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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론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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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공채에 대하여 (이어서)

영국에서는 우리가 끝없이 공채를 발행하는 저 파멸을 부르는 방편에 처음 기댄 때로부터, 평화 때에 공채를 줄인 몫이 전쟁 때에 그것이 쌓인 몫과 견줄 만한 비를 이룬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 영국이 진 저 어마어마한 빚의 주춧돌이 처음 놓인 것은 1688년에 일어나 1697년 리스베이크 조약으로 매듭지어진 전쟁에서였다.1

1697년 12월 31일에 영국의 공채는 기금이 매겨진 것과 매겨지지 않은 것을 합쳐 21,515,742파운드 13실링 8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2 그 빚의 큰 몫은 가까운 앞날의 세입을 미리 당겨 쓰는 꼴로 졌고 얼마는 종신 연금의 꼴로 졌으므로, 1701년 12월 31일 이전에, 곧 네 해도 채 안 되는 사이에 얼마는 갚아지고 얼마는 나라로 되돌아와 그 합이 5,121,041파운드 12실링 0과 4분의 3펜스가 되었으니, 이는 그 뒤로 그렇게 짧은 동안에 이루어진 어떤 공채 줄임보다도 큰 것이었다. 그러므로 남은 빚은 16,394,701파운드 1실링 7과 4분의 1펜스밖에 되지 않았다.

1702년에 일어나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매듭지어진 전쟁에서 공채는 더욱더 쌓였다. 1714년 12월 31일에 그것은 53,681,076파운드 5실링 6과 2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단기 연금과 장기 연금을 남해 기금에 응모하게 한 일이 공채의 원금을 늘려서,3 1722년 12월 31일에 그것은 55,282,978파운드 1실링 3과 6분의 5펜스에 이르렀다. 빚을 줄이는 일은 1723년에 시작되었으나 어찌나 더디게 나아갔던지, 1739년 12월 31일까지 더할 나위 없는 평화가 이어진 열일곱 해 동안 갚은 돈을 죄다 합쳐도 8,328,354파운드 17실링 11과 12분의 3펜스에 지나지 않았고,4 그때 공채의 원금은 46,954,623파운드 3실링 4와 12분의 7펜스에 이르렀다.

1739년에 일어난 스페인와의 전쟁과 머잖아 뒤따른 프랑스와의 전쟁이 빚을 더 늘려, 아헨 조약으로 그 전쟁이 매듭지어진 뒤인 1748년 12월 31일에 그것은 78,293,313파운드 1실링 10과 4분의 3펜스에 이르렀다. 열일곱 해 동안 이어진 더할 나위 없는 평화가 거기서 덜어 낸 것은 8,328,354파운드 17실링 11과 4분의 1펜스뿐이었다. 아홉 해도 안 되게 이어진 전쟁이 거기에 31,338,689파운드 18실링 6과 6분의 1펜스를 보탰다. (제임스 포슬스웨이트의 『공공 세입의 역사』를 보라)

펠럼 씨가 정사를 맡고 있는 동안 공채의 이자가 4퍼센트에서 3퍼센트로 내려갔고, 적어도 그것을 내리려는 조치가 취해졌다.5 감채 기금이 늘어났고 공채의 얼마가 갚아졌다. 1755년, 곧 지난번 전쟁이 터지기 전에 영국에서 기금이 매겨진 빚은 72,289,675파운드에 이르렀다. 평화가 맺어진 1763년 1월 5일에 기금이 매겨진 빚은 122,603,336파운드 8실링 2와 4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기금이 매겨지지 않은 빚은 13,927,589파운드 2실링 2펜스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 전쟁이 낳은 비용은 평화가 맺어졌다고 해서 끝나지 않아서, 1764년 1월 5일에 기금이 매겨진 빚이 얼마는 새로 꾸어서 얼마는 기금이 매겨지지 않은 빚의 얼마에 기금을 매겨서 129,586,789파운드 10실링 1과 4분의 3펜스로 늘어났는데도, 『영국의 무역과 재정에 관한 고찰』을 쓴 몹시 밝은 글쓴이에 따르면 그해와 그 이듬해에 회계에 올려진 기금이 매겨지지 않은 빚이 9,975,017파운드 12실링 2와 44분의 15펜스 더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글쓴이에 따르면 1764년에 영국의 공채는 기금이 매겨진 것과 매겨지지 않은 것을 합쳐 139,561,807파운드 2실링 4펜스에 이르렀다. 게다가 1757년에 새로 꾸는 돈에 응모한 이들에게 포상으로 준 종신 연금은 열네 해 치 값으로 쳐서 472,500파운드로 매겨졌고, 마찬가지로 포상으로 1761년과 1762년에 준 여러 해에 걸친 장기 연금은 스물일곱 해 반 치 값으로 쳐서 6,826,875파운드로 매겨졌다. 일곱 해쯤 이어진 평화 동안 펠럼 씨의 신중하고 참으로 나라를 아끼는 정사도 600만 파운드의 묵은 빚을 갚아 내지 못했다. 거의 같은 길이로 이어진 전쟁 동안 7,500만 파운드가 넘는 새 빚을 졌다.

1775년 1월 5일에 영국에서 기금이 매겨진 빚은 124,996,086파운드 1실링 6과 4분의 1펜스에 이르렀다. 기금이 매겨지지 않은 빚은 큰 액수의 왕실비 빚을 빼고 4,150,236파운드 3실링 11과 8분의 7펜스였다.6 둘을 합치면 129,146,322파운드 5실링 6펜스다. 이 셈에 따르면 더할 나위 없는 평화가 이어진 열한 해 동안 갚은 빚을 죄다 합쳐도 10,415,476파운드 16실링 9와 8분의 7펜스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적은 빚 줄임조차 죄다 나라의 예사로운 세입에서 아낀 것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그 예사로운 세입과는 아주 상관없는 몇 가지 바깥돈이 거기에 보태졌다. 그 가운데 세 해 동안 토지세를 1파운드에 1실링 더 매긴 것, 동인도회사가 제가 얻은 땅에 대한 값으로 내놓은 200만 파운드, 은행이 그 특허장을 다시 받으면서 내놓은 11만 파운드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몇 가지 다른 돈을 더해야 하는데, 그것들은 지난번 전쟁에서 생긴 것이므로 아마 그 전쟁 비용에서 빼야 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주된 것은 이러하다.

프랑스에서 나포한 배를 판 돈.............. 690,449파운드 18실링 9펜스

프랑스 포로를 두고 셈 맞춘 돈......... 670,000파운드 0실링 0펜스

넘겨받은 섬들을 팔아

들어온 돈......................... 95,500파운드 0실링 0펜스

합계, .....................................1,455,949파운드 18실링 9펜스

이 액수에 채텀 백작과 콜크래프트 씨의 회계에 남은 돈과 그와 같은 갈래로 군대에서 아낀 다른 돈을 더하고,7 거기에 은행과 동인도회사에서 받은 것과 토지세를 1파운드에 1실링 더 매겨 얻은 것을 함께 더하면, 그 죄다는 500만 파운드를 훨씬 넘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평화가 맺어진 뒤로 나라의 예사로운 세입에서 아껴 갚은 빚은 해마다 고르게 쳐서 50만 파운드에도 이르지 못한다. 평화가 맺어진 뒤로 감채 기금이 자못 늘어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으니, 갚은 빚과, 되사들일 수 있는 4퍼센트 채권을 3퍼센트로 내린 것과, 받을 사람이 죽어 떨어져 나온 종신 연금이 그리 만든 것이다. 평화가 이어진다면 아마 이제 거기서 해마다 100만 파운드쯤을 빚을 없애는 데에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지난해에도 100만 파운드를 치렀다. 그러나 그와 함께 큰 액수의 왕실비 빚이 갚아지지 않은 채 남았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전쟁에 휘말려 있으니 그 전쟁은 나아가면서 우리가 여태 치른 어느 전쟁 못지않게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그 전쟁은 우리가 여태 치른 어느 전쟁보다도 큰 비용이 드는 것으로 드러났고, 우리에게 1억 파운드가 넘는 빚을 더 지웠다. 더할 나위 없는 평화가 이어진 열한 해 동안 갚은 빚은 1,000만 파운드 남짓이었는데, 일곱 해 동안 이어진 전쟁 동안 1억 파운드가 넘는 빚을 졌다) 다음 싸움철이 끝나기 전에 아마 지게 될 새 빚은 나라의 예사로운 세입에서 아껴 갚은 묵은 빚을 죄다 합친 것과 거의 맞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그대로의 그 예사로운 세입에서 아낄 만한 어떤 것으로든 공채가 언젠가 온통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헛된 꿈이다.

유럽의 빚진 여러 나라의 공채 기금, 그 가운데서도 잉글랜드의 것을 두고 어떤 글쓴이는 그 나라의 다른 자본에 덧보태져 쌓인 큰 자본이며, 그 덕분에 무역이 넓어지고 제조업이 불어나고 토지가 그 다른 자본만으로 이루었을 것보다 훨씬 더 갈아지고 개량된다고 그려 왔다. 그는 나라에 돈을 꾸어 준 첫 채권자들이 정부에 내준 자본이, 그것을 내준 바로 그 순간부터, 해마다 나는 생산물의 얼마가 자본 노릇에서 돌려져 수입 노릇으로 넘어간 것이고, 생산적인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데에서 돌려져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자를 먹여 살리는 데로 넘어가, 앞으로 다시 낳을 것이라는 바람조차 없이 대개 그해 안에 쓰이고 없어져 버린 것임을 헤아리지 않는다. 그들은 참으로 제가 내준 자본에 갈음하여 공채 기금에서 나오는 연금을 얻었고, 대개는 그 값어치가 내준 것보다 더 컸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연금은 그들에게 그 자본을 채워 주었고, 그들이 저의 장사와 일을 예전과 같은 만큼, 아니 어쩌면 더 큰 만큼 이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곧 그들은 이 연금을 믿고 남에게서 새 자본을 꾸거나, 그것을 팔아 남에게서 제 것이 되는 새 자본을 정부에 내준 것과 맞먹거나 그보다 큰 만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렇게 남에게서 사거나 꾼 이 새 자본은 그 전에도 이 나라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고, 온갖 자본이 그러하듯 생산적인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에 쓰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정부에 돈을 내준 이들의 손에 들어왔을 때, 그것이 그들에게는 얼마쯤 새 자본이었을지라도 나라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다만 어떤 쓰임에서 빼내어 다른 쓰임으로 돌려진 자본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정부에 내준 것을 채워 주었으나 나라에는 채워 주지 않았다. 그들이 이 자본을 정부에 내주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에는 생산적인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에 쓰이는 자본이, 곧 해마다 나는 생산물의 몫이 하나가 아니라 둘 있었을 것이다.

정부의 비용을 치르려고 저당 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세금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해 안에 세입을 거둘 때에는, 개인의 수입 가운데 얼마가 한 갈래의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에서 다른 갈래의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로 돌려질 뿐이다. 그들이 그 세금으로 치르는 것의 얼마는 두말할 나위 없이 자본으로 쌓여 생산적인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에 쓰였을 수도 있으나, 그 큰 몫은 아마 쓰여 없어져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을 먹여 살리는 데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치러진 공공 비용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새 자본이 더 쌓이는 것을 얼마간 막기는 하나, 이미 있는 자본이 반드시 무너지게 하지는 않는다.

공공 비용을 공채 발행으로 치를 때에는, 그 전에 이 나라에 있던 어떤 자본을 해마다 무너뜨려서 치르는 것이고, 해마다 나는 생산물 가운데 그 전에 생산적인 노동을 먹여 살리기로 되어 있던 얼마를 생산적이지 않은 노동을 먹여 살리는 쪽으로 비틀어서 치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세금은 같은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한 세입을 그해 안에 거두었을 때보다 가벼우므로, 개인이 저마다 지닌 수입이 짐을 덜 지고, 따라서 그 수입의 얼마를 아껴 자본으로 쌓을 힘이 훨씬 덜 깎인다. 공채 발행이라는 길이 묵은 자본을 더 많이 무너뜨린다면, 그와 함께 그것은 그해 안에 거둔 세입으로 공공 비용을 치르는 길보다 새 자본을 쌓거나 얻는 것을 덜 막는다. 공채 발행이라는 체계 아래에서는 정부의 헤픔과 흥청거림이 이따금 사회의 온 자본에 내는 구멍을 개인의 검약과 근면이 더 쉽게 메울 수 있다.

그러나 공채 발행이라는 체계가 다른 체계보다 이렇게 나은 것은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뿐이다. 전쟁 비용을 늘 그해 안에 거둔 세입으로 치른다면, 그 남다른 세입을 끌어내는 세금은 전쟁보다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 쌓을 힘은 전쟁 동안에는 덜할지라도 평화 동안에는 공채 발행이라는 체계 아래에서보다 더 컸을 것이다. 전쟁이 반드시 묵은 자본을 무너뜨리지는 않았을 터이고, 평화가 훨씬 더 많은 새 자본을 쌓게 하였으리라. 전쟁은 대체로 더 빨리 매듭지어지고 더 함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백성이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 그 짐을 고스란히 느낀다면 머잖아 그것에 싫증을 낼 터이고, 정부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꼭 해야 할 것보다 더 오래 전쟁을 끌고 갈 까닭이 없을 것이다. 전쟁의 무겁고 피할 수 없는 짐을 미리 내다본다면 백성은 싸워서 얻을 참되고 단단한 이해가 없을 때 함부로 전쟁을 불러 대지 않으리라. 개인이 쌓을 힘이 얼마쯤 깎이는 철은 더 드물게 오고 더 짧게 이어질 것이다. 그와 달리 그 힘이 가장 왕성한 철은 공채 발행이라는 체계 아래에서 그럴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이어질 것이다.

게다가 공채 발행이 어느 만큼 나아가고 나면, 그것이 데려오는 세금의 불어남이 때로는 평화 때에조차 다른 체계가 전쟁 때에 그리하였을 만큼이나 개인이 쌓을 힘을 깎는다. 영국의 평시 세입은 이제 해마다 1,000만 파운드를 넘는다. 그것이 저당 잡히지 않은 자유로운 것이라면, 제대로 꾸려 가기만 하면 새 빚을 1실링도 지지 않고 가장 힘찬 전쟁을 치르기에 넉넉할 것이다. 영국에 사는 사람이 저마다 지닌 수입은 이제 평화 때에도, 저 해로운 공채 발행 체계를 아예 들이지 않았더라면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전쟁 때에 그러하였을 만큼이나 짐을 지고 있고, 그들이 쌓을 힘도 그만큼 깎여 있다.

공채의 이자를 치르는 것을 두고 오른손이 왼손에게 치르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돈이 나라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무리 사람들이 지닌 수입의 얼마가 다른 무리에게 옮겨 가는 것일 뿐이고, 나라는 1파딩만큼도 더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변명은 온통 중상주의 체계의 궤변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내가 이미 그 체계를 길게 살펴본 마당에 그것을 두고 무엇을 더 말할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것은 공채가 죄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진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네덜란드 사람을 비롯한 여러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 공채 기금에서 자못 큰 몫을 쥐고 있다. 그러나 그 빚이 죄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에게 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 때문에 그것이 덜 해로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토지와 자본은 개인의 것이든 나라의 것이든 온갖 수입의 두 본디 원천이다. 자본은 농사에 쓰이든 제조업에 쓰이든 장사에 쓰이든 생산적인 노동의 임금을 치른다. 이 두 본디 수입의 원천을 꾸리는 일은 서로 다른 두 무리, 곧 토지의 임자와 자본의 임자 또는 그것을 굴리는 이에게 맡겨져 있다.

토지의 임자는 제 수입을 위해서라도 제 땅을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꼴로 지키는 데에 이해가 걸려 있어서, 차지인의 집을 짓고 고치고, 있어야 할 물길과 울타리를 내고 건사하며, 지주가 마땅히 내고 건사해야 할 그 밖의 온갖 돈 드는 개량을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토지세로 지주의 수입이 몹시 줄어들 수 있고,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과 편리한 것에 물리는 여러 가지 부과금으로 그 줄어든 수입의 참된 값어치가 몹시 작아져서, 그는 그 돈 드는 개량을 내거나 건사하기가 아예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지주가 제 몫을 하기를 그만두면, 차지인이 제 몫을 이어서 하기란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주의 쪼들림이 커질수록 이 나라의 농사는 반드시 기운다.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과 편리한 것에 물리는 여러 가지 세금 때문에, 자본의 임자와 그것을 굴리는 이가 제가 거기서 끌어내는 수입이 무엇이든 어떤 나라에서는 다른 거의 어느 나라에서 같은 수입으로 살 수 있는 만큼의 없어서는 안 될 것과 편리한 것을 살 수 없음을 알게 되면, 그들은 다른 데로 옮겨 가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세금을 거두느라 상인과 제조업자가 죄다, 또는 그 큰 몫이, 곧 큰 자본을 굴리는 이가 죄다, 또는 그 큰 몫이 세리의 낯 뜨겁고 성가신 드나듦에 늘 내맡겨지게 되면, 옮겨 가고 싶은 이 마음은 머잖아 참으로 옮겨 가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이 나라의 산업은 그것을 떠받치던 자본이 빠져나가면 반드시 무너질 터이고, 농사가 기운 뒤에는 장사와 제조업이 망하는 일이 뒤따를 것이다.

수입의 저 두 큰 원천인 토지와 자본의 임자에게서, 곧 낱낱의 토지가 좋은 꼴로 있는 데에, 그리고 낱낱의 자본이 잘 꾸려지는 데에 바로 이해가 걸린 이들에게서, 그런 남다른 이해가 없는 다른 무리, 곧 나라에 돈을 꾸어 준 채권자에게로 그 어느 쪽에서 나오는 수입의 큰 몫을 옮기는 것은, 길게 보아 토지를 내버려 두게 하고 자본을 헤프게 하거나 빠져나가게 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채권자도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나라의 농사와 제조업과 장사가 잘되는 데에, 따라서 그 토지가 좋은 꼴로 있고 그 자본이 잘 꾸려지는 데에 두루 이해가 걸려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든 두루 못 되거나 기운다면, 여러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 그에게 치러야 할 연금이나 이자를 대기에 더는 넉넉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채권자로만 보는 한, 나라의 채권자는 어느 낱낱의 토지가 좋은 꼴로 있는 데에도, 어느 낱낱의 자본이 잘 꾸려지는 데에도 이해가 걸려 있지 않다. 나라의 채권자로서 그는 그런 낱낱의 몫을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돌볼 수 없다. 더러는 그것이 망해도 그가 모를 수 있고, 그것이 그를 바로 건드릴 수도 없다.

공채 발행이라는 관행은 그것을 들인 나라를 하나하나 차츰 힘 빠지게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이 그것을 처음 시작한 듯하다.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아직도 홀로 선 나라라 내세울 수 있는 오직 둘인데, 둘 다 그것 때문에 힘이 빠졌다. 스페인은 이탈리아의 공화국들에게서 그 관행을 배운 듯하고, 그 세금이 아마 그들의 것보다 덜 슬기로웠으므로 제 타고난 힘에 견주어 더욱더 힘이 빠졌다. 스페인의 빚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그 나라는 16세기가 끝나기 전에 깊이 빚에 빠져 있었으니, 잉글랜드가 1실링을 빚지기 백 해쯤 앞선 일이다. 프랑스는 타고난 온갖 밑천에도 아랑곳없이 같은 갈래의 짓누르는 짐 아래 시들고 있다. 네덜란드 연방 공화국은 제 빚 때문에 제노바나 베네치아 못지않게 힘이 빠져 있다. 다른 온갖 나라에 약함이나 무너짐을 가져다준 관행이 유독 영국에서만 아주 해롭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성싶은가?

그 여러 나라에 자리 잡은 조세 체계가 잉글랜드의 것보다 못하다고들 말할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고 믿는다. 그러나 가장 슬기로운 정부라도 세금을 매길 마땅한 대상을 죄다 바닥냈다면, 급히 어쩔 수 없는 때에는 마땅하지 않은 대상에 기댈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슬기로운 네덜란드 공화국도 더러는 스페인의 세금 가운데 큰 몫만큼이나 불편한 세금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공공 세입이 얼마만큼이라도 풀려나기 전에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 나아가면서 지난번 전쟁만큼 큰 비용이 드는 것이 된다면, 어찌할 수 없는 급함에 떠밀려 영국의 조세 체계도 네덜란드의 것만큼, 아니 스페인의 것만큼이나 짓누르는 것이 될 수 있다. 참으로 우리의 지금 조세 체계의 명예를 위해 말하자면, 그것은 여태 산업을 거의 거치적거리게 하지 않아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전쟁이 이어지는 동안조차 사람마다의 검약과 바른 몸가짐이 아끼고 쌓아서 정부의 헤픔과 흥청거림이 사회의 온 자본에 낸 구멍을 죄다 메울 수 있었던 듯하다. 영국이 여태 치른 가운데 가장 큰 비용이 든 지난번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의 농사는 예전 못지않게 번창했고, 제조업자는 예전 못지않게 많았고 예전 못지않게 넉넉히 일거리를 얻었으며, 장사는 예전 못지않게 넓었다. 그러므로 산업의 그 여러 갈래를 죄다 떠받친 자본은 예전에 있던 것과 맞먹었던 것이 틀림없다. 평화가 맺어진 뒤로 농사는 더욱 개량되었고, 이 나라의 어느 도시에서나 어느 마을에서나 집의 지대가 올랐으니 이는 백성의 부와 수입이 늘고 있다는 증거이며, 묵은 세금의 큰 몫, 그 가운데서도 소비세와 관세의 으뜸가는 갈래에서 해마다 나오는 액수가 끊임없이 늘어 왔으니 이는 소비가 늘고 있다는, 따라서 그 소비를 떠받칠 수 있는 오직 하나인 생산물이 늘고 있다는 똑같이 또렷한 증거다. 영국은 반백 년 전에는 아무도 그가 떠받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던 짐을 쉽게 떠받치는 듯하다. 그렇다고 이를 빌미로 영국이 어떤 짐이든 다 떠받칠 수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지는 말자. 이미 그에게 지워진 것보다 조금 더 무거운 짐을 크게 쪼들리지 않고 떠받칠 수 있으리라고 너무 자신하지도 말자.

국채가 일단 어느 만큼 쌓이고 나면, 그것이 제대로 온전히 갚아진 사례는 내가 믿기로 하나도 없다시피 하다. 공공 세입이 풀려난 일이 있기라도 했다면 그것은 늘 파산으로 이루어졌으니, 더러는 드러내 놓고 하는 파산이었고 흔히는 치르는 척하는 파산이었다.

주화의 이름값을 올리는 것은 참된 나라의 파산을 치르는 척하는 겉모습 아래 감추는 데에 가장 흔히 쓰이던 방편이었다. 이를테면 여섯 펜스짜리 은화가 의회의 법으로든 국왕의 선포로든 1실링이라는 이름값으로 올라가고, 여섯 펜스짜리 스무 닢이 1파운드 스털링이라는 이름값으로 올라간다면, 옛 이름값 아래 20실링, 곧 은 4온스쯤을 꾸었던 사람은 새 이름값 아래에서는 여섯 펜스짜리 스무 닢, 곧 2온스에 못 미치는 것으로 갚게 된다. 영국에서 기금이 매겨진 빚과 매겨지지 않은 빚의 원금에 가까운 1억 2,800만 파운드쯤의 국채를 이렇게 하여 지금 우리 돈 6,400만 파운드쯤으로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치르는 척하는 것일 뿐이고, 나라의 채권자는 저에게 받을 것에서 1파운드에 10실링씩을 참으로 빼앗기는 셈이다. 게다가 그 재앙은 나라의 채권자에게서 훨씬 더 멀리까지 뻗어, 낱낱의 사람에게 딸린 채권자도 죄다 그에 맞먹는 손해를 입을 터이고, 그러면서도 나라의 채권자에게 아무런 이로움이 없고 대개는 도리어 큰 손해가 더 얹히리라. 참으로 나라의 채권자가 두루 남에게 많이 빚지고 있다면, 그들은 나라가 저에게 치른 것과 같은 주화로 제 채권자에게 치름으로써 제 손해를 얼마쯤 메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어느 나라에서나 나라의 채권자는 그 큰 몫이 넉넉한 사람이어서, 다른 동료 시민에 대해 빚진 이보다는 빌려준 이의 자리에 더 많이 서 있다. 그러므로 이런 갈래의 치르는 척하기는 나라의 채권자의 손해를 덜어 주기는커녕 거의 어느 경우에나 더 무겁게 하고, 나라에 아무런 이로움도 없이 그 재앙을 아무 죄 없는 숱한 다른 사람에게까지 넓힌다. 그것은 개인의 재산을 두루, 그리고 더없이 해롭게 뒤엎어서, 거의 어느 경우에나 게으르고 헤픈 빚진 이를 부지런하고 검약한 빌려준 이의 손해로 넉넉하게 만들고, 나라의 자본 가운데 큰 몫을 그것을 불리고 나아지게 할 만한 손에서 그것을 흩뜨리고 무너뜨릴 만한 손으로 옮긴다. 나라가 스스로 파산했다고 밝혀야 할 때가 오면, 한 사람이 그리해야 할 때가 오는 것과 똑같이, 떳떳하고 드러내 놓고 밝히는 파산이 언제나 빚진 이에게 가장 덜 부끄럽고 빌려준 이에게 가장 덜 해로운 길이다. 참된 파산이라는 망신을 덮으려고 이렇게 쉽게 속이 들여다보이면서도 이렇게 몹시 해로운 요술 같은 수작에 기댄다면, 나라의 명예는 참으로 몹시 하찮게 지켜지는 것이다.

그러나 옛날이든 오늘날이든 거의 온갖 나라가 이런 급함에 몰렸을 때 더러 바로 이 요술 같은 수작을 부렸다. 로마인은 첫 포에니 전쟁이 끝날 무렵에 제 다른 온갖 주화의 값어치를 셈하는 데에 쓰던 주화 곧 이름값인 아스를 구리 12온스가 들어가던 것에서 겨우 2온스만 들어가게 줄였으니,8 곧 그들은 구리 2온스를 언제나 그 전에는 12온스의 값어치를 나타내던 이름값으로 올린 것이다. 공화국은 이렇게 하여 저가 진 큰 빚을 참으로 빚진 것의 여섯 분의 일로 갚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고 그렇게 큰 파산이라면 오늘날에는 몹시 사나운 백성의 아우성을 일으켰으리라고 우리는 으레 여기겠지만, 그런 일은 조금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그것을 정한 법은 주화에 관한 다른 온갖 법과 마찬가지로 호민관이 내놓아 민회를 거쳐 통과시킨 것이며, 아마 몹시 인기 있는 법이었을 것이다. 로마에서도 옛날의 다른 온갖 공화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이는 늘 넉넉하고 높은 이에게 빚지고 있었으니, 넉넉한 이는 해마다 치르는 선거에서 제 표를 붙잡아 두려고 터무니없는 이자로 그들에게 돈을 꾸어 주곤 하였고, 그 돈은 갚아지는 일이 없어 머잖아 빚진 이가 갚을 수도, 다른 누가 그를 대신해 갚을 수도 없이 큰 액수로 쌓였다. 빚진 이는 몹시 모진 집행이 두려워 더 받는 것 없이도 빌려준 이가 밀어 주는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뇌물과 부패를 막는 온갖 법에도 아랑곳없이 후보들이 뿌리는 돈은 원로원이 이따금 명하던 주화 나눔과 함께, 로마 공화국의 끝 무렵에 더 가난한 시민이 제 생계를 끌어내던 으뜸가는 밑천이었다. 제 채권자에게 매인 이 처지에서 벗어나려고 더 가난한 시민은 빚을 죄다 없애 달라고, 아니면 그들이 새 장부라 부르던 것을, 곧 쌓인 빚의 어느 몫만 치르면 죄다 벗을 수 있게 해 주는 법을 끊임없이 외쳐 댔다. 온갖 이름값의 주화를 그 전 값어치의 여섯 분의 일로 줄인 저 법은 그들이 참으로 빚진 것의 여섯 분의 일로 제 빚을 갚을 수 있게 해 주었으므로, 더없이 이로운 새 장부와 다름없었다. 백성을 달래려고 넉넉하고 높은 이는 여러 차례 빚을 없애는 법에도 새 장부를 들이는 법에도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그들이 이 법에 따르기로 한 것도 아마 얼마는 같은 까닭에서였고, 얼마는 공공 세입을 풀어 줌으로써 저희가 그 으뜸가는 키를 쥐고 있던 그 정부에 기운을 되찾아 주려는 것에서였다. 이런 갈래의 손질은 1억 2,800만 파운드의 빚을 단숨에 21,333,333파운드 6실링 8펜스로 줄일 것이다. 두 번째 포에니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아스는 더욱 줄어, 처음에는 구리 2온스에서 1온스로, 그 뒤에는 1온스에서 반 온스로, 곧 그 본디 값어치의 스물넷 분의 일이 되었다. 로마인의 이 세 가지 손질을 하나로 묶으면, 지금 우리 돈으로 1억 2,800만 파운드의 빚을 이렇게 하여 단숨에 5,333,333파운드 6실링 8펜스의 빚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저 어마어마한 빚조차 이런 식이라면 머잖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편으로 내가 믿기로 온갖 나라의 주화는 차츰차츰 그 본디 값어치보다 더 아래로 내려갔고, 같은 이름의 액수에 차츰차츰 더 적고 더 적은 은이 들어가게 되었다.

나라들은 더러 같은 속셈으로 제 주화의 법정 품위를 흐려 놓기도 하였으니, 곧 거기에 섞임쇠를 더 많이 섞은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은화 1파운드(무게)에 지금의 법정 품위대로 18페니웨이트를 섞는 대신에 섞임쇠 8온스를 섞는다면,9 그런 주화로 1파운드 스털링 곧 20실링은 지금 우리 돈으로 6실링 8펜스보다 조금 더한 값어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돈으로 6실링 8펜스에 들어 있는 은의 양이 이리하여 1파운드 스털링이라는 이름값에 거의 다다르도록 올라가는 셈이다. 법정 품위를 흐리는 것은 프랑스 사람들이 오그망타시옹이라 부르는 것, 곧 주화의 이름값을 곧바로 올리는 것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

오그망타시옹, 곧 주화의 이름값을 곧바로 올리는 것은 언제나 드러내 놓고 밝히는 손질이고, 그 성질로 보아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으로 무게도 부피도 더 작은 조각이 그 전에 무게도 부피도 더 큰 조각에 주어지던 것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와 달리 법정 품위를 흐리는 것은 대체로 몰래 하는 손질이었다. 그것으로 조폐국에서는 그 전에 돌던 훨씬 값어치 큰 조각과 같은 이름값을 달고 될 수 있는 대로 같은 무게와 부피와 겉모습을 갖춘 조각이 나온다. 프랑스의 국왕 장이 (뒤 캉주의 『용어 사전』 「모네타」 항목, 베네딕트회 판을 보라) 제 빚을 갚으려고 주화의 품위를 흐렸을 때, 그 조폐국의 벼슬아치는 죄다 입을 다물겠다는 맹세를 해야 했다.10 두 손질 다 옳지 않다. 그러나 그저 이름값을 올리는 것은 드러내 놓고 저지르는 힘의 옳지 않음이고, 품위를 흐리는 것은 남을 저버리는 속임의 옳지 않음이다. 그러므로 뒤엣것은 들키고 나면, 그리고 그것은 아주 오래 숨겨질 수가 없었는데, 언제나 앞엣것보다 훨씬 큰 노여움을 일으켰다. 주화는 이름값을 어지간히 올린 뒤에 그 전 무게로 되돌려진 일이 거의 없었으나, 품위를 크게 흐린 뒤에는 거의 언제나 그 전 품위로 되돌려졌다. 그러지 않고서는 백성의 노여움과 분함을 가라앉힐 길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헨리 8세의 치세가 끝날 무렵과 에드워드 6세의 치세가 시작될 무렵에 잉글랜드의 주화는 이름값이 올랐을 뿐 아니라 법정 품위도 흐려졌다. 제임스 6세가 어렸던 동안 스코틀랜드에서도 그와 같은 속임이 저질러졌다. 다른 거의 온갖 나라에서도 더러 그런 일이 있었다.

영국의 공공 세입이 온통 풀려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 그 풀려남을 향해 어느 만큼이라도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조차, 그 세입 가운데 남는 몫, 곧 평시 설비를 해마다 건사하는 비용을 치르고 남는 것이 이렇게 몹시 적은 동안에는 아예 바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그 풀려남은 공공 세입을 자못 크게 늘리거나 공공 비용을 그만큼 크게 줄이지 않고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이 뚜렷하다.

토지세를 더 고르게 하고, 집의 지대에 물리는 세금을 더 고르게 하며, 지금의 관세와 소비세 체계를 앞 장에서 말한 대로 손질한다면, 아마 백성의 큰 몫이 지는 짐을 더 무겁게 하지 않고 그 무게를 온 나라에 더 고르게 나누기만 하고서도 세입을 자못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낙관하는 사업 기획자라도 이런 갈래의 늘림이 공공 세입을 온통 풀어 줄 만하다거나, 평화 때에 그 풀려남을 향해 나아가 다음 전쟁에서 공채가 더 쌓이는 것을 막거나 메울 만하다고 저를 달랠 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영국의 조세 체계를 영국이나 유럽에 뿌리를 둔 사람이 사는 제국의 여러 속주에 죄다 넓힌다면 세입이 훨씬 더 크게 늘 것으로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영국 헌정의 원리에 맞게 하자면, 영국 의회에, 아니 굳이 달리 부르자면 영국 제국의 전체 신분회에 그 여러 속주를 고르고 떳떳하게 대표하는 이들을 들이지 않고서는 아마 거의 할 수 없을 것이다. 속주마다 그 대표가 그 세금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지니는 비는 영국의 대표가 영국에서 거둔 세금에서 나오는 것에 대해 지니는 비와 같아야 한다. 참으로 지금으로서는 힘 있는 숱한 사람의 사사로운 이해와 큰 무리의 굳어진 치우친 생각이 이렇게 큰 바뀜에 맞서, 넘기가 몹시 어려운, 아니 아예 넘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걸림돌을 놓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합침이 될 일인지 안 될 일인지를 가리려 들지 않더라도, 이런 갈래의 생각을 펼쳐 보는 글에서 영국의 조세 체계가 제국의 여러 속주에 죄다 얼마만큼 들어맞을 수 있을지, 그렇게 쓴다면 거기서 어떤 세입을 바랄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런 갈래의 두루 합침이 그 안에 든 여러 속주의 행복과 번영을 어떻게 건드릴 성싶은지를 헤아려 보는 것은 아마 마땅치 않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헤아림은 나쁘게 보아야 새로운 유토피아로 여겨질 뿐이겠으나, 옛 유토피아보다 덜 재미있을지언정 더 쓸모없거나 더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토지세와 인지세와 여러 가지 관세와 소비세가 영국 세금의 네 가지 으뜸가는 갈래를 이룬다.

아일랜드는 영국 못지않게, 우리의 아메리카와 서인도 개척지는 영국보다 더 토지세를 치를 힘이 있음이 틀림없다. 지주가 십일조도 구빈세도 물지 않는 곳에서는 그 두 짐을 다 지는 곳에서보다 그런 세금을 치를 힘이 더 있음이 틀림없다. 모두스가 없고 실물로 걷는 곳에서 십일조는,11 1파운드에 5실링에 참으로 이르는 토지세보다도 지주의 지대가 되었을 것을 더 많이 깎는다. 그런 십일조는 거의 어느 경우에나 토지의 참된 지대, 곧 농부의 자본을 온통 채워 주고 그의 이치에 맞는 이윤까지 치른 뒤에 남는 것의 네 분의 일이 넘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온갖 모두스와 온갖 속인 귀속을 없앤다면, 영국과 아일랜드의 온전한 교회 십일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0만이나 700만 파운드로 매길 수 있으리라. 영국에도 아일랜드에도 십일조가 없다면, 지주들은 지금 그 큰 몫이 지고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도 600만이나 700만 파운드의 토지세를 더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아메리카는 십일조를 물지 않으니 토지세를 아주 넉넉히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아메리카와 서인도의 토지는 대체로 차지인에게 맡겨지지도 농부에게 빌려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어떤 지대 대장에 따라서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토지도 윌리엄과 메리 치세 4년에는 어떤 지대 대장에 따라서가 아니라 몹시 헐겁고 어림잡은 셈에 따라 매겨졌다.12 아메리카의 토지도 그와 같이 매기거나, 아니면 요즘 밀라노와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과 사르데냐의 영지에서 한 것과 같은 꼼꼼한 조사에 따라 공평하게 값을 매겨 그에 따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인지세는 법을 다루는 절차의 꼴과 부동산이든 동산이든 재산을 넘기는 증서가 같거나 거의 같은 온갖 나라에서 아무런 다름 없이 거둘 수 있음이 뚜렷하다.

영국의 세관법을 아일랜드와 개척지에 넓히되 마땅히 그래야 하듯 무역의 자유를 넓히는 일이 함께 따른다면, 그것은 양쪽 모두에게 더없이 이로울 것이다. 지금 아일랜드의 무역을 짓누르는 온갖 얄미운 굴레와 아메리카의 열거 상품과 열거되지 않은 상품을 가르는 일이 아주 끝날 것이다.13 피니스테레곶 북쪽 나라들도 지금 그 곶 남쪽 나라들이 아메리카 생산물의 얼마에 열려 있는 것처럼 아메리카 생산물 죄다에 열릴 것이다. 세관법이 이렇게 하나같아진 결과로 영국 제국의 여러 갈래 사이의 무역은 지금 영국의 연안 무역이 그러한 것만큼 자유로우리라. 그리하여 영국 제국은 그 안에 그 여러 속주의 온갖 생산물을 위한 어마어마한 안쪽 시장을 마련해 줄 것이다. 이렇게 시장이 크게 넓어지면 아일랜드도 개척지도 관세가 는 데에서 입을 수 있는 것을 머잖아 죄다 메우리라.

소비세는 영국 조세 체계 가운데 제국의 여러 속주에 쓰이는 데에 따라 얼마쯤이라도 달리해야 할 오직 하나인 부분이다. 그것은 아일랜드에는 아무런 다름 없이 쓸 수 있을 터이니, 그 왕국의 생산물과 소비가 영국의 것과 꼭 같은 성질이기 때문이다. 생산물과 소비가 영국의 것과 몹시 다른 아메리카와 서인도에 쓸 때에는, 잉글랜드의 사과술 고장과 맥주 고장에 쓸 때와 마찬가지로 얼마쯤 손질이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맥주라 불리나 당밀로 빚으므로 우리 맥주와는 거의 닮은 데가 없는 띄운 술이 아메리카 백성이 늘 마시는 것의 큰 몫을 차지한다. 이 술은 며칠밖에 두고 쓸 수 없으므로 우리 맥주처럼 큰 술도가에서 빚어 쟁여 두고 팔 수가 없고, 집집이 제가 먹을 것을 제 손으로 빚어야 하니 밥을 지어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집집이 죄다 세리의 밉살스러운 드나듦과 살핌에 내맡기기를 우리가 선술집 주인과 내다 팔려고 술을 빚는 이에게 하듯 한다면, 그것은 자유와 아주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고르게 하자는 뜻에서 이 술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여긴다면, 그것을 빚는 데에 쓰는 감에 세금을 물리되 만드는 자리에서 물리거나, 장사의 사정이 그런 소비세를 마땅치 않게 만든다면 그것이 소비될 식민지로 들여올 때에 부과금을 물려서 물릴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의회가 아메리카로 당밀을 들여오는 데에 1갤런에 1펜스씩 물린 부과금 말고도, 다른 어느 식민지에 딸린 배로 매사추세츠 베이에 들여오는 데에 1호그즈헤드에 8펜스를 물리는 이런 갈래의 지방세가 있고,14 북쪽 식민지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들여오는 데에 1갤런에 5펜스를 물리는 또 하나가 있다. 아니면 이 길 가운데 어느 것도 편리하지 않다면, 집집이 제가 이 술을 마시는 몫을 두고 셈을 맞춰 낼 수도 있을 터인데, 잉글랜드에서 개인의 집안이 맥아세를 셈 맞춰 내듯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에 따라 할 수도 있고, 네덜란드에서 여러 가지 세금을 걷듯 그 사람들의 나이와 남녀에 따라 할 수도 있으며, 매슈 데커 경이 잉글랜드에서 소비재에 물리는 온갖 세금을 그렇게 걷어야 한다고 내놓은 것과 거의 같이 할 수도 있다. 이런 갈래의 과세는 이미 말하였듯이 빨리 소비되는 것에 쓰면 그리 편리하지 않다. 그러나 더 나은 길이 없는 데에서는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설탕과 럼과 담배는 어디서도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아니면서 거의 누구나 쓰는 것이 되었으니, 따라서 세금을 매기기에 더없이 알맞은 대상이다. 식민지와 합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그 상품에 제조업자나 기르는 이의 손을 떠나기 전에 세금을 물리거나, 이런 갈래의 과세가 그 사람들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면, 만드는 자리에도 뒤에 그것이 실려 갈 제국의 여러 항구에도 공공 창고를 두어 거기에 쟁여 놓고, 임자와 세무 관원이 함께 지키는 가운데 그것이 소비하는 이에게든 국내 소비를 위해 사들이는 소매 상인에게든 내다 팔 상인에게든 넘겨질 때까지 두었다가, 그렇게 넘겨질 때에야 세금을 치르게 할 수도 있다. 내다 팔려고 넘겨질 때에는 그것이 참으로 제국 밖으로 나가리라는 알맞은 보증을 받고 부과금 없이 내보내게 할 것이다. 식민지와 합치는 일이 지금의 영국 조세 체계에 얼마쯤 큰 바뀜을 요구할 만한 상품은 아마 이것이 으뜸일 것이다.

이 조세 체계를 제국의 여러 속주에 죄다 넓혔을 때 어느 만큼의 세입이 나올지는 두말할 나위 없이 어지간히 정확하게 헤아리기란 아예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 체계로 영국에서는 800만이 안 되는 사람에게서 해마다 1,000만 파운드가 넘는 세입을 거둔다. 아일랜드에는 200만이 넘는 사람이 있고, 대륙 회의에 내놓은 보고에 따르면 아메리카에서 함께 뭉친 열두 속주에는 300만이 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보고는 아마 제 백성에게 힘을 북돋우려는 것이든 이 나라 백성을 겁주려는 것이든 부풀려졌을 수 있으니, 우리는 북아메리카와 서인도의 식민지를 죄다 합쳐도 300만밖에 되지 않는다고, 곧 유럽과 아메리카에 걸친 영국 제국 전체에 사는 사람이 1,300만밖에 되지 않는다고 쳐 두자. 800만이 안 되는 사람에게서 이 조세 체계가 1,000만 파운드 스털링이 넘는 세입을 거둔다면, 1,300만 사람에게서는 1,625만 파운드 스털링이 넘는 세입을 거두어야 마땅하다. 이 체계가 그만큼을 낼 수 있다 치더라도, 그 세입에서 아일랜드와 개척지가 저마다의 민간 정부 비용을 치르려고 으레 거두는 세입을 빼야 한다. 아일랜드의 민간과 군사 설비에 드는 비용은 공채의 이자와 함께 1775년 3월에 끝난 두 해를 고르게 쳐서 해마다 75만 파운드에 조금 못 미치는 데에 이른다. 아메리카와 서인도의 으뜸가는 식민지의 세입을 몹시 꼼꼼하게 셈한 것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의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14만 1,800파운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셈에는 메릴랜드와 노스캐롤라이나와 우리가 요즘 얻은 것의 세입이 대륙에서든 섬에서든 죄다 빠져 있으니, 아마 3만이나 4만 파운드쯤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림수로 맞추기 위해 아일랜드와 개척지의 민간 정부를 떠받치는 데에 드는 세입을 100만 파운드로 쳐 두자. 그러면 제국의 두루 쓰이는 비용을 치르고 공채를 갚는 데에 돌릴 세입이 1,525만 파운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영국의 세입에서 평화로운 때에 그 빚을 갚는 데에 100만 파운드를 돌릴 수 있다면, 이렇게 나아진 세입에서는 625만 파운드를 아주 넉넉히 돌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큰 감채 기금은 해마다 그 앞 해에 없앤 빚의 이자만큼 늘어날 터이니, 이렇게 몹시 빠르게 불어나 몇 해 안에 그 빚을 죄다 없애기에 넉넉해질 터이고, 그리하여 지금 힘이 빠지고 시들어 있는 제국의 기운을 온통 되찾아 주리라. 그러는 사이에 백성은 가장 짐스러운 세금의 얼마에서, 곧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나 제조업의 감에 물리는 세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하는 빈민은 더 잘 살고 더 싸게 일하고 제 물건을 더 싸게 저자에 내놓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물건이 싸지면 그것을 바라는 마음이, 따라서 그것을 만드는 이의 노동을 바라는 마음이 커지리라. 노동을 바라는 마음이 이렇게 커지면 노동하는 빈민의 수도 늘고 그 처지도 나아질 것이다. 그들의 소비가 늘 터이고, 그와 함께 그 소비의 온갖 항목 가운데 세금을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에서 나오는 세입도 늘 것이다.

그러나 이 조세 체계에서 나오는 세입이 거기에 매인 사람의 수에 바로 비례해서 곧바로 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여태 지지 않던 짐을 이렇게 지게 된 제국의 속주에는 얼마 동안 크게 너그러워야 마땅할 터이고, 어디서나 같은 세금을 될 수 있는 대로 꼼꼼하게 걷게 되었을 때조차 그것이 어디서나 사람의 수에 비례하는 세입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관세와 소비세가 물려지는 으뜸가는 상품의 소비가 몹시 적고, 사람이 드문드문 사는 나라에서는 밀수할 틈이 몹시 크다. 스코틀랜드에서 낮은 계층이 맥아로 빚은 술을 마시는 양은 몹시 적고, 맥아와 맥주와 에일에 물리는 소비세는 사람의 수와 부과금의 율에 견주어 잉글랜드에서보다 덜 나오는데, 맥아에 물리는 율은 품질이 다르다고 여겨지는 까닭에 서로 다르다. 소비세의 이 갈래에서는 내가 보기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밀수가 그리 많지 않다. 증류에 물리는 부과금과 관세의 큰 몫은 두 나라의 사람 수에 견주어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에서보다 덜 나오는데, 이는 세금 물린 상품의 소비가 적기 때문만이 아니라 밀수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일랜드에서는 낮은 계층이 스코틀랜드에서보다 더 가난하고, 이 나라의 숱한 데에 사람이 거의 그만큼 드문드문 산다. 그러므로 아일랜드에서는 세금 물린 상품의 소비가 사람의 수에 견주어 스코틀랜드에서보다 더 적을 수 있고, 밀수하기 쉬운 것은 거의 같을 것이다. 아메리카와 서인도에서는 백인이 가장 낮은 계층조차 잉글랜드의 같은 계층보다 훨씬 나은 처지에 있고, 그들이 으레 누리는 온갖 사치품의 소비는 아마 훨씬 더 클 것이다. 참으로 대륙의 남쪽 식민지에서도 서인도의 섬에서도 사는 이의 큰 몫을 이루는 흑인은 노예 상태에 있으므로 두말할 나위 없이 스코틀랜드에서든 아일랜드에서든 가장 가난한 사람보다 더 나쁜 처지에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들이 더 나쁘게 먹는다거나, 알맞은 부과금을 물릴 만한 물건을 그들이 쓰는 것이 잉글랜드의 낮은 계층이 쓰는 것보다도 적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그들이 일을 잘하게 하려면 그들을 잘 먹이고 기운을 돋우어 두는 것이 그 주인의 이해에 맞으니, 제가 부리는 소를 그리해 두는 것이 그의 이해에 맞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흑인은 거의 어디서나 백인 하인과 마찬가지로 럼과 당밀이나 가문비 맥주를 제 몫으로 받고, 그 물건에 알맞은 부과금이 물린다 하여도 이 몫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금 물린 상품의 소비는 사는 이의 수에 견주어 아메리카와 서인도에서도 영국 제국의 어느 곳 못지않게 클 것이다. 참으로 밀수할 틈은 훨씬 클 터이니, 아메리카는 땅의 넓이에 견주어 스코틀랜드보다도 아일랜드보다도 사람이 훨씬 드문드문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맥아와 맥아로 빚은 술에 물리는 여러 가지 부과금으로 거두는 세입을 맥아 하나에 물리는 부과금으로 거둔다면, 소비세의 가장 큰 갈래에서 밀수할 틈은 거의 아주 없어지리라. 그리고 관세를 들여오는 거의 온갖 물건에 물리는 대신 가장 널리 쓰이고 소비되는 몇 가지에만 매기고, 그 부과금을 걷는 일을 소비세법에 매어 둔다면, 밀수할 틈은 그렇게 아주 없어지지는 않더라도 몹시 줄어들 것이다. 이 두 가지 겉보기에 몹시 손쉽고 간단한 손질의 결과로, 관세와 소비세는 아마 사람이 가장 드문드문 사는 속주의 소비에 견주어, 지금 사람이 가장 빽빽한 데의 소비에 견주어 내는 만큼 큰 세입을 낼 것이다.

참으로 아메리카인들에게는 금화도 은화도 없으니, 이 나라 안의 장사는 지폐로 이루어지고, 더러 그들에게 들어오는 금과 은은 우리에게서 받는 상품의 값으로 죄다 영국에 보내진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금과 은이 없이는 세금을 치를 길이 없다고 그들은 덧붙인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지닌 금과 은을 죄다 얻고 있다. 그들이 지니지 않은 것을 그들에게서 어떻게 끌어낸다는 말인가?

아메리카에 금화와 은화가 지금 모자란 것은 그 나라가 가난해서도, 거기 사는 사람이 그 쇠붙이를 살 힘이 없어서도 아니다. 노동의 임금이 잉글랜드에서보다 훨씬 높고 식료품의 값이 훨씬 낮은 나라에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꼭 있어야 할 일이거나 편리한 일이기만 하다면 백성의 큰 몫이 더 많은 양을 살 밑천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쇠붙이가 모자란 것은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골라서 그리된 것이 틀림없다.

금화든 은화든 꼭 있어야 하거나 편리한 것은 나라 안의 일을 치르거나 나라 밖의 일을 치르기 위해서다.

어느 나라에서나 나라 안의 일은, 이 『탐구』의 2편에서 보인 대로, 적어도 평화로운 때에는 금화와 은화로 하는 것과 거의 같은 만큼 편리하게 지폐로 치를 수 있다. 아메리카인들은 제 토지를 개량하는 데에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산을 언제든 이윤을 남기며 쓸 수 있으므로, 금과 은처럼 값비싼 장사 연장에 드는 비용을 될 수 있는 대로 아끼고, 그 쇠붙이를 사는 데에 들여야 할 남는 생산물의 몫을 차라리 장사 연장과 옷감과 살림살이의 여러 가지와 제 정착지와 개척지를 짓고 넓히는 데에 드는 쇠붙이 물건을 사는 데에, 곧 죽은 자산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며 생산하는 자산을 사는 데에 쓰는 것이 편리하다. 식민지 정부는 백성에게 나라 안의 일을 치르기에 넉넉한, 대개는 넘치도록 넉넉한 만큼의 지폐를 대 주는 것이 제 이해에 맞음을 안다. 그 정부 가운데 얼마는, 그 가운데서도 펜실베이니아는 이 지폐를 제 신민에게 얼마씩의 이자로 꾸어 주어 세입을 끌어낸다. 매사추세츠 베이의 정부 같은 다른 얼마는 남다르게 급한 때에 공공 비용을 치르려고 이런 갈래의 지폐를 내주고, 뒤에 식민지에 편리한 때가 되면 그것이 차츰 떨어진 값으로 되사들인다. 1747년에 (허친슨의 『매사추세츠 베이의 역사』 제2권 436쪽 이하를 보라) 그 식민지는 이렇게 하여 제 공채의 큰 몫을 그 증서를 내주고 받았던 돈의 열 분의 일로 갚았다. 개척지를 꾸리는 이에게는 나라 안의 거래에 금화와 은화를 쓰는 비용을 아끼는 것이 편리하고, 식민지 정부에게는 몹시 큰 안 좋은 점이 따르기는 하나 그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해 주는 매개를 그들에게 대 주는 것이 편리하다. 지폐가 넘치면 반드시 식민지의 나라 안 거래에서 금과 은을 몰아내게 되는데, 그것이 스코틀랜드의 나라 안 거래의 큰 몫에서 그 쇠붙이를 몰아낸 것과 같은 까닭에서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에서 이렇게 지폐가 넘치게 된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백성이 일을 벌이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기질, 곧 얻을 수 있는 자산을 죄다 살아 움직이며 생산하는 자산으로 쓰려는 바람 때문이다.

여러 식민지가 영국과 하는 바깥 장사에서 금과 은은 그것이 꼭 있어야 하는 만큼에 바로 비례하여 많이도 적게도 쓰인다. 그 쇠붙이가 꼭 있어야 하지 않은 데에서는 그것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이 꼭 있어야 하는 데에서는 대체로 찾아진다.

영국과 담배 식민지 사이의 장사에서 영국 물건은 대체로 꽤 오랜 외상으로 식민지 사람에게 건네지고, 뒤에 얼마의 값으로 매긴 담배로 치러진다. 식민지 사람에게는 금과 은으로 치르는 것보다 담배로 치르는 것이 더 편리하다. 어느 상인에게나 제 거래처가 저에게 판 물건의 값을 돈으로 치르는 것보다 저가 마침 다루는 다른 갈래의 물건으로 치르는 것이 더 편리할 것이다. 그런 상인은 이따금 들어오는 요구에 맞추려고 제 자산의 얼마를 놀리며 현금으로 손에 쥐고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제 가게나 창고에 더 많은 물건을 둘 수 있고 더 크게 장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상인의 거래처가 죄다 저에게 판 물건의 값을 그가 마침 다루는 다른 갈래의 물건으로 받는 것이 편리한 일은 좀처럼 없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장사하는 영국 상인은 그 식민지에 판 물건의 값을 금과 은보다 담배로 받는 것이 더 편리한 유별난 거래처인 셈이다. 그들은 담배를 팔아 이윤을 낼 것으로 여기나 금과 은을 팔아서는 아무 이윤도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영국과 담배 식민지 사이의 장사에서 금과 은은 몹시 드물게 나타난다. 메릴랜드와 버지니아는 나라 안의 장사에서 못지않게 나라 밖의 장사에서도 그 쇠붙이가 쓰일 일이 거의 없다.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아메리카의 다른 어느 식민지보다도 금화와 은화가 적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웃 못지않게 번창하는, 따라서 넉넉한 곳으로 여겨진다.

북쪽 식민지, 곧 펜실베이니아와 뉴욕과 뉴저지와 뉴잉글랜드의 네 정부 따위에서는 저희 생산물 가운데 영국으로 내보내는 것의 값어치가 저희가 쓰려고, 또 저희가 실어다 주는 다른 얼마의 식민지가 쓰려고 들여오는 제조품의 값어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차액을 본국에 금과 은으로 치러야 하는데, 그들은 대체로 그것을 마련한다.

설탕 식민지에서는 해마다 영국으로 내보내는 생산물의 값어치가 거기서 들여오는 온갖 물건의 값어치보다 훨씬 크다. 해마다 본국으로 보내는 설탕과 럼의 값을 그 식민지에서 치른다면 영국은 해마다 몹시 큰 차액을 돈으로 내보내야 할 터이고, 어떤 갈래의 정치를 논하는 이들은 서인도와 하는 장사를 더없이 이롭지 못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마침 사탕수수 개척지의 으뜸가는 임자 가운데 숱한 이가 영국에 산다. 그들의 지대는 제 땅에서 나는 생산물인 설탕과 럼으로 그들에게 부쳐진다. 서인도 상인이 제 셈으로 그 식민지에서 사들이는 설탕과 럼은 그들이 거기서 해마다 파는 물건의 값어치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차액은 반드시 그들에게 금과 은으로 치러져야 하는데, 이 차액도 대체로 마련된다.

여러 식민지에서 영국으로 치르는 것이 어렵고 고르지 못한 것은 저마다 치러야 할 차액이 크고 작은 것과는 조금도 비례하지 않았다. 대체로 북쪽 식민지에서 치르는 것이 담배 식민지에서보다 더 고르게 이루어졌으니, 앞엣것은 대체로 꽤 큰 차액을 돈으로 치렀고 뒤엣것은 차액을 아예 치르지 않았거나 훨씬 적게 치렀는데도 그러하였다. 우리의 여러 설탕 식민지에서 치르는 것을 받아 내기 어려운 정도는 저마다 치러야 할 차액의 크기보다는 그들이 지닌 갈지 않은 땅의 넓이에, 곧 개척지를 꾸리는 이가 거래를 지나치게 벌이거나 제 자본의 크기에 맞지 않게 넓은 묵정밭에 정착하고 개척하는 일을 떠맡고 싶은 마음이 크고 작은 데에 비례하였다. 아직도 갈지 않은 땅이 많은 큰 섬 자메이카에서 회수되는 것은 그 때문에 대체로 바베이도스와 앤티가와 세인트크리스토퍼 같은 더 작은 섬에서 회수되는 것보다 고르지 못하고 미덥지 못하였으니, 그 섬들은 여러 해 동안 온통 갈려 왔고 그 때문에 개척지를 꾸리는 이가 투기할 마당을 덜 내주었다. 새로 얻은 그레나다와 토바고와 세인트빈센트와 도미니카는 이런 갈래의 투기에 새 마당을 열어 주었고, 그 섬들에서 회수되는 것은 요즘 큰 섬 자메이카에서 회수되는 것만큼이나 고르지 못하고 미덥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식민지의 큰 몫에서 금화와 은화가 지금 모자란 것은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다. 살아 움직이며 생산하는 자산을 크게 바라는 마음이 죽은 자산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두는 것을 그들에게 편리하게 만들고, 그 때문에 그들은 금과 은보다 더 싸고 덜 편리한 장사 매개로 만족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금과 은의 값어치를 장사 연장과 옷감과 살림살이와 제 정착지와 개척지를 짓고 넓히는 데에 드는 쇠붙이 물건으로 바꿀 수 있게 된다. 금화와 은화 없이는 치를 수 없는 갈래의 일에서는 그들이 늘 그 쇠붙이를 있어야 할 만큼 마련할 수 있음이 드러나고, 흔히 그것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그 어긋남은 대체로 어쩔 수 없는 가난 탓이 아니라 그럴 것 없이 지나친 일 벌임 탓이다. 그들이 치르는 것이 고르지 못하고 미덥지 못한 것은 그들이 가난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치도록 넉넉해지려고 서두르기 때문이다. 식민지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 가운데 저희 민간과 군사 설비의 비용을 치르는 데에 드는 것을 넘는 몫을 죄다 금과 은으로 영국에 부친다 하더라도, 식민지에는 그만큼의 쇠붙이를 살 밑천이 넘치도록 있다. 참으로 이 경우에 그들은 지금 살아 움직이며 생산하는 자산을 사들이는 데에 쓰는 남는 생산물의 얼마를 죽은 자산과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라 안의 일을 치르는 데에 그들은 싼 장사 매개 대신 값비싼 것을 쓸 수밖에 없을 터이고, 이 값비싼 매개를 사는 비용이 토지를 개량하는 데에 지나치게 일을 벌이는 그들의 활기와 열의를 얼마쯤 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메리카에서 나오는 세입의 어느 몫도 금과 은으로 부칠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메리카의 남는 생산물의 얼마가 맡겨진 영국의 특정한 상인이나 회사 앞으로 떼어 그들이 받아들인 어음으로 부칠 수 있을 터이고, 그들은 그 값어치를 물건으로 받은 뒤에 아메리카에서 나오는 세입을 국고에 돈으로 치를 것이며, 그 일 전체가 아메리카에서 금이나 은을 1온스도 내보내지 않고 이루어지는 일이 잦을 것이다.

아일랜드도 아메리카도 영국의 공채를 없애는 데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은 올바름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 빚은 명예혁명으로 세워진 정부를 떠받치느라 진 것이다.15 아일랜드의 신교도는 그 정부에 제 나라에서 지금 누리는 온갖 권세만이 아니라 제 자유와 재산과 믿음을 지켜 주는 온갖 방패를 빚지고 있고, 아메리카 식민지의 얼마는 그 정부에 지금의 특허장을, 따라서 지금의 헌정을 빚지고 있으며, 아메리카의 온갖 식민지가 그 뒤로 여태 누려 온 자유와 안전과 재산을 그 정부에 빚지고 있다. 그 공채는 영국만이 아니라 제국의 여러 속주를 죄다 지키느라 진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난번 전쟁에서 진 어마어마한 빚과 그 앞 전쟁에서 진 빚의 큰 몫은 둘 다 마땅히 아메리카를 지키느라 진 것이다.

영국과 합친다면 아일랜드는 무역의 자유 말고도 훨씬 더 큰 다른 이로움을 얻을 터이고, 그것은 그 합침에 따를 세금의 늘어남을 넉넉히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잉글랜드와 합침으로써 스코틀랜드의 가운데 계층과 낮은 계층은 그 전에 늘 저희를 짓누르던 귀족의 권세에서 온통 벗어났다. 영국과 합친다면 아일랜드의 온갖 계층 사람 가운데 큰 몫이 훨씬 더 짓누르는 귀족에게서 그와 똑같이 온통 벗어날 것이다. 그 귀족은 스코틀랜드의 것처럼 태생과 재산이라는 자연스럽고 볼 만한 가름에 뿌리를 둔 것이 아니라 온갖 가름 가운데 가장 밉살스러운 것, 곧 믿음과 정치에서 치우친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이런 가름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짓누르는 이의 오만함과 짓눌리는 이의 미움과 분함을 부추기고, 같은 나라에 사는 이들을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이들이 여태 그러한 것보다도 더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 예사다. 영국과 합치지 않고서는 아일랜드에 사는 이들이 앞으로 여러 대가 지나도 저희를 한 백성으로 여길 성싶지 않다.

식민지에서는 짓누르는 귀족이 여태 판을 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조차 행복과 고요함이라는 점에서는 영국과 합침으로써 자못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작은 민주국에 떼어 놓을 수 없이 따라붙는 저 모질고 독한 파벌 싸움에서 그들을 벗어나게 해 줄 터인데, 그 싸움은 그 꼴이 몹시 민주적인 그들의 정부에서 백성의 마음을 갈라놓고 고요함을 흐려 놓은 일이 잦았다. 이런 갈래의 합침으로 막지 않는다면 일어날 성싶어 보이는 영국과의 아주 갈라섬이 일어난다면, 그 파벌 싸움은 여태보다 열 곱절 더 독해질 것이다. 지금의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본국이 지닌 억누르는 힘이 언제나 그 파벌 싸움이 거친 우악스러움과 모욕보다 더 나쁜 것으로 터지지 않게 막을 수 있었다. 그 억누르는 힘이 아주 걷힌다면 그것은 아마 머잖아 드러내 놓은 사나움과 피흘림으로 터질 것이다. 하나같은 정부 아래 합쳐 있는 큰 나라에서는 대체로 파벌의 기운이 제국의 한복판에서보다 먼 속주에서 덜 판을 친다. 그 속주가 서울에서, 곧 파벌과 야심이 크게 다투는 으뜸가는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그들은 다투는 어느 편의 속셈에도 덜 끼어들게 되고, 모두의 몸가짐을 더 무덤덤하고 치우치지 않게 바라보는 구경꾼이 된다. 파벌의 기운은 잉글랜드에서보다 스코틀랜드에서 덜 판을 친다. 합친다면 그것은 아마 스코틀랜드에서보다 아일랜드에서 덜 판을 칠 터이고, 식민지는 아마 머잖아 지금 영국 제국의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만큼의 화합과 한마음을 누릴 것이다. 참으로 아일랜드도 식민지도 지금 치르는 어떤 것보다 무거운 세금을 지게 되리라. 그러나 공공 세입을 부지런하고 미쁘게 국채를 없애는 데에 쓴 결과로 그 세금의 큰 몫은 오래가지 않을 수 있고, 영국의 공공 세입은 머잖아 웬만한 평시 설비를 건사하는 데에 드는 만큼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동인도회사가 얻은 땅은 왕관의, 곧 영국의 나라와 백성의 의심할 나위 없는 권리인데, 이것이 또 하나의 세입 원천이 될 수 있을 터이고 아마 이미 말한 온갖 것보다 더 넉넉할 것이다. 그 나라들은 영국보다 더 기름지고 더 넓으며, 그 넓이에 견주어 훨씬 넉넉하고 사람도 훨씬 많다고들 한다. 거기서 큰 세입을 끌어내려면, 이미 넉넉히, 아니 넘치도록 세금이 물려 있는 나라에 새 조세 체계를 들일 것 없을 것이다. 저 가엾은 나라들의 짐은 더 무겁게 하기보다 덜어 주는 것이 아마 더 마땅할 터이고, 거기서 세입을 끌어내려 애쓰되 새 세금을 물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이미 치르는 것의 큰 몫을 가로채고 엉뚱하게 쓰는 일을 막아서 그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영국이 위에서 말한 밑천 가운데 어느 것에서도 세입을 자못 크게 늘릴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면, 그에게 남는 오직 하나의 밑천은 제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공공 세입을 걷는 길에서도 쓰는 길에서도 아직 나아질 데가 있기는 하겠으나, 영국은 적어도 그 이웃 어느 나라 못지않게 알뜰한 듯하다. 그가 평화 때에 제 나라를 지키려고 건사하는 군사 설비는 부로든 힘으로든 그와 겨룬다고 내세울 만한 어느 유럽 나라의 것보다도 알맞다. 그러므로 이 항목 가운데 어느 것도 비용을 자못 줄일 여지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식민지의 평시 설비에 드는 비용은 지금의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자못 컸고, 그것은 줄일 수 있는, 그리고 거기서 아무 세입도 끌어낼 수 없다면 마땅히 아주 없애야 할 비용이다. 평화 때에 늘 드는 이 비용은 몹시 크기는 하나 전쟁 때에 식민지를 지키는 데에 우리가 들인 것에 견주면 대수롭지 않다. 온통 식민지 때문에 벌인 지난번 전쟁은 이미 말한 대로 영국에 9,000만 파운드가 넘는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 1739년의 스페인와의 전쟁은 주로 그들 때문에 벌인 것이며, 그 전쟁과 그 결과로 일어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영국은 4,000만 파운드가 넘게 썼으니, 그 큰 몫은 마땅히 식민지 앞으로 달아야 한다. 그 두 전쟁에서 식민지는 영국에 그 앞엣것이 일어나기 전의 국채를 죄다 합친 것의 두 곱절이 넘는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 그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 빚은 이때쯤 온통 갚아질 수 있었을 터이고 아마 갚아졌을 것이며, 식민지가 없었더라면 그 가운데 앞엣것은 벌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뒤엣것은 반드시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식민지가 영국 제국의 속주로 여겨졌기에 이 비용이 그들에게 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제국을 떠받치는 데에 세입도 군사력도 내놓지 않는 나라는 속주로 볼 수 없다. 그들은 아마 덧붙은 것으로, 곧 제국의 으리으리하고 보란 듯한 겉치레 일습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국이 이 겉치레 일습을 건사하는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다면 마땅히 그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제 비용에 비례하도록 세입을 늘릴 수 없다면 적어도 제 세입에 제 비용을 맞추어야 한다. 식민지가 영국의 세금에 따르기를 마다하는데도 여전히 영국 제국의 속주로 여겨진다면, 앞으로 어느 전쟁에서 그들을 지키는 데에 영국이 여태 어느 전쟁에서 치른 것만큼이나 큰 비용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영국을 다스리는 이들은 백 해가 넘도록 대서양 서쪽에 큰 제국을 지녔다는 상상으로 백성을 달래 왔다. 그러나 이 제국은 여태 상상 속에만 있었다. 그것은 여태 제국이 아니라 제국의 계획이었고, 금광이 아니라 금광의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게 하였고 지금도 들게 하고 있으며, 여태 해 온 그대로 밀고 나간다면 앞으로도 그러할 성싶은데, 그러면서도 아무런 이윤도 가져다줄 성싶지 않다. 이미 보였듯이 식민지 무역의 독점이 낳는 것은 백성의 큰 무리에게 이윤이 아니라 그저 손해이기 때문이다. 이제야말로 우리를 다스리는 이들이 저희가, 그리고 아마 백성도 함께 빠져 있던 이 금빛 꿈을 이루어 내든지, 아니면 저희가 먼저 거기서 깨어나 백성도 깨우려고 애쓰든지 해야 할 때임이 틀림없다. 그 계획을 다 이룰 수 없다면 마땅히 그만두어야 한다. 영국 제국의 어느 속주든 제국 전체를 떠받치는 데에 이바지하게 만들 수 없다면, 이제야말로 영국이 전쟁 때에 그 속주들을 지키는 비용에서도, 평화 때에 그 민간 설비나 군사 설비를 얼마쯤이라도 떠받치는 비용에서도 스스로를 풀어 놓고, 앞날을 두고 바라보는 바와 꾀하는 바를 제 형편이 참으로 대단치 않다는 데에 맞추도록 애써야 할 때임이 틀림없다.

주

  1. 1. 옮긴이 — 저본은 이 전쟁이 1668년에 일어났다고 적었으나, 리스베이크 조약으로 매듭지어진 것은 1688년에 일어난 9년 전쟁이다. 뜻이 통하도록 1688년으로 옮겼다. 스미스가 여기서 꼽는 세 전쟁은 저마다 리스베이크 조약(1697), 위트레흐트 조약(1713), 아헨 조약(1748)으로 매듭지어졌다.

  2. 2. 옮긴이 —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1펜스는 다시 4파딩으로 갈린다. 스털링은 영국 화폐를 말한다.

  3. 3. 옮긴이 — 남해 기금은 1711년에 세워진 남해회사가 떠맡은 공채를 말한다. 나라가 진 빚을 회사의 자산으로 바꾸어 준 것인데, 1720년의 이른바 남해 거품으로 그 값이 치솟았다가 무너졌다.

  4. 4. 옮긴이 — 저본은 이 액수를 8,328,554파운드로 적었다. 그러나 스미스가 바로 앞뒤에 적은 55,282,978파운드 1실링 3과 6분의 5펜스에서 46,954,623파운드 3실링 4와 12분의 7펜스를 뺀 값은 8,328,354파운드 17실링 11과 12분의 3펜스이고, 다음 문단에서도 같은 액수를 8,328,354파운드로 적었다. 뜻이 통하도록 8,328,354파운드로 옮겼다.

  5. 5. 옮긴이 — 헨리 펠럼(1694~1754)은 1743년부터 죽을 때까지 영국의 재무부 제1위원 곧 총리를 지냈다.

  6. 6. 옮긴이 — 왕실비(civil list)는 왕실의 씀씀이와 문관의 봉급에 쓰라고 의회가 국왕에게 해마다 내주던 돈이다. 그 씀씀이가 정해진 액수를 넘으면 빚이 쌓였고 의회가 따로 갚아 주곤 하였다.

  7. 7. 옮긴이 — 채텀 백작은 윌리엄 피트(1708~1778)를 말하며, 7년 전쟁을 이끈 국무대신이다. 존 콜크래프트(1726~1772)는 군대에 봉급과 물자를 대는 일을 맡아 큰돈을 모은 사람이다.

  8. 8. 옮긴이 — 아스(As)는 로마의 구리 주화이며 값어치를 셈하는 기준이 되었다. 「새 장부」는 라틴어 노바이 타불라이(novae tabulae)를 옮긴 것으로, 빚을 적어 둔 장부를 새로 쓴다는 뜻이며 빚을 깎아 주거나 없애 주는 법을 가리켰다.

  9. 9. 옮긴이 — 페니웨이트는 무게 단위로 1온스의 20분의 1이다. 품위는 주화에 든 은이나 금의 순도를 말하며, 영국 은화의 법정 품위는 1파운드(무게)인 12온스에 은 11온스 2페니웨이트와 섞임쇠 18페니웨이트였다.

  10. 10. 옮긴이 — 프랑스의 국왕 장은 장 2세(1319~1364)를 말하며, 잉글랜드와의 싸움에서 진 빚을 갚느라 주화를 여러 차례 손보았다. 뒤 캉주(1610~1688)가 엮은 중세 라틴어 용어 사전은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이 18세기에 다시 펴냈다.

  11. 11. 옮긴이 — 모두스(modus)는 십일조를 실물 대신 정해진 돈으로 갈음하기로 오래전에 맺어 둔 약정이다. 속인 귀속(impropriation)은 교회에 속하던 십일조 받을 권리가 종교개혁 뒤에 평신도의 손에 넘어간 것을 말한다.

  12. 12. 옮긴이 —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 회기에 만들어졌는지로 가리킨다.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1689년에 올랐으므로 그 치세 4년은 1692년 회기다.

  13. 13. 옮긴이 — 항해법은 아메리카 식민지의 생산물 가운데 얼마를 「열거 상품」으로 정하여 영국이나 영국의 다른 식민지로만 내보낼 수 있게 하였다. 담배와 설탕과 쪽이 그러하였고, 열거되지 않은 것은 피니스테레곶 남쪽의 유럽 항구로 곧바로 실어 갈 수 있었다.

  14. 14. 옮긴이 — 호그즈헤드는 술이나 당밀을 담는 큰 통이며, 그 부피는 담는 것에 따라 달랐으나 흔히 63갤런쯤으로 쳤다.

  15. 15. 옮긴이 — 1688년의 명예혁명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