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명상록제4권
차례
로그인

제4권

1 안에서 다스리는 것이 본성에 맞는 상태에 있을 때는, 일어나는 일들 앞에서 언제나 할 수 있는 것, 주어진 것 쪽으로 가볍게 옮겨 갈 수 있는 자세로 서 있다. 그것은 정해 둔 어떤 질료에도 매달리지 않고, 먼저 꾀한 것을 향하되 단서(hypexairesis)를 달고 나아가며, 그 대신 들어온 것은 제 질료로 삼는다. 불이 그렇다. 작은 등잔불이라면 위에 떨어지는 것들에 꺼져 버렸겠지만, 활활 타는 불은 그것들을 이겨 내고, 던져 넣은 것을 금세 제 것으로 삼아 태워 버리고, 바로 그것을 딛고 더 높이 솟는다.

2 어떤 행동도 아무렇게나 하지 마라. 기술을 완성하는 원리를 따르지 않고는 하지 마라.

3 사람들은 물러나 쉴 곳을 찾는다. 시골집을, 바닷가를, 산을. 너 또한 그런 곳을 몹시 그리워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더없이 범속한 생각이다. 원할 때면 언제든 너 자신 안으로 물러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이 자기 영혼 속보다 더 고요하고 더 번거로움 없이 물러날 곳은 어디에도 없으니, 들여다보기만 하면 곧바로 더없이 편안해지는 것들을 안에 지닌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말하는 편안함이란 다름 아닌 잘 정돈된 마음이다. 그러니 이 물러남(anachōrēsis)을 끊임없이 너 자신에게 베풀고, 너를 새롭게 하라. 거기 둘 것들은 짧고 근본적이어야 하고, 떠올리자마자 온갖 괴로움을 말끔히 씻어 내고 네가 돌아갈 일들에 짜증 내지 않도록 너를 돌려보내기에 넉넉해야 한다.

무엇에 짜증을 내겠느냐? 사람들의 악덕에? 그렇다면 이성적 동물은 서로를 위해 생겨났고, 참는 것도 정의의 한 부분이며,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잘못을 저지른다는 결론을 되새겨라. 그리고 서로 적대하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창을 겨누며 싸운 사람들이 이미 얼마나 많이 주검으로 눕혀지고 재가 되었는지 헤아려 보라. 그러고는 이제 그만하라. 아니면 전체에서 네게 나누어 준 것에 짜증을 내겠느냐? 그렇다면 '섭리이거나 원자이거나' 하는 양자택일을 다시 떠올리고, 우주가 이를테면 하나의 도시라는 것을 보여 준 숱한 논증도 떠올려라. 아니면 몸의 일이 아직도 너를 붙들겠느냐? 그렇다면 마음은 한번 자기 자신을 거두어들이고 제 힘을 알고 나면, 부드럽게 움직이든 거칠게 움직이든 숨과 뒤섞이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고통과 쾌락에 관해 네가 듣고 동의한 나머지 것들도 모두 생각해 보라.

아니면 보잘것없는 명성이 너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겠느냐? 그렇다면 바라보라.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잊히는지, 앞뒤로 끝없이 펼쳐진 시간의 심연이 어떠한지, 갈채가 얼마나 공허한지, 칭찬하는 듯한 자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분별이 없는지, 명성이 갇힌 곳이 얼마나 좁은지. 온 땅이 한 점에 지나지 않는데, 그 가운데 사람 사는 이곳은 얼마나 작은 귀퉁이인가? 그리고 거기서 너를 칭찬할 사람은 몇이나 되며, 또 어떤 사람들인가?

그러니 이제 너 자신이라는 이 작은 땅으로 물러나는 일을 잊지 마라. 무엇보다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 너무 조이지도 마라. 자유로워라. 그리고 사내로서, 사람으로서, 시민으로서, 죽을 생명체로서 일들을 바라보라. 가장 가까이 두고 들여다볼 것들 가운데 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일들은 영혼에 닿지 않고 밖에 꼼짝 않고 서 있을 뿐이며, 괴로움은 오로지 안에 있는 판단에서 생긴다는 것. 다른 하나는, 네가 보는 이 모든 것이 곧 바뀌어 더는 있지 않으리라는 것. 너 자신이 이미 얼마나 많은 변화를 지켜보았는지 늘 생각하라. 우주는 변화요, 삶은 판단이다.

4 지성이 우리에게 공통이라면, 우리를 이성적 존재로 만드는 이성도 공통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명하는 이성도 공통이다. 그렇다면 법도 공통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나라에 함께 속해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이를테면 하나의 도시다. 온 인류가 함께 속해 있다고 할 만한 나라가 이것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이성과 법을 아는 힘은 바로 거기서, 이 공통의 도시에서 온다. 아니면 어디서 오겠는가? 내 안의 흙은 어떤 흙에서 떼어 받은 것이고, 물기는 다른 원소에서, 숨은 어떤 샘에서, 뜨겁고 불 같은 것은 또 그 나름의 샘에서 떼어 받은 것이다(아무것도 없는 데서 나오는 것은 없고,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것도 없으니). 그렇듯 지성도 어딘가에서 온다.

5 죽음은 태어남과 같은 것, 자연의 신비다. 같은 원소들이 모이는 것이고, 같은 원소들로 흩어지는 것이다. 무엇 하나 부끄러워할 것이 없다. 지성적 동물에게 이어지는 순리에도, 그 본바탕의 이치에도 어긋나지 않기 때문이다.

6 이런 일은 이런 사람들에게서 필연적으로 이렇게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것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무화과나무에 즙이 없기를 바라는 셈이다. 무엇보다 이것을 기억하라.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너도 그도 죽을 것이고, 머지않아 너희 이름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7 판단을 걷어 내라. 그러면 '나는 해를 입었다'는 말도 걷힌다. '나는 해를 입었다'는 말을 걷어 내라. 그러면 해도 걷힌다.

8 사람을 그 자신보다 못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그의 삶도 못하게 만들지 않고, 밖에서든 안에서든 그를 해치지 않는다.

9 이로운 것의 본성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10 "일어나는 일은 모두 정당하게 일어난다." 꼼꼼히 살펴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저 차례가 맞는다는 말이 아니다. 정의에 맞게, 마치 누군가 저마다의 값어치대로 나누어 주듯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작한 대로 계속 살펴라. 그리고 무엇을 하든 좋은 사람이 되는 일과 함께 하라. 좋은 사람이라는 말의 본뜻 그대로 좋은 사람 말이다. 모든 활동에서 이것을 지켜라.

11 너를 모욕하는 자가 판정하는 대로, 또는 네가 그렇게 판정하기를 그가 바라는 대로 일들을 판단하지 마라. 그것들이 참으로 어떠한지 보라.

12 늘 두 가지 채비를 해 두어야 한다. 하나는 다스리고 법을 세우는 기술의 이성이 사람들에게 이롭도록 일러 주는 것만 행할 채비다. 다른 하나는 누가 곁에서 바로잡아 주며 어떤 그릇된 생각에서 너를 돌려세울 때 생각을 바꿀 채비다. 다만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언제나 정의롭다거나 모두에게 이롭다거나 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에서 나와야 하고, 마음을 움직인 까닭도 그런 것이어야지, 즐거워 보인다거나 이름이 날 것 같다는 까닭이어서는 안 된다.

13 "너에게 이성이 있느냐?" "있다." "그런데 왜 쓰지 않느냐? 이성이 제 할 일을 하고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느냐?"

14 너는 부분으로 생겨났다. 너는 너를 낳은 것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변화를 거쳐 그것의 씨앗 이성(spermatikos logos) 속으로 다시 거두어질 것이다.

15 같은 제단 위에 향 덩어리가 여럿. 하나는 먼저 떨어지고 하나는 나중에 떨어진다. 아무 차이도 없다.

16 원칙으로, 이성을 섬기는 일로 돌아가기만 하면, 지금 너를 짐승이나 원숭이로 보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열흘 안에 너는 신으로 보일 것이다.

17 만 년이나 살 것처럼 굴지 마라. 죽음이 머리 위에 걸려 있다.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동안 좋은 사람이 되어라.

18 이웃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여다보지 않고, 오직 자기가 하는 일만 보며 바로 그 일이 정의롭고 거룩한지 살피는 사람은 얼마나 큰 여유를 얻는가! 아니면 좋은 사람답게,1 남의 검은 성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지 말고 줄을 따라 곧게 달려라. 흐트러지지 말고.

19 사후의 명성에 마음이 들뜬 사람은 이것을 그려 보지 못한다. 자기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하나하나 머지않아 죽을 것이고, 그 뒤를 이은 사람도 또 죽어서, 마침내 모든 기억이 불붙었다 꺼지는 사람들을 거치며 이어지다가 꺼져 버리리라는 것을. 기억할 사람들이 죽지 않고 기억도 죽지 않는다고 해 보자. 그래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인가? 죽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도 칭찬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무슨 실속이 있다면 몰라도. 자연이 준 선물 이야기는 지금 꺼낼 때가 아니니 접어 두어라. 그것은 이제 다른 논의에 속한다.2

20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것은 모두 그 자체로 아름답고, 그 자체에서 끝난다. 칭찬은 그것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니 칭찬을 받는다고 더 나빠지지도 더 나아지지도 않는다. 흔히 아름답다고 하는 것들, 이를테면 물질로 된 것이나 기술로 만든 작품을 두고도 나는 이렇게 말한다(참으로 아름다운 것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법이나 진실이나 선의나 염치에 더 필요한 것이 없듯이 아무것도 필요 없다). 이 가운데 무엇이 칭찬을 받아서 아름답고, 비난을 받아서 망가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하면 제 본래보다 못해지는가? 황금은? 상아는? 자줏빛 옷감은? 리라는? 작은 칼은? 꽃 한 송이는? 작은 나무는?

21 영혼이 죽은 뒤에도 남는다면, 공기는 그토록 오랜 옛날부터 어떻게 그 영혼들을 다 담아 두는가? 그러면 땅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묻힌 사람들의 몸을 어떻게 다 담는가? 이 땅에서는 몸이 얼마 동안 머문 뒤 바뀌고 흩어져 다른 주검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그렇듯 공기 속으로 옮겨 간 영혼들도 얼마 동안 뭉쳐 있다가 바뀌고 퍼지고 불이 되어 전체의 씨앗 이성 속으로 거두어지고, 그렇게 해서 새로 들어와 함께 살 영혼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영혼이 남는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묻히는 몸의 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른 동물들이 날마다 먹어 치우는 동물의 수도 생각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수가 소모되어 먹는 자들의 몸속에 이를테면 묻히는가! 그런데도 같은 자리가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피로 바뀌고, 공기나 불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 일에서 진실을 캐는 길은 무엇인가? 질료적인 것과 원인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22 이리저리 헤매지 마라. 충동이 일 때마다 정의를 따르고, 인상(phantasia)이 떠오를 때마다 확실히 붙잡은 것만 지켜라.

23 오, 우주여, 너와 잘 어울리는 것은 모두 나와도 어울린다. 너에게 제때인 것은 내게 이르지도 늦지도 않다. 오, 자연이여, 네 계절이 가져오는 것은 모두 내게 열매다. 모든 것이 너에게서, 모든 것이 네 안에, 모든 것이 너에게로. 그 시인은 "케크롭스의 사랑하는 도시여"라고 했다.3 그런데 너는 "제우스의 사랑하는 도시여"라고 말하지 않겠느냐?

24 "평안하려면 일을 적게 하라"고 그는 말한다.4 차라리 꼭 필요한 일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본디 시민다운 동물의 이성이 요구하는 일을, 요구하는 대로 하는 편이. 그러면 일을 잘해서 오는 평안뿐 아니라 일을 적게 해서 오는 평안도 얻는다. 우리가 하는 말과 일은 대부분 꼭 필요하지 않으니, 그것을 덜어 내면 여유는 더 많아지고 동요는 줄어든다. 그러니 일마다 스스로에게 일깨워야 한다. 이것은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이 아닐까? 꼭 필요하지 않은 행동만이 아니라 꼭 필요하지 않은 인상도 덜어 내야 한다. 그래야 쓸데없는 행동이 뒤따라오지 않는다.

25 좋은 사람의 삶이 너에게 어떻게 맞는지 시험해 보라. 전체에서 나누어 받은 몫을 기꺼워하고, 제 행동이 정의롭고 제 마음가짐이 너그러운 것으로 넉넉해하는 사람의 삶 말이다.

26 너는 저것들을 보았다. 이것들도 보라. 스스로를 어지럽히지 마라. 너를 단순하게 하라. 누가 잘못을 저지르는가?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른다. 네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잘되었다. 일어나는 일은 모두 처음부터 전체에서 너에게 함께 정해지고 함께 자아진 것이다. 한마디로 삶은 짧다. 바른 헤아림과 정의로 지금을 얻어 내야 한다. 느긋하게 깨어 있어라.

27 질서 잡힌 우주이거나, 아무렇게나 휘저어 섞은 잡탕이거나. 그러나 우주다.5 네 안에는 어떤 질서가 설 수 있는데 전체에는 무질서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모든 것이 이렇게 저마다 갈라져 있으면서 두루 퍼져 있고 서로 느끼며 이어져 있는데?

28 검은 성품, 여자 같은 성품, 고집 센 성품, 짐승 같은, 가축 같은, 어린애 같은, 어리석은, 겉과 속이 다른, 천박하게 까부는, 장사치 같은, 폭군 같은 성품.

29 우주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자가 우주의 이방인이라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자도 그에 못지않은 이방인이다. 도시의 이성에서 달아나는 자는 도망자다. 지성의 눈을 감은 자는 눈먼 자다. 남에게 기대고 삶에 쓸모 있는 모든 것을 제 안에서 얻지 못하는 자는 거지다. 일어나는 일에 불만을 품어 공통의 자연이 지닌 이성에서 물러나 스스로를 갈라놓는 자는 우주에 돋은 종기다. 그 일을 내놓는 것도 자연이고, 너를 내놓은 것도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성적 존재들의 영혼은 하나인데, 거기서 제 영혼을 떼어 내는 자는 도시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다.

30 어떤 이는 속옷도 없이 철학을 하고, 어떤 이는 책도 없이 한다. 또 하나는 반쯤 벗은 채로 말한다. "나는 빵이 없다. 그래도 이성을 굳게 지킨다." 나는 배움에서 얻는 양식이 없다. 그래도 굳게 지킨다.

31 네가 배운 작은 기술을 아끼고, 거기에 기대어 쉬어라. 남은 삶은 네 모든 것을 온 영혼으로 신들에게 맡긴 사람처럼 지나가라. 그리고 누구에게도 폭군이 되지 말고 누구의 종도 되지 마라.

32 예를 들어 베스파시아누스 시대를 떠올려 보라.6 너는 똑같은 것을 모두 보게 될 것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병들고, 죽고, 전쟁하고, 잔치하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아첨하고, 거만을 떨고, 의심하고, 음모를 꾸미고, 누가 죽기를 빌고, 제 처지에 투덜대고, 사랑에 빠지고, 재물을 쌓고, 집정관 자리와 왕좌를 탐내는 사람들을. 그런데 그들의 그 삶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다시 트라야누스 시대로 옮겨 가 보라. 또다시 모두 똑같다. 그 삶도 죽었다. 다른 시대와 온 민족들의 기록도 마찬가지로 찬찬히 훑어보고, 얼마나 많은 이가 온 힘을 쏟다가 얼마 못 가 쓰러져 원소로 풀려 버렸는지 보라. 무엇보다 네가 직접 알았던 사람들, 헛된 것에 매달려 애쓰느라 자기 본바탕에 맞는 일을 하고 그것을 꽉 붙들고 그것으로 넉넉해하기를 내버린 사람들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여기서 꼭 기억할 것이 있다. 일마다 기울이는 관심에도 그 일에 맞는 값어치와 정도가 있다. 그래야 작은 일에 마땅한 것보다 오래 매달리지 않아서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33 예전에 흔히 쓰던 말들이 지금은 풀이가 있어야 알아듣는 옛말이 되었다. 그렇듯 한때 크게 칭송받던 사람들의 이름도 이제는 어떤 의미에서 옛말이 되었다. 카밀루스, 카이소, 볼레수스, 덴타투스가 그렇고, 조금 지나서는 스키피오와 카토가, 그다음에는 아우구스투스가, 그다음에는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가 그렇다.7 모든 것은 금세 빛이 바래 옛이야기가 되고, 금세 완전한 망각이 덮어 묻어 버린다. 이것도 놀랍도록 빛났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숨을 거두자마자 "자취도 없고 소문도 없다."8 영원히 기억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온통 헛된 것이다. 그렇다면 진지하게 힘쓸 일은 무엇인가? 이것 하나다. 정의로운 마음, 공동체를 위한 행동,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 말,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필연으로, 낯익은 것으로, 그와 같은 근원과 샘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반기는 마음가짐.

34 기꺼이 너 자신을 클로토에게 내맡겨라. 그 여신이 원하는 어떤 일에든 너를 엮어 잣게 하라.9

35 모든 것은 하루살이다. 기억하는 쪽도, 기억되는 쪽도.

36 모든 것이 변화를 거쳐 생겨난다는 것을 늘 지켜보고, 우주의 본성이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있는 것들을 바꾸어 그와 비슷한 새것을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있는 것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 장차 그것에서 생겨날 것의 씨앗이다. 그런데 너는 땅이나 자궁에 뿌려지는 것만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너무 범속한 생각이다.

37 너는 곧 죽는다. 그런데도 아직 단순하지 못하고, 동요를 벗어나지 못하고, 밖에서 해를 입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모두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분별 있음이 오직 정의롭게 행하는 데 있다고 여기지도 못한다.

38 그들의 지도 이성(hēgemonikon)을 꿰뚫어 보라. 분별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좇는지 보라.

39 네 악은 남의 지도 이성 안에 있지 않다. 너를 감싼 몸이 이리저리 바뀌고 달라지는 데에도 있지 않다. 그러면 어디에 있는가? 악에 관해 판단하는 네 부분에 있다. 그러니 그 부분이 판단하지 않게 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괜찮다. 그것과 가장 가까운 것, 이 보잘것없는 몸이 베이고 불에 지져지고 곪고 썩더라도, 이것들에 관해 판단하는 부분은 잠잠하게 하라. 곧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악도 선도 아니라고 판정하게 하라. 본성에 어긋나게 사는 사람에게나 본성에 맞게 사는 사람에게나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은 본성에 맞는 것도 본성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40 우주를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영혼을 지닌 한 생명체로 늘 생각하라. 모든 것이 어떻게 그 생명체의 한 감각으로 모여드는지, 어떻게 그것이 하나의 충동으로 모든 것을 해 나가는지, 어떻게 모든 것이 일어나는 모든 일의 공동 원인이 되는지, 그리고 실이 얼마나 촘촘히 함께 자아지고 함께 엮여 있는지를.

41 너는 송장을 짊어진 작은 영혼이다. 에픽테토스가 늘 말했듯이.

42 변해 가는 것에게 나쁠 것은 없다. 변화에서 생겨나는 것에게 좋을 것이 없듯이.

43 시간은 일어나는 일들로 이루어진 강이고 거센 물살이다. 무엇이든 눈에 띄자마자 휩쓸려 가고, 다른 것이 떠내려오고, 그것도 곧 휩쓸려 갈 것이다.

44 일어나는 일은 모두 봄의 장미나 여름의 과일처럼 흔하고 낯익다. 병도, 죽음도, 비방도, 음모도,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하거나 괴롭히는 모든 것이 그렇다.

45 뒤에 오는 것은 언제나 앞서간 것에 걸맞게 이어진다. 그것은 따로 떨어진 것들을 그저 필연에 따라 줄줄이 세어 놓은 목록이 아니라, 이치에 맞는 이어짐이다. 있는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게 짜여 있듯이, 생겨나는 것들도 그저 잇따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친밀함을 드러낸다.

46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늘 기억하라.10 흙의 죽음은 물이 되는 것이고, 물의 죽음은 공기가 되는 것이며, 공기의 죽음은 불이 되는 것이고, 거꾸로도 그렇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잊어버린 사람도 기억하라. 또 사람들은 가장 끊임없이 함께하는 것, 곧 전체를 다스리는 이성과 다투며, 날마다 마주치는 것들을 낯설어한다는 것도. 그리고 잠든 사람처럼 행하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잠들어서도 우리는 행하고 말한다고 여기니까. 또 부모를 따르는 아이들처럼, 곧 물려받은 대로 덮어놓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47 어느 신이 네게 너는 내일, 늦어도 모레는 죽는다고 말했다 하자. 네가 아주 비굴한 사람이 아니라면, 내일보다 모레 죽는 것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 사이가 얼마나 된다고? 그렇듯 내일보다 먼 훗날 몇 해 뒤에 죽는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라.

48 늘 생각하라. 얼마나 많은 의사가 환자를 두고 자주 눈살을 찌푸리다가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점성가가 남의 죽음을 대단한 일인 양 예언하다가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철학자가 죽음이나 불멸을 두고 끝없이 논쟁을 벌이다가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용사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서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폭군이 자기는 죽지 않을 것처럼 무섭게 거들먹거리며 사람의 목숨을 쥐고 휘두르다가 죽었는지. 얼마나 많은 도시가, 말하자면 통째로 죽었는지. 헬리케와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그 밖에 셀 수 없는 도시들이.11 네가 아는 사람들도 차례로 떠올려 보라. 이 사람은 저 사람을 묻어 주고 나서 자기도 주검이 되어 눕혀졌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묻어 주고 그렇게 되었으니, 모두 잠깐 사이의 일이다. 요컨대 늘 사람의 일을 하루살이요 하찮은 것으로 내려다보라. 어제는 한 방울 점액이던 것이 내일은 미라나 재가 된다. 그러니 이 찰나의 시간을 본성에 맞게 지나가고, 기꺼운 마음으로 끝맺어라. 잘 익은 올리브가 저를 낳은 대지를 기리고 저를 길러 준 나무에 고마워하며 떨어지듯이.

49 곶처럼 되어라. 파도가 쉼 없이 부딪쳐도 곶은 꿋꿋이 서 있고, 그 둘레에서 들끓던 물은 잠잠해진다.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나는 불운하다." 아니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괴로워하지 않고, 지금 일에 짓눌리지도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지내니, 나는 운이 좋다."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누구나 괴로워하지 않고 지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왜 저것은 불운이라 하면서 이것은 행운이라 하지 않는가? 사람의 본성이 빗나간 것이 아닌 것을 너는 도대체 사람의 불운이라고 부르느냐? 그리고 사람의 본성이 바라는 바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 빗나간 것으로 보이느냐? 그래서? 그 바라는 바는 너도 배웠다. 일어난 이 일이 너를 가로막아, 정의롭고, 도량이 크고, 절제하고, 분별 있고, 섣부르지 않고, 거짓에 속지 않고, 염치 있고, 자유로울 수 없게 하는가? 그 밖에, 함께 갖추면 사람의 본성이 제 몫을 온전히 받게 되는 것들을 갖출 수 없게 하는가? 앞으로는 괴로움으로 이끄는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원칙을 쓰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이것을 의연하게 견디는 것이 행운이다.

50 범속하지만 효과가 있는 방법이 있다. 죽음을 우습게 여기는 데에는, 삶에 악착같이 매달렸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들이 일찍 죽은 사람들보다 더 얻은 것이 무엇인가? 카디키아누스, 파비우스, 율리아누스, 레피두스, 그 밖에 그런 누구든, 많은 사람을 무덤으로 실어 내보내고 그다음엔 자기가 실려 나간 그들도 결국 어딘가에 누워 있다. 다 합해도 그 사이는 짧은데, 그나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얼마나 보잘것없는 몸에 담겨 힘겹게 퍼내듯 다 써 버리는가? 그러니 대단한 일로 여기지 마라. 뒤를 보라. 아득히 입을 벌린 시간이 있다. 앞을 보라. 또 하나의 끝없음이 있다. 이 안에서 사흘을 산 자와 세 세대를 산 자가 무엇이 다른가?12

51 늘 지름길로 달려라. 지름길은 본성에 맞는 길이다. 그러니 무슨 말이든 무슨 일이든 가장 건전하게 하라. 이런 결심이 수고와 꾸물거림, 온갖 잔꾀와 겉치레에서 사람을 풀어 준다.

주

  1. 1. 원문 손상. '좋은 사람답게'로 옮긴 대목을 '아가톤의 말처럼'으로 고쳐 읽기도 한다. 아가톤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비극 시인이다.

  2. 2. 이 문장은 뜻이 분명하지 않아 원문이 어긋났다고 보는 이가 많다. 여기서는 쓰인 문법대로 옮겼다.

  3. 3. 케크롭스는 아테네의 전설 속 첫 왕이고, '케크롭스의 사랑하는 도시'는 아테네를 이른다. 아리스토파네스의 단편에서 온 구절로 보인다.

  4. 4. 데모크리토스의 말이다(딜스-크란츠 단편 3).

  5. 5. 그리스어 kosmos는 '우주'와 '질서'를 함께 뜻한다. 이 장은 두 뜻을 겹쳐 쓴다.

  6. 6.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와 트라야누스(재위 98~117)는 마르쿠스보다 앞선 로마 황제다.

  7. 7. 카밀루스·카이소·볼레수스·덴타투스는 로마 공화정 옛 시절의 영웅들이고, 스키피오와 카토는 공화정 시대의 이름난 장군과 정치가다. 아우구스투스는 초대 황제, 하드리아누스와 안토니누스(피우스)는 마르쿠스 바로 앞의 황제들이다.

  8. 8.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1.242.

  9. 9. 클로토는 운명의 실을 잣는 세 여신(모이라이) 가운데 하나다.

  10. 10. 이 장의 구절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단편에서 가져왔다(딜스-크란츠 단편 76, 71~74).

  11. 11. 헬리케는 기원전 373년 지진과 해일로 바다에 잠긴 그리스 아카이아의 도시다.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은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터져 묻혔다.

  12. 12. 카디키아누스·파비우스·율리아누스·레피두스는 오래 산 사람들로 보이나 누구인지 분명하지 않다. '세 세대를 산 자'(trigerēnios)는 세 세대를 살았다는 호메로스의 '게레니아 사람 네스토르'에 빗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