를 다는 수고 없이 낱낱을 세어 받아들여졌다.

그 주화의 이름은 본래 거기 든 금속의 무게나 양을 나타냈던 듯하다. 로마에서 처음 돈을 주조한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때에 로마의 아스 또는 폰도는 좋은 구리 1로마파운드를 담았다. 그것은 우리 트루아 파운드와 마찬가지로 12온스로 갈렸고 그 온스마다 좋은 구리 실제 1온스를 담았다.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은 에드워드 1세 때에 알려진 순도의 은을 런던탑 무게로 1파운드 담았다. 런던탑 파운드는 로마 파운드보다 얼마쯤 무겁고 트루아 파운드보다 얼마쯤 가벼웠던 듯하다. 이 마지막 것은 헨리 8세 치세 18년에 이르러서야 영국 조폐국에 들어왔다12. 프랑스의 리브르는 샤를마뉴 때에 알려진 순도의 은을 트루아 무게로 1파운드 담았다. 샹파뉴 트루아의 장은 그때 유럽의 모든 나라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었으므로, 그토록 이름난 장의 무게와 자는 널리 알려지고 높이 여겨졌다. 스코틀랜드의 화폐 파운드는 알렉산더 1세 때부터 로버트 브루스 때까지 영국의 파운드 스털링과 같은 무게, 같은 순도의 은 1파운드를 담았다. 영국과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페니도 본래 그 모두가 온스의 20분의 1이자 파운드의 240분의 1인 실제 1페니웨이트의 은을 담았다. 실링도 본래 어떤 무게의 이름이었던 듯하다. 헨리 3세 때의 옛 법령은 “밀값이 1쿼터13에 12실링일 때에는 1파딩짜리 웨이스텔 빵14의 무게가 11실링 4펜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링과 한쪽의 페니 또는 다른 쪽의 파운드 사이의 비율은 페니와 파운드 사이의 비율만큼 한결같고 고르지 않았던 듯하다. 프랑스 왕들의 첫 왕조 동안에 프랑스의 수 또는 실링은 여러 경우에 페니 5개, 12개, 20개, 40개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옛 색슨인 사이에서 실링은 한때 페니 5개밖에 담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들 사이에서도 이웃한 옛 프랑크인 사이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들쭉날쭉했을 법하다. 프랑스에서는 샤를마뉴 때부터, 영국에서는 정복왕 윌리엄 때부터 파운드와 실링과 페니 사이의 비율이 오늘날과 한결같이 같았던 듯하나 그 하나하나의 값어치는 매우 달라졌다.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나 군주와 주권 국가들이 그 백성의 믿음을 저버리며 저희 주화에 본래 들어 있던 금속의 실제 양을 차츰 줄여 왔다고 나는 믿는다. 로마의 아스는 공화국 말기에 본래 값어치의 24분의 1로 줄어, 1파운드 무게가 아니라 반 온스밖에 되지 않게 되었다. 영국의 파운드와 페니는 오늘날 본래 값어치의 3분의 1쯤밖에 담지 않고, 스코틀랜드의 파운드와 페니는 36분의 1쯤, 프랑스의 파운드와 페니는 66분의 1쯤밖에 담지 않는다. 이런 조작으로 그것을 행한 군주와 주권 국가들은 겉으로는 그러지 않았더라면 들었을 것보다 적은 양의 은으로 저희 빚을 갚고 저희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과연 그것은 겉으로만 그러하였으니, 그들의 채권자는 실제로 받을 것의 일부를 속아 잃었다. 그 나라의 다른 모든 채무자에게도 같은 특권이 허락되어, 헌 돈으로 빌린 것을 새로 낮춘 주화의 같은 명목 액수로 갚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런 조작은 언제나 채무자에게 이롭고 채권자에게 파멸이었으며, 때로는 아주 큰 공적 재난이 일으킬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크고 더 널리 퍼진 사사로운 이들의 재산 뒤바뀜을 낳았다.

모든 문명한 나라에서 돈이 이렇게 상업의 두루 쓰이는 도구가 되었고, 그것을 끼고 온갖 종류의 물건이 사고 팔리며 서로 맞바뀐다.

사람들이 물건을 돈과 바꾸거나 서로 바꿀 때 자연히 지키는 규칙이 무엇인지를 나는 이제 살펴 나가겠다. 이 규칙들이 물건의 상대적 가치 또는 교환 가치라 부를 만한 것을 정한다.

「가치」라는 낱말에 서로 다른 두 뜻이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어떤 특정한 물건의 쓸모를 나타내고, 어떤 때에는 그 물건을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다른 물건을 살 수 있는 힘을 나타낸다. 앞의 것은 「사용 가치」라 부를 수 있고 뒤의 것은 「교환 가치」라 부를 수 있다. 사용 가치가 가장 큰 것이 교환 가치는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일이 흔하고, 거꾸로 교환 가치가 가장 큰 것이 사용 가치는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일이 흔하다. 물보다 쓸모 있는 것은 없으나 물로는 무엇을 사기가 어려우니, 그것과 바꾸어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이와 달리 금강석은 사용 가치가 거의 없으나 그것과 바꾸어 다른 물건을 아주 많이 얻을 수 있는 일이 흔하다.

상품의 교환 가치를 정하는 원리를 캐어 보려고 나는 다음을 보이려 애쓰겠다.

첫째, 이 교환 가치의 실질적 척도는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모든 상품의 실질 가격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둘째, 이 실질 가격이 어떤 부분들로 짜이거나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가격의 서로 다른 부분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를 자연스럽거나 보통의 비율 위로 더러 올리고 더러 그 아래로 내리는 사정들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시장 가격, 곧 상품의 실제 가격이 그 자연 가격이라 부를 만한 것과 딱 맞아떨어지지 못하게 더러 막는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이어지는 세 장에서 그 세 가지 주제를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하고 또렷하게 밝히려고 애쓰겠으며, 그러기 위하여 독자의 참을성과 주의를 아주 간절히 청하지 않을 수 없다. 참을성을 청하는 것은 어쩌면 어떤 곳에서는 쓸데없이 지루해 보일지도 모르는 자세한 이야기를 살펴 나가야 하기 때문이고, 주의를 청하는 것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설명을 다한 뒤에도 어쩌면 여전히 얼마쯤 흐릿해 보일지 모르는 것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말이 환히 통하는지를 확실히 하려고 지루해질 위험을 얼마쯤 무릅쓰기를 언제나 마다하지 않으며, 환히 통하게 하려고 내가 들일 수 있는 온 힘을 들인 뒤에도 그 본성이 지극히 추상적인 주제에는 얼마쯤 흐릿함이 여전히 남아 보일 수 있다.

주

  1. 1. 옮긴이 — 원문은 capital stock. 이 책에서 stock은 사람이 쌓아 둔 밑천 전체를 뜻하므로 「자산」으로, 그 가운데 수입을 낳도록 굴리는 부분인 capital은 「자본」으로 갈라 옮긴다. 1776년의 stock에는 오늘날 증권 시장에서 쓰는 뜻이 들어 있지 않다.

  2. 2. 옮긴이 — 무게 단위 파운드로 약 454그램이다. 이 책에는 화폐 단위 파운드도 나오므로, 한 문단에 둘이 함께 나올 때는 무게 쪽을 「파운드(무게)」로 적어 갈라 둔다.

  3. 3. 옮긴이 — 원문 fire engine. 18세기에는 증기 기관을 이렇게 불렀다. 저본에도 이 자리에 «당시 증기 기관을 이렇게 불렀다»는 편집자의 괄호 주석이 붙어 있다. 스미스가 말하는 것은 광산의 물을 퍼내는 데 쓰인 뉴커먼식 기관이다.

  4. 4. 옮긴이 — 원문 philosophers, men of speculation. 18세기에 philosopher는 오늘날의 철학자보다 넓어, 자연을 살피는 학자와 사색으로 먹고사는 사람 일반을 가리켰다. 뒤이어 스미스가 그들의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일」이라 적은 것도 이 넓은 뜻에서다.

  5. 5. 옮긴이 — 에든버러에서 북쪽으로 3킬로미터쯤 떨어진 포스만의 항구로, 당시 에든버러의 바깥 항구 구실을 하였다. 그러므로 런던과 리스 사이의 뱃길은 런던과 에든버러 사이의 땅길과 견주어지는 같은 구간이다.

  6. 6. 옮긴이 — 《일리아스》 6권에서 그리스 편의 디오메데스와 트로이 편의 글라우코스가 싸움터에서 조상의 인연을 알아보고 갑옷을 맞바꾸는 대목이다. 호메로스는 두 갑옷의 값을 소 아홉 마리와 소 백 마리로 적었다.

  7. 7. 옮긴이 —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를 일컫던 옛 이름이다. 소금을 막대 모양으로 굳힌 「아모레」가 20세기 초까지 이 지역에서 실제로 돈처럼 오갔다.

  8. 8. 옮긴이 — 대플리니우스(23–79). 로마의 문인이자 관리로, 여기 인용된 《박물지》는 당대의 온갖 지식을 모은 37권의 백과사전이다.

  9. 9. 옮긴이 — 파딩은 1페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가장 작은 주화다. 이 책에 나오는 영국 화폐는 1파운드 = 20실링, 1실링 = 12펜스, 곧 1파운드 = 240펜스로 셈한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으므로 이 책에서는 당대의 금액을 오늘날 값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10. 10. 옮긴이 — 원문 aulnagers, stamp-masters. 검척관은 모직물의 길이와 폭을 자로 재어 공인 도장을 찍던 관리이고 검인관은 그 도장을 맡은 관리다. 사는 사람이 일일이 재어 보지 않아도 되게 하려고 나라가 품질과 수량을 보증한 제도로,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11. 11. 옮긴이 — 정복왕 윌리엄(1028–1087). 1066년에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 왕조의 첫 왕이다.

  12. 12.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왕의 치세 몇 년째인가로 연도를 적는 관행이 있었다. 헨리 8세 치세 18년은 1526년에서 1527년에 걸치며, 트루아 파운드를 조폐국의 기준 무게로 받아들인 것이 이때의 법령이다.

  13. 13. 옮긴이 — 곡물의 부피를 재는 단위로 약 291리터, 밀로는 약 8부셸에 해당한다. 「4분의 1」을 뜻하는 낱말과 같은 꼴이지만 여기서는 분수가 아니라 단위 이름이므로 음차한다.

  14. 14. 옮긴이 — 웨이스텔은 고운 흰 가루로 구운 질 좋은 빵이다. 인용된 법령은 밀값에 따라 빵 한 덩이의 무게를 정해 두던 당대의 빵값 규제이며, 빵의 무게를 실링과 펜스라는 화폐 이름으로 적은 것은 실링과 페니가 본래 무게의 이름이었음을 스미스가 여기서 보이려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