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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권

1 악덕이란 무엇인가? 네가 자주 본 바로 그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이것은 내가 자주 본 것이다' 하는 생각을 손 닿는 곳에 두어라. 위를 보나 아래를 보나 너는 어디서나 같은 것을 만날 것이니, 옛 역사도, 그 뒤의 역사도, 바로 얼마 전의 역사도 그것으로 가득하고, 지금의 도시와 집안도 그것으로 가득하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낯익고, 모든 것이 잠깐이다.

2 원칙에 맞는 인상들이 꺼지지 않는다면 원칙이 무슨 수로 죽겠는가? 그 인상들을 쉬지 않고 다시 지펴 살리는 일은 너에게 달려 있다. 나는 이 일을 두고 마땅히 내려야 할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면 왜 동요하는가? 내 생각 밖에 있는 것은 내 생각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을 깨우쳐라. 그러면 너는 바로 선다. 너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사물을 예전에 보던 대로 다시 보라. 다시 산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3 행렬의 헛된 법석, 무대 위의 연극, 양 떼와 소 떼, 창 겨루기, 강아지들에게 던져 준 뼈다귀, 물고기 연못에 던진 빵 부스러기, 개미들의 고된 짐 나르기, 겁먹은 생쥐들의 허둥대는 뜀박질, 줄에 매달려 놀아나는 꼭두각시 인형들. 이런 것들 한가운데서 너는 너그럽게, 콧방귀 뀌지 말고 서 있어야 한다. 다만 사람은 저마다 제가 애써 매달리는 것들만큼의 값어치밖에 없다는 것은 놓치지 말고 지켜보라.

4 말을 들을 때는 낱말 하나하나를, 일을 볼 때는 충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따라가야 한다. 일에서는 그것이 어떤 목적을 겨누는지 곧바로 보고, 말에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눈여겨 지켜보라.

5 내 생각이 이 일을 감당할 만한가, 아닌가? 감당할 만하다면 나는 그것을 우주의 본성이 준 도구로 삼아 일에 쓴다.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 일이 달리 내가 마땅히 할 일이 아닌 한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넘긴다. 아니면 힘닿는 대로 하되, 내 지도 이성(hēgemonikon)의 도움을 받아 지금 공동체에 알맞고 쓸모 있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불러 함께 한다. 나 혼자 하든 남과 함께 하든, 내가 하는 일은 오직 한 곳, 모두에게 쓸모 있고 잘 어울리는 것을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6 크게 칭송받던 사람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가 벌써 망각에 넘겨졌는가. 그들을 칭송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오래전에 사라졌는가.

7 도움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성벽을 치는 병사처럼 네게 떨어진 몫을 해내는 것, 그것이 너에게 놓인 일이다. 그러니 어떤가, 네가 다리를 절어 혼자서는 성가퀴에 오르지 못하지만 남과 함께라면 오를 수 있다면?

8 앞으로 올 일이 너를 어지럽히게 두지 마라. 가야 한다면 너는 그리로 가게 될 것이고, 그때도 지금 눈앞의 일에 쓰는 바로 그 이성을 지니고 갈 것이다.

9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고, 그 얽힘은 성스럽다. 서로 남남인 것은 거의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함께 제자리에 놓여 함께 하나의 같은 우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우주는 하나이고, 모든 것을 꿰뚫는 신도 하나이며, 실체도 하나, 법도 하나, 지성적인 모든 생명에게 공통된 이성도 하나, 진리도 하나다. 같은 종류로 태어나 같은 이성을 나누어 가진 생명들에게 완성 또한 하나라면 말이다.

10 질료를 지닌 것은 모두 금세 전체의 실체 속으로 사라지고, 원인이 되는 것은 모두 금세 전체의 이성 속으로 거두어지며,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은 금세 끝없는 세월 속에 파묻힌다.

11 이성적 동물에게는 본성에 맞는 행위가 곧 이성에 맞는 행위다.

12 곧게 서 있어라. 남이 세워 주어서가 아니라.

13 하나로 붙어 있는 몸에서 팔다리가 하는 몫을, 따로 떨어져 있는 이성적 존재들이 한다. 그들은 하나의 협력을 위해 지어졌다. '나는 이성적 존재들이 이룬 몸의 지체(melos)다' 하고 자주 스스로에게 말한다면 이 생각이 더 또렷하게 와닿을 것이다. 그러나 글자 하나를 바꾸어 '나는 그 부분(meros)이다' 하고 말한다면1 너는 아직 마음 깊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선을 베푸는 일이 아직 그 자체로 너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 너는 아직 그것을 그저 마땅한 일이라서 할 뿐, 너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 여기며 하지는 않는다.

14 바깥에서 무엇이 떨어지든 떨어지고 싶은 대로 떨어지라지. 그 부딪힘으로 무언가를 겪을 수 있는 부분들 위로. 겪은 부분들은 원한다면 불평하라지. 나는 일어난 일을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는 한 아직 해를 입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15 누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말하든 나는 선해야 한다. 마치 금이나 에메랄드나 자줏빛 옷감이 늘 이렇게 말하듯이. '누가 무엇을 하든 무엇을 말하든 나는 에메랄드여야 하고 내 빛깔을 지켜야 한다.'

16 지도 이성은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겁주어 욕망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다른 누가 그것을 겁주거나 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러라지. 지도 이성은 제 판단으로 스스로를 그런 쪽으로 틀어 버리지 않을 것이다. 몸뚱이는 할 수 있다면 해를 입지 않게 제가 알아서 조심하고, 무엇을 겪으면 겪는다고 말하라지. 그러나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이런 일들을 두고 판단을 내리는 작은 영혼은 결코 아무것도 겪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그런 판단으로 끌고 가지 않을 테니까. 지도 이성은 스스로 결핍을 만들지 않는 한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고,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어지럽히고 가로막지 않는 한 동요하지도 가로막히지도 않는다.

17 행복(eudaimonia)은 좋은 신령(daimōn), 곧 좋은 지도 이성이다.2 그런데 인상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신들의 이름으로 부탁하니 왔던 길로 돌아가라. 나는 네가 필요 없다. 너는 옛 버릇대로 찾아왔을 뿐이다. 너에게 화내지는 않겠다. 그저 가거라.

18 누군가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변화 없이 무엇이 생겨날 수 있으며, 우주의 본성에 변화보다 더 정답고 더 가까운 것이 무엇인가? 너만 해도 장작이 변하지 않으면 목욕을 할 수 있겠는가? 먹은 것이 변하지 않으면 영양을 얻을 수 있겠는가? 쓸모 있는 다른 어떤 일이 변화 없이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니 너 자신이 변하는 것도 똑같은 일이고 우주의 본성에 똑같이 필요하다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19 모든 물체는 급류에 휩쓸려 가듯 전체의 실체를 지나간다. 우리 팔다리가 서로 그렇듯, 그것들은 전체와 한 몸으로 자라나 함께 일한다. 세월은 이미 얼마나 많은 크리시포스를, 얼마나 많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많은 에픽테토스를 삼켜 버렸는가. 어떤 사람, 어떤 일을 대하든 이 생각이 함께 떠오르게 하라.

20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걱정은 하나뿐이다. 사람의 본바탕이 바라지 않는 일을, 또는 바라지 않는 모양으로, 또는 지금은 바라지 않는 일을 내가 하지 않을까 하는 것.

21 네가 모든 것을 잊을 날이 가깝고, 모든 이가 너를 잊을 날도 가깝다.

22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람다움이다. 그들이 너의 친족이라는 것, 그들이 모르고 마지못해 잘못한다는 것, 머지않아 너희 둘 다 죽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너를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 함께 떠오른다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는 네 지도 이성을 전보다 나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23 우주의 본성은 전체의 실체를 밀랍처럼 다루어, 지금은 작은 말을 빚었다가 그것을 녹여 그 재료로 작은 나무를 만들고, 다음엔 작은 사람을, 그다음엔 또 다른 무엇을 만든다. 그 하나하나는 아주 잠깐 있다가 만다. 상자에게 뜯기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듯, 짜 맞춰지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24 성난 얼굴은 몹시 본성에 어긋난다. 그런 얼굴을 자주 하면 얼굴의 고운 빛이 거듭 죽어 가다가 마침내 아주 꺼져서, 다시는 불붙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 점에서 그것이 이성에 어긋난다는 것을 깨달으려고 애써라. 잘못을 저지른다는 자각마저 사라진다면 더 살아갈 까닭이 어디 있겠는가?

25 네가 보는 모든 것을 전체를 다스리는 자연이 머지않아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것들의 실체로 다른 것을 만들고, 다시 그것들의 실체로 또 다른 것을 만든다. 우주가 늘 젊게 머물도록.

26 누가 너에게 잘못하면, 그가 무엇을 선이나 악으로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지 곧바로 생각해 보라. 그것을 알면 너는 그를 가엾게 여길 뿐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을 것이다. 너 자신도 아직 그와 같은 것이나 그 비슷한 것을 선으로 판단하고 있다면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런 것들을 더는 선이나 악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면, 잘못 보는 사람에게 너그러워지기가 그만큼 더 쉬울 것이다.

27 없는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 것. 지금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들을 골라, 그것이 없었다면 얼마나 아쉬워하며 찾았을지 떠올릴 것. 다만 그렇게 그것들을 반기다가 너무 귀하게 여기는 버릇이 들어, 언젠가 그것이 없어졌을 때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28 너 자신 안으로 몸을 웅크려 들어가라. 이성적인 지도 이성은 정의롭게 행하고 바로 그 덕분에 고요를 얻으면 그것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본성을 지녔다.

29 인상을 지워라. 꼭두각시 줄에 끌려다니기를 멈춰라. 지금 이 순간에 금을 그어라. 너에게든 남에게든 일어나는 일을 알아보아라. 눈앞의 대상을 원인적인 것과 질료적인 것으로 가르고 나누어라. 마지막 시간을 생각하라. 남이 저지른 잘못은 그 잘못이 생겨난 자리에 두고 오라.

30 말해지는 것을 따라 생각을 나란히 펼쳐 갈 것. 일어나는 일과 그 일을 일으키는 것 속으로 정신이 파고들게 할 것.

31 소박함과 염치로, 그리고 덕도 악덕도 아닌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는 태도로 너를 빛내라. 인류를 사랑하라. 신을 따르라. 저 사람은 "모든 것은 관습으로 그럴 뿐, 참으로 있는 것은 원소뿐"이라고 말한다.3 하지만 모든 것이 법을 따른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아주 적다.

32 죽음에 대하여. 원자들이라면 흩어짐이고, 하나 됨이라면 꺼짐이거나 옮겨 감이다.

33 고통에 대하여.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삶 밖으로 데려가고, 오래가는 고통은 견딜 만하다. 마음은 스스로를 따로 떼어 놓아 제 고요를 지키고, 지도 이성은 전보다 나빠지지 않는다. 고통으로 상한 부분들은 할 수 있다면 고통에 대해 제 말을 하라지.

34 명성에 대하여. 명성을 바라는 자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라. 그 생각이 어떠한지,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좇는지. 그리고 모래 언덕이 차례로 밀려와 쌓이며 앞의 언덕을 덮어 버리듯, 삶에서도 앞의 것은 뒤따라 밀려온 것에 금세 덮여 버린다는 것을 보라.

35 "그러니 드높은 마음으로 모든 시간과 모든 실체를 두루 바라보는 사람에게 사람의 삶이 무슨 대단한 것으로 보이리라 생각하는가? '그럴 리 없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은 죽음도 무서운 것으로 여기지 않겠지? '조금도 그렇지 않다.'"4

36 "잘하고도 욕을 듣는 것, 그것이 왕다운 일이다."5

37 얼굴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표정을 짓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데, 정작 마음은 스스로 제 모양을 짓고 제 매무새를 가다듬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38 "세상일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 그것들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으니."6

39 "죽지 않는 신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기쁨을 주시기를."

40 "여문 이삭을 베듯 삶을 거두어야 한다. / 하나는 남고 하나는 스러진다."

41 "신들이 나와 내 두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면, / 그것에도 까닭이 있다."

42 "선과 정의가 내 편에 있으니."

43 함께 울부짖지 말 것. 들끓지 말 것.

44 "나는 그에게 이렇게 옳은 대답을 하겠다. 사람아, 네 말은 옳지 않다.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면 살게 될지 죽게 될지 그 위험을 셈해야 한다고 너는 생각하는구나. 그는 무엇을 하든 오직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좋은 사람의 일인지 나쁜 사람의 일인지만 살펴야 하는데도."7

45 "아테네인들이여, 진실은 이렇다. 누구든 스스로 가장 좋다고 여겨 자리를 잡았거나 지휘관이 그를 그 자리에 세웠다면, 내가 보기에 그는 거기 머물러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수치보다 죽음이나 그 밖의 무엇을 먼저 셈해서는 안 된다."

46 "하지만 친구여, 고귀하고 좋은 것이 남을 살리고 제가 살아남는 일과는 다른 무엇이 아닌지 살펴보라. 참으로 사내다운 사람이라면 얼마 동안 사느냐 하는 문제는 내려놓아야 하고 목숨에 매달려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일은 신에게 맡기고, 누구도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는 여인네들의 말을 믿은 다음, 그가 살펴야 할 것은 앞으로 살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47 별들의 운행을 그들과 함께 달리는 듯이 둘러보고, 원소들이 서로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쉬지 않고 생각할 것. 이런 것들을 떠올리면 땅바닥에 붙은 삶의 때가 씻겨 나간다.

48 플라톤의 이 말은 훌륭하다. 사람에 대해 말하려는 이는 땅 위의 일들도 어딘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살펴야 한다. 가축 떼, 군대, 농사, 혼인, 이혼, 출생, 죽음, 법정의 소란, 황량한 땅, 갖가지 야만족, 축제, 곡소리, 장터, 온갖 것이 한데 뒤섞인 모습, 그리고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어울려 하나의 질서를 이루는 모습을.

49 지나간 일을, 그 숱한 패권의 흥망을 돌아볼 것. 앞으로 올 일도 미리 내다볼 수 있다. 그 일들은 틀림없이 같은 모양일 것이고, 지금 일어나는 일들의 박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 사람의 삶을 사십 년 동안 지켜보든 만 년 동안 지켜보든 다를 것이 없다. 더 무엇을 보겠는가?

50 "땅에서 난 것은 땅으로, / 하늘의 씨앗에서 움튼 것은 / 다시 하늘 높은 곳으로 돌아갔다."8 아니면 이것은 원자들끼리의 얽힘이 풀리는 것이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원소들이 그렇게 흩어지는 것이다.

51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주문으로 / 물길을 비틀어 죽음을 피하려 한다."9 〈…〉 "신이 불어 보내는 바람은 / 신음 없이 애쓰며 견딜 수밖에 없다."

52 씨름에서 상대를 더 잘 넘어뜨릴지는 몰라도, 더 공동체적이지도, 더 염치 있지도, 일어나는 일 앞에서 더 침착하지도, 이웃의 실수에 더 너그럽지도 않다.

53 신들과 사람들에게 공통된 이성에 따라 일을 해낼 수 있는 곳에는 두려울 것이 없다. 순조롭게 나아가며 본바탕에 맞게 펼쳐지는 활동으로 이로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면, 거기서는 어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54 언제 어디서나 너에게 달려 있다. 지금 닥친 일을 경건하게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는 것도, 지금 떠오른 인상을 공들여 다루어 제대로 붙잡지 못한 것이 몰래 스며들지 않게 하는 것도.

55 남의 지도 이성을 기웃거리지 말고, 본성이 너를 어디로 이끄는지 그쪽을 똑바로 보라. 전체의 본성은 너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너의 본성은 네가 해야 할 일들을 통해 너를 이끈다. 저마다 제 본바탕에 따르는 일을 해야 한다. 이성이 없는 나머지 것들은 이성적 존재를 위해 지어졌고, 다른 모든 것에서도 못한 것이 나은 것을 위해 있듯, 이성적 존재들은 서로를 위해 지어졌다. 그러니 사람의 본바탕에서 으뜸가는 것은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이다. 둘째는 몸이 겪는 일에 굴하지 않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움직임은 스스로 경계를 긋고 감각의 움직임에도 충동의 움직임에도 결코 지지 않는 것을 제 고유한 일로 삼기 때문이다. 이 둘은 짐승의 것이고, 지성적인 움직임은 으뜸이 되기를 바라며 그것들에 휘둘리려 하지 않는다. 마땅한 일이다. 그것은 본디 그것들을 모두 부리도록 생겨났으니까. 이성적 본바탕의 셋째는 섣불리 휩쓸리지 않고 속지 않는 것이다. 지도 이성이 이것들을 꼭 붙들고 곧장 제 길을 가게 하라. 그러면 제 몫을 다 얻는다.

56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삶을 지금까지로 다 산 사람처럼, 남은 시간은 덤으로 받아 본성에 맞게 살아야 한다.

57 오직 너에게 일어나는 일, 운명의 실과 함께 자아진 일만을 사랑할 것. 그보다 더 너에게 꼭 맞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58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은 일을 겪고 괴로워하고 낯설어하고 불평하던 사람들을 눈앞에 떠올릴 것.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너도 그렇게 하고 싶은가? 본성에 맞지 않는 이런 동요는 흔드는 자들과 흔들리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일어난 일들을 어떻게 쓸지에만 온 마음을 쏟지 않겠는가? 그러면 너는 그것들을 잘 쓸 것이고, 그것들은 네 재료가 될 것이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무슨 일을 하든 너 스스로 보기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라. 그리고 두 가지를 다 기억하라. 행위가 무엇을 다루든 그 대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도.10

59 안을 파라. 선의 샘은 안에 있고, 늘 파기만 하면 늘 솟아날 수 있다.

60 몸도 움직일 때나 가만히 있을 때나 흐트러지지 않고 단단히 자리 잡혀 있어야 한다. 마음은 얼굴을 차분하고 단정하게 지켜 그 얼굴에 제 모습을 드러내는데, 바로 그것을 몸 전체에도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꾸밈없이 지켜야 한다.

61 사는 기술은 춤보다 씨름을 더 닮았다. 갑자기 덮쳐 오는, 미리 알 수 없는 것에 맞서 넘어지지 않고 채비를 갖춘 채 서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62 네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의 지도 이성이 어떠한지 늘 눈여겨볼 것. 그들의 판단과 충동이 솟아나는 샘을 들여다보면, 마지못해 잘못하는 이들을 탓하지도 않고 그들의 인정을 바라지도 않게 될 것이다.

63 "모든 영혼은 본의 아니게 진리를 빼앗긴다"고 그는 말한다.11 정의도, 절제도, 너그러움도, 그런 모든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늘 기억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면 너는 누구에게나 더 온화해질 것이다.

64 어떤 고통이든 이 생각을 손 닿는 곳에 두어라. 고통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키를 잡은 마음을 더 나쁘게 만들지도 않는다. 마음이 이성적인 한에서도, 공동체적인 한에서도 고통은 그것을 망가뜨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고통에는 에피쿠로스의 말도 너를 돕게 하라. 한계를 기억하고 거기에 생각을 덧보태지 않는다면 고통은 견디지 못할 것도 끝없는 것도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도 기억하라. 우리를 언짢게 하는 많은 것이 실은 고통과 같은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졸음, 찌는 더위, 입맛 없음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니 이런 것 가운데 하나가 못마땅할 때는 '나는 고통에 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65 사람답지 못한 자들이 사람들에게 품는 그런 마음을, 너는 사람답지 못한 자들에게 품지 않도록 조심하라.

66 텔라우게스가 성품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나았는지 아닌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소크라테스가 더 이름나게 죽었고, 소피스트들과 더 날렵하게 논쟁했으며, 얼어붙은 밤을 더 꿋꿋하게 지새웠고, 살라미스의 레온을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 더 의연하게 거역한 것으로 보였으며, "거리를 으스대며 걸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12 마지막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특히 따져 볼 만하겠지만. 살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어떤 영혼을 지녔는가. 사람들 앞에서 정의롭고 신들 앞에서 거룩한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는가. 남의 악덕에 함부로 분개하지도 않고 누군가의 무지에 종노릇하지도 않았는가. 전체가 나누어 준 몫을 낯선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버티지도 않았는가. 가련한 살덩이가 겪는 일에 정신이 함께 휘둘리도록 내주지도 않았는가.

67 자연은 정신을 몸과 뒤섞을 때, 스스로 경계를 긋고 제 것을 제 손안에 둘 수 없을 만큼 뒤섞지는 않았다. 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도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것을 늘 기억하라. 그리고 이것도. 행복하게 사는 일은 아주 적은 것에 달려 있다. 논리학자나 자연학자가 되리라는 희망을 버렸다고 해서, 자유롭고 염치 있고 공동체적이고 신에게 순종하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까지 버리지는 마라.

68 무엇에도 억눌리지 않고 더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삶을 끝까지 살아갈 것. 모든 사람이 너에게 대고 마음대로 고함쳐도, 들짐승들이 너를 감싸고 자라난 이 반죽 덩어리의 가련한 팔다리를 찢어발겨도. 이 모든 일 가운데서도 마음이 제 고요를 지키고, 둘러싼 일들을 참되게 판단하고, 손에 주어진 것을 언제든 쓸 채비를 갖추는 데 무엇이 걸림이 되겠는가? 그러면 판단은 닥쳐온 일에게 말한다. '남들 눈에는 달리 보일지 몰라도 너는 실체로는 이런 것이다.' 쓰임은 손에 들어온 것에게 말한다. '내가 찾던 것이 너다.' 나에게는 지금 있는 것이 언제나 이성적이고 시민다운 덕의 재료이고, 한마디로 사람이나 신의 기술이 쓸 재료다.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이나 사람에게 제 것처럼 맞아들여지며, 새롭지도 다루기 어렵지도 않고 낯익고 손에 잘 맞는다.

69 성품의 완성은 이것이다.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보내되, 들끓지도 무디어지지도 꾸며 보이지도 않는 것.

70 신들은 죽지 않는 존재이면서도, 그 긴긴 세월 동안 이 모양인 못난 자들을, 그것도 이토록 많은 자들을 끝없이 참아 주어야 한다고 언짢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갖 손길로 그들을 돌보기까지 한다. 그런데 곧 끝날 너는 지쳐서 손을 놓는가? 너 자신도 그 못난 자들 가운데 하나이면서?

71 제 악덕은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고, 남의 악덕은 피할 수 없는데도 피하려 드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72 이성적이고 시민다운 능력은 지성적이지도 공동체적이지도 않은 것을 보면, 마땅히 그것을 자기보다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

73 네가 좋은 일을 했고 남이 그 덕을 보았다면, 어리석은 자들처럼 무엇 때문에 그 밖에 셋째 것을 찾는가? 좋은 일을 했다는 평판이나 보답 따위를?

74 이로움을 받는 데 지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이로움이란 본성에 맞는 행위다. 그러니 남을 이롭게 하면서 네가 받는 이로움에 지치지 마라.

75 전체의 본성은 충동을 일으켜 우주를 지었다. 그러니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결과로 뒤따라 일어나거나, 아니면 우주의 지도 이성이 제 충동을 쏟는 가장 중요한 것들마저 이성 없이 흘러간다. 이것을 기억하면 많은 일에서 너는 더 고요해질 것이다.

주

  1. 1. 그리스어로 '지체'는 melos, '부분'은 meros로 l과 r 한 글자만 다르다.

  2. 2. eudaimonia는 '좋은(eu)'과 '신령(daimōn)'을 합친 말이다.

  3. 3. 데모크리토스의 말. 데모크리토스가 '관습으로'라는 뜻으로 쓴 nomisti를 마르쿠스는 '법을 따라'라는 뜻으로 바꾸어 받는다. 이 장의 끝 구절은 원문이 확실하지 않다.

  4. 4. 플라톤 《국가》 6권 486a.

  5. 5. 안티스테네스의 말로 전한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철학자 열전》 6.3).

  6. 6. 7.38~7.42는 시구 모음이다. 7.38은 에우리피데스 《벨레로폰테스》 단편, 7.40은 《힙시필레》 단편, 7.41은 《안티오페》 단편, 7.42는 아리스토파네스 《아카르나이 사람들》 661행이다. 7.39는 출처를 모른다.

  7. 7. 7.44는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28b, 7.45는 같은 책 28d, 7.46은 《고르기아스》 512d~e. 7.48의 구절은 전하는 플라톤 저작에서 찾을 수 없다.

  8. 8. 에우리피데스 《크리시포스》 단편.

  9. 9. 앞 두 행은 에우리피데스 《탄원하는 여인들》 1110~1111행, 뒤 두 행은 출처를 모르는 비극 단편이다. 〈…〉는 저본에서 빠진 대목이다.

  10. 10. 원문 손상. 저본은 '상관있다(diaphoron)'로 되어 있으나 앞뒤 뜻에 따라 '상관없다(adiaphoron)'로 읽었다.

  11. 11. 플라톤의 말로, 에픽테토스가 즐겨 인용했다(《강의록》 1.28.4).

  12. 12. 텔라우게스는 피타고라스의 아들로 전하는 인물이다. 레온 일은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론》 32c, '으스대며 걸었다'는 아리스토파네스 《구름》 362행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