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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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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상업 체계 곧 중상주의 체계의 원리에 대하여 (이어서)

금과 은을 수입하는 것은 어느 나라가 외국 무역에서 얻는 주된 이익이 아니며, 하물며 하나뿐인 이익은 더욱 아니다. 어느 곳들 사이에서 외국 무역이 이루어지든 그 모든 곳이 거기서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익을 얻는다. 외국 무역은 그들 사이에 수요가 없는, 그 땅과 노동이 낸 생산물의 남는 부분을 실어 내고, 그 대신으로 수요가 있는 다른 무엇을 실어 온다. 그것은 그들에게 남아도는 것을, 그들에게 없어서 아쉬운 것 얼마를 채워 주고 그들의 누림을 늘려 줄 다른 무엇과 맞바꾸어 줌으로써 그 남아도는 것에 가치를 준다. 그것 덕분에 국내 시장이 좁다는 사정도 어느 기술이나 제조업의 한 갈래에서 노동의 분업이 가장 높은 데까지 나아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들의 노동이 낸 생산물 가운데 국내 소비를 넘는 부분이 무엇이든 거기에 더 넓은 시장을 열어 줌으로써, 외국 무역은 그들이 그 생산력을 키우고 연간 생산물을 끝까지 불리도록, 그리하여 사회의 실질 수입과 부를 늘리도록 북돋운다. 외국 무역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여러 나라 모두에게 이 크고 중요한 구실을 끊임없이 해 주고 있다. 그 모두가 거기서 큰 이익을 얻으나 대개는 상인이 사는 나라가 가장 큰 이익을 얻는데, 그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기 나라에 없는 것을 채워 주고 자기 나라에 남아도는 것을 실어 내는 일에 더 많이 힘쓰기 때문이다. 광산이 없는 나라에 쓰일 만한 금과 은을 들여오는 것도 외국 상업이 하는 일의 한 부분임에는 의심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가운데 가장 대수롭지 않은 부분이다. 오직 이것 때문에 외국 무역을 하는 나라라면 백 년에 배 한 척을 부릴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의 발견이 유럽을 넉넉하게 만든 것은 금과 은을 수입해서가 아니다. 아메리카 광산이 넉넉했던 덕에 그 금속들은 값이 내렸다. 은식기 한 벌을 이제는 15세기에 들었을 곡물의 3분의 1, 또는 노동의 3분의 1로 살 수 있다. 노동과 상품을 해마다 같은 만큼 들여서 유럽은 그때 살 수 있었을 은식기의 세 배쯤을 해마다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상품이 여느 값의 3분의 1에 팔리게 되면, 전에 그것을 사던 사람들이 전보다 세 배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값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리까지, 아마도 전의 열 배가 넘는, 아마도 스무 배가 넘는 수까지 내려간다. 그러므로 오늘날 유럽에는 아메리카 광산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개량된 상태에서도 있었을 은식기의 세 배가 아니라 스무 배나 서른 배가 넘는 양이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유럽이 참된 편리를 얻은 것에는 의심이 없으나, 그것은 분명히 아주 자잘한 편리다. 금과 은이 싸진 탓에 그 금속들은 전보다 화폐로 쓰기에 오히려 덜 알맞게 되었다. 같은 것을 사려면 우리는 그것을 더 많이 몸에 지녀야 하고, 전에는 그로트 한 닢으로 되던 자리에 이제는 실링 한 닢을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한다.1 이 불편과 그 맞은쪽의 편리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자잘한지는 말하기 어렵다. 어느 쪽도 유럽의 처지에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발견은 참으로 아주 이렇다 할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의 모든 상품에 새롭고 다함이 없는 시장을 열어 줌으로써, 그것은 옛 상업의 좁은 테두리 안에서는 생산물의 큰 몫을 받아 줄 시장이 없어 결코 일어날 수 없었던 새로운 분업과 기술의 개량이 일어날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노동의 생산력이 커지고 그 생산물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다 늘어났으며, 그와 함께 주민의 실질 수입과 부도 늘어났다. 유럽의 상품은 거의 다 아메리카에 새로웠고 아메리카의 상품 가운데 많은 것이 유럽에 새로웠다. 그러므로 전에는 생각조차 못 했던 새로운 맞바꿈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옛 대륙에 이로웠던 것이 분명한 만큼 새 대륙에도 자연히 이로웠어야 했다. 유럽인들의 야만스러운 불의는 모두에게 이로웠어야 할 일을 그 불행한 나라 여럿에게 파멸과 멸망이 되게 만들었다.

거의 같은 무렵에 있었던 희망봉을 돌아 동인도로 가는 길의 발견은, 거리가 더 멀었음에도 아마 아메리카의 발견보다도 외국 상업에 더 넓은 터를 열어 주었다. 아메리카에는 어느 면으로든 야만인보다 나은 민족이 둘밖에 없었고, 이들은 발견되자마자 거의 곧 무너졌다. 그 나머지는 한낱 야만인이었다. 그러나 중국과 힌두스탄과 일본의 제국, 그리고 동인도의 여러 다른 나라는 금이나 은의 광산이 더 걸차지는 않았으나 다른 모든 면에서 멕시코나 페루보다 훨씬 더 걸차고 더 잘 경작되었으며 모든 기술과 제조업에서 더 앞서 있었다. 그 제국들의 옛 상태를 두고 스페인 저술가들이 부풀려 적어 놓은 이야기를 곧이듣는다 해도 그러한데, 그 이야기는 곧이들을 값어치가 없음이 뻔하다. 그런데 걸차고 문명한 나라들은 야만인이나 미개인과 맞바꾸는 것보다 서로 훨씬 더 큰 가치를 맞바꿀 수 있다. 그러나 유럽은 여태까지 동인도와의 상업에서 아메리카와의 상업에서보다 훨씬 적은 이익을 얻었다. 포르투갈인들이 백 년쯤 동인도 거래를 제 것으로 독점하였고,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오직 에둘러 그들을 거쳐서만 그 나라에 재화를 보내거나 그 나라에서 재화를 받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인들이 지난 세기 초에 그들을 밀고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자기네 동인도 상업 전체를 배타적 특권을 가진 회사 하나에 맡겨 버렸다.2 영국인과 프랑스인과 스웨덴인과 덴마크인이 모두 그 본을 따랐으니, 유럽의 어느 큰 나라도 여태 동인도로 가는 자유로운 상업의 이익을 누려 본 적이 없다. 그것이 아메리카로 가는 거래만큼 이로웠던 적이 없는 까닭은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없는데, 아메리카 거래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와 그 나라 자신의 식민지 사이에서 그 나라의 모든 신민에게 열려 있다. 그 동인도회사들의 배타적 특권과 그 큰 재물, 그리고 그것이 저마다 제 나라 정부에서 얻어 낸 큰 은혜와 보호는 그들을 겨눈 시샘을 크게 돋우었다. 이런 시샘은 그들의 거래가 그것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 은을 해마다 엄청나게 실어 낸다는 이유로 그 거래를 아주 해로운 것으로 그려 내는 일이 흔했다. 걸린 편에서는 이렇게 맞섰다. 그들의 거래가 은을 끊임없이 실어 내는 것은 참으로 유럽 전체를 가난하게 하는 쪽으로 기울지는 몰라도 그 거래가 이루어지는 그 나라를 가난하게 하지는 않는데, 회수의 일부를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실어 냄으로써 그 나라는 실어 낸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그 금속을 해마다 집으로 들여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반대와 이 대답이 모두 내가 방금 살펴본 그 흔한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쪽에 대해서도 더 말할 것이 없다. 해마다 동인도로 은을 실어 내는 탓에 은그릇은 아마 유럽에서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얼마쯤 비싸고, 은화는 아마 노동과 상품을 더 많이 사들일 것이다. 이 두 결과 가운데 앞의 것은 아주 작은 손실이고 뒤의 것은 아주 작은 이득이며, 둘 다 나라의 눈길을 얼마라도 받을 값어치가 없을 만큼 대수롭지 않다. 동인도로 가는 거래는 유럽의 상품에, 또는 거의 같은 말이 되는 것으로 그 상품으로 사들이는 금과 은에 시장을 열어 줌으로써 유럽 상품의 연간 생산을, 따라서 유럽의 실질 부와 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여태까지 그 둘을 그토록 조금밖에 늘리지 못한 것은 아마 그 거래가 어디서나 얽매여 있는 그 묶임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루해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부가 화폐에 있다거나 금과 은에 있다는 이 흔한 생각을 끝까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이미 말한 대로 화폐라는 말은 여느 말씨에서 부를 뜻하는 일이 흔하고, 이 말의 두 뜻이 이 흔한 생각을 우리에게 그토록 익숙하게 만들어 놓은 탓에, 그것이 터무니없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제 원칙을 잊고 따져 나가는 동안 그것을 틀림없고 부정할 수 없는 진리로 여겨 버리기 쉽다. 상업을 다룬 영국의 가장 나은 저술가 몇 사람은 어느 나라의 부가 그 금과 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토지와 집과 온갖 소비할 수 있는 재화에 있다는 말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러나 따져 나가는 동안 토지와 집과 소비할 수 있는 재화는 그들의 기억에서 빠져나가는 듯하고, 그들 논증의 결은 모든 부가 금과 은에 있으며 그 금속을 불리는 것이 나라의 산업과 상업의 큰 목표라고 여기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부가 금과 은에 있다는 것과, 광산이 없는 나라에 그 금속을 들여올 수 있는 길은 무역 차액뿐, 곧 들여오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내보내는 것뿐이라는 이 두 원칙이 세워지자, 국내 소비에 쓸 외국 재화의 수입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의 수출을 될 수 있는 대로 늘리는 것이 정치경제학의 큰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라를 넉넉하게 만들려는 그 두 큰 기관은 수입을 묶는 것과 수출을 북돋우는 것이었다.

수입을 묶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재화를 국내 소비에 쓰려고 들여오는 것을 어느 나라에서 들여오든 묶는 것이다.

둘째, 무역 차액이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여겨지는 그 특정한 나라들에서 거의 온갖 재화를 들여오는 것을 묶는 것이다.

이 여러 가지 묶음은 더러 높은 관세로 이루어졌고 더러 아주 금지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수출은 더러 관세 환급으로, 더러 장려금으로, 더러 외국과 맺는 이로운 통상 조약으로, 더러 먼 나라에 식민지를 세우는 것으로 북돋워졌다.

관세 환급은 서로 다른 두 자리에서 주어졌다. 국내 제조품에 어떤 관세나 소비세가 물려 있을 때에는 그것을 내보낼 적에 그 전부나 일부를 되돌려 주는 일이 흔했고, 관세가 물리는 외국 재화를 다시 내보내려고 들여왔을 때에는 그렇게 내보낼 적에 이 관세의 전부나 일부를 되돌려 주는 일이 더러 있었다.3

장려금은 이제 막 시작하는 어떤 제조업을 북돋우려고, 또는 유별난 은혜를 받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갈래의 산업을 북돋우려고 주어졌다.

이로운 통상 조약으로는 어느 외국에서 그 나라의 재화와 상인이 다른 나라의 재화와 상인에게 허락된 것을 넘어서는 특정한 특권을 얻어 냈다.

먼 나라에 식민지를 세움으로써 특정한 특권만이 아니라 독점까지 그 식민지를 세운 나라의 재화와 상인에게 얻어 주는 일이 흔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 수입 묶음과 이 네 가지 수출 북돋움이, 무역 차액을 제 쪽에 유리하게 돌려 어느 나라의 금과 은의 양을 늘리려고 상업 체계가 내놓는 여섯 가지 주된 방도를 이룬다. 나는 그 하나하나를 따로 한 장씩 두어 살펴볼 것이며, 그것이 나라 안으로 화폐를 끌어들이는 쪽으로 기운다는 그 짐작에는 더 눈길을 두지 않고, 그 하나하나가 그 나라 산업의 연간 생산물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듯한지를 주로 살펴볼 것이다. 그것이 이 연간 생산물의 가치를 늘리는 쪽으로 기우는가 줄이는 쪽으로 기우는가에 따라, 그것은 분명히 그 나라의 실질 부와 수입을 늘리는 쪽으로 기울거나 줄이는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2장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묶는 것에 대하여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재화를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을 높은 관세로든 아주 금지하는 것으로든 묶으면, 그것을 만드는 데에 쓰이는 국내 산업에 국내 시장의 독점이 얼마쯤 굳어진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소나 소금절임 식료품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영국의 목축업자들에게 푸줏간 고기의 국내 시장 독점을 굳혀 준다. 곡물 수입에 물리는 높은 관세는 어지간히 넉넉한 때에는 금지와 다름없어져 그 상품을 기르는 이들에게 같은 이익을 준다. 외국 모직물의 수입 금지는 모직 제조업자들에게 똑같이 이롭다. 비단 제조업은 온통 외국 재료를 쓰면서도 요즈음 같은 이익을 얻었다. 아마포 제조업은 아직 그것을 얻지 못했으나 그쪽으로 크게 걸음을 내딛고 있다. 다른 여러 갈래의 제조업도 이와 같이 영국에서 제 나라 사람들을 겨눈 독점을 온전히 얻거나 거의 온전히 얻었다. 영국으로 들여오는 것이 아주 금지되거나 어떤 조건 아래 금지되는 재화의 가지 수는, 관세 법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쉽게 짐작할 만한 것을 크게 넘어선다.

국내 시장의 이 독점이 그것을 누리는 그 특정한 갈래의 산업에 큰 격려를 주는 일이 흔하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쓰임으로 가지 않았을 사회의 노동과 자산의 더 큰 몫을 그 쓰임으로 돌리는 일이 흔한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의 산업 전체를 늘리는 쪽으로 기우는가, 또는 그것에 가장 이로운 방향을 주는 쪽으로 기우는가는 아마 그만큼 뻔하지는 않다.

사회의 산업 전체는 그 사회의 자본이 부릴 수 있는 것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어느 한 사람이 일자리에 붙들어 둘 수 있는 일꾼의 수가 그 사람의 자본에 일정한 비례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끊임없이 부릴 수 있는 사람의 수도 그 사회의 자본 전체에 일정한 비례를 가질 수밖에 없고 결코 그 비례를 넘어설 수 없다. 어떤 상업 규제도 어느 사회의 산업의 양을 그 자본이 지탱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까지 늘릴 수는 없다. 그것은 다만 그 가운데 얼마를 그러지 않았더라면 가지 않았을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뿐이며, 이렇게 만들어 낸 방향이 그 산업이 스스로 갔을 방향보다 사회에 더 이로울 듯한지는 조금도 확실하지 않다.

사람마다 제가 굴릴 수 있는 자본이 무엇이든 그것에 가장 이로운 쓰임을 찾아내려고 끊임없이 애쓴다. 참으로 그가 내다보는 것은 사회의 이익이 아니라 제 이익이다. 그러나 제 이익을 살피는 일이 자연히, 아니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그를 사회에 가장 이로운 그 쓰임을 앞세우도록 이끈다.

첫째, 사람마다 제 자본을 될 수 있는 대로 집 가까이 쓰려고 애쓰고, 따라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국내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쓰려고 애쓰는데, 그렇게 해서 자산의 보통 이윤을 얻거나 보통 이윤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한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이윤이 같거나 거의 같을 때에 도매 상인은 누구나 자연히 국내 무역을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보다 앞세우고,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을 중계 무역보다 앞세운다. 국내 무역에서는 그의 자본이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서 흔히 그러하듯 그토록 오래 그의 눈길 밖에 놓이는 일이 없다. 그는 자기가 믿고 맡기는 사람들의 됨됨이와 처지를 더 잘 알 수 있고, 어쩌다 속는 일이 있더라도 바로잡아 달라고 찾아가야 할 그 나라의 법을 더 잘 안다. 중계 무역에서는 상인의 자본이 말하자면 두 외국으로 갈라져 있고, 그 어느 부분도 반드시 집으로 들여와 그의 눈길과 손아래에 곧바로 놓이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리스본으로 곡물을 실어 가고 리스본에서 쾨니히스베르크로 과일과 포도주를 실어 오는 데에 암스테르담 상인이 쓰는 자본은 대개 그 절반이 쾨니히스베르크에, 나머지 절반이 리스본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어느 부분도 암스테르담으로 올 까닭이 없다. 그런 상인이 자연히 머물 곳은 쾨니히스베르크나 리스본이어야 하며, 그가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쪽을 앞세우게 만드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정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 자본과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다는 데에서 느끼는 불안이 대개 그로 하여금 리스본 시장에 보내려는 쾨니히스베르크 재화와 쾨니히스베르크 시장에 보내려는 리스본 재화를 얼마씩 암스테르담으로 가져오게 만들며, 이렇게 하면 짐을 싣고 내리는 비용을 두 곱으로 치러야 하고 관세와 세관 비용도 얼마간 물어야 하지만, 제 자본의 얼마를 늘 제 눈길과 손아래에 두려는 마음에서 그는 이 남다른 비용을 기꺼이 치른다. 중계 무역의 적지 않은 몫을 가진 나라가 저마다 늘 그 나라가 무역을 맡아 보는 여러 나라의 재화가 모이는 집산지, 곧 두루 쓰이는 시장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러해서다. 상인은 짐을 두 번 싣고 내리는 것을 아끼려고 그 여러 나라의 재화를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국내 시장에서 팔려고 늘 애쓰며, 그리하여 될 수 있는 데까지 제 중계 무역을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으로 바꾸어 놓는다.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몸을 담은 상인도 이와 같이 외국 시장에 보낼 재화를 모을 때에 이윤이 같거나 거의 같으면 그 가운데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몫을 국내에서 팔게 되는 것을 늘 기뻐한다. 될 수 있는 데까지 소비를 위한 제 외국 무역을 이렇게 국내 무역으로 바꾸어 놓으면 그는 내보내는 위험과 수고를 스스로 덜게 된다. 이렇게 집은 말하자면 어느 나라에서나 주민의 자본이 끊임없이 그 둘레를 돌고 있는 중심이며 그 자본이 늘 향하고 있는 곳인데, 다만 특별한 원인으로 자본이 더러 그곳에서 밀려나 더 먼 쓰임으로 쫓겨 가는 일이 있다. 그러나 이미 보인 대로 국내 무역에 쓰이는 자본은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자본보다 반드시 더 많은 양의 국내 산업을 움직이고 그 나라의 더 많은 주민에게 수입과 일자리를 주며, 소비를 위한 외국 무역에 쓰이는 자본은 중계 무역에 쓰이는 같은 크기의 자본에 대하여 같은 이점을 가진다. 그러므로 이윤이 같거나 거의 같기만 하면 사람마다 자연히 제 자본을 국내 산업을 가장 크게 부양하고 제 나라 사람을 가장 많이 먹여 살릴 듯한 쓰임에 쓰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둘째, 제 자본을 국내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쓰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그 산업을 그 생산물이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큰 가치를 가지도록 이끌려고 애쓴다.

산업의 생산물은 그 산업이 쓰이는 대상이나 재료에 그것이 보태는 것이다. 이 생산물의 가치가 크거나 작은 데에 비례하여 그 산업을 부리는 사람의 이윤도 커지거나 작아진다. 그런데 누구든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자본을 쓰는 것은 오직 이윤 때문이므로, 그는 그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질 듯한, 곧 화폐든 다른 재화든 가장 많은 양과 맞바꿀 듯한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그것을 쓰려고 늘 애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사회에서나 연간 수입은 그 산업의 연간 생산물 전체가 가지는 교환 가치와 언제나 딱 같으며, 아니 그 교환 가치와 딱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제 자본을 국내 산업을 부양하는 데에 쓰려고, 그리고 그 산업을 그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도록 이끌려고 힘껏 애쓰는 만큼, 사람마다 사회의 연간 수입을 될 수 있는 대로 크게 만드는 일에 애쓰지 않을 수 없다. 참으로 그는 대개 공공의 이익을 이루려는 뜻도 없고 자기가 그것을 얼마나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국 산업을 부양하는 것보다 국내 산업을 부양하는 것을 앞세울 때에 그가 뜻하는 것은 제 안전뿐이고, 그 산업을 그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도록 이끌 때에 그가 뜻하는 것은 제 벌이뿐이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제 뜻에는 없었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이바지한다.4 그것이 제 뜻에 없었다고 해서 사회에 늘 더 나쁜 것도 아니다. 제 이익을 좇음으로써 그는 사회의 이익을 참으로 이루려고 뜻할 때보다 그것을 더 잘 이루는 일이 흔하다. 공공의 좋음을 위하여 거래한다고 꾸며 대는 이들이 큰 좋음을 이루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참으로 그것은 상인들 사이에 그리 흔한 꾸밈이 아니므로, 그러지 말라고 그들을 달래는 데에 많은 말이 들 일도 없다.

제 자본이 부릴 수 있는 국내 산업이 어떤 갈래이고 그 가운데 어느 것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질 듯한지는, 사람마다 제가 놓인 고장의 사정에서 어떤 정치가나 입법자가 그를 위하여 판단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잘 판단할 수 있음이 뻔하다. 사사로운 사람들이 제 자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이끌어 보려는 정치가는 아주 쓸데없는 일에 제 눈길을 잔뜩 얹어 놓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어떤 평의회나 원로원에도 안심하고 맡길 수 없는 권한을 제 것으로 삼는 셈인데, 그 권한이 그것을 쓰기에 알맞다고 제 스스로 여길 만큼 어리석고 뻔뻔한 사람의 손에 있을 때보다 더 위험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기술이나 제조업에서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에 국내 시장의 독점을 주는 것은 사사로운 사람들이 제 자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얼마쯤 이끄는 것이며, 거의 모든 경우에 쓸데없거나 해로운 규제일 수밖에 없다.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을 외국 산업이 낸 것과 같은 값으로 그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 규제는 분명히 쓸데없다. 그럴 수 없다면 그것은 대개 해로울 수밖에 없다. 사 오는 것보다 만드는 데에 더 많이 드는 것을 집에서 만들려 들지 않는 것이 신중한 가장이라면 누구나 지키는 격언이다. 재봉사는 제 신발을 만들려 들지 않고 구두장이에게서 사들인다. 구두장이는 제 옷을 만들려 들지 않고 재봉사를 쓴다. 농부는 그 어느 것도 만들려 들지 않고 그 여러 수공업자를 쓴다. 그들 모두가 제 근면을 온통 제 이웃보다 얼마쯤 나은 데가 있는 쪽에 쓰고, 그 생산물의 일부로, 또는 같은 말이 되는 것으로 그 일부의 값으로 그 밖에 아쉬운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사들이는 것이 제 이익이 됨을 알고 있다.

사사로운 집안을 꾸리는 데에서 신중함인 것이 큰 왕국을 꾸리는 데에서 어리석음일 수는 거의 없다. 어떤 외국이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싸게 어떤 상품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쯤 나은 데가 있는 쪽에 쓴 우리 근면이 낸 생산물의 일부로 그들에게서 그것을 사는 편이 낫다. 어느 나라의 산업 전체는 늘 그것을 부리는 자본에 비례하므로 앞에서 말한 수공업자들의 근면이 줄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로 말미암아 줄지 않을 것이며, 다만 가장 큰 이익이 되게 쓰일 길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놓아둘 뿐이다. 만드는 것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물건을 향하여 이렇게 산업이 이끌려 갈 때에 그것은 분명히 가장 큰 이익이 되게 쓰이는 것이 아니다. 산업이 이끌려 가서 만들게 된 상품보다 가치가 더 큰 것이 분명한 상품을 만드는 일에서 이렇게 산업이 돌려세워질 때에 그 연간 생산물의 가치는 분명히 얼마쯤 줄어든다. 앞의 가정에 따르면 그 상품은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싸게 외국에서 사들일 수 있었으니, 같은 크기의 자본이 부린 산업이 저절로 가는 길을 따르도록 놓아두었을 때 국내에서 만들어 냈을 상품의 일부로만, 또는 같은 말이 되는 것으로 그 상품 값의 일부로만 그것을 사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산업은 이렇게 더 이로운 쓰임에서 덜 이로운 쓰임으로 돌려세워지며, 그 연간 생산물의 교환 가치는 입법자가 뜻한 대로 늘어나기는커녕 그런 규제 하나하나로 반드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참으로 그런 규제 덕분에 어떤 특정한 제조업을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일찍 얻는 일이 더러 있고,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것을 국내에서 그 외국과 같은 값으로, 또는 더 싸게 만들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의 산업이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일찍 어떤 특정한 물길로 이롭게 들어갈 수 있다 해도, 그 산업의 총액이든 그 수입의 총액이든 그런 규제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결론은 조금도 따라 나오지 않는다. 사회의 산업은 그 자본이 늘어나는 데에 비례해서만 늘어날 수 있고, 그 자본은 그 수입에서 조금씩 절약해 낼 수 있는 것에 비례해서만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규제가 곧바로 낳는 결과는 그 수입을 줄이는 것이며, 수입을 줄이는 것이 자본과 산업을 다 놓아두어 저절로 제 쓰임을 찾게 했을 때 늘어났을 것보다 더 빨리 자본을 늘려 줄 듯하지는 참으로 않다.

그런 규제가 없어서 사회가 그 마련해 보려던 제조업을 끝내 얻지 못한다 해도, 그 때문에 그 사회가 그 이어짐의 어느 시기에든 반드시 더 가난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어짐의 모든 시기에 그 사회의 자본과 산업 전체는 대상이 달랐을 뿐 그때그때 가장 이로운 쓰임에 그대로 쓰였을 것이다. 모든 시기에 그 수입은 그 자본이 낼 수 있는 가장 큰 것이었을 수 있고, 자본과 수입이 다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늘어났을 수 있다.

어느 나라가 특정한 상품을 만드는 데에서 다른 나라보다 가진 타고난 이점은 더러 너무 커서 그것과 다투어 보는 것이 헛되다는 데에 온 세상이 뜻을 같이한다. 유리 온실과 온상과 더운 담을 쓰면 스코틀랜드에서도 아주 좋은 포도를 길러 낼 수 있고 그것으로 아주 좋은 포도주도 만들 수 있으나, 적어도 그만큼 좋은 것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데에 드는 비용의 서른 배쯤이 든다. 스코틀랜드에서 클라레와 부르고뉴 포도주를 만드는 것을 북돋우려는 그것만으로 외국 포도주의 수입을 모두 금지한다면 그것이 온당한 법이겠는가? 그런데 아쉬운 상품을 같은 양만큼 외국에서 사들이는 데에 드는 것보다 그 나라의 자본과 산업을 서른 배나 어떤 쓰임으로 돌려세우는 것이 뻔한 터무니없음이라면, 그 가운데 어느 쪽이든 30분의 1, 아니 300분의 1만 더 그런 쓰임으로 돌려세우는 것에도 그만큼 눈에 띄지는 않으나 바로 같은 종류의 터무니없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가진 이점이 타고난 것인지 얻은 것인지는 이 점에서 아무 상관이 없다. 한 나라가 그 이점을 가지고 다른 나라가 그것을 갖지 못한 동안에는, 뒤의 나라로서는 앞의 나라에서 만드는 것보다 사는 편이 늘 더 이로울 것이다. 다른 업을 하는 이웃에 대하여 한 수공업자가 가진 이점은 얻은 이점일 뿐인데, 그래도 그 둘 다 제 업에 딸리지 않은 것을 만드는 것보다 서로에게서 사는 편이 더 이롭다고 여긴다.

국내 시장의 이 독점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상인과 제조업자다. 외국 소와 소금절임 식료품의 수입 금지, 그리고 어지간히 넉넉한 때에는 금지와 다름없어지는 외국 곡물에 물리는 높은 관세는, 같은 종류의 다른 규제들이 영국의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이로운 만큼 영국의 목축업자와 농부에게 이롭지는 못하다. 제조품은, 특히 고운 갈래의 제조품은 곡물이나 소보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실어 가기가 쉽다. 그래서 외국 무역이 주로 힘쓰는 것이 제조품을 가져오고 실어 가는 일이다. 제조품에서는 아주 작은 이점만 있어도 외국인들이 국내 시장에서까지 우리 일꾼보다 싸게 팔 수 있다. 흙에서 나는 원생산물에서 그렇게 하려면 아주 큰 이점이 있어야 한다. 외국 제조품의 자유로운 수입이 허락된다면 국내 제조업 여럿이 아마 해를 입고 그 가운데 얼마는 어쩌면 아주 망할 것이며, 지금 거기에 쓰이는 자산과 산업의 적지 않은 몫이 다른 쓰임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흙에서 나는 원생산물을 아무리 자유롭게 들여온다 해도 그 나라의 농업에는 그런 결과가 있을 수 없다.

이를테면 외국 소의 수입이 아무리 자유로워진다 해도 들여올 수 있는 수가 너무 적어서 영국의 목축업이 그로 말미암아 받는 영향은 작을 수밖에 없다. 살아 있는 소는 아마 바다로 실어 가는 것이 땅으로 실어 가는 것보다 비싼 유일한 상품일 것이다. 땅으로는 스스로 걸어서 시장에 간다. 바다로는 소만이 아니라 그 먹이와 물까지 적지 않은 비용과 번거로움을 들여 실어야 한다. 참으로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의 짧은 바다는 아일랜드 소의 수입을 더 쉽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요즈음 한동안만 허락된 그 자유로운 수입이 영구히 이어지게 된다 해도 영국 목축업자의 이익에는 이렇다 할 영향이 있을 수 없다. 아일랜드해에 닿아 있는 영국의 그 지방들은 모두 목축하는 고장이다. 아일랜드 소를 그 고장들에서 쓰려고 들여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고, 제 시장에 다다르기까지 적지 않은 비용과 번거로움을 들여 바로 그 아주 넓은 고장들을 지나 몰려가야 할 것이다. 살진 소는 그토록 멀리 몰아갈 수 없다. 그러므로 여윈 소만 들여올 수 있으며, 그런 수입은 소를 먹이고 살지게 하는 고장의 이익과는 부딪치지 않고, 여윈 소의 값을 내려 주므로 오히려 그 고장에 이로울 것이며, 오직 소를 기르는 고장의 이익과만 부딪칠 것이다. 아일랜드 소의 수입이 허락된 뒤로 들여온 수가 적은 것과 여윈 소가 여전히 좋은 값에 팔리고 있는 것은, 영국에서 소를 기르는 고장조차 아일랜드 소의 자유로운 수입으로 크게 영향을 받을 일이 결코 없을 듯함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참으로 아일랜드의 여느 사람들이 제 소를 내보내는 것에 더러 힘으로 맞섰다고 한다. 그러나 내보내는 이들이 그 거래를 이어 가는 데에 큰 이익이 있다고 여겼다면, 법이 제 쪽에 있었으므로 이 떼 지은 맞섬을 쉽게 눌러 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소를 먹이고 살지게 하는 고장은 늘 크게 개량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데 비하여 소를 기르는 고장은 대개 경작되지 않은 곳이다. 여윈 소의 높은 값은 경작되지 않은 땅의 가치를 키워 주므로 개량을 거스르는 장려금과 같다. 온통 크게 개량된 나라라면 여윈 소를 스스로 기르는 것보다 들여오는 편이 더 이로울 것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지방이 오늘날 이 격언을 따르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와 노섬벌랜드의 산지는 크게 개량될 수 없는 고장이고, 영국에서 소를 기르는 고장이 되도록 자연이 정해 준 곳으로 보인다. 외국 소를 아무리 자유롭게 들여온다 해도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소를 기르는 그 고장들이 이 왕국 나머지 땅의 늘어나는 인구와 개량을 틈타 제 값을 터무니없이 높이 올리고 그 나라의 더 개량되고 경작된 모든 곳에 참된 세금을 물리는 것을 막는 것뿐이다.

소금절임 식료품을 아무리 자유롭게 들여온다 해도 살아 있는 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 목축업자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적을 것이다. 소금절임 식료품은 부피가 아주 큰 상품인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싱싱한 고기에 견주면 질이 더 나쁜 상품이면서 노동과 비용이 더 들어 값이 더 높은 상품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나라의 소금절임 식료품과는 겨룰지 몰라도 싱싱한 고기와 겨루게 될 일은 결코 없다. 그것은 먼 뱃길을 가는 배에 먹을 것을 싣는 데에나 그와 비슷한 데에 쓰일 수 있을 뿐, 사람들의 먹을거리 가운데 이렇다 할 몫을 이룰 일은 결코 없다. 아일랜드에서 소금절임 식료품을 들여오는 것이 자유로워진 뒤로 들여온 양이 적다는 것은 우리 목축업자가 그것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음을 겪어서 보여 주는 증거다. 그것 때문에 푸줏간 고기 값이 느낄 만큼 움직인 적은 없는 듯하다.

외국 곡물의 자유로운 수입조차 영국 농부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작을 것이다. 곡물은 푸줏간 고기보다 부피가 훨씬 큰 상품이다. 1펜스 하는 밀 1파운드(무게)는 4펜스 하는 푸줏간 고기 1파운드(무게)만큼 비싸다. 가장 크게 모자란 때에도 외국 곡물을 들여온 양이 적었다는 것은 아무리 자유롭게 들여온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음을 우리 농부들에게 납득시킬 만하다. 해마다 들여오는 평균 양은 『곡물 거래론』의 아주 잘 아는 지은이에 따르면5 온갖 곡식을 다 합쳐 23,728쿼터에 그치며,6 연간 소비의 571분의 1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곡물에 주는 장려금이 넉넉한 해에 더 많이 내보내게 만드는 만큼, 그것은 그 결과로 모자란 해에 오늘의 갈이 상태에서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이 들여오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것 때문에 한 해의 넉넉함이 다른 해의 모자람을 메워 주지 못하며, 내보내는 평균 양이 그것 때문에 반드시 늘어나는 만큼 오늘의 갈이 상태에서 들여오는 평균 양도 그럴 수밖에 없다. 장려금이 없다면 내보내는 곡물이 줄어드는 만큼 해마다 따져 보아도 들여오는 곡물이 지금보다 줄어들 듯하다. 영국과 외국 사이에서 곡물을 가져오고 실어 가는 이들인 곡물 상인들은 일거리가 훨씬 줄어들어 적지 않은 해를 입을 수 있으나, 시골 지주와 농부는 거의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장려금을 되살리고 이어 가는 것을 가장 애타게 바라는 마음을 내가 본 곳은 시골 지주와 농부보다 오히려 곡물 상인들 쪽이었다.

시골 지주와 농부는, 그들에게 큰 명예가 되는 일로, 모든 사람 가운데 그 딱한 독점의 정신에 가장 덜 물든 이들이다. 큰 제조 공장의 사업가는 같은 종류의 공장이 제게서 20마일 안에 세워지면 더러 놀란다. 아브빌에서 모직 제조업을 벌인 네덜란드 사업가는 같은 종류의 공장이 그 도시에서 30리그 안에는 세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7 이와 달리 농부와 시골 지주는 대개 이웃의 농장과 땅을 경작하고 개량하는 것을 막기보다 도와주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들에게는 제조업자들 대부분이 가진 것과 같은 비밀이 없고, 이롭다고 알아낸 새 농사법이 있으면 그것을 이웃에게 알려 주고 될 수 있는 데까지 널리 퍼뜨리기를 대개 좋아한다. 늙은 카토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경건하고 가장 든든한 벌이이며 시샘을 가장 적게 받는다. 그 일에 힘쓰는 사람들은 나쁜 마음을 가장 적게 품는다.」8 그 나라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시골 지주와 농부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처럼 쉽게 단합할 수 없는데, 이들은 도시에 모여 살면서 거기에 널리 퍼져 있는 그 배타적인 동업조합의 정신에 익어 있으므로, 저마다 제 도시의 주민들에 대하여 대개 가지고 있는 그 배타적 특권을 제 나라 사람 모두에 대하여 얻어 내려고 자연히 애쓴다. 그래서 그들이 제게 국내 시장의 독점을 굳혀 주는 그 외국 재화 수입 묶음을 처음 생각해 낸 이들인 듯하다. 영국의 시골 지주와 농부가 제 처지에 자연스러운 그 너그러움을 잊어버릴 만큼, 제 나라 사람에게 곡물과 푸줏간 고기를 대 주는 배타적 특권을 달라고 하게 된 것은, 아마 그들을 본뜨고 자기들을 짓누르려 드는 것을 본 그 사람들과 같은 자리에 서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마 자기들의 이익이 그 본을 따른 사람들의 이익보다 거래의 자유로 얼마나 덜 영향을 받는지 헤아려 볼 겨를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외국 곡물과 소를 들여오는 것을 영구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그 나라의 인구와 산업이 어느 때에도 그 나라 흙에서 나는 원생산물이 지탱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게 법으로 정하는 것과 참으로 다름없다.

그러나 국내 산업을 북돋우려고 외국 산업에 얼마간 짐을 물리는 것이 대개 이로울 두 경우가 있는 듯하다.

첫째는 어떤 특정한 갈래의 산업이 그 나라의 방어에 꼭 필요한 경우다. 이를테면 영국의 방어는 그 뱃사람과 배의 수에 매우 크게 매여 있다. 그러므로 항해법은 아주 마땅하게도 영국의 뱃사람과 배에 제 나라 거래의 독점을 주려고 애쓰는데, 어떤 경우에는 아주 금지하는 것으로, 다른 경우에는 외국 배에 무거운 짐을 물리는 것으로 그렇게 한다.9 이 법의 주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자와 선장과 뱃사람의 4분의 3이 영국 신민이 아닌 배는 모두 배와 짐을 몰수한다는 벌 아래, 영국의 정착지와 식민 농장으로 거래하는 것이나 영국의 연안 거래에 쓰이는 것이 금지된다.

둘째, 들여오는 물품 가운데 부피가 아주 큰 여러 가지는 위에서 말한 배로만, 또는 그 재화를 만든 나라의 배로서 임자와 선장과 뱃사람의 4분의 3이 그 특정한 나라 사람인 배로만 영국에 들여올 수 있으며, 뒤의 종류의 배로 들여올 때에도 외국인 관세의 두 배를 물린다.10 다른 어느 나라의 배로 들여오면 배와 재화를 몰수하는 벌을 받는다. 이 법이 만들어졌을 때에 네덜란드인은 오늘날에도 그러한 것처럼 유럽의 큰 운송인이었으며, 이 규제로 그들은 영국의 운송인이 되는 것에서도, 다른 어느 유럽 나라의 재화를 우리에게 들여오는 것에서도 아주 밀려났다.

셋째, 들여오는 물품 가운데 부피가 아주 큰 여러 가지는 영국 배로도 그것을 만든 나라가 아닌 어느 나라에서 들여오는 것이 배와 짐을 몰수한다는 벌 아래 금지된다. 이 규제도 아마 네덜란드인을 겨눈 것이었다. 네덜란드는 그때도 오늘처럼 모든 유럽 재화의 큰 집산지였는데, 이 규제로 영국 배는 다른 어느 유럽 나라의 재화도 네덜란드에서 실을 수 없게 되었다.

넷째, 온갖 소금절임 생선과 고래 지느러미와 고래뼈와 기름과 비계는 영국 배에서 잡아 배 위에서 절인 것이 아니면 영국으로 들여올 때에 외국인 관세의 두 배를 물린다. 네덜란드인은 오늘날에도 으뜸이지만 그때에는 유럽에서 외국에 생선을 대 주려고 한 유일한 고기잡이였다. 이 규제로 그들이 영국에 생선을 대는 일에 아주 무거운 짐이 얹혔다.

항해법이 만들어졌을 때에 잉글랜드와 네덜란드는 실제로 전쟁을 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두 나라 사이에는 가장 격한 미움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이 법을 처음 만든 장기 의회가 다스리던 때에 시작되었고, 얼마 뒤 호국경과 찰스 2세가 다스리던 때에 네덜란드 전쟁으로 터져 나왔다.11 그러므로 이 이름난 법의 규제 가운데 얼마는 나라들 사이의 미움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온통 가장 사려 깊은 슬기가 시킨 것이었다 해도 그만큼은 슬기롭다. 그 특정한 때에 나라들 사이의 미움이 겨눈 것은 가장 사려 깊은 슬기가 권했을 바로 그 목표, 곧 잉글랜드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군 세력인 네덜란드의 해군 세력을 줄이는 것이었다.

항해법은 외국 상업에 이롭지 않고, 거기서 자라날 수 있는 그 풍요에도 이롭지 않다. 어느 나라가 외국과 맺는 상업 관계에서 가지는 이익은 상인이 저와 거래하는 여러 사람에 대하여 가지는 이익과 마찬가지로 될 수 있는 대로 싸게 사고 될 수 있는 대로 비싸게 파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나라가 가장 싸게 살 듯한 때는 가장 온전한 거래의 자유로 저에게 사들일 일이 있는 재화를 모든 나라가 가져오도록 북돋울 때이며, 같은 이유로 가장 비싸게 팔 듯한 때는 그렇게 제 시장이 가장 많은 사는 이로 가득 찰 때다. 참으로 항해법은 영국 산업이 낸 생산물을 내보내려고 오는 외국 배에는 아무 짐도 물리지 않는다. 들여오는 재화만이 아니라 내보내는 재화에도 모두 물리던 그 오래된 외국인 관세조차 그 뒤 여러 법으로 내보내는 물품의 큰 몫에서는 걷히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금지나 높은 관세로 팔러 오는 것을 막히면 그들은 사러 올 여유도 늘 있을 수 없는데, 짐을 싣지 않고 오면 제 나라에서 영국까지의 운임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파는 이의 수를 줄이면 우리는 사는 이의 수도 줄이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거래의 자유가 더 온전할 때보다 외국 재화를 더 비싸게 사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것을 더 싸게 팔게 될 듯하다. 그러나 방어가 풍요보다 훨씬 더 중요하므로 항해법은 아마 잉글랜드의 모든 상업 규제 가운데 가장 슬기로운 것이다.

국내 산업을 북돋우려고 외국 산업에 얼마간 짐을 물리는 것이 대개 이로울 둘째 경우는, 국내에서 뒤의 것이 낸 생산물에 어떤 세금이 물려 있는 때다. 이 경우에는 앞의 것이 낸 같은 생산물에도 같은 세금을 물리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 이렇게 하면 국내 산업에 국내 시장의 독점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 나라의 자산과 노동 가운데 저절로 갈 만한 몫보다 더 큰 몫을 어떤 특정한 쓰임으로 돌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저절로 그 쓰임으로 갈 것의 얼마가 그 세금 때문에 덜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돌려세워지는 것을 막을 뿐이고, 세금을 물린 뒤에도 외국 산업과 국내 산업 사이의 겨룸을 될 수 있는 대로 그 전과 같은 자리에 두게 할 뿐이다. 영국에서는 국내 산업이 낸 생산물에 그런 세금이 물릴 때에, 국내에서 더 싸게 팔리게 된다고 시끄럽게 하소연하는 우리 상인과 제조업자의 입을 막으려고 같은 종류의 모든 외국 재화의 수입에 훨씬 더 무거운 관세를 물리는 것이 예사다.

어떤 사람들에 따르면 거래의 자유에 두는 이 둘째 제한은 대부분의 경우에 국내에서 세금이 물린 상품과 겨루게 될 바로 그 외국 상품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멀리까지 늘려야 한다. 그들이 내세우는 바로는, 어느 나라에서 생필품에 세금이 물렸으면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같은 생필품만이 아니라 국내 산업이 낸 무엇과든 겨루게 될 온갖 외국 재화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마땅해진다. 그들 말로는 그런 세금 때문에 생계가 반드시 비싸지고, 노동의 값은 늘 노동자의 생계 값과 함께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내 산업이 낸 상품은 저마다 곧바로 세금이 물리지 않았다 해도 그런 세금 때문에 비싸지는데, 그것을 만드는 노동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들 말로는 그러므로 그런 세금은 국내에서 만드는 상품 하나하나에 물리는 세금과 참으로 맞먹는다. 그러므로 국내 산업을 외국 산업과 같은 자리에 두려면 외국 상품마다 그것이 겨루게 될 국내 상품의 값이 이렇게 올라간 만큼의 관세를 물리는 것이 꼭 필요해진다고 그들은 여긴다.

영국에서 비누와 소금과 가죽과 양초 따위에 물리는 것과 같은 생필품 세금이 노동의 값을, 따라서 다른 모든 상품의 값을 반드시 올리는지는 뒤에 세금을 다룰 때에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그런 결과가 있다고 보아 두자. 참으로 그런 결과가 있기는 하다. 그 노동 때문에 모든 상품의 값이 이렇게 두루 올라가는 경우는, 어떤 특정한 상품에 곧바로 물린 특정한 세금 때문에 그 상품의 값이 올라간 경우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첫째, 그런 세금 때문에 그런 상품의 값이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는 늘 아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의 값이 두루 올라간 것이 노동이 쓰인 여러 상품의 값에 저마다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웬만큼이라도 정확히 알아낼 길이 결코 없었다. 그러므로 외국 상품마다 물릴 세금을 국내 상품마다 올라간 값에 웬만큼이라도 정확히 맞추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둘째, 생필품 세금은 사람들의 처지에 메마른 흙과 나쁜 날씨와 거의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 때문에 식료품이 비싸지는 것은 그것을 길러 내는 데에 남다른 노동과 비용이 드는 경우와 다름없다. 흙과 날씨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모자람 속에서 사람들에게 제 자본과 산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끌어 주려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이라면, 그런 세금에서 오는 만들어진 모자람 속에서도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다. 될 수 있는 대로 제 산업을 제 처지에 맞추어 보고, 그 나쁜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국내 시장에서든 외국 시장에서든 얼마쯤 이점을 가질 만한 쓰임을 찾아내도록 그들을 놓아두는 것이 두 경우에 다 분명히 그들에게 가장 이로울 것이다. 그들이 이미 세금에 짓눌려 있고 이미 생필품에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새 세금을 물려 다른 상품의 큰 몫에도 너무 비싼 값을 치르게 만드는 것은, 참으로 그 잘못을 메우는 가장 터무니없는 길이다.

그런 세금이 어느 높이까지 자라나면 그것은 땅이 메마른 것이나 하늘이 거친 것과 맞먹는 저주가 되는데, 그러면서도 그런 세금을 가장 두루 물려 온 곳은 가장 걸차고 가장 근면한 나라들이었다. 다른 어느 나라도 그토록 큰 어지러움을 버텨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튼튼한 몸만이 몸에 해로운 섭생 아래에서 살고 건강을 누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온갖 갈래의 산업에서 타고난 이점과 얻은 이점을 가장 많이 가진 나라들만이 그런 세금 아래에서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그런 세금이 가장 많은 나라이면서 남다른 사정 덕에 계속 번영하고 있는데, 아주 터무니없이 짐작되어 온 것처럼 그 세금 덕분이 아니라 그 세금에도 아랑곳없이 그러하다.

국내 산업을 북돋우려고 외국 산업에 얼마간 짐을 물리는 것이 대개 이로울 두 경우가 있듯이, 더러 헤아려 보아야 할 일이 되는 다른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어떤 외국 재화의 자유로운 수입을 이어 가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유로운 수입이 한동안 끊긴 뒤에 그것을 얼마나, 또는 어떻게 되살리는 것이 온당한가 하는 것이다.

어떤 외국 재화의 자유로운 수입을 이어 가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지 더러 헤아려 보아야 할 경우는, 어떤 외국이 높은 관세나 금지로 우리 제조품 얼마가 제 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묶을 때다. 이 경우에 복수심은 자연히 되갚음을 시키며, 우리도 그들의 제조품 얼마나 그 모두가 우리 나라로 들어오는 것에 같은 관세와 금지를 물리도록 시킨다. 그래서 나라들은 이렇게 되갚는 일을 거르는 때가 드물다. 프랑스인들은 저와 겨루게 될 외국 재화의 수입을 묶어 제 제조품을 감싸는 데에 유별나게 앞장서 왔다. 콜베르 씨의 정책 가운데 큰 몫이 여기에 있었으니, 그는 큰 재능을 가졌음에도 이 경우에는 제 나라 사람을 겨눈 독점을 늘 요구하는 상인과 제조업자들의 궤변에 속아 넘어간 듯하다.12 이런 갈래의 그의 조치가 제 나라에 이롭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날 프랑스에서 가장 사리를 아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 대신은 1667년의 관세표로 아주 많은 외국 제조품에 매우 높은 관세를 물렸다. 그가 네덜란드인을 위하여 그것을 낮추어 주기를 마다하자 그들은 1671년에 프랑스의 포도주와 브랜디와 제조품의 수입을 금지하였다. 1672년의 전쟁은 얼마쯤 이 통상 다툼에서 비롯한 듯하다. 1678년의 네이메헌 평화 조약이 네덜란드인을 위하여 그 관세 얼마를 낮추어 그것을 끝냈고, 네덜란드인은 그에 따라 제 금지를 거두었다. 프랑스인과 잉글랜드인이 같은 관세와 금지로 서로의 산업을 짓누르기 시작한 것도 거의 같은 무렵이었는데, 다만 프랑스인이 먼저 그 본을 보인 듯하다. 그 뒤로 두 나라 사이에 놓여 있는 맞섬의 기운이 여태까지 어느 쪽에서도 그것을 낮추지 못하게 막아 왔다. 1697년에 잉글랜드는 플란데런의 제조품인 본 레이스의 수입을 금지하였다. 그때 스페인의 지배 아래 있던 그 나라 정부는 그 보답으로 잉글랜드 모직물의 수입을 금지하였다. 1700년에 본 레이스를 잉글랜드로 들여오는 금지가 풀렸는데, 잉글랜드 모직물을 플란데런으로 들여오는 것을 전과 같은 자리에 되돌린다는 조건이었다.

하소연의 대상인 그 높은 관세나 금지를 거두게 할 듯한 개연성이 있을 때에는 이런 갈래의 되갚음에 좋은 정책이 있을 수 있다. 큰 외국 시장을 되찾는 것은 어떤 갈래의 재화에 짧은 동안 더 비싼 값을 치르는 잠깐의 번거로움을 대개 넘고도 남게 메워 준다. 그런 되갚음이 그런 결과를 낳을 듯한지 판단하는 일은, 언제나 한결같은 두루 쓰이는 원칙에 따라 헤아려야 하는 입법자의 학문에 속하기보다는, 그날그날의 일이 오르내리는 데에 따라 방책이 이끌리는, 흔히 정치가니 정객이니 부르는 그 음흉하고 약삭빠른 동물의 솜씨에 속하는 듯하다. 그런 철회를 얻어 낼 개연성이 없을 때에는, 우리 사람들 가운데 어떤 층이 입은 해를 메우려고 우리 스스로 그 층만이 아니라 거의 다른 모든 층에도 또 하나의 해를 입히는 것은 나쁜 길로 보인다. 우리 이웃이 우리 제조품 얼마를 금지하면 우리는 대개 같은 것만 금지하지 않고, 그것만으로는 그들에게 이렇다 할 영향을 주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들의 다른 제조품 얼마를 금지한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 가운데 어떤 특정한 층의 일꾼에게 격려를 줄 수 있고, 그 맞수 얼마를 몰아내어 그들이 국내 시장에서 제 값을 올리게 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이웃의 금지로 해를 입은 그 일꾼들은 우리의 금지로 이익을 얻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과 우리 시민의 거의 모든 다른 층이 그 때문에 어떤 재화에 전보다 비싼 값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법마다 온 나라에 참된 세금을 물리는 셈인데, 우리 이웃의 금지로 해를 입은 그 특정한 층의 일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층을 위해서다.

외국 재화의 자유로운 수입이 한동안 끊긴 뒤에 그것을 얼마나, 또는 어떻게 되살리는 것이 온당한지 더러 헤아려 보아야 할 경우는, 저와 겨루게 될 모든 외국 재화에 물린 높은 관세나 금지 덕에 어떤 특정한 제조업이 아주 많은 사람을 부릴 만큼 커진 때다. 이 경우에는 인간다움이 거래의 자유를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리고 적잖은 조심과 신중함을 가지고서만 되살리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 높은 관세와 금지를 한꺼번에 걷어 버리면 같은 종류의 더 싼 외국 재화가 국내 시장으로 그토록 빠르게 쏟아져 들어와 우리 사람 수천이 제 여느 일자리와 생계의 길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다. 이것이 가져올 어지러움은 참으로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이유로 그것은 흔히 짐작되는 것보다 아마 훨씬 작을 것이다.

첫째, 장려금 없이 그 일부가 여느 때에 유럽의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는 제조품은 모두 외국 재화를 아무리 자유롭게 들여온다 해도 받는 영향이 아주 작을 것이다. 그런 제조품은 같은 질과 종류의 다른 외국 재화와 같은 값으로 밖에서 팔릴 수밖에 없으므로 국내에서는 그보다 싸게 팔릴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내 시장을 그대로 지킬 것이며, 변덕스러운 멋쟁이가 더러 외국 물건이라는 그것만으로 국내에서 만든 더 싸고 더 좋은 같은 종류의 재화보다 그것을 앞세울 수는 있겠으나, 이 어리석음은 일의 성질로 보아 그토록 적은 사람에게만 미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의 일자리 전체에 느낄 만한 자취를 남길 수 없다. 그런데 우리 모직 제조업의 여러 갈래와 다룸가죽과 철물 가운데 큰 몫이 아무 장려금 없이 해마다 유럽의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으며, 이것이 가장 많은 사람을 부리는 제조업이다. 이 거래의 자유로 가장 크게 해를 입을 제조업은 아마 비단이고, 그다음이 아마포이지만 뒤의 것은 앞의 것보다 훨씬 덜할 것이다.

둘째, 이렇게 거래의 자유를 되살림으로써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제 여느 일자리와 늘 해 오던 생계의 길에서 밀려난다 해도, 그들이 그 때문에 일자리도 생계도 다 잃는다는 결론은 조금도 따라 나오지 않는다. 지난 전쟁이 끝날 때에 육군과 해군을 줄임으로써 가장 큰 제조업에 쓰이는 수와 맞먹는 100,000명이 넘는 군인과 뱃사람이 한꺼번에 제 여느 일자리에서 밀려났다.13 그러나 그들이 얼마간 번거로움을 겪은 것에는 의심이 없으나 그 때문에 일자리와 생계를 다 잃지는 않았다. 뱃사람의 큰 몫은 아마 틈이 나는 대로 조금씩 상선 일로 옮겨 갔을 것이고, 그동안 그들과 군인들은 사람들의 큰 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아주 여러 가지 일에 쓰였다. 모두 무기를 다루는 데에 익었고 그 가운데 많은 이가 노략과 약탈에도 익었던 100,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처지에 그토록 큰 변화가 일어났으나 큰 격변은커녕 느낄 만한 어지러움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떠돌이의 수가 어디서도 느낄 만큼 늘어난 곳이 거의 없었고, 내가 알아낼 수 있었던 한에서는 상선의 뱃사람 일을 빼면 어느 일에서도 노동의 임금이 그것 때문에 내려가지 않았다. 그런데 군인의 익은 버릇과 어느 갈래든 제조업자의 익은 버릇을 견주어 보면, 뒤의 것이 그 사람을 새 업에 쓰이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가 앞의 것이 그 사람을 어느 업에도 쓰이지 못하게 만드는 정도만큼 크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제조업자는 제 생계를 제 노동에서만 찾는 데에 늘 익어 있었고 군인은 제 삯에서 그것을 바라는 데에 익어 있었다. 한쪽에는 끈기와 근면이 익숙했고 다른 쪽에는 게으름과 방탕이 익숙했다. 그런데 근면을 한 갈래의 노동에서 다른 갈래로 돌리는 것이 게으름과 방탕을 어디로든 돌리는 것보다 확실히 훨씬 쉽다. 게다가 이미 말한 대로 제조업의 큰 몫에는 성질이 아주 비슷한 다른 곁가지 제조업이 있어서 일꾼이 제 근면을 그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쉽게 옮겨 갈 수 있다. 그런 일꾼의 큰 몫도 더러 시골일에 쓰인다. 전에 그들을 어떤 특정한 제조업에 쓰던 그 자산은 그 나라에 그대로 남아 같은 수의 사람을 다른 데에 쓸 것이다. 그 나라의 자본이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노동에 대한 수요도 그대로이거나 거의 그대로일 것이며, 다만 다른 곳에서 다른 일에 쓰일 수 있다. 참으로 군인과 뱃사람은 국왕의 복무에서 풀려나면 영국이나 아일랜드의 어느 도시나 어느 곳에서든 어떤 업이든 할 자유를 가진다. 군인과 뱃사람에게 하듯이 국왕의 모든 신민에게도 제가 하고 싶은 갈래의 산업을 할 그 타고난 자유를 되돌려 주라. 곧 동업조합의 배타적 특권을 깨뜨리고 도제법을 폐지하라. 이 둘은 참으로 타고난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주법의 폐지를 보태어, 가난한 일꾼이 한 업에서든 한 곳에서든 일자리를 잃었을 때에 기소나 쫓겨남을 겁내지 않고 다른 업이나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아볼 수 있게 하라.14 그러면 어떤 특정한 층의 제조업자가 더러 풀려나는 일로 나라도 개인도 군인이 풀려나는 일에서보다 훨씬 더 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제조업자들이 제 나라에 큰 공이 있음에는 의심이 없으나, 그 나라를 제 피로 지키는 이들보다 더 큰 공이 있을 수는 없고 더 조심스럽게 대접받을 만하지도 않다.

참으로 거래의 자유가 영국에서 온전히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것은 오세아나나 유토피아가 거기에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만큼 터무니없다.15 여느 사람들의 선입견만이 아니라 훨씬 더 누를 수 없는 것인 많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그것에 맞선다. 제조업 고용주들이 국내 시장에서 제 맞수의 수를 늘릴 듯한 법마다 맞서는 그 열성과 한마음으로 육군 장교들이 병력을 줄이는 데에 맞선다면, 그리고 뒤의 이들이 제 일꾼을 부추기듯이 앞의 이들이 제 군인을 부추겨 그런 규제를 내놓는 이들을 힘과 난동으로 치게 한다면, 육군을 줄여 보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제조업자들이 우리를 겨누어 얻어 낸 그 독점을 어느 면으로든 줄여 보려는 것이 그렇게 된 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될 것이다. 이 독점은 그들 가운데 어떤 특정한 무리의 수를 그토록 많이 늘려 놓아서, 그들은 너무 커진 상비군처럼 정부에도 만만찮은 존재가 되었고 여러 경우에 입법부를 위협한다. 이 독점을 굳히려는 제안마다 받쳐 주는 의회 의원은 거래를 안다는 평판을 얻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수와 부로 큰 힘을 가진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큰 인기와 세력을 얻는 것이 틀림없다. 이와 달리 그가 그들에게 맞서면, 더구나 그들을 꺾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널리 인정받은 곧음도 아무리 높은 신분도 아무리 큰 공로도, 노여워하고 뜻이 꺾인 독점가들의 무람없는 난동에서 나오는 가장 더러운 욕설과 헐뜯음에서, 몸으로 받는 모욕에서, 더러는 참된 위험에서 그를 지켜 주지 못한다.

큰 제조업의 사업가가 국내 시장이 갑자기 외국인의 겨룸에 열려 제 업을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그는 참으로 적지 않은 해를 입을 것이다. 그의 자본 가운데 여느 때에 재료를 사들이고 일꾼에게 삯을 치르는 데에 쓰이던 부분은 아마 큰 어려움 없이 다른 쓰임을 찾을 수 있겠으나, 작업장과 일하는 기구에 붙박여 있던 부분은 적지 않은 손실 없이는 처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익을 온당하게 살피자면 이런 갈래의 변화는 결코 갑자기 들여오지 말고 느리게 조금씩, 그리고 아주 오래 미리 알린 뒤에 들여와야 한다. 입법부의 헤아림이 치우친 이익들의 시끄러운 조름이 아니라 두루 좋음을 널리 내다보는 눈으로 늘 이끌릴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에 입법부는 이런 갈래의 새 독점을 세우지도 말고 이미 세워진 것을 더 넓히지도 말도록 아마 유별나게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 규제마다 나라의 틀에 얼마쯤 참된 어지러움을 들여오는데, 그것은 뒤에 또 하나의 어지러움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고치기 어려울 것이다.

외국 재화를 들여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세입을 걷으려고 그것을 들여오는 데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 얼마나 온당한지는 뒤에 세금을 다룰 때에 살펴볼 것이다. 들여오는 것을 막거나 줄이려는 뜻으로 물리는 세금은 분명히 거래의 자유를 무너뜨리는 만큼 관세 세입도 무너뜨린다.

주

  1. 1. 옮긴이 —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그로트는 4펜스에 해당하는 은화로, 17세기 중엽 뒤로는 거의 주조되지 않았다.

  2. 2. 옮긴이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1602년에, 잉글랜드 동인도회사는 1600년에 세워졌다. 두 회사 모두 제 나라의 동인도 거래를 혼자 맡는 배타적 특권을 나라에서 받았다.

  3. 3. 옮긴이 — 관세 환급은 이미 물린 관세나 소비세를 그 재화를 다시 내보낼 때에 되돌려 주는 것이다. 소비세는 국내에서 만들어 국내에서 소비하는 물건에 물리는 세금이고, 관세는 국경을 넘는 재화에 물리는 세금이다.

  4. 4. 옮긴이 — 「보이지 않는 손」은 《국부론》 전권 379,794단어 가운데 이 한 자리에만 나온다. 같은 저자의 《도덕감정론》에도 한 번 나오며, 그 책은 에테르 라이브러리에 완역되어 있다.

  5. 5. 옮긴이 — 『곡물 거래론』(1766)의 지은이는 찰스 스미스(1713~1777)로, 애덤 스미스와 다른 사람이다. 영국의 곡물 수출입 통계를 모아 놓은 책이다.

  6. 6. 옮긴이 — 쿼터는 곡물을 되는 단위로 약 291리터, 밀로는 약 8부셸에 해당한다. 네 분의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7. 7. 옮긴이 — 리그는 걸어서 한 시간쯤 가는 거리를 재던 단위로, 프랑스에서는 대략 4킬로미터에 해당하였다. 아브빌은 프랑스 북부의 도시로, 17세기에 네덜란드 사람 판 로베가 왕실의 특권을 받아 모직 공장을 세운 곳이다.

  8. 8. 옮긴이 — 늙은 카토는 마르쿠스 포르키우스 카토(기원전 234~149)로, 로마의 정치가이며 농사를 다룬 『농업론』을 남겼다. 스미스가 인용한 것은 그 책 머리말의 라틴어 구절이다.

  9. 9. 옮긴이 — 항해법은 1651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1660년에 다시 정해진 법으로, 영국과 그 식민지로 드나드는 재화를 영국 배로만, 그리고 대부분 영국 뱃사람으로 싣도록 정했다. 뱃사람과 배의 수를 늘리려는 뜻이 있었다.

  10. 10. 옮긴이 — 외국인 관세는 외국인이 임자인 배로 들여오거나 내보내는 재화에 영국 신민의 배보다 더 물린 관세다. 19세기에 없어졌다.

  11. 11. 옮긴이 — 장기 의회는 1640년에 모여 1653년까지 이어진 잉글랜드 의회로, 1651년에 항해법을 처음 만들었다. 호국경은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 1653년부터 쓴 칭호이고, 찰스 2세(1630~1685)는 1660년에 왕위에 올랐다. 네덜란드 전쟁은 두 나라가 1652년부터 1654년까지, 그리고 1665년부터 1667년까지 벌인 해전을 말한다.

  12. 12. 옮긴이 — 장바티스트 콜베르(1619~1683)는 루이 14세의 재무 총감으로 프랑스의 제조업과 무역을 이끌었다. 네이메헌 평화 조약은 1678년에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전쟁을 끝낸 조약이다.

  13. 13. 옮긴이 — 스미스가 「지난 전쟁」이라 부른 것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이어진 7년 전쟁이다. 파리 조약으로 끝난 뒤 영국은 육군과 해군을 크게 줄였다.

  14. 14. 옮긴이 — 도제법은 엘리자베스 치세 5년의 법 제4장(1563년)으로, 여왕이 왕위에 오른 뒤 다섯째 해에 통과된 법이라는 뜻이다. 여러 업에서 7년 도제살이를 마치지 않은 사람이 그 업을 하는 것을 막았다. 정주법은 1662년부터 여러 차례 고쳐진 법으로, 빈민 구제를 받을 자격을 한 교구에 묶어 두어 일꾼이 다른 교구로 옮겨 가 일자리를 찾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동업조합의 배타적 특권은 도시마다 조합원이 아닌 사람이 그 업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15. 15. 옮긴이 — 오세아나는 제임스 해링턴(1611~1677)이 1656년에 낸 『오세아나 공화국』에 그린 나라이고,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1478~1535)가 1516년에 낸 책에 그린 섬나라다. 둘 다 있을 수 없는 나라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