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권
1 새벽에 일어나기 싫어 꾸물거릴 때는 이 생각을 곁에 두어라. 나는 사람의 일을 하러 일어난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태어났는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나왔는지, 바로 그 일을 하러 가는데 왜 언짢아하는가? 아니면 나는 이불 속에 누워 몸이나 데우라고 만들어졌는가? "하지만 이쪽이 더 즐겁다." 그렇다면 너는 즐기려고 태어났느냐? 한마디로, 너는 가만히 겪으려고 태어났느냐, 움직여 행하려고 태어났느냐? 작은 풀과 작은 새, 개미와 거미와 벌이 저마다 제 일을 하며 힘을 모아 제 몫만큼 세상의 질서를 짜 맞추는 모습이 보이지 않느냐? 그런데 너는 사람의 일을 하기 싫다는 거냐? 네 본성에 맞는 일로 달려가지 않겠다는 거냐? "하지만 쉬기도 해야 한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자연은 쉬는 데에도 한도를 정해 주었고, 먹고 마시는 데에도 한도를 정해 주었다. 그런데도 너는 한도를 넘고 넉넉한 정도를 넘어서면서, 일에서만은 그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에도 미치지 못한다. 너는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네 본성도, 본성이 바라는 것도 사랑할 테니까. 제 기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씻지도 먹지도 않고 그 일에 매달려 몸이 닳는다. 그런데 너는 금속에 무늬를 새기는 장인이 제 기술을, 춤꾼이 춤을, 돈을 밝히는 자가 돈을, 허영에 들뜬 자가 보잘것없는 명성을 아끼는 것보다도 네 본성을 덜 아끼느냐? 이들은 한번 빠져들면 먹고 자는 것보다 자기가 매달린 것을 불려 나가기를 더 바란다. 그런데 너에게는 공동체를 위한 행동이 그보다 값싸 보이고 덜 애쓸 만해 보이느냐?
2 성가시거나 낯선 인상(phantasia)은 무엇이든 밀어내고 지워 버리고, 곧바로 더없이 잔잔해지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3 본성에 맞는 말과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네가 할 만하다고 여겨라. 그 뒤에 따라오는 누군가의 비난이나 뒷말에 휘둘리지 마라. 하는 일이나 하는 말이 훌륭하다면, 너 자신을 그럴 자격이 없다고 깎아내리지 마라. 저들에게는 저들의 지도 이성(hēgemonikon)이 있고, 저들은 저들의 충동을 따른다. 너는 그런 것을 기웃거리지 말고, 네 본성과 공통의 자연을 따라 곧은길을 끝까지 걸어가라. 두 길은 하나다.
4 나는 자연에 맞는 일들을 거치며 내 길을 간다. 쓰러져 쉴 때까지. 날마다 들이쉬는 그 공기 속으로 마지막 숨을 내쉬고, 아버지가 씨를, 어머니가 피를, 유모가 젖을 거두어 얻은 그 땅 위에 쓰러질 때까지. 그 땅에서 나는 이 많은 해 동안 날마다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는다. 그 땅은 자기를 짓밟고 온갖 일에 마구 써 대는 나를 떠받쳐 준다.
5 사람들이 네 재치가 날카롭다고 감탄할 일은 없다. 그렇다 치자. 그러나 "나는 그렇게 타고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그 밖에도 많다. 그러니 온전히 너에게 달린 그것들을 보여 주어라. 속임 없는 정직, 진중함, 고생을 견디는 끈기, 쾌락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제 몫을 탓하지 않는 마음, 적은 것으로 넉넉해하는 마음, 너그러움, 자유로움, 군더더기 없는 소박함, 허튼소리 하지 않는 입, 큰 도량을. 타고난 재주가 없다거나 맞지 않는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 것을 지금 당장 얼마나 많이 보여 줄 수 있는데도 네가 아직 제 발로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을 모르겠느냐? 아니면 타고난 바탕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투덜대고, 옹졸하게 굴고, 아첨하고, 하찮은 몸뚱이를 탓하고, 비위를 맞추고, 허세를 부리며, 영혼이 이토록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냐? 신들에게 맹세코, 그렇지 않다. 너는 진작 이런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굳이 흠을 잡힌다면, 기껏해야 조금 굼뜨고 알아듣는 것이 더디다는 말을 들을 뿐이었다. 그것마저 갈고닦아야 한다. 굼뜬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도 말고, 오히려 즐기지도 말고.
6 어떤 사람은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고 나면 곧바로 그것을 상대에게 베푼 은혜로 셈해 둔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까지 서두르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빚진 사람처럼 여기고 자기가 무엇을 해 주었는지 잊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어찌 보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그는 포도송이를 맺은 포도나무와 같다. 포도나무는 제 열매를 한 번 맺고 나면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달리기를 마친 말, 짐승의 자취를 쫓은 개, 꿀을 만든 벌, 그리고 좋은 일을 한 사람은 그것을 떠벌리지 않고 다음 일로 넘어간다. 철이 오면 다시 포도송이를 맺으러 가는 포도나무처럼. 그러니 너도 어찌 보면 자기가 하는 줄도 모르고 그 일을 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래, 하지만 바로 그것은 알아차려야 한다. 공동체적인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공동체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느끼는 데 있고, 제우스에 맹세코, 함께하는 이도 그것을 느끼기를 바라는 데 있다고 하지 않느냐." 네 말이 옳다. 그러나 너는 지금 한 말을 잘못 알아듣는다. 그러면 너는 내가 앞에서 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들도 그럴듯한 논리에 끌려 길을 잘못 든다. 지금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면, 그 때문에 공동체를 위한 일을 하나라도 빠뜨리게 될까 봐 두려워하지 마라.
7 아테네인의 기도. "비를 내리소서, 비를 내리소서, 사랑하는 제우스여, 아테네인의 밭과 들 위에." 기도는 아예 하지 말든지, 하려면 이렇게 소박하고 떳떳하게 해야 한다.
8 "아스클레피오스1가 이 사람에게 말 타기나 냉수욕이나 맨발로 걷기를 처방했다"는 말이 있다. "우주의 본성이 이 사람에게 병이나 불구나 상실이나 그 밖의 그런 일을 처방했다"는 말도 그와 같다. 앞의 말에서 '처방했다'는 대략 이런 뜻이다. 이 사람의 건강에 맞는 것으로 이것을 정해 주었다는 것. 뒤의 말에서도 마찬가지로, 저마다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의 운명에 맞는 것으로 어떻게든 그에게 정해져 있다.
우리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symbainein)'고 말하는 것도, 석공들이 성벽이나 피라미드의 네모난 돌들이 일정한 짜임새로 서로 맞물리는 것을 두고 돌들이 '들어맞는다(symbainein)'고 말하는 것과 같은 뜻이다.2 모든 것을 통틀어 조화는 하나뿐이다. 우주가 모든 물체로 채워져 그런 하나의 물체가 되듯이, 운명도 모든 원인으로 채워져 그런 하나의 원인이 된다.
내 말은 배운 것 하나 없는 사람들도 알아듣는다. 그들도 "이 일이 그에게 올 몫이었다"고 말하니까. 그렇다면 이 일은 이 사람에게 오게 되어 있었고, 이 사람에게 처방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런 일을 아스클레피오스의 처방처럼 받아들이자. 그 처방에도 쓰라린 것이 많지만, 우리는 건강해지리라는 희망으로 그것을 반긴다.
공통의 자연이 좋다고 여긴 일이 이루어지고 완성되는 것을 네 건강과 같은 것으로 여겨라. 그리고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 좀 가혹해 보이더라도 반가이 맞아라. 그 일이 너를 그곳으로, 곧 우주의 건강으로, 제우스가 순탄하게 나아가고 하는 일마다 잘되는 쪽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전체에 이롭지 않았다면 그 일은 누구에게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본성이라도 자기가 다스리는 것에 맞지 않는 것을 가져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두 가지 이유에서 너에게 일어나는 일을 달게 받아야 한다. 하나는 그 일이 너에게 일어났고, 너에게 처방되었고, 어떻게든 너와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맨 처음의 가장 오랜 원인들에서부터 실처럼 함께 자아져 내려왔다. 또 하나는 저마다에게 따로 찾아오는 일도 전체를 다스리는 이에게는 그가 순탄하게 나아가고 일을 완성하는 원인, 제우스에 맹세코, 그가 존속하는 원인 자체이기 때문이다. 부분들이 그렇듯 원인들도, 서로 맞닿고 이어진 것을 조금이라도 잘라 내면 전체는 온전하지 못하고 불구가 된다. 그런데 너는 불평할 때마다 네 힘이 미치는 만큼 그것을 잘라 내고, 어찌 보면 없애 버린다.
9 올바른 원칙에 따라 하나하나 행하는 일이 늘 이어지지 않는다고 역겨워하지도, 지쳐 손을 놓지도, 낙담하지도 마라. 밀려나면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이 대체로 사람다우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네가 돌아가는 그 일을 사랑하라. 철학에 돌아갈 때는 훈육 선생에게 돌아가듯 하지 말고, 눈병 난 사람이 해면과 달걀을 찾아가듯, 누구는 고약을, 누구는 더운물 찜질을 찾아가듯 하라. 그러면 이성에 따르는 것을 내세울 일 없이 이성에 기대어 쉬게 될 것이다. 철학은 네 본성이 바라는 것만을 바란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런데 너는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것을 바랐다. "이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어디 있는가?" 쾌락이 우리를 넘어뜨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그러니 큰 도량, 자유, 소박함, 어진 마음, 거룩함이 더 기분 좋지 않은지 살펴보라. 이해하고 아는 힘이 어떤 일에서도 걸려 넘어지지 않고 순조롭게 흘러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별 그 자체보다 더 기분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10 사물은 어찌 보면 너무 깊이 감싸여 있어서, 적지 않은 철학자들, 그것도 범상치 않은 이들에게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스토아학파 사람들에게도 파악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내리는 동의(synkatathesis)는 모두 바뀔 수 있다. 한 번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번에는 대상 자체로 옮겨 가 보라. 얼마나 잠깐이고 하찮은지, 남창이나 창녀나 강도의 손에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그다음에는 함께 사는 사람들의 됨됨이로 옮겨 가 보라. 그중 가장 상냥한 사람조차 견디기 힘들다. 사람이 자기 자신조차 겨우 참아 낸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런 어둠과 오물 속에서, 실체와 시간과 운동과 움직이는 것들이 이토록 흘러가는 가운데, 높이 칠 만한 것이나 애써 좇을 만한 것이 대체 무엇이 있는지 나는 짐작조차 못 하겠다. 오히려 스스로를 달래며 자연스러운 해체를 기다려야 한다. 늦어진다고 안달하지 말고, 오직 이 두 가지에 기대어 쉬어라. 하나는 이것이다. 우주의 본성에 맞지 않는 일은 나에게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이것이다. 나는 내 신이자 신령을 거스르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을 수 있다. 나더러 그를 거스르라고 강요할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11 나는 지금 내 영혼을 무엇에 쓰고 있는가? 일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묻고 따져 보라. 사람들이 지도 이성이라고 부르는 이 부분에 지금 무엇이 들어 있는가? 지금 나는 누구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가? 어린아이의 영혼인가? 풋내기 청년의 것인가? 가냘픈 여인의 것인가? 폭군의 것인가? 가축의 것인가? 들짐승의 것인가?
12 많은 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어떤 것인지는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누군가 분별, 절제, 정의, 용기처럼 참으로 좋은 것을 먼저 마음에 떠올린다면, 그다음에 '좋은 것이 하도 많아서'라는 말을 듣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먼저 떠올린 사람은 희극 시인이 한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제법 잘 들어맞는 말이라며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3 이렇듯 많은 사람도 그 차이를 어렴풋이 느낀다. 그렇지 않다면, 앞의 경우에는 그 말이 거슬려 물리치면서, 부나 사치나 명예를 가져다주는 행운을 두고 할 때는 우리가 그 말을 적절하고 재치 있다며 받아들일 리가 없다. 그러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어보라. 먼저 떠올리고 나면 그것을 가진 사람은 하도 넉넉해서 '똥 눌 데도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좋은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13 나는 원인적인 것과 질료적인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둘 가운데 어느 것도 없음에서 생겨나지 않았듯이, 어느 것도 사라져 없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내 모든 부분은 변화를 거쳐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것은 다시 우주의 다른 어떤 부분으로 바뀌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도 그런 변화를 거쳐 생겨났고 나를 낳은 이들도 그랬으며,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끝없음에 이른다. 우주가 정해진 주기에 따라 다스려진다 해도 이렇게 말하지 못할 까닭은 없다.
14 이성과 이성의 기술은 그 자체로, 또 저마다의 일에 넉넉한 힘이다. 둘은 제 출발점에서 움직이기 시작해 앞에 놓인 목적을 향해 길을 간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바른 행동(katorthōsis)'이라고 부른다. 길이 곧다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15 사람이 사람인 한 사람에게 속하지 않는 것은 어느 것도 사람의 것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런 것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본성이 약속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의 본성을 완성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사람의 목적도 그 안에 있지 않고, 목적을 채워 주는 것, 곧 선도 그 안에 있지 않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면, 그것을 깔보고 거스르는 일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이 아쉽지 않은 사람이 칭찬받을 리도 없고, 그런 것을 스스로 덜어 내는 사람이 선할 리도 없다. 그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이 이런 것이나 이와 비슷한 다른 것을 스스로에게서 많이 덜어 낼수록, 또는 그중 무엇을 빼앗기고도 잘 견딜수록 그만큼 더 선하다.
16 무엇을 자주 떠올리느냐에 따라 네 마음은 그와 같아진다. 영혼은 인상에 물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인상을 끊임없이 떠올려 영혼을 물들여라. 이를테면 이렇다. 살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서 잘 살 수도 있다. 궁정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궁정에서도 잘 살 수 있다. 또 이렇다. 모든 것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든 그쪽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는 그곳에 그것의 목적이 있으며, 목적이 있는 곳에 저마다의 이익과 선도 있다. 그러므로 이성적 동물의 선은 공동체다.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은 오래전에 이미 밝혀졌다. 못한 것은 나은 것을 위해 있고, 나은 것은 서로를 위해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영혼 없는 것보다 영혼 있는 것이 낫고, 영혼 있는 것 가운데서는 이성적인 것이 낫다.
17 불가능한 것을 좇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런데 못된 자들이 그런 짓을 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18 누구에게도 타고난 힘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똑같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도, 그는 그 일이 일어난 줄 몰라서든 큰 도량을 내보이려 해서든, 흔들림 없이 다치지 않고 버틴다. 무지와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분별보다 강하다니, 기막힌 노릇이다.
19 사물 자체는 어떻게도 영혼에 닿지 못한다. 영혼으로 들어갈 길도 없고, 영혼을 돌려세우거나 움직일 수도 없다. 영혼을 돌리고 움직이는 것은 영혼 자신뿐이다. 그리고 영혼은 자기가 어떤 판단을 내릴 만하다고 여기느냐에 따라, 바깥에 놓인 것들을 그와 같은 것으로 만든다.
20 한편으로 사람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존재다. 우리가 그들에게 잘해 주고 그들을 참아 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어떤 이들이 내 본분의 일을 가로막는 한, 사람은 내게 해나 바람이나 들짐승과 다를 바 없이 선도 악도 아닌 것(adiaphora)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들 때문에 어떤 행동은 가로막힐 수 있다. 그러나 내 충동과 마음가짐은 가로막히지 않는다. 단서(hypexairesis)를 달아 두고 방향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행동을 가로막는 것을 무엇이든 돌려서 제가 앞세운 목적 쪽으로 옮겨 놓는다. 그래서 일을 멈추게 하던 것이 일을 밀어 주고, 길을 막던 것이 길을 열어 준다.
21 우주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받들어라. 그것은 모든 것을 부리고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네 안에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을 받들어라. 그것은 앞의 것과 같은 종류다. 네 안에서도 나머지를 부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고, 네 삶을 다스리는 것도 그것이다.
22 도시에 해롭지 않은 것은 시민도 해치지 않는다. 해를 입었다는 인상이 들 때마다 이 잣대를 대 보라. 이 일로 도시가 해를 입지 않았다면 나도 해를 입지 않았다. 도시가 해를 입었다면 화낼 것이 아니라, 도시를 해친 사람에게 그가 무엇을 놓쳤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
23 있는 것과 생겨나는 것이 얼마나 빨리 흘러 지나가고 사라지는지 자주 생각하라. 실체는 강물처럼 쉼 없이 흐르고, 작용은 끊임없이 바뀌고, 원인은 수없이 모습을 바꾼다. 멈춰 서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바로 곁에 있는 것조차 그렇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은 끝없이 입을 벌린 심연이어서 모든 것이 그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니 이런 것들 가운데서 우쭐대거나 이리저리 끌려다니거나, 무엇이 오래도록 자기를 괴롭힌다며 한탄하는 사람이 어찌 어리석지 않겠는가?
24 실체 전체를 기억하라. 너는 그 가운데 아주 작은 몫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시간 전체를 기억하라. 너에게는 그 가운데 짧은 한순간이 떼어 주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운명을 기억하라. 너는 그 운명의 몇 분의 일이나 되는가?
25 누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가? 그건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에게는 그의 마음가짐이 있고 그의 행동이 있다. 나는 지금 공통의 자연이 내가 지니기를 바라는 것을 지니고, 내 본성이 지금 내가 하기를 바라는 것을 한다.
26 네 영혼의 지도 이성, 곧 주인 노릇 하는 부분은 살에서 일어나는 부드럽거나 거친 움직임에 흔들리지 않게 하라. 그것과 뒤섞이지 말고 스스로 경계를 긋게 하고, 그런 느낌들은 그것이 생긴 몸의 부분 안에 가두어 두게 하라. 그러나 하나로 이어진 몸에서 흔히 그렇듯 그 느낌들이 또 다른 감응을 타고 마음까지 올라오면, 그때는 자연스러운 감각이니 거스르려 하지 마라. 다만 지도 이성이 거기에 좋다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스스로 덧붙이지 않게 하라.
27 "신들과 함께 살아라." 신들과 함께 사는 사람은, 자기 영혼이 제 몫으로 받은 것에 만족하고 제우스가 저마다에게 보호자이자 길잡이로 준 신령이 바라는 것을 모두 행한다는 것을 신들에게 늘 보여 주는 사람이다. 그 신령은 제우스가 자기 자신에게서 떼어 낸 한 조각이다. 그것은 저마다의 정신이자 이성이다.
28 겨드랑이에서 냄새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느냐? 입 냄새 나는 사람에게 화가 나느냐? 그가 너에게 어쩌겠느냐? 입이 그렇고 겨드랑이가 그러니, 그런 데서 그런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이성이 있으니 주의를 기울이면 자기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알 수 있지 않으냐." 누가 이렇게 말한다. 잘됐구나. 그렇다면 너에게도 이성이 있다. 너의 이성적인 마음가짐으로 그의 이성적인 마음가짐을 움직여라. 보여 주고 일깨워 주어라. 그가 알아듣는다면 너는 그를 고칠 것이고 화낼 필요는 없다. 비극 배우도 아니고 창녀도 아니다.4
29 이곳을 떠나서 살려고 마음먹은 그대로 여기서도 살 수 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도록 두지 않거든 그때는 삶에서 떠나라. 다만 아무 해도 입지 않은 사람처럼 떠나라. "연기가 차니 나는 나간다."5 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느냐? 그러나 그런 일이 나를 내보내지 않는 한 나는 자유롭게 머문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인 동물의 본성에 맞는 일이다.
30 전체의 정신은 공동체적이다. 그래서 못한 것은 나은 것을 위해 만들었고, 나은 것은 서로 어울리도록 짜 맞추었다. 보라. 그것은 어떤 것은 아래에 두고 어떤 것은 나란히 놓았으며, 저마다에게 그 값어치에 맞는 몫을 나누어 주었고, 가장 뛰어난 것들을 서로 한마음이 되도록 모아 놓았다.
31 너는 지금까지 신들과 부모와 형제와 아내와 자식과 스승과 너를 길러 준 이들과 벗과 친척과 종들을 어떻게 대해 왔는가? 지금까지 그 모두에게 "누구에게도 도리에 어긋난 짓을 한 적도,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할 수 있는지 살펴라.6 그리고 떠올려 보라. 네가 무엇을 겪어 왔고 무엇을 견뎌 낼 수 있었는지, 네 삶의 이야기는 이미 다 채워졌고 네 소임도 이미 끝났다는 것,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지, 얼마나 많은 쾌락과 고통을 내려다보았고 얼마나 많은 영광을 그냥 지나쳤는지, 몰인정한 이들을 얼마나 여러 번 어질게 대했는지를.
32 솜씨 없고 무지한 영혼들이 왜 솜씨 있고 아는 영혼을 어지럽히는가? 그러면 솜씨 있고 아는 영혼이란 어떤 영혼인가? 시작과 끝을 알고, 실체 전체를 꿰뚫고 흐르며 영원한 시간 내내 정해진 주기에 따라 만물을 다스리는 이성을 아는 영혼이다.
33 머지않아 너는 재나 해골이 되고, 이름만 남거나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이름이라야 소리이고 메아리일 뿐이다. 살면서 그토록 귀하게 여기는 것들은 텅 비고 썩었고 하찮다. 서로 물어뜯는 강아지들이고, 다투다가 웃다가 금세 우는 아이들이다. 믿음과 염치와 정의와 진실은 "길 넓은 땅을 떠나 올림포스로" 가 버렸다.7 그렇다면 아직도 너를 여기 붙들어 두는 것은 무엇인가? 감각되는 것들은 쉽게 변하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감각 기관은 흐릿해서 그릇된 자국이 쉽게 찍힌다. 작은 영혼 자체도 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일 뿐이고, 그런 자들에게서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은 헛되다. 그래서? 꺼지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든, 평온하게 그때를 기다리면 된다. 그때가 오기까지는 무엇이면 넉넉한가? 신들을 받들고 찬미하며,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그들을 견디고 삼가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 하찮은 살덩이와 숨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네 것도 아니고 너에게 달린 것도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34 너는 언제나 삶이 순조롭게 흐르게 할 수 있다. 바른길을 갈 수 있고 바른길을 따라 판단하고 행할 수 있다면 말이다. 신의 영혼에도, 사람의 영혼에도, 모든 이성적 동물의 영혼에도 공통된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다른 것에 가로막히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행동 속에 자기 선을 두고 욕구를 거기서 그치게 하는 것이다.
35 이것이 내 악덕도 아니고 내 악덕에서 나온 행동도 아니며 공동체가 해를 입는 것도 아니라면, 나는 왜 이 일로 애태우는가? 공동체에 무슨 해가 있는가?
36 인상에 통째로 휩쓸리지 마라. 힘닿는 대로, 마땅한 만큼 도와라. 사람들이 선도 악도 아닌 것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하라. 다만 그것을 해를 입은 것으로 여기지는 마라. 그건 나쁜 버릇이다. 저 노인이 떠나면서 수양아들의 팽이를 달라고 하면서도 그것이 팽이일 뿐임을 잊지 않았듯이, 여기서도 그렇게 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는 연단에 서서 울부짖는 꼴이 된다. 사람아, 이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잊었느냐? "그렇지.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몹시 소중한 것이다." 그렇다고 너까지 어리석어져야 하느냐? 나는 한때, 어디서 무엇에 붙들리든 운 좋은(eumoiros) 사람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좋은 몫(moira)을 나누어 주었다는 뜻이다. 좋은 몫이란 영혼의 좋은 방향, 좋은 충동, 좋은 행동이다.8
주
1. 의술의 신. 그리스어 synetaxe는 '처방했다'와 '함께 짜 맞추었다'를 함께 뜻한다.
2. 그리스어 symbainein은 '일어나다'와 '서로 들어맞다'를 함께 뜻한다. 이 장 뒤쪽의 '가져오다(pherein)'와 '이롭다(sympherein)'도 같은 말놀이다.
3. 어느 희극의 대사로, 마르쿠스는 머리와 끝 구절만 따왔다. 그리스어 agatha는 '좋은 것'과 '재물'을 함께 뜻한다.
4. 원문이 불완전한 구절로 보이며 뜻이 분명치 않다.
5. 에픽테토스 《강의록》 1.25.18의 비유. 방에 연기가 너무 차면 나가면 그만이라는 말이다.
6.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4.690.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7. 헤시오도스 《일과 날》 197. 원래는 염치와 의분의 여신이 사람들을 버리고 땅을 떠나는 대목이다.
8. 이 장 후반부는 원문이 손상되어 뜻이 분명치 않다. 노인과 팽이 이야기의 출처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