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자본의 여러 쓰임에 대하여
5장 자본의 여러 쓰임에 대하여
모든 자본은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만 쓰이도록 되어 있으나, 같은 크기의 자본이 움직일 수 있는 그 노동의 양은 자본을 어디에 쓰는가에 따라 아주 크게 달라지며, 그 쓰임이 그 나라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보태는 가치도 마찬가지로 크게 달라진다.
자본을 쓰는 길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사회가 쓰고 소비하는 데에 해마다 필요한 원생산물을 마련하는 데에 쓰는 것이고, 둘째는 그 원생산물을 당장 쓰고 소비할 수 있도록 제조하고 손질하는 데에 쓰는 것이며, 셋째는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그것이 넉넉한 곳에서 그것을 바라는 곳으로 옮기는 데에 쓰는 것이고, 마지막은 그 둘 가운데 어느 것의 일정한 몫을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찾는 양에 맞도록 잘게 가르는 데에 쓰는 것이다. 첫째 길에는 땅이나 광산이나 어장의 개량과 경작을 벌이는 모든 사람의 자본이 쓰이고, 둘째 길에는 모든 제조업 고용주의 자본이 쓰이며, 셋째 길에는 모든 도매 상인의 자본이, 넷째 길에는 모든 소매 상인의 자본이 쓰인다. 자본이 이 네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넣을 수 없는 길로 쓰이는 일은 좀처럼 떠올리기 어렵다.
자본을 쓰는 이 네 가지 길은 저마다 나머지 셋이 있게 하거나 넓어지게 하는 데에, 또는 사회 전체의 편의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원생산물을 어느 정도 넉넉하게 대는 데에 자본이 쓰이지 않는다면 제조업도 어떤 종류의 거래도 있을 수 없다.
원생산물 가운데 쓰고 소비하기에 알맞게 되기까지 손질이 많이 필요한 부분을 제조하는 데에 자본이 쓰이지 않는다면, 그 부분은 아예 생산되지 않을 것인데 그것을 찾는 수요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며, 혹 저절로 생산된다 해도 교환 가치가 없어서 사회의 부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할 것이다.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그것이 넉넉한 곳에서 그것을 바라는 곳으로 옮기는 데에 자본이 쓰이지 않는다면, 둘 가운데 어느 것도 그 이웃에서 소비하는 데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생산될 수 없을 것이다. 상인의 자본은 한 곳에서 남는 생산물을 다른 곳에서 남는 생산물과 맞바꾸며, 그리하여 두 곳의 근면을 북돋우고 두 곳이 누리는 것을 늘린다.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그 일정한 몫을 그것을 바라는 사람들이 그때그때 찾는 양에 맞도록 쪼개고 가르는 데에 자본이 쓰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필요한 재화를 당장 쓸 만큼보다 더 많이 사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고기 파는 생업이 없다면 누구나 한 번에 소 한 마리나 양 한 마리를 통째로 사야 할 것이다. 이는 부자에게도 대개 불편하려니와 가난한 사람에게는 훨씬 더 그렇다. 가난한 일꾼이 한 달치나 여섯 달치 식료품을 한꺼번에 사야 한다면, 그가 생업의 도구나 가게의 살림에 자본으로 굴려 수입을 얻는 자산 가운데 큰 몫을, 당장 쓰려고 남겨 두어 아무 수입도 낳지 않는 자산 쪽으로 옮겨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필요한 대로 날마다, 나아가 시간마다 생계에 드는 것을 살 수 있는 것보다 더 편한 일이 없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산을 거의 다 자본으로 굴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그는 더 큰 가치의 일감을 내놓을 수 있게 되며, 그러면서 얻는 이윤은 소매 상인의 이윤이 재화에 덧붙이는 값을 메우고도 넉넉히 남는다. 가게 주인과 장사꾼을 두고 몇몇 정치 저술가가 품은 편견에는 아무 근거가 없다. 그들에게 세를 매기거나 그 수를 제한할 필요가 있기는커녕, 그들은 서로를 해칠 만큼 수가 늘 수는 있어도 공중을 해칠 만큼 늘 수는 결코 없다. 이를테면 어떤 도시에서 팔릴 수 있는 식료잡화의 양은 그 도시와 그 이웃의 수요로 한계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식료잡화 거래에 쓰일 수 있는 자본은 그만한 양을 사들이기에 넉넉한 액을 넘을 수 없다. 이 자본이 식료잡화 상인 둘에게 갈리면 그 둘의 경쟁은 한 사람이 그것을 쥐고 있을 때보다 둘 다 더 싸게 팔게 하는 쪽으로 기울고, 스무 사람에게 갈리면 그 경쟁은 그만큼 더 커지며 값을 올리려고 서로 단합할 낌새는 그만큼 더 작아진다. 그들의 경쟁이 그들 가운데 몇을 망하게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챙기는 일은 관계된 당사자들의 일이며 그들의 헤아림에 맡겨 두어도 괜찮다. 그 경쟁은 소비하는 사람도 생산하는 사람도 해칠 수 없고, 오히려 그 거래 전체를 한두 사람이 독점할 때보다 소매 상인들이 더 싸게 팔고 더 비싸게 사게 하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들 가운데 몇이 더러는 마음 약한 손님을 꾀어 쓸 데 없는 것을 사게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폐단은 너무 작아 공중이 눈여겨볼 값이 없으며, 그들의 수를 제한한다고 해서 반드시 막아지는 것도 아니다. 가장 의심을 받는 예를 들면, 술집이 많아서 보통 사람들에게 술에 빠지는 기질이 널리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에서 생긴 그 기질이 많은 술집에 일거리를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 자본을 이 네 가지 길 가운데 어느 하나에 굴리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생산적 노동자다. 그들의 노동이 옳게 이끌리면 그 노동이 얹히는 대상, 곧 팔 수 있는 상품에 자리 잡고 실현되며, 적어도 그들 자신을 부양하고 소비하는 데에 드는 만큼의 가치를 그 상품의 값에 보탠다. 농부와 제조업자와 상인과 소매 상인의 이윤은 모두, 앞의 둘이 생산하고 뒤의 둘이 사고파는 재화의 값에서 나온다. 그러나 같은 크기의 자본이라도 이 네 가지 서로 다른 길에 쓰이면 저마다 아주 다른 양의 생산적 노동을 곧바로 움직이며, 그 자본이 딸린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 가지는 가치도 아주 다른 비율로 늘린다.
소매 상인의 자본은 그가 재화를 사들이는 상인의 자본을 그 이윤과 함께 메워 주어 그 상인이 장사를 이어 갈 수 있게 한다. 소매 상인 자신이 그 자본이 곧바로 부리는 유일한 생산적 노동자다. 그 자본의 쓰임이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보태는 가치 전체는 그의 이윤에 들어 있다.
도매 상인의 자본은 그가 다루는 원생산물과 제조품을 사들이는 농부와 제조업자의 자본을 그 이윤과 함께 메워 주어, 그들이 저마다 하는 생업을 이어 갈 수 있게 한다. 그가 사회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고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늘리는 데에 간접으로 이바지하는 것은 주로 이 구실로써다. 그의 자본은 또 그의 재화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뱃사람과 짐 나르는 사람들도 부리며, 자기 이윤에 해당하는 가치만이 아니라 그들의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만큼 그 재화의 값을 올린다. 이것이 그 자본이 곧바로 움직이는 생산적 노동의 전부이며, 연간 생산물에 곧바로 보태는 가치의 전부다. 이 두 가지 점에서 그 자본이 하는 일은 소매 상인의 자본이 하는 일보다 훨씬 크다.
제조업 고용주의 자본 가운데 일부는 생업의 도구에 고정 자본으로 쓰이며, 그 도구를 사들이는 다른 수공업자의 자본을 그 이윤과 함께 메워 준다. 그의 유동 자본 가운데 일부는 재료를 사들이는 데에 쓰이며, 그 재료를 사들이는 농부와 광부의 자본을 그 이윤과 함께 메워 준다. 그러나 그 자본 가운데 큰 몫은 해마다, 또는 훨씬 짧은 동안에 늘 그가 부리는 여러 일꾼에게 나누어진다. 그 자본은 그 일꾼들의 임금만큼, 그리고 그 사업에 쓰인 임금과 재료와 생업 도구를 다 합친 자산에 붙는 고용주의 이윤만큼 그 재료의 가치를 올린다. 그러므로 그 자본은 같은 크기의 자본이 어느 도매 상인의 손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곧바로 움직이며,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훨씬 큰 가치를 보탠다.
같은 크기의 자본 가운데 농부의 자본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움직이는 것은 없다. 그가 부리는 일꾼만이 아니라 그가 부리는 집짐승도 생산적 노동자다. 게다가 농업에서는 자연이 사람과 나란히 일하는데, 자연의 노동에는 비용이 들지 않으나 그 노동의 생산물에도 가장 값비싼 일꾼의 생산물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있다.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은 자연의 걸찬 힘을 늘리려는 것보다는, 그것도 하기는 하지만, 그 힘을 사람에게 가장 이로운 식물을 길러 내는 쪽으로 돌려놓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찔레와 가시덩굴이 무성한 밭도 가장 잘 가꾼 포도밭이나 곡물밭만큼 많은 양의 초목을 낼 때가 흔하다. 심고 가는 일은 자연의 살아 있는 걸찬 힘을 북돋우기보다 그것을 다스리는 데에 그칠 때가 흔하며, 그 모든 노동을 들인 뒤에도 일의 큰 몫은 늘 자연이 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농업에 쓰이는 노동자와 집짐승은 제조업의 일꾼처럼 자기들의 소비, 곧 자기들을 부리는 자본에 그 임자의 이윤을 더한 것과 같은 가치를 다시 낳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큰 가치를 다시 낳게 한다. 그들은 농부의 자본과 그 모든 이윤을 넘어 지주의 지대까지 어김없이 다시 낳게 한다. 이 지대는 지주가 농부에게 그 쓰임을 빌려주는 자연의 힘이 낸 생산물로 볼 수 있다. 지대는 그 힘이 얼마나 크다고 여겨지는가에 따라, 달리 말하면 그 땅이 타고났거나 개량으로 얻었다고 여겨지는 걸찬 정도에 따라 크거나 작다. 그것은 사람의 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덜어 내거나 갚아 준 뒤에 남는 자연의 일이다. 그것이 생산물 전체의 4분의 1보다 적은 일은 드물고 3분의 1을 넘는 일은 흔하다. 제조업에 쓰이는 같은 양의 생산적 노동은 결코 그만큼 큰 재생산을 낳을 수 없다. 제조업에서는 자연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람이 다 하며, 재생산은 늘 그것을 낳는 힘의 세기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농업에 쓰이는 자본은 제조업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어떤 자본보다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움직일 뿐 아니라, 그것이 부리는 생산적 노동의 양에 견주어 보아도 그 나라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곧 그 주민들의 실질 부와 수입에 훨씬 큰 가치를 보탠다. 자본을 쓸 수 있는 모든 길 가운데 이것이 사회에 가장 이로운 길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농업과 소매 거래에 쓰이는 자본은 늘 그 사회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 쓰임은 거의 한 자리, 곧 농장과 소매 상인의 가게에 매여 있다. 또 여기에 몇 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나, 그 자본은 대개 그 사회에 사는 구성원의 것일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도매 상인의 자본은 어디에도 정해져 있거나 반드시 머물러야 할 자리가 없어 보이며, 싸게 살 수 있거나 비싸게 팔 수 있는 데를 따라 이곳저곳 떠돌 수 있다.
제조업자의 자본은 두말할 것 없이 제조가 이루어지는 곳에 머물러야 하나, 그곳이 어디일지는 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재료가 자라는 곳에서도, 다 된 제조품이 소비되는 곳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는 때가 흔하다. 리옹은 그 제조업의 재료를 내주는 곳에서도, 그 제조품을 소비하는 곳에서도 아주 멀다.1 시칠리아의 멋을 아는 사람들은 자기네 땅이 낸 재료로 다른 나라에서 짠 비단을 입는다. 스페인 양모의 일부는 영국에서 제조되며, 그 옷감의 일부는 나중에 스페인으로 되돌려 보내진다.
어느 사회에서 남는 생산물을 자기 자본으로 내보내는 상인이 그 나라 사람이든 외국 사람이든 그것은 거의 대수롭지 않다. 그가 외국 사람이라면 그 사회의 생산적 노동자 수는 그가 그 나라 사람일 때보다 딱 한 사람 적어지고, 그 사회의 연간 생산물이 가지는 가치는 그 한 사람의 이윤만큼 적어질 뿐이다. 그가 부리는 뱃사람이나 짐 나르는 사람들은 그가 그 나라 사람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쪽이든 가리지 않고 그의 나라에 딸릴 수도 있고 그들의 나라에 딸릴 수도 있으며 어느 제3의 나라에 딸릴 수도 있다. 외국 사람의 자본도 그 나라 사람의 자본과 똑같이, 남는 생산물을 국내에서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꾸어 그 생산물에 가치를 준다. 또 그 남는 것을 생산하는 사람의 자본을 똑같이 잘 메워 주고 그가 생업을 이어 갈 수 있게 똑같이 잘 해 주는데, 도매 상인의 자본이 자기가 딸린 사회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고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늘리는 데에 주로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이 구실이다.
제조업자의 자본이 그 나라 안에 머무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 자본은 반드시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움직이며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더 큰 가치를 보탠다. 그러나 그 자본이 그 나라 안에 머물지 않아도 그 나라에 아주 이로울 수 있다. 발트해 연안에서 해마다 들여오는 아마와 삼을 손질하는 영국 제조업자의 자본은 그것을 생산하는 나라들에 분명히 아주 이롭다. 그 재료들은 그 나라들에서 남는 생산물의 일부이며, 그것이 해마다 그 나라들에서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꾸어지지 않는다면 아무 가치도 없을 터이고 머지않아 생산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을 내보내는 상인들은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자본을 메워 주어 그들이 생산을 이어 가도록 북돋우며,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그 상인들의 자본을 메워 준다.
어느 한 나라도 어느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 땅을 다 개량하고 경작하는 데에, 그 원생산물 전부를 당장 쓰고 소비할 수 있게 제조하고 손질하는 데에, 그리고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남는 부분을 국내에서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꿀 수 있는 먼 시장으로 옮기는 데에 다 댈 만큼 넉넉한 자본을 갖지 못하는 때가 흔하다. 영국의 여러 고장 주민들은 제 땅을 다 개량하고 경작할 만큼 넉넉한 자본을 갖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남부 여러 주의 양모는 그 큰 몫이, 아주 나쁜 길을 따라 멀리 육로로 실려 간 뒤 요크셔에서 제조되는데, 고장에서 그것을 제조할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작은 제조업 도시가 많은데, 그 주민들은 자기 산업이 낸 생산물을 그것을 찾고 소비하는 먼 시장으로 옮길 만큼 넉넉한 자본을 갖지 못했다. 그들 가운데 상인이 있다 해도 그들은 실은 큰 상업 도시에 사는 더 넉넉한 상인들의 대리인일 뿐이다.
어느 나라의 자본이 이 세 가지 쓰임에 다 대기에 넉넉하지 않을 때에는, 그 자본 가운데 더 큰 몫이 농업에 쓰일수록 그 나라 안에서 움직여지는 생산적 노동의 양이 더 커지며, 그 쓰임이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보태는 가치도 그만큼 커진다. 농업 다음으로는 제조업에 쓰이는 자본이 가장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움직이고 연간 생산물에 가장 큰 가치를 보탠다. 내보내는 거래에 쓰이는 자본은 이 셋 가운데 그 효력이 가장 작다.
이 세 가지 쓰임에 다 댈 만큼 넉넉한 자본을 갖지 못한 나라는 참으로 자연이 마련해 둔 듯한 그 풍요의 정도에 아직 이르지 못한 나라다. 그러나 넉넉하지 않은 자본으로 때 이르게 그 셋을 다 해 보려고 하는 것은, 한 사람에게 그렇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에도 넉넉한 자본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이 결코 아니다. 한 나라 모든 사람의 자본에는 한 사람의 자본과 똑같이 한계가 있으며, 그것으로 이룰 수 있는 쓰임도 정해져 있다. 한 나라 모든 사람의 자본은 한 사람의 자본과 똑같은 길로, 곧 수입에서 아끼는 것을 끊임없이 모아 거기에 보태는 것으로 늘어난다. 그러므로 그 자본은 그 나라 모든 주민에게 가장 큰 수입을 가져다주는 길로 쓰일 때 가장 빨리 늘어날 터인데, 그리하여 그들이 가장 많이 아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나라 모든 주민의 수입은 그들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 가지는 가치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메리카 식민지가 부와 큼으로 빠르게 나아간 으뜸 원인은 이제까지 그 자본이 거의 다 농업에 쓰였다는 데에 있다.2 그들에게는 제조업이 없는데, 농업이 나아가면 반드시 따라오고 어느 집에서나 여자와 아이들의 일거리가 되는 집안의 거친 제조업만은 예외다. 아메리카에서 내보내는 거래와 연안 거래의 큰 몫은 영국에 사는 상인들의 자본으로 이루어진다. 몇몇 주, 특히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 재화를 소매로 파는 창고와 가게조차 그 많은 것이 본국에 사는 상인들의 것이며, 어느 사회의 소매 거래가 그 사회에 살지 않는 사람들의 자본으로 이루어지는 드문 보기 가운데 하나가 된다. 아메리카인들이 단합으로든 다른 어떤 폭력으로든 유럽 제조품을 들여오는 것을 막고, 그리하여 같은 재화를 만들 수 있는 제 나라 사람들에게 독점을 주어 자기네 자본 가운데 적지 않은 몫을 이 쓰임으로 돌린다면, 그들은 연간 생산물의 가치가 더 늘어나는 것을 재촉하는 대신 늦출 터이고, 그들 나라가 참된 부와 큼으로 나아가는 것을 밀어주는 대신 막을 것이다. 그들이 그와 같이 내보내는 거래 전부를 자기들끼리 독점하려 든다면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사람의 번영이 흘러온 길을 보면, 어느 큰 나라가 이 세 가지 쓰임에 다 댈 만큼 넉넉한 자본을 갖출 수 있을 만큼 오래 이어진 일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중국의 부와 경작을 두고, 또 옛 이집트와 힌두스탄의 옛 모습을 두고 전해 오는 놀라운 이야기를 믿어 준다면 모르지만 말이다.3 전해 오는 모든 이야기로 보아 세상에 있었던 가장 넉넉한 나라였던 그 세 나라조차, 이름을 얻은 것은 주로 농업과 제조업에서 남보다 앞섰다는 데에서다. 그들이 외국 거래로 뛰어났던 것 같지는 않다. 옛 이집트 사람들은 바다를 미신처럼 꺼렸고, 인도인 사이에도 거의 같은 종류의 미신이 퍼져 있으며, 중국 사람들은 외국 상업에 뛰어난 적이 없다. 그 세 나라에서 남는 생산물의 큰 몫은 늘 외국 사람들이 내보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그 대가로 그 나라들에서 수요가 있다고 본 다른 무엇, 흔히 금과 은을 주었다.
이처럼 어느 나라에서나 같은 자본이 농업과 제조업과 도매 거래에 쓰이는 비율이 어떻게 다른가에 따라 더 많거나 더 적은 양의 생산적 노동을 움직이며, 그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더 크거나 더 작은 가치를 보탠다. 또 그 자본의 일부가 어떤 종류의 도매 거래에 쓰이는가에 따라서도 그 차이는 아주 크다.
모든 도매 거래, 곧 다시 도매로 팔려고 사들이는 일은 모두 세 가지로 갈라 볼 수 있다. 국내 무역과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과 중계 무역이다.4 국내 무역은 한 나라 산업이 낸 생산물을 그 나라의 한 고장에서 사들여 다른 고장에서 파는 데에 쓰인다. 여기에는 내륙 거래와 연안 거래가 다 들어간다.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은 국내에서 소비할 외국 재화를 사들이는 데에 쓰인다. 중계 무역은 외국들 사이의 상업을 맡아 보거나, 한 나라에서 남는 생산물을 다른 나라로 실어 가는 데에 쓰인다.
어떤 나라 산업이 낸 생산물을 그 나라의 한 고장에서 사들여 다른 고장에서 팔려고 쓰이는 자본은,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그 나라의 농업이나 제조업에 쓰였던 두 개의 다른 자본을 대개 메워 주어 그 둘이 그 쓰임을 이어 갈 수 있게 한다. 그 자본이 상인이 사는 곳에서 일정한 가치의 상품을 내보낼 때에는 그 대가로 적어도 그와 같은 가치의 다른 상품을 대개 되가져온다. 그 둘이 다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일 때에는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 쓰였던 두 개의 다른 자본을 반드시 메워 주어 그 둘이 그 부양을 이어 갈 수 있게 한다. 스코틀랜드 제조품을 런던으로 보내고 잉글랜드의 곡물과 제조품을 에든버러로 되가져오는 자본은,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영국의 농업이나 제조업에 쓰였던 두 개의 영국 자본을 반드시 메워 준다.
국내에서 소비할 외국 재화를 사들이는 데에 쓰이는 자본도, 그 사들이는 일이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로 이루어질 때에는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두 개의 다른 자본을 메워 준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만이 국내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쓰인 것이다. 영국 재화를 포르투갈로 보내고 포르투갈 재화를 영국으로 되가져오는 자본은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영국 자본 하나만을 메워 준다. 다른 하나는 포르투갈 자본이다. 그러므로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의 회수가 국내 무역의 회수만큼 빠르다 해도, 거기에 쓰이는 자본은 그 나라의 근면이나 생산적 노동에 절반만큼의 격려를 줄 뿐이다.
그런데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의 회수가 국내 무역의 회수만큼 빠른 일은 아주 드물다. 국내 무역의 회수는 대개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들어오며, 어떤 때에는 한 해에 세 번이나 네 번 들어온다.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의 회수는 한 해가 끝나기 전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고, 어떤 때에는 두 해나 세 해가 지나서야 들어온다. 그러므로 국내 무역에 쓰이는 자본은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자본이 한 번 일을 치르는 동안에 어떤 때에는 열두 번 일을 치르니, 곧 열두 번 나갔다가 돌아온다. 그러므로 두 자본의 크기가 같다면 앞의 것은 뒤의 것보다 그 나라의 근면에 스물네 배 더 큰 격려와 부양을 줄 것이다.
국내에서 소비할 외국 재화를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이 아니라 다른 어떤 외국 재화로 사들이는 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외국 재화도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로 곧바로 사들인 것이거나, 그 생산물로 사들인 다른 무엇으로 사들인 것일 수밖에 없다. 전쟁과 정복의 경우를 빼면 외국 재화는 곧바로든 두세 차례 서로 다른 교환을 거친 뒤든 국내에서 생산된 무엇과 맞바꾸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처럼 멀리 돌아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자본이 내는 효력은 같은 종류의 가장 곧바른 거래에 쓰이는 자본이 내는 효력과 모든 점에서 같으며, 다만 마지막 회수가 더 멀어지기 쉽다는 점만 다른데 그것이 서로 다른 두세 외국 거래의 회수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리가의 삼과 아마를, 영국 제조품으로 사들인 버지니아 담배로 사들인다면,5 그 상인은 서로 다른 두 외국 거래의 회수를 기다린 뒤에야 같은 자본으로 같은 양의 영국 제조품을 다시 사들일 수 있다. 버지니아 담배를 영국 제조품으로 사들인 것이 아니라 그 제조품으로 사들인 자메이카의 설탕과 럼으로 사들였다면, 그는 세 차례의 회수를 기다려야 한다. 그 두세 외국 거래가 저마다 다른 두세 상인의 손으로 이루어져서, 둘째 상인이 첫째 상인이 들여온 재화를 사고 셋째 상인이 둘째 상인이 들여온 재화를 사서 다시 내보낸다면, 그 경우에 상인들은 저마다 제 자본이 돌아오는 것을 더 빨리 받기는 하겠으나, 그 거래에 쓰인 자본 전체의 마지막 회수는 여전히 그만큼 늦을 것이다. 이처럼 멀리 돌아가는 거래에 쓰이는 자본 전체가 한 상인의 것이든 세 상인의 것이든, 그것은 그 나라에는 아무 차이도 낳지 못하나 그 상인들 각자에게는 차이를 낳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일정한 가치의 영국 제조품을 일정한 양의 아마와 삼과 맞바꾸려면, 그 제조품과 그 아마와 삼을 곧바로 서로 맞바꾸었을 때 들었을 자본의 세 배를 써야 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멀리 돌아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자본 전체는 같은 종류의 더 곧바른 거래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자본보다 그 나라의 생산적 노동에 대개 더 적은 격려와 부양을 줄 것이다.
국내에서 소비할 외국 재화를 어떤 외국 상품으로 사들이든, 그것은 그 거래의 성질에도, 그 거래가 이루어지는 나라의 생산적 노동에 줄 수 있는 격려와 부양에도 이렇다 할 차이를 낳지 못한다. 이를테면 그것을 브라질의 금으로 사들이거나 페루의 은으로 사들인다면, 그 금과 은도 버지니아의 담배처럼 그 나라 산업이 낸 생산물이거나 그런 생산물로 사들인 다른 무엇으로 사들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생산적 노동에 관한 한, 금과 은을 끼고 이루어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는 그만큼 멀리 돌아가는 다른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이 가지는 모든 이로움과 모든 불편이 다 있으며, 그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 곧바로 쓰이는 자본을 똑같이 빠르게 또는 똑같이 느리게 메워 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만큼 멀리 돌아가는 다른 어떤 외국 거래보다 한 가지 나은 점이 있는 듯하다. 그 금속들은 부피가 작고 가치가 커서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비용이 같은 가치의 다른 어떤 외국 재화를 옮기는 비용보다 적게 든다. 그 운임은 훨씬 적고 보험료는 더 크지 않으며, 게다가 실려 가는 동안에 상하는 일이 그만큼 적은 재화가 없다. 그러므로 금과 은을 끼우면 같은 양의 외국 재화를, 다른 어떤 외국 재화를 끼웠을 때보다 더 적은 양의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로 사들일 수 있는 때가 흔하다. 이렇게 하여 그 나라의 수요가 다른 어떤 길로 채울 때보다 더 온전하게, 더 적은 비용으로 채워지는 때가 흔하다. 그 금속을 끊임없이 내보내는 일로 이런 종류의 거래가 그것을 하는 나라를 다른 무슨 길로 가난하게 만들 것인지는 뒤에서 아주 길게 살펴볼 자리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의 자본 가운데 중계 무역에 쓰이는 부분은 그 나라 자체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일에서 아주 빠져나와 어떤 외국들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한다. 그 자본이 한 번 돌 때마다 두 개의 다른 자본을 메워 줄 수는 있으나, 그 둘 가운데 어느 것도 그 나라의 것이 아니다. 폴란드의 곡물을 포르투갈로 실어 가고 포르투갈의 과일과 포도주를 폴란드로 되실어 오는 네덜란드 상인의 자본은, 그렇게 한 번 돌 때마다 두 개의 자본을 메워 주는데 그 어느 것도 네덜란드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 쓰인 것이 아니며, 하나는 폴란드의 생산적 노동을, 다른 하나는 포르투갈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 쓰인 것이다. 이윤만이 어김없이 네덜란드로 돌아오며, 이 거래가 그 나라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반드시 보태는 것은 그 이윤뿐이다. 어느 나라의 중계 무역이 그 나라의 배와 뱃사람으로 이루어질 때에는 참으로 거기에 쓰이는 자본 가운데 운임을 치르는 부분이 그 나라의 생산적 노동자 얼마에게 나누어지고 그들을 움직인다. 실제로 중계 무역의 적지 않은 몫을 가졌던 거의 모든 나라가 그렇게 그것을 해 왔다. 그런 나라의 사람들이 다른 나라들을 위하여 실어 나르는 사람이었으므로, 이 거래의 이름도 아마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거래의 성질에 꼭 붙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네덜란드 상인은 폴란드와 포르투갈의 상업을 맡아 보면서 한 나라에서 남는 생산물의 일부를 다른 나라로 실어 갈 때에 네덜란드 배가 아니라 영국 배를 쓸 수도 있다. 어떤 자리에서는 그가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때문에 중계 무역은 뱃사람과 배의 수에 그 방어와 안전이 걸려 있는 영국 같은 나라에 유별나게 이롭다고 여겨져 왔다.6 그러나 같은 자본이라면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도, 나아가 연안을 오가는 배로 이루어지는 국내 무역에서도 중계 무역에서만큼 많은 뱃사람과 배를 부릴 수 있다. 어떤 자본이 부릴 수 있는 뱃사람과 배의 수는 거래의 성질에 매여 있지 않고, 한편으로는 재화의 부피가 그 가치에 비하여 얼마나 큰가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재화를 실어 갈 두 항구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에 매여 있으며, 그 가운데 주로 앞의 것에 매여 있다. 이를테면 뉴캐슬에서 런던으로 가는 석탄 거래는 두 항구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잉글랜드의 중계 무역 전체보다 더 많은 배를 부린다.7 그러므로 유별난 격려를 주어 어느 나라의 자본 가운데 저절로 갈 만한 몫보다 더 큰 몫을 중계 무역으로 억지로 밀어 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나라의 배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의 국내 무역에 쓰이는 자본은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자본보다 그 나라에서 더 많은 양의 생산적 노동에 격려와 부양을 주고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더 많이 늘리며, 뒤의 이 거래에 쓰이는 자본은 다시 이 두 가지 점에서 중계 무역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자본보다 훨씬 낫다. 어느 나라의 넉넉함은, 그리고 힘이 넉넉함에 매여 있는 만큼 그 나라의 힘은, 모든 세가 마침내 거기서 치러져야 하는 바탕인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에 늘 비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나 정치경제학이 내세우는 큰 목표는 그 나라의 넉넉함과 힘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경제학은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을 국내 무역보다 앞세우거나 더 크게 격려해서는 안 되며, 중계 무역을 그 둘 가운데 어느 것보다 앞세워서도 안 된다. 그 두 물길 가운데 어느 쪽으로도 그 나라의 자본 가운데 저절로 흘러들 몫보다 더 큰 몫을 억지로 밀어 넣거나 꾀어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서로 다른 거래의 갈래는 저마다, 아무 억누름이나 폭력 없이 일이 흘러가는 대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고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산업 부문의 생산물이 그 나라의 수요가 찾는 것보다 많을 때에는, 남는 것을 외국으로 보내어 국내에서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내보내지 않으면 그 나라의 생산적 노동 가운데 일부가 멈추고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영국의 땅과 노동은 대개 국내 시장의 수요가 찾는 것보다 많은 곡물과 털옷감과 쇠붙이를 낸다. 그러므로 그 남는 부분은 외국으로 보내어 국내에서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꾸어야 한다. 이렇게 내보내는 것으로만 그 남는 것이 그것을 생산하는 데에 든 노동과 비용을 갚을 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바닷가 근처와 배가 다니는 모든 강의 언저리가 근면에 이로운 자리인 것은, 그렇게 남는 생산물을 내보내어 그곳에서 수요가 더 많은 다른 무엇과 맞바꾸는 일을 쉽게 해 주기 때문일 뿐이다.
이처럼 국내 산업이 낸 남는 생산물로 사들인 외국 재화가 국내 시장의 수요보다 많을 때에는, 그 남는 부분을 다시 외국으로 보내어 국내에서 수요가 더 많은 무엇과 맞바꾸어야 한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서는 영국 산업이 낸 남는 생산물의 일부로 해마다 담배 9만 6000 호그스헤드쯤을 사들인다.8 그런데 영국의 수요가 찾는 것은 아마 1만 4000 호그스헤드를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는 8만 2000 호그스헤드를 외국으로 보내어 국내에서 수요가 더 많은 무엇과 맞바꿀 수 없다면, 그것을 들여오는 일이 곧 멈출 수밖에 없으며, 그와 함께 이 8만 2000 호그스헤드를 해마다 사들이는 데에 쓰이는 재화를 마련하는 일에 지금 매여 있는 영국 주민 모두의 생산적 노동도 멈출 수밖에 없다. 영국의 땅과 노동이 낸 생산물의 일부인 그 재화는 국내에 시장이 없고 외국에 있던 시장마저 빼앗기므로 생산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멀리 돌아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도 어떤 자리에서는 그 나라의 생산적 노동과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부양하는 데에 가장 곧바른 거래만큼이나 꼭 있어야 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어느 나라의 자본이 그 나라 자체의 소비에 대고 그 나라 자체의 생산적 노동을 부양하는 데에 다 쓸 수 없을 만큼 늘어나면, 그 남는 부분은 저절로 중계 무역으로 넘쳐 나와 다른 나라들에 같은 구실을 하는 데에 쓰인다. 중계 무역은 큰 국부가 낳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그 조짐이나, 그 자연스러운 원인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에 유별난 격려를 주려고 한 정치가들은 결과와 조짐을 원인으로 잘못 본 듯하다. 땅의 넓이와 주민의 수에 견주어 유럽에서 단연 가장 넉넉한 나라인 네덜란드가 그에 맞게 유럽 중계 무역의 가장 큰 몫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유럽에서 둘째로 넉넉한 나라인 잉글랜드도 거기에 적지 않은 몫을 가졌다고 여겨지나, 흔히 잉글랜드의 중계 무역으로 여겨지는 것도 알고 보면 멀리 돌아가는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일 뿐인 때가 흔할 것이다. 동인도와 서인도와 아메리카의 재화를 유럽의 여러 시장으로 실어 가는 거래가 대체로 그러하다. 그 재화는 대개 영국 산업이 낸 생산물로 곧바로 사들이거나 그 생산물로 사들인 다른 무엇으로 사들이며, 그 거래의 마지막 회수는 대개 영국에서 쓰이거나 소비된다. 지중해의 여러 항구 사이를 영국 배로 오가는 거래와, 인도의 여러 항구 사이를 영국 상인들이 오가며 하는 같은 종류의 거래가 아마도 참된 뜻으로 영국의 중계 무역이라 할 것의 으뜸 갈래를 이룬다.
국내 무역의 넓이와 거기에 쓰일 수 있는 자본의 크기는, 그 나라 안에서 서로 제 생산물을 맞바꿀 일이 있는 멀리 떨어진 모든 고장에서 남는 생산물이 가지는 가치로 한계가 정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의 넓이는 그 나라 전체에서 남는 생산물의 가치와 그것으로 사들일 수 있는 것의 가치로, 중계 무역의 넓이는 세상 모든 나라에서 남는 생산물의 가치로 한계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중계 무역이 넓어질 수 있는 한계는 다른 둘에 견주면 얼마쯤 끝이 없는 셈이며, 가장 큰 자본도 빨아들일 수 있다.
어떤 자본의 임자가 그것을 농업에 굴릴지, 제조업에 굴릴지, 도매 거래나 소매 거래의 어떤 갈래에 굴릴지를 정하는 유일한 동기는 자기 사사로운 이윤을 헤아리는 것이다. 그 자본이 어느 길에 쓰이는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생산적 노동의 양이 얼마나 다른지, 사회의 땅과 노동의 연간 생산물에 보탤 수 있는 가치가 얼마나 다른지는 그의 생각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농업이 모든 쓰임 가운데 가장 이윤이 많고 농사와 개량이 큰 재산을 얻는 가장 곧바른 길인 나라에서는, 사람들의 자본이 저절로 사회 전체에 가장 이로운 길로 쓰일 것이다. 그러나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농업의 이윤이 다른 쓰임의 이윤보다 나은 것 같지는 않다. 참으로 유럽 구석구석에서 사업 기획자들은 요 몇 해 사이에 땅을 경작하고 개량하여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아주 굉장하게 셈해 보이며 공중을 즐겁게 해 왔다. 그들의 셈을 하나하나 따져 보지 않더라도 아주 간단한 관찰 하나로 그 결과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생애 동안에 거래와 제조업으로, 흔히 아주 작은 자본에서, 때로는 아무 자본도 없이 이루어진 가장 굉장한 재산을 날마다 본다. 같은 동안에 그만한 자본에서 농업으로 그런 재산을 이룬 보기는 이번 세기 유럽에서 아마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유럽의 큰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좋은 땅이 아직 많이 경작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으며, 경작되는 땅의 큰 몫도 그 땅이 이를 수 있는 정도까지 개량되기에는 아직 멀다. 그러므로 농업은 거의 어디서나 지금까지 거기에 쓰인 것보다 훨씬 큰 자본을 빨아들일 수 있다. 유럽의 정책에 있는 어떤 사정이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생업에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생업보다 그토록 큰 이로움을 주어, 사사로운 사람들이 자기 이웃의 가장 걸찬 밭을 개량하고 경작하는 것보다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가장 먼 중계 무역에 제 자본을 굴리는 것이 자기에게 더 이롭다고 여기는 일이 흔하게 되었는지는, 다음에 이어지는 두 편에서 길게 밝혀 보려 한다.9
3편 나라마다 풍요가 나아가는 길이 다른 것에 대하여
1장 풍요가 자연스럽게 나아가는 길에 대하여
문명한 사회에서 가장 큰 상업은 도시 주민과 시골 주민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업이다. 그것은 원생산물을 제조품과 맞바꾸는 일로 이루어지며, 곧바로 맞바꾸기도 하고 돈이나 돈을 대신하는 어떤 종이를 끼워 맞바꾸기도 한다. 시골은 도시에 생계를 이을 것과 제조업의 재료를 댄다. 도시는 그 제조품의 일부를 시골 주민에게 되보내어 이렇게 받은 것을 갚는다. 물질을 다시 낳는 일이 없고 있을 수도 없는 도시는 그 부와 생계 전부를 시골에서 얻는다고 말해도 아주 마땅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도시가 얻는 것이 시골이 잃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두 쪽이 얻는 것은 서로 오가며 맞물려 있고, 노동의 분업은 다른 모든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 분업으로 갈린 여러 일자리에 매인 모든 사람에게 이롭다. 시골 주민은 그 제조된 재화를 스스로 마련하려 했을 때 들여야 했을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제 노동이 낸 생산물로 더 많은 양의 그 재화를 도시에서 사들인다. 도시는 시골에서 남는 생산물, 곧 경작하는 사람들을 부양하고 남는 것에 시장을 내주며, 시골 주민은 그것을 자기들 사이에서 수요가 있는 다른 무엇과 바로 거기서 맞바꾼다. 도시 주민의 수와 수입이 클수록 도시가 시골 주민에게 내주는 시장이 넓어지며, 그 시장이 넓을수록 늘 더 많은 사람에게 이롭다. 도시에서 1마일 안에서 자란 곡물은 20마일 떨어진 데서 오는 곡물과 같은 값으로 그곳에서 팔린다. 그런데 뒤의 곡물 값은 대개 그것을 길러 시장으로 가져오는 비용을 치를 뿐 아니라 농부에게 농업의 보통 이윤까지 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 이웃에 있는 시골의 임자와 경작하는 사람들은 농업의 보통 이윤에 더하여, 자기가 파는 것의 값에서 더 먼 데서 오는 같은 생산물을 실어 오는 값 전부를 얻으며, 게다가 자기가 사는 것의 값에서 이 실어 오는 값 전부를 아낀다. 꽤 큰 도시의 이웃에 있는 땅의 경작을 그 도시에서 얼마쯤 떨어진 땅의 경작과 견주어 보면, 시골이 도시의 상업으로 얼마나 큰 이로움을 얻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무역 차액을 두고 퍼뜨려진 모든 터무니없는 억측 가운데에도, 시골이 도시와 하는 상업으로 잃는다거나 도시가 자기를 먹여 살리는 시골과 하는 상업으로 잃는다고 내세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10
생계가 사물의 성질에서 편의와 사치보다 앞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의 것을 마련하는 근면도 뒤의 것에 이바지하는 근면보다 반드시 앞선다. 그러므로 생계를 내주는 시골의 경작과 개량은 편의와 사치의 수단만을 내주는 도시가 커지는 것보다 반드시 앞선다. 도시의 생계를 이루는 것은 시골에서 남는 생산물, 곧 경작하는 사람들을 부양하고 남는 것뿐이므로, 도시는 그 남는 생산물이 늘어나는 만큼만 커질 수 있다. 참으로 도시가 그 생계 전부를 이웃한 시골에서, 나아가 자기가 딸린 땅에서 얻지 않고 아주 먼 나라에서 얻는 일도 있는데, 이것은 위의 일반 규칙에서 벗어나는 예외가 되지는 않으나 시대와 나라에 따라 풍요가 나아가는 길에 적지 않은 차이를 낳았다.
필요가 억지로 시키는 그 일의 차례는, 나라마다 낱낱이 그렇지는 않으나 대체로는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의 타고난 성향이 밀어준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그 타고난 성향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면, 도시는 어디서도 그것이 놓인 땅의 개량과 경작이 떠받칠 수 있는 정도를 넘어 커질 수 없었을 터이고, 적어도 그 땅 전체가 온전히 경작되고 개량될 때까지는 그러했을 것이다. 이윤이 같거나 거의 같다면 사람들은 대개 제 자본을 제조업이나 외국 거래보다 땅의 개량과 경작에 굴리려 한다. 제 자본을 땅에 굴리는 사람은 그것을 더 잘 살피고 더 잘 다스릴 수 있으며, 그의 재산은 장사하는 사람의 재산보다 뜻하지 않은 일을 겪는 일이 훨씬 적다. 장사하는 사람은 재산을 바람과 물결에 맡길 뿐 아니라 사람의 어리석음과 부정이라는 더 못 믿을 것에도 흔히 맡겨야 하는데, 사람됨과 형편을 좀처럼 제대로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먼 나라에서 큰 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지주의 자본은 제 땅의 개량에 붙박여 있어 사람의 일이 허락할 수 있는 만큼 잘 지켜지는 듯하다. 게다가 시골의 아름다움, 시골살이의 즐거움, 그것이 약속하는 마음의 고요함, 그리고 사람이 만든 법의 부정이 그것을 흔들지 않는 곳에서 그것이 참으로 내주는 홀로 섬은 누구에게나 얼마쯤 끌리는 매력이 있다. 땅을 가꾸는 것이 사람이 처음 받은 몫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 삶의 어느 단계에서나 이 맨 처음의 일자리를 좋아하는 마음을 지니는 듯하다.
참으로 수공업자 몇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땅을 가꾸는 일은 큰 불편과 끊임없는 끊김을 겪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대장장이, 목수, 수레 목수와 쟁기 목수, 석공과 벽돌공, 무두장이, 신 짓는 사람, 재봉사는 농부가 그 일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그런 수공업자들도 더러 서로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들이 머무는 자리는 농부의 자리처럼 꼭 한 곳에 매여 있지 않으므로 그들은 저절로 서로 가까이 자리를 잡고 그리하여 작은 도시나 마을을 이룬다. 고기 파는 사람, 술 빚는 사람, 빵 굽는 사람이 곧 그들에게 합치고, 그들이 그때그때 바라는 것을 대는 데에 꼭 있어야 하거나 요긴한 다른 여러 수공업자와 소매 상인도 합쳐서 그 도시를 더욱 크게 하는 데에 이바지한다. 도시 주민과 시골 주민은 서로 서로의 심부름꾼이다. 도시는 끊이지 않는 장이나 시장이며, 시골 주민은 제 원생산물을 제조품과 맞바꾸려고 거기로 모여든다. 도시 주민에게 그 일의 재료와 생계의 수단을 둘 다 대 주는 것이 바로 이 상업이다. 그들이 시골 주민에게 파는 다 된 일감의 양이 그들이 사들이는 재료와 식료품의 양을 반드시 정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자리도 생계도 다 된 일감을 찾는 시골의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만 늘어날 수 있으며, 이 수요는 개량과 경작이 넓어지는 만큼만 늘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제도가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어지럽힌 적이 없었다면, 어느 정치 사회에서나 도시의 부가 자라고 도시가 커지는 것은 그 땅, 곧 그 시골의 개량과 경작에 뒤따르는 일이었을 터이고 그것에 비례했을 것이다.
우리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경작되지 않은 땅을 아직 싼값으로 얻을 수 있으므로, 그 도시 어디에도 먼 데에 팔 제조업이 세워진 적이 아직 없다. 어떤 수공업자가 이웃한 시골에 대는 자기 생업을 꾸리는 데에 필요한 것보다 자산을 조금 더 모으면, 북아메리카에서 그는 그것으로 더 먼 데에 팔 제조업을 세우려 하지 않고 경작되지 않은 땅을 사서 개량하는 데에 쓴다. 수공업자에서 농장주가 되는 것이다. 그 나라가 수공업자에게 내주는 큰 임금도 넉넉한 생계도 그를 꾀어 자기를 위하여 일하기보다 남을 위하여 일하게 할 수 없다. 그는 수공업자란 자기 생계가 나오는 손님들의 심부름꾼이지만, 제 땅을 가꾸고 제 식구의 노동에서 필요한 생계를 얻는 농장주는 참으로 주인이며 온 세상에 매이지 않고 홀로 서 있음을 느낀다.
이와 달리 경작되지 않은 땅이 아예 없거나 싼값으로 얻을 수 있는 땅이 없는 나라에서는, 이웃에서 그때그때 생기는 일거리에 굴릴 수 있는 것보다 자산을 더 모은 수공업자마다 더 먼 데에 팔 일감을 마련하려 한다. 대장장이는 무슨 쇠 제조소를 세우고 직물 짜는 사람은 무슨 아마 옷감이나 털옷감 제조소를 세운다. 그 서로 다른 제조업은 때가 흐르면서 차츰 잘게 갈리고, 그리하여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아주 여러 길로 나아지고 다듬어지므로 여기서 더 밝힐 필요가 없다.
자본에 쓸 자리를 찾을 때에 이윤이 같거나 거의 같다면, 농업이 제조업보다 저절로 앞세워지는 것과 같은 까닭으로 제조업이 외국 상업보다 저절로 앞세워진다. 지주나 농부의 자본이 제조업자의 자본보다 더 잘 지켜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자의 자본도 언제나 그가 더 잘 살피고 더 잘 다스릴 수 있으므로 외국 상인의 자본보다 더 잘 지켜진다. 참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어느 시기에나 원생산물이든 제조품이든 남는 부분, 곧 국내에 수요가 없는 부분은 국내에 얼마쯤 수요가 있는 무엇과 맞바꾸려고 외국으로 보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남는 생산물을 외국으로 실어 가는 자본이 외국 것인지 국내 것인지는 거의 대수롭지 않다. 사회가 제 땅을 다 경작하고 그 원생산물 전부를 가장 온전하게 제조하기에 넉넉한 자본을 아직 갖추지 못했다면, 원생산물을 외국 자본이 내보내는 것이 오히려 적지 않게 이로운데, 그리하여 사회의 자산 전부를 더 요긴한 쓰임에 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이집트의 부와 중국과 힌두스탄의 부는, 내보내는 거래의 큰 몫을 외국 사람들이 하더라도 한 나라가 아주 높은 정도의 풍요에 이를 수 있음을 넉넉히 보여 준다. 우리 북아메리카와 서인도 식민지가 나아간 걸음도, 남는 생산물을 내보내는 데에 자기들의 자본만 쓰였다면 훨씬 더뎠을 것이다.
그러므로 일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르면, 자라나는 사회에서는 어디서나 그 자본의 큰 몫이 먼저 농업으로 가고 그다음에 제조업으로 가며 마지막으로 외국 상업으로 간다. 이 차례는 아주 자연스러워서, 땅을 얼마라도 가진 사회라면 어디서나 늘 얼마쯤은 지켜져 왔다고 나는 믿는다. 어지간한 도시가 세워지기 전에 그 땅의 얼마는 경작되었을 수밖에 없고, 그 도시들이 외국 상업에 나설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있기 전에 그 도시들에서 제조업다운 거친 근면이 얼마쯤 이루어졌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차례가 그런 사회마다 얼마쯤은 이루어졌을 수밖에 없다 해도, 유럽의 모든 근대 국가에서 그것은 여러 점에서 아주 거꾸로 되었다. 그 도시 가운데 몇몇이 한 외국 상업이 더 고운 제조업, 곧 먼 데에 팔기에 알맞은 제조업을 다 들여왔으며, 제조업과 외국 상업이 함께 농업의 으뜸 개량을 낳았다. 그 나라들이 처음 가졌던 정부의 성질이 들여온 몸가짐과 관습은 그 정부가 크게 바뀐 뒤에도 남아, 그 나라들을 어쩔 수 없이 이 자연스럽지 않고 뒤집힌 차례로 밀어 넣었다.
주
1. 옮긴이 — 리옹은 프랑스 남동부의 도시로, 16세기부터 유럽 비단 제조의 중심이었다. 비단 실은 이탈리아와 레반트에서 들여왔고 다 된 비단은 유럽 여러 나라로 팔려 나갔다.
2. 옮긴이 — 스미스가 이 책을 낸 1776년에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아직 영국에 딸려 있었다. 「우리」라는 말은 그 사정에서 나온 것이다.
3. 옮긴이 — 힌두스탄은 인도 북부, 넓게는 인도 전체를 가리키던 옛 이름이다.
4. 옮긴이 — 중계 무역(carrying trade)은 자기 나라의 생산물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생산물을 그 나라들 사이에서 실어 주고 사고파는 거래다. 스미스가 이 장에서 견주는 세 갈래 가운데 자기 나라의 생산적 노동과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다.
5. 옮긴이 — 리가는 발트해에 면한 항구로, 18세기 유럽에서 삼과 아마의 큰 시장이었다. 오늘날 라트비아의 수도다.
6. 옮긴이 — 1651년과 1660년의 항해법은 영국과 그 식민지로 드나드는 재화를 영국 배로만, 그리고 대부분 영국 뱃사람으로 싣도록 정했다. 뱃사람과 배의 수를 늘리려는 뜻이 있었다. 스미스는 이 법을 4편 2장에서 따로 다룬다.
7. 옮긴이 — 뉴캐슬은 잉글랜드 북동부의 석탄 산지로, 거기서 런던까지 석탄을 실어 가는 연안 거래는 18세기 영국에서 배를 가장 많이 쓰는 거래였다.
8. 옮긴이 — 호그스헤드는 큰 나무통으로, 담는 것에 따라 크기가 달랐다. 담배를 담은 호그스헤드는 18세기에 대략 1000파운드(무게), 곧 450킬로그램쯤 되었다.
9. 옮긴이 — 스미스가 말하는 두 편은 이 책의 3편과 4편이다. 3편은 바로 이 장 뒤에서 시작한다.
10. 옮긴이 — 무역 차액론은 나라가 내보내는 것을 들여오는 것보다 많게 하여 금은을 모아야 한다고 본 생각으로, 18세기 유럽 상업 정책의 바탕이었다. 스미스는 4편에서 이를 길게 논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