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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지혜잠언 22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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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26~300

226 은혜를 입혀 두는 데 주의하라. 대부분의 사람은 제 본모습대로 말하고 행하지 않고, 남이 자기를 매어 두는 대로 말하고 행한다. 나쁜 일을 믿게 하는 데는 누구라도 넉넉하다. 나쁜 일은 때로 믿기 어려워도 아주 잘 믿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가장 많고 가장 좋은 것은 남의 존경에 달려 있다. 어떤 이들은 이치가 제 편에 있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모자라니, 부지런히 애써 이치를 거들어야 한다. 은혜를 입히는 데는 때로 아주 적은 것이 들고, 그 값은 크다. 말로 행동을 산다. 우주라는 이 큰 집에는 한 해에 한 번도 쓰일 일이 없을 만큼 하찮은 세간은 하나도 없고, 값은 적더라도 막상 없으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이다. 누구나 제 감정에 따라 대상을 말한다.

227 첫인상에 매이는 사람이 되지 말라. 어떤 이들은 처음 들은 말과 혼인하니 나머지 말은 모두 첩이 되고, 거짓은 언제나 앞질러 오기 때문에 나중에는 진실이 들어설 자리가 아예 남지 않는다. 의지를 처음 만난 대상으로, 지성을 처음 들은 주장으로 가득 채워서는 안 된다. 바닥이 얕다는 표시다. 어떤 이들의 그릇은 새 항아리 같아서, 나쁜 술이든 좋은 술이든 처음 담긴 냄새가 차지해 버린다. 이 얕음이 남에게 알려지면 해롭다. 악의 있는 술수에 발판을 주기 때문이다. 속셈이 나쁜 자들은 잘 믿는 남의 마음을 제 빛깔로 물들이려고 미리 손을 쓴다. 늘 다시 살필 자리를 남겨 두라. 알렉산드로스처럼 한쪽 귀는 상대편 몫으로 남겨 두라1. 두 번째, 세 번째 들을 말에도 자리를 남겨 두라. 쉽게 물드는 것은 그릇이 작다는 증거이고, 격정에 휘둘리는 것과 멀지 않다.

228 나쁜 말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말라. 그런 평판을 얻는 것은 더욱 안 된다. 남의 명성을 깎는다는 명성을 얻는 일이다. 남을 희생시켜 재치를 부리지 말라. 어렵기보다 밉살스러운 일이다. 모두가 그를 헐뜯으며 앙갚음하니, 그는 혼자이고 그들은 여럿이라 그들이 설복되기보다 그가 먼저 굴복할 것이다. 나쁜 것은 즐거워해서도 안 되고, 입에 올려서도 안 된다. 험담꾼은 언제까지나 미움을 받고, 때로 큰 인물들이 그를 가까이 두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그의 슬기를 높이 쳐서가 아니라 그의 조롱이 즐거워서일 것이다. 남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늘 더 나쁜 말을 듣는다.

229 제 삶을 사려 깊게 나눌 줄 알라, 오는 기회대로가 아니라 앞을 내다보고 가려서. 쉼 없는 삶은 주막 없는 먼 길처럼 고되다. 배움이 깃든 다채로움이 삶을 행복하게 한다. 아름다운 삶의 첫 여정은 죽은 이들과 이야기하는 데 쓰라. 우리는 알고 또 자기를 알려고 태어났으며, 책은 충실하게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둘째 여정은 산 사람들과 보내라.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보고 살펴야 한다. 모든 것이 한 땅에 다 있지는 않다. 만물의 아버지는 선물을 고루 나누어 주었고, 때로는 못난 땅을 더 넉넉하게 했다. 셋째 여정은 온전히 자기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 행복, 철학하는 일.

230 제때 눈을 뜨라. 보는 사람이 모두 눈을 뜬 것은 아니고, 바라보는 사람이 모두 보는 것도 아니다. 늦게 깨달으면 약이 되지 않고 한이 될 뿐이다. 어떤 이들은 볼 것이 없어진 뒤에야 보기 시작한다. 자기를 세우기도 전에 집과 살림을 무너뜨렸다. 의지 없는 사람에게 지성을 주기는 어렵고, 지성 없는 사람에게 의지를 주기는 더 어렵다. 곁에 있는 자들은 눈먼 사람 다루듯 그들을 가지고 놀고 남들은 그 꼴을 보며 웃지만, 그들은 듣는 데 귀가 먹었으니 보려고 눈을 뜨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무감각을 부추기는 자도 없지 않으니, 그들이 아무것도 아니어야 제가 무엇이 되기 때문이다. 주인의 눈이 없는 말은 불행하다. 살이 오를 리 없다.

231 반쯤 된 일은 결코 내보이지 말라. 다 이루어진 뒤에 누리게 하라. 시작은 모두 꼴이 없고 그 흉한 꼴은 나중까지 머릿속에 남으니, 덜된 것을 보았다는 기억 때문에 다 이루어진 뒤에도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큰 대상을 한꺼번에 누리면 부분마다 따지는 판단력은 어지러워도, 안목은 그것만으로 흡족해진다. 모든 것은 있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있기 시작할 때에도 아직 제 없음 속 깊이 잠겨 있다. 아무리 맛난 요리라도 만드는 것을 보면 입맛보다 구역질이 먼저 난다. 그러니 큰 장인은 누구나 제 작품이 태아일 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 내보일 만해질 때까지 내놓지 않는 법을 자연에게서 배우라.

232 장사꾼 기질을 조금은 지니라. 모든 것이 사색이어서는 안 되고, 행동도 있어야 한다. 아주 지혜로운 사람은 속이기 쉽다. 남다른 것은 알아도, 삶에 더 긴요한 평범한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높은 것을 관조하느라 손에 잡히는 일에는 틈이 나지 않는다. 누구나 머리카락을 쪼갤 만큼 훤히 아는 것, 맨 먼저 알았어야 할 것을 모르니, 얕은 범속한 무리에게서 감탄을 받거나 아니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내는 장사꾼 기질을 조금 지니도록 애쓰라. 속지 않고 비웃음도 사지 않을 만큼. 할 수 있는 일에 밝은 사람이 되라. 가장 높은 것은 아니어도 삶에 가장 긴요하다. 쓰이지 않는 앎이 무슨 소용인가? 오늘날에는 사는 법을 아는 것이 참된 앎이다.

233 남의 입맛을 빗맞혀, 기쁨을 주려다 괴로움을 주지 말라. 어떤 이들은 은혜를 베푼다는 것이 도리어 노엽게 한다. 사람마다 다른 기질을 헤아리지 못해서다. 어떤 행동은 누구에게는 아첨이 되고 누구에게는 모욕이 된다. 봉사라고 믿은 것이 모욕이 되었다. 때로는 기쁨을 주는 데 들었을 것보다 언짢게 하는 데 더 많은 것이 들었다. 기쁘게 하는 길잡이 별을 잃었으니 감사도 선물도 잃는다. 남의 기질을 모르면 그를 흡족하게 해 주기 어렵다. 어떤 이들이 칭찬을 한다는 것이 그만 욕을 하고 말았던 것도 그래서이니, 마땅히 받을 벌이었다. 또 어떤 이들은 제 말솜씨로 즐겁게 해 주려다 수다로 남의 영혼을 두들겨 팬다.

234 남의 명예를 볼모로 잡지 않고는 제 명망을 맡기지 말라. 입을 다물면 함께 이익을 보고, 입을 가볍게 놀리면 함께 해를 입게 할 일이다. 명예가 걸린 일에서는 늘 동업하는 사이가 되어, 자기 명망 때문에 남의 명망까지 지키게 해야 한다. 결코 맡기지 말아야 하지만, 혹시 맡긴다면 분별이 조심에게 자리를 내줄 수 있을 만큼 기술을 써야 한다. 위험은 함께 지고 사정은 서로 얽히게 하라. 자기도 한패임을 아는 사람은 증인으로 돌아서지 못한다.

235 청할 줄 알라. 어떤 이에게는 이보다 어려운 일이 없고, 어떤 이에게는 이보다 쉬운 일이 없다. 거절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곁쇠가 필요 없다. 아무 때나 '아니'가 첫마디인 사람들도 있다. 이들에게는 수완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제때가 필요하다. 몸이 먼저 배불리 먹었든 마음이 먼저 배불렀든, 기분이 좋을 때를 잡는 것이다. 살피는 쪽이 되짚어 보는 주의로 청하는 사람의 묘수를 미리 알아채지만 않는다면 기쁨의 날이 곧 총애의 날이니, 기쁨은 안에서 밖으로 넘쳐흐른다. 남이 거절당하는 것을 본 뒤에는 다가가지 말라. '아니'라고 말하는 두려움이 이미 사라졌다. 슬픔 위에서는 좋은 수가 나오지 않는다. 미리 은혜를 입혀 두는 것은, 상대가 비루하지 않은 한, 틀림없이 돌아오는 환전이다.

236 나중에 상으로 줄 것을 미리 은혜로 베풀라. 큰 정치가들의 솜씨다. 공로보다 앞선 총애는 의리 아는 사람임을 보여 준다. 이렇게 앞당긴 총애에는 두 가지 뛰어난 점이 있다. 주는 쪽이 서두른 만큼 받는 쪽은 더 크게 빚진다. 같은 선물이라도 나중에 주면 빚을 갚는 것이고, 먼저 주면 상대를 묶어 두는 것이다. 의무를 뒤바꾸는 교묘한 길이다. 윗사람에게 있어야 할 상 줄 의무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갚을 의무로 넘어간다. 다만 이것은 의리 있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니, 비루한 자에게 명예의 값을 미리 치르면 박차가 아니라 오히려 재갈을 물리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237 윗사람과 비밀을 나누지 말라. 배를 나누어 먹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돌을 나누게 된다2. 속내를 털어놓는 상대였다가 망한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은 빵 조각으로 만든 숟가락과 같아서, 다 쓰고 나면 함께 먹힌다. 군주가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총애가 아니라 답답한 가슴을 푸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제 추한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고 거울을 깬다. 자기를 볼 수 있었던 사람을 차마 보지 못하고, 못 볼 것을 본 사람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너무 크게 빚지게 해서는 안 되고, 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빚지게 하더라도 받은 총애보다 베푼 은혜로 그리하라. 무엇보다 우정으로 털어놓는 속내가 위험하다. 제 비밀을 남에게 털어놓은 사람은 그의 노예가 되었고, 군주에게 그것은 오래 견딜 수 없는 억지다. 군주는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고 싶어 하고, 그러려고 무엇이든, 이치까지도 짓밟을 것이다. 그러니 비밀은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

238 자기에게 빠진 조각을 알라. 많은 사람이 그 무언가 하나만 모자라지 않았다면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을 텐데, 그것이 없어 완전한 존재의 정점에 끝내 이르지 못하고 만다. 아주 작은 것만 돌보았다면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을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떤 이에게는 진중함이 모자라 큰 자질이 빛을 잃고, 어떤 이에게는 성품의 부드러움이 모자라니, 이는 가까운 사람들이 곧 아쉬워하는 결함이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떤 이에게는 실행력이, 어떤 이에게는 자제가 아쉽다. 이 모든 모자람은 알아차리기만 하면 쉽게 메울 수 있다. 정성을 들이면 습관을 제2의 본성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39 지나치게 날카롭지 말라, 분별 있는 편이 더 중요하다. 알맞은 것보다 더 아는 것은 끝을 무디게 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벼린 묘수는 대개 부러지기 때문이다. 자리 잡힌 진리가 더 안전하다. 지성은 있으면 좋지만, 아는 체하는 수다는 아니다. 생각을 지나치게 펼치는 것은 말다툼의 한 갈래다. 필요한 만큼만 생각을 펼치는, 속이 찬 좋은 판단력이 더 낫다.

240 어리석음을 쓸 줄 알라. 가장 큰 현자도 때로는 이 패를 쓴다. 모르는 체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앎인 때도 있다. 몰라서는 안 되지만, 모르는 체는 해야 한다. 어리석은 자들 앞에서 지혜로워 봐야 소용이 적고 미친 자들 앞에서 슬기로워 봐야 마찬가지이니, 누구에게든 그 사람이 쓰는 말로 이야기해야 한다. 어리석음을 꾸미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어리석음을 앓는 사람이 어리석은 자다. 홑겹의 어리석음은 어리석음이지만 겹으로 된 어리석음은 그렇지 않다. 꾸밈은 여기까지 닿는다. 사랑받는 유일한 길은 짐승 가운데 가장 순한 것의 가죽을 쓰는 것이다.

241 농담은 받아 주되 쓰지는 말라. 앞의 것은 일종의 아량이고, 뒤의 것은 시비에 말려드는 일이다. 놀이 자리에서 언짢아하는 사람은 짐승의 기질이 많고, 그보다 더 많이 드러낸다. 농담은 즐겁다. 넉넉히 받아 줄 줄 아는 것은 그릇이 크다는 증거다. 발끈하는 사람은 거듭 놀림받을 빌미를 준다. 농담은 한창 좋을 때 그만두어야 하고,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가장 심각한 일은 늘 농담에서 생겨났다. 이만큼 주의와 솜씨가 필요한 일은 없다. 시작하기 전에, 상대의 천성이 어디까지 참아 낼지 알아 두어야 한다.

242 승기를 끝까지 좇으라. 어떤 이들은 시작하는 데 힘을 다 쓰고, 아무것도 끝내지 못한다. 궁리해 내되 이어 가지 못한다. 천성이 진득하지 못한 탓이다. 아무것도 이어 가지 않으니 칭찬을 받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이 멈춤으로 끝난다. 또 어떤 이들에게서는 이것이 마음이 조급한 데서 나오는데, 이는 스페인 사람의 흠이다. 참을성이 플랑드르 사람3의 장점인 것처럼. 플랑드르 사람은 일을 끝맺고, 스페인 사람은 일을 끝장낸다. 어려움을 이길 때까지는 땀을 흘리지만 이긴 것으로 만족하고, 승리를 끝까지 거두어들일 줄 모르며, 할 수 있음을 보여 줄 뿐 해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능에서 오든 경박에서 오든 늘 흠이다. 일이 좋다면 왜 끝내지 않는가? 나쁘다면 왜 시작했는가? 그러니 영민한 사람은 사냥감을 잡으라. 몰이에 힘을 다 쓰고 말아서는 안 된다.

243 비둘기 같기만 하지 말라. 뱀의 간교함과 비둘기의 솔직함을 번갈아 쓰라4. 선량한 사람을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잘 믿고, 남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잘 맡긴다. 속는 것이 늘 어리석어서는 아니다. 때로는 착해서다. 해를 미리 잘 막는 사람은 두 부류다. 혼이 나 본 사람은 제 손해로 배웠고, 꾀바른 사람은 남의 손해로 배웠다. 꾀가 올가미를 짜는 데 뛰어난 만큼 영민함도 의심하고 경계하는 데 뛰어나야 하고, 남에게 악한 사람이 될 빌미를 줄 만큼 선량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비둘기와 뱀이 섞인 사람이 되라. 괴물이 아니라 경이로운 존재로.

244 은혜를 입힐 줄 알라. 어떤 이들은 자기가 받는 총애를 남이 받는 총애로 바꾸어 놓는다. 은혜를 받으면서 베푸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렇게 믿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눈치가 어찌나 밝은지, 청하면서 상대를 높이고 제 이익을 남의 명예로 바꾼다. 그들은 일을 아주 교묘하게 꾸며서, 남이 자기에게 줄 때조차 남이 자기를 섬기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기묘한 정치술로 은혜를 입히는 차례를 뒤집어 놓는다. 적어도 누가 누구에게 총애를 베푸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을 칭찬 값으로 사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내색 하나로 상대를 높이고 기분 좋게 한다. 예절을 볼모로 잡아, 자기가 감사해야 할 것을 남의 빚으로 만든다. 이렇게 그들은 은혜의 수동태를 능동태로 바꾸니, 문법가보다 나은 정치가다. 큰 묘수다. 그러나 그 묘수를 알아채는 것이 더 큰 묘수일 것이다. 어리석은 거래를 되물러, 그들에게는 명예를 돌려주고 저마다 제 이익을 거두는 일이다.

245 때로는 남다르게, 범상함을 벗어나 생각하라. 밑천이 뛰어나다는 증거다. 한 번도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높이 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사랑해서다. 아첨에 속아 그 값을 치르지 말고, 아첨을 꾸짖으라. 어떤 이들에게 험담을 듣는 것도 신용으로 삼으라. 좋은 사람이면 누구든 헐뜯는 자들에게 듣는다면 더욱 그렇다. 제 일이 모두의 마음에 든다면 언짢게 여기라. 좋지 않다는 표시다. 완전한 것은 소수의 몫이다.

246 묻지도 않은 사람에게 변명하지 말라. 청하더라도 지나치면 일종의 죄가 된다. 일이 생기기도 전에 변명하는 것은 제 죄를 털어놓는 것이고, 건강할 때 피를 뽑는 것은 병에게, 그리고 악의에게 어서 오라고 눈짓을 보내는 것이다. 앞질러 하는 변명은 잠자던 의심을 깨운다. 슬기로운 사람은 남의 의심을 알아챈 내색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모욕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그럴 때는 올곧은 처신으로 그 의심이 틀렸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247 조금 더 알고, 조금 덜 살라. 다른 이들은 거꾸로 생각한다. 좋은 한가함이 분주함보다 낫다. 우리 것이라고는 시간밖에 없다. 틈이 없는 사람이 어디서 살겠는가? 귀한 삶을 천한 손일에 써 버리는 것이나 고상한 일에 지나치게 써 버리는 것이나 똑같이 불행하다. 일을 잔뜩 짊어지지도, 시샘을 짊어지지도 말아야 한다. 삶을 짓밟고 마음을 질식시키는 일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앎에까지 넓히지만, 알지 못하면 사는 것이 아니다.

248 마지막 사람에게 끌려가지 말라. 마지막에 들은 말만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주책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들의 생각과 바람은 밀랍으로 되어 있다. 마지막 사람이 도장을 찍고 앞의 것은 모두 지운다. 이런 사람은 얻었다 해도 얻은 것이 아니다. 얻을 때처럼 쉽게 잃기 때문이다. 저마다 그들을 제 빛깔로 물들인다. 속을 터놓을 상대로는 나쁘고 평생 어린아이라서, 판단과 감정이 이리저리 바뀌며 늘 흔들리고, 의지도 판단력도 늘 절름거리며 이쪽저쪽으로 기운다.

249 끝내야 할 데서 삶을 시작하지 말라. 어떤 이들은 처음에 쉬고 수고는 끝으로 미룬다. 본질이 먼저이고, 자리가 남으면 그다음에 곁가지다. 또 어떤 이들은 싸우기도 전에 개선하려 한다. 어떤 이들은 가장 하찮은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신용과 쓸모를 주는 공부는 삶이 끝날 무렵으로 미룬다. 어떤 이는 운을 일구기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사라져 버린다. 알고 또 살아갈 수 있으려면 차례가 본질이다.

250 언제 거꾸로 생각해야 하는가? 악의로 말을 걸어올 때다. 어떤 이들과는 모든 것을 반대로 받아야 한다. '예'는 '아니'이고, '아니'는 '예'다. 어떤 것을 헐뜯는 것은 그것을 높이 친다는 표시로 여겨야 한다. 자기가 갖고 싶은 사람은 남에게는 그것을 깎아내리기 때문이다. 칭찬이라고 모두 좋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좋은 사람을 칭찬하지 않으려고 나쁜 사람까지 칭찬한다. 아무도 나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도 좋지 않을 것이다.

251 신의 수단이 없는 것처럼 사람의 수단을 구하고, 사람의 수단이 없는 것처럼 신의 수단을 구해야 한다. 큰 스승의 규칙이다5. 덧붙일 풀이가 없다.

252 온전히 제 것도, 온전히 남의 것도 되지 말라, 그것은 범속한 폭정이다. 자기를 온통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면 곧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 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아주 작은 것도 양보할 줄 모르고, 제 편안함을 한 치도 잃으려 하지 않는다. 남에게 은혜를 입히는 일이 드물고, 제 운을 믿다가 흔히 기댄 지팡이가 꺾인다. 때로는 남의 것이 되어야 남도 제 것이 된다. 모두를 위한 직분을 맡은 사람은 모두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아니면 "자리를 짐과 함께 내놓으라"고, 노파가 하드리아누스에게 한 말을 듣게 될 것이다6. 반대로 어떤 이들은 온통 남의 것이다. 어리석음은 늘 지나침으로 치닫는데 여기서는 불행하기까지 해서, 제 날도 제 시간 한 점도 없을 만큼 남에게 내맡겨진 나머지, 어떤 이는 "모두의 사람"이라고 불렸다. 지성에서도 그렇다. 남을 위해서는 다 알면서 자기를 위해서는 모른다. 주의 깊은 사람은 알아 두라. 아무도 그 사람 자신을 찾지 않고, 그에게 걸린 이익이나 그를 거쳐 얻을 이익을 찾는다.

253 생각을 너무 쉽게 풀어 놓지 말라. 대부분의 사람은 알아듣는 것은 높이 치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우러른다. 높이 쳐지려면 값이 들어야 한다. 알아듣지 못할 때 기림을 받을 것이다. 상대가 자기를 높이 헤아리게 하려면 늘 그가 바라는 것보다 조금 더 지혜롭고 분별 있게 보여야 하되, 지나치게 하지 말고 알맞은 정도로 해야 한다.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무엇에서나 차분한 머리가 큰 힘을 쓰지만, 대부분의 사람 앞에서는 높이 솟구쳐야 한다. 알아듣느라 바쁘게 만들어 흠잡을 틈을 주지 말라. 많은 사람이 물어보면 까닭을 대지 못할 것을 칭찬한다. 왜인가? 숨은 것은 무엇이든 신비라서 우러르고, 남이 기리는 소리를 들었으니 기린다.

254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으니, 작다고 얕보지 말라. 불행은 행복처럼 사슬로 엮여 다닌다. 행운도 불운도 대개 이미 많은 곳으로 간다. 모두가 불운한 사람을 피하고 운 좋은 사람에게 붙기 때문이다. 비둘기조차 그 순박함에도 가장 흰 탑으로 모여든다7. 불운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모자라게 된다. 제가 저를 저버리고, 생각도 위안도 떠난다. 잠든 불운은 깨우지 말아야 한다. 한 번 미끄러지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그 뒤로 어디서 멈출지 모를 치명적인 추락이 이어지니, 어떤 행복도 온전히 채워진 적이 없듯 어떤 불행도 온전히 끝난 적이 없다. 하늘에서 오는 불행에는 참을성, 땅에서 오는 불행에는 분별.

255 선을 베풀 줄 알라, 조금씩, 여러 번. 갚을 수 있는 것보다 큰 빚을 지워서는 결코 안 된다. 많이 주는 사람은 주는 것이 아니라 파는 것이다. 감사를 바닥까지 짜내서는 안 된다. 갚을 길이 없다고 보면 상대는 관계를 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을 잃는 데는 지나치게 은혜를 입히는 것 말고 다른 것이 필요 없으니, 그들은 갚지 않으려고 슬그머니 물러나고 빚진 사람에서 원수로 돌아선다. 우상은 자기를 깎은 조각가를 눈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고, 빚진 사람은 은인을 눈앞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다. 주는 일의 큰 묘수는, 적게 들고 크게 바라게 되는 것을 주어 더 높이 쳐지게 하는 데 있다.

256 무례한 자, 고집 센 자, 잘난 체하는 자, 그리고 온갖 어리석은 자에 맞서 늘 대비하고 다니라. 그런 자는 많이 마주치니, 슬기는 그들과 부딪치지 않는 데 있다. 날마다 주의라는 거울 앞에서 결심으로 무장하라. 그러면 어리석음이 거는 수를 이길 것이다. 일을 미리 내다보고 가면 제 명망을 범속한 뜻밖의 일에 내맡기지 않는다. 슬기로 대비한 사내는 주책에 공격당하지 않는다. 사람 사이의 교제는 신용을 잃게 하는 암초가 가득해서 그 뱃길이 험하니, 꾀에 대해서는 오디세우스에게 물어 암초를 비켜 가는 것이 안전한 길이다. 여기서는 솜씨 좋게 미끄러져 빠지는 것이 큰 힘을 쓴다. 무엇보다 아량으로 넘기라. 시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257 명망은 늘 상처를 입고 나오니, 결코 결별까지 가지 말라. 누구나 적이 될 수는 있지만, 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좋은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적고,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모두다. 독수리는 쇠똥구리와 사이가 틀어진 날부터는 유피테르의 품 안에서도 편히 둥지를 틀지 못한다8. 숨은 적들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드러난 적의 발톱을 빌려 불을 돋운다. 틀어진 벗에게서 가장 나쁜 원수가 나온다. 그들은 제 애정의 잘못을 남의 흠에 떠넘긴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느끼는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느끼며, 모두가 처음에는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고, 끝에는 참지 못했다고, 그리고 언제나 슬기가 없었다고 탓한다. 멀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변명할 여지가 있게 하라. 노여움의 불길보다 총애의 미지근함으로. 여기에 "아름다운 퇴각"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258 불행을 함께 짊어질 사람을 찾으라. 결코 혼자여서는 안 되고, 위험할 때는 더욱 그렇다. 미움을 혼자 다 짊어지게 된다. 어떤 이들은 모든 감독권을 손에 쥐려다 모든 험담을 손에 쥔다. 이렇게 하면 감싸 줄 사람이나 불행을 함께 짊어질 사람이 생긴다. 운도 범속함도 둘에게는 그리 쉽게 덤비지 못하니, 그래서 영민한 의사는 치료를 그르쳤어도 협진이라는 이름으로 관을 함께 멜 사람을 찾는 일만은 그르치지 않는다. 무게도 무거운 마음도 나뉜다. 불운은 혼자 지면 두 배가 되어 견딜 수 없게 된다.

259 모욕을 미리 막고, 모욕을 은혜로 바꾸라. 모욕은 갚기보다 피하는 것이 더 영민하다. 맞수가 되었을 사람을 속을 터놓는 벗으로 삼고, 제 명망을 노리고 날아오던 화살을 오히려 그 명망을 지키는 방패로 바꾸어 놓는 것은 큰 솜씨다. 은혜를 입힐 줄 아는 것은 큰 힘이 있다. 감사로 상대의 시간을 채우면 모욕할 시간을 빼앗는다. 괴로움이 될 것을 기쁨으로 바꾸는 것이 사는 법을 아는 일이다. 적의마저 믿음의 바탕으로 삼으라.

260 누구의 온전한 것도 되지 말고, 누구도 온전히 제 것으로 여기지 말라. 핏줄도 우정도 가장 단단한 의무도 그것으로는 모자라다. 가슴을 내주는 것과 의지를 내주는 것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깊은 결합에도 예외는 있고, 그렇다고 해서 진정의 법도가 다치지는 않는다. 벗은 늘 비밀 하나쯤은 자기만 간직하고, 아들조차 아버지에게 무언가는 숨긴다. 어떤 사람에게 감추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는 털어놓고 그 반대도 있으니, 이렇게 사귐의 경계를 가려 가며 모든 것을 내주면서 모든 것을 거두게 된다.

261 어리석음을 이어 가지 말라. 어떤 이들은 잘못을 고집으로 삼는다. 그르치기 시작했으니 계속하는 것이 지조라고 여긴다. 안의 법정에서는 제 잘못을 고발하고 바깥 법정에서는 변호하니, 어리석음을 시작했을 때 생각이 짧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이어 가면서는 어리석은 자로 굳어진다. 생각 없이 한 약속도, 잘못 내린 결심도 지킬 의무를 낳지 않는다. 이렇게 어떤 이들은 처음의 무례를 이어 가고 제 얕음을 밀고 나간다. 한결같이 주책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262 잊을 줄 알라, 그것은 기술이라기보다 행운이다. 잊어야 할 것일수록 가장 잘 기억난다. 기억은 가장 필요할 때 사라지니 비열할 뿐 아니라, 와서는 안 될 때 찾아오니 어리석기도 해서, 괴로움을 줄 일에는 끈질기고 기쁨을 주어야 할 일에는 무심하다. 때로는 불행을 고치는 약이 그것을 잊는 데 있는데, 그 약을 잊는다. 그러니 기억을 이렇게 편한 버릇에 길들여야 한다. 기억 하나로 행복도 지옥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자족하는 사람들은 예외다. 그들은 순진한 처지에서 단순한 행복을 누린다.

263 즐거움을 주는 것 가운데 많은 것은 제 것으로 가지지 말아야 한다. 제 것일 때보다 남의 것일 때 더 즐긴다. 좋은 것은 첫날만 주인의 몫이고, 나머지 날은 남의 몫이다. 남의 것은 두 배로 즐긴다. 손해 볼 위험이 없고, 새로움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갖지 못할 때 더 맛이 난다. 남의 물조차 넥타르인 척한다. 물건을 가지면 즐거움이 줄 뿐 아니라 빌려주어도 빌려주지 않아도 성가심이 늘고, 남을 위해 간수해 주는 일밖에 되지 않으며, 고마워하는 사람보다 얻게 되는 원수가 더 많다.

264 방심하는 날을 두지 말라. 운수는 장난치기를 좋아해서, 방심한 사람을 잡으려고 온갖 우연을 다 짓밟고 달려올 것이다. 재치와 슬기와 용기는 늘 시험받을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름다움까지도 그렇다. 마음을 놓는 날이 신용을 잃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심이 가장 필요할 때 조심은 늘 없었다. 생각하지 않는 것이 망하게 하는 발걸이다. 남의 주의도 흔히 계략을 써서, 엄밀히 값을 매기려고 방심한 틈에 완전함을 붙잡는다. 뽐내는 날은 이미 다 알려져 있으니 꾀는 그날을 그냥 넘겨주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던 날이 오면 바로 그날을 골라 사람의 값어치를 시험해 본다.

265 아랫사람에게 어려운 일을 맡길 줄 알라. 제때 맡긴 어려운 일 하나가 많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었다. 물에 빠지면 헤엄치는 법을 배우듯.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용기를, 앎까지도 찾아냈으니, 기회가 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의 움츠림 속에 묻혀 버렸을 것이다. 궁지는 명망이 걸린 승부처이고, 고귀한 사람은 명예가 걸린 처지에 놓이면 천 사람 몫을 한다. 가톨릭 여왕 이사벨9은 다른 모든 교훈과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을 맡기는 이 교훈도 탁월하게 알았고, 이 정치적 총애 덕에 대장군(Gran Capitán)10은 이름을 떨쳤으며 다른 많은 사람도 영원한 명성을 얻었다. 여왕은 이 묘수로 큰 인물들을 만들었다.

266 너무 착해서 나쁜 사람이 되지 말라. 결코 화내지 않는 사람이 그렇다. 무감각한 사람은 사람다운 데가 적다. 그것은 늘 무던해서가 아니라 그릇이 모자라서 나온다. 제때 드러내는 노여움은 사람다운 사람의 행동이다. 새들은 허수아비를 곧 비웃는다. 신 것과 단것을 번갈아 내는 것은 좋은 안목의 증거다. 단것만 찾는 것은 아이와 어리석은 자다. 무감각이라는 이 뜻에서, 너무 착해서 제 몸을 망치는 것은 큰 해악이다.

267 비단 같은 말, 부드러운 성품과 함께. 화살은 몸을 꿰뚫지만 나쁜 말은 영혼을 꿰뚫는다. 반죽이 좋으면 입에서도 좋은 냄새가 난다. 바람을 팔 줄 아는 것, 삶의 큰 묘수다. 대부분은 말로 값을 치르고, 말만으로도 갚을 길 없는 빚을 갚을 수 있다. 바람으로 바람을 거래하고, 높은 이의 입김은 사람에게 큰 기운을 불어넣는다. 말을 설탕에 졸일 수 있게 늘 입에 설탕을 가득 물고 다녀야 한다. 그런 말은 원수에게도 달다. 사랑받는 유일한 길은 온화한 것이다.

268 슬기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끝에 하는 일을 처음에 하라. 둘은 같은 일을 한다. 다른 것은 때뿐이다. 앞사람은 제때, 뒷사람은 때를 놓쳐서. 처음에 지성을 거꾸로 신은 사람은 나머지 모든 일에서도 그렇게 해 나가니, 머리 위에 얹어야 할 것을 발밑에 끌고 다니고 오른손을 왼손으로 삼아, 하는 일마다 서툰 왼손잡이가 된다. 깨닫는 데 좋은 때는 하나뿐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기꺼이 할 수 있었던 일을 억지로 한다.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은 늦든 이르든 해야 할 일을 곧 알아보고, 즐겁게, 명망을 얻으며 해낸다.

269 새로운 동안에는 높이 쳐지니, 제 새로움을 쓰라. 새로움은 다채롭기에 누구에게나 기쁨을 준다. 안목이 새로워지니, 갓 나온 평범함이 익숙해진 극치보다 더 높이 쳐진다. 탁월함도 닳아서 낡게 된다. 새로움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음을 알아 두라. 나흘이면 존경을 잃는다. 그러니 존중의 첫 열매를 쓸 줄 알고, 기쁨이 달아나기 전에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으라. 새것의 온기가 지나가면 열정은 식고, 새것이어서 반가웠던 것이 익숙해서 성가신 것으로 바뀌니, 모든 것에 제 차례가 있었고 그 차례는 지나갔음을 믿으라.

270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을 혼자 나무라지 말라. 그토록 많은 사람을 흡족하게 한다면 무언가 좋은 것이 있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즐길 수는 있다. 유별남은 늘 밉살스럽고 틀렸을 때는 우스꽝스러우니, 대상보다 제 그릇된 헤아림이 먼저 신용을 잃고, 결국 나쁜 안목과 함께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좋은 것을 찾아낼 줄 모르면 제 얕음을 감추고, 뭉뚱그려 나무라지 말라. 나쁜 안목은 대개 무지에서 나온다. 모두가 하는 말은 사실이거나, 사실이 되려 한다.

271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은 늘 가장 안전한 것을 붙들라. 어떤 직업에서든 그렇다. 섬세하다는 소리는 못 들어도 바탕이 튼튼하다는 소리는 들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모험을 걸고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된다. 그러나 아는 것이 적으면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제 발로 벼랑에 뛰어드는 일이다. 늘 오른쪽 길을 지키라. 다져진 것은 저버리지 않는다. 아는 것이 적으면 큰길로. 앎에서든 무지에서든 어떤 경우에나 유별남보다 안전함이 더 슬기롭다.

272 물건을 예절의 값에 팔아 더 크게 빚지게 하라. 잇속을 차리는 사람이 청하는 것은 은혜를 입은 너그러운 사람이 주는 것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예절은 주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우는 것이고, 아량은 가장 큰 빚이다. 선량한 사람에게는 거저 받은 것보다 비싼 것이 없다. 두 번, 두 값에 파는 셈이다. 물건의 값과 예절의 값으로. 물론 비루한 자에게 아량은 알아듣지 못할 아랍 말이다. 좋은 대접이 쓰는 말을 모르기 때문이다.

273 상대하는 사람의 기질을 꿰뚫어 보기, 그 속셈을 알기 위해. 원인을 잘 알면 결과도 안다. 먼저 원인에서, 다음에는 그 동기에서. 우울한 사람은 늘 불행을 점치고 험담꾼은 늘 허물을 점치니, 그들에게는 가장 나쁜 것만 떠오르고, 눈앞의 좋은 것은 알아보지 못한 채 있을 법한 나쁜 일을 알린다. 격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사물의 실상과 다른 말로 말한다. 그에게서 말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격정이다. 저마다 제 감정이나 기분에 따라. 그리고 모두 진실과는 아주 멀리. 얼굴을 풀어 읽고, 겉에 드러난 표시에서 영혼을 한 자씩 읽어 낼 줄 알라. 늘 웃는 사람은 모자라고, 결코 웃지 않는 사람은 거짓되다고 알아보라. 캐묻는 사람을 조심하라. 입이 가볍거나 흠을 잡으려는 사람이다. 생김새가 흉한 사람에게서는 좋은 것을 별로 기대하지 말 일이다. 이들은 흔히 자연에게 앙갚음하니, 자연이 그들을 별로 높여 주지 않았듯 그들도 자연을 별로 높이지 않는다. 어리석음은 흔히 아름다움만큼 크다.

274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라, 그것은 정치적으로 예의 바른 마법이다. 그 멋진 갈고리는 이익보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데 쓰라. 아니면 둘 다에. 공로도 호감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모자라다. 갈채를 가져다주는 것은 호감이니, 다스리는 데 가장 쓸모 있는 도구다. 남의 마음에 덥석 드는 것은 운수지만 꾸밈으로 거들 수 있다. 타고난 바탕이 큰 곳에 꾸밈이 더 잘 앉기 때문이다. 여기서 따뜻한 애정이 생겨나, 마침내 모든 이의 호의를 얻는다.

275 스스럼없되 품위를 잃지 않게. 늘 점잔 빼고 뻣뻣하게 굴지 말라. 그러지 않는 것도 아량의 한 갈래다. 모두의 애정을 얻으려면 체통을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가끔은 대부분의 사람이 가는 길로 가도 좋지만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되니, 사람들 앞에서 어리석은 자로 여겨진 사람은 뒤에서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유쾌하게 논 하루에 잃는 것이 내내 진중하게 얻은 것보다 많다. 그러나 늘 예외로 남아서도 안 된다. 유별난 것은 남을 나무라는 일이다. 새침을 떠는 것은 더욱 안 된다. 그것은 여자들에게 맡겨 둘 일이다. 신앙의 새침마저 우스꽝스럽다. 남자에게 가장 좋은 것은 남자답게 보이는 것이다. 여자는 사내다움을 완벽하게 흉내 낼 수 있지만, 그 반대는 안 된다.

276 자연과 기술로 천성을 새롭게 할 줄 알라. 일곱 해마다 성품이 바뀐다고들 하니, 그 바뀜이 안목을 낫게 하고 돋보이게 하는 쪽이 되게 하라. 첫 일곱 해에 이성이 들어온다. 그 뒤로는 다섯 해마다 새로운 완전함이 하나씩 들어오게 하라. 이 자연스러운 변화를 지켜보아 그것을 거들고, 남에게서도 나아짐을 기대할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신분이 바뀌거나 직분이 바뀌면서 몸가짐이 달라졌고, 때로는 그 바뀜이 얼마나 컸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스무 살에는 공작이고, 서른에는 사자, 마흔에는 낙타, 쉰에는 뱀, 예순에는 개, 일흔에는 원숭이, 그리고 여든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277 드러낼 줄 아는 사람. 자질을 빛나게 하는 일이다. 자질마다 제 차례가 있으니 그때를 놓치지 말라. 날마다 개선하는 날은 아니다. 멋들어진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에게서는 작은 것도 크게 빛나고 큰 것은 놀랄 만큼 빛난다. 드러내는 솜씨가 탁월함과 만나면 경이로 통한다. 뽐내기 좋아하는 민족이 있는데, 스페인 사람이 그 으뜸이다. 빛은 지어진 모든 것을 곧바로 빛나게 했다.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많은 것을 채우고 많은 것을 메우며 모든 것에 두 번째 존재를 준다. 실질이 받쳐 줄 때는 더욱 그렇다. 완전함을 주는 하늘은 드러냄도 함께 마련해 주니, 어느 하나만 있으면 억지스러울 것이다. 드러내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주 뛰어난 것도 형편에 달려 있고, 늘 차례가 오는 것은 아니다. 제때를 놓친 드러냄은 잘못되었다. 드러냄만큼 꾸민 티를 내서는 안 되는 돋보임은 없다. 드러냄은 늘 이 볼썽사나움 때문에 망하니, 허영의 바로 곁에 있고 허영은 업신여김의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범속해지지 않도록 아주 절제해야 하고, 슬기로운 사람들 앞에서는 지나친 드러냄이 꽤 신용을 잃는다. 드러냄은 때로 말 없는 웅변에, 완전함을 무심한 듯 보여 주는 데 더 있다. 지혜롭게 감추는 것이 가장 갈채받는 과시이니, 바로 그 감춤이 호기심의 가장 여린 곳을 찌르기 때문이다. 완전함을 한꺼번에 다 드러내지 않고 카드 패를 조금씩 밀어 엿보이듯11 조금씩 그려 보이며 늘 한 걸음씩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것이 드러냄의 큰 솜씨다. 하나의 돋보임이 더 큰 돋보임을 약속하게 하고, 첫 갈채가 나머지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되게 하라.

278 무엇에서든 눈에 띄는 것을 피하라. 눈에 띄면 돋보이는 자질마저 흠이 된다. 이는 유별남에서 나오는데, 유별남은 늘 비난을 받았고 유별난 사람은 혼자 남는다. 아름다운 것도 너무 튀면 신용을 잃는다. 남의 눈길을 끌면 거슬리게 되고, 체통 없는 유별남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악덕으로까지 이름이 알려지고 싶어서, 그토록 추한 명성을 얻으려고 비루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는다. 아는 것에서도 지나치면 아는 체하는 수다로 떨어진다.

279 반박을 받아도 털어놓지 말라. 반박이 꾀에서 나오는지 범속함에서 나오는지 가려야 한다. 늘 고집인 것은 아니고, 때로는 꾸밈이다. 그러니 고집에는 맞서 얽혀 들지 말고, 꾸밈에는 넘어가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염탐꾼을 조심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조심은 없고, 남의 마음을 여는 곁쇠에 맞서는 데는 삼가는 마음이라는 열쇠를 안쪽에 꽂아 두는 것보다 나은 맞수가 없다.

280 신의 있는 사람. 바른 처신은 끝났고 의리는 거짓말이 되어 떠돌며 좋은 보답은 드물어서, 가장 좋은 봉사에 가장 나쁜 대가를 주는 것이 이제는 온 세상의 관습이 되었다. 민족 전체가 남을 나쁘게 대하는 데 기운 곳도 있다. 어떤 민족에게서는 늘 배신을, 어떤 민족에게서는 변덕을, 또 어떤 민족에게서는 속임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니 남의 나쁜 보답은 본받는 데가 아니라 조심하는 데 쓰라. 위험은 비루한 처신을 보다가 올곧음이 돌쩌귀에서 빠져 버리는 데 있다. 그러나 신의 있는 사내는 남들이 어떻든 제가 누구인지를 결코 잊지 않는다.

281 아는 사람들의 호의. 뛰어난 사내 한 사람의 미지근한 '예'가 범속한 무리의 갈채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높이 쳐지니, 겨를 먹고 트림하는 소리로는 아무 기운도 나지 않는다. 현자들은 지성으로 말하니, 그들의 칭찬은 죽지 않는 만족을 준다. 판단력이 뛰어난 안티고노스12는 제 명성의 극장 전체를 제논 한 사람으로 줄였고,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제 학원 전체라고 불렀다13. 어떤 이들은 범속한 검불로라도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군주들조차 글 쓰는 사람이 필요하니, 못생긴 여자가 화가의 붓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그들의 펜을 두려워해야 한다.

282 존경을 얻으려면, 또는 존중을 얻으려면 자리를 비우는 일을 이용하라. 곁에 있으면 명성이 줄고, 떠나 있으면 명성이 는다. 없을 때는 사자로 여겨지던 사람이, 나타나니 산이 낳은 우스운 새끼였다14. 자질도 자주 부대끼면 빛이 바래니, 마음속에 든 풍부한 알맹이보다 겉의 껍질이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상상은 눈보다 앞서 달리고, 대개 귀로 들어온 착각은 눈으로 나간다. 제 평판의 한가운데를 지키는 사람은 명망도 지킨다. 불사조조차 물러나 숨어서 체통을 세우고, 사람들이 그리워하게 하여 귀하게 여겨진다.

283 슬기롭게 지어내는 사람. 넘치는 재치를 보여 준다. 그러나 광기 한 알 섞이지 않은 재치가 어디 있겠는가15? 지어내는 것은 재치 있는 사람의 일이고, 잘 고르는 것은 분별 있는 사람의 일이다. 지어내는 힘은 또한 은총이요 더 드문 것이니, 잘 고르는 일은 많은 사람이 해냈지만 잘 지어내는 일은 몇 사람만, 그것도 뛰어남에서나 시간에서나 맨 앞선 사람들만 해냈다. 새로움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잘 들어맞으면 좋은 것을 두 배로 돋보이게 한다. 판단력의 일에서는 역설이 위험하고, 재치의 일에서는 칭찬할 만하다. 그리고 들어맞으면 어느 쪽이든 갈채받는다.

284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 그러면 무안당하지 않는다. 남이 높이 쳐 주기를 바라거든 스스로를 높이 치라. 자기를 헤프게 쓰기보다 아끼라. 기다려질 때 가면 반겨 맞을 것이다. 부르지 않으면 오지 말고, 보내지 않으면 가지 말라. 제멋대로 나서는 사람은 일이 잘못되면 미움을 혼자 다 뒤집어쓰고, 잘되어도 감사를 받지 못한다. 끼어드는 사람은 업신여김의 과녁이고, 뻔뻔하게 끼어드는 바로 그 때문에 창피를 당하며 쫓겨난다.

285 남의 불운에 휩쓸려 망하지 말라. 진창에 빠진 사람을 알아보고, 그가 서로의 불행을 위안으로 삼으려고 손짓해 부를 것임을 알아 두라. 그들은 불운을 함께 짊어질 사람을 찾으니, 잘나갈 때는 등을 돌리던 자들이 이제는 손을 내민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을 건지러 나설 때는 자기도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써야 한다.

286 노예가, 그것도 모두의 노예가 될 테니, 누구에게든 온전히 빚지지 말고 모두에게 빚지지도 말라. 어떤 이들은 남보다 행운을 타고났으니, 앞의 사람들은 은혜를 베풀려고, 뒤의 사람들은 받으려고 태어났다. 자유는 선물보다 귀하다. 선물을 받으면 자유를 잃기 때문이다. 자기가 한 사람에게 기대는 것보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기대는 것을 더 즐거워하라. 다스리는 자리의 편익은 더 많은 선을 베풀 수 있다는 것뿐이다. 무엇보다 제가 걸려드는 빚을 총애로 여기지 말아야 하니, 대개는 남의 꾀가 그를 미리 묶어 두려고 부지런히 꾸며 놓은 것이다.

287 격정에 휩싸여서는 결코 행하지 말라, 모든 것을 그르칠 것이다. 제정신이 아닐 때는 제 손으로 하지 말라. 격정은 늘 이성을 쫓아낸다. 그럴 때는 분별 있는 제삼자를 대신 세우라. 격정이 없다면 그는 분별 있을 것이다. 노름하는 사람보다 구경하는 사람이 늘 더 많이 보니, 격정에 휩싸이지 않기 때문이다. 제가 흥분했음을 알아차리면 슬기가 퇴각 나팔을 불게 할 일이다. 피가 끝까지 끓어오르지 않게 해야 하니, 그러면 모든 일을 피투성이로 해치우고, 잠깐 사이에 오랫동안 제 수치와 남의 험담거리가 될 것을 만들어 낸다.

288 때에 맞추어 살라. 다스리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형편에 맞아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원하라. 제때와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덕을 위한 일이 아니라면 사는 데 두루뭉술한 규칙을 내세우지 말고, 바라는 일에 꽉 짜인 법을 들이대지도 말아야 하니, 오늘 업신여긴 그 물을 내일 마시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어찌나 엉뚱하게 주책없는지, 일이 잘되는 데 필요한 모든 형편이 저마다 제 고집에 맞추어 주기를 바라고, 그 반대로 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자는 분별의 길잡이 별이 때에 맞추어 처신하는 데 있음을 안다.

289 사람에게 가장 큰 흠은 자기가 한낱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날, 사람들은 그를 신처럼 여기기를 그만둔다. 경박함은 명망과 가장 크게 어긋난다. 삼가는 사내가 사람 이상으로 여겨지듯, 경박한 사람은 사람 이하로 여겨진다. 이보다 더 체통을 깎는 악덕은 없으니, 경박함은 무게와 정면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경박한 사람은 알맹이가 있을 수 없고, 나이 때문에라도 슬기로워야 할 늙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흠은 아주 많은 사람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난히 체통을 잃게 하는 것이 덜하지는 않다.

290 귀히 여기는 마음과 감정을 함께 얻는 것은 행복이니, 존경을 지키려면 너무 사랑받지 말라. 사랑은 미움보다 대담하고 애정과 우러름은 잘 어울리지 않으니, 너무 두려움을 사서도 너무 사랑을 받아서도 안 된다. 사랑은 허물없음을 끌어들이고, 허물없음이 들어오는 만큼 존중은 나간다. 감정으로보다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랑받으라. 그것이 사람다운 사람들의 사랑이다.

291 떠볼 줄 알라. 판단력 있는 사람의 주의가 삼가는 사람의 조심과 겨루게 하라. 남의 판단력을 재려면 큰 판단력이 필요하다. 약초와 돌의 성질을 아는 것보다 사람의 기질과 성질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삶에서 가장 섬세한 일 가운데 하나다. 쇠붙이는 소리로 알고, 사람은 말로 안다. 말은 올곧음을 보여 주지만, 행동은 훨씬 더 잘 보여 준다. 여기에는 남다른 살핌, 깊은 관찰, 섬세한 눈여김, 판단력 있는 가늠이 필요하다.

292 직분의 의무가 타고난 바탕을 이기게 하지 말고, 바탕이 직분의 의무를 이기게 하라. 자리가 아무리 높아도 사람이 더 크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넉넉한 밑천은 직분을 맡을 때마다 더 넓어지고 더 드러난다. 마음이 좁은 사람은 쉽게 마음이 옥죄이고, 결국 의무와 명망에 눌려 부서지고 만다. 위대한 아우구스투스는 군주로서보다 사람으로서 더 크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여기에는 높은 기개가 힘을 쓰고, 자기를 슬기롭게 믿는 것도 도움이 된다.

293 무르익음. 무르익음은 겉으로도 빛나지만 몸에 밴 행실에서 더 빛난다. 물질의 무게는 금을 귀하게 하고, 도덕의 무게는 사람을 귀하게 한다. 무르익음은 자질의 체통이니, 우러름을 낳는다. 사람의 몸가짐은 영혼의 앞면이다. 그것은 경박함이 우기듯 굼뜬 어리석음이 아니라, 아주 차분한 위엄이다. 무르익은 사람은 말은 격언으로 하고, 행동은 들어맞게 한다. 무르익음은 아주 다 된 사람을 전제한다. 사람은 무르익은 만큼 사람답기 때문이다. 아이이기를 그칠 때 무게와 위엄이 시작된다.

294 제 생각을 누그러뜨리라. 누구나 제게 이로운 대로 헤아리고, 제 생각에는 이유가 넘쳐 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소견은 감정에 자리를 내준다. 두 사람이 정반대로 맞서고 저마다 이치가 제 편에 있다고 자부하는 일이 흔히 일어나지만, 충실한 이치는 지금껏 한 번도 두 얼굴을 지을 줄 몰랐다. 이렇게 미묘한 자리에서 현자는 되짚어 생각하며 나아가라. 그러면 자기를 의심하는 마음이 남의 처신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을 것이다. 때로는 상대편에 서 보고, 반대쪽에서 그 사람의 동기를 살피라. 그러면 그를 그토록 눈멀게 나무라지도, 자기를 그토록 눈멀게 옳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295 공을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라 공을 세우는 사람. 할 일이 가장 없는 자들이 가장 바쁜 척한다. 무엇이든 비밀로 만드는데 그럴수록 더 싱겁다. 갈채를 먹고 사는 카멜레온16이 되어 모두에게 웃음을 실컷 안겨 준다. 허영은 언제나 성가셨지만 여기서는 웃음거리가 되니, 명예에 꾄 개미 떼가 공을 구걸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가장 큰 탁월함일수록 덜 내세우라. 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하는 것은 남에게 맡기라. 공은 남에게 내주되 팔지는 말아야 하고, 금으로 된 펜을 삯을 주고 빌려서 진흙을 쓰게 해서도 안 되니, 슬기로운 사람이 보면 구역질이 날 일이다. 영웅처럼 보이기보다 영웅다워지기를 바라라.

296 자질을, 그것도 존엄한 자질을 갖춘 사내. 으뜸 자질이 으뜸가는 사람을 만든다. 그런 자질 하나는 평범한 자질 여럿과 맞먹는다. 어떤 이는 날마다 쓰는 세간까지 제 모든 것이 크기를 좋아했다. 큰 사람은 제 마음의 자질이 더욱 크도록 얼마나 더 애써야 하겠는가! 신에게서는 모든 것이 무한하고 모든 것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 그러니 영웅에게서도 모든 것이 크고 존엄해야 하며, 그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까지도 모든 것을 넘어서는 웅대한 존엄을 옷처럼 두르고 있어야 한다.

297 늘 남이 보는 것처럼 행하라. 남이 자기를 보고 있거나 보게 되리라는 것을 늘 보는 사람이야말로 잘 살피는 사내다. 그는 벽에도 귀가 있고 잘못한 일은 밖으로 터져 나오려 한다는 것을 안다. 혼자 있을 때도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처럼 행하니, 모든 것이 알려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중에 소문을 듣고 증인이 될 사람들을 그는 지금 벌써 증인처럼 바라본다. 온 세상이 자기를 보아 주기를 바랐던 사람은 이웃집에서 제 집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17.

298 세 가지가 경이로운 사람을 만들며, 이것은 더없는 너그러움이 내리는 가장 큰 선물이다. 샘솟는 재치, 깊은 판단력, 빼어나게 흥겨운 안목. 잘 떠올리는 것은 큰 이점이지만, 생각을 잘 펼치는 것은 더 큰 이점이니, 좋은 지성의 몫이다. 재치가 등뼈에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날카롭기보다 고되게 애쓰는 꼴이 될 것이다. 잘 생각하는 것은 이성을 지닌 존재의 열매다. 스무 살에는 의지가, 서른에는 재치가, 마흔에는 판단력이 다스린다. 스라소니의 눈처럼 스스로 빛을 내뿜어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더 잘 생각을 펼치는 지성이 있고, 때를 맞추는 지성도 있어서 늘 가장 알맞은 것과 마주친다.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그것도 좋은 것이 떠오른다. 더없이 복된 풍요다. 그러나 좋은 안목은 삶 전체에 맛을 낸다.

299 배고픈 채로 남겨 두라. 넥타르라도 입술에만 적시고 거두어야 한다. 욕망은 존중의 잣대다. 몸의 목마름조차 돋우되 다 풀어 주지 않는 것이 좋은 안목의 수다. 좋은 것은 적으면 두 배로 좋다. 두 번째에는 값이 크게 떨어지니, 즐거움으로 물리도록 배를 채워 주는 것은 위험해서 더없이 영원한 탁월함에도 업신여김을 부른다. 기쁘게 하는 유일한 규칙. 입맛이 돋은 채, 남은 허기 그대로 붙잡아 두는 것. 애태워야 한다면 즐김에 물려서가 아니라 욕망을 참지 못해서 애가 타게 하라. 애태운 끝에 얻은 행복은 두 배로 달다.

300 한마디로, 성자가 되라. 그것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말한 셈이다. 덕은 모든 완전함을 잇는 사슬이요 모든 행복의 중심이다. 덕이 사람을 분별 있고, 주의 깊고, 영민하고, 슬기롭고, 지혜롭고, 용감하고, 자제할 줄 알고, 올곧고, 행복하고, 갈채받고, 참되고, 모든 면에서 영웅인 사람으로 만든다. 세 가지 에스(s)가 사람을 복되게 한다. 거룩함(santo), 건강(sano), 지혜(sabio). 덕은 작은 세계인 사람의 태양이요, 선한 양심이 그 해가 뜨는 하늘이다. 덕은 너무도 아름다워 신과 사람의 호의를 함께 얻는다. 사랑스러운 것은 덕밖에 없고 미운 것은 악덕밖에 없다. 덕은 진심의 일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농담이다. 사람의 그릇과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덕으로 재야 한다. 덕은 홀로 제 자신에게 충분하다. 덕은 사람이 살아서는 사랑받게 하고, 죽어서는 기억되게 한다.

주

  1. 1. 알렉산드로스는 고발을 들을 때 한쪽 귀를 막아 고발당한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2. 2. 스페인어에서 「누구와 배를 나누다(partir peras)」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를 뜻한다. 그라시안은 배(peras)를 돌(piedras)로 바꾸어 소리를 맞세운다.

  3. 3. 원문은 「벨가스(belgas)」. 당시 스페인 왕실이 다스리던 네덜란드 지방, 곧 플랑드르 사람들을 가리킨다.

  4. 4.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를 받은 말. 원문은 뱀의 「간교함(calidez)」과 비둘기의 「솔직함(candidez)」을 소리로 맞세운다.

  5. 5. 흔히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규칙으로 전한다.

  6. 6.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에 전하는 일화. 길에서 한 여인이 청을 올리자 하드리아누스가 틈이 없다고 물리쳤고, 여인이 "그러면 황제 노릇을 그만두라"고 외치자 황제가 돌아서서 그 청을 들어주었다.

  7. 7. 오비디우스의 『비가』 1권 9편에 "비둘기는 흰 지붕으로 모여들고, 더러운 탑에는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다.

  8. 8. 이솝 우화 「독수리와 쇠똥구리」. 독수리에게 앙심을 품은 쇠똥구리가 그 알을 거듭 굴려 떨어뜨렸다. 독수리가 유피테르의 품에 알을 맡기자 쇠똥구리는 신의 무릎에 똥 덩이를 떨어뜨렸고, 신이 그것을 털려고 일어서는 바람에 알이 떨어져 깨졌다.

  9. 9. 카스티야의 여왕 이사벨 1세(1451~1504). 남편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와 함께 교황에게서 「가톨릭 군주」라는 칭호를 받았다.

  10. 10. 곤살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1453~1515)의 별칭.

  11. 11. 카드놀이에서 겹쳐 쥔 패를 조금씩 밀어 내며 끝자락만 엿보는 것을 「브루훌라」라 했다. 원문은 이 말로 조금씩 드러내는 솜씨를 그린다.

  12. 12. 마케도니아 왕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기원전 320년경~기원전 239년). 스토아학파를 세운 키티온의 제논을 존경해, 아테네에 오면 그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13. 13. 고대의 전기에 따르면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학원의 「지성」이라 부르고, 그가 자리에 없으면 "지성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14. 14. 호라티우스 『시학』의 "산들이 산고를 겪더니 우스운 생쥐 한 마리가 태어난다"를 받은 말.

  15. 15.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 "광기가 섞이지 않은 위대한 재능은 없었다"는 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인용한다.

  16. 16. 옛사람들은 카멜레온이 공기만 먹고 산다고 믿었다.

  17. 17. 로마의 호민관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를 두고 하는 말로 보인다. 그는 집 안을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게 지어 주겠다는 건축가에게, 무엇을 하든 모두가 볼 수 있게 지어 달라고 했다(벨레이우스 파테르쿨루스 『로마사』 2권 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