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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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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내가 그린 꿈의 새는 길을 떠나 내 벗을 찾아가고 있었다. 답은 더없이 기이하게 돌아왔다.

어느 날 두 수업 사이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교실의 내 자리로 돌아와 보니, 책 속에 쪽지 한 장이 꽂혀 있었다. 반 아이들이 이따금 수업 중에 몰래 서로 쪽지를 건넬 때 우리끼리 늘 접던 모양 그대로 접혀 있었다. 누가 내게 그런 쪽지를 보냈는지, 그것만이 의아했다. 나는 반 아이 누구와도 그런 것을 주고받는 사이였던 적이 없었다. 어차피 끼지도 않을 무슨 장난에 함께하자는 이야기겠거니 하고 읽지도 않은 채 쪽지를 책 앞쪽에 끼워 두었는데, 그러다 수업 도중에야 우연히 그것이 다시 손에 잡혔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별생각 없이 펼쳐 보니 몇 마디가 적혀 있었다. 슬쩍 눈길을 주었다가 한 낱말에 걸려 흠칫 놀랐고, 그러고는 운명 앞에서 지독한 추위를 만난 듯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끼며 나는 그 글을 읽어 내려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서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1다."

그 몇 줄을 거듭 읽고 나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데미안이 보낸 답이었다. 나와 데미안 말고는 아무도 그 새를 알 수 없었다. 그 애는 내 그림을 받았다. 그리고 알아들었고, 내가 그 뜻을 풀도록 돕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진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괴롭힌 물음, 아브락사스란 무엇인가? 그런 말은 들어 본 적도, 읽어 본 적도 없었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그 시간은 수업 내용을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 지나갔다. 다음 시간이 시작되었다. 오전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대학을 갓 나온 아주 젊은 보조 교사가 맡은 수업이었는데, 우리는 그가 그렇게 젊다는 것, 그리고 우리 앞에서 거짓 위엄을 꾸며 대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그를 좋아했다.

우리는 폴렌 박사와 함께 헤로도토스를 읽고 있었다. 이 강독은 내가 흥미를 느끼던 몇 안 되는 과목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마음이 거기 없었다. 책은 기계처럼 펴 놓았지만, 번역해 나가는 대목을 따라가지 않고 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든 충분히 강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 데미안이 그때 견신례 수업에서 내게 했던 그 말이 얼마나 옳은지 나는 그사이 여러 번 겪어 본 터였다. 수업 중에 내 생각에 아주 깊이 빠져 있으면, 선생이 나를 가만 내버려 두리라고 마음 놓아도 되었다. 물론 정신이 딴 데 팔려 있거나 졸고 있으면 선생은 어느새 곁에 와 서 있었고, 그런 일도 이미 겪었다. 하지만 정말로 생각하고 있을 때, 정말로 깊이 잠겨 있을 때는 보호를 받았다. 단단히 쏘아보는 일도 시험해 보았는데 효험이 있었다. 데미안과 지내던 시절에는 잘되지 않던 일이었지만, 이제는 눈길과 생각만으로도 아주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앉아, 헤로도토스에게서도 학교에서도 멀리 떠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선생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의식에 내리꽂혀 나는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로 내 옆에 서 있었고, 나는 그가 벌써 내 이름을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숨을 돌렸다.

그때 다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그 낱말을 크게 소리 내어 말했다. "아브락사스."

앞부분은 놓쳐 버린 설명을 이어 가며 폴렌 박사가 말했다. "우리는 고대의 그 종파들과 신비주의 결사들의 생각을,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보이는 그대로 그렇게 소박하게 상상해서는 안 된다. 고대는 우리가 말하는 뜻의 학문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대신 철학적이고 신비적인 진리를 깊이 파고드는 일이 있었고, 그 일은 아주 높은 수준까지 발달해 있었다. 거기서 일부는 마술과 허황한 장난이 생겨났고, 그것이 사기와 범죄로 이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술 역시 고귀한 내력과 깊은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내가 아까 예로 든 아브락사스의 가르침이 그렇다. 이 이름은 그리스의 주문과 함께 불리며 흔히 오늘날에도 미개한 민족들이 섬기는 것과 같은 어떤 마귀의 이름으로 여겨지지만, 아브락사스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뜻하는 듯하다. 우리는 이 이름을,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하나로 결합하는 상징적 과제를 지닌 어떤 신격의 이름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몸집이 작은 그 학자는 섬세하고 열띤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그 이름이 더는 나오지 않자 내 주의도 곧 다시 내 안으로 가라앉았다.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하나로 결합한다." 그 말이 귓가에 남아 울렸다. 여기서 실마리를 이을 수 있었다. 우리 우정의 맨 마지막 무렵에 데미안과 나눈 이야기들 덕분에 이미 낯익은 생각이었다. 그때 데미안은, 우리에게는 섬기는 신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 신은 세계에서 제멋대로 떼어 낸 절반만을 나타낼 뿐이라고 했다(그것은 공인되고 허락된 "밝은" 세계였다). 그러나 우리는 온 세계를 섬길 수 있어야 하므로, 악마이기도 한 신을 모시든지 아니면 신을 섬기는 예배 곁에 악마를 섬기는 예배도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보니 아브락사스가 바로 신이면서 악마이기도 한 그 신이었다.

한동안 나는 대단한 열의로 그 흔적을 뒤쫓았지만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브락사스를 찾아 도서관 하나를 통째로 뒤졌으나 허사였다. 하지만 내 본성은 애초에 이렇게 곧바로, 의식하며 찾아 나서는 일에 맞게 생겨 먹지 않았다. 그렇게 찾아서는 대개 손에 쥐는 순간 돌멩이로 남는 진리밖에 얻지 못한다.

한동안 그토록 많이, 그토록 깊이 마음을 쏟았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이제 차츰 가라앉았다. 아니, 가라앉았다기보다는 천천히 내게서 물러나 점점 지평선 쪽으로 다가가더니, 갈수록 그림자처럼 엷어지고 더 멀어지고 더 희미해졌다. 그 모습으로는 이제 영혼이 채워지지 않았다.

몽유병자처럼 이상하게 내 안에 고치를 치고 틀어박힌 채 이어 가던 삶 속에서, 이제 새로운 무언가가 빚어지기 시작했다. 삶을 향한 그리움이 내 안에서 피어났다. 아니, 사랑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한동안 베아트리체를 우러르는 마음속으로 녹여 낼 수 있었던 성의 충동이 새로운 영상과 목표를 요구했다. 여전히 아무런 충족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리움을 속여 넘기는 일, 동무들이 행복을 찾던 그런 아가씨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은 어느 때보다도 불가능했다. 나는 다시 격렬하게 꿈을 꾸었는데, 그것도 밤보다는 낮에 더 많이 꾸었다. 상상이며 영상이며 소망이 내 안에서 솟아올라 나를 바깥 세계에서 끌어냈고, 그래서 나는 내 실제 주변과 지낼 때보다 내 안의 이 영상들, 이 꿈이나 그림자들과 더 실감 나고 생생하게 어울리며 살았다.

어떤 꿈 하나, 혹은 늘 되풀이되던 공상의 놀이 하나가 내게 큰 뜻을 띠게 되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오래 남은 이 꿈은 대략 이러했다. 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대문 위에서는 문장의 새가 파란 바탕 위에 누렇게 빛나고 있었다. 집 안에서 어머니가 나를 맞으러 나왔다. 그런데 내가 들어서서 어머니를 껴안으려 하자,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떤 형상이었다. 크고 힘찬 그 형상은 막스 데미안과도, 내가 그린 그림과도 닮았지만 또한 달랐고, 그 힘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철두철미 여자였다. 이 형상은 나를 끌어당겨 깊고 몸서리치는 사랑의 포옹 속에 품었다. 환희와 몸서리가 뒤섞였다. 그 포옹은 예배였고, 똑같이 범죄였다. 나를 감싸 안은 그 형상 속에는 어머니의 기억이 너무 많이, 내 벗 데미안의 기억이 너무 많이 유령처럼 깃들어 있었다. 그 포옹은 모든 경외를 거스르면서도 지복이었다. 이 꿈에서 깨어날 때면 깊은 행복감에 잠겨 있을 때도 많았고, 무시무시한 죄를 지은 뒤처럼 죽을 듯한 두려움과 지독히 괴로운 양심에 시달릴 때도 많았다.

이 철저히 내면의 영상과, 찾아야 할 신에 관해 바깥에서 내게 온 눈짓 사이에, 아주 서서히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연결이 생겨났다. 그 연결은 점점 더 긴밀하고 깊어졌고, 나는 바로 이 예감의 꿈속에서 내가 아브락사스를 부르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환희와 몸서리, 남자와 여자가 뒤섞이고, 가장 거룩한 것과 가장 끔찍한 것이 한데 엉키고, 깊은 죄가 더없이 여린 무구함을 뚫고 번득이는 것, 내가 꿈꾸던 사랑의 영상은 그러했고, 아브락사스도 그러했다. 사랑은 이제, 처음에 내가 겁에 질려 느꼈던 짐승처럼 어두운 충동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바쳤던, 경건하게 정신으로 승화된 우러름도 이제는 아니었다. 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면서 훨씬 그 이상이었다. 천사의 모습이자 사탄이었고, 한 몸 안의 남자와 여자, 사람과 짐승, 지고의 선이자 극한의 악이었다. 이것을 살아 내는 일이 내게 정해진 듯했고, 이것을 맛보는 일이 내 운명인 듯했다. 나는 그것을 그리워하면서 두려워했고, 꿈속에서 그것을 좇으면서 그것에게서 달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언제나 내 위에 있었다.

이듬해 봄에는 김나지움을 떠나 대학에 가야 했는데,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지는 아직 몰랐다. 입술 위로 작은 수염이 돋았다. 나는 다 자란 사람이었지만 완전히 무력했고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단단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내 안의 목소리, 그 꿈의 영상. 나는 이 인도를 눈먼 듯 따라야 한다는 과제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힘들었고, 나는 날마다 반항했다. 어쩌면 내가 미친 건 아닐까,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드물지 않게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일이라면 나도 다 할 수 있었다. 조금만 부지런히 애쓰면 플라톤을 읽을 수 있었고, 삼각법 문제를 풀거나 화학 분석을 따라갈 수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단 하나. 내 안에 어둡게 숨어 있는 목표를 끄집어내어 어딘가 내 앞에 그려 놓는 일, 교수나 판사, 의사나 예술가가 되겠다고, 그러려면 얼마나 걸리고 그것이 어떤 이득을 줄지 정확히 아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하는 일이었다. 그것만은 내게 불가능했다. 어쩌면 나도 언젠가 그런 무엇이 될지 몰랐다. 하지만 그걸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어쩌면 나는 몇 해고 찾고 또 찾아야 할지도, 그러고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어떤 목표에도 이르지 못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어떤 목표에 이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악하고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목표일 것이었다.

나는 그저 내 속에서 저절로 솟아 나오려는 것을 살아 보려 했을 따름이다. 그것이 어째서 그토록 어려웠던가?

나는 꿈에 나온 그 힘찬 사랑의 형상을 그려 보려고 여러 번 애썼다. 그러나 한 번도 되지 않았다. 그게 되었다면 그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냈을 것이다. 그 애는 어디 있을까?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애가 나와 이어져 있다는 것만은 알았다. 언제 그 애를 다시 보게 될까?

베아트리체 시절 그 몇 주, 몇 달의 다정한 고요는 오래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때 나는 섬에 닿아 평화를 찾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늘 그랬다. 어떤 상태가 마음에 들 만하면, 어떤 꿈이 나를 달래 줄 만하면, 그것은 어느새 시들고 흐려져 버렸다. 그것을 두고 한탄해 봐야 소용없었다! 이제 나는 채워지지 않는 갈망과 팽팽한 기다림의 불길 속에서 살았고, 그 불길 속에서 자주 완전히 사나워지고 미쳐 버릴 것 같았다. 꿈속 연인의 영상이 살아 있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내 손보다도 훨씬 또렷하게 눈앞에 보일 때가 많았다. 나는 그 영상과 이야기했고, 그 앞에서 울었고, 그것을 저주했다. 그것을 어머니라 부르며 눈물 속에 그 앞에 무릎을 꿇었고, 연인이라 부르며 모든 것을 채워 줄 무르익은 입맞춤을 예감했고, 악마라고, 창녀라고, 흡혈귀이자 살인자라고 불렀다. 그것은 나를 더없이 여린 사랑의 꿈으로도, 난잡한 파렴치로도 꾀어 들였다. 그것에게는 너무 좋고 귀한 것도, 너무 나쁘고 천한 것도 없었다.

그해 겨울 내내 나는 말로 그리기 어려운 내면의 폭풍 속에서 살았다. 외로움에는 오래전부터 익숙했고, 그것이 나를 짓누르지도 않았다. 나는 데미안과, 새매와, 그리고 내 운명이자 내 연인인 커다란 꿈의 형상을 눈앞에 그리며 그것들과 함께 살았고, 그것만으로도 살아가기에는 넉넉했다. 모든 것이 크고 넓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모든 것이 아브락사스를 가리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꿈들 가운데 어느 것도, 내 생각들 가운데 어느 것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불러낼 수 없었고,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색을 입힐 수 없었다. 그것들이 찾아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것들에게 다스림을 받았고, 그것들이 나를 살았다.

바깥으로는 물론 안전했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내게 은근한 존경을 보냈는데, 나는 그것을 보며 자주 웃음을 지었다. 마음만 먹으면 그들 대부분의 속을 아주 잘 꿰뚫어 볼 수 있었고, 이따금 그것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다만 그럴 마음이 드는 일은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었다.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몰두해 있었다. 언제나 나 자신에게만. 그리고 이제는 한 번쯤 정말로 삶의 한 조각을 살아 보고 싶었고, 나에게서 무언가를 세상으로 내보내 세상과 관계를 맺고 맞붙어 싸워 보고 싶어 애가 탔다. 저녁에 거리를 쏘다니다가 마음이 들떠 자정이 되도록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날이면, 이따금 바로 지금, 바로 다음 순간 내 연인이 나와 마주치리라고, 다음 모퉁이에서 곁을 지나가리라고, 다음 창문에서 나를 부르리라고 생각하곤 했다. 때로는 이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워서, 언젠가는 내 손으로 목숨을 끊을 각오까지 했다.

그 무렵 나는 독특한 피난처를 하나 찾았다. 사람들 말을 빌리자면 "우연"으로. 그러나 그런 우연은 없다. 무언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을 그에게 건네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고, 그 자신의 갈망과 그 자신의 어쩔 수 없음이 그를 그리로 이끈다.

시내를 거닐다가 변두리의 작은 교회당에서 오르간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두세 번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음번에 그 앞을 지날 때 다시 그 소리가 들렸고, 이번에는 바흐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문으로 가 보니 잠겨 있었다. 골목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나는 교회당 옆 차막이 돌 위에 앉아 외투 깃을 여미고 귀를 기울였다. 크지는 않아도 좋은 오르간이었다. 연주는 기이했다. 훌륭하고 거의 대가다운 솜씨였지만, 거기에는 기도처럼 들리는 독특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의지와 끈기가 배어 있었다. 저기서 연주하는 사람은 이 음악 속에 보물이 잠겨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보물을 얻으려고 목숨이라도 걸린 듯 구애하고 두드리고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음악을 잘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런 영혼의 표현만은 어릴 때부터 본능으로 알아들었고, 음악적인 것을 내 안에 당연히 있는 무엇으로 느껴 왔다.

연주자는 이어서 현대 음악도 한 곡 쳤는데, 레거2의 곡인 듯했다. 교회당 안은 거의 완전히 캄캄했고, 가장 가까운 창으로 아주 가느다란 빛줄기 하나가 새어 들 뿐이었다. 나는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르간 연주자가 나오는 것이 보일 때까지 이리저리 서성였다. 아직 젊은 사람이었지만 나보다는 나이가 위였고 몸집이 다부지고 땅딸막했는데, 그는 힘차면서도 어딘지 마지못한 듯한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 버렸다.

그 뒤로 나는 가끔 저녁 시간이면 교회당 앞에 앉아 있거나 그 앞을 오락가락했다. 한번은 문이 열려 있어서, 오르간 연주자가 위에서 희미한 가스등 불빛 아래 연주하는 동안 반 시간을 신도석에 앉아 떨면서도 행복하게 보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내가 들은 것은 그 사람 자신만이 아니었다. 그가 연주하는 것은 모두 서로 닮아 있고 남모르는 연관을 지닌 것 같았다. 그가 연주하는 것은 하나같이 믿음에 차 있었고, 헌신적이고 경건했다. 하지만 교회에 다니는 신도나 목사들처럼 경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의 순례자나 거지처럼, 모든 교파의 신앙 고백을 넘어선 세계를 느끼는 어떤 감정에 거침없이 몸을 내맡기며 경건했다. 바흐 이전의 거장들이 부지런히 연주되었고, 옛 이탈리아 음악가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같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그 음악가의 영혼에 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리움, 세계를 더없이 깊이 끌어안는 일과 세계에서 더없이 거칠게 다시 떨어져 나오는 일, 제 어두운 영혼에 타오르듯 귀 기울이는 일, 헌신의 도취, 그리고 경이로운 것을 향한 깊은 호기심.

한번은 오르간 연주자가 교회당을 떠난 뒤 몰래 그 뒤를 밟았는데, 그는 도시 변두리 저 바깥의 작은 술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참지 못하고 따라 들어갔다. 거기서 처음으로 그를 똑똑히 보았다. 그는 좁은 방 한구석의 술집 탁자 앞에 검은 펠트 모자를 쓴 채 포도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고, 그 얼굴은 내가 짐작한 그대로였다. 못생기고 어딘가 거칠었으며, 무언가를 찾는 듯하면서도 한 가지에 꽉 틀어박혀 있었고, 고집스럽고 의지에 차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입가는 부드럽고 아이 같았다. 남자답고 강한 것은 모두 눈과 이마에 모여 있었고, 얼굴 아래쪽은 여리고 덜 다듬어졌으며 다잡히지 않은 채 얼마간 나약했다. 망설임이 가득한 턱은 이마와 눈빛에 맞서는 모순처럼 소년같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자부심과 적의가 가득한 짙은 갈색 눈이 나는 좋았다.

나는 말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술집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그는 나를 쫓아내려는 듯 번득이는 눈으로 쏘아보았다. 그래도 나는 물러서지 않고 그를 줄곧 바라보았고, 마침내 그가 퉁명스럽게 투덜거렸다. "뭘 그렇게 지독하게 쳐다보나?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아무 볼일도 없습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래, 자네 음악에 들뜬 사람인가? 나는 음악에 들떠 열을 올리는 게 역겹네."

나는 기죽지 않았다.

"저기 바깥 교회당에서 벌써 여러 번 연주를 들었습니다." 내가 말했다. "귀찮게 해 드릴 생각은 없습니다. 혹시 여기서 무언가를, 무언가 특별한 것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차라리 아예 듣지 마십시오! 저는 교회당에서 들으면 됩니다."

"나는 늘 문을 잠그네."

"얼마 전에는 잊으셨습니다. 그때 저는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다른 때는 밖에 서 있거나 차막이 돌에 앉아 있습니다."

"그래? 다음엔 들어와도 되네. 안이 더 따뜻하니까. 문만 두드리게. 다만 세게 두드리고, 내가 연주할 때는 말게. 자, 그럼… 무슨 말을 하려던 참인가? 자네는 아주 젊은 친구로군. 아마 김나지움 학생이거나 대학생이겠지. 음악을 하나?"

"아닙니다. 음악 듣기를 좋아하지만, 연주하시는 그런 음악, 아무 조건도 붙지 않은 음악, 한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뒤흔드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음악만 좋아합니다. 저는 음악이 무척 좋습니다. 아마 음악이 도덕과 별 상관이 없어서일 겁니다. 다른 것은 다 도덕적이고, 저는 그렇지 않은 무언가를 찾고 있습니다. 저는 늘 도덕적인 것 때문에 괴로워하기만 했습니다. 생각을 제대로 말로 옮기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이기도 한 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아십니까? 그런 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음악가는 챙 넓은 모자를 조금 뒤로 젖히고 넓은 이마에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을 털어 넘겼고, 그러면서 꿰뚫어 보듯 나를 바라보며 탁자 너머 내 쪽으로 얼굴을 기울였다.

그가 낮고 팽팽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말하는 그 신의 이름이 뭔가?"

"안타깝게도 그 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릅니다. 사실 이름밖에 모릅니다. 아브락사스라고 합니다."

음악가는 누가 엿듣기라도 할까 봐 미심쩍은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바싹 다가앉아 속삭였다. "그럴 줄 알았네. 자네는 누군가?"

"김나지움 학생입니다."

"아브락사스는 어떻게 알았나?"

"우연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가 탁자를 내리치는 바람에 포도주 잔이 넘쳤다.

"우연이라니! 개… 같은 소리 말게, 젊은 친구! 아브락사스는 우연으로 알게 되는 게 아닐세. 그걸 명심하게. 그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이야기해 주겠네. 나도 조금은 아네."

그는 입을 다물고 의자를 뒤로 물렸다. 내가 기대에 차서 바라보자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여기서는 안 되네! 다음에. 자, 이거나 받게!"

그러면서 그는 벗지 않고 있던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군밤 몇 알을 꺼내 내게 던졌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 먹었고, 몹시 흐뭇했다.

"자, 그럼!" 한참 뒤에 그가 속삭였다. "어디서 알게 됐나, 그…분을?"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저는 외롭고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이야기했다. "그때 예전에 사귀던 친구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는 아주 많은 것을 안다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그림을 하나 그렸습니다. 둥근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새였습니다. 그것을 그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뒤, 더는 별로 기대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종이 한 장이 제 손에 들어왔는데 거기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부서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밤 껍질을 까서 포도주에 곁들여 먹었다.

"한 잔 더 하겠나?" 그가 물었다.

"고맙지만 됐습니다. 저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는 조금 실망한 듯 웃었다.

"좋을 대로 하게! 나는 다르네. 나는 좀 더 있다 가겠네. 자네는 이제 가 보게!"

다음번에 오르간 연주를 듣고 나서 그와 함께 갔을 때, 그는 그다지 말이 없었다. 그는 나를 데리고 오래된 골목의 오래되고 당당한 집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가더니, 크고 어딘가 침침하며 돌보지 않아 어수선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피아노 한 대 말고는 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대신 커다란 책장과 책상이 있어 방은 학자의 방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책이 참 많으십니다!" 나는 감탄하며 말했다.

"일부는 아버지 서재에서 나온 걸세. 나는 아버지 집에 얹혀살거든. 그래, 젊은 친구,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지만 자네를 두 분께 소개할 수는 없네. 이 집에서는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그리 대접을 받지 못하거든. 나는 탕자라네, 알겠나. 아버지는 엄청나게 훌륭한 분이시고, 이 도시에서 이름난 목사이자 설교자시지. 그리고 나는, 자네가 미리 알아 두라고 하는 말인데, 그분의 재능 있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드님이시지만 궤도를 벗어나 얼마간 미쳐 버린 사람일세. 나는 신학을 공부했는데, 국가시험을 코앞에 두고 그 점잖은 학부를 떠났네. 하기야 혼자 하는 공부로 치면 지금도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셈이지만. 사람들이 그때그때 어떤 신들을 생각해 냈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도 내게 무척 중요하고 흥미롭네. 그 밖에는 이제 음악가고, 보아하니 곧 작은 오르간 연주자 자리를 하나 얻게 될 것 같네. 그러면 나도 다시 교회 곁에 붙어 있게 되는 셈이지."

나는 책등을 따라 훑어보며, 작은 탁상 등의 희미한 불빛으로 알아볼 수 있는 한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히브리어로 된 책 제목들을 찾아냈다. 그사이 새로 알게 된 그 사람은 어둠 속 벽 쪽 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리 오게." 잠시 뒤 그가 불렀다. "이제 철학을 좀 해 보세. 말하자면 입 다물고, 배를 깔고 엎드려서, 생각하는 걸세."

그는 성냥을 그어, 자기가 엎드린 앞의 벽난로에서 종이와 장작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높이 치솟았고, 그는 아주 세심하게 공을 들여 불을 쑤시고 장작을 먹였다. 나는 그의 곁, 닳아 해진 양탄자 위에 엎드렸다. 그는 불을 응시했고, 불은 나도 끌어당겼다. 우리는 아마 한 시간쯤 말없이 깜빡이는 장작불 앞에 배를 깔고 엎드려, 불이 타오르며 우우 소리를 내다가 주저앉고 몸을 비틀고, 너울거리다 움찔대다가 마침내 바닥에 깔려 고요히 가라앉은 잉걸불로 웅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불 숭배는 사람이 생각해 낸 것 가운데 제일 어리석은 건 아니었네." 한번은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밖에는 우리 둘 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굳은 눈으로 불에 매달린 채 꿈과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고, 연기 속에서 형상들을, 재 속에서 그림들을 보았다. 한번은 흠칫 놀라 정신을 차렸다. 내 동무가 송진 한 조각을 잉걸불에 던져 넣자 작고 가느다란 불꽃 하나가 솟구쳤는데, 나는 그 안에서 누런 새매 머리를 한 새를 보았다. 사그라져 가는 벽난로의 잉걸불 속에서 금빛으로 달아오른 실들이 그물처럼 얽혀 들었고, 글자와 그림들이, 얼굴들과 짐승들, 풀과 나무, 벌레와 뱀의 기억들이 나타났다. 깨어나 그를 돌아보니, 그는 두 주먹으로 턱을 괴고 넋을 놓은 채 광신자처럼 잿더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가야겠습니다." 내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 그럼 가 보게. 잘 가게!"

그는 일어나지 않았고, 등불도 꺼져 있었기에 나는 캄캄한 방과 캄캄한 복도와 계단을 힘겹게 더듬으며 마법에 걸린 듯한 그 오래된 집을 빠져나와야 했다. 거리에 나와 걸음을 멈추고 그 오래된 집을 올려다보았다. 어느 창에도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문 앞에서 작은 놋쇠 문패 하나가 가스등 불빛에 반짝였다.

"피스토리우스, 주임 목사." 나는 거기 새겨진 글자를 읽었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작은 내 방에 혼자 앉아 있을 때에야, 아브락사스에 대해서도 그 밖의 무엇에 대해서도 피스토리우스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우리가 주고받은 말이 열 마디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그를 찾아간 일이 무척 흡족했다. 게다가 그는 다음번에 아주 빼어난 옛 오르간 곡 한 편, 북스테후데3의 파사칼리아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몰랐지만, 그의 침침한 은둔자의 방에서 그와 함께 벽난로 앞 바닥에 엎드려 있던 그때,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는 내게 첫 수업을 해 준 셈이었다. 불을 바라본 일은 내게 이로웠다. 불을 바라보는 동안, 늘 지니고 있었지만 제대로 가꾼 적은 없던 내 안의 성향들이 힘을 얻고 굳어졌다. 차츰 나는 그것을 얼마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나는 이따금 자연의 기묘한 형태들을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관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고유의 마력과 그 얽히고설킨 깊은 언어에 나를 내맡겼다. 길게 뻗어 나무처럼 굳은 뿌리, 돌 속의 색색 결, 물 위에 뜬 기름 얼룩, 유리에 간 금, 이런 비슷한 것들이 모두 한때 내게 커다란 마력을 지녔다. 무엇보다 물과 불, 연기, 구름, 먼지가 그랬고, 특히 눈을 감으면 보이던 빙빙 도는 색 얼룩들이 그랬다. 피스토리우스를 처음 찾아간 뒤 며칠 동안 이 일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느끼던 어떤 힘과 기쁨, 나 자신을 느끼는 감정이 한층 높아진 것이 오로지 활활 타는 불을 오래 응시한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일은 기이하리만치 마음을 달래 주고 나를 풍요롭게 했다!

지금까지 내 본래의 삶의 목표로 가는 길에서 얻은 몇 안 되는 경험에 이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보태졌다. 그런 형상들을 바라보는 일, 자연의 비합리하고 얽히고설킨 기묘한 형태에 자신을 내맡기는 일은, 우리 내면이 이 형상들을 생겨나게 한 의지와 하나로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곧 그것들을 우리 자신의 변덕으로, 우리 자신의 창조물로 여기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우리와 자연 사이의 경계가 떨리며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우리 망막에 맺힌 영상이 바깥의 인상에서 온 것인지 안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세계의 끊임없는 창조에 얼마나 늘 함께하고 있는지를, 이 연습에서만큼 단순하고 쉽게 발견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아니, 우리 안에서 일하는 것과 자연 속에서 일하는 것은 같은 하나의 나뉠 수 없는 신성이다. 만약 바깥 세계가 무너져 사라진다면 우리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그것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 뿌리와 꽃, 자연 속에 빚어진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미리 빚어져 있고, 영혼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 영혼의 본성은 영원이고, 우리는 그 본성을 모르지만, 그것은 대개 사랑의 힘과 창조의 힘으로 우리에게 느껴진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나는 이 관찰이 어느 책에서 확인되는 것을 보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책이었는데, 그는 한 대목에서 많은 사람이 침을 뱉어 놓은 벽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좋고 깊은 자극이 되는지 이야기했다. 축축한 벽의 그 얼룩들 앞에서 그는 피스토리우스와 내가 불 앞에서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느꼈다.

다음에 만났을 때 오르간 연주자는 내게 그것을 풀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늘 우리 인격의 경계를 너무 좁게 긋네! 우리는 늘, 남과 구별되는 것, 남과 다르다고 알아보는 것만을 우리 자신으로 치지.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세계가 지닌 모든 것으로 이루어져 있네. 우리 몸이 물고기까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진화의 족보를 제 안에 지니고 있듯, 우리 영혼 안에는 이제까지 사람의 영혼 속에 살았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네. 일찍이 있었던 모든 신과 악마가, 그리스 사람의 것이든 중국 사람의 것이든 줄루족의 것이든, 모두 우리 안에 함께 있네.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빠져나갈 길로 거기 있단 말일세. 만약 인류가 다 죽어 없어지고, 아무런 가르침도 받지 못한 그럭저럭 재능 있는 아이 하나만 남는다면, 그 아이는 만물이 걸어온 길을 고스란히 다시 찾아낼 걸세. 신들, 악령들, 낙원들, 계명과 금지, 구약과 신약, 그 모든 것을 다시 만들어 낼 수 있을 걸세."

"네, 좋습니다." 내가 반박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모든 것이 이미 다 갖춰져 있다면, 우리는 무엇 하러 애를 씁니까?"

"잠깐!" 피스토리우스가 격하게 외쳤다. "자네가 그저 세계를 제 안에 품고 있느냐, 아니면 그것을 알기도 하느냐는 큰 차이가 있네! 미친 사람도 플라톤을 떠올리게 하는 생각을 낳을 수 있고, 헤른후트 형제단 학교의 어린 경건한 학생도 영지주의자들이나 조로아스터에게서 나오는 깊은 신화의 연관을 창조적으로 생각해 낼 수 있네. 하지만 그 아이는 그걸 전혀 모르네! 그걸 모르는 동안은 나무나 돌, 기껏해야 짐승일 뿐이지. 그러다 이 깨달음의 첫 불꽃이 어슴푸레 밝아 오면, 그때 그 아이는 사람이 되는 걸세. 설마 저기 거리를 걸어 다니는 두 발 짐승들을, 그저 똑바로 서서 걷고 새끼를 아홉 달 밴다고 해서, 모두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겠지?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지, 얼마나 많은 것이 개미이고 얼마나 많은 것이 벌인지 자네도 보지 않나! 그래, 그들 하나하나 안에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기는 하네. 하지만 그 가능성을 예감하고, 더러는 그것을 스스로 의식하는 법까지 배울 때에야 비로소 그 가능성은 그의 것이 된다네."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대체로 이러했다. 그 이야기들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 정말 놀라운 것을 얻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하나같이, 가장 진부한 것까지도, 나지막하고 끈질긴 망치질처럼 내 안의 같은 한 점을 두드렸다. 모두가 나를 빚는 일을 거들었고, 모두가 내게서 허물을 벗겨 내고 알껍데기를 깨뜨리는 일을 도왔다. 이야기 하나하나에서 나는 고개를 조금 더 높이, 조금 더 자유롭게 들어 올렸고, 마침내 내 누런 새는 산산이 부서진 세계의 껍데기를 뚫고 그 아름다운 맹금의 머리를 내밀었다.

우리는 자주 서로 꿈 이야기도 했다. 피스토리우스는 꿈을 풀이할 줄 알았다. 기이한 예 하나가 지금 막 떠오른다. 나는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날았다기보다는, 내가 다스리지 못하는 커다란 기세에 떠밀려 허공으로 내던져졌다고 해야 맞았다. 그렇게 나는 기분은 처음엔 가슴이 부풀 만큼 좋았지만, 내 뜻과 상관없이 아찔한 높이로 휩쓸려 올라가는 나 자신을 깨닫자 이내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그때 나는 구원 같은 발견을 했다. 숨을 참았다가 내쉬었다 하면 오르고 내리는 것을 조절할 수 있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 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를 날게 하는 그 기세, 그건 누구나 지닌 우리 인류의 큰 재산일세. 모든 힘의 뿌리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지. 하지만 그러다 보면 곧 겁이 나네! 지독하게 위험하거든! 그래서 대부분은 날기를 기꺼이 포기하고, 법규에 따라 보도 위를 걷는 쪽을 택하지. 하지만 자네는 그러지 않네. 자네는 계속 나네. 제법 쓸 만한 젊은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그런데 보게, 그러다 자네는 기이한 것을 발견하네. 차츰 그것을 다스리게 된다는 걸세. 자네를 휩쓸어 가는 크고 보편적인 힘에, 섬세하고 작은 자네 자신의 힘이 하나 더해진다는 걸세. 기관 하나, 키 하나가! 그거 근사하지 않나. 그게 없으면 사람은 제 뜻도 없이 하늘로 날아가 버리네. 이를테면 미친 사람들이 그렇지. 그들에게는 보도 위를 걷는 사람들보다 더 깊은 예감이 주어져 있지만, 거기 맞는 열쇠도 키도 없어서 밑 없는 곳으로 곤두박질치지. 그런데 자네는, 싱클레어, 자네는 그걸 해내네! 그것도 어떻게 해내는지, 들어 보게. 아마 자네는 아직 모르겠지? 새로운 기관으로, 호흡 조절기로 해내는 걸세. 그러니 이제 자네 영혼이 그 깊은 곳에서 얼마나 '개인적'이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영혼은 이 조절기를 발명하지 않네! 이건 새것이 아닐세. 빌려 온 것이고, 수천 년 전부터 있어 온 것일세. 물고기의 평형 기관, 부레란 말일세. 실제로 오늘날에도 몇 안 되는 기이하고 보수적인 물고기 종류가 있는데, 그것들은 부레가 일종의 허파 구실도 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로 숨 쉬는 데 쓰인다네. 그러니까 자네가 꿈속에서 날 때 공기주머니로 쓰는 그 허파와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단 말일세!"

그는 동물학 책 한 권까지 가져와서 그 구식 물고기들의 이름과 그림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야릇한 전율과 함께, 아득한 옛 진화의 시대에 속한 한 기능이 내 안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주

  1. 1. 아브락사스(Abraxas). 고대 영지주의 문헌과 부적에 나오는 신의 이름. 신과 악마를 아우르는 존재로 그려진다.

  2. 2. 막스 레거(1873~1916). 독일의 작곡가·오르간 연주자. 바흐를 잇는 오르간 곡을 많이 썼다.

  3. 3. 디트리히 북스테후데(1637년께~1707). 북독일의 오르간 연주자·작곡가. 젊은 바흐가 찾아가 배운 거장이다.