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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지혜잠언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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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75

1 모든 것이 이미 무르익었고,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일은 더욱 그렇다. 오늘날 현자 하나에게 요구되는 것이 옛날 일곱 현자1에게 요구된 것보다 많고, 요즘 사람 하나를 상대하는 데는 옛날 한 민족 전체를 상대할 때보다 더 많은 것이 든다.

2 천성과 재치. 자질이 빛나는 두 축이다.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가 없으면 행복도 절반이다. 똑똑한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천성까지 좋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의 불행은 제 길을 잘못 고르는 것이다. 신분에서, 직분에서, 사는 곳에서, 사귀는 사람에서.

3 제 일은 궁금증 속에 끌고 가라. 새로움이 주는 감탄은 성취가 받는 존중이 된다. 패를 다 펼쳐 놓고 하는 놀이는 쓸모도 없고 재미도 없다. 곧바로 속을 밝히지 않으면 사람들이 마음을 졸이고 직분이 높아 모든 이의 기대가 쏠리는 자리라면 더욱 그러하니, 모든 일에 신비를 내비치면 그 은밀함만으로도 우러름을 불러일으킨다. 제 뜻을 알릴 때조차 드러내 말하는 것은 피해야 하니, 교제에서 아무에게나 속을 내주어서는 안 되는 것과 같다. 삼가는 침묵은 슬기의 성소다. 드러낸 결심은 존중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비판에 제 몸을 내맡기고, 일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두 번 불행해진다. 그러니 신이 하는 바를 본받아, 사람들이 늘 지켜보며 잠들지 못하게 하라.

4 앎과 용기는 번갈아 위대함을 이룬다. 둘 다 위대하기에 사람을 불멸로 만든다. 사람은 아는 만큼의 사람이고, 현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식견 없는 사람은 불 꺼진 세상이다. 조언과 힘, 눈과 손. 용기가 없으면 지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의존하게 만들라. 신상을 신으로 만드는 것은 금을 입히는 사람이 아니라 절하는 사람이다. 영민한 사람은 고마워하는 사람보다 자기를 아쉬워하는 사람을 더 원한다. 천한 감사에 기대는 것은 예의 바른 희망을 도둑질하는 일이니, 희망은 잘 기억하고 감사는 잘 잊기 때문이다. 예절보다 의존에서 얻는 것이 많다. 목을 축인 사람은 곧 샘에 등을 돌리고, 짜고 난 오렌지는 황금 접시에서 진창으로 떨어진다. 의존이 끝나면 화답도 끝나고, 그와 함께 존중도 끝난다. 의존은 채워 주지 말고 이어 가게 하며, 왕관을 쓴 주인조차 늘 자기를 아쉬워하게 두라. 이것을 경험이 주는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삼을 일이다. 그러나 상대가 그르치도록 일부러 입을 다무는 지나침에까지 가서는 안 되고, 제 이익을 위해 남이 입은 해를 고칠 수 없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6 무르익은 사람. 다 된 채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으니, 사람으로서도 직분에서도 날마다 조금씩 다듬어져, 마침내 완성된 존재의 경지, 자질과 탁월함이 다 갖추어진 자리에 이른다. 그런 사람은 드높은 안목, 맑게 걸러진 재치, 무르익은 판단력, 찌꺼기를 걷어 낸 의지로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이는 끝내 온전해지지 못해 늘 무언가 하나가 모자라고, 어떤 이는 늦게야 된다. 말에 지혜롭고 일에 슬기로운 완성된 사내는 사려 깊은 사람들의 드문 사귐에 받아들여지고, 그들이 바라는 사람이 되기까지 한다.

7 주인을 이기는 일은 피하라. 모든 승리는 미움을 사고, 주인을 이기는 것은 어리석거나 치명적이다. 윗자리에 서는 것은 늘 미움을 샀으니, 윗사람 위에 서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주의 깊은 사람은 흔한 장점을 감추곤 한다. 아름다움을 수수한 차림으로 가리듯이. 행운이나 천성에서 양보하려는 사람은 쉽게 찾겠지만 재치에서 양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군주라면 더욱 없다. 재치는 모든 속성 가운데 왕이니, 그것을 거스르는 죄는 무엇이든 대역죄2였다. 군주는 군주이니, 가장 큰 것에서도 군주이고자 한다. 군주는 도움받기를 좋아하지만 앞질러지기는 싫어하며, 충고도 그가 이르지 못한 것을 밝혀 주는 빛이라기보다 그가 잊고 있던 것을 일깨우는 기억처럼 보이기를 바란다. 별들이 이 묘수를 멋지게 가르쳐 준다. 별은 해의 자식이고 저마다 빛나지만, 결코 해의 빛남에 맞서지 않는다.

8 격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 가장 드높은 마음이 지닌 자질. 그 높음 자체가 그를 낯설고 범속한 인상에 매이는 데서 건져 낸다.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것보다 큰 다스림은 없으니, 제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자유의지의 개선이 된다. 격정이 사람을 사로잡더라도 직무에까지는 손대지 못하게 하라. 직무가 클수록 더욱 그렇다. 그것이 언짢은 일을 덜고 명망에 이르는 지름길을 내는 세련된 처신이다.

9 제 나라의 흠을 지우라. 물은 흘러 지나는 물줄기의 좋고 나쁜 성질을 띠고, 사람은 태어난 땅의 풍토를 닮는다. 어떤 이들은 남보다 고향에 더 많은 빚을 지니, 그곳 하늘이 더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타고난 흠 하나 없는 나라는 없다. 가장 세련된 나라도 그러하여, 이웃 나라들이 곧 그것을 꼬집는다. 경계 삼으려고, 아니면 위안 삼으려고. 이런 나라의 흠을 고치거나 적어도 지워 보이는 것은 승리를 거두는 솜씨다. 그러면 제 겨레 가운데 유일한 사람이라는 갈채받는 신용을 얻으니, 가장 덜 기대한 것이 가장 높이 쳐지기 때문이다. 가문의 흠, 신분의 흠, 직분의 흠, 나이의 흠도 있으니, 이것이 한 사람에게 다 모이는데 주의로 미리 막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괴물이 된다.

10 운과 명성. 하나가 변덕스러운 만큼 다른 하나는 굳건하다. 하나는 살아 있을 때를 위해, 하나는 죽은 뒤를 위해. 앞의 것은 시샘을 막고, 뒤의 것은 망각을 막는다. 운은 바라는 것이고 때로 거들 수도 있지만, 명성은 애써 얻는 것이다. 명망을 바라는 마음은 덕에서 난다. 명성은 예나 지금이나 거인들의 누이3다. 늘 극단을 오가니, 괴물 아니면 경이, 혐오 아니면 갈채다.

11 배울 수 있는 사람과 사귀라. 벗과 나누는 교제가 학식의 학교가 되고 대화가 세련된 가르침이 되게 하여, 벗을 스승으로 삼고 대화하는 즐거움에 배우는 쓸모를 스며들게 하라. 아는 사람들과는 즐거움이 오가니, 한 말은 받아 주는 갈채로 보답받고 들은 말은 가르침으로 남는다. 보통 남을 찾아가는 것은 제 이익 때문인데, 여기서는 그 이익이 한층 높아진다. 주의 깊은 사람은 궁정의 영웅들이 사는 집을 자주 드나드니, 그 집들은 허영의 궁전이라기보다 영웅다움의 무대다. 사려 깊다는 신용을 얻은 귀인들이 있다. 그들 자신이 본보기와 교제로 모든 위대함의 신탁일 뿐 아니라, 그들을 모시는 사람들의 무리도 훌륭하고 우아한 사려를 두루 갖춘 궁정의 학당이다.

12 자연과 기술, 재료와 작품. 도움 없는 아름다움은 없고, 꾸밈이 돋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야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완전함도 없으니, 꾸밈은 나쁜 것을 구하고 좋은 것을 완성한다. 자연은 흔히 가장 좋은 대목에서 우리를 버려 두니, 기술에 기대자. 가장 좋은 본성도 기술이 없으면 거칠고, 완전함도 가꾸지 않으면 절반이 모자란다. 꾸밈이 없으면 누구나 투박한 맛이 나니, 완전함의 모든 갈래에서 제 몸을 갈고닦아야 한다.

13 때로는 두 번째 의도로, 때로는 첫 번째 의도로 움직이라. 사람의 삶은 사람의 악의(malicia)에 맞서는 싸움(milicia)이다. 영민함은 의도를 바꾸는 계략으로 싸운다. 겨누는 시늉을 하는 것은 눈을 홀리기 위해서일 뿐, 내보인 대로 하는 법이 없다. 솜씨 좋게 허공을 위협하고는 뜻밖의 자리에서 실행하며, 늘 상대의 짐작을 뒤집는 데 마음을 쓴다. 상대의 경계를 붙잡아 두려고 의도 하나를 던져 놓고는 곧 돌아서서 뜻밖의 수로 이긴다. 그러나 꿰뚫어 보는 지성은 주의로 미리 막고 거듭 생각하며 숨어 기다리고, 상대가 알아듣게 하려는 것과 늘 반대로 알아들으며 거짓 시도를 곧장 알아본다. 첫 의도는 모두 흘려보내고 두 번째, 세 번째 의도를 기다린다. 속임수는 제 꾸밈이 간파된 것을 보면 한층 깊어져 진실 자체로 속이려 든다. 수를 바꾸려고 판을 바꾸고, 꾸미지 않음을 꾸밈으로 삼으며, 가장 큰 솔직함 위에 꾀를 세운다. 관찰은 그 속셈을 알아채고 빛을 걸친 어둠을 찾아내며, 단순할수록 더 깊이 숨은 의도를 풀어낸다. 이렇게 피톤4의 간교함은 아폴론의 꿰뚫는 빛살이 지닌 솔직함과 맞서 싸운다.

14 실질과 모양새. 알맹이만으로는 모자라고, 둘레의 모양도 갖추어야 한다. 모양새가 나쁘면 모든 것을 망치니, 정의와 이치조차 그렇다. 모양새가 좋으면 모든 것을 메운다. 거절에 금을 입히고, 진실을 달게 하며, 늙음마저 단장해 준다. 일에서는 '어떻게'가 차지하는 몫이 크고, 몸가짐 하나가 사람들의 입맛을 따 가는 노름꾼이다. 아름다운 몸가짐은 삶의 꽃이고, 좋은 말씨 하나가 어떤 곤경에서도 남달리 사람을 건져 낸다.

15 곁에 재사(才士)를 두라. 힘 있는 사람의 행복은 지성이 용맹한 이들을 곁에 두는 데 있으니, 그들이 무지에서 오는 온갖 곤경에서 그를 건져 주고 어려움과 벌이는 싸움을 대신 싸워 준다. 현자를 부리는 것은 남다른 위대함이니, 항복한 왕들을 굳이 시종으로 삼은 티그라네스5의 야만스러운 즐거움을 훨씬 넘어선다. 자연이 윗사람으로 낸 이들을 기술로 종으로 부리는 것은, 삶의 가장 좋은 몫에서 펼치는 새로운 다스림이다. 알아야 할 것은 많고 삶은 짧으며, 알지 못하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고 없이 공부하고, 여럿의 힘으로 많이 배우며, 모두의 머리로 아는 것은 남다른 솜씨다. 그런 사람은 나중에 회의 자리에서 여럿의 몫을 말하니, 아니 그의 입으로 그에게 미리 일러 준 현자들이 모두 말하는 셈이어서 남의 땀으로 신탁이라는 신용을 얻는다. 그 현자들이 먼저 읽을 것을 골라 주고, 다음에는 앎을 정수로 걸러 바친다. 그러나 지혜를 종으로 부릴 수 없는 사람은 벗으로라도 곁에 두라.

16 바른 뜻을 품고 알라. 그래야 성취가 풍성하다. 좋은 지성이 나쁜 의지와 짝을 맺는 것은 늘 괴물 같은 폭력이었다. 악한 뜻은 완전함을 해치는 독이며, 앎의 도움을 받으면 더 교묘하게 해를 끼친다. 비열한 일에 쓰이는 탁월함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지각 없는 학문은 곱절의 광기.

17 행동의 가락을 바꾸라. 늘 한 가지로 하지 말라. 남의 주의를, 그것이 경쟁하는 주의라면 더욱, 어지럽혀야 하기 때문이다. 늘 첫 번째 의도로 움직이지도 말라. 한결같음을 들키면 상대가 미리 막고, 나아가 행동을 꺾어 버릴 것이다. 곧게 날아가는 새는 쏘아 떨어뜨리기 쉽지만 몸을 트는 새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늘 두 번째 의도로 움직일 일도 아니다. 두 번이면 그 수를 알아챈다. 악의는 늘 숨어 기다리니, 그것을 따돌리려면 큰 묘수가 있어야 한다. 노름꾼은 상대가 짐작하는 패를 결코 내지 않으며, 상대가 바라는 패는 더더욱 내지 않는다.

18 노력과 미네르바6. 둘 다 없으면 탁월도 없고, 둘이 만나면 넘쳐 난다. 노력하는 평범이 노력 없는 뛰어남보다 더 많이 얻는다. 명망은 수고를 값으로 치르고 산다. 값싼 것은 값어치도 적다. 가장 높은 직분에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노력이 아쉬웠다. 노력은 좀처럼 천성을 저버리지 않는다. 높은 직분에서 평범하기를 바라서 범속한 직분에서 탁월하지 않은 것은 고결함이라는 핑계라도 있지만, 첫째가는 직분에서 뛰어날 수 있으면서 맨 끝 직분에서 평범함에 만족하는 것은 핑계조차 없다. 그러니 자연과 기술이 있어야 하고, 노력이 거기에 도장을 찍는다.

19 지나친 기대 속에 등장하지 말라. 미리 크게 기려진 것이 흔히 당하는 무안은, 나중에 사람들이 품었던 상상의 크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참된 것은 상상한 것을 따라잡은 적이 없으니, 완전함을 그려 보기는 쉽고 이루기는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상상은 욕망과 혼인하여 언제나 사물보다 훨씬 많은 것을 잉태한다. 뛰어남이 아무리 커도 사람들이 품은 헤아림을 채우기에는 모자라고, 터무니없는 기대에 속은 헤아림을 만나면 감탄시키기보다 먼저 미망에서 깨운다. 희망은 진실을 크게 위조한다. 슬기로 희망을 바로잡아, 누리는 즐거움이 바라던 것보다 크게 하라. 처음에 얻는 약간의 신용은 호기심을 깨우는 데 쓰일 뿐, 대상을 저당 잡히는 데 쓰이지 않는다. 실제가 헤아림을 넘어 믿었던 것보다 클 때 일이 더 잘 풀린다. 나쁜 것에서는 과장 자체가 도움이 되니 이 규칙이 들어맞지 않아서, 실제가 과장을 뒤집으면 갈채가 따르고 더없이 고약할 줄 알고 두려워한 것이 참을 만해 보이기까지 한다.

20 제 시대를 만난 사람. 탁월하게 드문 사람들은 시대에 달려 있다. 누구나 걸맞은 시대를 만난 것은 아니고, 만나고도 누리지 못한 이가 많다. 더 나은 시대를 누릴 만한 이들도 있었으니, 좋은 것이 다 늘 이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제 차례가 있고, 탁월함조차 유행을 탄다. 그러나 지혜로운 것에는 이점이 하나 있으니, 영원하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제 시대가 아니라면 다른 많은 시대가 제 시대가 될 것이다.

21 행운을 얻는 기술. 행운에도 규칙이 있다. 현자에게 행운이 다 우연은 아니니, 부지런함으로 거들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운의 문 앞에 맵시 있게 서서 운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데 만족한다. 더 나은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 슬기로운 대담함을 쓰니, 그 대담함은 덕과 용기의 날개를 타고 행운을 따라잡고 솜씨 있게 구슬리기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따져 보면 덕과 주의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분별과 무분별 말고는 행운도 불행도 없기 때문이다.

22 환영받는 식견을 지닌 사람. 궁정에 어울리는 맛깔스러운 학식은 사려 깊은 사람들의 탄약이니, 지금 돌아가는 모든 일에 밝은 실제의 앎으로서 식견에 가깝고 범속한 것과는 멀다. 말에는 잘 버무린 재담을, 행동에는 아량을 넉넉히 갖추고, 그것을 제때 쓸 줄 알아야 하니, 충고가 더없이 엄숙한 가르침보다 농담 한마디에 실려 더 잘 통한 때가 있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말로 나누는 지혜가 일곱 학예를 다 합친 것보다 값졌다. 그토록 너그러운 학예들인데도7.

23 흠 하나 두지 말라. 완전함이 걸린 단서다. 흠 없이 사는 사람은 드물다. 마음에서도 그렇고 몸에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쉽게 고칠 수 있는 흠에 매달린다. 남의 슬기는, 두루 갖춘 숭고한 자질에 때로 아주 작은 흠 하나가 덤벼드는 것을 안타까워하니, 구름 한 점이면 해 하나를 온통 가리기에 넉넉하다. 그런 흠은 명망에 난 점이니, 적의는 곧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눈여겨본다. 흠을 돋보임으로 바꾼다면 더없는 솜씨일 것이다. 이렇게 카이사르는 타고난 무안을 월계관으로 덮을 줄 알았다8.

24 상상을 길들이라. 때로는 바로잡고 때로는 거들어야 한다. 그렇게 다스리는 것이 행복의 전부이고, 슬기까지 바로잡아 준다. 상상은 폭군이 되곤 한다.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행동하며, 삶을 휘어잡아 그 빠져든 어리석음에 따라 삶을 즐겁게도 무겁게도 만드니, 사람을 제 자신에게 불만스럽게도 흡족하게도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끊임없이 괴로움을 그려 보이며 어리석은 자들의 집안 형리가 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즐거운 들뜸 속에서 행복과 모험을 내민다. 더없이 분별 있는 양식(良識, sindéresis)이 고삐를 죄지 않으면 상상은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25 잘 알아듣는 사람. 추론할 줄 아는 것이 기술 중의 기술이었다. 이제는 그것으로 모자라고 알아맞혀야 하니, 깨어남(desengaño)의 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아는 사람도 될 수 없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투시자가 있고, 의도를 꿰뚫는 스라소니가 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늘 반만 말해진 채로 오니, 주의 깊은 사람은 그것을 온전히 알아듣고 받되 좋은 일에는 믿음의 고삐를 죄고 싫은 일에는 박차를 가해야 한다.

26 사람마다 그를 죄는 조임쇠를 찾아내라. 의지를 움직이는 기술이다. 결단보다 솜씨에 달렸으니, 사람마다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아는 앎이다. 남다른 애착 없는 의지는 없고, 그 애착은 입맛이 갖가지인 만큼 갖가지다. 누구나 우상을 섬긴다. 어떤 이는 존중을, 어떤 이는 이익을, 대부분은 쾌락을. 요령은 이 우상들을 알아 사람을 움직이는 데 있다. 사람마다 잘 듣는 충동을 알면 남의 의지를 여는 열쇠를 쥔 셈이다. 맨 처음 움직이는 것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늘 가장 높은 것이 아니고 대개는 가장 낮은 것이니, 세상에는 질서를 따르는 사람보다 질서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먼저 그의 기질을 살피고, 다음에 말로 건드리고, 그 애착으로 몰아붙이라. 그러면 틀림없이 그의 자유의지에 외통수를 둔다.

27 넓이보다 깊이에 값을 치르라. 완전함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 아주 좋은 것은 늘 적고 드물었으니, 많은 것은 신용을 잃는다. 사람 가운데서도 거인이 흔히 참된 난쟁이다. 어떤 이들은 책을 몸집으로 높이 치니, 마치 책이 재치보다 팔을 단련하려고 쓰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넓이만으로는 평범을 넘어선 적이 없고, 모든 일에 두루 끼려다 아무 데도 끼지 못하는 것이 만물박사들의 재앙이다. 깊이는 탁월을 낳고, 숭고한 일에서라면 영웅다운 탁월을 낳는다.

28 무엇에서도 범속하지 말라. 안목에서 그러지 말라. 자기 일이 뭇사람의 마음에 드는 것을 언짢아한 사람이야말로 얼마나 큰 현자인가! 흔한 갈채를 배 터지게 받아도 사려 깊은 사람은 흡족해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인기의 카멜레온9이 되어, 아폴론의 더없이 부드러운 숨결이 아니라 범속한 무리의 입김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지성에서도 그러지 말라. 범속한 무리가 떠받드는 기적에 넘어가지 말 일이다. 그것은 무지한 자나 놀라게 하는 것일 뿐이니, 흔한 어리석음이 감탄할 때 남다른 눈은 미망에서 깨어난다.

29 올곧은 사람. 언제나 이성의 편에 서되 뜻이 어찌나 굳센지, 범속한 격정도 폭군의 힘도 결코 그로 하여금 이성의 선을 밟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공정의 불사조가 누구랴? 올곧음을 끝까지 섬기는 이는 드물다. 많은 이가 올곧음을 기리지만 제집에 들이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위험이 닥칠 때까지만 따르다가, 위험이 오면 거짓된 자는 올곧음을 부인하고 정치가는 모른 척한다. 올곧음은 우정과도, 권력과도, 제 이익과도 맞부딪치기를 꺼리지 않으니, 바로 여기서 올곧음을 저버리고 싶은 곤경이 생긴다. 교활한 자들은 더 높은 이치나 나라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겠다며 갈채받는 형이상학으로 발을 빼지만, 한결같은 사내는 모른 척하는 것을 일종의 배신으로 여긴다. 영민함보다 끈질김을 자랑으로 삼고 진리가 있는 곳에 늘 그가 있으니, 그가 사람들을 떠난다면 제가 변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먼저 진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30 평판 나쁜 직분을 업으로 삼지 말라. 허황한 일은 더욱 그러하니, 신용보다 업신여김을 부르기 때문이다. 변덕의 종파는 많고, 슬기로운 사내는 그 모두를 피해야 한다. 현자들이 내치는 것과 늘 혼인하는 별난 입맛들이 있으니, 그들은 온갖 유별남에 흐뭇해하며 사는데, 유별남이 그들을 널리 알리기는 해도 명망보다는 웃음거리로 알린다. 주의 깊은 사람은 현자라는 업에서조차 눈에 띄려 하지 말아야 하고, 그것을 꾸며 내는 사람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업이라면 더욱 그러하니, 그런 업은 하나하나 들지 않겠다. 모두가 깎아내리는 것으로 이미 낱낱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31 운 좋은 사람은 골라 사귀려고, 불운한 사람은 피하려고 알아 두라. 불행은 대개 어리석음의 죄이고, 곁에 있는 사람도 그 죄를 나눈다. 이만큼 잘 옮는 병은 없다. 가장 작은 화에도 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 그 뒤에 늘 더 많고 더 큰 화가 숨어서 따라온다. 노름에서 가장 좋은 수는 버릴 패를 버릴 줄 아는 것이니, 지난판 으뜸 패의 가장 높은 장보다 지금 판에서 도는 으뜸 패의 가장 낮은 장이 더 중요하다. 망설여질 때는 현자와 분별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 옳다. 그들은 머지않아 행운과 마주치기 때문이다.

32 남을 기쁘게 한다는 평을 얻으라.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남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 큰 신용이요, 모두의 호의를 얻는 군주의 돋보임이다. 다스리는 자리의 이점은 이것 하나뿐이다. 누구보다 많은 선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우정을 베푸는 사람이 벗이다. 반대로 남을 기쁘게 하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으니, 귀찮아서라기보다 심술 때문이며, 모든 일에서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신과는 정반대로 간다.

33 물러설 줄 알라, 거절할 줄 아는 것이 삶의 큰 가르침이라면 자기 자신에게도 일에도 사람에게도 제 몸을 내주지 않을 줄 아는 것은 더 큰 가르침일 테니. 귀한 시간을 갉아먹는 좀벌레 같은 쓸데없는 일들이 있으니, 하찮은 일에 매달리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 주의 깊은 사람이 되려면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으로 모자라고, 남이 저를 끌어들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모두의 것이 되느라 제 것이 되지 못해서는 안 된다. 벗에게도 지나치게 기대서는 안 되고, 벗이 내주는 것 이상을 바라지 말라. 지나친 것은 모두 악덕이고, 교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슬기로운 절제가 있어야 모두의 호감과 존중을 더 잘 지키니, 더없이 귀한 품위가 닳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려 뽑은 것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천성을 지니고, 제 좋은 안목에 대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말라.

34 제 으뜸으로 돋보이는 자질, 곧 가장 뛰어난 자질을 알아 그것을 가꾸고 나머지를 거들라. 누구든 제 장점을 알았다면 무언가에서 탁월에 이르렀을 것이다. 으뜸가는 속성을 살피고 거기에 노력을 쏟으라. 어떤 이는 판단력이 뛰어나고, 어떤 이는 용기가 뛰어나다. 대부분은 저마다의 미네르바를 억지로 비틀어서 아무것에서도 뛰어나지 못한다. 격정이 일찍 추어올린 것을 시간은 늦게야 깨우쳐 준다.

35 헤아리라. 중요한 것일수록 더 헤아리라. 어리석은 자는 모두 생각하지 않아서 망한다. 사물의 절반도 헤아리지 못하고, 해로움도 이로움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애쓰지도 않는다. 어떤 이들은 하찮은 것을 대단히 여기고 대단한 것을 하찮게 여기니, 늘 거꾸로 저울질한다. 많은 이가 얼이 없으니 얼이 빠질 일도 없다. 있는 힘을 다해 살피고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할 것들이 있다. 현자는 모든 것을 헤아리되 가려서 하여, 바닥이 깊고 따져 볼 것이 있는 곳을 판다. 때로는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니, 처음 알아챔이 미치지 못한 곳까지 되새김이 미친다.

36 처신하기 위해, 일에 뛰어들기 위해 제 운을 떠보아 두라. 그것은 체질을 살피는 것보다 중요하니, 마흔 살에 건강을 물으려고 히포크라테스를 부르는 사람이 어리석다면10, 슬기를 물으려고 세네카를 부르는 사람은 더 어리석다. 운을 부릴 줄 아는 것은 큰 기술이다. 운에도 기다림이 통하니 때로는 기다리며 부리고 운에도 제 차례와 때가 있으니 때로는 붙잡아 누리되, 운의 걸음이 그토록 종잡을 수 없어 그 가락만은 잡을 수 없다. 운이 제 편임을 본 사람은 활달하게 밀고 나가라. 운은 대담한 사람에게 반하곤 하고, 멋을 아는 여인답게 젊은이에게도 반한다. 불운한 사람은 움직이지 말고 물러나, 불운에 두 번 당할 틈을 주지 말라. 운을 휘어잡은 사람은 앞으로.

37 슬쩍 던지는 말11을 알아보고 쓸 줄 알라. 사람 사이 교제에서 가장 미묘한 대목이다. 그런 말은 마음을 떠보려고 던지며, 그것으로 마음을 가장 은밀하고 깊숙이 더듬어 본다. 악의를 품고 던지는 말도 있으니, 시샘의 독초에 적시고 격정의 독을 바른 그 말은 호의와 존중에서 사람을 떨어뜨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벼락이다. 범속한 무리의 뒷공론과 한 사람의 적의가 한꺼번에 공모해도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던 많은 이가, 이런 가벼운 말 한마디에 맞아 윗사람의 총애에서도 아랫사람의 신망에서도 떨어졌다. 반대로 호의로 작용하여 명망을 받쳐 주고 굳혀 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의도가 그 말을 던지는 솜씨만큼의 솜씨로 조심은 그것을 받아 내고 주의는 그것을 기다려야 하니, 방어는 알아보는 데 달렸고 미리 안 화살은 늘 빗나가기 때문이다.

38 운이 따를 때 이기고 있는 채로 물러날 줄 알라. 이름난 노름꾼이 하는 일이다. 멋진 퇴각은 용맹한 돌격만큼 중요하다. 공적이 넉넉해지면, 많아지면 거두어 안전한 곳에 두어야 한다. 끊이지 않는 행복은 늘 의심을 샀다. 띄엄띄엄 오는 행복이 더 안전하고, 누리는 맛을 위해서도 새콤달콤한 데가 좀 있는 편이 낫다. 행운이 서로 밀치며 몰려올수록 미끄러져 모든 것을 망칠 위험이 커진다. 때로는 운이 베푸는 총애가 짧은 대신 진하다. 운은 한 사람을 그토록 오래 업고 다니는 데 지친다.

39 사물이 무르익은 때, 제때를 알고 그것을 누릴 줄 알라. 자연의 작품은 모두 제 완전함의 끝에 이른다. 거기까지는 얻어 가고, 거기서부터는 잃어 간다. 기술의 작품 가운데 더 나아질 수 없는 데까지 이르는 것은 드물다. 모든 것을 그것이 가장 무르익었을 때 즐기는 것은 좋은 안목이 지닌 탁월함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다 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지성의 열매에도 그렇게 무르익는 때가 있다. 그 익음을 알아야 값을 쳐 주고 쓸 수 있다.

40 사람들의 호의. 뭇사람의 감탄을 얻는 것도 대단하지만 애정을 얻는 것은 더 대단하다. 그 일에는 타고난 별자리도 조금 있지만 대부분은 부지런함이니, 별자리로 시작하고 부지런함으로 이어 간다. 좋게 헤아려지면 마음도 쉽게 얻으리라 여기기는 하지만, 자질이 탁월한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그러니 호의를 얻으려면 선행이 있어야 한다. 두 손으로 좋은 일을 하고, 좋은 말에 더 좋은 행동을 하며, 사랑받으려면 사랑하라. 예절은 큰 인물이 쓰는 가장 큰 정치의 마법이다. 먼저 공적에, 그다음 붓에 손을 뻗어 칼날(hoja)에서 책장(hojas)으로 나아가야 하니, 글 쓰는 이들의 호의라는 것이 있고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41 결코 과장하지 말라. 최상급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주의가 크게 힘쓸 일이다. 진실을 해칠까 봐서도, 제 슬기에 흠을 낼까 봐서도. 과장은 존중을 헤프게 뿌리는 일이며, 앎과 안목이 짧다는 표시다. 칭찬은 호기심을 세차게 깨우고 욕망을 찌르지만, 그 뒤에 흔히 그렇듯 값이 칭찬에 미치지 못하면, 기대는 속은 것에 등을 돌려 기림받은 것과 기린 사람을 함께 깔보는 것으로 앙갚음한다. 그러니 슬기로운 사람은 아주 삼가며, 넘치기보다 모자라는 쪽으로 허물을 짓기를 택한다. 탁월함은 드무니 존중을 누그러뜨리라. 부풀리는 것은 거짓말의 한 갈래이며, 그러다가 좋은 안목을 지녔다는 큰 신용을 잃고, 아는 사람이라는 더 큰 신용까지 잃는다.

42 타고난 위세. 윗자리에 서게 하는 은밀한 힘이다. 그 힘은 짜증스러운 꾸밈이 아니라 위세 있는 본성에서 나와야 한다. 모두가 어찌 된 줄도 모르고 그를 따르니, 타고난 권위의 은밀한 기운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스리는 천성이다. 공로로는 왕이요 타고난 특권으로는 사자여서, 남들이 우러르는 만큼 남의 마음과 생각까지 사로잡는다. 다른 자질까지 받쳐 준다면 그들은 나라를 움직이는 첫째 동력이 되도록 태어났으니, 남들이 길게 늘어놓아 해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손짓 하나로 해내기 때문이다.

43 생각은 소수와 함께, 말은 다수와 함께 하라. 물살을 거슬러 가려는 것은 남을 미망에서 깨우기에는 어려운 만큼 위험을 부르기에는 쉽다.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이나 해 볼 일이다. 뜻을 달리하는 것은 모욕으로 여겨지니, 남의 판단력을 단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짢은 사람이 불어난다. 비난받은 것 때문에, 그것을 칭찬하던 사람 때문에. 진실은 소수의 것이고, 속임은 흔한 만큼 범속하다. 광장에서 하는 말로 현자를 가늠해서는 안 되니, 그는 속으로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거기서는 제 목소리가 아니라 흔한 어리석음의 목소리로 말한다. 슬기로운 사람은 반박하는 것만큼 반박당하는 것도 피한다. 비판에는 빠르지만 비판을 드러내는 데는 더디다. 생각은 자유로워서 억누를 수도 없고 억눌러서도 안 되니, 제 침묵의 성소로 물러나 있다가 때로 저를 드러낸다면 몇 안 되는 슬기로운 사람들의 그늘 아래서다.

44 큰 사람들과 통하는 마음. 영웅과 어울리는 것은 영웅의 자질이다. 숨어 있어서도, 이로워서도 자연의 경이다. 마음과 마음, 천성과 천성 사이에는 핏줄 같은 것이 있으니, 범속한 무지가 사랑의 묘약 탓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그 결과다. 그 마음은 존중에서 멈추지 않고 호의로 나아가며, 끌림에까지 이른다. 말 없이 설득하고, 공로 없이 얻는다. 끌어당기는 것도 있고 끌려가는 것도 있으니, 둘 다 숭고할수록 복되다. 그것을 알아보고, 가려내고, 누릴 줄 아는 것은 큰 솜씨다. 이 은밀한 총애가 없으면 어떤 고집도 소용이 없다.

45 되짚는 꾀는 쓰되 지나치게 쓰지 말라. 그것을 꾸며 보이지 말아야 하고, 남이 알게 해서는 더욱 안 된다. 모든 기술은 감추어야 하니, 기술은 의심을 사고, 조심의 기술이라면 미움까지 산다. 속임이 많이 쓰이니 경계를 곱절로 하되, 그것을 드러내지 말라. 드러나면 불신을 부른다. 드러난 경계는 상대의 마음을 크게 상하게 하고 앙갚음을 부추기며, 생각지도 않던 악을 깨운다. 처신할 때 되짚어 생각하는 것은 행동에서 큰 이점이다. 생각이 깊다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 주는 증거는 없다. 행동의 가장 큰 완전함은 그것을 해내는 위엄이 보증한다.

46 제 반감을 바로잡으라. 우리는 공연히 미워하곤 하고, 상대의 자질을 알아보기도 전에 미워한다. 이 타고난 범속한 혐오는 때로 탁월한 사내들에게까지 덤벼든다. 슬기로 그것을 바로잡으라. 가장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보다 나쁜 불명예는 없다. 영웅과 통하는 마음이 이로운 만큼 영웅을 꺼리는 마음은 흠이다.

47 시비에 얽히지 말라. 분별이 맨 먼저 힘쓸 일 가운데 하나다. 그릇이 큰 사람은 마지막 고비에 이르기까지 늘 먼 거리를 두니, 한 극단에서 다른 극단까지 갈 길이 멀고 그들은 늘 제 슬기의 한가운데 머문다. 그들은 늦게야 결렬에 이르니, 일을 잘 치러 내기보다 일에서 몸을 빼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런 일은 판단력을 시험하는 유혹이니, 이기기보다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시비 하나가 더 큰 시비를 부르고, 그러면 벼랑이 바로 곁이다. 천성으로, 나아가 나라의 기질로 시비를 잘 거는 사람들이 있어 쉽게 책무에 얽혀 든다. 그러나 이성의 빛을 따라 걷는 사람은 늘 일을 깊이 저울질하며 가니, 얽히지 않는 것을 이기는 것보다 큰 용기로 여기고, 시비 거는 어리석은 자가 하나 있더라도 자기까지 더해 둘이 되지 않게 한다.

48 속이 깊은 사람, 깊은 만큼 사람다운 사람이다. 모든 일에서 안이 겉보다 곱절은 더 있어야 한다. 겉벽뿐인 사람들이 있다. 밑천이 모자라 짓다 만 집처럼, 들어가는 문은 궁궐인데 사는 방은 오두막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머물 데가 없다. 아니, 모든 것이 멈춘다. 첫인사가 끝나면 대화도 끝나기 때문이다. 처음 예를 차릴 때는 시칠리아 말처럼 기세 좋게 들어오다가 곧 입을 다물고 멈추어 서니, 헤아림이 마르지 않고 솟는 곳이 아니면 말도 바닥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저처럼 겉만 보는 사람은 쉽게 속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는 꾀는 속이지 못하니 그 꾀는 그들이 텅 비어 사려 깊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을 알아본다.

49 판단력 있고 눈여겨보는 사람. 그가 사물을 다스리지, 사물이 그를 다스리지 않는다. 가장 깊은 곳의 바닥도 곧 재어 보고, 사람의 밑천을 빈틈없이 해부할 줄 안다. 인물을 보자마자 꿰뚫어 알고 그 본질까지 가늠한다. 보기 드문 관찰력을 지녀, 가장 깊이 감춘 속내도 잘 풀어낸다. 날카롭게 눈여겨보고, 섬세하게 헤아리며, 판단력 있게 추론한다. 모든 것을 찾아내고, 알아채고, 따라잡고, 꿰뚫는다.

50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을 결코 잃지 말라. 홀로 있을 때도 저를 허물없이 대하지 말라. 제 올곧음을 제 바름의 잣대로 삼고, 밖에서 오는 어떤 계율보다 제 소견의 엄격함에 더 많이 빚져야 한다. 점잖지 못한 일은 남의 권위가 엄해서가 아니라 제 슬기가 두려워서 하지 말라. 스스로를 두려워하게 되면 세네카의 상상 속 감독관12이 필요 없다.

51 잘 고르는 사람. 삶은 대부분 고르는 데 달렸다. 고르려면 좋은 안목과 더없이 바른 소견이 있어야 하니, 공부도 재치도 그것으로는 모자란다. 가려 뽑음이 없는 곳에 완전함은 없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들어 있다. 고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고른다는 것. 재치가 풍성하고 섬세하며 판단력이 날카롭고, 공부도 많고 식견도 넓은 많은 이가 고르는 대목에 이르면 길을 잃고, 늘 가장 나쁜 것과 혼인하니 일부러 그르치려는 것만 같다. 그래서 잘 고르는 것은 하늘이 내리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다.

52 결코 흐트러지지 말라.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것은 슬기가 크게 힘쓸 일이다. 그것은 큰 사람, 왕관을 쓴 마음을 보여 주니, 너그럽고 큰 마음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격정은 마음의 체액이어서, 어느 하나가 넘치면 슬기가 병든다. 그 병이 입 밖으로 나오면 명망이 위태로워진다. 그러니 제 자신의 주인이 되고 그만큼 커져서, 가장 순탄할 때도 가장 어려울 때도 누구도 그가 흔들렸다고 나무랄 수 없고 다만 그가 우뚝하다고 감탄하게 하라.

53 부지런하되 생각 깊게. 생각 깊은 머리가 오래 궁리한 것을 부지런함이 재빨리 해낸다. 서두름은 어리석은 자의 격정이니, 그들은 걸림돌을 보지 못해 거리낌 없이 움직인다. 반대로 현자들은 너무 머뭇거려 허물을 짓곤 하니, 알아차리는 데서 망설임이 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미적거리는 굼뜸이 적중한 소견을 망친다. 재빠름은 행운의 어머니다. 아무것도 내일로 미루지 않은 사람이 많은 일을 했다. 천천히 서두르기, 장엄한 표어다13.

54 슬기로운 기개를 지니라. 죽은 사자는 토끼들까지 갈기를 잡아 뜯는다. 용기는 농담으로 다룰 것이 아니다. 첫째에게 물러서면 둘째에게도 물러서야 하고, 그렇게 마지막 사람까지 물러서게 된다. 늦게 가서 이겨야 할 어려움도 똑같으니, 처음부터 이겨 두는 편이 나았다. 마음의 기개는 몸의 기운보다 낫다. 그것은 칼과 같아서, 때를 위해 늘 슬기라는 칼집에 꽂혀 있어야 한다. 기개는 사람을 지키는 방패다. 몸이 처지는 것보다 마음이 처지는 것이 더 해롭다. 탁월한 자질을 지니고도 이 마음의 숨결이 모자라 죽은 사람처럼 보이다가 끝내 제 무기력 속에 묻힌 이가 많으니, 자연이 부지런히 꿀벌에게 꿀의 단맛과 침의 매서움을 함께 준 것은 섭리가 없지 않아서다. 몸에는 힘줄과 뼈가 있다. 마음이 온통 무르기만 하게 두지 말라.

55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참을성의 품이 넓은 큰 마음을 보여 준다. 결코 서두르지도, 격정에 휩쓸리지도 말라. 먼저 자기의 주인이 되라. 그러면 나중에 남의 주인도 된다. 시간의 들판을 지나 기회의 중심으로 걸어가야 한다. 분별 있는 머뭇거림이 성취에 제맛을 들이고 비밀을 무르익힌다. 시간의 목발이 헤라클레스의 강철 쇠몽둥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 신조차 매가 아니라 때로 벌한다14. 멋진 말이 있다. "시간과 나, 그 둘이면 다른 둘을 상대한다."15 운조차 기다림에 큰 상으로 갚는다.

56 즉석의 솜씨를 갖추라. 그것은 복된 재빠름에서 난다. 그 재빠름에는 곤경도 우연도 없으니, 생기와 활달함이 받쳐 주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오래 생각하고는 나중에 모든 것을 그르치고, 어떤 이들은 미리 생각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맞힌다. 반발로 힘을 내는16 밑천을 지닌 사람들이 있어, 궁지에 몰리면 더 잘 해내는데, 이들은 대개 괴물 같아서 엉겁결에 하면 다 맞히고 생각하고 하면 다 그르친다.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은 끝내 떠오르지 않으니, 나중을 기약할 것도 없다. 재빠른 사람은 갈채를 받는다. 놀라운 그릇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헤아림에서는 섬세함을, 일에서는 슬기를.

57 생각해서 한 일이 더 안전하다. 잘만 하면 충분히 빠르다. 곧 된 것은 곧 무너진다. 그러나 영원히 갈 것은 만드는 데도 또 하나의 영원이 걸려야 한다. 사람들은 완전함만 보고, 남는 것은 잘된 일뿐이다. 깊이 있는 지성이 영원을 얻는다. 값진 것은 값이 많이 든다. 쇠붙이 가운데 가장 귀한 것도 가장 더디고 가장 무겁다.

58 자신을 맞출 줄 알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아는 티를 내서는 안 되고, 필요한 것보다 많은 힘을 써서도 안 된다. 앎도 값어치도 헤프게 쓰지 말라. 좋은 매사냥꾼은 사냥감을 잡는 데 필요한 것보다 많은 매를 날리지 않는다. 늘 뽐내지 말라. 다음 날이면 아무도 감탄하지 않는다. 빛낼 새로움이 늘 있어야 하니, 날마다 더 내보이는 사람은 늘 기대를 붙잡아 두고 남들은 끝내 그 큰 밑천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59 끝맛이 좋은 사람. 운의 집에서는 기쁨의 문으로 들어가면 슬픔의 문으로 나오고, 그 반대도 그렇다. 그러니 끝을 주의하라. 들어갈 때 받는 갈채보다 나올 때의 복에 더 마음을 쓸 일이다. 시작은 아주 순탄하고 끝은 아주 비참한 것이 운 좋은 사람들이 흔히 당하는 무안이다. 요점은 누구나 받는, 들어갈 때의 범속한 갈채에 있지 않고 떠날 때 모두가 아쉬워하는 데 있으니, 떠난 뒤에 그리움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행운은 떠나는 사람을 좀처럼 배웅하지 않는다. 오는 사람에게 깍듯한 만큼 가는 사람에게는 무례하다.

60 좋은 소견. 어떤 이들은 분별 있게 태어난다. 타고난 양식이라는 이점을 안고 지혜에 들어서니, 성취에 이르는 길의 절반을 이미 걸은 셈이다.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 이성이 온전히 무르익어, 아주 절도 있는 판단력에 이른다. 그들은 온갖 변덕을 슬기를 꾀는 유혹으로 여겨 싫어하며, 나랏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랏일은 더없이 중요하니 빈틈없이 안전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키를 잡을 자격이 있다. 손수 잡든, 곁에서 조언하든.

61 가장 좋은 일에서 거두는 탁월. 여러 완전함 가운데 하나의 큰 남다름이다. 숭고한 극단 하나 없는 영웅은 있을 수 없다. 평범은 갈채의 대상이 아니다. 뛰어난 직분에서 거둔 탁월은 사람을 범속한 무리에서 끌어내 드문 사람의 반열에 올린다. 낮은 업에서 탁월한 것은 작은 것에서 무엇이 되는 것일 뿐이다. 즐거움이 많은 것일수록 영광은 적다. 빼어난 일에서 남을 넘어서는 것은 군주의 표지와 같아서, 감탄을 부르고 애정을 얻는다.

62 좋은 연장으로 일하라. 어떤 이들은 연장이 형편없을수록 제 솜씨가 더 돋보이기를 바란다. 위험한 자기만족이니, 치명적인 벌을 받아 마땅하다. 대신이 훌륭하다고 주인의 위대함이 줄어든 적은 없다. 오히려 성취의 영광은 모두 나중에 으뜸 원인에게 돌아가고, 비난도 마찬가지다. 명성은 늘 맨 앞사람을 따라간다. 명성은 결코 "그는 좋은 대신을, 또는 나쁜 대신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그는 좋은 장인이었다, 또는 나쁜 장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니 고르고 또 따져 보라. 그들에게 명망의 불멸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63 첫째가 되는 뛰어남. 탁월하기까지 하면 곱절이다. 먼저 패를 내는 것은 큰 이점이니, 비기면 먼저 낸 쪽이 이긴다. 남이 앞서 가지만 않았더라면 제 직분에서 불사조가 되었을 사람이 많다. 첫째는 명성의 장자 상속분을 차지하고, 둘째에게는 소송으로 다투는 부양료만 남으니, 둘째는 아무리 땀 흘려도 흉내라는 범속한 흠을 씻어 내지 못한다. 탁월에 이르는 새 길을 지어내는 것은 비범한 이들의 묘수였다. 다만 슬기가 먼저 그 일의 안전을 다져 두어야 한다. 현자들은 새로운 주제로 영웅들의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어떤 이들은 첫째 반열의 둘째보다 둘째 반열의 첫째가 되기를 바란다.

64 괴로움을 피할 줄 알라. 언짢은 일을 더는 것은 이로운 슬기다. 분별은 그런 일을 많이 피하게 하니, 행복의 산파 루키나17이고 그래서 만족의 산파이기도 하다. 싫은 소식은 전하지 말고, 받기는 더욱 하지 말라. 고칠 길을 들고 오는 소식이 아니라면 들어올 길을 막아야 한다. 어떤 이들은 아첨의 단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 귀가 닳고, 어떤 이들은 뒷말의 쓴 소리를 들어 귀가 닳는다. 날마다 언짢은 일 하나 없이는 살 줄 모르는 사람도 있으니, 독 없이 살지 못한 미트리다테스18와 같다. 남에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 번 기쁨을 주려고 자신에게 평생의 괴로움을 안기는 것도 제 몸을 지키는 규칙이 아니다. 충고만 하고 자기는 빠지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제 행운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든 남을 기쁘게 하는 일과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맞부딪칠 때는, 남이 지금 언짢아하는 편이 자기가 나중에 손쓸 길 없이 언짢아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이로움의 가르침이다.

65 뛰어난 안목. 안목도 재치처럼 가꿀 수 있다. 뛰어나게 알아보면 바라는 욕구가 높아지고, 다음에는 가지는 즐거움이 높아진다. 사람의 밑천이 얼마나 높은지는 그 마음이 얼마나 높은 것을 바라는지로 안다. 큰 그릇을 채우려면 큰 대상이 있어야 한다. 큰 덩이가 큰 입을 위해 있듯, 숭고한 일은 숭고한 천성을 위해 있다. 가장 당당한 것들도 그런 안목을 두려워하고, 가장 자신 있는 완전함도 움츠러든다. 첫째 등급의 완전함은 드무니, 값을 쳐 주는 일도 드물게 하라. 안목은 교제로 옮고, 오래 함께하면 물려받는다. 안목이 무르익은 사람과 사귀는 것은 큰 운수다. 그러나 무엇이든 마땅찮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아서는 안 되니, 그것은 어리석은 극단 가운데 하나이고, 성미가 고르지 못해서보다 티를 내느라 그럴 때 더 밉살스럽다. 어떤 이들은 제 엉뚱한 공상을 채우려고 신이 다른 세상과 다른 완전함을 지어 주기를 바란다.

66 일이 잘 끝나도록 주의하라. 어떤 이들은 뜻을 이루는 복보다 일을 이끄는 엄격함에 더 눈길을 둔다. 그러나 실패가 깎아내리는 신용이 애쓴 수고가 보증해 주는 신용보다 늘 무겁다. 이긴 사람은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은 사정의 세세함은 보지 못하고 결과가 좋은지 나쁜지만 본다. 그러니 뜻을 이루면 명망을 잃는 법이 없다. 좋은 끝은 모든 것에 금을 입힌다. 수단에서 그르친 것이 그 끝을 거스르더라도. 달리 잘 끝내는 행운을 얻을 길이 없을 때는 기술을 거스르는 것이 곧 기술이다.

67 갈채받는 직분을 택하라. 대부분의 일은 남이 흡족해하는지에 달렸다. 존중이 완전함에게 하는 일은 봄 서풍이 꽃에게 하는 일과 같다. 숨이요 생명이다. 모든 이의 환호 앞에 드러나는 직분이 있고, 더 크지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직분이 있다. 앞의 것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지니 뭇사람의 호의를 얻고, 뒤의 것은 더 드물고 정교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그늘에 머물러 우러름은 받아도 갈채는 받지 못한다. 군주 가운데서는 이긴 군주가 기림받는다. 아라곤의 왕들이 그토록 갈채를 받은 것도 싸우고 정복하고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큰 사람는 모두가 보고 모두가 함께하는 이름난 직분을 택하여, 뭇사람의 표로 불멸에 오르라.

68 깨달음을 주라. 기억을 일깨워 주는 것보다 그만큼 더 큰 솜씨다. 때로는 일깨워 주고 때로는 알려 주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무르익은 일을 떠올리지 못해 하지 않고 만다. 그럴 때는 벗의 귀띔이 이로운 것을 깨닫도록 거들 일이다. 중요한 것이 떠오르는 것은 머리가 지닌 가장 큰 이점 가운데 하나다. 이것이 없어서 이루지 못한 성취가 많다. 빛을 가진 사람은 빛을 주고, 빛을 구하는 사람은 빛을 청하라. 앞사람은 조심스럽게, 뒷사람은 주의 깊게. 실마리만 주면 된다. 깨우쳐 주는 쪽의 이익이 걸렸을 때 이 묘수가 더욱 급하다. 먼저 맛을 보이고, 그것으로 모자라면 더 나아가야 한다. 이미 '아니'를 받았으니 솜씨 있게 '그래'를 찾아 나서라. 대개는 해 보지 않아서 얻지 못한다.

69 범속한 기분에 굴복하지 말라. 낯선 인상에 결코 매이지 않는 사람이 큰 사람이다. 제 자신을 되짚어 보는 것은 깨어 있음의 가르침이니, 지금 제 상태를 알고 미리 대비하며, 반대쪽 극단으로 기울여 보기까지 해서, 본성과 기술 사이에서 양식이라는 저울의 바늘을 찾는 일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자신을 바로잡는 시작이다. 주책의 괴물들이 있으니, 늘 어떤 기분에 사로잡혀 기분 따라 감정을 바꾸고, 이 볼썽사나운 들쭉날쭉함에 영원히 끌려다니며 서로 어긋나는 일에 매달린다. 이 지나침은 의지를 닳게 할 뿐 아니라 판단력에까지 덤벼들어, 바람과 앎을 함께 뒤흔든다.

70 거절할 줄 알라. 모든 것을 들어주어서는 안 되고, 모두에게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 들어줄 줄 아는 것만큼 중요하고, 다스리는 사람에게는 급히 마음 쓸 일이다. 여기서 모양새가 끼어든다. 어떤 이의 '아니'가 다른 이의 '그래'보다 높이 쳐지니, 금을 입힌 '아니'가 맨숭맨숭한 '그래'보다 더 흡족하기 때문이다. 늘 입에 '아니'를 달고 살아 모든 것의 맛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는 늘 '아니'가 먼저 나오니, 나중에 다 들어주더라도 높이 쳐지지 않는다. 처음의 그 언짢은 맛이 앞섰기 때문이다. 단번에 거절해서는 안 된다. 깨어남은 한 모금씩 마시게 하라. 아주 거절해서도 안 되니, 그러면 상대의 의존을 끊어 버리는 셈이다. 늘 희망의 부스러기를 남겨 거절의 쓴맛을 누그러뜨리라. 예절로 총애의 빈자리를 채우고, 좋은 말로 모자란 행동을 메울 일이다. '아니'와 '그래'는 말하기는 짧아도 생각은 길게 해야 한다.

71 본성 탓이든 티 내기 탓이든, 들쭉날쭉하거나 종잡을 수 없이 처신하지 말라. 슬기로운 사내는 완전한 모든 것에서 늘 한결같았으니, 그것이 아는 사람이라는 신용이다. 바뀌더라도 까닭과 사정이 바뀔 때만 바뀌라. 슬기의 일에서 변덕은 추하다. 날마다 딴사람이 되는 이들이 있다. 지성마저 들쭉날쭉하니 의지는 더 말할 것도 없고 행운까지 그렇다. 어제는 그의 '그래'를 받는 흰 과녁이던 사람이 오늘은 그의 '아니'를 받는 검은 과녁이 되니, 늘 제 신용을 스스로 깨뜨리고 남의 헤아림을 어지럽힌다.

72 결단하는 사람. 서툰 실행이 우유부단보다 덜 해롭다. 물은 흐를 때보다 고일 때 더 상한다. 무엇이든 남이 먼저 떠밀어 주어야 하는, 결정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때로 그것은 판단력이 헷갈려서라기보다 굼떠서 생기니, 그들의 판단력은 오히려 날카롭다. 어려움을 찾아내는 데도 재치가 들지만, 걸림돌에서 빠져나갈 길을 찾는 데는 더 큰 재치가 든다. 어떤 일에도 막히지 않는, 판단력이 크고 단호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높은 직분을 위해 태어났으니, 막힘없는 파악이 적중과 처리를 쉽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이미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이런 사람 하나는 한 세계를 다 처리하고도 또 한 세계를 맡을 시간이 남았다. 그들은 제 행운을 믿을 수 있을 때 더 확신하며 일에 뛰어든다.

73 슬쩍 빠져나갈 줄 알라. 슬기로운 사람이 곤경을 벗는 길이다. 멋진 익살 한마디로 가장 얽힌 미로에서도 빠져나오곤 한다. 가장 까다로운 다툼도 미소 하나로 맵시 있게 비켜 간다. 위대한 장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가 여기에 제 용기를 세웠다. 말머리를 돌리는 것은 거절의 예의 바른 수다.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것보다 큰 주의는 없다.

74 사귀기 어려운 사람이 되지 말라. 참된 맹수는 사람 가장 많은 곳에 있다. 가까이하기 어려운 것은 제 자신을 모르는 자들의 악덕이니, 그들은 벼슬이 오르면 버릇도 바뀐다. 짜증부터 내고 시작하는 것은 존중을 얻는 알맞은 길이 아니다. 늘 주책없는 사나움을 드러낼 채비가 된, 사귀기 어려운 이런 괴물을 보는 꼴이란 어떠한가? 그에게 매인 사람들은 불행히도 그에게 말을 걸러 들어갈 때 호랑이와 싸우러 가듯 조심과 두려움으로 똑같이 무장한다. 그들은 그 자리에 오르려고 모두의 비위를 맞추었고, 자리에 오르자 모두를 짜증 나게 하여 본전을 찾으려 한다. 직분으로 보면 많은 이의 사람이어야 하는데, 거칠고 거만해서 누구의 사람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궁정식의 벌이 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 그들과 사귀지 않아 슬기를 얻을 길을 막는 것이다.

75 영웅다운 본보기를 고르라. 흉내보다는 겨룸을 위해. 위대함의 본보기들, 명망을 살아 움직이게 새긴 글들이 있다. 저마다 제 직분에서 으뜸가는 사람들을 앞에 세우되, 따라가려고가 아니라 앞지르려고 하라. 알렉산드로스는 무덤에 묻힌 아킬레우스가 아니라,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제 자신을 두고 울었다19. 남의 명성이 울리는 나팔만큼 마음에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다. 시샘을 땅에 메치는 그 나팔이 고결함을 북돋운다.

주

  1. 1. 고대 그리스의 일곱 현인(탈레스, 솔론 등).

  2. 2. 원문은 lesa Majestad. 군주의 존엄을 해친 죄, 곧 대역죄를 가리키는 법률 용어다.

  3. 3. 원문 fama는 「명성」이면서 「소문」이다.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4권에서 소문의 여신 파마(Fama)는 대지가 신들에게 노하여 낳은, 거인 코이오스와 엔켈라도스의 막내 누이로 그려진다.

  4. 4. 델포이를 지키던 큰 뱀. 아폴론이 화살로 쏘아 죽였다. 원문은 피톤의 「간교함(calidez)」과 아폴론의 「솔직함(candidez)」을 소리로 맞세운다.

  5. 5. 아르메니아의 왕 티그라네스 2세(기원전 1세기). 항복한 왕들을 시종처럼 부렸다고 플루타르코스가 전한다.

  6. 6. 로마의 지혜와 기예의 여신. 그라시안은 이 이름으로 저마다 타고난 재능을 가리킨다.

  7. 7. 중세 이래 학문의 기초로 삼은 일곱 자유 학예(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 원문의 liberales는 「자유」 학예라는 뜻과 「너그러운」이라는 뜻을 함께 띤다.

  8. 8. 카이사르는 대머리를 부끄러워해 원로원이 허락한 월계관을 늘 쓰고 다녔다고 수에토니우스가 전한다.

  9. 9. 옛사람들은 카멜레온이 공기만 먹고 산다고 믿었다.

  10. 10. 티베리우스 황제는 서른이 넘어서도 제 몸에 무엇이 이롭고 해로운지 남에게 묻는 사람을 비웃었다고 한다(타키투스 『연대기』 6권). 나이가 들면 제 몸은 스스로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옛 생각을 받은 말이다.

  11. 11. 원문은 varillas(가는 막대, 살). 남의 속을 떠보거나 찌르려고 슬쩍 던지는 말을 가리킨다.

  12. 12. 세네카는 훌륭한 사람 하나를 골라 늘 자기를 지켜보는 감독관으로 마음에 세워 두라고 권했다(『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11).

  13. 13. 「천천히 서두르라」(라틴어 festina lente)는 아우구스투스가 즐겨 했다는 말이다(수에토니우스 『황제전』 「아우구스투스」 25). 원문의 「장엄한(augusta)」에 그의 이름이 걸려 있다.

  14. 14. 원문은 「몽둥이(bastón)」와 「제때(sazón)」의 소리를 맞춘다.

  15. 15. 스페인 왕 펠리페 2세(1527~1598)의 말로 전한다.

  16. 16. 원문은 antiperistasis. 옛 자연학에서 반대되는 성질에 둘러싸이면 한 성질이 더 세진다고 본 현상이다.

  17. 17. 로마의 출산의 여신. 유노의 별칭으로도 쓴다.

  18. 18. 폰토스의 왕 미트리다테스 6세(기원전 1세기). 독살을 두려워해 날마다 독을 조금씩 먹어 몸을 길들였다고 한다.

  19. 19. 알렉산드로스는 트로이아의 아킬레우스 무덤 앞에서, 살아서는 참된 벗을 두었고 죽어서는 호메로스라는 전령을 얻었으니 복된 사람이라고 했다(플루타르코스 『알렉산드로스전』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