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권
1 이성적 영혼의 고유한 특성. 영혼은 자기를 보고, 자기를 마디마디 나누어 살피고, 자기를 원하는 대로 빚는다. 제가 맺은 열매를 제가 거둔다(식물의 열매나 동물에게서 그에 견줄 만한 것은 남들이 거두어 간다). 삶의 끝이 어디서 닥치든 제 목적에 이른다. 춤이나 연극 같은 것은 무언가가 중간에 끊어 버리면 행위 전체가 미완으로 남지만, 영혼은 어느 대목에서 어디서 붙잡히든 제 앞에 놓인 일을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해 놓아서 "내 몫은 다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영혼은 온 우주와 그 둘레의 허공과 우주의 생김새를 두루 돌아보고, 끝없는 시간 속으로 뻗어 나가며, 만물이 주기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을 끌어안아 헤아린다. 그리고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이 더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할 것이고 우리 앞에 간 사람들도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꿰뚫어 본다. 어떤 의미에서 마흔 살 먹은 사람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다면, 모든 것이 한 모양이니 지나간 일과 앞으로 올 일을 이미 다 본 셈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진실함과 염치, 그리고 무엇도 자기보다 귀히 여기지 않는 것 역시 이성적 영혼의 특성이다. 이것은 법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러니 올바른 이성과 정의의 이성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2 흥겨운 노래도, 춤도, 판크라티온 경기도 우습게 보게 될 것이다. 가락 있는 소리를 음 하나하나로 쪼개어 놓고, 하나씩 "내가 이것에 졌는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 된다. 낯이 뜨거워질 테니까. 춤도 동작 하나, 자세 하나마다 그렇게 해 보고, 판크라티온도 마찬가지다. 요컨대 덕과 덕에서 나온 것만 빼고는, 무엇이든 그 낱낱의 부분으로 곧장 달려들어 그것을 쪼개 봄으로써 우습게 여기는 데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같은 일을 삶 전체에도 해 보라.
3 지금 당장 몸에서 풀려나야 한다 해도, 그래서 꺼지든 흩어지든 그대로 남든 해야 한다 해도 이미 준비가 되어 있는 영혼, 그런 영혼은 얼마나 대단한가! 다만 이 준비는 그리스도교도처럼1 그저 맞서고 보자는 고집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판단에서 나와야 한다. 곰곰이 따져 본 끝에, 의연하게, 남도 수긍하게 할 만큼, 비극 배우처럼 요란 떨지 않고.
4 나는 공동체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이득을 보았다. 이 생각이 언제나 손 닿는 곳에 있다가 너를 맞이하게 하라. 그리고 어디서도 멈추지 마라.
5 네 기술은 무엇이냐? 선한 사람이 되는 것. 그런데 원리 없이 이것이 어떻게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한편으로는 우주의 본성에 관한 원리,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고유한 본바탕에 관한 원리 말이다.
6 처음에 비극을 무대에 올린 것은, 사람들이 겪는 일을 떠올리게 하고, 그런 일은 본디 그렇게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 무대 위에서 너희를 사로잡던 일들 때문에 더 큰 무대에서는 괴로워하지 말라고 일러 주기 위해서였다. 너희가 보다시피 그런 일은 그렇게 끝나야 하고, "아, 키타이론이여!"2 하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결국 그것을 견딘다. 극작가들은 쓸모 있는 말도 더러 한다. 특히 이런 말이다. "신들이 나와 내 두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면, / 그것에도 까닭이 있다." 또 "세상일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여문 이삭을 베듯 삶을 거두어야 한다."3 그 밖에 이런 것들. 비극 다음에는 옛 희극이 들어왔다. 옛 희극은 스승처럼 거침없이 말하는 자유를 누렸고, 바로 그 직설로 허영을 부리지 말라고 일깨웠으니 쓸모가 없지 않았다. 디오게네스가 이런 것을 가져다 쓴 것도 비슷한 목적에서였다. 그 뒤의 중기 희극과, 조금씩 흉내 내는 솜씨를 뽐내는 쪽으로 흘러내려 간 마지막 신희극은 대체 무엇을 위해 받아들여졌는지 곰곰이 살펴보라. 이들도 쓸모 있는 말을 더러 한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시와 극작은 통틀어 대체 어떤 목표를 바라보았단 말인가?
7 철학을 하기에 지금 네가 놓인 이 삶의 처지만큼 알맞은 처지는 달리 없다. 이것이 얼마나 또렷하게 와닿는가.
8 옆 가지에서 잘려 나간 가지는 나무 전체에서도 잘려 나갈 수밖에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에게서 갈라져 나온 사람은 공동체 전체에서 떨어져 나간다. 가지는 남이 잘라 내지만, 사람은 이웃을 미워하고 등을 돌려 제 손으로 자기를 떼어 내면서도 그와 동시에 시민 공동체 전체에서 자기를 잘라 냈다는 것을 모른다. 그래도 공동체를 세운 제우스가 준 선물이 하나 있다. 우리는 옆 가지와 다시 붙어 자라 다시 전체를 채우는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갈라섬이 자주 되풀이되면 떨어져 나간 쪽은 다시 하나 되기도, 제자리로 돌아가기도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접붙이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처음부터 함께 돋아나 한 숨결로 붙어 지낸 가지는 잘려 나갔다가 다시 접붙인 가지와 같지 않다. 한 덤불에서 함께 자라라. 그러나 원칙까지 같이할 것은 없다.
9 네가 올바른 이성을 따라 나아갈 때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너를 건전한 행동에서 돌려세우지 못하듯, 너를 그들을 향한 선의에서 밀어내지도 못하게 하라. 두 가지를 똑같이 지켜라. 굳건한 판단과 행동만이 아니라, 너를 막으려 들거나 달리 너를 못마땅해하는 자들을 대하는 온화함도. 겁에 질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물러서는 것이 나약하듯, 그들에게 성을 내는 것도 나약하다. 둘 다 똑같이 대열을 버린 병사다. 하나는 겁이 나서, 다른 하나는 본디 친족이자 벗인 사람을 남처럼 등져서.
10 "어떤 자연도 기술보다 못하지 않다." 기술은 자연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모든 자연 가운데 가장 완전하고 가장 많은 것을 아우르는 자연이 기술의 솜씨에 뒤질 리 없다. 그런데 모든 기술은 더 나은 것을 위해 더 못한 것을 만든다. 그러니 공통의 자연도 그렇다. 바로 여기서 정의가 생겨나고, 정의에서 나머지 덕들이 자리를 잡는다. 우리가 선도 악도 아닌 것에 매달리거나, 쉽게 속고 성급하고 변덕스럽다면 정의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다.
11 좇고 피하느라 너를 어지럽히는 것들이 너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네가 그것들에게 가는 것이라면, 그것들에 대한 판단만이라도 잠잠하게 하라. 그러면 그것들도 가만히 머물 것이고, 너도 좇아가거나 달아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12 영혼은 이럴 때 제 모양을 지킨 둥근 구가 된다. 무엇을 향해 뻗어 나가지도, 안으로 움츠러들지도, 흩어지지도, 주저앉지도 않고, 빛으로 환히 빛나 그 빛으로 만물의 진실과 제 안의 진실을 볼 때.
13 누가 나를 업신여길까? 그건 그가 볼 일이다. 내가 볼 일은 업신여김을 받을 만한 짓이나 말을 하다가 들키지 않는 것이다. 누가 나를 미워할까? 그건 그가 볼 일이다. 나는 누구에게나 선의와 호의를 품을 것이고, 바로 그 사람에게도 그가 놓친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다. 꾸짖듯이 하지도, 내가 참아 주고 있다고 내세우듯이 하지도 않고, 저 포키온4처럼 진심으로, 착하게. 그가 그런 척한 것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속이 이래야 하고, 신들이 보기에도 무엇에도 분개하지 않고 억울해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네가 지금 네 본성에 맞는 일을 하고 지금 우주의 본성에 때맞은 것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길로든 공동의 이익이 이루어지게 하려고 몸을 뻗치고 서 있는 사람인 너에게 무슨 나쁜 일이 있겠는가?
14 서로 업신여기면서 서로 비위를 맞추고, 서로 위에 서려 하면서 서로 앞에 몸을 굽힌다.
15 "나는 너를 꾸밈없이 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얼마나 썩었고 얼마나 가짜인가. 사람아, 무얼 하는 거냐? 그런 말은 미리 할 필요가 없다.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이마에 쓰여 있어야 한다. 목소리에서 곧바로 그렇게 울리고, 눈에서 곧바로 비쳐 나와야 한다. 사랑받는 이가 사랑하는 이들의 눈빛에서 모든 것을 단번에 알아채듯이. 단순하고 선한 사람은 한마디로 암내 나는 사람 같아야 한다. 곁에 다가선 사람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가서자마자 알아챌 수 있도록. 꾸며 낸 단순함은 단검이다.5 늑대의 우정보다 부끄러운 것은 없다. 무엇보다 이것을 피하라. 선하고 단순하고 선의 있는 사람은 그런 것이 눈에 담겨 있어서 숨겨지지 않는다.
16 가장 훌륭하게 사는 힘은 영혼 안에 있다. 선도 악도 아닌 것(adiaphora)을 선도 악도 아닌 것으로 대할 줄 알면 된다. 그렇게 대하려면 그것들 하나하나를 쪼개어 보고 또 통째로 보아야 하며,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자기에 대한 판단을 우리 안에 만들어 넣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가만히 있고, 그것들에 대한 판단을 낳아 이를테면 우리 안에 써 넣는 것은 우리 자신인데, 쓰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다 모르는 사이에 써 넣었다 해도 곧바로 지울 수 있다. 또 이렇게 마음을 써야 할 시간은 잠깐이고, 그 뒤엔 삶이 끝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달리 되어 있다 한들 무엇이 그리 어렵겠는가? 그것이 자연에 따른 것이면 기뻐하고 가볍게 여겨라. 자연에 어긋난 것이면 네 본성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 그쪽으로 서둘러 가라. 명성이 따르지 않더라도. 자기의 선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 용서받는다.
17 저마다 어디서 왔는가. 저마다 어떤 바탕으로 이루어졌는가. 무엇으로 바뀌는가. 바뀌고 나면 어떤 것이 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아무 나쁜 일도 겪지 않으리라는 것.
18 그리고 첫째. 나는 그들과 어떤 관계인가. 우리는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 또 다른 이치로 보면, 나는 숫양이 양 떼 앞에 서고 황소가 소 떼 앞에 서듯 그들 앞에 서도록 태어났다. 더 근본에서부터, 곧 '원자들이 아니라면 전체를 다스리는 자연'이라는 데서부터 짚어 가라. 자연이라면 못한 것은 나은 것을 위해 있고, 나은 것들은 서로를 위해 있다. 둘째. 그들이 식탁에서, 잠자리에서, 그 밖의 자리에서 어떤 사람들인가. 무엇보다 그들이 세워 둔 원칙에 얼마나 꼼짝없이 매여 있는가. 그리고 바로 그런 짓을 얼마나 허영에 차서 하는가.
셋째. 그들이 그런 짓을 옳게 한다면 언짢아할 까닭이 없다. 옳지 않게 한다면 분명 본의 아니게, 몰라서 하는 것이다. 어떤 영혼도 원해서 진리를 잃지 않듯이, 사람을 저마다 합당하게 대하는 능력도 원해서 잃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불의하다, 배은망덕하다, 탐욕스럽다, 한마디로 이웃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자라는 말을 들으면 괴로워한다. 넷째. 너 자신도 잘못을 많이 저지르며, 너도 그들과 같은 부류다. 어떤 잘못은 삼간다 해도 그런 잘못으로 기우는 성향은 너에게도 있다. 비겁해서든, 평판이 신경 쓰여서든, 그 밖의 어떤 나쁜 까닭으로든 비슷한 잘못을 삼가고 있을 뿐이라 해도.
다섯째. 그들이 잘못을 저지르는지조차 너는 확실히 알지 못한다. 많은 일이 사정을 헤아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남의 행동을 두고 확신을 갖고 무어라 말하려면 대체로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여섯째. 몹시 분개하거나 속이 상할 때면, 사람의 삶은 한순간이고 머지않아 우리는 모두 시신이 되어 눕는다는 것. 일곱째.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아니다. 그 행동은 그들의 지도 이성(hēgemonikon) 안에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우리의 판단이다. 그러니 그 판단을 걷어 내라. 끔찍한 일이라는 판단을 놓아 버리기로 마음먹어라. 그러면 화는 이미 떠나고 없다. 어떻게 걷어 내는가? 그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님을 헤아려서. 수치스러운 것만이 악이 아니라면, 너도 잘못을 많이 저지르고 도둑이 되든 무엇이 되든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여덟째. 이런 일 때문에 품는 분노와 괴로움이, 우리가 분노하고 괴로워하는 그 일 자체보다 얼마나 더 혹독한 결과를 불러오는가. 아홉째. 선의는 꺾이지 않는다. 그것이 진짜이고 억지웃음이나 연기가 아니라면. 더없이 오만한 자라도, 네가 끝까지 그에게 선의를 품고 기회가 닿는 대로 부드럽게 타이르며 그가 너를 해치려 드는 바로 그때에 차분히 고쳐 가르친다면, 너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얘야, 그러지 마라. 우리는 다른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 나는 결코 해를 입지 않는다. 해를 입는 것은 너다, 얘야." 그리고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벌들도 그런 짓은 하지 않고 무리 지어 살게 생겨난 어떤 짐승도 그러지 않는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큰 이치에 비추어 보여 주어라. 비꼬거나 나무라듯이 해서는 안 된다. 다정하게, 마음에 가시 없이 해야 한다. 학교에서처럼 훈계하지도 말고, 곁에 선 누군가가 감탄하라고 하지도 마라. 다른 사람들이 둘러서 있더라도 오직 그 사람 하나에게 하라.
이 아홉 가지 머리를 무사 여신들에게서 받은 선물처럼 기억하라.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이제라도 사람이 되기 시작하라. 그들에게 화를 내는 것만큼이나 그들에게 아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둘 다 공동체를 거스르고 해를 부른다. 화가 치밀 때는 이것을 손 닿는 곳에 두어라. 성을 내는 것은 사내다운 일이 아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이 더 사람다운 만큼 더 사내답기도 하며, 힘과 근력과 용기는 분개하고 투덜대는 자가 아니라 이런 사람에게 있다. 흔들림 없음(apatheia)에 가까울수록 힘에도 가깝기 때문이다. 괴로움이 약한 자의 것이듯 분노도 그렇다. 둘 다 상처를 입고 무릎을 꿇은 자들이다.
원한다면 무사 여신들을 이끄는 신에게서6 열째 선물도 받아라. 못된 자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다. 불가능한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남에게는 그렇게 굴도록 내버려 두면서 너에게만은 잘못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몰지각하고 폭군 같은 짓이다.
19 특히 지도 이성이 빗나가는 네 가지 길을 늘 지켜보다가, 잡아내는 대로 지워 버려야 한다. 하나하나에 이렇게 말하면서. "이 인상은 꼭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공동체를 허문다." "이것은 네 속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다." 속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은 더없이 해괴한 일로 여겨라. 넷째는 네가 너 자신을 꾸짖어야 할 일로, 네 안의 더 신성한 부분이 덜 귀하고 죽게 마련인 몫, 곧 몸과 몸의 거칠거나 매끄러운 움직임에 져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20 네 안의 숨과 거기 섞여 든 불의 성분은 모두 본디 위로 오르려 하지만, 그래도 전체의 질서에 따라 여기 이 뭉쳐진 덩어리 속에 붙들려 있다. 네 안의 흙 성분과 물 성분도 모두 본디 아래로 내려가려 하지만, 그래도 일으켜 세워져 제 본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서 있다. 이처럼 원소들조차 어딘가에 억지로 배치되면 전체에 복종하여, 전체에서 다시 해체의 신호가 울릴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킨다. 그런데 네 지성적 부분만 말을 듣지 않고 제자리를 못마땅해한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것에게는 억지로 시키는 일이 하나도 없고 오직 그 본성에 맞는 일만 맡겨지는데도, 그것은 참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내닫는다. 불의와 방종으로, 분노와 슬픔과 두려움으로 쏠리는 움직임은 자연에서 떨어져 나가는 자의 움직임일 뿐이다. 지도 이성은 정의 못지않게 거룩함과 신을 공경하는 일을 위해서도 지어졌으니, 일어난 일 가운데 무엇을 못마땅해할 때에도 지도 이성은 제자리를 버리는 셈이다. 이것들도 공동체를 잘 이루는 일의 한 갈래이며, 아니 오히려 정의로운 행위보다 앞선다.
21 "삶의 목표가 언제나 하나이고 같지 않은 사람은 평생 하나이고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이 말만으로는 모자란다. 그 목표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덧붙이지 않는다면. 대다수가 어떻게든 좋다고 여기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판단이 같지 않고 어떤 특정한 것들, 곧 공동의 것들에 대해서만 같듯이, 목표도 공동체적이고 시민다운 것으로 세워야 한다. 자기의 충동을 모두 이 목표로 곧게 향하게 하는 사람은 모든 행동을 한결같이 해낼 것이고, 그래서 언제나 같은 사람일 것이다.
22 산골 쥐와 집쥐, 그리고 그 쥐가 겁에 질려 허둥대던 꼴.7
23 소크라테스는 뭇사람의 원칙도 라미아라고, 아이들 겁주는 귀신이라고 불렀다.
24 스파르타 사람들은 구경거리가 있을 때 손님에게는 그늘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자기들은 아무 데나 앉았다.
25 소크라테스는 페르디카스8에게 가지 않는 까닭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비참한 파멸로 망하지 않으려고 그런다." 곧, 은혜를 입고도 갚지 못하는 처지가 되지 않으려고.
26 에피쿠로스학파9의 글에, 옛사람 가운데 덕을 실천한 누군가를 끊임없이 떠올리라는 가르침이 있었다.
27 피타고라스학파의 말. 새벽에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늘 같은 법칙을 따라 같은 모양으로 제 일을 해내는 것들을, 그리고 그것들의 질서와 맑음과 벌거벗음을 우리가 떠올리도록. 별에는 아무 가리개도 없다.
28 크산티페가 겉옷을 들고 나가 버려서 소크라테스가 양가죽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을 때의 모습. 그리고 그 차림을 보고 민망해서 물러서는 벗들에게 소크라테스가 한 말.
29 쓰고 읽는 일에서도 먼저 지도를 받아 보지 않고는 남을 지도할 수 없다. 삶에서는 더욱 그렇다.
30 "너는 종으로 태어났다. 네게는 말할 몫이 없다."
31 "내 가슴은 속으로 웃었다."10
32 "그들은 모진 말을 내뱉으며 덕을 탓하리라."11
33 겨울에 무화과를 찾는 것은 미친 사람이 하는 짓이다. 더는 허락되지 않을 때 자식을 찾는 사람이 그렇다.
34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에게 입을 맞출 때는 속으로 "내일 너는 죽을지도 모른다" 하고 되뇌어야 한다고. "그건 불길한 말이다." "자연이 하는 어떤 일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불길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삭을 베어 들인다는 말도 불길하겠지."
35 풋포도, 익은 송이, 건포도. 모두 변화다. 없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없는 것으로.
36 의지를 훔치는 도둑은 없다. 에픽테토스의 말이다.
37 그는 말했다. "동의하는 데에는 기술을 찾아내야 하고, 충동의 영역에서는 주의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 충동이 단서(hypexairesis)를 달고, 공동체를 향하고, 대상의 값어치에 맞게 일어나도록. 욕구는 아예 멀리하고, 기피는 우리에게 달리지 않은 것 어디에도 쓰지 말아야 한다."
38 "그러니 이 싸움은 하찮은 일을 두고 벌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했다. "미치느냐 마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39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는 무엇을 바라느냐? 이성적인 존재의 영혼을 갖기를 바라느냐, 이성 없는 존재의 영혼을 갖기를 바라느냐?" "이성적인 존재의 영혼." "어떤 이성적인 존재 말이냐? 건전한 존재냐, 못된 존재냐?" "건전한 존재." "그러면 왜 그것을 찾지 않느냐?" "이미 있으니까." "그러면 너희는 왜 싸우고 다투느냐?"
주
1. 이 책에서 그리스도교도가 나오는 유일한 대목이다. '그리스도교도처럼'이라는 구절은 후대에 누군가 여백에 적어 넣은 말이 본문에 섞여 들어갔다는 설이 있다.
2.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1391. 제 운명의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가, 갓난아기 때 버려졌던 키타이론산을 부르며 울부짖는 대목이다.
3. 모두 에우리피데스의 전하지 않는 비극에서 나온 구절로, 차례로 《안티오페》, 《벨레로폰테스》, 《힙시필레》의 단편이다. 제7권 41·38·40장에도 인용되었다.
4. 기원전 4세기 아테네의 장군이자 정치가. 억울하게 사형을 선고받고도 아들에게 아테네인을 원망하지 말라고 일렀다고 전한다.
5. 원문 skalmē는 트라키아 사람들이 쓰던 칼이다. 살마시우스는 '굽은 막대기'(skambē)로 고쳐 읽었다. '늑대의 우정'은 양들과 화친하는 척한 늑대의 우화에서 나온 말로, 거짓 우정을 뜻한다.
6. 아폴론을 가리킨다.
7. 이솝 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 호라티우스 《풍자시》 2.6에도 나온다.
8. 마케도니아 왕 페르디카스 2세. 다른 전승에는 소크라테스를 궁정에 부른 이가 그의 아들 아르켈라오스로 되어 있다.
9. 사본에는 '에페소스 사람들'로 되어 있으나, 저본은 17세기 학자 가타커의 추정을 따라 '에피쿠로스학파'로 고쳐 읽었다.
10.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9.413. 오디세우스가 '아무도 아니'라는 거짓 이름으로 키클롭스를 속여 넘기고 속으로 웃는 대목이다.
11. 헤시오도스 《일과 날》 186을 조금 바꾼 구절. 원래는 늙은 부모를 모진 말로 탓하는 자식들을 두고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