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변이의 법칙
외부 조건의 효과. 자연선택과 결합한 쓰임과 쓰이지 않음. 나는 기관과 보는 기관. 풍토 적응. 성장의 상관. 성장의 보상과 절약. 거짓 상관. 여러 번 되풀이되는 구조와 흔적 구조와 낮게 짜인 구조는 변이하기 쉽다. 유별나게 발달한 부분은 변이가 심하다. 종 형질은 속 형질보다 변이가 심하다. 2차 성징 형질은 변이가 심하다. 같은 속의 종들은 서로 비슷하게 변이한다. 오래전에 잃은 형질로 되돌아감. 요약.
나는 지금까지 이따금, 사육되는 생물에게 그토록 흔하고 그토록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며 자연 상태의 생물에게도 그보다는 덜하게 나타나는 그 변이가 마치 우연 탓인 것처럼 말해 왔다. 이는 물론 아주 틀린 표현이지만, 변이 하나하나의 원인에 대해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는 쓸모가 있다. 어떤 저자들은 개체 차이, 곧 구조의 아주 미미한 어긋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식을 부모와 닮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생식 계통의 기능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보다 사육이나 재배 아래에서 변이성이 훨씬 크고 기형도 훨씬 자주 나타난다는 사실은, 구조의 어긋남이 어떤 식으로든 생활 조건의 성질에, 곧 부모와 그보다 먼 조상이 여러 세대에 걸쳐 놓여 있던 그 조건의 성질에 말미암는다고 나는 믿게 된다. 나는 첫 장에서 생식 계통이 생활 조건의 변화에 유난히 민감하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참임을 보이려면 여기 다 실을 수 없는 긴 사실 목록이 필요할 것이다), 자손이 변하기 쉽고 무르게 되는 그 상태를 나는 주로 부모에게서 이 계통이 기능상 교란된 데로 돌린다. 수컷과 암컷의 성적 요소는 새로운 존재를 이루게 될 그 결합이 일어나기도 전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 「sport」1라 불리는 식물의 경우에는 가장 이른 상태에서 밑씨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이는 눈만 홀로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생식 계통이 교란되었다고 해서 어째서 이 부분이나 저 부분이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변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깊이 무지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저기서 희미한 빛줄기 하나를 어렴풋이 붙들 수 있으며, 구조의 어긋남에는 그것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으리라고 확신해도 좋다.
기후와 먹이 따위의 차이가 어떤 생물에게 직접 얼마나 큰 효과를 내는지는 몹시 의심스럽다. 내 인상으로는 동물의 경우 그 효과가 지극히 작고 식물의 경우에는 그보다 조금 더 큰 듯하다. 적어도 우리는 그러한 영향이 한 생물과 다른 생물 사이에 있는, 우리가 자연 어디에서나 보는 그 숱하고 인상적이며 복잡한 상호 적응을 만들어 냈을 리 없다고 안전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기후와 먹이 따위에 얼마쯤 작은 영향을 돌릴 수는 있다. 이를테면 E. 포브스는 조개껍데기가 그 분포의 남쪽 끝에 있을 때, 또 얕은 물에 살 때, 더 북쪽에 있거나 더 깊은 데서 사는 같은 종의 것보다 빛깔이 더 밝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굴드는 같은 종의 새가 맑은 대기 아래에서 섬이나 해안 가까이 살 때보다 빛깔이 더 밝다고 믿는다. 곤충도 그러해서 월러스턴2은 바다 가까이 사는 것이 그 빛깔에 영향을 준다고 확신한다. 모캥탕동은 바닷가 가까이 자랄 때 잎이 얼마간 살지지만 다른 데서는 살지지 않는 식물의 목록을 내놓았다. 이런 경우는 몇 가지 더 들 수 있다.
한 종의 변종이 다른 종이 사는 구역으로 퍼져 들어갈 때 그 종의 형질 가운데 몇 가지를 아주 미미한 정도로 얻는 일이 잦다는 사실은, 온갖 종류의 종이 뚜렷이 구분되고 오래가는 변종일 뿐이라는 우리 견해와 들어맞는다. 그리하여 열대의 얕은 바다에만 사는 조개 종들은 대체로 차고 깊은 바다에만 사는 것들보다 빛깔이 밝다. 굴드 씨에 따르면 대륙에만 사는 새들은 섬의 새들보다 빛깔이 밝다. 바닷가에만 사는 곤충 종은, 채집가라면 누구나 알듯이, 놋쇠빛이거나 침침한 빛일 때가 많다. 바닷가에서만 사는 식물은 잎이 살지기 쉽다.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 조개는 따뜻한 바다를 위해 밝은 빛깔로 창조되었으나, 저 다른 조개는 더 따뜻하거나 더 얕은 물로 퍼져 갔을 때 변이로 밝은 빛깔이 되었다고 말이다.
어떤 변이가 한 생물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을 때, 우리는 그 가운데 얼마를 자연선택의 누적 작용에 돌려야 하고 얼마를 생활 조건에 돌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모피상들은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그들이 살아온 기후가 혹독할수록 털이 더 두껍고 더 좋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이 차이 가운데 얼마가 가장 따뜻하게 입은 개체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유리해지고 보존된 데서 왔고, 얼마가 혹독한 기후의 직접 작용에서 왔는지를 누가 가려낼 수 있겠는가? 기후는 우리 집짐승 네발짐승의 털에도 얼마간 직접 작용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다른 생활 조건 아래에서 같은 변종이 생겨난 사례를 들 수 있고, 반대로 같은 조건 아래에서 같은 종으로부터 서로 다른 변종이 생겨난 사례도 들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생활 조건이 얼마나 간접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준다. 또 박물학자라면 누구나 가장 상반된 기후 아래에서 살면서도 제 형질을 그대로 지키는, 곧 조금도 변이하지 않는 종의 사례를 수없이 알고 있다. 이런 고려들 때문에 나는 생활 조건의 직접 작용에 아주 적은 무게만 두는 쪽으로 기운다. 간접으로는, 이미 말했듯이, 생활 조건이 생식 계통에 영향을 주고 그리하여 변이성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요한 몫을 하는 듯하다. 그러면 자연선택은 이로운 변이라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모두 쌓아 올려 마침내 그것이 뚜렷이 발달해 우리 눈에 뜨일 만큼 되게 한다.
쓰임과 쓰이지 않음3의 효과. 첫 장에서 언급한 사실들로 보아, 우리 집짐승에서 쓰임이 어떤 부분을 튼튼하게 하고 크게 하며 쓰이지 않음이 그것을 줄인다는 것, 그리고 그런 변화가 유전된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유로운 자연 아래에서는 오래 이어진 쓰임이나 쓰이지 않음의 효과를 가늠할 비교 기준이 없으니, 우리가 그 어버이 형태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동물이 쓰이지 않음의 효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오언 교수4가 말했듯이 자연에서 날지 못하는 새보다 더 큰 변칙은 없는데, 그런 상태에 있는 새가 여럿이다. 남아메리카의 배오리5는 물 위를 퍼덕이며 달릴 수 있을 뿐이고 그 날개는 집오리인 에일즈베리오리6와 거의 같은 상태에 있다. 땅에서 먹이를 찾는 큰 새들은 위험을 피할 때가 아니면 좀처럼 날아오르지 않으므로, 맹수가 살지 않는 여러 대양의 섬에 지금 살고 있거나 얼마 전까지 살았던 새 여럿이 날개를 거의 잃다시피 한 것은 쓰이지 않음이 불러온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타조는 과연 대륙에 살며 날아서는 벗어날 수 없는 위험에 놓여 있지만, 발로 차서 그보다 작은 어느 네발짐승 못지않게 제 적을 막아 낼 수 있다. 우리는 타조의 이른 조상이 느시와 같은 습성을 지녔다가, 자연선택이 잇따르는 세대에 걸쳐 몸의 크기와 무게를 늘려 감에 따라 다리는 더 많이 쓰이고 날개는 덜 쓰여 마침내 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려 볼 수 있다.
커비7는 똥을 먹는 수컷 딱정벌레 여럿의 앞발목마디, 곧 발이 아주 자주 떨어져 나간다고 말했는데, 나도 같은 사실을 관찰했다. 그는 제 수집품에서 표본 17개를 살펴보았으나 흔적이나마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Onites apelles에서는 발목마디가 늘 없어지는 터라 이 곤충이 아예 그것을 지니지 않았다고 기재되기까지 했다. 다른 몇몇 속에서는 그것이 있기는 하나 흔적만 남은 상태다. 이집트인의 신성한 딱정벌레인 Ateuchus8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없다. 훼손된 자국이 유전된다고 믿게 할 만한 증거는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Ateuchus에서 앞발목마디가 아예 없는 것과 다른 몇몇 속에서 그것이 흔적만 남은 것을, 그 조상에게서 쓰이지 않음이 오래 이어진 효과로 설명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똥을 먹는 딱정벌레 여럿에서 발목마디가 거의 언제나 없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삶의 이른 시기에 없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 곤충들이 그것을 많이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온전히 또는 주로 자연선택에 말미암은 구조의 변화를 우리가 쓰이지 않음 탓으로 쉽게 돌려 버릴 수도 있다. 월러스턴 씨는 마데이라에 사는 딱정벌레 550종 가운데 200종이 날개가 모자라 날지 못한다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그리고 그곳 고유의 29개 속 가운데 무려 23개 속이 그에 딸린 모든 종이 이런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러 사실이 있다. 세계 여러 곳에서 딱정벌레가 아주 자주 바다로 날려 가 죽는다는 것, 월러스턴 씨가 관찰했듯이 마데이라의 딱정벌레는 바람이 잦아들고 해가 날 때까지 깊이 숨어 있다는 것, 날개 없는 딱정벌레의 비율이 마데이라 본섬보다 바람에 더 드러난 데제르타스9에서 더 높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월러스턴 씨가 힘주어 말한 저 놀라운 사실, 곧 다른 데서는 지나치게 많고 그 생활 습성상 자주 날 수밖에 없는 어떤 큰 딱정벌레 무리가 이곳에는 거의 통째로 없다는 것이다. 이 여러 고려 때문에 나는 그토록 많은 마데이라 딱정벌레가 날개 없는 상태인 것이 주로 자연선택의 작용에 말미암되 아마도 쓰이지 않음과 결합했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잇따르는 수천 세대 동안, 날개가 아주 조금이라도 덜 온전하게 발달했기 때문이든 게으른 습성 때문이든 가장 적게 난 딱정벌레마다 바다로 날려 가지 않아 살아남을 가장 좋은 기회를 얻었을 것이고, 반대로 가장 선뜻 날아오른 딱정벌레들은 가장 자주 바다로 날려 가 그렇게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데이라의 곤충 가운데 땅에서 먹이를 찾지 않는 것들, 곧 꽃을 먹는 딱정벌레목과 나비목처럼 먹고살기 위해 늘 날개를 써야 하는 것들은, 월러스턴 씨가 짐작하기로 날개가 전혀 줄지 않았고 오히려 커졌다. 이는 자연선택의 작용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새로운 곤충이 그 섬에 처음 닿았을 때, 날개를 키우거나 줄이려는 자연선택의 경향은 바람과 성공적으로 싸워 살아남은 개체가 더 많은가, 아니면 그 시도를 포기하고 드물게 날거나 아예 날지 않아 살아남은 개체가 더 많은가에 달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안 가까이에서 배가 난파했을 때와 같다. 헤엄을 잘 치는 사람에게는 더 멀리까지 헤엄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고, 헤엄을 못 치는 사람에게는 아예 헤엄칠 줄 몰라 난파선에 매달려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두더지와 땅을 파는 설치류 몇몇의 눈은 크기가 흔적만 남았고, 어떤 경우에는 살갗과 털에 온통 덮여 있다. 눈이 이런 상태인 것은 아마도 쓰이지 않음에서 온 점진적 축소에 말미암겠지만 자연선택의 도움도 받았을 것이다. 남아메리카에는 땅을 파는 설치류가 있으니 투코투코, 곧 Ctenomys10인데 그 습성이 두더지보다도 더 땅속에 붙박여 있다. 그것을 자주 잡아 보았다는 어느 스페인 사람은 그것들이 자주 눈이 멀어 있다고 내게 장담했다. 내가 살려 두고 기른 한 마리도 분명 그런 상태였으며, 해부해 보니 그 원인은 순막11의 염증이었다. 눈에 염증이 자주 생기는 것은 어떤 동물에게든 해로울 수밖에 없고 땅속에 사는 습성을 지닌 동물에게 눈이 꼭 있어야 하는 것도 분명 아니므로, 눈이 작아지면서 눈꺼풀이 들러붙고 그 위로 털이 자라는 것은 그런 경우에 유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선택은 쓰이지 않음의 효과를 끊임없이 도왔을 것이다.
슈타이어마르크12와 켄터키의 동굴에 사는, 서로 가장 다른 강에 딸린 동물 여럿이 눈이 멀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어떤 게에서는 눈은 사라졌는데 눈자루가 남아 있다. 망원경은 그 렌즈와 함께 잃었으나 망원경 받침대는 그대로 있는 셈이다. 어둠 속에 사는 동물에게 눈이 쓸모없다 한들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해로울 수 있다고 그려 보기는 어려우므로, 나는 눈을 잃은 것을 온전히 쓰이지 않음에 돌린다. 눈먼 동물 가운데 하나인 동굴쥐는 눈이 엄청나게 크다. 실리먼 교수는 그것이 빛 속에서 며칠을 지낸 뒤 보는 힘을 조금이나마 되찾았다고 여겼다. 마데이라에서 어떤 곤충의 날개는 커지고 다른 곤충의 날개는 쓰임과 쓰이지 않음의 도움을 받은 자연선택으로 줄어든 것과 꼭 마찬가지로, 동굴쥐의 경우에는 자연선택이 빛의 상실과 씨름해 눈의 크기를 늘린 듯하고, 그 동굴의 다른 모든 거주자에게는 쓰이지 않음이 홀로 제 일을 한 듯하다.
거의 같은 기후 아래 놓인 깊은 석회암 동굴보다 더 비슷한 생활 조건을 그려 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눈먼 동물이 아메리카의 동굴과 유럽의 동굴을 위해 따로 창조되었다는 통상적 견해대로라면 그 짜임새와 유연 관계가 아주 비슷하리라고 기대할 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쇠트13를 비롯한 이들이 말했듯이 사정은 그렇지 않으며, 두 대륙의 동굴 곤충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다른 거주자들이 대체로 닮은 것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보다 더 가깝게 이어져 있지 않다. 내 견해대로라면 우리는 보통의 시력을 지닌 아메리카 동물이 잇따르는 세대를 거쳐 바깥 세계에서 켄터키 동굴의 더욱더 깊은 안쪽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고, 유럽 동물도 유럽의 동굴로 그렇게 했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렇게 습성이 단계를 밟았다는 증거가 얼마간 있다. 쇠트가 말하듯이 「보통의 형태와 그리 멀지 않은 동물들이 빛에서 어둠으로 가는 옮아감을 준비한다. 다음으로 어스름에 맞게 지어진 것들이 따르고, 마지막으로 온전한 어둠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 온다.」 어떤 동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대를 지나 가장 깊은 안쪽에 이르렀을 무렵이면, 이 견해에 따를 때 쓰이지 않음이 그 눈을 얼마간 또는 온전히 지워 버렸을 것이고, 자연선택은 눈멂을 메우는 것으로서 더듬이나 수염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 같은 다른 변화를 자주 이루어 냈을 것이다.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메리카의 동굴 동물에게서는 그 대륙의 다른 거주자와 맺은 유연 관계를, 유럽의 동굴 동물에게서는 유럽 대륙 거주자와 맺은 유연 관계를 여전히 보리라고 기대할 만하다. 데이나 교수에게 듣기로 아메리카 동굴 동물 몇몇이 그러하며, 유럽의 동굴 곤충 몇몇은 그 둘레 지방의 곤충과 아주 가깝게 이어져 있다. 눈먼 동굴 동물이 두 대륙의 다른 거주자와 맺은 유연 관계를, 그것들이 따로 창조되었다는 통상적 견해 위에서 이치에 닿게 설명하기란 몹시 어려울 것이다. 구세계와 신세계의 동굴 거주자 여럿이 가깝게 이어져 있다는 것은 그 밖의 산물 대부분이 맺고 있는 잘 알려진 관계로 보아 기대할 만한 일이다. 아가시가 눈먼 물고기 Amblyopsis를 두고 말했듯이, 또 유럽의 파충류에 견주어 눈먼 Proteus14가 그러하듯이 동굴 동물 몇몇이 몹시 변칙적이라 해서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다만 이 어두운 거처의 거주자들이 아마도 덜 혹독한 경쟁에 놓여 있었을 터인데도 옛 생명의 잔해가 더 많이 보존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풍토 적응. 식물에서 습성은 유전되니, 꽃 피는 시기라든가 씨앗이 싹트는 데 필요한 비의 양이라든가 잠드는 때 따위가 그러하다. 이 때문에 나는 풍토 적응에 관해 몇 마디 해 두려 한다. 같은 속의 종이 아주 더운 나라와 아주 추운 나라에 함께 사는 일은 지극히 흔하고, 또 나는 같은 속의 모든 종이 하나의 어버이에게서 내려왔다고 믿으므로, 이 견해가 옳다면 풍토 적응은 오래 이어지는 계승 동안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종마다 제 고향의 기후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북극 지역이나 온대 지역에서 온 종은 열대 기후를 견디지 못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또 물기 많은 식물 여럿은 습한 기후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종이 제가 사는 기후에 맞추어진 정도는 흔히 지나치게 높게 매겨진다. 들여온 식물이 우리 기후를 견딜지 어떨지를 우리가 자주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더 따뜻한 나라에서 가져온 식물과 동물이 이곳에서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많다는 것에서 이를 미루어 알 수 있다. 자연 상태의 종이 제 분포 범위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특정 기후에 맞추어진 정도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다른 생물과 벌이는 경쟁 때문이라고 믿을 만한 까닭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그 적응이 대체로 아주 긴밀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에게는 몇몇 식물이 어느 정도까지 다른 온도에 자연히 길들여지는, 곧 풍토에 적응하는 증거가 있다. 그리하여 후커 박사가 히말라야의 여러 높이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거두어 온 씨앗으로 길러 낸 소나무와 만병초는 이 나라에서 추위를 견디는 체질의 힘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스웨이츠 씨는 실론에서 비슷한 사실을 관찰했다고 알려 주었고, H. C. 왓슨 씨는 아소르스제도에서 잉글랜드로 가져온 유럽 식물 종을 두고 비슷한 관찰을 해 두었다. 동물에 관해서는, 역사 시대 안에 더 따뜻한 위도에서 더 서늘한 위도로, 또는 그 반대로 분포 범위를 크게 넓힌 종의 확실한 사례를 여럿 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동물들이 제 고향 기후에 엄밀히 맞추어져 있었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며, 다만 통상적인 경우라면 모두 그러하리라 가정할 뿐이다. 또 그것들이 그 뒤에 새 터전의 풍토에 적응하게 되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우리 집짐승은 본디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15이 골라낸 것인데 그 까닭은 그것들이 쓸모 있고 가두어 두어도 잘 새끼를 쳤기 때문이지 뒷날 멀리까지 옮겨 다닐 수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 집짐승이 가장 다른 기후를 견뎌 낼 뿐 아니라 그 아래에서 온전히 새끼를 칠 수 있다는(이는 훨씬 더 혹독한 시험이다) 그 흔하고도 비상한 능력은, 지금 자연 상태에 있는 다른 동물 가운데 상당수도 아주 다른 기후를 견디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논거로 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집짐승 가운데 몇몇이 여러 야생 혈통에서 나왔을 법하다는 점 때문에 앞의 논거를 너무 멀리 밀고 가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열대의 늑대나 들개와 북극의 늑대나 들개의 피가 우리 사육 품종에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쥐와 생쥐는 집짐승으로 볼 수 없으나 사람이 그것들을 세계 여러 곳으로 실어 날랐고, 이제 그것들은 다른 어느 설치류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 북쪽으로는 페로의 추운 기후 아래, 남쪽으로는 포클랜드에서, 또 무더운 지대의 여러 섬에서 자유로이 살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떤 특정 기후에 맞추어지는 것이, 대부분의 동물에게 두루 있는 타고난 체질의 폭넓은 유연함 위에 쉽게 접붙여지는 성질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운다. 이 견해에서 보면 사람 자신과 그 집짐승이 가장 다른 기후를 견뎌 내는 능력, 그리고 옛 코끼리와 코뿔소 종이 빙하 기후를 견딜 수 있었던 반면 지금 살아 있는 종은 그 습성이 모두 열대나 아열대에 속한다는 따위의 사실은 변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아주 흔한 체질의 유연함이 독특한 사정 아래에서 발휘된 예로 보아야 한다.
어떤 종이 어떤 독특한 기후에 풍토 적응하는 것 가운데 얼마가 한갓 습성에 말미암고, 얼마가 타고난 체질이 서로 다른 변종이 자연선택된 데 말미암으며, 얼마가 이 둘이 함께 작용한 데 말미암는지는 몹시 모호한 물음이다. 습성이나 버릇이 얼마간 영향을 준다는 것은 내가 믿을 수밖에 없다. 유추로 보아도 그렇고, 농업서에서, 심지어 중국의 옛 백과사전16에서까지 동물을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옮길 때 몹시 조심하라는 조언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으로 보아도 그렇다. 사람이 제 지방에 특별히 알맞은 체질을 지닌 품종과 아품종을 그토록 많이 골라 내는 데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습성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선택이 제 고향에 가장 잘 맞추어진 체질을 타고난 개체를 보존하는 쪽으로 끊임없이 기울리라는 것도 나는 의심할 까닭을 찾지 못한다. 여러 종류의 재배 식물을 다룬 논고에서는 어떤 변종이 다른 변종보다 어떤 기후를 더 잘 견딘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미국에서 나온 과실수에 관한 저작에서 아주 또렷이 드러나는데, 거기서는 어떤 변종은 북부 주에, 다른 변종은 남부 주에 으레 권한다. 그리고 이 변종 대부분이 근래에 생긴 것이므로 그 체질의 차이를 습성에 돌릴 수는 없다. 결코 씨앗으로 번식시키지 않고 따라서 새 변종이 생겨난 적이 없는 뚱딴지17의 사례는,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약한 것을 두고 풍토 적응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증명한다는 논거로 내세워지기까지 했다. 강낭콩의 사례도 같은 목적으로 훨씬 더 큰 무게를 지고 자주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누군가가 스무 세대에 걸쳐 제 강낭콩을 아주 일찍 뿌려 아주 큰 몫이 서리에 죽게 하고, 그러고 나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것에서 씨앗을 거두되 우연한 교배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다시 그 어린싹에서 같은 조심으로 씨앗을 얻는 일을 하기 전까지는 그 실험은 시도조차 된 적이 없다고 해야 한다. 또 강낭콩 어린싹의 체질에 아무런 차이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여겨서도 안 된다. 어떤 어린싹이 다른 것보다 얼마나 더 튼튼해 보였는지에 관한 보고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전체로 보아 나는 습성과 쓰임과 쓰이지 않음이 어떤 경우에는 체질을 바꾸고 여러 기관의 구조를 바꾸는 데 적잖은 몫을 했다고, 그러나 쓰임과 쓰이지 않음의 효과는 흔히 타고난 차이의 자연선택과 크게 결합했고 때로는 그것에 압도되었다고 결론지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성장의 상관. 이 말로 내가 뜻하는 바는, 짜임새 전체가 그 성장과 발달 동안 서로 워낙 단단히 묶여 있어서 어느 한 부분에 미미한 변이가 일어나고 그것이 자연선택으로 쌓이면 다른 부분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주제인데 가장 불완전하게 이해되어 있다. 가장 뻔한 경우는 오로지 새끼나 애벌레에게 이롭도록 쌓인 변화가 다 자란 것의 구조에 영향을 주리라는 것이니, 이는 안전하게 결론지을 수 있다. 이른 배에 영향을 주는 어떤 기형이든 다 자란 것의 짜임새 전체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몸에서 서로 상동18이며 이른 배 시기에 서로 닮아 있는 여러 부분은 서로 이어진 모양으로 함께 변이하기 쉬운 듯하다. 우리는 이것을 몸의 오른쪽과 왼쪽이 같은 모양으로 변이하는 데서, 앞다리와 뒷다리가, 심지어 턱과 팔다리가 함께 변이하는 데서 본다. 아래턱은 팔다리와 상동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자연선택으로 얼마간 또는 온전히 제압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쪽에만 뿔이 난 사슴 가족이 한때 있었으니, 만약 이것이 그 품종에 크게 쓸모가 있었다면 아마도 자연선택으로 굳어졌을 것이다.
어떤 저자들이 말했듯이 상동인 부분들은 서로 붙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기형 식물에서 자주 보이며, 꽃부리의 꽃잎이 붙어 통을 이루듯 정상 구조에서 상동인 부분이 합쳐지는 것만큼 흔한 일도 없다. 딱딱한 부분은 그에 잇닿은 무른 부분의 꼴에 영향을 주는 듯하다. 어떤 저자들은 새의 골반 모양이 여러 가지인 것이 그 콩팥 모양이 주목할 만큼 여러 가지인 까닭이라고 믿는다. 또 어떤 이들은 사람 어머니의 골반 모양이 눌림을 통해 아이 머리의 모양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뱀에서는 슐레겔에 따르면 몸의 모양과 삼키는 버릇이 가장 중요한 내장 여럿의 자리를 정한다.
상관을 맺어 주는 끈의 성질은 아주 자주 전혀 모호하다. 이지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19는 어떤 기형은 아주 자주 함께 나타나고 어떤 기형은 드물게 함께 나타나는데 우리가 그 까닭을 전혀 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양이에게서 푸른 눈과 귀먹음 사이의 관계, 거북등 빛깔과 암컷이라는 성 사이의 관계보다 더 기이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비둘기에게서 깃 덮인 발과 바깥 발가락 사이의 살갗 사이의 관계, 갓 깬 어린 새에게 솜털이 얼마나 있는지와 뒷날 그 깃이 띨 빛깔 사이의 관계는 또 어떤가. 또 털 없는 터키 개에게서 털과 이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 다만 여기서는 아마도 상동이 끼어들 것이다. 이 마지막 상관의 경우에 관해 말하자면, 살갗을 덮은 것이 가장 변칙적인 포유류 두 목, 곧 Cetacea(고래류)와 Edentata(아르마딜로와 비늘개미핥기 따위)를 골라내 보면 이들이 이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변칙적이라는 사실은 우연이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쓸모와는 상관없이, 따라서 자연선택과도 상관없이 상관의 법칙이 중요한 구조를 바꾸는 데서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주는 데 Compositae(국화과)와 Umbelliferae(산형과)의 몇몇 식물에서 바깥쪽 꽃과 안쪽 꽃이 다른 경우보다 더 알맞은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데이지에서 가장자리의 설상화와 가운데의 통상화20가 어떻게 다른지는 누구나 안다. 그리고 이 차이에는 꽃의 어떤 부분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일이 따르기 일쑤다. 그런데 국화과의 어떤 식물에서는 씨앗도 모양과 무늬가 다르며, 카시니가 기재했듯이 씨방 자체와 거기 딸린 부분까지 다르다. 어떤 저자들은 이 차이를 눌림에 돌렸고, 국화과 몇몇에서 설상화의 씨앗 모양이 그런 생각을 거들어 준다. 그러나 후커 박사가 알려 준 바로는 산형과의 꽃부리의 경우 안쪽 꽃과 바깥쪽 꽃이 가장 자주 다른 것이 결코 꽃대가리가 가장 빽빽한 종에서가 아니다. 설상화의 꽃잎이 발달하면서 꽃의 다른 어떤 부분에서 양분을 끌어다 써 그 부분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화과 몇몇에서는 꽃부리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바깥쪽 꽃과 안쪽 꽃의 씨앗이 다르다. 어쩌면 이 여러 차이는 가운데 꽃과 바깥쪽 꽃으로 흘러드는 양분의 어떤 차이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좌우가 고르지 않은 꽃에서 축에 가장 가까운 것이 펠로리아21를 가장 자주 겪어 고르게 된다는 것을 안다. 이에 대한 예로, 또 상관의 두드러진 사례로 덧붙여 두자면, 나는 근래에 어떤 뜰의 펠라르고늄에서 꽃송이 가운데 꽃이 위쪽 꽃잎 두 장에 있던 짙은 빛깔의 얼룩을 자주 잃는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나면 거기 붙은 꿀샘이 아주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또 위쪽 두 꽃잎 가운데 한 장에서만 빛깔이 사라지면 꿀샘이 많이 짧아지기만 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두상꽃차례나 산형꽃차례에서 가운데 꽃과 바깥쪽 꽃의 꽃부리가 다른 것에 관해 말하자면, 설상화가 곤충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하며 그 곤충의 도움이 이 두 목의 식물이 수정하는 데 크게 이롭다는 C. C. 슈프렝겔22의 생각이 처음 보이는 만큼 억지스러운지 나는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롭다면 자연선택이 끼어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씨앗의 안팎 구조의 차이는 꽃의 어떤 차이와 늘 짝을 이루지도 않는데, 이 차이가 그 식물에게 어떤 식으로든 이로울 수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산형과에서 이 차이는 겉보기에 무척 중요해서, 타우슈에 따르면 씨앗이 어떤 경우에는 바깥쪽 꽃에서는 곧은씨이고 가운데 꽃에서는 굽은씨23인데, 아버지 드 캉돌24은 그와 비슷한 차이 위에 이 목의 주요 구분을 세웠다. 그리하여 우리는 분류학자들이 큰 값을 매기는 구조의 변화가 알려지지 않은 상관 성장의 법칙에 온전히 말미암을 수 있으며, 우리가 보기에는 그 종에게 털끝만큼의 쓸모도 없을 수 있음을 본다.
우리는 종의 무리 전체에 두루 있는 구조를 성장의 상관에 잘못 돌리기 일쑤인데, 실은 그것이 그저 유전에 말미암을 때가 있다. 옛 조상이 자연선택으로 구조의 어떤 변화 하나를 얻고, 수천 세대가 지난 뒤에 그와 무관한 다른 변화를 또 얻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변화가 습성이 제각각인 후손 무리 전체에 전해졌다면 자연히 둘이 어떤 필연적인 끈으로 묶여 있다고 여겨질 것이다. 또 목 전체에 두루 나타나는 겉보기의 상관 가운데 몇몇이 오직 자연선택이 작용할 수 있는 길 때문에 생긴다는 것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알퐁스 드 캉돌은 벌어지지 않는 열매에서는 날개 달린 씨앗이 결코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 규칙을 이렇게 설명하겠다. 씨앗은 벌어지는 열매에서가 아니면 자연선택으로 차츰 날개를 얻을 수 없으니, 조금 더 멀리 실려 가기에 알맞은 씨앗을 맺는 개체 식물이 퍼지기에 덜 알맞은 씨앗을 맺는 것들보다 유리해질 수 있을 뿐이며, 이 과정은 벌어지지 않는 열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조프루아와 괴테는 거의 같은 시기에 성장의 보상 또는 균형의 법칙을 내놓았다. 괴테의 표현을 빌리면 「한쪽에 쓰려면 자연은 다른 쪽에서 아낄 수밖에 없다.」 나는 이것이 우리 사육 산물에서 어느 정도까지 참이라고 생각한다. 양분이 어느 한 부분이나 기관으로 넘치게 흘러들면 다른 부분으로는 좀처럼, 적어도 넘치게는 흘러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젖을 많이 내면서 살도 잘 찌는 소를 얻기는 어렵다. 같은 양배추 변종이 푸짐하고 영양 많은 잎과 기름을 품은 씨앗을 넉넉히 함께 내놓지는 않는다. 우리 과일에서 씨앗이 쪼그라들면 열매 자체는 크기와 품질에서 크게 얻는다. 우리 가금에서 머리의 큰 깃 다발에는 대개 줄어든 볏이 따르고, 큰 턱깃에는 줄어든 육수가 따른다. 자연 상태의 종에서 이 법칙이 두루 들어맞는다고 우기기는 어렵다. 그러나 훌륭한 관찰자 여럿이, 특히 식물학자들이 그것이 참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나는 여기서 어떤 사례도 들지 않겠다. 한편으로 어떤 부분이 자연선택으로 크게 발달하고 그에 잇닿은 다른 부분이 같은 과정이나 쓰이지 않음으로 줄어든 효과와, 다른 한편으로 잇닿은 다른 부분이 지나치게 자란 탓에 어느 한 부분에서 실제로 양분이 빠져나간 것을 가려낼 길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또 지금까지 내세워진 보상의 사례 몇 가지가, 그리고 그 밖의 몇몇 사실도 더 일반적인 원리 아래로 합쳐질 수 있으리라고 짐작한다. 곧 자연선택은 짜임새의 모든 부분에서 끊임없이 아끼려 애쓴다는 원리다. 생활 조건이 달라져 전에는 쓸모 있던 구조가 덜 쓸모 있게 되면, 그 발달이 아무리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것은 자연선택에 붙들릴 것이다. 쓸모없는 구조를 짓는 데 제 양분을 헛되이 쓰지 않는 것이 그 개체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내가 만각류25를 살펴보다가 크게 놀란 어떤 사실을, 또 그 밖에도 얼마든지 들 수 있는 여러 사례를 나는 이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 곧 만각류가 다른 생물 안에 기생해 그렇게 보호를 받을 때에는 제 껍데기나 등딱지를 얼마간 또는 온전히 잃는다는 사실이다. 수컷 Ibla가 그러하고, Proteolepas는 참으로 비상하게 그러하다. 다른 모든 만각류에서 등딱지는 머리의 앞쪽 세 마디가 엄청나게 발달하고 큰 신경과 근육을 갖춘 것으로 되어 있어 몹시 중요한데, 기생하며 보호받는 Proteolepas에서는 머리의 앞부분 전체가 붙잡는 더듬이 밑동에 달린 한낱 흔적으로 줄어들어 있다. 그런데 Proteolepas의 기생 습성 탓에 쓸데없어진 크고 복잡한 구조를 아끼는 일은, 비록 느린 걸음으로 이루어졌을지라도 그 종의 잇따르는 개체 하나하나에게 분명한 이점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동물이나 놓여 있는 생존경쟁에서 Proteolepas 개체마다 이제 쓸모없어진 구조를 키우는 데 양분을 덜 헛되이 씀으로써 제 몸을 지탱할 더 좋은 기회를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가 믿기로 자연선택은 짜임새의 어느 부분이든 쓸데없어지는 즉시 그것을 줄이고 아끼는 데 길게 보아 언제나 성공할 것이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어떤 부분을 그에 걸맞은 정도로 크게 발달시키는 일은 결코 없다. 그리고 거꾸로 자연선택은 어떤 기관을 크게 발달시키는 데 아주 잘 성공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 반드시 보상으로 잇닿은 어떤 부분을 줄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지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가 말했듯이, 변종에서나 종에서나 어떤 부분이나 기관이 같은 개체의 구조 안에서 여러 번 되풀이될 때(뱀의 척추뼈나 수술 많은 꽃의 수술처럼) 그 수가 변하기 쉬운 반면, 같은 부분이나 기관이 적은 수로 나타날 때에는 그 수가 한결같다는 것이 규칙인 듯하다. 같은 저자와 몇몇 식물학자는 나아가 여러 번 되풀이되는 부분이 구조에서도 변이하기 아주 쉽다고 말했다. 오언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이 「영양적 되풀이」26가 낮은 짜임새의 표지인 듯하므로, 앞의 말은 자연의 등급에서 낮은 생물이 높은 생물보다 더 변이하기 쉽다는 박물학자들의 아주 일반적인 의견과 이어져 있는 듯하다. 이 경우에 낮다는 것은 짜임새의 여러 부분이 특정한 기능을 위해 거의 특수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나는 본다. 그리고 같은 부분이 여러 가지 일을 해내야 하는 한, 어째서 그것이 변이하기 쉬운 상태로 남는지, 곧 어째서 자연선택이 그 부분이 오직 하나의 특별한 목적에만 쓰이는 경우보다 형태의 작은 어긋남 하나하나를 덜 꼼꼼히 보존하거나 물리쳤을지 우리는 어쩌면 알 수 있다. 온갖 것을 다 잘라야 하는 칼은 거의 어떤 모양이어도 좋지만, 어떤 특정한 목적에 쓰는 연장은 어떤 특정한 모양인 편이 낫다는 것과 같다. 자연선택은 생물 하나하나의 부분 하나하나에 오직 그것에 이로운 한에서, 또 그 이로움을 위해서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저자들이 말한 대로 흔적 부분은 변이가 심하기 쉬우며, 나는 그것이 참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흔적 기관과 제대로 자라지 못한 기관이라는 일반 주제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 변이성이 그 쓸모없음에, 따라서 자연선택이 그 구조의 어긋남을 막을 힘을 지니지 못한 데 말미암는 듯하다고 덧붙여 두겠다. 그리하여 흔적 부분은 여러 성장 법칙의 자유로운 놀음에, 오래 이어진 쓰이지 않음의 효과에, 그리고 되돌아가려는 경향에 내맡겨진다.
어떤 종에서 가까운 종의 같은 부분에 견주어 유별난 정도로 또는 유별난 모양으로 발달한 부분은 변이가 심하기 쉽다. 여러 해 전에 나는 워터하우스 씨가 내놓은, 위와 거의 같은 취지의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나는 또 오언 교수가 오랑우탄의 팔 길이에 관해 한 관찰에서 그가 거의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미루어 안다. 내가 모아 온, 그러나 여기 도저히 실을 수 없는 그 긴 사실의 행렬을 내놓지 않고서 이 명제가 참임을 누군가에게 납득시키려 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다. 나는 다만 그것이 매우 널리 통하는 규칙이라는 확신을 밝힐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오류가 끼어들 길을 여럿 알고 있으나 그에 대해 마땅한 몫을 헤아려 두었기를 바란다. 이 규칙은 아무리 유별나게 발달한 부분이라도 가까운 종의 같은 부분에 견주어 유별나게 발달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박쥐의 날개는 포유강에서 가장 변칙적인 구조지만 여기서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날개를 지닌 박쥐 무리가 통째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한 박쥐 종이 같은 속의 다른 종에 견주어 그 날개를 주목할 만한 모양으로 발달시켰을 때에만 적용될 것이다. 이 규칙은 2차 성징 형질이 유별난 모습으로 드러날 때 아주 강하게 적용된다. 헌터27가 쓴 2차 성징 형질이라는 말은 한쪽 성에 딸려 있으되 생식 행위와 직접 이어져 있지는 않은 형질을 가리킨다. 이 규칙은 수컷에게도 암컷에게도 적용되지만, 암컷이 주목할 만한 2차 성징 형질을 지니는 일이 더 드물므로 암컷에게는 더 드물게 적용된다. 이 규칙이 2차 성징 형질의 경우에 그토록 또렷이 들어맞는 것은 이 형질이 유별난 모습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몹시 변이가 심한 데 말미암을 것이며, 그 사실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규칙이 2차 성징 형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은 암수한몸 만각류의 경우에 또렷이 드러난다. 여기 덧붙여 두자면 나는 이 목을 조사하는 동안 워터하우스 씨의 말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고, 이 규칙이 만각류에서 거의 어김없이 들어맞는다고 온전히 확신한다. 나는 앞으로 낼 책에서 더 주목할 만한 사례의 목록을 내놓겠다. 여기서는 규칙이 가장 넓게 적용되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만 짧게 들겠다. 고착 만각류(바위따개비)의 뚜껑판은 어느 모로 보나 몹시 중요한 구조이며 서로 다른 속에서조차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 속 Pyrgoma의 여러 종에서 이 판은 놀라울 만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서로 다른 종의 상동인 판이 때로는 모양이 아주 딴판이며, 그 종 가운데 몇몇의 개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변이의 크기가 워낙 커서, 이 중요한 판의 형질에서 변종들이 서로 다른 정도가 서로 다른 속의 종들이 다른 정도보다 크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같은 나라 안의 새들은 변이하는 정도가 주목할 만큼 작으므로 나는 특별히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여 왔는데, 이 규칙은 이 강에서 분명히 들어맞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식물에도 적용된다고 밝혀낼 수가 없는데, 식물의 변이성이 워낙 커서 그 변이성의 상대적인 정도를 견주기가 유난히 어렵지 않았더라면 이 때문에 그것이 참이라는 내 믿음이 심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어떤 종에서 어떤 부분이나 기관이 주목할 만한 정도로 또는 주목할 만한 모습으로 발달한 것을 볼 때, 그것이 그 종에게 크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짐작이다. 그런데도 이 경우에 그 부분은 유난히 변이하기 쉽다. 어째서 그러해야 하는가? 종마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부분을 갖춘 채 따로 창조되었다는 견해에서는 내가 어떤 설명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종의 무리가 다른 종에서 내려왔고 자연선택으로 변화해 왔다는 견해에서는 얼마간 빛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집짐승에서 어떤 부분이나 동물 전체가 돌보아지지 않고 아무런 선택도 가해지지 않으면, 그 부분(이를테면 도킹닭의 볏)이나 그 품종 전체는 거의 한결같은 형질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그 품종은 퇴화했다고 말할 것이다. 흔적 기관에서, 그리고 어떤 특정한 목적을 위해 거의 특수해지지 않은 기관에서, 또 어쩌면 다형인 무리에서 우리는 이와 거의 나란한 자연의 사례를 본다. 그런 경우에는 자연선택이 온전히 작용하지 않았거나 작용할 수 없어 짜임새가 흔들리는 상태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우리 집짐승에서 지금 이어지는 선택으로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 바로 그 점들이 또한 유난히 변이하기 쉽다는 사실이다. 비둘기 품종을 보라. 여러 tumbler의 부리에, 여러 carrier의 부리와 육수에, 우리 fantail의 자태와 꼬리 따위에 얼마나 엄청난 차이가 있는지 보라. 이런 점이야말로 지금 잉글랜드 애호가들이 주로 마음을 쏟는 것이다. 아품종에서도, 이를테면 short-faced tumbler에서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길러 내기가 몹시 어렵기로 이름났고, 기준에서 크게 벗어난 개체가 자주 태어난다. 한편에는 덜 변화한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과 온갖 방향으로 더 변이하려는 타고난 경향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품종의 형질을 그대로 지키려는 꾸준한 선택의 힘이 있어서, 이 둘 사이에 끊임없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참으로 말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선택이 이기며, 우리는 좋은 short-faced 혈통에서 흔한 tumbler만큼 거친 새가 나올 만큼 크게 실패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이 빠르게 이어지는 한, 변화를 겪고 있는 그 구조에는 언제나 많은 변이성이 있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사람의 선택으로 생긴 이 변이하는 형질이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원인 때문에 때로 한쪽 성에 더 많이, 대개는 수컷 쪽에 더 많이 붙는다는 점이니, carrier의 육수와 pouter의 커진 모이주머니가 그러하다.
이제 자연으로 눈을 돌려 보자. 어떤 한 종에서 같은 속의 다른 종에 견주어 어떤 부분이 유별난 모습으로 발달했다면, 우리는 그 종이 그 속의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나온 시기 이래로 이 부분이 유별난 크기의 변화를 겪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이 시기가 극단적으로 먼 옛날인 일은 드물 것이니, 종이 하나의 지질 시대보다 오래 버티는 일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유별난 크기의 변화는 유난히 크고 오래 이어진 변이성을 뜻하며, 그 변이성은 그 종에게 이롭도록 자연선택으로 끊임없이 쌓여 왔다. 그런데 유별나게 발달한 부분이나 기관의 변이성이 그토록 크고 그토록 오래 이어졌으되 지나치게 멀지 않은 기간 안의 일이었으므로, 우리는 일반 규칙으로서 훨씬 더 오랜 기간 거의 한결같이 남아 있던 짜임새의 다른 부분에서보다 그런 부분에서 여전히 더 많은 변이성을 발견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다고 나는 확신한다. 한편에는 자연선택이, 다른 한편에는 되돌아가려는 경향과 변이성이 있어 그 사이의 다툼이 시간이 흐르면 그치리라는 것, 그리고 가장 변칙적으로 발달한 기관도 한결같아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의심할 까닭을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떤 기관이 아무리 변칙적이라 해도 박쥐의 날개처럼 거의 같은 상태로 변화한 후손 여럿에게 전해졌다면, 내 이론에 따를 때 그것은 어마어마하게 긴 기간 거의 같은 상태로 있었을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다른 어떤 구조보다 더 변이하기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생성적 변이성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여전히 높은 정도로 남아 있는 경우를 발견해야 하는 것은, 오직 그 변화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유별나게 컸던 경우뿐이다. 이런 경우에는 요구되는 모습과 정도로 변이한 개체가 잇따라 선택되고 이전의 덜 변화한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것들이 잇따라 물리쳐지는 일로 그 변이성이 아직 굳어져 있는 일이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담긴 원리는 더 넓혀 볼 수 있다. 종 형질이 속 형질보다 더 변이하기 쉽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뜻하는 바를 간단한 예로 설명해 보겠다. 어떤 큰 식물 속에서 어떤 종은 푸른 꽃을 피우고 어떤 종은 붉은 꽃을 피운다면 그 빛깔은 종 형질일 뿐이며, 푸른 종 가운데 하나가 붉은빛으로 변이하거나 그 반대가 되더라도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종이 푸른 꽃을 피운다면 그 빛깔은 속 형질이 될 터이고, 그것이 변이하는 일은 더 드문 사건이 될 것이다. 내가 이 예를 고른 까닭은, 대부분의 박물학자가 내놓을 법한 설명, 곧 종 형질이 속 형질보다 더 변이하기 쉬운 것은 그것이 속을 가르는 데 흔히 쓰이는 부분보다 생리적으로 덜 중요한 부분에서 취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 경우에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설명이 부분적으로, 그러나 간접으로만 참이라고 믿는다. 다만 이 주제는 분류를 다루는 장에서 다시 다루어야 하겠다. 종 형질이 속 형질보다 더 변이하기 쉽다는 위의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를 끌어대는 것은 거의 군더더기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박물학 저작에서, 어떤 저자가 큰 종의 무리 전체에 걸쳐 대체로 몹시 한결같은 어떤 중요한 기관이나 부분이 가깝게 이어진 종들 사이에서 상당히 다르다고 놀라워하며 말할 때 그것이 그 종 가운데 몇몇의 개체들 사이에서도 변이하기 쉬웠다는 것을 거듭 보아 왔다. 이 사실은 대체로 속의 값을 지니는 형질이 그 값이 떨어져 종의 값만 지니게 되면 생리적 중요성은 그대로일지라도 흔히 변이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형에도 이와 비슷한 데가 있다. 적어도 이지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는 어떤 기관이 같은 무리의 서로 다른 종에서 정상적으로 더 많이 다를수록 그것이 개체의 이상을 더 많이 겪는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듯하다.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는 통상적 견해에서, 같은 속의 따로 창조된 다른 종의 같은 부분과 다른 그 구조 부분이 어째서 여러 종에서 서로 비슷한 부분들보다 더 변이하기 쉬워야 하는가? 나는 어떤 설명도 주어질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 두드러지게 구분되고 고정된 변종일 뿐이라는 견해에서는, 그것들이 비교적 최근에 변이해 그리하여 서로 달라지게 된 구조 부분에서 여전히 자주 변이를 이어 가고 있음을 발견하리라고 마땅히 기대할 만하다. 또는 이 사정을 달리 말해 보자. 한 속의 모든 종이 서로 닮았고 그 점에서 다른 어떤 속의 종과 다른 그 점들을 속 형질이라 부른다. 나는 이 공통된 형질을 공통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에 돌린다. 자연선택이 다소 널리 다른 습성에 들어맞게 된 여러 종을 정확히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켰을 리는 드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른바 이 속 형질이 종들이 공통 조상에게서 처음 갈라져 나온 그 먼 시기 이래로 유전되어 왔고 그 뒤로 전혀 변이하지 않았거나 조금밖에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늘날 변이할 법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종이 같은 속의 다른 종과 다른 그 점들을 종 형질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종 형질은 종들이 공통 조상에게서 갈라져 나온 기간 안에 변이해 서로 달라진 것이므로, 그것이 여전히 얼마간 변이하기 쉬울 법하며, 적어도 아주 오랜 기간 한결같이 남아 있던 짜임새의 부분들보다는 더 변이하기 쉬울 법하다.
지금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나는 다른 두 가지 말만 덧붙이겠다. 자세히 들어가지 않더라도 2차 성징 형질이 몹시 변이하기 쉽다는 것은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한다. 또 같은 무리의 종들이 짜임새의 다른 부분에서보다 그 2차 성징 형질에서 서로 더 크게 다르다는 것도 받아들여지리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2차 성징 형질이 강하게 드러나는 닭목의 새에서 수컷들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그 암컷들 사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와 견주어 보라. 그러면 이 명제가 참임이 인정될 것이다. 2차 성징 형질이 본디 변이하기 쉬운 원인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어째서 이 형질이 짜임새의 다른 부분만큼 한결같고 고르게 되지 않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있다. 2차 성징 형질은 성선택으로 쌓여 왔는데, 성선택은 죽음을 부르지 않고 덜 유리한 수컷에게 더 적은 자손을 줄 뿐이어서 그 작용이 보통의 선택보다 덜 가혹하기 때문이다. 2차 성징 형질이 변이하기 쉬운 원인이 무엇이든, 그것이 몹시 변이하기 쉬운 이상 성선택이 작용할 마당이 넓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같은 무리의 종들에게 구조의 다른 부분에서보다 그 성 형질에서 더 큰 차이를 주는 데 쉽게 성공했을 것이다.
같은 종의 두 성 사이의 2차 성징 차이가 대체로 같은 속의 서로 다른 종이 서로 다른 바로 그 짜임새 부분에서 드러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보이는 예로 내 목록의 맨 앞에 놓인 두 가지를 들겠다. 이 경우들의 차이가 아주 유별난 성질의 것이므로 그 관계가 우연일 리는 거의 없다. 발목마디의 마디 수가 같다는 것은 대체로 아주 큰 딱정벌레 무리에 두루 통하는 형질이다. 그런데 웨스트우드가 말했듯이 Engidae에서는 그 수가 크게 달라지며, 같은 종의 두 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또 땅을 파는 벌목에서 날개 맥이 뻗은 모양은 큰 무리에 두루 통하기에 가장 중요한 형질이다. 그런데 어떤 속에서는 그 맥이 서로 다른 종에서 다르고, 같은 종의 두 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르다. 이 관계는 이 주제에 관한 내 견해에서 또렷한 뜻을 지닌다. 나는 같은 속의 모든 종이 같은 조상에게서 내려온 것이, 어느 한 종의 두 성이 그러한 것만큼이나 확실하다고 본다. 따라서 공통 조상이나 그 이른 후손의 구조 가운데 어느 부분이든 변이하게 되었다면, 이 부분의 변이는 여러 종을 자연의 살림 안에서 저마다의 자리에 들어맞게 하려고, 또 마찬가지로 같은 종의 두 성을 서로 들어맞게 하거나 수컷과 암컷을 서로 다른 생활 습성에 들어맞게 하려고, 또는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려고 다른 수컷과 다투는 데 들어맞게 하려고 자연선택과 성선택에 이용되었을 법함이 아주 높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종과 종을 가르는 종 형질이 종들이 함께 지니는 속 형질보다 더 변이하기 쉽다는 것, 어떤 부분이 같은 속의 동류의 같은 부분에 견주어 어떤 종에서 유별난 모습으로 발달했을 때 그 부분이 자주 극단으로 변이하기 쉽다는 것, 그러나 어떤 부분이 아무리 유별나게 발달했더라도 종의 무리 전체에 두루 있다면 그 변이성의 정도가 크지 않다는 것, 2차 성징 형질이 크게 변이하기 쉽고 가깝게 이어진 종들 사이에서 바로 그 형질의 차이가 크다는 것, 2차 성징의 차이와 보통의 종 차이가 대체로 짜임새의 같은 부분에서 드러난다는 것, 이 모두가 서로 긴밀히 이어진 원리다. 이 모두는 주로 같은 무리의 종들이 공통 조상에게서 내려와 그에게서 많은 것을 함께 물려받았다는 데, 최근에 크게 변이한 부분이 오래 유전되어 왔고 변이하지 않은 부분보다 계속 변이해 갈 법함이 더 높다는 데, 자연선택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되돌아가려는 경향과 더 변이하려는 경향을 얼마간 또는 온전히 제압해 왔다는 데, 성선택이 보통의 선택보다 덜 가혹하다는 데, 그리고 같은 부분에서 일어난 변이가 자연선택과 성선택으로 쌓여 2차 성징의 목적과 보통의 종 차이의 목적에 들어맞게 되었다는 데 말미암는다.
서로 다른 종은 유사 변이28를 보인다. 또 한 종의 변종은 가까운 종의 형질 몇 가지를 띠거나 이른 조상의 형질 몇 가지로 되돌아가는 일이 잦다. 이 명제들은 우리 사육 품종을 보면 가장 쉽게 이해된다. 서로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비둘기 품종들이 머리에 거꾸로 난 깃과 발에 난 깃을 지닌 아변종을 내놓는데, 이는 본디의 바위비둘기에게는 없던 형질이다. 그러니 이것은 서로 구분되는 둘 이상의 품종에서 나타난 유사 변이다. pouter에게 꼬리깃이 14개, 심지어 16개나 자주 있는 것은 다른 품종인 fantail의 정상 구조를 드러내는 변이로 볼 수 있다. 이런 유사 변이가 모두, 비둘기의 여러 품종이 공통 어버이에게서 같은 체질과 변이하려는 같은 경향을 물려받은 데 말미암으며 비슷하되 알려지지 않은 영향이 작용할 때 그것이 드러난다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본다. 식물계에서도 유사 변이의 사례가 있으니, 스웨덴 순무와 루타바가의 부풀어 오른 줄기(흔히 뿌리라 불린다)가 그렇다. 여러 식물학자는 이 식물들을 공통 어버이에게서 재배로 생겨난 변종으로 매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례는 이른바 서로 구분되는 두 종에서 나타난 유사 변이의 사례가 될 것이고, 여기에 세 번째로 흔한 순무를 더할 수 있다. 종마다 따로 창조되었다는 통상적 견해에 따른다면, 우리는 이 세 식물의 부풀어 오른 줄기가 이토록 닮은 것을 계승을 함께한 데서 오는 참된 원인(vera causa)29과 그에 따라 비슷하게 변이하려는 경향에 돌릴 수 없고, 서로 가깝게 이어졌으되 따로 이루어진 세 번의 창조 행위에 돌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둘기에게는 또 다른 사례가 있으니, 모든 품종에서 이따금 검푸른 석판빛 새가 나타나는데 날개에 검은 띠가 둘 있고 허리가 희며 꼬리 끝에 띠가 있고 바깥 깃의 밑동 가까이 바깥쪽 가장자리가 희다. 이 모든 무늬가 어버이 바위비둘기의 특징이므로, 이것이 되돌아감의 사례이지 여러 품종에서 새로 나타난 유사 변이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본다. 우리가 이 결론에 자신 있게 이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앞에서 보았듯이 이 빛깔 무늬가 서로 구분되고 빛깔이 다른 두 품종을 교배해 얻은 자손에게 유난히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교배라는 행위 자체가 유전의 법칙에 미치는 영향 말고는, 그 검푸른 석판빛과 여러 무늬가 다시 나타나게 할 만한 것이 바깥의 생활 조건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러 세대, 어쩌면 수백 세대에 걸쳐 잃었던 형질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몹시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품종을 다른 품종과 단 한 번만 교배했을 때에도 그 자손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따금 그 바깥 품종의 형질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보이며, 어떤 이들은 열두 세대, 심지어 스무 세대까지 그렇다고 말한다. 열두 세대가 지나면 흔한 표현을 빌려 어느 한 조상의 피의 몫은 2,048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듯이 이 아주 작은 몫의 바깥 피가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그대로 지닌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진다. 교배된 적은 없으나 양쪽 어버이가 모두 제 조상이 지녔던 어떤 형질을 잃어버린 품종에서는, 그 잃은 형질을 다시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강하든 약하든,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가 달리 볼 근거가 없는 한 거의 몇 세대든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품종에서 잃었던 형질이 아주 많은 세대가 지난 뒤에 다시 나타날 때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그 자손이 수백 세대 떨어진 조상을 갑자기 닮는다는 것이 아니라, 잇따르는 세대마다 문제의 그 형질을 다시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이 마침내 알려지지 않은 유리한 조건 아래에서 우위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푸른빛에 검은 띠를 두른 새를 아주 드물게 내놓는 barb 비둘기에서는 세대마다 그 깃이 이 빛깔을 띠려는 경향이 있었을 법하다. 이 견해는 가설이되 몇몇 사실로 뒷받침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형질을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끝없는 세대에 걸쳐 유전되는 데서, 우리 모두가 알듯이 전혀 쓸모없는 기관이나 흔적 기관이 그렇게 유전되는 데서보다 더 큰 추상적 어려움을 보지 못한다. 실은 우리는 흔적을 만들어 내려는 경향만이 유전되는 것을 이따금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흔한 금어초(Antirrhinum)에서 다섯 번째 수술의 흔적이 워낙 자주 나타나므로 이 식물에는 그것을 만들어 내려는 유전된 경향이 있음에 틀림없다.
내 이론에서 같은 속의 모든 종은 공통 어버이에게서 내려왔다고 가정되므로, 그것들이 이따금 서로 비슷하게 변이하리라고 기대할 만하다. 그리하여 한 종의 변종이 어떤 형질에서 다른 종을 닮는 일이 있을 터인데, 내 견해에서 이 다른 종은 뚜렷이 구분되고 오래가는 변종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형질은 아마도 중요하지 않은 성질의 것일 터이니, 모든 중요한 형질의 있고 없음은 종의 여러 습성에 맞추어 자연선택이 다스릴 것이고, 생활 조건과 비슷하게 유전된 체질이 서로 작용하는 데 내맡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같은 속의 종들이 이따금 잃어버린 조상의 형질로 되돌아감을 보이리라고 기대할 만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무리의 공통 조상이 지닌 형질을 정확히 아는 일이 결코 없으므로 이 두 경우를 가려낼 수 없다. 이를테면 바위비둘기가 발에 깃이 없고 머리깃이 거꾸로 나 있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가 몰랐다면, 우리 사육 품종의 이 형질이 되돌아감인지 유사 변이일 뿐인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푸른빛이 되돌아감의 사례라는 것을, 푸른 기운과 짝을 이루는 그 무늬의 수로 미루어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무늬가 단순한 변이로 모두 한꺼번에 나타날 법하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빛깔이 제각각인 구분되는 품종을 교배할 때 그 푸른빛과 무늬가 그토록 자주 나타나는 데서 이를 더욱 잘 미루어 알 수 있었으리라. 그러므로 자연 아래에서는 어떤 경우가 옛날에 있던 형질로 되돌아감이고 어떤 경우가 새롭되 유사한 변이인지 대체로 의심스러운 채로 남겨질 수밖에 없지만, 내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종의 변이하는 자손이 같은 무리의 다른 구성원에게 이미 나타나는 형질을 (되돌아감으로든 유사 변이로든) 띠는 것을 이따금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서 이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우리 분류 저작에서 변이하는 종을 알아보기 어려운 까닭의 적잖은 몫은, 그 변종이 말하자면 같은 속의 다른 종 몇몇을 흉내 내는 데 있다. 또 그 자체가 변종인지 종인지 의심스럽게 매겨질 수밖에 없는 다른 두 형태 사이의 중간 형태를 꽤 긴 목록으로 들 수 있다. 이는 이 모든 형태가 따로 창조된 종으로 여겨지지 않는 한, 어느 하나가 변이하면서 다른 하나의 형질 몇 가지를 띠어 그 중간 형태를 낳았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가장 좋은 증거는 중요하고 한결같은 성질의 부분이나 기관이 이따금 변이해 가까운 종의 같은 부분이나 기관의 형질을 얼마간 얻는 데서 나온다. 나는 그런 사례를 긴 목록으로 모아 두었으나, 여기서도 앞에서처럼 그것을 내놓을 수 없다는 큰 불리함 아래 놓여 있다. 나는 다만 그런 사례가 분명히 일어나며 내게는 몹시 주목할 만해 보인다고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기이하고 복잡한 사례를 하나 들겠다. 어떤 중요한 형질에 관련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같은 속의 여러 종에서, 얼마는 사육 아래에서 얼마는 자연 아래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아하니 되돌아감의 사례다. 당나귀는 드물지 않게 다리에 아주 뚜렷한 가로 띠를 지니는데 얼룩말의 다리에 있는 것과 같다. 이 띠가 망아지에게서 가장 또렷하다고들 했는데, 내가 물어본 바로 이는 참이라고 믿는다. 또 어깨의 무늬가 때로 둘이라고도 했다. 어깨 무늬는 길이와 윤곽이 분명 아주 변이하기 쉽다. 흰 당나귀가, 그러나 알비노는 아닌 당나귀가 등 무늬도 어깨 무늬도 없이 기재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무늬는 빛깔이 짙은 당나귀에게서 때로 아주 흐릿하거나 실제로 아주 사라진다. 팔라스의 쿨란은 어깨 무늬가 둘인 채로 목격된 적이 있다고 한다. hemionus30에게는 어깨 무늬가 없으나 블라이스 씨를 비롯한 이들이 말한 대로 그 자취가 이따금 나타난다. 그리고 나는 풀 대령에게서 이 종의 망아지가 대체로 다리에 줄무늬가 있고 어깨에도 희미하게 있다고 들었다. 콰가31는 몸통에는 얼룩말처럼 그토록 또렷한 띠가 있으면서도 다리에는 띠가 없다. 그러나 그레이 박사는 뒷다리 관절에 얼룩말 같은 띠가 아주 뚜렷한 표본 하나를 그림으로 남겼다.
말에 관해서는 나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온갖 품종의, 온갖 빛깔의 말에게 등 무늬가 있는 사례를 모았다. 다리의 가로 띠는 담황색 말32과 쥣빛 담황색 말에서 드물지 않으며, 밤색 말에서도 한 사례가 있다. 희미한 어깨 무늬는 담황색 말에서 이따금 볼 수 있고, 나는 적갈색 말에서도 그 자취를 본 적이 있다. 내 아들은 어깨마다 무늬가 둘이고 다리에도 무늬가 있는 담황색 벨기에 짐말을 나를 위해 꼼꼼히 살피고 그려 주었다. 또 내가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어깨마다 짧고 나란한 무늬가 셋 있는 작은 담황색 웨일스 조랑말을 나를 위해 살펴보았다.
인도의 북서부에서 카티아와르33 품종의 말은 워낙 널리 무늬를 지니고 있어서, 인도 정부를 위해 이 품종을 조사한 풀 대령에게 들은 바로는 무늬 없는 말은 순종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등에는 언제나 무늬가 있고 다리에는 대체로 띠가 있으며, 때로는 둘이고 때로는 셋인 어깨 무늬도 흔하다. 게다가 얼굴 옆에도 때로 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망아지에게서 가장 또렷하고 늙은 말에게서는 때로 아주 사라진다. 풀 대령은 회색 카티아와르 말과 적갈색 카티아와르 말이 갓 태어났을 때 무늬를 지닌 것을 둘 다 보았다. 나는 또 W. W. 에드워즈 씨가 준 정보로 미루어, 잉글랜드 경주마에서 등 무늬가 다 자란 말에게서보다 망아지에게서 훨씬 흔하다고 짐작할 까닭이 있다. 여기서 더 자세히 들어가지 않고 말해 두자면, 나는 영국에서 동쪽 중국까지, 또 북쪽으로 노르웨이에서 남쪽으로 말레이 제도까지 여러 나라의 아주 다른 품종의 말에서 다리 무늬와 어깨 무늬의 사례를 모았다. 세계 어디에서나 이 무늬는 담황색 말과 쥣빛 담황색 말에게 단연 가장 자주 나타난다. 담황색이라는 말에는 갈색과 검은색 사이의 빛깔부터 크림색에 가까운 빛깔까지 넓은 범위가 들어간다.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쓴 해밀턴 스미스 대령이 말의 여러 품종이 여러 원종에서 내려왔으며 그 가운데 하나인 담황색 말에게 무늬가 있었다고, 그리하여 위에 적은 현상이 모두 그 담황색 혈통과 옛날에 이루어진 교배에 말미암는다고 믿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이론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며,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육중한 벨기에 짐말과 웨일스 조랑말과 cob와 호리호리한 카티아와르 품종 따위처럼 그토록 뚜렷이 구분되는 품종에 그것을 적용하기는 꺼려진다.
이제 말 속의 여러 종을 교배했을 때의 효과로 눈을 돌려 보자. 롤랭은 당나귀와 말에서 나온 흔한 노새가 유난히 다리에 띠를 지니기 쉽다고 주장한다. 나는 언젠가 다리에 무늬가 워낙 많아서 누구든 처음에는 얼룩말의 소산임에 틀림없다고 여겼을 노새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W. C. 마틴 씨는 말에 관한 훌륭한 논고에서 그와 비슷한 노새의 그림을 실었다. 내가 본, 당나귀와 얼룩말 사이의 잡종을 그린 채색 그림 네 점에서 다리는 몸통의 나머지 부분보다 훨씬 또렷하게 띠를 두르고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에는 어깨 무늬가 둘 있었다. 모턴 경의 유명한 잡종은 밤색 암말과 수컷 콰가에서 나왔는데, 그 잡종도, 나아가 그 뒤에 같은 암말이 검은 아라비아 종마에게서 낳은 순수한 자손까지도 순수한 콰가보다 다리의 띠가 훨씬 또렷했다. 마지막으로, 이 또한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인데, 그레이 박사가 당나귀와 hemionus에서 나온 잡종을 그림으로 남겼고(그는 두 번째 사례도 알고 있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당나귀는 다리에 무늬가 드물고 hemionus에게는 무늬가 아예 없으며 어깨 무늬조차 없는데도 이 잡종은 네 다리 모두에 띠를 둘렀고 담황색 웨일스 조랑말의 것과 같은 짧은 어깨 무늬를 셋 지녔으며 얼굴 옆에 얼룩말 같은 무늬까지 얼마간 지니고 있었다. 이 마지막 사실에 관해 말하자면, 나는 흔히 우연이라 불릴 만한 데서는 빛깔의 무늬 하나조차 나타나지 않는다고 워낙 확신하고 있었던 터라, 당나귀와 hemionus에서 나온 이 잡종에게 얼굴 무늬가 나타났다는 것만으로 풀 대령에게 무늬가 유난히 많은 카티아와르 품종의 말에게도 그런 얼굴 무늬가 나타나는 일이 있는지 묻게 되었고, 앞에서 보았듯이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이 여러 사실을 두고 우리는 이제 무엇이라 말해야 하는가? 우리는 말 속의 서로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종이 단순한 변이로 얼룩말처럼 다리에 무늬를 지니거나 당나귀처럼 어깨에 무늬를 지니게 되는 것을 본다. 말에서 우리는 담황색 기운이 나타날 때마다 이 경향이 강해지는 것을 보는데, 이 기운은 그 속의 다른 종이 두루 지닌 빛깔에 가까운 것이다. 무늬가 나타난다고 해서 형태가 달라지거나 다른 새 형질이 따르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로 가장 뚜렷이 구분되는 몇몇 종 사이에서 나온 잡종에게 무늬를 띠려는 이 경향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본다. 이제 비둘기의 여러 품종의 경우를 보라. 그것들은 어떤 띠와 그 밖의 무늬를 지닌 푸르스름한 빛깔의 비둘기(둘이나 셋의 아종 또는 지리적 품종을 포함한다)에게서 내려왔다. 그리고 어떤 품종이든 단순한 변이로 푸르스름한 기운을 띠면 이 띠와 그 밖의 무늬가 어김없이 다시 나타나되 형태나 형질의 다른 변화는 따르지 않는다. 빛깔이 제각각인 가장 오래되고 가장 순수한 품종을 교배하면 우리는 혼종에게서 그 푸른 기운과 띠와 무늬가 다시 나타나려는 강한 경향을 본다. 나는 아주 오래된 형질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설명할 가장 그럴듯한 가설로, 잇따르는 세대의 어린 것에게 오래전에 잃은 그 형질을 만들어 내려는 경향이 있고 이 경향이 알려지지 않은 원인으로 때때로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방금 말 속의 여러 종에서 그 무늬가 늙은 것에게서보다 어린 것에게서 더 또렷하거나 더 자주 나타난다는 것을 보았다. 그 가운데 몇몇은 몇 세기에 걸쳐 제 형질을 그대로 이어 온 비둘기 품종들을 종이라 불러 보라. 그러면 이 사례가 말 속의 종의 사례와 얼마나 꼭 나란한가! 나로 말하자면 나는 수천에 수천을 거듭한 세대를 자신 있게 되돌아본다. 그리고 나는 얼룩말처럼 무늬를 지녔으되 다른 점에서는 어쩌면 아주 다르게 지어진 동물 하나를, 우리 집말(그것이 하나의 야생 혈통에서 나왔든 여럿에서 나왔든)과 당나귀와 hemionus와 콰가와 얼룩말의 공통 어버이를 본다.
말 속의 종이 저마다 따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 이렇게 주장해야 할 것이다. 곧 종마다 자연 아래에서나 사육 아래에서나 바로 이런 특정한 모습으로 변이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창조되어 자주 그 속의 다른 종처럼 무늬를 띠게 되었다고, 그리고 종마다 세계의 먼 곳에 사는 종과 교배되었을 때 제 어버이가 아니라 그 속의 다른 종을 무늬에서 닮은 잡종을 낳으려는 강한 경향을 지니고 창조되었다고 말이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보기에 참된 원인을 버리고 참되지 않은 원인, 적어도 알려지지 않은 원인을 택하는 일이다. 그것은 신의 작품을 한낱 조롱이자 속임수로 만든다. 나는 차라리 옛날의 무지한 우주 생성론자들과 함께, 조개 화석이 결코 살았던 적이 없고 지금 바닷가에 사는 조개를 흉내 내도록 돌 속에 창조되었다고 믿는 편이 낫겠다.
요약. 변이의 법칙에 관한 우리의 무지는 깊다. 어째서 이 부분이나 저 부분이 어버이의 같은 부분과 더 많이 또는 더 적게 다른지, 우리는 백에 하나도 그 까닭을 댈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견주어 볼 수단이 있을 때마다, 같은 종의 변종들 사이의 작은 차이를 낳는 데서도 같은 속의 종들 사이의 더 큰 차이를 낳는 데서도 같은 법칙이 작용해 온 듯하다. 기후와 먹이 따위의 바깥 생활 조건은 얼마간 미미한 변화를 불러온 듯하다. 체질의 차이를 낳는 데서 습성이, 기관을 튼튼하게 하는 데서 쓰임이, 기관을 약하게 하고 줄이는 데서 쓰이지 않음이 그 효과에서 더 힘이 셌던 듯하다. 상동인 부분은 같은 모양으로 변이하는 경향이 있고, 상동인 부분은 서로 붙는 경향이 있다. 딱딱한 부분과 바깥 부분의 변화는 때로 더 무른 부분과 안쪽 부분에 영향을 준다. 어떤 부분이 크게 발달하면 어쩌면 그것은 잇닿은 부분에서 양분을 끌어오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체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서 아낄 수 있는 구조의 부분은 모두 아껴질 것이다. 이른 나이에 일어난 구조의 변화는 대체로 그 뒤에 발달하는 부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성질을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성장의 상관이 그 밖에도 아주 많다. 여러 번 되풀이되는 부분은 수와 구조에서 변이하기 쉬운데, 어쩌면 그런 부분이 어떤 특정한 기능에 긴밀히 특수해지지 않은 데서 비롯할 것이고, 그리하여 그 변화가 자연선택으로 긴밀히 억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의 등급에서 낮은 생물이 짜임새 전체가 더 특수해지고 등급에서 더 높은 생물보다 더 변이하기 쉬운 것도 아마 이와 같은 원인 때문일 것이다. 흔적 기관은 쓸모없으므로 자연선택에 돌보아지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아마도 변이하기 쉬울 것이다. 종 형질, 곧 같은 속의 여러 종이 공통 어버이에게서 갈라져 나온 뒤로 서로 달라지게 된 형질은 속 형질, 곧 오래 유전되어 왔고 그 같은 기간 동안 달라지지 않은 형질보다 더 변이하기 쉽다. 이 말에서 우리는 특정한 부분이나 기관이 최근에 변이해 그리하여 서로 달라지게 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변이하기 쉽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는 2장에서 같은 원리가 개체 전체에도 적용됨을 보았다. 어떤 속의 많은 종이 발견되는 지방에서는, 곧 이전에 변이와 분화가 많았던 곳, 또는 새 종 형태의 제작소가 활발히 돌아간 곳에서는 지금 우리가 평균으로 가장 많은 변종, 곧 발단기의 종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2차 성징 형질은 몹시 변이하기 쉽고, 그런 형질은 같은 무리의 종들 사이에서 크게 다르다. 짜임새의 같은 부분에 있는 변이성은 대체로 같은 종의 두 성에게 2차 성징의 차이를 주고 같은 속의 여러 종에게 종의 차이를 주는 데 이용되어 왔다. 어떤 부분이나 기관이 가까운 종의 같은 부분이나 기관에 견주어 유별난 크기로 또는 유별난 모습으로 발달했다면, 그것은 그 속이 생겨난 이래로 유별난 크기의 변화를 거쳤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째서 그것이 흔히 다른 부분보다 훨씬 높은 정도로 여전히 변이하기 쉬운지를 이해할 수 있다. 변이는 오래 이어지는 느린 과정이며, 그런 경우에 자연선택은 더 변이하려는 경향과 덜 변화한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경향을 이겨 낼 시간을 아직 갖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별나게 발달한 기관을 지닌 종이 변화한 후손을 많이 낳은 어버이가 되었다면(내 견해에서 이는 아주 느린 과정이며 긴 시간의 흐름을 필요로 한다), 이 경우에 자연선택은 그 기관이 아무리 유별난 모습으로 발달했더라도 그것에 고정된 형질을 주는 데 어렵지 않게 성공했을 것이다. 공통 어버이에게서 거의 같은 체질을 물려받고 비슷한 영향에 놓인 종들은 자연히 유사 변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을 것이고, 이 같은 종들이 이따금 옛 조상의 형질 몇 가지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되돌아감과 유사 변이에서 새롭고 중요한 변화가 생겨나지는 않을지라도, 그런 변화는 자연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다양함에 보탬이 될 것이다.
자손이 어버이와 다른 미미한 차이 하나하나의 원인이 무엇이든(그리고 하나하나에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구조의 더 중요한 변화를 모두 일으키는 것은 그런 차이가 개체에게 이로울 때 자연선택으로 꾸준히 쌓이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땅 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이 서로 다툴 수 있게 되고, 가장 잘 맞추어진 것이 살아남게 된다.
주
1. 「sport」 — 원예가들의 용어. 한 그루에서 눈이나 곁가지 하나만 갑자기 다른 성질을 띠는 일, 또는 그렇게 생긴 개체를 말한다. 마땅한 한국어 역어가 없어 원문을 그대로 두었다.
2. 월러스턴 — 토머스 버논 월러스턴(Thomas Vernon Wollaston, 1822~1878). 영국의 곤충학자로 마데이라와 대서양 섬들의 딱정벌레를 조사했다. 이 장 뒤쪽에서 그의 마데이라 관찰이 길게 인용된다.
3. 쓰임과 쓰이지 않음 — 원문은 use and disuse. 다윈 당시에는 유전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는지 알려져 있지 않았고, 한 개체가 기관을 쓰거나 쓰지 않아 생긴 변화가 그 자손에게 전해진다고 널리 보았다. 다윈도 이 장에서 그 견해에 적잖은 무게를 싣는다.
4. 오언 교수 —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1892). 영국의 비교해부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당대 박물학계의 권위였다. 이 장에서 다윈은 그의 관찰을 여러 번 끌어온다.
5. 배오리 — 원문은 logger-headed duck. 오늘날 Tachyeres속의 배오리(기선오리)를 가리킨다. 날개가 짧아 날지 못하고 물 위를 퍼덕이며 달린다.
6. 에일즈베리오리 — 잉글랜드 버킹엄셔의 에일즈베리에서 고기용으로 개량된 집오리 품종이다.
7. 커비 — 윌리엄 커비(William Kirby, 1759~1850). 영국의 성직자이자 곤충학자로 곤충학 입문서를 함께 펴냈다.
8. Ateuchus —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하게 여긴 쇠똥구리를 가리키던 당시의 속명이다. 오늘날에는 Scarabaeus로 분류한다.
9. 데제르타스 — 마데이라 남동쪽의 작고 메마른 무인도 무리다. 바람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10. Ctenomys — 남아메리카에 사는 땅굴 설치류다. 투코투코는 그 울음소리에서 온 현지 이름이며, 다윈은 비글호 항해 중에 이 동물을 관찰했다.
11. 순막 — 눈꺼풀 안쪽에 있는 얇은 막으로 눈알을 덮어 보호한다. 새와 파충류에 발달해 있다.
12. 슈타이어마르크 — 오스트리아 남동부의 지방으로 석회암 동굴이 많다. 원문의 Styria는 이 지방의 라틴어식 이름이다.
13. 쇠트 — 요르겐 마티아스 크리스티안 쇠트(Jørgen Matthias Christian Schiödte, 1815~1884). 덴마크의 곤충학자로 동굴 곤충을 연구했다.
14. Proteus — 유럽 남동부의 석회암 동굴에 사는 눈먼 양서류다. 다윈이 든 Amblyopsis는 북아메리카 동굴에 사는 눈먼 물고기다.
15.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 — 원문은 uncivilised man. 다윈 당시 유럽 박물학자들이 문자를 쓰지 않고 농경 이전의 생활을 하는 사회의 사람을 가리켜 쓰던 말이다. 오늘날에는 쓰지 않으며, 수렵채집민이라 부르거나 개별 집단의 고유 명칭으로 부른다. 당대의 사고를 보이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겼다.
16. 중국의 옛 백과사전 — 원문은 the ancient Encyclopædias of China. 다윈이 염두에 둔 것은 농사와 목축의 요령을 갈래별로 모은 중국의 유서(類書)류 저작이다.
17. 뚱딴지 — 원문은 Jerusalem artichoke. 북아메리카 원산의 국화과 식물로 돼지감자라고도 한다. 땅속줄기로만 번식시킨다.
18. 상동 — 원문은 homologous. 서로 다른 생물이나 한 몸의 서로 다른 자리에 있는 기관이, 생김새나 쓰임과 상관없이 같은 바탕에서 갈라져 나온 것을 말한다.
19. 이지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 — 이지도르 조프루아 생틸레르(Isidore Geoffroy Saint-Hilaire, 1805~1861).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기형을 다루는 학문을 세웠다. 이 장 뒤에 나오는 「아버지 조프루아」는 그의 아버지 에티엔(1772~1844)이다.
20. 설상화와 통상화 — 국화과의 두상꽃차례에서 가장자리에 혀 모양으로 달리는 꽃이 설상화, 가운데에 통 모양으로 빽빽이 달리는 꽃이 통상화다. 데이지의 흰 「꽃잎」 하나하나가 설상화다.
21. 펠로리아 — 좌우가 고르지 않게 생긴 꽃이 드물게 고른 모양으로 피는 현상이다. 린네가 붙인 이름이다.
22. C. C. 슈프렝겔 — 크리스티안 콘라트 슈프렝겔(Christian Konrad Sprengel, 1750~1816). 독일의 식물학자로 꽃의 생김새와 곤충의 방문을 이어 설명했다. 그의 저작은 오래 잊혔다가 다윈이 다시 끌어냈다.
23. 곧은씨와 굽은씨 — 원문은 orthospermous와 coelospermous. 산형과의 열매에서 씨의 안쪽 면이 평평한 것과 안으로 오목한 것을 가른 타우슈의 용어다.
24. 아버지 드 캉돌 — 오귀스탱 피람 드 캉돌(Augustin Pyramus de Candolle, 1778~1841). 스위스의 식물학자로 식물 분류의 큰 체계를 세웠다. 바로 뒤에 나오는 알퐁스(1806~1893)는 그의 아들이다.
25. 만각류 — 따개비와 조무래기따개비 따위가 딸린 갑각류 무리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쓰기 전 8년 동안 이 무리만 붙들고 네 권짜리 전문 저작을 냈다.
26. 영양적 되풀이 — 원문은 vegetative repetition. 같은 부분이 한 몸 안에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 것을 가리킨 오언의 표현이다.
27. 헌터 —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 스코틀랜드의 외과의사이자 해부학자로 2차 성징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28. 유사 변이 — 원문은 analogous variation. 가까운 여러 형태에서 나란히 같은 방향의 변이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2장의 analogical variation과 같은 뜻이다.
29. 참된 원인(vera causa) — 실제로 작용한다고 따로 입증된 원인만을 설명에 끌어와야 한다는 뉴턴 이래의 방법 원칙이다. 다윈은 계승을 함께한 것이 바로 그런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30. hemionus — 아시아의 야생 당나귀를 가리키던 당시의 이름이다. 바로 앞의 쿨란도 같은 무리에 든다.
31. 콰가 — 남아프리카에 살던 얼룩말의 한 무리로 몸 앞쪽에만 줄무늬가 있었다. 1883년에 마지막 개체가 죽어 사라졌다.
32. 담황색 말 — 원문은 dun. 다윈이 이 문단 끝에서 스스로 밝히듯 갈색과 검은색 사이부터 크림색에 가까운 것까지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말빛이다.
33. 카티아와르 — 인도 서부 구자라트의 반도 지역이다. 그곳의 말 품종은 귀 끝이 안으로 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