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국부론1장
차례
로그인

1장 주권자 곧 국가의 비용에 대하여 (이어서)

문명한 사회에서 낮은 자리에 있는 온갖 사람의 깨달음을 그토록 자주 마비시키는 듯한 지독한 무지와 우둔을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지적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면, 겁쟁이보다도 더 업신여길 만하며, 사람의 본성을 이루는 것 가운데 한결 더 본질적인 자리에서 잘리고 일그러진 듯하다. 나라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아무 이익도 끌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아주 못 배운 채로 있지 않게 하는 일은 그래도 나라가 마음 쓸 만한 일이다. 그러나 나라는 그들을 가르치는 데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끌어낸다. 그들이 더 많이 배울수록 열광과 미신의 미혹에 덜 빠지는데1, 그 미혹은 무지한 나라에서 가장 끔찍한 무질서를 자주 일으킨다. 그뿐 아니라 배우고 슬기로운 백성은 무지하고 우둔한 백성보다 늘 더 점잖고 질서가 있다. 그들은 저마다 제 몸이 더 존중받을 만하다고 느끼고 제 위에 있는 합법한 윗사람들의 존중을 받기에도 더 알맞다고 느끼므로, 그런 까닭에 그 윗사람들을 존중할 마음이 더 있다. 그들은 당파와 선동이 제 이익을 노리고 늘어놓는 불평을 따져 볼 마음이 더 있고 그것을 꿰뚫어 볼 힘도 더 있으며, 그런 까닭에 정부가 하는 일에 함부로 또는 쓸데없이 맞서도록 잘못 이끌릴 일이 적다. 자유로운 나라에서는 정부의 안전이 제가 하는 일을 두고 백성이 내리는 좋은 판단에 크게 달려 있으므로, 백성이 그것을 두고 섣불리 또는 변덕스럽게 판단할 마음을 먹지 않는 것이 틀림없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3항 — 모든 나이의 사람을 가르치는 기관의 비용에 대하여

모든 나이의 사람을 가르치는 기관은 주로 종교를 가르치는 기관이다. 이것은 사람을 이 세상에서 좋은 시민으로 만드는 것보다 다가올 삶에서 맞을 다른 더 나은 세상에 들어갈 채비를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갈래의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을 담은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은 다른 스승들과 마찬가지로 제 생계를 오로지 듣는 이들이 자진해 내는 기부에 기댈 수도 있고, 제 나라의 법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다른 기금, 이를테면 토지 재산이나 십일조나 토지세, 또는 정해진 봉급이나 봉록에서 끌어낼 수도 있다. 그들의 애씀과 열성과 근면은 뒤의 처지에서보다 앞의 처지에서 훨씬 클 듯하다. 이 점에서 새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은 오래되어 자리 잡은 체계를 칠 때 늘 적잖은 이점을 누려 왔으니, 그런 체계의 성직자는 제 성직록에 몸을 기대고 백성의 큰 무리 속에 믿음과 헌신의 뜨거움을 지켜 가는 일을 게을리하였고, 스스로 나태에 몸을 내맡겨 제 체제를 지키는 일에서조차 어떤 힘찬 애씀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던 까닭이다2. 자리 잡고 기금을 넉넉히 받는 종교의 성직자는 자주 배움과 품위를 갖춘 사람이 되어 신사가 지닌 온갖 덕, 또는 신사들의 존경을 받게 해 줄 온갖 덕을 갖추게 되나,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권위와 영향을 주던 성질,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성질, 아마도 제 종교가 성공하고 자리 잡게 된 본디 까닭이었을 그 성질을 차츰 잃기 쉽다. 그런 성직자는 인기 있고 대담하나 아마 우둔하고 무지할 열광에 빠진 무리에게 공격을 받으면, 아시아 남쪽의 나태하고 여리고 배부른 나라들이 북쪽의 날쌔고 억세고 굶주린 타타르인에게 쳐들어옴을 당하였을 때처럼 제 몸이 아주 무방비하다고 느낀다. 그런 성직자는 그런 위급한 때에 흔히 세속 행정관에게 제 맞수를 공공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로 몰아 박해하고 없애고 내쫓아 달라고 부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세속 행정관에게 개신교도를 박해해 달라고 부르고 잉글랜드 교회가 비국교도를 박해해 달라고 부른 것이 이러하였으며, 무릇 어떤 종교 종파든 한 세기나 두 세기 동안 법으로 자리 잡은 안전을 누리고 나면 제 교리나 규율을 치려 드는 새 종파에 맞서 어떤 힘찬 방어도 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것도 이러하였다. 그런 때에 배움과 좋은 글이라는 점에서는 이점이 더러 국교회 쪽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기를 얻는 기예, 개종자를 얻는 온갖 기예는 늘 그 맞수 쪽에 있다. 잉글랜드에서 그 기예는 기금을 넉넉히 받는 국교회 성직자에게서 오랫동안 버려져 왔고, 지금은 주로 비국교도와 메서디스트가 갈고닦는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비국교도 교사들을 위하여 자진해 내는 기부와 신탁 권리와 그 밖에 법을 비껴가는 길로 마련된 독립된 생계 밑천은 그 교사들의 열성과 활동을 크게 줄인 듯하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몹시 학식 있고 재주 있고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으나, 대체로 아주 인기 있는 설교자이기를 그만두었다. 메서디스트는 비국교도가 지닌 배움의 절반도 지니지 않았으나 훨씬 더 널리 인기를 얻고 있다.

로마 교회에서는 낮은 자리의 성직자가 지닌 근면과 열성이 자기 이익이라는 힘센 동기로 아마 어떤 개신교 국교회에서보다 더 살아 있게 지켜진다. 교구 성직자는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제 생계의 아주 적잖은 몫을 사람들이 자진해 바치는 헌물에서 끌어내는데, 고해는 그들에게 이 수입의 원천을 늘릴 기회를 많이 준다. 탁발 수도회는 제 생계 전부를 그런 헌물에서 끌어낸다. 그들의 처지는 어떤 군대의 후사르 기병이나 경보병의 처지와 같아서, 노략이 없으면 삯도 없다. 교구 성직자는 그 삯이 얼마는 봉급에, 얼마는 제자에게서 받는 수업료나 사례금에 달린 스승과 같으며, 이 수업료와 사례금은 늘 얼마쯤은 그들의 근면과 평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탁발 수도회는 제 생계가 오로지 제 근면에 달린 스승과 같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사 사람들의 헌신을 북돋울 수 있는 온갖 기예를 쓸 수밖에 없다. 성 도미니쿠스와 성 프란체스코의 두 큰 탁발 수도회가 세워진 일은, 마키아벨리가 살핀 바로는 13세기와 14세기에 시들어 가던 가톨릭 교회의 믿음과 헌신을 되살렸다3. 로마 가톨릭 나라에서 헌신의 정신은 오로지 수도사와 더 가난한 교구 성직자가 떠받친다. 교회의 높은 성직자들은 신사와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 갖춘 온갖 소양을, 더러는 학식 있는 사람의 소양까지 갖추고서 제 아래 사람들에게 필요한 규율을 지키게 하는 데에는 마음을 쓰나, 백성을 가르치는 일로 스스로 수고를 지는 일은 드물다.

“한 나라 안의 기예와 직업은 그 대부분이,” 이 시대에 가장 빼어난 철학자이자 역사가가 말하기를4, “사회의 이익을 북돋우면서 아울러 어떤 개인에게도 쓸모 있거나 즐거운 성질을 지녔으니, 그런 경우에 행정관이 지켜야 할 한결같은 규칙은, 어떤 기예를 처음 들여올 때는 어쩌면 다르겠으나, 그 직업을 그것대로 내버려 두고 그것을 북돋우는 일은 거기서 이익을 거두는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수공업자는 제 이윤이 단골의 호의로 오르는 것을 보고 제 솜씨와 근면을 될 수 있는 대로 늘리며, 일이 어떤 사려 없는 손댐으로 어지럽혀지지 않는 한 그 상품은 어느 때에나 수요에 거의 알맞게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나라에서 쓸모 있고 나아가 없어서는 안 되면서도 어떤 개인에게도 이익이나 즐거움을 가져다주지 않는 직분도 있으니, 최고 권력은 그런 직업에 몸담은 이들을 두고는 제 처신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최고 권력은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그들에게 공공의 북돋움을 주어야 하고, 그들이 저절로 빠지게 될 태만을 막을 채비를 하여야 하니, 그 직업에 남다른 명예를 붙이거나 계급의 긴 위아래와 엄한 매임을 세우거나 그 밖의 다른 방도를 쓰는 것이다. 재정과 함대와 사법을 맡은 사람들이 이 갈래에 드는 사람의 보기다.

“언뜻 보기에 성직자는 첫째 갈래에 들며, 변호사와 의사가 그러하듯 그들을 북돋우는 일도 그 교리를 따르며 그 영적 봉사와 도움에서 이익이나 위로를 얻는 개인들의 너그러움에 맡겨 두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런 보탬이 되는 동기로 그들의 근면과 조심성이 날카로워지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고, 그 직업에서 지닌 솜씨도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완도 늘어 가는 실행과 연구와 주의로 날마다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제 이익을 노리는 이 성직자의 부지런함이야말로 슬기로운 입법자라면 누구나 막으려 애쓸 것임을 알게 되리니, 참된 종교를 뺀 모든 종교에서 그것은 몹시 해롭고, 진리에 미신과 어리석음과 미혹을 짙게 섞어 넣어 진리를 비틀어 놓는 본디 성향까지 지닌 까닭이다. 영혼을 맡아 다루는 이는 저마다 제게 딸린 이들의 눈에 제 몸을 더 귀하고 거룩하게 보이게 하려고 그들에게 다른 모든 종파를 몹시 사납게 미워하는 마음을 불어넣을 것이며,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제 청중의 시들한 헌신을 부추기려 끊임없이 애쓸 것이다. 가르쳐 넣는 교리에서 진리나 도덕이나 점잖음은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사람 몸에 깃든 어지러운 애착에 가장 잘 맞는 교의라면 무엇이나 받아들여지리라. 단골은 백성의 정념과 잘 믿는 마음을 부리는 새로운 근면과 수완에 이끌려 저마다의 집회소로 모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끝내 세속 행정관은 사제들을 위한 정해진 기금을 아끼려던 제 검약이 비싼 값을 치렀음을 알게 될 것이며, 실상 그가 영적 인도자들과 맺을 수 있는 가장 점잖고 이로운 타협은 그 직업에 정해진 봉급을 매겨 그들의 나태를 매수하는 것, 그리하여 제 양 떼가 새 목자를 찾아 헤매지 않게 막는 일 말고는 더 부지런할 까닭이 없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리하여 교회의 기틀은 처음에는 흔히 종교적 견지에서 생겨났으되 끝에 가서는 사회의 정치적 이익에 이롭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성직자에게 독립된 생계 밑천을 마련해 준 일이 어떤 좋은 결과나 나쁜 결과를 낳았든, 그것이 그런 결과를 내다보고 그들에게 주어진 일은 아마 몹시 드물었을 것이다. 종교 논쟁이 사납던 때는 대체로 정치 당파도 그만큼 사납던 때였다. 그런 때에 정치 당파는 저마다 다투는 종교 종파 가운데 이것이나 저것과 손을 잡는 것이 제 이익에 맞음을 알았거나 맞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것은 그 특정한 종파의 교의를 받아들이거나 적어도 그 편을 들어 주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긴 당파와 손을 잡는 행운을 누린 종파는 제 동맹의 승리를 함께 나눌 수밖에 없었고, 그 동맹의 호의와 비호로 머지않아 얼마쯤은 제 맞수를 모두 입 다물게 하고 굴복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 맞수들은 대체로 이긴 당파의 적과 손을 잡고 있었으므로 그 당파의 적이기도 하였다. 이 특정한 종파의 성직자는 이리하여 싸움터의 온전한 임자가 되었고 백성의 큰 무리에게 미치는 그들의 영향과 권위가 가장 왕성하였으므로, 그들은 제 당파의 우두머리와 지도자를 위압하고 세속 행정관으로 하여금 제 의견과 기울기를 존중하게 만들 만큼 힘이 세었다. 그들의 첫째 요구는 대체로 그가 제 맞수를 모두 입 다물게 하고 굴복시키라는 것이었고, 둘째 요구는 그가 제 몸에 독립된 생계 밑천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대체로 승리에 적잖이 이바지하였으므로 노획물에서 얼마쯤 몫을 가지는 것이 부당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백성의 비위를 맞추는 일과 생계를 백성의 변덕에 기대는 일에 지쳐 있었다. 그러므로 이 요구를 하면서 그들은 제 편안함과 안락을 헤아렸을 뿐, 그것이 뒷날 제 집단의 영향과 권위에 미칠 결과를 두고는 스스로 마음 쓰지 않았다. 세속 행정관은 차라리 제가 가져가거나 제 것으로 두기를 훨씬 바랐을 것을 내주어야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으므로 그것을 선뜻 들어주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나 필요가 늘 그를 마침내 굽히게 만들었으니, 흔히 여러 차례 미루고 비껴가고 꾸며 낸 핑계를 댄 뒤에야 그리하였다.

그러나 정치가 종교의 도움을 불러들인 적이 없었더라면, 이긴 당파가 승리를 거두었을 때 어느 한 종파의 교의를 다른 종파의 것보다 더 받아들인 적이 없었더라면, 그 당파는 아마 온갖 종파를 고르고 치우침 없이 다루고 사람마다 제가 옳다고 여기는 대로 제 사제와 제 종교를 고르게 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종교 종파가 아주 많았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거의 저마다 다른 회중이 아마 그것만으로 작은 종파를 이루었거나 저 나름의 남다른 교의를 품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이는 저마다 제 제자의 수를 지키고 늘리려고 있는 힘을 다해 애쓰고 온갖 기예를 써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가르치는 이도 모두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느꼈을 터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무리의 성공도 아주 크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이 제 이익을 노리고 부리는 활발한 열성이 위험하고 성가실 수 있는 것은, 사회 안에 오직 한 종파만 용인되는 곳이거나, 큰 사회 전체가 두세 개의 큰 종파로 나뉘어 저마다의 가르치는 이들이 짜고 움직이며 일정한 규율과 위아래에 매여 있는 곳뿐이다. 그러나 사회가 이삼백 개, 어쩌면 이삼천 개나 되는 작은 종파로 나뉘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도 공공의 평온을 어지럽힐 만큼 크지 못한 곳에서는 그 열성이 아주 해롭지 않을 수밖에 없다. 종파마다 가르치는 이들은 제 둘레가 사방으로 벗보다 맞수에게 더 에워싸여 있음을 보고 저 솔직함과 알맞음을 배울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것은 큰 종파를 가르치는 이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니, 그 큰 종파의 교의는 세속 행정관이 떠받쳐 주므로 널따란 왕국과 제국의 거의 모든 주민에게 떠받들리고, 그런 까닭에 그들은 제 둘레에서 따르는 이와 제자와 고분고분한 찬미자밖에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작은 종파를 가르치는 이들은 저마다 제 몸이 거의 홀로임을 알고 거의 다른 모든 종파의 가르치는 이들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터이며, 서로에게 베푸는 것이 편하고도 마음에 든다고 여길 양보는 때가 지나면 아마 그들 대부분의 교리를 저 맑고 이치에 맞는 종교, 곧 터무니없음과 속임수와 광신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종교로 줄여 놓을 것이니, 그런 종교야말로 세상 어느 시대에나 슬기로운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한 것이로되, 실정법은 아마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그것을 세운 적이 없고 앞으로도 어느 나라에서 세우지 못할 것이다. 종교를 두고 실정법은 늘 얼마쯤 민간의 미신과 열광에 휘둘려 왔고 아마 앞으로도 늘 그러하리라. 교회 정치의 이 구상, 더 바르게 말하면 교회 정치를 두지 않는 이 구상은 독립교회파라 불리는 종파가, 참으로 몹시 거친 열광가의 종파인 그들이 내전이 끝날 무렵 잉글랜드에 세우자고 내놓은 것이다. 그것이 세워졌더라면, 그 뿌리가 몹시 철학적이지 못하였을지라도 이제쯤은 아마 온갖 종교 원리를 두고 가장 철학적인 너그러움과 알맞음을 낳았을 것이다. 그것은 펜실베이니아에 세워졌으니, 그곳에서는 퀘이커교도가 마침 가장 많기는 하나 법이 실상 어느 한 종파의 편도 다른 종파보다 더 들지 않으며, 그곳에서 그것이 이 철학적인 너그러움과 알맞음을 낳았다고 한다5.

그러나 이 고른 대우가 어느 한 나라의 온갖 종교 종파 모두에게, 또는 그 대부분에게 이 너그러움과 알맞음을 낳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종파가 넉넉히 많고 따라서 저마다 공공의 평온을 어지럽히기에는 너무 작기만 하다면, 저마다 제 남다른 교의를 두고 부리는 지나친 열성이 아주 해로운 결과를 낳기는 어렵고 도리어 여러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그들을 모두 내버려 두기로, 또 그들이 모두 서로를 내버려 두도록 만들기로 아주 굳게 마음먹는다면, 그들이 제 스스로 넉넉히 빠르게 갈라져 머지않아 넉넉히 많아지지 않을 염려는 거의 없다.

문명한 사회마다, 신분의 구별이 한번 온전히 자리 잡은 사회마다 늘 서로 다른 두 가지 도덕의 얼개 곧 체계가 한때에 나란히 돌아다녔으니, 하나는 엄격한 것 곧 준엄한 것이라 부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너그러운 것, 또는 그리 부르고 싶다면 헐거운 체계라 부를 수 있다. 앞의 것은 대체로 예사 사람들이 우러르고 받들며, 뒤의 것은 흔히 멋을 아는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이 더 높이 치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가벼움에서 오는 악덕, 곧 큰 번영과 지나친 흥겨움과 유쾌함에서 생기기 쉬운 악덕에 얼마만큼의 못마땅함을 표해야 하느냐가 이 서로 맞선 두 얼개 곧 체계를 가르는 으뜸가는 차이인 듯하다. 너그러운 체계 곧 헐거운 체계에서는 사치와 방자함과 어지럽기까지 한 흥겨움, 얼마쯤 절제를 잃을 만큼 쾌락을 좇는 일, 적어도 두 성 가운데 한쪽에서 정절을 깨뜨리는 일 따위가, 지독한 무례함이 함께 따르지 않고 거짓과 불의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대체로 퍽 너그럽게 다루어져 쉽사리 눈감아 주거나 아주 용서받는다. 이와 달리 준엄한 체계에서는 그런 지나침을 더없이 몹시 미워하고 싫어한다. 가벼움에서 오는 악덕은 예사 사람들에게 늘 파멸을 가져오며, 단 한 주의 생각 없음과 방탕이 흔히 가난한 일꾼 하나를 영영 망치고 절망에 몰아 가장 끔찍한 죄를 저지르게 하기에 넉넉하다. 그러므로 예사 사람들 가운데 더 슬기롭고 더 나은 축은 그런 지나침을 늘 더없이 미워하고 싫어하니, 그것이 제 처지의 사람에게 그토록 곧바로 목숨을 앗아 간다고 제 겪음이 일러 주는 까닭이다. 이와 달리 여러 해에 걸친 어지러움과 헤픔이 멋을 아는 사람을 늘 망치지는 않으며, 그 신분의 사람들은 얼마쯤 지나침에 빠질 수 있는 힘을 제 재산이 주는 이로움의 하나로, 나무람이나 꾸지람을 받지 않고 그리할 수 있는 자유를 제 자리에 딸린 특권의 하나로 여기기가 아주 쉽다. 그러므로 제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런 지나침을 아주 조금만 못마땅하게 여기고 아주 가볍게 나무라거나 아예 나무라지 않는다.

거의 모든 종교 종파는 예사 사람들 사이에서 비롯하였고, 그들에게서 가장 이른 개종자도 가장 많은 개종자도 대체로 끌어냈다. 그런 까닭에 준엄한 도덕 체계는 그 종파들이 거의 언제나 받아들였고, 예외는 아주 적었으나 더러 있기는 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앞서 자리 잡은 것을 고치자는 제 구상을 처음 내놓았던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제 몸을 가장 잘 내세울 수 있는 체계였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어쩌면 그 대부분이 이 준엄한 체계를 더 다듬고 그것을 얼마쯤 어리석고 지나친 데까지 밀고 가서 신망을 얻으려 애쓰기까지 하였으며, 이 지나친 엄함이 흔히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을 예사 사람들의 존경과 우러름 앞에 내세워 주었다.

지체와 재산을 갖춘 사람은 제 자리 덕분에 큰 사회의 두드러진 구성원이 되니, 그 사회는 그의 처신을 낱낱이 지켜보고 그리하여 그 스스로도 제 처신을 낱낱이 살피게 만든다. 그의 권위와 대접은 이 사회가 그에게 품는 존경에 크게 달려 있다. 그는 그 안에서 제 몸을 욕되게 하거나 신망을 잃게 할 일은 감히 하지 못하며, 이 사회의 두루 합쳐진 뜻이 그의 지체와 재산에 걸맞은 사람에게 정해 주는 갈래의 도덕을, 그것이 너그러운 것이든 준엄한 것이든 아주 엄하게 지킬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낮은 처지의 사람은 어떤 큰 사회에서도 두드러진 구성원이 되기에는 한참 멀다. 그가 시골 마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제 처신을 남이 지켜볼 수 있고 그 스스로도 그것을 살필 수밖에 없다. 이 처지에서, 그리고 오직 이 처지에서만 그는 이른바 잃을 평판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큰 도시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이름 없음과 어둠 속에 가라앉는다. 그의 처신을 지켜보고 살피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그런 까닭에 그 스스로도 그것을 소홀히 하고 온갖 갈래의 낮은 방탕과 악덕에 제 몸을 내맡기기가 아주 쉽다. 그가 이 이름 없음에서 가장 잘 벗어나는 길, 그의 처신이 존경할 만한 어떤 사회의 눈길을 가장 크게 끄는 길은 작은 종교 종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는 여태 가져 본 적 없는 얼마간의 대접을 얻는다. 같은 종파의 형제들은 모두 종파의 신망을 위하여 그의 처신을 지켜보는 데에 마음을 쓰며, 그가 어떤 추문거리를 만들거나 그들이 거의 언제나 서로에게 요구하는 저 준엄한 도덕에서 크게 벗어나면 그를 벌하는 데에 마음을 쓰니, 그 벌은 나쁜 결과가 따르지 않는 자리에서조차 늘 몹시 무거운 벌, 곧 종파에서 쫓아냄 또는 파문이다. 그런 까닭에 작은 종교 종파에서 예사 사람들의 도덕은 거의 언제나 놀랍도록 반듯하고 질서 있었으며, 대체로 국교회에서보다 훨씬 더 그러하였다. 참으로 그 작은 종파의 도덕은 흔히 다소 거북하리만큼 엄하고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주 쉽고 잘 듣는 처방이 둘 있으니, 그 둘이 함께 움직이면 나라는 폭력을 쓰지 않고도 그 나라가 갈라져 이룬 온갖 작은 종파의 도덕에서 사람과 어울리지 않거나 거북하리만큼 엄한 것이 무엇이든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처방의 첫째는 학문과 철학을 익히는 것이니, 나라는 이것을 어지간하거나 그보다 나은 지체와 재산을 지닌 모든 사람 사이에 거의 두루 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이들에게 봉급을 주어 그들을 게으르고 나태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라, 더 높고 더 어려운 학문에서까지 일종의 시험을 두어 누구든 어떤 자유로운 직업을 하도록 허락받기 전에, 또는 신망이나 이익이 딸린 어떤 명예로운 벼슬의 후보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그것을 치르게 하는 길로 그리한다. 나라가 이 부류의 사람들에게 배워야 할 필요를 지운다면, 그들에게 알맞은 스승을 대 주는 일로 스스로 수고를 질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머지않아 나라가 대 줄 수 있는 어떤 스승보다도 나은 스승을 제 손으로 찾아낼 것이다. 학문은 열광과 미신이라는 독을 푸는 큰 해독제이니,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 독에서 지켜진 곳에서는 낮은 자리의 사람들도 그 독에 크게 드러날 수 없다.

그 처방의 둘째는 공공의 놀이가 잦고 흥겨운 것이다. 나라가 제 이익을 좇아 추문이나 무례함 없이 그림과 시와 음악과 춤으로, 온갖 갈래의 연극 상연과 구경거리로 백성을 즐겁게 하고 기분을 돌려 주려 하는 모든 이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어 북돋운다면, 백성의 큰 몫에서 저 우울하고 침침한 기분을 쉽사리 흩어 버릴 것인데, 그 기분이야말로 거의 언제나 민간의 미신과 열광을 기르는 젖어미다. 공공의 놀이는 그 민간의 광기를 부추기는 온갖 광신자에게 늘 두려움과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 놀이가 불어넣는 흥겨움과 유쾌함은 그들의 목적에 가장 알맞은 마음결, 또는 그들이 가장 잘 부려 먹을 수 있는 마음결과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연극 상연은 그들의 속임수를 흔히 뭇사람의 비웃음 앞에, 더러는 뭇사람의 저주 앞에까지 드러냈으므로 그런 까닭에 다른 어떤 놀이보다도 그들이 유달리 미워하는 대상이었다.

법이 어느 한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의 편도 다른 종교의 이들보다 더 들지 않는 나라에서는, 그들 가운데 누구도 주권자나 집행 권력에 남다르게 또는 곧바로 매여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고, 주권자가 그들을 제 자리에 앉히거나 그 자리에서 내치는 일에 관여할 까닭도 없을 것이다. 그런 처지에서 그는 다른 신민들 사이에서와 똑같이 그들 사이의 평화를 지키는 일, 곧 그들이 서로를 박해하고 학대하고 억누르지 못하게 막는 일 말고는 그들을 두고 스스로 마음 쓸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리 잡은 종교 곧 다스리는 종교가 있는 나라에서는 사정이 아주 다르다. 이 경우에 주권자는 그 종교를 가르치는 이들의 큰 몫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길을 지니지 않는 한 결코 안전할 수 없다.

국교회마다 그 성직자는 하나의 큰 단체를 이룬다. 그들은 짜고 움직일 수 있고 마치 한 사람의 지휘 아래 있는 것처럼 한 구상과 한 정신으로 제 이익을 좇을 수 있으며, 참으로 그런 지휘 아래 있는 일도 잦다. 단체로 뭉친 몸으로서 그들의 이익은 주권자의 이익과 결코 같지 않고 더러는 그것과 정면으로 맞선다. 그들의 큰 이익은 백성에게 미치는 제 권위를 지키는 데에 있으며, 이 권위는 그들이 가르쳐 넣는 교리 전체가 틀림없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데에, 그리고 영원한 비참을 벗으려면 그 교리의 낱낱을 가장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데에 달려 있다. 주권자가 사려 없이 그 교리의 가장 하찮은 자리라도 비웃거나 스스로 의심하는 듯이 보이거나, 사람다운 마음에서 그 둘 가운데 하나를 한 이들을 지켜 주려 든다면, 그에게 조금도 매여 있지 않은 성직자의 깐깐한 명예심이 당장 발끈하여 그를 거룩함을 더럽힌 자로 몰아내고, 백성으로 하여금 더 정통이며 고분고분한 군주에게 충성을 옮기게 하려고 종교가 지닌 온갖 두려움을 부려 먹는다. 그가 그들의 주장이나 가로챔 가운데 무엇이라도 막으려 들면 위험은 그에 못지않게 크다. 감히 이렇게 교회에 맞서 일어난 군주들은 그 반역의 죄 위에 대체로 이단이라는 죄까지 덧씌워졌으니, 제 믿음을 엄숙히 밝히고 교회가 제게 지우기로 한 온갖 교의에 고분고분 따랐는데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권위는 다른 어떤 권위보다도 위에 있다. 종교가 불어넣는 두려움은 다른 온갖 두려움을 이긴다. 종교를 가르치도록 허락받은 이들이 백성의 큰 무리에 주권자의 권위를 뒤엎는 교리를 퍼뜨릴 때, 그가 제 권위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오직 폭력, 곧 상비군의 힘뿐이다. 이 경우에는 상비군조차 그에게 오래 갈 안전을 주지 못하니, 병사가 외국인이 아니라면, 그런 일은 드물거니와, 백성의 큰 무리에서 뽑혀 온 이들이라면, 거의 언제나 그러할 수밖에 없거니와, 그들도 머지않아 바로 그 교리에 물들기 쉬운 까닭이다. 동로마 제국이 서 있는 동안 그리스 성직자의 소란이 콘스탄티노플에서 끊임없이 일으킨 변란과, 여러 세기에 걸쳐 로마 성직자의 소란이 유럽 곳곳에서 끊임없이 일으킨 격동은, 제 나라에서 자리 잡아 다스리는 종교의 성직자에게 영향을 미칠 마땅한 길을 지니지 못한 주권자의 처지가 늘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지를 넉넉히 보여 준다.

신앙 조항도 다른 온갖 영적 문제도 세속 주권자가 맡을 마땅한 영역이 아님은 넉넉히 뚜렷하니, 그는 백성을 지키는 데에는 아주 잘 맞을지 몰라도 백성을 가르치는 데에 그러하다고 여겨지는 일은 드물다. 그러므로 그런 문제를 두고 그의 권위가 국교회 성직자가 뭉친 권위와 맞설 만큼 넉넉한 일은 드물다. 그러나 공공의 평온과 그 자신의 안전은 그들이 그런 문제를 두고 퍼뜨리기로 한 교리에 걸려 있을 때가 잦다. 그러므로 그가 그들의 결정을 마땅한 무게와 권위로 곧바로 막을 수 있는 일은 드무니, 그가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하며, 그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집단에 속한 사람 대부분에게 불러일으킬 수 있는 두려움과 바람뿐이다. 그 두려움과 바람은 성직을 빼앗기거나 다른 벌을 받으리라는 두려움과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리라는 바람에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어디서나 성직자의 성직록이 일종의 자유 보유권이어서, 그들은 그것을 윗사람의 뜻이 내키는 동안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또는 행실이 바른 동안 누린다6. 그들이 그것을 더 위태로운 조건으로 쥐고 있어 주권자나 그 대신들의 뜻을 조금만 거슬러도 쫓겨날 처지라면, 백성에게 미치는 제 권위를 지키기가 아마 불가능할 터이니, 백성은 그때 그들을 삯을 받고 궁정에 붙어사는 자로 여겨 그 가르침이 진실하다는 것을 더는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권자가 성직자 몇 사람이 남달리 열을 올려 당파를 짓거나 난을 부추기는 교리를 퍼뜨렸다는 까닭으로 법에 어긋나게 힘을 써서 그들의 자유 보유권을 빼앗으려 든다면, 그런 박해로 그는 그들과 그들의 교리를 예전보다 열 배 더 인기 있게, 따라서 열 배 더 성가시고 위험하게 만들 뿐일 것이다. 두려움은 거의 모든 경우에 정부의 딱한 도구이며, 특히 조금이라도 독립을 내세울 만한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도 결코 써서는 안 된다. 그들을 겁주려 드는 것은 그들의 심사를 돋우고 그 맞섬을 굳히는 데에 쓰일 뿐이니, 더 부드럽게 다루었더라면 아마 그 맞섬을 누그러뜨리거나 아주 내려놓게 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프랑스 정부가 저희 파를망, 곧 최고 법원들에게 인기 없는 칙령을 등록하게 만들려고 흔히 쓰던 폭력은 성공하는 일이 몹시 드물었다7. 그러나 흔히 쓰던 수단, 곧 말을 듣지 않는 구성원을 모두 가두는 것은 넉넉히 강한 수단이었다고 여길 만하다. 스튜어트 가문의 군주들도 잉글랜드 의회의 구성원 몇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더러 비슷한 수단을 썼으나, 대체로 그들이 그만큼이나 다루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잉글랜드 의회는 이제 다른 길로 다루어지며, 슈아죌 공작이 열두 해쯤 전에 파리 파를망을 두고 해 본 아주 작은 시험은 프랑스의 온 파를망도 같은 길로 한결 더 쉽게 다룰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넉넉히 보여 주었다. 그 시험은 이어지지 않았다. 다루는 솜씨와 설득이 늘 정부의 가장 쉽고 가장 안전한 도구이고 힘과 폭력이 가장 나쁘고 가장 위험한 도구인데도, 사람이 타고난 오만이 그러한 듯하여 그는 나쁜 도구를 쓸 수 없거나 감히 쓰지 못할 때가 아니면 거의 언제나 좋은 도구 쓰기를 낮잡아 보는 까닭이다. 프랑스 정부는 힘을 쓸 수 있었고 감히 쓸 수도 있었으므로 다루는 솜씨와 설득 쓰기를 낮잡아 보았다. 그러나 내가 믿기로는 어느 시대의 겪음에서나 드러나듯이, 국교회의 존경받는 성직자만큼 힘과 폭력을 쓰기에 위험한, 아니 그야말로 파멸을 부르는 부류의 사람은 없다. 제 집단과 사이가 좋은 성직자라면 누구나 그 권리와 특권과 몸의 자유가 가장 전제적인 정부에서조차 지체와 재산이 엇비슷한 다른 어떤 사람의 그것보다 더 존중받는다. 이는 부드럽고 온건한 파리 정부에서 사납고 거센 콘스탄티노플 정부에 이르기까지 전제의 모든 단계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이 부류의 사람들은 힘으로 눌리는 일이 거의 없으되 다른 어떤 부류만큼이나 쉽게 다룰 수 있으며, 주권자의 안전도 공공의 평온도 그가 그들을 다룰 수 있는 수단에 크게 달려 있는 듯하고, 그 수단은 오로지 그가 그들에게 내릴 수 있는 더 높은 자리에 있는 듯하다.

그리스도교 교회의 옛 제도에서는 주교 관구마다 그 주교를 성직자와 주교좌 도시 사람들이 함께 던지는 표로 뽑았다8. 백성은 뽑을 권리를 오래 지니지 못하였고, 그것을 지니고 있는 동안에도 거의 언제나 성직자의 영향 아래 움직였으니, 그런 영적 문제에서 성직자가 그들의 본디 인도자로 보였던 까닭이다. 그러나 성직자는 머지않아 그들을 다루는 수고에 지쳐 제 손으로 제 주교를 뽑는 편이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수도원장도 같은 길로 그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뽑았으니, 적어도 수도원의 큰 몫에서 그러하였다. 주교 관구 안에 든 낮은 성직록은 모두 주교가 수여하여 제가 알맞다고 여기는 성직자에게 내렸다. 교회 안의 모든 자리가 이렇게 교회의 처분에 맡겨져 있었다. 주권자는 그 뽑는 일에 얼마쯤 에두른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더러 뽑는 일에 그의 허락을 구하고 뽑은 결과에 그의 승인을 구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하였으나, 성직자를 다룰 곧바르거나 넉넉한 수단은 지니지 못하였다. 성직자는 누구나 제 야심에 이끌려 제 주권자보다 제 집단의 비위를 맞추게 되었으니, 오직 그 집단에서만 더 높은 자리를 바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유럽의 큰 몫에 걸쳐 교황은 차츰 제게로 끌어갔으니, 먼저 거의 모든 주교구와 수도원장 자리를 내리는 권한, 곧 이른바 콘시스토리움 성직록을 내리는 권한을 가져갔고, 그 뒤에는 온갖 술수와 구실로 주교 관구마다 그 안에 든 낮은 성직록의 큰 몫까지 가져가, 주교에게는 제 성직자에게 점잖은 권위를 세울 만큼만 겨우 남았다. 이렇게 되고 보니 주권자의 처지는 예전보다도 더 나빴다. 유럽 여러 나라의 성직자는 이리하여 일종의 영적 군대를 이루었으니, 참으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으되 그 온갖 움직임과 작전을 이제 한 우두머리가 지휘하고 한결같은 한 구상에 따라 이끌 수 있었다. 나라마다 그 성직자는 그 군대의 한 분견대로 볼 수 있었고, 그 작전은 둘레의 여러 나라에 자리 잡은 다른 모든 분견대가 쉽게 떠받치고 거들 수 있었다. 분견대마다 제가 자리 잡고 제 살림을 대 주는 나라의 주권자에게서 독립해 있었을 뿐 아니라 외국의 주권자에게 매여 있었으니, 그 외국 주권자는 언제든 그 무기를 그 나라의 주권자에게 돌릴 수 있었고 다른 모든 분견대의 무기로 그것을 떠받쳐 줄 수 있는 처지였다.

그 무기는 어지간히 상상할 수 있는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기예와 제조업이 자리 잡기 전 유럽의 옛 상태에서 성직자의 부는 그들에게 예사 사람들을 좌우할 힘을 주었으니, 그것은 큰 남작들의 부가 그들에게 저마다의 봉신과 차지인과 딸린 사람들을 좌우할 힘을 준 것과 같은 갈래의 힘이었다. 군주들과 사사로운 사람들의 그릇된 신심이 교회에 내린 큰 토지 재산에는 큰 남작들의 것과 같은 갈래의 재판권이, 그리고 같은 까닭으로 세워졌다. 그 큰 토지 재산에서 성직자나 그 마름은 국왕이나 다른 어떤 사람의 뒷받침이나 도움 없이도 평화를 쉽게 지킬 수 있었고, 국왕도 다른 어떤 사람도 성직자의 뒷받침과 도움 없이는 그곳의 평화를 지킬 수 없었다. 그러므로 성직자가 저마다의 남작령이나 장원에서 지닌 재판권은 큰 세속 영주의 그것과 똑같이 독립해 있었고 국왕 법정의 권위를 똑같이 물리쳤다. 성직자의 차지인은 큰 남작의 차지인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두 임의 차지인이어서 바로 위 영주에게 온전히 매여 있었고, 그런 까닭에 성직자가 그들을 끌어들이기로 한 어떤 싸움에서든 내키는 대로 불려 나가 싸울 처지였다9. 그 재산에서 나오는 지대 말고도 성직자는 십일조로 유럽의 온 왕국에서 다른 모든 재산에서 나오는 지대의 아주 큰 몫을 차지하였다. 그 두 갈래 지대에서 생기는 수입은 그 큰 몫이 현물로, 곧 곡물과 술과 소와 가금, 곧 집에서 치는 새 따위로 치러졌다. 그 양은 성직자가 스스로 쓸 수 있는 것을 크게 넘었고, 그 남는 것을 바꿀 만한 생산물을 낼 기예도 제조업도 없었다. 성직자가 이 엄청난 남는 것에서 이익을 끌어낼 길은, 큰 남작들이 제 수입에서 남는 것을 그리하였듯이 그것을 더없이 헤픈 손님 대접과 더없이 널따란 자선에 쓰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런 까닭에 옛 성직자의 손님 대접도 자선도 몹시 컸다고 한다. 그들은 온 왕국의 가난한 이를 거의 다 먹여 살렸을 뿐 아니라, 많은 기사와 신사가 흔히 신심을 핑계로 삼되 실은 성직자의 손님 대접을 누리려고 수도원에서 수도원으로 떠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다른 생계 길이 없었다. 어떤 고위 성직자에게 딸린 사람은 흔히 가장 큰 세속 영주에게 딸린 사람만큼이나 많았고, 온 성직자에게 딸린 사람을 모두 합치면 아마 온 세속 영주에게 딸린 사람보다 더 많았을 것이다. 성직자 사이에는 늘 세속 영주 사이보다 훨씬 더 큰 뭉침이 있었다. 앞의 이들은 교황의 권위에 일정한 규율과 위아래로 매여 있었다. 뒤의 이들은 아무런 일정한 규율에도 위아래에도 매이지 않았고, 거의 언제나 서로를, 또 국왕을 똑같이 시샘하였다. 그러므로 성직자의 차지인과 딸린 사람을 합친 수가 큰 세속 영주의 그것보다 적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성직자의 차지인은 아마 훨씬 적었을 터이나, 그 뭉침이 그들을 더 무섭게 만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성직자의 손님 대접과 자선은 그들에게 큰 세속의 힘을 부릴 권한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영적 무기의 무게를 크게 늘렸다. 그 덕은 그들에게 낮은 자리에 있는 온갖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존경과 우러름을 얻어 주었으니, 그 가운데 많은 이가 늘, 거의 모두가 때때로 그들에게서 얻어먹었다. 그토록 인기 있는 집단에 딸리거나 이어진 것은 무엇이나, 그 소유도 그 특권도 그 교리도 예사 사람들의 눈에 거룩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어기는 일은 참이든 꾸민 것이든 거룩함을 더럽히는 가장 높은 악행이자 불경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러한 판에 주권자가 큰 귀족 몇이 짠 동맹에 맞서기도 어렵다고 여기는 일이 잦았다면, 이웃한 모든 나라의 성직자가 떠받쳐 주는 제 나라 성직자의 뭉친 힘에 맞서기를 한결 더 어렵다고 여긴 것이 이상할 것 없다. 그런 형편에서 놀라운 일은 그가 더러 굽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조금이라도 맞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옛 시절에 성직자가 누린 특권은,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더없이 터무니없어 보이는 그 특권은, 이를테면 세속 재판권에서 아주 벗어나 있던 것이나 잉글랜드에서 성직자 특전이라 부르던 것은, 일이 이러한 데에서 저절로 나온, 아니 반드시 나올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10. 성직자 하나를 무슨 죄로든 벌하려 드는 일이 주권자에게 얼마나 위험하였겠는가, 그 집단이 그를 지켜 주려 들고 그토록 거룩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기에는 증거가 모자란다거나 종교가 그 몸을 거룩하게 만들어 준 이에게 지우기에는 그 벌이 너무 무겁다고 내세우려 든다면 말이다. 그런 형편에서 주권자로서는 그를 교회 법정의 재판에 맡기는 것보다 나은 길이 없었으니, 교회 법정은 제 집단의 명예를 위하여 그 구성원 누구든 끔찍한 죄를 저지르거나 백성의 마음을 언짢게 할 만한 지독한 추문거리를 만들기까지 하는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막는 데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10세기와 11세기와 12세기와 13세기 동안, 그리고 그 앞뒤로도 얼마 동안 유럽의 큰 몫에 걸쳐 일이 그러하던 상태에서 로마 교회의 제도는 세속 정부의 권위와 안전에 맞서, 또 세속 정부가 지켜 줄 수 있는 곳에서만 번성할 수 있는 인류의 자유와 이성과 행복에 맞서 여태 짜인 가운데 가장 무서운 단합으로 볼 만하다. 그 제도에서는 미신이 낳은 가장 지독한 미혹을 그토록 많은 사람의 사사로운 이익이 떠받치고 있었으므로, 그 미혹은 사람의 이성이 어떻게 치고 들어와도 위태로울 것이 없었다. 사람의 이성이 미신이 낳은 미혹의 얼마쯤은 어쩌면 예사 사람들의 눈앞에까지 벗겨 보일 수 있었을지라도, 사사로운 이익의 끈은 결코 풀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사람의 이성이 벌이는 힘없는 애씀 말고 다른 적에게 공격받은 일이 없었더라면 그것은 영영 버텼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온 슬기와 덕으로도 결코 흔들지 못하였을, 하물며 뒤엎지 못하였을 그 거대하고 잘 지어진 구조물은 일이 저절로 흘러가는 대로 먼저 허물어지고 그 뒤에 얼마쯤 무너졌으며, 이제는 아마 몇 세기가 더 지나는 사이에 아주 무너져 내릴 듯하다.

기예와 제조업과 상업이 차츰 나아진 것, 곧 큰 남작들의 힘을 무너뜨린 바로 그 원인이 유럽의 큰 몫에 걸쳐 똑같이 성직자의 온 세속 권력을 무너뜨렸다. 기예와 제조업과 상업이 낸 생산물에서 성직자는 큰 남작들과 마찬가지로 제 원생산물과 바꿀 만한 것을 찾아냈고, 그리하여 제 수입 전부를 남에게 이렇다 할 몫을 주지 않고 제 몸에 쓸 길을 알아냈다. 그들의 자선은 차츰 덜 널따래지고 그 손님 대접은 덜 너그럽고 덜 헤퍼졌다. 그 결과 그들에게 딸린 사람은 수가 줄었고 차츰 아주 스러졌다. 성직자도 큰 남작들처럼 제 토지 재산에서 더 나은 지대를 받아 그것을 똑같이 제 사사로운 허영과 어리석음을 채우는 데에 쓰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지대를 늘리는 일은 제 차지인에게 정해진 기한의 임차를 내주어야만 할 수 있었고, 차지인은 그리하여 크게 그들에게서 독립하게 되었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성직자에게 묶어 두던 이익의 끈은 이리하여 차츰 끊어지고 풀렸다. 그것은 같은 자리의 사람들을 큰 남작들에게 묶어 두던 끈보다도 더 일찍 끊어지고 풀렸으니, 교회의 성직록은 그 큰 몫이 큰 남작들의 재산보다 훨씬 작았으므로 성직록마다 그 임자가 그 수입 전부를 제 몸에 쓸 수 있게 되기까지 걸린 때가 훨씬 짧았던 까닭이다. 14세기와 15세기의 큰 몫 동안 큰 남작들의 힘은 유럽의 큰 몫에 걸쳐 한창 왕성하였다. 그러나 성직자의 세속 권력, 곧 그들이 한때 백성의 큰 무리에게 휘두르던 절대의 지휘권은 몹시 쇠하였다. 그때쯤 교회의 힘은 유럽의 큰 몫에 걸쳐 거의 그 영적 권위에서 나오는 것으로 줄어들었고, 그 영적 권위조차 성직자의 자선과 손님 대접이 그것을 떠받치기를 그치자 크게 약해졌다.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집단을 예전처럼, 곧 제 괴로움을 달래 주는 이요 제 궁핍을 덜어 주는 이로 더는 보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더 부유한 성직자의 허영과 사치와 씀씀이에 성이 나고 넌더리를 냈으니, 그 성직자들은 예전부터 늘 가난한 이의 몫으로 여겨지던 것을 제 쾌락에 쓰는 듯이 보였던 까닭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유럽 여러 나라의 주권자들은 교회의 큰 성직록을 처분하는 데에 한때 지녔던 영향을 되찾으려 애썼으니, 주교 관구마다 그 수석 사제와 참사회에게 주교를 뽑던 옛 권리를 되돌려 주고 수도원마다 그 수도사들에게 수도원장을 뽑던 권리를 되돌려 주는 길로 그리하였다. 이 옛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이 14세기 동안 잉글랜드에서 만들어진 여러 법령, 특히 이른바 성직 수여 제한법의 목적이었고, 15세기에 프랑스에서 자리 잡은 국사조칙의 목적이었다11. 뽑는 일이 효력을 지니려면 주권자가 미리 그것에 허락을 내리고 나중에 뽑힌 사람을 승인하여야 하였으니, 뽑는 일은 여전히 자유롭다고 여겨졌으되 그는 제 자리가 반드시 안겨 주는 온갖 에두른 수단으로 제 나라 안의 성직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비슷한 쪽으로 기운 다른 규정들이 유럽의 다른 곳에도 자리 잡았다. 그러나 교회의 큰 성직록을 내리는 데에서 교황이 지닌 힘은 종교개혁 전에 프랑스와 잉글랜드에서만큼 잘, 그리고 두루 묶인 곳이 없었던 듯하다. 그 뒤 16세기에 정교 협약은 프랑스 국왕들에게 갈리아 교회의 모든 큰 성직록, 곧 이른바 콘시스토리움 성직록에 사람을 추천할 절대의 권리를 주었다.

국사조칙과 정교 협약이 자리 잡은 뒤로 프랑스의 성직자는 대체로 다른 어떤 가톨릭 나라의 성직자보다 교황청의 결정에 존중을 덜 보였다. 제 주권자가 교황과 벌인 온갖 다툼에서 그들은 거의 언제나 앞의 편을 들었다. 프랑스 성직자가 로마 교황청에서 이렇게 독립해 있는 것은 주로 국사조칙과 정교 협약에 뿌리를 두는 듯하다. 왕정의 더 이른 시기에 프랑스의 성직자는 다른 어느 나라의 성직자만큼이나 교황에게 헌신하였던 듯하다. 카페 왕가의 두 번째 군주 로베르가 교황청에게 더없이 부당하게 파문당하였을 때, 그 자신의 하인들이 그의 식탁에서 나온 음식을 개에게 던져 주고 그런 처지의 사람이 닿아 더럽혀진 것은 무엇이나 스스로 맛보기를 마다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그리하도록 가르친 것은 그의 나라 안 성직자였으리라고 아주 안심하고 짐작할 수 있다.

교회의 큰 성직록을 내린다는 주장, 그것을 지키려고 교황청이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큰 주권자 몇의 왕좌를 자주 흔들고 더러 뒤엎기까지 한 그 주장은 이리하여 종교개혁 때가 오기도 전에 유럽의 여러 곳에서 묶이거나 고쳐지거나 아주 내려놓아졌다. 성직자가 이제 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이 줄어든 만큼 나라가 성직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늘었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나라를 어지럽힐 힘도 줄고 그럴 마음도 줄었다.

로마 교회의 권위가 이렇게 기울어 가던 때에 종교개혁을 낳은 다툼이 독일에서 시작되어 머지않아 유럽 곳곳으로 퍼졌다. 새 교리는 어디서나 민간의 큰 호의를 받았다. 그것은 자리 잡은 권위를 칠 때 흔히 당파의 정신을 북돋우는 저 열광에 찬 열성을 다해 퍼졌다. 그 교리를 가르친 이들은 다른 점에서는 아마 국교회를 지킨 많은 신학자보다 더 배웠다고 할 수 없었으되, 대체로 교회사와 교회의 권위가 세워진 바탕인 저 의견 체계의 뿌리와 걸어온 길을 더 잘 알았던 듯하고, 그리하여 거의 모든 다툼에서 이점을 지녔다. 그들의 몸가짐이 준엄한 것이 예사 사람들에게 권위를 주었으니, 사람들은 그들의 처신이 엄하고 반듯한 것을 제 성직자 큰 몫의 어지러운 삶과 견주어 보았던 까닭이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인기를 얻고 개종자를 얻는 온갖 기예를 제 맞수보다 훨씬 더 많이 지녔으니, 그 기예는 드높고 위엄 있는 교회의 아들들이 제게는 크게 쓸모없다 하여 오랫동안 버려 둔 것이었다. 새 교리가 지닌 이치가 얼마쯤의 사람에게 그것을 내세워 주었고 그 새로움이 많은 사람에게 그리하였으며, 자리 잡은 성직자를 향한 미움과 업신여김이 한결 더 많은 사람에게 그리하였다. 그러나 거의 어디서나 그 교리를 가르쳐 넣을 때 쓰인 열띠고 격정에 찬 광신적인 웅변은, 흔히 거칠고 투박하였으되 단연 가장 많은 사람에게 그것을 내세워 주었다.

새 교리가 거둔 성공은 거의 어디서나 몹시 커서, 그때 마침 교황청과 사이가 나빴던 군주들은 그 교리를 빌려 제 나라에서 교회를 쉽사리 뒤엎을 수 있었으니, 교회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존경과 우러름을 잃었으므로 거의 아무런 맞섬도 할 수 없었다. 교황청은 독일 북부의 더 작은 군주 몇의 뜻을 거슬렀으니, 아마 그들을 다룰 값어치도 없을 만큼 하찮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같이 제 나라에 종교개혁을 세웠다. 크리스티안 2세와 웁살라 대주교 트롤의 폭정 덕분에 구스타브 바사는 그 둘을 모두 스웨덴에서 내쫓을 수 있었다12. 교황이 그 폭군과 대주교의 편을 들었으므로 구스타브 바사는 스웨덴에 종교개혁을 세우는 데에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크리스티안 2세는 뒤에 덴마크의 왕좌에서 쫓겨났으니, 그곳에서도 그의 처신이 스웨덴에서만큼이나 그를 밉살스럽게 만들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교황은 그래도 그의 편을 들려 하였고, 그를 대신하여 왕좌에 오른 홀슈타인의 프레데리크는 구스타브 바사의 본보기를 따르는 것으로 앙갚음하였다. 베른과 취리히의 행정관들은 교황과 딱히 다툰 일이 없었는데도 저마다의 칸톤에 종교개혁을 아주 쉽게 세웠으니, 그곳에서는 바로 얼마 전에 성직자 몇이 예사보다 다소 지독한 속임수를 써서 온 집단을 밉살스럽고 업신여길 만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던 까닭이다.

일이 이렇게 아슬아슬해진 판에 교황청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힘센 주권자들과 벗으로 지내려고 넉넉히 공을 들였으니, 뒤의 사람은 그때 독일 황제이기도 하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교황청은 큰 어려움과 많은 피를 치르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나라에서 종교개혁이 나아가는 것을 아주 누르거나 크게 가로막을 수 있었다. 교황청은 잉글랜드 국왕에게도 비위를 맞추려는 마음이 넉넉하였다. 그러나 그때의 형편으로는 한결 더 큰 주권자, 곧 스페인 국왕이자 독일 황제인 카를 5세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는 그리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헨리 8세는 스스로 종교개혁 교리의 큰 몫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되 그 교리가 두루 퍼진 덕분에 온 수도원을 없애고 제 나라에서 로마 교회의 권위를 폐할 수 있었다. 그가 거기까지 갔다는 것은, 그보다 더 나아가지는 않았을지라도 종교개혁을 밀어 준 이들에게 얼마쯤 흡족한 일이었으니, 그들은 그의 아들이자 뒤를 이은 군주의 치세에 정부를 손에 넣고 헨리 8세가 시작한 일을 아무 어려움 없이 마무리하였다.

정부가 약하고 인기가 없고 그리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어떤 나라에서는, 이를테면 스코틀랜드에서는 종교개혁이 교회뿐 아니라 교회를 떠받치려 들었다는 까닭으로 나라까지 뒤엎을 만큼 강하였다.

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진 종교개혁의 따르는 이들 사이에는 로마 교황청이나 공의회처럼 그들 사이의 온갖 다툼을 가려 주고 거스를 수 없는 권위로 그들 모두에게 정통 교리의 정확한 경계를 정해 줄 두루 통하는 법정이 없었다. 그러므로 한 나라에서 종교개혁을 따르는 이들이 다른 나라의 형제들과 뜻을 달리하게 되었을 때, 호소할 공통의 재판관이 없었으므로 그 다툼은 결코 가려질 수 없었고, 그런 다툼이 그들 사이에 많이 일어났다. 교회의 정치를 두고 벌어진 다툼과 성직록을 내리는 권리를 두고 벌어진 다툼이 아마 세속 사회의 평화와 복리에 가장 크게 걸린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 다툼은 종교개혁을 따르는 이들 사이에 두 으뜸가는 당파 곧 종파를 낳았으니, 루터파와 칼뱅파가 그것이고, 그들 가운데 그 교리와 규율이 유럽의 어느 곳에서든 법으로 자리 잡은 적이 있는 종파는 이 둘뿐이다.

루터를 따르는 이들은 이른바 잉글랜드 교회와 더불어 감독교회의 정치를 얼마쯤 지켜 성직자 사이에 위아래를 세웠고, 주권자에게 제 나라 안의 모든 주교구와 그 밖의 콘시스토리움 성직록을 처분할 권한을 주어 그를 교회의 참된 우두머리로 만들었으며, 주교에게서 제 주교 관구 안의 더 작은 성직록을 내릴 권리를 빼앗지 않으면서도 그 성직록에까지 주권자와 다른 모든 세속 후원자가 사람을 추천할 권리를 인정하였을 뿐 아니라 그 편을 들어 주었다. 이 교회 정치의 체계는 처음부터 평화와 좋은 질서에, 그리고 세속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데에 이로웠다. 그런 까닭에 그것이 한번 자리 잡은 나라에서 그것이 어떤 소란이나 내란의 빌미가 된 적은 없다. 특히 잉글랜드 교회는 제 원리가 나무랄 데 없이 충성스럽다는 것을 늘 크게 자랑하여 왔고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그런 정치 아래에서 성직자는 저절로 주권자와 궁정과 그 나라의 귀족과 젠트리에게 제 몸을 내세우려 애쓰니, 주로 그들의 영향으로 더 높은 자리를 얻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그들은 그 후원자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더러는 참으로 더없이 비열한 아첨과 맞장구로 그리하나 흔히는 지체와 재산을 갖춘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에 가장 마땅하고 따라서 그 존경을 얻기에 가장 알맞은 온갖 기예를 갈고닦는 것으로 그리하니, 쓸모 있고 꾸밈이 되는 온갖 갈래의 배움에서 지닌 앎으로, 몸가짐의 점잖고 너그러움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의 어울림 좋은 유쾌함으로, 그리고 광신자들이 가르쳐 넣고 몸소 지키는 체하는 저 터무니없고 위선스러운 준엄함을 드러내 놓고 업신여기는 것으로 그리하는 것인데, 광신자들이 그런 준엄함을 내세우는 것은 제 몸에는 예사 사람들의 우러름을,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고 드러내 놓고 말하는 지체와 재산을 갖춘 사람들의 큰 몫에는 예사 사람들의 미움을 끌어들이려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런 성직자는 삶의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비위를 맞추는 동안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제 영향과 권위를 지킬 방도는 아주 저버리기 쉽다. 그들은 제 윗사람들에게 귀 기울여지고 높이 쳐지고 존경받으나, 제 아랫사람들 앞에서는 제 차분하고 알맞은 교리를 그것을 치려 드는 가장 무지한 열광가에게서 제대로, 그리고 그런 듣는 이들이 수긍하도록 지켜 내지 못하는 일이 잦다.

이와 달리 츠빙글리를 따르는 이들, 더 바르게 말하면 칼뱅을 따르는 이들은 교회 자리가 빌 때마다 교구마다 그 사람들에게 제 목사를 뽑을 권리를 주었고, 아울러 성직자 사이에 더없이 온전한 고름을 세웠다. 이 제도의 앞의 몫은 그것이 살아 있는 동안 어지러움과 혼란 말고는 아무것도 낳지 못한 듯하고, 성직자의 도덕도 백성의 도덕도 똑같이 썩게 하는 쪽으로 기울었던 듯하다. 뒤의 몫은 더없이 흐뭇한 것 말고 다른 결과를 낳은 적이 없는 듯하다.

교구마다 그 사람들이 제 목사를 뽑을 권리를 지니고 있는 동안에는 거의 언제나 성직자의 영향 아래, 그것도 대체로 그 집단에서 가장 당파를 짓고 가장 광신적인 이들의 영향 아래 움직였다. 성직자는 그 민간의 선거에서 제 영향을 지키려고 그 가운데 많은 이가 스스로 광신자가 되거나 그런 체하였고, 백성 사이에 광신을 북돋웠으며, 거의 언제나 가장 광신적인 후보를 앞세웠다. 교구 사제 하나를 앉히는 그토록 작은 일이 거의 언제나 사나운 다툼을 일으켰으니, 한 교구에서만이 아니라 그 다툼에 끼어들기를 좀처럼 거르지 않던 이웃한 온 교구에서 그러하였다. 그 교구가 마침 큰 도시에 있으면 그것이 온 주민을 두 패로 갈랐고, 그 도시가 마침 스스로 작은 공화국을 이루고 있거나 작은 공화국의 우두머리이자 수도였으면,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이름난 도시 여럿이 그러하였거니와, 이런 갈래의 하찮은 다툼마다 그 밖의 온갖 당파가 품은 적의를 돋우는 것 위에 교회에는 새로운 분열을, 나라에는 새로운 당파를 남길 낌새를 보였다. 그러므로 그 작은 공화국들에서 행정관은 공공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 빈 성직록마다 사람을 추천할 권리를 제 손에 거두어들일 필요가 있음을 머지않아 알았다. 이 장로교식 교회 정치가 자리 잡은 나라 가운데 가장 넓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3세의 치세 첫머리에 장로제를 세운 법으로 후원권이 사실상 폐지되었다13. 적어도 그 법은 교구마다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제 목사를 뽑을 권리를 아주 적은 값으로 사들일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이 법이 세운 제도는 스물두 해쯤 이어지도록 놓아두었으나, 이렇게 더 민간에 맡긴 뽑는 길이 거의 어디서나 일으킨 혼란과 어지러움을 까닭으로 앤 여왕 치세 10년의 법 제12장으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처럼 넓은 나라에서는 멀리 떨어진 교구의 소란이 더 작은 나라에서만큼 정부를 어지럽히기가 쉽지 않았다. 앤 여왕 치세 10년의 법은 후원권을 되살렸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서 법은 후원자가 추천한 사람에게 아무 예외 없이 성직록을 주는데도, 교회는 더러 추천받은 이에게 이른바 영혼을 돌보는 직무, 곧 그 교구의 교회 재판권을 내리기 전에 백성이 얼마쯤 동의할 것을 요구하니, 교회가 이 점에서 내린 결정이 그리 한결같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교회는 적어도 더러 그 교구의 평화를 걱정하는 체하며 이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을 미룬다. 이웃한 성직자 몇이 더러는 이 동의를 얻어 내려고, 더 흔하게는 그것을 막으려고 남몰래 손을 쓰는 일, 그리고 그런 때에 더 잘 손을 쓸 수 있게 하려고 그들이 갈고닦는 민간의 기예가 아마 스코틀랜드의 성직자에게든 백성에게든 옛 광신의 정신 가운데 남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주로 떠받치는 까닭일 것이다.

장로교식 교회 정치가 성직자 사이에 세우는 고름은 첫째로 권위 곧 교회 재판권이 고른 데에 있고, 둘째로 성직록이 고른 데에 있다. 장로교 교회는 어디서나 권위의 고름이 온전하나 성직록의 고름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한 성직록과 다른 성직록 사이의 차이는 작은 것을 쥔 이라도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아첨과 맞장구라는 비열한 기예로 제 후원자의 비위를 맞추고 싶어질 만큼 큰 일이 드물다. 후원권이 온전히 자리 잡은 장로교 교회에서는 어디서나 자리 잡은 성직자가 대체로 제 윗사람의 호의를 얻으려 애쓸 때 더 고귀하고 더 나은 기예로 그리하니, 제 배움으로, 나무랄 데 없이 반듯한 제 삶으로, 제 직분을 참되고 부지런히 해내는 것으로 그리한다. 그 후원자들은 흔히 그들의 정신이 독립해 있다고 불평하며 그것을 지난날의 은혜를 모르는 것으로 새기기 쉬우나, 그것은 아무리 나쁘게 보아도 아마 그런 갈래의 은혜를 더는 바랄 수 없다는 깨달음에서 저절로 생기는 무심함에 지나지 않는 일이 잦을 것이다. 네덜란드와 제네바와 스위스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성직자 가운데 큰 몫보다 더 학식 있고 점잖고 독립해 있으며 존경할 만한 사람의 무리는 아마 유럽 어디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교회의 성직록이 모두 엇비슷한 곳에서는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아주 클 수 없으니, 성직록이 이렇게 어지간한 것은 참으로 지나치게 밀고 갈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아주 흐뭇한 결과를 얼마쯤 낳는다. 본보기가 될 만한 도덕 말고는 무엇도 재산이 적은 사람에게 위엄을 줄 수 없다. 가벼움과 허영에서 오는 악덕은 그를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밖에 없고, 그뿐 아니라 예사 사람들에게 그러한 만큼이나 그에게도 거의 파멸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제 처신에서 그는 예사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저 도덕 체계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는 제 이익과 제 처지가 저절로 따르게 할 저 삶의 구상으로 그들의 존경과 사랑을 얻는다. 예사 사람들은 우리 처지에 얼마쯤 가까이 다가와 있으나 마땅히 더 높은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우리가 여기는 이를 저절로 대하게 되는 저 다정함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들의 다정함은 저절로 그의 다정함을 불러낸다. 그는 그들을 가르치는 데에 마음을 쓰고 그들을 돕고 덜어 주는 데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그는 제게 그토록 호의를 보이려 하는 사람들의 편견조차 업신여기지 않으며, 풍요롭고 기금을 넉넉히 받는 교회의 거만한 고위 성직자에게서 우리가 그토록 자주 마주치는 저 업신여기고 오만한 태도로 그들을 대하는 일이 결코 없다. 그런 까닭에 장로교 성직자는 아마 다른 어떤 국교회의 성직자보다도 예사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까닭에 예사 사람들이 박해 없이 온전히, 그것도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국교회로 개종한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장로교 나라뿐이다.

교회의 성직록이 그 큰 몫이 몹시 어지간한 나라에서는 우니베르시타스의 강좌 자리가 대체로 교회의 성직록보다 나은 밥자리다. 이 경우에 우니베르시타스는 제 구성원을 그 나라의 온 교회 사람들 가운데서 골라 뽑을 수 있으니, 교회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단연 가장 수가 많은 문인 계층을 이룬다. 이와 달리 교회의 성직록 가운데 많은 것이 아주 큰 곳에서는 교회가 저절로 우니베르시타스에서 그 빼어난 문인의 큰 몫을 끌어가니, 그들은 대체로 어떤 후원자를 만나고 그 후원자는 그들에게 교회의 자리를 얻어 주는 것으로 제 몸을 빛낸다. 앞의 처지에서는 그 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빼어난 문인들로 우니베르시타스가 채워져 있기 쉽다. 뒤의 처지에서는 그 안에 빼어난 사람이 적고, 그 적은 이들마저 그 단체에서 가장 젊은 구성원 축에 들며, 그들 또한 그 단체에 크게 쓸모 있을 만큼 겪음과 앎을 얻기도 전에 그곳에서 빠져나가기 쉽다. 볼테르 씨가 살핀 바로는 문인 공화국에서 크게 이름나지 않은 예수회 신부 포레가 프랑스에서 여태 있었던 교수 가운데 그 저작이 읽을 값어치가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토록 많은 빼어난 문인을 낸 나라에서 그 가운데 우니베르시타스의 교수였던 이가 거의 하나도 없다는 것은 다소 남다른 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름난 가상디는 제 삶의 첫머리에 엑스의 우니베르시타스에서 교수였다14. 그의 재능이 처음 빛을 내자 교회로 들어가면 훨씬 조용하고 편안한 생계를, 아울러 제 연구를 이어 가기에 더 나은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는 말이 그에게 전해졌고, 그는 곧바로 그 권유를 따랐다. 볼테르 씨의 살핌은 내가 믿기로는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모든 로마 가톨릭 나라에도 들어맞을 것이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우니베르시타스의 교수인 빼어난 문인을 우리는 몹시 드물게밖에 찾지 못하니, 법학과 의학의 직업에서라면 어쩌면 다르겠는데 교회가 그 직업에서 그들을 끌어갈 일은 그리 흔치 않은 까닭이다. 로마 교회 다음으로 잉글랜드 교회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단연 가장 부유하고 기금을 가장 넉넉히 받는 교회다. 그런 까닭에 잉글랜드에서 교회는 우니베르시타스에서 가장 좋고 가장 재주 있는 구성원을 끊임없이 빼내 가며, 빼어난 문인으로 유럽에 알려지고 이름난 늙은 칼리지 지도 교수는 그곳에서 어느 로마 가톨릭 나라에서만큼이나 드물게밖에 찾을 수 없다. 이와 달리 제네바와 스위스의 개신교 칸톤과 독일의 개신교 나라와 네덜란드와 스코틀랜드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는 그 나라들이 낸 가장 빼어난 문인이, 참으로 모두는 아니지만 그 훨씬 큰 몫이 우니베르시타스의 교수였다. 그 나라들에서는 우니베르시타스가 교회에서 가장 빼어난 문인을 끊임없이 빼내 간다.

어쩌면 짚어 둘 값어치가 있으리니, 시인과 몇몇 웅변가와 몇몇 역사가를 빼면 그리스와 로마의 다른 빼어난 문인은 그 훨씬 큰 몫이 공적으로든 사사로이든 가르치는 이였던 듯하고 대개 철학이나 수사학을 가르쳤던 듯하다. 이 말은 리시아스와 이소크라테스의 시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절부터 플루타르코스와 에픽테토스와 수에토니우스와 퀸틸리아누스의 시절에 이르기까지 참임이 드러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어느 한 갈래의 학문을 해마다 가르쳐야 할 필요를 지우는 것은 실상 그 스스로 그 학문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게 하는 가장 잘 듣는 길인 듯하다. 해마다 같은 땅을 다시 밟아야 하므로, 그가 조금이라도 쓸 만한 사람이라면 몇 해 안에 그 낱낱을 잘 알게 될 수밖에 없고, 어느 한 점을 두고 어느 해에 너무 성급한 의견을 세웠더라도 이듬해 강의를 해 나가다 같은 주제를 다시 살피게 되면 그것을 바로잡기가 아주 쉽다. 학문을 가르치는 이가 되는 것이 순전한 문인에게 틀림없이 어울리는 본디 일자리이듯, 그것은 아마 그를 든든한 배움과 앎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기에 가장 알맞은 교육이기도 할 것이다. 교회의 성직록이 어지간한 것은 그런 일이 있는 나라에서 저절로 문인의 큰 몫을 그들이 뭇사람에게 가장 쓸모 있을 수 있는 일자리로 끌어가는 쪽으로 기울며, 아울러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을 아마 그들에게 주는 쪽으로 기운다. 그것은 그들의 배움을 될 수 있는 대로 든든하게, 또 될 수 있는 대로 쓸모 있게 만드는 쪽으로 기운다.

국교회마다 그 수입은, 따로 딸린 땅이나 장원에서 생기는 몫을 뺀다면, 나라의 온 세입에서 갈라져 나온 한 갈래임을 짚어 두어야 하니, 그것이 이렇게 나라를 지키는 일과는 아주 다른 목적으로 돌려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십일조는 실질 토지세여서, 토지의 임자들이 그것이 없었더라면 할 수 있었을 만큼 나라를 지키는 데에 크게 이바지할 힘을 빼앗는다. 그러나 토지의 지대는 어떤 이들에 따르면 유일한 기금이요 다른 이들에 따르면 으뜸가는 기금으로, 큰 왕국에서는 어디서나 나라의 다급한 필요를 마침내 여기서 대야 한다. 이 기금 가운데 교회에 주어지는 것이 많을수록 나라에 내어 줄 수 있는 것이 적어짐은 뚜렷하다. 다른 모든 것이 같다고 할 때 교회가 부유할수록 한쪽의 주권자나 다른 쪽의 백성이 그만큼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 어느 경우에나 나라가 제 몸을 지킬 힘이 그만큼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격률로 내세울 만하다. 여러 개신교 나라에서, 특히 스위스의 온 개신교 칸톤에서는 예전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것이던 수입, 곧 십일조와 교회 땅이 자리 잡은 성직자에게 알맞은 봉급을 대 줄 뿐 아니라 보태는 것이 거의 또는 전혀 없이도 나라의 다른 온갖 비용을 치르기에 넉넉한 기금임이 드러났다. 특히 힘센 베른 칸톤의 행정관들은 이 기금에서 아낀 것으로 아주 큰 돈을 쌓았으니 몇백만에 이른다고 하며, 그 얼마는 공공 금고에 넣어 두었고 얼마는 유럽의 빚진 여러 나라의 이른바 공채에, 주로 프랑스와 영국의 공채에 이자를 받고 넣어 두었다. 베른 교회든 다른 어느 개신교 칸톤의 교회든 그 교회가 나라에 지우는 온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나는 안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아주 정확한 셈으로 드러난 바로는 1755년에 스코틀랜드 교회 성직자의 온 수입은 그들의 글레브 곧 교회 땅과 그들의 목사관 곧 살림집의 집세를 알맞은 평가에 따라 셈하여 넣어도 68,514파운드 1실링 5와 12분의 1펜스에 지나지 않았다15. 이 몹시 어지간한 수입이 목사 944명에게 점잖은 생계를 대 준다. 교회당과 목사관을 짓고 고치는 데에 이따금 들이는 것까지 넣어 교회의 온 비용은 한 해에 8만 파운드나 8만 5천 파운드를 넘는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교회라도 백성의 큰 무리 속에 믿음의 한결같음과 헌신의 뜨거움과 질서와 반듯함과 준엄한 도덕의 정신을 이 기금을 몹시 빈약하게 받는 스코틀랜드 교회보다 더 잘 지키지는 못한다. 국교회가 낳으리라고 볼 수 있는 온갖 좋은 결과는, 세속의 것이든 종교의 것이든 그 교회가 다른 어느 교회만큼이나 온전히 낳는다. 스위스의 개신교 교회 가운데 큰 몫은 대체로 스코틀랜드 교회보다 기금을 더 받지 않는데도 그 결과를 한결 더 높이 낳는다. 개신교 칸톤의 큰 몫에서는 스스로 국교회에 속한다고 밝히지 않는 사람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참으로 누가 스스로 다른 교회에 속한다고 밝히면 법이 그를 그 칸톤에서 떠나게 만든다. 그러나 그토록 모진, 아니 참으로 그토록 억누르는 법은 성직자의 부지런함이 미리 백성의 온 무리를, 어쩌면 몇 사람만 빼고 국교회로 개종시켜 놓지 않았더라면 그런 자유로운 나라에서 결코 시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스위스의 어떤 곳에서는 개신교 나라와 로마 가톨릭 나라가 우연히 합쳐진 탓에 그 개종이 그만큼 온전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종교가 용인될 뿐 아니라 법으로 자리 잡아 있다.

어떤 일이든 그것을 제대로 해내려면 그 삯이나 보답이 그 일의 성질에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히 맞추어져야 하는 듯하다. 어떤 일에 삯을 너무 적게 주면 그 일은 거기에 쓰이는 사람 큰 몫의 옹졸함과 모자람으로 해를 입기 아주 쉽다. 삯을 너무 많이 주면 그 일은 그들의 태만과 나태로 아마 한결 더 해를 입기 쉽다. 수입이 큰 사람은 그 직업이 무엇이든 제가 수입이 큰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제 때의 큰 몫을 잔치와 허영과 방탕에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직자에게 이런 삶의 흐름은 제 직분의 의무에 써야 할 때를 삼켜 버릴 뿐 아니라, 예사 사람들의 눈에 그가 그 의무를 마땅한 무게와 권위로 해내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 곧 그 사람됨의 거룩함을 거의 아주 무너뜨린다.

주

  1. 1. 옮긴이 — 18세기 영어에서 enthusiasm 은 오늘날의 「열의」가 아니라 자신이 신의 영감을 직접 받았다고 믿는 종교적 격정을 가리켰다. 스미스는 이 장에서 그것을 늘 미신과 짝지어 쓴다. 이 번역에서는 「열광」으로 옮겼다.

  2. 2. 옮긴이 — 국교회는 나라가 법으로 정한 교회를 말한다. 잉글랜드에서는 잉글랜드 교회,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회가 그것이었다. 비국교도는 잉글랜드 교회 밖에 있던 개신교도를 가리키던 법률 용어다. 메서디스트는 1730년대에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가 일으킨 신앙 운동으로, 스미스가 이 책을 쓸 때에는 아직 잉글랜드 교회 안에 있었다. 성직록은 교회의 한 직책에 딸려 그 직책을 맡은 이가 받는 수입을 말한다.

  3. 3. 옮긴이 — 탁발 수도회는 재산을 두지 않고 동냥으로 살림을 잇는 수도회로, 도미니쿠스회와 프란체스코회가 13세기 초에 세워졌다.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피렌체 사람이며 이 대목은 『로마사 논고』 제3권에 있다.

  4. 4. 옮긴이 — 데이비드 흄(1711~1776)을 말한다. 스미스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이 인용은 흄의 『잉글랜드사』에 있다.

  5. 5. 옮긴이 — 독립교회파는 잉글랜드 내전(1642~1651) 때 교회를 나라가 하나로 묶지 말고 회중마다 스스로 다스리게 하자고 주장한 이들이다. 펜실베이니아는 1681년에 퀘이커교도 윌리엄 펜(1644~1718)이 세운 식민지로, 처음부터 어느 교파도 법으로 세우지 않았다.

  6. 6. 옮긴이 — 자유 보유권은 잉글랜드 토지법에서 기한을 정하지 않고 평생 또는 대물림으로 쥐는 권리를 말한다. 성직록을 이 권리에 견준 것은 성직자가 그 자리를 윗사람의 뜻만으로 빼앗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7. 7. 옮긴이 — 파를망은 프랑스의 최고 법원으로, 국왕의 칙령을 등록하여야 그것이 효력을 지녔으므로 등록을 미루거나 거부할 수 있었다. 에티엔프랑수아 드 슈아죌(1719~1785)은 루이 15세 아래의 대신이다.

  8. 8. 옮긴이 — 주교 관구는 주교 한 사람이 맡는 구역이고 주교좌 도시는 그 주교가 자리 잡은 도시다. 수석 사제와 참사회는 주교좌 교회의 성직자 단체로 주교를 뽑는 일을 맡았다. 콘시스토리움 성직록은 교황이 추기경 회의에서 직접 내리던 높은 성직록을 말한다.

  9. 9. 옮긴이 — 임의 차지인은 기한을 정한 임차 없이 영주의 뜻이 있는 동안에만 땅을 부치던 사람이다. 십일조는 땅에서 난 것의 10분의 1을 교회에 바치던 것으로, 18세기까지도 흔히 현물로 치렀다.

  10. 10. 옮긴이 — 성직자 특전은 성직자를 세속 법정이 아니라 교회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던 잉글랜드의 관행이며, 뒤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초범에게 사형을 면해 주는 제도로 굳어졌다.

  11. 11. 옮긴이 — 성직 수여 제한법은 1351년에 잉글랜드 의회가 교황이 잉글랜드의 성직록을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만든 법이다. 국사조칙은 1438년 부르주에서 프랑스 성직자 회의가 정한 것으로 교황의 성직록 수여권을 묶었고, 정교 협약은 1516년에 프랑수아 1세와 교황 레오 10세가 맺은 것으로 프랑스 국왕에게 높은 성직록의 추천권을 주었다.

  12. 12. 옮긴이 — 크리스티안 2세(1481~1559)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왕이었다가 1523년에 스웨덴에서, 이어 덴마크에서 쫓겨났다. 구스타브 바사(1496~1560)는 구스타브 1세로 스웨덴 왕이 되었다. 구스타브 트롤(1488~1535)은 웁살라 대주교였다. 홀슈타인의 프레데리크는 프레데리크 1세(1471~1533)로 덴마크 왕위에 올랐다. 칸톤은 스위스를 이루는 주를 말한다.

  13. 13. 옮긴이 — 후원권은 성직록이 비었을 때 그 자리에 앉힐 사람을 추천하는 권리로, 흔히 그 교회를 세웠거나 그 땅을 지닌 이에게 딸려 있었다. 영국의 법령은 국왕이 왕위에 오른 뒤 몇 해째 회기에 만들어졌는지와 그 회기의 몇째 장인지로 가리키므로, 「앤 여왕 치세 10년의 법 제12장」은 앤 여왕이 오른 1702년부터 열 해째인 1711년 회기의 12번째 법이다. 윌리엄 3세는 1689년에 왕위에 올랐다.

  14. 14. 옮긴이 — 우니베르시타스는 라틴어로 본디 「단체」를 뜻하며, 스미스가 앞 항에서 이 말의 본뜻과 오늘날의 「대학」이 겹치는 것을 논증으로 삼았으므로 여기서도 음차한다. 볼테르(1694~1778)와 샤를 포레(1675~1741)는 프랑스 사람이며, 포레는 볼테르를 가르친 예수회 교사다. 피에르 가상디(1592~1655)는 프랑스 철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엑스앙프로방스에서 가르쳤다. 저본에는 이 이름이 Cassendi 로 찍혀 있다.

  15. 15. 옮긴이 — 이 책의 화폐는 파운드·실링·펜스다. 1파운드는 20실링이고 1실링은 12펜스이므로 1파운드는 240펜스다. 저본이 £68,514:1:5 1/12d 꼴로 적은 것은 68,514파운드 1실링 5와 12분의 1펜스다. 오늘날 값으로는 환산하지 않는다. 스미스의 논증은 절대액이 아니라 비율에 걸려 있다. 글레브는 교구 목사에게 딸린 땅이고 목사관은 그가 사는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