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지질 기록의 불완전함에 대하여
오늘날 중간 변종이 없는 것에 대하여. 절멸한 중간 변종의 성격에 대하여. 그 수에 대하여. 퇴적과 깎임의 속도에서 미루어 본 아득한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우리 고생물 수집품이 빈약함에 대하여. 누층이 띄엄띄엄한 것에 대하여. 어느 한 누층 안에 중간 변종이 없는 것에 대하여. 종의 무리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알려진 가장 낮은 화석을 품은 지층에서 그것들이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6장에서 나는 이 책에서 내세운 견해에 정당하게 들이댈 수 있는 주요한 반론들을 늘어놓았다. 그 대부분은 이제 논했다. 그 가운데 하나, 곧 종 형태들이 서로 또렷이 구분되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행 고리로 서로 녹아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아주 뚜렷한 난점이다. 나는 그런 고리가 오늘날, 겉보기에 그것이 있기에 가장 알맞은 형편, 곧 물리적 조건이 등급을 이루며 변해 가는 넓고 이어진 지역에서조차 흔히 나타나지 않는 까닭을 밝혀 두었다. 나는 각 종의 삶이 기후보다 이미 경계가 뚜렷한 다른 생물 형태가 있고 없음에 더 중요하게 달려 있다는 것, 따라서 참으로 다스리는 구실을 하는 생활 조건은 열이나 습기처럼 감지할 수 없이 고르게 변해 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 애썼다. 또 나는 중간 변종이 자기가 이어 주는 형태들보다 적은 수로 존재하는 까닭에 그 이상의 변화와 개량이 진행되는 동안 대개 밀려나고 절멸한다는 것을 보이려 애썼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간 고리가 지금 자연 어디에서나 나타나지는 않는 주된 까닭은 자연선택의 과정 그 자체에 있다. 새 변종이 끊임없이 제 어버이 형태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을 절멸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절멸의 과정이 엄청난 규모로 작용해 온 그만큼, 예전에 지구에 존재했던 중간 변종의 수도 참으로 엄청났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모든 누층과 모든 지층이 그런 중간 고리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지질학은 그렇게 곱게 등급진 생물의 사슬을 결코 드러내 보여 주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 이것이 내 이론에 들이댈 수 있는 가장 뚜렷하고 가장 무거운 반론일 것이다. 그 해명은, 내가 믿기로, 지질 기록이 지극히 불완전하다는 데 있다.
우선 내 이론에서 예전에 어떤 중간 형태가 존재했어야 하는지를 늘 마음에 두어야 한다. 나는 어떤 두 종을 바라볼 때 그 둘 사이에 곧바로 놓이는 형태를 머릿속에 그리지 않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것은 온통 틀린 생각이다. 우리는 언제나 각 종과 공통이되 알려지지 않은 조상 사이에 놓이는 형태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조상은 대개 변화한 제 모든 후손과 몇몇 점에서 달랐을 것이다. 간단한 보기를 들어 보자. fantail과 pouter1 비둘기는 둘 다 바위비둘기에서 내려왔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중간 변종을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둘 각각과 바위비둘기 사이에 지극히 촘촘한 계열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fantail과 pouter 사이에 곧바로 놓이는 변종은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이 두 품종의 특징이 되는 생김새, 곧 어느 정도 펼쳐진 꼬리와 어느 정도 커진 모이주머니를 함께 지닌 것은 하나도 없으리라. 게다가 이 두 품종은 하도 많이 변해서, 그 기원에 대한 역사의 증거나 간접의 증거가 우리에게 없다면, 그 구조를 바위비둘기의 구조와 견주는 것만으로 그것들이 이 종에서 내려왔는지 아니면 C. oenas 같은 가까운 다른 종에서 내려왔는지 가려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종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주 뚜렷이 구분되는 형태, 예컨대 말과 맥을 보면 우리에게는 그 둘 사이에 곧바로 놓이는 고리가 존재했다고 여길 까닭이 없고, 다만 각각과 알려지지 않은 공통의 어버이 사이에 고리가 있었다고 여길 까닭이 있을 뿐이다. 그 공통의 어버이는 짜임새 전체로는 맥과도 말과도 두루 많이 닮았겠지만, 구조의 몇몇 점에서는 둘 모두와 상당히 달랐을 수 있고 어쩌면 그 둘이 서로 다른 것보다 더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런 모든 경우에, 어버이의 구조를 그 변화한 후손의 구조와 아무리 꼼꼼히 견준다 해도, 동시에 거의 완전한 중간 고리의 사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두 종이나 그 이상의 종의 어버이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내 이론에서 살아 있는 두 형태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내려왔다는 것, 예컨대 말이 맥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둘 사이에 곧바로 놓이는 중간 고리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한 형태가 아주 긴 기간 달라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동안 그 후손은 엄청난 양의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리고 생물과 생물 사이의, 자식과 어버이 사이의 경쟁이라는 원리 때문에 이것은 아주 드문 일이 된다. 어떤 경우에든 새롭고 개량된 생명의 형태가 낡고 개량되지 않은 형태를 밀어내는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자연선택 이론에 따르면 살아 있는 모든 종은 오늘날 같은 종의 변종들 사이에서 우리가 보는 것보다 크지 않은 차이로 각 속의 어버이종과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개 절멸한 이 어버이종들도 마찬가지로 더 오래된 종과 이어져 있었고, 그렇게 뒤로 뒤로 거슬러 언제나 각 큰 강의 공통 조상으로 모여든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모든 종과 절멸한 모든 종 사이에 놓인 중간 고리와 이행 고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이론이 참이라면, 그런 것들이 이 지구 위에 살았음은 분명하다.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그토록 무한히 많은 이어 주는 고리의 화석 유해를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는 점은 접어 두더라도, 모든 변화가 자연선택을 거쳐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면 그만큼 큰 양의 생물의 변화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으리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지질학자가 아닐지도 모를 독자에게 시간의 흐름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리게 이끄는 사실들을 떠올리게 하는 일조차 나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훗날의 역사가가 자연과학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인정할 찰스 라이엘 경2의 저 훌륭한 저작 《지질학 원리》를 읽고도 지나간 시간의 기간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아득한지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이 책을 덮어도 좋다. 《지질학 원리》를 공부하거나, 여러 관찰자가 따로따로의 누층을 다룬 특별한 논고를 읽거나, 저자마다 각 누층이나 심지어 각 지층이 이어진 기간에 대해 어떻게든 모자란 관념이나마 주어 보려 애쓰는 것을 눈여겨보는 것만으로 넉넉하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은 여러 해 동안 몸소 포개어 쌓인 거대한 지층 더미를 살피고 바다가 옛 바위를 갈아내고 새 퇴적물을 만드는 일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우리 둘레에 그 기념물이 서 있는 저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를 바랄 수 있다.
제법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바닷가 선을 따라 거닐며 깎여 나가는 과정을 눈여겨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조수는 대개 하루 두 번 짧은 동안만 벼랑에 닿고, 파도는 모래나 조약돌을 실었을 때에만 벼랑을 파먹는다. 순수한 물만으로는 바위를 닳게 하는 데 거의 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고 믿을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벼랑 밑동이 파여 거대한 조각들이 떨어지고, 이것들은 제자리에 박힌 채 크기가 줄어 파도에 굴려질 수 있을 때까지 티끌 하나씩 닳아 없어져야 하며, 그런 뒤에야 더 빨리 갈려 조약돌과 모래와 진흙이 된다. 그러나 물러나는 벼랑의 밑동을 따라 바다 생물이 두껍게 뒤덮은 둥근 바윗돌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는가. 그것들이 얼마나 조금밖에 갈리지 않았는지, 얼마나 드물게 굴려지는지를 그 모습이 보여 준다. 더구나 깎여 나가고 있는 바위 벼랑 선을 몇 마일 따라가 보면, 지금 실제로 깎이고 있는 곳은 여기저기 짧은 구간이거나 곶을 돌아가는 자리뿐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겉면의 모습과 거기 자란 식물이 보여 주는 바로는, 다른 곳에서는 물이 그 밑동을 씻은 뒤로 여러 해가 지났다.
우리 바닷가에서 바다가 하는 일을 가장 가까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내가 믿기로, 바위 해안이 닳아 없어지는 느림에 가장 깊이 감명받을 것이다. 이 점에 대한 휴 밀러의 관찰과 저 뛰어난 관찰자 조던 힐의 스미스 씨3의 관찰은 무엇보다 인상 깊다. 이렇게 마음에 새긴 채, 두께가 몇천 피트4에 이르는 역암 층5를 누구든 살펴보라. 그것은 아마 다른 많은 퇴적층보다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겠지만, 저마다 시간의 도장이 찍힌 닳고 둥글어진 조약돌로 이루어졌기에 그 덩어리가 얼마나 천천히 쌓였는지를 잘 보여 준다. 퇴적층의 두께와 넓이는 지각이 다른 곳에서 겪은 깎임의 결과이자 그 척도라는 라이엘의 깊은 말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여러 나라의 퇴적층이 얼마나 많은 깎임을 뜻하는가! 램지 교수6는 대브리튼 여러 곳에 있는 각 누층의 최대 두께를 대개는 실제 측정에서, 몇몇은 어림에서 얻어 내게 알려 주었다. 그 결과는 이러하다.
피트
고생대7 지층(화성암 층은 빼고) …… 57,154.
중생대8 지층 …… 13,190.
제3기9 지층 …… 2,240.
이를 모두 합치면 72,584피트, 곧 13과 4분의 3 브리튼 마일에 아주 가깝다. 이 누층들 가운데 잉글랜드에서는 얇은 층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유럽 본토에서는 몇천 피트 두께로 있는 것도 있다. 더구나 잇따르는 누층과 누층 사이마다 대부분의 지질학자가 보기에 엄청나게 긴 빈 기간이 놓여 있다. 그러므로 영국에 높이 쌓인 퇴적암 더미도 그것이 쌓이는 동안 흘러간 시간에 대해서는 모자란 관념밖에 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을 것인가! 뛰어난 관찰자들은 저 큰 미시시피강이 퇴적물을 쌓는 속도가 10만 년에 겨우 600피트라고 어림했다. 이 어림은 아주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주 고운 퇴적물이 바다의 흐름에 실려 얼마나 넓은 공간으로 옮겨지는지를 생각하면, 어느 한 지역에서 쌓이는 과정은 지극히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지층이 겪은 깎임의 양은, 깎여 나간 물질이 쌓이는 속도와는 따로, 아마 시간의 흐름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증거일 것이다. 파도에 닳아 사방이 1,000피트나 2,000피트 높이의 깎아지른 벼랑으로 깎여 나간 화산섬을 바라보았을 때 깎임의 증거에 크게 놀랐던 일을 나는 기억한다. 예전에 녹아 흐르던 상태 때문에 생긴 용암 흐름의 완만한 비탈이, 그 단단한 바위 층이 한때 열린 대양으로 얼마나 멀리 뻗어 있었는지를 한눈에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단층이 더욱 또렷하게 들려준다. 단층이란 그 선을 따라 지층이 한쪽에서는 몇천 피트 높이로 밀려 올라가고 다른 쪽에서는 그만한 깊이로 떨어진 저 거대한 갈라짐이다. 지각이 갈라진 뒤로 땅의 겉면이 바다의 작용에 하도 말끔히 깎여 고르게 되어서, 이 엄청난 어긋남의 자취가 겉으로는 하나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크레이븐 단층은 30마일 넘게 뻗어 있고, 이 선을 따라 지층의 수직 어긋남은 600피트에서 3000피트까지 달라진다. 램지 교수는 앵글시에서 2300피트가 아래로 떨어진 자리에 대한 보고를 냈고, 메리어네스셔에는 12,000피트짜리가 있다고 온전히 믿는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도 이 경우들에서 그토록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 주는 것이 겉면에는 하나도 없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쪽의 바위 더미가 매끈하게 쓸려 나갔기 때문이다. 이 사실들을 곱씹으면 내 마음은 영원이라는 관념을 붙들어 보려는 헛된 애씀에서 받는 것과 거의 같은 느낌을 받는다.
다른 사례를 하나 더 들고 싶다. 잘 알려진 윌드10의 깎임이다. 램지 교수의 이 주제에 대한 빼어난 논문이 보여 주듯, 윌드의 깎임이 군데군데 10,000피트 두께에 이르는 우리 고생대 지층의 덩어리를 걷어낸 깎임에 견주면 하찮은 것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노스다운스에 서서 멀리 사우스다운스를 바라보는 것은 훌륭한 배움이다. 서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북쪽과 남쪽의 급사면이 만나 닫힌다는 것을 떠올리면, 백악층11이 쌓인 뒤쪽 시기 이래라는 그토록 한정된 기간 안에 윌드를 덮고 있었을 바위의 거대한 둥근 지붕을 우리는 마음 놓고 그려 볼 수 있다. 램지 교수가 알려준 바로 노스다운스에서 사우스다운스까지의 거리는 약 22마일이고, 여러 누층의 두께는 평균 약 1100피트다. 그러나 어떤 지질학자들이 생각하듯 더 오래된 바위의 산맥이 윌드 밑에 깔려 있고 그 옆구리에서는 위에 놓인 퇴적층이 다른 곳보다 얇게 쌓였을 수 있다면, 위의 어림은 틀린 것이 된다. 그러나 이 의심의 근원이 이 지역의 서쪽 끝에 적용한 어림에는 아마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가 주어진 높이의 벼랑 선을 흔히 얼마나 빨리 닳게 하는지를 우리가 안다면, 윌드를 깎아내는 데 걸린 시간을 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주제에 대해 어떤 거친 관념이라도 세워 보려고, 바다가 500피트 높이의 벼랑을 100년에 1인치씩 파먹는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처음에는 너무 적게 잡은 듯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1야드 높이의 벼랑이 해안선 전체를 따라 거의 22년마다 1야드씩 파먹혀 물러난다고 가정하는 것과 같다. 백악처럼 무른 바위라 해도 가장 드러난 해안이 아니고서야 이런 속도로 제 몸을 내주겠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물론 높은 벼랑이 깎여 나가는 것은 떨어진 조각이 부서지는 까닭에 더 빠르겠지만 말이다. 다른 한편 나는 길이가 10마일이나 20마일인 어떤 해안선도 그 들쭉날쭉한 길이 전체를 따라 한꺼번에 깎여 나가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또 거의 모든 지층이 오래 마모를 견디며 밑동에 방파제를 이루는 더 단단한 켜나 단괴를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떠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보통의 형편에서라면 500피트 높이의 벼랑에 대해 그 길이 전체에 걸쳐 100년에 1인치의 깎임은 넉넉하게 잡은 것이라고 나는 결론짓는다. 이 속도로 위의 자료에 따라 계산하면 윌드의 깎임에는 306,662,400년이 걸렸을 것이다. 곧 3억 년이라 해 두자.
완만하게 기운 윌든층 지역이 솟아올랐을 때 민물이 미친 작용은 크지 않았을 것이나, 위의 어림을 얼마간 줄이기는 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지역이 겪었음을 우리가 아는 높낮이의 출렁임 동안, 그 겉면은 몇백만 년 동안 뭍으로 존재하며 바다의 작용을 피했을 수 있다. 아마 그만큼 긴 기간 깊이 잠겨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해안 파도의 작용을 피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십중팔구 중생대의 뒤쪽 시기 이래로 3억 년보다 훨씬 긴 기간이 흘렀을 것이다.
내가 이런 몇 마디를 한 것은, 아무리 불완전하더라도 흘러간 햇수에 대한 어떤 관념을 얻는 일이 우리에게 몹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햇수 하나하나 동안 온 세상에서 뭍과 물은 수많은 살아 있는 형태로 북적였다. 마음이 붙들 수 없는 얼마나 무한한 수의 세대가 저 긴 햇수의 두루마리 속에서 서로 뒤를 이었을 것인가! 이제 우리의 가장 풍성한 지질 박물관으로 눈을 돌려 보라. 우리가 보는 것은 얼마나 보잘것없는 진열인가!
우리 고생물 수집품이 빈약함에 대하여. 우리 고생물 수집품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저 훌륭한 고생물학자 고(故) 에드워드 포브스12의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곧 우리 화석 종 가운데 많은 수가 하나뿐인, 그것도 흔히 부서진 표본에서, 또는 어느 한 자리에서 거둔 몇 개의 표본에서 알려지고 이름 붙여졌다는 것이다. 지구 겉면 가운데 지질학으로 탐사된 것은 작은 부분뿐이고, 해마다 유럽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발견이 보여 주듯 넉넉한 정성을 들여 탐사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온통 무른 생물은 하나도 보존될 수 없다. 껍데기와 뼈도 퇴적물이 쌓이지 않는 바다 바닥에 놓아두면 썩어 사라진다. 퇴적물이 화석 유해를 파묻고 보존할 만큼 빠른 속도로 바다 바닥 거의 전체에 쌓이고 있다고 은연중에 스스로 인정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아주 잘못된 견해를 품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대양의 엄청나게 큰 부분에 걸쳐 물의 밝은 푸른빛은 그 맑음을 말해 준다. 아래 놓인 층이 그사이에 아무런 닳음과 해짐을 겪지 않은 채, 엄청나게 긴 시간의 사이를 두고 다른 더 늦은 누층이 그 위에 정합으로 덮인 기록이 많은데, 이것은 바다 바닥이 드물지 않게 여러 시대 동안 달라지지 않은 상태로 놓여 있다고 보아야만 설명되는 듯하다. 실제로 파묻히는 유해도 모래나 자갈 속에 있으면 그 층이 솟아오를 때 대개 빗물이 스며들며 녹아 없어질 것이다. 나는 밀물과 썰물 사이의 물가에 사는 저 수많은 동물 가운데 보존되는 것은 몇 되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예컨대 Chthamalinæ(고착 만각류의 한 아과)13에 속하는 여러 종은 온 세계의 바위를 무한한 수로 뒤덮고 있다. 그것들은 모두 엄밀히 물가에 사는데, 깊은 물에 살며 시칠리아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지중해의 한 종만이 예외다. 그런데 다른 어떤 종도 지금까지 어떤 제3기 누층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Chthamalus 속이 백악기에 존재했다는 것은 이제 알려져 있다. 연체동물의 한 속인 Chiton(군부)도 부분적으로 비슷한 경우를 보여 준다.
중생대와 고생대에 살았던 뭍의 생물에 대해서라면, 화석 유해에서 나온 우리 증거가 극도로 조각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예컨대 찰스 라이엘 경이 북아메리카의 석탄기 지층에서 찾아낸 하나를 빼면, 이 아득한 두 시기 어느 쪽에 속하는 뭍 조개도 하나 알려져 있지 않다. 포유류 유해에 대해서는, 라이엘의 《편람》 보유(補遺)14에 실린 역사표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 보존이 얼마나 우연하고 드문 일인지를 몇 쪽에 걸친 세세한 설명보다 훨씬 잘 깨닫게 해 준다. 제3기 포유류의 뼈 가운데 얼마나 큰 몫이 동굴이나 호성 퇴적층에서 발견되었는지를, 또 우리 중생대나 고생대 누층의 시대에 속하는 동굴이나 참된 호성 층은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면 그 드묾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지질 기록의 불완전함은 주로 앞의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한 다른 원인에서 생긴다. 곧 여러 누층이 저마다 넓은 시간의 사이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글로 쓴 저작에서 누층들이 표로 정리된 것을 보거나 자연에서 그것들을 따라갈 때, 우리는 그것들이 바싹 잇따른다고 믿지 않기 어렵다. 그러나 예컨대 러시아를 다룬 머치슨 경15의 위대한 저작에서 우리는 그 나라에서 포개어 쌓인 누층들 사이에 얼마나 넓은 틈이 있는지 알고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세계의 다른 많은 곳에서도 그러하다. 가장 솜씨 있는 지질학자라도 그의 눈길이 이 큰 영토에만 갇혀 있었다면, 제 나라에서 비어 있고 메말라 있던 기간 동안 다른 곳에서는 새롭고 독특한 생명의 형태를 품은 거대한 퇴적물 더미가 쌓이고 있었으리라고는 결코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따로 떨어진 영토 하나하나에서 잇따르는 누층과 누층 사이에 흘러간 시간의 길이에 대해 거의 아무런 관념도 세울 수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도 확인될 수 없으리라 미루어 볼 수 있다. 잇따르는 누층들의 광물 구성이 자주 크게 바뀌는 것은 대개 퇴적물이 흘러나온 둘레 땅의 지리가 크게 바뀌었음을 뜻하는데, 이는 각 누층과 누층 사이에 아득한 시간의 사이가 흘렀다는 믿음과 들어맞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 우리는 어째서 각 지역의 누층이 거의 언제나 띄엄띄엄한지, 곧 어째서 서로 바싹 잇따르지 않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가까운 시기에 몇백 피트 솟아오른 남아메리카 해안을 몇백 마일에 걸쳐 살필 때 그 어떤 사실보다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짧은 지질 시기만이라도 버틸 만큼 널리 퍼진 최근의 퇴적층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독특한 바다 동물상이 사는 서쪽 해안 전체를 따라 제3기 층은 하도 빈약하게 발달해서, 잇따른 여러 독특한 바다 동물상의 기록은 아마 먼 시대까지 보존되지 못할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어째서 솟아오르고 있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을 따라 최근이나 제3기의 유해를 품은 널리 퍼진 누층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지가 밝혀진다. 해안 바위가 엄청나게 깎여 나가고 흙탕물 흐르는 냇물이 바다로 들어오니 퇴적물의 공급은 여러 시대 동안 컸을 것이 틀림없는데도 말이다. 그 해명은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하다. 물가와 물가 아래의 퇴적층은 땅이 천천히 차츰 솟아오르며 해안 파도가 갈아내는 작용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끊임없이 닳아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퇴적물이 처음 솟아오를 때와 그 뒤 높낮이가 출렁이는 동안 파도의 쉼 없는 작용을 견디려면 지극히 두껍고 단단하거나 널리 퍼진 덩어리로 쌓여야 한다고 마음 놓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게 두껍고 널리 퍼진 퇴적물이 쌓이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바다의 깊은 곳에서다. 이 경우 포브스의 연구로 미루어 보면 그 바닥에는 지극히 적은 수의 동물만이 살 것이고, 그 덩어리는 솟아올랐을 때 그때 존재하던 생명의 형태에 대해 가장 불완전한 기록을 줄 것이라고 우리는 결론지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얕은 바닥이 천천히 계속 가라앉는다면 그 위에 퇴적물이 어떤 두께로든 어떤 넓이로든 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뒤의 경우에 침강의 속도와 퇴적물의 공급이 서로 거의 맞아떨어지는 동안 바다는 얕고 생명에 알맞은 채로 남을 것이고, 그리하여 솟아올랐을 때 어떤 양의 깎임에도 견딜 만큼 두꺼운, 화석을 품은 누층이 만들어질 수 있다.
나는 화석이 풍성한 우리의 오래된 누층이 모두 이렇게 침강하는 동안 만들어졌다고 확신한다. 1845년에 이 주제에 대한 내 견해를 펴낸 뒤로 나는 지질학의 진행을 지켜보았고, 이 누층 저 누층을 다루면서 그것이 침강하는 동안 쌓였다는 결론에 이르는 저자가 잇따르는 것을 보고 놀랐다. 덧붙이자면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에서 지금까지 겪은 깎임을 견딜 만큼 부피가 컸던 단 하나의 오래된 제3기 누층은, 비록 먼 지질 시대까지 버티지는 못하겠지만, 틀림없이 높낮이가 아래로 출렁이는 동안 쌓여 상당한 두께를 얻은 것이다.
모든 지질학의 사실이 우리에게 또렷이 말해 주는 바는 각 지역이 수많은 느린 높낮이의 출렁임을 겪었다는 것이며, 보기에 이 출렁임은 넓은 공간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화석이 풍성하고 뒤의 깎임을 견딜 만큼 두껍고 널리 퍼진 누층은 침강하는 기간 동안 넓은 공간에 걸쳐 만들어졌을 수 있다. 다만 퇴적물의 공급이 바다를 얕게 지키고 유해가 썩을 틈 없이 그것을 파묻어 보존할 만큼 넉넉했던 곳에서만 그러하다. 다른 한편 바다 바닥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생명에 가장 알맞은 얕은 곳에 두꺼운 퇴적층은 쌓일 수 없었을 것이다. 번갈아 오는 융기의 기간에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때 쌓인 층은 솟아올라 해안 작용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서 허물어졌을 것이다.
이리하여 지질 기록은 거의 필연으로 띄엄띄엄해진다. 나는 이 견해가 참이라는 데 큰 자신을 느낀다. 그것이 찰스 라이엘 경이 가르쳐 온 일반 원리와 엄밀하게 들어맞기 때문이고, 포브스도 따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나가며 한마디 짚어 둘 만하다. 융기하는 기간에는 뭍과 거기 붙은 바다의 얕은 곳의 넓이가 늘어나고 새 자리가 곧잘 생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새 변종과 새 종이 만들어지기에 가장 알맞은 형편이 모두 갖추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간에는 대개 지질 기록에 빈자리가 생긴다. 다른 한편 침강하는 동안에는 생물이 사는 넓이와 거기 사는 것들의 수가 줄어들고(대륙의 해안이 처음 쪼개져 군도가 될 때 거기 사는 것들은 예외다), 그리하여 침강하는 동안에는 절멸이 많은 반면 새 변종이나 새 종은 더 적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화석이 풍성한 우리의 큰 퇴적층이 쌓인 것은 바로 이 침강의 기간이다. 자연은 제 이행 형태나 이어 주는 형태가 자주 발견되지 않도록 지켜 왔다고 말해도 거의 좋을 정도다.
앞선 고찰에서 지질 기록이 전체로 보아 지극히 불완전하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한 누층에만 눈길을 모으면, 어째서 그 누층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살았던 가까운 종들 사이에 바싹 등급진 변종이 그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지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같은 종이 같은 누층의 위쪽과 아래쪽에서 서로 구분되는 변종을 보인 경우가 몇 기록되어 있으나 드문 일이므로 여기서는 지나가겠다. 각 누층이 쌓이는 데 아주 많은 햇수가 걸렸음은 따질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각 누층이 그때 살았던 종들 사이의 등급진 고리 계열을 품고 있지 않은 까닭을 나는 여럿 알아볼 수 있다. 다만 다음의 고찰들에 마땅한 무게를 저마다 얼마씩 매길 수 있다고는 결코 주장하지 못하겠다.
각 누층이 아주 긴 햇수를 나타낸다 해도 저마다는 아마 한 종을 다른 종으로 바꾸는 데 드는 기간에 견주면 짧을 것이다. 의견을 크게 존중할 만한 고생물학자 두 사람, 곧 브론과 우드워드16가 각 누층이 이어진 평균 기간이 종 형태가 이어진 평균 기간의 두 배나 세 배라고 결론지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넘기 어려운 난점 때문에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어떤 올바른 결론에도 이를 수 없다. 어떤 종이 어느 누층의 한가운데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다른 곳에서 앞서 존재하지 않았다고 미루어 보는 것은 극도로 성급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종이 맨 위의 켜가 쌓이기 전에 사라지는 것을 볼 때, 그때 그것이 온통 절멸했다고 여기는 것도 똑같이 성급한 일이다. 우리는 유럽의 넓이가 세계의 나머지에 견주어 얼마나 작은지를 잊는다. 또 유럽 전역에서 같은 누층의 여러 단계가 완전한 정확함으로 맞추어진 것도 아니다.
온갖 바다 동물에서 우리는 기후를 비롯한 여러 변화가 있는 동안 많은 양의 이주가 있었으리라고 마음 놓고 미루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종이 어느 누층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을 볼 때, 그때 비로소 그 지역으로 처음 옮겨 들어왔을 개연성이 있다. 예컨대 몇몇 종이 유럽의 고생대 층에서보다 북아메리카의 고생대 층에서 얼마간 더 일찍 나타났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아메리카의 바다에서 유럽의 바다로 옮겨 가는 데 시간이 걸렸던 듯하다. 세계 여러 곳의 가장 늦은 퇴적층을 살피면서 어디에서나 눈에 띈 것은, 아직 살아 있는 몇몇 종이 그 퇴적층에는 흔한데 바로 둘레의 바다에서는 절멸했다는 것, 또는 거꾸로 어떤 것은 이웃한 바다에는 지금 많은데 이 특정한 퇴적층에는 드물거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에 사는 것들이 빙하기17 동안 얼마나 이주했는지 확인된 양을 곱씹어 보는 것은 훌륭한 배움이다. 이 빙하기는 온전한 지질 시기 하나의 한 부분을 이룰 뿐이다. 또 이 같은 빙하기 안에 모두 들어 있는 높낮이의 큰 변화, 지나치리만치 큰 기후의 변화, 엄청난 시간의 흐름을 곱씹어 보는 것도 그러하다. 그런데도 세계 어느 구석에서든 화석 유해를 품은 퇴적층이 이 기간 내내 같은 지역 안에서 계속 쌓여 왔는지는 의심스럽다. 예컨대 빙하기 내내 미시시피강 어귀 가까이, 바다 동물이 번성할 수 있는 깊이의 한계 안에서 퇴적물이 쌓였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시간 동안 아메리카의 다른 곳에서 얼마나 아득한 지리의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빙하기의 어느 한 부분 동안 미시시피강 어귀 가까이 얕은 물에 쌓인 층이 솟아오르면, 종의 이주와 지리의 변화 때문에 생물 유해는 아마 서로 다른 높이에서 처음 나타나고 또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이 층을 살피는 지질학자는 파묻힌 화석의 평균 수명이 빙하기보다 짧았다고 결론짓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훨씬 길어서 빙하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뻗어 있는데도 말이다.
같은 누층의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두 형태 사이에서 완전한 등급을 얻으려면, 변이라는 느린 과정에 넉넉한 시간을 주기 위해 퇴적층이 아주 긴 기간 계속 쌓여야 한다. 그러므로 그 퇴적층은 대개 아주 두꺼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를 겪는 종은 이 기간 내내 같은 지역에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화석을 품은 두꺼운 누층이 침강하는 기간에만 쌓일 수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같은 종이 같은 공간에서 살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조건, 곧 깊이를 거의 같게 지키려면 퇴적물의 공급이 침강의 양과 거의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침강의 움직임은 흔히 퇴적물이 흘러나오는 지역까지 가라앉히는 쪽으로 기울고, 그리하여 아래로 내려가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동안 그 공급을 줄이게 된다. 실제로 퇴적물의 공급과 침강의 양 사이의 이 거의 정확한 맞아떨어짐은 아마 드문 우연일 것이다. 아주 두꺼운 퇴적층은 대개 위아래 끝 가까이를 빼면 생물 유해가 없다는 것을 한 사람 이상의 고생물학자가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의 누층 더미 전체가 그러하듯 따로 떨어진 각 누층도 대체로 띄엄띄엄 쌓여 온 듯하다. 흔히 그렇듯 광물 구성이 서로 다른 층으로 이루어진 누층을 볼 때, 우리는 퇴적의 과정이 크게 끊겼으리라고 그럴듯하게 짐작할 수 있다. 바다의 흐름이 바뀌고 성질이 다른 퇴적물이 공급되는 것은 대개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지리의 변화에서 비롯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층을 아무리 가까이 들여다보아도 그 퇴적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두께가 몇 피트밖에 되지 않으면서, 다른 곳에서는 몇천 피트 두께로 나타나고 쌓이는 데 엄청난 기간이 걸렸을 누층을 나타내는 층의 사례는 많이 들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얇은 누층이 나타내는 아득한 시간의 흐름을 결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누층의 아래쪽 층이 솟아오르고 깎이고 잠겼다가 다시 같은 누층의 위쪽 층에 덮인 사례도 많이 들 수 있다. 이런 사실은 그 쌓임에 얼마나 넓고도 쉽게 놓치기 쉬운 사이가 있었는지를 보여 준다. 다른 경우에 우리는 자란 그대로 아직 곧추선 커다란 화석 나무에서, 퇴적이 이루어지는 동안 긴 시간의 사이와 높낮이의 변화가 여러 번 있었다는 더없이 또렷한 증거를 얻는다. 나무가 우연히 보존되지 않았더라면 그런 것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라이엘 씨와 도슨 씨18는 노바스코샤에서 1400피트 두께의 석탄기 층을 찾아냈는데, 그 안에는 옛 뿌리를 품은 지층이 68곳이나 되는 서로 다른 높이에 하나씩 포개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같은 종이 어느 누층의 바닥과 가운데와 꼭대기에 나타날 때, 그것들이 퇴적이 이루어진 기간 내내 같은 자리에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같은 지질 시기 동안 아마 여러 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개연성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종이 어느 한 지질 시기 동안 상당한 양의 변화를 겪는다 해도, 어느 한 단면이 내 이론에서 그것들 사이에 존재했음이 틀림없는 고운 중간 등급을 모두 품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갑작스러운, 그러나 아마 아주 가벼운 형태의 변화를 품고 있을 것이다.
박물학자들에게 종과 변종을 가려낼 황금률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은 각 종에 얼마간의 변이성을 인정하지만, 어떤 두 형태 사이에서 그보다 조금 더 큰 양의 차이를 만나면 바싹 놓인 중간 등급으로 그 둘을 이을 수 있지 않은 한 둘 다 종으로 매긴다. 그리고 방금 든 이유로 우리는 어느 한 지질 단면에서 그렇게 잇기를 바라기 어렵다. B와 C가 두 종이고 셋째인 A가 그 아래에 놓인 층에서 발견된다고 하자. 설령 A가 B와 C 사이에 엄밀히 놓인다 해도, 동시에 A가 중간 변종을 거쳐 둘 가운데 어느 하나나 둘 모두와 바싹 이어질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셋째의 구분되는 종으로 매겨질 것이다. 또 앞서 설명한 대로 A가 B와 C의 실제 조상이면서도 구조의 모든 점에서 그 둘 사이에 엄밀히 놓일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누층의 아래쪽과 위쪽 층에서 어버이종과 그 변화한 여러 후손을 얻는다 해도, 수많은 이행 등급을 얻지 못하는 한 그 친족 관계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을 모두 구분되는 종으로 매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고생물학자가 얼마나 지나치게 사소한 차이 위에 제 종을 세웠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다. 표본이 같은 누층의 서로 다른 아단계에서 나온 것이면 그들은 더욱 선뜻 그렇게 한다. 경험 많은 패류학자 몇몇은 이제 도르비니19를 비롯한 이들의 아주 고운 종 가운데 많은 수를 변종의 자리로 낮추고 있다. 그리고 이 견해에 서면 우리는 내 이론에서 마땅히 찾아야 할 그런 종류의 변화의 증거를 실제로 찾아낸다. 더구나 좀 더 넓은 사이, 곧 같은 큰 누층의 구분되지만 잇따르는 단계들에 눈을 돌리면, 파묻힌 화석들이 거의 언제나 종으로서 다르다고 매겨지면서도 더 멀리 떨어진 누층들에서 발견되는 종들끼리보다 훨씬 가깝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러나 이 주제는 다음 장에서 다시 다루어야겠다.
또 하나 짚어 둘 만한 고찰이 있다. 빠르게 번식할 수 있고 그리 멀리 돌아다니지 않는 동물과 식물에서는 앞서 보았듯 그 변종이 대개 처음에는 그 고장에 한정되며, 그런 고장 변종은 상당한 정도로 변화하고 완전해지기 전에는 널리 퍼져 제 어버이 형태의 자리를 빼앗지 않는다고 짐작할 까닭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어느 한 나라의 어느 한 누층에서 두 형태 사이의 이행의 이른 단계를 모두 찾아낼 가망은 작다. 잇따른 변화가 그 고장에 한정되거나 어느 한 자리에 갇혀 있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바다 동물은 대부분 넓은 범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는 식물에서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는 것이 가장 자주 변종을 내놓는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조개를 비롯한 바다 동물에서도 아마 가장 넓은 범위를, 유럽에서 알려진 누층의 경계를 훨씬 넘어서는 범위를 차지해 온 것이 가장 자주 먼저 고장 변종을 낳고 끝내 새 종을 낳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한 누층에서 이행의 단계를 우리가 좇을 수 있는 가망을 다시 크게 줄인다.
오늘날에도 살피기에 완전한 표본을 가지고서도, 여러 곳에서 많은 표본을 거두기 전에는 두 형태가 중간 변종으로 이어져 같은 종임이 증명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화석 종의 경우에 고생물학자가 이를 해내는 일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곱고 중간인 화석 고리로 종들을 이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얼마나 있을 법하지 않은지는 아마 이렇게 스스로 물어볼 때 가장 잘 드러난다. 먼 훗날의 지질학자가 우리의 여러 소 품종, 양 품종, 말 품종, 개 품종이 하나의 혈통에서 내려왔는지 여럿의 본래 혈통에서 내려왔는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또는 북아메리카 해안에 사는 어떤 바다 조개를 두고 어떤 패류학자는 유럽의 대표 형태와 구분되는 종으로 매기고 다른 패류학자는 변종일 뿐이라고 매기는데, 그것이 정말 변종인지 아니면 이른바 종으로서 구분되는 것인지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먼 훗날의 지질학자가 화석 상태로 수많은 중간 등급을 찾아내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며, 그런 성공은 내가 보기에 더없이 있을 법하지 않다.
지질학의 연구는 살아 있는 속과 절멸한 속에 수많은 종을 보태었고 몇몇 무리 사이의 사이를 그러지 않았을 경우보다 좁혀 놓았으나, 수많은 곱고 중간인 변종으로 종들을 이어 그 사이의 구분을 허무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야말로 아마 내 견해에 들이댈 수 있는 많은 반론 가운데 가장 무겁고 가장 뚜렷한 것일 터이다. 그러니 앞의 이야기를 가상의 보기 하나로 간추려 두는 것이 값질 것이다. 말레이 제도는 노스케이프에서 지중해까지, 영국에서 러시아까지의 유럽만 한 크기다. 따라서 아메리카 합중국의 것을 빼면 얼마간이라도 정확하게 살펴진 모든 누층을 합친 것과 맞먹는다. 나는 고드윈오스틴 씨20와 온전히 뜻을 같이한다. 넓고 얕은 바다로 갈라진 수많은 큰 섬을 거느린 오늘날 말레이 제도의 상태는 우리 누층의 대부분이 쌓이던 때 유럽의 옛 상태를 아마 나타낸다는 것이다. 말레이 제도는 생물에서 온 세계에서 가장 풍성한 지역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도 거기서 지금까지 살았던 종을 모두 거둔다 해도 그것들은 세계의 박물학을 얼마나 불완전하게 나타낼 것인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제도의 뭍 생물이 거기서 쌓이고 있다고 우리가 가정하는 누층 속에 지극히 불완전하게 보존되리라 믿을 온갖 까닭이 있다. 엄밀히 물가에 사는 동물이나 벌거벗은 바닷속 바위에 사는 동물은 많이 파묻히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한다. 자갈이나 모래에 파묻힌 것은 먼 시대까지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바다 바닥에 퇴적물이 쌓이지 않는 곳이나, 생물의 몸이 썩지 않도록 지킬 만큼 빠른 속도로 쌓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유해도 보존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의 제도에서 중생대 누층이 과거에 놓인 만큼이나 먼 미래의 시대까지 버틸 만큼 두꺼운, 화석을 품은 누층은 오직 침강하는 기간에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 침강의 기간들은 서로 엄청난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을 것이고, 그동안 그 지역은 그대로 머물러 있거나 솟아오를 것이다. 솟아오르는 동안 화석을 품은 각 누층은, 지금 남아메리카 해안에서 우리가 보듯, 쉼 없는 해안 작용에 쌓이자마자 거의 곧바로 허물어질 것이다. 침강하는 기간 동안에는 아마 생명의 절멸이 많을 것이고, 융기하는 기간 동안에는 변이가 많겠으나 그때 지질 기록은 가장 불완전할 것이다.
제도의 전부나 일부에 걸친 어느 한 큰 침강 기간이 이어진 길이가, 퇴적물이 함께 쌓인 것과 더불어, 같은 종 형태가 이어진 평균 길이를 넘어설지는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 우연들은 어떤 두 종이나 그 이상의 종 사이의 이행 등급을 모두 보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다. 그런 등급이 온전히 보존되지 않는다면 이행 변종은 그저 여러 구분되는 종으로 보일 뿐이다. 또 각 큰 침강 기간이 높낮이의 출렁임으로 끊기고 그렇게 긴 기간 동안 가벼운 기후의 변화가 끼어들 개연성도 있다. 이런 경우에 제도에 사는 것들은 옮겨 가야 했을 것이고, 그 변화의 바싹 잇따른 기록은 어느 한 누층에도 보존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제도에 사는 바다 생물 가운데 아주 많은 수가 지금 그 경계를 몇천 마일이나 넘어 퍼져 있다. 그리고 유추로 미루어 나는 새 변종을 가장 자주 내놓을 것이 주로 이 멀리 퍼진 종이리라 믿는다. 그 변종은 처음에는 대개 그 고장에 한정되거나 한곳에 갇혀 있겠지만, 뚜렷한 이점을 지녔거나 더 변화하고 개량되면 천천히 퍼져 제 어버이 형태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그런 변종이 옛 고향으로 돌아올 때 그것은 예전의 제 상태와 거의 한결같이, 그러나 아마 지극히 가벼운 정도로 다를 터이므로, 많은 고생물학자가 따르는 원칙대로라면 새롭고 구분되는 종으로 매겨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에 얼마간의 참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 누층에서 저 무한한 수의 고운 이행 형태를 찾아내리라 기대할 권리가 없다. 내 이론에서 그것들이 같은 무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든 종을 하나의 길고 가지 뻗은 생명의 사슬로 분명히 이어 왔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다만 몇몇 고리를, 어떤 것은 서로 더 가깝고 어떤 것은 더 먼 고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 고리들은 아무리 가깝다 한들 같은 누층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발견된다면 대부분의 고생물학자에게 구분되는 종으로 매겨질 것이다. 그러나 각 누층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 나타난 종들 사이에서 수없이 많은 이행 고리를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는 난점이 내 이론을 그토록 모질게 짓누르지 않았더라면, 가장 잘 보존된 지질 단면조차 생명의 바뀜에 대해 얼마나 빈약한 기록을 내놓는지를 내가 언젠가 짐작이라도 했으리라고는 주장하지 않겠다.
가까운 종의 무리 전체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어떤 누층에서 종의 무리 전체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그 급작스러움은 여러 고생물학자가, 예컨대 아가시와 픽테가, 그리고 누구보다 세차게 세지윅 교수21가, 종의 변전(變轉)을 믿는 데 치명적인 반론으로 들이댔다. 같은 속이나 같은 과에 속하는 수많은 종이 정말로 한꺼번에 생명 속으로 뛰어들었다면, 그 사실은 자연선택을 거친 느린 변화를 동반한 계승 이론에 치명적일 것이다. 어느 하나의 조상에서 모두 내려온 한 무리의 형태가 펼쳐지는 데에는 지극히 느린 과정이 있었음이 틀림없고, 그 조상들은 변화한 제 후손보다 오랜 시대 앞서 살았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끊임없이 지질 기록의 완전함을 지나치게 높이 치고, 어떤 속이나 과가 어느 단계 아래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이 그 단계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그릇되게 미루어 본다. 우리는 세계가 우리 누층이 정성껏 살펴진 넓이에 견주어 얼마나 큰지를 끊임없이 잊는다. 우리는 종의 무리가 다른 곳에서 오래 존재하며 천천히 불어난 뒤에야 유럽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옛 군도로 밀고 들어왔을 수 있다는 것을 잊는다. 우리는 우리의 잇따르는 누층 사이에 아마 흘렀을, 어떤 경우에는 각 누층이 쌓이는 데 걸린 시간보다 더 길었을 그 엄청난 시간의 사이를 마땅히 헤아리지 못한다. 이 사이는 어느 하나 또는 몇몇 어버이 형태에서 종이 불어날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은 누층에서 그런 종은 갑작스레 창조된 듯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앞서 한 말을 다시 떠올려도 좋겠다. 곧 어떤 생물을 새롭고 독특한 삶의 길에, 예컨대 공중을 나는 일에 맞추는 데에는 긴 시대의 잇따름이 필요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이루어지고 몇몇 종이 그리하여 다른 생물보다 큰 이점을 얻고 나면 널리 빠르게 세계로 퍼질 수 있는 많은 갈라진 형태를 낳는 데에는 견주어 짧은 시간이면 넉넉하리라는 말이다.
이제 이 이야기를 밝혀 줄 보기를 몇 들어, 종의 무리 전체가 갑작스레 만들어졌다고 여기는 데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잘못을 저지르는지 보이겠다. 몇 해 전에 나온 지질학 논고에서 포유류라는 큰 강이 언제나 제3기 계열이 시작될 무렵 갑자기 들어온 것처럼 이야기되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풍성한 화석 포유류 무더기 하나가 중생대 계열의 한가운데에 속한다. 그리고 참된 포유류 하나가 이 큰 계열이 시작될 무렵의 신적색사암에서 발견되었다. 퀴비에22는 어떤 제3기 지층에서도 원숭이가 나오지 않았다고 늘 주장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도와 남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유럽에서는 에오세23 단계까지 거슬러 절멸한 종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고래 무리다. 이 동물은 거대한 뼈를 지녔고 바다에 살며 온 세계에 퍼져 있으므로, 어떤 중생대 누층에서도 고래 뼈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크고 뚜렷이 구분되는 목이 가장 늦은 중생대 누층과 가장 이른 제3기 누층 사이의 사이에 갑작스레 만들어졌다는 믿음을 온전히 정당화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1858년에 나온 라이엘의 《편람》 보유에서, 중생대가 끝나기 얼마 전 상부 녹사암층에 고래가 존재했다는 또렷한 증거를 읽을 수 있다.
내 눈앞을 지나갔기에 나를 크게 놀라게 한 다른 사례를 하나 들겠다. 고착 만각류 화석을 다룬 논문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살아 있는 제3기 종과 절멸한 제3기 종의 수로 보아, 북극 지방에서 적도까지 온 세계에 걸쳐 밀물 윗자락에서 50패덤24까지 여러 깊이의 띠에 살며 많은 종의 개체가 유별나게 많다는 것으로 보아, 가장 오래된 제3기 층에서 표본이 완전하게 보존된다는 것으로 보아, 껍데기 조각 하나만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모든 사정으로 보아, 고착 만각류가 중생대에 존재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보존되고 발견되었으리라고 나는 미루어 보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층에서 한 종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큰 무리가 제3기 계열이 시작될 무렵 갑작스레 펼쳐졌다고 결론지었다. 이것은 내게 쓰라린 괴로움이었다. 큰 종의 무리가 갑작스레 나타난 사례를 하나 더 보태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저작이 나오자마자, 솜씨 있는 고생물학자 보스케25 씨가 벨기에의 백악층에서 몸소 캐낸 틀림없는 고착 만각류의 완전한 표본을 그린 그림을 내게 보내왔다. 그리고 이 경우를 될 수 있는 한 두드러지게 만들려는 듯, 이 고착 만각류는 아주 흔하고 크고 어디에나 있는 속인 Chthamalus였는데, 이 속은 어떤 제3기 지층에서도 아직 표본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고착 만각류가 중생대에 존재했음을 확실히 안다. 그리고 이 만각류는 제3기와 오늘날의 우리 여러 종의 조상이었을 수 있다.
종의 무리 전체가 갑작스레 나타난 듯 보이는 사례로 고생물학자들이 가장 자주 내세우는 것은 백악기의 낮은 자리에 있는 진골어류26다. 이 무리는 살아 있는 종의 큰 다수를 품고 있다. 최근에 픽테 교수는 그 존재를 한 아단계 더 뒤로 밀어 올렸다. 그리고 어떤 고생물학자들은 아직 친연 관계가 불완전하게만 알려진 훨씬 오래된 어떤 물고기가 실제로 진골어류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가시가 믿듯 그것들 모두가 백악층이 시작될 무렵에 나타났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사실은 분명 매우 놀라운 것이기는 하겠으나 내 이론에 넘기 어려운 난점이 되리라고는 나는 보지 않는다. 이 무리의 종이 같은 시기에 온 세계에 걸쳐 갑작스레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까지 아울러 보일 수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적도 남쪽에서 알려진 화석 물고기가 거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픽테의 《고생물학》을 훑어보면 유럽의 여러 누층에서 알려진 종도 아주 적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몇몇 물고기 과는 좁은 범위를 차지한다. 진골어류도 예전에는 그와 비슷하게 좁은 범위를 차지했다가, 어느 한 바다에서 크게 펼쳐진 뒤 널리 퍼졌을 수 있다. 또 세계의 바다가 언제나 지금처럼 남에서 북으로 자유로이 열려 있었다고 여길 권리도 우리에게는 없다. 오늘날에도 말레이 제도가 뭍으로 바뀐다면 인도양의 열대 부분은 크고 완전히 둘러싸인 분지를 이룰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떤 큰 바다 동물 무리든 불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몇몇 종이 더 서늘한 기후에 맞추어져 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쪽 곶을 돌아 다른 먼 바다에 이를 수 있게 될 때까지 거기 갇혀 있을 것이다.
이런 고찰과 그 비슷한 고찰에서, 그러나 주로 유럽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경계 너머 다른 나라의 지질학에 대한 우리의 무지에서, 또 지난 열두 해의 발견만으로도 여러 점에서 우리 고생물학의 관념에 일어난 혁명에서 보건대, 온 세계에 걸친 생물의 잇따름을 두고 우리가 단정하는 것은 어떤 박물학자가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메마른 지점에 5분 동안 내려 보고서 그곳 생물의 수와 범위를 논하는 것만큼이나 성급한 일인 듯하다.
알려진 가장 낮은 화석을 품은 지층에서 가까운 종의 무리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것에 대하여. 이와 가까우면서 훨씬 무거운 난점이 하나 더 있다. 나는 같은 무리의 수많은 종이 알려진 가장 낮은 화석을 품은 바위에서 갑작스레 나타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같은 무리의 살아 있는 모든 종이 하나의 조상에서 내려왔다고 나를 납득시킨 논거의 대부분은 가장 이르게 알려진 종에도 거의 같은 힘으로 들어맞는다. 예컨대 나는 모든 실루리아기27 삼엽충이, 실루리아기보다 훨씬 앞서 살았음이 틀림없고 아마 알려진 어떤 동물과도 크게 달랐을 어떤 하나의 갑각류에서 내려왔음을 의심할 수 없다. 가장 오래된 실루리아기 동물 가운데 Nautilus(앵무조개)와 Lingula(개맛) 같은 것은 살아 있는 종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내 이론에서 이 오래된 종이 자기가 속한 목의 모든 종의 조상이었다고 여길 수는 없다. 그것들은 그 종들 사이에 조금이라도 중간인 형질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들이 이 목들의 조상이었다면, 그것들은 수많고 개량된 제 후손에게 거의 틀림없이 오래전에 밀려나 절멸했을 것이다.
따라서 내 이론이 참이라면, 가장 낮은 실루리아기 지층이 쌓이기 전에 실루리아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사이 전체만큼 긴, 아마 훨씬 더 긴 기간이 흘렀다는 것, 그리고 이 아득하되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시간의 기간 동안 세계에 살아 있는 것들이 우글거렸다는 것은 따질 것도 없다.
어째서 우리가 이 아득한 원시 시기의 기록을 찾아내지 못하는가 하는 물음에 나는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없다. 머치슨 경을 앞세운 여러 뛰어난 지질학자는 우리가 가장 낮은 실루리아기 지층의 생물 유해에서 이 행성에 생명이 밝아 오는 것을 본다고 확신한다. 라이엘과 고(故) 포브스 같은 다른 매우 유능한 판단자들은 이 결론을 다툰다. 우리는 세계의 작은 부분만이 정확하게 알려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랑드28 씨는 최근 실루리아계에 새롭고 독특한 종이 넘치는 더 낮은 단계를 하나 더 보탰다. 바랑드가 이른바 원시 지대라 부른 것 아래 롱민드 층에서 생명의 자취가 발견되었다. 가장 낮은 무생대(無生代) 암석29 가운데 어떤 것에 인산염 단괴와 역청질 물질이 있다는 것은 아마 이 시기에 생명이 존재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내 이론에서 실루리아기 이전에 어딘가에 틀림없이 쌓였을, 화석을 품은 지층의 거대한 더미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 가장 오래된 층이 깎임으로 온통 닳아 없어졌거나 변성 작용으로 지워졌다면, 우리는 나이에서 그다음으로 잇따르는 누층의 작은 나머지만을 찾아야 할 것이고, 그것들은 대체로 매우 변성된 상태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 북아메리카의 드넓은 영토에 걸친 실루리아기 퇴적층에 대해 지금 우리가 가진 기재는, 누층이 오래될수록 극단의 깎임과 변성을 더 많이 겪었다는 견해를 받쳐 주지 않는다.
이 경우는 지금으로서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여기서 품은 견해에 맞서는 타당한 논거로 참되게 들이댈 만하다. 훗날 이것이 어떤 해명을 얻을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나는 다음의 가설을 내놓겠다. 유럽과 아메리카 합중국의 여러 누층에 든 생물 유해가 깊은 곳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그 누층을 이루는 퇴적물의 양이 몇 마일 두께에 이른다는 점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퇴적물이 흘러나온 큰 섬이나 땅덩이가 오늘날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의 이웃에 있었으리라 미루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잇따르는 누층과 누층 사이의 그 사이 동안 사정이 어떠했는지, 곧 유럽과 아메리카 합중국이 그 사이에 마른 뭍으로 있었는지, 퇴적물이 쌓이지 않는 뭍 가까운 바닷속 겉면으로 있었는지, 아니면 열려 있고 바닥을 잴 수 없는 바다의 바닥으로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뭍보다 세 배 넓은 오늘날의 대양을 바라보면 우리는 그것이 수많은 섬으로 점점이 박혀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어떤 고생대 누층이나 중생대 누층의 나머지라도 내놓는 대양의 섬은 아직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마 고생대와 중생대 동안 지금 우리 대양이 펼쳐진 곳에 대륙도 대륙의 섬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미루어 볼 수 있다. 그것들이 거기 존재했다면 그것이 닳고 해진 데서 나온 퇴적물로 고생대 누층과 중생대 누층이 십중팔구 쌓였을 것이고, 이 엄청나게 긴 기간 동안 틀림없이 끼어들었으리라고 우리가 마땅히 결론지을 수 있는 높낮이의 출렁임으로 적어도 얼마쯤은 밀려 올라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에서 무엇이든 미루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 대양이 펼쳐진 곳에는 우리에게 기록이 있는 가장 먼 시기부터 대양이 펼쳐져 있었다고, 다른 한편 지금 대륙이 있는 곳에는 가장 이른 실루리아기 이래로 틀림없이 큰 높낮이의 출렁임을 겪으며 큰 땅덩이가 존재해 왔다고 미루어 볼 수 있다. 산호초를 다룬 내 책에 붙인 색칠한 지도는 나를 이런 결론으로 이끌었다. 곧 큰 대양은 아직도 주로 침강하는 지역이고, 큰 군도는 아직도 높낮이가 출렁이는 지역이며, 대륙은 융기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사정이 영원 이래로 그렇게 머물러 왔다고 가정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가? 우리 대륙은 높낮이가 여러 번 출렁이는 동안 융기하는 힘이 우세했던 덕에 만들어진 듯하다. 그러나 우세한 움직임의 지역이 시대가 흐르는 동안 바뀌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실루리아기보다 헤아릴 수 없이 앞선 시기에 지금 대양이 펼쳐진 곳에 대륙이 존재했을 수 있고, 지금 우리 대륙이 서 있는 곳에 맑고 열린 대양이 펼쳐져 있었을 수 있다. 또 예컨대 태평양의 바닥이 지금 대륙으로 바뀐다면, 실루리아기 지층보다 오래된 누층이 예전에 거기 쌓였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리라고 여기는 것도 정당하지 못할 것이다. 지구 중심에 몇 마일 더 가깝게 가라앉았고 엄청난 무게의 물에 짓눌린 지층이라면, 언제나 겉면 가까이 남아 있던 지층보다 훨씬 많은 변성 작용을 겪었을 법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몇몇 곳에, 예컨대 남아메리카에 있는 벌거벗은 변성암의 드넓은 지역은 큰 압력 아래 달구어졌음이 틀림없는데, 내게는 언제나 어떤 특별한 해명이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아마 우리는 이 넓은 지역에서 실루리아기보다 훨씬 앞선 많은 누층이 온통 변성된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여기서 논한 여러 난점, 곧 잇따르는 누층에서 지금 존재하거나 존재했던 많은 종 사이의 무한히 많은 이행 고리를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 종의 무리 전체가 우리 유럽의 누층에서 나타나는 그 갑작스러움, 지금 알려진 바로는 실루리아기 지층 아래에 화석을 품은 누층이 거의 온통 없다는 것은 모두 의심할 바 없이 가장 무거운 성질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더없이 또렷하게 알아볼 수 있다. 퀴비에·오언·아가시·바랑드·팰코너30·포브스 같은 가장 뛰어난 고생물학자 모두가, 또 라이엘·머치슨·세지윅 같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지질학자 모두가 한목소리로, 때로는 격하게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온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 사람의 큰 권위자인 찰스 라이엘 경이 더 깊이 생각한 끝에 이 주제에 무거운 의심을 품고 있다고 믿을 까닭이 있다. 나는 이 위대한 권위자들과 뜻을 달리하는 것이 얼마나 성급한 일인지 느낀다. 다른 이들과 더불어 우리의 모든 지식을 우리에게 준 이들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지질 기록이 조금이라도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 실린 다른 종류의 사실과 논거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 이들은 의심할 바 없이 곧바로 내 이론을 물리칠 것이다. 나로서는 라이엘의 비유를 따라, 자연의 지질 기록을 불완전하게 간수되고 바뀌어 가는 방언으로 쓰인 세계의 역사로 본다. 이 역사 가운데 우리가 가진 것은 마지막 권 하나뿐이고, 그것도 두세 나라만을 다룬다. 이 권에서도 여기저기 짧은 장만이 보존되었고, 각 쪽에서도 여기저기 몇 줄만이 남았다. 이 역사가 쓰였다고 하는 저 천천히 바뀌는 언어의 낱말 하나하나는 끊긴 채 잇따르는 장마다 얼마간 다른데, 이것이 우리의 잇따르되 널리 떨어진 누층 속에 묻힌, 보기에 갑작스레 바뀐 생명의 형태를 나타낼 수 있다. 이 견해에 서면 위에서 논한 난점은 크게 줄어들거나 아예 사라진다.
주
1. fantail과 pouter — 집비둘기의 사육 품종 이름이다. 1장에서 밝힌 대로 이 품종 이름들은 한국어 통용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없는 이름을 지어내지 않고 원어를 그대로 두었다. fantail은 꼬리깃을 부채처럼 펼치는 품종이고, pouter는 모이주머니를 크게 부풀리는 품종이다.
2. 찰스 라이엘 경 —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 영국의 지질학자로 《지질학 원리》(1830~1833)에서, 지금 눈앞에서 작용하는 힘이 같은 세기로 아득한 시간 동안 작용해 지구의 과거를 만들었다고 논했다. 이 장의 뼈대가 되는 생각이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에 이 책을 들고 갔고 평생 라이엘을 스승으로 여겼다.
3. 휴 밀러와 조던 힐의 스미스 씨 — 휴 밀러(Hugh Miller, 1802~1856)는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이자 저술가로 석공 출신이다. 제임스 스미스(James Smith, 1782~1867)는 글래스고 가까운 조던 힐에 살아 흔히 「조던 힐의 스미스」로 불렸으며, 해안선의 변화와 최근의 바다 퇴적층을 관찰했다.
4. 피트 — 이 장에서 다윈이 쓰는 단위는 모두 영국 단위다. 1피트는 약 30.5센티미터, 1야드는 3피트로 약 91.4센티미터, 1마일은 약 1.61킬로미터, 1인치는 약 2.54센티미터다. 원문의 단위를 그대로 두었다.
5. 층 — 원문은 bed. 이 장에서 다윈은 크기가 다른 켜를 세 낱말로 구별해 쓴다. 누층(formation)은 한 시기에 걸쳐 쌓인 큰 덩어리를, 지층(strata)은 그 안에 켜켜이 앉은 결을, 층(bed)은 그보다 작은 낱낱의 켜를 가리킨다. 여기에 퇴적층(deposit)이 쌓인 자리를 두루 이르는 말로 함께 쓰인다. 다윈의 논증은 이 켜들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이 얼마나 긴가에 걸려 있으므로, 네 낱말을 섞지 않고 옮겼다.
6. 램지 교수 — 앤드루 크롬비 램지(Andrew Crombie Ramsay, 1814~1891). 영국 지질조사소에서 일한 지질학자로 웨일스와 잉글랜드의 층서와 깎임을 연구했다.
7. 고생대 — 원문은 palæozoic. 다윈 당시 지질 시대는 크게 고생대·중생대(Secondary)·제3기(Tertiary)로 나뉘었다. 고생대는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이나 그 아래의 구분과 경계는 그 뒤 여러 번 고쳐졌다.
8. 중생대 — 원문은 secondary. 당시에는 지구의 지층을 제1기·제2기·제3기·제4기로 나누어 부르던 관행이 남아 있었고, 여기서 말하는 제2기(Secondary)는 오늘날의 중생대에 해당한다.
9. 제3기 — 원문은 tertiary. 당시의 구분으로 오늘날의 신생대 가운데 제4기 이전의 시기를 가리켰다. 6장에서도 같은 말이 나왔다.
10. 윌드 — 잉글랜드 남동부에서 노스다운스와 사우스다운스 사이에 놓인 지역이다. 여기서 깎여 나간 누층을 윌든층(Wealden)이라 부른다. 다윈이 이 장에서 계산해 보인 3억 년이라는 숫자는 뒷날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대목이어서 다윈은 3판부터 이 계산을 덜어냈다.
11. 백악층 — 원문은 the Chalk. 잉글랜드 남부에 널리 깔린 흰 석회질 지층으로, 다윈 당시 중생대의 끝을 이루는 누층으로 보았다. 백악기라는 시대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12. 에드워드 포브스 — 에드워드 포브스(Edward Forbes, 1815~1854). 영국의 박물학자로 준설기로 바다 밑을 훑어 수심에 따른 생물 분포를 조사했다. 6장에서도 나왔다. 다윈이 이 책을 쓸 때 이미 세상을 떠나 있었다.
13. Chthamalinæ — 고착 만각류(따개비 무리)의 한 아과다. 다윈은 1846년부터 1854년까지 만각류를 연구해 네 권짜리 논저를 냈고, 이 장에서 그 관찰을 끌어온다. Chthamalus는 그 안의 한 속이며 한국어 통용명이 확립되어 있지 않아 학명만 두었다.
14. 라이엘의 《편람》 보유 — 라이엘의 《기초 지질학 편람》에 1858년 덧붙여 나온 증보판을 가리킨다. 다윈은 이 장에서 이 책을 두 번 끌어온다.
15. 머치슨 경 — 로더릭 임피 머치슨(Roderick Impey Murchison, 1792~1871). 영국의 지질학자로 실루리아계를 세웠고 러시아의 지질을 조사한 큰 저작을 냈다. 그는 끝까지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16. 브론과 우드워드 — 하인리히 게오르크 브론(Heinrich Georg Bronn, 1800~1862)은 독일의 고생물학자로 뒷날 《종의 기원》을 독일어로 옮겼다. 새뮤얼 피크워스 우드워드(Samuel Peckworth Woodward, 1821~1865)는 영국의 박물학자로 연체동물을 연구했다.
17. 빙하기 — 원문은 the Glacial period. 유럽 북부가 얼음에 덮였던 가까운 과거의 시기를 가리켜 당시에 쓰던 말이다. 다윈은 11장에서 이 시기를 자세히 다룬다.
18. 도슨 씨 — 존 윌리엄 도슨(John William Dawson, 1820~1899). 캐나다의 지질학자로 노바스코샤의 석탄기 지층을 라이엘과 함께 조사했다.
19. 도르비니 — 알시드 도르비니(Alcide d'Orbigny, 1802~1857). 프랑스의 박물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남아메리카를 답사했고 화석 연체동물을 아주 잘게 나누어 종을 세웠다.
20. 고드윈오스틴 씨 — 로버트 고드윈오스틴(Robert Godwin-Austen, 1808~1884). 영국의 지질학자로 잉글랜드 남동부의 층서와 옛 지리를 연구했다.
21. 아가시·픽테·세지윅 교수 —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 1807~1873)는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박물학자이며 화석 물고기와 빙하를 연구했다. 프랑수아 쥘 픽테(François Jules Pictet, 1809~1872)는 스위스의 고생물학자로 《고생물학 개론》을 냈다. 애덤 세지윅(Adam Sedgwick, 1785~1873)은 케임브리지의 지질학 교수로 다윈에게 야외 지질학을 가르쳤다. 세 사람 모두 종이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세지윅은 이 책이 나온 뒤 다윈에게 강한 반대의 편지를 보냈다.
22. 퀴비에 —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 프랑스의 박물학자로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을 세웠다. 6장에서도 나왔다.
23. 에오세 — 원문은 the eocene stage. 라이엘이 제3기를 나누며 붙인 이름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에도 같은 이름으로 쓰인다.
24. 패덤 — 물의 깊이를 재는 영국 단위로 1패덤은 6피트, 약 1.83미터다. 50패덤은 약 91미터에 해당한다. 원문의 단위를 그대로 두었다.
25. 보스케 씨 — 조제프 보스케(Joseph Bosquet, 1814~1880).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약제사이자 고생물학자로 화석 갑각류를 연구했다.
26. 진골어류 — 원문은 teleostean fishes. 오늘날 진골어류(Teleostei)라 부르는 무리로, 오늘날 살아 있는 물고기의 대부분이 여기 든다.
27. 실루리아기 — 원문은 Silurian. 머치슨이 세운 구분이며, 다윈 당시에는 화석이 나오는 가장 오래된 시기로 여겨져 오늘날의 캄브리아기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여기 들어 있었다. 따라서 다윈이 말하는 「실루리아기 이전」은 오늘날의 선캄브리아 시대에 해당한다.
28. 바랑드 씨 — 요아힘 바랑드(Joachim Barrande, 1799~1883). 프랑스 태생으로 보헤미아에서 활동한 고생물학자이며, 그곳의 오래된 지층에서 삼엽충을 비롯한 화석을 방대하게 모아 기재했다. 그가 「원시 지대」라 부른 것은 실루리아계 아래에 두었던 가장 낮은 단계다.
29. 무생대 암석 — 원문은 azoic rocks. 생물의 흔적이 없다고 여긴 가장 오래된 암석을 가리켜 당시에 쓰던 말이다.
30. 오언·팰코너 — 리처드 오언(Richard Owen, 1804~1892)은 영국의 해부학자이자 고생물학자로 당대 비교해부학의 권위자였고 6장에서도 나왔다. 휴 팰코너(Hugh Falconer, 1808~1865)는 스코틀랜드의 고생물학자이자 식물학자로 인도 시왈리크 구릉의 화석 포유류를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