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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대화편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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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1 파울리누스 공, 인간은 대부분 자연이 인색하다고 불평합니다. 우리가 겨우 잠깐 살도록 태어났고, 우리에게 주어진 그 시간마저 너무도 빠르게, 너무도 급하게 흘러가 버려서, 아주 드문 몇 사람을 빼면 모두가 막 살아 보려고 채비하는 참에 삶에게 버림받는다는 불평이지요. 사람들이 온 인류에게 닥친 불행이라 여기는 이 일을 두고 탄식한 것은 군중이나 생각 없는 무리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름난 사람들도 같은 심정에서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의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가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1 하고 외친 것도 그래서이고, 아리스토텔레스2가 현자답지 않게 자연을 상대로 시비를 벌인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는 자연이 짐승들에게는 오백 년, 천 년을 살 만큼 너그럽게 수명을 베풀면서, 그토록 많고 큰일을 하도록 태어난 인간에게는 그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끝을 세워 두었다고 따졌습니다. 우리에게 시간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많이 허비했을 뿐입니다. 삶은 충분히 길며, 통째로 잘 쓰기만 한다면 가장 큰일을 이루고도 남을 만큼 넉넉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삶이 사치와 게으름 속에 새어 나가고 어떤 좋은 일에도 쓰이지 않으면, 마침내 마지막 필연이 등을 떠밀 때에야 우리는 가는 줄도 몰랐던 삶이 이미 지나가 버렸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짧은 삶을 받은 게 아니라 짧게 만들었고, 삶이 모자란 게 아니라 헤프게 써 버립니다. 왕에게나 어울릴 막대한 재산도 나쁜 주인 손에 들어가면 한순간에 흩어지지만 변변찮은 재산이라도 좋은 관리인에게 맡겨지면 쓰는 만큼 불어나듯이, 우리 생애도 잘 꾸려 가는 사람에게는 넓게 열려 있습니다.

2 우리는 왜 자연을 두고 불평합니까? 자연은 너그럽게 베풀었습니다. 삶은 쓸 줄만 알면 깁니다. 그런데 누구는 채울 줄 모르는 탐욕에 붙들려 있고, 누구는 쓸데없는 수고에 공연히 바지런을 떱니다. 누구는 술에 절어 있고, 누구는 게으름에 굳어 있습니다. 누구는 늘 남의 판단에 매달린 야망에 지쳐 가고, 누구는 장사하려는 성급한 욕심에 끌려 이익을 바라고 온 땅과 온 바다를 떠돕니다. 어떤 이들은 전쟁에 나가고 싶은 욕망에 시달려, 늘 남의 위험을 노리거나 제 위험을 걱정합니다. 고마운 줄도 모르는 윗사람을 받드느라 스스로 택한 종살이로 삶을 갉아먹는 이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남의 처지를 탐내거나 제 처지를 불평하느라 붙잡혀 있었고, 대부분은 어떤 확실한 목표도 좇지 않은 채 갈팡질팡하고 변덕스러우며 스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경박함에 떠밀려 새 계획에서 새 계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어디로 길을 잡아야 할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 시들시들 하품만 하다가 운명에 덜미를 잡힙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 신탁처럼 한 말이 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사는 것은 삶의 작은 부분뿐이다."3 나머지 시간은 모두 삶이 아니라 그저 시간일 뿐입니다. 악덕이 사방에서 밀어닥쳐 둘러싸고는, 다시 일어서거나 눈을 들어 참된 것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악덕은 욕망에 잠기고 박힌 사람들을 짓눌러, 한 번도 자기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게 합니다. 어쩌다 우연히 잠깐 쉴 틈이 생겨도, 바람이 그친 뒤에도 너울이 이는 깊은 바다처럼 그들은 출렁거리며, 욕망에서 놓여나 여가를 누리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제가 그 해악이 누구 눈에도 뻔한 이들만 두고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그 행운을 보려고 몰려드는 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제 좋은 것들에 숨이 막힙니다. 재물이 짐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웅변과, 날마다 재주를 뽐내려는 조바심에 피가 마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끝없는 쾌락으로 낯빛이 창백해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둘레에 몰려든 피호민 무리 때문에 자유로운 틈이 하나도 남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컨대 맨 아래부터 맨 위까지 이런 이들을 모두 훑어보십시오. 이 사람은 변호인을 부르고, 이 사람은 법정에 나와 거들고, 저 사람은 재판에 걸려 위태롭고, 저 사람은 변론하고, 저 사람은 재판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자기 몫으로 되찾지 않고, 저마다 서로를 위해 닳아 없어집니다.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런 이들에 대해 물어보십시오. 그들을 가르는 표지가 이런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을 받들고, 저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받든다는 것 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들의 분개는 더없이 어리석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찾아가 뵈려 했는데 윗사람들이 틈을 내주지 않았다며 그 거만함을 불평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한 번도 틈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 감히 남의 오만을 불평할 수 있습니까? 그래도 그 윗사람은, 불평하는 이가 누구든, 거만한 얼굴로나마 이따금 그를 돌아보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를 곁에 받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거나 자기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런 문안을 두고 누구에게 공치사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 일을 할 때 그는 남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함께 있을 수가 없었을 뿐입니다.

3 일찍이 빛났던 모든 천재가 이 한 가지에 뜻을 모은다 해도, 인간 정신을 덮은 이 어둠에는 아무리 놀라도 모자랄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 땅을 누가 차지하는 것은 결코 참지 못하고, 경계를 두고 조금만 다툼이 생겨도 돌과 무기를 들고 달려 나갑니다. 그러면서 제 삶에는 남들이 들어오게 내버려 두고, 아니, 장차 그 삶을 차지할 사람들을 손수 끌어들이기까지 합니다. 제 돈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데, 저마다 제 삶은 얼마나 많은 이에게 나누어 줍니까! 재산을 지키는 데는 인색하면서, 시간을 잃는 문제가 되면 탐욕을 부려도 훌륭하다 할 단 하나의 것에서 더없이 헤프게 굽니다. 그러니 노인들 무리에서 아무나 하나 붙잡고 말해 보고 싶습니다. "어르신은 인간 수명의 끝자락에 이르셨습니다. 백 번째 해, 아니 그 이상이 어르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자, 지나온 생애를 불러내 셈을 맞춰 보십시오. 그 세월 가운데 빚쟁이가, 애인이, 권세 있는 후원자가, 피호민이 얼마를 빼앗아 갔는지, 아내와의 다툼이, 노예들을 다스리는 일이, 인사치레로 온 도시를 쏘다닌 일이 얼마를 앗아 갔는지 따져 보십시오. 우리가 제 손으로 불러들인 병도 더하고, 쓰이지 않고 그냥 놓여 있던 시간도 더해 보십시오. 그러면 헤아리시는 햇수보다 실제로 가지신 햇수가 적다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십시오. 어르신이 언제 계획을 굳게 지키셨는지, 정해 둔 대로 흘러간 날이 얼마나 드물었는지, 언제 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쓰셨는지, 언제 얼굴빛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언제 마음이 두려움에 떨지 않았는지,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잃는지 어르신은 느끼지도 못하시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르신의 삶을 앗아 갔는지, 헛된 슬픔과 어리석은 기쁨과 걸신들린 욕망과 달콤한 사교가 얼마나 빼앗아 갔는지, 어르신 몫으로 남은 것이 얼마나 적은지 되짚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르신이 설익은 채로 죽는다는 것을 깨달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원인입니까? 여러분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삽니다. 여러분의 연약함이 한 번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고, 이미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는지 살피지도 않습니다. 가득 차서 넘쳐 나는 곳간에서 꺼내 쓰듯 허비하지만, 그러는 사이 누군가에게, 사람에게든 일에든 내어 준 바로 그날이 마지막 날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죽을 사람처럼 두려워하고, 모든 것을 죽지 않을 사람처럼 탐냅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쉰 살이 되면 물러나 여가를 누리겠다. 예순 살이 되면 소임에서 풀려나겠지." 그런데 대체 누구를 더 긴 삶의 보증인으로 세우셨습니까? 누가 그 일들이 계획하신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겠습니까? 삶의 찌꺼기를 자기 몫으로 남겨 두고, 아무 일에도 쓸 수 없는 시간만을 건전한 정신에 바치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만두어야 할 때에야 살기 시작하다니, 얼마나 늦습니까? 건전한 계획을 쉰 살, 예순 살로 미루고, 몇 사람 이르지도 못한 나이에서 삶을 시작하려 하다니, 어찌 이토록 어리석게 죽을 운명을 잊을 수 있습니까?

4 가장 권세 있고 높이 오른 사람들의 입에서 여가를 바라고, 칭송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좋은 것보다 앞세우는 말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때때로 안전하기만 하다면 그 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싶어 합니다. 바깥에서 아무것도 건드리거나 뒤흔들지 않아도 높은 운은 제풀에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신격 아우구스투스는 신들이 누구보다 많은 것을 베풀어 준 사람이었지만, 자기에게 쉼을 달라고 빌고 나랏일에서 놓여나기를 청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은 무엇이든 늘 여가를 바라는 쪽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언젠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리라는 생각이, 헛된 것일지언정 달콤한 위안이 되어 그의 수고를 달래 주었습니다. 원로원에 보낸 어느 편지에서 그는 자기의 휴식이 위엄을 잃지도, 지난날의 영광에 어긋나지도 않으리라고 약속했는데, 저는 그 편지에서 이런 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약속하기보다 이루는 편이 더 보기 좋다. 그래도 몹시도 바라는 그때를 향한 열망에 이끌려, 일의 즐거움은 아직 더디 오니 말의 달콤함에서라도 쾌락을 조금 미리 맛보려 한다." 여가는 그토록 대단한 것으로 보였기에, 그는 실제로 누릴 수 없으니 생각으로라도 미리 누렸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 한 사람에게 달려 있음을 보던 사람, 사람들과 민족들에게 운을 나누어 주던 사람이, 자기의 위대함을 벗어 던질 그날을 더없이 기쁘게 그려 보았습니다. 그는 온 땅에 번쩍이는 그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 땀을 짜내는지, 얼마나 많은 남모를 근심을 감추고 있는지 겪어 보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시민들과, 다음에는 동료들과, 마지막에는 인척들과 무기로 결판을 내야 했고, 바다와 땅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마케도니아, 시칠리아, 이집트, 시리아와 아시아, 거의 모든 해안을 전쟁에 쫓겨 돌아다녔고, 로마인끼리 죽이느라 지친 군대를 바깥 전쟁으로 돌렸습니다. 그가 알프스를 평정하고 평화로운 제국 한가운데 섞여 있던 적들을 굴복시키는 동안, 라인강과 유프라테스강과 도나우강 너머로 국경을 넓히는 동안, 바로 로마 도성 안에서는 무레나, 카이피오, 레피두스, 에그나티우스4, 그 밖의 자들이 그를 노려 칼날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음모를 미처 다 피하기도 전에, 딸과, 간통을 서약처럼 맺어 한패가 된 숱한 귀족 청년들이 이미 기력이 꺾인 그의 노년을 겁에 질리게 했고, 파울루스와, 또다시 안토니우스와 함께 두려워해야 할 여자도 그랬습니다5. 그는 이 종기들을 팔다리째 잘라 냈지만 다른 종기가 또 돋아났습니다. 피가 너무 많아 무거운 몸이 늘 어딘가 터지듯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가를 바랐고, 그 바람과 생각 속에서 그의 수고는 잦아들었습니다. 남의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던 사람의 바람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5 마르쿠스 키케로는 카틸리나 같은 자들, 클로디우스 같은 자들, 폼페이우스 같은 자들, 크라수스 같은 자들, 일부는 드러난 적이고 일부는 미덥지 못한 벗인 자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둘렸습니다. 그는 나라와 함께 흔들리며 가라앉는 나라를 붙들다가 끝내 쓸려 나갔고, 순조로울 때는 편안하지 못했고 어려울 때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까닭 없이는 아니지만 끝도 없이 칭송했던 바로 그 집정관 시절을 그는 얼마나 자주 저주했습니까! 아버지 폼페이우스는 이미 패했고 아들은 아직 히스파니아에서 꺾인 무기를 다시 일으키고 있을 때, 아티쿠스에게 보낸 어느 편지6에서 그는 얼마나 애처로운 말을 쏟아 냅니까! "내가 여기서 무얼 하느냐고 그대가 물었소? 투스쿨룸의 내 별장에서 반쯤 자유로운 몸으로 머물고 있소." 그는 이어서 다른 말들도 덧붙이는데, 지난 생애를 한탄하고, 지금을 불평하고, 앞날에 절망하는 말들입니다. 키케로는 자기를 반쯤 자유로운 몸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맹세코 현자는 결코 그토록 비천한 이름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결코 반쯤 자유로운 몸이 되지 않고, 늘 온전하고 단단한 자유를 누리며,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주인이며 누구보다 높이 설 것입니다. 운 위에 있는 사람보다 더 높이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6 리비우스 드루수스7는 날카롭고 격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온 이탈리아에서 몰려든 엄청난 무리에 둘러싸여 새 법안과 그라쿠스 형제 같은 해악을 일으켰지만, 일이 어떻게 끝날지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그 일은 밀고 나갈 수도 없었고, 한번 시작한 이상 내버려 둘 자유도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줄곧 바람 잘 날 없던 자기 삶을 저주하며, 자기 혼자만은 어린아이 때조차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직 후견을 받는 소년으로 아이들이 입는 자줏빛 단의 토가를 걸치고 있을 때부터 감히 재판관들에게 피고들을 잘 봐 달라고 부탁하고 법정에 자기 영향력을 끼쳐 넣었는데, 그 힘이 어찌나 컸던지 몇몇 판결은 그가 억지로 빼앗아 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토록 때 이른 야망이 어디까지 터져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그토록 일찍 영근 대담함이 개인에게나 나라에나 큰 해악으로 번지리라는 것을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선동을 일삼고 법정을 짓눌러 온 그가 어려서부터 쉬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고 불평한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갑자기 사타구니에 상처를 입고 쓰러졌는데, 그 죽음이 스스로 택한 것이었는지 의심한 사람은 있었으나, 제때 온 죽음이었는지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들 눈에는 더없이 운 좋은 사람으로 보였지만 자기 생애의 모든 행적을 미워하며 자기에 대해 참된 증언을 남긴 사람들을 더 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불평으로 남들도 자기 자신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말이 터져 나오고 나면 격정은 다시 버릇으로 미끄러져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맹세코 여러분의 삶은 천 년을 넘어선다 해도 더없이 좁게 오그라들 것입니다. 그런 악덕들은 어떤 세월이든 삼켜 버릴 것입니다. 자연은 서둘러 달아나게 해도 이성은 늘여 놓을 수 있는 이 시간마저 여러분에게서는 빨리 빠져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보다 빠른 이것을 붙잡지도 못하고, 붙들어 두지도 못하며, 늦추지도 못하고, 쓸모없고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는 것처럼 떠나가게 내버려 두기 때문입니다.

7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도 술과 정욕 말고는 아무 일에도 시간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꼽습니다. 이들보다 더 추하게 분주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광의 헛된 그림자에 붙들려 있더라도 그나마 그럴듯하게 헤맵니다. 탐욕스러운 사람들, 성마른 사람들, 부당한 미움이나 부당한 전쟁을 일삼는 사람들을 줄줄이 들어 보아도, 그들은 모두 더 사내답게 죄를 짓습니다. 배와 정욕에 몸을 내던진 자들의 타락은 추합니다. 이런 자들의 시간을 모두 털어 보십시오. 얼마나 오래 셈을 하고, 얼마나 오래 남을 노리고, 얼마나 오래 두려워하고, 얼마나 오래 남을 받들고, 얼마나 오래 남의 받듦을 받는지, 자기 재판과 남의 재판에 나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차지하고, 이제는 그 자체가 의무가 되어 버린 연회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지 보십시오. 그들이 겪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그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분주한 사람은 어떤 일도 잘 해낼 수 없다는 데 모두가 동의합니다. 웅변도, 교양 학문도 그렇습니다. 여러 갈래로 끌려다니는 마음은 깊이 있는 것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지로 밀어 넣은 것처럼 모두 도로 뱉어 내기 때문입니다. 분주한 사람이 가장 못 하는 일은 사는 일입니다. 어떤 일도 사는 법보다 알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다른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은 어디에나 많고, 그 가운데 어떤 기술은 아주 어린아이들도 남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익힌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사는 법은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하며, 더 놀라실지 모르지만 죽는 법도 평생을 두고 배워야 합니다. 숱한 위대한 사람들이 거치적거리는 것을 모두 내려놓고 재물과 의무와 쾌락을 끊은 뒤, 늘그막에 이르기까지 오직 사는 법을 아는 데만 힘썼습니다. 그런데도 그들 대부분은 아직 모르겠다고 고백하며 삶을 떠났습니다. 하물며 저런 자들이 알 리가 있겠습니까. 제 말을 믿으십시오. 자기 시간에서 아무것도 덜어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헤맴을 넘어선 위대한 사람의 일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더없이 깁니다. 그 삶이 얼마나 넓게 펼쳐졌든 통째로 자기 자신을 위해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아무것도 묵혀 두거나 놀려 두지 않았고, 아무것도 남의 손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자기 시간을 더없이 아끼는 이 파수꾼은 자기 시간과 맞바꿀 만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에게는 시간이 넉넉했습니다. 그러나 삶의 많은 부분을 군중에게 빼앗긴 이들에게는 모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언젠가 자기 손해를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큰 행운에 짓눌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피호민 무리 속에서, 소송 변론 중에, 또는 다른 점잖은 비참함 속에서 이따금 "나는 살 틈이 없다!" 하고 외치는 것을 분명히 들으실 것입니다. 왜 살 틈이 없겠습니까? 자기에게 불러들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불려 가는 사람을 그 자신에게서 앗아 갑니다. 저 피고는 며칠을 앗아 갔습니까? 저 관직 후보자는 며칠을? 상속자들을 묻어 내느라 지친 저 노파는 며칠을? 유산을 노리는 자들의 탐욕을 부추기려고 병든 척하는 저 사람은 며칠을? 여러분을 벗으로가 아니라 행차의 구색으로 거느리는 저 권세 있는 벗은 며칠을 앗아 갔습니까? 거듭 말하지만, 삶의 날들을 하나하나 따져 셈해 보십시오. 그러면 자기 곁에 남은 날이 아주 적고, 그나마 버려진 찌꺼기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권표를 얻은 사람은 이제 그것을 내려놓고 싶어 하며 줄곧 "이 한 해는 언제나 지나가려나?" 하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기를 주관하게 되어 그 제비가 자기에게 떨어진 것을 대단하게 여겼으면서도 "언제나 이 일에서 벗어나려나?" 하고 말합니다. 어떤 변호인은 온 포룸에서 서로 모셔 가려 다툴 만큼 인기가 있어, 엄청난 군중이 몰려 그의 목소리가 닿지도 않는 곳까지 가득 메우는데도 "언제쯤 법정이 쉬려나?" 하고 말합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재촉하며, 앞날을 그리워하고 지금을 지겨워하느라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어떤 시간이든 다 자기에게 쓰고, 날마다 마지막 날처럼 꾸려 가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어느 한 시간이 그에게 무슨 새로운 쾌락을 가져다줄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물리도록 맛보았습니다. 나머지는 우연한 운이 원하는 대로 정하게 두십시오. 삶은 이미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이런 삶에는 무언가를 더할 수는 있어도 덜어 낼 수는 없습니다. 더한다 해도 이미 배부르고 가득 찬 사람에게 음식을 조금 더 주는 것과 같아서, 바라지는 않아도 받아 넣기는 합니다. 그러니 흰머리나 주름이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오래 살았다고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그는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오래 있었을 뿐입니다. 사나운 폭풍이 항구를 나서자마자 덮쳐 이리저리 휘몰고, 사방에서 미쳐 날뛰는 바람이 번갈아 같은 바다를 빙빙 돌게 한 사람을 두고 오래 항해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는 오래 항해한 것이 아니라 오래 휘둘렸을 뿐입니다.

8 저는 어떤 사람들이 시간을 청하고, 청을 받은 사람들이 선선히 내주는 것을 볼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양쪽 다 시간을 청한 목적만 바라볼 뿐 시간 그 자체는 어느 쪽도 바라보지 않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청하지 않고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 값진 것을 두고 장난을 칩니다. 그것이 형체가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들은 속아 넘어가고, 그래서 그것을 가장 값싼 것으로, 아니 거의 값이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사람들은 해마다 받는 녹봉이나 하사금은 더없이 귀하게 받고, 그 대가로 자기 수고나 일손이나 정성을 빌려줍니다. 그러나 시간은 아무도 값을 매기지 않습니다. 공짜로 받은 것처럼 헤프게 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들이 병들어 죽음의 위험이 가까이 다가오면 의사의 무릎을 붙잡고, 사형을 두려워하게 되면 살기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을 채비를 하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 안에서 격정이 이토록 서로 어긋납니다! 지나간 햇수처럼 앞으로 남은 햇수도 저마다 눈앞에 내놓을 수 있다면, 남은 해가 얼마 없음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떨겠으며, 그 햇수를 얼마나 아끼겠습니까! 그러나 정해진 것은 아무리 적어도 나누어 쓰기 쉽습니다.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것일수록 더 부지런히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고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몹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햇수의 일부라도 내줄 수 있다고 곧잘 말합니다. 그들은 내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더구나 상대에게 보태 주지도 못한 채 자기에게서만 덜어 냅니다. 그러나 덜어 낸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손실을 견딜 만하게 여깁니다. 아무도 세월을 되돌려 주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습니다. 생애는 시작한 길을 그대로 갈 것이고, 제 길을 되돌리지도 멈추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무 소란도 피우지 않고, 제 빠르기를 아무것도 일깨워 주지 않으며,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갈 것입니다. 왕의 명령으로도, 인민의 호의로도 더 늘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날 내보내진 그대로 달려가며, 어디에서도 길을 돌리지 않고, 어디에서도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분주하고, 삶은 서두릅니다. 그러는 사이 죽음이 닥칠 것이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죽음에는 시간을 내야 합니다.

9 분별을 자랑하는 사람들, 바로 그들의 생각보다 더 어리석은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누구보다 공들여 분주합니다. 더 잘 살려고 삶을 들여서 삶을 마련합니다. 생각을 먼 앞날까지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삶을 가장 크게 잃는 길은 미루는 일입니다. 미루기는 다가오는 날을 하나하나 앗아 가고, 더 먼 것을 약속하면서 지금 있는 것을 빼앗습니다. 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은 내일에 매달려 오늘을 잃습니다. 운의 손에 놓인 것은 계획하면서, 자기 손에 놓인 것은 놓아 버리십니다. 어디를 바라보십니까? 어디까지 손을 뻗으십니까? 앞으로 올 것은 모두 불확실한 데 놓여 있습니다. 지금 바로 사십시오. 보십시오, 가장 위대한 시인이 외치며, 신이 내린 떨림에 사로잡힌 듯 구원의 노래를 부릅니다.

"가엾은 인간들에게서 생애의 가장 좋은 날은
언제나 맨 먼저 달아난다."8

"왜 머뭇거리느냐?" 하고 시인은 말합니다. "왜 꾸물거리느냐? 붙잡지 않으면 달아난다." 그런데 붙잡는다 해도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니 시간의 빠르기와는 시간을 쓰는 빠르기로 겨루어야 하고, 늘 흐르지는 않을 급류에서 물을 긷듯 서둘러 길어 올려야 합니다. 시인이 가장 좋은 세월이 아니라 가장 좋은 날이라고 한 것도, 끝없이 늘어놓는 계획을 나무라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말입니다. 시간이 이토록 달아나는데 왜 근심 없이 느긋하게, 욕심이 시키는 대로 달과 해를 길게 줄지어 늘어놓으십니까? 시인은 하루를 두고, 그것도 바로 지금 달아나는 이 하루를 두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니 가엾은 인간들, 곧 분주한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날마다 맨 먼저 달아난다는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은 아직 어린아이인데 노년이 덮쳐 누르고, 그들은 아무 채비도 없이 무방비로 노년에 이릅니다.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뜻하지 않게 갑자기 노년에 떨어졌고, 노년이 날마다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이 이야기나 책 읽기나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다 왔다는 것을 알게 되듯이, 깨어 있을 때나 잠잘 때나 같은 걸음으로 쉼 없이 더없이 빠르게 걸어가는 이 삶의 길도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끝에 이르러서야 보입니다.

10 제가 내세운 것을 여러 부분과 논증으로 나누어 펼치려 한다면, 분주한 사람들의 삶이 더없이 짧다는 것을 증명할 거리가 많이 떠오를 것입니다. 파비아누스9는 강단에 들어앉은 철학자가 아니라 참되고 옛사람다운 철학자였는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격정과는 섬세한 논변이 아니라 기세로 싸워야 하고, 자잘한 상처가 아니라 돌격으로 적의 전열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는 말꼬리 잡는 궤변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격정은 짓뭉개야지 꼬집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려면, 그저 불쌍히 여길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합니다. 삶은 세 때로 나뉩니다. 지나간 때, 지금, 앞으로 올 때입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지금 보내는 때는 짧고, 앞으로 보낼 때는 불확실하며, 이미 보낸 때는 확실합니다. 이미 보낸 때야말로 운이 권리를 잃은 때이며, 누구의 뜻에도 다시 맡겨질 수 없는 때입니다. 분주한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잃습니다. 그들에게는 지나간 날을 돌아볼 틈이 없고, 틈이 있다 해도 후회할 일을 떠올리는 것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 보낸 시간으로 마음을 돌리기를 꺼리고 그 시간을 다시 들추어 볼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지금의 쾌락이 뚜쟁이처럼 꾀어 슬그머니 넘어갔던 악덕들까지도 다시 들추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결코 속지 않는 자기 자신의 감찰을 받으며 모든 일을 해 온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기꺼이 지난날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야심에 차서 많은 것을 탐냈고, 오만하게 깔보았고, 제멋대로 이겼고, 음험하게 속였고, 탐욕스럽게 빼앗았고, 헤프게 쏟아부은 사람은 자기 기억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간 가운데 거룩하게 바쳐진 부분으로서,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을 넘어서 있고 운의 왕국 바깥으로 빼내어져 있어서, 가난도, 두려움도, 병의 습격도 이것을 뒤흔들지 못합니다. 이것은 어지럽혀질 수도 빼앗길 수도 없으며, 이것을 가진 것은 영원하고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은 하루하루뿐이고, 그것도 한순간 한순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의 날들은 여러분이 명하기만 하면 모두 다가와, 마음대로 살펴보고 붙들어 두도록 내어 줄 것입니다. 분주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할 틈이 없습니다. 근심 없고 고요한 정신이라야 자기 삶의 모든 부분을 두루 오갈 수 있습니다. 분주한 사람들의 마음은 멍에를 멘 것처럼 몸을 돌려 뒤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깊은 구렁으로 사라져 갑니다. 받아서 간직할 그릇이 밑에 받쳐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쏟아부어도 소용없듯이, 시간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고일 자리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은 금 가고 구멍 난 마음을 그대로 빠져나갑니다. 지금이라는 때는 더없이 짧아서,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은 늘 달려가며 흐르고 곤두박질칩니다. 오기도 전에 이미 없어지고, 늘 쉬지 않고 움직여 한 번도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 우주나 별들처럼 지체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니 분주한 사람들에게 속하는 것은 붙잡을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지금이라는 때뿐인데, 그마저 여러 일에 끌려다니는 그들에게서 빠져나갑니다.

11 끝으로, 그들이 얼마나 짧게 사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그들이 얼마나 오래 살기를 바라는지 보십시오. 늙어 빠진 노인들이 몇 해만 더 달라고 빌며 구걸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더 젊다고 꾸며 대고, 거짓말로 자기 자신을 달래며, 그렇게 하면 운명까지 함께 속일 수 있다는 듯 기꺼이 자신을 속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병이 그들에게 죽을 운명임을 일깨우면, 그들은 얼마나 두려워 떨며 죽어 갑니까. 삶에서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나가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어리석어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외치고, 이번 병에서 살아나기만 하면 여가 속에서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제야 그들은 누리지도 못할 것을 얼마나 헛되이 마련했는지, 그 모든 수고가 얼마나 허사로 돌아갔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갖 일에서 멀리 떨어져 삶을 보내는 사람들의 삶이 어찌 넉넉하지 않겠습니까? 그 삶에서는 아무것도 남에게 넘겨지지 않고, 아무것도 여기저기 흩어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운에게 내맡겨지지 않고, 아무것도 소홀함으로 사라지지 않으며, 아무것도 선심을 쓰느라 덜려 나가지 않고, 아무것도 쓸데없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삶 전체가 고스란히 수익이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짧아도 넉넉하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 언제 오든 현자는 머뭇거리지 않고 확고한 걸음으로 죽음을 향해 갈 것입니다.

12 공께서는 제가 누구를 분주한 사람이라 부르는지 물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닫을 때 개를 풀어야 비로소 재판정에서 쫓겨나는 사람들만 두고 제가 말한다고 생각하실 일은 아닙니다. 자기 패거리 속에서 더 그럴듯하게 짓밟히거나 남의 패거리 속에서 더 업신여김을 받으며 짓밟히는 모습이 보이는 사람들, 인사치레가 제 집에서 불러내 남의 집 문간에 부딪히게 하는 사람들, 법무관의 창 아래 벌어지는 경매에서 언젠가 곪아 터질 부끄러운 이익을 좇느라 바쁜 사람들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여가마저 분주합니다. 별장에서나 자기 침상에서나, 한적한 곳 한가운데서 모든 사람을 피해 물러났는데도 스스로 자기를 괴롭힙니다. 이들의 삶은 여가로운 삶이 아니라 게으른 분주함이라 불러야 합니다. 몇 사람의 광기 때문에 값비싸진 코린트 청동 그릇을 안달이 날 만큼 꼼꼼하게 매만지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녹슨 쇳조각에 쏟는 사람을 여가를 누린다고 하시겠습니까? 레슬링장에 앉아(아, 이런 망측한 일이! 우리는 로마의 악덕만으로 시달리는 것도 아닙니다) 소년들이 뒤엉켜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기 마차를 끄는 짐승 떼를 나이와 털빛에 맞추어 짝짓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새로 나온 운동선수들을 먹여 기르는 사람은 또 어떻습니까? 그뿐입니까? 이발사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사람들을 여가를 누린다고 하시겠습니까? 지난밤 사이 무엇이 자랐으면 뽑아내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두고 의논을 벌이고,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가지런히 하거나 빠져서 모자라는 머리를 이쪽저쪽에서 이마로 끌어모으는 동안 말입니다. 이발사가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마치 진짜 사내의 머리를 깎는 것처럼 얼마나 화를 냅니까! 갈기에서 조금이라도 잘려 나가거나, 무엇 하나라도 차례에서 벗어나 놓이거나, 모든 머리카락이 제 고리 모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얼마나 불같이 성을 냅니까! 이들 가운데 자기 머리카락보다 차라리 나라가 어지러워지기를 바라지 않을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 안전보다 머리 모양을 더 걱정하지 않을 자가 누구입니까? 훌륭하기보다 맵시 있기를 더 바라지 않을 자가 누구입니까? 빗과 거울 사이에서 분주한 이런 자들을 여가를 누린다고 하시겠습니까? 노래를 짓고 듣고 익히느라 애쓰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자연이 더없이 좋고 더없이 단순하게 곧은 길로 내도록 만든 목소리를 더없이 게으른 가락의 굽이굽이로 비틀고, 손가락으로는 늘 속으로 어떤 노래의 박자를 짚으며 두드리고, 진지한 일, 때로는 슬픈 일에 불려 나가서도 소리 없이 흥얼거리는 것이 들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에게 있는 것은 여가가 아니라 게으른 분주함입니다. 맹세코 이런 자들의 연회도 저는 한가한 시간으로 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안달하며 은그릇을 늘어놓는지, 시중드는 사내종들의 옷자락을 얼마나 꼼꼼히 걷어 올려 매는지, 멧돼지 요리가 요리사 손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얼마나 마음 졸이는지, 신호가 떨어지면 털 없는 노예들이 얼마나 재빨리 제 일을 하러 흩어지는지, 새들을 너무 크지 않은 조각으로 얼마나 솜씨 있게 썰어 내는지, 불쌍한 어린 노예들이 취객들의 침을 얼마나 꼼꼼히 닦아 내는지를 보면 말입니다. 이런 일로 그들은 우아하고 호사롭다는 평판을 낚으려 합니다. 그들의 나쁜 버릇은 삶의 구석구석까지 그들을 따라다녀서, 그들은 마시는 일도 먹는 일도 허세 없이는 하지 못합니다. 가마와 들것에 실려 이리저리 다니고, 그 나들이를 거를 수 없다는 듯 정해진 시각마다 나서는 사람들도 여가를 누리는 사람으로 꼽지 마십시오. 언제 목욕하고 언제 헤엄치고 언제 저녁을 먹어야 하는지 남이 일러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나약한 마음의 무기력에 풀어져서, 자기가 배고픈지조차 스스로 알지 못할 지경입니다. 호사에 절은 사람 가운데 하나가(삶과 인간다운 습관을 잊어버리는 것을 호사라 불러도 된다면) 목욕탕에서 사람들 손에 들려 나와 의자에 놓였을 때 "나 이제 앉았느냐?" 하고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기가 앉았는지도 모르는 이 사람이 자기가 살아 있는지, 보고 있는지, 여가를 누리는지 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더 불쌍한지, 모르는 척했다면 더 불쌍한지 쉽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정말로 잊기도 하지만 많은 것을 잊은 척하기도 합니다. 어떤 악덕은 행운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여겨져 그들을 즐겁게 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아는 것은 너무 비천하고 하찮은 사람의 일로 보이는 것입니다. 자, 이제 광대극이 사치를 꾸짖으려고 거짓말을 잔뜩 꾸며 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맹세코 광대극이 지어내는 것보다 그냥 지나치는 것이 더 많습니다. 다른 데는 몰라도 이 한 가지에는 재주가 넘치는 이 시대에 믿기지 않는 악덕이 하도 많이 쏟아져 나와서, 이제는 오히려 광대극이 게으르다고 나무랄 수 있을 정도입니다. 호사에 빠져 그토록 죽은 거나 다름없이 되어서, 자기가 앉았는지조차 남의 말을 믿어야 하는 사람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람은 여가를 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그는 병자입니다. 아니, 죽은 사람입니다. 자기 여가를 느낄 줄도 아는 사람이 여가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몸이 어떤 자세인지 알려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이 반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무슨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13 장기 놀이나 공놀이나 햇볕에 몸을 굽는 일에 삶을 다 써 버린 사람들을 하나하나 쫓아가자면 끝이 없습니다. 쾌락에 일이 많이 따르는 사람들은 여가를 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학문을 파느라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애써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로마인들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이 큰 무리를 이룹니다. 오디세우스가 노잡이를 몇이나 거느렸는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쓰였는지, 또 둘이 같은 작가의 작품인지, 그 밖에 이런 종류의 것을 줄줄이 캐묻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병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마음속에 담아 두어도 혼자만 아는 마음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고, 늘어놓으면 더 박식해 보이기는커녕 더 성가셔 보일 뿐입니다. 보십시오, 쓸데없는 것을 배우려는 이 헛된 열의가 로마인들에게도 덮쳤습니다. 요즈음 저는 어떤 사람이 로마의 장군들 가운데 누가 무엇을 처음 했는지 늘어놓는 것을 들었습니다. 해전에서 처음 이긴 사람은 두일리우스이고, 개선 행렬에 처음 코끼리를 끌고 간 사람은 쿠리우스 덴타투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런 것은 참된 영광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시민이 이룬 업적의 본보기 언저리에서 맴돌기는 합니다. 이런 지식은 쓸모가 없겠지만, 그래도 그럴듯한 헛것으로 우리를 붙잡아 두는 지식이기는 합니다. 누가 처음으로 로마인들을 배에 오르게 설득했는지 캐묻는 사람들도 너그럽게 봐줍시다. 그 사람은 클라우디우스였는데, 바로 이 일로 카우덱스(caudex)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옛사람들은 판자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것을 카우덱스라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라의 공문서 판을 코덱스라 하고, 지금도 옛 관습대로 테베레강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배를 코디카리아라고 부릅니다. 발레리우스 코르비누스가 처음으로 메사나를 정복했고, 발레리우스 집안에서 처음으로 정복한 도시의 이름을 제 이름으로 옮겨 받아 메사나라고 불렸는데, 차츰 사람들이 글자를 바꿔 부르는 바람에 메살라가 되었다는 것도 물론 쓸모 있는 이야기라고 쳐 둡시다. 그러나 루키우스 술라가 처음으로 경기장에 사자를 풀어 놓고 내보였으며(그전에는 묶인 채로 내보냈습니다), 그 사자들을 해치우라고 보쿠스 왕이 창잡이들을 보내 주었다는 것까지 누구에게 마음 쓰라고 허락하시겠습니까? 이것도 너그럽게 넘어가 준다 칩시다. 폼페이우스가 처음으로 경기장에서 코끼리 열여덟 마리의 싸움을 벌이며 죄인들을 전투하듯 맞붙게 했다는 것이 무슨 좋은 일과 상관이 있습니까? 나라의 제일인자요, 전하는 말로는 옛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남달리 선량했다는 사람이, 듣도 보도 못한 수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기억할 만한 구경거리로 여겼습니다. "서로 싸워 죽는다고? 모자란다. 갈가리 찢긴다고? 모자란다. 거대한 짐승 떼에 짓이겨지게 하라!" 이런 일은 차라리 잊히는 편이 나았습니다. 그랬다면 훗날 어떤 권력자도 그것을 배워 더없이 비인간적인 일을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 큰 행운은 우리 정신에 얼마나 짙은 어둠을 드리웁니까! 그는 다른 하늘 아래 태어난 짐승들에게 비참한 사람들을 무리 지어 내던지고,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동물들 사이에 싸움을 붙이고, 로마 인민이 보는 앞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했을 때 자기가 자연을 넘어섰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자신이 그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만들 처지였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알렉산드리아의 배신에 속아 가장 비천한 노예의 칼에 찔리도록 몸을 내맡겼고, 그제야 자기 별명이 헛된 허풍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10. 그러나 제가 벗어났던 자리로 돌아가, 같은 주제에서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이 공을 들이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바로 그 사람은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메텔루스가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인들을 무찌르고 개선식을 올릴 때 로마인 가운데 오직 그만이 사로잡은 코끼리 120마리를 전차 앞에 끌고 갔다는 것, 술라가 로마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도성의 신성한 경계선(pomerium)을 넓혔다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에게는 속주의 땅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땅을 얻었을 때에만 경계선을 넓히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아는 편이, 그 사람이 단언한 대로 아벤티누스 언덕이 경계선 밖에 있는 까닭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 곧 평민이 그곳으로 물러났기 때문이거나 레무스가 그곳에서 새점을 쳤을 때 새들이 좋은 징조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것보다, 또 거짓말로 가득 차 있거나 그 비슷한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아는 것보다 더 쓸모 있겠습니까? 설령 그들이 모든 것을 성실하게 말하고 보증까지 서듯 적는다고 인정해 준다 해도, 이런 것이 누구의 잘못을 줄여 주겠습니까? 누구의 욕망을 눌러 주겠습니까? 누구를 더 용감하게, 더 정의롭게, 더 너그럽게 만들어 주겠습니까? 우리 파비아누스는 이런 학문에 얽매이느니 차라리 아무 학문에도 손대지 않는 편이 나은 게 아닌지 이따금 의심스럽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14 모든 사람 가운데 지혜에 시간을 내는 사람들만이 여가를 누리는 사람이며, 그들만이 삽니다. 그들은 자기 생애만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월을 자기 생애에 보탭니다. 그들보다 앞서 흘러간 햇수가 모두 그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더없이 배은망덕하지 않다면, 거룩한 가르침을 세운 저 빛나는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태어났고 우리를 위해 삶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우리는 남의 수고 덕분에 어둠 속에서 빛으로 파내어진 더없이 아름다운 것들에 이릅니다. 어떤 시대도 우리에게 닫혀 있지 않고 우리는 모든 시대에 들어갈 수 있으니, 도량을 넓혀 인간의 연약함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다면 거닐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논쟁하고, 카르네아데스와 함께 의심하고, 에피쿠로스와 함께 쉬고, 스토아학파와 함께 인간의 본성을 이겨 내고, 견유학파와 함께 그것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모든 시대와 어울리도록 허락하는데, 어찌 이 짧고 덧없는 한때를 떠나, 헤아릴 수 없고 영원하며 우리보다 나은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들에 온 마음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인사치레로 쏘다니며 자기와 남을 들볶는 저 사람들은, 실컷 미친 듯 굴고, 날마다 모든 이의 문턱을 밟고 다니며 열린 문은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삯을 바라는 아침 문안 인사를 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닌 끝에, 이토록 거대하고 갖가지 욕망으로 갈가리 찢긴 도시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만나 볼 수 있겠습니까? 잠이나 사치나 무정함 때문에 그들을 물리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오래 애태우게 하다가 바쁜 척하며 그들 곁을 휙 지나쳐 갈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피호민으로 가득 찬 안뜰로 나오기를 피하고 집 안의 어두운 뒷문으로 빠져 달아날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마치 속이는 것이 내쫓는 것보다 덜 매정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어젯밤 술기운에 반쯤 졸며 무거운 몸으로, 남의 잠을 기다리려고 제 잠을 깨고 나온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천 번은 속삭여 준 이름을 입술을 겨우 들어 더없이 거만한 하품과 함께 되뇌어 줄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제논, 피타고라스, 데모크리토스, 그 밖에 훌륭한 학문을 이끈 이들,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를 날마다 더없이 가까운 벗으로 두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의무에 힘쓰고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며,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말해도 좋습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틈을 내주지 않는 이가 없고, 찾아온 사람을 더 행복하게, 자기를 더 따르게 하여 돌려보내지 않는 이가 없으며, 누구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두지 않습니다. 이들은 밤에도 낮에도 모든 인간이 만날 수 있습니다.

15 이들 가운데 누구도 죽으라고 강요하지 않고, 모두가 죽는 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도 우리의 햇수를 깎아 먹지 않고, 오히려 자기 햇수를 보태 줍니다. 이들 가운데 누구와 나누는 말도 위험하지 않고, 누구와 맺는 우정도 목숨을 위협하지 않으며, 누구를 받드는 일도 돈이 들지 않습니다. 이들에게서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가져갈 수 있습니다. 원하는 만큼 마음껏 길어 가는 것을 이들이 막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의 피호민으로 들어간 사람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년이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그에게는 아주 작은 일이든 아주 큰일이든 함께 의논할 사람들, 날마다 자기 일을 물어볼 사람들, 모욕 없이 참된 말을 들려주고 아첨 없이 칭찬해 줄 사람들, 자기를 그들과 닮게 빚어 갈 본보기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부모를 만날지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고 우연히 주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선한 사람들은 마음대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더없이 고귀한 천재들의 집안이 있으니, 어느 집안에 들고 싶은지 고르십시오. 그러면 이름만 물려받는 양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까지 물려받을 것입니다. 그 재산은 쩨쩨하게 인색하게 지킬 필요가 없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줄수록 더 커질 것입니다. 이들이 영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고, 아무도 끌어내려지지 않는 자리로 들어 올려 줄 것입니다. 죽을 운명을 늘리는, 아니 불멸로 바꾸는 방도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관직과 기념비, 야망이 결의로 명령하거나 공사로 쌓아 올린 것은 무엇이든 금세 무너집니다. 오랜 세월은 무엇이든 허물고 옮겨 놓습니다. 그러나 지혜가 거룩하게 바친 것은 해칠 수 없습니다. 어떤 세대도 그것을 지우지 못하고 줄이지도 못하며, 다음 세대와 그 뒤로 이어지는 세대가 늘 그것에 공경을 더할 것입니다. 시샘은 가까운 것에 붙어 다니고, 멀리 있는 것은 오히려 순수하게 우러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현자의 삶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가두는 경계가 그를 가두지는 못합니다. 그만이 인류의 법에서 풀려나 있습니다. 모든 시대가 신을 섬기듯 그를 섬깁니다. 어떤 시간이 지나갔습니까? 그는 그것을 기억으로 붙잡습니다. 지금 와 있습니까? 그것을 씁니다. 앞으로 올 것입니까? 그것을 미리 붙잡습니다. 모든 시간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그의 삶을 길게 만듭니다.

16 지난 일을 잊고, 지금 일을 소홀히 하고, 앞날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생애는 더없이 짧고 더없이 불안합니다. 끝에 이르러서야 그 가엾은 사람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그토록 오래 분주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그들이 이따금 죽음을 부른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들이 긴 삶을 산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그들은 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격정에 시달리고 바로 자기가 두려워하는 것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들이 자주 죽음을 바라는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루가 길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 약속한 저녁 시각이 올 때까지 시간이 더디 간다고 불평한다는 것도 그들이 오래 산다는 증거라고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어쩌다 분주한 일이 그들을 떠나면 그들은 여가 속에 남겨져 안달하며, 그 여가를 어떻게 써서 흘려보내야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슨 일이든 분주할 거리를 찾아 나서고, 그 사이에 끼인 시간은 모두 무겁게 여깁니다. 맹세코, 검투 경기 날짜가 공표되었을 때나 다른 구경거리나 쾌락을 즐길 날이 정해져 기다릴 때, 그사이의 날들을 건너뛰고 싶어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에게는 바라는 일이 미뤄지는 시간이 모두 깁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랑하는 시간은 짧고 쏜살같으며, 자기 잘못 때문에 훨씬 더 짧아집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도망치듯 옮겨 다니며 한 가지 욕망에 머물러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낮은 긴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것입니다. 반대로 창녀의 품에서나 술로 지새우는 밤은 얼마나 짧게 여겨집니까! 그래서 시인들의 광기도 이야기로 인간의 헤맴을 부추깁니다. 그들은 유피테르가 동침의 쾌락에 홀려 밤을 두 배로 늘렸다고 그렸습니다. 우리 악덕을 신들이 만들었다고 내세우고, 신의 본보기를 들어 병든 마음에 핑곗거리가 있는 방종을 허락하는 것이, 우리 악덕에 불을 지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토록 비싸게 사들이는 밤이 이런 자들에게 어찌 더없이 짧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밤을 기다리느라 낮을 잃고, 날이 샐까 두려워 밤을 잃습니다.

17 그들의 쾌락조차 불안하고 갖가지 두려움으로 들썩입니다. 한창 기뻐 날뛸 때 불안한 생각이 스며듭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랴?" 이런 심정 때문에 왕들은 자기 권력을 두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처지가 높다는 것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닥칠 끝에 겁을 먹었습니다. 더없이 오만한 페르시아 왕11은 드넓은 들판에 군대를 펼쳐 놓고 그 수를 세지 못해 넓이로 헤아리게 되자, 백 년 안에 저 많은 젊은이 가운데 아무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울던 바로 그 사람이 그들을 운명 앞으로 내몰 참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바다에서, 어떤 이는 땅에서, 어떤 이는 싸움에서, 어떤 이는 도주 중에 잃고, 그가 백 번째 해를 걱정해 주던 그들을 얼마 안 되는 시간 안에 다 써 버릴 참이었습니다. 그들의 기쁨마저 불안한 것은 어떻습니까? 그 기쁨은 단단한 까닭에 기대고 있지 않아서, 생겨날 때의 그 헛됨 그대로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그들 스스로 인정하기에도 비참한 시간은 어떻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우쭐대며 사람 위로 올라서는 이런 시간마저 순수하지 못한데 말입니다. 가장 큰 좋은 것일수록 불안하며, 가장 좋은 운만큼 믿을 수 없는 운도 없습니다. 행운을 지키려면 또 다른 행운이 있어야 하고, 이루어진 바람을 위해 또 빌어야 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것은 모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높이 솟아오른 것일수록 쉽게 무너집니다. 그런데 무너질 것을 즐거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니 큰 수고로 얻은 것을 더 큰 수고로 지키는 이들의 삶은 더없이 짧을 뿐 아니라 더없이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애써서 얻고, 얻은 것을 근심하며 붙들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은 전혀 셈에 넣지 않습니다. 새로운 분주함이 옛 분주함을 대신하고, 희망이 희망을, 야망이 야망을 불러일으킵니다. 비참함의 끝을 찾는 것이 아니라 비참함의 재료만 바꿉니다. 우리 관직이 우리를 괴롭혔습니까? 남의 관직이 더 많은 시간을 앗아 갑니다. 후보로서 애쓰기를 그만두었습니까? 이제는 남을 밀어주는 일을 시작합니다. 고발하는 수고를 내려놓았습니까? 재판하는 수고를 떠맡습니다. 재판관 노릇을 그만두었습니까? 이제는 재판장이 됩니다. 남의 재산을 삯 받고 관리하다가 늙었습니까? 이제는 자기 재산에 매여 지냅니다. 마리우스가 군화를 벗었습니까? 집정관 자리가 그를 들볶습니다. 퀸크티우스12가 독재관 임기를 서둘러 마치려 합니까? 그는 다시 쟁기 곁에서 불려 나올 것입니다. 스키피오13는 그런 큰일을 맡기에 아직 여물지 않은 나이에 카르타고인들을 치러 갈 것입니다. 한니발을 이기고 안티오코스를 이기고, 자기 집정관 시절을 빛내고 아우의 집정관 자리를 보증한 그는, 자기가 마다하지 않았다면 유피테르 곁에 모셔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라의 구원자를 시민들의 분란이 들볶을 것이고, 젊어서는 신들과 맞먹는 영예를 마다했던 그가 늙어서는 오기 어린 추방살이를 뽐내는 데서 기쁨을 찾을 것입니다. 운 좋은 일로 생기는 걱정이든 비참한 일로 생기는 걱정이든 그 까닭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삶은 분주함에 떠밀려 갈 것이고, 여가는 결코 누리지 못한 채 늘 바라기만 할 것입니다.

18 그러니 친애하는 파울리누스 공, 뭇사람에게서 몸을 빼내십시오.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많이 시달리셨으니, 이제 마침내 더 고요한 항구로 물러나십시오. 얼마나 많은 파도를 맞으셨는지, 얼마나 많은 폭풍을 일부는 사사로이 견디시고 일부는 나랏일로 몸소 떠안으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고되고 어지러운 증거들로 공의 덕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습니다. 이제 여가 속에서 그 덕이 무엇을 하는지 시험해 보십시오. 생애의 더 큰 부분, 틀림없이 더 좋은 부분을 나라에 바치셨으니, 이제 시간의 얼마쯤은 공 자신을 위해서도 쓰십시오. 제가 공을 게으르고 무기력한 쉼으로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공 안에 있는 생기 넘치는 천성을 모두 잠이나 군중이 아끼는 쾌락 속에 가라앉히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쉬는 것이 아닙니다. 물러나 근심 없이 지내시면서 다루실 일, 지금까지 그토록 힘써 다루신 모든 일보다 더 큰 일을 찾으실 것입니다. 공께서는 온 세계의 장부를 남의 것처럼 깨끗하게, 자기 것처럼 꼼꼼하게, 나라의 것처럼 경건하게 관리하십니다14. 미움을 피하기 어려운 소임에서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 말을 믿으십시오. 나라 곡물의 장부보다 자기 삶의 셈을 아는 편이 낫습니다. 가장 큰일을 넉넉히 감당할 그 기개를, 영예롭기는 하나 행복한 삶(vita beata)에는 별로 맞지 않는 직무에서 되찾아 오십시오. 그리고 공께서 어려서부터 교양 학문을 그토록 갈고닦으신 것이 수천 말의 곡물을 잘 맡아 보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공께서는 자신에게 더 크고 더 높은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꼼꼼하게 아끼는 사람들과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은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짐을 나르는 데는 굼뜬 짐승이 혈통 좋은 말보다 훨씬 알맞습니다. 그 고귀한 날램을 무거운 짐으로 짓누른 사람이 일찍이 있었습니까? 더구나 그토록 큰 짐 앞에 몸을 던지시는 것이 얼마나 근심스러운 일인지도 생각해 보십시오. 공께서 상대하시는 것은 사람의 배입니다. 굶주린 인민은 이치를 듣지 않고, 공정함으로 누그러지지 않으며, 어떤 간청에도 굽히지 않습니다. 바로 얼마 전, 칼리굴라15가 죽던 그 며칠 사이(죽은 자에게도 감각이 있다면, 그는 로마 인민이 살아남은 채 자기가 떠나는 것을 몹시도 원통해했을 것입니다), 남은 식량은 기껏해야 이레나 여드레 치뿐이었습니다! 그가 배를 이어 다리를 놓고 제국의 힘을 가지고 놀던 동안, 포위당한 사람들에게도 닥치는 마지막 불행, 곧 먹을 것이 바닥나는 일이 닥쳐 있었습니다. 미치광이에 이방인이며 불행하게 오만했던 왕을 흉내 낸 대가로, 로마는 파멸과 굶주림에, 그리고 굶주림 뒤에 따라오는 모든 것의 붕괴에 거의 이를 뻔했습니다. 그때 나라의 곡물을 맡았던 사람들은 돌과 칼과 불을, 그리고 칼리굴라를 맞닥뜨려야 할 처지에서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속에 숨은 그 큰 불행을 더없이 감쪽같이 덮어 두었습니다. 물론 까닭이 있었습니다. 어떤 병은 환자가 모르게 고쳐야 하며, 많은 이에게는 자기 병을 안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9 이런 더 고요하고, 더 안전하고, 더 큰 일로 물러나십시오! 곡물이 실어 나르는 자들의 속임수와 소홀함에 상하지 않고 곳간에 옮겨 담기는지, 습기를 머금어 썩거나 뜨거워지지 않는지, 부피와 무게가 맞는지 살피시는 일과, 이 거룩하고 숭고한 일에 다가가 신의 재료가 무엇인지, 신의 즐거움과 처지와 모습은 어떠한지, 공의 영혼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몸에서 풀려난 우리를 자연이 어디에 두는지, 이 우주에서 가장 무거운 것들은 무엇이 한가운데서 떠받치고, 가벼운 것들은 무엇이 위에 매달아 두며, 불은 무엇이 꼭대기로 날라 가고, 별들은 무엇이 제 차례에 맞춰 떠오르게 하는지, 그 밖에도 엄청난 경이로 가득 찬 일들을 알아 가시는 일이, 공께서는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땅을 뒤로하고 정신으로 이런 것들을 바라보십시오! 피가 아직 뜨거울 때, 기운이 있을 때 더 나은 것을 향해 가야 합니다. 이런 삶 속에서 공을 기다리는 것은 많은 훌륭한 학문, 여러 덕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일, 욕망을 잊는 일, 사는 법과 죽는 법을 아는 지혜, 그리고 세상일에서 물러난 깊은 고요입니다.

20 분주한 사람들의 처지는 모두 비참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비참한 이들은 자기 일도 아닌 일로 애쓰는 사람들, 남의 잠에 맞춰 자고 남의 걸음에 맞춰 걸으며, 무엇보다 자유로워야 할 사랑과 미움마저 남의 명령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자기 삶이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다면, 그 삶에서 자기 것인 부분이 얼마나 작은지 생각해 보면 됩니다. 그러니 고관의 자줏빛 토가를 벌써 여러 번 걸친 사람을 보거나 포룸에 이름이 자자한 사람을 보더라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삶을 대가로 치르고 얻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 해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게 하려고 자기 햇수를 모두 닳아 없앨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야망의 꼭대기에 기어오르기도 전에 처음 발버둥 칠 때 이미 생애가 끝나 버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천 가지 치욕을 거치며 위엄의 정점까지 기어오르고 나서, 결국 자기가 묘비명을 얻으려고 애썼다는 비참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떤 이들은 마지막 노년을 젊은 날처럼 새 희망에 맞추어 꾸리다가, 크고 염치없는 일을 꾀하는 도중에 기력이 다해 쓰러졌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소송인들을 위해 법정에서 늙도록 변론하며 무지한 구경꾼들의 맞장구를 낚다가 숨이 끊어진 사람은 추합니다. 일하느라 지치기보다 사느라 먼저 지쳐서 소임을 보다가 쓰러진 사람은 부끄럽습니다. 장부를 받다가 죽어 가는데, 오래 기다리게 한 상속자가 그를 비웃는 사람도 부끄럽습니다. 제게 떠오르는 본보기 하나를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투란니우스16는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아흔 살이 넘어 칼리굴라에게서 청하지도 않은 퇴임 허락을 받자, 자기를 침상에 눕히고 둘러선 식솔들에게 죽은 사람처럼 곡을 하게 했습니다. 온 집안이 늙은 주인의 여가를 애도했고, 그에게 일이 되돌아오고 나서야 슬픔을 그쳤습니다. 분주한 채로 죽는 것이 그토록 즐겁습니까? 많은 사람이 같은 마음입니다. 일할 힘보다 일하고 싶은 욕망이 더 오래갑니다. 그들은 몸의 쇠약함과 싸우며, 노년이 자기들을 밀쳐 낸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이유로는 노년을 괴롭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법은 쉰 살부터는 병사로 징집하지 않고, 예순 살부터는 원로원 의원을 소집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법에서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여가를 얻어 내기를 더 어려워합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끌려가고 서로를 끌어가며, 서로의 쉼을 깨뜨리고, 서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동안, 삶은 열매도, 쾌락도, 마음의 어떤 진보도 없이 흘러갑니다. 아무도 죽음을 눈앞에 두지 않고, 누구나 희망을 먼 곳에 겁니다. 어떤 이들은 삶 너머의 일까지 미리 정해 둡니다. 거대한 무덤, 공공 건물의 봉헌, 화장 장작더미 앞에서 열 검투 시합, 허세 부리는 장례 행렬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맹세코, 이런 자들의 장례는 아주 잠깐 산 사람처럼 횃불과 촛불을 밝히고 치러야 합니다17.

주

  1. 1. 히포크라테스, 『잠언』 1.1. 여기서 「기술」은 의술을 말한다.

  2. 2. 키케로는 같은 불평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 테오프라스토스의 말로 전한다(『투스쿨룸 대화』 3.69).

  3. 3. 출처 미상. 세네카는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만 한다.

  4. 4. 모두 아우구스투스를 죽이려다 발각된 자들이다. 삼두 정치가 레피두스의 아들 레피두스는 기원전 30년, 무레나와 카이피오는 기원전 23년 무렵, 에그나티우스 루푸스는 기원전 19년에 음모를 꾸몄다.

  5. 5.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는 기원전 2년 여러 귀족 청년과 간통한 일이 드러나 추방되었다. 그 정부 가운데 하나인 율루스 안토니우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들이어서, 율리아를 안토니우스와 손잡았던 클레오파트라에 빗댄 말이다. 파울루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손녀 율리아의 남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로, 반역을 꾀했다고 전한다. 여러 비판본은 이 자리를 「율루스」로 읽는다.

  6. 6. 아티쿠스는 키케로의 벗 티투스 폼포니우스 아티쿠스다.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에서 지고 죽었고, 그 아들 그나이우스는 히스파니아에서 다시 군대를 모았다가 기원전 45년 문다에서 졌다. 세네카가 인용한 구절은 지금 전하는 편지에 없다.

  7. 7. 마르쿠스 리비우스 드루수스. 기원전 91년 호민관으로 이탈리아 동맹시 주민에게 시민권을 주는 법안 등을 냈다가 자기 집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8. 8. 베르길리우스 『농경시』 3.66~67.

  9. 9. 파피리우스 파비아누스. 세네카가 젊은 시절에 배운 철학자이자 웅변가다.

  10. 10.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55년 자기 극장을 봉헌하며 코끼리 싸움을 벌였다.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진 뒤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신하들 손에 죽었다. 그의 별명 마그누스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11. 11. 크세르크세스. 그리스 원정길에 군대를 바라보며 백 년 뒤면 이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 있지 않으리라며 울었다고 헤로도토스가 전한다(『역사』 7.45~46).

  12. 12. 루키우스 퀸크티우스 킨키나투스. 기원전 458년 밭을 갈다가 독재관으로 불려 나가 적을 물리치고, 보름 남짓 만에 자리를 내놓고 밭으로 돌아갔다고 전한다.

  13. 13. 대(大)스키피오, 곧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자마에서 한니발을 이겼고, 아우 루키우스가 집정관일 때 그 부관으로 나가 안티오코스 3세를 이겼다. 카피톨리움의 유피테르 곁에 그의 상을 세우자는 것을 마다했고, 말년에는 정적들의 고발에 맞서 리테르눔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죽었다.

  14. 14. 파울리누스는 로마의 식량 공급을 책임지는 곡물 관리관이었다.

  15. 15. 황제 칼리굴라(재위 37~41). 원문은 「가이우스 카이사르」. 기원후 39년 바이아이와 푸테올리 사이 바다에 배를 이어 다리를 놓고 건넜는데,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헬레스폰토스에 배다리를 놓은 일을 흉내 냈다고들 했다.

  16. 16. 섹스투스 투란니우스.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오래 곡물 관리관을 지냈다.

  17. 17. 로마에서는 어려서 죽은 아이의 장례를 밤에 횃불과 촛불을 밝히고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