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권
1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불경을 저지른다. 우주의 본성은 이성적 동물을 서로를 위해, 곧 저마다 마땅한 만큼 서로 돕되 결코 해치지는 않도록 지었으니, 그 뜻을 어기는 자는 분명히 신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여신1에게 불경을 저지른다. 거짓말하는 자도 같은 여신에게 불경을 저지른다. 우주의 본성은 있는 것들의 본성이고, 있는 것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한 집안 식구처럼 맺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본성은 진리라고도 불리며, 참된 모든 것의 첫째 원인이다.
알면서 거짓말하는 자는 속여서 불의를 저지르는 만큼 불경하다. 모르고 거짓말하는 자도 불경하다. 그는 우주의 본성과 어긋나고, 그 본성과 싸우면서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제 탓으로 참과 반대쪽으로 쏠려 가는 자는 우주와 싸우는 셈이니, 그는 자연에게서 밑천을 미리 받아 두고도 그것을 소홀히 한 탓에 이제는 거짓과 참을 가려내지 못한다. 또 쾌락을 선이라 여겨 좇고 고통을 악이라 여겨 피하는 자도 불경하다. 그런 자는 공통의 자연이 못난 자와 훌륭한 자에게 마땅한 몫과 어긋나게 나눠 준다고 자주 탓할 수밖에 없다. 못난 자는 흔히 쾌락 속에 살면서 쾌락을 낳는 것들까지 손에 넣는데, 훌륭한 자는 고통과 고통을 낳는 일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통을 두려워하는 자는 언젠가 우주에서 일어날 일까지 두려워하게 될 텐데, 그것은 이미 불경이다. 쾌락을 좇는 자는 불의를 멀리하지 못할 텐데, 그것은 누가 보아도 불경이다. 공통의 자연이 똑같이 대하는 것들이 있다. 둘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면 자연은 그 둘을 다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연과 한마음이 되어 그것들을 똑같이 대해야 한다. 고통과 쾌락, 죽음과 삶, 명예와 불명예처럼 우주의 본성이 똑같이 쓰는 것들을 스스로는 똑같이 대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분명히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
공통의 자연이 이것들을 똑같이 쓴다고 나는 말했지만, 풀어 말하면 이렇다. 섭리가 태초에 일으킨 어떤 충동에 따라, 생겨나는 것들과 그 뒤를 이어 생겨나는 것들에게 이것들이 차례대로 똑같이 일어난다. 섭리는 그 충동으로 어떤 시작에서 출발해 지금 이 우주의 질서를 향해 나아갔으니, 장차 있을 것들의 이치를 얼마간 거두어 모으고 존재와 변화와 그런 잇따름을 낳는 힘을 정해 두었다.
2 거짓말과 온갖 위선과 사치와 허영을 맛보지도 않은 채 사람들 곁을 떠난다면, 그것은 더 품위 있는 사람의 몫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런 것들에 물릴 대로 물린 다음 숨을 거두는 것이 그다음으로 좋은 길이다. 아니면 너는 악덕 곁에 눌러앉기로 작정했는가? 겪어 보고도 아직 이 역병에서 달아날 마음이 들지 않는가? 마음이 썩는 것이야말로 역병이며, 우리를 둘러싼 이 공기가 이렇게 탁해지고 뒤바뀌는 것보다 훨씬 더 지독한 역병이다. 공기의 역병은 동물이 동물인 한에서 걸리는 역병이지만, 마음의 역병은 사람이 사람인 한에서 걸리는 역병이다.
3 죽음을 깔보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라. 죽음도 자연이 바라는 일 가운데 하나다. 젊은 시절을 보내고 늙어 가는 것, 자라고 한창때에 이르는 것, 이가 나고 수염이 돋고 머리가 세는 것, 씨를 뿌리고 아이를 배고 낳는 것, 그 밖에 삶의 철마다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일들이 그러하듯 해체되는 것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생각이 깊은 사람은 죽음을 건성으로 대하지도, 성급하게 밀어붙이지도, 거만하게 깔보지도 않고, 자연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로 여겨 기다린다. 지금 네 아내의 배에서 아기가 언제 나올지 기다리듯, 네 작은 영혼이 이 껍데기에서 빠져나올 때를 그렇게 맞이하라. 철학답지는 않아도 가슴에 와닿는 평범한 위안을 원한다면, 네가 곧 떠날 것들이 무엇인지, 네 〈…〉2 더는 어떤 성품들과 뒤섞이지 않게 될지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큼 너를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언짢아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을 돌보고 너그럽게 참아야 한다. 다만 네가 놓여나며 떠나는 이들이 너와 원칙을 같이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만은 기억하라. 너를 거꾸로 끌어당겨 삶에 붙잡아 둘 것이 있다면, 오직 그것 하나, 같은 원칙을 몸에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허락되는 일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는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게 된다. "죽음아, 어서 오너라. 혹시라도 나마저 나 자신을 잊지 않도록."
4 잘못하는 자는 자기에게 잘못한다.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자기에게 불의를 저지른다. 자기를, 바로 자기 자신을 나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5 무언가를 하지 않는 자도 불의를 저지를 때가 많다. 무언가를 하는 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6 지금의 판단이 대상을 확실히 붙잡고, 지금의 행위가 공동체를 위하며, 지금의 마음가짐이 바깥 원인에서 오는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7 인상을 지워라. 충동을 멈춰라. 욕구를 꺼라. 지도 이성(hēgemonikon)을 너 자신의 손에 쥐고 있어라.
8 이성 없는 동물들에게는 하나의 영혼이 나뉘어 있고, 이성적인 동물들에게는 하나의 지성적인 영혼이 나뉘어 있다. 흙으로 된 모든 것에게 땅이 하나이고, 볼 수 있고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의 빛으로 보고 하나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과 같다.
9 무언가 공통된 것을 나누어 가진 것들은 모두 제 동류를 향해 서둘러 간다. 흙에 속한 것은 모두 땅으로 기울고, 물기 있는 것은 모두 한데 흘러 모이며, 공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여서 이것들을 떼어 놓으려면 가로막는 것과 힘이 있어야 한다. 불은 원소인 불 때문에 위로 오르지만, 여기 지상의 모든 불과 함께 타오를 채비가 워낙 되어 있어서, 조금만 더 마른 질료라면 무엇이든 쉽게 불이 붙는다. 불붙는 것을 막는 성분이 덜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통의 지성적 본성을 나누어 가진 것은 모두 그와 같이, 아니 그보다 더 제 동족을 향해 서둘러 간다. 다른 것들보다 뛰어난 만큼, 제게 맞는 것과 섞이고 어우러질 채비도 그만큼 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이성 없는 동물들에게서 벌 떼와 짐승 떼, 새끼 기르기, 사랑 비슷한 것들이 나타났다. 거기에는 이미 영혼이 있었고, 한데 모으려는 힘이 더 높은 것 안에서 더 팽팽해졌으니, 식물이나 돌이나 나무에서는 볼 수 없던 일이다. 이성적인 동물들에게는 나라와 우정, 집안과 모임이 있고, 전쟁 중에도 협정과 휴전이 있다. 그보다 더 뛰어난 것들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떤 하나 됨이 생겨났으니, 별들이 그렇다. 이처럼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도 공감을 빚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라. 지성적인 것들만이 지금 서로를 향한 열의와 끌림을 잊었고, 한데 흘러 모이는 모습이 여기서만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달아나면서도 끝내 붙잡힌다. 자연이 이기니까. 지켜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흙으로 된 것이 다른 흙에 전혀 닿지 않은 채 있는 것을 찾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사람을 찾기보다 더 쉬울 것이다.
10 사람도 신도 우주도 열매를 맺는다. 저마다 제철에 맺는다. 흔히들 열매 맺는다는 말을 포도나무 같은 것에만 제대로 쓰는 말로 굳혀 놓았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 이성도 모두를 위한 열매와 저만의 열매를 맺으며, 이성에게서는 이성 자신과 같은 종류의 다른 것들이 생겨난다.
11 할 수 있다면 가르쳐 바로잡아라. 할 수 없다면, 바로 그럴 때를 위해 너에게 너그러움이 주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라. 신들도 그런 자들에게 너그럽고, 어떤 일에서는, 이를테면 건강이나 재물이나 명성을 얻는 일에서는 거들어 주기까지 한다. 신들은 그만큼 선하다. 너도 그럴 수 있다. 아니라면 말해 보라. 누가 너를 막는가?
12 일하되 비참한 사람처럼 일하지 말고, 동정이나 감탄을 바라는 사람처럼 일하지도 마라. 오직 하나만 바라라. 시민다운 이성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고 멈추는 것.
13 오늘 나는 모든 곤경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모든 곤경을 내던졌다. 곤경은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내 판단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4 이 모든 것은 겪어 보면 뻔하고, 시간으로 보면 하루살이이며, 질료로 보면 더럽다. 지금 모든 것이 우리가 묻은 그 사람들 시절과 똑같다.
15 사물은 문밖에 저 혼자 서 있다. 자기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판정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러면 무엇이 사물에 대해 판정을 내리는가? 지도 이성이다.
16 이성적이고 시민다운 동물의 선과 악은 겪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다. 그 동물의 덕과 악덕이 겪는 데 있지 않고 행하는 데 있는 것과 같다.
17 위로 던져 올린 돌에게는 떨어지는 것이 악도 아니고, 올라가는 것이 선도 아니다.
18 그들의 지도 이성 속으로, 안으로 더 안으로 들어가 보라. 네가 어떤 재판관들을 두려워하는지, 그들이 자기 자신을 두고는 또 어떤 재판관인지 보게 될 것이다.
19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다. 너 자신도 끊임없이 바뀌고 어떤 의미에서는 썩어 가고 있으며, 우주 전체도 그렇다.
20 남의 잘못은 거기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
21 활동이 끝나는 것, 충동과 판단이 멈추는 것은 일종의 죽음이지만 조금도 나쁘지 않다. 이제 나이로 넘어가 보라. 어린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 노년. 그 하나하나가 바뀔 때마다 죽음이었다. 그게 무서운 일이었는가? 이제 할아버지 슬하에서 산 삶으로, 그다음 어머니 슬하의 삶으로, 그다음 아버지 슬하의 삶으로 넘어가 보라. 그 밖에도 무너지고 바뀌고 끝난 일을 숱하게 찾아내거든,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라. 그게 무서운 일이었는가? 그러니 네 삶 전체가 끝나고 멈추고 바뀌는 것도 무서운 일이 아니다.
22 네 지도 이성으로, 전체의 지도 이성으로, 이 사람의 지도 이성으로 달려가라. 네 것으로는 그것을 정의로운 정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체의 것으로는 네가 무엇의 일부인지 함께 떠올리기 위해서, 이 사람의 것으로는 그가 모르고 한 짓인지 뜻을 품고 한 짓인지 살피는 동시에 그 지도 이성이 네 것과 한 핏줄임을 헤아리기 위해서다.
23 너 자신이 시민들이 이룬 짜임을 채우는 한 부분이듯, 네 모든 행위도 시민다운 삶을 채우는 한 부분이 되게 하라. 가깝게든 멀게든 공동체의 목적과 이어져 있지 않은 행위가 있다면, 그 행위는 네 삶을 찢어 하나로 있지 못하게 하고 내분을 일으킨다. 민회에서 저 혼자 그런 화합에서 떨어져 나가는 자와 같다.
24 아이들의 성질부림과 장난, 그리고 "송장을 짊어진 가냘픈 숨들".3 그러니 혼백들이 떠도는 저승 대목4이 한결 생생하게 와닿는다.
25 원인의 성질로 나아가라. 그것을 질료적인 것에서 떼어 윤곽을 그린 다음 들여다보라. 그다음에는 이 고유한 성질을 띤 것(idiōs poion)이 본디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인지 그 한계도 정해 보라.
26 네 지도 이성이 본디 지어진 대로 제 일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 탓에, 너는 숱한 고생을 견뎌 왔다. 그러나 이제 그만.
27 누가 너를 비난하거나 미워하거나, 사람들이 그런 말을 떠들어 대거든, 그들의 작은 영혼에게로 가라. 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자들인지 보라. 그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게 만들려고 네가 애쓸 까닭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들에게 선의를 품어야 한다. 본성상 벗이기 때문이다. 신들도 꿈으로, 신탁으로, 온갖 길로 그들을 돕는다. 다만 그것도 그들이 매달리는 일들을 위해서다.
28 우주의 순환은 늘 같다. 위로 아래로, 영겁에서 영겁으로 돈다. 전체의 마음은 하나하나를 향해 그때그때 움직이거나(그렇다면 그 마음이 움직여 낸 것을 받아들여라), 단 한 번 움직였고 나머지는 그 결과로 뒤따를 뿐이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애를 태우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원자이거나 나뉠 수 없는 것들이다.5 요컨대 신이라면 모든 것이 잘되어 있고, 되는대로라면 너만은 되는대로 하지 마라. 머지않아 흙이 우리 모두를 덮을 것이다. 그다음에는 흙도 바뀌고, 바뀐 것도 끝없이 바뀌며, 그것이 또 끝없이 바뀔 것이다. 물결 위에 물결이 덮치듯 이어지는 변화와 변이, 그리고 그 빠르기를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은 죽어 없어질 모든 것을 깔보게 될 것이다.
29 전체의 실체는 겨울 급류와 같아서 모든 것을 휩쓸어 간다. 정치에 바쁘고, 제 딴에는 철학자답게 일을 처리한다고 믿는 이 하찮은 인간들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콧물투성이들이다. 사람아,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자연이 지금 요구하는 일을 하라. 기회가 주어지면 나서고, 누가 알아줄지 두리번거리지 마라. 플라톤의 《국가》를 바라지 말고,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그것으로 만족하라. 그리고 그 결과마저 대단찮은 일로 여겨라. 그들의 원칙을 누가 바꾸겠는가? 원칙이 바뀌지 않는다면, 신음하면서 따르는 시늉만 하는 자들의 노예살이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자, 이제 알렉산드로스와 필리포스와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6 이야기를 내게 해 보라. 그들이 공통의 자연이 무엇을 바랐는지 알아보고 그에 맞게 스스로를 단련했는지는 그들 자신이 알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비극 배우처럼 굴었다면, 아무도 나에게 그들을 흉내 내라고 판결하지 않았다. 철학이 하는 일은 단순하고 염치 있다. 나를 젠체하는 허영 쪽으로 끌고 가지 마라.
30 높은 데서 내려다보라. 수많은 무리와 수많은 제의를, 폭풍 속에서도 고요 속에서도 이어지는 온갖 항해를, 태어나고 함께 살고 사라지는 것들의 온갖 차이를. 또 오래전 다른 이들이 살았던 삶과, 네 뒤에 살아갈 삶과, 지금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삶을 떠올려 보라. 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곧 잊어버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지금은 어쩌면 너를 칭찬하다가도 머지않아 헐뜯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라. 그리고 기억도 명성도, 그 밖의 무엇도, 다 합쳐 보아야 말할 거리가 못 된다는 것을.
31 바깥 원인에서 오는 일에는 평정(ataraxia)을, 네게서 비롯한 원인으로 하는 일에는 정의를. 곧 충동과 행위가 공동체를 위해 행하는 데서 끝맺게 하라. 그것이 네 본성에 맞기 때문이다.
32 너를 성가시게 하는 것들 가운데 쓸데없는 많은 것은 걷어 낼 수 있다. 모두 네 판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는 곧 너 자신에게 널찍한 자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우주 전체를 생각으로 끌어안고, 끝없는 영원을 헤아리고, 개별 사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곰곰이 생각하면 된다. 태어나서 해체되기까지는 얼마나 짧고, 태어나기 전은 얼마나 아득하며, 해체된 뒤도 똑같이 얼마나 끝이 없는지.
33 네가 보는 모든 것은 곧 사라질 것이고,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도 곧 사라질 것이며, 아주 늙어서 죽은 사람도 일찍 죽은 사람과 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34 이들의 지도 이성은 어떤 것인가, 무엇에 열을 올리고, 무엇 때문에 사랑하고 떠받드는가. 그들의 작은 영혼을 벌거벗겨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라. 헐뜯어서 해를 끼치고 치켜세워서 이익을 준다고 그들이 믿을 때, 그 자만이 얼마나 대단한가.
35 잃는다는 것은 바뀐다는 것일 뿐이다. 우주의 본성은 바로 이것을 기뻐한다. 우주의 본성에 따라 모든 것이 훌륭하게 이루어지고, 영원 전부터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끝없이 그와 같은 다른 것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너는 무슨 말을 하는가? 모든 것이 나쁘게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늘 나쁠 것이며,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이것을 바로잡을 힘은 끝내 하나도 찾지 못했고, 우주는 그칠 줄 모르는 악에 매여 있도록 선고받았다는 말인가?
36 저마다의 밑에 깔린 질료는 썩은 것이다. 물, 먼지, 뼈다귀, 때. 아니면 이렇다. 대리석은 흙의 굳은살이고, 금과 은은 앙금이며, 옷은 털 부스러기, 자줏빛 물감은 피다. 그 밖의 모든 것이 이와 같다. 가냘픈 숨도 그런 것이어서, 이것들에서 저것들로 바뀌어 간다.
37 이 비참한 삶도, 투덜거림도, 원숭이 흉내도 이제 그만. 무엇에 동요하는가? 이 가운데 새로운 게 무엇인가? 무엇이 너를 넋 나가게 하는가? 원인인가? 들여다보라. 질료인가? 들여다보라. 이 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 신들을 대할 때도 좀 더 단순하고 선해져라. 이런 것들을 백 년 동안 보든 삼 년 동안 보든 매한가지다.
38 그가 잘못했다면, 악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는 잘못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39 모든 것은 하나의 지성적인 원천에서 나와 한 몸에서처럼 일어나거나, 원자들뿐이어서 뒤섞였다 흩어질 따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앞의 것이라면 부분은 전체를 위해 일어나는 일을 탓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동요하는가? 너는 네 지도 이성에게 "너는 죽었다, 썩었다, 짐승이 되었다, 연기를 한다, 가축 떼에 섞여 풀이나 뜯는다" 하고 말하겠느냐?
40 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할 수 있거나 둘 중 하나다. 할 수 없다면 왜 기도하는가? 할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이 오지 않게 해 달라거나 오게 해 달라고 빌기보다, 이런 것들 가운데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도 탐하지 않으며 무엇에도 괴로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왜 빌지 않는가? 신들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이런 일에서도 분명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신들은 그런 것을 내게 달린 일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네게 달린 것을 자유롭게 쓰는 편이, 네게 달리지 않은 것을 두고 노예처럼 비굴하게 안달하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또 우리에게 달린 일에서는 신들이 거들지 않는다고 누가 네게 말하던가? 어쨌든 이런 것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해 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저 여자와 잘 수 있을까" 하고 빈다. 너는 "어떻게 하면 저 여자와 자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고 빌어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저자를 떨쳐 낼까" 하고 빈다. 너는 "어떻게 하면 저자를 떨쳐 낼 필요를 느끼지 않을까" 하고 빌어라. 또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잃지 않을까" 하고 빈다. 너는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을까" 하고 빌어라. 한마디로 기도를 이렇게 돌려놓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라.
41 에피쿠로스는 말한다.7 "병들었을 때 나는 이 몸뚱이가 겪는 고통을 두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연에 관해 전부터 다루던 으뜸가는 문제들을 계속 탐구했고, 특히 마음은 살덩이 속의 그런 움직임을 함께 겪으면서도 어떻게 동요하지 않고 제 고유한 선을 지키는가 하는 이 한 가지에 매달렸다." 그는 또 말한다. "의사들에게도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으스댈 빌미를 주지 않았고, 내 삶은 잘, 그리고 훌륭하게 흘러갔다." 그러니 병이 들면 병 속에서, 또 다른 어떤 곤경 속에서도 그가 한 대로 하라. 무슨 일이 닥치든 철학에서 떠나지 않는 것, 자연을 모르는 문외한과 어울려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는 것은 어느 학파에서나 공통된 원칙이다. 오직 지금 하는 일과, 그 일을 하는 데 쓰는 도구에만 마음을 둘 것.
42 누군가의 뻔뻔함에 비위가 상하거든 곧바로 스스로에게 물어라. 세상에 뻔뻔한 자들이 없을 수 있는가? 없을 수 없다. 그러니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마라. 이 사람도 세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그 뻔뻔한 자들 가운데 하나다. 교활한 자, 믿을 수 없는 자, 무슨 잘못이든 저지르는 자를 만날 때도 같은 생각을 늘 손 닿는 곳에 두어라. 그런 부류의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리는 순간, 너는 그들 하나하나에게 더 너그러워질 것이다.
이런 생각도 곧바로 떠올리면 쓸모가 있다. 자연은 이 잘못에 맞서라고 사람에게 어떤 덕을 주었는가? 자연은 몰인정한 자에게 맞설 해독제로 온화함을 주었고, 다른 자에게 맞설 다른 힘도 주었다. 무엇보다 너는 길을 잃은 자를 가르쳐 바로잡을 수 있다. 잘못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제 과녁을 빗나가 길을 잃은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가 무슨 해를 입었는가? 네가 화를 내는 이들 가운데 네 마음을 더 나쁘게 만들 만한 짓을 한 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너는 알게 될 것이다.
너에게 나쁜 것, 해로운 것은 온전히 바로 그 마음에 터를 두고 있다. 못 배운 자가 못 배운 자의 짓을 한다고 해서 새롭거나 이상한 일이 무엇인가? 이 사람이 이런 잘못을 저지를 줄 내다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너 자신을 탓해야 하지 않는지 살펴보라. 너에게는 이성에게서 얻은 밑천이 있어서 이 사람이 이런 잘못을 저지를 법하다고 짐작할 수 있었는데도, 그것을 잊고서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놀라고 있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믿을 수 없다거나 은혜를 모른다고 탓할 때는 너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라. 잘못은 뻔히 네게 있다. 그런 됨됨이를 지닌 자가 신의를 지키리라 믿었거나, 호의를 베풀면서 베푸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고 베푸는 행위 자체에서 곧바로 열매를 모두 거두었다고 여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잘해 주고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네 본성에 맞게 무언가를 했다는 것으로 모자라서 그 대가까지 찾는가? 눈이 본다고 해서 보상을 요구하고, 발이 걷는다고 해서 보상을 요구하는 꼴이다. 눈과 발은 저마다 할 일이 있어 생겼고, 제 본바탕대로 그 일을 하면 제 몫을 다 받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남에게 좋은 일을 하도록 태어났으니, 좋은 일을 하거나 그 밖에 선도 악도 아닌 것들에서 남을 거들었다면 그는 자기가 지어진 목적대로 한 것이고, 제 몫을 이미 받았다.
주
1. 우주의 본성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physis(자연)가 여성 명사여서 여신이라 했다.
2. 원문 탈문. 흔히 '영혼'을 보충해 '네 영혼이'로 읽는다.
3. 에픽테토스의 말을 끌어 쓴 것이다. 4.41에서는 '숨' 대신 '작은 영혼'으로 인용했다.
4.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제11권. 오디세우스가 죽은 자들의 혼을 불러내 만나는 대목으로, 흔히 '네키아'라 부른다.
5. 이 대목은 원문이 손상되어 뜻이 분명하지 않다.
6. 기원전 4세기 말의 아테네 정치가이자 철학자. 마케도니아의 후원을 받아 십 년 동안 아테네를 다스렸다.
7. 에피쿠로스의 편지에서 따온 것으로 전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