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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제1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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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권

1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숨을 죽이고 잠잠해졌다. 그늘진 홀 안의 사람들은 이야기에 홀린 채 꼼짝하지 않았다. 알키노오스가 그에게 대답했다.

4 "오디세우스, 당신이 청동 바닥을 깐 내 지붕 높은 집에 왔으니, 비록 숱한 고생을 겪었다 해도 이제 다시 길을 잃고 헤매다 돌아가지는 않으리라 믿소. 그리고 내 홀에서 원로들의 반짝이는 포도주를 늘 마시며 노래꾼의 노래를 듣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르겠소. 손님에게 줄 옷과 공들여 세공한 황금과 그 밖의 온갖 선물은 파이아케스의 원로들이 이리로 가져와 반들반들 다듬은 궤짝 안에 벌써 넣어 두었소. 자, 그러니 우리가 저마다 큰 세발솥 하나와 솥 하나씩을 그에게 더 줍시다. 그 값은 나중에 백성들에게서 거두어 메우면 되오. 한 사람이 값을 받지 않고 이만큼 베풀기는 힘든 일이니 말이오."

16 알키노오스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그 말을 반겼다. 그들은 잠을 자러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의 새벽 여신이 나타나자, 그들은 사내를 빛내 주는 청동을 들고 서둘러 배로 갔다.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는 뱃사람들이 노를 힘껏 저을 때 걸리적거려 누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몸소 배 안을 오가며 그것들을 노 젓는 자리 밑에 잘 챙겨 넣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알키노오스의 집으로 가서 잔치를 차렸다.

24 신성한 기운을 지닌 알키노오스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검은 구름의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께 소 한 마리를 잡아 바쳤다. 넓적다리뼈를 태우고 나서 그들은 영광스러운 잔치를 즐겁게 벌였고, 그들 가운데서 백성에게 존경받는 신과 같은 노래꾼 데모도코스가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환히 빛나는 해 쪽으로 자꾸만 고개를 돌렸다. 어서 해가 지기를 재촉했으니, 그만큼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떤 사람이 저녁밥을 몹시 기다릴 때가 있다. 포도주 빛 소 두 마리에 이음매가 단단한 쟁기를 매어 온종일 묵정밭을 갈아엎은 사람이다. 그에게는 햇빛이 지는 것이 반갑다.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걸어가는 그의 무릎이 휘청거린다. 꼭 그처럼 오디세우스에게는 햇빛이 지는 것이 반가웠다. 그는 곧바로 노 젓기를 좋아하는 파이아케스인들 가운데서 말했다. 무엇보다 알키노오스를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을 건넸다.

38 "알키노오스 왕이시여, 모든 백성 가운데 우뚝하신 분이여, 신께 술을 따라 바치고 나서 나를 무사히 보내 주십시오. 여러분도 부디 평안하십시오. 나를 보내 줄 배도, 정다운 선물도 마련되어 내 마음이 바라던 것이 이제 다 이루어졌으니, 하늘에 사는 신들께서 이것들을 복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고향에 돌아가 나무랄 데 없는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무탈한 것을 보게 되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여기 머물며 처음 맞은 아내와 자식들을 기쁘게 해 주십시오. 신들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빼어남을 내려 주시고, 백성 가운데 아무 재앙도 없기를 빕니다."

47 그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 옳다고 하며 손님을 보내 주라고 했다. 그의 말이 도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기운찬 알키노오스가 전령에게 말했다. "폰토노오스, 술동이에 술을 섞어 홀 안의 모든 이에게 돌리시오. 아버지 제우스께 기도를 올리고 나서 손님을 그의 고향 땅으로 보내 드립시다."

53 그가 이렇게 말하자 폰토노오스는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포도주를 섞어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서서 모두에게 돌렸다.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넓은 하늘에 사는 복된 신들께 술을 따라 바치자,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일어나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잔을 아레테의 손에 쥐여 드리고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59 "왕비님, 사람에게 찾아오기 마련인 늙음과 죽음이 닥칠 때까지 언제까지나 평안하십시오. 나는 이제 떠납니다. 왕비님께서는 이 집에서 자녀들과 백성과 알키노오스 왕과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십시오."

63 이렇게 말하고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문지방을 넘어 나갔다. 기운찬 알키노오스는 전령을 함께 딸려 보내 날랜 배가 있는 바닷가까지 길을 안내하게 했다. 아레테도 하녀들을 그와 함께 보냈다. 한 하녀에게는 깨끗이 빤 겉옷과 윗옷을 들려 보내고, 또 한 하녀에게는 튼튼한 궤짝을 나르게 했으며, 다른 하녀는 빵과 붉은 포도주를 들고 갔다.

70 그들이 배가 있는 바다로 내려오자, 그를 실어다 줄 당당한 뱃사람들이 곧 그것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모두 받아 우묵한 배에 실었다. 그러고는 오디세우스가 깨지 않고 잠들 수 있도록 우묵한 배의 고물 쪽 갑판에 담요와 아마포를 깔아 주었다. 오디세우스도 배에 올라 말없이 누웠다. 뱃사람들은 저마다 노 젓는 자리에 차례대로 앉아 구멍 뚫린 돌에서 밧줄을 풀었다. 그들이 몸을 뒤로 젖히며 노깃으로 바닷물을 튀겨 올리자, 오디세우스의 눈꺼풀 위로 깊고 달콤한 잠이 내려앉았다. 깨어날 줄 모르는 더없이 달콤한 잠, 죽음과 아주 닮은 잠이었다. 배는 고물을 높이 쳐들며 내달렸다. 들판에서 네 마리 수말이 한 수레에 매여 채찍을 맞고 한꺼번에 뛰쳐나가면, 높이 몸을 솟구치며 재빨리 길을 헤쳐 나간다. 꼭 그처럼 배의 고물이 들려 올랐고, 그 뒤로는 울부짖는 바다의 검붉은 큰 물결이 사납게 일었다. 배는 흔들림 없이 줄곧 내달렸다. 새들 가운데 가장 날랜 새매라도 그 배를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배는 바다의 물결을 가르며 빠르게 달렸다. 신들과 맞먹는 꾀를 지닌 사내를 싣고서였다. 지난날 그는 사람들의 싸움과 모진 물결을 헤쳐 나가며 마음속으로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이제는 겪은 일을 모두 잊은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93 이른 아침에 태어난 새벽 여신의 빛을 알리러 오는 가장 환한 별이 떠오를 무렵, 바다를 건너는 배가 섬에 다가갔다.

96 이타카 고을에는 바다 노인 포르키스의 포구가 있었다. 깎아지른 곶 두 개가 포구 쪽으로 몸을 숙이듯 바다로 튀어나와 있어서, 사나운 바람이 일으키는 큰 물결을 밖에서 막아 주었다. 그 안에서는 갑판 튼튼한 배들이 닻 내릴 자리에만 이르면 밧줄로 매어 두지 않아도 그대로 머물렀다. 포구 머리에는 잎이 긴 올리브나무가 서 있었고, 그 곁에 아늑하고 어둑한 동굴이 있었는데, 물의 님프라고 불리는 님프들에게 바쳐진 신성한 동굴이었다. 그 안에는 돌로 된 술동이와 손잡이 둘 달린 항아리가 놓여 있었고, 벌들이 거기에 꿀을 쟁여 두었다. 또 돌로 된 아주 긴 베틀이 있어서, 님프들이 그 베틀로 바다처럼 짙은 자줏빛 겉옷을 짰는데 보기에도 놀라웠다. 동굴 안에는 마르지 않는 물이 흘렀다. 동굴에는 문이 두 개 있었는데, 북풍 쪽으로 난 문은 사람이 드나드는 길이었고, 남풍 쪽 문은 신들의 문이라 사람은 그리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것은 불사의 신들이 다니는 길이었다.

113 뱃사람들은 전부터 그곳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로 배를 몰아 들어갔다. 노 젓는 사람들의 손이 그토록 힘차게 배를 밀어붙였으므로, 배는 내달리던 기세 그대로 선체의 절반쯤이 뭍에 올라앉았다. 그들은 노 젓는 자리가 튼튼한 배에서 뭍으로 내려서자, 맨 먼저 오디세우스를 아마포와 반들거리는 담요째로 우묵한 배에서 들어 올려 잠에 굴복한 그를 모래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당당한 파이아케스인들이 기상 높은 아테나의 뜻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준 재물을 꺼냈다. 그들은 그것들을 길에서 비켜난 올리브나무 밑동 곁에 한데 모아 두었다. 오디세우스가 깨기 전에 길 가던 누가 다가와 손대는 일이 없게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일찍이 신에 버금가는 오디세우스에게 퍼부었던 위협을 잊지 않았고, 제우스의 뜻을 떠보았다.

128 "아버지 제우스여, 인간들이, 그것도 제 핏줄에서 나온 파이아케스인들이 저를 조금도 받들지 않으니, 이제 저는 불사의 신들 사이에서 더는 존중받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오디세우스가 숱한 고생을 겪은 뒤에야 집에 돌아가리라 여겼을 뿐, 그의 귀향을 아주 빼앗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처음에 약속하시고 고개를 끄덕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잠든 그를 날랜 배에 싣고 바다를 건너 이타카에 내려놓았고, 청동과 황금과 짠 옷을 넉넉히, 한없이 많은 선물을 주었습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에서 제 몫의 전리품을 받아 무사히 돌아왔다 해도 결코 가져오지 못했을 만큼 많은 선물입니다."

139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대답했다. "허, 널리 힘을 떨치는 땅을 뒤흔드는 이여, 무슨 말을 하는가. 신들은 결코 자네를 업신여기지 않네. 가장 나이 많고 가장 뛰어난 신을 업신여기기란 어려운 일일세. 인간들 가운데 누가 제 힘과 기운만 믿고 자네를 조금도 받들지 않는다면, 뒷날에라도 앙갚음할 길이 언제나 자네에게 있네. 자네 하고 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게."

146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이 대답했다. "검은 구름의 신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저도 곧바로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아버지의 노여움을 두려워하며 피해 왔습니다. 이제 저는 호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파이아케스인들의 더없이 아름다운 배를 아득한 바다에서 부숴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그들이 이제 그만 물러서서 사람들을 실어다 주는 일을 그만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 덮고 싶습니다."

153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대답했다. "여보게, 내 생각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겠네. 도시의 온 백성이 그 배가 달려오는 것을 내다볼 때, 뭍 가까이에서 그 배를 날랜 배를 꼭 닮은 바위로 만들어 두게. 그러면 모든 사람이 놀랄 걸세. 그리고 그들의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 덮게."

159 대지를 흔드는 포세이돈은 그 말을 듣자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스케리아로 가서 거기서 기다렸다. 바다를 건너는 배가 빠르게 달려와 아주 가까이 다가오자, 포세이돈이 그 곁으로 다가가 손바닥으로 내리쳐 배를 돌로 만들고 밑바닥에 뿌리를 박아 놓았다. 그러고는 떠나갔다. 노가 긴 파이아케스인들, 배로 이름난 사내들은 서로 날개 돋친 말을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옆 사람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168 "아아, 대체 누가 집으로 달려오던 날랜 배를 바다 위에 붙들어 매었나? 벌써 배가 다 보였는데."

170 누군가 이렇게 말하곤 했으나, 그들은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알키노오스가 그들 가운데서 말했다.

172 "허, 내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하신 예언이 정말로 내게 닥쳤구려.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누구든 해 입지 않게 바래다주니 포세이돈께서 우리를 언짢아하신다고 늘 말씀하셨소. 그리고 언젠가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더없이 아름다운 배가 사람을 바래다주고 아득한 바다를 건너 돌아올 때 포세이돈께서 그 배를 부숴 버리고, 우리 도시를 큰 산으로 둘러 덮어 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소. 노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 일이 모두 이루어지는구려. 자, 그러면 내가 말하는 대로 모두 따릅시다. 앞으로는 누가 우리 도시에 오더라도 사람을 실어다 주는 일을 그만두시오. 그리고 포세이돈께 골라 뽑은 황소 열두 마리를 제물로 바칩시다. 혹시 우리를 가엾게 여기시어 우리 도시를 아주 큰 산으로 둘러 덮지 않으실지도 모르오."

184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두려워하며 황소를 마련했다. 이렇게 파이아케스 백성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이 제단을 둘러서서 포세이돈 왕께 기도하는 사이에, 제 아버지의 땅에서 자고 있던 고귀한 오디세우스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터라 그는 그 땅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제우스의 딸, 여신 팔라스 아테나가 그의 둘레에 안개를 쏟아부은 까닭이었다. 아테나는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고 모든 일을 낱낱이 일러 줄 작정이었으니, 구혼자들이 저지른 방자한 짓을 모두 갚기 전에는 아내도, 고을 사람들도, 친구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래서 주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다. 길게 뻗은 오솔길도, 배를 대기 좋은 포구도, 깎아지른 바위도,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도 그랬다. 그는 벌떡 일어나 서서 제 아버지의 땅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소리 내어 울며 두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치고, 비탄에 잠겨 말했다.

200 "아아,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들의 땅에 왔는가? 오만하고 사나워 도리를 모르는 자들인가, 아니면 나그네를 반기고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자들인가? 이 많은 재물을 어디로 가져가야 하나? 나 자신은 또 어디를 헤매야 하나? 차라리 그대로 파이아케스인들 곁에 머물렀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나는 다른 힘센 왕을 찾아갔을 테고, 그 왕이 나를 아껴 고향으로 보내 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이것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여기 남겨 두었다가 남의 먹잇감이 되게 할 수도 없다. 아아, 파이아케스인의 지도자들과 통치자들은 모든 일에 슬기롭고 공정한 자들이 아니었구나. 멀리서도 환히 보이는 이타카로 데려다주겠다고 해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나를 다른 땅으로 데려왔으니 말이다. 탄원하는 이를 지키는 제우스께서 그들을 벌하시기를. 그분은 다른 사람들도 굽어보시고 죄지은 자는 누구든 벌하신다. 자, 이 재물을 세어 보고 살펴보자. 저들이 우묵한 배에 싣고 무엇을 가져가지는 않았는지."

217 이렇게 말하고 그는 더없이 아름다운 세발솥과 솥, 황금과 곱게 짠 옷을 헤아렸다. 그러나 없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울부짖는 바다의 물가를 따라 힘없이 발을 끌며 고향 땅을 그리워 울었고, 몹시 슬퍼했다. 그때 아테나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양 떼를 치는 젊은 사내의 모습이었는데, 왕의 자식들이 흔히 그렇듯 아주 여리고 고왔다. 두 어깨에는 잘 지은 겉옷을 두 겹으로 둘렀고, 반들거리는 발에는 신을 신었으며, 손에는 투창을 들고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젊은이를 보자 반가워 마주 나아가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28 "젊은이, 이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당신이니 반갑소. 부디 나쁜 마음으로 나를 맞지 마시오. 이 재물을 지켜 주고 나도 지켜 주시오. 나는 신께 하듯 당신에게 빌며 당신의 무릎에 매달리오. 이것도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내가 똑똑히 알 수 있도록. 여기는 무슨 땅이고 무슨 고장이며, 어떤 사람들이 사오? 멀리서도 환히 보이는 어느 섬이오, 아니면 기름진 뭍의 바닷가가 바다 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내린 곳이오?"

236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말을 받았다. "나그네, 이 땅이 어디냐고 묻다니 당신은 어리석은 사람이거나 아주 먼 데서 온 사람이구려. 이 땅은 그렇게까지 이름 없는 곳이 아니오. 새벽과 해가 뜨는 쪽에 사는 사람이든, 그 뒤편 어스름한 어둠 쪽에 사는 사람이든, 아주 많은 이가 이 땅을 아오. 이곳은 바위가 많아 말을 몰기에는 맞지 않지만, 아주 척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넓지도 않소. 여기서는 곡식이 엄청나게 나고 포도주도 나오. 비가 늘 내리고 이슬이 풍성하오. 염소와 소를 치기에도 좋고, 온갖 나무가 우거진 숲이 있으며, 사철 마르지 않는 물웅덩이가 있소. 그러니 나그네, 이타카라는 이름은 아카이아 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트로이까지도 알려져 있소."

250 아테나가 이렇게 말하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기뻤다. 아이기스를 지닌 제우스의 딸 팔라스 아테나가 일러 준 대로, 그곳이 제 아버지의 땅이라니 반가웠다. 그는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가슴속에 늘 꾀 많은 생각을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56 "나는 바다 건너 멀리 넓은 크레타에서도 이타카 이야기를 들었소. 그런데 이제 내가 몸소 이 재물을 가지고 이곳에 왔구려. 이만한 재물을 자식들에게도 남겨 두고 나는 도망쳐 나왔소. 이도메네우스의 사랑하는 아들, 발 빠른 오르실로코스를 내가 죽였기 때문이오. 그는 넓은 크레타에서 빵을 먹고 사는 사내들을 날랜 발로 모두 이긴 자였소. 트로이에서 얻은 전리품 때문에 나는 사람들의 싸움과 모진 물결을 헤쳐 나가며 마음속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그자가 그 전리품을 내게서 몽땅 빼앗으려 했소. 내가 트로이인들의 땅에서 그의 아버지 비위를 맞추며 그 밑에서 시중들지 않고 따로 다른 전우들을 이끌었다는 까닭이었소. 그래서 나는 그가 들에서 돌아올 때 전우 하나와 함께 길가에 숨어 기다리다가 청동 날 박힌 창으로 그를 맞혔소. 아주 캄캄한 밤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했고, 나는 남몰래 그의 목숨을 빼앗았소. 날카로운 청동으로 그를 죽이고 나서 나는 곧장 배로 가서 당당한 페니키아인들에게 간절히 사정하고, 그들 마음에 찰 만큼 전리품을 내주었소. 그리고 나를 배에 태워 필로스나, 에페이오이족이 다스리는 고귀한 엘리스에 내려 달라고 했소. 그러나 그들은 몹시 내키지 않았는데도 바람의 힘에 떠밀려 그곳에서 밀려나고 말았소. 그들이 나를 속이려 한 것은 아니오. 거기서 떠밀려 헤매다가 우리는 밤에 이곳에 닿았소. 서둘러 노를 저어 포구로 들어왔는데, 몹시 시장했으면서도 저녁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 그냥 배에서 내려 그 자리에 드러누웠소. 지친 내게 달콤한 잠이 찾아왔고, 그들은 내 재물을 우묵한 배에서 꺼내 내가 누워 있던 모래 위에 내려놓았소. 그러고는 살기 좋은 시돈 땅으로 배를 타고 떠나갔고, 나는 비통한 가슴을 안고 홀로 남았소."

287 그가 이렇게 말하자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는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그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여신의 모습은 아름답고 훤칠하며 빛나는 솜씨를 아는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신은 날개 돋친 말을 건넸다.

291 "그대를 온갖 속임수로 앞지르려면, 신이 맞선다 해도, 어지간히 약삭빠르고 교활해야 할 것이다. 모진 사람, 온갖 꾀를 지닌 자, 속임수에 물릴 줄 모르는 자여. 그대는 제 땅에 와서도 거짓말과 남을 속이는 이야기를 그칠 생각이 없구나. 그런 말이 뼛속까지 좋은가 보다. 자, 이제 이런 말은 그만두자. 우리 둘 다 잇속에 밝으니. 그대는 모든 인간 가운데 생각과 말로 단연 으뜸이고, 나는 모든 신들 가운데 꾀와 잇속 밝은 재주로 이름이 났다. 그런데도 그대는 온갖 고난 속에서 언제나 그대 곁에 서서 지켜 주고 파이아케스인 모두에게 그대가 사랑받게 해 준 나, 제우스의 딸 팔라스 아테나를 알아보지 못했구나. 이제 나는 다시 여기 왔다. 그대와 함께 꾀를 짜고, 당당한 파이아케스인들이 내 뜻과 생각에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그대에게 준 재물을 숨겨 주려고 왔다. 또 잘 지은 그대 집에서 그대가 견뎌야 할 시름이 얼마나 되는지 일러 주려고 왔다. 그대는 어쩔 수 없더라도 참아 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아무에게도 그대가 떠돌다 돌아왔다고 털어놓지 마라. 말없이 숱한 고통을 견디며 사람들의 횡포를 받아 내라."

311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여신이시여, 아무리 잘 아는 사람이라도 여신을 마주쳐서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신께서는 무엇으로든 모습을 바꾸시니까요. 그러나 이것만은 제가 잘 압니다. 우리 아카이아인의 아들들이 트로이에서 싸우는 동안에는 여신께서 제게 너그러우셨지만,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가파른 도시를 무너뜨리고 배에 올랐을 때 어떤 신이 아카이아인들을 흩어 버렸습니다. 그 뒤로, 제우스의 따님이시여, 저는 여신을 뵙지 못했고, 여신께서 제 배에 오르셔서 제게 닥친 고통을 막아 주시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가슴속 마음이 찢긴 채 늘 떠돌았습니다. 신들께서 저를 불행에서 풀어 주실 때까지, 곧 파이아케스 사람들의 기름진 고장에서 여신께서 말로 저를 북돋우시고 몸소 도시로 이끌어 주실 때까지 그랬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여신의 무릎을 잡고 빕니다. 저는 멀리서도 환히 보이는 이타카에 왔다고 믿지 않습니다. 다른 어떤 땅을 헤매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여신께서 제 마음을 속이시려고 놀리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말로 사랑하는 고향 땅에 왔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329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대답했다. "그대 가슴속에는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어 있구나. 그러니 나는 불운한 그대를 버려두고 떠날 수가 없다. 그대는 말솜씨가 좋고 생각이 날래며 분별이 있다. 다른 사람이라면 떠돌다 돌아와서 반가운 마음에 어서 집으로 가 자식들과 아내를 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먼저 아내를 시험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려 하지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구나. 그대 아내는 늘 그렇게 그대 홀에 머물러 있고, 눈물을 흘리며 비참한 밤과 낮을 늘 그렇게 보내고 있다.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그대가 전우들을 모두 잃고 돌아오리라는 것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형제인 포세이돈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그대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눈을 멀게 했다고 그대에게 노여움을 품은 신이다. 자, 그대가 믿을 수 있도록 이타카의 터전을 보여 주겠다. 여기가 바다 노인 포르키스의 포구다. 포구 머리에는 이 잎이 긴 올리브나무가 있고, 그 곁에 아늑하고 어둑한 동굴, 물의 님프라고 불리는 님프들에게 바쳐진 신성한 동굴이 있다. 이것이 그 지붕 덮인 동굴이다. 그대가 님프들에게 흠 없는 큰 제물을 수없이 바치던 곳이다. 그리고 저것은 숲으로 뒤덮인 네리톤산이다."

352 이렇게 말하고 여신이 안개를 흩어 버리자 땅이 드러났다.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디세우스는 제 땅이 반가워 기뻐하며 곡식을 내는 땅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곧 두 손을 들고 님프들에게 기도했다.

356 "제우스의 따님들, 물의 님프들이시여, 다시는 뵙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이제 정다운 기도로 인사드리니 기뻐하소서. 전리품을 몰아오는 제우스의 따님께서 기꺼이 저를 살려 두시고 제 사랑하는 아들을 키워 주신다면, 지난날처럼 선물도 바치겠습니다."

361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말을 받았다. "용기를 내라. 그런 일로 속을 썩이지 마라. 자, 이 재물부터 지금 곧 신비로운 동굴 깊숙한 곳에 두자. 그래야 그대에게 고스란히 남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일이 가장 잘되도록 우리가 궁리해 보자."

366 이렇게 말하고 여신은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 동굴 안에서 숨길 만한 구석을 찾았다.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인들이 준 황금과 닳지 않는 청동과 잘 지은 옷을 모두 가까이 날라 왔다. 아이기스를 지닌 제우스의 딸 팔라스 아테나가 그것들을 잘 놓아두고 입구에 돌을 막아 두었다. 둘은 신성한 올리브나무 밑동 곁에 앉아 방자한 구혼자들을 파멸시킬 궁리를 했다.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375 "제우스의 핏줄, 라에르테스의 아들, 재간 많은 오디세우스여, 염치없는 구혼자들에게 어떻게 손을 댈지 궁리해 보아라. 그자들은 벌써 세 해째 그대 홀에서 주인 행세를 하며, 신에 버금가는 그대 아내에게 구혼하고 구혼 선물을 내밀고 있다. 그대 아내는 그대가 돌아오기를 늘 마음속으로 애타게 기다리며 슬퍼하면서도, 모두에게 기대를 품게 하고 사내마다 약속을 하며 전갈을 보내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다."

382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아아, 여신께서 이 모든 일을 도리에 맞게 일러 주지 않으셨다면, 저도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처럼 제 홀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자, 제가 저들에게 앙갚음할 꾀를 짜 주십시오. 우리가 트로이의 반들거리는 머릿수건을 벗겨 냈을 때처럼, 크나큰 용기를 불어넣으시며 몸소 제 곁에 서 주십시오. 빛나는 눈의 여신이시여, 그때처럼 열의를 품고 곁에 서 주신다면, 존귀한 여신이시여, 여신께서 기꺼이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저는 여신과 함께 삼백 명의 사내와도 싸우겠습니다."

392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대답했다. "물론 나는 그대 곁에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낼 때 그대가 나를 놓칠 일은 없다. 그대의 살림을 먹어 치우는 구혼자들 가운데 누군가는 피와 골로 끝없이 넓은 땅바닥을 더럽히리라. 자, 그대를 모든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게 만들겠다. 잘 굽는 팔다리의 고운 살갗을 쭈글쭈글하게 하고, 머리에서 금빛 머리털을 없애고, 걸친 것을 보기만 해도 사람들이 싫어할 누더기를 그대에게 입히겠다. 전에는 더없이 아름답던 두 눈도 흐리멍덩하게 만들겠다. 그러면 그대는 모든 구혼자에게도, 홀에 두고 떠난 아내와 아들에게도 볼품없는 꼴로 보일 것이다. 그대는 먼저 돼지치기에게 가거라. 그대 돼지들을 지키는 사람인데, 그대에게 한결같이 마음이 따뜻하고, 그대 아들과 분별 있는 페넬로페를 아낀다. 그가 돼지들 곁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돼지들은 까마귀 바위 곁, 아레투사 샘가에서 풀을 뜯으며 마음껏 도토리를 먹고 검은 물을 마신다. 그런 것을 먹고 마셔야 돼지에게 기름진 비계가 붙는다. 그대는 거기 머물며 그의 곁에 앉아 모든 것을 물어보아라. 그동안 나는 여인들이 아름다운 스파르타로 가서 그대의 사랑하는 아들 텔레마코스를 불러오겠다, 오디세우스. 그 아이는 그대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는지 소식을 들으러 땅이 넓은 스파르타로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

416 꾀 많은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 어찌하여 그 아이에게 말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이도 거둘 것 없는 바다 위를 떠돌며 고통을 겪고, 그사이 남들이 그 아이 살림을 먹어 치우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빛나는 눈의 여신 아테나가 대답했다. "그 아이 일로 너무 마음 쓰지 마라. 내가 몸소 그 아이를 보냈다. 그곳에 가서 좋은 명성을 얻게 하려고 그랬다. 그 아이는 아무 고생도 하지 않고 아트레우스의 아들 집에 편히 앉아 있고, 곁에는 한없이 많은 것이 놓여 있다. 물론 젊은이들이 검은 배를 타고 숨어 기다리다가 그 아이가 고향 땅에 닿기 전에 죽이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그대의 살림을 먹어 치우는 구혼자들 가운데 누군가가 땅에 묻힐 것이다."

429 이렇게 말하고 아테나가 지팡이로 그를 건드렸다. 잘 굽는 팔다리의 고운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머리에서 금빛 머리털이 없어지고, 온몸의 살갗이 늙은 노인의 살갗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더없이 아름답던 두 눈도 흐리멍덩해졌다. 여신은 그에게 다른 고약한 누더기와 윗옷을 걸쳐 주었다. 해지고 때 묻고 지독한 연기에 그을린 옷이었다. 그 위에 털이 다 빠진 날랜 사슴의 커다란 가죽을 입혔다. 또 짚고 다닐 지팡이 하나와 군데군데 해진 볼품없는 자루를 주었는데, 자루에는 꼬아 만든 끈이 어깨걸이로 달려 있었다.

439 두 사람은 이렇게 의논을 마치고 헤어졌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찾아 고귀한 스파르타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