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에 따른 임금과 이윤에 대하여 (이어서)
그런 노동의 생산물은 그 성질에 걸맞을 값보다 더 헐하게 시장에 나오는 일이 흔하다. 스코틀랜드의 여러 곳에서 양말은 어디서 베틀로 짠 것보다도 훨씬 헐하게 떠 낸다. 그것은 생계의 큰 몫을 다른 일자리에서 얻는 하인과 노동자의 손일이다. 셰틀랜드 양말은 해마다 천 켤레가 넘게 리스로 들어오는데, 값은 한 켤레에 5펜스에서 7펜스 사이다.1 셰틀랜드제도의 작은 중심지인 러윅에서는 흔한 노동의 흔한 값이 하루 10펜스라고 나는 확실히 들었다. 그런데 같은 섬에서 그들은 한 켤레에 1기니가 넘는 값이 나가는 소모사 양말을 떠 낸다.
스코틀랜드에서 아마실을 잣는 일은 양말을 뜨는 일과 거의 같은 길로 이루어지는데, 주로 다른 목적으로 고용된 하인들이 그 일을 한다. 이 두 생업 가운데 어느 하나로 살아갈 길을 찾으려는 이들은 아주 빈약한 생계밖에 벌지 못한다. 스코틀랜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한 주에 20펜스를 벌 수 있으면 잘 잣는 사람이다.
넉넉한 나라에서는 시장이 대개 워낙 넓으므로 어느 한 생업만으로도 그 생업에 몸담은 이들의 노동과 자산을 모두 부리기에 넉넉하다. 한 일자리로 살아가면서 그와 함께 다른 일자리에서 얼마쯤 작은 이득을 얻는 사람들의 사례는 주로 가난한 나라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어떤 것을 아주 부유한 나라의 중심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에서 런던보다 집세가 비싼 도시는 없다고 나는 믿는데, 그러면서도 가구가 딸린 셋방을 그렇게 헐하게 얻을 수 있는 중심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셋방은 런던이 파리보다 훨씬 헐할 뿐만 아니라, 같은 정도로 좋은 것을 놓고 보면 에든버러보다도 훨씬 헐하다. 그리고 유별나게 보일지 모르나, 집세가 비싼 것이야말로 셋방이 헐한 원인이다. 런던에서 집세가 비싼 것은 큰 중심지라면 어디서나 집세를 비싸게 만드는 원인들, 곧 노동이 비싼 것, 대개 먼 곳에서 실어 와야 하는 건축 자재가 모두 비싼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땅에 붙는 지대가 비싼 것에서 나오는데, 여기서는 지주마다 독점자의 몫을 하여 도시의 나쁜 땅 한 에이커에 시골의 가장 좋은 땅 백 에이커에서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지대를 물리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쯤은 그 나라 사람들의 유별난 몸가짐과 관습에서도 나오는데, 그 관습은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집 하나를 위에서 아래까지 통째로 세내도록 강요한다. 잉글랜드에서 살림집이라 하면 한 지붕 밑에 든 모든 것을 뜻한다. 프랑스와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유럽의 여러 곳에서는 그것이 한 층을 뜻하는 데 그치는 일이 흔하다. 런던의 장사꾼은 제 손님들이 사는 동네에서 집 하나를 통째로 세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가게는 1층에 있고 그와 그 식구는 다락에서 잠을 자며, 그는 가운데 두 층을 세놓아 집세의 얼마를 물려고 애를 쓴다. 그는 셋방꾼이 아니라 제 장사로 식구를 먹여 살릴 것을 바란다. 그런데 파리와 에든버러에서는 방을 놓는 사람들에게 다른 생계 수단이 없는 것이 흔하니, 방값이 그 집의 집세만이 아니라 그 집안의 살림비 전부를 물어 내야 한다.
2절 — 유럽의 정책이 낳은 불평등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가 지닌 이로움과 해로움 전체에 걸쳐, 앞에서 말한 세 요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어긋날 때 가장 온전한 자유가 있는 곳에서조차 반드시 생겨나는 불평등이 이러하다. 그런데 유럽의 정책은 일을 온전한 자유에 맡겨 두지 않음으로써 훨씬 더 중대한 다른 불평등들을 낳는다.
그것은 주로 다음 세 길로 그렇게 한다. 첫째, 어떤 일자리에서는 그러지 않았더라면 들어오려 했을 사람보다 적은 수로 경쟁을 묶어 둔다. 둘째, 다른 일자리에서는 저절로 그러할 정도를 넘어서까지 경쟁을 늘린다. 셋째, 노동과 자산이 일자리에서 일자리로, 또 곳에서 곳으로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가로막는다.
첫째, 유럽의 정책은 어떤 일자리에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들어오려 했을 사람보다 적은 수로 경쟁을 묶어 둠으로써,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가 지닌 이로움과 해로움 전체에 아주 중대한 불평등을 낳는다.
동업조합이 쥔 배타적 특권이 그 정책이 이 목적에 쓰는 주된 수단이다.
동업조합을 이룬 생업이 쥔 배타적 특권은 그 조합이 자리 잡은 도시에서 경쟁을 그 생업의 자유를 지닌 이들에게로 반드시 묶어 둔다. 그 도시에서 제대로 자격을 갖춘 고용주 밑에 도제살이를 마쳤다는 것이 이 자유를 얻는 데 필요한 요건인 것이 흔하다. 동업조합의 내규는 고용주 한 사람이 둘 수 있는 도제의 수를 정하는 일이 더러 있고, 도제마다 몇 해를 채워야 하는지는 거의 언제나 정해 둔다. 두 규정의 뜻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생업에 들어오려 했을 사람보다 훨씬 적은 수로 경쟁을 묶어 두려는 것이다. 도제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곧바로 경쟁을 묶는다. 도제살이의 기간이 긴 것은 좀 더 에돌아 묶기는 하나, 가르침에 드는 비용을 늘림으로써 그만큼 톡톡히 묶는다.
셰필드에서는 동업조합의 내규에 따라 어느 칼장이 고용주도 한 번에 도제를 한 명 넘게 둘 수 없다. 노퍽과 노리치에서는 어느 직조 고용주도 도제를 둘 넘게 두면 한 달에 5파운드를 국왕에게 물어야 한다. 잉글랜드나 잉글랜드의 식민지 어디에서도 어느 모자 만드는 고용주는 도제를 둘 넘게 둘 수 없으며, 그러면 한 달에 5파운드를 물어 그 절반은 국왕에게, 절반은 기록 법원에 소를 낸 이에게 돌아간다. 이 두 규정은 왕국의 공법으로 굳어졌으나, 셰필드의 내규를 만들어 낸 것과 똑같은 동업조합 기질이 불러 준 것임이 뚜렷하다. 런던의 비단 직조공들은 동업조합이 된 지 겨우 한 해가 될 무렵에 어느 고용주도 한 번에 도제를 둘 넘게 두지 못하도록 묶는 내규를 만들었다. 이 내규를 물리려면 의회의 특별한 법이 따로 있어야 했다.
7년이라는 것이 예로부터 유럽 어디서나 동업조합을 이룬 생업 대부분에서 도제살이가 이어지는 기간으로 정해져 있던 듯하다. 그런 조합은 모두 예전에 우니베르시타스라고 불렸는데, 이것은 실로 어떤 조합이든 가리키는 제대로 된 라틴어 이름이다.2 대장장이의 우니베르시타스, 재봉장이의 우니베르시타스 따위는 옛 도시들의 낡은 특허장에서 우리가 흔히 만나는 표현이다. 이제 유별나게 대학이라 불리는 그 특정한 조합들이 처음 세워질 때, 문학 석사 학위를 얻으려고 공부해야 했던 햇수는 흔한 생업의 도제살이 기간을 그대로 본뜬 것임이 뚜렷해 보이며, 그런 생업의 조합이 훨씬 더 오래된 것이었다. 누구든 흔한 생업에서 고용주가 되어 스스로 도제를 두려면 제대로 자격을 갖춘 고용주 밑에서 7년을 일하였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교양 학문에서 스승이나 선생이나 박사(예전에는 같은 뜻의 낱말들이었다)가 되어 제 밑에서 공부할 학생이나 도제(이 또한 본디 같은 뜻의 낱말들이었다)를 두려면 제대로 자격을 갖춘 스승 밑에서 7년을 공부하였어야 했다.
흔히 도제법이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치세 5년의 법으로,3 앞으로는 누구도 그때 잉글랜드에서 이루어지던 생업이나 기술이나 비법을4 적어도 7년의 도제살이를 먼저 마치지 않고서는 행할 수 없다고 정하여졌다. 그리하여 그전까지 개별 동업조합 여럿의 내규였던 것이 잉글랜드에서는 장이 서는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생업에 걸친 일반 공법이 되었다. 이 법령의 말은 아주 두루뭉술하여 왕국 전체를 담은 듯이 뚜렷이 보이지만, 해석으로 그 효력은 장이 서는 도시로 한정되었다. 시골 마을에서는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다른 생업을 각각 7년씩 도제살이하지 않고서도 행할 수 있다고 보았으니, 그 생업들이 주민의 편의를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다 사람 수가 생업마다 따로 일손을 댈 만큼 넉넉하지 못한 일이 흔하였기 때문이다. 말을 엄하게 새긴 탓에 이 법령의 효력은 엘리자베스 치세 5년 이전에 잉글랜드에서 자리 잡았던 생업으로도 한정되었고, 그 뒤에 들어온 생업에는 한 번도 미치지 않았다. 이 한정은 여러 가지 구별을 낳았는데, 그것을 행정의 규칙으로 놓고 보면 좀처럼 더 어리석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어 보인다. 예컨대 마차 만드는 이는 제 마차 바퀴를 스스로 만들 수도 없고 직인을 부려 만들게 할 수도 없으며 수레바퀴장이 고용주에게서 사야 한다고 판결되었으니, 이 뒤엣것은 엘리자베스 치세 5년 이전에 잉글랜드에서 이루어진 생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레바퀴장이는 마차 만드는 이에게 도제살이를 한 적이 없어도 마차를 스스로 만들 수도 있고 직인을 부려 만들게 할 수도 있으니, 마차 만드는 생업은 그 법이 만들어질 때 잉글랜드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법령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맨체스터와 버밍엄과 울버햄프턴의 제조업은 그 가운데 많은 것이 이런 까닭으로 법령에 들지 않으니, 엘리자베스 치세 5년 이전에 잉글랜드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도제살이의 기간은 도시마다 생업마다 다르다. 파리에서는 아주 많은 생업에서 5년이 요구되는 기간이지만, 그 가운데 여럿에서는 누구든 고용주로서 그 생업을 행할 자격을 얻기까지 직인으로 5년을 더 채워야 한다. 이 뒤의 기간 동안 그는 제 고용주의 동료라 불리고, 그 기간 자체는 그의 동료살이라 불린다.
스코틀랜드에는 도제살이의 기간을 두루 정해 놓은 일반 법이 없다. 기간은 동업조합마다 다르다. 기간이 긴 곳에서는 대개 작은 돈을 물어 그 얼마를 면할 수 있다. 또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아주 작은 돈만으로도 어느 동업조합의 자유를 사기에 넉넉하다. 이 나라의 주된 제조업인 아마천과 삼베천 직조공은 물론이요 그들에게 딸린 다른 모든 수공업자, 곧 바퀴 만드는 이와 얼레 만드는 이 따위도 아무 돈을 물지 않고 어느 자치 도시에서나 제 생업을 행할 수 있다. 모든 자치 도시에서 누구나 한 주 가운데 법으로 허락된 날이면 정육을 팔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아주 까다로운 몇몇 생업에서조차 3년이 흔한 도제살이 기간이며, 대체로 동업조합의 법이 이만큼 덜 억누르는 나라를 나는 유럽에서 알지 못한다.
누구나 제 노동에 대하여 지니는 소유권은 다른 모든 소유권의 본디 바탕이므로, 그만큼 가장 신성하고 손댈 수 없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세습 재산은 제 두 손의 힘과 솜씨에 있으니, 이웃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힘과 솜씨를 제가 알맞다고 여기는 대로 쓰는 것을 막는 것은 이 가장 신성한 소유권을 뚜렷이 짓밟는 일이다. 그것은 일꾼의 정당한 자유와 그를 쓰려 했을 이들의 정당한 자유를 다 함께 드러내어 침범하는 짓이다. 그것이 한쪽에게는 제가 알맞다고 여기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쪽에게는 제가 알맞다고 여기는 사람을 쓰지 못하게 막는다. 그가 고용될 만한지를 가리는 일은 그 일에 이해가 그만큼 걸려 있는 고용하는 이들의 판단에 맡겨도 틀림없이 될 것이다. 그들이 알맞지 않은 사람을 쓰지나 않을까 하여 법을 만드는 이가 꾸며 내는 걱정은 억누르는 짓인 만큼이나 주제넘은 짓임이 뚜렷하다.
도제살이를 길게 두는 제도는 모자란 솜씨로 만든 물건이 시장에 나와 팔리는 일이 흔하지 않도록 지켜 주지 못한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 그것은 대개 솜씨가 없어서가 아니라 속임수 때문이며, 도제살이가 아무리 길어도 속임수를 막아 주지는 못한다. 이 폐단을 막으려면 전혀 다른 규정이 있어야 한다. 은제품에 찍는 스털링 표시와5 아마천과 모직천에 찍는 검인은 어떤 도제살이 법령보다도 사는 이를 훨씬 더 잘 지켜 준다. 그는 대개 이것들을 살펴보지만, 그 일꾼이 7년의 도제살이를 마쳤는지 캐물을 값어치가 있다고는 결코 여기지 않는다.
도제살이를 길게 두는 제도는 젊은 사람을 근면하게 기르는 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일감의 개수로 삯을 받는 직인은 근면할 법한데, 제 근면을 쏟을 때마다 거기서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도제는 게으를 법하고 거의 언제나 그러한데, 그러지 않을 당장의 이해가 그에게 없기 때문이다. 낮은 일자리에서 노동의 단맛은 온통 노동의 보수에 있다. 그 단맛을 누릴 처지에 가장 일찍 놓이는 이들이 가장 일찍 그 맛을 들이고 근면의 버릇을 일찍 익힐 법하다. 젊은 사람은 오랫동안 노동에서 아무 이득을 받지 못하면 저절로 노동을 싫어하게 된다. 관청의 구호로 도제로 보내지는 아이들은 대개 예사로운 햇수보다 더 오래 묶이며, 대개 아주 게으르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도제살이는 옛사람들에게 도무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고용주와 도제가 서로에게 지는 의무는 오늘날의 어느 법전에서나 상당한 조항을 이룬다. 로마법은 그에 대하여 온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가 이제 도제라는 낱말에 붙이는 뜻, 곧 고용주가 그 생업을 가르쳐 준다는 조건으로 몇 해 동안 고용주의 이익을 위하여 어느 특정한 생업에 일하도록 묶인 하인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낱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하나도 없다고 감히 우겨도 되리라 믿는다).
도제살이를 길게 두는 것은 도무지 쓸데없는 일이다. 흔한 생업보다 훨씬 위에 놓이는 기술, 예컨대 시계와 회중시계를 만드는 기술에는 오랜 가르침이 필요할 만큼의 비법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런 아름다운 기계를 처음 생각해 낸 일, 나아가 그것을 만드는 데 쓰이는 도구의 얼마를 처음 생각해 낸 일은 참으로 깊은 생각과 오랜 시간의 열매였을 것이 틀림없고, 사람의 재주가 이룬 가장 복된 성과에 든다고 마땅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둘이 제대로 생각해 내어져 잘 알려진 뒤라면, 어느 젊은 사람에게 그 도구를 어떻게 쓰고 그 기계를 어떻게 짜 맞추는지를 가장 온전하게 일러 주는 데 몇 주의 가르침보다 더 많은 것이 들 리 없고, 아마 며칠의 가르침으로도 넉넉할 것이다. 흔한 기계를 다루는 생업에서라면 며칠의 가르침으로 틀림없이 넉넉할 것이다. 참으로 손의 솜씨는 흔한 생업에서조차 많은 익힘과 경험 없이는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젊은 사람이 처음부터 직인으로 일하여 제가 해낼 수 있는 적은 일에 맞추어 삯을 받고, 서투름과 경험 없음 탓에 더러 망칠 재료에 대하여 제 몫을 물어 낸다면, 그는 훨씬 더 부지런히 마음을 기울여 익힐 것이다. 이렇게 하면 그의 배움은 대개 더 톡톡할 것이고 언제나 덜 지겹고 덜 비쌀 것이다. 참으로 고용주는 손해를 보는 쪽이 된다. 그는 이제 7년을 내리 아끼고 있는 도제의 임금을 모두 잃을 것이다. 끝에는 아마 도제 자신도 손해를 볼 것이다. 그처럼 쉽게 익히는 생업에서는 그에게 경쟁자가 더 많아질 것이고, 온전한 일꾼이 되었을 때 그의 임금은 지금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경쟁이 그만큼 늘어나면 일꾼의 임금이 줄어들듯이 고용주의 이윤도 줄어든다. 생업도 기술도 비법도 모두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여 모든 수공업자의 일감이 훨씬 헐하게 시장에 나오므로 세상은 이득을 볼 것이다.
값이, 따라서 임금과 이윤이 이렇게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고, 그것을 가장 틀림없이 불러올 자유로운 경쟁을 묶어 두려고 모든 동업조합과 동업조합 법의 대부분이 세워져 왔다. 예전에 유럽의 여러 곳에서는 동업조합을 세우는 데 그것이 자리 잡는 자치 도시의 권위 말고 다른 권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참으로 잉글랜드에서는 국왕의 특허장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왕권의 이 특권은 그처럼 억누르는 독점에 맞서 모두의 자유를 지키기보다 오히려 신민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하여 남겨 두어진 듯하다. 국왕에게 돈을 물면 특허장은 대개 선선히 내려진 듯하고, 어느 특정한 부류의 수공업자나 장사꾼이 특허장 없이 동업조합처럼 행세하는 것이 알맞다고 여겼을 때에도 사생 길드라 불린 그런 조합들은 그 때문에 늘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제가 빼앗아 쥔 특권을 행할 허락을 받으려고 해마다 국왕에게 돈을 물어야 했다(매독스의 《피르마 부르기》 26쪽 등을 보라).6 모든 동업조합과 그들이 제 다스림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알맞다고 여긴 내규를 바로 감독하는 일은 그들이 자리 잡은 자치 도시에 딸려 있었고, 그들에게 가해진 규율은 무엇이든 대개 국왕에게서가 아니라 그 하위 조합들이 부분이나 구성원에 지나지 않았던 저 더 큰 조합에서 나왔다.
자치 도시의 통치는 온통 장사꾼과 수공업자의 손에 있었고, 그들의 말버릇대로 하자면 시장이 저마다의 근면이 낳은 물건으로 넘치는 것을 막는 일이 그들 각 부류의 뚜렷한 이해였는데, 이는 실상 시장을 늘 모자란 채로 두는 일이다. 각 부류는 이 목적에 알맞은 규정을 세우려고 애가 탔고, 제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받는다면 다른 모든 부류가 똑같이 하는 것에도 선선히 동의하려 하였다. 참으로 그런 규정 탓에 각 부류는 제가 쓸 물건을 도시 안의 다른 모든 부류에게서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얼마쯤 비싸게 사야 했다. 그러나 그 대신에 그들은 제 물건도 그만큼 비싸게 팔 수 있었으니, 그들의 말마따나 그만큼은 이리 재도 저리 재도 같았고, 도시 안의 여러 부류가 서로 주고받는 거래에서는 이 규정으로 손해를 본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시골과 주고받는 거래에서는 그들이 모두 크게 이득을 보았으니, 도시마다 먹여 살리고 부유하게 하는 거래의 전부가 이 뒤엣거래에 있다.
도시마다 제 생계 전부와 제 근면에 쓰이는 재료 전부를 시골에서 끌어온다. 도시는 그 값을 주로 두 길로 물어 낸다. 첫째, 그 재료의 얼마를 손질하고 만들어 시골로 되돌려 보내는 길인데, 이때 그 값은 일꾼의 임금과 그 고용주나 직접 부리는 이의 이윤만큼 더해진다. 둘째, 다른 나라의 것이든 같은 나라의 먼 곳의 것이든 도시로 들여온 원생산물과 제조품의 얼마를 시골로 보내는 길인데, 이때에도 그 물건의 본래 값은 실어 나르는 이나 뱃사람의 임금과 그들을 부리는 상인의 이윤만큼 더해진다. 이 거래의 앞의 갈래에서 벌어들이는 것에 도시가 제 제조업으로 얻는 이로움이 있고, 뒤의 갈래에서 벌어들이는 것에 그 나라 안 거래와 나라 밖 거래의 이로움이 있다. 일꾼의 임금과 그들을 부리는 여러 이의 이윤이 이 둘에서 벌어들이는 것의 전부를 이룬다. 그러므로 그 임금과 이윤을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높이는 쪽으로 기우는 규정은 무엇이든, 도시가 더 적은 양의 제 노동으로 더 많은 양의 시골 노동이 낳은 생산물을 사들일 수 있게 하는 쪽으로 기운다. 그것은 도시의 장사꾼과 수공업자에게 시골의 지주와 농부와 노동자보다 나은 자리를 주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둘 사이에 이루어지는 거래에 놓였을 저 자연스러운 대등함을 무너뜨린다. 사회의 노동이 해마다 낳는 생산물 전부가 해마다 이 서로 다른 두 무리 사이에 갈라진다. 그런 규정으로 말미암아 그 가운데 더 큰 몫이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도시의 주민에게 돌아가고 더 작은 몫이 시골의 주민에게 돌아간다.
도시가 해마다 제게 들여오는 식료품과 재료에 대하여 실제로 물어 내는 값은 해마다 제게서 실어 내는 제조품과 다른 물건의 양이다. 뒤엣것이 비싸게 팔릴수록 앞엣것은 헐하게 사들여진다. 도시의 근면은 더 이롭게 되고 시골의 근면은 덜 이롭게 된다.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산업이 유럽 어디서나 시골에서 이루어지는 산업보다 더 이롭다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셈을 따지지 않고도 아주 단순하고 뚜렷한 관찰 하나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나 우리는 도시에 마땅히 딸리는 산업인 거래와 제조업으로 작은 시작에서 큰 재산을 이룬 사람을 적어도 백 명은 찾아내는데, 시골에 마땅히 딸리는 산업, 곧 땅을 개량하고 갈아 원생산물을 길러 내는 일로 그렇게 한 사람은 한 명을 찾아낸다. 그러므로 근면은 앞의 처지에서 뒤의 처지보다 더 잘 보답받는 것이 틀림없고, 노동의 임금과 자산의 이윤이 더 클 것임이 뚜렷하다. 그런데 자산과 노동은 저절로 가장 이로운 쓰임새를 찾아간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저절로 될 수 있는 대로 도시로 몰려들고 시골을 버린다.
도시의 주민은 한곳에 모여 있으므로 쉽게 서로 단합할 수 있다. 그러기에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하찮은 생업조차 어딘가에서는 동업조합을 이루었고, 한 번도 조합을 이루지 않은 곳에서조차 동업조합 기질, 낯선 이를 꺼리는 마음, 도제를 받거나 제 생업의 비밀을 알려 주기를 싫어하는 마음이 대개 그들 사이에 퍼져 있어서, 내규로는 금할 수 없는 저 자유로운 경쟁을 자발적인 결사와 합의로 막는 법을 그들에게 흔히 가르쳐 준다. 일손을 적게 쓰는 생업일수록 그런 단합으로 가장 쉽게 흘러간다. 실 잣는 이와 천 짜는 이 천 명을 일하게 하려면 아마 양모 빗는 이 여섯 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도제를 받지 않기로 단합함으로써 일자리를 독차지할 뿐만 아니라 그 제조업 전체를 저들에게 매인 일종의 종살이로 떨어뜨리고, 제 노동의 값을 제 일감의 성질에 마땅한 것보다 훨씬 높이 올릴 수 있다.
시골의 주민은 먼 곳에 흩어져 있으므로 쉽게 서로 단합할 수 없다. 그들은 한 번도 조합을 이룬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조합의 기질이 그들 사이에 퍼진 적도 없다. 시골의 큰 생업인 농사에 자격을 갖추는 데 도제살이가 있어야 한다고 여겨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이른바 미술과 교양 전문직을 빼놓으면 이만큼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요구하는 생업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온갖 말로 이에 대하여 쓰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책은, 가장 지혜롭고 가장 학식 있는 나라들에서도 이것이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일로 여겨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책에서 흔한 농부조차 예사로 지니고 있는 그 다양하고 얽힌 작업에 대한 지식을 걷어 모으려는 우리의 애는 헛일이 될 것이니, 그 책 가운데 얼마를 쓴 몹시 하찮은 지은이들이 더러 그를 아무리 업신여겨 말하는 티를 내더라도 그러하다. 이와 달리 흔한 기계 생업이라면 그 모든 작업이 낱낱이 몇 쪽밖에 안 되는 소책자 안에서 말과 그림으로 밝힐 수 있는 한 온전하고 또렷하게 밝혀지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이제 펴내고 있는 기술의 역사에서는 그 가운데 여럿이 실제로 이렇게 밝혀져 있다. 게다가 날씨가 바뀔 때마다, 또 그 밖의 많은 뜻밖의 일에 따라 달리해야 하는 작업을 이끄는 일은, 늘 같거나 거의 같은 작업을 이끄는 일보다 훨씬 많은 판단과 분별을 요구한다.
농부의 기술, 곧 농사 작업을 두루 이끄는 일뿐만 아니라 시골 노동의 낮은 갈래 여럿도 기계 생업 대부분보다 훨씬 많은 솜씨와 경험을 요구한다. 놋과 쇠를 다루는 사람은 그 성질이 늘 같거나 거의 같은 도구를 가지고 그런 재료에 손을 댄다. 그러나 말이나 소를 한 떼 부려 땅을 가는 사람은 그 건강과 힘과 성질이 때마다 아주 다른 도구를 가지고 일한다. 게다가 그가 다루는 재료의 형편도 그가 가지고 일하는 도구의 형편만큼이나 변하기 쉬우니, 그 둘을 다루는 데 많은 판단과 분별이 있어야 한다. 흔한 밭갈이꾼은 대개 미련함과 무지함의 본보기로 여겨지지만, 이 판단과 분별이 모자란 일은 드물다. 참으로 그는 도시에 사는 기술자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덜 익숙하다. 그의 목소리와 말씨는 더 거칠고,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 알아듣기에 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지력은 더 다양한 대상을 살피는 데 익숙해져 있으므로, 아침부터 밤까지 한두 가지 아주 단순한 작업을 해내는 데 온 마음을 쓰는 것이 흔한 저 다른 사람의 지력보다 대개 훨씬 뛰어나다. 시골의 낮은 층에 속한 사람들이 도시의 그런 사람들보다 실제로 얼마나 뛰어난가는 일 때문이든 궁금함 때문이든 그 두 쪽 모두와 많이 이야기하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그러기에 중국과 힌두스탄에서는 시골 노동자의 신분과 임금이 수공업자와 제조업자 대부분의 그것보다 높다고 한다. 동업조합 법과 동업조합 기질이 막지 않는다면 아마 어디서나 그러할 것이다.
도시의 산업이 유럽 어디서나 시골의 산업보다 나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오로지 동업조합과 동업조합 법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많은 규정으로도 받쳐진다. 나라 밖 제조품에 물리는 높은 관세, 그리고 외국 상인이 들여오는 모든 물건에 물리는 높은 관세가 모두 같은 목적으로 기운다. 동업조합 법은 도시의 주민이 제 나라 사람의 자유로운 경쟁에 밀려 더 헐하게 팔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값을 올릴 수 있게 한다. 저 다른 규정은 그들을 외국 사람의 경쟁에 대해서도 똑같이 지켜 준다. 이 둘이 낳는 값의 올림은 어디서나 결국 시골의 지주와 농부와 노동자가 물어 내는데, 이들은 그런 독점이 세워지는 데 좀처럼 맞선 적이 없다. 그들은 단합에 들어갈 마음도 그럴 만한 채비도 대개 갖추지 못하였으며, 상인과 제조업자의 떠들썩한 소리와 궤변은 사회의 한 부분, 그것도 종속된 한 부분의 사사로운 이해가 전체의 두루 걸친 이해라고 그들을 쉽게 믿게 만든다.
영국에서 도시의 산업이 시골의 산업보다 나은 정도는 지금보다 예전에 더 컸던 듯하다. 시골 노동의 임금은 제조업 노동의 임금에, 그리고 농업에 쓰인 자산의 이윤은 거래와 제조업에 쓰인 자산의 이윤에 지난 세기나 이 세기의 첫머리에 그러하였다고 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 변화는 도시의 산업에 주어진 유별난 북돋움이 낳은, 아주 늦었으나 반드시 뒤따르는 결과로 볼 수 있다. 도시에 쌓인 자산은 때가 되면 워낙 커져서 도시에 유별나게 딸린 그 갈래의 산업에 예전만큼의 이윤으로는 더 쓰일 수 없게 된다. 그 산업도 다른 모든 산업처럼 한계가 있으며, 자산이 늘어나면 경쟁이 늘어나므로 반드시 이윤이 줄어든다. 도시에서 이윤이 내려가면 자산이 시골로 밀려 나가고, 거기서 시골 노동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어 반드시 그 임금을 올린다. 그러고 나서 그 자산은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땅의 낯 위로 저를 펼치며, 농업에 쓰임으로써, 애초에 도시에 쌓일 때 크게 보아 그 비용을 댄 시골에 얼마쯤 되돌려진다. 유럽 어디서나 시골의 가장 큰 개량이 애초에 도시에 쌓인 자산이 이렇게 넘쳐흐른 데서 나왔다는 것을 나는 뒤에서 보이려 하며, 그와 함께 어떤 나라들은 이 길로 상당한 정도의 넉넉함에 이르렀으나 그 길 자체는 반드시 느리고 못 미더우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뜻밖의 일에 흐트러지고 끊어지기 쉬우며 어느 모로나 자연과 이치의 질서에 어긋난다는 것을 밝히려 한다. 그런 길을 낳은 이해와 편견과 법과 관습은 이 연구의 3편과 4편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온전하고 또렷하게 풀어 보이려 한다.
같은 생업에 몸담은 사람들은 흥겨움과 놀이를 위해서조차 좀처럼 모이는 일이 없으나, 모이면 그 이야기는 세상에 맞선 음모나 값을 올릴 무슨 꾀로 끝난다. 참으로 그런 모임을 집행할 수 있거나 자유와 정의에 어긋나지 않을 어떤 법으로 막는 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법이 같은 생업에 몸담은 사람들이 더러 함께 모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런 모임을 쉽게 만드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고, 하물며 그것을 꼭 있어야 할 것으로 만드는 일은 더욱 하지 않아야 한다.
어느 특정한 도시에서 같은 생업에 몸담은 모든 이에게 제 이름과 사는 곳을 관청의 등록부에 적어 넣도록 강요하는 규정은 그런 모임을 쉽게 만든다. 그것은 그러지 않았더라면 서로 결코 알지 못하였을 사람들을 이어 주고, 그 생업에 몸담은 사람마다 다른 사람을 어디서 찾을지 알려 준다.
같은 생업에 몸담은 이들이 제 빈민과 병자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려고 제게 부과금을 물릴 수 있게 하는 규정은, 그들에게 함께 다룰 이해를 줌으로써 그런 모임을 꼭 있어야 할 것으로 만든다.
조합을 이루는 것은 그런 모임을 꼭 있어야 할 것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다수가 정한 것을 전체에 묶어 두는 것으로 만든다. 자유로운 생업에서는 낱낱의 장사꾼 모두가 한뜻으로 동의하지 않고서는 톡톡한 단합을 세울 수 없고, 낱낱의 장사꾼 모두가 같은 마음을 지니는 동안만 그것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동업조합의 다수는 알맞은 벌칙을 붙인 내규를 만들 수 있으니, 그것은 어떤 자발적인 단합보다도 더 톡톡하고 더 오래도록 경쟁을 묶어 둘 것이다.
동업조합이 생업을 더 잘 다스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는 핑계는 아무 바탕이 없다. 일꾼에게 실제로 톡톡히 가해지는 규율은 그의 동업조합이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손님들이 가하는 것이다. 그의 속임수를 묶어 두고 그의 소홀함을 바로잡는 것은 그들의 일감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배타적인 동업조합은 반드시 이 규율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 그러면 특정한 한 무리의 일꾼이 잘 처신하든 못하든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조합을 이룬 큰 도시 여럿에서 가장 없어서는 안 될 생업 가운데 얼마에서조차 그럭저럭 쓸 만한 일꾼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제 일감을 그럭저럭 쓸 만하게 해내게 하려면 그것을 변두리에서 해야 하는데, 거기서는 일꾼들이 배타적 특권이 없으므로 제 평판 말고는 믿고 기댈 것이 없으며, 그러고 나서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도시 안으로 몰래 들여와야 한다.
유럽의 정책은 이렇게 하여, 어떤 일자리에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들어오려 했을 사람보다 적은 수로 경쟁을 묶어 둠으로써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가 지닌 이로움과 해로움 전체에 아주 중대한 불평등을 낳는다.
둘째, 유럽의 정책은 어떤 일자리에서 저절로 그러할 정도를 넘어서까지 경쟁을 늘림으로써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가 지닌 이로움과 해로움 전체에 이와 반대되는 종류의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다.
어떤 전문직을 위하여 알맞은 수의 젊은 사람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 워낙 중대하게 여겨져서, 더러는 관청이 더러는 사사로운 설립자들의 경건함이 이 목적으로 많은 연금과 장학금과 급여와 보조세 따위를 세워 놓았고, 그것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 생업을 따르겠다고 나서지 못하였을 사람들을 그리로 훨씬 많이 끌어들인다. 모든 그리스도교 나라에서 성직자 대부분의 배움이 이런 길로 값을 치러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 가운데 온전히 제 비용으로 길러지는 이는 아주 적다. 그러므로 제 비용으로 길러지는 이들이 받은 길고 지겹고 비싼 배움이 그들에게 늘 걸맞은 보답을 가져다주지는 않으니, 교회는 일자리를 얻으려고 그런 배움이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주었을 자리보다 훨씬 적은 보수라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가난한 이들의 경쟁이 부유한 이들의 보답을 빼앗아 간다. 큐레이트든 채플린이든7 흔한 생업의 직인과 견주는 것은 틀림없이 무례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큐레이트나 채플린의 보수는 직인의 임금과 그 성질이 같은 것으로 마땅히 볼 수 있다. 셋 모두 저마다 제 위에 있는 이와 맺게 된 계약에 따라 제 일감의 값을 받는다. 14세기 중엽이 지날 때까지 잉글랜드에서 큐레이트나 봉급을 받는 교구 사제의 예사로운 보수는 5마크였는데,8 이는 오늘 우리 돈 10파운드쯤에 든 만큼의 은을 담고 있었으며, 여러 전국 공의회의 결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었음을 우리는 알아낸다. 같은 시기에 하루 4펜스, 곧 오늘 우리 돈 1실링과 같은 양의 은을 담은 돈이 석공 고용주의 보수로 밝혀졌고, 하루 3펜스, 곧 오늘 우리 돈 9펜스와 같은 것이 석공 직인의 보수로 밝혀졌다(에드워드 3세 치세 25년의 노동자법을 보라).9 그러므로 이 두 노동자가 줄곧 일하였다고 치면 그들의 임금은 큐레이트의 임금보다 훨씬 높았다. 석공 고용주가 한 해의 3분의 1을 일감 없이 지냈다고 쳐도 그의 임금은 그것과 넉넉히 맞먹었을 것이다. 앤 여왕 치세 12년의 법 제12장에서는 “큐레이트에게 넉넉한 부양과 북돋움이 없는 탓으로 여러 곳에서 사목이 부실하게 채워져 왔으므로, 주교는 제 손으로 적고 제 봉인을 찍은 글로써 한 해에 50파운드를 넘지 않고 20파운드보다 적지 않은 넉넉하고 일정한 봉급이나 수당을 정할 권한을 갖는다” 하고 밝혀 놓았다. 오늘날 한 해 40파운드면 큐레이트에게 아주 좋은 보수로 셈해지며, 이 의회의 법이 있음에도 한 해 20파운드가 못 되는 큐레이트 자리가 많다. 런던에는 한 해 40파운드를 버는 구두 만드는 직인이 있고, 그 큰 도시에서 어떤 종류든 부지런한 일꾼이라면 20파운드보다 많이 벌지 않는 이가 거의 없다. 참으로 이 뒤의 액수는 시골의 여러 교구에서 흔한 노동자가 흔히 버는 것을 넘지 않는다. 법이 일꾼의 임금을 매기려 든 적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늘 임금을 올리기보다 오히려 내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법은 여러 자리에서 큐레이트의 임금을 올리려 하였고, 교회의 품위를 위하여 교구 주임 사제들이 큐레이트 스스로 받아들이려 했을지도 모를 그 비참한 부양보다 더 많이 주도록 강요하려 하였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에서 법은 똑같이 톡톡하지 못하였던 듯하니, 큐레이트의 임금을 올리지도 노동자의 임금을 뜻한 만큼 끌어내리지도 결코 하지 못하였다. 앞의 이들이 제 처지의 가난함과 제 경쟁자의 많음 때문에 법이 정한 수당보다 적은 것이라도 받아들이려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고, 뒤의 이들이 그들을 부려 이윤이나 즐거움을 얻으려던 이들의 반대 방향 경쟁 때문에 더 많이 받는 것을 막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큰 성직록과 그 밖의 교회 고위직은 교회의 낮은 구성원 얼마가 처한 딱한 형편에도 아랑곳없이 교회의 명예를 받쳐 준다. 또 그 직업에 바쳐지는 존경은 그런 낮은 이들에게조차 돈으로 받는 보수의 딱함을 얼마쯤 메워 준다. 잉글랜드와 모든 로마 가톨릭 나라에서 교회라는 제비뽑기는 실상 꼭 그래야 할 것보다 훨씬 이롭다. 스코틀랜드와 제네바의 교회,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개신교 교회의 사례는, 그처럼 떳떳한 직업, 그것도 배움을 그토록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업에서라면 훨씬 알맞은 성직록에 대한 바람만으로도 배움 있고 점잖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넉넉한 수로 성직에 들어올 것임을 우리에게 납득시켜 줄 것이다.
법률과 의술처럼 성직록이 없는 전문직에서 만일 같은 비율의 사람이 관청의 비용으로 길러진다면 경쟁이 곧 워낙 심해져서 그들이 돈으로 받는 보답을 몹시 끌어내릴 것이다. 그러면 누구도 제 아들을 제 비용으로 이 두 전문직 가운데 어느 하나에 넣으려고 가르칠 값어치를 더는 찾지 못한다. 그 전문직은 그런 관청의 구호로 길러진 이들에게 온통 내맡겨질 것이고, 그들의 수와 궁핍함은 그들이 대개 아주 비참한 보수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이니, 이제 존경받는 법률과 의술이라는 전문직은 온통 격이 떨어질 것이다.
흔히 문인이라 불리는 저 번성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앞의 가정이 이루어질 때 법률가와 의사가 아마 놓일 그런 처지에 거의 그대로 놓여 있다. 유럽의 어느 곳에서나 그들 대부분은 교회를 위하여 길러졌으나 여러 까닭으로 성직에 들어가는 것이 막힌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개 관청의 비용으로 길러졌고, 그들의 수가 어디서나 워낙 많으므로 그 노동의 값은 대개 아주 보잘것없는 보수로까지 끌어내려진다.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는 문인이 제 재주로 무엇이든 벌 수 있는 유일한 일자리가 관청이나 사사로운 집의 선생이 되는 것, 곧 제가 얻은 진기하고 쓸모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인쇄술이 생겨나게 만든 저 다른 일자리, 곧 책 장수를 위하여 글을 쓰는 일보다 틀림없이 지금도 더 명예롭고 더 쓸모 있으며 대체로 더 벌이가 되는 일자리다. 여러 학문의 뛰어난 선생이 될 자격을 갖추는 데 드는 시간과 공부, 재능과 지식과 정성은 법률과 의술에서 가장 크게 일하는 이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에 적어도 맞먹는다. 그러나 뛰어난 선생이 받는 예사로운 보답은 법률가나 의사의 그것에 도무지 견줄 수 없으니, 앞의 이의 생업은 관청의 비용으로 거기에 길러진 궁핍한 사람들로 붐비는 데 반하여 뒤의 두 생업은 제 비용으로 길러지지 않은 사람이 아주 적어 짐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청과 사사로운 집의 선생이 받는 예사로운 보수는 작아 보일지 모르나, 입에 풀칠하려고 글을 쓰는 저 더욱 궁핍한 문인들의 경쟁이 시장에서 걷어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지금보다 적었을 것이다. 인쇄술이 생겨나기 전에는 학자와 걸인이 거의 같은 뜻의 말이었던 듯하다. 그때 여러 대학의 학장들은 제 학생들에게 빌어먹을 허가를 내주는 일이 흔하였던 듯하다.
옛날에는 궁핍한 사람을 학식 있는 전문직에 길러 주는 이런 종류의 구호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으므로 뛰어난 선생이 받는 보답이 훨씬 상당하였던 듯하다. 이소크라테스는 이른바 소피스트를 논박하는 연설에서 제 시대의 선생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꾸짖는다. “그들은 제 학생에게 가장 거창한 약속을 하고,” 그는 말한다, “그들에게 지혜롭게 되고 행복하게 되고 올바르게 되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면서, 그처럼 중대한 봉사의 값으로 4미나나 5미나라는 하찮은 보수를 정해 놓는다.” “지혜를 가르치는 이들은,” 그는 이어 말한다, “틀림없이 스스로 지혜로워야 한다. 그러나 누구든 그런 값에 그런 거래를 팔려 한다면 그는 가장 뚜렷한 어리석음을 지은 것으로 판정될 것이다.” 그가 여기서 그 보답을 부풀려 말하려는 뜻은 틀림없이 아니니, 그것이 그가 그려 보인 것보다 적지 않았음을 우리는 믿어도 된다. 4미나는 13파운드 6실링 8펜스와 같았고 5미나는 16파운드 13실링 4펜스와 같았다.10 그러므로 그때 아테네에서 가장 뛰어난 선생들에게는 이 두 액수 가운데 큰 쪽보다 적지 않은 무엇이 예사로 치러졌을 것이 틀림없다. 이소크라테스 자신은 학생마다 10미나, 곧 33파운드 6실링 8펜스를 요구하였다. 그가 아테네에서 가르칠 때 학생이 백 명 있었다고 한다. 나는 이것을 그가 한 번에 가르친 수, 곧 우리가 강의 한 과정이라 부를 것에 나온 수로 알아듣는다. 그처럼 큰 도시에서 그처럼 이름난 선생, 그것도 그때 모든 학문 가운데 가장 유행하던 수사학을 가르친 선생에게라면 이 수가 유별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강의 한 과정마다 천 미나, 곧 3335파운드 6실링 8펜스를 벌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플루타르코스는 다른 곳에서 천 미나가 그의 디닥트론, 곧 가르침의 예사로운 값이었다고 말한다. 그때의 다른 뛰어난 선생 여럿도 큰 재산을 이룬 듯하다. 고르기아스는 순금으로 만든 제 조각상을 델포이 신전에 바쳤다. 그것이 실물만큼 컸다고 여겨서는 안 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사는 모양새는 그때의 다른 뛰어난 선생 둘인 히피아스와 프로타고라스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플라톤이 화려하다고, 그것도 뽐낼 만큼 화려하다고 그려 놓았다. 플라톤 자신도 제법 웅장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 되어 모두가 인정하는 대로 알렉산드로스와 그 아버지 필리포스 두 사람에게서 가장 넉넉하게 보답받았으나, 그럼에도 제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다시 잡으려고 아테네로 돌아갈 값어치가 있다고 여겼다. 여러 학문의 선생은 그때에는 한두 시대 뒤에 그렇게 된 것보다 아마 덜 흔하였을 것이고, 뒤에 와서는 경쟁이 그들의 노동의 값과 그 사람에 대한 감탄을 얼마쯤 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이들은 오늘날 같은 직업에 몸담은 어느 누구보다 훨씬 높은 정도의 존중을 늘 누렸던 듯하다. 아테네 사람들은 아카데미아파의 카르네아데스와 스토아파의 디오게네스를 로마로 보내는 엄숙한 사절로 삼았다. 그때 그들의 도시는 예전의 웅대함에서 기울어 있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독립된 상당한 공화국이었다.
게다가 카르네아데스는 태어난 곳으로 보면 바빌로니아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테네 사람들만큼 외국 사람을 관직에 들이기를 꺼린 백성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에 대한 그들의 존중은 아주 컸을 것이 틀림없다.
이 불평등은 대체로 보아 세상에 아마 해롭기보다 오히려 이롭다. 그것이 관청의 선생이라는 직업을 얼마쯤 떨어뜨릴지는 모르나, 학문을 배우는 일이 헐하다는 것은 이 자잘한 거북함을 크게 웃돌고도 남는 이로움임이 틀림없다. 게다가 배움이 이루어지는 저 학교와 대학의 짜임새가 이제 유럽 대부분에서 그러한 것보다 더 이치에 닿았다면 세상은 거기서 더욱 큰 이로움을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유럽의 정책은 노동과 자산이 일자리에서 일자리로, 또 곳에서 곳으로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가로막음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그것들의 여러 쓰임새가 지닌 이로움과 해로움 전체에 아주 거북한 불평등을 낳는다.
도제법은 노동이 한 일자리에서 다른 일자리로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같은 곳 안에서조차 가로막는다. 동업조합이 쥔 배타적 특권은 같은 일자리에서조차 노동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흐르는 것을 가로막는다.
어느 한 제조업의 일꾼에게는 높은 임금이 주어지는데 다른 제조업의 일꾼은 겨우 목숨을 이을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흔히 벌어진다. 앞의 것은 나아가는 상태에 있으므로 새 일손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고, 뒤의 것은 기울어 가는 상태에 있으므로 남는 일손이 끊임없이 늘어난다. 이 두 제조업이 더러 같은 도시에, 더러 같은 이웃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조금의 도움도 빌려줄 수 없는 일이 있다. 도제법이 한 경우에 그것을 막고, 다른 경우에는 도제법과 배타적 동업조합이 함께 막는다. 그러나 여러 다른 제조업에서 작업이 워낙 서로 비슷하므로, 그 터무니없는 법이 막지 않는다면 일꾼들이 서로 생업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무늬 없는 아마천을 짜는 기술과 무늬 없는 비단을 짜는 기술은 거의 온전히 같다. 무늬 없는 모직을 짜는 기술은 얼마쯤 다르지만 그 다름이 워낙 하찮으므로 아마천 직조공이든 비단 직조공이든 며칠 만에 그럭저럭 쓸 만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큰 제조업 가운데 어느 하나가 삭아 가고 있다면 일꾼들은 더 번성하는 형편에 있는 다른 둘 가운데 하나에서 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들의 임금은 잘되는 제조업에서 너무 높이 오르지도, 삭아 가는 제조업에서 너무 낮게 내려가지도 않을 것이다. 참으로 잉글랜드에서 아마천 제조업은 특별한 법령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의 대부분에서 그다지 일구어지지 않으므로, 삭아 가는 다른 제조업의 일꾼에게 두루 걸친 살 길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그들은 도제법이 미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교구의 구호를 받는 것과 흔한 노동자로 일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다. 그런데 그들은 몸에 익은 버릇 때문에 흔한 노동자 일에는 제 일과 조금이라도 닮은 어떤 종류의 제조업 일보다도 훨씬 못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개 교구의 구호를 받는 쪽을 고른다.
노동이 한 일자리에서 다른 일자리로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자산이 흐르는 것도 가로막으니, 어느 갈래의 사업에 쓰일 수 있는 자산의 양은 거기에 쓰일 수 있는 노동의 양에 크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업조합 법은 자산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노동이 그렇게 흐르는 것보다는 덜 가로막는다. 부유한 상인이 자치 도시에서 거래할 특권을 얻는 것은 어디서나 가난한 수공업자가 거기서 일할 특권을 얻는 것보다 훨씬 쉽다.
동업조합 법이 노동이 자유로이 흐르는 것을 가로막는 일은 유럽의 어느 곳에나 두루 있다고 나는 믿는다. 구빈법이11 그것을 가로막는 일은 내가 아는 한 잉글랜드에만 있는 일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이 정주 자격을 얻는 데, 또는 제가 딸린 교구 말고 다른 교구에서 제 근면을 펼치도록 허락받는 데조차 부딪히는 어려움에 있다. 동업조합 법이 자유로운 흐름을 가로막는 것은 수공업자와 제조업자의 노동뿐이다. 정주 자격을 얻는 어려움은 흔한 노동의 흐름까지 가로막는다. 아마도 잉글랜드의 행정에서 가장 큰 병폐일 이 어지러움이 어떻게 일어나 어떻게 나아갔으며 이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얼마쯤 이야기해 둘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수도원이 없어지면서 빈민이 그 종교 시설의 구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한 다른 몇 가지 톡톡하지 못한 시도가 있은 뒤에, 엘리자베스 치세 43년의 법 제2장으로12 교구마다 제 교구의 빈민을 먹이도록 묶이고, 해마다 빈민 감독관을 뽑아 교구 위원과 함께 교구 부과금을 걷어 이 목적에 알맞은 금액을 마련하도록 정하여졌다.
이 법령으로 제 교구의 빈민을 먹여야 할 의무가 교구마다 빠져나갈 수 없이 지워졌다. 그러므로 누구를 각 교구의 빈민으로 볼 것인가가 얼마쯤 중대한 물음이 되었다. 이 물음은 얼마쯤 이리저리 바뀐 끝에 찰스 2세 치세 13년과 14년의 법으로 마침내 판가름 났는데, 거기서는 40일을 방해받지 않고 사는 것으로 누구든 어느 교구에서 정주 자격을 얻는다고, 그러나 그 기간 안에는 교구 위원이나 빈민 감독관이 고발할 때 치안 판사 두 사람이 새 주민을 그가 마지막으로 법에 맞게 정주 자격을 얻었던 교구로 돌려보내는 것이 법에 맞는다고 정하여졌으니, 다만 그가 한 해 10파운드짜리 집을 세내거나 제가 그때 살고 있던 교구에 짐이 되지 않겠다는 보증을 그 판사들이 넉넉하다고 여길 만큼 내놓는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 법령 탓으로 얼마간의 속임수가 벌어졌다고 한다. 교구의 관리들이 더러 제 교구의 빈민에게 뒷돈을 주어 몰래 다른 교구로 가서 40일 동안 몸을 숨겨 거기서 정주 자격을 얻게 하고, 그로써 그들이 마땅히 딸려 있던 교구가 짐을 벗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제임스 2세 치세 1년의 법으로, 누구든 정주 자격을 얻는 데 있어야 하는 40일의 방해받지 않은 삶은 그가 와서 살게 된 교구의 교구 위원이나 감독관 가운데 한 사람에게 제 사는 곳과 제 식구의 수를 글로 적어 알린 때부터 헤아린다고 정하여졌다.
그런데 교구의 관리들은 다른 교구를 대할 때보다 제 교구를 대할 때 늘 더 정직하지는 않았던 듯하여, 더러 그런 끼어듦을 눈감아 주고 통고를 받아 두고도 그에 따른 알맞은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구 안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끼어드는 이들 때문에 짐을 지는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막을 이해가 있으리라고 여겨졌으므로, 윌리엄 3세 치세 3년의 법으로 그 40일의 삶은 그런 글로 적은 통고를 주일에 예배가 끝난 바로 뒤에 교회에서 알린 때부터 헤아린다고 다시 정하여졌다.
“결국” 번 박사는 말한다,13 “글로 적은 통고를 알린 뒤에 40일을 이어 사는 이런 정주 자격은 아주 드물게만 얻어지며, 이 법들의 뜻은 정주 자격을 얻게 하는 데 있다기보다 몰래 교구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것을 얻지 못하게 막는 데 있으니, 통고를 한다는 것은 교구에 내쫓으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형편이 그를 실제로 내쫓을 수 있는지 어떤지 헷갈릴 만한 것이라면, 그는 통고를 함으로써 교구가 그를 40일 동안 그대로 두어 다툼 없이 정주 자격을 인정하게 하거나 그를 내쫓아 그 권리를 가려 보게 하거나 둘 가운데 하나를 하도록 몰아붙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령은 가난한 사람이 40일을 산다는 낡은 길로 새 정주 자격을 얻는 것을 거의 될 수 없는 일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 교구의 흔한 사람들이 다른 교구에서 마음 놓고 자리 잡는 것을 아예 가로막는 듯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 법령은 통고를 주거나 알리지 않고도 정주 자격을 얻을 수 있는 네 가지 다른 길을 마련해 놓았다. 첫째는 교구 부과금을 물게 매겨져 그것을 내는 것이고, 둘째는 한 해 임기의 교구 직책에 뽑혀 한 해 동안 그 일을 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 교구에서 도제살이를 하는 것이고, 넷째는 거기서 한 해 동안 고용되어 그 한 해 내내 같은 일자리에 머무는 것이다. 앞의 두 길로는 온 교구가 공적으로 작성한 증서에 의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정주 자격을 얻을 수 없는데, 교구 사람들은 제 노동 말고는 살아갈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새로 온 이를 교구 부과금을 물게 매기거나 교구 직책에 뽑아 받아들이는 일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혼인한 남자는 뒤의 두 길 가운데 어느 것으로도 정주 자격을 좀처럼 얻을 수 없다. 도제가 혼인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혼인한 하인은 한 해 동안 고용되는 것으로 정주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못 박아 정하여져 있다. 일자리로 정주 자격을 얻게 하는 길을 들여온 것이 낳은 주된 결과는 한 해 단위로 고용하는 낡은 관행을 크게 없애 버린 것이었다. 그 관행은 그전까지 잉글랜드에서 워낙 흔하였으므로, 오늘날에도 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하인마다 한 해 단위로 고용된 것으로 법이 새긴다. 그러나 고용주는 하인을 이런 길로 고용하여 그에게 정주 자격을 주려는 마음이 늘 있는 것은 아니며, 하인도 그렇게 고용되려는 마음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니, 마지막 정주 자격이 그전의 모든 정주 자격을 없애 버리므로 그로써 제가 태어난 곳, 곧 제 부모와 친척이 사는 곳에서 지녔던 본래의 정주 자격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일하는 일꾼이라면 노동자든 수공업자든 도제살이로든 일자리로든 새 정주 자격을 얻을 법하지 않음이 뚜렷하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이 제 근면을 새 교구로 옮겨 갔을 때, 그가 아무리 건강하고 부지런하더라도 어느 교구 위원이나 감독관의 변덕에 따라 내쫓길 수 있었으니, 다만 그가 한 해 10파운드짜리 집을 세내거나, 곧 제 노동 말고는 살아갈 것이 없는 이에게는 될 수 없는 일이거나, 교구에 짐이 되지 않겠다는 보증을 치안 판사 두 사람이 넉넉하다고 여길 만큼 내놓는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참으로 그들이 어떤 보증을 요구할지는 온통 그들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그러나 그들이 30파운드보다 적은 것을 요구하기는 좀처럼 어려우니, 값이 30파운드가 못 되는 자유 보유 부동산을 사는 것조차 교구에 짐이 되지 않게 하기에 넉넉하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정주 자격을 주지 않는다고 정하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좀처럼 내놓을 수 없는 보증이며, 그보다 훨씬 큰 보증이 요구되는 일도 흔하다.
이 여러 법령이 거의 온통 빼앗아 가 버린 저 자유로운 노동의 흐름을 얼마쯤 되살리려고 증명서라는 방책이 생각해 내어졌다. 윌리엄 3세 치세 8년과 9년의 법으로, 누구든 제가 마지막으로 법에 맞게 정주 자격을 얻었던 교구에서 교구 위원과 빈민 감독관이 서명하고 치안 판사 두 사람이 인정한 증명서를 가져오면 다른 모든 교구가 그를 받아들이도록 묶이고, 그가 교구에 짐이 될 법하다는 것만으로는 내쫓기지 않고 실제로 짐이 되었을 때에만 내쫓기며, 그때에는 증명서를 내준 교구가 그를 먹이는 비용과 내쫓는 비용을 함께 물도록 묶인다고 정하여졌다. 그리고 그렇게 증명서를 가진 사람이 와서 사는 교구에 가장 온전한 보증을 주려고, 같은 법령으로 그가 한 해 10파운드짜리 집을 세내거나 제 몫으로 한 해 임기의 교구 직책을 한 해 내내 맡는 것을 빼면 어떤 길로도 거기서 정주 자격을 얻지 못하며, 따라서 통고로도 일자리로도 도제살이로도 교구 부과금을 내는 것으로도 얻지 못한다고 다시 정하여졌다. 또 앤 여왕 치세 12년의 법 제1편 제18장으로, 그렇게 증명서를 가진 사람의 하인도 도제도 그가 그런 증명서로 사는 교구에서 정주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다시 정하여졌다.
이 방책이 앞의 여러 법령이 거의 온통 빼앗아 가 버린 저 자유로운 노동의 흐름을 얼마나 되살렸는지는 번 박사의 다음과 같은 아주 슬기로운 관찰에서 배울 수 있다. “어느 곳이든 와서 자리 잡는 사람에게 증명서를 요구할 만한 좋은 까닭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은 뚜렷하다,” 그는 말한다, “곧 증명서로 사는 사람은 도제살이로도 일자리로도 통고로도 교구 부과금을 내는 것으로도 정주 자격을 얻을 수 없고, 도제도 하인도 그곳에 정주하게 할 수 없으며, 그들이 교구에 짐이 되면 어디로 돌려보낼지 틀림없이 알 수 있고 그 교구가 돌려보내는 비용과 그동안 먹이는 비용을 물어 줄 것이며, 그들이 병들어 옮길 수 없게 되면 증명서를 내준 교구가 그들을 먹여야 하는데, 이 모두가 증명서 없이는 하나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까닭들은 교구가 예사로운 경우에 증명서를 내주지 않는 편이 낫다는 쪽으로도 그만큼 들어맞을 것이니, 증명서를 가진 사람들을 더 나쁜 형편으로 되돌려 받게 될 쪽이 반반보다 훨씬 더 어림이 크기 때문이다.” 이 관찰의 교훈은, 증명서는 가난한 사람이 와서 사는 교구가 늘 요구해야 하는 것이며 그가 떠나려는 교구는 아주 드물게만 내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데 있는 듯하다. “이 증명서라는 일에는 얼마쯤 모진 것이 있다,” 같은 아주 슬기로운 지은이는 제 《구빈법의 역사》에서 말한다, “사람이 이른바 정주 자격을 얻는 불행을 맞은 그곳에 머무는 것이 그에게 아무리 거북하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살면서 제 앞에 어떤 이로움을 그려 보더라도, 교구 관리에게 그를 사실상 죽을 때까지 갇혀 있게 할 힘을 쥐여 주기 때문이다.”
증명서는 그와 함께 잘 처신하였다는 증언을 지니고 다니지도 않고, 그 사람이 실제로 딸려 있는 교구에 딸려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것을 내주는 것도 물리는 것도 온통 교구 관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 교구 위원과 감독관에게 증명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는 직무 이행 명령이 한 번 청구되었으나, 왕좌 법원은 그 청구를 아주 괴상한 시도라 하여 물리쳤다고 번 박사는 말한다.
잉글랜드에서 서로 그다지 멀지 않은 곳들 사이에 노동의 값이 몹시 고르지 못한 것을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아마 증명서 없이 제 근면을 한 교구에서 다른 교구로 옮기려는 가난한 사람에게 정주법이 가로막는 것에서 비롯한다. 참으로 건강하고 부지런한 홀몸의 남자라면 더러 증명서 없이 눈감아 주는 대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아내와 식구가 있는 남자가 그렇게 하려 든다면 대부분의 교구에서 틀림없이 내쫓길 것이며, 그 홀몸의 남자가 뒤에 혼인한다면 그도 대개 내쫓길 것이다. 그러므로 한 교구의 일손이 모자라는 것을 다른 교구에 일손이 남는 것으로 늘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스코틀랜드에서 늘 그렇게 메워지고 정주 자격에 어려움이 없는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그렇게 메워진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나라에서도 큰 도시의 이웃이나 그 밖에 노동에 대한 유별난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임금이 더러 얼마쯤 오르고 그런 곳에서 멀어짐에 따라 차츰 내려가 그 나라의 흔한 이율로 되돌아가기는 한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우리가 더러 보는 저 이웃한 곳들 사이의 갑작스럽고 까닭을 알 수 없는 임금의 차이를 우리는 그런 나라에서 결코 만나지 못하니, 잉글랜드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교구라는 인공의 경계를 넘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 더러 임금의 이율을 아주 또렷하게 갈라놓는 자연의 경계인 바다의 한 팔이나 높은 산줄기를 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흔하다.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사람을 제가 살기로 고른 교구에서 내쫓는 것은 자연스러운 자유와 정의를 뚜렷이 짓밟는 일이다. 그러나 제 자유를 그토록 시샘하여 지키면서도 대부분의 다른 나라의 흔한 사람들처럼 그 자유가 무엇에 있는지 한 번도 제대로 알지 못한 잉글랜드의 흔한 사람들은, 이제 백 년이 넘도록 제 몸이 이 억누름에 놓이는 것을 아무런 바로잡음 없이 참아 왔다. 또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도 더러 정주법을 세상의 괴로움이라고 하소연하였으나, 그것이 두루 걸친 백성의 떠들썩한 소리의 대상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틀림없이 폐단이기는 하나 두루 걸친 억누름을 낳을 법하지는 않았던 저 일반 영장에 맞선 떠들썩한 소리와는 달랐다. 잉글랜드에서 마흔 살이 된 가난한 사람 가운데 제 삶의 어느 대목에서 이 잘못 꾸며진 정주법에 가장 모질게 억눌린다고 느껴 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나는 이 긴 장을 다음을 살펴보는 것으로 맺으려 한다. 예전에는 처음에는 왕국 전체에 미치는 일반 법으로, 그 뒤에는 주마다 치안 판사들의 개별 명령으로 임금을 매기는 것이 흔한 일이었으나, 이 두 관행은 이제 온통 쓰이지 않게 되었다. “400년이 넘는 경험으로 보면,” 번 박사는 말한다, “그 성질로 보아 잘게 한정할 수 없는 듯한 것을 엄한 규정 아래 두려는 모든 애를 이제 접어 둘 때가 된 듯하다. 같은 종류의 일감에 몸담은 모든 사람이 같은 임금을 받는다면 겨루는 마음이 없어질 것이고 근면이나 재주가 들어설 자리가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회의 개별 법은 여전히 더러 특정한 생업과 특정한 곳에서 임금을 매기려 든다. 이를테면 조지 3세 치세 8년의 법은 무거운 벌칙 아래, 런던과 그 5마일 안의 모든 재봉 고용주가 하루 2실링 7펜스 반을 넘게 주는 것과 그 일꾼이 그것을 받는 것을 금하는데, 다만 나라가 두루 상을 치르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 입법부가 고용주와 그 일꾼 사이의 다름을 매기려 들 때마다 그 조언자는 언제나 고용주들이다. 그러므로 그 규정이 일꾼에게 이로울 때에는 그것이 언제나 옳고 공평하지만, 고용주에게 이로울 때에는 더러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여러 다른 생업의 고용주에게 제 일꾼의 삯을 물건이 아니라 돈으로 물도록 강요하는 법은 아주 옳고 공평하다. 그것은 고용주에게 아무런 실제의 모짐을 지우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물건으로 물어 주는 척하면서도 늘 실제로 물어 주지는 않았던 그 가치를 돈으로 물도록 강요하는 데 그친다. 이 법은 일꾼에게 이롭다. 그러나 조지 3세 치세 8년의 법은 고용주에게 이롭다. 고용주들이 제 일꾼의 임금을 끌어내리려고 단합할 때 그들은 대개 일정한 벌칙 아래 일정한 임금보다 많이 주지 않기로 하는 사사로운 계약이나 합의에 들어간다. 만일 일꾼들이 같은 종류의 반대 방향 단합에 들어가 일정한 벌칙 아래 일정한 임금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다면 법은 그들을 아주 엄하게 벌할 것이다. 그리고 법이 치우치지 않고 다루려 한다면 고용주도 같은 길로 다룰 것이다. 그러나 조지 3세 치세 8년의 법은 고용주들이 더러 그런 단합으로 세우려 드는 바로 그 규정을 법으로 밀어붙인다. 그것이 가장 솜씨 있고 가장 부지런한 일꾼을 예사로운 일꾼과 같은 자리에 놓는다는 일꾼들의 하소연은 온전히 옳은 바탕이 있는 듯하다.
또 옛날에는 식료품과 다른 물건의 값을 매김으로써 상인과 다른 장사꾼의 이윤을 매기려 드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빵값 공정은14 내가 아는 한 이 옛 관행에 남은 유일한 자취다. 배타적 동업조합이 있는 곳에서는 삶에 가장 먼저 있어야 할 것의 값을 매기는 것이 아마 알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없는 곳에서는 경쟁이 어떤 공정보다도 훨씬 잘 그것을 매길 것이다. 조지 2세 치세 31년의 법으로 세워진 빵값 공정을 정하는 방법은 스코틀랜드에서는 법의 결함 때문에 실행될 수 없었으니, 그 집행이 거기에는 없는 시장 관리인이라는 직책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함은 조지 3세 치세 3년의 법에 이르러서야 바로잡혔다. 공정이 없다는 것이 느낄 만한 거북함을 낳지 않았고, 그것이 세워진 몇 곳에서도 아직 느낄 만한 이로움을 낳지 않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도시 대부분에는 빵 굽는 이들의 조합이 있어서 배타적 특권을 주장하는데, 그 특권이 아주 엄하게 지켜지지는 않는다. 노동과 자산의 여러 쓰임새에서 임금과 이윤의 여러 이율 사이의 비율은, 이미 살펴본 대로 사회가 부유한가 가난한가, 나아가는 상태인가 멈춘 상태인가 기울어 가는 상태인가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세상의 형편에 그런 뒤집힘이 있으면 임금과 이윤의 두루 걸친 이율이 흔들리기는 하나, 끝에는 여러 다른 쓰임새에서 그것들을 똑같이 흔들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것들 사이의 비율은 그대로 남을 것이 틀림없으며, 적어도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는 그런 뒤집힘으로 좀처럼 바뀔 수 없다.
주
1.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기니는 21실링에 해당하는 금화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2. 옮긴이 — 라틴어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본디 「단체」를 뜻하여 어떤 조합이든 가리켰다. 오늘날의 「대학」은 그 가운데 학문을 가르치던 단체가 이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3.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에 만들어졌는지로 가리킨다. 「제N장」은 그해 법령집에서 몇 번째 법인가를 가리킨다. 엘리자베스 치세 5년의 법은 1563년의 것으로, 직인법이라고도 불린다. 이 법은 1814년에 폐지되었다.
4. 옮긴이 — 「비법」으로 옮긴 미스터리(mystery)는 중세 이래 동업조합이 쥐고 바깥에 알리지 않던 기술을 가리키던 법률 용어다. 「생업, 기술, 비법」은 법령이 쓰던 정해진 문구다.
5. 옮긴이 — 스털링 표시는 은의 순도를 보증하려고 은제품에 찍던 검인이다.
6. 옮긴이 — 사생 길드는 국왕의 특허장 없이 동업조합처럼 행세한 조합을 가리킨다. 토머스 매독스의 《피르마 부르기》는 1726년에 나온 책으로, 영국 자치 도시의 특권을 다루었다.
7. 옮긴이 — 큐레이트는 교구 주임 사제를 돕거나 대리하던 성직자이고, 채플린은 개인이나 단체에 딸려 있던 성직자다. 둘 다 성직록을 받지 못하고 보수를 받았다.
8. 옮긴이 — 마크는 실제 화폐가 아니라 셈에 쓰던 단위로, 1마크는 13실링 4펜스다.
9. 옮긴이 — 노동자법은 에드워드 3세 치세 25년, 곧 1351년의 법으로, 흑사병으로 일손이 줄어 임금이 오르는 것을 막으려 한 법이다.
10. 옮긴이 — 미나는 고대 그리스의 은 무게이자 셈에 쓰던 화폐 단위로 100드라크마에 해당한다. 디닥트론은 가르침의 값으로 받는 돈을 말한다.
11. 옮긴이 — 구빈법은 교구마다 제 교구의 빈민을 먹이도록 한 법 체계다. 리처드 번의 《구빈법의 역사》는 1764년에 나왔다.
12. 옮긴이 — 엘리자베스 치세 43년의 법 제2장은 1601년의 구빈법이다. 이 법이 세운 교구 단위의 빈민 부양이 뒤에 이어지는 정주 관련 법령들의 바탕이 되었다.
13. 옮긴이 — 번(1709~1785)은 잉글랜드의 성직자이자 법률 저술가로, 치안 판사를 위한 편람과 《구빈법의 역사》를 썼다.
14. 옮긴이 — 빵값 공정은 관청이 곡물 값에 맞추어 빵의 무게와 값을 정해 고시한 제도로, 영국에서 13세기부터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