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노동의 임금에 대하여 (이어서)
노동의 화폐 가격이 어떤 해에는 오르고 어떤 해에는 내리는 것은, 갑작스럽고 유별난 풍년에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고 갑작스럽고 유별난 흉년에는 그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고 유별난 풍년에는 근면을 부리는 많은 이들의 손에, 지난해에 일 시켰던 것보다 더 많은 수의 부지런한 사람을 먹여 살리고 부리기에 넉넉한 자금이 들어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늘어난 수의 사람을 언제나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일꾼을 더 쓰려는 주인들은 그들을 얻으려고 서로 값을 올려 부르게 되고, 그 바람에 노동의 실질 가격과 화폐 가격이 함께 오르는 일이 더러 생긴다.
갑작스럽고 유별난 흉년에는 이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진다. 근면을 부리는 데 쓰이도록 정해져 있던 자금이 지난해보다 적어진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이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서로 값을 낮추어 부르는 바람에 노동의 실질 가격과 화폐 가격이 함께 내려가는 일이 더러 생긴다. 유별난 흉년이었던 1740년에는 많은 사람이 겨우 목숨을 이을 만큼만 받고도 일하려 했다. 그 뒤에 이어진 풍년에는 일꾼과 하인을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값비싼 해의 모자람은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임으로써 그 가격을 끌어내리는 쪽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식료품의 높은 값이 그 가격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과 맞선다. 거꾸로 값싼 해의 넉넉함은 수요를 늘림으로써 노동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식료품이 헐한 것이 그 가격을 끌어내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과 맞선다. 식료품 값이 예사롭게 오르내리는 범위 안에서는 이 서로 반대되는 두 원인이 서로를 맞비기는 듯하며, 노동의 임금이 어디서나 식료품 값보다 훨씬 더 고르고 한결같은 까닭도 아마 얼마쯤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노동의 임금이 오르면 여러 상품의 값 가운데 임금으로 갈라지는 몫이 커지므로 그 값이 반드시 오르고, 그만큼 안에서나 밖에서나 그 상품이 덜 쓰이게 되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노동의 임금을 끌어올리는 바로 그 원인, 곧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노동의 생산력을 키워서 더 적은 양의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일을 해내게 만드는 쪽으로도 작용한다. 많은 수의 노동자를 부리는 자산의 주인은 제 이익을 위하여, 그들이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많은 양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일을 알맞게 갈라 나누어 맡기려고 반드시 애를 쓴다. 같은 까닭으로 그는 자기든 그들이든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계를 그들에게 마련해 주려고 애를 쓴다. 어느 한 작업장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같은 까닭으로 큰 사회의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그 수가 많아질수록 그들은 저절로 서로 다른 부류와 더 잘게 갈라진 일자리로 나뉘어 간다. 저마다의 일을 해내기에 가장 알맞은 기계를 생각해 내는 일에 더 많은 머리가 쓰이게 되고, 그러므로 그런 기계가 생겨날 가망도 더 커진다. 그러므로 이런 개량이 쌓인 끝에 전보다 훨씬 적은 노동으로 만들어지게 되어, 노동 가격이 오른 것을 그 양이 줄어든 것으로 넉넉히 메우고도 남는 상품이 많이 생긴다.
9장 자산의 이윤에 대하여
자산의 이윤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노동의 임금이 오르고 내리는 것과 같은 원인, 곧 사회의 부가 늘어 가는 상태인지 줄어 가는 상태인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이 둘에 아주 다르게 미친다.
임금을 끌어올리는 자산의 증가는 이윤을 끌어내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여러 부유한 상인의 자산이 같은 거래로 돌려지면 그들이 서로 겨루는 바람에 그 거래의 이윤은 저절로 내려가는 쪽으로 기운다. 그리고 같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거래에서 자산이 다 같이 늘어나면, 같은 겨룸이 그 모든 거래에서 같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미 살펴본 대로, 어느 한 곳 어느 한 때의 노동의 평균 임금이 얼마인지를 알아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런 경우에도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대개 가장 흔한 임금이 얼마인지 그 정도다. 그런데 자산의 이윤에 대해서는 그것마저 좀처럼 해내기 어렵다. 이윤은 워낙 흔들리는 것이어서, 어떤 거래를 하는 당사자조차 자기 한 해 이윤의 평균이 얼마인지 언제나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윤은 그가 다루는 상품 값이 오르내리는 데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와 손님 양쪽의 운수가 좋은지 나쁜지에도 흔들리며, 바다로든 땅으로든 실려 다닐 때, 나아가 창고에 쌓여 있을 때조차 물건이 맞닥뜨리기 쉬운 천 가지 우연에도 흔들린다. 그러므로 이윤은 해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날마다, 거의 시간마다 다르다. 큰 왕국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거래의 평균 이윤이 얼마인지를 알아내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며, 그것이 옛날에, 또는 아주 먼 시대에 얼마였을지를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가늠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든 옛날이든 자산의 평균 이윤이 얼마인지, 또 얼마였는지를 조금이라도 정확하게 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화폐의 이자를 보면 그것에 대하여 얼마간의 짐작은 세울 수 있다. 화폐를 써서 많이 벌 수 있는 곳에서는 대개 그 화폐를 쓰는 값으로 많이 내주고, 그것으로 조금밖에 벌 수 없는 곳에서는 대개 더 적게 내준다는 것을 하나의 원칙으로 세워 둘 만하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든 이자의 예사로운 시장 이율이 달라지는 대로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도 그와 함께 달라진다는 것, 이율이 내려가면 이윤도 내려가고 이율이 올라가면 이윤도 올라간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도 좋다. 그러므로 이자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면 이윤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도 얼마간의 짐작을 세울 수 있다.
헨리 8세 치세 37년의 법으로1 10퍼센트를 넘는 이자는 모두 불법이라고 선언되었다. 그전에는 더 높은 이자를 받은 일도 더러 있었던 듯하다. 에드워드 6세 치세에는 종교적 열의가 이자를 아예 금하였다. 그러나 이 금령은 같은 종류의 다른 모든 금령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고 하며, 아마도 고리대의 폐해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키웠을 것이다. 헨리 8세의 법령은 엘리자베스 치세 13년의 법 제8장으로 되살아나, 이자의 법정 이율은 제임스 1세 치세 21년에 8퍼센트로 묶이기까지 줄곧 10퍼센트였다. 그것은 왕정복고2 뒤 얼마 지나지 않아 6퍼센트로 내려갔고, 앤 여왕 치세 12년의 법으로 다시 5퍼센트까지 내려갔다. 이 여러 법령의 규정은 모두 아주 알맞게 마련된 듯하다. 그것들은 시장의 이자 이율, 곧 신용이 좋은 사람들이 예사로 돈을 빌리던 이율을 앞질러 간 것이 아니라 그 뒤를 따라간 듯하다. 앤 여왕 때부터는 5퍼센트가 시장 이율보다 낮기보다 오히려 높았던 듯하다. 지난 전쟁3 전에 정부는 3퍼센트로 돈을 빌렸고, 수도와 왕국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 신용이 좋은 사람들은 3.5퍼센트, 4퍼센트, 4.5퍼센트로 빌렸다.
헨리 8세 때부터 이 나라의 부와 수입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으며, 나아가는 동안 그 걸음은 차츰 늦추어지기보다 오히려 차츰 빨라진 듯하다. 그것들은 그저 나아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빠르게 나아간 듯하다. 같은 기간에 노동의 임금은 끊임없이 올랐고, 거래와 제조업의 갈래 대부분에서 자산의 이윤은 줄어들었다.
어떤 종류의 거래든 시골 마을에서보다 큰 도시에서 벌이려면 대개 더 많은 자산이 든다. 거래의 갈래마다 부려지는 큰 자산과 많은 수의 부유한 경쟁자 때문에, 앞의 곳의 이윤율은 뒤의 곳의 이윤율보다 대개 낮아진다. 그러나 노동의 임금은 시골 마을에서보다 큰 도시에서 대개 더 높다. 번창하는 도시에서는 부릴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수만큼 일꾼을 구하지 못하는 일이 잦고,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얻으려고 서로 값을 올려 부르며, 그것이 노동의 임금을 올리고 자산의 이윤을 내린다. 시골의 먼 곳에서는 사람을 다 부릴 만한 자산이 없는 일이 잦고, 그래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서로 값을 낮추어 부르며, 그것이 노동의 임금을 내리고 자산의 이윤을 올린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이자의 법정 이율이 잉글랜드와 같으면서도 시장 이율은 오히려 더 높다. 그곳에서 신용이 가장 좋은 사람들도 5퍼센트 아래로는 좀처럼 빌리지 않는다. 에든버러의 개인 은행가들까지 자기들이 낸 약속 어음에 4퍼센트를 얹어 주는데, 그 어음은 전부든 일부든 언제든 마음대로 지급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런던의 개인 은행가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돈에 이자를 주지 않는다. 잉글랜드에서보다 스코틀랜드에서 더 적은 자산으로 벌일 수 없는 거래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예사로운 이윤율은 얼마간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노동의 임금은 이미 살펴본 대로 잉글랜드보다 스코틀랜드에서 더 낮다. 이 나라는 훨씬 더 가난할 뿐 아니라, 더 나은 형편으로 나아가는 걸음, 그러니까 분명히 나아가고는 있으나 그 걸음이 훨씬 느리고 더딘 듯하다. 프랑스에서 이자의 법정 이율은 금세기 동안 늘 시장 이율에 맞추어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드니자르, 「이자율」 항목, 제3권 13쪽을 보라). 1720년에 이자는 스무째 펜스에서 쉰째 펜스로, 곧 5퍼센트에서 2퍼센트로 내려갔다. 1724년에는 서른째 펜스로, 곧 3과 3분의 1퍼센트로 올라갔다. 1725년에는 다시 스무째 펜스로, 곧 5퍼센트로 올라갔다. 1766년 라베르디 씨가 정사를 맡고 있을 때는 스물다섯째 펜스로, 곧 4퍼센트로 내려갔다. 그 뒤 테레 신부가 그것을 다시 옛 이율인 5퍼센트로 올렸다. 이자를 이렇게 거칠게 여러 번 끌어내린 것은 공채의 이자를 내릴 길을 닦으려는 뜻이었다고 하며, 그 뜻이 이루어진 적도 더러 있다. 프랑스는 오늘날 어쩌면 잉글랜드만큼 부유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이자의 법정 이율이 잉글랜드보다 낮았던 적이 잦았음에도 시장 이율은 대개 더 높았는데,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법을 피해 갈 아주 안전하고 손쉬운 길이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에서 다 거래를 해 본 영국 상인들이 나에게 확실히 말해 준 바로는, 거래의 이윤은 잉글랜드보다 프랑스에서 더 높다. 영국 사람 가운데 많은 이가 거래가 높이 받들리는 나라보다 거래가 천대받는 나라에 자기 자본을 굴리기를 택하는 까닭도 틀림없이 여기에 있다. 노동의 임금은 잉글랜드보다 프랑스에서 더 낮다.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로 건너가면 두 나라 보통 사람들의 옷차림과 얼굴빛에서 알아볼 수 있는 차이가 그들 형편의 차이를 넉넉히 보여 준다. 프랑스에서 돌아올 때 그 대비는 한결 더 크다. 프랑스는 틀림없이 스코틀랜드보다 부유한 나라이지만 그만큼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프랑스가 뒤로 물러가고 있다는 것이 그 나라에서는 흔한, 나아가 널리 퍼진 의견이다. 나는 이 의견이 프랑스에 대해서조차 근거가 얕다고 여기는데, 스코틀랜드를 지금 보고 또 이삼십 년 전에도 본 사람이라면 스코틀랜드에 대해서는 그런 의견을 결코 품을 수 없을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 주는 그 땅의 넓이와 사람의 수에 견주어 보면 잉글랜드보다 부유한 나라다. 그곳에서 정부는 2퍼센트로 돈을 빌리고 신용이 좋은 개인은 3퍼센트로 빌린다. 노동의 임금은 잉글랜드보다 네덜란드에서 더 높다고 하며, 네덜란드 사람들이 유럽의 어느 국민보다 낮은 이윤으로 거래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의 거래가 기울고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몇몇 갈래가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증상들은 전체가 기울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넉넉히 보여 주는 듯하다. 이윤이 줄어들면 상인들은 거래가 기운다고 하소연하기 쉬우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은 거래가 번창한 자연스러운 결과이거나 전보다 더 많은 자산이 그 거래에 부려지고 있는 결과다. 지난 전쟁 동안 네덜란드 사람들은 프랑스의 운송 거래를 모두 차지하였고 지금도 그 가운데 아주 큰 몫을 쥐고 있다. 그들이 프랑스와 영국의 공채를 두고 가진 큰 재산은 영국 공채에서만 4000만 파운드쯤4이라고 하는데(다만 여기에는 적잖은 과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재산과, 자기 나라보다 이자 이율이 높은 나라의 개인들에게 빌려주는 큰 금액은 그들의 자산이 남아돈다는 것, 곧 그 자산이 자기 나라의 제 일에 웬만한 이윤을 내며 부릴 수 있는 정도를 넘도록 늘어났다는 것을 틀림없이 보여 준다. 그러나 그것이 그 일 자체가 줄어들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개인의 자본이 특정한 거래로 모아졌으면서도 그 거래에 부릴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까지 늘어나고 그러면서 그 거래도 함께 늘어날 수 있는 것처럼, 큰 나라의 자본도 그럴 수 있다.
우리의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식민지에서는 노동의 임금뿐 아니라 화폐의 이자, 따라서 자산의 이윤도 잉글랜드보다 높다. 여러 식민지에서 이자의 법정 이율과 시장 이율은 다 6퍼센트에서 8퍼센트 사이를 오간다. 그러나 높은 노동 임금과 높은 자산 이윤은 어쩌면 새 식민지의 독특한 형편 말고는 좀처럼 나란히 가지 않는 것들이다. 새 식민지는 얼마 동안 반드시, 다른 나라 대부분보다 땅의 넓이에 견주어 자산이 더 모자라고 자산의 크기에 견주어 사람이 더 모자란다. 그들에게는 갈아 먹일 자산보다 땅이 더 많다. 그러므로 그들이 가진 자산은 가장 기름지고 자리가 가장 좋은 땅, 곧 바닷가에 가깝고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줄기를 따라 놓인 땅을 가는 데만 쓰인다. 그런 땅도 그 자연 생산물의 값어치보다 낮은 값으로 사들이는 일이 잦다. 그런 땅을 사들이고 개량하는 데 부려진 자산은 아주 큰 이윤을 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아주 높은 이자도 물어 줄 수 있다. 그렇게 벌이가 좋은 데에 자산이 빠르게 쌓이므로 농장주는 새 정착지에서 일손을 구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일손의 수를 늘리려 한다. 그러므로 그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넉넉한 보수를 받는다. 식민지가 커 가면서 자산의 이윤은 차츰 줄어든다. 가장 기름지고 자리가 가장 좋은 땅이 모두 차지된 뒤에는 흙과 자리가 그보다 못한 땅을 가는 데서 얻을 수 있는 이윤이 적어지고, 거기에 부려진 자산에 물어 줄 수 있는 이자도 적어진다. 그래서 우리 식민지 대부분에서 이자의 법정 이율과 시장 이율은 금세기 동안 크게 내려갔다. 부와 개량과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이자는 떨어졌다. 노동의 임금은 자산의 이윤과 함께 내려가지 않는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이윤이 어떻든 자산이 늘어나는 대로 늘어나며, 이윤이 줄어든 뒤에도 자산은 그저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날 수 있다. 부를 쌓아 가며 나아가는 부지런한 나라의 일은 부지런한 개인의 일과 같다. 큰 자산은 이윤이 적어도 대개 이윤이 큰 작은 자산보다 빠르게 늘어난다. 돈이 돈을 번다고 속담은 말한다. 조금 모아 두면 더 모으기가 흔히 쉬워진다. 어려운 것은 그 조금을 모으는 일이다. 자산의 증가와 근면의 증가, 곧 쓸모 있는 노동에 대한 수요의 증가가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는 이미 얼마쯤 밝혔거니와, 뒤에 자산의 축적을 다룰 때 더 온전히 밝히겠다.
새 땅을 얻거나 거래의 새 갈래를 얻으면, 부를 쌓으며 빠르게 나아가는 나라에서조차 자산의 이윤이, 그리고 그와 더불어 화폐의 이자가 올라가는 일이 더러 있다. 그런 획득이 여러 사람에게 갈라 안겨 주는 일거리 전체를 감당하기에 그 나라의 자산은 넉넉하지 못하므로, 자산은 가장 큰 이윤을 안겨 주는 몇몇 갈래에만 쓰인다. 전에 다른 거래에 부려지고 있던 몫의 얼마는 거기에서 빠져나와 새롭고 더 벌이가 좋은 거래로 돌려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모든 묵은 거래에서 겨룸은 전보다 덜해진다. 시장에는 여러 종류의 물건이 전만큼 넉넉히 들어오지 않게 된다. 그 값은 얼마간 오르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다루는 이들에게 더 큰 이윤을 안겨 주며, 그래서 그들은 더 높은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지난 전쟁이 끝난 뒤 한동안 신용이 가장 좋은 개인들뿐 아니라 런던의 가장 큰 회사 몇몇까지 예사로 5퍼센트로 돈을 빌렸는데, 그전에 그들은 4퍼센트와 4.5퍼센트를 넘겨 물어 본 적이 없었다.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에서 우리가 얻은 것으로 땅과 거래가 크게 불어난 사정만으로 이것은 넉넉히 설명되며, 사회의 자본이 줄어들었다고 볼 필요가 없다. 묵은 자산으로 벌여야 할 새 일거리가 그처럼 크게 불어났으니, 여러 갈래에 부려지던 자산의 양은 반드시 줄어들었을 것이고, 그런 갈래에서는 겨룸이 덜해져 이윤이 더 컸을 것이다. 지난 전쟁의 엄청난 비용에도 영국의 자본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내가 믿는 까닭은 뒤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자본, 곧 근면을 지탱하도록 정해진 자금이 줄어들면, 그것이 노동의 임금을 내리는 만큼 자산의 이윤을, 따라서 화폐의 이자를 올린다. 노동의 임금이 내려가면 사회에 남아 있는 자산의 주인들은 전보다 적은 비용으로 자기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고, 시장에 물건을 대는 데 부려지는 자산이 전보다 적으므로 그것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그들의 물건은 더 싸게 들고 그 대가로 더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윤은 양쪽 끝에서 다 불어나므로 높은 이자를 넉넉히 물어 줄 수 있다. 벵골과 동인도의 다른 영국 정착지에서 그처럼 갑작스럽고 그처럼 손쉽게 모인 큰 재산은, 그 망가진 나라들에서 노동의 임금이 아주 낮은 만큼 자산의 이윤은 아주 높다는 것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줄 것이다. 화폐의 이자도 그에 걸맞게 높다. 벵골에서는 화폐가 농부들에게 40, 50, 60퍼센트로 빌려지는 일이 잦고, 그 갚음을 위하여 다음 수확이 잡히곤 한다. 그런 이자를 물어 줄 수 있는 이윤은 지주의 지대를 거의 다 먹어 치울 수밖에 없듯이, 그처럼 엄청난 고리대는 다시 그 이윤의 대부분을 먹어 치울 수밖에 없다. 로마 공화국이 무너지기 전에도 총독들의 망국적인 통치 아래 속주에서 같은 종류의 고리대가 흔했던 듯하다. 덕이 높던 브루투스가 키프로스에서 48퍼센트로 돈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우리는 키케로5의 편지에서 알게 된다.
흙과 기후의 성질,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견준 자리가 허락하는 만큼의 부를 다 얻어서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되었으나 뒤로 물러가고 있지도 않은 나라에서는, 노동의 임금과 자산의 이윤이 아마 둘 다 아주 낮을 것이다. 제 땅이 먹여 살릴 수 있는 만큼, 또는 제 자산이 부릴 수 있는 만큼 사람이 가득 찬 나라에서는 일자리를 얻으려는 겨룸이 반드시 너무 심해져서 노동의 임금은 노동자의 수를 그대로 지탱하기에 겨우 넉넉한 정도까지 내려갈 것이며, 그 나라에는 이미 사람이 가득 차 있으므로 그 수는 결코 더 늘어날 수 없다. 치러야 할 일거리 전체에 견주어 자산이 가득 찬 나라에서는, 그 거래의 성질과 크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자산이 갈래마다 다 부려질 것이다. 그러므로 겨룸은 어디서나 그만큼 심해지고, 따라서 예사로운 이윤도 될 수 있는 대로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어느 나라도 아직 이만한 넉넉함에 이른 적은 없다. 중국은 오랫동안 멈추어 서 있었던 듯하며, 아마 오래전에 그 법과 제도의 성질이 허락하는 만큼의 부를 다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란, 법과 제도가 달랐다면 흙과 기후와 자리의 성질이 허락하였을 정도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일 수 있다. 바깥 나라와의 거래를 소홀히 하거나 업신여기고 바깥 나라의 배를 한두 항구에만 들이는 나라는, 법과 제도가 달랐다면 치를 수 있었을 만큼의 일거리를 치를 수 없다. 또 부유한 사람, 곧 큰 자본의 주인은 상당한 안전을 누리면서도 가난한 사람, 곧 작은 자본의 주인은 안전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하급 관리들에게 정의를 앞세운 빌미로 언제든 털리고 빼앗길 처지에 놓인 나라에서는, 그 안에서 치러지는 온갖 갈래의 일거리에 부려지는 자산의 양이 그 일거리의 성질과 크기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에 결코 미칠 수 없다. 갈래마다 가난한 이들을 짓누르는 것은 부유한 이들의 독점을 세울 수밖에 없으며, 그들은 거래를 모두 제 손에 움켜쥐어 아주 큰 이윤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화폐의 예사로운 이자는 12퍼센트라고 하니,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은 이 큰 이자를 물어 줄 만큼 넉넉해야 한다.
법이 모자란 탓에 이자 이율이 그 나라의 부유함이나 가난함이 요구할 정도보다 훨씬 높아지는 일이 더러 있다. 법이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지 않으면, 그 법은 모든 빌리는 이를 더 잘 다스려지는 나라의 파산자나 신용이 의심스러운 이와 거의 같은 자리에 놓는다. 자기 돈을 되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으므로, 빌려주는 이는 파산자에게 예사로 요구하는 것과 같은 고리대 이자를 받아 낸다. 로마 제국의 서쪽 속주를 휩쓴 야만족들 사이에서는 여러 세기 동안 계약의 이행이 계약 당사자들의 신의에 맡겨졌다. 그들의 왕이 세운 법정은 그 일에 좀처럼 끼어들지 않았다. 그 옛 시절에 이자 이율이 높았던 것도 어쩌면 얼마쯤은 이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이자를 아예 금할 때, 그 금령이 이자를 막지는 못한다. 많은 사람이 빌려야 하는데, 자기 돈을 쓰는 값으로 그 돈으로 벌 수 있는 것에 걸맞을 뿐 아니라 법을 피해 가는 어려움과 위험에도 걸맞은 대가를 받지 못하면 아무도 빌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의 모든 나라에서 이자 이율이 높은 것을 몽테스키외6 선생은 그들의 가난함에서가 아니라 얼마쯤은 이 사정에서, 얼마쯤은 돈을 되받기 어려운 사정에서 설명한다.
가장 낮은 예사 이윤율은 늘 자산을 부리는 데 늘 따르는 이따금의 손실을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보다 얼마간 더 높아야 한다. 이 남는 몫만이 순이윤이다. 총이윤이라 불리는 것에는 이 남는 몫뿐 아니라 그런 뜻밖의 손실을 메우려고 떼어 두는 몫까지 흔히 들어 있다. 빌리는 이가 물어 줄 수 있는 이자는 순이윤에만 걸맞다. 가장 낮은 예사 이자 이율도 같은 이치로, 웬만큼 조심해서 빌려주더라도 따르는 이따금의 손실을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보다 얼마간 더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선이나 우정 말고는 빌려주는 동기가 있을 수 없다.
부를 다 얻은 나라, 곧 일거리의 갈래마다 거기에 부릴 수 있는 가장 많은 양의 자산이 들어가 있는 나라에서는 예사로운 순이윤율이 아주 작을 것이므로, 그 이윤에서 물어 줄 수 있는 예사로운 시장 이자 이율도 아주 낮아서 가장 넉넉한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자기 돈의 이자로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작거나 어중간한 재산을 가진 사람은 모두 자기 자산을 부리는 일을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업하는 사람이 되거나 어떤 종류의 거래에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 주가 이런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그곳에서는 사업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 유행에 어긋난다. 필요가 거의 모든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고, 관습은 어디서나 유행을 다스린다. 옷을 갖추어 입지 않는 것이 우스운 일이듯, 남들처럼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얼마쯤 우스운 일이다. 민간 직업에 있는 사람이 군영이나 수비대에서 어색해 보이고 거기서 업신여김을 받을 위험까지 있는 것처럼, 사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놀고 있는 사람도 그렇다.
가장 높은 예사 이윤율은, 상품 대부분의 값에서 토지의 지대로 가야 할 몫을 모두 먹어 치우고, 그 상품을 손질하여 시장에 내놓는 노동에 노동이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가장 낮은 이율, 곧 노동자가 겨우 목숨을 이을 정도만 남겨 놓는 수준일 수 있다. 일꾼은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든 먹여졌을 것이나 지주는 늘 받지 못하였을 수도 있다. 동인도회사7의 고용인들이 벵골에서 벌이는 거래의 이윤은 어쩌면 이 이율에서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예사로운 시장 이자 이율이 예사로운 순이윤율에 대하여 지녀야 할 비율은 이윤이 오르고 내리는 대로 반드시 달라진다. 영국에서 상인들이 좋고 알맞고 온당한 이윤이라 부르는 것은 이자의 두 배로 셈해지는데, 내가 보기에 그 말은 흔하고 예사로운 이윤이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예사로운 순이윤율이 8퍼센트나 10퍼센트인 나라에서는, 빌린 돈으로 사업을 벌이는 곳이면 그 절반이 이자로 가는 것이 온당할 수 있다. 자산은 빌리는 이의 위험 아래 놓이고 그가 이를테면 빌려주는 이에게 그것을 보증해 주는 셈이므로, 4퍼센트나 5퍼센트면 대부분의 거래에서 이 보증의 위험에 대한 넉넉한 이윤이자 자산을 부리는 수고에 대한 넉넉한 보수일 수 있다. 그러나 예사 이윤율이 훨씬 더 낮거나 훨씬 더 높은 나라에서는 이자와 순이윤 사이의 비율이 같지 않을 수 있다. 훨씬 더 낮다면 어쩌면 그 절반도 이자로 내줄 수 없을 것이고, 훨씬 더 높다면 그보다 더 내줄 수 있을 것이다.
부를 향하여 빠르게 나아가는 나라에서는 낮은 이윤율이 여러 상품의 값에서 높은 노동 임금을 메워 주어, 노동의 임금이 더 낮을 수도 있는 덜 번창한 이웃 나라만큼 싸게 팔 수 있게 해 준다.
사실 높은 이윤은 높은 임금보다 일의 값을 훨씬 더 많이 올리는 쪽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아마포 제조업에서 아마를 다듬는 사람, 실을 잣는 사람, 베를 짜는 사람 등 여러 일꾼의 임금이 모두 하루에 2펜스8씩 올랐다고 하자. 그러면 아마포 한 필의 값은 그 일에 매달렸던 사람의 수에 그들이 그 일에 매달린 날수를 곱한 수만큼의 2펜스만 올리면 된다. 그 상품 값 가운데 임금으로 갈라지는 몫은 제조의 여러 단계를 다 지나면서도 이 임금 상승에 산술적 비례로만 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 일꾼들을 부리는 여러 고용주의 이윤이 모두 5퍼센트씩 올랐다고 하면, 그 상품 값 가운데 이윤으로 갈라지는 몫은 제조의 여러 단계를 지나면서 이 이윤 상승에 기하급수적 비례로 오르게 된다. 아마를 다듬는 이들의 고용주는 자기 아마를 팔 때, 자기가 일꾼들에게 미리 내준 재료값과 임금 전체의 값어치에 5퍼센트를 더 붙여 달라고 할 것이다. 실을 잣는 이들의 고용주는 오른 아마 값과 실 잣는 이들의 임금 양쪽에 다시 5퍼센트를 더 붙여 달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베 짜는 이들의 고용주도 마찬가지로 오른 아마 실 값과 베 짜는 이들의 임금 양쪽에 5퍼센트를 더 붙여 달라고 할 것이다. 상품 값을 올리는 데서 임금 상승은 빚이 쌓일 때의 단리처럼 작용한다. 이윤 상승은 복리처럼 작용한다. 우리 상인과 제조업 주인들은 높은 임금이 값을 올려 안팎에서 자기 물건이 덜 팔리게 만드는 나쁜 결과를 크게 하소연한다. 높은 이윤의 나쁜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자기 벌이가 낳는 해로운 결과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남의 벌이가 낳는 것만 하소연한다.
10장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에 따른 임금과 이윤에 대하여
노동과 자산을 여러 가지로 쓸 때 거기에 딸린 이로움과 불리함 전체는, 같은 이웃 안에서라면 완전히 같거나 끊임없이 같아지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같은 이웃 안에 다른 쓰임새보다 분명히 더 이롭거나 덜 이로운 쓰임새가 있다면, 앞의 경우에는 그리로 사람이 몰려들고 뒤의 경우에는 그것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 이로움이 이내 다른 쓰임새와 같은 높이로 돌아올 것이다. 적어도 일이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 완전한 자유가 있어서 누구나 알맞다고 여기는 직업을 고르고 알맞다고 여길 때마다 그것을 바꿀 수 있도록 온전히 자유로운 사회에서는 그럴 것이다. 누구나 자기 이익이 그를 밀어 이로운 쓰임새를 찾고 불리한 쓰임새를 피하게 할 것이다.
물론 유럽에서 돈으로 받는 임금과 이윤은 노동과 자산을 어디에 쓰는지에 따라 어디서나 크게 다르다. 그러나 이 차이는 얼마쯤은 그 쓰임새 자체에 딸린 몇몇 사정에서 나온다. 그 사정이 실제로든 적어도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든 어떤 쓰임새에서는 돈벌이가 적은 것을 메워 주고 다른 쓰임새에서는 돈벌이가 큰 것을 맞비겨 놓는다. 그리고 얼마쯤은 유럽의 정책에서 나오는데, 그 정책은 어디서도 일을 완전한 자유에 내맡기지 않는다.
그 사정과 그 정책을 따로 살피는 일이 이 장을 두 절로 가른다.
1절 — 일자리 자체의 성질에서 오는 불평등
내가 살펴볼 수 있었던 한에서, 어떤 일자리에서는 돈벌이가 적은 것을 메워 주고 다른 일자리에서는 돈벌이가 큰 것을 맞비겨 놓는 주된 사정은 다음 다섯 가지다. 첫째, 그 일자리 자체가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둘째, 그것을 익히기가 쉽고 값싼가 어렵고 비싼가. 셋째, 그 일자리에서 일이 꾸준한가 꾸준하지 않은가. 넷째, 그 일을 하는 이에게 맡겨야 하는 믿음이 작은가 큰가. 다섯째, 그 일에서 성공할 가망이 있는가 없는가.
첫째로, 노동의 임금은 그 일자리가 편한가 고된가, 깨끗한가 더러운가, 명예로운가 명예롭지 않은가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대개의 곳에서 한 해를 통틀어 보면 재봉 직인은 베 짜는 직인보다 덜 번다. 그 일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베 짜는 직인은 대장 직인보다 덜 번다. 그 일이 늘 더 편한 것은 아니지만 훨씬 깨끗하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직인은 수공업자이면서도 열두 시간 일해서 한낱 노동자인 석탄 광부가 여덟 시간 일해서 버는 만큼을 좀처럼 벌지 못한다. 그의 일은 그만큼 더럽지 않고 덜 위험하며 땅 위에서 햇빛을 받으며 이루어진다. 명예는 명예로운 직업이라면 어디서나 그 보수의 큰 몫을 이룬다. 돈벌이라는 점에서 보면 모든 것을 따져 볼 때 그런 직업은 대개 제값을 못 받는데, 이는 곧 밝혀 보이려 한다. 불명예는 반대로 작용한다. 푸줏간 일은 거칠고 미움받는 일이지만 대개의 곳에서 흔한 일 대부분보다 벌이가 좋다. 모든 일자리 가운데 가장 꺼려지는 일, 곧 공개 처형을 맡은 이의 일은 해낸 일의 양에 견주어 보면 어떤 흔한 일보다도 보수가 낫다.
사냥과 낚시는 사회가 거친 상태에 있을 때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나, 사회가 앞으로 나아간 상태에서는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놀이가 되어, 한때 필요에 밀려 하던 것을 이제는 즐거움을 위하여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간 사회에서는 남들이 소일거리로 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이들은 모두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다. 어부는 테오크리토스9 때부터 그래 왔다(제21목가를 보라). 영국에서 밀렵꾼은 어디서나 아주 가난한 사람이다. 법이 엄하여 밀렵꾼이 버티지 못하는 나라에서도 허가받은 사냥꾼의 형편이 그보다 훨씬 나은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을 좋아하는 타고난 마음이 그 일로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을 그 일로 끌어들이며, 그들의 노동이 낸 생산물은 그 양에 견주어 늘 너무 싸게 시장에 나오므로 노동자에게 가장 빈약한 생계 말고는 아무것도 안겨 주지 못한다.
즐겁지 않음과 불명예는 노동의 임금에 미치는 것과 같이 자산의 이윤에도 미친다. 여관이나 술집을 치는 이는 제집의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고 술 취한 자마다의 거친 행패에 맡겨져 있으니, 아주 즐거운 일도 아주 낯이 서는 일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흔한 일 가운데 작은 자산이 그처럼 큰 이윤을 내는 것은 좀처럼 없다.
둘째로, 노동의 임금은 그 일을 익히기가 쉽고 값싼가, 어렵고 비싼가에 따라 다르다.
비싼 기계를 세워 놓았을 때, 그 기계가 닳아 없어지기까지 해낼 남다른 일이 거기에 들인 자본을 적어도 예사로운 이윤과 함께 되돌려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남다른 손재주와 솜씨가 필요한 일자리를 얻으려고 많은 노동과 시간을 들여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그런 비싼 기계에 견줄 수 있다. 그가 익힌 일은 흔한 노동의 예사로운 임금을 넘어서 그가 배움에 들인 비용 전체를, 적어도 그만한 값어치의 자본이 낼 예사로운 이윤과 함께 되돌려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계의 수명이 그만큼 확실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갈지가 아주 불확실하다는 점을 헤아려, 그 되돌려 줌은 웬만한 기간 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솜씨 있는 노동의 임금과 흔한 노동의 임금 사이의 차이는 이 원리에 바탕을 둔다.
유럽의 정책은 모든 기계공과 수공업자와 제조업자의 노동을 솜씨 있는 노동으로, 모든 시골 노동자의 노동을 흔한 노동으로 여긴다. 앞의 노동이 뒤의 노동보다 더 섬세하고 까다로운 성질을 지녔다고 보는 듯하다. 어떤 경우에는 어쩌면 그럴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아주 그렇지 않은데, 이는 곧 밝혀 보이려 한다. 그래서 유럽의 법과 관습은 누구든 앞의 종류의 노동을 하려면 도제살이10를 거치도록 요구하는데, 그 엄함의 정도는 곳에 따라 다르다. 뒤의 종류는 누구에게나 열린 채로 내버려 둔다. 도제살이가 이어지는 동안 도제의 노동은 모두 그 주인에게 속한다. 그동안 그는 많은 경우에 부모나 친척에게 먹여 살려져야 하고 거의 모든 경우에 그들에게 옷을 얻어 입어야 한다. 또 그 일을 가르쳐 준 값으로 주인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는 것이 예사다. 돈을 낼 수 없는 이들은 시간을 내놓아 예사로운 햇수보다 더 오래 매이기로 한다. 이렇게 매이는 것은 도제가 으레 게으르므로 주인에게 늘 이롭지는 않으나 도제에게는 늘 불리하다. 반면에 시골 노동에서는 노동자가 쉬운 일을 하는 동안에 자기 일의 더 어려운 부분을 익히고, 일자리의 여러 단계를 다 지나는 동안 자기 노동으로 자기를 먹여 살린다. 그러므로 유럽에서 기계공과 수공업자와 제조업자의 임금이 흔한 노동자의 임금보다 얼마간 더 높은 것은 온당하다. 실제로 그러하며, 벌이가 나은 덕에 그들은 대개의 곳에서 한 등 높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높음은 대개 아주 작다. 무늬 없는 아마포나 모직물처럼 더 흔한 종류의 제조품을 만드는 직인들의 하루 벌이나 한 주 벌이를 평균으로 셈해 보면, 대개의 곳에서 흔한 노동자의 하루 임금보다 아주 조금 많을 뿐이다. 물론 그들의 일자리는 더 꾸준하고 고르므로 한 해를 통틀어 보면 벌이의 차이가 얼마간 더 클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그들이 배움에 더 들인 비용을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를 넘지 않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재주를 다루는 기예와 자유로운 직업에서 배움은 한결 더 오래 걸리고 비싸다. 그러므로 화가와 조각가, 법률가와 의사가 돈으로 받는 보수는 훨씬 더 넉넉해야 하며, 실제로 그러하다.
자산의 이윤은 그 자산이 부려지는 거래를 익히기가 쉬운가 어려운가에 아주 조금밖에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큰 도시에서 자산을 부리는 여러 가지 길은 실제로 익히기가 거의 다 같이 쉽고 같이 어려운 듯하다. 바깥 거래든 안 거래든 어느 한 갈래가 다른 갈래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일일 수는 없다.
셋째로, 여러 직업에서 노동의 임금은 그 일자리에서 일이 꾸준한가 꾸준하지 않은가에 따라 다르다.
어떤 생업에서는 일이 다른 생업에서보다 훨씬 꾸준하다. 제조업 대부분에서 직인은 일할 수 있는 몸이면 한 해의 거의 모든 날에 일거리가 있다고 꽤 믿어도 좋다. 그러나 석공이나 벽돌공은 매운 서리가 내릴 때도 날이 궂을 때도 일할 수 없고, 그 밖의 때에도 그의 일거리는 손님이 이따금 불러 주는 데 달려 있다. 그래서 그는 일거리가 아예 없는 때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가 일하는 동안 버는 것은 놀고 있는 동안 그를 먹여 살려야 할 뿐 아니라, 그처럼 위태로운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더러 불러올 수밖에 없는 불안하고 맥 빠진 시간에 대해서도 얼마간 그를 메워 주어야 한다. 그래서 제조업자 대부분의 셈해진 벌이가 흔한 노동자의 하루 임금과 거의 같은 높이인 곳에서도 석공과 벽돌공의 벌이는 대개 그 임금의 1.5배에서 2배에 이른다. 흔한 노동자가 한 주에 4실링이나 5실링을 벌면 석공과 벽돌공은 7실링이나 8실링을 버는 일이 잦고, 앞의 사람이 6실링을 벌면 뒤의 사람은 흔히 9실링이나 10실링을 벌며, 런던처럼 앞의 사람이 9실링이나 10실링을 버는 곳에서는 뒤의 사람이 예사로 15실링이나 18실링을 번다. 그러나 솜씨 있는 노동 가운데 석공과 벽돌공의 일보다 익히기 쉬워 보이는 것은 없는 듯하다. 런던의 가마꾼들이 여름철에는 더러 벽돌공으로 부려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 일꾼들의 높은 임금은 솜씨에 대한 보수라기보다 일자리가 꾸준하지 않은 것에 대한 메움이다.
집 목수는 석공보다 오히려 더 섬세하고 재주가 드는 일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대개의 곳에서, 어디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의 하루 임금은 얼마간 더 낮다. 그의 일자리는 손님이 이따금 불러 주는 데 많이 달려 있기는 하나 그만큼 온전히 거기에만 달려 있지는 않으며, 날씨 때문에 끊기지도 않는다.
대개 꾸준한 일거리를 주는 생업이 어느 한 곳에서 그렇지 못할 때는, 그 일꾼들의 임금이 흔한 노동의 임금에 대한 예사로운 비율보다 늘 훨씬 높이 올라간다. 런던에서는 거의 모든 수공업 직인이 다른 곳의 날일꾼과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날마다, 주마다 불려 나가고 내쳐지기 쉽다. 그래서 수공업자 가운데 가장 낮은 층인 재봉 직인도 하루에 반 크라운11을 버는데, 흔한 노동의 임금은 18펜스로 셈할 만하다.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에서 재봉 직인의 임금은 흔한 노동의 임금과 겨우 같을 때가 잦으나, 런던에서는 특히 여름에 일자리 없이 여러 주를 보내는 일이 잦다.
일자리가 꾸준하지 않은 것에 일의 고됨과 즐겁지 않음과 더러움이 겹치면, 가장 흔한 노동의 임금이 가장 솜씨 있는 수공업자의 임금 위로 올라가는 일이 더러 있다. 뉴캐슬에서 도급으로 일하는 석탄 광부는 예사로 흔한 노동 임금의 두 배쯤, 스코틀랜드의 여러 곳에서는 세 배쯤을 번다고 한다. 그의 높은 임금은 오로지 일의 고됨과 즐겁지 않음과 더러움에서 나온다. 그의 일자리는 대개의 경우 그가 원하는 만큼 꾸준할 수 있다. 런던의 석탄 하역 인부는 고됨과 더러움과 즐겁지 않음에서 석탄 광부에 거의 맞먹는 일을 하는데, 석탄 배가 들어오는 때가 고를 수 없으므로 그 대부분은 일자리가 아주 꾸준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석탄 광부가 예사로 흔한 노동 임금의 두 배와 세 배를 번다면, 석탄 하역 인부가 더러 그 임금의 네 배와 다섯 배를 번다 해도 터무니없어 보일 까닭이 없다. 몇 해 전에 그들의 형편을 조사했을 때, 그때 받던 이율로 하루에 6실링에서 10실링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6실링은 런던에서 흔한 노동 임금의 네 배쯤이다. 그리고 어느 생업에서나 가장 낮은 흔한 벌이는 늘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이 얻는 벌이로 보아도 좋다. 그 벌이가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그 일에 딸린 즐겁지 않은 사정을 모두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를 넘는 것이었다면 이내 겨루는 사람이 아주 많아져서, 남에게 못 하게 막는 특권이 없는 생업에서라면 그 벌이는 곧 더 낮은 이율로 내려갔을 것이다.
일자리가 꾸준한가 꾸준하지 않은가는 어느 생업에서든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에 미칠 수 없다. 자산이 꾸준히 부려지는가 그렇지 않은가는 그 생업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거래를 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넷째로, 노동의 임금은 일꾼에게 맡겨야 하는 믿음이 작은가 큰가에 따라 다르다.
금세공인과 보석공의 임금은 어디서나 그들과 재주가 같은 다른 많은 일꾼, 나아가 재주가 훨씬 나은 일꾼의 임금보다 높은데, 이는 그들에게 값진 재료가 맡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건강을 의사에게 맡기고, 우리 재산을, 더러는 우리 목숨과 명성까지 법률가와 소송 대리인에게 맡긴다. 그런 믿음은 아주 비천하거나 낮은 형편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보수는 그처럼 중요한 믿음이 요구하는 만큼의 지위를 사회에서 그들에게 줄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그들의 배움에 들여야 하는 긴 시간과 큰 비용이 이 사정과 겹치면 그들 노동의 값은 반드시 한결 더 올라간다.
어떤 사람이 거래에 자기 자산만 부린다면 맡겨진 믿음이란 없다. 그리고 그가 남에게서 얻을 수 있는 신용은 그 거래의 성질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의 재산과 정직과 조심에 대한 남들의 평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거래의 갈래에 따라 이윤율이 다른 것은 그 거래를 하는 이들에게 맡겨진 믿음의 정도가 다른 데서 나올 수 없다.
다섯째로, 여러 일자리에서 노동의 임금은 그 일에서 성공할 가망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배운 일자리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될 가망은 직업에 따라 아주 다르다. 기계를 다루는 생업 대부분에서는 성공이 거의 확실하지만, 자유로운 직업에서는 아주 불확실하다. 아들을 구두장이에게 도제로 보내 놓으면 그가 구두 한 켤레 짓는 법을 익히리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것이 없다. 그러나 법을 공부하러 보내 놓으면, 그가 그 일로 먹고살 만한 수준에 이를 가망은 적어도 스물에 하나다. 완전히 공정한 복권이라면 당첨 제비를 뽑은 이들이 빈 제비를 뽑은 이들이 잃은 것을 모두 얻어야 한다. 하나가 성공하는 데 스물이 실패하는 직업이라면, 실패한 스물이 얻었어야 할 것을 모두 그 하나가 얻는 것이 마땅하다. 어쩌면 마흔 살 가까이 되어서야 자기 직업으로 얼마간 벌기 시작하는 법정 변호사는, 자기가 그처럼 오래 걸리고 비싸게 배운 값뿐 아니라 그것으로 아무것도 벌지 못할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배운 값까지 되돌려 받아야 한다. 법정 변호사의 보수가 더러 아무리 터무니없어 보이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되돌려 받는 것은 결코 이만큼 되지 못한다. 어느 한 곳에서 구두장이나 베 짜는 이처럼 흔한 생업에 종사하는 여러 일꾼이 한 해에 벌 만한 것과 한 해에 쓸 만한 것을 셈해 보면, 앞의 액수가 대개 뒤의 액수를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러 법학원12의 법정 변호사와 법학도를 모두 두고 같은 셈을 해 보면, 앞의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높게 잡고 뒤의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낮게 잡더라도 그들의 한 해 벌이가 한 해 씀씀이에 아주 작은 비율밖에 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법의 복권은 완전히 공정한 복권과는 아주 거리가 멀며, 법이라는 직업도 다른 여러 자유롭고 명예로운 직업과 마찬가지로 돈벌이라는 점에서 보면 분명히 제값을 못 받는다.
그러나 그런 직업은 다른 직업과 높이를 나란히 유지하며, 이런 낙담거리가 있음에도 도량이 가장 크고 가장 트인 마음을 지닌 이들이 모두 그리로 몰려들려고 애쓴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원인이 그 직업을 권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첫째는 그 가운데 어느 것에서든 남보다 뛰어날 때 따라오는 명성을 바라는 마음이고, 둘째는 누구나 얼마간은 자기 능력뿐 아니라 자기 운수에 대해서도 지니고 있는 타고난 믿음이다.
어느 직업에서든 웬만한 수준에 이르는 이조차 드문 그런 직업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이른바 천재나 남보다 나은 재능의 가장 뚜렷한 표지다. 그처럼 남다른 능력에 따라오는 세상의 찬탄은 늘 그 보수의 한 몫을 이루며, 그 정도가 높은가 낮은가에 따라 그 몫도 크거나 작다. 의술이라는 직업에서 그것은 보수의 적지 않은 몫을 이루고, 어쩌면 법에서는 한결 더 큰 몫을 이루며, 시와 철학에서는 거의 전부를 이룬다.
아주 즐겁고 아름다운 재능이 있어서 그것을 지녔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종류의 찬탄을 얻어 내지만, 벌이를 위하여 그것을 부리는 일은 이치에서든 편견에서든 일종의 공공연한 몸 팔기로 여겨지는 재능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재능을 그렇게 부리는 이들이 돈으로 받는 보수는 그 재능을 얻는 데 들인 시간과 노동과 비용을 물어 주기에 넉넉할 뿐 아니라, 그것을 생계의 방편으로 부리는 데 따르는 불명예까지 물어 주기에 넉넉해야 한다. 배우와 오페라 가수와 오페라 무희 등이 받는 엄청난 보수는 이 두 가지 원리, 곧 그 재능의 드묾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것을 그렇게 부리는 데 따르는 불명예에 바탕을 둔다. 우리가 그들의 사람됨은 업신여기면서 그들의 재능에는 가장 아낌없이 후하게 보답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의 것을 하는 동안 우리는 반드시 뒤의 것도 하게 된다. 그런 직업을 두고 세상의 의견이나 편견이 달라진다면 그들이 돈으로 받는 보수는 이내 줄어들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 일에 나설 것이고, 겨룸이 곧 그들 노동의 값을 끌어내릴 것이다. 그런 재능은 흔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드문 것도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이 그 재능을 아주 훌륭하게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그렇게 쓰기를 마다하고, 그것으로 명예롭게 얼마간 벌 수 있다면 그것을 얻어 낼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많다.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능력을 두고 품는 지나친 자만은 어느 시대에나 철학자와 도덕가들이 지적해 온 오래된 폐단이다. 자기 운수를 두고 품는 터무니없는 자신은 그보다 덜 주목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한결 더 널리 퍼져 있다. 웬만큼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밝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얼마간이라도 품지 않은 이가 세상에 없다. 벌 수 있는 기회는 누구나 얼마간 지나치게 높이 치고, 잃을 수 있는 기회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나치게 낮게 치며, 웬만큼 몸이 튼튼하고 마음이 밝은 사람이라면 그것을 제값보다 높이 치는 이가 거의 없다.
벌 기회를 저절로 지나치게 높이 친다는 것은 복권이 어디서나 잘 팔린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세상은 완전히 공정한 복권, 곧 얻은 것 전체가 잃은 것 전체를 메우는 복권을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 복권으로는 일을 벌인 사업가가 아무것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국영 복권에서 표는 처음 사들이는 이들이 내는 값어치만큼 되지 못하는데도 시장에서 예사로 20퍼센트, 30퍼센트, 더러는 40퍼센트를 얹어 팔린다. 큰 당첨 가운데 얼마를 얻으리라는 헛된 바람만이 이 수요를 낳는 오직 하나의 원인이다. 아무리 침착한 사람도 1만이나 2만 파운드를 얻을 기회에 작은 돈을 내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기지 않는데, 그 작은 돈조차 그 기회의 값어치보다 어쩌면 20퍼센트나 30퍼센트 더 많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다. 어떤 당첨도 20파운드를 넘지 않는 복권이라면 다른 점에서는 흔한 국영 복권보다 완전히 공정한 복권에 훨씬 가까울지라도 표가 그만큼 팔리지 않을 것이다. 큰 당첨 가운데 얼마를 얻을 기회를 더 늘리려고 어떤 이들은 표를 여러 장 사고, 또 어떤 이들은 더 많은 장수의 표에 걸린 작은 몫을 사들인다. 그러나 표를 많이 걸면 걸수록 잃는 쪽이 될 가망이 커진다는 것보다 수학에서 더 확실한 명제는 없다. 그 복권의 모든 표에 걸어 보라. 그러면 반드시 잃는다. 그리고 표의 수가 많을수록 이 확실함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잃을 기회를 낮게 치는 일이 잦고 제값보다 높이 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보험업자가 아주 적은 이윤을 얻는다는 데서 알 수 있다. 불이든 바다의 위험이든 그것에 보험을 드는 일이 하나의 생업으로 굴러가려면, 흔한 보험료가 흔한 손실을 메우고 관리 비용을 물어 주며 같은 크기의 자본을 흔한 생업에 부려서 얻을 만한 이윤을 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해야 한다. 이보다 더 내지 않는 사람은 그 위험의 실제 값어치, 곧 그가 보험을 들 수 있으리라고 온당하게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낮은 값만 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보험으로 얼마간의 돈을 번 사람은 많아도 큰 재산을 이룬 사람은 아주 적으니, 이 한 가지 사정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재산을 이루는 다른 흔한 생업보다 이 생업에서 이윤과 손실의 예사로운 셈이 더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 넉넉히 드러나는 듯하다. 그런데 보험료가 예사로 이처럼 알맞은 정도임에도 많은 사람이 그 위험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보아 그것을 내려 하지 않는다. 왕국 전체를 평균으로 잡으면 스무 집 가운데 열아홉, 아니 어쩌면 백 집 가운데 아흔아홉은 불에 대한 보험이 들려 있지 않다. 바다의 위험은 사람들 대부분에게 더 두렵게 여겨지므로 보험이 든 배가 들지 않은 배에 대하여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러나 철을 가리지 않고, 나아가 전쟁 때에도 보험 없이 떠나는 배가 많다. 이것이 더러 조심 없는 짓이 아닐 수도 있다. 큰 회사, 나아가 큰 상인 하나가 배 스무 척이나 서른 척을 바다에 내놓고 있다면 그 배들이 이를테면 서로를 보증해 주는 셈이 될 수 있다. 그 모두에서 아껴 둔 보험료가 우연의 흔한 흐름에서 그들이 맞닥뜨릴 만한 손실을 메우고도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집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배에 대해서도 보험을 소홀히 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그런 섬세한 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무 생각 없는 무모함과 위험을 얕보는 건방짐에서 나온다.
위험을 얕보는 마음과 성공을 바라는 건방진 희망은 젊은이가 자기 직업을 고르는 나이에 삶의 어느 시기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때 불운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좋은 운수를 바라는 마음을 얼마나 맞비기지 못하는지는, 신분이 좋은 이들이 이른바 자유로운 직업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데서보다 보통 사람들이 선뜻 군인으로 뽑히거나 바다로 나가는 데서 한결 더 뚜렷이 드러난다.
한낱 병졸이 잃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알 만큼 뻔하다. 그러나 젊은 지원자들은 그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새 전쟁이 터질 무렵이면 그 어느 때보다 선뜻 뽑혀 나간다. 그리고 승진할 기회가 거의 없음에도 그들은 젊은 공상 속에서, 결코 오지 않을 명예와 영광을 얻을 천 가지 계기를 그려 본다. 이 낭만적인 바람이 그들 피의 값 전부를 이룬다. 그들의 급료는 흔한 노동자의 임금보다 적고, 실제로 복무하는 동안 그들의 고생은 훨씬 크다.
바다의 복권은 육군의 복권만큼 불리하지는 않다. 낯이 서는 노동자나 수공업자의 아들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바다로 나가는 일이 잦으나, 군인으로 뽑혀 갈 때는 늘 그 허락 없이 간다. 남들은 그가 앞의 생업으로 얼마간 벌 기회는 보아 주지만, 뒤의 생업으로 무엇인가 벌 기회는 그 자신 말고는 아무도 보아 주지 않는다. 큰 제독은 큰 장군보다 세상의 찬탄을 덜 받으며, 바다에서 얻는 가장 높은 성공도 땅에서 얻는 같은 성공만큼 빛나는 재산과 명성을 약속해 주지 않는다. 같은 차이가 양쪽의 낮은 승진 단계에까지 다 걸쳐 있다. 서열의 규칙으로는 해군 함장이 육군 대령과 같은 자리에 놓이지만, 세상이 흔히 매기는 평가에서는 그와 같은 자리에 놓이지 않는다. 그 복권에서 큰 당첨이 작으므로 작은 당첨은 더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한낱 뱃사람이 한낱 병졸보다 재산과 승진을 더 자주 얻으며, 그 당첨을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그 생업을 무엇보다 권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 그들의 솜씨와 손재주는 거의 어느 수공업자보다 훨씬 나으며 그들의 온 삶은 고생과 위험이 끊이지 않는 한 장면이건만, 그 모든 손재주와 솜씨에 대하여, 그 모든 고생과 위험에 대하여 그들이 한낱 뱃사람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받는 보수는 앞의 것을 부리는 즐거움과 뒤의 것을 이겨 내는 즐거움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임금은 뱃사람 임금의 이율을 정하는 항구의 흔한 노동자 임금보다 높지 않다. 그들은 끊임없이 항구에서 항구로 옮겨 다니므로, 영국의 여러 항구에서 떠나는 이들의 한 달 급료는 그 여러 곳의 다른 어느 일꾼의 임금보다 서로 가까운 높이에 있으며, 가장 많은 수가 오가는 항구, 곧 런던 항구의 이율이 다른 모든 항구의 이율을 다스린다. 런던에서는 여러 부류의 일꾼 대부분의 임금이 에든버러에서 같은 부류가 받는 임금의 두 배쯤이다. 그러나 런던 항구에서 떠나는 뱃사람은 리스 항구에서 떠나는 뱃사람보다 한 달에 3실링이나 4실링 넘게 더 버는 일이 좀처럼 없고, 그 차이가 그만큼도 되지 않는 일이 잦다. 평화로운 때 상선 근무에서 런던의 값은 달력 한 달에 1기니13에서 27실링쯤이다. 런던의 흔한 노동자는 한 주에 9실링이나 10실링의 이율로 치면 달력 한 달에 40실링에서 45실링을 벌 수 있다. 물론 뱃사람은 급료에 더하여 먹을 것을 받는다. 그러나 그 값어치가 그의 급료와 흔한 노동자의 급료 사이의 차이를 늘 넘어서지는 않을 것이며, 더러 넘어선다 하더라도 그 남는 몫이 뱃사람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벌이는 아니다. 그는 그것을 아내와 식구와 나눌 수 없고, 식구는 집에서 그의 임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모험으로 가득한 삶에 딸린 위험과 아슬아슬한 벗어남은 젊은이의 기를 꺾기는커녕 그 생업을 그들에게 권하는 구실을 하는 일이 잦은 듯하다. 낮은 계층의 다정한 어머니는 배를 보고 뱃사람의 이야기와 모험을 듣는 것이 아들을 바다로 꾀어낼까 두려워 항구 도시의 학교에 아들을 보내기를 꺼리는 일이 잦다. 용기와 솜씨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바랄 만한 위험이 멀리 보이는 것은 우리에게 즐겁지 않은 일이 아니며, 어떤 일자리에서도 노동의 임금을 올리지 않는다. 용기와 솜씨가 아무 쓸모도 없는 위험이 딸린 일자리는 그렇지 않다. 몸에 아주 해롭다고 알려진 생업에서 노동의 임금은 늘 눈에 띄게 높다. 몸에 해롭다는 것은 즐겁지 않음의 한 종류이며, 그것이 노동의 임금에 미치는 결과는 그 큰 갈래 아래에 넣어야 한다.
자산을 부리는 온갖 일자리에서 예사로운 이윤율은 되돌아올 것이 확실한가 불확실한가에 따라 얼마간 달라진다. 되돌아올 것은 대체로 바깥 거래보다 안 거래에서 덜 불확실하며, 바깥 거래에서도 어떤 갈래는 다른 갈래보다 덜 불확실하다. 예를 들어 자메이카로 가는 거래보다 북아메리카로 가는 거래가 그렇다. 예사로운 이윤율은 위험이 커지는 대로 늘 얼마간 올라간다. 그러나 그것이 위험에 비례하여 올라가거나 위험을 온전히 메울 만큼 올라가지는 않는 듯하다. 파산은 가장 위험한 생업에서 가장 잦다. 온갖 생업 가운데 가장 위험한 밀수업은 그 모험이 들어맞으면 또한 가장 벌이가 좋은 생업이지만, 어김없이 파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성공을 바라는 건방진 희망이 여기서도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작용하여 그처럼 많은 모험가를 그 위험한 생업으로 꾀어내는 듯하며, 그들이 서로 겨루는 바람에 이윤은 그 위험을 메우기에 넉넉한 정도 아래로 내려간다. 그것을 온전히 메우려면 흔히 되돌아오는 것이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을 넘어서 이따금의 손실을 모두 메워 줄 뿐 아니라, 보험업자의 이윤과 같은 성질의 남는 이윤을 그 모험가들에게 안겨 주어야 한다. 그러나 흔히 되돌아오는 것이 이 모든 것에 넉넉하다면 파산이 다른 생업보다 이 생업에서 더 잦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임금을 다르게 만드는 다섯 가지 사정 가운데 자산의 이윤에 미치는 것은 둘뿐인데, 그 일이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 그리고 그 일에 위험이 따르는가 안전한가이다. 즐거운가 즐겁지 않은가라는 점에서 보면 자산을 부리는 여러 일자리 대부분에는 차이가 거의 또는 전혀 없으나 노동의 여러 일자리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은 위험이 커지는 대로 올라가기는 하나 늘 위험에 비례하여 올라가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 모든 것에서, 같은 사회나 같은 이웃 안에서라면 자산을 부리는 여러 일자리의 평균 이윤율과 예사 이윤율이 여러 종류의 노동이 돈으로 받는 임금보다 서로 가까운 높이에 있으리라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흔한 노동자의 벌이와 일거리가 많은 법률가나 의사의 벌이 사이의 차이는, 서로 다른 어느 두 거래 갈래의 예사 이윤 사이의 차이보다 분명히 훨씬 크다. 게다가 여러 생업의 이윤에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는, 임금으로 보아야 할 것과 이윤으로 보아야 할 것을 우리가 늘 갈라 보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착각인 것이 대개다.
약제사의 이윤은 유별나게 터무니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버릇이 되었다. 그러나 겉보기에 이처럼 큰 이윤은 알고 보면 노동에 대한 온당한 임금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다. 약제사의 솜씨는 어떤 수공업자의 솜씨보다도 훨씬 섬세하고 까다로운 것이며, 그에게 맡겨지는 믿음은 훨씬 더 중대한 것이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어떤 경우에나 의사이고, 부유한 이들에게는 괴로움이나 위험이 그리 크지 않을 때의 의사다. 그러므로 그의 보수는 그의 솜씨와 그가 맡은 믿음에 걸맞아야 하며, 그 보수는 대개 그가 약을 파는 값에서 나온다. 그런데 장이 서는 큰 마을에서 일거리가 가장 많은 약제사가 한 해에 파는 약을 다 합쳐도 그가 들인 값은 30파운드나 40파운드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그것을 300파운드나 400파운드에 팔아 1000퍼센트의 이윤을 남긴다 해도, 그것이 그의 노동에 대한 온당한 임금을 그가 물릴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 곧 약값에 얹어 물린 것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윤의 대부분은 이윤의 옷을 입고 숨어 있는 실제 임금이다.
작은 항구 도시에서 자그마한 식료품 상인은 100파운드의 자산으로 40퍼센트나 50퍼센트를 남기는데, 같은 곳의 적지 않은 도매 상인은 1만 파운드의 자산으로 8퍼센트나 10퍼센트를 남기기도 어렵다. 식료품 상인의 생업은 그곳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있어야 하는 것일 수 있고, 시장이 좁아서 그 일에 더 큰 자본을 부릴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기 생업으로 먹고살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생업이 요구하는 자질에 걸맞게 먹고살아야 한다. 작은 자본을 가지는 것 말고도 그는 읽고 쓰고 셈할 수 있어야 하며, 어쩌면 쉰 가지나 예순 가지에 이르는 여러 물건과 그 값과 품질, 그리고 그것을 가장 싸게 구할 수 있는 시장까지 웬만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요컨대 그는 큰 상인에게 필요한 지식을 다 갖추어야 하며, 그가 큰 상인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은 넉넉한 자본이 없다는 것뿐이다. 그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의 노동에 한 해 30파운드나 40파운드는 지나치게 큰 보수로 볼 수 없다. 겉보기에 큰 그의 자본 이윤에서 이것을 덜어 내면 어쩌면 자산의 예사로운 이윤보다 조금밖에 더 남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겉으로 드러난 이윤의 대부분은 실제 임금이다.
소매 거래의 겉보기 이윤과 도매 거래의 겉보기 이윤 사이의 차이는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에서보다 수도에서 훨씬 작다. 식료품 거래에 1만 파운드를 부릴 수 있는 곳에서는 식료품 상인의 노동에 대한 임금이 그처럼 큰 자산의 실제 이윤에 아주 조금 보태지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곳에서는 넉넉한 소매 상인의 겉보기 이윤이 도매 상인의 이윤과 더 가까운 높이에 있다. 소매로 파는 물건이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보다 수도에서 대개 그만큼 싸고 흔히 훨씬 싼 것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식료품은 대개 훨씬 싸고, 빵과 푸줏간 고기는 흔히 그만큼 싸다. 식료품을 큰 도시로 실어 오는 데 드는 값은 시골 마을로 실어 오는 데 드는 값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곡물과 가축을 실어 오는 데는 훨씬 많이 드는데, 그 대부분을 훨씬 먼 곳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료품의 원가는 두 곳에서 같으므로, 그 값이 가장 싼 곳은 그것에 이윤이 가장 적게 얹히는 곳이다. 빵과 푸줏간 고기의 원가는 시골 마을보다 큰 도시에서 더 크다. 그래서 이윤은 더 적은데도 그것이 큰 도시에서 늘 더 싼 것은 아니고 흔히 값이 엇비슷하다. 빵과 푸줏간 고기 같은 물건에서는 겉보기 이윤을 줄이는 바로 그 원인이 원가를 키운다. 시장이 넓으면 더 큰 자산에 일거리가 생기므로 겉보기 이윤이 줄어들지만, 더 먼 곳에서 물건을 가져와야 하므로 원가가 커진다. 한쪽이 줄고 다른 쪽이 커지는 이 두 가지는 대개의 경우 서로를 거의 맞비기는 듯하며, 왕국의 여러 지역에서 곡물과 가축의 값은 예사로 크게 다른데도 빵과 푸줏간 고기의 값은 그 대부분에서 대개 거의 같은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도매 거래에서든 소매 거래에서든 자산의 이윤은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보다 수도에서 대개 적지만, 작게 시작하여 큰 재산을 이루는 일은 앞의 곳에서 잦고 뒤의 곳에서는 거의 없다. 작은 도시와 시골 마을에서는 시장이 좁으므로 자산이 커지는 대로 거래를 늘 넓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곳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윤율이 아주 높을 수 있어도 그 이윤의 액수는 결코 아주 클 수 없고, 따라서 그가 한 해에 쌓는 액수도 아주 클 수 없다. 반면에 큰 도시에서는 자산이 늘어나는 대로 거래를 넓힐 수 있으며, 아끼고 번창하는 사람의 신용은 그의 자산보다 훨씬 빠르게 커진다. 그의 거래는 그 둘을 합한 액수에 비례하여 넓어지고, 그의 이윤 액수는 그의 거래가 넓어진 만큼에 비례하며, 한 해에 그가 쌓는 것은 그 이윤의 액수에 비례한다. 그러나 큰 도시에서조차 규칙 있고 자리 잡히고 널리 알려진 어느 한 갈래의 사업으로 큰 재산이 이루어지는 일은 드물고, 큰 재산은 평생에 걸친 근면과 검약과 주의에서 나온다. 물론 그런 곳에서는 이른바 투기 거래로 갑작스러운 재산이 이루어지는 일도 더러 있다. 투기 상인은 규칙 있고 자리 잡히고 널리 알려진 어느 한 갈래의 사업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올해는 곡물 상인이고 이듬해는 포도주 상인이며 그다음 해는 설탕이나 담배나 차 상인이다. 어떤 거래든 예사보다 벌이가 좋아지리라고 내다보면 거기에 뛰어들고, 그 이윤이 다른 거래와 같은 높이로 돌아가리라고 내다보면 거기서 빠져나온다. 그러므로 그의 이윤과 손실은 자리 잡히고 널리 알려진 어느 한 갈래의 사업의 이윤과 손실에 대하여 어떤 규칙 있는 비율도 지닐 수 없다. 담대한 모험가는 두세 번의 들어맞은 투기로 적지 않은 재산을 얻는 일이 더러 있으나, 두세 번의 어긋난 투기로 재산을 잃을 가망도 그만큼 크다. 이 거래는 큰 도시 말고는 어디서도 벌일 수 없다. 그 일에 필요한 소식은 거래와 왕래가 가장 넓게 퍼진 곳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사정은 노동의 임금과 자산의 이윤에 적지 않은 불평등을 낳지만, 노동이든 자산이든 여러 쓰임새에 딸린 이로움과 불리함 전체, 곧 실제의 것이든 상상 속의 것이든 그 전체에는 아무런 불평등도 낳지 않는다. 그 사정의 성질이 그러해서, 그것들은 어떤 쓰임새에서는 돈벌이가 적은 것을 메워 주고 다른 쓰임새에서는 돈벌이가 큰 것을 맞비겨 놓는다.
그러나 이로움과 불리함 전체에서 이 같음이 이루어지려면, 가장 완전한 자유가 있는 곳에서조차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그 일자리는 그 이웃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오래 자리 잡혀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일자리는 예사로운 상태, 곧 그 본래의 상태라 부를 만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일자리는 그것을 맡은 이들의 오직 하나의, 또는 주된 일자리여야 한다.
첫째로, 이 같음은 그 이웃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오래 자리 잡혀 있는 일자리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사정이 모두 같다면 임금은 묵은 생업보다 새 생업에서 대개 높다. 어떤 사업 기획자가 새 제조업을 세우려 할 때, 그는 처음에 일꾼들이 자기 생업에서 벌 수 있는 것보다, 또 자기 일의 성질이 본래 요구할 것보다 높은 임금으로 그들을 다른 일자리에서 꾀어내야 하며, 그 임금을 흔한 높이로 낮추어 볼 엄두를 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 수요가 오로지 유행과 취향에서 생기는 제조품은 끊임없이 바뀌며, 오래 자리 잡힌 제조품으로 여겨질 만큼 길게 가는 일이 드물다. 반면에 수요가 주로 쓸모나 필요에서 생기는 제조품은 바뀔 일이 덜하며, 같은 모양이나 같은 짜임이 여러 세기에 걸쳐 계속 수요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의 임금은 뒤의 종류의 제조업보다 앞의 종류의 제조업에서 더 높을 가망이 크다. 버밍엄은 주로 앞의 종류의 제조품을 다루고 셰필드는 뒤의 종류를 다루는데, 그 두 곳에서 노동의 임금은 제조품의 성질에 이런 차이가 있는 것에 걸맞다고 한다.
새 제조업이든 새 상업 갈래든 농사의 새 방도든 그것을 세우는 일은 늘 하나의 투기이며, 사업 기획자는 그것에서 남다른 이윤을 얻으리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 이윤은 더러 아주 크지만, 더러, 어쩌면 더 자주 아주 그렇지 못하다. 어느 쪽이든 그것은 그 이웃의 묵은 생업의 이윤에 대하여 대체로 어떤 규칙 있는 비율도 지니지 않는다. 그 기획이 들어맞으면 그 이윤은 처음에 예사로 아주 높다. 그 생업이나 방도가 온전히 자리 잡히고 널리 알려지면 겨룸이 그것을 다른 생업과 같은 높이로 끌어내린다.
둘째로,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에 딸린 이로움과 불리함 전체에서 이 같음은 그 쓰임새의 예사로운 상태, 곧 그 본래의 상태라 부를 만한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거의 모든 종류의 노동에 대한 수요는 예사보다 클 때도 있고 적을 때도 있다. 앞의 경우에는 그 일자리의 이로움이 흔한 높이 위로 올라가고, 뒤의 경우에는 그 아래로 내려간다. 시골 노동에 대한 수요는 건초를 베는 때와 거두는 때에 한 해의 나머지 대부분보다 크며, 임금도 수요와 함께 오른다. 전쟁 때에 뱃사람 4만 명이나 5만 명이 상선 근무에서 국왕의 근무로 끌려가면, 상선에 쓸 뱃사람에 대한 수요는 그들이 모자라는 대로 반드시 오르고, 그럴 때 그들의 임금은 예사로 한 달에 1기니와 27실링에서 40실링과 3파운드로 오른다. 반면에 기울어 가는 제조업에서는 많은 일꾼이 자기 생업을 버리기보다, 그 일자리의 성질에 본래 걸맞을 것보다 적은 임금으로 만족한다.
자산의 이윤은 그 자산이 부려지는 상품의 값과 함께 달라진다. 어떤 상품의 값이 예사로운 이율이나 평균 이율 위로 오르면, 그것을 시장에 내놓는 데 부려진 자산 가운데 적어도 얼마의 이윤이 제자리 위로 올라가고, 그 값이 내려가면 그 아래로 내려간다. 모든 상품은 얼마간 값이 흔들리기 쉬우나 어떤 상품은 다른 상품보다 훨씬 더 그렇다. 사람의 근면이 만들어 내는 모든 상품에서 한 해에 쓰이는 근면의 양은 한 해의 수요에 따라 반드시 다스려지며, 그렇게 해서 한 해 평균 생산량이 될 수 있는 대로 한 해 평균 소비량과 같아진다. 이미 살펴본 대로 어떤 일자리에서는 같은 양의 근면이 늘 같은 양, 또는 거의 같은 양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아마포나 모직물 제조업에서는 같은 수의 일손이 한 해에 거의 같은 양의 아마포와 모직물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그런 상품의 시장 가격이 흔들리는 것은 수요가 우연히 흔들리는 데서만 생길 수 있다. 국상이 나면 검은 천의 값이 오른다. 그러나 무늬 없는 아마포와 모직물 대부분에 대한 수요가 꽤 고른 만큼 그 값도 고르다. 반면에 같은 양의 근면이 늘 같은 양의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일자리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양의 근면이 해에 따라 아주 다른 양의 곡물, 포도주, 홉, 설탕, 담배 등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그런 상품의 값은 수요가 흔들리는 데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크고 훨씬 잦은 양의 흔들림에 따라 달라지므로 몹시 요동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몇몇 사람의 이윤은 그 상품의 값과 함께 반드시 요동한다. 투기 상인의 일은 주로 그런 상품을 두고 벌어진다. 그는 그 값이 오를 듯하다고 내다보면 그것을 사 모으고, 내릴 듯하다고 내다보면 그것을 팔아 치우려 한다.
셋째로,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에 딸린 이로움과 불리함 전체에서 이 같음은 그것을 맡은 이들의 오직 하나의, 또는 주된 일자리인 쓰임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는 한 일자리에서 생계를 얻는다면, 그는 틈이 나는 사이사이에 다른 일자리의 성질에 본래 걸맞을 것보다 적은 임금으로도 그 일을 하려는 마음을 흔히 품는다.
스코틀랜드의 여러 곳에는 코타 또는 코티저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는데,14 몇 해 전에는 지금보다 더 많았다. 그들은 지주와 농부의 바깥 하인과 같은 이들이다. 그들이 주인에게서 예사로 받는 보수는 집 한 채, 푸성귀를 심을 작은 밭, 소 한 마리를 먹일 만큼의 풀, 그리고 어쩌면 한두 에이커의 메마른 갈이 땅이다. 주인이 그들의 노동을 쓸 일이 있을 때는 그 밖에 한 주에 오트밀 두 펙15을 더 주는데, 그 값은 16펜스 스털링쯤이다. 한 해의 많은 동안 주인은 그들의 노동을 쓸 일이 거의 또는 전혀 없고, 그들이 가진 작은 땅을 가는 것으로는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남은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지금보다 많았을 때에는 남는 시간을 아주 적은 보수로 누구에게나 내놓으려 했고, 다른 노동자보다 적은 임금으로 일해 왔다고 한다. 옛 시절에는 그들이 유럽 어디에나 흔했던 듯하다. 갈이가 나쁘고 사람이 더 적게 살던 나라에서는 지주와 농부 대부분이 시골 노동에 어떤 철마다 필요한 남다른 수의 일손을 그 밖의 길로는 마련할 수 없었다. 그런 노동자가 주인에게서 이따금 받는 하루 보수나 한 주 보수는 그들 노동의 값 전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들이 얻은 작은 땅이 그 값의 적지 않은 몫을 이루었다. 그런데도 옛 시절의 노동과 식료품의 값을 모아 놓고 그 둘이 놀랄 만큼 낮았다고 그려 보이기를 즐긴 여러 저술가는 이 하루 보수나 한 주 보수를 그 값 전부로 여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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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에 만들어졌는지로 가리킨다. 여기 나오는 네 법령은 차례로 1545년(헨리 8세 37년), 1571년(엘리자베스 13년), 1624년(제임스 1세 21년), 1713년(앤 여왕 12년)의 것이다. 「제8장」은 그해 법령집에서 몇 번째 법인가를 가리킨다. 앤 여왕은 1702년부터 1714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2. 옮긴이 — 왕정복고는 1660년에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일을 가리킨다.
3. 옮긴이 — 「지난 전쟁」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이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이 전쟁을 줄곧 이렇게 부른다.
4. 옮긴이 — 저본에는 단위 없이 「4000만쯤」이라고만 적혀 있다. 영국 공채를 말하는 자리이므로 파운드로 옮겼다.
5. 옮긴이 —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로마의 정치가이자 변론가다. 여기서 말하는 브루투스(기원전 85~42)는 키프로스 속주에서 돈을 빌려준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다.
6. 옮긴이 — 몽테스키외(1689~1755)는 프랑스의 법학자로, 『법의 정신』에서 이자 문제를 다루었다.
7. 옮긴이 — 동인도회사는 1600년에 설립되어 인도와 동아시아 거래의 독점권을 쥐었던 영국 회사다. 스미스가 이 글을 쓸 때 이 회사는 벵골의 통치까지 맡고 있었다.
8.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9. 옮긴이 — 테오크리토스는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목가 시인이다. 스미스가 가리키는 제21목가는 가난한 어부 둘을 그린 시다.
10. 옮긴이 — 도제살이는 1563년의 직인법으로 제도화되어, 여러 생업에서 7년의 도제 기간을 마치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이 법은 1814년에 폐지되었다.
11. 옮긴이 — 반 크라운은 2실링 6펜스, 곧 30펜스다.
12. 옮긴이 — 법학원(Inns of Court)은 런던에 있던 네 곳의 법조 단체로, 법정 변호사를 길러 내고 그 자격을 주는 일을 맡았다.
13. 옮긴이 — 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하는 금화다.
14. 옮긴이 — 코타 또는 코티저는 지주에게서 오막살이와 작은 땅을 얻고 그 대가로 필요한 때에 노동을 대던 사람들이다. 스코틀랜드 농업이 바뀌면서 19세기에 사라졌다.
15. 옮긴이 — 펙은 곡물을 되는 단위로 4분의 1부셸, 곧 약 9리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