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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농업 체계, 곧 토지 생산물을 나라의 수입과 부의 유일한 원천 또는 주된 원천으로 보는 여러 정치경제학 체계에 대하여 (이어서)

4편 부록

아래 두 회계는 4편 5장에서 흰 청어잡이에 주는 톤수 장려금을 두고 말한 것을 밝히고 뒷받침하려고 덧붙인다. 독자는 두 회계가 다 정확하다고 믿어도 좋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1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꾸려 내보낸 청어잡이 배의 회계로, 싣고 나간 빈 배럴의 수와 잡아들인 청어 배럴의 수를 적고, 아울러 바다절임1 한 배럴마다와 가득 채워 담은 한 배럴마다에 평균으로 돌아간 장려금을 적은 것이다.

  연도      청어잡이 배     싣고 나간          잡은 청어            청어잡이 배에
           척수         빈 배럴           배럴 수              준 장려금
                                                          £.  s.  d.
  1771          29        5,948        2,832          2,885   0   0
  1772         168       41,316       22,237         11,055   7   6
  1773         190       42,333       42,055         12,510   8   6
  1774         240       59,303       56,365         26,932   2   6
  1775         275       69,144       52,879         19,315  15   0
  1776         294       76,329       51,863         21,290   7   6
  1777         240       62,679       43,313         17,592   2   6
  1778         220       56,390       40,958         16,316   2   6
  1779         206       55,194       29,367         15,287   0   0
  1780         181       48,315       19,885         13,445  12   6
  1781         135       33,992       16,593          9,613  15   6
      합계     2,186      550,943      378,347       £165,463  14   0

바다절임 378,347 바다절임 한 배럴마다 평균으로 돌아간

장려금 0파운드 8실링 2¼펜스2

그러나 바다절임 한 배럴은

가득 채워 담은 한 배럴의 3분의 2로만

쳐지므로, 3분의 1을 덜어

내야 하고, 그리하면

3분의 1을 덜어 냄 126,115 장려금은 0파운드 12실링 3¾펜스가 된다

가득 채워

담은 배럴 252,231

그리고 청어를 내보내는 경우에는 그 밖에 또

0파운드 2실링 8펜스의 포상금이 있다

그리하여 정부가 한 배럴마다 돈으로 치러 주는

장려금은 0파운드 14실링 11¾펜스다

그러나 여기에다, 한 배럴을 절이는 데 썼다 하여 흔히

공제를 받아 온 소금의 세를 더하면, 그 소금은

평균으로 외국 소금 한 부셸3과 4분의 1

부셸이고 한 부셸에 10실링이니, 곧 0파운드 12실링 6펜스를 더하면

한 배럴마다의 장려금은 1파운드 7실링 5¾펜스에 이른다

청어를 영국 소금으로 절이면 셈은

이러하니, 곧

앞서와 같은 장려금 0파운드 14실링 11¾펜스

그러나 이 장려금에다, 스코틀랜드 소금 두 부셸에

물리는 세를 더하면, 한 부셸에 1실링 6펜스이고 이것이

한 배럴을 절이는 데 쓰이는 평균 양이라 치니,

곧 0파운드 3실링 0펜스를 더하는 것이다

한 배럴마다의 장려금은 0파운드 17실링 11¾펜스에 이른다

그리고 청어잡이 배가 잡은 청어를 스코틀랜드 안에서

쓰려고 신고하여 한 배럴에 1실링의 세를

물면, 장려금의 셈은 이러하다. 곧

앞서와 같이 0파운드 12실링 3¾펜스

여기서 한 배럴에 1실링을 덜어 내야 한다 0파운드 1실링 0펜스

0파운드 11실링 3¾펜스

그러나 거기에 다시, 청어 한 배럴을 절이는 데 쓴

외국 소금의 세를 더해야 하니 곧 0파운드 12실링 6펜스다

그리하여 나라 안에서 쓰려고 신고한 청어

한 배럴마다 주어지는 포상금은 1파운드 3실링 9¾펜스다

청어를 영국 소금으로 절이면 셈은

아래와 같으니 곧

청어잡이 배가 실어 온 한 배럴마다의 장려금은

위와 같이 0파운드 12실링 3¾펜스

여기서 나라 안에서 쓰려고 신고할 때 치르는

한 배럴에 1실링을 덜어 낸다 0파운드 1실링 0펜스

0파운드 11실링 3¾펜스

그러나 이 장려금에다, 스코틀랜드 소금 두 부셸에

물리는 세를 더하면, 한 부셸에 1실링 6펜스이고 이것이

한 배럴을 절이는 데 쓰이는 평균 양이라 치니,

곧 0파운드 3실링 0펜스를 더하는 것이다

나라 안에서 쓰려고 신고한 한 배럴마다의 포상금은

1파운드 14실링 3¾펜스가 된다4

내보내는 청어에 걸린 세를 나라가 잃는 것은 아마 장려금이라 보기에 마땅하지 않을지 모르나, 나라 안에서 쓰려고 신고한 청어에 걸린 세를 잃는 것은 틀림없이 그렇게 볼 수 있다.

1771년 4월 5일부터 1782년 4월 5일까지 청어잡이에 쓰려고 스코틀랜드로 들여온 외국 소금의 양과 그곳 제염소에서 세를 물리지 않고 내어 준 스코틀랜드 소금의 양을 적고, 둘의 한 해 평균을 아울러 적은 회계.

외국 소금을 제염소에서 내어 준

기간 들여온 양 스코틀랜드 소금

부셸 부셸

1771년 4월 5일부터

1782년 4월 5일까지 936,974 168,226

한 해 평균 85,159½ 15,293¼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외국 소금은 한 부셸이 48파운드(무게)이고 영국 소금은 한 부셸이 56파운드(무게)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5편 주권자 곧 국가의 세입에 대하여

1장 주권자 곧 국가의 비용에 대하여

1절 — 방위비에 대하여

주권자의 첫째 임무, 곧 다른 독립된 사회의 폭력과 침입에서 제 사회를 지키는 임무는 군사력으로만 해낼 수 있다. 그러나 평시에 이 군사력을 갖추어 두는 비용이나 전시에 그것을 부리는 비용이나, 사회의 형편이 다름에 따라, 개량의 시기가 다름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사냥으로 사는 민족, 곧 사회의 가장 낮고 거친 형편에 있는 민족, 이를테면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부족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민족에게서는 사람마다 사냥꾼인 동시에 전사다. 제 사회를 지키려고든 다른 사회가 제 사회에 입힌 해를 갚으려고든 싸움터에 나갈 때, 그는 집에서 지낼 때와 똑같이 제 노동으로 제 몸을 건사한다. 그의 사회는(이런 형편에서는 주권자도 국가도 본디 없으므로) 그를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를 하는 데에도, 싸움터에 있는 동안 그를 먹여 살리는 데에도 아무런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양 치는 민족, 곧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편에 있는 민족, 이를테면 타타르인과 아랍인에게서 보는 바와 같은 민족에게서도 사람마다 마찬가지로 전사다. 그런 민족에게는 대개 붙박이로 사는 집이 없고 천막이나 덮개를 씌운 수레 같은 데에서 사는데, 그것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기 쉽다. 부족 전체 곧 민족 전체가 한 해의 철이 바뀜에 따라, 또 그 밖의 우연한 일이 있음에 따라 자리를 옮긴다. 그들의 소 떼와 양 떼가 한 지방의 꼴을 다 뜯어먹으면 그들은 다른 지방으로 옮기고, 거기서 또 셋째 지방으로 옮긴다. 마른 철에는 강기슭으로 내려오고 젖은 철에는 높은 지방으로 물러난다. 그런 민족이 싸움터에 나갈 때, 전사들은 제 소 떼와 양 떼를 늙은이와 여자와 아이들의 약한 지킴에 맡기려 하지 않고, 늙은이와 여자와 아이들 또한 지켜 주는 이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뒤에 남겨지려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온 민족이 평시에도 떠돌이 살림에 익어 있으므로 전시에 싸움터로 나서기가 쉽다. 군대로서 나아가든 목자의 무리로서 옮겨 다니든 살아가는 꼴은 거의 같고, 다만 그리하여 이루려는 목적이 아주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함께 싸움터에 나가고, 저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한다. 타타르인 사이에서는 여자들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흔히 전한다. 그들이 이기면 적의 부족에게 딸린 것은 무엇이나 승리의 갚음이 되나, 지면 모두 잃으니 소 떼와 양 떼뿐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이긴 자의 노획물이 된다.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이들조차 태반은 당장 먹고살기 위하여 이긴 자에게 굽히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는 흔히 사막에서 흩어지고 흩날린다.

타타르인이나 아랍인의 여느 살림살이, 여느 몸놀림이 그를 싸움에 넉넉히 채비시킨다. 달리기와 씨름과 몽둥이 겨루기와 창 던지기와 활 당기기 따위가 한데에서 사는 이들의 흔한 놀이이며, 그것들은 하나같이 싸움을 본뜬 것이다. 타타르인이나 아랍인이 실제로 싸움터에 나갈 때 그는 평시와 똑같이 제가 몰고 가는 소 떼와 양 떼로 제 몸을 건사한다. 그의 우두머리 곧 주권자는(그런 민족에게는 모두 우두머리나 주권자가 있다) 그를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에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으며, 그가 싸움터에 있을 때에는 노략질할 기회가 그가 바라거나 요구하는 오직 하나의 삯이다.

사냥꾼의 군대는 이삼백 명을 넘는 일이 드물다. 사냥이 마련해 주는 불안한 생계로는 그보다 많은 수가 얼마쯤이라도 오래 한데 모여 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와 달리 양치기의 군대는 때로 이삼십만에 이르기도 한다. 그들의 나아감을 막는 것이 없는 한, 꼴을 다 뜯어먹은 한 고장에서 아직 성한 다른 고장으로 옮겨 갈 수 있는 한, 함께 행군할 수 있는 수에는 거의 한이 없는 듯하다. 사냥으로 사는 민족은 이웃한 문명된 민족에게 두려운 존재가 될 수 없으나 양 치는 민족은 그리될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원주민의 싸움보다 더 하찮은 것이 없고, 그와 달리 아시아에서 타타르인의 침입이 흔히 그러했던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다. 유럽과 아시아가 힘을 합친 스키타이인을 당해 내지 못하리라던 투키디데스의 판단은 모든 시대의 겪음으로 참임이 드러났다. 드넓으나 지킬 것이 없는 스키티아 곧 타타르 지방의 벌판에 사는 이들은 정복을 일삼는 어느 무리나 씨족의 우두머리 아래 흔히 하나로 묶였고, 아시아의 쑥대밭과 황폐는 언제나 그들이 하나로 묶였음을 알리는 표적이었다. 양 치는 또 하나의 큰 민족인 아라비아의 메마른 사막에 사는 이들은 무함마드 곧 무함마드와 그 바로 뒤를 이은 이들 아래에서 꼭 한 번 하나로 묶였을 뿐이다. 정복보다는 종교의 열광이 더 크게 빚어낸 그들의 뭉침도 같은 표적을 남겼다. 아메리카에서 사냥으로 사는 민족이 언젠가 양치기가 된다면, 그들이 이웃해 있다는 것은 유럽의 식민지에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사회가 이보다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편, 곧 바깥 상업이 거의 없고 집집이 제가 쓰려고 마련하는 거친 살림 제조품 말고는 다른 제조품이 없는 농사꾼의 민족에게서도 사람마다 마찬가지로 전사이거나 쉽게 전사가 된다. 농사로 사는 이들은 대개 하루 내내 한데에서 지내며 온갖 사나운 날씨를 견딘다. 그 여느 살림의 고됨이 그들을 싸움의 시달림에 채비시키며, 그 시달림 가운데 더러는 그들이 늘 하는 일과 몹시 닮아 있다. 도랑 파는 이가 늘 하는 일은 밭에 두렁을 두르는 데에만이 아니라 참호에서 일하고 진지를 굳히는 데에도 그를 채비시킨다. 그런 농사꾼의 여느 놀이는 양치기의 놀이와 같고 마찬가지로 싸움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농사꾼은 양치기보다 겨를이 적으므로 그런 놀이에 그만큼 자주 매달리지 못한다. 그들도 군사이기는 하나 제 몸놀림을 그만큼 잘 익힌 군사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를 하는 데에 주권자나 국가가 비용을 들이는 일은 드물다.

농사는 아무리 거칠고 낮은 형편에 있더라도 붙박이 자리, 곧 크게 밑지지 않고는 버릴 수 없는 어떤 붙박이 집을 앞세운다. 그러므로 오로지 농사꾼뿐인 민족이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온 백성이 함께 싸움터로 갈 수 없다. 적어도 늙은이와 여자와 아이들은 집을 건사하려고 뒤에 남아야 한다. 그러나 싸울 나이에 든 사내는 모두 싸움터로 나갈 수 있고, 이런 갈래의 작은 민족에서는 흔히 그리하였다. 어느 민족에서나 싸울 나이에 든 사내는 온 백성의 4분의 1이나 5분의 1쯤 된다고 친다. 게다가 싸움이 씨 뿌린 뒤에 시작되어 거두기 전에 끝난다면, 농사꾼도 그의 주된 일꾼들도 큰 밑짐 없이 농장을 비울 수 있다. 그는 그동안 해야 할 일을 늙은이와 여자와 아이들이 넉넉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짧은 싸움 동안 삯 없이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그를 싸움터에서 먹여 살리는 데에 드는 것이 그를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를 하는 데에 드는 것만큼이나 주권자나 국가에게 적은 일이 흔하다. 옛 그리스의 여러 나라 시민은 두 번째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까지,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난 뒤까지 이런 모양으로 복무하였던 듯하다.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은 여름이면 으레 싸움터를 떠나 거두러 집으로 돌아갔다고 투키디데스는 적는다. 로마 백성도 국왕들 아래에서, 또 공화국의 첫 몇 세기 동안 같은 모양으로 복무하였다. 집에 머문 이들이 싸움터에 나간 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 얼마쯤 보태기 시작한 것은 베이이를 에워싸 칠 때5에 이르러서였다. 로마 제국의 무너진 터 위에 세워진 유럽의 왕국들에서는, 본디 봉건법이라 일컫는 것이 자리 잡기 전에도 자리 잡은 뒤로도 얼마 동안, 큰 영주들이 저에게 바로 딸린 이들을 모두 거느리고 제 비용으로 왕실에 복무하곤 하였다. 그들은 싸움터에서도 집에서와 똑같이 제 수입으로 제 몸을 건사하였고, 그 일이 있다 하여 국왕에게서 받는 어떤 급여나 삯으로 건사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가 더 나아간 형편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까닭이 어우러져, 싸움터에 나가는 이들이 제 비용으로 제 몸을 건사하는 일을 아주 할 수 없게 만든다. 그 두 까닭이란 제조업의 나아감과 싸움 기술의 나아짐이다.

농사꾼은 싸움에 불려 나가더라도 그것이 씨 뿌린 뒤에 시작되어 거두기 전에 끝나기만 하면 제 일이 끊겼다 하여 늘 그의 수입이 크게 줄지는 않는다. 그의 노동이 끼어들지 않아도 남은 일의 태반은 자연이 스스로 해낸다. 그러나 이를테면 수공업자나 대장장이나 목수나 베 짜는 이가 제 일터를 떠나는 바로 그 순간, 그의 수입의 오직 하나뿐인 샘은 아주 말라 버린다. 자연은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해 주지 않으며, 모든 것을 그가 제 손으로 한다. 그러므로 그가 나라를 지키러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제 몸을 건사할 수입이 없으므로 나라가 그를 먹여 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백성 가운데 큰 몫이 수공업자와 제조업자인 나라에서는 싸움터에 나가는 이들 가운데 큰 몫을 그 무리에서 뽑아내야 하고, 그러므로 그들이 나라의 일에 매여 있는 동안 나라가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

게다가 싸움의 기술이 차츰 자라나 아주 얽히고설킨 학문이 되고, 싸움의 결말이 사회의 첫 시대처럼 어수선한 접전이나 싸움 한 번으로 판가름 나기를 그치고, 다툼이 대개 여러 차례의 싸움철에 걸쳐 늘어지며 그 하나하나가 한 해의 태반 동안 이어지게 되면, 적어도 그 일에 매여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라가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일이 어디서나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 된다. 싸움터에 나가는 이들이 평시에 무슨 일을 하며 지내든, 그러지 않으면 그토록 지루하고 돈이 드는 복무는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페르시아 전쟁 뒤로 아테네의 군대는 대개 삯을 받는 군사로 이루어졌던 듯하니, 그 가운데에는 시민도 있었으나 외국인도 있었고, 모두 똑같이 나라의 비용으로 고용되고 삯을 받았다. 베이이를 에워싸 친 때부터 로마의 군대는 싸움터에 머무는 동안 복무의 삯을 받았다. 봉건 정부 아래에서는 큰 영주의 군역도 그들에게 바로 딸린 이들의 군역도 어느 때부터인가 어디서나 돈을 내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 돈은 그들을 대신하여 복무하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 쓰였다.

온 백성의 수에 견주어 싸움터에 나갈 수 있는 이들의 수는 거친 형편의 사회에서보다 문명된 사회에서 반드시 훨씬 적다. 문명된 사회에서는 군사를 군사 아닌 이들의 노동이 온통 먹여 살리므로, 앞의 수는 뒤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리에 걸맞게 제 몸과 저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다른 정부와 법의 일꾼들을 건사하고 그러고도 남는 힘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수를 결코 넘을 수 없다. 옛 그리스의 작은 농사 나라들에서는 온 백성의 4분의 1이나 5분의 1이 저를 군사로 여겼고 때로는 싸움터에 나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유럽의 문명된 민족들 사이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주민의 100분의 1을 넘는 수를 군사로 쓰면 그 복무의 비용을 치르는 나라가 결딴난다고 흔히들 셈한다.

군대를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를 하는 비용은, 싸움터에서 군대를 먹여 살리는 일이 온전히 주권자나 국가에게 넘어간 뒤로도 한참 지나서야 어느 민족에서나 눈에 띄게 커졌던 듯하다. 옛 그리스의 여러 공화국에서는 저마다 군사의 몸놀림을 익히는 것이 나라가 모든 자유민에게 지운 가르침의 빠질 수 없는 한 몫이었다. 도시마다 나라의 행정관이 지키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여러 스승에게서 여러 몸놀림을 배우는 공공의 마당이 있었던 듯하다. 그리스의 어느 나라가 제 시민을 싸움에 채비시키는 데에 들인 온 비용이란 이 아주 단순한 제도에 들어 있었던 듯하다. 옛 로마에서는 캄푸스 마르티우스 곧 마르스 들판에서 하던 몸놀림이 옛 그리스의 김나시온에서 하던 것과 같은 몫을 하였다. 봉건 정부 아래에서는 고장마다 시민이 활쏘기를 비롯한 여러 군사의 몸놀림을 익혀야 한다는 숱한 공공의 법령이 같은 것을 북돋우려는 뜻이었으나 그만큼 잘 북돋우지는 못하였던 듯하다. 그 법령을 집행하도록 맡겨진 일꾼들이 마음을 쓰지 않아서였든 다른 어떤 까닭에서였든, 그 법령은 어디서나 팽개쳐져 있었던 듯하고, 그런 정부들이 나아가는 가운데 군사의 몸놀림은 백성의 큰 몸통 사이에서 차츰 쓰이지 않게 되었던 듯하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국에서는 그것이 있어 온 온 기간 동안, 또 봉건 정부 아래에서는 그것이 처음 자리 잡은 뒤 한참 동안, 군사라는 생업은 어느 한 무리의 시민만이 하는 유일하거나 주된 일거리를 이루는 따로 떨어진 생업이 아니었다. 나라의 신민은 저마다 벌이를 얻는 여느 생업이나 일거리가 무엇이든 간에, 여느 때에는 저 또한 군사라는 생업을 하기에 맞갖다고 여겼고, 남다른 일이 생기면 그것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싸움의 기술은 틀림없이 모든 기술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인 만큼, 개량이 나아감에 따라 반드시 그 가운데 가장 얽히고설킨 것의 하나가 된다. 그것과 반드시 이어져 있는 기계 기술을 비롯한 몇몇 기술의 형편이, 그것이 어느 때에 이를 수 있는 완성의 정도를 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 완성의 정도까지 밀어 올리려면 그것이 어느 한 무리의 시민만이 하는 유일하거나 주된 일거리가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이 기술이 나아지는 데에도 분업이 꼭 있어야 한다. 다른 기술에서는 여러 가지를 다 하기보다 한 가지 생업에만 매달리는 편이 제 이익을 더 잘 북돋운다는 것을 깨달은 개인들의 조심스러움이 분업을 절로 들여온다. 그러나 군사라는 생업을 다른 모든 것과 갈라진 따로 떨어진 생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의 슬기뿐이다. 깊은 평화의 때에 나라의 아무런 북돋움도 없이 제 시간의 태반을 군사의 몸놀림에 쏟는 한 사사로운 시민은 의심할 바 없이 그 몸놀림에서 크게 나아지기도 하고 스스로 아주 즐거울 수도 있겠으나, 그가 제 이익을 북돋우지 않을 것만은 틀림없다. 제 시간의 태반을 이 남다른 일거리에 내놓는 것이 그의 이익에 맞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의 슬기뿐인데, 나라는 제 목숨을 지키려면 그런 슬기가 있어야 할 만큼 형편이 되었을 때조차 늘 그것을 지니지는 못하였다.

양치기에게는 겨를이 아주 많고, 농사가 거친 형편에 있을 때의 농사꾼에게는 얼마쯤 있으며, 수공업자나 제조업자에게는 도무지 없다. 앞의 사람은 밑짐 없이 제 시간을 많이 군사의 몸놀림에 쓸 수 있고, 가운데 사람은 얼마쯤 쓸 수 있으나, 뒤의 사람은 얼마간 밑지지 않고는 한 시간도 거기에 쓸 수 없으므로, 제 이익에 마음을 쓰다 보면 절로 그것을 아주 팽개치게 된다. 게다가 기술과 제조업이 나아가면 반드시 따라 들어오는 농사의 여러 나아짐도 농사꾼에게 수공업자만큼이나 겨를을 적게 남긴다. 군사의 몸놀림은 도시 주민에게서나 시골 주민에게서나 똑같이 팽개쳐지고, 백성의 큰 몸통은 아주 싸울 줄 모르게 된다. 그와 함께, 농사와 제조업이 나아지면 언제나 뒤따르며 실은 그 나아짐이 쌓인 생산물에 지나지 않는 저 부가 이웃 모두의 침입을 불러들인다. 부지런하고 그 덕분에 넉넉한 민족은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얻어맞기 쉬우며, 나라가 나라를 지킬 새로운 방도를 세우지 않는 한 백성의 타고난 버릇은 그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아주 잃게 만든다.

이런 형편에서 나라가 공공의 방위를 웬만큼이나마 마련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밖에 없는 듯하다.

첫째로, 아주 엄한 행정을 써서, 백성의 이해와 기질과 성향이 온통 쏠리는 바를 거스르면서까지 군사의 몸놀림을 익히도록 다그치고, 싸울 나이에 든 시민 모두에게나 그 가운데 얼마간의 수에게, 그들이 달리 어떤 생업이나 직업에 매여 있든 거기에 군사라는 생업을 얼마쯤 겸하도록 지울 수 있다.

아니면 둘째로, 얼마간의 시민을 군사의 몸놀림을 늘 익히는 일에 붙들어 두고 먹여 살림으로써 군사라는 생업을 다른 모든 것과 갈라진 따로 떨어진 생업으로 만들 수 있다.

나라가 이 두 방편 가운데 앞의 것에 기대면 그 군사력은 민병으로 이루어졌다 하고, 뒤의 것에 기대면 상비군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상비군의 군사에게는 군사의 몸놀림을 익히는 것이 유일하거나 주된 일거리이며, 나라가 그들에게 대어 주는 먹을 것과 삯이 그들 생계의 주되고 여느 밑천이다. 민병의 군사에게는 군사의 몸놀림을 익히는 것이 이따금 하는 일거리일 뿐이고, 그들은 생계의 주되고 여느 밑천을 다른 일거리에서 얻는다. 민병에서는 일꾼이나 수공업자나 장사치의 성격이 군사의 성격을 누르고, 상비군에서는 군사의 성격이 다른 모든 성격을 누르니, 이 갈림에 이 두 갈래 군사력의 본디 다름이 들어 있는 듯하다.

민병에도 여러 갈래가 있어 왔다. 어떤 나라에서는 나라를 지키도록 매인 시민이 몸놀림만 익혔을 뿐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부대로 짜이지는 않았던 듯하니, 곧 저마다 제게 딸린 붙박이 장교 아래에서 몸놀림을 익히는 따로 떨어진 군사의 무리로 나뉘지 않았던 것이다. 옛 그리스와 로마의 공화국에서는 시민 저마다가 집에 머무는 동안에는 혼자서 따로 몸놀림을 익히거나 제 마음에 드는 또래와 함께 익혔을 뿐, 실제로 싸움터에 나오라는 부름을 받기 전까지는 어느 한 부대에 매이지 않았던 듯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민병이 몸놀림을 익혔을 뿐 아니라 부대로도 짜였다. 잉글랜드에서도 스위스에서도, 또 내가 믿기로는 이런 갈래의 온전하지 못한 군사력이나마 세워 둔 오늘날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민병 하나하나가 평시에도 어느 한 부대에 매여 있고 그 부대는 제게 딸린 붙박이 장교 아래에서 몸놀림을 익힌다.

화기가 나오기 전에는 군사 하나하나가 제 무기를 다루는 솜씨와 재주가 가장 나은 쪽 군대가 나았다. 몸의 힘과 날램이 가장 크게 여겨졌고 흔히 싸움의 운명을 갈랐다. 그런데 제 무기를 다루는 이 솜씨와 재주는 오늘날의 칼싸움과 마찬가지로 큰 무리를 지어서가 아니라 사람마다 따로 어느 한 도장에서 어느 한 스승 아래에서, 또는 제 또래와 동무와 함께 익혀야만 얻을 수 있었다. 화기가 나온 뒤로는 몸의 힘과 날램이, 또 무기를 다루는 남다른 재주와 솜씨까지도 아무 쓸모가 없기는커녕 그래도 전보다 덜 여겨지게 되었다. 무기의 성질이 서툰 이를 솜씨 있는 이와 나란히 놓아 주지는 결코 않으나 전보다는 훨씬 가깝게 놓아 준다. 그것을 쓰는 데 있어야 할 재주와 솜씨는 모두 큰 무리를 지어 익혀도 넉넉히 얻을 수 있다고들 여긴다.

오늘날의 군대에서 싸움의 운명을 가르는 데에 더 크게 여겨지는 것은 군사가 제 무기를 다루는 재주와 솜씨가 아니라 규율과 질서와 명령에 대한 재빠른 복종이다. 그러나 화기의 소리와 연기, 그리고 대포알이 닿는 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또 흔히는 싸움이 제대로 붙었다고 할 만한 때보다 한참 앞서부터 사람마다 순간마다 저를 겨누고 있다고 느끼는 보이지 않는 죽음은, 오늘날 싸움의 첫머리에서조차 이 규율과 질서와 재빠른 복종을 웬만큼이라도 지켜 내기를 몹시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옛 싸움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에서 나는 것 말고는 소리가 없었고, 연기도 없었으며, 상처나 죽음을 부르는 보이지 않는 까닭도 없었다. 사람마다 목숨을 앗는 무기가 실제로 제게 다가오기 전에는 그런 무기가 제 곁에 없음을 또렷이 보았다. 이런 형편에서, 그리고 제 무기를 다루는 제 솜씨와 재주를 얼마쯤 믿는 군사들 사이에서는, 옛 싸움의 첫머리에서만이 아니라 그 온 흐름에 걸쳐 두 군대 가운데 하나가 아주 무너질 때까지 얼마쯤의 규율과 질서를 지켜 내기가 훨씬 덜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규율과 질서와 명령에 대한 재빠른 복종의 버릇은 큰 무리를 지어 몸놀림을 익히는 군사만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민병은 어떤 모양으로 다스려지고 어떤 모양으로 몸놀림을 익히든, 잘 다스려지고 잘 익힌 상비군보다 언제나 훨씬 못할 수밖에 없다.

한 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만 몸놀림을 익히는 군사는 날마다나 이틀에 한 번씩 익히는 군사만큼 제 무기를 다루는 데 익을 수 없으며, 이 점이 옛날만큼 오늘날 크게 여겨지지는 않더라도, 몸놀림에 남달리 익은 데에 크게 힘입었다는 프로이센 군사의 널리 알려진 나음은 이 점이 오늘날에도 자못 크게 여겨짐을 우리에게 일러 주기에 넉넉하다.

한 주에 한 번이나 한 달에 한 번만 제 장교에게 따르게 매여 있고 그 밖의 때에는 어느 모로도 그에게 셈을 바치지 않은 채 제 일을 제 뜻대로 꾸려 가도 좋은 군사는, 온 삶과 몸가짐을 날마다 그에게 이끌리고 날마다 일어나고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적어도 제 막사로 물러나는 것까지 그의 명령에 따르는 군사와 같은 두려움을 그 앞에서 품을 수 없고 같은 재빠른 복종의 마음가짐을 지닐 수 없다. 이른바 규율, 곧 재빠르게 따르는 버릇에서 민병은 이른바 손몸놀림, 곧 제 무기를 건사하고 쓰는 일에서 때때로 뒤지는 것보다 언제나 더욱더 상비군에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날의 싸움에서는 재빠르고 즉시 따르는 버릇이 무기를 건사하는 솜씨의 자못 큰 나음보다 훨씬 더 크게 여겨진다.

타타르나 아랍의 민병처럼 평시에 따르기에 익은 바로 그 우두머리 아래에서 싸움터에 나가는 민병이 단연 가장 낫다. 제 장교를 받드는 데에서나 재빠르게 따르는 버릇에서나 그들은 상비군에 가장 가깝다. 하일랜드의 민병도 제 우두머리 아래에서 복무하였을 때에는 같은 갈래의 나음을 얼마쯤 지녔다. 그러나 하일랜드 사람들은 떠돌이 양치기가 아니라 붙박이 양치기여서 모두 붙박이로 사는 집이 있었고 평온한 때에 제 우두머리를 따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데 익지 않았으므로, 전시에도 그를 따라 웬만큼 먼 데까지 가거나 오래도록 싸움터에 머물기를 덜 바랐다. 노획물을 얻고 나면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였고, 그의 권위로 그들을 붙들어 두기에는 모자란 적이 많았다. 따르는 일에서 그들은 타타르인과 아랍인에 대하여 전하는 바에 늘 훨씬 못 미쳤다. 게다가 하일랜드 사람들은 붙박이 살림 탓에 한데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었으므로 군사의 몸놀림에 늘 덜 익었고, 제 무기를 다루는 데에도 타타르인과 아랍인이 그렇다고 전하는 것보다 덜 익숙하였다.

그러나 어떤 갈래의 민병이든 여러 차례의 싸움철을 잇달아 싸움터에서 복무하고 나면 모든 모로 상비군이 된다는 것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군사는 날마다 제 무기를 다루는 몸놀림을 익히고, 늘 제 장교의 명령 아래 있으므로 상비군에서 벌어지는 것과 똑같이 재빠르게 따르는 데 길든다. 싸움터에 나오기 전에 그들이 무엇이었는지는 그리 대수롭지 않다. 싸움터에서 몇 차례의 싸움철을 보내고 나면 그들은 반드시 모든 모로 상비군이 된다. 아메리카에서 벌어지는 싸움6이 또 한 차례의 싸움철로 끌린다면, 아메리카의 민병은 모든 모로 저 상비군의 맞수가 될지도 모르니, 그 상비군의 용맹은 적어도 지난번 싸움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가장 굳센 노병에 못지않아 보였다.

이 갈림을 잘 새겨 두고 보면, 모든 시대의 역사가 잘 다스려진 상비군이 민병에 대하여 지니는 당해 낼 길 없는 나음을 증언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믿을 만한 역사에서 우리가 뚜렷한 기록을 지닌 첫 상비군의 하나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7의 상비군이다. 트라키아인과 일리리아인과 테살리아인, 그리고 마케도니아 이웃의 몇몇 그리스 도시와 자주 벌인 싸움이 처음에는 아마 민병이었을 그의 군사를 차츰 상비군의 엄정한 규율에 이르게 하였다. 그는 평화로울 때에도, 그런 때가 아주 드물었고 결코 오래 이어지지도 않았으나, 그 군대를 흩지 않도록 마음을 썼다. 그 군대는 참으로 길고 모진 겨룸 끝에 옛 그리스 주요 공화국의 씩씩하고 잘 익힌 민병을 이겨 굽혔고, 그 뒤에는 아주 적은 겨룸으로 큰 페르시아 제국의 나약하고 제대로 익히지 못한 민병을 굽혔다. 그리스 공화국들과 페르시아 제국이 무너진 것은 상비군이 다른 온갖 갈래의 민병에 대하여 지니는 당해 낼 길 없는 나음이 빚어낸 일이다. 그것은 역사가 뚜렷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람의 일에서 일어난 첫 번째 큰 변혁이다.

카르타고가 무너지고 그에 따라 로마가 일어선 것이 두 번째다. 이 이름난 두 공화국의 운수가 갈린 온갖 모습은 모두 같은 까닭으로 넉넉히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카르타고 전쟁이 끝난 때부터 두 번째 카르타고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카르타고의 군대는 내처 싸움터에 있었고, 지휘를 잇달아 이어받은 세 큰 장군, 곧 하밀카르와 그 사위 하스드루발과 그 아들 한니발8 아래에서 쓰였으니, 처음에는 제 나라에서 들고일어난 노예를 벌하는 데 쓰였고, 그 뒤에는 아프리카의 배반한 민족들을 굽히는 데 쓰였으며, 마지막으로는 스페인의 큰 왕국을 정복하는 데 쓰였다. 한니발이 스페인에서 이탈리아로 이끌고 간 군대는 그 여러 싸움을 거치는 동안 반드시 차츰 상비군의 엄정한 규율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로마 사람들은 아주 평화롭지는 않았더라도 이 기간에 크게 대수로운 싸움에 매이지는 않았으며, 그들의 군사 규율은 자못 느슨해졌다고들 흔히 말한다. 한니발이 트레비아와 트라시메누스와 칸나이에서 맞닥뜨린 로마 군대는 상비군에 맞선 민병이었다. 이 사정이 다른 무엇보다 크게 그 싸움들의 운명을 가르는 데에 이바지하였을 것이다.

한니발이 스페인에 남겨 둔 상비군도 로마 사람들이 그에 맞서라고 보낸 민병에 대하여 똑같은 나음을 지녔고, 몇 해 안에 그의 아우인 작은 하스드루발의 지휘 아래 그들을 그 나라에서 거의 남김없이 몰아냈다.

한니발은 본국에서 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로마의 민병은 내처 싸움터에 있었으므로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잘 다스려지고 잘 익힌 상비군이 되었고, 한니발의 나음은 날마다 줄고 또 줄었다. 하스드루발은 제가 스페인에서 거느리던 상비군의 전부나 거의 전부를 이탈리아에 있는 아우를 도우러 이끌고 가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행군에서 그는 길잡이에게 속았다고 전하며, 알지 못하는 땅에서 모든 모로 제 군대와 맞먹거나 더 나은 또 하나의 상비군에게 느닷없이 들이침을 받아 아주 무너졌다.

하스드루발이 스페인을 떠나고 나자 위대한 스키피오9는 제 군대보다 못한 민병 말고는 맞설 것을 찾지 못하였다. 그는 그 민병을 이겨 굽혔고,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 자신의 민병은 반드시 잘 다스려지고 잘 익힌 상비군이 되었다. 그 상비군은 그 뒤 아프리카로 실려 갔고, 거기서도 맞설 것이라고는 민병밖에 없음을 알았다. 카르타고를 지키려면 한니발의 상비군을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기가 꺾이고 여러 번 무너진 아프리카의 민병이 거기에 합쳐져 자마의 싸움에서 한니발이 거느린 군사의 태반을 이루었다. 그날의 일이 맞겨루던 두 공화국의 운명을 갈랐다.

두 번째 카르타고 전쟁이 끝난 때부터 로마 공화국이 무너질 때까지 로마의 군대는 모든 모로 상비군이었다. 마케도니아의 상비군은 그들의 무력에 얼마쯤 버티었다. 로마가 한창 크던 때에도 그 작은 왕국을 굽히는 데에 두 차례의 큰 싸움과 세 차례의 큰 접전이 들었고, 그 나라 마지막 국왕이 겁쟁이가 아니었더라면 그것을 정복하기가 아마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스와 시리아와 이집트 등 옛 세상의 문명된 민족들의 민병은 로마의 상비군에 맥없이 버티었을 뿐이다. 몇몇 야만한 민족의 민병은 훨씬 잘 버티었다. 미트리다테스10가 흑해와 카스피해 북쪽 고장에서 끌어온 스키타이 곧 타타르의 민병은 두 번째 카르타고 전쟁 뒤로 로마 사람들이 맞닥뜨린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파르티아와 게르만의 민병도 늘 만만치 않았고, 여러 차례 로마 군대를 상대로 자못 큰 이득을 거두었다. 그러나 대체로 로마 군대가 잘 지휘되었을 때에는 그들이 훨씬 나았던 듯하며, 로마 사람들이 파르티아나 게르마니아를 끝내 정복하려 들지 않은 것은 아마 이미 너무 커진 제국에 그 야만한 두 나라를 보태는 일이 값할 만하지 않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옛 파르티아 사람들은 스키타이 곧 타타르의 갈래에서 나온 민족이며 제 조상의 버릇을 자못 많이 지니고 있었던 듯하다. 옛 게르만 사람들은 스키타이인이나 타타르인과 마찬가지로 떠돌며 양을 치는 민족으로, 평시에 따르기에 익은 바로 그 우두머리 아래에서 싸움터에 나갔다. 그들의 민병은 스키타이인이나 타타르인의 민병과 꼭 같은 갈래였고, 그들 또한 아마 스키타이인이나 타타르인에게서 갈라져 나왔을 것이다.

로마 군대의 규율을 느슨하게 만드는 데에 여러 가지 까닭이 이바지하였다. 그 지나친 모짊이 아마 그 까닭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들이 한창 크던 시절, 그들에게 맞설 만한 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던 때에 그들의 무거운 갑옷은 쓸데없이 거추장스럽다 하여 벗겨졌고, 힘겨운 몸놀림은 쓸데없이 고되다 하여 팽개쳐졌다. 게다가 로마 황제들 아래에서 로마의 상비군, 그 가운데에도 게르마니아와 판노니아의 변경을 지키던 군대는 제 주인에게 위험한 것이 되어 저희 장군을 내세워 자주 맞섰다. 그들을 덜 무섭게 만들려고 어떤 이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어떤 이들은 콘스탄티누스가 그들을 변경에서 처음 물렸다고 하는데, 그전까지 그들은 늘 대개 두세 군단씩 큰 무리를 지어 변경에 진을 치고 있었으나, 그 뒤로는 여러 지방 도시에 작은 무리로 흩어져 침입을 물리쳐야 할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그 자리에서 옮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장사와 제조업을 하는 도시에 머물면서 그 자리를 좀처럼 떠나지 않는 작은 군사의 무리는 저희도 장사치와 수공업자와 제조업자가 되었다. 민간의 성격이 군사의 성격을 누르게 되었고, 로마의 상비군은 차츰 썩고 팽개쳐지고 규율 없는 민병으로 타락하여, 머지않아 서쪽 제국에 쳐들어온 게르만과 스키타이의 민병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 내지 못하였다. 황제들이 얼마 동안이나마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 민족들 가운데 얼마의 민병을 삯 주고 사서 다른 민족의 민병에 맞세운 덕분이었다. 서쪽 제국이 무너진 것은 옛 역사가 뚜렷하고 자세한 기록을 남긴, 사람의 일에서 일어난 세 번째 큰 변혁이다. 그것은 야만한 민족의 민병이 문명된 민족의 민병에 대하여 지니는, 양 치는 민족의 민병이 농사꾼과 수공업자와 제조업자의 민족의 민병에 대하여 지니는 당해 낼 길 없는 나음이 빚어낸 일이다. 민병이 거둔 승리는 대개 상비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몸놀림과 규율에서 저희보다 못한 다른 민병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스의 민병이 페르시아 제국의 민병에 대하여 거둔 승리가 그러하였고, 뒷날 스위스의 민병이 오스트리아와 부르고뉴의 민병에 대하여 거둔 승리도 그러하였다.

서쪽 제국의 무너진 터 위에 자리를 잡은 게르만과 스키타이 민족의 군사력은 그 새 터전에서도 얼마 동안 본디 제 나라에서와 같은 갈래로 이어졌다. 그것은 양치기와 농사꾼의 민병으로, 전시에 평시에 따르기에 익은 바로 그 우두머리의 지휘 아래 싸움터에 나갔다. 그러므로 그것은 웬만큼 잘 익었고 웬만큼 잘 다스려졌다. 그러나 기술과 산업이 나아감에 따라 우두머리의 권위는 차츰 삭았고, 백성의 큰 몸통은 군사의 몸놀림에 쪼갤 시간이 줄었다. 그리하여 봉건 민병의 규율도 몸놀림도 차츰 허물어졌고, 그 자리를 메우려고 상비군이 차츰 들어왔다. 게다가 상비군이라는 방편을 어느 한 문명된 민족이 한 번 받아들이고 나자 그 이웃이 모두 그 본을 따라야 하게 되었다. 그들은 제 안전이 그리하는 데에 달렸음을, 그리고 제 민병으로는 그런 군대가 들이치는 것을 도무지 막아 낼 수 없음을 곧 깨달았다.

상비군의 군사는 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지라도 흔히 노병의 용맹을 모두 갖춘 듯이 보였고, 싸움터에 나선 바로 그 순간에 가장 굳세고 가장 겪음 많은 노병과 맞설 만해 보였다. 1756년에 러시아 군대가 폴란드로 나아갔을 때 러시아 군사의 용맹은 그때 유럽에서 가장 굳세고 가장 겪음 많은 노병으로 여겨지던 프로이센 군사의 용맹에 못지않아 보였다. 그러나 러시아 제국은 그전 20년 가까이 깊은 평화를 누렸으므로 그때 적을 본 적이 있는 군사는 아주 적었을 것이다. 1739년에 스페인 전쟁11이 터졌을 때 잉글랜드는 28년쯤 깊은 평화를 누린 터였다. 그러나 잉글랜드 군사의 용맹은 그 긴 평화로 썩기는커녕, 그 불행한 싸움의 첫 번째 불행한 일이었던 카르타헤나 공격에서보다 더 빛난 적이 없었다. 긴 평화 속에서 장군들은 더러 제 솜씨를 잊을지도 모르나, 잘 다스려진 상비군을 지켜 온 곳에서는 군사가 제 용맹을 잊는 일이 결코 없는 듯하다.

문명된 민족이 제 방위를 민병에 기댈 때에는 이웃에 있게 된 어떤 야만한 민족에게든 언제나 정복당할 수 있다. 아시아의 문명된 나라가 모두 타타르인에게 자주 정복당한 일은 야만한 민족의 민병이 문명된 민족의 민병에 대하여 타고난 나음을 지님을 넉넉히 보여 준다. 잘 다스려진 상비군은 어떤 민병보다도 낫다. 그런 군대는 넉넉하고 문명된 민족이라야 가장 잘 건사할 수 있으니, 가난하고 야만한 이웃의 침입에서 그런 민족을 지킬 수 있는 것도 그 군대뿐이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의 문명이든 얼마쯤이나마 오래 이어지거나 지켜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상비군의 힘을 빌려서다.

문명된 나라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오직 잘 다스려진 상비군의 힘을 빌려서인 것과 마찬가지로, 야만한 나라를 갑작스레 웬만큼 문명되게 만들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힘을 빌려서다. 상비군은 당해 낼 길 없는 힘으로 제국의 가장 먼 지방에까지 주권자의 법을 세우고, 달리 어떤 정부도 받아들일 수 없을 나라에 얼마쯤의 고른 다스림을 지켜 낸다. 표트르 대제12가 러시아 제국에 들여온 개량을 눈여겨 살피는 이는 누구나 그것이 거의 다 잘 다스려진 상비군을 세운 일로 귀착됨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의 다른 모든 규제를 실어 나르고 지켜 내는 연장이다. 그 뒤로 그 제국이 누려 온 그만한 질서와 안의 평화는 온전히 그 군대의 힘에 힘입은 것이다.

공화의 뜻을 품은 이들은 상비군을 자유에 위험하다 하여 시새워 왔다. 장군의 이해와 주요 장교의 이해가 나라의 국제를 떠받치는 일과 반드시 이어져 있지 않은 곳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그러하다. 카이사르의 상비군은 로마 공화국을 무너뜨렸다. 크롬웰의 상비군은 장기 의회13를 문밖으로 내쫓았다. 그러나 주권자 자신이 장군이고 나라의 주요 귀족과 지주가 군대의 주요 장교인 곳, 민간의 권위를 떠받치는 데에 가장 큰 이해를 지닌 이들의, 곧 그 권위를 저희가 가장 크게 나누어 가진 이들의 지휘 아래 군사력이 놓인 곳에서는 상비군이 자유에 위험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자유에 이로울 수도 있다. 그것이 주권자에게 주는 든든함은 오늘날의 몇몇 공화국에서 시민의 가장 자잘한 몸짓까지 지켜보며 언제라도 시민마다의 평온을 어지럽히려 드는 듯한 저 성가신 시샘을 쓸데없게 만든다. 행정관의 든든함이 나라의 주요한 이들에게 떠받쳐지면서도 백성의 불평이 있을 때마다 흔들리는 곳, 작은 소동이 몇 시간 만에 큰 변혁을 불러올 수 있는 곳에서는 정부를 거스르는 모든 웅얼거림과 푸념을 짓누르고 벌하는 데에 정부의 온 권위를 쏟아야 한다. 이와 달리 나라의 타고난 귀족뿐 아니라 잘 다스려진 상비군에게도 떠받쳐진다고 느끼는 주권자에게는 가장 거칠고 가장 터무니없으며 가장 방자한 항의도 거의 거리낌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마음 놓고 너그러이 보아 넘기거나 모른 체할 수 있고, 제가 더 낫다는 의식이 절로 그를 그리하도록 이끈다. 방자함에 가까운 그만한 자유는 오직 주권자가 잘 다스려진 상비군으로 든든해진 나라에서만 참아 줄 수 있다. 이 방자한 자유의 주제넘은 장난까지 짓누르라고 주권자에게 마음대로 쓸 권한을 맡길 것을 공공의 안전이 요구하지 않는 곳도 오직 그런 나라뿐이다.

그러므로 주권자의 첫째 임무, 곧 다른 독립된 사회의 폭력과 불의에서 제 사회를 지키는 임무는 사회가 문명으로 나아감에 따라 차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본디 평시에도 전시에도 주권자에게 아무런 비용을 지우지 않던 사회의 군사력은 개량이 나아감에 따라 먼저 전시에 그가 건사해야 하고, 그 뒤에는 평시에도 그가 건사해야 한다.

화기가 나와 싸움의 기술에 들여온 큰 바뀜은 평시에 얼마간의 군사에게 몸놀림을 익히고 규율을 잡는 비용과 전시에 그들을 부리는 비용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그들의 무기도 탄약도 더 비싸졌다. 화승총은 창이나 활과 화살보다 비싼 기계이고, 대포나 박격포는 발리스타나 카타풀타보다 비싼 기계다. 오늘날의 열병에서 쓰는 화약은 되찾을 길 없이 없어지므로 자못 큰 비용을 부른다. 옛 열병에서 던지거나 쏜 창과 화살은 쉽게 도로 주울 수 있었고 게다가 값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 대포와 박격포는 발리스타나 카타풀타보다 훨씬 비쌀 뿐 아니라 훨씬 무거운 기계여서, 싸움터에 내보낼 채비를 하는 데에만이 아니라 그것을 싸움터로 실어 가는 데에도 더 큰 비용이 든다. 게다가 오늘날의 대포가 옛날의 것보다 훨씬 나으므로, 그 나은 대포가 들이치는 것을 몇 주 동안만이라도 버티도록 도시를 굳히는 일이 훨씬 어려워졌고 따라서 훨씬 비싸졌다.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까닭이 어우러져 사회를 지키는 일에 더 많은 비용이 들게 한다. 개량이 절로 나아가면서 피할 길 없이 빚어내는 결과가 이 점에서 싸움의 기술에 일어난 큰 변혁으로 자못 커졌는데, 그 변혁은 화약의 발명이라는 한낱 우연이 불러온 듯하다.

오늘날의 싸움에서 화기에 드는 큰 비용은 그 비용을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는 민족에게, 따라서 가난하고 야만한 민족에 대하여 넉넉하고 문명된 민족에게 뚜렷한 이득을 준다. 옛날에는 넉넉하고 문명된 이들이 가난하고 야만한 민족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웠다. 오늘날에는 가난하고 야만한 이들이 넉넉하고 문명된 이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렵다. 얼핏 그토록 해로워 보이는 발명인 화기의 발명은 문명이 이어지는 데에도 널리 퍼지는 데에도 틀림없이 이롭다.

2절 — 사법비에 대하여

주권자의 둘째 임무, 곧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다른 모든 구성원의 불의나 억누름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지키는 임무, 곧 정의를 어김없이 베푸는 제도를 세우는 임무는 사회의 시기가 다름에 따라 아주 다른 두 정도의 비용을 부른다.

사냥으로 사는 민족에게는 재산이라 할 것이 거의 없고 적어도 이삼일치 노동의 가치를 넘는 것이 없으므로 자리 잡은 행정관도 고른 재판도 드물다. 재산이 없는 사람은 서로에게 몸이나 이름으로만 해를 입힐 수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거나 때리거나 헐뜯을 때, 해를 입은 쪽은 괴로움을 겪으나 해를 입힌 쪽은 아무 이득을 얻지 못한다. 재산에 입히는 해는 그렇지 않다. 해를 입히는 이의 이득이 해를 입는 이의 밑짐과 맞먹는 일이 흔하다. 시새움이나 앙심이나 원망만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몸이나 이름에 해를 입히도록 몰아세울 수 있는 정념이다. 그러나 사람들 태반은 그런 정념에 그리 자주 휘둘리지 않고, 가장 못된 사람이라도 이따금 휘둘릴 뿐이다. 게다가 그것을 채우는 일은 어떤 성정에게는 아무리 달콤하더라도 참되거나 오래가는 이로움이 따르지 않으므로, 사람들 태반에게서는 앞뒤를 재는 마음에 눌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정념의 불의에서 저를 지켜 줄 행정관이 없더라도 사람들은 웬만큼 든든하게 사회를 이루어 함께 살 수 있다. 그러나 가진 이의 탐욕과 야심, 못 가진 이의 노동에 대한 미움과 당장의 편함과 즐거움에 대한 사랑은 재산을 침범하도록 몰아세우는 정념이며, 그것들은 훨씬 꾸준히 움직이고 훨씬 두루 미친다. 큰 재산이 있는 곳에는 큰 고르지 못함이 있다. 아주 가멸진 사람 하나가 있으려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이가 있어야 하며, 몇몇의 넉넉함은 여럿의 궁핍함을 앞세운다. 가진 이의 넉넉함은 못 가진 이의 분노를 돋우니, 그들은 모자람에 내몰리고 시새움에 부추겨져 그의 것을 침범하는 일이 흔하다. 여러 해 또는 여러 대에 걸친 노동으로 얻은 그 값진 재산의 임자가 하룻밤이라도 마음 놓고 잠들 수 있는 것은 오직 행정관의 그늘 아래에서다. 그는 언제나 알지 못하는 적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그가 건드린 적이 없는데도 결코 달랠 수 없는 적이며, 그들의 불의에서 그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벌하려고 내처 치켜든 행정관의 힘센 팔뿐이다. 그러므로 값지고 넓은 재산을 얻으려면 반드시 민간 정부가 세워져야 한다. 재산이 없는 곳, 적어도 이삼일치 노동의 가치를 넘는 재산이 없는 곳에서는 민간 정부가 그만큼 있어야 할 것은 아니다.

민간 정부는 얼마간의 상하 질서를 앞세운다. 그런데 민간 정부가 있어야 할 까닭이 값진 재산을 얻는 것과 더불어 차츰 자라나듯, 상하 질서를 절로 들여오는 주된 까닭들도 그 값진 재산이 자라남과 더불어 차츰 자라난다.

상하 질서를 절로 들여오는 까닭이나 사정, 곧 어떤 민간의 제도보다 앞서 절로 어떤 사람을 제 형제들 태반보다 얼마쯤 높은 데에 두는 까닭이나 사정은 네 가지인 듯하다.

그 까닭이나 사정의 첫째는 개인의 자질이 나은 것이니, 몸의 힘과 아름다움과 날램, 마음의 슬기와 덕, 조심성과 정의와 굳셈과 절제가 그것이다. 몸의 자질은 마음의 자질에 떠받쳐지지 않는 한 사회의 어느 시기에도 큰 권위를 줄 수 없다. 오직 몸의 힘만으로 약한 두 사람을 억눌러 제게 따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힘센 사람이다. 아주 큰 권위를 줄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자질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성질이어서 언제나 다툼의 여지가 있고 흔히 다툼이 벌어진다. 야만한 사회든 문명된 사회든 자리의 앞뒤와 상하의 규칙을 그런 보이지 않는 성질에 따라 정하는 것을 마땅하다 여긴 적은 없고, 더 뚜렷하고 손에 잡히는 무엇에 따라 정해 왔다.

그 까닭이나 사정의 둘째는 나이가 많은 것이다. 늙은이는 그 나이가 망령을 의심할 만큼 많지만 않다면 어디서나 자리와 재산과 재주가 같은 젊은이보다 더 받들어진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부족처럼 사냥으로 사는 민족 사이에서는 나이가 자리와 앞뒤를 가르는 오직 하나의 바탕이다. 그들 사이에서 아버지는 윗사람을 부르는 말이고, 형제는 같은 자리의 사람을, 아들은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가장 넉넉하고 문명된 민족에서도 다른 모든 모로 같은 이들 사이에서, 따라서 달리 자리를 가를 것이 없는 이들 사이에서는 나이가 자리를 가른다. 형제 사이에서나 자매 사이에서나 맏이가 언제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이을 때에도 명예로운 칭호처럼 나눌 수 없어 한 사람에게 온전히 가야 하는 것은 대개 맏이에게 돌아간다. 나이는 뚜렷하고 손에 잡히는 성질이어서 다툼의 여지가 없다.

그 까닭이나 사정의 셋째는 재산이 나은 것이다. 그런데 부의 권위는 사회의 어느 시대에나 크기는 하나, 재산에 웬만큼 큰 고르지 못함이 있는 사회 가운데 가장 거친 시대에 아마 가장 클 것이다. 늘어나는 양 떼와 소 떼로 천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타타르의 우두머리는 그 늘어남을 천 명을 먹여 살리는 것 말고 달리 쓸 길이 거의 없다. 그 사회의 거친 형편은 제가 쓰고 남는 원생산물을 맞바꿀 만한 어떤 제조품도, 어떤 노리개나 장식물도 그에게 마련해 주지 않는다. 그가 그리하여 먹여 살리는 천 명은 생계를 온전히 그에게 기대므로 전시에는 그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평시에는 그의 재판에 따라야 한다. 그는 반드시 그들의 장군이자 판관이며, 그의 우두머리 자리는 그의 재산이 나은 데에서 반드시 나오는 결과다. 넉넉하고 문명된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훨씬 큰 재산을 지니고도 열댓 사람조차 부리지 못할 수 있다. 그의 땅이 낸 생산물이 천 명 넘는 사람을 먹여 살리기에 넉넉하고 아마 실제로 그만큼을 먹여 살릴지라도, 그 사람들은 그에게서 얻는 것마다 값을 치르고 그는 맞먹는 것을 받지 않고는 누구에게도 무엇을 주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저를 온전히 그에게 매였다고 여기는 이가 거의 없고 그의 권위는 몇몇 집안 하인에게밖에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재산의 권위는 넉넉하고 문명된 사회에서도 아주 크다. 그것이 나이의 권위보다도 개인의 자질의 권위보다도 훨씬 크다는 것은 재산에 웬만큼 큰 고르지 못함이 있던 사회의 어느 시기에나 한결같이 터져 나온 푸념이었다. 사회의 첫 시기인 사냥꾼의 시기는 그런 고르지 못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두루 미치는 가난이 그들의 두루 미치는 고름을 세우고, 나이가 낫거나 개인의 자질이 나은 것이 권위와 상하 질서의 여리지만 오직 하나뿐인 바탕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이 시기에는 권위도 상하 질서도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사회의 둘째 시기인 양치기의 시기는 재산에 아주 큰 고르지 못함을 허락하며, 재산이 나은 것이 그것을 지닌 이에게 이만큼 큰 권위를 주는 시기는 달리 없다. 따라서 권위와 상하 질서가 이보다 더 온전히 자리 잡은 시기도 없다. 아라비아의 셰리프의 권위는 아주 크고, 타타르의 칸의 권위는 아주 전제로운 것이다.

그 까닭이나 사정의 넷째는 태생이 나은 것이다. 태생이 낫다는 것은 그것을 내세우는 이의 집안에 재산이 나은 내력이 오래되었음을 앞세운다. 모든 집안은 똑같이 오래되었으니, 군주의 조상이 거지의 조상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지는 몰라도 더 많을 수는 없다. 집안이 오래되었다 함은 어디서나 부가 오래되었거나 흔히 부 위에 세워지거나 부를 거느리는 저 큼이 오래되었음을 뜻한다. 벼락출세한 큼은 어디서나 오래된 큼보다 덜 받들어진다. 왕위를 빼앗은 이에 대한 미움과 오래된 군주의 집안에 대한 사랑은 앞의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절로 품는 업신여김과 뒤의 것에 대한 우러름에 크게 뿌리를 둔다. 군사의 장교는 늘 저를 지휘해 온 윗사람의 권위에는 마다하지 않고 굽히나 제 아랫사람이 제 위에 놓이는 것은 견디지 못하듯, 사람들은 저와 제 조상이 늘 굽혀 온 집안에는 쉽게 굽히나 그런 나음을 한 번도 인정한 적 없는 다른 집안이 저를 다스리려 들면 분노로 타오른다.

태생의 가름은 재산의 고르지 못함보다 뒤에 오는 것이므로 사냥으로 사는 민족에게는 자리 잡을 수 없으니, 그들 사이에서는 사람마다 재산이 고르므로 태생 또한 거의 고를 수밖에 없다. 참으로 그들 사이에서도 슬기롭고 씩씩한 사람의 아들이 못난이나 겁쟁이의 아들이 되는 불행을 겪은, 공로가 같은 사람보다 얼마쯤 더 받들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다름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며, 세상에 슬기와 덕을 물려받은 것만으로 빛을 얻은 큰 집안은 내가 믿기로 한 번도 없었다.

태생의 가름은 양 치는 민족 사이에서는 자리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자리 잡는다. 그런 민족은 온갖 사치를 늘 낯설어하며, 큰 부가 앞을 내다보지 못한 헤픔으로 흩어지는 일이 그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없다. 따라서 크고 빛나는 조상의 긴 핏줄에서 나왔다 하여 받들어지고 기려지는 집안이 그들보다 많은 민족은 없으니, 부가 같은 집안에 더 오래 머물기 쉬운 민족이 그들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태생과 재산이야말로 한 사람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는 두 가지 사정임이 뚜렷하다. 그 둘은 개인을 돋보이게 하는 두 큰 샘이며, 따라서 사람들 사이에 권위와 상하 질서를 절로 세우는 주된 까닭이다. 양 치는 민족 사이에서는 그 두 까닭이 온 힘으로 움직인다. 큰 부 덕분에, 또 생계를 제게 기대는 사람이 많은 덕분에 받들어지고, 태생이 귀한 덕분에, 또 그 빛나는 집안이 아득히 오래된 덕분에 우러름을 받는 큰 양치기 곧 목자는 제 무리나 씨족의 모든 아랫자리 양치기와 목자 위에 타고난 권위를 지닌다. 그는 그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아 부릴 수 있다. 그의 군사의 힘은 그들 누구의 것보다 크다. 전시에 그들은 모두 다른 누구의 깃발 아래보다 그의 깃발 아래 모이려는 마음이 절로 들며, 그리하여 그의 태생과 재산이 절로 그에게 얼마쯤의 집행하는 권력을 마련해 준다. 또 그들 누구보다 많은 사람의 힘을 하나로 모아 부리므로, 그는 남에게 해를 입힌 이가 누구든 그 잘못을 갚게 다그치기에 가장 알맞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에 너무 약한 이들이 모두 절로 우러러 지켜 주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들이 제가 입었다고 여기는 해를 하소연하는 상대도 절로 그가 되고, 그런 경우 그가 끼어드는 것은 하소연을 받은 쪽조차 다른 누구가 끼어드는 것보다 더 쉽게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그의 태생과 재산이 절로 그에게 얼마쯤의 재판하는 권위를 마련해 준다.

재산의 고르지 못함이 처음 자리 잡아 그전에는 도무지 있을 수 없었던 얼마간의 권위와 상하 질서를 사람들 사이에 들여오는 것은 양치기의 시대, 곧 사회의 둘째 시기에 이르러서다. 그리하여 그것은 제 목숨을 이어 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저 민간 정부를 얼마쯤 들여오며, 그 일을 절로, 그런 필요를 헤아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해내는 듯하다. 그런 필요를 헤아리는 일은 의심할 바 없이 뒤에 와서 그 권위와 상하 질서를 지키고 든든하게 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다. 그 가운데에도 가진 이들은 오직 그런 질서만이 제 이로움을 지닌 채로 저를 지켜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그것을 떠받칠 이해를 지닌다. 부가 적은 이들은 부가 많은 이들이 제 재산을 지니는 것을 지켜 주려고 뭉치는데, 그것은 부가 많은 이들이 저희가 제 것을 지니는 것을 지켜 주려고 뭉치게 하려는 뜻이다. 아랫자리 양치기와 목자는 모두 제 소 떼와 양 떼의 든든함이 큰 양치기 곧 목자의 소 떼와 양 떼의 든든함에 달렸음을, 제 작은 권위를 지키는 일이 그의 큰 권위를 지키는 일에 달렸음을, 그리고 저희가 그에게 굽히는 데에 저희 아랫사람을 저희에게 굽히게 하는 그의 힘이 달렸음을 느낀다. 그들은 일종의 작은 귀족을 이루어, 제 작은 주권자가 제 재산을 지켜 주고 제 권위를 떠받쳐 줄 수 있게 하려고 그의 재산을 지키고 그의 권위를 떠받칠 이해를 스스로 느낀다. 민간 정부는 재산의 든든함을 위하여 세워진 한에서는 참으로 가난한 이에 맞서 가멸진 이를 지키려고, 곧 아무 재산도 없는 이에 맞서 얼마간의 재산이 있는 이를 지키려고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권자의 재판하는 권위는 비용을 부르기는커녕 오랫동안 그에게 수입의 샘이었다. 그에게 정의를 구하러 오는 이들은 언제나 그 값을 치르려 하였고, 하소연에는 예물이 따르지 않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주권자의 권위가 온전히 자리 잡은 뒤로는, 잘못이 드러난 이가 상대에게 갚아야 하는 것 말고도 주권자에게 벌금을 물어야 하였다. 그가 번거로움을 끼쳤고, 그가 어지럽혔으며, 그가 제 주인인 국왕의 평온을 깨뜨렸으니 그 잘못에는 벌금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시아의 타타르 정부에서도, 로마 제국을 뒤엎은 게르만과 스키타이 민족이 세운 유럽의 정부에서도 재판을 베푸는 일은 주권자에게나 그 아래에서 어느 부족이나 씨족을 다스리거나 어느 땅이나 고장을 다스리는 재판권을 누린 모든 작은 우두머리와 영주에게나 자못 큰 수입의 샘이었다. 본디 주권자도 아랫자리 우두머리도 이 재판권을 제 몸으로 행하곤 하였다. 그 뒤에 그들은 어디서나 그것을 어떤 대리인이나 대관이나 판관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대리인은 그래도 제 주인이나 저를 세운 이에게 재판권이 낸 이익의 셈을 바쳐야 하였다. 헨리 2세 때 순회하는 판관에게 내린 훈령을(그것은 튀롤의 『잉글랜드사』에 실려 있다) 읽는 이라면 누구나 그 판관들이 국왕의 세입 가운데 몇몇 갈래를 걷으려고 나라 안을 돌게 한 일종의 떠돌이 대리인이었음을 또렷이 알 것이다. 그 시절에 재판을 베푸는 일은 주권자에게 얼마간의 수입을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이 수입을 얻는 것이 그가 재판을 베풂으로써 얻으려 한 주된 이로움의 하나였던 듯하다.

재판을 베푸는 일을 수입의 목적에 딸리게 하는 이 얼개는 아주 거친 폐단을 여럿 낳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예물을 손에 들고 정의를 구하러 온 사람은 정의보다 많은 것을 얻기 쉬웠고, 작은 예물을 들고 온 사람은 정의보다 적은 것을 얻기 쉬웠다. 게다가 이 예물을 되풀이 받으려고 재판이 자주 미루어지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하소연을 받은 이가 무는 벌금은 그가 실제로는 잘못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를 잘못한 쪽으로 판가름할 아주 든든한 까닭이 되는 일이 잦았다. 그런 폐단이 결코 드물지 않았음은 유럽 어느 나라의 옛 역사나 증언한다.

주권자나 우두머리가 재판하는 권위를 제 몸으로 행할 때에는 그가 그것을 아무리 함부로 썼더라도 바로잡기가 거의 될 수 없는 일이었으니, 그에게 셈을 물을 만큼 힘센 이가 있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대관을 시켜 그것을 행할 때에는 참으로 더러 바로잡을 수 있었다. 대관이 오직 제 이익을 위하여 불의를 저질렀다면 주권자 자신이 그를 벌하거나 그 잘못을 갚게 하기를 늘 마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제 주권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저를 세웠고 저를 끌어올릴 수도 있는 이에게 잘 보이려고 억누름을 저지른 것이었다면, 바로잡는 일은 대개 주권자 자신이 저지른 때와 마찬가지로 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야만한 정부에서, 그 가운데에도 로마 제국의 무너진 터 위에 세워진 유럽의 저 옛 정부들에서 재판을 베푸는 일은 오랫동안 몹시 썩어 있었던 듯하니, 가장 나은 군주 아래에서도 결코 고르고 치우침 없지 못하였고 가장 못된 군주 아래에서는 아주 막되었다.

양 치는 민족 사이에서 주권자나 우두머리는 무리나 씨족의 가장 큰 양치기 곧 목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제 가신이나 신민과 똑같이 제 소 떼와 양 떼가 늘어나는 것으로 건사된다. 양치기의 형편에서 이제 막 벗어나 그 형편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한 농사꾼의 민족, 이를테면 트로이 싸움 무렵의 그리스 부족들이나 서쪽 제국의 무너진 터에 처음 자리 잡았을 때의 게르만과 스키타이의 우리 조상들이 그러하였던 듯한 민족 사이에서도, 주권자나 우두머리는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가장 큰 지주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지주와 똑같이 제 사사로운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곧 오늘날 유럽에서 왕실 직영지라 일컫던 것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건사된다. 그의 신민은 여느 때에는 그를 떠받치는 데에 아무것도 보태지 않으며, 다만 같은 신민 가운데 누구의 억누름에서 저를 지키려고 그의 권위가 있어야 할 때에만 보탤 뿐이다. 그런 때에 그들이 그에게 바치는 예물이 그가 그들을 다스림에서 얻는 여느 수입의 전부, 곧 벌이의 전부를 이루며, 아주 남다른 급한 일이 있을 때라야 그 밖의 것이 있을 뿐이다. 호메로스에서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그 우의를 얻으려고 그리스 일곱 도시의 주권을 내놓을 때, 거기서 얻을 만한 이로움으로 그가 든 오직 하나는 백성이 그를 예물로 기리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예물이, 그리고 재판의 벌이 곧 이른바 법정 수수료가 이렇게 주권자가 제 주권에서 얻는 여느 수입의 전부를 이루는 동안에는, 그가 그것을 아주 내놓으리라고 바랄 수도 없었고 그리하라고 내놓고 말하기도 점잖지 못하였다. 그가 그것을 정하고 못 박아야 한다는 말은 나올 수 있었고 실제로 자주 나왔다. 그러나 그렇게 정하고 못 박은 뒤에도, 못 할 것이 없는 사람이 그 정한 바를 넘어 그것을 늘리는 일을 어떻게 막을지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몹시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런 형편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그 예물이 제멋대로이고 못 박히지 않은 데에서 절로 나오는 재판의 썩음을 이렇다 할 방도로 고칠 길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여러 까닭으로, 그 가운데에도 주로 다른 나라의 침입에서 나라를 지키는 비용이 내처 커진 탓으로 주권자의 사사로운 땅이 주권을 행하는 비용을 대기에 아주 모자라게 되고, 백성이 제 든든함을 위하여 여러 갈래의 세금으로 이 비용에 보태야 하게 되자, 재판을 베푸는 일에 대한 예물은 어떤 핑계로도 주권자도 그의 대관이나 대리인인 판관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못 박는 일이 아주 흔해졌던 듯하다. 그런 예물은 이렇다 할 방도로 정하고 못 박기보다 아주 없애기가 더 쉬우리라고 여겼던 듯하다. 판관에게는 못 박힌 봉급이 매겨졌으니, 세금이 주권자에게 그가 잃은 것을 넘치게 갚아 준 것처럼 그 봉급은 판관에게 옛 재판의 벌이 가운데 제 몫이었을 것을 잃은 데 대한 갚음이 되리라 여겨졌다. 그때부터 정의는 거저 베풀어진다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정의가 어느 나라에서도 참으로 거저 베풀어진 적은 없다. 적어도 법률가와 소송 대리인은 언제나 당사자가 삯을 치러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지금 하는 것보다도 제 일을 더 못할 것이다. 법률가와 소송 대리인에게 해마다 치러지는 삯은 어느 법정에서나 판관의 봉급을 크게 웃도는 액수에 이른다. 그 봉급을 왕실이 치른다는 사정이 소송에 드는 어쩔 수 없는 비용을 어디서도 크게 줄여 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판관이 당사자에게서 어떤 예물이나 삯도 받지 못하게 막은 것은 비용을 줄이려 함이라기보다 재판이 썩는 것을 막으려 함이었다.

판관의 자리는 그 자체로 아주 명예로운 것이어서 벌이가 아주 적더라도 사람들이 기꺼이 맡으려 한다. 그보다 아랫자리인 치안 판사의 자리는 번거로움이 자못 많고 대개 벌이가 도무지 없는데도 우리 시골 지주 태반이 탐내는 자리다. 높고 낮은 모든 판관의 봉급과 재판을 베풀고 집행하는 온 비용을 합쳐도, 그것을 그리 알뜰히 꾸리지 않는 곳에서조차 문명된 나라라면 정부의 온 비용 가운데 아주 보잘것없는 몫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재판의 온 비용은 법정 수수료로 쉽게 댈 수 있을 것이며, 그리하면 재판을 베푸는 일을 썩을 참된 위험에 내놓지 않으면서도 공공의 세입을 얼마쯤의, 아마 작기는 하나 얼마쯤의 짐에서 아주 벗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만큼 힘센 이가 그것을 나누어 가지고 제 수입의 자못 큰 몫을 거기서 얻는 곳에서는 법정 수수료를 이렇다 할 방도로 정하기가 어렵다. 판관이 거기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주된 사람인 곳에서는 아주 쉽다. 법이 판관에게 그 정한 바를 지키게 하기는 아주 쉬우나 주권자에게 그것을 지키게 하기는 늘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법정 수수료가 낱낱이 정해지고 굳어진 곳, 그것이 소송마다 어느 한 시기에 한꺼번에 출납을 맡은 이나 받는 이의 손에 치러져 소송이 판가름 난 뒤에야, 그리고 판가름 나기 전에는 결코, 그의 손으로 여러 판관 사이에 알려진 비율대로 나뉘는 곳에서는 그런 수수료를 아주 막은 때보다 썩을 위험이 더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수수료는 소송의 비용을 자못 늘리지 않으면서도 재판의 온 비용을 대기에 아주 넉넉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송이 판가름 나기까지는 판관에게 치러지지 않으므로 법정이 그것을 살피고 판가름하는 데에 부지런하도록 얼마쯤 돋울 수도 있을 것이다. 판관의 수가 자못 많은 법정에서는 판관마다의 몫을 그가 법정에서든 법정의 명으로 위원회에서든 그 소송을 살피는 데에 쓴 시간과 날수에 견주어 매김으로써 그런 수수료가 판관 하나하나의 부지런함을 얼마쯤 북돋울 수도 있을 것이다. 공공의 일은 그 갚음이 오직 그 일을 해낸 뒤에야 오고 그 일을 해내는 데에 쏟은 부지런함에 견주어 매겨질 때보다 더 잘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프랑스의 여러 고등법원14에서는 이른바 에피스와 바카시옹이라는 법정 수수료가 판관이 얻는 벌이의 훨씬 큰 몫을 이룬다. 온갖 공제를 다 하고 나면, 자리와 위엄으로 그 나라에서 둘째가는 고등법원인 툴루즈 고등법원의 평정관이나 판관이 왕실에서 받는 순 봉급은 한 해 150리브르, 곧 스털링으로 6파운드 11실링쯤에 지나지 않는다. 7년쯤 전에 그 액수는 같은 곳에서 여느 하인이 받는 한 해 임금이었다. 게다가 이 에피스를 나누는 일도 판관이 부지런한 정도를 따른다. 부지런한 판관은 제 자리에서 넉넉하지는 않아도 편안한 수입을 얻고, 게으른 판관은 제 봉급보다 얼마 더 얻지 못한다. 그 고등법원들은 아마 여러 모로 그리 편리한 재판의 법정이 아닐지 모르나, 썩었다는 나무람을 받은 적이 없고 의심조차 받은 적이 없는 듯하다.

잉글랜드에서는 법정 수수료가 본디 여러 재판 법정을 떠받치는 주된 밑천이었던 듯하다. 법정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일을 제게 끌어오려 애썼고, 그 때문에 본디 제 재판권에 들 것이 아니었던 숱한 소송도 기꺼이 맡으려 하였다. 형사 사건만 다루려고 세워진 왕좌 법원15이 민사 소송을 맡았으니, 피고가 저에게 정의를 베풀지 않아 얼마간의 불법 침해나 가벼운 죄를 저질렀다고 원고가 둘러댄 것이다. 국왕의 세입을 걷고 오직 국왕에게 진 빚만 치르게 하려고 세워진 재무 법원이 그 밖의 모든 계약의 빚을 맡았으니, 피고가 저에게 갚지 않아 저도 국왕에게 갚을 수 없다고 원고가 둘러댄 것이다. 이런 꾸밈 덕분에 어느 법정에서 제 사건을 다루게 할지가 온전히 당사자에게 달린 경우가 많아졌고, 법정마다 더 빠르고 더 치우침 없는 처리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건을 제게 끌어오려 애썼다. 오늘날 잉글랜드 재판 법정의 훌륭한 얼개는 아마 본디 저마다의 판관 사이에 옛날에 벌어졌던 이 겨룸이 크게 빚어낸 것이며, 판관마다 온갖 불의에 대하여 법이 허락하는 가장 빠르고 가장 이렇다 할 구제를 제 법정에서 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본디 보통법 법정은 계약을 어긴 데 대하여 손해의 갚음만 매겼다. 양심의 법정인 대법관 법원이 약정한 그대로 이행하게 다그치는 일을 처음 떠맡았다. 계약을 어긴 것이 돈을 치르지 않은 것일 때에는 입은 손해를 치르라고 명하는 것 말고는 달리 갚을 길이 없었는데, 그것은 약정한 그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에는 보통법 법정의 구제로 넉넉하였다. 다른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차지인이 제 영주가 저를 차지 계약에서 부당하게 내쫓았다 하여 그를 걸어 소송할 때, 그가 되찾은 손해의 갚음은 그 땅을 지니는 것과 결코 맞먹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런 사건은 얼마 동안 모두 대법관 법원으로 갔고, 보통법 법정은 적잖이 밑졌다. 보통법 법정이 그런 사건을 제게 도로 끌어오려고 땅을 부당하게 내놓게 하거나 빼앗는 데 대한 가장 이렇다 할 구제인, 꾸며 만든 퇴거 영장을 지어냈다고 전한다.

주

  1. 1. 옮긴이 — 바다절임(sea-sticks)은 바다에서 잡아 배 위에서 곧바로 소금에 절여 담은 청어를 말한다. 뭍에서 다시 골라 가득 채워 담은 배럴의 3분의 2로 쳤다. 저본은 이 자리를 Sea-sricks로 찍었으나 뒤에 나오는 Sea-sticks와 같은 말이다.

  2. 2. 옮긴이 —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회계의 세 칸은 차례로 파운드와 실링과 펜스를 적은 것이다.

  3. 3. 옮긴이 — 부셸은 곡물과 소금을 재던 부피 단위다. 부피가 같아도 무엇을 담았느냐에 따라 무게가 달랐으므로, 이 부록의 끝에서 스미스가 외국 소금과 영국 소금의 한 부셸 무게를 따로 적어 둔 것이다.

  4. 4. 옮긴이 — 바로 앞의 0파운드 11실링 3¾펜스에 0파운드 3실링 0펜스를 더하면 0파운드 14실링 3¾펜스가 되나, 저본에는 1파운드 14실링 3¾펜스로 찍혀 있다. 회계에 실린 숫자이므로 저본대로 두었다.

  5. 5. 옮긴이 — 베이이는 로마 북쪽의 에트루리아 도시로, 로마가 여러 해 에워싼 끝에 기원전 396년에 함락하였다.

  6. 6. 옮긴이 — 《국부론》은 1776년에 처음 나왔고, 여기서 말하는 싸움은 그때 한창이던 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 전쟁이다.

  7. 7. 옮긴이 —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기원전 382~336)이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다.

  8. 8. 옮긴이 — 하밀카르 바르카(기원전 275?~228)와 그 사위 하스드루발(기원전 270?~221)과 그 아들 한니발(기원전 247~183?)이다. 뒤에 나오는 「작은 하스드루발」은 한니발의 아우다.

  9. 9. 옮긴이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기원전 236~183)이고, 자마의 싸움은 기원전 202년에 있었다.

  10. 10. 옮긴이 — 폰토스의 국왕 미트리다테스 6세(기원전 135~63)를 말한다.

  11. 11. 옮긴이 — 1739년에 영국과 스페인 사이에 터진 싸움을 말한다. 카르타헤나는 오늘날 콜롬비아에 있는 스페인령 항구로, 1741년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12. 12. 옮긴이 — 표트르 1세(1672~1725, 재위 1682~1725)를 말한다.

  13. 13. 옮긴이 — 장기 의회는 1640년에 모인 잉글랜드 의회이며,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 1653년에 군대를 이끌고 그 남은 의원들을 흩었다.

  14. 14. 옮긴이 — 프랑스의 고등법원(parlement)은 의회가 아니라 국왕의 재판소이며 파리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 있었다. 에피스와 바카시옹은 소송 당사자가 판관에게 치르던 수수료이고, 리브르는 당시 프랑스의 셈 단위 화폐다.

  15. 15. 옮긴이 — 왕좌 법원과 재무 법원은 보통법을 다루던 잉글랜드의 법정이고, 대법관 법원은 보통법이 미치지 못하는 자리를 형평으로 메우던 법정이다. 퇴거 영장은 땅을 부당하게 빼앗긴 이가 그 땅을 되찾도록 마련된 소송의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