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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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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에 대하여

새 종이 천천히 잇따라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그 변화 속도가 저마다 다른 것에 대하여. 한번 사라진 종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종의 무리는 나타나고 사라지는 데서 낱낱의 종과 같은 일반 규칙을 따른다. 절멸에 대하여. 세계 전역에서 생명의 형태가 한꺼번에 변하는 것에 대하여. 절멸한 종이 서로 맺는 유연관계와 살아 있는 종과 맺는 유연관계에 대하여. 옛 형태의 발달 상태에 대하여. 같은 지역 안에서 같은 유형이 잇따르는 것에 대하여. 앞 장과 이 장의 요약.

이제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에 관한 여러 사실과 규칙이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흔한 견해와 더 잘 들어맞는지, 아니면 계승과 자연선택을 통해 종이 천천히 차츰 변화한다는 견해와 더 잘 들어맞는지 살펴보자.

새 종은 뭍에서나 물에서나 아주 천천히 하나씩 잇따라 나타났다. 라이엘1은 제3기2의 여러 단계에서 이 점에 관한 증거를 물리치기란 거의 불가능함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해마다 그 단계들 사이의 빈자리가 채워지고 사라진 형태와 새 형태의 백분율 체계가 더 고르게 이어지는 쪽으로 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층3 가운데 얼마에서는, 햇수로 재면 틀림없이 아주 오래되었는데도, 사라진 형태가 겨우 한두 종뿐이고 새 형태, 곧 그 고장에서 또는 우리가 아는 한 지구 위에서 여기 처음으로 나타난 형태도 겨우 한두 종뿐이다. 시칠리아에서 필리피4가 한 관찰을 믿어도 좋다면, 그 섬의 바다 거주자들이 겪은 잇따른 변화는 여러 차례였고 더없이 고르게 이어졌다. 중생대5 누층은 더 끊겨 있다. 그러나 브론6이 말한 대로, 지금은 절멸한 그 많은 종이 나타난 것도 사라진 것도 누층마다 한꺼번에 일어나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속과 강에 속한 종들은 같은 속도로, 또 같은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제3기 층에서는 절멸한 형태가 무수히 널린 한가운데서 지금도 살아 있는 조개를 몇 가지 여전히 찾아낼 수 있다. 팰코너7는 이와 비슷한 사실의 놀라운 예를 들었는데, 히말라야 기슭의 퇴적층에서 낯설고 사라진 포유류와 파충류가 숱하게 나오는 가운데 지금도 살아 있는 악어가 함께 나온 것이다. 실루리아기8의 Lingula(개맛)는 이 속의 살아 있는 종과 거의 다르지 않다. 반면에 실루리아기의 다른 연체동물 대부분과 갑각류는 모두 크게 변했다. 뭍의 산물은 바다의 산물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하는 듯하며, 이를 보여 주는 놀라운 예가 최근 스위스에서 관찰되었다. 자연의 등급에서 높다고 여겨지는 생물이 낮은 생물보다 더 빨리 변한다고 믿을 만한 까닭이 얼마쯤 있다. 다만 이 규칙에는 예외가 있다. 픽테9가 말한 대로 생물이 변화한 양은 우리 지질 누층의 잇따름과 엄밀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잇닿은 두 누층 사이에서 생명의 형태가 꼭 같은 정도로 변한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 이어진 누층이 아닌 한 어느 누층들을 견주어 보아도 모든 종이 얼마간 변화를 겪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종이 지구의 낯에서 한번 사라지고 나면 꼭 같은 그 형태는 결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고 우리는 믿을 만한 까닭이 있다. 이 뒤의 규칙에 들이댈 수 있는 겉보기의 가장 강한 예외는 바랑드10 씨의 이른바 「식민 무리」인데, 이것들은 더 오래된 누층 한가운데로 한동안 끼어들었다가 그 뒤 앞서 있던 동물상이 다시 나타나도록 내어 준다. 그러나 라이엘의 해명, 곧 이것이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지리 구역에서 한때 옮겨 온 경우라는 설명이 내게는 흡족해 보인다.

이 여러 사실은 내 이론과 잘 들어맞는다. 나는 한 나라의 모든 거주자를 갑작스레, 또는 한꺼번에, 또는 같은 정도로 변하게 만드는 어떤 정해진 발달의 법칙도 믿지 않는다. 변화의 과정은 지극히 느릴 수밖에 없다. 각 종의 변이성은 다른 모든 종의 변이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 변이성이 자연선택에 쓰이는지 아닌지, 또 변이가 더 많이 쌓이는지 더 적게 쌓여 변이하는 종에서 더 크거나 더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여러 복잡한 우연에 달려 있다. 곧 변이성이 이로운 성질인지, 서로 교배할 힘이 있는지, 번식 속도가 어떠한지, 그 나라의 물리적 조건이 천천히 변해 가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변이하는 종이 경쟁하게 되는 다른 거주자들의 성질이 어떠한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어떤 종이 다른 종보다 훨씬 오래 꼭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다든지, 변한다 해도 덜 변한다든지 하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우리는 지리 분포에서도 같은 사실을 본다. 예컨대 마데이라의 육상 조개와 딱정벌레목 곤충은 유럽 대륙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친척들과 상당히 달라지게 되었는데도, 바다 조개와 새는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앞 장에서 설명한 대로 높은 생물이 제 생물적·무생물적 생활 조건과 맺는 관계가 더 복잡하다는 것으로, 뭍의 산물과 더 높은 짜임새를 지닌 산물이 바다의 산물과 낮은 산물에 견주어 겉보기에 더 빠르게 변하는 까닭을 아마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의 거주자 가운데 많은 것이 변화하고 개량되었을 때, 경쟁의 원리와 생물이 생물과 맺는 더없이 중요한 여러 관계의 원리 위에서, 얼마간이라도 변화하고 개량되지 않는 형태는 무엇이든 절멸당하기 쉬우리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째서 같은 지역의 모든 종이 마침내, 충분히 넓은 시간 간격을 놓고 본다면, 변화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절멸할 터이기 때문이다.

같은 강에 속한 것들 사이에서는 길고 똑같은 기간 동안 변화한 평균량이 아마 거의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래 견디며 화석을 품은 누층이 쌓이는 일은 침강하는 지역에 엄청난 양의 퇴적물이 내려앉는 데 달려 있으므로, 우리 누층은 거의 필연적으로 넓고 불규칙하게 띄엄띄엄한 간격을 두고 쌓여 왔다. 따라서 잇닿은 누층에 박힌 화석이 보여 주는 생물의 변화량은 같지 않다. 이 견해에서 보면 누층 하나하나는 새롭고 온전한 창조의 행위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바뀌어 가는 한 편의 극에서 거의 아무렇게나 집어낸 이따금의 한 장면일 뿐이다.

어떤 종이 한번 사라지고 나면 생물적이든 무생물적이든 꼭 같은 생활 조건이 다시 돌아온다 해도 어째서 결코 다시 나타나지 않는지를 우리는 뚜렷이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한 종의 자손이 자연의 살림에서 다른 종이 차지하던 바로 그 자리를 채우고 그리하여 그것을 밀어내도록 적응할 수는 있겠지만(그리고 이런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에 일어났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도 옛것과 새것이라는 두 형태가 똑같아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 다 저마다 뚜렷이 구분되는 조상에게서 서로 다른 형질을 물려받았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예컨대 우리 fantail11 비둘기가 모조리 없어진다면, 애호가들이 오랜 세월 같은 목표를 향해 애써 지금의 fantail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새 품종을 만들어 내는 일은 그저 있을 법하기는 하다. 그러나 부모인 바위비둘기까지 없어진다면, 그리고 자연에서 부모 형태는 대개 그 개량된 자손에게 밀려나 절멸당하리라고 믿을 만한 온갖 까닭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데, 지금 있는 품종과 똑같은 fantail을 비둘기의 다른 어떤 종에서, 또는 집비둘기의 다른 잘 확립된 품종들에서 길러 낼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새로 만들어진 fantail은 제 새 조상에게서 얼마쯤 특징이 되는 차이를 물려받을 것이 거의 틀림없기 때문이다.

종의 무리, 곧 속과 과도 나타나고 사라지는 데서 낱낱의 종과 같은 일반 규칙을 따라,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더 크게 또는 더 작게 변한다. 어떤 무리는 한번 사라진 뒤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 무리의 존재는 이어지는 동안 끊기지 않는다. 이 규칙에 겉보기의 예외가 얼마쯤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예외는 놀랍도록 적어서, 포브스와 픽테와 우드워드12가(이들은 모두 내가 내세우는 것과 같은 견해에 강하게 반대하는데도) 그 규칙이 참임을 인정할 만큼 적다. 그리고 이 규칙은 내 이론과 엄밀히 들어맞는다. 같은 무리의 모든 종이 어느 한 종에서 계승되었으므로, 그 무리의 어떤 종이라도 아득한 세월의 긴 잇따름 속에 나타나 있는 한 그동안 그 구성원들은 새롭고 변화한 형태든 옛날 그대로 변하지 않은 형태든 낳기 위해 끊임없이 존재해 왔어야 함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Lingula 속의 종은 가장 낮은 실루리아기 지층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기지 않은 세대의 잇따름으로 줄곧 존재해 왔어야 한다.

우리는 앞 장에서 어떤 무리의 종들이 때로 갑작스레 들어온 것처럼 잘못 보인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설명해 보려 애썼는데, 만약 그것이 참이라면 내 견해에는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분명히 예외에 속한다. 일반 규칙은 수가 차츰 늘어 그 무리가 최대에 이르고, 그러고 나서 이르든 늦든 차츰 줄어드는 것이다. 어떤 속의 종의 수나 어떤 과의 속의 수를, 그 종들이 나오는 잇따른 지질 누층을 가로지르며 굵기가 변하는 세로선으로 나타낸다면, 그 선은 때로 아래쪽 끝에서 뾰족한 점이 아니라 갑작스레 시작하는 것처럼 잘못 보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선은 위로 가며 차츰 굵어지고, 때로는 한동안 같은 굵기를 지키다가, 마침내 위쪽 층에서 가늘어져 사라지며 그 종들이 줄어들고 끝내 절멸했음을 표시한다. 어떤 무리의 종의 수가 이렇게 차츰 느는 것은 내 이론과 엄밀히 들어맞는다. 같은 속의 종과 같은 과의 속은 오직 천천히 차차로만 불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과 여러 가까운 형태를 낳는 일은 느리고 차츰차츰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한 종이 먼저 두세 변종을 낳고 이들이 천천히 종으로 바뀌며 이 종들이 다시 똑같이 느린 걸음으로 다른 종을 낳고, 그런 식으로 하나의 줄기에서 큰 나무가 가지를 뻗듯 하여 마침내 그 무리가 커지는 것이다.

절멸에 대하여. 우리는 여태 종과 종의 무리가 사라지는 일을 지나는 길에만 말해 왔다. 자연선택 이론에서 옛 형태의 절멸과 새롭고 개량된 형태를 낳는 일은 서로 긴밀히 이어져 있다. 지구의 모든 거주자가 잇따른 시기에 큰 재난으로 쓸려 갔다는 오래된 생각은 아주 널리 버려졌으며, 엘리 드 보몽과 머치슨과 바랑드13 같은 이들처럼 그 일반 견해로 보면 자연히 그런 결론에 이르렀을 지질학자들조차 그것을 버렸다. 오히려 우리는 제3기 누층을 연구한 데서 종과 종의 무리가 하나씩 잇따라 먼저 한 자리에서, 그다음 다른 자리에서, 마침내 세계에서 차츰 사라진다고 믿을 온갖 까닭을 가지고 있다. 낱낱의 종도 종의 무리 전체도 아주 고르지 않은 기간 동안 이어진다. 우리가 본 대로 어떤 무리는 알려진 가장 이른 생명의 새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견뎌 왔고, 어떤 무리는 고생대14가 끝나기 전에 사라졌다. 어떤 낱낱의 종이나 어떤 낱낱의 속이 견디는 시간의 길이를 정하는 고정된 법칙은 없어 보인다. 한 무리의 종이 완전히 절멸하는 일은 대개 그것이 생겨나는 일보다 느린 과정이라고 믿을 만한 까닭이 있다. 어떤 무리의 종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앞서처럼 굵기가 변하는 세로선으로 나타내면, 그 선은 아래쪽 끝, 곧 종이 처음 나타나 수가 느는 것을 표시하는 쪽보다 위쪽 끝, 곧 밀려나 사라져 가는 걸음을 표시하는 쪽에서 더 고르게 차츰 가늘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중생대가 저물 무렵의 Ammonites(암모나이트)처럼 생물의 무리 전체가 밀려나 사라진 일이 놀라우리만큼 갑작스러웠다.

종의 절멸이라는 주제 전체가 더없이 근거 없는 신비에 싸여 있었다. 어떤 저자들은 개체에게 정해진 수명이 있듯 종에게도 정해진 지속 기간이 있다고 가정하기까지 했다. 내 생각에 종의 절멸에 나보다 더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라플라타에서 Mastodon과 Megatherium과 Toxodon을 비롯한 여러 절멸한 괴물의 유해와 함께 박혀 있는 말의 이를 찾아냈을 때, 그리고 이것들이 모두 아주 늦은 지질 시기에 지금도 살아 있는 조개와 함께 존재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스페인 사람들이 말을 남아메리카에 들여온 뒤로 말이 온 나라에 걸쳐 들로 퍼져 나가 견줄 데 없는 속도로 수를 불려 온 것을 보고, 나는 겉보기에 그토록 알맞은 생활 조건 아래에서 무엇이 그렇게 가까운 시기에 옛 말을 밀어내 없앨 수 있었는지 자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놀라움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던가! 오언15 교수는 그 이가 지금 있는 말의 이와 그토록 닮았는데도 절멸한 종의 것임을 곧 알아보았다. 이 말이 여태 살아 있으되 얼마쯤 드물었다면, 어떤 박물학자도 그 드묾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드묾이란 모든 나라에서 모든 강의 엄청나게 많은 종이 지닌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 종이나 저 종이 어째서 드문가를 우리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그 생활 조건에 무언가 알맞지 않은 것이 있다고 우리는 대답한다. 그러나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우리가 거의 결코 말할 수 없다. 화석 말이 여태 드문 종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포유류, 심지어 느리게 번식하는 코끼리와의 유비에서, 또 집말이 남아메리카에 귀화한 역사에서, 더 알맞은 조건 아래였다면 그것이 몇 해 안 되어 온 대륙을 채웠으리라고 틀림없이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가 느는 것을 막은 알맞지 않은 조건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느 한 가지 우연이었는지 여러 가지였는지, 말의 삶의 어느 시기에 어느 정도로 저마다 작용했는지는 우리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그 조건이 아무리 느리게나마 점점 덜 알맞아져 갔다면, 우리는 그 사실을 분명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데도 화석 말은 틀림없이 점점 더 드물어지다가 마침내 절멸했을 것이다. 그 자리는 더 성공한 어떤 경쟁자에게 붙잡혔을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불어남이 눈에 띄지 않는 해로운 힘에 끊임없이 억눌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눈에 띄지 않는 힘이 드묾을, 마침내는 절멸을 일으키기에 넉넉하다는 것을 늘 마음에 두기란 더없이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더 최근의 제3기 누층에서 드묾이 절멸에 앞선다는 것을 여러 경우에 본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그 고장에서든 온통이든 밀려나 사라진 동물들에게서도 일이 이렇게 진행되어 왔음을 안다. 내가 1845년에 펴낸 글16을 여기 되풀이해도 좋겠다. 곧 종이 대개 절멸하기에 앞서 드물어진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종의 드묾에는 놀라지 않다가 그것이 존재하기를 그칠 때는 크게 놀란다는 것은, 개체의 병이 죽음의 앞잡이임을 인정하면서도 병에는 놀라지 않다가 그 병든 이가 죽으면 이상하게 여기며 그가 알려지지 않은 어떤 폭력으로 죽었다고 의심하는 것과 거의 같다.

자연선택 이론은 새 변종 하나하나가, 그리고 마침내 새 종 하나하나가 제가 경쟁하게 되는 것들보다 어떤 유리함을 지님으로써 생겨나고 지켜진다는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덜 유리한 형태가 절멸하는 일이 거의 피할 수 없이 뒤따른다. 우리 사육 산물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롭고 조금 개량된 변종이 길러지면 그것은 처음에는 같은 이웃에 있는 덜 개량된 변종을 밀어낸다. 많이 개량되면 그것은 우리 쇼트혼 소17처럼 멀리까지 실려 가서 다른 나라에서 다른 품종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리하여 자연의 것이든 사람이 만든 것이든 새 형태가 나타나는 일과 옛 형태가 사라지는 일은 서로 묶여 있다. 어떤 번성하는 무리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생겨난 새 종 형태의 수가 밀려나 사라진 옛 형태의 수보다 아마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더 나중의 지질 시기 동안 종의 수가 한없이 늘어 오지는 않았음을 안다. 그러므로 더 나중의 시기를 놓고 보면, 새 형태를 낳는 일이 거의 같은 수의 옛 형태를 절멸하게 했다고 우리는 믿어도 좋다.

앞서 설명하고 예로 보인 대로 경쟁은 대개 모든 점에서 서로 가장 닮은 형태들 사이에서 가장 혹독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종의 개량되고 변화한 후손은 대개 부모 종을 밀어내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한 종에서 많은 새 형태가 생겨났다면, 그 종과 가장 가까운 친척, 곧 같은 속의 종들이 밀려나 사라지기에 가장 쉬울 것이다. 이리하여, 내가 믿기로, 한 종에서 계승된 여러 새 종, 곧 하나의 새 속이 같은 과에 속한 옛 속을 밀어내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 무리에 속한 새 종이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무리에 속한 종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붙잡아 그것을 밀어내 사라지게 한 일도 흔히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성공한 그 침입자에게서 가까운 형태가 많이 생겨나면 많은 것이 제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며, 대개 그것은 공통으로 물려받은 어떤 열등함 때문에 고통받는 가까운 형태들일 것이다. 그러나 변화하고 개량된 다른 종에게 제 자리를 내주는 것이 같은 강에 속한 종이든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강에 속한 종이든, 그 고통받는 것들 가운데 몇몇은 어떤 독특한 삶의 길에 알맞았거나 혹독한 경쟁을 벗어난 멀고 외딴 자리에 살았던 덕분에 흔히 오래 지켜질 수 있다. 예컨대 중생대 누층에서 큰 속을 이루던 조개 Trigonia의 종 하나가 오스트레일리아의 바다에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크고 거의 다 절멸한 경린어 물고기(경린어류) 무리의 몇몇은 아직 우리 민물에 산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 대로 한 무리가 완전히 절멸하는 일은 대개 그것이 생겨나는 일보다 느린 과정이다.

고생대가 저물 무렵의 삼엽충나 중생대가 저물 무렵의 Ammonites처럼 과나 목 전체가 겉보기에 갑작스레 밀려나 사라진 일을 놓고는, 우리 잇닿은 누층들 사이에 놓였을 법한 넓은 시간 간격에 대해 이미 말한 바를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간격 동안 느리게 밀려나 사라지는 일이 많이 있었을지 모른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이주나 유난히 빠른 발달로 어떤 새 무리의 많은 종이 새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에 걸맞게 빠른 모양으로 옛 거주자 가운데 많은 것을 밀어내 없앴을 것이다. 그리하여 제 자리를 내주는 형태들은 대개 서로 가까울 것이니, 그들이 공통으로 어떤 열등함을 나누어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내가 보기에 낱낱의 종과 종의 무리 전체가 절멸하는 모양은 자연선택 이론과 잘 들어맞는다. 우리는 절멸을 놀라워할 까닭이 없다. 굳이 놀라워해야 한다면, 각 종의 존재가 걸려 있는 그 많은 복잡한 우연을 우리가 한순간이나마 이해한다고 여기는 우리의 주제넘음을 놀라워하자. 종마다 터무니없이 불어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어떤 억누름이 언제나 작용하고 있으되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일은 드물다는 것을 한순간이라도 잊는다면, 자연의 살림 전체가 온통 흐릿해지고 말 것이다. 어째서 이 종이 저 종보다 개체 수가 많은지, 어째서 다른 종이 아니라 이 종이 어떤 나라에 귀화할 수 있는지를 우리가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될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이 특정한 종이나 종의 무리가 절멸한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데 마땅히 놀라워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 생명의 형태가 거의 한꺼번에 변하는 것에 대하여. 고생물학의 발견 가운데 세계 전역에서 생명의 형태가 거의 한꺼번에 변한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것은 거의 없다. 그리하여 우리 유럽의 백악층18은 세계의 멀리 떨어진 여러 곳에서, 더없이 다른 기후 아래에서, 백악이라는 광물 자체는 한 조각도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알아볼 수 있다. 곧 북아메리카에서, 적도 부근 남아메리카에서, 티에라델푸에고에서, 희망봉에서, 그리고 인도반도에서 그러하다. 이 멀리 떨어진 지점들에서 어떤 층에 든 생물의 유해가 백악층의 것과 틀림없는 정도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같은 종이 나온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꼭 같은 종이 하나도 없으나 그것들은 같은 과와 속과 속의 절에 속하며, 때로는 겉면의 조각무늬 같은 하찮은 점에서까지 비슷한 특징을 지닌다. 게다가 유럽의 백악층에서는 나오지 않고 그 위나 아래의 누층에서 나오는 다른 형태들도 세계의 이 멀리 떨어진 지점들에서 마찬가지로 없다. 러시아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잇따른 여러 고생대 누층에서도 생명의 형태에 비슷한 나란함이 있음을 여러 저자가 관찰했다. 라이엘에 따르면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여러 제3기 퇴적층에서도 그러하다. 구세계와 신세계에 함께 있는 몇 안 되는 화석 종을 온통 제쳐 놓더라도, 널리 떨어진 고생대와 제3기의 여러 단계에서 생명의 형태가 잇따르는 데 나타나는 전반의 나란함은 여전히 뚜렷할 것이며, 여러 누층을 서로 짝지어 맞추기도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 관찰은 세계의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바다 거주자에 관한 것이다. 뭍과 민물의 산물이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변하는지를 판단할 자료가 우리에게는 넉넉하지 않다. 그것들이 그렇게 변해 왔는지 우리는 의심해도 좋다. 만일 Megatherium과 Mylodon과 Macrauchenia와 Toxodon이 그 지질학적 자리에 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라플라타에서 유럽으로 실려 왔더라면, 그것들이 지금도 살아 있는 바다 조개와 함께 존재했으리라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별난 괴물들이 Mastodon 및 말과 함께 존재했으므로, 적어도 그것들이 더 나중 제3기 단계 가운데 하나에 살았다는 것쯤은 미루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바다의 생명 형태가 세계 전역에서 한꺼번에 변했다고 말할 때, 이 말이 같은 1,000년이나 같은 10만 년에 걸린다거나 아주 엄밀한 지질학의 뜻을 지닌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오늘날 유럽에 사는 모든 바다 동물과 플라이스토세19 동안(햇수로 재면 엄청나게 먼 시기이며 빙하기 전체가 여기 든다) 유럽에 살았던 모든 바다 동물을 지금 남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것들과 견주어 본다면, 가장 솜씨 좋은 박물학자라 해도 유럽의 지금 거주자와 플라이스토세 거주자 가운데 어느 쪽이 남반구의 것들과 더 가까이 닮았는지 거의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마찬가지로 매우 뛰어난 여러 관찰자는 미국의 지금 산물이 지금 여기 사는 것들보다 더 나중의 어떤 제3기 단계 동안 유럽에 살았던 것들과 더 가까이 이어져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북아메리카의 해안에 쌓이는 화석을 품은 층이 뒷날 얼마쯤 더 오래된 유럽의 층과 한데 묶이기 쉬우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득히 먼 뒷날의 시대를 놓고 보면, 유럽과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의 더 새로운 바다 누층, 곧 상부 플라이오세와 플라이스토세와 엄밀한 뜻의 현대 층은 모두 얼마간 서로 가까운 화석 유해를 품고 있고 더 오래된 아래쪽 퇴적층에서만 나오는 형태는 품고 있지 않으므로, 지질학의 뜻에서 한때의 것으로 올바로 매겨지리라는 데 내 생각에는 거의 의심이 없다.

위와 같은 넓은 뜻에서 세계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명의 형태가 한꺼번에 변한다는 사실은 저 훌륭한 관찰자인 베르뇌유 씨와 다르시아크20 씨에게 크게 인상을 남겼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고생대의 생명 형태가 나란하다는 것을 말한 뒤 그들은 이렇게 덧붙인다. 「이 이상한 잇따름에 놀라 우리가 북아메리카로 눈을 돌리고 거기서 비슷한 현상의 계열을 찾아낸다면, 종의 이 모든 변화와 그 절멸과 새로운 종의 들어옴이 그저 바닷물 흐름의 변화나 얼마간 그 고장에 매이고 한때에 그치는 다른 원인 때문일 수는 없고 동물계 전체를 다스리는 일반 법칙에 달려 있다는 것이 분명해 보일 것이다.」 바랑드 씨도 꼭 같은 뜻으로 힘 있는 말을 했다. 더없이 다른 기후 아래 세계 전역에서 생명의 형태가 이렇게 크게 바뀌는 원인을 물의 흐름이나 기후나 다른 물리적 조건의 변화에서 찾는 것은 참으로 헛된 일이다. 바랑드가 말한 대로 우리는 어떤 특별한 법칙에 눈을 돌려야 한다. 생물의 오늘날 분포를 다룰 때, 그리고 여러 나라의 물리적 조건과 그 거주자의 성질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옅은지를 알게 될 때 우리는 이것을 더 뚜렷이 보게 될 것이다.

세계 전역에서 생명의 형태가 나란히 잇따른다는 이 큰 사실은 자연선택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새 종은 옛 형태보다 어떤 유리함을 지닌 새 변종이 생겨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미 우세하거나 제 나라에서 다른 형태보다 어떤 유리함을 지닌 형태가 자연히 가장 자주 새 변종이나 발단기의 종21을 낳을 것이다. 이 뒤의 것들이 지켜지고 살아남으려면 훨씬 더 높은 정도로 이겨 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에 관해 뚜렷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 우세한 식물, 곧 제 고장에서 가장 흔하고 가장 널리 퍼진 식물이 가장 많은 수의 새 변종을 낳았다는 것이다. 또 이미 다른 종의 영토를 어느 정도 침범한 우세하고 변이하며 멀리 퍼지는 종이 더 멀리 퍼져 나가 새 나라에서 새 변종과 새 종을 낳을 기회를 가장 많이 얻으리라는 것도 자연스럽다. 퍼져 나가는 과정은 기후와 지리의 변화나 뜻밖의 우연에 달려 있어 흔히 아주 느릴 수 있겠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우세한 형태가 대개 퍼지는 데 성공할 것이다. 퍼져 나감은 이어진 바다에 사는 거주자보다 뚜렷이 구분되는 대륙에 사는 뭍의 거주자에게서 아마 더 느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의 산물보다 뭍의 산물에서 나란히 잇따르는 정도가 덜 엄밀하리라고 예상할 만하며, 겉보기에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어느 지역에서 퍼져 나가는 우세한 종은 더욱 우세한 종을 만날 수 있고, 그러면 그 이겨 나가던 걸음은, 심지어 그 존재까지도 그칠 것이다. 새롭고 우세한 종이 불어나는 데 가장 알맞은 조건이 모두 무엇인지 우리는 조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개체의 수가 많으면 유리한 변이가 나타날 기회가 더 좋아지므로 그것이 매우 유리하리라는 것,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많은 형태와의 혹독한 경쟁도 그러하리라는 것, 또 새 영토로 퍼져 나갈 힘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내 생각에는 우리가 뚜렷이 볼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긴 시간 간격을 두고 되풀이되는 얼마쯤의 고립도 아마 유리할 것이다. 세계의 어느 한 구역은 뭍에서 새롭고 우세한 종을 낳는 데 가장 알맞았을 수 있고, 다른 구역은 바닷물 속에서 그러한 종을 낳는 데 가장 알맞았을 수 있다. 만일 두 큰 지역이 오랜 기간 똑같은 정도로 알맞은 형편에 놓여 있었다면, 그 거주자들이 만날 때마다 싸움은 길고 혹독할 것이고, 한 태생지에서 온 것 얼마와 다른 태생지에서 온 것 얼마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어디서 생겨났든 가장 높은 정도로 우세한 형태가 어디서나 널리 퍼지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들이 널리 퍼지면서 그들은 다른 열등한 형태의 절멸을 일으킬 것이다. 그리고 이 열등한 형태들은 유전으로 무리를 이루며 서로 가까울 터이므로 무리 전체가 천천히 사라지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다만 여기저기서 한 구성원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기는 하다.

이리하여 내가 보기에, 세계 전역에서 같은 생명 형태가 나란히, 그리고 넓은 뜻에서 한꺼번에 잇따른다는 것은 새 종이 우세한 종이 널리 퍼지고 변이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원리와 잘 들어맞는다. 그렇게 생겨난 새 종은 유전 덕분에, 또 제 부모나 다른 종보다 이미 어떤 유리함을 지녔던 덕분에 스스로도 우세하며, 이들이 다시 퍼지고 변이하며 새 종을 낳는다. 싸움에 져서 새롭고 이긴 형태에게 제 자리를 내주는 형태들은 공통으로 어떤 열등함을 물려받았으므로 대개 무리를 이루며 서로 가까울 것이다. 그러므로 새롭고 개량된 무리가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 옛 무리는 세계에서 사라질 것이고, 두 길 모두에서 형태의 잇따름은 어디서나 서로 맞아떨어지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이 주제와 이어져 말해 둘 만한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나는 화석을 품은 우리의 더 큰 누층이 모두 침강하는 시기에 쌓였다고 믿는 까닭을 밝혀 두었다. 그리고 바다 바닥이 멈춰 있거나 솟아오르던 시기, 또 생물의 유해를 파묻어 지킬 만큼 퇴적물이 빠르게 내려앉지 않던 시기에는 아득히 긴 빈 간격이 있었다고도 밝혀 두었다. 이 길고 빈 간격 동안 각 지역의 거주자가 상당한 양의 변화와 절멸을 겪었고 세계의 다른 곳에서 많은 이주가 있었으리라고 나는 가정한다. 넓은 지역이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을 만한 까닭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엄밀히 같은 시대의 누층이 세계의 같은 구역 안에서 아주 넓은 공간에 걸쳐 흔히 쌓였으리라는 것은 있을 법하다. 그러나 늘 그러했다거나 넓은 지역이 언제나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받았다고 결론지을 권리는 우리에게 조금도 없다. 두 누층이 두 지역에서 거의 같되 꼭 같지는 않은 시기에 쌓였다면, 앞의 여러 문단에서 설명한 까닭에서 우리는 둘 모두에서 생명의 형태가 같은 전반의 잇따름을 보이는 것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종은 꼭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지역에서 변화와 절멸과 이주에 쓰인 시간이 다른 지역에서보다 조금 더 많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성질의 경우가 유럽에서 일어났으리라 짐작한다. 프레스트위치22 씨는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에오세 퇴적층에 관한 훌륭한 논문에서 두 나라의 잇따른 단계 사이에 가까운 전반의 나란함을 그려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어떤 단계를 프랑스의 단계와 견줄 때, 같은 속에 속한 종의 수에서는 둘 모두에서 기이한 일치를 찾아내면서도 종 자체는 서로 달라서, 두 지역이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지협 하나가 뚜렷이 구분되되 같은 시대에 속하는 두 동물상이 사는 두 바다를 갈라놓고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모를 일이다. 라이엘도 더 나중의 제3기 누층 가운데 얼마에 관해 비슷한 관찰을 했다. 바랑드 또한 보헤미아와 스칸디나비아의 잇따른 실루리아기 퇴적층에 놀라운 전반의 나란함이 있음을 보였다. 그런데도 그는 종에서 놀라울 만큼 많은 차이를 찾아낸다. 만일 이 지역들의 여러 누층이 꼭 같은 시기에 쌓이지 않았고(한 지역의 누층이 흔히 다른 지역의 빈 간격에 맞아떨어지고), 또 두 지역 모두에서 여러 누층이 쌓이는 동안과 그 사이의 긴 시간 간격 동안 종이 천천히 변해 왔다면, 이 경우 두 지역의 여러 누층은 생명 형태의 전반의 잇따름에 따라 같은 차례로 늘어세울 수 있을 것이고 그 차례는 엄밀히 나란한 것처럼 잘못 보일 것이다. 그런데도 두 지역에서 겉보기에 맞아떨어지는 단계에 나오는 종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절멸한 종이 서로 맺는, 또 살아 있는 형태와 맺는 유연관계에 대하여. 이제 절멸한 종과 살아 있는 종이 서로 맺는 유연관계를 살펴보자. 그것들은 모두 하나의 큰 자연 체계에 든다. 그리고 이 사실은 계승의 원리로 곧바로 설명된다. 일반 규칙으로, 어떤 형태든 오래될수록 살아 있는 형태와 더 많이 다르다. 그러나 버클랜드23가 오래전에 말한 대로 모든 화석은 지금 있는 무리 안에 넣거나 그 무리들 사이에 넣어 분류할 수 있다. 절멸한 생명의 형태가 지금 있는 속과 과와 목 사이의 넓은 간격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다툴 수 없다. 살아 있는 것에만 또는 절멸한 것에만 눈을 두면 그 계열은 둘을 하나의 일반 체계로 합칠 때보다 훨씬 덜 온전하기 때문이다. Vertebrata(척추동물)에 관해서는 우리의 위대한 고생물학자 오언에게서 절멸한 동물이 어떻게 지금 있는 무리 사이에 들어앉는지를 보여 주는 놀라운 예를 끌어와 여러 쪽을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퀴비에24는 반추류와 후피류를 포유류 가운데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두 목으로 매겼다. 그러나 오언은 화석 고리를 하도 많이 찾아내어 이 두 목의 분류 전체를 고쳐야 했고, 어떤 후피류를 반추류와 같은 아목에 놓았다. 예컨대 그는 돼지와 낙타 사이의 겉보기에 넓은 차이를 고운 등급으로 녹여 낸다. Invertebrata(무척추동물)에 관해서는 바랑드가, 그보다 더 높은 권위를 댈 수 없는 이인데, 고생대의 동물이 오늘날 살아 있는 것들과 같은 목이나 과나 속에 속하면서도 이 이른 시대에는 지금처럼 그렇게 뚜렷이 구분되는 무리로 나뉘어 있지 않았음을 날마다 배운다고 힘주어 말한다.

어떤 저자들은 절멸한 종이나 종의 무리를 살아 있는 종이나 무리 사이에서 중간이라고 여기는 데 반대했다. 이 말이 절멸한 형태가 그 모든 형질에서 살아 있는 두 형태 사이에 곧바로 놓인다는 뜻이라면, 그 반대는 아마 옳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온전히 자연스러운 분류에서라면 많은 화석 종이 살아 있는 종 사이에, 또 절멸한 어떤 속은 살아 있는 속 사이에, 심지어 뚜렷이 구분되는 과에 속한 속들 사이에까지 놓여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물고기와 파충류처럼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무리에서 가장 흔한 경우는 이러해 보인다. 곧 그것들이 오늘날 서로 열두어 가지 형질로 구별된다고 할 때, 같은 두 무리의 옛 구성원은 얼마쯤 더 적은 수의 형질로 구별되었을 것이며, 그리하여 두 무리는 예전에도 꽤 뚜렷이 구분되기는 했으나 그 시기에는 서로에게 조금 다가서 있었다.

어떤 형태가 오래될수록 그만큼 더 그 형질 가운데 얼마로 지금 서로 널리 떨어져 있는 무리들을 이어 주는 쪽으로 기운다는 것이 흔한 믿음이다. 이 말은 틀림없이 지질학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은 무리에만 한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명제가 참임을 입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Lepidosiren처럼 살아 있는 동물조차 이따금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무리들을 향한 유연관계를 지닌 채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오래된 파충류와 양서류를, 더 오래된 물고기를, 더 오래된 두족류를, 그리고 에오세의 포유류를 같은 강의 더 최근 구성원과 견주어 보면, 우리는 그 말에 얼마간 진실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이 여러 사실과 추론이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과 얼마나 들어맞는지 살펴보자. 주제가 얼마쯤 복잡하므로 나는 독자에게 4장의 도해25로 돌아가 주기를 청해야 한다. 숫자가 붙은 글자들이 속을 나타내고 거기서 갈라져 나가는 점선들이 각 속의 종을 나타낸다고 보아도 좋다. 이 도해는 속도 너무 적고 종도 너무 적어 지나치게 간단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가로선은 잇따른 지질 누층을 나타낸다고 보아도 좋고, 맨 위의 선 아래에 있는 형태는 모두 절멸한 것으로 여겨도 좋다. 지금 있는 세 속 a14, q14, p14는 하나의 작은 과를 이룰 것이다. b14와 f14는 가까운 사이인 다른 한 과나 아과를, o14와 e14와 m14는 세 번째 과를 이룰 것이다. 이 세 과는 부모 형태 A에서 갈라져 나가는 여러 계승의 선 위에 놓인 많은 절멸한 속과 더불어 하나의 목을 이룰 것이다. 모두가 그 오래되고 공통인 조상에게서 무언가를 함께 물려받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 도해로 보여 준 형질 분기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경향의 원리에서, 어떤 형태든 더 최근의 것일수록 대개 그 오래된 조상과 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오래된 화석이 지금 있는 형태와 가장 많이 다르다는 규칙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형질 분기가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로지 어떤 종의 후손이 그리하여 자연의 살림에서 많고 서로 다른 자리를 붙잡을 수 있게 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실루리아기의 어떤 형태에서 본 대로, 어떤 종이 조금 달라진 제 생활 조건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해 가면서도 아득한 기간 내내 같은 전반의 특징을 지니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것은 도해에서 글자 F14로 나타나 있다.

A에서 계승된, 절멸한 것과 최근의 것을 아우르는 그 많은 형태는 앞서 말한 대로 하나의 목을 이룬다. 그리고 이 목은 절멸과 형질 분기가 끊임없이 미친 결과로 여러 아과와 과로 나뉘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얼마는 서로 다른 시기에 스러졌다고, 얼마는 오늘까지 견뎌 왔다고 가정한다.

도해를 보면, 잇따른 누층에 박혀 있으리라 가정한 절멸한 형태 가운데 많은 것이 계열의 낮은 쪽 여러 지점에서 발견된다면 맨 위 선에 있는 지금의 세 과가 서로 덜 뚜렷이 구분되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컨대 a1, a5, a10, f8, m3, m6, m9 속이 캐어내진다면, 이 세 과는 하도 가깝게 이어져 아마 하나의 큰 과로 합쳐야 할 것이니 반추류와 후피류에서 일어난 일과 거의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세 과의 살아 있는 속들을 이어 준 절멸한 속들을 형질에서 중간이라고 부르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도 옳을 것이니, 그 속들은 곧바로 중간인 것이 아니라 오직 널리 다른 많은 형태를 거치는 길고 에두르는 길을 통해서만 중간이기 때문이다. 만일 가운데 놓인 가로선이나 지질 누층 가운데 하나보다 위쪽에서, 예컨대 VI번보다 위쪽에서 많은 절멸한 형태가 발견되고 이 선보다 아래쪽에서는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때에는 왼쪽의 두 과(곧 a14 따위와 b14 따위)만 하나의 과로 합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두 과(곧 이제 다섯 속을 아우르는 a14에서 f14까지와, o14에서 m14까지)는 여전히 뚜렷이 구분된 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과는 화석을 발견하기 전보다는 서로 덜 뚜렷이 구분될 것이다. 예컨대 두 과의 지금 있는 속들이 서로 열두어 가지 형질로 다르다고 가정하면, 이 경우 VI번으로 표시된 이른 시기의 속들은 더 적은 수의 형질로 다를 것이다. 계승의 이 이른 단계에서는 그들이 아직 그 목의 공통 조상에게서 뒷날 갈라진 만큼 형질이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오래되고 절멸한 속이 흔히 그 변화한 후손 사이에서, 또는 그 곁가지 친척 사이에서 형질이 얼마쯤 중간이 되는 일이 생긴다.

자연에서는 경우가 도해에 나타난 것보다 훨씬 복잡할 것이다. 무리의 수가 더 많았을 것이고, 그들이 견딘 시간의 길이가 지극히 고르지 않았을 것이며, 변화한 정도도 저마다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질 기록의 마지막 권만을, 그것도 몹시 끊긴 상태로 가지고 있으므로,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니고는 자연 체계의 넓은 간격을 메우고 그리하여 뚜렷이 구분되는 과나 목을 잇기를 기대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기대할 권리가 있는 것은 오직, 알려진 지질 시기 안에 많은 변화를 겪은 무리들이라면 더 오래된 누층에서 서로에게 조금 다가서 있어야 하리라는 것, 그리하여 더 오래된 구성원이 같은 무리의 지금 있는 구성원보다 그 형질 가운데 얼마에서 서로 덜 달라야 하리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가장 뛰어난 고생물학자들이 함께 내놓는 증거로 보면 흔히 그러한 듯하다.

이리하여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에서, 절멸한 생명의 형태가 서로 맺는, 또 살아 있는 형태와 맺는 유연관계에 관한 주요한 사실들이 내게는 흡족한 모양으로 설명되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은 다른 어떤 견해로도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이론에서, 지구 역사의 어느 큰 시기의 동물상이든 그에 앞선 것과 뒤이은 것 사이에서 전반의 성격이 중간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도해에서 계승의 여섯 번째 큰 단계에 살았던 종은 다섯 번째 단계에 살았던 것들의 변화한 자손이며 일곱 번째 단계에서 더욱 변화한 것들의 부모다. 그러므로 그들이 위아래의 생명 형태 사이에서 형질이 거의 중간이 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선 형태 가운데 얼마가 온통 절멸한 것과, 아주 새로운 형태가 이주로 들어온 것과, 잇따른 누층 사이의 길고 빈 간격 동안 많은 양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셈에 넣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셈에 넣는다면 각 지질 시기의 동물상은 틀림없이 앞선 동물상과 뒤이은 동물상 사이에서 형질이 중간이다. 나는 한 가지 예만 들면 되겠다. 곧 데본기26 계통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그 화석이 곧바로 고생물학자들에게 그 위에 놓인 석탄기 계통의 화석과 그 아래에 놓인 실루리아기 계통의 화석 사이에서 형질이 중간인 것으로 알아보인 모양이 그것이다. 그러나 잇닿은 누층 사이에 고르지 않은 시간 간격이 흘렀으므로 각 동물상이 반드시 꼭 중간인 것은 아니다.

각 시기의 동물상이 전체로서 앞선 동물상과 뒤이은 동물상 사이에서 형질이 거의 중간이라는 진술이 참이라는 데, 어떤 속이 그 규칙에 예외가 된다는 것은 참된 반론이 되지 못한다. 예컨대 Mastodon과 코끼리를 팰코너 박사가 먼저 서로 맺는 유연관계에 따라, 그다음 존재한 시기에 따라 두 계열로 늘어세워 보았더니 그 차례가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형질에서 극단에 있는 종이 가장 오래된 것도 가장 최근의 것도 아니고, 형질에서 중간인 종이 나이에서도 중간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와 그 밖의 그런 경우에, 종이 처음 나타나고 사라진 기록이 온전하다고 한순간 가정해 보더라도, 잇따라 생겨난 형태가 반드시 그에 걸맞은 길이의 시간 동안 견딘다고 믿을 까닭은 우리에게 없다. 아주 오래된 형태가 다른 곳에서 뒤에 생겨난 형태보다 이따금 훨씬 오래 이어질 수 있으며, 특히 갈라진 지역에 사는 뭍의 산물에서 그러하다. 작은 것을 큰 것에 견주어 말하자면, 집비둘기의 주요한 살아 있는 품종과 절멸한 품종을 될 수 있는 대로 유연관계의 계열로 늘어세운다면, 이 늘어세움은 그것들이 생겨난 시간의 차례와 가까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사라진 차례와는 더욱 맞아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모인 바위비둘기는 지금 살아 있고, 바위비둘기와 carrier27 사이의 많은 변종은 절멸했으며, 부리 길이라는 중요한 형질에서 극단에 있는 carrier는 이 같은 점에서 계열의 맞은편 끝에 있는 짧은 부리의 tumbler보다 더 이르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중간 누층에서 나온 생물의 유해가 형질에서 얼마간 중간이라는 진술과 가깝게 이어진 것이, 모든 고생물학자가 힘주어 말하는 사실, 곧 잇닿은 두 누층에서 나온 화석이 멀리 떨어진 두 누층에서 나온 화석보다 서로 훨씬 가까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픽테는 잘 알려진 예로, 백악층의 여러 단계에서 나온 생물의 유해가 단계마다 종이 뚜렷이 구분되면서도 전반으로 닮았다는 것을 든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이 두루 통하는 까닭에 픽테 교수가 종은 변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에서 흔들린 듯하다. 지금 있는 종이 지구에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잇따라 가까이 놓인 누층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종들이 가까이 닮은 것을 옛 지역의 물리적 조건이 거의 같게 남아 있었다는 것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바다에 사는 생명의 형태는 세계 전역에서 거의 한꺼번에, 따라서 더없이 다른 기후와 조건 아래에서 변했음을 떠올리자. 빙하기 전체를 아우르는 플라이스토세 동안 기후가 엄청나게 뒤바뀐 것을 생각해 보고, 바다 거주자의 종 형태가 얼마나 조금밖에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를 눈여겨보자.

계승 이론에서, 잇따라 가까이 놓인 누층에서 나온 화석 유해가 뚜렷이 구분되는 종으로 매겨지면서도 가까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의 온전한 뜻은 뚜렷하다. 누층마다 쌓이는 일이 흔히 끊겼고 잇따른 누층 사이에 길고 빈 간격이 끼어들었으므로, 우리는 내가 앞 장에서 보이려 애쓴 대로 어느 한두 누층에서 그 시기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 나타난 종들 사이의 모든 중간 변종을 찾아내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햇수로 재면 아주 길되 지질학으로 재면 그저 웬만큼 긴 간격을 지난 뒤에 가까운 사이인 형태, 곧 어떤 저자들이 대표종28이라 불러 온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우리는 틀림없이 찾아낸다. 요컨대 우리는 종 형태가 느리고 거의 감지할 수 없이 변전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찾아내기를 마땅히 기대할 만한 대로 찾아낸다.

옛 형태의 발달 상태에 대하여. 최근의 형태가 옛 형태보다 더 높이 발달했는지를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이 주제에 들어가지 않겠다. 박물학자들이 아직 높은 형태와 낮은 형태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서로 흡족하도록 규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특별한 뜻에서는 내 이론에 따라 더 최근의 형태가 더 오래된 형태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새 종은 저마다 다른 앞선 형태보다 생존경쟁에서 어떤 유리함을 지녔음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거의 비슷한 기후 아래에서 세계의 어느 한 구역의 에오세 거주자를 같은 구역이나 다른 어떤 구역의 지금 거주자와 경쟁하게 놓는다면, 에오세의 동물상이나 식물상은 틀림없이 싸움에 져서 밀려나 사라질 것이다. 중생대의 동물상이 에오세의 동물상에게, 고생대의 동물상이 중생대의 동물상에게 그러할 것과 같다. 이 개량의 과정이 옛날의 싸움에 진 생명의 형태에 견주어 더 최근의 이긴 생명 형태의 짜임새에 뚜렷하고 감지할 만한 모양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나아감을 시험해 볼 길을 나는 알 수 없다. 예컨대 갑각류는 제 강 안에서 가장 높지 않은데도 가장 높은 연체동물을 이겼을 수 있다. 유럽의 산물이 최근 뉴질랜드에 퍼져 나가 전에 다른 것들이 차지하고 있었을 자리를 붙잡은 그 놀라운 모양으로 보아, 대브리튼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뉴질랜드에 풀어 놓는다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영국 형태가 거기 온전히 귀화하여 토착 생물 가운데 많은 것을 밀어내 없앨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도 좋다. 다른 한편 지금 뉴질랜드에서 일어나는 일로 보아, 또 남반구의 거주자 가운데 단 하나도 유럽의 어느 곳에서든 들로 퍼진 것이 거의 없다는 데서, 뉴질랜드의 모든 산물을 대브리튼에 풀어 놓는다 해도 상당한 수가 지금 우리 토착 식물과 동물이 차지한 자리를 붙잡을 수 있을지 우리는 의심해도 좋다. 이 점에서 보면 대브리튼의 산물이 뉴질랜드의 산물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가장 솜씨 좋은 박물학자라도 두 나라의 종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이 결과를 미리 내다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아가시는 옛 동물이 같은 강의 최근 동물의 배아를 어느 정도 닮는다고, 다시 말해 절멸한 형태의 지질학적 잇따름이 최근 형태의 배아 발달과 얼마간 나란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나는 이 교설이 참임은 입증되기에 아직 멀었다고 보는 데서 픽테와 헉슬리29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나는 뒷날 그것이, 적어도 견주어 보면 최근에 서로 갈라져 나온 하위 무리에 관해서는 확인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고 온전히 기대한다. 아가시의 이 교설은 자연선택 이론과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나는 뒤의 어느 장에서 어른이 제 배아와 다른 까닭이 이르지 않은 나이에 변이가 덧붙고 그것이 그에 걸맞은 나이에 유전되는 데 있음을 보이려 애쓸 것이다. 이 과정은 배아를 거의 달라지지 않은 채로 두면서 잇따른 세대를 거치는 동안 어른에게 점점 더 많은 차이를 끊임없이 덧붙인다.

이리하여 배아는 각 동물의 오래되고 덜 변화한 상태를 자연이 지켜 둔 일종의 그림으로 남게 된다. 이 견해는 참일 수 있으나 그러면서도 결코 온전히 입증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포유류와 파충류와 물고기가 엄밀히 저마다 제 강에 속한다는 것을 보면, 이 옛 형태 가운데 얼마가 오늘날 같은 무리의 전형적인 구성원보다 서로 조금 덜 뚜렷이 구분되기는 하지만, Vertebrata의 공통된 배아 형질을 지닌 동물을 찾는 일은 가장 낮은 실루리아기 지층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층이 발견될 때까지는 헛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견이 이루어질 기회는 매우 작다.

더 나중 제3기 시기 동안 같은 지역 안에서 같은 유형이 잇따르는 것에 대하여. 클리프트30 씨는 여러 해 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굴에서 나온 화석 포유류가 그 대륙의 살아 있는 유대류와 가까운 사이임을 보였다. 남아메리카에서도 라플라타의 여러 곳에서 발견된, 아르마딜로의 것과 같은 거대한 갑옷 조각에서 비슷한 관계가 배우지 못한 눈에까지 뚜렷하다. 그리고 오언 교수는 거기 그토록 많이 묻힌 화석 포유류의 대부분이 남아메리카의 유형과 이어져 있음을 더없이 놀라운 모양으로 보여 주었다. 이 관계는 룬드 씨와 클라우젠 씨가 브라질의 굴에서 모은 놀라운 화석 뼈 수집품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나는 이 사실들에 하도 깊이 인상을 받아 1839년과 1845년에 이 「유형이 잇따르는 법칙」을, 곧 「같은 대륙에서 죽은 것과 산 것 사이의 이 놀라운 관계」를 강하게 내세웠다. 오언 교수는 뒤에 같은 일반 명제를 구세계의 포유류에까지 넓혔다. 우리는 이 저자가 되살려 낸 뉴질랜드의 절멸한 거대한 새에서도 같은 법칙을 본다. 우리는 브라질의 굴에서 나온 새에서도 그것을 본다. 우드워드 씨는 바다 조개에도 같은 법칙이 들어맞음을 보였으나, 연체동물 대부분의 속이 널리 분포하는 까닭에 그것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마데이라의 절멸한 육상 조개와 살아 있는 육상 조개 사이의 관계, 그리고 아랄카스피해의 절멸한 반염수 조개와 살아 있는 반염수 조개 사이의 관계처럼 다른 경우를 더 보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같은 지역 안에서 같은 유형이 잇따른다는 이 놀라운 법칙은 무엇을 뜻하는가? 같은 위도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남아메리카 일부의 오늘날 기후를 견주어 본 다음, 한편으로는 물리적 조건이 닮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 두 대륙의 거주자가 닮지 않은 것을 설명하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조건이 닮았다는 것으로 더 나중 제3기 시기 동안 두 대륙 저마다에서 같은 유형이 한결같았던 것을 설명하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담대한 사람일 것이다. 또 유대류가 주로 또는 오직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생겨났어야 한다거나 Edentata(빈치류)와 그 밖의 아메리카 유형이 오직 남아메리카에서만 생겨났어야 한다는 것이 변하지 않는 법칙이라고 내세울 수도 없다. 우리는 옛 시대에 유럽에 수많은 유대류가 살았음을 알고 있으며, 나는 앞서 말한 책에서 아메리카에서 뭍의 포유류가 분포하는 법칙이 예전에는 지금과 달랐음을 보였다. 북아메리카는 예전에 지금 그 대륙의 남쪽 절반이 지닌 성격을 강하게 나누어 지녔고, 남쪽 절반은 예전에 지금보다 북쪽 절반과 더 가까운 사이였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는 팰코너와 코틀리31의 발견에서 북부 인도가 예전에 그 포유류에서 지금보다 아프리카와 더 가까이 이어져 있었음을 안다. 바다 동물의 분포에 관해서도 비슷한 사실을 들 수 있다.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에서, 같은 지역 안에서 같은 유형이 오래 견디되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닌 모양으로 잇따른다는 저 큰 법칙은 곧바로 설명된다. 세계의 각 구역의 거주자는 다음에 이어지는 시기 동안 그 구역에 가까운 사이이되 얼마간 변화한 후손을 남기는 쪽으로 분명히 기울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대륙의 거주자가 예전에 다른 대륙의 거주자와 크게 달랐다면 그 변화한 후손도 여전히 거의 같은 모양과 정도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아주 긴 시간 간격이 흐르고 큰 지리 변화가 일어나 서로 많이 오가게 된 뒤에는 약한 것이 더 우세한 형태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며, 지난날과 오늘날의 분포 법칙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Megatherium과 그 밖의 가까운 사이인 거대한 괴물들이 남아메리카에 나무늘보와 아르마딜로와 개미핥기를 그 퇴화한 후손으로 남겼다고 가정하는 것이냐는 비웃음 섞인 물음을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한순간도 인정할 수 없다. 이 거대한 동물들은 온통 절멸했고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브라질의 굴에는 크기와 그 밖의 형질에서 남아메리카에 지금도 살아 있는 종과 가까운 사이인 절멸한 종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 화석 가운데 얼마는 살아 있는 종의 실제 조상일 수도 있다. 내 이론에서 같은 속의 모든 종이 어느 한 종에서 계승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한 지질 누층에서 저마다 여덟 종을 지닌 여섯 속이 발견되고 그다음에 이어지는 누층에서 같은 수의 종을 지닌, 가까운 사이거나 대표가 되는 다른 여섯 속이 있다면, 우리는 더 오래된 여섯 속 가운데 저마다 단 한 종만이 변화한 후손을 남겨 그 여섯 새 속을 이루었다고 결론지어도 좋다. 옛 속들의 다른 일곱 종은 모두 죽어 없어져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아니면, 아마 훨씬 흔한 경우일 텐데, 더 오래된 여섯 속 가운데 둘이나 셋에 속한 종 두세 가지만이 그 여섯 새 속의 부모였을 것이고, 다른 옛 종들과 나머지 속 전체는 온통 절멸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의 Edentata가 겉보기에 그런 것처럼 속과 종의 수가 줄어들며 기울어 가는 목에서는 변화한 혈통의 후손을 남긴 속과 종이 더욱 적을 것이다.

앞 장과 이 장의 요약. 나는 다음을 보이려 애썼다. 지질 기록이 지극히 불완전하다는 것. 지구에서 지질학으로 꼼꼼히 조사된 부분이 아주 적다는 것. 어떤 강의 생물만이 화석 상태로 널리 지켜졌다는 것. 우리 박물관에 지켜진 표본과 종의 수가, 단 하나의 누층이 쌓이는 동안에도 스러져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뒷날의 깎임을 견딜 만큼 두꺼운, 화석을 품은 퇴적층이 쌓이려면 침강이 있어야 하는 까닭에 잇따른 누층 사이에 엄청난 시간 간격이 흘렀다는 것. 침강하는 시기에 절멸이 더 많았고 융기하는 시기에 변이가 더 많았으며 융기하는 동안에는 기록이 가장 불완전하게 남았으리라는 것. 누층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이어져 쌓인 것은 아니라는 것. 누층 하나하나가 이어진 기간이 종 형태가 이어지는 평균 기간에 견주면 아마 짧다는 것. 어느 한 지역과 누층에서 새 형태가 처음 나타나는 데 이주가 중요한 몫을 했다는 것. 넓은 범위에 걸친 종이 가장 많이 변이했고 새 종을 가장 자주 낳았다는 것. 그리고 변종이 처음에는 흔히 그 고장에 매여 있었다는 것. 이 모든 원인을 함께 놓고 보면 지질 기록을 지극히 불완전하게 만드는 쪽으로 작용했을 것이 틀림없으며, 절멸한 것과 지금 있는 모든 생명의 형태를 가장 고운 등급의 걸음으로 이어 주는 끝없는 변종을 우리가 찾아내지 못하는 까닭을 크게 설명해 줄 것이다.

지질 기록의 성질에 관한 이 견해를 물리치는 사람은 내 이론 전체를 물리치는 것이 마땅하다. 그는 같은 큰 누층의 여러 단계에서 발견되는, 가까운 사이거나 대표가 되는 종들을 예전에 이어 주었을 것이 틀림없는 그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행의 고리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도 헛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잇닿은 누층 사이에 흐른 엄청난 시간 간격을 믿지 않을 수 있다. 유럽처럼 어느 한 큰 지역의 누층만을 놓고 볼 때 이주가 얼마나 중요한 몫을 했을 것이 틀림없는지를 그는 지나쳐 버릴 수 있다. 종의 무리 전체가 겉보기에, 그러나 흔히 잘못 그렇게 보이는 것뿐인데, 갑작스레 들어온 것을 그는 내세울 수 있다. 그는 실루리아 계통의 첫 층이 쌓이기 훨씬 전에 존재했을 것이 틀림없는 그 한없이 많은 생물의 유해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이 마지막 물음에 나는 오직 가설로만 대답할 수 있으니, 우리가 볼 수 있는 한 지금 우리 대양이 펼쳐진 곳에는 대양이 엄청난 기간 동안 펼쳐져 있었고 지금 우리의 오르내리는 대륙이 서 있는 곳에는 실루리아기 이래로 줄곧 대륙이 서 있었다는 것, 그러나 그 시기보다 훨씬 전에는 세계가 온통 다른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르고, 우리에게 알려진 어떤 누층보다 오래된 누층으로 이루어진 더 오래된 대륙이 지금은 모두 변성된 상태에 있거나 대양 아래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 난점들을 지나면, 고생물학의 다른 모든 큰 으뜸 사실은 내게 자연선택을 통한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에서 그저 따라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 종이 어떻게 천천히 잇따라 들어오는지, 어떻게 서로 다른 강의 종이 반드시 함께 변하지도 같은 속도로 변하지도 같은 정도로 변하지도 않는지, 그러면서도 긴 안목으로 보면 어떻게 모두가 얼마간 변화를 겪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옛 형태의 절멸은 새 형태가 생겨나는 데 거의 피할 수 없이 따르는 결과다. 우리는 어떤 종이 한번 사라지고 나면 어째서 결코 다시 나타나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종의 무리는 수가 천천히 늘고 고르지 않은 기간 동안 견딘다. 변화의 과정이 느릴 수밖에 없고 여러 복잡한 우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더 크고 우세한 무리의 우세한 종은 변화한 후손을 많이 남기는 쪽으로 기울며, 그리하여 새 하위 무리와 새 무리가 이루어진다. 이것들이 이루어지면서 덜 굳센 무리의 종들은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열등함 때문에 함께 절멸하고 지구의 낯에 변화한 자손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종의 무리 전체가 온통 절멸하는 일은, 얼마 안 되는 후손이 보호받는 외딴 자리에 머물러 살아남는 까닭에 흔히 아주 느린 과정일 수 있다. 어떤 무리가 한번 온통 사라지고 나면 그것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대를 잇는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자주 변이하는 우세한 생명 형태가 퍼져 나감으로써 긴 안목으로 보면 어떻게 세계를 가까운 사이이되 변화한 후손으로 채우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대개 생존경쟁에서 저보다 열등한 종의 무리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그러므로 긴 시간 간격이 흐른 뒤에 세계의 산물은 한꺼번에 변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옛것이든 최근 것이든 모든 생명의 형태가 어떻게 다 함께 하나의 큰 체계를 이루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모두가 대를 이음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질 분기로 나아가려는 끊임없는 경향에서, 어떤 형태가 오래될수록 어째서 대개 지금 살아 있는 것들과 더 많이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어째서 옛 형태와 절멸한 형태가 흔히 지금 있는 형태 사이의 틈을 메우는 쪽으로 기울어 때로는 전에 뚜렷이 구분된다고 매겨지던 두 무리를 하나로 녹여 내고, 더 흔하게는 그저 그 둘을 조금 더 가까이 붙여 놓을 뿐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 어떤 형태가 오래될수록 그만큼 더 자주, 겉보기에, 지금 뚜렷이 구분되는 무리들 사이에서 얼마간 중간인 형질을 드러낸다. 어떤 형태가 오래될수록 그만큼 더 가까이, 그 뒤로 널리 갈라져 온 무리들의 공통 조상과 이어져 있고 따라서 그것을 닮을 터이기 때문이다. 절멸한 형태가 지금 있는 형태 사이에서 곧바로 중간인 일은 드물고, 다만 절멸했고 아주 다른 많은 형태를 거치는 길고 에두르는 길을 통해서만 중간이다. 우리는 어째서 잇따라 가까이 놓인 누층에서 나온 생물의 유해가 멀리 떨어진 누층에서 나온 것보다 서로 더 가까운 사이인지를 뚜렷이 알 수 있다. 그 형태들이 대를 이음으로 더 가깝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째서 중간 누층에서 나온 유해가 형질에서 중간인지를 뚜렷이 알 수 있다.

세계 역사의 잇따른 시기마다 그 거주자들은 삶을 건 경주에서 제 선행자를 이겨 냈고, 그런 한에서 자연의 등급에서 더 높다. 그리고 이것은 짜임새가 전체로 나아왔다고 많은 고생물학자가 느끼는 저 어렴풋하고 잘 규정되지 않은 느낌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뒷날 옛 동물이 같은 강의 더 최근 동물의 배아를 어느 정도 닮는다는 것이 입증된다면, 그 사실도 이해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더 나중의 지질 시기 동안 같은 지역 안에서 같은 구조 유형이 잇따른다는 것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되며, 유전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그렇다면 지질 기록이 내가 믿는 만큼 불완전하다면, 그리고 적어도 그 기록이 훨씬 더 온전하다고 입증될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면, 자연선택 이론에 들이대는 주요한 반론은 크게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다른 한편 고생물학의 모든 으뜸 법칙은, 내가 보기에, 종이 보통의 생식으로 생겨났음을, 곧 옛 형태가 우리 둘레에서 여전히 작용하는 변이의 법칙으로 생겨나 자연선택으로 지켜진 새롭고 개량된 생명의 형태에게 밀려났음을 뚜렷이 알린다.

주

  1. 1. 라이엘 —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영국의 지질학자로 《지질학 원리》(1830~1833)에서, 지금 눈앞에서 작용하는 힘이 같은 세기로 아득한 시간 동안 작용해 지구의 과거를 만들었다고 논했다. 9장 전체의 뼈대가 된 생각이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에 이 책을 들고 갔고 평생 라이엘을 스승으로 여겼다.

  2. 2. 제3기 — 원문은 tertiary. 다윈 당시의 구분으로 오늘날의 신생대 가운데 제4기 이전의 시기를 가리켰다. 라이엘이 이 시기를 에오세·마이오세·플라이오세 따위로 나누었고 그 이름 가운데 얼마는 오늘날에도 쓰인다. 6장과 9장에서도 나왔다.

  3. 3. 층 — 원문은 bed. 다윈은 크기가 다른 켜를 네 낱말로 구별해 쓴다. 누층(formation)은 한 시기에 걸쳐 쌓인 큰 덩어리를, 지층(strata)은 그 안에 켜켜이 앉은 결을, 층(bed)은 그보다 작은 낱낱의 켜를 가리키며, 퇴적층(deposit)은 쌓인 자리를 두루 이르는 말이다. 9장에서 밝힌 대로 다윈의 논증은 이 켜들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긴가에 걸려 있으므로 네 낱말을 섞지 않고 옮겼다.

  4. 4. 필리피 — 루돌프 아만두스 필리피(Rudolph Amandus Philippi, 1808~1904). 독일 태생의 박물학자로 시칠리아의 화석 연체동물을 연구했고 뒤에 칠레로 건너가 그곳의 생물을 조사했다.

  5. 5. 중생대 — 원문은 secondary. 당시에는 지구의 지층을 제1기·제2기·제3기·제4기로 나누어 부르던 관행이 남아 있었고, 여기서 말하는 제2기(Secondary)는 오늘날의 중생대에 해당한다. 9장에서도 나왔다.

  6. 6. 브론 — 하인리히 게오르크 브론(Heinrich Georg Bronn, 1800~1862). 독일의 고생물학자로 뒷날 《종의 기원》을 독일어로 옮겼다. 9장에서도 나왔다.

  7. 7. 팰코너 — 휴 팰코너(Hugh Falconer, 1808~1865). 스코틀랜드의 고생물학자이자 식물학자로 인도 시왈리크 구릉의 화석 포유류를 연구했다. 9장에서도 나왔다.

  8. 8. 실루리아기 — 원문은 Silurian. 머치슨이 세운 구분이며, 다윈 당시에는 화석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시기로 여겨져 오늘날의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여기 들어 있었다. 따라서 다윈이 말하는 「실루리아기 이전」은 오늘날의 선캄브리아 시대에 해당한다. 9장에서도 나왔다.

  9. 9. 픽테 — 프랑수아 쥘 픽테(François Jules Pictet, 1809~1872). 스위스의 고생물학자로 《고생물학 개론》을 냈다.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9장에서도 나왔다.

  10. 10. 바랑드와 「식민 무리」 — 요아힘 바랑드(Joachim Barrande, 1799~1883). 프랑스 태생으로 보헤미아에서 활동한 고생물학자이며 그곳의 오래된 지층에서 삼엽충을 비롯한 화석을 방대하게 모아 기재했다. 9장에서도 나왔다. 그가 「식민 무리」(colonies)라 부른 것은 더 오래된 지층 한가운데에 더 젊어 보이는 화석 무리가 한동안 끼어들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11. 11. fantail — 집비둘기의 사육 품종 이름이다. 1장에서 밝힌 대로 이 품종 이름들은 한국어 통용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없는 이름을 지어내지 않고 원어를 그대로 두었다. fantail은 꼬리깃을 부채처럼 펼치는 품종이다. 바위비둘기(Columba livia)는 다윈이 모든 집비둘기 품종의 공통 조상으로 본 야생종이며 1장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12. 12. 포브스·우드워드 —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 1815~1854)는 영국의 박물학자로 준설기로 바다 밑을 훑어 수심에 따른 생물 분포를 조사했다. 새뮤얼 피크워스 우드워드(Samuel Peckworth Woodward, 1821~1865)는 영국의 박물학자로 연체동물을 연구했다. 둘 다 9장에서도 나왔다.

  13. 13. 엘리 드 보몽·머치슨 — 레옹스 엘리 드 보몽(Léonce Élie de Beaumont, 1798~1874)은 프랑스의 지질학자로 산맥이 갑작스러운 융기로 솟았다고 보았다. 로더릭 임피 머치슨(Roderick Impey Murchison, 1792~1871)은 영국의 지질학자로 실루리아계를 세웠고 9장에서도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지구의 역사에 큰 재난이 있었다고 보는 쪽에 가까웠다.

  14. 14. 고생대 — 원문은 palæozoic. 다윈 당시 지질 시대는 크게 고생대·중생대(Secondary)·제3기(Tertiary)로 나뉘었다. 고생대는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이나 그 아래의 구분과 경계는 그 뒤 여러 번 고쳐졌다. 9장에서도 나왔다.

  15. 15. 오언 —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1892). 영국의 해부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당대 비교해부학의 권위자였다. 6장과 9장에서도 나왔다. 다윈이 비글호에서 가져온 남아메리카의 화석 포유류를 기재한 사람이 그였다.

  16. 16. 1845년에 펴낸 글 — 비글호 항해의 기록인 《항해기》(Journal of Researches)의 1845년 제2판을 가리킨다. 오늘날 흔히 《비글호 항해기》로 불리는 책이다. 다윈은 뒤에서 1839년 초판도 함께 끌어온다.

  17. 17. 쇼트혼 소 — 원문은 short-horn cattle. 잉글랜드 북동부에서 개량된 소 품종으로 19세기에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 그곳의 토착 품종을 밀어냈다. 1장에서도 나왔다.

  18. 18. 백악층 — 원문은 the Chalk formation. 잉글랜드 남부를 비롯해 유럽에 널리 깔린 흰 석회질 누층으로, 다윈 당시 중생대의 끝을 이루는 누층으로 보았다. 백악기라는 시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9장에서도 나왔다. 굳어진 한국어 이름을 그대로 써서 「백악층」으로 옮겼으므로, 여기서 끝의 「층」은 bed를 옮긴 말이 아니라 이 누층의 이름에 붙은 글자다.

  19. 19. 플라이스토세·빙하기 —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는 라이엘이 제3기 다음에 놓으며 붙인 이름으로 오늘날에도 쓰인다. 빙하기(the glacial period)는 유럽 북부가 얼음에 덮였던 가까운 과거의 시기를 가리켜 당시에 쓰던 말이다. 다윈은 11장에서 이 시기를 자세히 다룬다.

  20. 20. 베르뇌유·다르시아크 — 에두아르 드 베르뇌유(Édouard de Verneuil, 1805~1873)와 에티엔 쥘 아돌프 데미에 다르시아크(Étienne Jules Adolphe Desmier d'Archiac, 1802~1868). 두 사람 모두 프랑스의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유럽 여러 나라의 고생대 지층을 함께 조사해 견주었다.

  21. 21. 발단기의 종 — 원문은 incipient species. 변종이 종으로 굳어져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을 가리키는 다윈 고유의 표현이다. 2장에서 처음 나왔다.

  22. 22. 프레스트위치·에오세 — 조지프 프레스트위치(Joseph Prestwich, 1812~1896)는 영국의 지질학자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에오세 지층을 견주어 연구했다. 에오세(eocene)는 라이엘이 제3기를 나누며 붙인 이름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인다. 9장에서도 나왔다.

  23. 23. 버클랜드 — 윌리엄 버클랜드(William Buckland, 1784~1856). 영국의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옥스퍼드에서 가르쳤으며 최초로 기재된 공룡인 Megalosaurus에 이름을 붙였다.

  24. 24. 퀴비에 —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을 세웠다. 6장과 9장에서도 나왔다. 여기 나오는 반추류(Ruminants)와 후피류는 그가 세운 포유류의 목이며, 후피류는 코끼리·코뿔소·돼지처럼 가죽이 두꺼운 짐승을 한데 묶은 무리다.

  25. 25. 4장의 도해 — 4장에서 형질 분기를 설명하며 쓴 그림을 가리킨다. 대문자 (A)에서 (L)까지가 어느 한 속의 종을 나타내고, 가로선은 세대 또는 지질 누층의 잇따름을, a1·a14·F14처럼 숫자가 붙은 작은 글자는 갈라져 나온 변종과 종을 나타낸다. 기호는 원문 그대로 두었고 4장의 번역과 같은 표기를 따랐다.

  26. 26. 데본기·석탄기 — 데본기(Devonian)는 머치슨과 세지윅이 1839년에 세운 구분이고, 석탄기(carboniferous)는 그보다 먼저 세워진 구분이다. 둘 다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이며 실루리아기·데본기·석탄기의 차례도 그대로다.

  27. 27. carrier·tumbler — fantail과 마찬가지로 집비둘기의 사육 품종 이름이다. carrier는 부리가 길고 부리 둘레에 살점이 발달한 품종이고, tumbler는 부리가 짧고 공중에서 재주를 넘는 품종이다. 한국어 통용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원어를 그대로 두었으며 1장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28. 28. 대표종 — 원문은 representative species. 시대나 지역이 다른 자리에서 서로 같은 몫을 맡는, 가까운 사이인 별개의 종을 가리켜 당시에 쓰던 말이다.

  29. 29. 아가시·헉슬리 —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는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박물학자이며 화석 물고기와 빙하를 연구했고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9장에서도 나왔다.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는 영국의 비교해부학자로 이 책이 나온 뒤 다윈의 견해를 가장 앞장서서 변호했다.

  30. 30. 클리프트·룬드·클라우젠 — 윌리엄 클리프트(William Clift, 1775~1849)는 영국 왕립외과의사회 박물관의 관리자로 오스트레일리아의 굴에서 나온 화석 포유류를 기재했다. 페테르 빌헬름 룬드(Peter Wilhelm Lund, 1801~1880)는 덴마크의 박물학자이고, 페터 클라우젠(Peter Claussen)은 그와 함께 브라질 라고아산타의 석회암 굴에서 화석 뼈를 대규모로 모은 사람이다.

  31. 31. 코틀리 — 프로비 토머스 코틀리(Proby Thomas Cautley, 1802~1871). 영국의 공병 장교이자 고생물학자로 팰코너와 함께 인도 시왈리크 구릉의 화석 포유류를 발굴하고 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