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기
오디세이아제1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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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권

1 팔라스 아테나는 땅이 넓은 스파르타로 갔다. 기상 높은 오디세우스의 빛나는 아들에게 귀향을 일깨우고 어서 돌아가라고 재촉하려는 뜻이었다. 여신은 텔레마코스와 네스토르의 빛나는 아들이 영광스러운 메넬라오스의 집 문간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네스토르의 아들은 부드러운 잠에 굴복해 있었지만, 텔레마코스는 달콤한 잠에 들지 못했으니, 거룩한 밤 내내 아버지를 향한 걱정이 그의 가슴속에서 그를 깨워 두었다. 빛나는 눈의 아테나가 그의 곁에 다가서서 말했다.

10 "텔레마코스, 그대가 재산을 내버려 두고, 그토록 방자한 자들을 그대 집에 남겨 둔 채 집을 떠나 멀리 떠돌고 있는 것은 이제 좋지 않다. 그자들이 그대 재산을 나누어 모두 먹어 치우고, 그대의 길은 헛걸음이 될까 두렵다. 그러니 함성이 우렁찬 메넬라오스에게 어서 그대를 보내 달라고 재촉하여라. 그래야 그대의 나무랄 데 없는 어머니를 아직 집에서 만날 수 있다. 그대 어머니의 아버지와 형제들은 벌써 에우리마코스에게 시집가라고 다그치고 있으니, 그자가 선물로 다른 구혼자들을 모두 앞지르고 구혼 선물을 잔뜩 늘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대가 바라지 않는 사이에 어머니가 집에서 재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대도 알다시피 여자의 가슴속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새로 맞을 남편의 집 살림을 불리고 싶어 하고, 처음 맞은 사랑하는 남편이 죽고 나면 앞서 낳은 자식들도 그 남편도 더는 떠올리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대는 돌아가서, 신들께서 그대에게 영광스러운 아내를 보여 주실 때까지 몸소 모든 것을 하녀들 가운데 가장 믿음직해 보이는 이에게 맡겨라. 또 한 가지 일러 줄 테니 마음에 잘 담아 두어라. 구혼자들 가운데 우두머리들이 그대가 고향 땅에 닿기 전에 죽이려고 이타카와 험한 사모스 사이의 해협에서 일부러 숨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그대의 살림을 먹어 치우는 구혼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땅에 묻힐 것이다. 잘 만든 배를 섬들에서 멀리 떨어지게 몰고 밤에도 쉬지 말고 배를 저으면, 불사의 신들 가운데 그대를 지키고 돌보는 신이 뒤에서 순풍을 보내 줄 것이다. 이타카의 첫 바닷가에 닿거든 배와 동료들은 모두 도시로 보내고, 그대는 맨 먼저 돼지치기에게 가거라. 그대 돼지들을 지키는 사람인데, 그대에게 한결같이 마음이 따뜻하다. 그곳에서 밤을 보내고, 그를 도시로 보내 사려 깊은 페넬로페에게 그대가 무사히 필로스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여라."

43 이렇게 말하고 여신은 높은 올림포스로 떠나갔다. 텔레마코스는 발로 네스토르의 아들을 툭 건드려 달콤한 잠에서 깨우고 말을 건넸다.

46 "일어나, 네스토르의 아들 페이시스트라토스. 통굽 말들을 끌어다 수레에 매어 줘. 어서 길을 떠나자."

48 네스토르의 아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 아무리 길이 급해도 이 캄캄한 밤에 수레를 몰 수는 없어. 곧 날이 밝을 거야. 기다려, 영웅 아트레우스의 아들, 창으로 이름난 메넬라오스께서 선물을 가져와 수레에 실어 주시고 다정한 말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보내 주실 때까지. 손님은 우정을 베풀어 준 주인을 평생 잊지 않는 법이니까."

56 그가 이렇게 말하자 곧 황금 옥좌의 새벽 여신이 찾아왔고, 함성이 우렁찬 메넬라오스가 머리채 아름다운 헬레네 곁의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가까이 왔다. 오디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은 그를 보자 서둘러 반들거리는 윗옷을 몸에 걸치고, 튼튼한 어깨에 큰 겉옷을 두른 다음 문밖으로 나갔다. 영웅 텔레마코스, 신 같은 오디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메넬라오스 곁에 서서 말했다.

64 "제우스가 기르신 아트레우스의 아드님 메넬라오스 왕이시여, 백성의 우두머리시여, 이제 저를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보내 주십시오. 제 마음이 벌써 집에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67 함성이 우렁찬 메넬라오스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 귀향을 바라는 자네를 내가 여기 오래 붙잡아 두지는 않겠네. 나는 손님을 맞은 주인이 지나치게 아끼거나 지나치게 미워하는 것을 보면 언짢네. 무슨 일이든 알맞은 것이 낫지. 떠나고 싶지 않은 손님을 떠나라고 재촉하는 것이나 서둘러 떠나려는 손님을 붙잡아 두는 것이나 똑같이 몹쓸 짓일세. 손님이 머물 때는 아껴 주고, 떠나고 싶어 하면 보내 주어야 하네. 그래도 내가 고운 선물을 가져와 수레에 실어 주고 자네가 그것을 제 눈으로 보게 될 때까지, 그리고 여인들에게 일러 집에 있는 것으로 홀에서 넉넉히 아침을 차리게 할 때까지는 기다리게. 끝없이 넓은 땅을 먼 길 가기 전에 배불리 먹고 떠나면, 그것은 주인에게는 명예와 자랑이요 손님에게는 이로움이니, 두 가지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셈일세. 자네가 헬라스와 아르고스 한복판을 두루 돌아보고 싶다면, 내가 몸소 따라가 주겠네. 말을 매어 주고 사람들의 도시로 자네를 이끌면, 아무도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좋은 청동으로 만든 세발솥이나 솥이나, 노새 두 마리나 황금 술잔 같은 것을 적어도 한 가지씩은 가져가라고 줄 걸세."

86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제우스가 기르신 아트레우스의 아드님 메넬라오스 왕이시여, 백성의 우두머리시여, 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떠나올 때 제 재산을 돌봐 줄 사람을 뒤에 남겨 두지 못했으니, 신에 버금가는 아버지를 찾아다니다가 제가 죽거나, 아니면 홀에 둔 귀한 보물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92 함성이 우렁찬 메넬라오스는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아내와 하녀들에게 집에 있는 것으로 홀에서 넉넉히 아침을 차리라고 일렀다. 메넬라오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보에토오스의 아들 에테오네우스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까이 오자, 함성이 우렁찬 메넬라오스가 그에게 불을 피워 고기를 구우라고 일렀고, 그는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따랐다. 메넬라오스 자신은 향기로운 방으로 내려갔다. 혼자가 아니라 헬레네와 메가펜테스가 함께 갔다. 보물을 쌓아 둔 곳에 이르자,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잔을 집어 들고, 아들 메가펜테스에게는 은 술동이를 들게 했다. 헬레네는 손수 지은, 온갖 무늬를 놓은 겉옷들이 든 궤짝 곁에 섰다. 여인 중에 고귀한 헬레네는 그 가운데 무늬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옷, 별처럼 빛나며 다른 옷들 맨 밑에 놓여 있던 옷 하나를 들어 올려 가져갔다. 그들은 집 안을 지나 앞으로 걸어가 텔레마코스에게 이르렀고, 금발의 메넬라오스가 그에게 말했다. "텔레마코스, 우렛소리 요란한 헤라의 남편 제우스께서 자네가 마음속에 바라는 대로 자네의 귀향을 이루어 주시기를 비네. 내 집에 쌓아 둔 보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값진 것을 선물로 주겠네. 잘 만든 술동이를 주겠네. 온통 은으로 되어 있고 테두리는 금으로 마무리했는데,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일세. 시돈인의 왕, 영웅 파이디모스가 내게 준 것인데,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집에 묵었을 때였네. 그것을 자네에게 주고 싶네." 이렇게 말하고 영웅 아트레우스의 아들은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잔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굳센 메가펜테스가 빛나는 은 술동이를 가져와 그의 앞에 놓았다. 뺨이 고운 헬레네가 겉옷을 손에 들고 곁에 서서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125 "젊은이, 나도 이 선물을 주겠소. 헬레네가 손수 지은 것이니 기념으로 간직하시오. 많은 이가 기다리는 혼례 날에 당신 아내가 입게 하시오. 그때까지는 홀 안, 당신의 사랑하는 어머니 곁에 두시오. 부디 기쁜 마음으로 잘 지은 집과 고향 땅에 돌아가기를 바라오."

130 이렇게 말하고 헬레네가 겉옷을 그의 손에 쥐여 주자, 텔레마코스는 기쁘게 받았다. 영웅 페이시스트라토스가 선물을 받아 수레 바구니에 넣으며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감탄했다. 금발의 메넬라오스가 그들을 집 안으로 이끌었고, 그들은 등받이 의자와 높은 의자에 앉았다. 시녀가 손 씻을 물을 아름다운 황금 물병에 담아 와 은대야 위로 부어 손을 씻게 하고, 곁에 반들반들한 식탁을 펴 놓았다. 살림 맡은 점잖은 여인이 빵을 가져다 놓고, 있는 음식을 아낌없이 내어 여러 가지 찬을 곁들였다. 보에토오스의 아들이 곁에서 고기를 썰어 몫을 나누었고, 영광스러운 메넬라오스의 아들이 술을 따랐다. 그들은 앞에 차려진 음식에 손을 뻗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텔레마코스와 네스토르의 빛나는 아들은 말을 매고 화려하게 꾸민 수레에 올라, 문간과 소리 울리는 주랑을 지나 수레를 몰고 나갔다. 금발의 메넬라오스, 아트레우스의 아들이 오른손에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포도주를 황금 잔에 담아 들고 그들을 뒤따랐다. 두 사람이 신께 술을 따라 바치고 떠나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는 말들 앞에 서서 잔을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151 "잘 가게, 젊은이들. 백성의 목자 네스토르께도 내 인사를 전해 주게. 우리 아카이아인의 아들들이 트로이에서 싸우는 동안 그분은 내게 아버지처럼 너그러우셨네."

154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제우스가 기르신 분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그곳에 가면 이 모든 말씀을 그분께 낱낱이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도 이타카로 돌아가 집에 계신 오디세우스를 만나, 제가 왕께 온갖 우정을 받고 많은 귀한 보물을 가지고 돌아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60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른쪽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안뜰에서 기르던 커다란 흰 거위를 발톱으로 움켜쥔 독수리였다. 사내들과 여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뒤쫓았지만, 독수리는 그들 가까이 다가오더니 말들 앞을 지나 오른쪽으로 날아올랐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기뻐했으며, 모두의 가슴속 마음이 따뜻해졌다. 네스토르의 아들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그들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167 "제우스가 기르신 메넬라오스 왕이시여, 백성의 우두머리시여, 생각해 보십시오. 신께서 이 징조를 저희 둘에게 보이신 것입니까, 아니면 왕께 보이신 것입니까?"

169 그가 이렇게 말하자, 아레스가 아끼는 메넬라오스는 이 징조를 어떻게 풀어야 도리에 맞게 답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는데, 옷자락 긴 헬레네가 그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

172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불사의 신들께서 내 마음에 넣어 주시는 대로, 그리고 내가 이루어지리라 믿는 대로 예언하겠소. 이 독수리가 제 혈통과 새끼들이 있는 산에서 내려와 집에서 기르던 거위를 낚아챘듯이, 오디세우스도 숱한 고생을 겪고 숱한 곳을 떠돈 끝에 집으로 돌아와 앙갚음을 할 것이오. 아니, 어쩌면 벌써 집에 와서 구혼자들 모두에게 닥칠 재앙의 씨를 심고 있을 것이오."

179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우렛소리 요란한 헤라의 남편 제우스께서 부디 그렇게 이루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러면 저는 그곳에서도 왕비님께 신께 하듯 빌겠습니다."

182 이렇게 말하고 그가 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자, 말들은 힘차게 도시를 가로질러 들판으로 내달렸다. 두 말은 온종일 멍에를 양쪽에 진 채 흔들어 댔다. 해가 지고 길이란 길이 모두 어둠에 잠겼다. 그들은 페라이에 있는 디오클레스의 집에 이르렀다. 디오클레스는 알페이오스강이 낳은 오르틸로코스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밤을 보냈고, 디오클레스는 그들 앞에 손님 선물을 내놓았다.

189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이 나타나자, 그들은 말을 매고 알록달록한 수레에 올라 문간과 소리 울리는 주랑을 지나 말을 몰았다. 말을 몰려고 채찍질을 하자 두 말은 기꺼이 날듯이 달렸다. 그들은 곧 필로스의 가파른 도시에 이르렀다. 그때 텔레마코스가 네스토르의 아들에게 말했다.

195 "네스토르의 아들, 내 부탁 하나 약속하고 들어줄 수 있겠어? 우리는 아버지들의 우정 덕에 대대로 손님 벗이라고 자부하고, 나이도 같아. 이번 길은 우리를 더욱 한마음으로 만들어 줄 거야. 제우스가 기른 친구야, 나를 배 곁을 지나쳐 데려가지 말고 거기 내려 줘. 어르신께서 나를 아끼려고 내 뜻과 달리 집에 붙잡아 두실까 봐 그래. 나는 어서 돌아가야 하거든."

202 그가 이렇게 말하자, 네스토르의 아들은 어떻게 하면 약속하고 도리에 맞게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지 마음속으로 궁리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그는 말을 돌려 날랜 배가 있는 바닷가로 몰고 가서, 메넬라오스가 준 아름다운 선물, 옷과 황금을 배의 고물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어서 떠나라고 재촉하며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09 "어서 배에 오르고 동료들에게도 모두 오르라고 해. 내가 집에 가서 어르신께 알리기 전에 말이야. 나는 마음속으로 이것만은 잘 알아.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굳센지 너를 놓아주지 않으실 거야. 몸소 너를 부르러 여기까지 오실 테고, 빈손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을 거야. 어쨌든 몹시 노하실 테니까."

215 이렇게 말하고 그는 갈기 고운 말들을 몰아 필로스 사람들의 도시로 돌아가 곧 집에 닿았다. 텔레마코스는 동료들에게 어서 서두르라고 일렀다. "벗들이여, 검은 배에 장비를 제자리에 갖추게. 우리도 배에 올라 어서 길을 떠나세."

220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그 말을 귀담아듣고 따랐다. 그들은 곧바로 배에 올라 노 젓는 자리에 앉았다.

222 텔레마코스가 이렇게 바쁘게 일을 서두르며 배의 고물 곁에서 아테나께 기도하고 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먼 나라에서 온 사내 하나가 그에게 가까이 왔다. 아르고스에서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나온 예언자였다. 그는 핏줄로 따지면 멜람푸스의 후손이었다. 멜람푸스는 일찍이 양들의 어머니인 필로스에 살며, 필로스 사람들 가운데 누구보다 훌륭한 집에 사는 부자였다. 그러다 그는 고향과,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당당한 사람, 기상 높은 넬레우스를 피해 남의 고장으로 갔다. 넬레우스가 그의 많은 재산을 꼬박 한 해 동안 힘으로 빼앗아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멜람푸스는 넬레우스의 딸 때문에, 그리고 무서운 여신 에리니스가 그의 마음에 씌운 무거운 미혹 때문에 필라코스의 홀에서 괴로운 사슬에 묶여 모진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운명을 벗어나, 크게 우는 소들을 필라케에서 필로스로 몰고 왔다. 그리고 신에 버금가는 넬레우스에게 그 고약한 짓을 앙갚음하고, 그 딸을 아내로 삼게 하려고 제 형제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 그는 남의 고장, 말을 먹이는 아르고스로 갔다. 그곳에 살며 많은 아르고스인을 다스리는 것이 그의 몫이었다. 그는 거기서 아내를 얻고 지붕 높은 집을 지었으며, 굳센 두 아들 안티파테스와 만티오스를 낳았다. 안티파테스는 기상 높은 오이클레스를 낳았고, 오이클레스는 백성을 일깨우는 암피아라오스를 낳았다. 암피아라오스는 아이기스를 지닌 제우스와 아폴론이 온갖 사랑을 쏟아 마음 깊이 아낀 사람이었지만, 늙음의 문턱에 이르지 못하고 한 여인이 받은 뇌물 때문에 테베에서 죽었다. 그의 아들로는 알크마이온과 암필로코스가 태어났다. 만티오스는 폴리페이데스와 클레이토스를 낳았다. 황금 옥좌의 새벽 여신은 클레이토스가 아름다워서 불사의 신들과 함께 살게 하려고 그를 낚아채 갔다. 그리고 아폴론은 암피아라오스가 죽자 기세 높은 폴리페이데스를 인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예언자로 만들었다. 폴리페이데스는 아버지에게 노하여 히페레시아로 옮겨 가 살면서 모든 사람에게 예언을 해 주었다.

256 바로 그 폴리페이데스의 아들이 찾아왔는데, 이름은 테오클리메노스였다. 그는 텔레마코스 곁에 섰다. 텔레마코스가 날랜 검은 배 곁에서 신께 술을 따라 바치며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60 "젊은이, 여기서 제물을 바치는 당신을 만났으니, 이 제물과 신께 걸고, 그리고 당신 자신의 머리와 당신을 따르는 동료들의 머리에 걸고 비오.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말해 주고 숨기지 마시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왔소? 고향은 어디고 부모는 누구요?"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손님, 숨김없이 다 말하겠소. 나는 이타카 태생이고 아버지는 오디세우스요. 그런 분이 계셨던 적이 있다면 말이오. 그러나 이제는 비참한 파멸을 맞아 돌아가셨소. 그래서 이제 동료들과 검은 배를 얻어, 오래전에 떠나신 아버지의 소식을 들으러 왔던 것이오."

271 신을 닮은 테오클리메노스가 말을 받았다. "나도 그렇게 같은 핏줄의 사람을 죽이고 고향을 떠나왔소. 말을 먹이는 아르고스에는 그의 형제와 친척이 많은데, 아카이아인들 사이에서 큰 세력을 떨치고 있소. 나는 그들이 내리려는 죽음과 검은 죽음의 운명을 피해 달아나는 중이오. 사람들 사이를 떠돌아다니는 것이 이제 내 몫이 되었소. 도망쳐 와서 당신에게 탄원하니 나를 배에 태워 주시오. 그들이 나를 죽이지 못하게 말이오. 그들이 뒤쫓아 오고 있을 것이오."

279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당신이 바라는데 균형 잡힌 배에서 당신을 밀어내지는 않겠소. 따라오시오. 저곳에 가면 우리가 가진 것으로나마 당신을 대접하겠소."

282 이렇게 말하고 그는 테오클리메노스에게서 청동 창을 받아 양 끝이 휜 배의 갑판에 눕혀 두었다. 그리고 자신도 바다를 건너는 배에 올라 고물에 앉고, 그 곁에 테오클리메노스를 앉혔다. 동료들이 고물 밧줄을 풀었다. 텔레마코스가 동료들에게 어서 돛과 밧줄을 잡으라고 이르자, 그들은 서둘러 따랐다. 그들은 전나무 돛대를 들어 올려 속이 빈 돛대 받침에 세우고 앞 밧줄로 묶은 다음, 잘 꼰 가죽 밧줄로 흰 돛을 끌어 올렸다. 빛나는 눈의 아테나가 그들에게 알맞은 순풍을 보내 주었다. 바람은 하늘을 가르며 세차게 몰아쳤고, 배는 짠 바닷물을 헤치며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들은 크루노이와 물이 고운 칼키스를 지나갔다.

296 해가 지고 길이란 길이 모두 어둠에 잠겼다. 배는 제우스가 보낸 순풍을 타고 서둘러 페아이를 지났고, 에페이오이족이 다스리는 고귀한 엘리스도 지나갔다. 거기서 텔레마코스는 뾰족한 섬들 쪽으로 배를 몰았다. 죽음을 피하게 될지 붙잡히게 될지 마음을 졸이면서였다.

301 그 무렵 오두막에서는 오디세우스와 고귀한 돼지치기가 저녁을 먹고 있었고, 다른 일꾼들도 곁에서 함께 먹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오디세우스가 돼지치기를 떠보려고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돼지치기가 아직도 자기를 살뜰히 아껴 이 농장에 머물라고 할지, 아니면 도시로 가라고 할지 알아보려 한 말이었다.

307 "에우마이오스,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모두 이제 들어 보시오. 나는 당신과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내일 아침 도시로 내려가 빌어먹고 싶소. 그러니 내게 좋은 말로 일러 주고, 나를 그리로 데려다줄 좋은 길잡이를 하나 붙여 주시오. 도시에 가면 누가 술 한 잔과 빵 한 조각이라도 내밀지 않을까 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이곳저곳을 떠돌 것이고, 신 같은 오디세우스의 집에 가서 사려 깊은 페넬로페께 소식도 전하고 싶소. 방자한 구혼자들 사이에도 끼어 보겠소. 그자들은 먹을 것을 한없이 가지고 있으니 내게 끼니를 줄지도 모르오. 그러면 나는 그자들이 바라는 일을 무엇이든 곧바로 잘 해낼 것이오. 내가 터놓고 말할 테니 잘 새겨듣고 귀 기울이시오. 모든 사람의 일에 은혜와 영광을 내려 주시는 길잡이 헤르메스 덕분에, 시중드는 솜씨로는 나와 겨룰 사람이 아무도 없소. 불을 잘 피우고, 마른 장작을 패고, 고기를 썰어 굽고, 술을 따르는 일, 지체 낮은 이들이 훌륭한 사람들에게 해 주는 그런 일들 말이오."

325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여, 그대는 몹시 속을 끓이며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아, 손님, 어째서 그런 생각을 마음에 품었소? 당신은 정말 그곳에서 죽고 싶은 모양이구려. 구혼자들 무리 속에 들어가겠다니 말이오. 그자들의 오만과 횡포는 무쇠 하늘까지 닿았소. 그자들의 시중을 드는 사람은 당신 같은 이들이 아니오. 외투와 윗옷을 잘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시중을 드는데, 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도 곱소. 반들반들 다듬은 식탁에는 빵과 고기와 포도주가 수북이 쌓여 있소. 그러니 여기 머무시오. 당신이 여기 있다고 귀찮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나도, 내 곁의 다른 동료들도 그렇소.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면, 그 아이가 당신에게 외투와 윗옷을 옷으로 입혀 주고, 당신 마음과 가슴이 가라는 곳으로 보내 줄 것이오."

340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에우마이오스, 나를 떠돌이 신세와 끔찍한 비참함에서 쉬게 해 주었으니, 당신이 내게 그렇듯 아버지 제우스께도 사랑받기를 비오. 사람에게 떠도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은 없소. 떠돌이 신세와 재앙과 고통이 찾아온 사람은 이 저주받을 배 때문에 몹쓸 시름을 겪게 마련이오. 그러나 이제 당신이 나를 붙잡고 그 아이를 기다리라고 하니, 자, 신 같은 오디세우스의 어머니와, 그분이 떠나면서 늙음의 문턱에 남겨 둔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시오. 그분들은 아직 햇빛 아래 살아 계시오, 아니면 벌써 돌아가 하데스의 집에 계시오?"

351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돼지치기가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손님, 숨김없이 다 말하겠소. 라에르테스 어른은 아직 살아 계시지만, 떠나간 아들과 슬기로운 정실 부인 때문에 지독하게 슬퍼하시며 자기 집에서 팔다리에서 목숨이 빠져나가게 해 달라고 늘 제우스께 비신다오. 그 부인께서 돌아가신 것이 그분을 누구보다 괴롭혔고, 그분을 이르게 늙게 만들었소. 그 부인께서는 영광스러운 아들을 그리는 슬픔으로 비참하게 돌아가셨소. 이곳에 살면서 내게 다정하고 잘해 주는 사람은 누구도 그렇게 죽지 않기를 바라오. 그 부인께서 살아 계시는 동안에는 비록 슬픔에 잠겨 계셨어도, 나는 그분께 이것저것 여쭙고 말씀을 듣는 것이 즐거웠소. 그분이 기품 있는 딸, 막내로 낳은 옷자락 긴 크티메네와 함께 나를 몸소 키워 주셨기 때문이오. 나는 그 따님과 함께 자랐고, 부인께서는 나를 그 따님보다 조금 덜 귀히 여기셨을 뿐이오. 그러나 우리 둘 다 꽃다운 나이가 되자, 그분들은 그 따님을 사메로 시집보내고 엄청난 혼수를 받으셨고, 부인께서는 내게 아주 고운 외투와 윗옷을 옷으로 입히고 발에 신을 신겨 들판으로 보내셨는데, 마음속으로는 나를 더욱 아끼셨소. 이제는 그런 것들을 다 잃었소. 그래도 내가 맡아 하는 일은 복된 신들께서 늘려 주시니, 거기서 먹고 마시고, 점잖은 이들에게 베풀기도 했소. 그러나 안주인께서는 다정한 말씀도 따뜻한 일도 들을 수가 없소. 방자한 사내들이 집에 재앙으로 들이닥쳤으니 말이오. 종들은 안주인 앞에서 말씀을 나누고 이것저것 여쭙고, 거기서 먹고 마시고, 들로 무엇이든 가지고 돌아가기를 몹시 바라오. 그런 일이 늘 종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니 말이오."

380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아아,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당신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고향과 부모 곁을 떠나 멀리 떠돌았구려. 자, 이것을 말해 주시오. 숨김없이 낱낱이. 당신의 아버지와 존귀한 어머니가 살던, 길이 넓은 사람들의 도시가 무너졌소, 아니면 당신이 양 떼나 소 떼 곁에 홀로 있을 때 적들이 배로 붙잡아 와서 이 사람의 집에 팔아넘겼고, 이분이 그 값을 넉넉히 치렀소?"

389 일꾼들의 우두머리인 돼지치기가 말을 받았다. "손님, 당신이 그것을 묻고 캐물으니, 이제 조용히 들으며 즐기고 앉아서 포도주를 드시오. 요즘 밤은 끝없이 길어서 잠잘 틈도 있고, 즐겁게 이야기를 들을 틈도 있소. 때가 되기 전에 누울 것은 없소. 너무 많이 자는 것도 괴로운 일이니 말이오. 다른 이들 가운데 마음과 가슴이 자라고 하는 사람은 밖에 나가서 자고, 날이 밝자마자 아침을 먹은 다음 주인님의 돼지들을 몰고 따라 나가도록 하시오. 우리 둘은 오두막에서 마시고 먹으며 서로의 비참한 시름을 떠올리며 즐깁시다. 숱한 고생을 겪고 숱한 곳을 떠돈 사람은 지난 고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기도 하는 법이오. 당신이 묻고 캐묻는 그 일을 이제 이야기하겠소."

403 "혹시 들어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오르티기아 너머, 해가 도는 곳에 시리에라는 섬이 있소. 사람이 그리 많이 살지는 않아도 좋은 섬으로, 소와 양을 치기에 좋고 포도주와 밀이 넉넉하오. 그 고을에는 굶주림이 찾아드는 일도, 가련한 인간들에게 닥치는 다른 몹쓸 병도 없어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무리가 늙으면 은활의 아폴론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찾아와 부드러운 화살로 그들을 쏘아 죽이오. 그 섬에는 도시가 두 개 있고, 모든 것이 둘로 나뉘어 있소. 그 두 도시를 다 다스린 왕이 내 아버지, 불사의 신들과 닮은 오르메노스의 아들 크테시오스였소."

415 "그곳에 배로 이름난 페니키아 사람들이 왔소. 욕심 사나운 장사꾼들로, 검은 배에 온갖 자질구레한 장신구를 잔뜩 싣고 왔소. 그때 내 아버지 집에는 페니키아 여인 하나가 있었는데, 아름답고 훤칠하며 빛나는 솜씨를 아는 여인이었소. 교활한 페니키아 사람들이 그 여인을 꾀어냈소. 여인이 빨래를 하러 나왔을 때 그들 가운데 한 사내가 우묵한 배 곁에서 먼저 그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하며 정을 통했는데, 그런 일은 솜씨 좋은 여자라 해도 여자들의 마음을 홀리게 마련이오. 그 사내가 여인에게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여인은 곧바로 내 아버지의 지붕 높은 집을 가리켰소."

425 "'나는 청동이 많은 시돈 태생이라 자부하고, 아리바스의 딸이오. 내 아버지는 넘치도록 부자였소. 그런데 내가 들에서 돌아오는데 타포스의 해적들이 나를 낚아채, 여기로 끌고 와서 이 사람의 집에 팔아넘겼소. 이 사람이 넉넉한 값을 치렀소.'"

430 "그러자 몰래 그 여인과 정을 통하던 사내가 말을 받았소. '그러면 이제 우리와 함께 다시 집으로 가지 않겠소? 당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붕 높은 집과 그분들을 보러 말이오. 그분들은 아직 살아 계시고 부자라는 말을 듣고 있소.'"

434 "여인이 말을 받아 대답했소. '그것도 좋겠소. 뱃사람들이여, 당신들이 나를 무사히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맹세로 다짐해 준다면 말이오.'"

437 "여인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 그 말대로 맹세했소. 그들이 맹세를 마치고 나자, 여인이 다시 그들 가운데서 말을 받아 대답했소."

440 "'이제 조용히들 하시오. 당신네 동료들 가운데 누구든 길에서든 샘가에서든 나를 마주치더라도 내게 말을 걸지 마시오. 누가 집에 가서 노인께 일러바치면, 노인은 눈치를 채고 나를 괴로운 사슬로 묶고 당신들에게는 파멸을 꾸밀 것이오. 이 말을 마음에 담아 두고, 짐 실을 물건을 서둘러 사들이시오. 배에 살림살이가 가득 차거든 곧바로 내게 집으로 전갈을 보내시오. 손에 닿는 황금이라도 가져가겠소. 그리고 기꺼이 뱃삯을 하나 더 치르겠소. 내가 그 집 홀에서 주인의 아들을 돌보고 있는데, 이만큼 영리한 아이로 늘 나를 따라 문밖까지 쫓아 나오니, 그 아이를 배에 태워 데려가겠소. 그 아이를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데려가 어디서 팔든 당신들에게 엄청난 값을 벌어 줄 것이오.'"

454 "여인은 이렇게 말하고 아름다운 집으로 돌아갔소. 그들은 꼬박 한 해 동안 우리 곁에 머물며 우묵한 배에 재물을 잔뜩 사들였소. 우묵한 배에 짐이 다 실려 떠날 때가 되자, 그들은 여인에게 알리라고 심부름꾼을 보냈소. 아주 약삭빠른 사내 하나가 호박 구슬을 사이사이 꿴 황금 목걸이를 들고 내 아버지의 집에 왔소. 홀에서 하녀들과 내 존귀한 어머니가 그것을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살피며 값을 매기고 있는 사이에, 그 사내는 여인에게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소.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는 우묵한 배로 돌아갔고, 여인은 내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소. 여인은 문간에서 내 아버지를 모시는 손님들이 쓰던 잔과 식탁을 보았소. 손님들은 회의장으로, 백성들이 모여 의논하는 자리로 나가고 없었소. 여인은 재빨리 잔 세 개를 품속에 감추어 들고 나갔고, 나는 철없이 그 뒤를 따라갔소. 해가 지고 길이란 길이 모두 어둠에 잠겼소. 우리는 서둘러 걸어 바다를 빨리 달리는 페니키아 사람들의 배가 있는 이름난 포구에 닿았고, 그들은 우리 둘을 태우고 배에 올라 물길을 따라 나아갔으며, 제우스께서 순풍을 보내 주셨소. 우리는 엿새 동안 밤낮없이 배를 몰았소. 그러나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께서 이레째 날을 보내셨을 때, 화살을 쏟아붓는 아르테미스가 그 여인을 쏘았소. 여인은 바닷새처럼 배 밑바닥의 고인 물 속으로 쿵 하고 떨어졌소. 그들은 여인을 물개와 물고기의 밥이 되도록 배 밖으로 내던졌고, 나는 비통한 가슴을 안고 홀로 남았소. 바람과 물결이 그들을 실어 이타카에 닿게 했고, 그곳에서 라에르테스께서 손수 재산을 들여 나를 사셨소. 그렇게 해서 내가 이 땅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소." 그러자 제우스의 핏줄인 오디세우스가 그에게 대답했다. "에우마이오스, 당신이 마음속으로 겪은 고통을 이렇게 낱낱이 이야기하니 내 가슴속 마음이 몹시 흔들렸소. 그러나 제우스께서는 당신에게 나쁜 일과 함께 좋은 일도 주셨구려. 숱한 고생 끝에 너그러운 사람의 집에 오게 되었으니 말이오. 그분은 당신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성껏 대 주고, 당신은 좋은 삶을 살고 있소. 그러나 나는 사람들의 숱한 도시를 떠돌다가 이곳에 왔소."

493 이렇게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두 사람은 오래 자지 못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곧 아름다운 옥좌의 새벽 여신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한편 텔레마코스의 동료들은 뭍 가까이에서 돛을 풀고 재빨리 돛대를 내리고, 노를 저어 배를 정박할 곳으로 몰아간 다음, 닻돌을 던지고 고물 밧줄을 맸다. 그러고는 그들도 파도치는 바닷가로 내려가 아침을 차리고 반짝이는 포도주에 물을 섞었다. 실컷 먹고 마셔 더 바랄 것이 없게 되자,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그들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503 "자네들은 이제 검은 배를 몰고 도시로 가게. 나는 밭과 목자들을 둘러보고, 내 일을 살펴본 뒤 저녁에 도시로 내려가겠네. 내일 아침에는 길을 함께한 품삯으로 고기와 달게 넘어가는 포도주로 좋은 잔치를 차려 주겠네."

508 신을 닮은 테오클리메노스가 말을 받았다. "젊은이, 그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하오? 바위투성이 이타카를 다스리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의 집을 찾아가야 하오? 아니면 곧장 당신 어머니에게, 당신 집으로 가야 하오?"

512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다른 때라면 우리 집으로 가라고 했을 것이오. 손님 대접할 것이 모자라지는 않으니 말이오. 그러나 지금은 당신에게 좋지 않을 것이오. 나는 집에 없을 테고, 어머니는 집에서 구혼자들 앞에 자주 나타나지 않고 그들에게서 떨어져 위층 방에서 베를 짜시니 당신을 만나 주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찾아갈 만한 다른 사람을 일러 주겠소. 슬기로운 폴리보스의 빛나는 아들 에우리마코스요. 지금 이타카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우러러보고 있소. 그는 그들 가운데 단연 뛰어난 사내이고, 내 어머니와 혼인하여 오디세우스의 명예를 차지하려고 누구보다 애를 쓰고 있소. 그러나 혼례에 앞서 그자들에게 재앙의 날이 닥칠지는 높은 하늘에 사는 올림포스의 제우스께서나 아실 것이오."

525 그가 이렇게 말하자 오른쪽으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아폴론의 날랜 심부름꾼인 새매였는데, 발에 비둘기를 움켜쥐고 털을 뜯어, 배와 텔레마코스 사이로 깃털을 땅에 흩뿌렸다. 테오클리메노스는 그를 동료들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불러, 손을 꼭 잡고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531 "텔레마코스, 저 새는 신의 뜻 없이 오른쪽으로 날아오른 것이 아니오. 마주 보는 순간 나는 저것이 새점인 줄 알았소. 이타카 고을에서 당신 가문보다 더 왕다운 가문은 없고, 당신네는 언제까지나 굳셀 것이오." 의젓한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손님, 그 말이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러면 당신은 곧 내게서 우정과 많은 선물을 받게 될 것이고, 당신을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을 복 받은 사람이라 부를 것이오."

539 그러고는 믿음직한 동료 페이라이오스에게 말했다. "클리티오스의 아들 페이라이오스, 나와 함께 필로스에 갔던 동료들 가운데 너는 늘 내 말을 가장 잘 따랐지. 이번에도 이 손님을 너희 집에 데려가서, 내가 돌아갈 때까지 극진히 대접하고 잘 모셔 줘."

544 창으로 이름난 페이라이오스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 네가 여기 오래 머문다 해도 내가 이분을 잘 돌볼게. 손님 대접에 모자람은 없을 거야."

547 이렇게 말하고 그는 배에 올라, 동료들에게도 배에 올라 고물 밧줄을 풀라고 일렀다. 그들은 곧바로 배에 올라 노 젓는 자리에 앉았다. 텔레마코스는 발에 고운 신을 매어 신고, 배의 갑판에서 날카로운 청동 날을 단 굳센 창을 집어 들었다. 동료들이 고물 밧줄을 풀었다. 그들은 배를 밀어내 도시로 저어 갔다. 신 같은 오디세우스의 사랑하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이른 대로였다. 텔레마코스는 성큼성큼 걸어 나아갔고, 두 발이 그를 금세 안뜰까지 데려다주었다. 그곳에는 돼지들이 엄청나게 많았고, 착한 돼지치기가 주인들에게 늘 따뜻한 마음을 품은 채 그 돼지들 곁에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